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f2023><tablebgcolor=#ffffff,#1f2023> [[M26 퍼싱| | }}} | |||||
파생형 | 실전 | 운용국 | 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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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6 Pershing |
1. 개요
M26 퍼싱 기동 영상 |
명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 유럽 원정군 총사령관인 존 조지프 퍼싱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리고 퍼싱은 조지 S. 패튼,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등과 달리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이름이 붙은 전차를 볼 수 있었다.
M46 패튼→M47 패튼→M48 패튼으로 구성된 패튼 전차 계보의 전신이 된다는 점에서 초기의 미국제 주력 전차로 보는 경우도 있다.
2. 제원
<colbgcolor=#808000><colcolor=#fff> M26 "Pershing" M26 퍼싱 | |
개발기관 | 미 육군 병기부 |
개발 연도 | 1943년 ~ 1944년 |
생산기관 | 피셔 바디 디트로이트 조병창 |
생산 연도 | 1944년 11월 ~ 1945년 12월 |
생산 대수 | 2,811대 |
운용 국가 | 미국 포함 도합 10여개국 사용 |
운용 연도 | 1944년 ~ 1961년[2] |
전장 | 6.33m / 8.65m (차체 / 포신 포함 시) |
전폭 | 3.51m |
전고 | 2.78m |
전비 중량 | 41.9t |
차체 장갑 | 전면 장갑: 101mm (46°) 측면 장갑: 76.2mm 후면 장갑: 51mm 엔진 데크, 차체 상판, 하단 장갑: 22.2mm |
포탑 장갑 | 포탑 전면 101mm 측, 후면 76mm 포방패 144mm |
엔진 | V8 가솔린 포드 GAA/GAF[3] |
최대 출력 | 500hp |
출력비 | 11.9hp.t |
사용 연료 | 가솔린 |
주무장 | 90mm M3 전차포 1문 (70발) |
부무장 | 12.7mm M2HB 중기관총 1정[4], 7.62mm M1919 기관총 2정[5] |
추가 무장 | T99 칼리오페, 90mm/L73 T15E1/E2 주포(T26E4-1, T26E4) |
항속 거리 | 161km |
최고속력 | 전진: 48km/h 후진: 16km/h |
현가 장치 | 토션바 현가장치 |
탑승 인원 | 5명 (전차장, 조종수, 포수, 장전수, 부조종수) |
3. 개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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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중전차 T26E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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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6 퍼싱의 장갑 배치도 |
영국이 독자적으로 개조해 17파운더 대전차포를 장착한 셔먼 VC, 셔먼 IC, 셔먼 IC 하이브리드는 안정적으로 티거와 판터를 관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원거리 명중률에 문제가 있는데다가 기반이 셔먼인지라 장갑 방어력은 같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티거와 판터를 잡을 수는 있었지만 결코 대등하게 싸울 수는 없었다. 때문에 미국도 17파운더와 파이어플라이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해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군은 17파운더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 채용하게 된다면 17파운더 포탄의 생산 라인을 따로 여는 삽질을 해야 했을 것인데, 아무리 돈이 많은 미국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보급선을 더 꼬이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장 티거를 압도적으로 때려잡아도 시원찮을 판에[6] 티거를 잡을 수 있을까 말까한 병기 따위는 미국에게는 고려대상조차 아니었다.[7] 즉 미국의 궤도차량 중에서 티거와 판터 시리즈를 전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76mm M7 포를 장비한 대전차 자주포인 M10 GMC와, 90mm M3 포를 장비한 대전차 자주포인 M36 GMC 뿐이었다.
때문에 미군은 독일군의 중전차를 상대하기 위한 본격적인 T29등의 신형 중전차를 개발하기 시작했고[8], 강력한 90mm 포, 114mm의 두툼한 장갑, 50구경 기관총 1정과 30구경 기관총 2정으로 무장한 본격적 중전차 M26 퍼싱을 장갑이 상대적으로 얇았던 T25를 대신해 차기 중형전차로 선정하고 2,432대나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원래는 중전차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잠정형 전차였던 M4 셔먼의 후계 전차, 즉 중형전차로서 생산이 시작되었다.[9] 당장 M4 자체가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이 확실시되면서 급속한 군비 확충을 위해 서둘러 양산에 착수한 전차였다. 당연히 성능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군은 셔먼에 그리 만족하지 못했고, 마침 전차 기술 자체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시기라 미군은 M4 셔먼의 양산이 확정된 시점에서부터 곧바로 후계 전차 계획에 착수했다. 이런 추세는 사실 당시 거의 모든 열강국의 공통적인 양상이었다. 그러나 1944년 9월 병기국 차원(셔먼과의 구분을 위해)에서 분류를 중전차로 변경하는 바람에 2차 대전에는 중전차 명목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퍼싱이 다시 중형전차로 재분류된 것은 종전 후인 1946년 7월이었다.
