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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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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씨와 이름의 순서3. 부성주의
3.1. 성씨와 부성주의3.2. 부성주의에 대한 비판
4. 성씨만 부르기5. 지역별 성씨6. 성씨를 쓰지 않는 지역7. 기타 방식
7.1. 부모 성 함께 쓰기7.2. 부부 성 같이 쓰기
8. 여담

1. 개요

성씨(姓氏, family name/last name/surname)는 개인의 식별명칭인 이름과 함께 쓰이는 것이 보통인 가문이나 혈통을 나타내는 식별명칭이다. 아버지의 성을 쓴다면 부계 혈통을, 어머니성을 쓴다면 모계 혈통을, 모두 쓴다면 부모 모두의 혈통을 나타낸다. 21세기 들어서는 부계 성씨의 사용만을 고집하는 것이 성차별이라 보아 모계 성 따르기 운동이나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2. 성씨와 이름의 순서

동아시아[1]헝가리에서는 성이 이름 앞에 오고, 유럽이나 중동, 인도에서는 성이 이름 뒤에 온다. 인도의 영향을 받은 동남아시아(베트남 제외)도 성이 뒤에 온다.[2] 몽골은 일반적으로 성이 이름 앞에 오지만 러시아에게 영향을 받아서 성을 이름 뒤에 표기하기도 한다.

유럽 국가들은 헝가리를 제외하면 모두 '명(名)+성(姓)' 순서를 따르기에 서양과 동아시아에서 각각 이름-성 및 성-이름 순으로 자신의 성명을 표기하면서 각국간 이름을 논할 때 오해가 생기곤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서양인들을 많이 접해서 서양인들의 성명 표기법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서양에서는 동아시아인 성명을 이름-성 표기와 성-이름 표기를 혼용한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서양인에게 일반적으로는 자신을 이름-성으로 소개한다 (김민수가 Minsu Kim 이 된다든지, [ruby(鈴木一郎,ruby=스즈키 이치로)]가 Ichiro Suzuki가 된다든지). 하지만 특히 역사학계나 동아시아 문화를 많이 접하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동아시아인의, 특히 중국인의 이름은 성-이름으로 표기하며, 이는 서양 밖에서 주 활동을 하는 동아시아인들에 많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장제스는 주류 표기가 Kaishek Chiang 이 아니라 Chiang Kai-Shek이다. 김구도 Gu Kim 이 아닌 Kim Gu로 서양에선 언급되며, 이는 현대 정치인들 및 연예인들이 언급될 때 볼 수 있다.[3] 이는 자세히 살펴보면 서양의 인식에 달린 거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일정 정도의 문화적 동화가 일어나야 하는 대상이기에 이름-성을 쓰게 하는 걸 권장하지만[4] 어차피 동아시아에서 주 활동을 할 사람들에게는 그걸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 한인이어도 교포 출신에게는 이름-성 호칭을 사용하는 것과 동등한 용례다.

색인에서는 "성, 이름" 형식이 거의 통일되어 있으며(본문은 이름-성 순서일 수 있다), 스포츠도 종목별로 다르지만 등 몇몇 분야에서는 고유 순서대로 하되 성을 전부 대문자로 쓴다든가 해서 절충하기도 한다. 비슷한 이유로 이름 + 성 순서를 사용하는 유럽 국가들에서도 공적인 상황에서는 성 + 이름 순서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문서에 서명을 하거나, 공문서를 작성하거나, 학술 저작 또는 예술 작품의 저자를 표기하는 경우. 미국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거의 사멸했지만, 인접한 벨기에나 독일어권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이 사적인 편지에서도 성 + 이름 순서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2장 4항에 인명은 성과 이름 순서로 띄어쓴다고 되어 있다. 즉 성-이름이 국가기관에서 정한 표준 표기법이다.

한국인 이름의 로마자 표기에서는 로마자 표기의 부록으로 한국인 성명의 성-이름 / 이름-성 순서에 대한 논의도 같이 이루어져있다.

3. 부성주의

자식이 원칙적으로 아버지, 즉 부계의 성을 따르는 제도를 부성원칙주의 또는 부성주의(父姓主義)라 한다.

절대다수의 나라들이 부성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며, 법적인 부성주의 의무가 없는 서양이나 중국도 관습적으로 자식들이 부계성을 따른다. 특이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모계의 성을 따르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외적으로 일본에서는 자녀가 외가에 입양되어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본성(本姓)[5]을 따르는 경우가 고금을 막론하고 흔했으나, 기타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관습을 찾아보기 힘들다.[6] 보통 아버지 쪽이 데릴사위가 돼서 친정의 성으로 갈아타면 사실상 모계의 성을 따르는 케이스가 되지만[7] 이것은 그저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8]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에서도 모계 성씨를 따르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고려 시대 초창기에 왕실에서 흔했으며, 왕실 종친과 호족 출신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성씨를 부성인 왕씨가 아니라 어머니의 성씨를 따르게 하여 왕비로 만들었던 것으로 혼인으로 연을 맺었지만 비(非) 왕씨였던 지방 호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로 추측된다. 가장 유명한 경우는 천추태후로도 불리는 경종의 왕비인 헌애왕후이다. 헌애왕후는 원래 아버지가 왕씨 종친이었지만 황주의 유력한 호족 가문 출신 어머니의 성씨인 황보씨를 물려받았고, 결과적으로는 경종과 근친혼을 맺었다. 단 이러한 모계 성씨 승계는 고려 시대 후기까지도 찾아볼 수 있는데, 공민왕의 제3비 익비 한씨가 원래 종친의 딸이었지만 왕씨가 아닌 한씨 성을 따랐다.[9] 조선호주제 폐지 이전까지의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고려 시대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성주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뚜렷히 나타나는 이유는 부친과 자식 간 법률상 친자관계 인정을 위해서라고 한다. 보통 어머니와 자식은 출산이라는 과정 덕에 명백하고 자연스럽게 친자관계가 인정되지만 아버지와 자식 쪽은 그 과정을 거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계불확실성 현상과 결혼 제도 발생과 유지에도 관련이 있다.

3.1. 성씨와 부성주의

왜 부성주의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고 기본 원칙이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성씨가 왜 생겼는지부터 알아야만 한다. 지금이야 성인 남녀가 자식을 낳고 기르기 위하여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누구나 성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역사가 쓰이기 이전의 원시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다.[10] 부족이나 씨족조차도 없던 원시 공동체 초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어서[11] 남편이나 아내가 없이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와 성교를 했다. 이렇기 때문에 한 남성이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하거나 한 여성이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도 보편적인 일이었을 것이다.[12]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는 공동체에서 함께 육아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여성과 남성 양쪽에 불리한 점이 있었다. 원시시대에 남성 한 명이 수렵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식량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여성 또한 채집을 했지만 개인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충족하기에도 부족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남성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과 자신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아이에게 자신이 얻은 식량을 몰아주고 싶었을 것이므로 자신과 성관계를 한 여성 중 매력적인 여성과 자신의 아이로 추정되는 아이 중에 가장 우수한 아이들에게 자원을 주었을 것이고 이것은 식량자원분배의 불평등을 가져왔을 것이다.[13] 이것은 여성에게 불리했다. 반면 남성에게도 불리한 점이 있었는데,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확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여성이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한다는 말은 그 여성이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 확률이 그 여성이 몸을 섞은 남성의 수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14] 따라서 여성은 한 남성과만 성교를 하고 그 남성의 아이만을 낳고 남성은 그 여성과 그 여성의 아이에게 자신이 창출한 자원을 최우선적으로 배급하는 관습이 생겼는데, 그 관습이 바로 결혼이다. 그리고 국가가 생긴 후에 이 관습이 제도가 되었는데, 그것이 결혼제도이다. 결혼제도가 생기기 전 혹은 결혼제도가 생긴 후라도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가 없으며[15], 따라서 남성의 개인적인 감정을 위해서든 사회에 그 아이를 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하기 위해서든 그 아이가 아버지가 된 남성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그 장치가 성씨였던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임신하여 자신이 직접 출산하는 여성은 어차피 자신의 아이라는 것에 대한 100%의 확신이 있으니 성씨라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씨란 오직 남성이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기 위한 장치로써 쓰였던 것이다.#

부성주의가 가부장제에 근간한다는 오해는 가부장제가 성씨보다 먼저 등장했다고 착각하는데에서 비롯한다. 남성의 자식인정을 위해서 성씨가 처음 등장했다고 해도 그 성씨라는 것은 바로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성씨 제도가 인류사회에 보편화된 것은 농경사회로의 진입으로 인하여 재산축적이 가능해져서 신분제도계급이 발생한 이후이다. 즉 재산이란 개념이 등장하자 그 재산에 대한 상속문제가 생겼는데#,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의 피를 잇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으로 재산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씨 제도가 보편화되기 시작한다.[16] 재산이 생기고 상속이 생기자 당연하지만 특정 집단이 혈연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자산독식을 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 집단을 우리는 가문이라고 부른다. 돈이 많고 신분이 높은 남성은 여러 여자와 성교를 하고 자식을 여럿 낳게 되는데, 자산을 여러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줄 경우에 가문이 약화되거나 산산조각 나게 된다. 그래서 가장 뛰어난 남성 자식 중 한 사람[17]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이러한 관행이 되풀이되면서 가부장제가 생기고 보편화된 것이다.

20세기까지는 신분제가 보편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특정한 왕족이나 귀족같은 고위의 가문들을 중심으로 사회가 운영되었고, 이로 인하여 가부장제가 유지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1차 세계대전2차 세계대전으로 거대한 식민제국들과 귀족들이 무너지면서 가문 위주의 정치가 무너지면서 가부장제의 정당성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집안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여성이 집안일에서 풀려났고 여성인권이 신장됨에 따라 페미니즘이 강력해졌고 가부장제에 대해 적대적인 여성계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그 결과 부성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아무리 학술적 관점에서는 가부장제가 성씨보다 먼저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착각이고 따라서 부성주의가 가부장제의 산물이라 보는 것도 오해일 뿐이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학술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당사자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계의 입장에서 볼 때 부성주의는 분명하게 성차별적인 요소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3.2. 부성주의에 대한 비판

여하튼 존재하고 지속되는 원인이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부성주의이지만, 단순히 페미니스트 계열 말고도 아버지가 부재한 편모 가정이거나 또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기존의 아버지가 새아버지로 바뀌는 것과 관하여 기존 아버지 성씨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성씨나 새아버지의 성씨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가 간혹 제기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자식이 아버지 쪽과 의절할 경우 성씨를 어머니 쪽으로 갈아타는 케이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성주의를 성평등에 맞지 않는 성차별이라 보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부계의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며 모계의 성을 따르는 것이 ‘예외’적 케이스로 취급되는 것 자체가 아버지가 부재한 편모 가정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성차별이라 볼 수 있고[18], 모계의 성을 2대 이상에 걸쳐 따르는 경우도 생길 수 있을 정도로 여러 형태의 가정을 인정할 수 있게 되어야 성평등에 맞는 것이라는 논지의 비판이다. 이들은 모계 성 따르기가 그저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시각도 역시 부성주의에 의거한 편견 및 고정관념에 따른 단편적인 관점이라고 본다.

