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는 행정과 정치적으로 권한이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체제를 말한다. 반댓말은 지방분권이다.2. 특징
역사적으로는 봉건제와 반대되는 말, 혹은 발전한 단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근대에는 청나라 말 중국의 입헌주의자나 공화주의자들, 일본의 유신세력이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을 각각 "봉건"과 "군현"에 대입하기도 하였다. 흥미롭게도 개혁 방향에 관하여 양국 개혁론자들의 지향점은 달랐는데, 역대로 중앙집권적이었던 중국에서는 봉건을 주장하고, 반대로 지방분권적이었던 일본에서는 군현을 추구했다. 보편적으로 문치 즉, 문서행정을 통해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지방 군현을 다스리는 나라들이 중앙집권적이고, 무신들이나 무장들이 치세를 하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봉건제, 지방분권적 성격이 강했다. 한국사를 예를 들자면 고려가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문신이 중용받았던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대개 중앙집권국가들이 건국되었지만, 무사나 기사가 중용받았던 일본이나 유럽은 전통적으로 봉건제 국가 성향이 강했다.대한민국의 교과 과정 국사에서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연맹왕국 다음 단계를 중앙집권국가로 본다. 다만 이러한 발전 단계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마르크스 사관의 영향이고, 실제 학계에서는 역사에 일정한 발전 단계나 과정이 있다는 관점은 지양하고 있다.
현대의 지방자치는 고도로 발달된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실행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봉건제와 지방자치는 유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현대의 지방자치는 중앙과 지방의 괴리가 생기는 중앙집권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봉건제보다 좀 더 체계적인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군주에 의한 독재인데, 군주는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체계화된 관료제에 의해 견제받기도 했다. 차라리 독재라고 하면 봉건제의 영주가 정말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대로 독재를 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은 중앙집권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3. 장점
3.1. 적은 국가 혼란
중앙집권제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다. 봉건국가에서는 왕권이 중앙집권국가의 왕권보다는 강하지 않다. 제후의 권력이 왕권보다 강해지거나, 군주가 제후들을 제어할 힘이 없어 제후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는데도 막지 못하면 그야말로 군웅할거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렇게 되면 잦은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일본의 센코쿠 시대가 그러한 봉건제의 전쟁시대였다[1].중앙집권제는 군주라는 가장 강력한 관리감독자가 버티고 있어 각 지역의 백성들이 과도하게 수탈 당하는 일이 비교적 적었다. 만일 지방의 관리가 백성들을 수탈하는 일이 생기면 중앙정부에서 암행어사 같은 감시인을 보내 파직할 수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견제수단이 존재했다.3.2. 의사결정과 결정사항의 빠른 시행 속도
봉건제는 제후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중앙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면 신하 간 분쟁이 일어나도 왕이 의견을 잘 조합해서 결론을 내리면 된다. 시행할 때도 중앙에서 하라고 하면 지방의 관리들은 따라야 한다. 봉건제의 제후처럼 "나 이거 안 할래." 혹은 "우리 영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하고 버티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3.3. 국가 단합력 증대
권력이 중앙에 모이는 것과 같이 국가의 모든 부와 군사력, 역량이 한 곳에 집중되며, 의견 또한 하나로 모아지기 쉽기에 국정 진행 방향을 정하고 모든 국민이 그에 따르면 패권 확장에 도움이 된다.4. 단점
4.1.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
통신, 교통 기술이 부족했던 과거에 거리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현대인의 상상 이상이었다. 중앙 정부가 지방에서 세금을 걷으려 해도 걷은 세금보다 이동하는 비용이 더 큰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실제로 조선은 세금 운송 경로로 육로보다 해로를 선호했는데, 육로를 통해 세금을 운송할 경우 이동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전부 써버렸기 때문이다.이러한 시대적 환경 탓에 무리하게 중앙집권을 하느니 차라리 각 지방의 실력자에게 자치권을 주어 자기 동네는 자기가 알아서 다스리도록 하는 봉건제가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였다. 한국, 중국, 베트남 역시 이런 점을 알고 있었으나, 그에 따른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체제를 안정시키고자 중앙집권제를 채택한 것이다.[2]
4.2. 비대해지는 수도권
봉건 영토에서 태어난 백성들은 죽거나 이사해봤자 끽해야 영지 안에서 왔다갔다했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도 제한되었기에 수도가 비대해지는 일은 없었다.그러나 중앙집권국가는 봉건국가보다는 이동의 자유가 있었고, 특히 오랜 중앙집권 역사를 가진 중국이나 한국은 수도와 대도시 집중이 심한 편이다. 중국의 장안은 이미 당나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조선 속담에도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지방의 인구는 줄고 수도와 대도시의 인구는 늘어나 도회지를 중심으로 많은 사회간접자본이 생겼고, 역설적으로 이 측면에서 지방 불균형이 생겨 결과적으로는 혜택도 대도시에 편중되었다.
