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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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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스 포먼 (래리 플린트) | → |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 → |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
제66회 (2009년) | → | 제67회 (2010년) | → | 제68회 (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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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 ||||
감독상 | ||||
제2회 (1997년) | → | 제3회 (1998년) | → | 제4회 (1999년) |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 | → |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 → |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
역대 새턴 시상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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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1985년) | → | 제14회 (1986년) | → | 제15회 (1987년) |
론 하워드 (코쿤) | → | 제임스 카메론 (에이리언 2) | → | 폴 버호벤 (로보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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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 ||
입성날짜 | 2009년 12월 18일 | ||
위치 | 6712 Hollywood Blvd. | }}}}}}}}} |
<rowcolor=#fff> 시애틀 대중문화박물관(MoPOP) 선정 SF & 판타지 명예의 전당 | ||
<colcolor=#000,#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fff> 1996년 | A. E. 밴보트 · 잭 윌리엄슨 · 존 W. 캠벨 · 휴고 건즈백 |
1997년 | 안드레 노튼 · 아서 C. 클라크 · 아이작 아시모프 · 허버트 조지 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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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 은네디 오코라포르 · 니컬라 그리피스 · 블랙 팬서 · 드래곤볼 | }}} }}} }}} |
}}} ||
<colbgcolor=#000><colcolor=#fff>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 |||
본명 | 제임스 프랜시스 캐머런 James Francis Cameron | ||
출생 | 1954년 8월 16일 ([age(1954-08-16)]세) | ||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주 카푸스카싱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
링크 |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학력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풀러턴캠퍼스 (물리학 / 중퇴) | |
수훈 | 캐나다 훈장 1등급 컴패니언 (2019년 수훈) | ||
종교 | 무종교(무신론)[1] | ||
혈통 |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 | ||
배우자 | 섀런 윌리엄스 (1978 – 1984; 이혼) 게일 앤 허드 (1985 – 1989; 이혼) 캐스린 비글로 (1989 – 1991; 이혼) 린다 해밀턴 (1997 – 1999; 이혼) 수지 에이미스 (2000 – 현재) | ||
자녀 | 딸 조세핀 아처 캐머런 (1993년 2월 15일생) 딸 클레어 캐머런 (2001년 4월 4일생) 아들 퀸 캐머런 (2003년생) 딸 엘리자베스 로스 캐머런 (2006년생) | ||
활동 | 1975년 ~ 현재 | ||
데뷔 | 단편 제노제네시스 (1978년) 장편 피라냐 2 (1981년) | ||
신체 | 188cm | ||
애칭 | 짐 (Jim)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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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출신의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자이자 해양 탐험가, 환경 운동가.
1980년대에 영화계에 입문해 터미네이터 시리즈[3], 타이타닉, 아바타 시리즈[4] 등을 만들었으며, 또한 이 과정에서 CG를 적극적으로 활용[5]하여 영상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고,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로 영화사 제작비 1억 달러를 최초로 돌파, 타이타닉으로 제작비 2억 달러를 최초로 돌파하며 현 할리우드 대형 예산 관행의 시초를 만든 인물이다.[6] 그가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세계적으로 대흥행을 기록했다.
해양 탐험가로서도 상당한 업적을 남겨서 2012년에 인류 최초로 1인 잠수정 '딥시 챌린저'호에 직접 탑승해 마리아나 해구의 가장 깊은 구역인 챌린저 해연을 탐사했다. 이는 해저 10,908m에 해당하는 깊이로, 2019년에 다른 탐험가에게 깨지기 전까지 세계 신기록이었다.#
2. 생애
2.1. 데뷔 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생으로 17살 때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어머니는 간호사 겸 예술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잡동사니로 로켓, 비행기, 탱크 등을 만들면서 미니어처 제작에 친숙해졌고 50년대 B급 SF 영화에 빠져 들었다. 카메론은 독서광이기도 했는데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SF물을 탐독하며 그 시각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카메론은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빌려서 16mm 영화 습작과 미니어처를 직접 만들며 특수효과를 연습했다.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중퇴한 카메론은 결혼을 하고, 트럭 운전사나 만화가 어시스턴트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스타워즈〉를 보고 엄청난 컬처쇼크를 받아 일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친구와 함께 만든 단편 습작영화 〈제노제네시스〉가 좋은 평가를 받았고,[7] B급 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흥행시켜 수익을 남기는 걸로 유명했던 로저 코먼의 뉴 월드 픽처스에 들어갔다. [8]
2.2. 활동
2.2.1. 우여곡절 속 데뷔
로저 코먼의 수하에서 〈우주의 7인〉(1980)의 미니어처를 제작한 것이 첫 영화 작업. 그 외에도 〈공포의 혹성〉(1980)[9]이나 〈뉴욕 탈출〉(1981) 같은 B급 SF 영화의 디자인과 특수효과에 참여하며 제작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그리하여 〈피라냐 2〉(1981)에서 드디어 염원하던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기억하기 싫은 악몽만 남겼다. 월간 〈키노〉 같은 잡지에서도 유명 감독의 최악 데뷔작으로 손꼽힌다고 썼을 정도였다.
전편인 피라냐 1은 로저 코먼이 제작하고 조 단테가 감독하여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 죠스 짝퉁임에도 미국에서만 제작비 15배가 넘는 대박을 거둔 영화였다. 피라냐 2는 로저 코먼에게 판권을 사서 만든 영화인데 감독을 뺀 제작진들 대부분이 이탈리아인들이어서 사실상 이탈리아 영화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본래 특수효과 책임자로 발탁됐는데, 원래 피라냐 2를 감독을 맡겼던 밀러 드레이크[10]를 이탈리아인 제작자인 오비디오 G. 아소니티스[11]가 해고해버렸고 제임스 카메론에게 감독직까지 줬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에게 감독 자리를 준 것은 아소니티스가 잔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영화 제작비의 일부는 미국의 영화사가 대고 있었는데, 미국 측은 자금의 일부를 조달하는 조건으로 아소니티스에게 북미 사람을 감독으로 고용할 것을 내세웠다. 아소니티스는 영화 감독 경험이 없는 카메론이 밀러 드레이크보다 통제하기 쉬울 것이라는 계산하에 밀러를 해고한 것이었고, 카메론에게 명분상 감독 자리만 주었지만 카메론도 2주 반이 지난 뒤에 잘라버린 뒤 자기가 실질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했다. 카메론은 감독직을 맡았던 짧은 기간에도 자기가 찍은 필름을 보지 못하고 아소니티스가 시키는 대로 촬영만 해야 했다. 게다가 아소니티스는 상술한 조건을 겉으로는 지키는 척을 하려고 영화의 크레딧에 여전히 제임스 카메론의 이름을 감독으로 기재해놓았다. 첫 감독 데뷔작을 기대했지만 제대로 감독을 맡지도 못하고 이름도 도용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카메론은 무지 실망했는데, 하다못해 편집이라도 하려고 몰래 영화 사무실에 잠입해서 필름을 편집했다. 그러나 들켜버렸고 이탈리아 스태프진들이 도로 원래 편집본으로 돌려놓았다. 결국 영화의 최종판은 희대의 괴작이 돼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들에서 출연한 미국 배우 랜스 헨릭슨도 이 피라냐 2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헨릭슨의 회고에 따르면 배우진은 미국인인데 제작진은 이탈리아인인데다 영어를 하나도 몰랐다고 한다. 배우들은 제작진이 뭐라 말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헨릭슨이 카메론 감독에게 "쟤들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라고 물어보자 카메론 감독도 즉시 짜증내며 "시X! 나라고 이탈리아어를 뭘 알겠어요!?" 라고 이를 갈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영화가 제대로 나오는 게 기적이었다. 더 엽기적인 건 제작비 아끼기로 악명높은 로저 코먼이 제작한 피라냐 1조차도 6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거늘 2편은 15만 달러로 만들어졌다. 그래도 극장 개봉으로 40만 달러 정도 벌어서 수익을 조금은 거뒀다.
