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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1><colcolor=#fff> Terry Gilliam 테리 길리엄 | |
본명 | Terence Vance Gilliam 테런스 밴스 길리엄 |
출생 | 1940년 11월 22일 ([age(1940-11-22)]세) |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1940 ~ 2006) [[영국| ]][[틀:국기| ]][[틀:국기| ]] (1968 ~ )[1] |
신장 | 175cm |
직업 | 코미디언, 배우, 영화감독, 애니메이터, 극작가 등 |
활동 | 1968 ~ |
소속 | 몬티 파이선 |
배우자 | 매기 웨스튼(1973 ~ ) |
자녀 | 3명 |
학력 | 옥시덴탈 칼리지(정치학 / 문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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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출신의 영화감독, 작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몬티 파이선의 유일한 미국인 멤버였으며 현재는 영국 국적자이다.2. 상세
데이비드 린치, 팀 버튼 등과 함께 할리우드 내 컬트 영화의 거장이다. 현실과 환영, 판타지적 세계를 연결함과 동시에 상식을 비트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하고,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지식인과 영화 평론가들에게 컬트적인 인기와 찬사를 얻어 왔다.포토 코믹 작가 겸 애니메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후에 몬티 파이선에서 같이 활동한 존 클리즈하고도 이 시기에 처음 만났다. 만화를 만들던 잡지가 폐간한 뒤에는 영국으로 이주해 ITV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몬티 파이선에 합류한다.
몬티 파이선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고, 그 명성으로 장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브라질에서 평론가들과 컬트 영화 팬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대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피셔 킹, 12 몽키즈,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등을 만들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2.1. 몬티 파이선으로서의 활동
테리 길리엄은 1969~1974년까지 방영하며 인기를 끈 B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 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코미디언으로서의 활약은 별로 없으며, 주된 업무는 스케치와 스케치를 연결해주는 애니메이션의 제작이었다. 다만 스페인 종교재판에선 주역인 3인방 종교재판관 중 한명인 팽으로 출연한 바 있다.↑ 41화에서는 길리엄이 말을 한다! 시인으로 등장하여 시(오지만디아스)를 낭독하는데, 1분가량 이어지는 길리엄의 대사에 출연자들과 관객들이 대환호.
길리엄의 애니메이션은 셀화가 아니라 "컷아웃" 기법[2]으로 제작된 것으로서, 길리엄 자신이 그린 기묘한 느낌의 그림에다 각종 미술작품이나 삽화의 컷아웃을 뒤섞은 독특한 분위기로 유명하다.
↑ 35화에서는 자신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등장.
길리엄이 자신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설명한 동영상이 있으니 흥미가 있다면 보자. 그림만 봐도 어떻게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영상
길리엄은 몬티 파이선의 영화 작품들의 감독으로서도 활약하여,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3]을 제외한 모든 영화작품들을 테리 존스와 함께 감독하였다.[4]
2.2. 돈키호테 슬럼프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엎어지고 나서 그의 커리어는 하락세를 탔다. 팬들 사이에는 뒤틀리고 기발한 영화를 찍던 감독이 블록버스터에 삼켜져서 모난 부분이 다 깎여 평범한 돌로 변했다는 평이 많다.사실상 이는 할리우드의 농간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서 조금 시들해졌지만,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판은 공룡기업과 상업성에 치중한 나머지 평균 이하의 괴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타리 쇼크처럼, 많이 대충 만들면 알아서 사가겠지와 비슷한 맥락으로 빵빵 터트리고 유명인들만 나오면 되겠지 하는 수준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이게 대세였던 나머지, 정작 기발하고 기괴하지만 창의적이고 개성있는 영화를 기업들이 눈 여겨 보지 않았을 뿐이다. 테리 길리엄은 몬티 파이튼 시절에도 기괴한 애니메이션을 거침없이 내놓았던 사람이고, 기괴하고 기발해서 내쫓는거지 재미 없다고 내쫓는게 아니다.
지금은 좀 그런 경향이 시들해졌다 한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흥행 참패처럼 입을 모아 명작이라고 해놓고 정작 찾아보지 않는 관객들이나 기업들을 보면 과연 이 양반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건 고사하고 만들 수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이후 돈키호테에 재도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진척이 또 안 됐는지 제로법칙의 비밀이라는 신작을 만들어 내놨다. 이번에도 평은 그저 그렇다.
영화 제작 과정이 심각할 정도로 곡절 많은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브라질 제작 비화나 돈키호테 좌초는 이미 잘알려졌다. 제작사와 심한 갈등을 겪으며 만든 바론의 대모험도 제작사의 변덕때문에 홍보도 없이 개봉해 흥행에 참패, 심지어 전성기 작품인 피셔 킹하고 12 몽키즈,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그림 형제 모두 한번씩 엎어질 뻔했다. 그나마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 무난하게 제작되는 줄 알았는데 히스 레저가 제작도중에 사망해 각본을 변경해야 했다.