모친의 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성 본인이 직접 창씨를 하는 편이 보다 페미니즘의 논리에 맞을 것이라는 반론도 물론 제기되지만, 민법상으로는 귀화인[19]이 아닌 이상 창씨가 완전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한국의 경직된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굳이 페미니즘 색이 없어도 자유주의적 측면에서 진지하게 언급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정말로 부성주의가 성차별이라 생각한다면 애초에 성씨는 성차별과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따라서 부성주의도 성차별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고 이에 더해서 원래부터 여성의 입장에서는 성씨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기도 하니 모계 성 따르기를 하거나 여성 본인이 직접 창씨를 하는 것보다는 아예 좀 더 극단적으로 나아가서 성씨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옳다는 반론도 역시 제기되고 있으나, 이 역시 당사자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사자인 여성들이 느끼는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고 학술적인 당위성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반론이 될 수 있다. 사회적 담론을 논하는 데 있어 그 문제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배제된 채 학술적인 당위만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이기에 그렇다.

무엇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여자'만'의 오리지널리티 성씨로 성씨의 여성화 점령을 이룩하자는 아마조네스 판타지가 아니라 남계, 여계의 성씨 계승에 대한 인식차를 비판하는 것이다. '김'이라는 성씨가 그 자체로 남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남성격이나 여성격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김아무개라는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한테 물려받았든 어머니한테 물려받았든 그냥 김씨인 것이다. '김'이 김아무개라는 여성의 성씨인 상태에서 왜 '모계'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불가능해왔고 법 개정 이후에도 특별 취급되어 일종의 소명 과정을 통해 특수한 방법으로만 물려줄 수 있는지, 남자는 남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가 없으면 당연하게 부계로 성씨를 물려주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차별이라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어째서 여계의 성씨 계승은 안 되는가? 남계의 성씨 계승이라 해도 왜 친할아버지의 성씨만 물려줄 수 있고 외할아버지의 성씨는 안 되는 것인가? 이러한 여러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없이 성씨 제도와 부성주의의 역사적 유래에 대한 설명만을 강조하면서 그저 원천봉쇄로만 일관하는 것에 대해 21세기에 들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4. 성씨만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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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부를 때 성만 부르기보다는 성+이름이나 친한 사이끼리는 이름으로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본이나 구미권에서는 가족이 아니면 성만으로 사람을 부르는 경우도 여전히 보편적이다.[20]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고 한국같이 성씨의 분포가 몇몇 특정 성씨에 몰려 있는 경우 성으로만 사람을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더 극단적인 사례는 응우옌 씨가 대다수인 베트남). "어이, 장 씨!"처럼 한정적으로 쓰이긴 하지만, 이렇게 부를 경우 되려 상대를 극도로 낮춰 부르는 발언이 된다. 서구에서는 성인에게 성으로 불러주는 게 상대를 존대하는 것과는 정반대.

그러나 왕족으로 가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서양의 왕족은 세례명을 토대로 하는 풍습이 있어서, 그냥 이름으로 부르고 뒤에 작위나 영지명을 붙인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루이 16세(Louis XVI of France)라고 부르지, 루이 드 부르봉이나 루이 카페로 부르지 않았다. 일부러 왕족에 성씨를 붙여 부르는 경우는 왕족으로써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의미를 지민다. 노블리스 오블리주허황된 말뿐인 귀족과 교회에 쌍으로 뜯기던 백성들이 귀족이고 뭐고 왕족까지 끌어낸 뒤에는 루이 16세를 더 이상 왕족으로 추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그저 시민 '루이 카페 Louis Capet'라고 불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루이'는 세례명이자 존호 그리고 아명으로까지 쓰였다. 뒤에 성씨를 쓰냐 몇세를 붙이느냐에 따라 존칭인지 갈렸던 것. 마치 누구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여부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듯. 심지어 일본의 황족은 아예 성씨가 없다. 중국과 한국에서도 왕족들은 봉작명에 이름을 붙였지, 성은 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즉, 충녕대군 도나 연잉군 금으로 불리었지, 이도니 이금이니 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부르는 것일 뿐 당대에는 그렇게 호칭하지 않았다. 이는 왕족은 국성(國姓)이기에 당연히 나라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전제가 붙은 것이었다.

이름 대신 성씨를 부르더라도, 과거 관명(官名)으로 사람을 부르던 관습의 영향으로 최 대리, 이 과장 혹은 정 박사 님처럼 직급 등의 앞에 성씨를 붙여 호칭하는 경우는 꽤 많고, 이 경우는 대체로 사회적으로 용인·통용된다. 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을 애칭처럼 부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직책명은 대체로 상호존대일방존대를 표하는 경칭 취급이지만, 직급이나 학위의 경우는 상황이나 장소, 업계 문화에 따라서는 상호비존대일방하대로 취급될 수도 있다. 특히 상대방에게 어떠한 직책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 대신 직급이나 학위로 부를 때 해당한다. 예컨대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에서 "교수"나 "주무관", "―연구관" 등은 적어도 낮춤 취급을 받지는 않으나 "박사"나 "석사" 등은 평어 혹은 하대로 간주될 수 있다. 더 직관적인 예시로, 군대에서 장교와 부사관, 병을 막론하고 "―담당관"이나 "―반장", "주임원사", "사단장" 등은 보통 상호존대이지 하대가 아니지만 "중장", "상사", "병장" 등 계급으로 부를 때는 거의 하대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존대를 의도하여 계급이나 학위 등을 붙일 때는 오해를 막고자 접사 "-"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며, 직책명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우선하여 부른다.[21] 게다가 이 방식도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지칭하거나 동급자가 있는 등의 이유로 직책만으로는 특정하기 힘들 때 성씨를 선행시키지 그렇지 않을 때는 성을 생략하고 직책만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으며, 아예 성과 이름을 다 말하기도 한다. 반면, 일본이나 구미권은 같은 성씨를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22] 대부분의 경우 성만으로도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이나 구미권 작품들이 이질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이름만 부르는 게 친한 사이인 것은 한국에서도 동일하다. 하지만 타 국가들에서는 성 or 이름으로 전혀 다르게 한 사람을 부르기 때문에 적응이 안 된 사람들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는 이름 or 성+이름으로 호칭하기 때문에 성을 굳이 몰라도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있기 때문.

일본, 서구권에서 이름이 아닌 성으로 부르는 문화 때문에 한국인이 일본, 서구권 국가로 가서 문제를 겪는 일이 있다. 한국어권은 이름으로 불리는 문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씨 호칭 문화를 모르고 처음 유학길에 오른 한국인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또 한국인의 성씨는 (C)(G)V(C) 구조[23]의 단음절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성씨로만 칭하면 어감이 굉장히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경칭이 붙는다면 그나마 좀 괜찮지만, 그마저도 이런 경우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면 그렇게 불리는 경우가 드물며, 일본에서는 경칭 ~さん은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어도 붙여주는 편이지만, 그렇게 해도 어감이 이상한 경우가 많다.[24]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본, 서양권에서 현지인들에게 자신을 성씨가 아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꾸준히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친근한 사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고 꼬박꼬박 성씨로만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는 사례가 종종 있다.

동성, 성씨가 같을 경우 간혹 난감해지는데, 가족(학생의 경우는 주로 쌍둥이)이거나 친척 등의 이유로 한 교실이나 회사 내 같은 부서 등 같은 팀 내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일 경우, 성씨만으로는 특정성이 부족해서 한 명을 부르기 곤란해지는 경우가 더럿 있다. 이 경우 원칙상으로는 풀 네임으로 불러 이름을 구분해 부르는 것이 예의이다. 친한 사람일 경우 "Just call me ○○." 하는 식으로 이름으로만 부를 수도 있다.

5. 지역별 성씨

5.1. 아시아

동아시아는 성씨가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온다.

5.1.1. 한자문화권

전근대 동아시아호칭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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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시법 경칭 피휘
호칭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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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사회에서 성()은 혈연으로 정해지는 개념[25](姓자를 풀어 보면 의 결합이다. 즉, 여성으로부터 태어났다는 뜻이다. 실제로 초창기의 성들 거의 모두가 글자 어딘가에 女가 들어가있다)이었고 씨(氏)는 지연으로 정해지는 개념이었다(그래서 씨들 가운데는 지명에서 딴 게 많았다). 즉 ○ 일대에 ☆성을 가진 일족이 살았는데, 후손이 번창하고 그 중 한 일족이 ●지역으로 이주하면 '☆성 ○씨'와 '☆성 ●씨'가 갈리는 것이다. (姜)태공을 상(呂尙)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강성 여씨이기 때문).[26]

그러다가 진나라를 거치면서 성과 씨의 구분이 희미해지고[27], 씨가 성의 기능을 흡수하면서 지금의 성씨 개념이 정착하였다. 성과 씨의 구조는 한자문화권의 여러 지역이 공유하는 개념이다.[28][29]
5.1.1.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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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전체 성씨의 10%가 안 되는 성씨들이 전체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른 나라는 하나의 성이 인구의 1%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 1%를 넘는 경우에도 10%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 성씨라는 김씨는 인구의 20%에 육박하고, 김·이·박 3성이 전체 인구의 45%를 넘는다. '한양에서 돌을 던져 누가 맞으면 김·이·박 중 한 명'이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이다.[30] 그리고 ()씨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만 흔한 게 아니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국가들을 통틀어서는 1억 명 이상이나 된다.

혼인한 여성은 부부별성에 따라서 원래의 성을 그대로 사용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실제로 부모에게서 이어진 혈통을 양 쪽 모두 중시하는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성씨는 남계로만 이어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조선 중후기까지도 외손이 외가의 제사를 받는다거나 외가의 혈통으로 음서 혜택을 받는다거나, 모계 쪽 자손이 조상의 은택을 받는 일도 흔했고 딸도 제사와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가능했던 점 등 모계 쪽 혈통도 꽤 중시된 편이었기 때문이다. 팔고조도 역시 외가를 친가와 동등하게 기록하며, 결혼을 하면 남자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같은 성씨를 가진 일족이 모여 사는 집성촌도 조선 중기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향촌이 각성받이 마을이었다.

조선의 성문법 경국대전에 원래 서얼이 아닌 본처의 소생일 경우 아들과 딸이 동등한 재산분할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사실 유교 이데올로기에 가부장적 면모가 강하게 드러나지만, 정작 조선의 양반들에게도 가부장적 면모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아들과 딸을 동등하게 교육했고[31], 여성들이 교육을 못 받았다는 현대의 인식도 틀렸다. 양반가에서 교육 못 받은 여성을 찾기 드물었다.

그러다 17세기 이후로 점점 상속의 평등이 줄게 되는데, 이는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관련이 깊다. 부모는 두 사람인데 자식이 많으면 그만큼 상속받는 재산이 줄고, 재산이 없는 양반은 위신이 떨어져 평민에게 무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32] 그래서 이 시기 아들에게만 상속하는 과도기적 시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장남에게만 상속하는 형태가 정착된다. 집성촌, 문중이라는 것의 개념, 문중 재산의 개념 등이 이 시기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여성들의 고민이 많았다 한다. 본인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딸인데, 시대가 흐르고 보니 자기 딸에게는 상속을 하기 어려운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민법 개정으로[33] 혼인신고 때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부부가 협의하면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다. 모계 성씨가 뒤로 오는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보다 강력한 법적 장치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결혼할 때' 합의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한계가 있다.[34] 현실적으로 (예비) 시부모의 반대에 맞서 자기 의견을 관철할 수 있는 (예비) 신부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35][36] 데릴사위를 들일 때는 꽤 유용하겠지만 현대에도 데릴사위제가 강하게 존재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선 데릴사위제가 준폐지 상태다. 만약 인식이 매우 관대해져 어느 쪽의 성을 따라가도 상관없다는 식의 사회가 된다면 이름을 짓기 쉬운 성이나 원하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성으로 정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부계의 성이 너무나 특이해서[37] 아이가 놀림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

사실 호주제 폐지 이전에도 처(妻)가 호주 혹은 호주승계인인 경우에 남자가 처의 가(家)에 입적할 수 있는 입부혼인(入夫婚姻) 제도가 있었다. 이것으로 아내의 성을 자식이 쓰기 때문에 이 제도로 데릴사위를 들이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한국은 개인의 성씨에 대해서 엄격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기는 비교적 쉽지만, 성씨를 바꾸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38] 불가능하다. 물론 이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성씨를 바꾸는 것이 가능은 하다. 대표적인 예시가 가수 선미로, 원래 이름은 성이 선씨이고 이름이 외자로 '미' 였으나 아버지의 사망 후 어머니가 재혼한 뒤 새아버지의 성씨를 따라 '이선미'로 개명했다.