그러나 흥행과 달리 영화 자체에 대해 카메론은 분노했다. 훗날 로저 코먼에게 영화가 왜 망했는지를 물었더니, '식인 피라냐가 물속에서 보이지 않을 때 관객들은 무서운 법인데, 노골적으로 하늘까지 날아다녀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사실 영화를 보면 하늘을 날기는커녕 피라냐 인형을 사람들에게 집어던져서 찍었다. 그나마 이후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를 통해 미국의 부가시장에서 출시됐을 때는 카메론이 다시 편집해서 출시했음에도 영화가 워낙에 날림이라 후술하는 대로 한국비디오판조차도 이 버젼이거늘 보면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이러니 카메론이 자기 이름으로 데뷔한 영화가 이렇게 나왔으니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카메론 본인은 가끔씩 자학개그로써 이 영화를 언급한다. 날아다니는 피라냐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는 최고의 영화라는 식으로 말이다.
개판이 된 영화지만 카메론이 유명해지자 영화는 카메론의 데뷔작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1986년에 대우비디오 클럽에서 컬럼비아 영화사 출시판을 소스로 내놓은 한국 비디오만 해도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했다라는 문구를 비디오 케이스 뒤에 넣었다.[12] 그래서 당시 터미네이터를 극장이나 삐짜비디오[13]로 재미있게 본 이들이 피라냐 2도 빌려보았다가 쌍욕을 퍼부은 이들도 있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 출시판 비디오도 마찬가지인데, 일본 출시판 비디오에선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 2 감독 데뷔작이라고 앞 표지에 썼으며 미국 출시판도 그렇다. 2000년대에 와서도 DVD는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에이리언 2의 감독 영화라고 홍보하고 결국 블루레이까지 나와서 아바타를 표지 홍보에 넣으며 감독 이름으로 열심히 팔아먹고 있다.
이 파라냐 2 때문에 카메론은 개판인 코믹 영화를 만들었냐는 비아냥을 미국 영화계에서 가득 듣고, 터미네이터 제작 투자를 얻는데 지장이 됐다. 결국 카메론은 제작자들에게 단 1달러로 판권을 넘기고 나서야 울며 겨자먹기로 터미네이터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었다.
2.2.2. 또 한 번의 데뷔, 전설의 시작
〈피라냐 2〉로 고생하던 그 시절 어느날, 카메론은 로마에서 촬영기간 중 머물던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고열로 앓아누웠는데, 끔찍한 모습의 기계 인간이 불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악몽을 꾸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터미네이터의 시나리오를 쓰고, 게일 앤 허드를 찾아가서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1달러에 넘길 테니 자신을 감독으로 기용하라고 제안한다.원래 영화사는 시나리오만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시나리오도 잘 안 팔린다. 하지만 워낙 시나리오가 괜찮다 싶을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감독 계약까지 해주는 경우가 있다.[14]
카메론의 실질적인 감독 데뷔작이자 미래 사회의 암울한 묵시록이 담긴 SF 액션 영화 〈터미네이터〉(1984)는 640만 달러라는 당시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되었고, 개봉 직후, '테크 느와르'란 호평과 함께 미국에서만 3840만 달러, 해외에서는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려서 거의 제작비 20배에 육박하는 대성공을 거뒀다.[15]
터미네이터의 성공 후, 카메론은 〈람보 2〉(1985)의 각본(실베스터 스탤론과 공동)을 맡은 뒤, 〈에이리언 2〉(1986)의 감독으로 발탁됐다. 〈람보 2〉와 〈에이리언 2〉는 속편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영화계 속설을 깨부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계속되는 성공으로 카메론은 영화사의 돈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된다.
2.2.3. 흥행의 제왕으로
이후 카메론은 〈어비스 The Abyss〉(1989),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ment Day〉(1991), 〈트루 라이즈 True Lies〉(1994) 등을 감독하며, 새로운 특수 효과를 개발해가면서 시각 세계의 표현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바다를 배경으로 과학 기술의 오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는 〈어비스〉는 카메론의 전작들과 달리 역동적인 액션보다 중년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과 미지와의 조우를 해저 심연에 펼쳐낸 카메론의 SF 동화였다. 7,000만 달러를 들인 〈어비스〉는 평은 좋았으나 대중들이 즐기기엔 다소 심심한 내용이 되었던 데다가, 영화가 제작되는 동안 제임스 카메론이 심해 소재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퍼졌다. 흥행 감독인 그가 만든다니 이에 나도 해보자는 식으로 비슷한 시기에 심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예를 들어 〈레비아탄〉, 〈딥 식스(DeepStar Six, 1989)〉, 〈심해 에이리언(Lords of the Deep, 1989)〉, 〈해저의 암살자(The Evil Below, 1989)〉, 〈마의 해역(The Rift, 1989)〉 등등이다. 이런 이유로 카메론이 직접 감독한 메이저 영화중에서는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신기술은 이후 〈터미네이터 2〉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었고, 내용적으로도 〈터미네이터〉를 시작으로〈타이타닉〉을 비롯해 카메론 영화들에 꾸준히 나오는 주제[16]를 담고 있다.
〈어비스〉에 이어 1억 200만 달러가 투입된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ment Day〉(1991), 1억 2,000만 달러의 〈트루 라이즈 True Lies〉(1994), 급기야 2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퍼부은 〈타이타닉〉까지, 카메론은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 상승을 주도해왔다. 그는 〈어비스〉의 디지털 특수 효과로 만들어낸 의인화된 물 캐릭터[17], 몰핑기법으로 창조한 〈터미네이터 2〉의 T-1000의 변신 장면, 〈트루 라이즈〉의 1/4을 차지한 구분이 모호한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의 합성 등 불가능해 보이는 표현의 한계에 도전했고, 매번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그의 영화는 〈어비스〉를 빼놓고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자신이 특수 효과 제작자로서 영화계에 뛰어들기도 했던 만큼, 모형 제작의 달인이자 특수 효과 제작자인 스탠 윈스턴과 함께 특수 효과 전문 업체인 디지털 도메인[18]을 1993년에 설립했다.
2.2.4. 타이타닉, 역사를 쓰다
〈타이타닉〉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임스 카메론은 그저 SF 액션 영화만을 뛰어나게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특수 효과의 향연과 스펙터클, 멜로 드라마의 문법을 결합한 〈타이타닉〉은 최고의 테크놀러지를 동원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경지를 보여줬고,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14개 부분에 노미네이트[19]되어 이 중 11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그런 평가를 일축하였다.[20]특히 타이타닉은 제작비가 당초의 예산을 초과해버렸고, 이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보수 8백만불과 흥행에 따른 수익금을 모두 포기하는 것은 물론[21], 만약 〈타이타닉〉이 흥행에 실패하면〈터미네이터 3〉를 무보수로 찍어준다는 약속까지 해가면서 제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미국 내 수익과 해외 수익을 합쳐 1년 동안 무려 18억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타이타닉〉은 총수익 9억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쥬라기 공원〉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무려 2배 이상 깨고, 전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최고의 수익을 올린 전대 미문의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카메론도〈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E.T.〉 등으로 10여 년간 치열하게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뺏고 빼앗기는 경쟁을 해 온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치고 새로운 패왕에 등극했다. 심지어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아바타〉와 루소 형제의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빼고는 제친 작품이 없다. 2015년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조차 당시 기준으로 최종 20억 달러 가량의 흥행으로 역대 박스오피스 3위(현재는 4위)에 그쳤다. 링크
이는 요즘은 물론이고 당시로서도 정말 엄청난 흥행 기록인데, 일단 1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치더라도, 그 어떤 작품도 넘지 못했던 북미 5억 달러의 흥행을 넘어 6억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아무도 넘지 못하던 북미 7억 달러의 흥행은 그 자신이 만든 〈아바타〉로 넘어섰다. 또한 〈쥬라기 공원〉 조차도 근접하기만 했고 넘지 못하던[22] 월드와이드 10억 달러 흥행의 기록을 최초로 세웠고, 그걸로도 모자라 흥행이 마구 올라가서 20억 달러에 근접한 18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으니 당시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은 충공깽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후 3D로 재개봉하여 최종적으로 21억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심지어 〈타이타닉〉 첫 개봉이 지나고 17년 뒤인 2015년에 개봉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쥬라기 월드〉가 전 세계 흥행 기록은 포기하더라도 아바타의 북미 기록만이라도 넘어보려고 갖은 용을 썼으나 타이타닉도 넘어서지 못했다. 타이타닉의 북미 기록은 쥬라기 월드가 아닌 다른 영화가 결국 깨뜨렸다. 아바타까지도 넘어서는 북미 흥행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기록을 세웠지만 전세계 흥행은 상영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3위(현재는 4위)에 머물렀다. 스타워즈의 인기가 북미에 편중되어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처럼 〈타이타닉〉이 상상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치자, 제작사인 폭스와 파라마운트에서는 카메론에게 무려 1억 달러(약 1,000억 원)의 보너스를 따로 주었다. #
그러나 사실 이는 보너스라기보다는 추후에도 우리와 계속 같이 해달라는 의미로 주었다고 보는 게 맞다. 북미 5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고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었는데, 〈타이타닉〉은 그 기록을 다 깨뜨려서, 북미 6억 달러, 전 세계 18억 달러를 벌었으니, 영화사에서는 당연히 반드시 붙잡고 싶어할 만하다.