M4 셔먼에서 이어져온 원시적 헌터 킬러 기능을 가지고 있어 전차장이 포탑을 조종할 수 있었다.
3.1. 개발 과정
현대 미국이야 M1 에이브람스를 필두로 하여 세계 최강의 기갑전력을 구사하고 있지만 초창기 미국 기갑부대는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냉전 종식 직전까지는 미국의 기갑전력은 최상위권이기는 하지만 소련이나 독일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어서 오늘날처럼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미국이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선 것은 소련 붕괴로 러시아군이 정신줄을 놓고, 서유럽의 군대들 또한 군축으로 맛이 가버린 상태인 반면 미국은 혼자 꾸준히 발전한 덕분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M4 셔먼 중형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미 군수부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하면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양산이 미뤄지는 와중, 트라이던트 회담(1943년 5월 25일)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잡혔다. 신형 전차가 D-Day전에 완성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자, 신형 주포인 76 mm gun M1만 상륙작전 전인 1943년 6월부터 셔먼에 T23의 포탑을 장착하여 양산 준비에 들어가 1944년 1월 양산을 시작했고(M4A1E6셔먼), 90 mm 대전차 자주포도 생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둘 다 대서양을 건너면서 D-Day에서는 투입되지 않아, 독일의 전차들과 셔먼은 75mm를 장착한체 마주했다.
하지만 그렇게 장착한 신형 주포는 시원치 않았고, 90mm 대전차 자주포는 자주포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90mm 장착 전차에 대한 전선에서의 요구가 쇄도하여 M26E3를 M26 퍼싱으로 선정하고 양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았고 전쟁이 끝나서까지 해결을 지속하여, 추중비는 M46, 기동 신뢰성은 M47, 연비는 M60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개발과 생산을 전적으로 책임진 육군 병기부의 관할하에 많은 방위산업체들이 참여했는데, 1942년 제너럴 모터스가 처음으로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었다. T20으로 명명된 이 전차는 기존 전차들보다 강화된 전면장갑, M18 헬캣의 76mm M1 전차포와 진보한 자동 변속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육군 병기부는 서스펜션과 변속기의 시험, 개량을 위해 프로토타입 전차 4대의 추가생산을 명했고, T22라 명명된 2대는 크라이슬러가, T23이라 명명된 나머지 2대는 제너럴 일렉트릭이 맡았다. T22에는 M4 셔먼의 변속기 개량형을 장착한 모델이고, T23은 M6 전차 개발과정에서 나온 T1E1의 전자 변속장치를 장착했다.
1943년 5월 생산된 프로토타입 T20은 수평 현가장치(HVSS)의 장착과 유체 구동 변속기등 서스펜션이 더욱 개량되었고, 엔진은 M4A3 셔먼이 가진 포드사의 500마력 V8 심장을 가진, 여전히 진일보한 셔먼에 가까웠다. 출력대 중량비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엔진과 변속기가 합치면서 현대의 전차들이 사용하는 파워팩의 시작은 이 T20에서 시작되었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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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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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싱에 장착된 포드 GAF 엔진 |
3.2. 미 육군 고위층의 오판
고위층의 핵심적인 오판은 미완성인 퍼싱의 조기 배치를 보류한 것이 아닌[10], 퍼싱이 개발 중인 동안 셔먼의 업건을 보류하고는[11] 공백기간 동안 76mm 대전차자주포를 배치했으니 충분하다고 현실에 안주해버린 것이다.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정해졌지만 T20의 완성이 이를 맞추지 못할것 같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AGF는 곧바로 셔먼의 업건 준비에 착수, 업건한 셔먼의 생산을 1944년 1월부터 시작했으나 대서양을 건너느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고작 200대만 영국으로 수송완료된데다 지급받은 부대를 기종변환훈련 시간도 없어 보병 제압력이 더 좋은 75mm 포가 낫다고 판단되어 M4A1 (76) W 셔먼은 상륙 후에 투입되었다.거기다 90mm 포 탑재에 관해서도 맥네어 장군을 필두로 한 AGF의 오판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로, 기갑국은 셔먼(전차)에 90mm를 장착해서 내놓으라고 요구했는데, 병기국은 76mm에 만족하면서 T25(전차)에 90mm를 탑재할지 말지(90mm가 필요한지)로 논쟁을 하다가 90mm를 대전차자주포에 장착하여 생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길어진 논쟁으로 1944년 4월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76mm 셔먼과 마찬가지로 D-Day를 놓쳤고, 실전에 투입하니 90mm를 장착하였어도 대전차자주포의 한계로 인해 전선에서는 90mm를 장착한 전차의 요구가 쇄도했다. 결국 90mm를 장착할 역량이 충분했던 셔먼은 90mm 장착 전차의 전선수요가 발생한 다음에 다시 고려되었으나, 퍼싱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90mm 셔먼의 양산준비 시간이나 비슷하고, 퍼싱의 양산에 방해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와버려 포기했다.
