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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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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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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5부) 5부 3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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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5부) 5방 22담로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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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5경 15부 62주
통일신라
9주 5소경
(685년신문왕-995년고려 성종)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10도
(995년성종-1012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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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기 5도 2계(면)
(1012년현종-1413년조선 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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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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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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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8도
(1413년태종-1895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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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부
(1895-96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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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3도
(1896년고종-1910년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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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도
(1910-45년)
남북​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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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colbgcolor=#fee,#300>파일:북한 국기.svg 북한<colbgcolor=#eef,#003>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6도
(38선 이북 경기도를 황해도로 편입, 강원도(북한) 설치 / 1945-46년)
8도
(38선 이남 황해도를 경기도로 편입 / 1945-46년)
1특별시 6도
(평양시평양특별시(승격) / 1946-49년)
1특별자유시 9도
(서울시→서울특별자유시(승격), 제주도 설치 / 1946-49년)
1특별시 7도
(자강도 설치 / 1949-51년)
1특별시 9도
(서울특별자유시→서울특별시(개칭) / 1949-63년)
1특별시 7도 1지구
(개성지구(도급) 설치 / 1951-52년)
1직할시 7도 1지구
(평양특별시를 직할시인 평양시로 개편 / 1952-54년)
1직할시 9도 1지구
(량강도 설치, 황해남도·황해북도 분도 / 1954-57년)
2직할시 9도
(개성지구를 직할시인 개성시로 승격 / 1957-60년)
3직할시 9도
(함흥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60-63년)
19​63​년
~
19​95​년
4직할시 9도
(청진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63-70년)
1특별시 1직할시 9도
(부산시를 직할시인 부산시로 승격 / 1963-81년)
2직할시 9도
(함흥시·청진시를 일반시로 격하 / 1970-77년)
3직할시 9도
(청진시를 직할시로 재승격 / 1977-79년)
4직할시 9도
(남포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79-85년)
1특별시 3직할시 9도
(부산시→부산직할시(개칭), 대구시·인천시→대구직할시·인천직할시(승격) / 1981-86년)
3직할시 9도
(청진시를 일반시로 재격하 / 1985-2000년)
1특별시 4직할시 9도
(광주시→광주직할시(승격) / 1986-89년)
1특별시 5직할시 9도
(대전시→대전직할시(승격) / 1989-95년)
19​95​년
~
1특별시 5광역시 9도
(지방자치제 실시 및 행정구역 대개편 / 1995-97년)
4직할시 9도
(라선시를 직할시로 승격 / 2000-03년)
1특별시 6광역시 9도
(울산시→울산광역시(승격) / 1997-2006년)
3직할시 9도
(개성시를 특급시로 격하 / 2003-04년)
1직할시 9도
(남포시·라선시를 특급시로 격하 / (2004-10년)
1특별시 6광역시 8도 1특별자치도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개편) / 2006-12년)
3직할시 9도
(남포시·라선시를 직할시로 재승격 / 2010-19년)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8도 1특별자치도
(연기군 폐지 및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 2012-23년)
4직할시 9도
(개성시를 직할시로 재승격 / 2019년- )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7도 2특별자치도
(강원도강원특별자치도(개편) / 2023-24년 )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6도 3특별자치도
(전라북도전북특별자치도(개편) / 20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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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도(道)2.2. 부(府)2.3. 도(島)2.4. 읍면
3. 부읍면 산하4. 변천
4.1. 부군면 통폐합 이전 (1910~1914)4.2. 부군면 통폐합 (1914)4.3. 통폐합 이후 (~1945)

