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02:39:05

오스트리아의 요하나

<colbgcolor=#E8DAEE><colcolor=#000000> 토스카나 대공국 프란체스코 1세의 대공비
오스트리아의 요하나
Johanna von Österreich
파일:Joanna of Austria.jpg
이름 독일어 오스트리아의 요하나
(Johanna von Österreich)
이탈리아어 오스트리아의 조반나
(Giovanna d'Austria)
출생 1547년 1월 24일
신성 로마 제국 보헤미아 왕국 프라하
사망 1578년 4월 11일 (향년 31세)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배우자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 (1565년 결혼)
자녀 엘레오노라, 안나, 마리아, 필리포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
어머니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언너
형제 엘리자베트, 막시밀리안 2세, 안나, 페르디난트 2세, 마리아, 막달레나, 카타리나, 엘레오노라, 마르가레테, 바르바라, 카를 2세, 헬레나
종교 가톨릭 (세례명:요안나)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3.1. 조상3.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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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성 로마 제국 페르디난트 1세의 막내딸이자 토스카나 대공비.

프랑스 왕국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의 어머니이자 페르디난트 2세의 황후 엘레오노라 곤차가의 할머니이다.

2. 생애

1547년 1월 24일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와 헝가리의 언너의 4남 1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언너는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 이미 43세[1]였고 이미 14차례의 출산을 겪은 상태였기에 태어나고 며칠만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언니들과 같이 이탈리아 반도의 명문 가문으로 혼처가 정해졌다. 이탈리아에서의 제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요하나는 메디치 가문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1565년 12월 18일에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1세 데 메디치의 아들 프란체스코와 결혼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녀인 요하나는 토스카나에서 환대를 받았지만 결혼 생활은 매우 불행했다.

요하나는 오만하고 차가운 성격이었으며, 결혼 후에도 계속 고향을 그리워했다. 반면 프란체스코는 활발한 성격에 아내와 공통의 관심사가 없었다. 요하나는 남편의 냉대를 받으면서 향수병에 시달렸다.

1574년 4월 21일에 남편이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의 직위를 받으면서 요하나는 대공비가 되었다. 그러나 요하나의 입지는 위태로웠는데, 그때까지 낳은 6명의 자식들이 모두 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중에서 유아기를 넘긴 아이는 3명 뿐이었다.

프란체스코 1세는 사랑이 없고 후계자도 낳지 못하는 아내를 방치하고 정부 비앙카 카펠로에게 푹 빠져지냈다. 프란체스코 1세는 대놓고 요하나 앞에서 비앙카 카펠로와의 다정한 모습을 보이며 요하나가 분노하게 만들었다. 요하나는 오빠 막시밀리안 2세에게 불평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막시밀리안 2세는 곧장 토스카나에 사절단을 파견해 대공저에서 요하나가 받는 대우에 대한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1576년에 비앙카 카펠로가 아들 안토니오 드 메디치를 낳으면서 요하나는 큰 타격을 입었다.

비앙카 카펠로가 아들을 낳은 다음해인 1577년에 요하나는 드디어 아들 필리포를 낳았다. 그 다음해에 요하나는 또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삭의 몸으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아이를 사산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낳고 숨을 거두었듯 그녀 역시 아이를 낳고 숨진 것.

요하나가 죽고 프란체스코 1세가 곧바로 비앙카 카펠로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프란체스코 1세나 비앙카 카펠로가 요하나를 죽인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조사 결과 요하나는 단순히 아이를 낳다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되었다.

3. 가족 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오스트리아의 요하나
(Johanna of Austria)
<colbgcolor=#fff3e4,#331c00> 페르디난트 1세
(Ferdinand I)
<colbgcolor=#ffffe4,#323300> 펠리페 1세
(Felipe I)
막시밀리안 1세
(Maximilian I)
부르고뉴 여공작 마리
(Mary, Duchess of Burgundy)
후아나 1세
(Juana)
페란도 2세
(Fernando II)
이사벨 1세
(Isabel I)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언너
(Anna of Bohemia and Hungary)
울라슬로 2세
(Vladislaus II)
카지미에시 4세 야기엘론치크
(Casimir IV Jagiellon)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2]
(Elisabeth of Austria)
푸아캉달의 안
(Ann of Foix-Candale)
캉달 백작 가스통 드 푸아
(Gaston de Foix, Count of Candale)
푸아의 카트린
(Catherine of Foix)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만토바와 몬페라토 공작부인 엘레오노라
(Eleanor, Duchess of Mantua and Montferrat)
1567년 2월 28일 1611년 9월 9일 만토바 공작 빈첸초 1세
슬하 3남 2녀[3]
2녀 안나 데 메디치
(Anna de' Medici)
1569년 12월 31일 1584년2월 19일
3녀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비 마리
(Maria, Queen of France and Navarre)
1575년 4월 26일 1642년 7월 3일 앙리 4세
슬하 3남 3녀[4]
1남 토스카나의 대공세자 필리포
(Philip, Grand Prince of Tuscany)
1577년 5월 20일 1582년 3월 29일

[1] 이 시절에 43세면 이미 손주를 보고도 남을 나이였다. 지금으로 치면 환갑 할머니가 아이를 낳은 격. 당장 요하나 본인이 1547년생, 큰오빠 막시밀리안의 장녀 안나1549년생으로 조카고작 2년 가량의 터울밖에 나지 않는다.[2] 알브레히트 2세의 차녀이자 지기스문트의 외손녀다.[3] 만토바 공작 프란체스코 4세, 만토바 공작 페르디난도, 만토바 공작 빈첸초 2세,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 엘레오노라 등[4] 루이 13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왕비 엘리자베트, 사보이아 공작부인 크리스틴 마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비 앙리에트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