만약(전후의 평가이기는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에 셔먼의 76mm환장과 대전차 자주포 90mm 업건을 끝냈다면 셔먼이 판터에게 일방적으로 쓸려나가지 않았을 것이며, 더 나아가 대전차자주포를 포기하고 90mm로 업건한 셔먼을 단일 생산했다면 퍼싱은 6.25 전쟁 끝까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12]
다음에 나오는 퍼싱 개발 과정에서의 논쟁들은 완성도 되지 않은 전차에 관한 논쟁이기 때문에 참고만 하면 된다. 다만 미국은 해전과 항공전 병기를 주력으로 태평양 전선에 집중하느라 지상전 병기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준비 단계[13]에서부터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참작하며, 미군이 신형전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14]
3.2.1. 개발 과정에서의 논쟁
1943년 5월 24일 일단 T26의 생산은 승인되었지만 정작 군부는 회의적이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 또한 신형 90mm 주포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했고, 그들의 눈에는 이 돼지같은 전차는 셔먼처럼 재빠른 진지돌파와 속전속결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애초에 1,500여대의 T26 중전차의 생산이 승인되었지만, 군부는 생산되더라도 500여대 이하만 보유하기를 원했다. 그게 아니라면 가벼운 T25 전차에 76mm 포를 달아 중(中)전차화 하여 7,000여대 정도 생산하는 것을 반겼다. 무엇보다도 군부는 T26의 생산으로 인한 M4 셔먼의 생산의 차질은 원하지 않았다.1943년 9월 13일 여러 가지가 개량된 T26E1 전차 10대가량 생산되었고, 육군 병기부는 T26E1 전차를 추가적으로 500여대 정도 생산할 것을 계획하였지만, AGF의 레슬리 맥네어 장군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바다 건너 병기를 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송 체계의 한계를 시험하는 40톤급 중전차는 보급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차피 배에 싣고 가는데 퍼싱의 40톤이나 셔먼의 30톤이나 무슨 차이냐!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당시 전차 수송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대형 선박에 램프로 그대로 타고 올라가서 싣는 게 아니라, 일반 화물선에 크레인으로 전차를 달아 올려서 차곡차곡 싣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M4 전차를 보면 차체 전후면에 이렇게 크레인으로 줄을 묶어 달아 올리기 위한 철제 고리가 장착되어 있으며, 이는 퍼싱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40톤급은 이런 크레인이 다룰 수 있는 무게의 한계였기 때문에 수송에 어려움이 생겼던 것.
