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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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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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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 ~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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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황태자 · 황태손 · 황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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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be673> 전개 <colbgcolor=#fff,#191919>주필산 전투 · 안시성 전투 · 평양성 전투(661년) · 사수 전투 · 평양성 전투(6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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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제14대 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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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제3대 황제
고종 | 高宗
파일:당건릉.jpg
건릉 전경.
출생 628년 7월 21일
장안 동궁 여정전
(現 산시성 시안시)
즉위 649년 7월 15일
장안 황궁
(現 산시성 시안시)
사망 683년 12월 27일 (향년 55세)
동도 낙양 낙양궁 정관전
(現 허난성 뤄양시)
능묘 건릉(乾陵)[1]
재위기간 당의 황태자
643년 4월 30일 ~ 649년 7월 15일
제3대 황제
제14대 가한
649년 7월 15일 ~ 683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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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48252><colcolor=#ece5b6> 본관 농서 이씨
치(治)
부모 부황 태종 문황제
모후 문덕황후
형제자매 14남 21녀 중 9남
배우자 정실 폐후 왕씨, 측천황후
후궁 숙비 소씨
자녀 8남 4녀
종교 불교
아명 치노(雉奴)
위선(爲善)
작호 진왕(晉王)
별호 천황(天皇)[2][3]
묘호 고종(高宗)
시호
674년 추증 [ 펼치기 · 접기 ]
천황대제(天皇大帝)
754년 추증 [ 펼치기 · 접기 ]
천황대성대홍효황제
(天皇大聖大弘孝皇帝)
한호 천가한(天可汗)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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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휘(永徽, 650년 ~ 655년)[4]
현경(顯慶, 656년 ~ 661년)
용삭(龍朔, 661년 ~ 663년)
인덕(麟德, 664년 ~ 665년)
건봉(乾封, 666년 ~ 668년)
총장(總章, 668년 ~ 670년)
함형(咸亨, 670년 ~ 674년)
상원(上元, 674년 ~ 676년)
의봉(儀鳳, 676년 ~ 679년)
조로(調露, 679년 ~ 680년)
영륭(永隆, 680년 ~ 681년)
개요(開耀, 681년 ~ 682년)
영순(永淳, 682년 ~ 683년)
홍도(弘道, 6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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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황태자가 되다2.2. 황제로서의 치세
2.2.1. 황후 왕씨 폐위와 새 황후 책봉2.2.2. 대외 정책
2.2.2.1. 돌궐과의 전쟁2.2.2.2. 백제를 멸망시키다2.2.2.3. 숙적인 고구려를 멸망시키다.2.2.2.4. 나당전쟁2.2.2.5. 토번과의 전쟁
2.2.3. 대내 정책
2.2.3.1. 영휘의 치2.2.3.2. 측천무후의 국정 개입과 무주혁명
3. 가정 관계
3.1. 아내
4. 대중매체에서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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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나라의 제3대 황제.

당태종 이세민의 9남이며 휘는 치(治)였다. 모친은 문덕황후 장손씨로, 그녀의 3남이었다. 시호는 천황대성대홍효황제(天皇大聖大弘孝皇帝)로, 줄여서 홍황제(弘皇帝)이다.

당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5]와 전쟁을 벌인 인물이었다.

2. 생애

2.1. 황태자가 되다

이치는 적자로서는 3남이었지만, 서자까지 다 포함하자면 태종의 9남이었는데 이로 인해 원래는 황위 계승과 상당히 먼 입장이었다. 그러나 위징 사후 태자인 이승건의 위치가 불안정해지고[6] 위왕 이태가 태종의 총애를 받으며 서로 다투기 시작하면서 후계자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계승권이 위태롭다고 여긴 태자 이승건이 한왕 이원창, 재상 후군집과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켜 황위에 오르려다가 발각되어 이원창과 후군집은 사사되고 이승건은 폐서인되는 일이 일어나면서 일약 이치가 황위 계승의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태종은 처음에는 위왕 이태를 태자로 삼으려 했으나 태종의 외척이자 유력한 사족이었던 장손무기가 반대했고, 여기에 위왕 이태가 새로운 경쟁자가 된 진왕 이치를 협박하는 일이 발각되면서 자신의 사후에도 자식들 간의 다툼이 없기를 바랐던 태종의 마음이 변하게 되었다.[7] 그러자 서자이나 가장 뛰어난 오왕 이각[8]을 태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장손무기가 매우 격렬하게 반대해서 자신과 친한 조카를 옹립하고자 했고 결국 태종은 이각 대신 이치를 후계자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9] 이후 태종은 자살쇼를 통해 인자하고 효성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정관 18년(644년) 이치를 황태자로 세웠다.

태종은 어떤 의미로는 어쩔 수 없이 이치를 세운 꼴이었고 황태자가 된 시점에서 아직 20살도 안 된 데다가 직전까지 계승 순위에서 상당히 먼 처지였다 보니 신경을 써서 태자 이치를 교육시켰다. 유력한 중신들을 황태자 주변에 붙였는데 장손무기를 태자사보, 방현령을 태부, 소우를 태보, 이적을 첨사, 이대량을 우위솔, 우지녕과 고계보를 우서자, 장행성을 소첨사, 저수량을 빈객으로 삼았다. 태반이 공신들이자 재상급인 인재들을 황태자 주변에 붙임으로써 그 지위가 굳건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드러내 보인 것이다. 여기에 태종 자신과 항상 동행하게 하면서 국정에 관해 의견을 말하게 했고, 자신의 통치 경험을 《제범》이라는 책으로 엮어서 이치로 하여금 학습하게 하는 등 황제 속성 교육을 시켜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게 했는데 이 시기에 이치가 재인 무조, 즉 훗날의 측천무후와 만난 것으로 보인다. 태종은 붕어시에 장손무기와 저수량을 불러 고명대신으로 삼고 태자 이치에게 유언으로
"장손무기와 저수량이 있으면 너는 천하를 걱정하지 말라."
라는 말을 남겼다. 아무래도 그렇게 속성 교육을 했다지만 이치가 여전히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2.2. 황제로서의 치세

649년에 즉위한 젊은 황제 고종은 아버지에 비해 못했지만 그래도 유능하게 대제국을 잘 꾸려나간 것으로 평가받는다.[10] 그러나 측천무후를 후원해 그녀가 국정에 참여하고 공신들을 숙청하며 실권을 잡는 데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는 점에서는 좀 까이기도 한다.

2.2.1. 황후 왕씨 폐위와 새 황후 책봉

고종은 기존의 황태자비였던 왕씨를 황후로 올렸으나 곧 관계가 소원해지고 숙비 소씨를 총애하게 되었다. 이에 황후 왕씨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폐위하려 했으나 내로라하는 명문 집안이었던[11] 황후 왕씨를 장손무기와 저수량을 비롯한 좌명대신들이 옹호하여 분쟁이 심각해졌다. 이에 불만을 품은 고종은 감업사(感業寺)에 자주 들러 관례대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 무미랑(훗날의 측천무후)를 총애하게 되었고, 652년 결국 무미랑에게서 아들 이홍을 얻었다.[12] 다음 해인 653년 황후 왕씨와 숙비 소씨 간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었다. 황후 왕씨는 고종의 숙비 소씨 총애를 막기 위해 감업사의 무미랑을 다시 황궁에 들여 정2품 소의(昭儀)에 책봉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황후 왕씨의 생각대로 고종의 총애가 숙비 소씨에게서 멀어졌지만, 소의 무씨가 고종을 독점하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되어 황후는 소의 무씨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소의 무씨는 황후와 숙비 소씨에게서 배척을 받는 후궁들과 빈천한 가문 출신 서족들, 장손무기 및 저수량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적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세력을 구축했다. 결국 치열한 정치 투쟁 끝에 소의 무씨의 딸 안정공주가 사망하는 사건[13]이 벌어지면서 공신들의 수장격이던 저수량과 장손무기가 물러나고 황후 왕씨와 숙비 소씨가 폐서인되어 자결함으로써 무씨가 황후로 책봉되었다. 직후 무후는 황태자(皇太子)였던 이충(李忠, 643~664)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맏이인 이홍을 황태자 자리에 올렸다.

