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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 de Bragança | |||
소형 국장[1] | 대형 국장[2] | ||
<colbgcolor=#005098><colcolor=#FFFFFF> 건립일 | 1640년 12월 1일[3] | ||
창립자 | 주앙 4세 | ||
現 당주 | 브라간사 공작 두아르트 피우[4] | ||
국가 | 포르투갈 왕국 | ||
본가 | 아비스 왕조[5] | ||
분가 | 오를레앙스브라간사 가문[7] (브라질) | ||
SNS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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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왕국의 왕실이었던 가문으로, 1640년 12월 1일 제8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이 국왕으로 추대되어 주앙 4세로 즉위하고 1910년 10월 5일 공화 혁명으로 마누엘 2세가 퇴위할 때까지 존속하였다.2. 상세
브라간사 가문의 시조는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와 내연녀 이네스 피레스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아폰수로, 1442년 12월 30일 그의 조카인 아폰수 5세[10]를 대신해 섭정을 맡고 있던 코임브라 공작 동 페드루가 아폰수에게 '브라간사 공작'으로 임명하면서 브라간사 가문이 탄생했다.브라간사 가문은 포르투갈의 최고위급 귀족으로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서게 되는 계기가 바로 포르투갈 독립 전쟁이었다. 당시 갈채혁명(Guerra da Aclamação)을 주도한 귀족들의 대표자인 제8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이 리스본 총대주교 로드리구 다 쿠냐의 대관을 받아 주앙 4세로 즉위하면서, 마침내 브라간사 가문이 브라간사 왕조가 되었다.
주앙 4세는 포르투갈의 독립을 선언하였지만 스페인은 당연히 포르투갈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군대를 포르투갈로 보내면서 28년간 전쟁이 지속되었다가, 리스본에서 강화 조약을 맺어 포르투갈의 독립 인정 및 포르투갈 국왕 칭호를 포기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약 185년 동안 유지되어 오다가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장남인 페드루 5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가문으로 바뀌었다.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가문은 보통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의 일원으로 보지 않고 그냥 브라간사 왕조의 분파로만 본다. 포르투갈의 왕위 계승법상 여성도 후계자로서 왕위에 오를 수 있어서 브라간사 왕조의 정통성이 마리아 2세로 옮겨진 것으로 여겨진다. 마리아 2세와 그녀의 후계자들은 그냥 브라간사 가문의 일원일 뿐, 오를레앙스브라간사 가문[11]이나, 부르봉브라간사 가문[12] 같은 방계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지막 국왕 마누엘 2세가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퇴위하면서 브라간사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왕정 폐지 이후에는 마누엘 2세가 자녀를 두지 못하고 1932년 사망하면서 직계는 끊어졌고, 포르투갈 내전 이후 추방 상태였던 미겔 1세의 손자 두아르트 누누가 가문의 당주 자리를 계승하여 이후 브라간사 가문의 계보는 두아르트 누누의 자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누엘 2세의 생전에 두아르트 누누의 아버지 브라간사 공작 미겔 자누아리우와의 합의가 있었다. 이후 1950년에 구왕족들에 대한 입국 금지가 해제되면서 브라간사 가문의 구성원들은 포르투갈로 귀국해 살고 있다. 마리아 2세의 두 딸 마리아 아나와 안토니아의 후손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이들은 외국 통치 가문[13]의 일원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포르투갈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구 포르투갈 왕국 헌법 규정에 의해 계승 서열에서 제외되었다.