그래서 장거리 보급으로 인한 어려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맥네어는 전방으로부터 "전선 수요(Battle Need)"가 있는, 즉 전투병이 조우한 전투 상황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는 병기를 우선 제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맥네어는 이 방침을 통해 전간기식의 허황된 전투 병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고 1940년대 초반까지 미군 전차 승무원들이 누리던 기술적인 우위를 이끌었지만, 이후 먼저 배치된 셔먼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아직 전선 수요가 없는 후속 전차의 개발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15]
아직 티거와 판터를 조우하지 않은 대다수 미군 전차 승무원은 75mm 포만으로도 대전차와 대보병 임무를 모두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크고 무거운 포에 대한 전선 수요가 거의 없었고, 자신이 싸우는 유럽 전장이 더 무겁고 강한 후속 전차가 쏟아져나오는 군비경쟁의 장이 될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일반 전차 승무원은 군비경쟁과 같은 대전략적 판단을 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승무원들의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대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맥네어가 일선 승무원의 호의적인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현실에 안주해버렸던 것이었다.[16] 그래서 승무원들로부터 더 강력한 주포를 탑재한 전차에 대한 "전선 수요"가 발생한 시점에서 이미 많은 전차 승무원들이 희생된 지 오래였고, 이 전선 수요가 상층부에까지 전달되어 신형 전차가 개발되고 대서양을 건너 수송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17]
1943년 11월 13일, 당시 영국에 부임해있던 서부전선 사령관 제이콥 데버스는 국방성을 상대로 "강력한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5대의 셔먼에 1대의 T26은 꼭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으나, 그러한 주장은 역시나 AGF의 수동적인 태도에 막혀버렸다. AGF의 생각은 이랬다. "티거는 별로 많지도 않을 것이고, 나머지 독일 전차는 셔먼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18] 그러나 이런 생각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막된 이후로 산산히 부서졌다. 게다가 이렇게 안주한 기간은 소련기갑에 필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독일 전차개발사에 있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신형 중전차 개발을 시작한지가 1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만 낭비된 셈이었다. 조지 S. 패튼 또한 부정적이었다고 전해지나, 사실 패튼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데다가 패튼이 안좋아한 것은 퍼싱의 기동력이지, 화력과 방어력에서는 충분한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애초에 패튼은 떡장갑인 점보 셔먼의 강한 장갑에 만족하여 보급요청까지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제한된 독일군 전차에 대해 선전한 M4 셔먼 전차를 과대평가하며 맹신하고 있었고, 다수의 셔먼으로 소수에 그칠 독일의 티거와 판터를 상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미군은 노르망디 이후 간단히 독일군을 압도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수많은 전차와 승무원들의 쓸데없는 희생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시간에 무능한 장성들은 뒤에서 팔자좋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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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전차에게 격파 당해 궤도가 끊어진 셔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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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에서 격파된 셔먼[19] |
이 지경이 되자 미 육군부는 그제서야 후회했다. 물론 지휘부의 장성들이 그런 보고를 받아보는 동안에도 죄 없는 전차들은 유럽 곳곳에서 격파되어 나갔다. 게다가 측면이 얇은 수직장갑이라는 것등의 약점을 노출해서 정면에서는 포탄을 튕겨버릴 각종 2선급 대전차화기에도 약점이 노출되어 파괴당했다. 캉 점령전 때만 해도 200여대의 M4 셔먼 전차가 희생되었던 영국 육군은 하루만에 131대의 M4 셔먼 전차를 잃기도 했다.
그나마 전차에 M3 90mm 주포 장착계획을 극렬히 반대했던 맥네어 장군이 아군기의 오폭으로 전사하면서 이 계획 자체를 막을 사람은 없었으나 이런 상황을 깨달았다고 갑자기 신형전차를 뽑아낼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멕네어 이외에도 바보같은 장성들이 쓸데없는 체면 때문에 계획 진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데다 미군의 항공지원 의존도가 대단히 높아서 중전차 생산계획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싱이 양산체제를 급하게 갖추는 상황에서도 셔먼의 손실은 계속되어, 어떤 기갑사단 예하 전차대대는 1944년 6월부터 1945년 3월까지 9개월 동안 장비손실율 300% 이상, 즉 전차의 전선 운용 기대수명이 길어야 3개월 이내라는 충격적인 상황까지 겪었다.그러나 당장은 수적우세를 바탕으로 계속 독일군을 격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1944년 12월 들어 처음으로 유럽 주둔 미군에 퍼싱의 선행 배치가 시작되었다.
미군은 아프리카에서 티거가 튀어나오기 전에도 76.2mm 주포를 탑재한 셔먼을 테스트 할 만큼 강력한 주포와 관통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90mm 주포를 탑제한 M36 GMC의 활약상과 평판을 비롯, 90mm 주포를 장착한 퍼싱을 서둘러 배치하고자 하였으나, 발목을 잡은 건 퍼싱의 결함과 퍼싱 생산까지 버텨줄 90mm 전차의 부재이지 퍼싱의 조기배치를 미룬 것이 미군 수뇌부의 오판이 아니다. 독일의 판터를 예로 들면, 결함을 싸그리 무시하고 쿠르스크 전투 시기에 맞춰 무리하게 생산한 결과 엄청난 수의 비전투 손실이 일어났다.