이러한 황후 폐위와 책봉 과정은 전통적으로 정권을 잡고 있었던 관롱집단(사족)[14]과 이들에게 차별 대우를 받았던 서족 세력 간 정치 투쟁으로 보는 것이 다수설이며 측천무후의 승리는 관롱집단의 정치적 패배와 몰락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런 장면들을 주도한 인물은 측천무후가 아니라 고종 자신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측천무후에게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되었지만 선제 태종의 측실로 이미 출가했다가 환궁했다는 약점도 존재했고 고작해야 당대에 출세한 개국공신이 전부라 격이 낮은 가문이라는 한계가 존재했다.[15] 때문에 측천무후는 고종의 총애를 제외한 지지 기반이 전혀 없었으므로 황실 내에서 자기 기반 다지기에도 급급했다. 《이위공문대》를 보면 태종 본인도 특히 장손무기를 상당히 부담스럽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2.2.2. 대외 정책

고종은 태종의 뒤를 이어 팽창주의적, 공격적 대외 정책을 추구하여 의외로 정복군주였다. 측천무후의 포스 때문인지 공처가의 이미지도 강하고 병약했다는 점 때문에 소극적인 대외 정책을 추구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본인이 친정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상당히 호전적인 전쟁광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원정을 많이 했다. 이러한 원정은 동쪽에서는 신라와 손을 잡고 아버지 당태종이 정복에 실패했던 고구려멸망시키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나당전쟁에서 패배해 목적한 바를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고 한반도에 국력을 집중하느라 서쪽 토번가르친링의 성장을 제때 견제하지 못해 수도 장안에서 가까운 지역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다. 애초에 토번은 당나라가 키운 감이 없지 않은데 토번을 제때에 견제했다면 초기에 몰락시킬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으니 후대에 골치거리를 남기게 된 셈이었다.
2.2.2.1. 돌궐과의 전쟁
고종은 즉위 직후부터 돌궐 세력과 지속적인 전쟁을 벌였다. 태종에 의해 몰락했던 동돌궐은 설연타족의 패망으로 인한 공백을 노려 거비가한이 재기를 노렸고, 세력을 유지하던 서돌궐은 이를 후원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즉위 직후인 650년 우효위랑장 고간이 거비가한을 추적, 생포한 다음 그 부족을 욱독군산에 이주시키고 관리하여 동돌궐의 재기를 늦추었다. 이후 657년 좌둔위장군 소정방이 전격적인 진공 작전을 펼쳐 서돌궐의 사발라가한 아사나하로를 공격, 100,000여 명의 서돌궐군을 격파하고, 종속 부족들의 지원을 받으며 군사력을 증강해 결국 신강 지역의 버얼타라 강{쌍하(雙河)}에서 사발라가한을 사로잡고 서돌궐을 평정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658년에는 쿠차에 있었던 구자국을 점령하고, 여기를 안서도호부로 삼은 후, 재차 진격하여 659년 소그드와 페르가나에 도독부를 설치하면서 파미르 고원에 미치는 역대 최대 강역에 도달했다.[16] 하지만 이들 도독부는 665년에 폐지되었다.

이후 한동안 당나라는 돌궐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679년 동돌궐은 아사나니숙을 가한으로 옹립하며 재봉기했다. 이에 당고종은 배행검을 정양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300,000명의 대군을 동원해 일시적으로 진압했다. 아사나복념이 아사나니숙에게 호응해 또다시 들고 일어났으나 당나라는 이간계를 통해 이를 다시 진압했다. 그러나 서돌궐 또한 682년에 들고 일어났고 이는 왕방익에 의해 일시적으로 진압되었지만 고종 재위 말기, 힐질리시가한(일테리시 카간)에 의해 돌궐 제2제국이 건국되었고, 당나라의 북변을 크게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당고종의 뒤를 이어 당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후대 황제들 역시 다시 강성해진 돌궐 제2제국에 골머리를 앓았으며 북방을 유린당했다.
2.2.2.2. 백제를 멸망시키다
처음에는 부황의 정관의 치를 이끌었던 유능한 신하들을 옆에 두고 대외적으로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 특히 백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이었는데, 이는 645년 제1차 고구려-당 전쟁 당시 보인 백제의 태도 때문이었다. 본래 백제는 당나라 건국 직후부터 대당 외교에 대단히 공을 들였으며, 이것이 고구려를 견제하려던 당나라의 의도와 맞아떨어져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전 작업 아래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대대적으로 신라한강 유역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 당-백제 간 외교관계 파탄의 시작이었다.(643) 이후 당태종의 경고에 따라 의자왕은 스스로 군사를 물려야만 했다. 그리고 645년 당의 대군이 고구려를 공격할 당시, 백제와 신라 양쪽 모두에 고구려 공격을 지원할 것을 요청했는데 여기서 신라는 당태종의 요청에 응해 원군 30,000명을 보냈지만, 함께 고구려를 치기로 했던 백제는 원군을 보내지 않고 오히려 신라를 공격하여 644년 김유신에게 빼앗긴 7개 성을 되찾았다. 즉 백제가 당을 돕는 신라를 공격→고구려 정복에도 간접적으로 걸림돌이 된 셈이므로 태종이 백제에 분노해, 이 사건 이후 백제는 태종이 죽을 때까지 사신을 보내지 못했으며, 고종이 즉위한 후인 650년이 되어서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당나라는 김춘추의 언변에 화답해 외교 파트너를 백제에서 신라로 완전히 교체해 버린 후였다.
이를 증명하듯, 651년에 백제에서 사신을 보내자 고종은 백제에게 신라와 화친할 것을 요구했다. 그 화친의 조건은 '신라에게서 뺏은 땅(대야성)과 포로들을 모두 돌려줘야 하며, 이를 어길 시 백제를 정벌하겠다'는 것이었고, 의자왕은 당과의 회복 노선에 최선을 다하는 듯 하면서, 고구려를 도와 말갈과 함께 655년 정월, 신라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여, 신라의 한강 지역 33개의 성을 함락시키는 이중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로써 다시 한번 백제는 당나라와의 외교 노선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버렸다.

거기에 백제 내부에서 내홍이 발생했는데, 642년 의자왕이 백제의 귀족들을 대거 쳐내며, 자신의 아들들에게 고위직을 물려주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결국 여기에 불만을 가진 백제의 귀족 세력들이 대거 신라에게 붙는 상황이 되었다. 655년 10월 김유신이 좌평 임자와 내통하여 도비천성을 함락시켰다.