1. 개요

파일:Administrative_Map_of_Chōsen_(1917).svg
1917년 기준 조선의 행정구역
파일:Egp3Q2dVgAU023g.jpg
일제강점기 당시 부 휘장[1]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에 대해서 다루는 문서.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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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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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20군
경성부 인천부 개성부
고양군 부천군 개풍군 시흥군 수원군 평택군 안성군 용인군 이천군 금포군 강화군 파주군 포천군 연천군 광주군 양평군 양주군 가평군 여주군 장단군
충청북도
10군
영동군 옥천군 보은군 청주군 괴산군 제천군 단양군 음성군 진천군 충주군
충청남도
1부 14군
대전부
대덕군 공주군 연기군 논산군 부여군 서천군 보령군 홍성군 청양군 서산군 당진군 예산군 아산군 천안군
전라북도
2부 14군
군산부 전주부
옥구군 완주군 익산군 김제군 고창군 정읍군 금산군 진안군 남원군 부안군 임실군 순창군 무주군 장수군
전라남도
2부 21군 1도
광주부 목포부
광산군 무안군 나주군 화순군 곡성군 담양군 여수군 함평군 영광군 광양군 고흥군 보성군 강진군 해남군 장성군 구례군 장흥군 완도군 진도군 순천군 영암군 제주도
경상북도
1부 22군 1도
대구부
달성군 경산군 영천군 경주군 영일군 영덕군 영양군 청송군 안동군 의성군 군위군 칠곡군 김천군 상주군 예천군 영주군 봉화군 문경군 성주군 고령군 청도군 선산군 울릉도
경상남도
3부 19군
부산부 마산부 진주부
동래군 창원군 진양군 울산군 창녕군 사천군 하동군 거창군 고성군 통영군 함양군 합천군 의령군 함안군 산청군 김해군 밀양군 양산군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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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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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2부 14군
평양부 진남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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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1부 19군
신의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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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3부 16군
원산부 함흥부 흥남부
문천군 함주군 신흥군 고원군 홍원군 북청군 혜산군 풍산군 안변군 영흥군 정평군 이원군 단천군 갑산군 삼수군 장진군
함경북도
3부 11군
청진부 나진부 성진부
부령군 경흥군 학성군 명천군 회령군 종성군 경성군 길주군 경원군 온성군 무산군
※ 1945년 8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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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은 일본 제국시정촌 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되었다.
광복 직전 조선의 행정구역은 13도 - 22부 218군 2도 - (8구) - 123읍 2166면이었다.

2.1. 도(道)

조선 8도가 이조 말기에 경상, 전라, 충청, 평안, 함경이 남북으로 나뉘면서 13도가 되었는데, 이 도 자체는 한일병합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에 의해 도의 장관은 관찰사(觀察使)에서 도장관(道長官)으로 고쳤다가, 1919년에 도지사(道知事)로 고쳤다. 헌병경찰이 폐지되면서 도지사가 경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1920년 10월 1일, 아직 효력을 유지하던 대한제국 지방비법(地方費法, 융희 3년 법률 제12호)이 폐지되고 조선도지방비령(朝鮮道地方費令, 다이쇼 9년 제령 제15호)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도의 예산에 대한 도지사의 자문에 응하기 위한 기관으로 도 평의회가 설치되었다.

1933년 4월 1일, 조선도지방비령이 폐지되고 도제(道制, 쇼와 5년 제령 제15호)가 시행, 도는 지방자치단체가 되면서 일본 행정구역 체계에 더 깊이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도 평의회가 폐지되고 의결기관으로서 도회(道會)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도지사는 여전히 관선이었고[2], 도회 의원은 3분의 1은 도지사가 임명하고 3분의 2만이 선거로 선출되었고, 이마저도 부회・읍회・면협의회 의원에 의한 간접 선거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도의 자치권은 상당히 제한되었다. 1933년의 조선도제 시행 후에는 도가 내지의 도부현과 동일한 지위를 얻었으므로 홋카이도와 함께 일본 내에는 14개의 도가 있게 되었다.