현재는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하기 위해 여성가족부에서 다시 한번 가족법의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정춘숙, 장경태 의원이 가족법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하려고 추진 중이며, 이러한 정부 부처나 국회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부성 우선주의에 대한 위헌소송도 들어온 상황이다.[39] 최근에는 종친 관련 규정에서도 변화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는 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착수되지도 않았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에는 법무부가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한마디로, 부계 성씨를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법 제도는 본인이 요청하지 않으면 부계 성씨를 자동적으로 따르게 되는 현행법을 유지하고 있는 특이한 상황인 것.

유엔 여성차별 철폐협약(CEDAW)에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할 것이 명시되어 있으며 '가족성에 관한 부부간의 평등조항'을 한국 정부는 이행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에도 두 글자 성씨는 있지만 드물다. 황보씨와 남궁씨가 그 예시.
5.1.1.2.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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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베트남에 존재하는 성씨들의 거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유래하거나(시조가 중국에서 왔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를 매우 흡사하게 따라한 것이지만, 본래 성(姓)과 씨(氏)는 다른 개념이었다. 고대 중국 사회에서 성은 혈연으로 정해지는 개념이었고 씨는 지연으로 정해지는 개념이었다. 즉 A성을 가진 일족이 B지역에 살았는데, 후손이 번창하고 그중 한 일족이 독립해서 C지역으로 이주하면 B지역의 일족은 A성 B씨, C지역의 일족은 A성 C씨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씨는 한국의 본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40][41] 강상여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의 한자를 풀어 보면 의 결합이다. 즉, 여성으로부터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C지역의 일족 중에서 또 독립해서 D지역으로 이주하면 씨를 D로 바꾸는데, 완전히 바꾸는 게 아니라 C씨와 D씨를 같이 쓰기도 한다.
그러던 것이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성과 씨의 구분이 희미해져 결국에는 시대 이후로는 성과 씨의 개념이 합쳐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익히 아는 성명의 조합이 탄생하게 되었다.[43]
성씨는 정치적으로도 많이 이용되었는데 공신에 대한 예우 중 하나가 국성(國姓), 즉 군주의 성씨를 하사하는 것이다. 가령 한나라 시절 수도를 낙양이 아닌 관중장안에 정할 것을 주장했던 누경홍문연에서 유방을 위해 정보를 제공했던 항전은 유씨 성을 하사받았고 명나라정성공은 주씨 성을 하사받아 국성야(國姓爺)로도 불리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현대의 중화권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혼인한 여성은 부부 별성에 따라서 원래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또한 과거의 중화권에서는 혼인한 여성이 자신의 성 앞에 남편의 성을 붙여서 자신의 성과 남편의 성을 같이 쓰는 '관부성(冠夫姓)'이란 제도도 있었는데, 이 제도는 중국 대륙에서는 공산화 이후 소멸했지만 대만홍콩에서는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대만이나 홍콩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부부 별성을 따르고(또한 홍콩의 경우에는 영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부부 동성을 따르기도 한다.), 부부 성 같이 쓰기를 할 경우 관부성을 활용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무조라는 여성이 이치라는 남성과 결혼했을 경우, 관부성을 쓴다면 '이무(남편성+본인성)조'가 되는 것.

이에 더해서 현대 중국은 자녀가 대체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만 어머니의 성도 물려줄 수 있다. 40여 년 전에 법적인 부성주의 의무는 폐지되어서 아직 부성우선주의 원칙이 법적인 의무로 남아있는 한국과 차이가 있다. 또한, 1980년에 '자식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고 법이 개정되어서 형제동성동본 의무도 없어졌다. 특히 21세기 이후부터는 어머니의 성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경우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자녀들의 성이 꼭 하나로 통일되지는 않는 경우도 있어서 둘 이상의 자녀가 있을 경우 하나는 아버지의 성을 물려 받지만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성을 물려 받는 경우도 있다는 점인데, 어머니의 성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늘어난 것에는 계획생육정책이 사실상 폐지되고 1자녀 정책에서 2자녀 정책으로 전환된 이후 이렇게 자녀들에게 각각 다른 성을 물려주는 케이스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고 한다. 현재의 중국은 부성주의, 형제동성동본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한국이나 베트남의 사례가 유명해서 그렇지 중국 역시 특정 성씨의 비율이 꽤나 높은 편에 속한다. 약간 과장을 섞자면 베트남, 한국의 그 다음에 중국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 중국에는 약 4100개의 성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보면 2만4000여 개의 성씨가 있었으나, 그 가운데 2만여 개는 이미 사라지고 4100여 개의 성씨만 남았는데, 2007년 중국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왕씨는 9288만 1000명으로 전국 인구의 7.25%를 차지해 인구가 가장 많은 성으로 드러났다. 다음은 9207만 4000명의 리씨로, 전체 인구의 7.19%를 차지했다. 3위는 장씨로 8750만 2천 명으로, 인구의 6.83%에 해당했다. 즉 중국 인구의 1/5이 넘는 21%의 인구가 왕씨, 이씨, 장씨 성을 쓴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인구 2000만 명을 넘는 성은 왕(王), 리(李), 장(張), 류(劉), 천(陳), 양(楊), 황(黃), 차오(趙), 우(吳), 저우(周)씨 총 10개로 밝혀졌다. 1000만 명을 넘고 2000만 명이 안되는 성씨는 12개다. 쉬(徐), 순(孫), 마(馬), 주(朱), 후(胡), 궈(郭), 허(何), 가오(高), 린(林), 뤄(羅), 정(鄭), 량(梁)의 순서다. 이들을 포함해 중국에서는 100대 성씨가 전체 인구의 84.77%를 차지하고 있다.출처 2020년 중국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왕, 리, 장, 류, 첸 5대 성씨의 총 인구는 중국 호적 총인구의 30.8%를 차지한다.#
5.1.1.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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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씨의 개념까지는 다른 나라들과 같지만, 씨가 성에 '수렴'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성이 거의 '사장'되고 씨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게 차이점이다. 현대에도 성씨를 자주 바꾸는데 저항감이 적은 문화권이다(결혼 외에도 양자, 데릴사위 등등).

인구 수를 감안해도 성씨의 종류가 굉장히 많기도 하다.

성씨를 쓰는 방식이 여러 번 바뀌어서 조금 복잡한데, 가장 처음에는 직책을 가진 혈족에게 성(姓)을 내려주는 방식이었다. 이후 율령제가 도입되면서 같은 혈족이라도 직책과 계급이 달라지는 상황으로 가자 이 방식은 묻혀버렸다. 그 다음에 쓰이게 된 방식이 한국의 성씨 개념과 거의 동일한 씨(氏) 개념으로 가고, 이를 우지(うぢ) 또는 후에 등장한 묘지(苗字)에 대응하여 혼세(本姓)라고 하였다.

그 이후에 헤이안 시대 말기 ~ 가마쿠라 막부 초기에 들어가서는 중국의 자(字) 개념을 들여와서 쓰던 것이 묘자(苗字, 고향(본관)이나 자신의 영지에서 비롯된 별칭이나 택호로 쓰던 성)라고 하면서 씨(氏)의 일부분으로 통합되고 일상생활에서는 씨(氏)보다도 더 많이 쓰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홍길동의 경우 '홍' 씨 성은 족보나 공식적인 문서에만 사용되고 평소에는 '남양길동'이라 일컫는 셈이다. 묘자의 경우 자신의 영지가 옮겨지거나 정치적인 목적 등으로 자주 바꾸기도 하였다.

이렇게 내려오다가 메이지 유신 당시에 평민들도 묘자를 갖도록 하면서 성(姓)과 씨(氏)를 묘자(苗字)에 몽땅 합쳐서 성씨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에게 성씨가 생기면서 생긴 문제가, 결혼을 한 뒤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 중반까지는 부부가 각자의 본래 성을 쓰도록 했기에 부부별성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메이지 후기에 들어 민법을 제정할 당시 가부장제에 반한다는 이유로 결혼한 여성은 부부동성에 따라 남편의 성을 따르도록 정해지게 되었다. 현재는 1947년 개정된 민법으로 인해 양자 합의하에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르는 식으로 아내의 성을 따를수도 있게 바뀌었다. 현대 일본에서 부부동성은 관습적으로 해오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정해진 의무사항이며,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주로 데릴사위가 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편이다. 전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가 이 사례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의 민법 제정 당시 부부동성을 원칙으로 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은 역시 같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던 독일의 예를 따랐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만 해도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도 부부의 성씨 문제를 관습에 맡기지 않고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었기 때문. 이후 그 독일을 비롯한 여러 서양 국가들이 부부동성에 대한 법률적 강제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게 되면서, 부부별성을 원칙적으로도 불허하고 오직 부부동성만을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만 남게 되었다.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부부동성을 많이 사용하지만 이를 일본처럼 법률적으로까지 원칙으로 정해 놓지는 않고 있다. 하나의 문화일 뿐이며, 귀화 등 특수한 사례라면 별성을 유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44] 더불어 결혼한 여성이 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되 결혼 전 성을 미들네임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영미권을 중심으로 많이 나타나는 등 문화적 측면에서도 일본과는 성씨를 쓰는 방식이 좀 다른 편이다. 같은 부부동성이더라도 서양 쪽에서는 부부 성 같이 쓰기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기에 일본과는 성씨와 관련된 문화가 달라진 것이다. 일본에서도 부부별성을 할 수 있게 법을 바꾸자는 여론이 있지만[45] 자민당일본회의를 비롯한 보수 세력의 반대와 통일교의 개입으로 인해[46]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는 21세기 지금도 성씨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본 황실. 대신 미야케를 성씨 대용으로 쓰고, 여성 같은 경우 결혼 후 미야케를 버리고 남편의 성씨를 따르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황적이탈로 인해 황족 신분을 잃은 구황족 후손들은 조상의 미야케에서 따온 성씨를 쓰고 있다. 이쪽은 '인간이 아니라 신족이니' 성씨가 필요 없다는 쪽이다. 물론 쇼와 덴노가 인간선언을 한 이상, 일본에서는 신이니 인간이니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된 지 오래.
5.1.1.4.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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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까닭에 다른 동남아 국가과는 달리 중국, 한국과 유사한 형식으로 한자식의 성씨들에 동북아 성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에 들어서서 한자가 폐지되고 쯔꾸옥응으를 쓰면서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아는 베트남인은 극소수가 되었지만, (적어도 성씨가) 한자로 되어있음은 한국과 같다.