또한 당고종 역시 신라와 함께 협공할 것을 계산하며,[17] 백제에게는 관계 정상화를 두고 계속해서 거짓정보를 흘렸는데, 이 상황에서도 판단을 잘못하며, 자아도취한 의자왕은 결국 성충의 충언을 무시하고 그를 아사시키는 병크를 터트렸다. 고종은 마침내 660년 3월 소정방을 우이도행군총관으로 임명하여 대군을 편성, 백제를 멸망시키도록 지시하고 신라 또한 김유신과 50,000명의 군사를 보내 동서로 협공하도록 했다. 소정방이 군대를 이끌고 오는 것을 의자왕이 파악할 때쯤, 한강 유역과 대야성에 주둔하고 있었던 백제의 주력군을 소집하고, 왜국에 파병을 요청하기 위해서, 계백에게 군사 5,000명을 주어 지연전을 펼치도록 했지만, 황산벌 전투에서 전멸했고 자신은 웅진성으로 달아났으나, 예식진의 배반으로 결국 660년 7월 18일, 항복을 선언했다. 당군은 의자왕을 포함해 부여씨 왕족 및 귀족 93명, 그리고 일반 백성 12,000여 명을 당나라로 끌고 갔다. 이후 백제는 지방군을 중심으로 한 부흥운동이 시작되어 약 3년간 항쟁했으나 부흥군과 파병된 왜군의 연합군이 663년 백강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몰살당하며, 백제의 잔여 세력까지 완전히 몰락했다.
2.2.2.3. 숙적인 고구려를 멸망시키다.
동맹국인 백제가 660년에 멸망하자 고구려는 신라, 당나라, 양쪽에서 압박을 받으며 고립 상태가 되었다.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지만 이는 태종 당대는 백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기도 하고, 당시 준비 중이던 대규모 고구려 원정에 대한 중지 정도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애초에 고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이 고구려군에 패퇴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전쟁을 벌이다가 붕어했기 때문에 고구려 정벌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의 숙원 사업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655년에 고구려와 백제, 말갈이 연합해 신라를 공격하여 33개 성을 빼앗자 신라의 김춘추가 구원병을 요청했고, 이에 고구려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선제공격을 했지만 패퇴했다. 659년에도 재차 공격했지만 성과없이 퇴각했다. 그러다가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하자 고구려를 고립시켰다고 판단하고, 이를 곧 정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고종은 661년 정월에 대규모 원정대를 편성했다.

4월, 결국 고종은 군대를 내보낸다. 이에 대해서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의 기록이 약간씩 다르다. 대략 계필하력을 요동도행군대총관, 소정방을 평양도행군대총관, 임아상을 패강도행군대총관, 소사업을 부여도행군대총관, 정명진을 누방도행군총관, 방효태를 옥저도행군총관[18]으로 삼아 총 35개 군에 달하는 대병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치도록 했다. [19] 가장 먼저 고구려 영내에 진입한 것은 소정방이 이끄는 평양도행군이었다. 661년 8월, 소정방은 바다를 통해 패수로 진입하여, 이를 저지하는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평양 근처인 마읍산을 점령하여 군영을 세운 후 평양을 포위했다. 그러나 평양성의 함락이 쉽지 않았고, 전쟁은 장기전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서북 지역에서 튀르크계 철륵(퇼레스)이 봉기하면서 글필하력[20]소사업군은 철수해야만 했고, 임아상[21], 정명진[22], 방효태[23] 등의 사령관들이 줄줄이 패배해 죽어나갔으며 소정방도 김유신의 구원에 의해 겨우 살아 돌아갔다. 이후 당고종은 철륵의 봉기를 진압하고, 토번의 도전에 대처하는 등 바쁜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연개소문에게 연이어 대패한 이후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발을 빼려는 수순에 들어서려던 당고종은 때마침 연개소문 사후 그 세 아들들간의 정권 투쟁의 결과로 맏아들 연남생국내성 일대를 거느리고 투항(666년)하자 재차 공격에 들어갔다. 여기에 신라 또한 연씨의 분열로 연정토가 바치는 영토를 얻었고 남쪽에서 협공에 들어갔다.

당군은 667년 1월,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 북쪽의 요충지인 신성을 비롯, 그 휘하의 16개성을 함락시키고 국내성에 웅거한 연남생과의 연결선을 확보했으며, 668년 2월에는 부여성과 휘하 40여개의 성을 함락시켜 후방을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그해 8월 평양성을 포위한 후, 신라와의 협공으로 9월 21일 마침내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보장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이로써 고구려는 건국 705년 만에 멸망했다.
2.2.2.4. 나당전쟁
그러나 대고구려 전쟁이 끝나자 고종은 신라 또한 장악하고자 시도했다. 백제 영역에는 웅진도독부를, 고구려 영역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명명하면서 자국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이전부터 당나라에 대한 불만을 갖고, 당의 야욕을 눈치채고 있었다. 결국 신라군이 검모잠안승이 이끄는 고구려부흥운동 세력과 힘을 합쳐, 요동과 웅진도독부를 선제공격하면서 나당전쟁이 일어났다. 결국 당고종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마저 없애버리려는 삼국시대의 진 최종 보스로 등극했다.

나당전쟁은 7년에 걸쳐 이어졌으며, 결국 매소성 전투기벌포 해전 등 중요한 교전에서 신라군에게 패배했다. 이에 당고종은 안동도호부와 웅진도독부를 한반도 바깥 북쪽으로 철수시켜 사실상 나당전쟁을 포기했다. 이후 양국은 장기간에 걸쳐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다시피 했다가 당현종때 이르러 관계가 복구되었다.
2.2.2.5. 토번과의 전쟁
고종은 토번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도 실패만 맛보았다. 이는 이 시기에 가르친링이 토번의 실권을 잡으며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토번에 대해 이이제이의 용도로 이용하며 당태종 이래 부용 세력으로 유지하고 있었던 모용선비족의 토욕혼을 토번이 663년에 대파하고, 장악한 후 안서 4진을 공격해 함락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고종은 설인귀를 대총관으로, 아사나도진과 곽대봉을 부사령관으로 삼아 100,000명의 대군을 편성해 670년 공격에 나서게 했지만 가르친링에게 대비천 전투에서 완파당해 장군들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후 토번은 남쪽으로는 파라문, 서쪽으로는 총령, 북으로는 돌궐에 이르며 '10,000여 리가 되는' 강역을 지배하에 두었고, 기나긴 국경선을 치고 빠지며 당나라를 괴롭혔다. 679년 이경현과 유심례가 재차 100,000여 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토번을 공격했지만 이 또한 참패하여, 유심례는 사로잡히고 이경현만 간신히 귀환했다. 당나라는 이에 토번에 대한 대책에 골몰했지만, 공격하기는 어렵고 방어하기는 쉬운 티베트 고원으로 쳐들어가기도 무리이고 딱히 대응할 방도가 없어 각지의 방어를 견고히 하는 소극적인 정책만을 수행하게 된다.

2.2.3. 대내 정책

2.2.3.1. 영휘의 치
대내적으로는 무덕율령, 《정관율령》을 토대로 《영휘율령》을 완성시키고, 얼마 안 가 장손무기에게 《영휘율령》의 조목마다 주석을 달게 하여 《당률소의》를 작성, 전국에 반포하고, 뒤이어 《율소찬정》, 《오경정의》(五經正義)를 반포하는 등 당나라의 율령(형법과 행정법)과 전장 제도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씨족지》를 고친 《성씨록》을 만들어 기존 사족들의 실권을 제한하고, 서족들의 등급을 높이는 개혁적인 정책도 실시했다. 또한 정관 말년에 심화된 토지 겸병을 막기 위해 구분전과 영업전의 매매를 금지하여 균전제를 유지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런 점에서는 전형적인 수성군주라 할 수 있다. 660년부터 병치레를 하게 되면서 측천무후가 국정에 개입하게 되는데, 관직을 늘리고 범계를 늘리며 복식을 확정 짓고, 인재 채용의 폭을 넓히는 <전주법>을 개정했으며 과거 제도를 수정, 보완하는데 측천무후가 함께 했고, 이 과정에서 실권이 천천히 측천무후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내치는 상당히 성공적이었으며 이에 고종과 측천무후는 666년 태평성세를 이룬 성천자만이 할 수 있는 태산에서의 봉선을 수행하여 자신들의 치세가 성공했음을 자평하기도 했다.
2.2.3.2. 측천무후의 국정 개입과 무주혁명
고종은 집권 초에는 상당히 의욕적으로 정치를 수행했으나 660년 이후부터는 자주 병치레를 하게 되면서 측천무후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고, 정치적으로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고종의 신임을 받아 권력을 확보한 측천무후는 아직 힘이 남아 있었던 장손무기, 한원, 유석, 우지녕 등을 숙청했으며, 반대파인 재상 상관의도 664년에 폐태자였던 이충과 모의하여 반역을 일으키려 했다고 몰아 처형했다.

