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00:17:26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a0000, #cd0000 20%, #cd0000 80%, #9a0000);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사보이아 왕조
아메데오 8세 루도비코 아메데오 9세 필리베르토 1세 카를로 1세
카를로 조반니 아메데오 필리포 2세 필리베르토 2세 카를로 2세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프란체스코 자친토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 카를로 펠리체
카를로 알베르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사보이아 백국 · 사보이아 공국 · 사르데냐 왕국 · 이탈리아 왕국 }}}}}}}}}
<colbgcolor=#CD0000><colcolor=#FFF>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Carlo Emanuele II, Duca di Savoia
이름 카를로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Carlo Emanuele di Savoia)
출생 1634년 6월 20일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
사망 1675년 6월 12일 (향년 40세)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
재위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1638년 10월 4일 ~ 1675년 6월 12일
배우자 프랑수아즈 마들렌 도를레앙(1663년 결혼 / 1664년 사망)
사부아느무르의 마리 잔(1665년 결혼)
자녀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아버지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어머니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리
서명 파일: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서명.svg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사보이아 공국공작으로, 토리노바로크풍으로 바꾸어 발전시켰다.

2. 생애

아버지인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1637년 10월 7일 별세하고, 형 프란체스코 자친토 역시 1638년 10월 4일 6살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겨우 4살에 사보이아 공작이 되어 어머니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리섭정을 맡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숙부 마우리치오 추기경과 사보이아-카리냐노 공작 토마소 프란체스코[1]가 반란을 일으켰고 이 내전은 1642년까지 계속되었다.

친정을 시작하고 나서는 프랑스 출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랑스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지어 토리노를 단장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조카이자 루이 14세의 사촌인 프랑수아즈 마들렌과 결혼했으나 그녀가 불과 15세에 사망하여 자녀를 두지 못했고, 사부아느무르[2]의 마리 잔과 재혼해서[3] 외아들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를 두었다.

1675년 급사했으며 토리노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1] 사부아 공자 외젠의 할아버지로 카를로 펠리체 사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왕위를 이어받은 사보이아-카리냐노 분가의 시조.[2] 필리포 2세의 4남 사부아느무르 공작 필리프로부터 시작되는 사보이아 가문프랑스계 방계 가문.[3] 마리 잔과의 결혼으로 오늘날 오트사부아에 해당하는 영토를 사보이아 공국으로 완전히 편입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