적국이 점령한 유럽을 가로질러 공세를 펼쳐야 하는 미군의 입장에서 이런 구동부 결함은 사실 심각한 리스크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중전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퍼싱이 필요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어 여러 관점으로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3.2.2. 반론
위의 중전차 퍼싱이 없어서 셔먼과 미군 기갑부대 손실이 컸다는 얘기는 지나치게 과장된 평가이다.애초에 보급이 수월한 미군 전차부대는 장갑이 관통되거나 궤도가 끊어지는 정도의 손상을 입으면 바로 후방으로 보내 청정비를 맡기고 새로운 전차를 지급받았는데 이런 소파, 중파된 전차들까지 모두 '손실'으로 분류되어 윗 문단에서의 전차 손실율 37%라는 수치가 나온 것이며 전투불능에 빠질 정도로 큰 손상을 입은 전차는 훨씬 적었다.
1946년 미 육군부에서 2차 세계대전 동안 전투 및 비전투 사망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육군 병과별 사망자의 규모를 볼 때, 장교를 제외하고 기갑부대는 1,579명, 보병은 13만 1,315명이 전투중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미육군 전체의 전투중 사망자 22만 5,618명 중에서 기갑부대의 비율은 0.7%밖에 안되지만 보병은 58%에 달한다.
기갑병과 중 해외로 파병된 병력의 규모는 총 49,516명이었고, 이중 1581명이 전투중 사망하거나 부상으로 인해 사망함으로서 총 전사자 비율은 3.2%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에 보병병과 중 해외로 파병된 병력의 규모는 75만 7,712명이었고, 14만 2962명이 전사함으로서 전사자 비율은 18.9%에 달한다.
기갑병과 사망자 비율은 미육군 전체 사망자나 파병된 기갑병과 전체 기준으로도 아주 적은 편이다. 반면에 보병 사망자는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유럽전선에서 약 7000여대의 전차 및 대전차자주포 손실이 있었지만, 1944년 6월 2,202대였던 유럽전선의 셔먼이 44년 12월까지 2,270대를 손실하면서도 4,076대까지 증강되는 것을 볼 때 전차의 대규모 손실이 있어도 대량공급을 통해 오히려 전력증강이 가능했다.
대전 후반기로 갈수록 조우할 가능성이 적은 중전차 대응을 위해 무리하게 90mm 전차를 뽑는 것보단 당장 손실이 큰 보병 지원을 위한 M4 셔먼 전차를 대량공급하는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퍼싱배치가 늦어진 건 수뇌부의 오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퍼싱 중전차의 부재로 인한 기갑부대의 희생도 크지 않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M4 셔먼을 우선시해서 보병 손실을 줄였다고 볼 수 있겠다.
3.3. 개량
T26E1은 90mm M1 고사포를 개량한 T7 전차포를 장착하고 부족한 포탄 탑재량을 늘렸다. 그러나 T26E1은 라디에이터와 포탄 사격시 심각한 기계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것을 개량한 것이 T26E3, 그러니깐 M26 "퍼싱"이다. 앞서의 어처구니없는 방해로 인해 심각하게 늦은 1944년 11월에야 생산이 시작되었고 1945년 2월까지 242대가 생산되었다. 퍼싱이란 이름은 1945년 3월에야 붙여졌다. 원래 중형전차로서 개발되다가 중전차로 변경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늦어버린 T26E3는 1945년 1월에서야 유럽에 배치되었다. T7 주포는 머즐 브레이크가 장착된 M3 90mm 주포로 변경되었다. 다만 엔진은 여전히 M4A3 셔먼의 400마력 포드 GAA를 개량한 500마력 포드 GAF 엔진이었는데, 이 때문에 기동력을 많이 깎아먹었다. 비록 속도는 상당했으나 지형적응력이 비교적 부족한 편이었다고 한다.주포의 경우 원심 주조의 가열이 아닌 상온 온도에서 눌러 늘이는 방식인 냉간압연 가공법으로 제조되어 포신은 훨씬 튼튼했고 명중률도 좋았으며 매우 빠른 포구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형 철갑탄인 M77 철갑탄은 576m 거리 이상에서는 판터 정면 차체 상부 장갑을 관통시키기 어려웠고 때론 수 발의 90mm 포탄을 연사해서 판터 정면 상부 장갑을 관통시키기도 했는데, 이는 연속된 피격으로 약화된 장갑재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개선된 신형 T30E16 90mm 고속철갑탄은 벌지 전투가 벌어진 후인 1945년 1월이 되어서야 전선에 도착했다.