2.2. 부(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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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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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안남도
파일:경성부 휘장(1925-1945).svg파일:제2기 경성부 휘장_White.png 파일:인천부 휘장.svg파일:인천부 휘장 화이트.svg 파일:개성부 휘장.png파일:미수복 경기도 개성시 휘장.svg 파일:신의주부 마크(1929~?).png파일:신의주부 화이트.svg 파일:평양부 마크(1922~?).png파일:평양부 로고_White.png 파일:진남포부 휘장.svg파일:진남포부 휘장 화이트.svg
경성부 인천부 개성부 평양부
함경북도 함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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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부 나진부 성진부 원산부 함흥부 흥남부
황해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파일:해주부 마크(1939~?).png 파일:대전부 휘장 2기.svg파일:대전부 휘장 2기 화이트.svg 파일:군산부 마크(1928~?).png 파일:전주읍 마크(1930~?).png 파일:목포부 마크(1926~?).png 파일:광주부 휘장.svg파일:광주부 휘장 화이트.svg
해주부 대전부 군산부 전주부 목포부 광주부
경상남도
파일:대구부 마크(1927~?).png파일:대구광역시 휘장(일제강점기~1996)_White.svg 파일:부산부 휘장.svg파일:부산부 휘장 화이트.svg 파일:마산부 휘장.svg파일:마산부 휘장 화이트.svg 파일:진주부 마크(1940~?).png
대구부 부산부 마산부 진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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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읍면(府邑面)이 일제강점기 조선의 기초 행정 단위였다. 이는 본토의 시정촌(市町村)에 그대로 대응되는 단위로, 부는 내지의 시, 읍은 정, 면은 촌에 해당하였다. 이렇게 조선의 행정 체계를 일본 내지와 일치되게 하였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군(郡)이 단위로만 남아 있고 행정 기능은 없는 반면, 조선에는 군청이 있었다. 다만 일본식 행정체계를 채택하다 보니 군수의 권한은 오늘날 대한민국보다는 훨씬 약한 편이었다. 덤으로 총독부는 궁극적으로 조선에서도 군청을 없애고 도 아래 부읍면 체제로 이행하려 했으나, 그 전에 해방되어 실패한다.

부(府)는 처음에는 대한제국의 부를 계승했다가, 1914년 3월 1일의 행정 구역 조정, 같은 해 4월 1일에 부제(府制, 다이쇼 2년 제령 제7호)가 시행됨에 따라 일본의 시(市)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이 되었다. 부의 장관은 대한제국과 마찬가지로 부윤(府尹)이고, 부윤의 자문에 응하기 위한 부 협의회가 설치되었다. 처음 부제는 경성부, 인천부, 군산부, 목포부, 대구부, 부산부, 마산부, 평양부, 진남포부, 신의주부, 원산부, 청진부 12개 지역에 시행되었다.

1931년 4월 1일, 부제가 개정(쇼와 5년 제령 제11호)되어, 부 협의회가 폐지되고 주민 직선의 의결기관인 부회가 설치되었다. 이로서 부의 자치권이 확대되어 내지의 시와 동등한 자치권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 이후 공업화가 진전되자 공업지역이나 발전하는 지역을 위주로 부를 더 늘려 1930년에는 개성과 함흥을 부로 승격하였으며 1935년에 대전과 광주와 전주를, 1936년 나진을, 1938년 해주, 1939년 진주, 1941년 성진, 그리고 일본 패망 직전인 1944년 10월 1일에 흥남을 부로 승격하여 최종적으로 22개 부 체제에서 일제 통치가 마무리되었다.

2.3. 도(島)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인 제주도울릉도를 관할하던 행정구역이다. 1915년 5월 1일, 도(島)제를 도입하며 전라남도 제주군경상북도 울도군을 각각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경상북도 울릉도로 개편했고, 군청을 도청(島廳)으로, 군수를 도사(島使)로 개칭했다.

참고로 당시 독도는 1905년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에 강제 편입된 뒤 울릉도에서 관할하고 있지 않았다. 1939년 4월 24일에는 시마네현 고카무라(五箇村)에 편입되었다.

2.4. 읍면

읍(邑)은 면 중에서 사람이 몰리고 부보다는 규모가 작은 지역에 설치하였다. 면(面)은 당시까지도 농촌이 중심이 되었던 조선 내에서 가장 많고 기본적이던 행정 단위로서, 대부분 면 체제를 따랐다.

대한제국 시절까지만 해도 군 산하의 단순한 방위 구분으로 쓰였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기존 방,사 등을 면(面)으로 통일하였고, 1917년 10월 1일, 면제(面制)를 시행하여 지정면(指定面)과 보통면(普通面)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면 가운데 일부를 조선총독이 지정면으로 했다. 많은 수의 지정면이 일본인 다수 거주지역을 위주로 지정되었다.

1931년 4월 1일, 면제를 읍면제로 개정하면서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1939년 읍 승격)을 제외한 모든 지정면으로 개편했다.

3. 부읍면 산하

부읍면 아래에는 본래 동리(洞里)가 기본이었지만, 점차 일본식으로 바뀌어 갔다. 1914년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정-정목으로 바꾸었고, 1936년에는 부 이하 모든 동리를 정-정목으로 바꾸었다. 기존엔 동을 리로 세분화했지만, 이로서 동은 정(町)으로, 리는 정목(丁目)으로 바뀌었다. 물론 대부분의 지역에선 여전리 동리 체제로 1945년까지 간다.