아마존 스튜디오와 협력해서 몇번이나 엎어졌던 돈키호테 영화화가 다시금 최종확정됐지만 돈키호테를 맡은 배우가 암으로 촬영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배우가 사망하면서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2016년 4월 총 제작비는 1천 3백만 달러로 그해 9월 촬영이 재개될 예정이였지만 영화 프로듀서가[5] 돈이 없는데 돈 있다고 구라를 쳤다는 사실이 들통나서 또 엎어졌다. 완전 엎어진 건 아니라고 한다. 길리엄 왈, 이 영화 완성하기 전엔 못 죽는다고. 다행히 다른 프로듀서로 교체된 뒤에 3월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최종 캐스팅은 아담 드라이버, 조나단 프라이스[6],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 올가 쿠릴렌코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6월 4일, 드디어 촬영이 종료되었다고 한다. 현재 개봉일자를 논의 중이라고. 최근 길리엄 영화들이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은걸 생각해보면 베를린 영화제나 칸 영화제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2018 칸영화제에서 시사회를 열 예정이였지만 상기한 프로듀서의 거짓말에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상부에서 빼버렸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공개되었다.
3. 여담
맡을 뻔 했지만 놓친 영화로는 본인이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가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 방대한 원작을 살리기 위해 TV시리즈로 만들걸 제안했다가 워너 브라더스에서 짤린 왓치맨[7], 원작자 J. K. 롤링이 직접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길리엄을 못 미더워한 워너가 거부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등이 있다.사실 길리엄 영화가 돈은 많이 드는데 자기 개성과 철학이 너무 강해서 상업적으로 어디다 써먹을 수 없는 영화라는 감이 커서 고생이 심한 감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SF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브라질은 1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미국에서 1000만 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낸 저주받은 걸작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고, 1998년 작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는 185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1068만 달러밖에 못 벌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하게 망한 케이스가 있으니, 1988년 작 바론의 대모험(The Adventures of Baron Munchausen). 원래 예산의 2배에 육박하는 4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었더니만 좋은 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흥행 성적은 800만 달러. 이 손실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2014년 기준으로 7800만 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으로 역대 망한 영화 42위라고 한다. 그래도 꼭 망한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초기작인 <시간 도둑들>은 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미국에서 4000만 달러 넘게 벌었고, 1991년 작 피셔 킹은 2400만 달러의 제작비로 4200만 달러 정도의 준수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으며, 12 몽키즈 같은 경우는 2950만 달러의 제작비로 월드와이드 1억 6884만 달러를 벌었다.
4. 감독작
-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
- 재버워키(1977)
- 시간 도둑들(국내 비디오 출시명 4차원의 난장이 E.T)(1981)예고편
- 몬티 파이톤의 삶의 의미 (1983) - 인트로의 단편 영화를 감독하였다.
- 브라질(국내 비디오 출시명 여인의 음모)(1985)
- 뮌하우젠 남작의 모험(국내 비디오 출시명 바론의 대모험)(1989)
- 피셔 킹(1991)
- 12 몽키즈(1995)
-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1998)
- 라 만차(2002)
- 그림 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2005)
- 타이드랜드(2005)[8]
-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2009)
- 제로법칙의 비밀(2013)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2018)
- The Carnival at the End of Day ()
[1] 출생은 미국이지만 1968년 영국 국적을 취득, 2006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항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까지 2중 국적이었다. 몬티 파이선 멤버들이 "징병을 피해 도망쳐온 미국 친구"라 놀려대는 걸 보면 월남전을 반대하는 병역 거부자였던 모양이다.[2] 그림을 부위별로 잘라내 각 부위를 움직여가며 프레임을 촬영하므로써 애니메이션 효과를 창출하는 기법. 애니메이션과 특촬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기법이다. 미국 애니메이션인 "사우스파크"도 컷아웃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후기 시즌엔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작업으했다. 또한 샤프트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듀오 극단 이누카레도 테리 길리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3] 테리 존스 감독.[4] 단 몬티 파이톤의 삶의 의미는 도입부인 "크림슨 영구 보험" 만 감독을 맡았다.[5] 파올로 브랑코라는 포르투갈 영화계에서 거물 프로듀서다. 영화사상 최고령 감독으로 유명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와 라울 루이즈, 페드로 코스타 같은 감독들 제작자로 유명했으며, 지금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라던가 여러 국제 합작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6] 돈키호테 역.[7] 결국 TV 시리즈로 나오긴 한다.[8] 한국 개봉이 늦었지 제작년도 자체는 그림 형제랑 똑같다. 그림 형제가 엎어질 위기에 처하자 후다닥 찍은 영화. 참고로 사일런트 힐 영화판의 '그' 소녀 조델 퍼랜드가 주인공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