4. 형식
4.1. M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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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6 |
4.2. M26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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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6A1 |
M26A1 퍼싱 복원 영상 |
M26A1 퍼싱 기동 영상 |
5. 파생형
6. 운용국
7. 평가
티거, 판터의 대항마.[22] 그리고 6.25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입장으로는 한국전쟁 초기부터 혼란스러웠던 UN군에게 후반부터 늘어가는 소련제 중전차인 IS-2의 위협으로부터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차[23]가 됨과 동시에 IS-2 등장 이전까지 한반도를 통틀어 최강의 기갑차량이었다. 중공군의 참전과 함께 한반도에 들어온 IS-2에 의해 한반도 최강의 기갑차량의 자리를 양분당하게 되었으나,[24] IS-2가 UN군 지상부대와 접촉한 빈도 자체가 그리 높지 않았다. 큰 손실을 입고있던 셔먼을 그냥 놔둘 수 없으니 개발했지만 각종 실책과 삽질과 여러 가지 악수가 겹친 끝에 배치가 엄청나게 늦고 말았는데 이미 퍼싱 전차의 개발목적인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완전히 소모가 되어가는 와중이었다. 늦게 배치되어도 너무나도 늦게 배치되었던 것이다.퍼싱은 전쟁 후반기 유럽전선에 310대가 배치되었고, 목표했던 티거 중전차와 대등 이상의 교전을 치러내며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펼쳤으나 너무 늦게 투입되었던 탓에 커다란 전과는 세우지 못하고 종전을 맞았다. 대신 이후 6.25 전쟁에서나마 활약했다.
그러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끝끝내 발목을 잡았고[25], 전쟁이 끝나고 맞수들이 사라지자 종전 이후의 군비 축소 열풍속에서도 빠르게 M46 패튼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많은 M26/M26A1이 공장 오버홀을 통해 M46으로 개수되었고, 개수되지 않은 차량들은 퇴역했다.
허나 비록 사용된 기간이 짧기는 했지만, 냉전 초기에 개발된 M46 패튼, M47 패튼, M48 패튼과 진정한 미국형 MBT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M60 전차같이 거의 반세기 동안 사용되는 미군 주력/중형 전차[26]계열의 시초이자 토대를 만들어놓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꾸준한 개량만으로 계속 쓰일 수 있을 만큼 기본 설계 자체는 충분히 우수한 셈. 대표적인 것은 미국의 리턴롤러와 토션바 서스펜션은 여기서 시작했다. 곁다리로 퍼진 건 T21에서 시작한 M24 채피와 M18 헬캣이 있지만 주력전차는 퍼싱이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화력이나 방어력은 당대 최상급중 하나였다. 88mm를 장비한 티거 전차나 85mm를 장비한 T-34-85보다 화력으로도 앞서고, T-34-85의 경우 6.25 전쟁에서 퍼싱이 큰 피해 없이 T-34를 파괴하고 다녔다.
워게이밍의 전 부사장[27]인 SerB는 판터가 아닌 퍼싱이 최초의 MBT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이는 성능보다는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28] 판터는 무게가 중전차급이지만 화력은 75mm 포를 장착하는 데 그쳤고, 전면 방어력은 우수하지만 티거를 포함한 당시 독일 중전차들과 비교해도 측면이 훨씬 약하기에 혼자 중전차 중형전차 역할을 모조리 책임지는 현대 주력전차의 개념과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 퍼싱은 당시 기준으로 막강한 방호력과 주포를 가졌으며 중형전차급의 기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8. 미디어
9. 모형
9.1. 프라모델
9.1.1. 드래곤 모델
1994년에 발매되었다.9.1.2. 타미야 모형
2002년 제품으로, 일부 파츠를 추가하여 슈퍼 퍼싱으로도 발매되었다.9.1.3. 하비보스