한국 성씨와 비슷하게 한 성씨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다. 특히 가장 많은 성씨인 '응우옌(Nguyễn, , 완)' 씨가 베트남 전 인구의 38.4%나 된다[47]. 그 외에 주요 성씨들로는 쩐(Trần, , 진)(11%), 레(Lê, , 여)(9.5%), 호앙(Hoàng, , 황)(5.1%), 팜(Phạm, , 범)(5%), (Phan, , 반)(4.5%), (Võ, , 무)(3.9%), (Đặng, , 등)(2.1%), 부이(Bùi, , 배)(2%), (Đỗ, , 두)(1.4%), 호(Hồ, , 호)(1.3%), 응오(Ngô, , 오)(1.3%), 즈엉(Dương, , 양)(1%), (Lý, , 이)(0.5%) 등이 있다. 왕조 이름이 왕가의 성이기 때문에 동아시아사 과목 수험생들은 쉽게 익힐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전란 같은 일이 생겨 다른 고을로 이주할 때 원래 쓰던 성씨를 다른 성씨로 바꿔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18세기 후기 찐(Trịnh, 鄭)씨와 응우옌씨의 남북분립기 당시에 봉기를 일으킨 베트남 떠이 썬 삼형제가 남부 응우옌 정권 쪽으로 끌려와서 원래 성인 호씨를 버리고 어머니의 성인 응우옌으로 바꾼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래서 레 왕조 시기 법률인 『국조형률(國朝刑律)』에 동성결혼(同姓結婚) 금지 조항이 규정되어 있었음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48]

5.1.2. 이란

원래는 성을 쓰지 않았으나 레자 샤 팔라비가 성씨 사용을 확대시켰으며 이후 성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무개의 자식이란 뜻인 ~자드/자데/자다/자이가 성씨의 접미사로 붙기도 하며 출신지가 성씨가 되기도 한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경우 할아버지인 세예드 아흐마드 무사비 힌디는 한때 인도에 살았기 때문에 성씨가 '힌디'였으나, 이란의 호메인 지방에 정착하면서 '호메이니'가 되었고 조상 중에서 사도 무함마드의 여계 후손이 있었기 때문에 세예드 칭호를 쓸 수 있었다. 아흐마드의 아들인 모스타파의 아들인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름인 '세예드 루홀라 모스타파비 무사비 호메이니'를 풀이하면 '사도 무함마드의 혈통을 물려받은, 호메인 가문의 무사비 씨족 사람인 모스타파의 아들 루홀라'가 된다.

5.1.3. 이스라엘

고대 유대인들은 고대 페르시아고대 그리스인들도 그랬듯, 성씨는 없었고 이름에 부칭 정도를 덧붙였다.[49] 다만 12지파가 일종의 가문명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이 유대-로마 전쟁의 결과로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 유럽에 흩어지고 거기서 유럽식 작명이 일반화 되었다. 현대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내나해야 4,5대 이상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라 보통은 유럽식 성씨를 가진다.

5.2. 유럽

  • 고대 로마에서는 이름(프라이 노멘)+씨족(노멘)+가문(코그노멘)+칭호(아그노멘) 식의 작명법을 사용했으며, 이것이 현재 유럽에서 주로 쓰이는 이름+중간이름+성씨 식의 작명법의 원조이다. 고대 로마는 이를 에트루리아인들에게 배워온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의 영향을 받기 전 켈트족이나 게르만족 등은 현재 아이슬란드에 남아 있는 것처럼 이름에 부칭 정도를 붙여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로마식 작명법 문서 참조.
  • 헝가리인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인들은 이름이 앞에, 성이 뒤에 온다.
  • 고대 게르만족 전통에 따라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중세 후기 전까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씨를 사용하지 않았다. 개인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과 더불어 칭호를 썼는데, 이러한 칭호들이 중세 말부터 근대까지 성씨로 굳어지면서 성씨가 형성되었다. 성씨의 기원이자 칭호의 유형은 밑에 서술되어 있다.
  • 시조(부모)의 이름 혹은 칭호, 별명: 유명한 특정인의 명성을 빌리는 방식의 성씨이다. 게르만어권에서 -son, -sson(북유럽의 경우)으로 끝나거나, 켈트어권에서 O'로 시작하거나 Mc/Mac으로 시작하면, 누군가의 '아들'[50]을 뜻하며 다음 첫 글자는 대부분 대문자로 쓴다. 예를 들어 Robertson은 로버트의 아들. O'Brien은 브라이언의 손자, McDuff는 더프의 아들. McDonald는 Donald의 아들 Coulson은 콜의 아들[51] '누군가의 아들(또는 손자)'이라는 명칭이 성으로 굳어진 경우. 스페인어권의 -ez나 슬라브어권의 -vich, -vić, -wicz 등도 비슷한 경우다. 독일계 왕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독일어: Sachsen-Coburg-Gotha/작센코부르크고타, 영어: Saxe-Coburg-Gotha/색스코버그고터)로 무려 3개 영지가 합쳐진 성씨이고, 포르투갈의 왕가인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왕가(Bragança-Saxe-Coburgo e Gota/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는 무려 4개를 합친 것이다... 뭔가 비슷비슷해 보인다면, 잘 본 거다.[52][53]
  • 시조(부모, 자신)와 관련된 땅(영지, 출신지, 활동하는 지역 등): "해당 지역에서 유명한 누구"라는 방식으로, 권위를 높이는 성씨이다. 프랑스어에서는 de/d', le/la/l'(켈트족 계통), 이탈리아어에서는 di, 독일어에서는 von/zu, 네덜란드어에서는 van/van der, 스페인어에서는 de, 포르투갈어에서는 dos가 붙는다. 이들은 영어의 of나 from에 해당하는 전치사들이며, 한글로 표기할 때는 뒷말과 붙여 써야 한다. 영국의 경우 귀족들이 프랑스 문화 및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아 이름 de 출신지 식으로 쓰기도했지만 de를 생략하고 그냥 바로 (이름) (출신) 식으로도 표기했다.[54] 여기서 보듯 뒤에는 보통 지명을 가리키는 단어가 온다. 이는 혈통에 따른 성이 아니라 사는 이름 분류를 위해 지명이 붙은 것이 성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이 고착되면 혈통을 따르는 성이 된다. 전치사가 붙었다고 해서 모두 성은 아니다. 전치사는 ~의, ~출신이라는 의미 뿐이며, 당연히 평민을 부를 때도 동명이인이 많으니만큼 출신지로 구분해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자세한 설명은 전치사 문서 참고.
  • 직업: 위대한 조상이나, 가문에 복속된 영지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직업을 그대로 붙인 경우가 많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직역하면 '돼지 들어올리는 사람'이란 뜻이 되어 의미 불명이 되지만[55](das Schwein = 돼지, steige = 들어올리다), 실은 바이에른 지방의 방언에 Steige는 '우리'라는 뜻이 있다. 즉, '돼지우리'. 이것은 조상이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테일러(Taylor)는 재단사, 양복장이, 토마스 뮐러뮐러(Müller, 영어의 Miller도 같은 뜻임)는 방앗간 주인 등등 직업명에서 유래한 성은 상당히 많다.
  • 부모의 성씨를 모두 결합: 한편 성씨 두 개 이상을 연결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일부 귀족 가문이나[56], 결혼 후에 다양한 이유로 부부의 성씨를 결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 남성형과 여성형: 리투아니아어라트비아어 같은 발트계 언어나 러시아어, 그리스어에서는 성씨가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나뉜다. 게다가 리투아니아에서는 여성형이 기혼형과 미혼형으로 또 갈린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남성형 성씨는 무조건 끝에 -as/-us가 붙어야하고 미혼 여성형 성씨는 끝에 -aitė/-utė/-ūtė가 붙으며 기혼 여성형 성씨는 -ienė가 붙는다. 라트비아에서는 남성형 성씨는 -š/-s가 끝에 무조건 붙고 여성형 성씨는 -a/-e가 붙는다.
  • 폐지되지 않은 왕족을 지칭할 때는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의 성씨는 역사적으로 국가와 동일시되었으며, 왕실의 누구를 지칭하는지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을 성씨로 부를 경우 그들의 권위를 부정하는 뉘앙스를 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Elizabeth Alexandra Mary)이고 왕가의 성씨는 윈저(Windsor)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그의 정식 이름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Elizabeth Alexandra Mary Windsor)[57]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왕실을 반대하는 공화주의자뿐이다. 역사적으로는 올리버 크롬웰찰스 1세를 재판에 세워 사형에 처했을 때, 판결문에서 그를 '찰스 스튜어트'라고 호칭한 것이 좋은 예다.[58][59] 2016년에 웨일스 자치의회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윈저 여사(Mrs Windsor)라고 부르는 것이 금지된 바 있는데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링크

5.2.1.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씨라는 개념이 없었고 출신지나 부칭을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아테네스파르타 등 주요 폴리스들 뿐 아니라 마케도니아 같은 그리스 변방 지역은 물론, 페르시아 등 그 주변 세계에서 대부분 그러했다. 고대 로마에트루리아인들의 영향으로 성씨를 사용했으며 그리스가 로마에 점령된 이후에 소수의 유력가들에서는 쓰였던 것으로 보이나 대다수는 여전히 성씨가 없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이후에는 역시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 문화를 가진 오스만 제국이 지배국으로 들어서면서 그리스에서는 여전히 성씨 문화는 자리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리스가 독립을 한 19세기가 되어서야 서구화의 일환으로 성씨 문화가 유입되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유럽과 마찬가지로 이름+성씨의 작명이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특이점으로는 같은 성씨라도 남자 성에는 끝에 -ς(s)가 붙는다.

5.2.2. 슬라브어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등의 동슬라브어권에서는 많은 이름이 이름 + 부칭 + 성으로 구성되는데[60] 성의 경우 같은 집안이라도 성씨가 남성형과 여성형이 다르다. 러시아어의 예를 들면 보통 남성형은 -ㅗ프(-ov), -ㅔ프(-ev), -인(-in), -스키(skiy)으로 끝나는 성이 많고 여성형은 여기에 a 노는 я를 붙여 -ㅗ바(-ova), -ㅔ바(-eva), -ㅣ나(-ina), -스카야(-ская)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일부 성씨는 성별 구분이 없는 경우도 있고, -스키는 폴란드어권에서 더 보편적으로 쓰인다. 그리고 더 엄밀히 따지자면, 러시아어권에서는 -ов/-ев 뒤에 -ский가 붙은 형태가 많은 편이다.

부칭은 (아버지 이름)의 아들/딸이라는 뜻이다. 동슬라브어권에서는 남성형은 -ㅗ/ㅖ비치(-o/evich), 여성형은 -ㅗ/ㅖ브나(-o/evna)의 형태가 기본이다. 부칭의 형태에 대한 러시아 문법은 작명 문서 참고.

제정 러시아로마노프 왕조를 예로 들어 보자.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로 유명한 아나스타시야 공주니콜라이 2세의 딸이다. 따라서 그의 풀네임은 아나스타시야(본인 이름) 니콜라예브나(Nikolay→Nikolaevna) 로마노바(Romanov→Romanova)가 된다. 한편 아나스타시야의 남동생인 알렉세이 황태자는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이므로 풀네임이 알렉세이(이름) 니콜라예비치(Nikolay→Nikolaevich) 로마노프이다.