5. 역사
자발적인 봉건제 국가도 있었지만, 왕권이 무너지면서 여러 제후가 왕을 자칭하며 난립한 군웅할거의 시대가 시작되어 부득이하게 봉건제 국가가 된 사례가 많다.5.1. 중국
자세한 내용은 군현제 문서 참고하십시오.기원전 11세기에 주나라가 세워지며 봉건제가 실행되었다. 여러 제후에게 분봉하여 지방의 통치권을 주었고, 왕은 수도 주변의 직할령만 다스리고 여러 제후가 나머지 지방을 다스렸다. 그러나 견융의 침입을 받아 주나라가 사실상 멸망하고, 주 왕실만 간신히 낙양으로 이동해 동주시대에 접어들었다. 약체가 된 주나라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나, 여전히 명분은 중요했다. 제후들이 서로 앞다투어 자처하여 '나야말로 주 왕실을 지킬 적임자다[3]'하고 나섰고, 제후국들은 경쟁하듯 군사력을 양성한다. 겉으로는 신하로서 왕을 모시겠다는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허수아비가 된 주왕을 핑계 삼아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제후들은 주나라 왕이 준 작위를 버리고 '나도 왕이다' 하며 칭왕하며 서로 자기들이 천하통일을 하려고 싸웠다. 자기들도 제후를 세워 이런 사태가 초래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 제2의 전국시대를 막기 위해서는 왕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각각의 방식으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려 하였다.
진(秦)나라 효공 때의 개혁가 상앙은 군현제를 제안했고 곧 진나라에서 시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진나라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속에서 단결된 국력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진시황 대에는 결국 통일에 성공한다. 이 시기 진나라의 고도화된 행정을 두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진나라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상 최초의 국가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진시황은 완전히 봉건제를 폐지하고 당시 재상이었던 이사가 상앙의 군현제를 조금 손 봐서 전국적으로 군현제를 확대실시한다.
진시황 사후, 진나라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며 영자영 때 봉건제로 돌아가고, 한왕 유방과 초패왕 항우 등이 나와 전쟁을 벌인다. 그렇게 주나라의 악몽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항우에 의해 진나라가 완전히 멸망하고, 전한이 통일한 다음 군현제를 손보아 군국제를 만든다. 반은 봉건제, 반은 군현제로 통치하는 것이다. 제후왕을 분봉하는 것은 봉건제와 비슷하나, 황제의 직할령에서는 중앙집권적 통치를 바탕으로 사실상 군현제를 실시한 것이다. 군국제는 전한 경제 때 오초칠국의 난이 터진 후 무제가 제후왕들의 권한을 크게 축소하면서 유명무실해진다. 전한의 중앙집권과 행정력은 고대 세계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인구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할 정도였다. 그 기록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당시 전한 조정이 파악한 6천만에 가까운 인구는 후세의 추정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후 후한 말 십상시의 난이 일어나 이는 군웅할거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삼국 정립 이전까지 봉건제로 돌아갔다가 헌제가 조비에게 선양한 이후에는 오나라를 제외하고 조위와 촉한에서는 모두 군현제를 실시한다.
서진은 조위의 제도를 이어받아 통치했는데, 얼마 안 가 팔왕의 난이 터지면서 봉건제로 돌아갔다가 동진시대에 가서야 겨우 다시 군현제를 시행한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진나라 통일 이후부터는 계속 중앙집권국가였지만, 혼란한 시대가 올 때마다 봉건제 비슷하게 돌아가곤 했다. 당나라 때도 번진들이 난립하다 오대십국시대에 들어섰고, 봉건의 역사가 완전히 끊기고 중앙의 통치가 계속된 것은 송나라 때부터였다. 이 때부터 원, 명, 청까지 이어지다가, 약 1,200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청말 변법운동 시대였는데, 중국 신지식인들이 유럽 국민국가들의 지방자치 및 법치주의 전통에 주목하고 입헌군주정을 추구하면서 "봉건"을 거론하며 지방자치의 확대를 주장하였다. 이는 각각 국회와 지방의회 역할을 하였던 자정원과 자의국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입헌 자체는 저지되면서 부분적 성과만 거두었고, 이렇게 개혁이 불발된 반동으로 추진력을 얻은 것이 바로 청조와 옛 중국 그 자체에 대한 타도였던 신해혁명이었다. 문제는 당초 구상과 달리 이해와 견해가 엇갈리는 각 지방세력이 패권을 다투면서 북양정부의 군벌시대가 개막되었다는 점인데, 그 붕괴 후 혼란기 속에서 당대 중국인들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겪고 만다.