2009년에 발매되었다. 타미야와 마찬가지로 슈퍼 퍼싱 제품군들로도 출시되었으며 초기형/중기형/후기형 세 가지로 나뉜다. 포방패와 포탑 측면 공간장갑+후면 무게추+차체 전면 공간장갑이 장착된 초기형을 모형화시킨 T26E4 Super Pershing Pilot 1은 월드 오브 탱크의 슈퍼 퍼싱과 가장 비슷하게 생겼으니 혹시 월탱 버전 슈퍼 퍼싱을 원한다면 이쪽을 추천한다. Pilot 2는 후면 무게추+고저장치 스프링만 있는 버전이고, Pilot 3은 타미야의 슈퍼 퍼싱 형식과 같다.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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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 BA-64, BTR-40 | ||
자주포 | SU-76M, LVT(A)-4 (ZiS-2)C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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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 GAZ-51, GAZ-63, GAZ-64, GAZ-AA, ZiS-5, ZiS-6, ZiS-150 | ||
모터사이클 | M-72 | ||
노획 차량 | M24 채피, M4A3 (76) W HVSS, A27M 크롬웰NONE, M26 퍼싱, M19 더스터, M41 고릴라, 센추리온, M36 GMC, 옥스포드 캐리어, 와스프 IIC, M46 패튼, M18 헬캣 | ||
※ 윗첨자?: 사용 여부가 불확실하고 일부 자료(사진 등)에만 등장하는 차량이거나 증명이 되지 않은 차량 ※ 윗첨자CN: 인민지원군이 사용 ※ 윗첨자X: 소련에게 공여받은 차량이나 소수 만을 운용 ※ 윗첨자NONE 전시 중 전량 유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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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련 문서
[1] 수동변속기 한정이며, 파워팩 자체는 퍼싱의 개발 단계에서 나온 T20부터 적용해왔다. 파워팩은 이후 서방권 전차 설계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자동 변속기 형식의 파워팩은 T29 계열과 T32에서 시작해 M46 패튼으로 이어진다. 자세히 것은 링크와 T32 항목 참고. 참고로 엔진과 변속기가 결합된 형태는 사실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발명가인 크리스티가 먼저 만들었다. 이후 크리스티의 설계가 소련에 팔려가서 BT 전차 시리즈의 설계에 쓰였으며, BT 전차에서 시작한 기초 설계는 이후 T-34의 설계에도 쓰였다. 다만 정비를 위해서는 이후 나온 서방의 파워팩 설계과는 달리 후면장갑을 들어내던지 엔진과 변속기를 먼저 분리한 다음에 따로 들어내야 했다. 차체 설계를 상당히 뜯어고친 T-44부터는 이 문제가 없었다.[2] 이탈리아 한정. 미국에서는 1952년 퇴역하였다.[3] 2차대전 후에 제너럴 모터스의 엔진으로 교체한 개량형도 나왔지만 파워팩의 변경으로 차체 후방이 조금 바뀌면서 다른 전차로 분류 되었다.[4] 포탑 후방 대공용 마운트.[5] 공축기관총 및 보조 조종수용 볼마운트.[6] 실제로 나치 독일군은 (티거 하면 가장 많이 유명한) 티거 1을 뛰어넘는 티거 2와 야크트티거, 야크트판터와 같은 티거 1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 가는 전차들을 배치한 적 있었고, 간단히 말해 당시 미군 주력전차 계열들에게 있어 티거나 판터는 주력전차(내지는 주 전력)끼리의 1:1 비교에서 1차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최초 통과점이었지, 최종 통과점은 아니었던 것.[7] 미군은 이미 구형 D50878 포탑에 76mm M1 전차포를 장착한 형식인 M4A1(76)W를 개발했지만, 포탑 용적이 지나치게 작아서 전투 효율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고는 다시 75mm포를 장착해서 사용했다. (Zaloga, S., Laurier, J., M4(76mm) Sherman Medium Tank 1943-65, 2013, p.3-7) 그런 작은 포탑에 76mm M1보다 포미가 훨씬 큰 17파운더를 장착했으니 미군은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8] 가장 먼저 만들어진 중전차 개념이 적용된 M6, M26 퍼싱과 T29, T30, T34 차체와 중간에 해당하는 T32, 그리고 티거 2와 같은 전차를 교전하기로 상정한 T29. T30, T34, 초중전차 T28이 있다. 이 중 M6만이 제식 생산되었으나 퍼레이드와 90mm와 105mm 포를 장비 및 T29의 시제 포탑 시험기로 썼고, 나머지 또한 시험 용도로만 썼다. 이 중에서 T29, T30, T32, T34는 크로스 드라이브 변속기가 적용된 파워팩 시험을 진행하여 M46 패튼부터 시작된 미국의 자동변속기 적용 파워팩 개발 데이터로 쓰였다.[9] 실제로 단순히 전비중량만 비교해보면 동시대의 독일 국방군 중형전차인 판터와 엇비슷하며, 오히려 몇톤 더 가볍다.