러시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성은 보통 -오프(-ов), -예프(-ев), -인(-ин·ын), -스키(ский)[61]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오프,-예프, -스키, -인은 '~의'를 뜻하는 소유접미사이다. -오프 계열은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Раскольник'ов'),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Молот'ов'), AK-47의 아버지 칼라시니코프(Калашник'ов'), -예프 계열은 킥복싱 선수 카라예프(Кара'ев'), 메드베데프(Медвед'ев'), 브레즈네프(Брежн'ев'),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나자르바예프(Назарба'ев'), -인 계열은 가가린(Гагар'ин'), 푸틴(Пут'ин'), 스탈린[62](Стал'ин'), -스키 계열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Достоев'ский'),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Чайков'ский'), 소련군 원수였던 투하쳅스키(Тухачев'ский'), 등이 있다. 이런 식의 작명법은 러시아 제국 및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본래 성씨가 없던 중앙아시아에도 전해져서 민족/혈통적으로 러시아인이 아닌 중앙아시아 사람에게도 자신들의 이름을 토대로 러시아식 성씨를 만들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한 '나자르바예프'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성씨이다.

러시아에도 꽤 많은 성씨가 존재한다. 그 중 스미르노프(Смирнов, 온순한·Смирный)가 전체 성씨의 비율로 볼때 1.6100% 정도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키릴문자 중에서 К와 Б로 시작하는 성씨가 많이 있다. 이외에 많은 성씨는 표의 링크를 보면 된다. 또한 보로비요프(Воробьёв, 참새·Воробей), 코마로프(Комаров, 모기·Комар), 개미·Муравей), 무힌(Мухин, 파리·Муха), 솔로비요프(Соловьёв, 꾀꼬리·Соловей), 스트레코조프(Стрекозов, 잠자리·Стрекоза), 바라노프(Баранов), 비코프(Быков), 코즐로프(Козлов), 메드베데프(Медведев)와 같이 어원적으로 동물이나 곤충에서 유래한 성씨가 많다. 특히 지명의 형용사 형태와 결합된 형태로 사용하는 성씨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림스키코르사코프(Римский-Корсаков)가 있다.
러시아 내 가장 흔한 10개의 성씨
1위 스미르노프 2,309,100명
2위 이바노프 1,864,500명
3위 쿠즈네초프 1,290,800명
4위 포포프 1,133,000명
5위 소볼로프 1,047,000명
6위 레베데프 932,200명
7위 코즐로프 831,800명
8위 노비코프 774,500명
9위 모로조프 760,100명
10위 페트로프 631,000명
러시아 성씨 목록(위키, 영어)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정교회 주도의 종교혼을 폐지하면서 부(夫)계성을 따라야하는 관습을 부(夫) 또는 부(婦)의 합의로 도출된 혼인성(婚姻姓)을 창설하여 신분등록청에 등기하도록 하였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논의된 사항인데 여러모로 당대 기준으로 급진적이었던 편. 공산주의 국가들의 특징이다.

폴란드 등의 서슬라브어권에서는 성씨 뒤에 -ский / -ski(-스키)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들의', '~의'의 형용사 형태였던 것이 성씨로 정착한 것이다. 여성형의 경우에는 러시아어와 폴란드어에서 차이가 있는데 러시아어권에서는 -스카야(-ская), 폴란드어권에서는 -스카(-ska) 형태가 사용된다. 우크라이나벨라루스, 폴란드와 같은 서슬라브 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스키 형태의 성이 많이 보인다.

그 외에도 세르보크로아트어 등 남슬라브어권에서는 -비치(-вић / -vić / -вич / -віч) 형태로 끝나는 성씨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YY라는 사람이 동명이인과의 구별을 위해 'XX의 아들인 YY'로 불리다가 'XX의 아들인' 부분이 성씨로 정착한, 일종의 부계성이다. 여성형은 따로 없어서 여성도 이 성씨를 가지면 '-비치'라고 불리게 된다.

5.2.3. 스페인-포르투갈어권

부모의 양쪽 성을 모두 쓰는 방식이 보다 일반적이다. 이들의 풀 네임은 제1이름 + 제2이름[63] + 성1 + 성2의 순인데, 이때 성1, 성2는 각각 친조부 성과 외조부 성 중 하나이다. 자식은 아버지의 성 1과 어머니의 성 1을 물려받게 된다. 예를 들자면... 참고 1, 참고 2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José Ruiz y Blasco) ♡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María Picasso y López)
→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Pablo Ruiz Picasso)

왕족도 예외는 아니라서, 스페인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의 정식 이름은 뒤에 어머니 성이 붙은 Alfonso León Fernando María Jaime Isidro Pascual Antonio de Borbón y Habsburgo-Lorena(알폰소 레온 페르난도 마리아 하이메 이시드로 파스쿠알 안토니오 데 보르본압스부르고-로레나)이다.

성을 모두 물려주면 스무 대만 내려가도 이름 하나에 성 1백만 개(2^20)가 붙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성을 손자에게 물려주지 않는 식으로 성 2개를 유지하는 것. 모계의 성씨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머니의 성씨를 앞자리에 놓으면 된다. 그리고 스페인의 양성평등법은 1999년 이후 어머니의 성씨를 앞자리에 놓는 것(surname transposition)을 허용했다. 반면 포르투갈 및 브라질에서는 어머니 성 + 아버지 성 순으로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이름에 성씨가 두 개가 붙는 특성 때문에 유명인이 되거든 어떤 성씨를 가지고 활동하느냐도 고민거리가 되는데, 스페인어권의 경우 자신의 부계 성씨를 사용하는 게 좀 더 일반적이긴 하다. 당장 축구선수들만 보더라도 대개 자신의 부계 성씨를 등록명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한편, 엔조 지단처럼 레전드인 자신의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모계 성씨로 불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위의 피카소의 예시처럼 정치적인 이유, 혹은 페미니즘과 관련된 사유로 모계 성씨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꼭 이와 같은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아일톤 세나처럼 본인의 선호에 따라 모계 성씨로 활동하는 경우도 없진 않다.

포르투갈어권, 특히 브라질 출신의 축구선수들은 성씨와 이름 자체가 복잡한 경우가 많아 그냥 자신의 이름이나 별명으로 선수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펠레, 가린샤,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등의 유명 선수들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

부모의 성씨가 동일하면 알렉시스 산체스 산체스, 알레한드로 에르난데스 에르난데스처럼 성씨가 동어반복이 된다.

5.2.4. 튀르키예

본래 성이 없었고 유명한 인물들의 경우 이름 + 직함, 혹은 직함 + 이름으로 불렸다. 덧붙여서 출신지를 붙이기도 했다. 가령 유명한 해군 제독인 피리 레이스하이레딘 레이스나,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나 여행가 에울리야 첼레비의 레이스, 미마르, 첼레비는 각각 해군 제독, 건축가, 장관이란 뜻이다. 네브셰히를리 다마트 이브라힘 파샤(Nevşehirli Damat İbrahim Paşa, 튤립 시대의 재상)의 경우 네브셰히르 출신의 부마 이브라힘 경[64]이란 뜻이 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옛 이름인 무스타파 케말 파샤도 '무스타파 케말 경'이란 뜻이다. 그러다가 공화국 수립 이후 서구식의 성씨 제도가 도입되었고 모든 튀르키예 사람들은 성을 가져야 했다(일본과 비슷한 케이스이다). '튀르키예인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Atatürk)는 튀르키예 국민 의회에서 수여한 성이고, 아타튀르크는 자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더 이상 이 성을 쓰고 있는 사람은 없다. 튀르키예 사람들중에 교육 잘받았거나 상류층들은 신중히 생각해서 멋진 단어들이나 의미가 있는 성을 신청했지만, 대부분은 성도 사는 곳, 직업 등으로 지어졌는데,[65] 개중에는 '웃는(행복한) 튀르키예인'이란 뜻의 귈튀르크(Gültürk), '황금빛 튀르키예인'이란 뜻의 알튼튀르크(Altıntürk), '진정한 튀르키예인'이란 뜻의 외즈튀르크(Öztürk) 같은 성도 있다. 성씨를 등록하는 관청을 찾아간 노인이 아침 인사로 '귀나이든!(안녕하세요!)'이라고 인사를 하자 관리가 다짜고짜 그 노인의 성을 귀나이든(Günaydın)으로 개명해버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글을 모르는 노인이라 관리가 그렇게 하자니 그냥 따랐다고 한다. 또한 아예 한 마을 사람들의 성을 폴라트(Polat, '강철')로 만들어 놓아 졸지에 그 마을을 집성촌으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적도 있다.[66]

2019년 4월 튀르키예 인구부의 발표에 따르면 튀르키예 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성씨 상위 20개를 늘어놓으면 Yılmaz(쓰러지지않는), Kaya(바위), Demir(쇠), Çelik(강철), Şahin(솔개), Yıldız(별), Yıldırım(천둥), Öztürk(진정한 튀르크), Aydın(광명), Özdemir(진짜쇠), Arslan(사자), Doğan(태어나는), Kılıç(도검), Aslan(사자), Çetin(굳건한), Kara(검은색 혹은 대지), Koç(숫양), Kurt(늑대), Özkan(진짜 피), Şimşek(번개) 순이며 앞서 언급된 Polat(강철)은 21위이다. 그 외에 에르도안(Erdoğan, 용사로 태어난 자)은 25위이며, Kepkep, Zemzem 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성씨도 있으며,[67] 이름과 성을 합치면 굉장히 웃긴 뜻이 되어버리는 일본의 DQN네임같은 경우도 종종 있다. Kurban Etyemez (쿠르반 에트예메즈 - 희생절날 고기 안 먹는 사람), Yaprak Döner (야프락 되네르 - 이름은 '나뭇잎'이라는 뜻의 여자이름이고 성은 '도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야프락 되네르라고 하면 얇게 잘 썰린 되네르 케밥을 의미한다), Olgun Portakal (올군 포르타칼 - 잘 익은 오렌지), İsmail Donsuz (이스마일 돈수즈 - 속옷 없는 이스마일), Sadık Öküz (사득 외퀴즈 - 충직한 황소) 같은 이름들도 있다.

나중에 가서는 이 가족법 제정 당시 만들어진 성씨를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개명신청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죄다 거부당했고 튀르키예 정부는 한술 더 떠 아예 성씨 변경 금지법까지 만들어냈다. 성씨 변경을 허용할 경우 튀르키예 정부는 이 변경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그걸로 일어날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 전산화가 일찌감치 완료된 현재는 성씨 변경이 가능하다. 물론 기분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고, 가족법에 의해 졸속으로 붙여진 성씨로 인한 명예훼손/가족 구성원이 성씨를 바꿔 가족 단위로 성씨 일치/사람들이 잘 발음하지 못함/개종 등의 이유로만 가정법원에 신청해 바꿀 수 있다.