1940년대 이후로는 군벌이 완전히 소멸되고 공산화하면서 중국의 마지막 봉건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세월이 흘러 대만이 장제스의 독재정치에 따른 영향으로 중앙집권체제의 흔적 자체는 적지 않게 남아있으면서도 지방자치가 실행되는 반면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인 탓에 아직도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고수하고 있다.
5.2. 한국
한국사의 고대국가 발전단계 분류에 대한 다양한 학설 | ||||
나(那) 성읍국가, 군장사회 부족국가 | → | 나부(那部)체제 연맹왕국 부족연맹왕국 | → | 중앙집권국가 |
일찍이 원삼국시대의 연맹왕국들이 존재했었고, 고구려 오부 등과 같은 지방 통치제도도 있었다. 원삼국시대에는 수많은 성읍국가가 있었고 이들은 연맹왕국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한국사의 국가 발전 단계는 성읍국가(군장국가) 다음이 연맹왕국, 다음이 중앙집권국가라고 보는데, 성읍국가 중에서도 연맹왕국이 되지 못한 국가들은 결국 도태되고, 연맹왕국 중에서도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국가는 또 도태되어 최종적으로 중앙집권국가가 된 고구려, 백제, 신라만이 삼국시대를 이루었다. 대표적으로 부여와 가야는 연맹왕국 단계에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멸망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국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는데, 불교와 유교를 수용하고, 율령을 반포하며 서로 연합도 하고 북방 국가와 왜를 끌여들이기도 하고 치고 받고 싸우며 각자의 왕권을 강화시켰다.
고구려, 백제는 4세기경부터, 신라는 5세기경부터 지방관을 파견했다. 백제의 22담로제도 바로 그런 것이다.
한민족의 국가들은 4세기경부터 이미 중앙집권제가 자리잡았지만 9세기 중후반부터 통일신라의 왕권이 급격히 무너지며 신라는 도시국가 수준으로 줄어들고, 나머지 지역은 성주를 자처하는 호족들이 일어나 자기 근거지를 직접 다스리면서 봉건국가가 되어버린다.
이런 난국을 통일한 고려도 사실상 지방은 호족이 다스리는 봉건제 비슷하게 굴러갔다. 관료에게 봉토를 분봉하고 수조권을 준 것이다. 그러나 고려 말, 이성계를 위시한 신진사대부는 토지개혁을 이루어 과전법을 도입, 관품에 따라 경기도의 토지에 한하여 수조권을 부여한 것이다.
조선이 개창된 후에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중앙집권제를 확립하였고, 세조 때에는 재직 중인 관료에게만 주는 직전법, 성종 때에는 국가에서 직접 수취하여 나눠주는 관수관급제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전근대 국가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토관 제도나 향약같은 지방자치적인 면도 갖추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8년 제헌 헌법에서는 지방자치를 명시해두었으나 지방의회에 한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한 것이었고, 시장, 교육감 등은 중앙정부에서 파견하였다. 그랬다가 5.16 군사정변 이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발동하여 지방자치는 통일 이후에 시행한다고 미뤘다.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드디어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고[4] 현재 서울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 시장, 군수, 교육감은 모두 지역민들이 뽑는 민선이다.