고종이 무후를 폐위하기 위해 칙서를 내린 것이 들통나 무후가 고종에게 가서 따졌고, 고종이 상관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상관의 폐위 조서 사건은 당시 고종의 권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라는 게 세간의 평가이다. 하지만 고종은 병이 나아지면 직접 국정을 수행하기도 했고, 이 시기 무후의 정치력은 기본적으로 고종의 신임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에 딱히 고종의 권력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상관의 폐위 조서 사건 이후로 고종은 국가 중대사는 재상들이 의결하고, 정책 결정도 재상을 통하도록 만들었는데 측천무후이의부허경종이 물러난 이후에는 얼마 동안 재상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거나 재상 중에 자기 파벌을 심지 못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힘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고종은 측천무후의 황후 책봉에 반대했던 배행검 같은 인사들도 임용했을 정도로 관료 임용에 있어서 측천무후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실제로 폐위 운운도 권한이 강해지는 무후에 대한 단순 견제에 가깝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고종의 건강 상태는 정말 좋지 못했기 때문에 고종이 쓰러지고 무후까지 폐위되면 당 황실은 사실상 공황 상태가 되어버릴 지경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손무기로 대표되는 관롱집단을 제압한 상황에서 황실의 두 축인 황제와 황후가 대립하다가 양자 모두가 무력화되어 권력이 공황 상태가 되면, 다시 황권 도전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서 무후는 상관위 조서 사건 이후에 자신이 너무 지나쳤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고종의 신임을 회복했다. 황태자로 앉힌 장남 이홍이 675년 병으로 죽자[24], 둘째 이현(李賢)을 황태자로 세웠다가, 680년에 어머니의 숙청에 불만을 품자 폐위하고[25] 셋째 이현(李顯)을 황태자로 세웠다.

674년 고종은 병세가 심해져 더 이상 정사를 돌보기 힘들게 되자 자신은 천황, 무후는 천후로 칭해 공동 정부의 구도를 형성시켰고[26], 675년 장남 이홍이 죽자 무후에게 수렴청정을 맡기면서 사실상 정권에서 물러났다. 심지어 고종은 무후에게 제위를 넘기려고까지 했다가 재상 학처준의 반대로 이를 취소한 적도 있었다.[27][28]

고종이 붕어하자(683) 황태자 이현이 중종으로 제위에 올랐으나 중종의 황후 위씨와 그녀의 아버지 위현정이 정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이에 측천무후는 중종을 내쫓고, 그녀의 넷째 아들인 이단예종으로 즉위시켰으며 이후 계속해서 일어난 반대파들의 저항과 서경업의 반란(684)을 진압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690년 측천무후는 예종도 몰아내고 드디어 제위에 올라 주나라를 세웠다.(무주혁명) 측천무후는 나라를 잘 다스렸지만(무주지치) 잦은 숙청을 했기에 당나라 황실은 이후에도 위황후, 안락공주[29](경룡정변, 당륭정변), 태평공주(선천정변) 등의 음험한 권력 투쟁으로 현종이 즉위할 때까지 몸살을 앓았다.(무위지화) 이렇게 된 계기가 측천무후에게 있다고 보는지, 측천무후잔인하다는 나쁜 평가와 뛰어난 통치자라는 좋은 평가가 함께 나온다.