2023년까지 부부동성이 강제되었다. 성씨 변경으로 인해 겪는 사회적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결혼 전 성씨를 미들 네임으로 두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남편의 성씨를 아예 빼 버리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2023년 4월 튀르키예 헌법재판소가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2024년 대국민의회에서 보완입법이 이뤄져 부부별성이 가능해졌다.[68]

5.2.5. 아제르바이잔

본래 튀르키예와 마찬가지로 성씨가 없었고 출신지·관직·지명으로 이름을 구분했지만 러시아 지배기 이후 러시아어권에서 '~의'라는 의미를 지니는 소유 접미사 형태를 따른 -예프/예바 또는 -오프/오바 방식의 성씨를 갖게 됐다. 이외에도 애래블린스키(Ərəblinski), 호이스키(Xoyski), 시으흘린스키(Şıxlinski)과 같이 -스키/스카야 방식이 사용되기도 했다. 성씨 뿐만 아니라 이름의 경우에도 러시아식 작명 방식을 따른 부칭체계가 사용된다. 다만 성씨와 달리 부칭의 경우에는 러시아어식인 -비치(вич)/브나(вна) 대신에 아제르바이잔어식인 오글루(oğlu)/그즈(qızı)를 사용한다. 남자의 경우는 일함 헤이대르 '오글루' 앨리예프(İlham Heydər oğlu Əliyev, '헤이대르의 아들 일함 앨리예프')와 같다. 여자의 경우는 메흐리반 아리프 '그즈' 앨리예바(Mehriban Arif qızı Əliyeva, '아리프의 딸 메흐리반 앨리예바')와 같다. 튀르키예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여성은 결혼하면 혼인성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는데, 예시로 든 메흐리반 앨리예바의 혼전성은 파샤예바(Paşayeva)였다.

아제르바이잔의 성씨는 가장 많이 쓰이는 순서대로 맴매도프(Məmmədov), 앨리예프(Əliyev), 해새노프(Həsənov), 휘세이노프(Hüseynov), 굴리예프(Quliyev), 하즈예프(Hacıyev), 래술로프(Rəsulov), 쉴레이마노프(Süleymanov), 무사예프(Musayev), 아바소프(Abbasov), 바바예프(Babayev), 밸리예프(Vəliyev), 오루조프(Orucov), 이스마이을로프(İsmayılov), 이브라히모프(İbrahimov)이다. 어근에서 알 수 있듯이 아랍어·페르시아어 어원 또는 튀르크어 어원의 인명·칭호에 러시아어식 접미사를 붙인 성씨를 많이 쓰이는 편이다. 독립 이후 탈러시아 정책의 일환으로 아제르바이잔어식인 -zadə나 -li 방식으로 성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69] 어차피 의미는 똑같고, 러시아어식인지 아제르바이잔어식인지의 차이이기 때문에 성을 간다는 부담감도 사람들 사이에서 적은 편이다. 아제르바이잔 뿐만 아니라 구소련의 지배를 받은 중앙아시아 튀르크 국가들에서도 이런 성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5.2.6. 핀란드

법으로 네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자유롭게 골라서 자녀에게 성을 줄 수 있다.
  1. 아버지의 성
  2. 어머니의 성
  3. 아버지의 성-어머니의 성
  4. 어머니의 성-아버지의 성

간단하게, Timo Kotipelto라는 사람과 Tarja Turunen이라는 사람이 결혼해서 Sami라는 자녀를 낳았다면, Sami Kotipelto로 해도 되고, Sami Turunen으로 해도 되고, Sami Kotipelto-Turunen, Sami Turunen-Kotipelto로 해도 된다.

5.2.7. 헝가리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성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온다.

이를 헝가리어 이외의 유럽 언어권에서 표기할 때는 성과 이름을 뒤집어서 이름-성 순서로 바꿔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영어로 쓰여진 글에서 헝가리어 인명이 나올 경우, 대개 성과 이름을 뒤집어 표기한 것이므로 번역 시에 주의가 필요하다.

반대로 여타 유럽 국가의 인명을 헝가리어로 표기할 경우에는, 이름을 원어 그대로 표기할 때는 그대로 이름-성 순서로 적는다. 다만 옛날 사람이나 왕족의 이름을 번역해서 표기하는 경우에는 헝가리어식의 성-이름 순서로 적는다.

5.3. 아메리카 흑인

미국 흑인의 경우 대부분 자기 조상을 소유했던 백인 주인의 성에서 따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재 이들의 성에서는 전형적 남부 농장 주인들의 성씨였던 Pinkney, Rutledge, Harold[70] 등이 자주 나타난다. 그런데 웃긴 건 정작 링컨(Lincoln)의 성씨를 가진 노예 출신은 드물다는 것이라고 빌 브라이슨이 말했다.

6. 성씨를 쓰지 않는 지역

6.1.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이들 국가에서는 성씨를 거의 쓰지 않는다. 아래의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말레이인(인도네시아의 여러 말레이계 민족 포함)은 본래 성씨가 없었으나 이슬람과 함께 들어온 아랍 문화의 영향을 받아 부칭을 쓰게 되어 대부분 1, 2, 3의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다. 성씨가 있는 말레이인도 있으나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현지의 화교들은 4번의 경우가 많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성씨를 가진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화교 혹은 인도계이다.
  1. 성이 없고 이름이 1어절이다.
    수카르노가 좋은 예시로, 앞뒤에 성명이 더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걸로 끝이다.
  1. 성이 없고 이름이 2어절 이상이다.
    이때 이름을 이루는 어절 중 하나를 성씨로 오해할 수 있다. 가령 서유럽 문화권에서 '윈스턴 처칠' 이라 할 경우 이름이 윈스턴이고 성이 처칠인 것이지만, 조코 위도도의 부친은 '위지아트노 노토미하르조', 장남은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로 3대의 이름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없다.
  1. 성이 없고 아버지 이름을 성처럼 쓴다.('부칭')
    그러니까 개인에게는 '고유의 이름 + 아버지 이름'의 식으로 이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버지 이름이 가족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성처럼 보이지만 성이 아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그냥 아버지 이름을 가져다가 그대로 쓰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들일 경우 아버지의 이름 뒤에 '~putra', 딸인 경우 '~putri'가 붙는다.[71] 예를 들면 전 말레이시아 총리나집 라작압둘 라작은 부자관계(전자가 아들, 후자가 아버지)이지만 나집 라작의 '라작'은 아버지 압둘 라작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칭이고,[72] 압둘 라작은 개인명이다.[73] 수카르노의 딸이자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도 '메가와티'가 개인명이며 수카르노푸트리는 부칭에 해당한다.
  1. 이름과 성이 같이 있다.
    대다수 국가들과 비슷한 경우이나 말레이/인도네시아 문화권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 대부분 중국계나 인도계인데, 인도 지역도 남인도에서는 성 없는 문화가 더러 있는 편이라 인도계라도 성씨가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이에 해당하며, 유도요노가 성이다. 이때 성은 아버지의 것을 따른다.
    다만 인도네시아는 성씨의 개념이 없는 민족들이 대부분이라, 법적으로 따로 성과 이름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이름 중 일부분을 대대로 물려주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당장 위의 유도요노의 경우에도 부친은 성 없이 '수코초'라는 1단어 개인명만 사용하다가, 유도요노가 군생활을 하면서 작명한 호칭을 성처럼 자식과 손자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외 인도네시아의 도서지역 소수민족들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전통문화로 성을 사용하던 경우, 또는 근대에 서구화되면서 선교사의 권유라든가 하는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성을 가지기 시작한 경우도 존재한다. 보통 화교/인도계가 아닌데 성을 가지고 있으면 인도네시아인들은 아마 소수민족 출신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편이다.

6.2. 아랍

일부 유력가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는 성이 없다. 보통 아랍 이름은 자기 이름 + 아버지 이름을 기본으로 할아버지 이름, 출신 부족 이름, 고향 이름 등을 붙이고 중간에 '~의 아들'이란 뜻인 '이븐'이나 '빈', 정관사인 '알'이 들어가는 식이다. 살라딘의 원래 이름은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 이븐 샤디 이븐 마르완 알 아이유비’다.

본래 유럽과 중동 일대에서는 이런 식의 명명법이 더 일반적이었다. 유럽에 이 흔적이 남은 게 러시아나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 쓰이는 '부칭'이고, 아랍 쪽에서 특별히 더 오래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이다.

6.3. 아이슬란드

대부분의 아이슬란드인들은 성씨가 없고 부칭(父稱)을 사용한다. 아빠의 이름이 A면 아들은 A+son(A손), 딸은 A+dóttir(A도티르)가 된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아이슬란드 축구 선수 길비 시귀르드손(Gylfi Sigurðsson)은 시귀르뒤르 아달스테인손(Sigurður Aðalsteinsson)의 아들이며 시귀르드손이 아들을 낳는다면 마찬가지로 성이 길바손(Gylfason)이 된다. 즉 성이 'A의 아들(son)' 또는 'A의 딸(dóttir)'을 알려주는 과거의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해외 여행할 때 약간 힘들다고 한다. 엄마, 아빠, 아들, 딸의 성이 모두 달라 보이니.

드물게 에이뒤르 그뷔드욘센(Eidur Gudjohnsen, 축구인), 게이르 호르데(Geir Haarde, 前 총리)나 마그누스 스케빙(Magnús Scheving, 체조선수)처럼 성씨가 있는 사람도 있다. 1925년 이후 새로운 성씨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그 이전에 성씨가 있던 이들의 후손이다.

해외로 이주한 경우 아예 지금 쓰고 있는 부칭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쓰는 것처럼 성씨처럼 굳혀버리는 케이스도 많다. 이 경우 성별 관계없이 굳혀진 부칭이 성씨처럼 내려오게 된다.

이러한 작명 관습은 민족적, 문화적으로 유사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페로 제도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일례로 Johansson(요한손)은 원래 'Johan의 아들'이란 뜻이었지만 근대 이후 성씨 사용을 법제화하자 그대로 성씨가 된 것이다.

6.4. 기타

몽골이나 미얀마에서도 일반적으로 성씨를 안 쓴다.
튀르키예는 반대로 20세기에 성씨를 일괄 제정했다.

7. 기타 방식

7.1. 부모 성 함께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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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이이효재(이효재)·고은광순 등이 주창했다. 부친의 성만 따르는 것은 어느 한쪽의 부모만을 따르는 차별이라 생각하여 아예 부친과 모친의 성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 여자뿐 아니라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남성도 사용한다. 다만 호적상까지 등록된 건 아니고 필명 정도의 의미만 가지는 케이스도 섞여 있다(예: 서정민갑). 혹은 성 자체를 가부장적 전통으로 인식하고 아예 성 없이 이름만으로 호칭하기도 한다. 즉 성씨는 가문의 이름으로써 부계 성씨든 모계 성씨든 결국 어떤 남성을 그 시조로 하고 있으며 아들(남성)을 통해서만 대를 이어온 가부장적 제도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양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성을 같이 쓰는 부부끼리 결혼을 하면,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부계 성씨와 어머니의 모계 성씨를 나누어주게 된다. 예를 들면 김길동과 최얌전 사이에 태어난 율도는 홍정율도가 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성이 무제한적으로 길어지는 것을 막고, 모계 성씨가 이어지지 않는 스페인 방식의 단점도 보완할 수 있다. 스페인 방식에 따르면 손자는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성을 물려받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성은 물려받지 않는다.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 방식에 따르면 손자는 친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성을 물려받게 된다.

한국 현행법상 한국인이 새로운 성을 창설할 수가 없어서, 행정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법적 개명 절차를 밟지 않고 쓰거나, 자신의 성씨가 아니라 이름 앞에 어머니의 성을 붙이는 식으로 개명하고 있다.