5.3. 일본
여러 소국이 난립하다 고훈 시대에 이르러 야마토 왕권의 동정(東征) 이후 점점 중앙집권적 요소가 갖춰지다가, 8세기 율령제 반포 후 완전히 중앙집권국가가 되었지만 10세기부터 덴노가 실권을 잃고 지방의 실력자 다이묘들이 등장하면서 봉건제의 길을 간다.약 1,000년간 메이지 유신 때까지 봉건제가 유지되었다. 에도 막부 이래 어느 정도 중앙에 권력이 집중되었으나, 완전히 중앙집권국가가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에도 막부의 봉건제는 한나라의 군국제와 유사했다. 완전히 중앙집권국가가 된 것은 메이지 유신 때 폐번치현을 단행하고 제국헌법을 제정하면서였다. 봉건제 국가에서 바로 입헌군주제 국가로 바뀐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그런데 일본이 곧장 입헌군주정으로 전환한 것은 앞서 유럽이 역사적으로 거쳐온 과정에 대한 지식을 접하고 단기간에 이행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럽 각국은 봉건제를 해체하고 헌법을 제정하기 전까지 절대왕정이라 불리는 시기를 거쳤으나, 그 시대에도 유럽 군주권은 각종 법률적·정치적 제약에 묶여 있었다.
서유럽의 절대왕정은 지방분권적 세력의 또다른 한 축을 맡았던 코뮌이나 자유도시의 시민계급이 군주와 연대하면서 출현한 체제였고, 이는 여러 법률적 계약을 토대로 유지되었다. 즉, 각 도시는 군주에게 납세와 병역을 대가로 자치권을 얻었던 중세 코뮌의 전통이 국민국가의 성립과 맡물려 전국 단위로 확대되어간 결과물이었다. 이 점은 연이은 실정으로 군주권의 정당성이 훼손되고 권력 균형이 무너졌던 프랑스 대혁명 직전 상황에서 삼부회나 국민의회의 저항으로 과세가 좌절되었던 프랑스 왕국이나 황권 강화에 대한 견제와 반발 속에서 이를 무마하고자 황제 스스로 제국의회에서 많은 로비를 해야 했고 그런데도 끝내 제국 단위 국민국가화에는 실패했던 신성 로마 제국 등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단기간에 입헌군주정으로 전환한 일본도 헌법은 명목상으로 존재할 뿐 실상은 지역적 기반과 계급적 기반을 나누어 점유한 일본군 육해군, 문민정부를 장악한 관료집단, 이들과 연결점을 지닌 재벌, 그리고 이들의 관계 위에서 조종하고 군림하던 천황 등이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해체된다.
5.4. 유럽
유럽에서도 중앙집권의 역사는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 일찍 출현한 지방분권 전통이 훨씬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관해서는 도시, 코뮌, 자유도시, 봉건제, 영주(중세), 영지(역사) 등 관련 문서들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유럽의 중앙집권제 시초는 고대 로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공화정치 하에서 독특한 관료제를 발전시켜온 로마 공화국은 영역을 확대하고 패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각 지방에 총독 파견을 확대하였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그러한 중앙집권화가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도시 로마가 처음 탄생할 적부터 나타난 지방분권적 전통이 강했는데, 제국 안보에 특히 중요한 몇몇 속주에 중점적으로 군단이나 행정관을 파견하였고, 그 외에는 치안을 비롯한 지방행정과 그에 따른 비용소모의 적지 않은 부분을 토호세력이 담당하였다. 통상 '황제'라 번역되는 로마의 Princeps는 중화 황제와는 달리 명목상 왕이 아니라 공화국(Res publica)의 수령(Princeps)이었기에[5] 필요하다면 이 지위조차 복수의 공동황제 및 부제를 두는 식으로 권력을 분할하였다. 이 역시 기술과 교통, 관료집단[6] 등의 한계로 어쩔 수 없었던 것인데, 앞서 급격한 중앙화를 경험한 전국시대 중국 왕조들이나 비슷한 시기인 전한의 중앙집권이 초월적일 정도로 고도화되었던 것이며 로마 또한 당대의 기준으로 대단히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을 이루었다. 참고로 한나라는 영토가 매우 광활했음에도 한나라 귀족들의 장원 규모는 로마 귀족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10분의 1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중앙집권은 고대 말 제국의 발전을 따라잡아가는 주변 세력의 압력 증대와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버티지 못한 지방세력의 이탈로 말미암아 서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동로마 제국에 한정적으로 존속하게 되었고, 서유럽에서는 봉건제가 자리잡았다. 고대 로마에서 이미 선보인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의 균형적인 발달은 중세 동안 사회경제적 발전을 겪으면서 자유도시 등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이들이 군주와 결탁하여 절대왕정으로 이행하면서 비로소 다시 출현하였으며, 그 즈음 각 지역통치자로 군림하던 귀족들이 보유하였던 여러 작위는 중국에서의 '진왕', '오왕' 등과 마찬가지로 비통치자로서 명예로운 칭호로만 기능하였다.