카메론이 타이타닉을 찍은 진짜 목적은 영화제작은 핑계고 바닷속에 가라앉은 타이타닉을 탐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우주와 바다이고 특히 심해는 마치 외계생물들이 가득한 SF의 세계 같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잠수함에 타 바닷속과 타이타닉을 촬영하고 당시 기준으로 가장 깊숙히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기록도 세웠다. 이렇게 바다와 심해를 탐사하면서 그와 관련된 소소한 다큐들을 내놓았다. 본래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하고 싶었으나 판권 문제가 꼬이면서 몇년 동안 기약하기 힘들어지자 타이타닉 제작 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고. 어비스 제작 중 타이타닉 잔해 발견자인 로버트 발라드를 접하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는 뿅 갔고, 언젠가 자신이 타이타닉 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다짐했었다 한다. #
2.2.5. 12년의 하염없는 공백기간
엄청난 흥행 신화를 썼기에 언제 다시 메가폰을 잡고 복귀하느냐가 헐리웃의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카메론은 다큐멘터리 영화들[23]이나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할 뿐[24] 실질적인 영화감독 복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이타닉의 엄청난 흥행으로 인한 부담감에 카메론이 고통받는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그러나 당시 이런 소문과는 달리 카메론이 신작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에 일본의 SF 만화인 총몽의 영화화 판권을 사들였으며, 폭스를 통하여 도메인도 등록하였다. 그리곤 2003년도에 자신이 직접 감독하여 2007년에 개봉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총몽, 즉 알리타: 배틀 엔젤은 카메론의 또 다른 야심작인 프로젝트 880에 의하여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 880은 그 유명한 〈아바타〉였다. 아바타가 〈타이타닉〉으로 90년대 후반을 휩쓸었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감독 복귀작으로 공식 발표됨으로써 전반적인 제작과정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에 카메론 감독은 영화사에 남을 영상 혁명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으며, 3D 영화라는 점, 20세기 폭스에서 제작비에 관하여 무제한으로 허가해줘서 제작비가 자그마치 4억 달러[25]에 달한다는 점 등이 알려지자 대중들의 반응은 엄청난 기대 혹은 "저러다 망하면 어쩌나" 라는 걱정으로 양분되었다.
2.2.6. 결국 또 다시 신화를 만들다
2009년 12월에 드디어 카메론의 12년 만의 신작 〈아바타〉가 개봉했고 초반 로튼토마토 100%를 받으며 전야제부터 매우 커다란 열기를 모았다. 그리고 극장 개봉 2개월 만에 결국 12년간 흥행의 아성을 지켜오던 〈타이타닉〉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끝을 모르는 흥행 기록은 계속되어 결국 최종 27억 8,7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흥행을 달성했다.[26]2.2.7. 아바타 속편 제작 돌입과 13년의 공백기
카메론은〈아바타〉의 성공 이후 후속작 세 편을 더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는 카메론에게 속편 제작의 전권을 위임하였고, 찍을 수 있을 때까지 맘대로 찍어보라고 하였다. 1편만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어마어마한데다,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한참 전부터 인정받아서 제작사가 신뢰하고있으니 허가해준 것이다. # 아바타 시리즈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순차적으로 2, 3, 4편이 개봉될 예정이었다. 덧붙여〈총몽〉 영화화는 〈아바타〉 시리즈의 제작이 모두 끝날 때까지 보류시켰다. #그러나 개봉 년도가 1년씩 늦춰져서 2편은 2017년, 3편은 2018년, 4편은 2019년에 개봉 예정으로 변경되었다. # 그런데 이마저도 또 다시 연기되었다. 이번에는 개봉 날짜마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황. 그런데 2015년에 알려진 소식으로는 〈아바타 5〉까지 각본이 나와 있다고 한다. # 예정대로 간다면 5편은 2020년 말에 개봉될 것으로 보였지만 2편조차 나오지 않았다. 결국 총몽은 카메론이 감독하지 않고 제작으로 참여해서 2019년에 〈알리타: 배틀 엔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20세기 폭스사가 디즈니에게 인수된 뒤, 아바타: 물의 길을 시작으로 아바타 시리즈의 배급은 디즈니가 맡게 되었다. 물의 길 개봉일은 2022년 12월 16일로 다시 정해졌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과의 파이아키아 인터뷰가 2022년 12월 14일 에 공개되었다. 여기서 카메론은 아바타 2편이 나오기까지 13년이 걸린 것에 대해 해명했다. 정리하자면 2편 이외에도 3, 4, 5편의 각본과 디자인, 그리고 그 모두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 확보 등의 과정을 모두 확실시하고 나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오래 걸렸다고 한다.
2.2.8. 아바타 시리즈를 이끌다
그렇게 13년의 공백을 깨고 2022년 12월에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카메론 본인이 언급한 손익분기점인 15억 달러를 돌파하고 다시 한 번 20억 달러 돌파를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오프닝 성적은 기대 이하였고 세계적으로 여러 악재도 터졌지만[27] 역시 흥행의 제왕답게 시리즈물 영화를 롱런시키는 기묘한 흥행 추이를 실현시켰다.카메론 감독은 2편이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면 3편이 결말로 보이는 전개로 촬영을 마쳤다고 했는데, 2023년 1월 6일 HBO 맥스에 공개된 <Who's Talking to Chris Wallace>에서 4편과 5편을 제작해야겠다고 밝히며 중간에 사고가 터지지만 않는다면 세계인들은 아바타 시리즈를 5편까지 완전히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각 영화를 2~3년마다 한 편씩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바타: 물의 길 또한 20억 달러 흥행을 돌파하며 20억 달러 돌파 영화들[28] 중 절반인 3개가 본인의 작품인 대기록을 세웠다.
2.2.9. 제작자로서의 고난사
제작한 영화들 중 흥행 대박작이 가득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달리, 카메론이 제작만 맡고 감독하지 않은 작품들은 생텀과 알리타를 제외하면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했다.카메론이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전 아내인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스트레인지 데이즈(Strange Days, 1995)〉였는데, 4,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겨우 8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물론 아카데미 감독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경력을 가진 비글로 감독답게 작품은 괜찮은 평을 받았다.[29]
〈타이타닉〉 흥행 이후 5년 뒤에 나온 카메론 제작 영화 〈솔라리스〉는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했는데 평은 좋은 편이었으나 흥행 면에서는 미국 첫 주 수익이 7위(675만 달러)라는 초라한 기록을 달성하여 미국 흥행 수익은 1,497만 달러로 그쳤다. 해외 수익을 합쳐도 3,000만 달러로 흥행에 실패(제작비는 4,700만 달러)했다. 한국에서도 첫 주 9위로 데뷔하여 전국 관객 수 2만 명에 그쳤다.
〈아바타〉의 흥행 2년 후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하고 알리스터 그라이슨이 감독한 〈생텀〉은 미국에서 첫 주 2위로 개봉했지만 흥행 성적은 944만 달러로 부진했다. 이 영화는 〈솔라리스〉와 다르게 영화 평이 좋지 않아서[30] 미국 흥행은 2,320만 달러라는 초라한 기록이 나왔지만, 해외 흥행은 조금 잘 나와 전 세계 흥행 1억 800만 달러가 나왔기에 그럭저럭 수익은 올렸다. 참고로 이 영화 제작비는 3,000만 달러로 꽤 저렴하게 만든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첫날 관객 수가 45,466명을 동원하여 2위로 데뷔했고[31] 첫 주 관객 수는 총 28만 7,541명을 기록하여 3위로 등극했다.[32] 하지만 그 다음 주에 8위로 급락했으며, 총 관객 수는 46만 명을 기록했다.