해당 운동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나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어머니의 성을 아버지의 성 뒤에 붙이는 행위는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을뿐더러 전혀 페미니즘적이지도 않은 행위라는 비판이다. 이외에도 부모 성 함께 쓰기를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창씨를 하는 편이 페미니즘의 논리에 맞을 것이라는 반론이 역시 제기되고 있으며[74], 제아무리 어머니의 성을 쓰려 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성씨는 해당 가문 시조의 성일 뿐이지 결코 그 시조의 부인의 성은 아니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에 부합되지 않는 자가당착에 불과할 뿐이라는 반론 역시 제기된다. 부성주의 원칙이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 제기되는 반론과 유사한 맥락의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위 성씨 선택 방식을 택한다 하더라도 결국 어느 한쪽의 이름은 포기하는 셈이 되며, 가족임에도 다 성이 달라 성이 전혀 성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데다, 남자가 자신의 성을 손자까지 이으려면 무조건 남아를 낳아야 하는 문제가 있기에 억압적 분위기 속에선 대를 잇기 위해 남아 선호 사상이 발달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자잘한 부작용으로 2글자 한자어가 많은 한국어의 특성상 부모 성 함께 쓰기시 고추씨, 강도씨 같은 특이한 이름이 되는 경우가 적지않게 발생한다.

부모 성 같이 쓰기의 경우 Hong-Kim Gildong 또는 Gildong Hong-Kim과 같이 로마자 표기 시 성씨의 중간에 하이픈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Jennifer Smith-Wilson과 같이 결혼한 여성이 남편 성과 자신의 결혼 전 성(maiden name)을 하이픈으로 이어서 쓰기도 한다.[75] 사실 인명에 사용되는 하이픈의 본래 용도는 Smith-Wilson과 같이 두 개의 독립적인 이름을 잇기 위한 것이고, Gil-dong처럼 단순한 음절 구분용으로 쓰는 것이 오히려 본래 용법과는 맞지 않다.

7.2. 부부 성 같이 쓰기

부부의 성을 같이 쓰는 사례도 있다. 부모 성 같이 쓰기에 공감하면서 자기 어머니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있고, 또는 자기 자식과 같은 성을 사용하기 위해 자기 자식에게 부모의 성을 같이 쓸 것을 권하고 자기는 부부의 성을 같이 쓰기도 한다. 여성 배우자에게 여자 형제만 있는 경우 그 성을 물려주기 위해 쓰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남편 성과 자신의 결혼 전 성을 하이픈이나 띄어쓰기로 같이 쓰는 경우는 종종 있고(상기한 대로 성은 부부동성을 적용하여 남편 성을 따르지만 자신의 결혼 전 성을 미들네임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남편도 아내 성을 같이 쓰는 경우도 많다. 퀴리 부부는 아들을 두지 못했기에 마리 퀴리의 첫째 딸 이렌 졸리오퀴리와 사위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는 퀴리라는 성을 남기기 위해 졸리오-퀴리로 개성한 사례가 있다. 외국에서는 성씨 변경이나 개명이 자유롭기 때문에 부부 성을 같이 쓰는 것도 쉬운 편이다. 서양은 대체로 자식들이 아버지 성을 따르고 결혼해서 아내 쪽이 남편쪽 성을 따르지만 이는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관습이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도 대체로 자식이 아버지 쪽 성을 따르지만 역시 법적인 의무는 폐지되었기 때문에 관습일 뿐이다.

8. 여담

서양과 일본에서는 기업 이름이 창립자의 성씨와 같은 경우가 많다. 자동차 회사인 포드, 벤츠, 토요타, 혼다, 명품 상표인 프라다, 구찌 등이 대표적이다. 한 글자 성씨가 대다수인 한국중국은 성씨만으로 회사명을 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앤장 정도가 그나마 유명한 편. 성씨 뒤에 업종을 붙이는 편이다. 예를 들면 백종원의 프랜차이즈인 빽다방이나 백인제가 세운 병원인 백병원이 있다.[76] 사람 이름을 딴 기업 참조.

페루의 54대 대통령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후지모리는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의 부모가 일본에서 결혼했고 이후 페루로 이민 와 알베르토를 낳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부부동성 제도가 있고, 페루는 스페인어권이라 부모 성 함께 쓰기 제도가 있어서, 알베르토의 모친은 먼저 일본에서 결혼할 때 남편을 따라 본인의 성씨를 후지모리로 바꿨고 이에 따라 페루에서 알베르토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의 성인 후지모리와 어머니의 성인 후지모리를 물려받게 된 것이다.

외국에선 성 때문에 놀림감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제프리 다머의 십대 시절 별명은 그의 성 Dahmer와 발음이 비슷한 더머(Dumber 바보)[77]였다. 한국에서 나온 번역책에서는 다머저리라고 초월번역했는데, 영어 발음으로는 어떻게 불러도 더머로 불리니 제프리 다머 입장에서도 나름 많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NBA 농구선수 루디 게이도 성인 Gay[78] 때문에 커리어 초창기 그의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유니폼이 팔리지 않는 불운을 겪었다. 특히 그가 뛰었던 토론토가 있는 나라인 캐나다는 동성결혼이 합법인 동시에 세계에서 동성연애에 관대하기로 알아주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원가 세일로 내놓았어도 2020년까지도 안 팔린 재고가 있을 정도다.

동물에게는 성씨를 붙이지 않는다. 유명 견종들은 족보를 갖추고 있지만 그래도 성씨의 형태로 족보를 이름에 표현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 자기가 키우는 동물한테 이름을 지어주면서 자신의 가족의 일원이라는 뜻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자기 성씨를 붙여줄 때도 있다.
반면 경주마들의 경우 관명이 사실상 성이라고 보면 된다.