6. 공산주의 국가의 중앙집권제
민주주의중앙집권제(民主主義中央集權制) 혹은 민주적 중앙집권제(民主的中央集權制) 즉, 민주집중제를 이른다. 민주주의와 중앙집권제가 합쳐진 개념인데, 보통 공산국가에서 채택한다.이렇다 보니 공산국가에서는 지방자치가 대부분 허용되지 않고 중앙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이는 일당독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언어별 표기 #==
중국어 | [ruby(中, ruby=zhōng)][ruby(央, ruby=yāng)][ruby(集, ruby=jí)][ruby(权, ruby=quán)][ruby(制, ruby=zhì)] [중양지취안즈] | ||||
일본어 | [ruby(中, ruby=ちゅう)][ruby(央, ruby=おう)][ruby(集, ruby=しゅう)][ruby(権, ruby=けん)][ruby(制, ruby=せい)] [주오슈켄세이] | ||||
영어 | centralism | ||||
프랑스어 | centralisme | ||||
스페인어 | centralismo | ||||
독일어 | Zentralịsmus |
7. 오늘날 중앙집권 성향이 강한 국가
- 니카라과
- 대만
- 대한민국
- 라오스
- 러시아
- 몽골
- 멕시코
- 미얀마
- 바티칸
- 방글라데시
- 북한
- 베네수엘라
- 베트남
- 벨라루스
- 스리랑카
- 아이티
- 오만
- 우크라이나
- 엘살바도르
- 영국[7][8]
- 이란
- 이집트
- 인도네시아
- 이집트
- 일본
- 중국
- 중앙아시아 5개국
- 카프카스 3개국
- 캄보디아
- 콜롬비아
- 쿠바
- 태국
- 튀르키예
- 파라과이
- 페루
- 포르투갈
- 폴란드
- 프랑스
- 필리핀
[1] 반면 중앙집권제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조선은 센코쿠 시대의 일본과는 달리 오랜 평화를 누렸다. 그래서 임진왜란 시절, 조선에 항복한 일본군인 항왜들은 조선과 일본을 비교하며 "조선은 낙국(즐거운 나라)이며, 일본은 더러운 나라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다.[2] 중국은 땅이 넓어서 변방의 소수민족에게 자치를 허용했으며, 광저우같이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에 서양세력과의 교류를 위해 공행 같은 자치적인 무역창구 역시 마련하였다. 고려나 조선도 강동 6주, 동북 9성, 4군 6진 같이 행정력이 닿기 어려운 지역은 정복을 위해 보낸 윤관, 조위총 같은 군사령관을 통해 자체적인 군정을 실시하거나 개척민의 우두머리나 장로, 아니면 여진족 추장에게 고을 수령직을 제수하는 토관 제도를 실시했고 행정력이 닿는 곳에도 유향소를 설치하고 향약 같은 자치 규약을 마련하는 등 지방자치 정책도 일부 시행하였다. 베트남은 기존의 영토보다 새로 정복해 편입한 영토가 훨씬 넓어 세도 가문 둘이 기존 영토와 새로 개척된 영토로 나뉘어 지배하는 남북조 시대가 열린다.[3] 이를 존왕양이라고 한다.[4] 최종적인 지방자치의 실현은 지방자치단체장을 지역민들이 뽑는 민선이 시작된 1995년이다.[5] Princeps는 Primus(맨 앞)와 -ceps(움켜쥐는 자, 취하는 자)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따라서 각각 首(머리 수), 領(거느릴 령)로 치환하여 수령(首領)으로 직역할 수 있다. 물론 명목이 아닌 실질로 따지면 로마의 수령이 곧 로마 왕과 다를 바 없었고 희랍인들도 실상을 주목하여 이 직위를 바실레우스(왕)라 번역했지만, 로마의 수령이 중국 황제보다는 인민과 군대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6] 존 힉스는 이에 대해 로마의 고대 관료제는 중국만큼의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제국의 기반이 붕괴되는 데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더 열악한 체제인 봉건제가 이를 대신하였다고 지적하였다.[7] https://www.newstatesman.com/spotlight/2021/05/the-uk-is-one-of-the-most-centralised-advanced-democracies-its-time-that-changed[8] https://www.centreforcities.org/?post_type=publication&p=4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