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코마로프 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Комаров Vladimir Mikhailovich Komaro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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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27년 3월 16일 |
|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 |
| 사망 | 1967년 4월 24일 (향년 40세) |
| 소련 러시아 SFSR 오렌부르크주 아담모브카군 | |
| 묘소 | 크렘린 벽 묘지 |
| 부모 | 아버지 미하일 야코블레비치 코마로프 어머니 크세니야 이그나티예브나 시갈라예바 |
| 배우자 | 발렌티나 야코블레브나 코마로바 |
| 자녀 | 아들 예브게니, 딸 이리나 |
| 복무 | 소비에트 공군 |
| 1946년 ~ 1967년 | |
| 최종 계급 | 대령 (소비에트 공군) |
| 병과 | 조종, 항공공학 |
| 주요 서훈 | 소비에트 연방 영웅 2회[1] 레닌 훈장 1회 적성훈장 1회 |
| 콜사인 | 루비 (Рубин) |
1. 개요
소유즈 1호의 사고에 휘말린 소련의 우주 비행사.2. 생애
1927년 3월 16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1935년부터 1943년까지 모스크바 제23번 학교에서 공부했고, 1945년 7월에 졸업한 청년 코마로프는 모스크바에 있는 공군 특수학교에 입학한다. 7월 18일에 사소바 항공학교(СЛУ ГА)의 생도가 되어 기초 군사교육을 받은 그는 같은 해 9월에는 보리소프 비행학교(ВУНЦ ВВС)의 생도가 되었다.1946년 7월에 세로프 항공학교(КВВАУЛ)로 옮겨가서 1949년에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한 그는 첫 자대로 그로즈니(Грозный)에 전개하고 있던 북카프카스 군관구 예하의 제382전투비행연대에 배치받아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기 시작했다. 코마로프 소위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발렌티나 키셀레바(Валентина Киселева)를 만났고, 얼마 안가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1952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코마로프 중위는 10월 27일에 우크라이나 서쪽 끝 자카르파츠카주(Закарпатской области)의 무카체보(Мукачево)로 전근을 갔고, 그곳에서 1954년 8월까지 제279항공사단 소속 제486전투비행연대의 수석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MiG-15를 몰았다.
1954년 8월, 그는 주코프 공군사관학교 제1항공무기과에 들어가 1959년에 졸업하였고, 1959년 9월 3일부터 제5항공무기과의 수석 엔지니어 겸 시험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바로 여기서 조직된 소련에서 첫 번째 우주 비행사를 선발하기 위한 위원회가 그에게 새로운 극비 임무를 제안하게 된다.
이렇게 소련 공군에서 기술자로 근무하게 된 그의 최종 계급은 대령이었다. 1960년에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으며 보스토크 4호의 지원 스탭을 거쳐 보스호드 1호 선장이 되어 인류 최초의 다인원 우주비행에 성공하고 무사 귀환하였다.
이후 소유즈 1호에 탑승했다가 귀환 도중 우주선의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아 그대로 지면에 격돌하여 사망하였다. 이 사고로 그는 비행 중 사망한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2.1. 사망 과정
2.1.1. 소유즈 프로젝트
미국이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연설 이후 소련은 우주 냉전에서 질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유즈 프로젝트는 아주 빠듯하게 진행되었다. 그동안 진행된 무인 시험 비행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며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 후 1호를 발사해야한다고 했지만 소련은 "일정을 어떻게든 맞춰라"라고만 하며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발사 준비를 하게된다.2.1.2. 소유즈 1호 발사 직전
소유즈 1호의 예비 비행사로 결정된 건 유리 가가린의 친한 친구이자 우주를 최초로 두 번이나 갔다 온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였다. 하지만 발사 전 사실 코마로프는 우주선에 문제가 많은 걸 알고 있었다. 1967년 1월 아폴로 1호의 사고로 모든 비행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그는 큰 불안감에 휘말렸으나 결국 발사 직전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발사 직전인 일주일 전에도 무려 203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발사를 감행하려 했고 결국 발사 당일이 되었다.2.1.3. 소유즈 1호 발사 당일
유리 가가린: 우주복을 내게 입혀주게. 내가 소유즈에 타겠네!
유리 가가린이 당일 나타나 한 말
유리 가가린은 당일날 나타나 코마로프 대신 타겠다 했지만 소련은 그가 전세계적 영웅이자 선전 수단인 탓에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체에 문제가 많았던데다 설상가상으로 불안정한 기후 상황으로 인한 뇌우까지 찾아와 발사 시간이 지체되었고 결국 지체된 끝에 1967년 4월 23일 00시 32분에 발사하게 된다.[2] 후술하다시피 발사 직전 찾아온 뇌우는 안 그래도 문제 투성이인 소유즈 1호에 더 좋지 않은 영항을 주게 된다.유리 가가린이 당일 나타나 한 말
2.1.4. 발사 후
코마로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계기판은 정상이지만 태양 전지판 하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전기 버스바가 13~14 암페어밖에 되지 않습니다.[3]
고주파 통신도 작동하지 않고 우주선의 방향을 잡기도 어렵습니다!