3. 가정 관계

3.1. 아내

폐황후 왕씨(廢皇后 王氏)
? ~ 655년 사망

측천순성황후 무씨(則天順聖皇后 武氏)
624년 출생 ~ 705년 사망

4. 대중매체에서

  • 2007년 KBS 드라마 <대조영>에선 한범희가 연기했다.
  • 2013년 KBS 드라마 <대왕의 꿈>에선 서동수가 연기했다. 위의 두 드라마에서 묘사됐던 유약한 이미지와 다르게 정복 군주로써의 이미지가 부각되었다.
  • 2021년 드라마 <풍기예상>에서는 딱히 능력은 특출나지 않지만 효심이 깊은 것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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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舊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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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고조기(高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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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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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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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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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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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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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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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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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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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굉 · 치사미 · 이용(李鄘) · 신비 · 마총 · 위홍경 · 왕언위 무원형 · 정여경 · 위관지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위차공 · 정인 · 위처후 · 최군 · 노수 한유 ,장적 맹교 당구, · 이고(李翱) · 우문적 · 유우석 · 유종원 · 한사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이공(李珙) · 이우(李祐) · 동중질 · 양원경 · 유오 · 유면 · 석웅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반맹양 · 이소(李翛) · 왕수 · 조화 · 위수 · 정권 · 주지 · 한전의 · 고하우 · 고우 · 최융 · 육선 · 장정보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맹간 · 호증 · 최원략 · 두원영 · 최홍례 · 이우중 · 왕질 · 노간사 왕파 · 이강(李絳) · 양어릉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위하경 · 왕정아 · 유공작 · 최현량 · 온조 · 곽승하 · 은유 · 서회 원진 · 백거이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조종유 · 두역직 · 이봉길 · 단문창 · 송신석 · 이정(李程) 위온 · 독고울 · 전휘 · 고익 · 풍숙 · 봉오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왕번 · 가속 · 서원여 · 곽행여 · 나립언 · 이효본 배도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이발 · 장중방 · 배린 · 이중민 · 이감 · 고원유 · 이한 · 이경검 영호초 · 우승유 · 소면 · 이석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정담 · 진행이 · 이신(李紳) · 오여납 · 이각(李珏) · 이고언 이덕유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이근(李沂) · 이택 · 이윤 · 이흡 · 이예(李汭) · 이문 · 이옹(李澭) · 이일(李佾) · 이건 · 이길 · 이간(李侃) · 이보(李保) · 이의(李倚) · 이진(李震) · 이승 · 이유(李裕) · 이우(李祤) · 이계(李禊) · 이점 · 이인(李禋) · 이의(李祎) · 이비 · 이기(李祺) · 이동(李同) · 이진(李禛) · 이상(李祥)
176권 「이종민등전(李宗閔等傳)」
이종민 · 유위 · 양우경 · 마식 · 이양이 · 위모 · 주지 · 최귀종 · 정숙 · 노상
177권 「최신유등전(崔慎由等傳)」
최신유 · 최공 · 노균 · 배휴 · 양수 · 위보형 · 노암 · 하후자 · 유첨 · 유전 · 조확 · 필함 · 두심권 · 유업 · 두로전
178권 「조은등전(趙隱等傳)」
조은 · 장석 · 이울 · 최언소 · 정전 · 노휴 · 왕휘
179권 「소구등전(蕭遘等傳)」
소구 · 공위 · 위소도 · 최소위 · 장준 · 주박 · 정계 · 유숭망 · 서언약 · 육의 · 유찬
180권 「주극융등전(朱克融等傳)」
주극융 · 이재의 · 양지성 · 장중무 · 장윤신 · 장공소 · 이가거 · 이전충
181권 「사헌성등전(史憲誠等傳)」 182권 「왕중영등전(王重榮等傳)」
사헌성 · 하진도 · 한윤충 · 악언정 · 나홍신 왕중영 · 왕처존 · 제갈상 · 고병 · 시부 · 주선
183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두덕명 · 장손창 · 무승사 · 위온 · 왕인교 · 오서 · 유성 · 두유 · 왕자안
184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이보국 · 정원진 · 어조은 · 두문장 · 구문진 · 토돌승최 · 왕수징 · 전령자 · 양복광 · 양복공
185권 「양리전(良吏傳)」
위인수 · 장윤제 · 이동객 · 이소립 · 설대정 · 가돈이 · 이군구 · 최지온 · 고지주 · 전인회 · 위기 · 권회은 · 풍원상 · 장엄 · 왕방익 · 설계창 · 배회고 · 장지건 · 양원염 · 예약수 · 이준(李浚) · 양교 · 송경례 · 강사도 · 강순 · 반호례 · 양무겸 · 양인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여인 · 소정 · 장연 · 이혜등 · 임적간 · 범전정 · 원자 · 설빈 · 염제미
186권 「혹리전(酷吏傳)」
내준신 · 주흥 · 부유예 · 구신적 · 삭원례 · 후사지 · 만국준 · 내자순 · 왕홍의 · 곽패 · 길욱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길온 · 나희석 · 모약허 · 경우
187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나사신 · 여자장 · 이공일 · 장선상 · 이현통 · 경군홍 · 풍립 · 사숙방 · 왕의방 · 성삼랑 · 윤원정 · 고예 · 왕동교 · 소안항 · 유문준 · 연흠융 · 안금장 · 이징(李憕) · 장개연 · 최무피 · 노혁 · 장청 · 안고경 · 설원 · 장순 · 허원 · 정천리 · 원광정 · 소진 · 부린 · 조엽 · 석연분 · 장비 · 견제 · 유돈유 · 고목 · 가직언 · 유경휴 · 신당
188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군조 · 조홍지 · 진집원 · 원양 · 배경이 · 배수진 · 이일지 · 최면 · 육남금 · 장수 · 양문정 · 최연 · 정공저 · 나양
189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가공언 · 장후윤 · 곡나율 · 소덕언 · 허숙아 · 경파 · 유백장 · 진경통 · 나도종 · 형문위
고자공 · 낭여령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위숙하 · 축흠명 · 곽산운 · 유충 · 노찬 · 윤지장 · 서대 · 소변 · 육질 · 풍항 · 위표미 · 허강좌
190권 「문원전(文苑傳)」
공소안 · 원랑 · 하덕인 · 유포 · 채윤공 · 정세익 · 사언 · 최신명 · 장온고 · 유윤지 · 장창령 · 최행공 · 서제담 · 두역간 · 노조린 · 양형 · 왕발 · 낙빈왕 · 등현정 · 곽정일 · 원만경 · 교지지 · 유윤제 · 부가모 · 원반천 · 유헌 · 심전기 · 진자앙 · 송지문 · 염조은 · 가증 · 허경선 · 하지장 · 석예 · 제완 · 왕완 · 이옹(李邕) · 손적 · 이화 · 소영사 · 육거 · 유포 · 최호 · 왕창령 · 맹호연 · 원덕수 · 왕유 · 이백 · 두보 · 오통현 · 왕중서 · 최함 · 당차 · 유분 · 이상은(李商隱) · 온정균 · 설봉 · 이증 · 이거천 · 사공도
191권 「방기전(方伎傳)」
최선위 · 설이 · 견권 · 송협 · 허윤송 · 을불홍례 · 원천강 · 손사막 · 명숭엄 · 장경장 · 이사진 · 장문중 · 상헌보 · 맹선 · 엄선사 · 금양봉 · 장과 · 엽법선 · 현장 · 신수 · 일행 · 상도무
192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전유암 · 사덕의 · 왕우정 · 노홍일 · 왕희이 · 위대경 · 이원개 · 왕수신 · 서인기 · 손처현 · 백이충 · 왕원지 · 반사정 · 유도합 · 사마승정 · 오균 · 공술예
193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경상자 · 위무기 · 두백랑 · 두중랑 · 이현진 · 왕화자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회흘 토번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임읍국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남조만 · 표국