단, 〈솔라리스〉와 〈생텀〉의 경우 제임스 카메론은 '제작'을 한 것이고,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책임은 각 감독들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 제작자가 영화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지나치게 간섭하는 경우들이 헐리웃에서는 드문 일은 아니고 그래서 제작자들에게도 흥행 실패의 책임이 있는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분명히 존재하며, 카메론 또한 본인이 감독이고 피라냐 2를 찍으면서 제작자들의 그런 식의 행태에 호되게 당한 만큼 제작자의 입김하에 감독은 찍기만 하는 제작 행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디어와 자본을 연결해주고 틈나는 대로 확인만 하는 한국 영화 스타일의 제작방식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9년에는 알리타: 배틀 엔젤이 개봉했다. 카메론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총몽 감독직을 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아바타 촬영장에서까지 갈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을 정도로 애정을 과시했다. 그러나 5편까지 제작 결정된 아바타 속편과 겹치기에 감독직을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넘기고 자신은 제작자로 참여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한 알리타는 극장 개봉 흥행으로 본전치기 수준에 그쳤다.[33]
그 해 말에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개봉했다. 2편의 직계 후속작임을 내세우고 데드풀 실사영화로 능력을 인정받은 팀 밀러에게 메가폰을 넘겨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나온 결과물은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고 흥행에도 완전 실패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제작비조차 건지지 못한 최악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터미네이터의 원작자인 그가 제작하여 이뤄낸 셈이다. 게다가, 존 코너 항목에 나오듯이 존 코너를 초반부터 죽이는 아이디어를 바로 그가 냈기에 더 비난을 받았다. 제작자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도 터미네이터를 스스로 관짝에 못을 박은 셈이다.
3. 특징
3.1. 작품의 테마
원자력공학과 핵폭탄의 관계로, 기술의 악용을 설명하는 카메론 |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작품 내에서 고도화된 테크놀로지에 관한 관점을 투영하는 편인데, 초기작에서는 주로 고도로 발달한 존재에 대한 공포를 강조한 반면, 이후 점차 첨단 기술의 악용(惡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34]
▽ 초기 | |
〈터미네이터〉 | 미래에서 온 기계 병기에 대한 공포 |
〈에이리언2〉 | 우주에서 온 외계생명체에 대한 공포[35] |
▽ 중기 | |
〈터미네이터2〉 | 선한 기계 병기와 악한 기계 병기의 대결 |
〈타이타닉〉 | 여객선 침몰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승객들 |
▽ 최근 | |
〈아바타〉 | 외계종족을 말살하려 기계를 쓰는 책임자 |
〈아바타2〉 | 수익을 위해 고래 사냥을 일삼는 거대 기업 |
기술의 악용을 비판하기 위해, 정작 카메론 본인은 갈수록 최신 기술을 더욱 아낌없이 퍼부어가며 영화를 만든다는 게 아이러니한데, 구체적으로 따지면 카메론은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비판하는 것이기에 요점이 다르다. 메카닉 장르에도 관심이 많은지 터미네이터나 에이리언 2, 아바타 등에는 다양한 미래 기기들이 등장하며, 이 가운데는 카메론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것도 꽤 된다.
연출한 영화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바다와 우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의 영화는 유독 푸른 색채가 강하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은 우주, 심해, 금속성의 물체를 표현하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될 색이기도 하고, 특수효과를 활용하기 편해서 더욱 선호했다고 하며 급기야는 우주 밖의 모조리 파란색인 등장인물들이 파란 바다에서 사는, 본인이 좋아하는 걸 다 때려박은 영화가 나오고 말았다. TED 강연에서도 자신이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악역으로 잘 나오며, 결말에는 좋은 꼴을 못 보여준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론 이 대기업과 연관된 상류층에 대한 조롱과 풍자도 자주 등장한다. 에이리언 2의 웨이랜드 유타니,[36]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이버다인 시스템즈, 아바타 시리즈의 RDA,
카메론은 영화사에서 특히나 주체적이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냈고, 그 캐릭터들이 호평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이리언의 엘렌 리플리부터 시작해서 터미네이터 2의 사라 코너, 타이타닉의 로즈 등 적극적이고 활동력 강한 여성 캐릭터는 카메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카메론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었던 어머니와 할머니를 존경하며 자랐었고,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의 영화계에서는 주로 전형적인 강한 남성 주인공이 넘쳐났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 대한 반발심으로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는 주체적이고 강한 여성 주연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보니 굳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하며, 그보다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않고 강한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해 더 흥미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카메론 감독의 특징 때문인지 카메론이 직접 감독 작업하려다 제작과 각본으로 물러서고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메가폰을 넘긴 총몽의 주인공 갈리 역시 강인한 여전사로 카메론에 의하여 어떻게 해석될지 기대를 받았었다.
카메론의 연애사도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상당히 주체적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 많은 연애를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의 친구였던 첫번째 부인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부인들의 경우 제작자 게일 앤 허드,[38] 여성감독 캐스린 비글로,[39] 배우 린다 해밀턴 등과 결혼 및 이혼을 해왔다. 현재의 부인은 〈타이타닉〉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친 배우 수지 에이미스(로즈의 손녀딸로 잠깐 등장한다)으로 99년 저지먼트 데이 이후로 영화배우 생활을 은퇴한 후 환경운동가로 변신하여 미국 내에서 열정적인 NGO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3.2. 성격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더불어서 가장 괴팍하면서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다. 〈에이리언 2〉를 촬영할 때 초반에 영국 스태프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자 책상을 뒤엎을 정도로 싸웠다는 얘기가 있으며[40] 딕 부시 조명 감독은 자기 입장에선 듣보잡인 카메론을 무시하고 일부러 자기 입맛대로 작업했다. 결국 제작자인 허드가 그를 해고해야 했다. 〈타이타닉〉 촬영 때도 뭐 하나 맘에 안 들면 육두문자부터 시작해서 스탭들과 배우들을 달달 볶아대었다고 한다. 제 아무리 몸값 높고 유명한 배우라 할 지라도 인정사정 없었다고 한다.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화 어비스 촬영 일화.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메리 엘리자베스 매스트란토니오는 우리는 물고기가 아니라고 카메론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주연인 에드 해리스는 꿈 속에서까지 카메론의 호통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에드 헤리스는 이 영화를 촬영했다가 스태프의 실수로 익사할 뻔했는데 문제는 그 난리통에서도 카메론 감독은 계속 촬영을 감행했고 이 사실을 안 해리스는 분노에 가득찬 나머지 카메론 감독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무도 카메론에게 찍소리 하기 어려웠던 게 당시 카메론은 어비스 촬영 때문에 아예 먹고 자는 거 빼고 나머지 시간을 전부 물 속에 들어가 있어서 당시 스태프들은 불평불만을 얘기할 엄두가 안 났다고. 여러모로 이 감독의 포악무도함과 완벽주의를 알 수 있는 사례였으며 이때의 일화 덕택에 어비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스태프들을 혹독하게 굴린 영화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카메론 자신이 노력형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다 보니 스태프들의 일처리나 결과물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기에 자연 성격이 까칠해지고, 그렇게 가르쳐주고 지시했는데도 저렇게 밖에 못하냐는 식으로 울화통에 가까운 반응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과,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답답함을 누르며 스태프을 계속 이끌려다 보니 저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다.