3. 기타
브라간사 왕조의 구성원들은 마리아 1세를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리스본 상 비센트 드 포라 수도원(Mosteiro de São Vicente de Fora)의 브라간사 영묘당(Panteão da Casa de Bragança)에 안장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중 리우데자네이루로 몽진했던 포르투갈 왕실은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귀국했으나 건강이 쇠약해진 마리아 1세는 귀국할 몸상태가 아니어서 결국 리우에서 사망했다. 사후 리우데자네이루 영원한 구원의 성모 대성당에 안장되었다가, 본인이 지었던 리스본의 에스트렐라 대성당(Basílica da Estrela)으로 1822년 이장되었다.3.1. 장자의 저주(Maldição dos Braganças)
#이 "저주"는 주앙 4세의 치세에 시작되었는데, 시주를 구걸하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를 발로 찼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사는 다시는 집안의 맏아들이 왕위에 오를 만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 이후로 페드루 5세와 카를루스 1세를 제외하고, 이 왕조의 모든 장남들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다.
가장 최근에는 브라질 계통의 장남인 페드루 루이즈(1984~2009)가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에 휘말려 숨졌다.
장자불운이란 점에서는 조선 왕실과 유사하다.
[1] 포르투갈 왕국의 소형 국장.[2] 포르투갈 왕국의 대형 국장.[3] 브라간사 가문 자체의 설립일은 주앙 1세(1357 ~ 1433)의 서장자인 아폰수(1377 ~ 1461)가 브라간사 공작에 임명된 1442년 12월 30일이다.[4] Duarte Pio de Bragança, 1945년생으로 미겔 1세의 증손자이다. 브라간사 왕가의 수장은 브라간사 공작의 칭호를 사용한다. 이 칭호는 포르투갈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칭호이나, 명목상의 예우일 뿐 특권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5] 주앙 1세가 개창한 가문이다. 아비스 왕조의 시조 주앙 1세는 보르고냐 왕조 페드루 1세의 사생아로 이복형제 페르난두 1세가 남자 후사 없이 죽자 포르투갈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고 카스티야 연합 왕국을 물리쳐 포르투갈의 독립을 다졌다.[6]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아들인 페드루 5세부터 증손자인 포르투갈의 마지막 국왕 마누엘 2세까지. 마누엘 2세가 자녀 없이 사망함으로써 마누엘 2세의 죽음을 끝으로 외국 왕실로 시집간 여계 후손들을 제외하면 계승받을 적법한 왕가 구성원이 전부 사망하여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분가는 그대로 단절되었다. 단절 이후 명목상 포르투갈의 왕위와 가문 수장 자리는 미겔 1세의 친손자인 두아르테 누누가 이어받아 가문 수장 자리는 본가로 돌아온 셈이다.[7] 본래 브라질 페드루 2세의 후계자인 이자베우 황태녀가 오를레앙 가문 가스통 도를레앙(1842 ~ 1922)과 결혼해서 생긴 분가로 본래는 페드루 2세 사후에 브라질 제국 통치가문이 될 예정이었으나 페드루 2세 생전에 브라질 공화정 쿠데타로 페드루 2세가 폐위되면서 계승조차 하지 못했다.[8] 스페인 카를로스 3세의 4남 가브리엘(1752 ~ 1788)과 포르투갈 마리아나 빅토리아(1768 ~ 1788)의 외아들 페드로 카를로스(1786 ~ 1812)의 후손들이다. 2008년 마지막 가문 구성원이 사망하면서 단절됨.[9] 브라간사 가문 홈페이지[10] 이복동생 두아르트 1세의 아들[11] 브라질계 분가, 페드루 2세의 장녀 이자베우 황태녀가 루이필리프의 손자 외 백작 가스통과 혼인하면서 생겨난 가문으로, 현재 브라질 제국 구황실의 종가이다.[12] 스페인계 분가로, 페드루 3세와 마리아 1세의 장녀 인판타 마리아나 비토리아가 카를로스 3세의 3남 인판테 가브리엘과 혼인하면서 생겨난 가문이다. 시조인 마리아나 빅토리아와 가브리엘의 고손자 만프레도 루이스가 1979년 사망하면서 가문 자체는 끊어졌고 현재는 귀족과 통혼한 여계후손만 남아있다.[13] 작센 왕국 베틴 왕가,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