198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고창 · 토욕혼 · 언기국 · 소륵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발율국 · 강국 · 파사국 · 불름국 · 대식국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 실위 · 말갈 · 발해 ·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안녹산 ,안경서 고상 손효철, · 사사명 ,사조의, · 주차 · 황소 · 진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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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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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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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고조기(高祖紀)」 2권 「태종기(太宗紀)」 3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4권 「측천황후·중종기(則天皇后中宗紀)」 5권 예종·현종기(睿宗玄宗紀)」 6권 「숙종·대종기(肅宗代宗紀)」
이현(李顯) · 무조 이단 · 이융기 이형(李亨) · 이예(李豫)
7권 「덕종·순종·헌종기(德宗順宗憲宗紀)」 8권 「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기(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紀)」
이괄 · 이송 · 이순(李純) 이항 · 이심(李湛) · 이앙 · 이염(李瀍) · 이침(李忱)
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1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11권 ~ 60권은 志에 해당. 61권 ~ 75권은 表에 해당. 신당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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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bgcolor=#a48252><tablewidth=100%> 76·77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무조 · 왕폐후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원헌황후 · 양귀비
장황후 · 장경황후 · 정의황후 · 예진황후 · 소덕황후 · 위씨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선의황후 · 곽귀비 · 왕현비 · 원소황후 · 혜안황후 · 곽숙비 · 공헌황후 · 적선황후
78권 「종실전(宗室傳)」
이도종 · 이도흥 · 이효기 · 이도현 · 이숙량 · 이효협 · 이사훈 · 이진(李晉) · 이유량 · 이침 · 이효공 · 이괴 · 이원 · 이신통 · 이도언 · 이효일 · 이신부 · 이박의 · 이봉자
79권 「고조제자전(高祖諸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80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81권 「삼종제자전(三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82권 「14종제자전(十四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이근(李沂) · 이택 · 이윤 · 이흡 · 이예(李汭) · 이문 · 이옹(李澭) · 이일(李佾) · 이건 · 이길 · 이간(李侃) · 이보(李保) · 이의(李倚) · 이진(李震) · 이승 · 이유(李裕) · 이우(李祤) · 이계(李禊) · 이인(李禋) · 이의(李祎) · 이비 · 이기(李祺) · 이진(李禛) · 이상(李祥) · 이정(李禎) · 이기(李祁) · 이복 · 이희(李禧) · 이고(李祜) · 이제 · 이희(李祐)
83권 「제제공주전(諸帝公主傳)」
동안공주 · 장사공주 · 양양공주 · 평양소공주 · 고밀공주 · 장광공주 · 장사공주 · 방릉공주 · 구강공주 · 노릉공주 · 남창공주 · 안평공주 · 회남공주 · 진정공주 · 형양공주 · 단양공주 · 임해공주 · 관도공주 · 안정공주 · 상락공주 · 양성공주 · 여남공주 · 남평공주 · 수안공주 · 장락공주 · 예장공주 · 북경공주 · 보안공주 · 동양공주 · 임천공주 · 청하공주 · 난릉공주 · 진안공주 · 안강공주 · 신흥공주 · 성양공주 · 합포공주 · 금산공주 · 진양공주 · 상산공주 · 신성공주 · 의양공주 · 고안공주 · 태평공주 · 신도공주 · 의성공주 · 정안공주 · 장녕공주 · 영태공주 · 안락공주 · 성안공주 · 수창공주 · 안흥소회공주 · 형산공주 · 회양공주 · 대국공주 · 양국공주 · 설국공주 · 식국공주 · 금선공주 · 옥진공주 · 곽국공주 · 영흥공주 · 천장공주 · 영국공주 · 흥당공주 · 서평공주 · 낭령공주 · 광화공주 · 창락공주 · 수춘공주 · 장녕공주 · 연경공주 · 정락공주 · 낙온공주 · 영청공주 · 위국문의공주 · 안화공주 · 보강공주 · 창원공주 · 창녕공주 · 금화공주 · 인수공주 · 영수공주 · 당흥공주 · 영평공주
84권 「이밀전(李密傳)」 85권 「왕두전(王竇傳)」
이밀 ,선웅신 조효징, 왕세충 · 두건덕
86권 「설이이유고서전(薛李二劉高徐傳)」 87권 「소보심이양전(蕭輔沈李梁傳)」
설거 ,설인고이궤 · 유무주 · 고개도 · 유흑달 · 서원랑 소선 · 보공석 · 심법흥 · 이자통 ,주찬 임사홍 장선안, 양사도(梁師都) ,유계진,
88권 「유배전(劉裴傳)」 89권 「굴돌울지장진당단전(屈突尉遲張秦唐段傳)」
유문정 · 배적 굴돌통 · 울지공 · 장공근 · 진경 · 당검 · 단지현
90권 「이유은허정시임구전(二劉殷許程柴任丘傳)」 91권 「온황보이이강최전(溫皇甫二李姜崔傳)」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회 · 허소 · 정지절 · 시소 · 임괴 · 구화 온대아 · 황보무일 · 이습지 · 강모 · 최선위 · 이사진
92권 「두감왕이원나왕전(杜闞王李苑羅王傳)」 93권 「이이전(二李傳)」
두복위 · 감릉 · 왕웅탄 · 장사귀 · 이자화 · 원군장 · 나예 · 왕군곽 이정(李靖) · 이적
94권 「후장설전(侯張薛傳)」 95권 「고두전(高竇傳)」 96권 「방두전(房杜傳)」
후군집 · 장량 · 설만균 고검 · 두위 방현령 · 두여회
97권 「위징전(魏徵傳)」 98권 「왕설마위전(王薛馬韋傳)」 99권 「이이대유최전(二李戴劉崔傳)」
위징 왕규 · 설수 · 마주 · 위정 이강(李綱) · 이대량 · 대주 · 유계 · 최인사
100권 「진양봉배우문정권염장강장전(陳楊封裴宇文鄭權閻蔣姜張傳)」
진숙달 · 양공인 ,양사도(楊師道), · 봉륜 · 배구 · 우문사급 · 정선과 · 권만기 · 염입덕 · 장엄 · 위홍기 · 강사도 · 장지건
101권 「소우전(蕭瑀傳)」 102권 「잠우이저요영호전(岑虞李褚姚令狐傳)」
소우 잠문본 ·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 요사렴 · 영호덕분
103권 「소위손장전(蘇韋孫張傳)」 104권 「우고장전(于高張傳)」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우지녕 · 고풍 · 장행성
105권 「장손저한내이상관전(長孫褚韓來李上官傳)」
장손무기 · 저수량 · 한원 · 내제 · 이의염 · 상관의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두정륜 · 최지온 · 고지주 · 곽정일 · 조홍지 · 최돈례 · 양홍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유덕위 · 손처약 · 형문위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누전(劉裴婁傳)」
부혁 · 여재 · 진자앙 유인궤 · 배행검 · 누사덕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최의현 · 양재사 · 두회정 · 종초객 · 축흠명 ,곽산운, · 왕여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사대내 · 풍앙 · 아사나사이 · 아사나충 · 집실사력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근행 · 천남생 · 이다조 · 논궁인 · 손유정 · 울지승 · 상가고 · 배분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곽효각 · 장검 · 왕방익 · 소열 · 설인귀 · 정무정 ,정명진왕효걸 · 당선 · 장인원 · 왕준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113권 「당장서전(唐張徐傳)」
왕의방 · 한사언 · 소안항 · 설등 · 왕구례 · 류택 · 풍원상 · 장흠서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114권 「최서소두로전(崔徐蘇豆盧傳)」 115권 「적학주전(狄郝朱傳)」
최융 · 서언백 · 소미도 · 두로흠망 적인걸 · 학처준 · 주경칙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왕침 · 위사겸 · 육원방 · 왕급선 · 이일지 · 두경전 · 이회원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 길욱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장정규 · 위주 · 한사복 · 송무광 · 신체부 · 이발 · 배린 · 이중민 · 이감 무평일 · 이예(李乂) · 가증 · 백거이
120권 「오왕전(五王傳)」
환언범 ,이복업 습수 설계창, · 양원염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121권 「유종최이왕전(劉鐘崔二王傳)」 122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유유구 · 종소경 · 최일용 · 왕거 · 왕모중 위원충 · 위안석 · 곽진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이교 · 소지충 · 노장용 · 위거원 · 조언소 · 화봉요 요숭 · 송경
125권 「소장전(蘇張傳)」 126권 「위로이두장한전(魏盧李杜張韓傳)」
소괴 · 장열 위지고 · 노회신 · 이원굉 · 두섬 · 장구령 · 한휴
127권 「장원배전(張源裴傳)」
장가정 · 원건요 · 배요경
128권 「소윤필이정왕허반예석제전(蘇尹畢李鄭王許潘倪席齊傳)」
소향 · 윤사정 · 필구 · 이걸 · 정유충 · 왕지음 · 허경선 · 반호례 · 예약수 · 석예 · 제한
129권 「배최노이왕엄전(裴崔盧李王嚴傳)」 130권 「배양송양최이해전(裴陽宋楊崔李解傳)」
배수진 · 최면 · 노종원 · 이조은 · 왕구 · 엄정지 배최 · 양교 · 송경례 · 양창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해완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유침전(劉吳韋蔣柳沈傳)」
이적지 · 이현(李峴) · 이면 · 이이간 · 이정(李程) · 이석 · 이회 유자현 · 오긍 · 위술 · 장예 · 유방 · 심기제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왕충사 · 우선객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가서한 · 고선지 · 봉상청 이광필 곽자의
138권 「이이마노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여전(崔苗李裴呂傳)」