발사 직후 바로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뇌우의 영향으로 태양전지판 중 2개 중 1개(왼쪽 전지판)가 펴지지 않으며 심각한 전력 부족과 우주선의 균형까지 잃어버리며 마구 잡이로 우주선은 회전하게 된다. 그 뒤로 수동 조작으로 중심을 잡으려 20시간의 사투를 벌었지만 쉽게 잡히지 않았고 결국 지상 관제 센터는 코마로프에게 귀환 명령을 한다.계기판은 정상이지만 태양 전지판 하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전기 버스바가 13~14 암페어밖에 되지 않습니다.[3]
고주파 통신도 작동하지 않고 우주선의 방향을 잡기도 어렵습니다!
2.1.5. 귀환 도중
코마로프는 수동으로 겨우 우주선의 중심을 잡으며 발사 25시간 만에 귀환 준비를 하게 된다.코마로프: 모든 안전벨트를 장착한 채로 착석 중입니다.
관제센터: 기분은 어떻습니까? 괜찮으십니까? 여기는 자리야, 확인 완료
코마로프: 아주 좋은 기분입니다. 모든 게 괜찮습니다.
관제센터: 알겠습니다. 여기 있는 동지들이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을 추천드린다고 합니다.
관제센터: 착륙을 기다리겠습니다. 여기는 자리야, 확인 완료
코마로프: 모든 지시에 감사드립니다.
코마로프는 그동안의 고강도 훈련을 통해 무사히 소유즈 1호를 대기권에 진입시켰다. 그러나 소유즈 1호가 낙하산의 고장으로 인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지면에 격돌하면서 그는 즉사하고 말았다.관제센터: 기분은 어떻습니까? 괜찮으십니까? 여기는 자리야, 확인 완료
코마로프: 아주 좋은 기분입니다. 모든 게 괜찮습니다.
관제센터: 알겠습니다. 여기 있는 동지들이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을 추천드린다고 합니다.
관제센터: 착륙을 기다리겠습니다. 여기는 자리야, 확인 완료
코마로프: 모든 지시에 감사드립니다.
2.1.6. 사망 이후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은폐할 순 없었고 코마로프의 사망을 모두가 알게 된다. 코마로프의 유해는 완전 연소되어 오른쪽 발뒤꿈치만 남고 전소했다. 사망 직후 코마로프의 장례식이 열렸고 그의 유골은 사망 후 소련의 영웅들이 묻히는 크렘린 벽 묘지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 사고로 유리 가가린은 "정상적인 착륙 지점을 벗어났다"라는 전화를 듣자마자 소련이 일을 줄여 말하는 것을 바로 알아채며 매우 분노한다. 사고 3주 뒤에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를 직접 만나겠다고 하든가, 소문에 따르면 파티에 참석해 서기장 얼굴에 음료수를 뿌려버리기까지 하며 분노했다고 한다.
2.2. 장례식
그의 장례식에서는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 모습이 있었는데, 바로 우주복과 함께 완전히 녹아 타버린 직경 30cm, 길이 80cm의 숯덩이가 된 코마로프였다. 상술했듯 오른쪽 발 뒷꿈치 뼈만 남긴 채 모두 불타버렸으며 그가 장례를 치른다면 관의 뚜껑을 열어 달라고 했기에 코마로프의 시체를 모두가 보게 되며 인터넷에서도 많이 떠돌아다니게 되었다.사람의 형태 없이 완전히 타버린 모습이 혐오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할 것.
- [ 코마로프의 시체 사진 펼치기 · 접기 ]
[4]
3. 여담
- 7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사적으로는 유리 가가린의 친구였다고 한다. 둘의 우정은 상당히 깊었는지 가가린은 소유즈 1호의 예비 파일럿이었음에도 발사 당일 코마로프 대신 자신이 직접 타겠다고 자원할 정도로 그의 목숨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가가린 역시 이듬해 전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 코마로프가 소유즈 추락사고에서 소련 정부를 저주하며 불타 죽었다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었다. 해당 이야기는 Starman: The Truth Behind The Legend Of Yuri Gagarin 이라는 미국에서 출간된 도서에서 비롯되었는데, NSA 요원이었던 Fellwock이 당시에 소련 교신을 감청하면서 이런 내용이 었었다고 책에선 주장한다. 이후 많은 우주 역사가들에게 의해 잘못된 사실을 담고 있다는 항의를 받았고, 실제로 공인된 교신 기록은 위 귀환 도중 항목에 있는 내용이 전부며 이후 내용은 지상에서 통신이 끊긴 코마로프에게 교신을 재차 시도하는 내용밖에 없다. 책의 저자는 NSA 요원의 증언을 너무 맹신했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