[10] 워게이밍 고증 자문 니콜라스 모런은 TankFest Northwest 2015에서 퍼싱의 기계적 결함과 중량, 신뢰성 문제가 있어 배치가 지연되었다고 주장했다. 퍼싱 전차가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문제인 엔진의 출력과 신뢰성은 결국 한국 전쟁에서 발목을 잡아 M4A3E8 셔먼의 재등장과 M46 패튼의 배치를 초래한다.[11] 완성되면 셔먼을 대체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대전에는 너무 등장이 늦어서 대체하지 못하고 같이 사용하며 셔먼을 중형전차, 퍼싱을 중전차로 분류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셔먼과 같은 중형전차로 강등하였고, 한국 전쟁 발발시기에는 원칙상 모든 전차는 퍼싱으로 대체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퍼져있는 미군의 전차를 대체할 수 없었고, 본토는 M46 패튼이 완성되어 배치되고 있었다.[12] 6.25 전쟁 기간 전차에게는 최악의 지형이였던 한반도에서 가벼운 셔먼보다 퍼싱이 인기있던 것은 한국전이 초기를 지나면서 참호전과 같은 양상으로 회귀함에 따라 76mm의 고폭탄 화력 부족이 큰 이유중 하나였다.[13] 트라이던트 회담이 1943년 5월 25일에 끝나고 작전 실행 일자가 결정된 직 후 6월부터 셔먼의 업건 준비에 들어감[14] 실제로 전간기 대공황으로 군 예산은 매우 감축되었으며, 바다로 둘러쌓인 해양 대륙국가인 미국의 특성상 육군, 특히 기갑병과에 대한 예산은 최우선 감축 대상이었다. 1939년 미국 전차개발부서에의 일년 예산은 $85,000였다고 하며, 이는 1945년 셔먼의 가격이 $44,556–64,455였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매우 적었다.[15] Zaloga 2008, Armored Thunderbolt p. 46–48, 120–125[16] 전쟁이 끝난 뒤 10년 후 미국은 자신이 최강국이라는 이유로 현실에 잠시 안주했다가 스푸트니크 쇼크로 소련에게 호되게 얻어맞는다. 이후 미국은 타 국의 기술적 우위를 인지하여 DARPA를 비롯한 연구 기관을 창설했고, 타 국가의 기술적인 역량을 파악하고 전 분야에서 최소 한 세대 이상 앞서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R&D에 목숨을 건다.[17] Ibid.[18] 문제는 그 나머지에 판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19] 밑에 임시로 덮인 전차병의 시신이 보인다.[20] 중대원 1/3이 전사했다고 생각해보면 된다. 이 정도 손실이면 사실상 전투불능이다.[21] T26E1과 비교해서 외형상 큰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주포에 이중 포구제퇴기가 추가되었으며, 포탑도 부분적으로 수정되어 지붕에 환풍기가 생기고, 장전수 해치가 달라지고 그 앞에 관측창이 추가되는 것 등의 대대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 외에도 포가 부품이 기존 T99E1 형식에서 개선된 T99E2 형식으로 바뀌었고 90mm 탄약 적재량도 T26E1의 42발에서 70발로 늘어났다.[22]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서는 중전차로서 퍼싱에 대하여 'Ameria's answer to the Tiger'라고 이야기하고 있다.[23] 실제로도 중공군이 IS-2를 끌고오기 이전까지 퍼싱은 공산군 내 최강의 전차였던 T-34-85를 영국군 및 영연방군의 센추리온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우세한 화력으로 격파했다. 개전 초기의 대한민국 국군에게 있어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공군력의 야크기도 아닌 T-34 전차였다.[24] 그러나 IS-2는 포탑 전면부의 장갑두께가 100mm 정도에 불과해 90mm로 쉽게 무력화가 가능했다.[25] 퍼싱이 개발된 이유가 역시 신뢰성 문제로 고생하고 있던 티거, 판터를 잡으려는 것임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독일 중전차의 대항마를 만들었더니 독일 중전차의 결함까지 베낀 셈이다. 사실 이는 중전차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해서 소련의 KV/IS 전차들 역시 신뢰성 문제가 심했다.[26] M60 이전 전차들은 개발 당시 주력 전차가 아닌 중형 전차로 분류가 됐긴 했지만 여러모로 보았을 때 주력전차가 맞기는 하다.[27]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하여 러시아 옹호 논란으로 퇴사했다.[28] 힐멜스식 전차 세대 구분법이 나온 뒤에 미국의 1세대 MBT로 평가되는 M46 패튼과 M46을 기반으로 개발된 M47 패튼도 기본적으로 퍼싱의 차체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