아무튼 그 불같은 성격 때문에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그를 촬영장의 폭군, 혹은 촬영장의 조지 S. 패튼 장군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카메론은 패튼 장군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막말을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태프를 가차 없이 해고해버렸지만, 카메론은 "그래도 나는 패튼 장군처럼 몽둥이로 당신들을 두들겨 패지는 않았다"라고 응수했다.[41]
이러한 카메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포함해서, 카메론 사단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이클 빈[42], 빌 팩스톤[43], 제넷 골든슈타인[44], 랜스 헨릭슨[45]은 카메론 감독의 성격 때문에 촬영장에는 늘 긴장감이 감돌았고, 스태프들이 카메론에 대한 불만과 뒷담화를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말했다. 빌 팩스턴은 〈타이타닉〉에서 보물 사냥꾼 브롯 러벳의 성격과 선원들을 다루는 방식을 제임스 카메론의 행동과 대화 방식을 차용해 연기했고, 카메론도 이러한 그의 연기를 보고 자신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시인하기도 하였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카메론이 여기저기서 원한을 산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터미네이터 2가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먹어치우자 그에게 치여서 앙심을 품고 있었던 영화계 사람들 중엔 터미네이터 2가 흥행에 실패해 카메론이 빈털터리가 되기를 내심 바랐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NASA의 과학자들과 함께 심해 탐사를 다녀오면서 성격이 크게 변했다. TED 영상에도 나와 있듯이, 카메론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유대감"을 탐사 과정에서 배웠고, 이를 〈아바타〉의 제작 과정에 도입해서 매우 좋은 결과를 냈다고 밝혔다.[46] 실제로 〈아바타〉의 촬영은, 이전까지 카메론이 찍은 영화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에이리언 2〉에서 출연했던 시고니 위버도 카메론이 순해졌다고 언급할 정도. 물론 시고니 위버도 그를 순하게 만든 이유중 하나였다. 에이리언 2 제작당시 카메론은 영국인 스태프들중 존경받는 조감독 데릭 크랙널이 티타임을 이유로 가장 중요한 퀸 에이리언 전투씬을 중단시켜버리자 그를 해고했는데, 다른 스태프들이 이에 전부 보이콧을 하자 시고니 위버가 나서서 캐머런에게 스태프들의 입장을 변호하며 중재를 했다. 시고니 위버는 이미 에이리언 1편에서 영국 제작진들과 촬영을 해봐서 영국 제작진 분위기를 잘 알고 친분이 있었으며 주연배우가 스태프를 변호해주는 이례적인 상황에 데릭을 비롯한 제작진과 캐머런은 그녀의 중재를 받아들이고 공개적으로 화해했다.
게다가 이런 변화를 겪은 후 자신처럼 한 성질하기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한테도 "성격 죽여도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네."라고 말해서, 마이클 베이도 옛날처럼 사납게 하지 않는 법을 카메론에게 배웠다고 한다.[47]
조 샐다나는 카메론이 촬영장 폭군이라는 건 사실이며, 자신이 본 예술가중에서 가장 탐구심과 호기심이 많고 창의적이며 과학적인 예술가라고 밝혔다. #
케이트 윈슬렛은 타이타닉의 캐스팅 당시 제임스 카메론에게 거의 애걸복걸하다시피 한 끝에 힘들게 배역을 따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선 그의 성질머리에 하도 시달린 나머지 1999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괴팍하며, 출연료를 엄청나게 주지 않는 이상 다시는 그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며 학을 뗐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감정이 풀렸는지 윈슬렛은 20년 이상이 흐른 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카메론과 재회했고 인터뷰에서도 서로를 칭찬하며 제법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4. 필모그래피
제임스 카메론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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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냐 II (1982) 터미네이터 (1984) 에이리언 2 (1986) 어비스 (1989) 트루 라이즈 (1994) 타이타닉 (1997) 아바타 (2009) 아바타: 물의 길 (2022) 아바타: 불과 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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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연도 | 제목 | 제작 | 연출 | 각본 | 제작사 | 제작비 | 극장 흥행 |
1982 | 피라냐 2 | O | 차코 필름 컴퍼니 | 15만 달러 | 40만 달러 | ||
1984 | 터미네이터 | O | O | 오리온 픽쳐스 | 640만 달러 | 7,830만 달러 | |
1985 | 람보 2 | O | 캐롤코 픽쳐스 | 2,550만 달러 | 3억 400만 달러 | ||
1986 | 에이리언 2 | O | O | 20세기 폭스 | 1,800만 달러 | 1억 8,330만 달러 | |
1989 | 어비스 | O | O | 20세기 폭스 | 7,000만 달러 | 9,000만 달러 | |
1991 |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 O | O | O | 캐롤코 픽쳐스 | 1억 200만 달러 | 5억 1,980만 달러 |
1991 | 폭풍 속으로 | O | 20세기 폭스 | 2,400만 달러 | 8,350만 달러 | ||
1994 | 트루 라이즈 | O | O | O | 20세기 폭스/유니버설 픽쳐스 | 1억 달러 | 3억 7,880만 달러 |
1995 | 스트레인지 데이즈 | O | O | 20세기 폭스/유니버설 픽쳐스 | 4,200만 달러 | 800만 달러 | |
1997 | 타이타닉 | O | O | O | 20세기 폭스/파라마운트 | 2억 달러 | 22억 164만 달러 |
2000 | 다크 엔젤 | O | O | 20세기 폭스 | 편당 1,300만 달러 | - | |
2002 | 솔라리스 | O | 20세기 폭스 | 4,700만 달러 | 3,000만 달러 | ||
2009 | 아바타 | O | O | O | 20세기 폭스 | 2억 3,700만 달러 | 28억 3,373만 달러 |
2019 | 알리타: 배틀 엔젤 | O | O | 20세기 폭스 | 1억 7,000만 달러 | 4억 400만 달러 | |
2019 |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 O | O[48] | 20세기 폭스/파라마운트 | 1억 8,500만 달러 | 2억 4,990만 달러 | |
2022 | 아바타: 물의 길 | O | O | O | 20세기 스튜디오 | 4억 달러 | 23억 2396만 달러 |
2025 | 아바타: 불과 재 | O | O | O | 20세기 스튜디오 | - | - |
4.1. 차기작 목록
- 〈아바타 속편〉
5편 연속으로 제작하며 차례로 개봉할 예정이다. 이 시리즈 외에는 감독을 맡을 예정인 작품이 없다.
- 〈마이크로 결사대〉
원래 카메론이 감독을 맡고 싶어 했지만〈아바타〉 때문에 감독직을 거부하고 제작만 맡게 되었다. 감독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물망에 올랐으나 그린그래스가 거부해서 리얼 스틸의 숀 레비에게 바톤이 넘겨졌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2017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로 확정되었다.[49]
- 〈헤비 메탈〉
1980년대에 나온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카메론이 제작하고 감독으로는 데이비드 핀처, 잭 스나이더, 기예르모 델 토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고어 버빈스키 등이 내정되어 있지만, 현재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배급을 고려만 하고 있을 뿐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이 되지 않고 있다.
- 〈다이브〉
프리다이버 프란시스코 페레라스와 잠수 기록 갱신 도중 사망한, 프리다이버 기록을 가진 프랑스 출신의 다이버이자 그의 아내인 오드나 메스트르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카메론이 제작 혹은 감독으로 참여할 예정이지만 다른 영화들에게 밀려 제작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 〈트루 라이즈〉 TV판
원래 2002년에 〈트루 라이즈〉의 속편을 제작하려 했지만 9.11 테러가 나면서 속편 제작에 차질이 생겼고, 여기에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이 되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한참 뒤인 2010년에 카메론이 〈트루 라이즈 TV 시리즈〉를 계획 중이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그대로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이후로는 소식이 없다.
- 〈광기의 산맥〉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하고 제작은 제임스 카메론으로, 주연은 톰 크루즈로 해서 제작하려 했지만 유니버설 픽처스에게 투자를 받지 못하자 제작이 중단됐다. 이후 리들리 스콧의〈프로메테우스〉가 나오면서 다시 제작을 시작하여 영화화를 진행하고 있다.
- 〈블랙 아이드 피스〉 다큐멘터리
카메론이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다큐멘터리 영화를 3D로 제작한다고 하였으나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다.
- 〈클레오파트라〉
카메론이 감독을 맡고 각본은 〈포레스트 검프〉의 에릭 로스가 담당하여 안젤리나 졸리의 은퇴작으로 계획하고 있었지만 카메론이 〈아바타〉 속편을 제작하면서 무기한 연기되었는데, 현재 드니 빌뇌브에게 연출을 제안한 상태이다. 그러다가 갤 가돗 출연, 패티 젠킨스 연출,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작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인포메이셔니스트〉
2012년에 카메론이 감독으로 결정되었으나 현재 카메론이 〈아바타〉 속편을 제작 중이기 때문에 촬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2. 다큐멘터리 목록
- 제임스 카메론의 〈최후의 타이타닉〉(Titanic: The Final Word with James Cameron, 2012)
- 〈에일리언즈 오브 더 딥〉(Aliens of the Deep, 2005)
- 〈심해의 영혼들〉(Ghosts of the Abyss, 2003)
- 〈비스마르크호의 비밀〉(Expedition: Bismarck, 2002)
- 〈딥씨 챌린지〉(Deepsea Challenge, 2014)[50]
- 〈고래의 비밀〉(Secrets of the Whales, 2021)
- 〈슈퍼/내추럴〉(Super/Natural, 2022)
- 〈코끼리의 비밀〉(Secrets of the Elephants, 2023)
5. 사건사고
5.1. 아바타: 물의 길 일본 돌고래 쇼 관람 논란
2022년 12월 10일, 아바타: 물의 길 일본 기자간담회 겸 쇼케이스에서 돌고래 쇼를 관람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일본 프로모 행사장에서 돌고래 쇼에 박수를 친 것에 대하여 아바타 2의 메시지와는 모순되는 행보라며 비판 및 지적을 받았으나, 이후 밝혀진 사실로는 엄연히 카메론 감독이 피해자인 사건이었다. 카메론 감독은 애초부터 방일 행사에 돌고래 쇼가 기획되었는지도 몰랐고, 모르는 것에 동의를 표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동의한 적도 없다.[51] 그렇게 예고 없이 쇼를 관람하게 되어 매우 분노가 일어났지만, 거기서 사고를 쳐서 행사 분위기를 망칠수 없었기에 참았다고 해명했다. 이렇듯 전말이 밝혀지자 행사를 담당한 일본 주최측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당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해명을 요청했던 동물 단체들도 이해의 목소리를 내며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카메론 감독은 갑작스레 동물학대 쇼를 관람하게 되고 긍정적 코멘트를 강요받자 몹시 화가 났는지, "그래서 돌고래에게 허락은 받았겠죠?"하고 대놓고 비웃는 코멘트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당혹했는지 일본 방송들에서는 이걸 긍정적 반응으로 왜곡해 내보내 빈축을 샀다.