[1]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말레이시아 화교, 몽골[2] 물론 싱가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화교들은 중국식 이름은 베트남처럼 성이 앞에 온다.[3] 예외적으로 한국 정치인 가운데 이승만만은 해외에서 Rhee Syngman이 아니라 Syngman Rhee라고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학·석·박사를 취득하면서 본인의 미국 내 활동명을 이름-성 순으로 사용해왔기 때문이고, 그 흔적이 그의 서명이 이 순서를 따른다.[4] 성-이름을 쓰는 에르되시 팔 역시 헝가리 밖에서는 '폴 에르되시'라는 이름-성 방식으로 불린다. 서구권에서 헝가리 이름을 표기할 때는 보통 성과 이름을 뒤집어 이름-성 형태로 표기한다.[5] 부인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현대 일본의 경우에만 해당.[6]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부계 혈통이 성과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성으로 조상을 찾는 게 어렵다.[7]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원래 그는 사메지마 준야였다.[8] 일본에서 아무 이유나 근거가 없이 모계 성씨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성과 씨라는 개념이 중국에서 온 것이며 씨가 달라도 성이 같으면 같은 집안 사람인 것은 당연하기에,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묘지(苗字)가 달라도 미나모토(源), 다이라(平)와 같은 우지(氏)가 같으면 묘지를 바꿔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상을 사칭하는 경우가 흔해지며 더 이상 우지가 같은지 알아보는 경우는 사라지게 되고 자연스레 묘지를 바꾸는 풍습만 남게 되었다.[9] 어머니의 성씨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황상 한씨인 것을 보아 모계 성씨가 한씨인 것으로 추측된다.[10] 예를 들어서 한반도에서 처음 등장하는 역사로 쓰인 국가인 고조선에는 결혼제도와 성씨가 있었다.[11] 결혼이라는 개념이 언제 생겼는지는 불분명하여 결혼이라는 관습이 생긴 시점은 알 수 없다. 어쩌면 현생 호모사피엔스 탄생 이전에 결혼제도가 생겼을 수도 있고,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하고도 한동안 결혼제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구가 늘어나고 무리의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성씨가 처음 생겼을 것이고, 잉여생산물의 증가로 인하여 재산의 등장했을 때, 인간 고유의 관습으로써 자리매김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성씨가 처음으로 생긴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성씨가 보편화된 시점은 농경시대 등장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초기의 성씨는 재산을 지닌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12] 결혼이란 제도가 힘을 잃고 성윤리 의식이 약해진 현대가 되어 성적으로 자유화 된 이후에 멋지고 잘생긴 남성이 다수의 여성과 관계를 맺거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 여러 남자와 성적인 경험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13] 아무리 같은 공동체에 있다고 해도 더 친하거나 덜 친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성교를 한 사이라고 해도 더 우선인 존재가 있다면 그쪽에 자원을 우선배분하는 것은 당연하다.[14] 남성과 여성간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성관계에서 소외된 남성의 경우, 당연히 자신의 자식이 없을테니 공동체에 일조를 적게 하거나 공동체를 떠나려 했을 것이다. 굳이 자신과 전혀 관련없는 타인을 위해서 헌신하는 바보는 많지 않다. 국가도 민족도 없던 시절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사실 번식을 기반으로 보니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결혼제도를 보지만 사실 결혼제도가 생긴 이유 중 하나에는 한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독식해서 소외된 남성이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과학문명이 발전하기 전의 시대에는 머릿수가 곧 공동체의 힘이었다. 국가조차 없던 시절이면 특정 개인이 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15] DNA감식기술이 없으니 당연하다. 어떤 여성이 어떤 남성에게 자신이 낳은 아이가 그 남자의 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신뢰의 영역에 불과하다.[16] 우리가 배우는 고대시대의 역사에서 성씨가 귀족의 전유물처럼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17] 왜냐하면 성씨는 남성이 대를 이어서 물려받기 때문에 남성이야말로 자신을 잇는 존재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즉 성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성씨의 의미에 자식을 인정한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가문을 잇는다는 의미까지 포함되는 등의 변질이 된 것이다.[18] 비단 성씨의 경우만이 아니더라도 인명에 있어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닌데, 대표적으로 슬라브어권에서 사용되는 부칭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경우에도 역시 편모 가정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19] 미국 출신 변호사 겸 방송인인 하일이 영도 하씨를 창씨한 것이 대표적이다.[20] MLB, NPB 혹은 EPL 등의 경기 중계를 보면서 선수들 등을 보자.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죄다 성이 쓰여 있다. 한국 선수들도 해외 진출 시 등에다 성만 쓴다. 류현진의 경우 Ryu, 손흥민의 경우 Son 이런 식. 한국에서 이렇게 하면 성씨가 다 비슷해서 분간이 안 될 것이다.[21] 그런데 이러한 언어관습이 통용되는 집단의 부외자가 이러한 호칭법을 쓰는 경우에는 오히려 어색해하기도 한다. 예컨대 학생이 교사에게 "선생님" 대신 "부장님"이라고 한다든가, 병이 타 부대 지휘관더러 보직명에 부대명까지 꼬박꼬박 붙여 부른다면 오히려 그냥 간단히 범용되는 경칭으로 불러달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같은 교사'나 서로 직책으로 부르거나 아예 자신들끼리도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후자는 그러한 호칭법이 주로 장교와 부사관 등 '같은 간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며 병들은 보통 부대를 막론하고 장교라면 직책에, 부사관이라면 계급이나 마찬가지로 직책에 "님"을 붙여 "중대장님", "중사님" 하는 정도로만 부른다. TV쇼 등에서 자문이나 강연 등으로 출현하는 여러 교수들이 명예교수니 석좌교수니 하여도 그냥 "박사님"이나 "교수님", 심지어는 "선생님"으로 불러주기를 바라거나 이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22] 물론 사토(일본), 스미스(영미권)처럼 흔해빠진 성도 다수 있지만, 그조차 한국의 김이박보다는 훨씬 드물다.[23] 음절의 구조가 '(단자음 +) (반모음 +) 모음 (+ 단자음)'이라는 의미이다.[24] 김(キム), 박(パク) 등 일본어의 음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2음절로 늘어나는 일부 성씨들의 경우는 그나마 이 문제에서 조금 자유롭다.[25] 즉 '성이 같다'는 건 어딘가부터 조상이 겹치게 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무함마드아부 바크르는 성이 같다(8대조가 일치).[26] 굳이 얘기하자면 춘추전국시대쯤에는 남성을 성이 아니라 씨로 칭했으니 '강상'보다는 '여상'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27] 초한지 인물들만 봐도 성과 씨 양쪽으로 불리는 인물은 거의 전무하다.[28] 일례로 백제 위덕왕태자 시절 고구려와 전쟁을 하면서 "나는 고구려 왕과 성이 같다"고 하였다. 고구려는 고씨를, 백제는 부여씨를 칭했으니 이때까지도 성과 씨가 같은 개념이 아님을 의식했다는 얘기다. 또한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동지였던 도수류금류를, 일본서기에서는 '연개소문과 성이 같다'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성과 씨의 구분에 대해 알았다는 뜻.[29] 북방 유목민도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 청나라의 국성인 아이신기오로도 아이신이란 성에 기오로 씨족이란 의미다. 보통 하나만 언급하는 중국과 다르게 자신의 성명에 성씨를 함께 사용했다.[30] 이것보다 더 편중된 사례는 베트남의 경우 응우옌씨가 전체 인구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31] 시집간 딸은 그 집안 사람들에게 우리 집안을 대표한다. 그 집안 사람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딸을 교육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32] 조선 전기에는 불모지가 많아 크게 상관이 없었다. 부모에게 상속받은 게 적으면 스스로 개척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양반이 그것도 못할까?[33] 호주제 위헌법률심판제청은 2001년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이 2005년 2월, 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 2005년 3월 2일, 그리고 이 민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이 2008년 1월이다.[34] 다만, 최근(2021년 5월)에 예외가 인정되긴 했다.[35] 서구에서도 모친의 성씨를 물려받는 경우는 흔한 것이 아니다. 거긴 대부분 애초에 부인의 성씨가 남편의 성씨로 바뀌니까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모친의 성씨를 물려받은 신생아는 전체의 6.5%에 불과하며, 그중 90%는 혼외자여서 어쩔 수 없이 모친 성씨를 물려받은 경우다. (법적으론 프랑스, 중국은 출생신고 때 어머니의 성을 선택할 수 있고, 독일과 프랑스는 부모의 성을 원하는 대로 조합한 성씨를 선택할 수도 있어서 부성주의 의무는 없다. 하지만 기존 관습이 워낙 뿌리깊게 박혀 있어서 자식이 부친에게 강한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이상은 이 권리를 굳이 활용하는 일은 드물다.) 결국 프랑스 전체 신생아의 0.65%만이 부모의 자유의지로 모친의 성을 받은 셈이다.#[36] 모계 성을 따르기로 하면 아이 셋을 낳았을 때 셋 모두에게 모계 성을 물려줘야 하는데, 차라리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부계 성을 따를지, 모계 성을 따를지 결정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37] 예를 들면 개씨가 있다.[38] 대표적으로 입양된 자녀가 친부의 성씨 대신 양부의 성씨를 사용하기 위해 개명을 하는 경우나, 부모가 이혼한 후 친권과 양육권을 어머니가 가지게 되어서 어머니의 성씨로 변경하기 위한 경우 등이 있다.[39] 호주제가 폐지될 때 부성주의에 대한 위헌심판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합헌의견 5: 위헌의견 4로 합헌 결정이 났었다.[40] 저걸 현대(?) 한국에서 보자면 B 본관의 A씨, C 본관 A씨.[41] 성과 씨를 구분하던 시절의 흔적은 한국사에도 좀 남아있다. 위덕왕이 태자 시절 고구려와 전쟁을 하면서 "나는 고구려와 성이 같다"고 하였다. 고구려는 고씨를, 백제는 부여씨를 칭했으니 이때까지도 성과 씨가 같은 개념이 아님을 의식했다는 얘기다. 또한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동지였던 도수류금류를, 일본서기에서는 연개소문과 성이 같다고 했다.[42] 한나라 이후로는 씨는 쓰이지 않고 성만 남게 되어서 시황제를 비롯한 진나라 군주들의 본명을 '영○'이라고 주로 말하는데, 춘추전국시대에는 남성의 경우 성이 아닌 씨를 이름 앞에 붙였으므로 당시의 시각으로 보면 '조정'이나 '진정'이 시황제의 이름이고 역대 진나라 군주들 전부 마찬가지로 이름이 '조○'라고 해야 맞는다. 진나라 왕실은 본디 조 땅에 거주했기에 조씨였으나, 후에 진나라를 세우기 때문에 진씨로 불리기도 한다. 여담으로 진나라 왕실과 조나라 왕실은 성과 씨가 둘 다 같았다.[43] 초한지 인물들만 봐도 성과 씨 양쪽으로 불리는 인물은 거의 전무하다.[44] 영국남자로 유명한 조쉬와 결혼한 국가비가 대표적이다. 영국도 부부동성이 법적 의무는 아니며 단지 관례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국인과 혼인한 이후에도 성씨를 바꾸지 않았다.[45] 2020년의 여론조사에서는 70%가 선택적 부부동성에 찬성했다.#[46] 통일교의 개입에 관련해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일본 정계와의 관계 문서를 참조. 본래 선택적 부부동성에 찬성했던 현 총리 기시다 후미오를 통일교가 반대파로 전향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교가 일본 정치에 개입한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선택적 부부동성 도입 문제와 관련해서도 통일교의 입김이 연관되어 있었다고 한다.[47] 여기에 돌림자도 사용하기에 베트남 사람은 개인의 고유 이름으로 호칭된다. 만일 '길'이 돌림자인 홍길동이 베트남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홍 사장이 아니라 동 사장이라 불리는 것.[48] 출처: 유인선, 『근세 베트남의 법과 가족』, 위더스북, 2014[49] ex) 요한의 아들 시몬, 눈의 아들 여호수아[50] 단 O'는 엄연히 말하면 누군가의 '손자'를 뜻한다.[51] 에이전트 오브 쉴드에서 시프가 콜을 이렇게 부른다.[52] 독일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영국계 방계 가문인 윈저 가문의 본 가문명은 작센코부르크고타를 영어로 표기한 색스코버그고터 가문이다. 이를 포르투갈어로 표기하면 사셰코부르구고다가 되는데 포르투갈 왕가였던 브라간사 가문과 사셰코부르구고다 가문이 혼인으로 묶이면서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가문이 만들어진 것이다.[53] 크루세이더 킹즈 같은 가문 구현 게임에선 유명가문의 시조가 나올경우 이름과 성이 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폴란드 초대왕조인 피아스트와 헝가리 초대왕조인 아르파드로 둘다 피아스트 피아스트, 아르파드 아르파드 이렇게 표현된다.[54] 예로 14세기 잉글랜드 가터 기사단의 일원인 리처드 펨브릿지는 잉글랜드 서부에 있는 펨브릿지 지역을 영지로 거느린 집안 출신이다. 당시 잉글랜드 귀족이 프랑스어를 쓰는 노르만들이었기에 그도 '리처드 드 펨브릿지' 로 불리기도 하나 현대 영어에선 그냥 리처드 펨브릿지로 표기하며 아직도 펨브릿지라는 성씨가 영국에 존재한다.[55] 이전에 번역기를 돌리면 '돼지 교배시키는 사람'이라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뜻으로 알고 있는 축구팬들도 많다.[56] 가령 어머니가 상속녀라거나, 혹은 새로 귀족이 된 가문이 차별화를 위해 어머니 성씨를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가문의 격이 떨어져서 성씨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서너 개를 연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연필로 친숙한 파버카스텔은 일반 귀족가문인 파버 가문의 여성과 슈탄데스헤어 출신의 카스텔-뤼덴하우젠 (Castell-Rüdenhausen) 가문 출신 남성이 결혼해서 귀천상혼으로 가문의 작위가 Graf von Faber-Castell (파버-카스텔 백작)이 되어 백작가문이 되었다.[57] 실제로 그의 혼인신고서와 사망신고서에는 본인 이름이 이렇게 적혀있다.[58] "Charles Stuart, King of England, you are accused, on the behalf of the people of England, of divers high crimes and treasons, which charge hath been read unto you."[59] 비슷한 예로 루이 16세가 처형될때 그를 루이 카페라고 칭했는데, 이는 봉건적 영지에서 칭한 부르봉을 부정하고 부르봉 가문의 본가인 카페라 칭함으로 왕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메세지를 낸것이다.[60] 다만 공식기록이나 공문서에서는 성 + 이름 + 부칭의 순서로 쓴다.[61] 러시아인 중 -스키로 끝나는 성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조상이 폴란드인이라고 보면 무난하다. 물론 한국계 중앙아시아인, 곧 고려인을 의미하는 까레이스키처럼 -스키는 러시아어에서 형용사화하는 접미사에 해당하고 실제 러시아어에서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지만, 정작 토착 러시아인이 -스키로 끝나는 성씨를 쓰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러시아의 국민 영웅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넵스키'를 성씨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그의 실제 성씨가 아니며 별명이다. 또 그 당시에는 성씨가 존재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부칭만 쓰였다.[62] 단 스탈린은 가명이다.[63] 세례명이 아니다.[64] 파샤는 흔히 장군으로 번역되지만, 군 장교 외에 지방 총독이나 정부 관료에게도 붙은 칭호다. 물론 유목전사집단에서 출발한 나라답게 오스만 제국은 총독이라도 군사적 재능을 반드시 갖추고 있을 것을 요구했고 중앙의 고위 관료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총독직을 거쳤지만 그래도 장군이라는 단어와는 잘 들어맞지 않으며, 굳이 번역해야겠다면 항목에 나오듯이 경 정도가 타당하다.[65] 튀르키예 특성을 살려 케밥장수의 아들(Kebapçıoğlu - 케밥츠오을루), 무아딘(이슬람 성원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기도 시보원)의 아들(Müezzinoğlu - 뮈에진오을루)이란 성도 있다.[66] 이 만행의 피해자 중 하나가 바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전 대표이다. 강제 창씨 이후 수십 년이 지난 1961년에야 성을 다시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67] 실제로 가지안테프에 Kepkep plaza 같은 건물들을 여럿 소유하고있는 꽤 유명한 가문이다.[68] 논의 자체는 2000년대 초부터 있었다.[69] 예를 들어 해새노프(Həsənov)는 해샌리(Həsənli), 바바예프(Babayev)는 바바자대(Babazadə)와 같이 바꾸는 식이다. 이 경우에는 성씨가 남녀 구분이 없이 동일한 형태로 쓰인다.[70] 이 이름은 좀 특이한 유래인데, 남북 전쟁 이후 해방관리국의 총책임자 O. O. Harold의 성에서 나왔다.[71] 산스크리트어로 아들을 'putra'라고 하는데 이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72] 나집 라작이라는 이름은 정확히는 약칭이며, 정식 이름은 모하마드 나집 빈 압둘 라작. 말레이 문화에서 이름에 붙는 무함마드압둘은 실제 개인명이 아니라 개인명 앞에 붙는 수사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통칭으로 쓰는 이름에서는 종종 빠진다.[73] 압둘 라작도 정식 이름은 압둘 라작 빈 후세인이므로 부칭이 후세인임을 알 수 있다.[74] 물론 상기한 대로 대한민국 민법상으로는 귀화인이 아닌 이상 창씨가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75] 다만 미국에서는 하이픈 뒷부분은 무시해도 상관 없는 경우가 많고, 하이픈이 안 들어가는 시스템에서 종종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76] 야인시대에 나오는 그 병원이다.[77] 덤 앤 더머할 때 그 더머다.[78]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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