이사업 · 마린 · 이포옥 · 노사공 방관 · 장호 · 이필 최원 ·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 여인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최광원 · 등경산 · 최관 · 위소유 · 위백옥 · 이징(李澄) · 한전의 · 노종사 · 고하우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이린(李麟) · 양관 · 최우보 · 유혼 · 위처후 · 노수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고적 · 원결 · 이승 · 위륜 · 설각 · 최한형 · 대숙륜 · 왕굉 · 서신 · 치사미 · 신비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내진 · 전신공 · 후희일 · 최녕 · 엄여 원재 · 왕진 · 여간 · 양염 · 엄정 · 두참 이서균 · 이용(李鄘)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왕사례 · 노경 · 왕난득 · 신운경 · 풍하청 · 이봉(李芃) · 이숙명 · 곡환 · 왕건휴 · 노군 · 이원소 · 노사매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영호창 · 장효충 · 강일지 · 이유(李洧) · 유옹 · 전홍정 · 왕승원 · 우원익 · 사효장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李巽) 이계 · 상곤 · 조경 · 최조 · 제앙 · 노매 관파 · 동진 · 원자 · 조종유 · 두역직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장일 · 강공보 · 무원형 · 이강(李絳) · 송신석 단수실 · 안진경 이성,이소(李愬),
155권 「마혼전(馬渾傳)」
마수 · 혼감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양조성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이관(李觀) · 한유괴 · 두희전 · 형군아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육지 위고 · 장건봉 · 엄진 · 한홍
159권 「포이소설왕오정육노유최전(鮑李蕭薛樊王吳鄭陸盧柳崔傳)」
포방 · 이자량 · 소흔 · 설파 · 번택 · 왕위 · 오주 · 정권 · 육긍 · 노탄 · 유성 · 최융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조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서호 · 여위 · 맹간 · 유백추 · 양풍 · 반맹양 · 최원략 · 위수 장천 · 조연 · 이서 · 정운규 · 서대 · 왕중서 · 풍항 · 유경휴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요남중 · 독고급 · 고소련 · 위하경 · 단평중 · 여원응 · 허맹용 · 설존성 · 이손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공소부 · 목녕 · 최빈 · 유공작 · 양우릉 · 마총
164권 「귀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귀숭경 · 해척 · 최연 · 노경량 · 설빈 · 위차공 · 설융 · 호증 · 정공저 · 최홍례 · 최현량 · 왕질 · 은유 · 왕언위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정여경 · 정순유 · 고영 · 정인 · 권덕여 · 최군 가탐 · 두우 · 영호초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백지정 · 배연령 · 최손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황보박 · 왕파
168권 「위왕육유유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위집의 · 왕숙문 · 육질 · 유우석 · 유종원 · 정이 두황상 · 배기 · 이번 · 위관지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고숭문 · 이신(伊愼)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맹원양 · 왕서요 · 유창 · 조창 · 이경략 · 임적간 · 장만복 · 고고 · 학비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양원경 · 조화 · 고우 · 유면 · 석웅 우적 · 왕지흥 · 두겸 · 두아 · 범정전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배도 이봉길 · 원진 · 우승유 · 이종민 · 양사복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두군 · 유서초 · 장우신 · 양우경 · 장숙 · 웅망 · 백기 한유
177권 「전최이위이고풍삼이노봉정경전(錢崔二韋二高馮三李盧封鄭敬傳)」
전휘 · 최함 · 위표미 · 고익 · 풍숙 · 이우중 · 이고(李翺) · 노간사 · 고원유 · 봉오 · 정훈 · 경회 · 위박 · 이경양
178권 「유분전(劉賁傳)」
유분
179권 「이정이왕가서전(李鄭二王賈舒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가속 · 서원여 · 왕파 · 곽행여 · 한약 · 나립언 · 이효본 · 고사옹 · 이정소
180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81권 「진삼이조유전(陳三李曹劉傳)」
이덕유 진이행 · 이신(李紳) · 이양이 · 조확 · 유첨 · 이울
182권 「이이최소이정이노위주이배유조왕전(二李崔蕭二鄭二盧韋周二裴劉趙王傳)」
이고언 · 이각 · 최공 · 소업 · 정숙 · 노균 · 노간방 · 위종 · 주지 · 배휴 · 유전 · 조은 · 배탄 · 정연창 · 왕부 · 노광계
183권 「필최유육정주한전(畢崔劉陸鄭朱韓傳)」
필함 · 최언소 · 유업 · 육의 · 정계 · 주박 · 한악
184권 「마양노노전(馬楊路盧傳)」 185권 「정이왕위장전(鄭二王韋張傳)」
마식 · 앵수 · 노암 · 노휴 정전 · 왕탁 · 왕휘 · 위소도 · 장준
186권 「주왕등진유조이양고전(周王鄧陳劉趙二楊顧傳)」
주보 · 왕처존 · 등처눌 · 진유 · 유거용 · 조덕인 · 양수량 · 양성 · 고언랑
187권 「이왕제갈이맹전(二王諸葛李孟傳)」 188권 「양시주손전(楊時朱孫傳)」
왕중영 · 제갈상 · 이한지 · 왕경무 · 맹방립 양행밀 · 시부 · 주선 · 손유
189권 「고조전주전(高趙田朱傳)」 190권 「삼유성두종장왕전(三劉成杜鐘莊王傳)」
고인후 · 조주 · 전군 · 주연수 유건봉 · 성예 · 두홍 · 종전 · 유한굉 · 장웅 · 왕조 · 유지겸
191·192·193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경군홍 · 여자장 · 왕행민 · 나사신 · 장도원 · 이육덕 · 고예 · 안금장 · 왕동교 · 오보안 · 이징(李憕) · 노혁 · 장개연 · 최무피 · 안고경 · 가순 · 장순 · 허원 · 남제운 · 뇌만춘 · 요은 · 정천리 · 방견 · 장흥 · 채정옥 · 부령기 · 유내 · 맹화 · 장비 · 주증 · 장명진 · 석연분 · 오서 · 고목 · 가직언 · 신당 · 황갈
194권 「탁행전(卓行傳)」
원덕수 · 권고 · 견제 · 양성 · 사공도
195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소현 · 임경신 · 지숙재 · 정원사 · 무홍도 · 정잠요 · 원양 · 배경이 · 양문정 · 심계전 · 허백회 · 진집원 · 장수 · 서원경 · 여상안 · 양열 · 목종세 · 후지도 · 정구라 · 하징수
196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긍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197권 「순리전(循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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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99·200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안사고 · 공영달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장후윤 · 개문달 · 곡나율 · 경파 · 나도종 · 낭여령 · 서제탐 · 심백의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팽경직 · 노찬 · 윤지장 · 유충 · 마회소 · 공약사,공소안, · 저무량 · 원행충 · 진정절 · 시경본 · 노이빙 · 왕중구 · 조동희 · 담조 · 위융 · 진경(陳京) · 창당 · 임온 · 위공숙 · 허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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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랑 · 하덕인 · 채윤공 · 사언 · 최신명 · 유연우 · 장창령 · 최행공 · 두심언 · 왕발 · 원만경 · 이적(李適) · 위원단 · 유윤제 · 심전기 · 송지문 · 염조은 · 윤원개 · 유헌 · 이옹(李邕) · 여향 · 왕한 · 손적 · 이백 · 왕유 · 정건 · 소영사 · 소원명 · 이화 · 맹호연 · 유태진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이익 · 노륜 · 구양첨 · 이하(李賀) · 오무릉 · 이상은(李商隱) · 설봉 · 이빈(李頻) · 오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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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권 「번진위박전(藩鎭魏博傳)」 211권 「번진진기전(藩鎭鎭冀傳)」
전승사 · 사헌성 · 하진도 · 악언정 · 나홍신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212권 「번진노룡전(藩鎭盧龍傳)」
이회선 · 주도 · 유평 · 주극융 · 이재의 · 장중무 · 장윤신 · 이무훈 · 이전충 · 유인공
213권 「번진치청횡해전(藩鎭淄青橫海傳)」 214권 「번진선무창의택로전(藩鎭宣武彰義澤潞傳)」
이정기 · 정일화 · 이전략 유현좌 · 오소성 · 이우 · 이비
215권 「돌궐전(突厥傳)」 21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토번
217권 회흘전(回紇傳)」 218권 사타전(沙陀傳)」
회흘 사타
219권 북적전(北狄傳)」 220권 동이전(東夷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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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동여국 · 고창 · 토욕혼 · 언기 · 구자 · 소륵 · 갈반타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강국 · 안국 · 동안 · 동조 · 서조 · 중조 · 자지국 · 미말 · 굴상니가 · 화심 · 갈상나 · 나색파 · 달밀 · 영원국 · 대발률 · 토화라 · 읍달국 · 구란국 · 월저연국 · 범연국 · 석한나 · 식익 · 사몰 · 구밀 · 호밀 · 개실밀 · 골돌 · 소비 · 다미 · 이오성 · 사자국 · 파사국 · 구위 · 불름국 · 대식국 · 달만