6. 여담
- 환경운동가이자, 프루테리언이다. 이 때문에 중요한 환경문제 대책회의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아바타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채식을 요청하고, 2022년엔 아예 채식을 '채식'이 아닌 '미래식'이라고 표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52] # 상술한 돌고래 쇼 문제도 카메론이 이런 인물이기 때문에 논란이 확대된 것이다.
- 영화계 거장답게 SF장르의 영화들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 직접 감독한 작품 중 〈어비스〉 한편만이 흥행에 실패했다. 신인 시절 제작사의 갑질로 감독 크레딧을 위해 이름만 도용 당한 수준이었던 〈피라냐 2〉 조차 워낙 저예산 영화인 덕분에 흥행은 성공이었다.
- 스코틀랜드&잉글랜드&북아일랜드계와 독일계, 네덜란드계 캐나다인 조상이 있다.[55]
-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올바른 표기는 제임스 프랜시스 캐머런이다. 성씨를 발음에 따라 적으면 '/ˈkæm(ə)ɹən/(캐머런)'이 되지만, 철자 표기에 이끌려 '카메론'으로 적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같은 성씨를 쓰는 전 영국 총리 David Cameron은 '데이비드 캐머런'이란 표기가 널리 쓰이고 있다.[56] 친한 사람들은 그를 부를 때 짐이라고 부른다.
- 〈타이타닉〉 부터 영화 제작자 존 랜도와 자주 협업하고 있다. 카메론은 "약간 오래된 부부 같고, 싸우는 것을 피할 줄 알고, 서로 분배하고 극복하고 보완하는 관계"라고 밝혔다. #
- 작품에서 군대 또는 그에 준하는 통제 조직이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 실제로 제임스 카메론의 형 존 데이비드 카메론(John David Cameron)이 해병대로 복무하며 군 문화에 관해 자주 조언했다고 하며, 〈아바타〉에서는 아예 형 존 데이비드 카메론이 직접 군사 자문을 맡았다.
- 일본 애니메이션, 그 중에서도 사이버펑크와 SF 장르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한다.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기서 받은 영향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하기도 한다. 과거 타이타닉 홍보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그가 주최측에 요구한 조건이 바로 AKIRA의 원작자 오토모 카츠히로와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를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동경만의 하우스 보트에서 열린 이 만남에서 멀리 요코하마 베이 브릿지가 보이자 카메론은 "페트레이버에서 폭격당한 그 다리"라며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터미네이터 2 티저 영상에서 나오는 T-800의 생산 현장은 극장판 1편의 오마주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키시로 유키토의 총몽은 어찌나 감명깊게 봤는지, 2000년대 초 일찌감치 판권을 구입해서 반드시 자신이 영화화 하겠다고 누누히 말하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아바타가 '총몽 실사화를 위한 스크린 테스트'라고 불렸을까.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알리타: 배틀 엔젤.[57] 일본에서는 원작 훼손이라고 욕을 먹었던 린 타로 감독의 메트로폴리스에 대해서도 "차세대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했다."라고 호평해주기도 했다.
- 상당히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감독들이 적잖이 있지만, 개중에는 구색만 갖춘 감독들도 많은 반면 제임스 카메론은 실력이 출중한 편이다.링크. 터미네이터부터 아바타까지 많은 작품에서 직접 컨셉 아트를 그렸다. 일례로 영화 타이타닉에서 잭이 그리는 로즈의 스케치는 사실 카메론이 그린 것이며, 해당 클로즈업 장면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는 손은 카메론의 손이다.
- 마틴 스코세이지, 제인 캠피온 등과 함께 MCU를 싫어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정확히는 DCEU까지 포함해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 스튜디오들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뉴욕타임즈 인터뷰에서 "대형 자본이 투입된 스펙터클한 영화들을 보라. 마블이나 DC는 잘 들어라. 모든 캐릭터가 나이에 상관 없이 대학생 같이 행동한다.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얄팍하다. 자식을 위해 일을 그만둔다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가 책임감/정착감을 느끼게 하고 능력과 사랑과 목적을 주는 모든 것을 그 캐릭터들은 느끼지 않는다. 영화는 그딴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라고 말했다.
- TV 시리즈로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슈퍼솔저를 소재로 한 〈다크 엔젤〉 시리즈를 만들었다. 제시카 알바가 출연하는 등 나름대로 대작이었는데 반응은 중박 수준. 하지만 시청률이 점점 답이 없는 상태로 내려갔기 때문에 시즌 2로 종료되었다.
-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생체 거미줄 아이디어는 이 사람이 1990년대에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 감독으로 내정되었을 당시에 낸 것이다. 덕분에 웹 슈터 어디 갔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카메론은 고작 고등학생이 하루만에 그런 장치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게 더 현실성 있다고 반박했다.
- 〈타이타닉〉을 촬영할 때 한 자료 조사로 심해 전문가 급의 지식을 갖추게 되었고, 그 지식으로 인해 2010년 발생한 환경 대재앙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의 대책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대책회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대책을 논의하던 자리였는데, 카메론도 여기에 참석한 것. 카메론은 당시 정부 관계자를 병신(moron)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는데,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섰을 때는 '우리가 대책을 건의했는데 정부는 씹었다. 근데 나중에 보니 그 대책을 써먹고 있더라. 우리말을 들었으면 좀 더 빨리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건 카메론 본인의 이야기고,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사고에 대한 공식기록에는 카메론의 존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두자. 다큐멘터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보이듯이, 심해로 가라앉은 비스마르크 전함의 탐사도 했고, 비스마르크의 격침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그 외에도 NASA의 화성 탐사에 자문으로 참가하고 있다.
- 메르세데스-벤츠의 컨셉트카인 AVTR 제작에 관여한 적이 있다.
* 2010년 SNL에서 만든 꽁트. 카메론 영화를 많이 봤다면 어렵잖게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내용이다. 대강 패러디 요소를 집어보자면, 시간이동 후 두 인남캐가 알몸으로 나오는 장면(〈터미네이터〉 시리즈), 거대 레이저 캣이 나오는 장면부터 쭉 〈에이리언〉 시리즈의 패러디가 나오고(국장이 사실은 기계였다거나(〈에이리언 2〉),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거나,[58][59] 사실 시고니 위버에게 레이저 캣이 기생하고 있었다거나(〈에이리언 3〉), 인남캐 하나가 뜬금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니, 다리불구가 되어서 아바타 기계에 타는 장면은 두말 할 것 없는 〈아바타〉 패러디. 레이저 캣 둥지를 파괴하고 탈출하는데, 뜬금없이 남아서 현악 4중주를 선보이는 음악가들은 〈타이타닉〉의 패러디이고, 레이저 뱃은 전설의 그 영화 〈피라냐 2〉의 패러디다.
-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는 절친이라서 하비 와인스틴이 델 토로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걸 알고 주먹싸움까지 갈 뻔했다고 한다.# 게다가 델 토로가 미믹을 촬영할 당시 델 토로의 아버지가 납치당하자 돈을 대줘서 무사히 구출해냈다고.
- 미국 드라마 앙투라지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아쿠아맨의 감독을 맡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2018년 아쿠아맨이 개봉하게 되었는데, 제임스 카메론 대신 제임스 완이 감독을 맡게 되었다.
- 사우스파크 시즌 16에 나와 심해로 잠수해 세상의 떨어진 수준을 건져올리는 큰 역할을 했다. 이때 미국은 휠체어를 탄 비만 장애인 아동(카트먼 포함)끼리 싸우는 걸 경기로 관람할 수준이었다. 참고로 수준을 건지러 내려갔을 때 클링턴이 구강성교를 받아서 수준이 떨어졌는데 지금이 더 떨어졌다고 한다. 수준을 건져올려서 사람들에게 환호받자 아바타: 물의 길 세트장으로 간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키가 훤칠하다. 프로필상 188cm.[60]
- 닐 타이슨과 관련된 일화에서 그가 고증덕후라는 것을 또 한번 느낄수 있다. 저명한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에서 나오는 배의 침몰 직후 바다에 떠있는 주인공들 머리 위의 밤하늘이 RMS 타이타닉이 침몰한 1912년 4월 14밤 ~15일 밤~새벽에 보인 천체의 위치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고증오류라는 지적을 했고, 닐 타이슨은 영화 <타이타닉>의 높은 수준의 고증을 극찬한 사람들에게 까였다. 닐타이슨 이후에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여러 번 귀찮게 해서 영화 타이타닉과 카메론 감독의 팬들에게 더 까였다. 하지만 카메론 감독은 닐타이슨의 지적을 받아 들이고 2012년 3D 개봉판에서 실제로 RMS 타이타닉이 침몰한 날짜인 1912년 4월 14일밤 ~15일 새벽 당시 천체의 위치를 고증해 실제 밤하늘에 맞도록 수정을 가했다.
- 타이타닉호 관광 잠수정 사고와 관련하여 코멘트를 내기도 했다. 상세 내용은 해당 문서로.
- 스타크래프트가 실사화 된다면 블리자드가 총괄책임자 혹은 제작자로 반드시 모셔야될 사람으로 꼭 언급되거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쳐진다. 실제로 블리자드사에서도 제임스카메론이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보인다면 당장 싸인을 할것이라 말할정도.[61]
- 페데 알바레즈가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 과정에서 1편의 감독 리들리 스콧과 2편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상의를 했다고 밝혔는데, 스콧은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카메론은 2024년 8월 19일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의하면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에 자신은 관여한 것이 없으며, 에이리언 2편 이후 에이리언 시리즈에 생긴 많은 균열들을 알고 있으며, 에이리언 시리즈 제작에 복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저는 페데 알바레즈 감독을 별로 도와준 것이 없습니다. 저는 감독 페데를 알고 있고, 그와 그의 각본 집필 파트너는 아주 이른 시간에 저에게 와서 '무슨 아이디어가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페데와 파트너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지 메카로의 순례 같을 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몇 년 전의 일이고, 그들은 떠났고, 그들만의 각본을 썼고 저는 그 각본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그리고 약 6개월 전에 페데는 저와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초기 상영판을 공유했고, 저는 페데에게 한 시간 동안 몇 개의 메모를 주었습니다. 저는 에이리언: 로물루스 제작에 대해서 공로를 인정받고 싶지 않습니다. 로물루스가 훌륭하다면, 제 덕분이 아닙니다. 로물루스가 형편없다면,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진지하게, 로물루스는 페데의 것이므로, 모두 페데 덕분이며, 제가 들은바로는, 로물루스는 매우 훌륭한 영화입니다.에이리언 시리즈는 현재 일종의 짓밟힌 땅(trampled ground)입니다. 저는 어떤 영화 제작도 배제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각하기에는 23개의 다른 프로젝트가 제 대기열에 있습니다. 대기열에 있는 프로젝트가 다 끝날 쯤에는 저는 70세가 될텐데, 새로운 프로젝트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점에서 전투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제임스 카메론의 말 中 #
7. 관련 문서
8. 외부 링크
[1] 불가지론을 두고 "겁쟁이 무신론"(cowardly atheism)이라고 할 정도로 강경 무신론자다. 다만 〈아바타〉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문화로서의 종교에는 관심이 많은 편이다.[2] 영화 타이타닉에 나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사이다[3] 특히 1, 2편[4]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 데뷔 전부터 구상해온 드림 프로젝트였으며, 현재 인터뷰에서도 영화 인생의 대부분을, 또 앞으로도 아바타시리즈에 올인한것에 후회가 없다고 말할정도로 제임스 카메론을 상징하는 영화시리즈다.[5] 어비스를 만들 때에는 ILM과, 〈아바타〉를 만들 때부터는 웨타 디지털과 주로 작업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각효과 기술을 실용화하였다.[6] 블록버스터라는 장르 자체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한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담화.#[7] 공동 감독 및 각본 및 제작을 했던 친구 랜들 프레이크스는 12년 뒤에 영화계에 각본가로 뛰어들었으나 현재까지 암울한 필모그래피를 남기는 중이다.[8] 즉 정규 과정을 밟고 영화 감독이 된 사람은 아니다. 캐나다 출신으로 SF와 영화랑 좋아하다가 스스로 독학해 단편 영화를 찍고 B급 호러로 영화계 입성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랑 유사한 경력을 밟은 셈이다.[9] 시체의 팔에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모형 팔에 전기를 흘려넣어 구더기를 움직이게 해서 제작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10] Miller Drake. 제임스 카메론처럼 감독 출신이 아닌 특수효과를 맡았으며 피라냐 1 특수효과에 참여했다. 이후로 영화감독은 하지않고,특수효과 일만 했다. 바로 어비스나 터미네이터 2,트루 라이즈 같은 카메론 감독 영화 특수효과를 비롯하여, 클리프 행어,바이러스 같은 영화 특수효과에 참여했다. 지금은 은퇴했다.[11] 한국에서 추억의 영화로 알려진 라스트 콘서트 제작자이기도 하다. 아소니티스는 거대문어가 나오는 영화 홀리데이 킬러(1977년작으로, 한국에서 개봉 당시 존 휴스턴 감독과 헨리 폰다가 주연인양 광고해댔으나 이들은 엑스트라를 겨우 벗어난 조연 수준이다)를 감독했는데, 엄청난 악평을 받아서 '영화감독으로서의 재능은 영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고있다.[12] 표지에서 터미네이터의 감독임을 강조했는데 정영일이 글을 썼다.[13] 터미네이터는 1989년에서야 세신영상으로 비디오 정발[14] 이런 방식을 쓰는 것은 카메론뿐만이 아니다. 〈터미네이터〉 이전에 이런 방식으로 데뷔한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스탤론의 경우에는 더 극단적인 것이 심지어 감독에 주연까지 내놓으라고 했기 때문에 모든 영화사에서 거절당했다. 결국 감독은 포기하고 주연만 맡는 것으로 합의를 봐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데, 그 영화가 바로 〈록키〉1편 이다.[15] 이때부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16] 과학 기술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지지, 희생적인 사랑에 의한 구원의 모티브.[17] 이걸 그리기 위해 탄생한 그래픽 소프트웨어는 훗날 어도비 사가 사들여 포토샵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시켰다.[18] 현재 〈캐리비안의 해적〉, 〈트론: 새로운 시작〉 등 유명 작품의 VFX를 도맡고 있다.[19] 나머지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못된 부문은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이다.[20] 이때 감독상을 받으며 카메론이 외친 말이 나는 세상의 왕이다!였다. 그러나 정작 이 애드립 대사의 주인공이지만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들지 못한 주연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말에 이죽거렸다는 썰이 있다.[21] 각본 또한 카메론이 썼기에 각본료로 약 125만불을 받을 따로 받을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타이타닉을 사실상 무보수로 찍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결정이었다.[22] 물론 개봉한 시기 한정. 재개봉 수익까지 합치면 〈쥬라기 공원〉도 10억 달러를 넘겼다.[23]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 중 국내에서 유명한 것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함 비스마르크 침몰을 다룬 2002년작 〈비스마르크호의 비밀〉 정도였다. 이 역시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비스마르크 호를 탐사하는 내용이었다.[24] 제작한 영화들은 밑의 제작 영화 고난사 문단으로.[25] 실 제작비는 2억 4,300만 달러.[26] 〈타이타닉〉이 훗날 21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을 올렸으나, 이는 〈타이타닉〉이 3D로 재개봉하면서 올린 수치이고 이 당시만 해도 〈아바타〉가 유일한 20억 달러 흥행 작품이었다.