222권 「남만전(南蠻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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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녹산 · 고상 · 손효철 · 이희열 · 사사명 · 주차 · 황소 · 진종권 ·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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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기사(唐詩紀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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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태종·고종·중종기(太宗高宗中宗紀)」 2권 「명황·덕종·문종·선종·소종기(明皇德宗文宗宣宗昭宗紀)」 3권 「무후등전(武后等傳)」
이세민 · 이치 · 이현 이융기 · 이괄 · 이앙 · 이침 · 이엽 무조 · 서혜 · 상관소용 · 월왕정 · 이원가 · 공소안 · 정세익 · 동사공 · 하중훤 · 심숙안 · 육경 · 원랑 · 우봉급 · 주자사 · 유포 · 장문공 · 진숙달 · 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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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맹진한주전(孟陳韓朱傳)」 13권 「유반이엄장공전(劉潘李嚴張龔傳)」
맹견 · 진회 · 한희재 · 주원 유인첨 · 반우 · 이평 · 엄속 · 장역 · 공신의
14권 「곽장임로괴이진전(郭張林盧蒯二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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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주정이삼유강왕곽오숙이로주왕위전(周鄭李三劉江汪郭伍蕭李盧朱王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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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 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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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측천무후와의 합장릉으로, 중국의 유일무이한 황제 2인 합장릉이다.[2] 부인 측천황후는 천후(天后)라고 하였다.[3] 일본 천황(天皇) 칭호의 어원이라는 학설이 있다.[4] 비교적 무난했던 그의 치세를 아버지정관의 치에 이은 영휘의 치라고도 한다.[5] 고구려, 백제, 신라, 토번, 돌궐, [6] 태종은 신임하는 신하인 위징을 태자 이승건 옆에 붙여서 훈육함과 동시에 지위가 굳건함을 대내외에 보이려 했으나 얼마 못 가 위징이 병사했다.[7] 나중에 시중드는 신하에게 "이태를 세우면 이승건과 이치도 모두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이치를 세우면 이승건과 이태는 모두 걱정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를 대었다. 태종 본인도 황제가 되기 위해 형제를 죽여야 했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터라 최소한 자신의 후대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8] 폭군 수양제의 서출 황녀가 낳은 아들이었으므로 수 황실인 홍농 양씨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9] 태종의 실책이 아니다. 전근대 왕조 국가에서 설령 서자가 자질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적자에게 심각한 결함이 없다면 적자를 제칠 수는 없다. 애초에 현무문의 변에서 친형제끼리도 골육상쟁을 벌였는데, 서자가 적자를 제치고 황위에 오른다면 당장 적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10] 전대인 당태종이랑 후대의 측천무후가 너무 나라를 잘 다스렸기에 까인다고 보면 된다. 고종은 당대의 군주들 중 유능한 축(5~7위)에 속한다.[11] 서위의 대장 왕사성의 현손이자, 당태종의 고모인 동안공주(同安公主)의 손녀였다.[12] 문제는 측천무후가 태종후궁이었으므로 고종에게는 의붓어머니 뻘이 된다는 것이지만, 당나라한족 국가일지라도 황실은 북방 유목민 혼혈이라 형사취수제 개념으로 봐야 한다.[13] 측천무후안정공주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망했다. 이를 측천무후와 연결된 파벌은 황후 왕씨가 다녀가서 죽인 것으로 몰아갔으며 이것이 승리의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측천무후가 정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정공주를 베개로 눌러서 죽였다는 야사가 있다.[14] 북주, 수, 당을 건국한 핵심 그룹은 무천진(武川鎭) 군벌이라고 불린다. 무천진은 북위 말기 육진의 난이 벌어질 때 6진 중 하나인데, 북주의 실질적인 건국자였던 우문태를 따라 이 지역 선비족들이 관중으로 이동하여 서위 군부의 핵심 집단이 되었다. 우문태의 일족인 우문씨, 수문제 양견의 일족인 홍농 양씨, 그 아내인 문헌황후 독고씨의 일족인 독고씨, 수당교체기때 최대 세력이었던 이밀의 이씨, 당고조 이연의 일족인 농서 이씨, 당태종 이세민의 황후인 문덕황후 장손씨의 일족인 장손씨가 모조리 이 집단에 속했다. 이들은 8개의 주국대장군, 12개의 대장군직을 대대로 세습하는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전의 산동, 관중 일대의 전통적인 한족 문벌귀족과는 대비되는 '신귀족' 집단을 형성해 황실도 이 집단의 주도권을 잡기 힘들 정도였다.[15] 이 시대에 '가문 좀 대단하네.' 하려면 못해도 후한 말부터 거진 수백 년 이상 고위직을 역임해야 했다. 이게 얼마나 심했는지 후대의 당 문종"우리 가문이 200년간 황제를 했는데도 최고 가문이 아니다."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이러니 고작 개국공신 정도로는 단순한 벼락 출세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16] 이후 당현종고선지에 의해 더 서진하기는 한다.[17] 이쯤 되었을 때는 당이 신라에 진법이나 무기 등을 전수하여, 신라의 국력이 백제보다 강했다는 것이 학계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650년대 신라가 백제의 공세에 수세로 일관한 것은 1대1의 국력 차이보다는 북쪽의 고구려, 서남쪽의 백제, 동남쪽의 일본에 둘러쌓여있는 지정학적인 조건 탓이 컸다.[18] 정명진과 방효태는 기록에 따라 총관, 대총관이 각각 다르게 기술되었다.[19] 1개 군 = 최소 5,000명이라는 《당육전》의 기록을 기준으로 기미주의 병력이 추가되어 200,000명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의 병력으로 보기도 하지만 앞서 편성된 백제원정군 휘하 14군, 총 130,000명의 편제를 생각해본다면 30~40만명 내외로 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20] 글필하력은 압록수에서 그곳을 지키던 연남생의 고구려 군대를 대패시켰으나 고종의 조서를 받고 철군했다. 여기서 연남생의 고구려군을 대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조서를 받고 철군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데, 철륵의 봉기도 주 요인이었지만 글필하력의 요동도행군의 정황을 보면 글필하력이 연남생의 군대를 대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우러 온 요동 지방의 고구려군에게 공격을 받았거나, 연남생의 군대와 싸우다가 전쟁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거나, 연남생의 군대와 요동 지역의 고구려군의 협공으로 인해 대패하고 철군했을 것이다.[21] 사수 전투에서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의해 패사했다.[22] 신성을 공략했으나 실패했고, 글필하력과 소사업의 군대가 철군할 때 정명진의 누방도행군은 이를 틈탄 고구려군의 반격을 받아 정명진은 부장 양사선과 함께 난전 중 전사했다.[23] 사수 전투에서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의해 방효태와 그의 13명의 아들을 포함한 전군이 몰살당했다.[24] 《신당서》에서는 독살설을 제기하고 있지만 《자치통감》 등에서는 단지 소문이 있을 뿐이라 했으며, <사시황태자굉효경황제> 및 <책시효경황제문> 등 당시의 기록에는 '병이 완쾌된 줄 알고 업무를 넘겼다가 병이 심해져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25] 폐위 이후 곧 무후가 죽였다.[26] 선제 태종의 아내뻘인 무후의 환궁과 공치는 당 왕조 초기까지 유목문화의 영향력이 강했다는 증거로 거론된다. 실제로 수문제와 그 아내인 독고황후가 공치를 한 것이 이 시기 기준으로 100년도 안된 시점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수문제의 독고 황후는 선비족 출신의 관롱 귀족으로 워낙 배경이 강하고 유능해서 수문제에게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던 반면, 고종과 측천무후는 고종의 병약함과 측천무후의 약한 세력이 조화를 이뤘다.[27] 서양에서는 부부 계승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또한 무후 사후에는 자신의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줄 테니 측천무후의 유능함을 알고 뒤를 맡긴 셈이나 마찬가지이다.[28] 다만 서양에서의 부부 계승은 동양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서양에서는 설령 왕비라고 해도 자신이 상속받은 땅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았고, 그렇기에 사실 권리로만 따지면 남편인 왕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라곤 왕국페르난도 2세카스티야 왕국이사벨 1세의 결혼으로 태어난 트라스타마라 왕조 스페인 제국이 있다. 이때 이 두 사람은 부부이면서 공동왕이기도 했다.[29] 710년 위황후와 안락공주 모녀는 연흠융(燕欽融)이 중종에게 "두 모녀가 나라를 장악하려고 한다."는 상소를 올리자 추궁받을까 두려워 중종을 독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