[27] 북미는 2주차에 갑자기 폭설과 강풍을 동반한 폭탄 사이클론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이쪽은 2주차에 못 간 관객들이 3주차 이후를 택하며 해소되긴 했지만, 중국은 갑작스러운 위드 코로나 전환으로 일일 확진자가 수천만 가까이 예측되는 판국이고 일본에서는 돌고래 쇼 논란이 터지며 거대한 영화 시장을 보유한 2개 나라의 흥행이 박살났다.[28] 아바타,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바타: 물의 길, 타이타닉,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9] 사실 비글로 감독의 작품들은 평가는 좋지만 흥행은 그리 빛을 못 본 것들이 많다.[30] 미국은 IMDB 기준으로 솔라리스 6.2, 생텀 5.7이지만, 국내는 네이버 기준으로 〈솔라리스〉 6.95, 〈생텀〉 7.18이므로, 국내에서는 〈솔라리스〉보다 평이 좋다.[31] 1위는 〈조선명탐정〉이다. #[32] 1위는 〈조선명탐정〉(49만 명), 2위는 〈라푼젤〉(32만 명)이다.[33] 다만, 어느 정도 애착이 있는지, 상술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인터뷰에서 알리타의 속편을 제작하고 싶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34] 이 같은 변화는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가령 〈터미네이터〉가 만들어질 당시엔 《1984》 같은 기계적 디스토피아 전망이 유행했지만, 〈아바타〉가 만들어질 때는 환경파괴·기후변화에 관한 전망이 우세해졌다.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카메론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35] 사실 이 영화에서부터 카터 버크와 비숍의 대조를 통해, 기술의 활용에 대한 카메론의 양가적 시각을 은연히 드러내고 있다.[36]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1때는 아직 웨이랜드 유타니 사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없었다. 극중에서도 '회사'라고만 언급되는 수준이었다.[37] 취소선을 긋기는 했지만 타이타닉에도 카메론 감독의 비판이 작용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배에 탑승한 화이트 스타 라인의 이스메이 회장이 선장에게 횡단 시간을 줄여서 기록을 세우기 위해 타이타닉을 전속력으로 운행하라고 스미스 선장에게 강권하며, 이것이 타이타닉 침몰의 이유 중 하나로 나온다. 이 때문에 사고 후 이스메이 회장은 생존자들에게 경멸당한다. 다만 이는 카메론의 창작이다. 실제 역사에선 이스메이 회장이 타이타닉의 속도 및 운행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사고 조사를 위한 청문회 당시 이스메이에 대한 조사도 어디까지나 최고 경영인으로서의 최종적인 책임 자체에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화이트 스타 라인은 선박의 속도 경쟁보다는 안락한 여행을 위한 서비스에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상류층의 지저분한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탈출 과정에서 상류층인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의도적으로 차별을 가했다는 근거도 희박하다.[38]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 〈에이리언 2〉, 〈에이리언 네이션〉, 〈어비스〉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다.[39] 재미있게도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후보로 카메론의 〈아바타〉와 비글로의 〈허트 로커〉가 올랐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작품상을 둔 경쟁에서 승자는 전(前) 남편이냐 전(前) 부인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었는데, 결국 승자는 전(前) 부인이 되었다.[40] 영국 스태프들이 카메론에게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지 않게 해줄 것, 그리고 하루에 두 번씩은 티타임을 가지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게다가 영국 스태프들은 카메론의 작품은 커녕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해서 엄청나게 무시했다. 가뜩이나 자존심 강하고 성질 더러운 카메론 입장에선 울화통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41] 조지 S. 패튼 문서를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패튼은 진짜로 부하들을 두들겨팼는데 1940년대 당시에도 엄청난 욕을 여론과 언론을 통해 쳐먹었다. 그래서 그는 명장임에도 사관학교 후배인 아이젠하워나 오마 브래들리가 먼저 대장이나 원수로 진급하는 걸 봐야했다. 그나마 둘은 선배인 패튼을 우대했지만 상관인 아이젠하워 대장은 패튼 중장의 부하 구타 및 온갖 논란을 옹호하는데 질려서 "내가 언제나 패튼 그놈만을 봐줄 수 있다고 보느냐?"고 분노한 것도 유명하다. 브래들리는 대놓고 패튼에게 당신은 독불장군에 전쟁을 너무 즐기는데 그거 독재자 타입 아니냐고 그야말로 면전에서 모욕을 할 정도였다. 헌데 이 말에 패튼이 찍소리 못했다. 당연히 카메론은 패튼과 입장이 다르니 정말로 구타했다면 고소당할 뿐만 아니라 감독 자리도 모가지당하고, 스태프들을 구타한다는 악명으로 인해 할리우드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을 것이다.[42] 〈터미네이터〉에서 카일 리스 역, 〈에이리언 2〉에서 드웨인 힉스 역, 그리고 〈어비스〉에서 하이럼 코피 중령 역.[43] 〈터미네이터〉에서 초반 T-800에 의해 살해 당하는 양아치 3인중 파란 머리, 〈에이리언 2〉에서 허드슨 일병과 〈타이타닉〉에서 보물사냥꾼 브록 러벳 역.[44] 〈에이리언 2〉에서 바스케즈 일병 역, 〈터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의 양어머니 역.[45] 데뷔작 〈피라냐 2〉에도 출연했으며, 〈터미네이터〉에서는 사라 코너 동명이인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역을, 〈에이리언 2〉에서는 합성 인조인간 비숍 역을 맡았다.[46] 사실 그도 그럴게, 영화에서 감독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냥 항상 오만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할리우드 영화계가 감독보단 프로듀서와 작가의 힘이 강하다 해도 제임스 카메론의 경우 편집이나 각본에도 손을 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리고 본인도 그만큼의 능력이 있고 자신감까지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쪼아댔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시절부터 쭉 그런 삶을 살아오다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영역의 최고봉에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하다보니 당연히 남들의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47] 그래서 베이도 나름대로 자기반성하는 발언을 하고, 성질도 전보다 많이 죽여서 이후 같이 작업하게 된 안소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같은 대배우들에게도 칭찬을 많이 듣게 되는 등, 전보다는 나아졌다.[48] 원안[49] 후술하듯이, 둘은 절친 관계이기도 하다.[50] 제임스 카메론이 실제로 1인 잠수정을 타고 마리아나 해구 끝까지 도착했던 장면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식 영화로 본인이 출연했다.[51] 이전에 해양 보호 다큐멘터리까지 찍었던 카메론 감독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틀림없이 방문 계획을 다시 검토했을 가능성이 높다.[52] 원문은 "Vegan is Futurevore"인데, 여기서 '-vore'는 초식동물(herbivore)과 같이, 생물을 그 주식으로 구분할 때 쓰이는 접미사다. 즉 미래에는 채식주의자만 남을 거라는 뜻이다.[53] 트럭 운전수로 일하던 카메론이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1977년 스타워즈 관람이었다.[54] 현재는 성전환으로 자매.[55] 출처: EthniCelebs James Cameron.[56] 비교적 최근 인물은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알려지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은 비록 틀렸을지라도 불리던 대로 불리는 것이 혼동을 막는 차원에서 합리적이라 볼 수 있다.[57] 카메론에게 총몽을 소개 시켜준 사람이 기예르모 델 토로인데, 카메론과 같이 덕질하는 매우 친한 사이다.[58] 사실 위버는 이날 snl 호스트였다. 작중 위버가 살고 싶으면 따라와라"(Come with me if you want to live)"라고 말하는데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꾸준히 나오는 대사. 1편에서 카일 리스가 사라 코너에게 외친 것을 시작으로, 누군가를 아군으로 합류시킬 때 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59] 남자 배우들이 "리플리!"라고 부르자 리플리는 "믿거나 말거나"라고 하는데 이는 예전에 한국에서도 방영했던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라는 방송 제목을 이용한 말장난이다.[60] # 좌측이 제임스 카메론이다. 우측 빌리 제인의 키는 184cm.[61] 당장에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이미 테란, 저그, 프로토스 3종족의 컨셉을 가진 영화들이 다 있다. 만약 본인이 스타크래프트에 대해서 생각이 있다면 본인입장에선 저3작품을 좀더 하이테크형식으로 짬뽕시키면 되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