4. 변천

4.1. 부군면 통폐합 이전 (1910~1914)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한국통감부가 내정 간섭의 일환으로 1906년부터 1910년까지 월경지 및 땅거스러미를 정리하였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일본 제국한일병합조약이 체결(경술국치)되면서, 한국은 조선으로 개칭되었다.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朝鮮総督府地方官官制, 메이지 43년 칙령 제357호)가 공포되어 다음날인 10월 1일 조선총독부 출범과 함께 행정구역이 임시조치로 개편되었다. 그에 따라 대한제국의 지방관관제(地方官官制, 융희 원년 칙령 제40호)와 한성부관제(漢城府官制, 융희 원년 칙령 제38호)가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도의 수장은 관찰사(觀察使)에서 도장관(道長官)으로 개칭되었다.
급이었던 한성부경기도 산하 경성부로 이관하였고, 일본인 인구(밀도)를 기준으로 일부 부를 군으로 격하시키거나 일부 군을 부로 승격시켰다. 또한 인천부를 제외한 개항장 부명을 기존 지명에서 개항장 지명으로 바꾸었다.[3]

한성부경기도 경성부
전라북도 옥구부 → 전라북도 군산부
전라남도 무안부 → 전라남도 목포부
경상남도 동래부 → 경상남도 부산부
경상남도 창원부 → 경상남도 마산부
평안남도 삼화부 → 평안남도 진남포부
함경남도 덕원부 → 함경남도 원산부
함경북도 성진부 → 함경북도 성진군
함경북도 경흥부 → 함경북도 경흥군
평안북도 용천부 → 평안북도 용천군
경상북도 대구군 → 경상북도 대구부
평안남도 평양군 → 평안남도 평양부
함경북도 부령군 → 함경북도 청진부

1911년엔 시흥군[4]에서, 1912년에 안산군양천군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동리 통폐합이 진행되었다.

부군면 통폐합 이전엔 13도 12부 317군이었으며, 행정구역 체계는 - / - (/방(坊)/사(社) - / 순서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한제국의 행정구역 체계를 잠깐 유지하는 임시조치였다.

4.2. 부군면 통폐합 (1914)

조선총독부1914년 3월 1일,4월 1일에 걸쳐 전국적으로 행정구역 통폐합인 부군면 통폐합을 실행했다.

대한제국의 지방자치는 지역 유지들이 참석하는 향회가 전부였는데, 부군면 통폐합과 함께 대한제국의 잔재로서 향회 제도는 폐지되었다. 실제로는 도시지역의 지방행정을 대표하여 일본인 부윤(府尹)과 일본인 상공회의소가 협의하는 변칙적인 지방자치가 실행되고 있었다.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하여 기존 행정구역 체계가 대폭 개편되었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부군면 통폐합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부군면 통폐합#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부군면 통폐합#|]]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3. 통폐합 이후 (~1945)

1915년 5월 1일, 도(島)제를 도입하며 전라남도 제주군경상북도 울도군을 각각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경상북도 울릉도로 개편했고, 군청을 도청(島廳)으로, 군수를 도사(島使)로 개칭했다.

1917년 10월 1일, 면제(面制)를 시행하여 지정면(指定面)과 보통면(普通面)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면 가운데 일부를 조선총독이 지정면으로 했다. 많은 수의 지정면이 일본인 다수 거주지역을 위주로 지정되었다.

1919년, 간성군고성군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도장관이라는 호칭이 도지사로 개칭되었다.

1920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문화통치 정책을 따라 매우 제한적인 지방자치제(금권선거→지방의회)가 시행되었다.

1930년 10월 1일,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과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이 각각 개성부함흥부로 승격되었다. 기존 개성군은 개풍군으로, 함흥군은 함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31년 4월 1일, 면제를 읍면제로 개정하면서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1939년 읍 승격)을 제외한 모든 지정면으로 개편했다. 또한 부의 자치권도 확대되었다.

1933년 4월 1일, 도제(道制)가 실시되었다.

1935년 10월 1일, 충청남도 대전군 대전읍, 전라북도 전주군 전주읍,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이 각각 대전부, 전주부, 광주부로 승격되었다. 기존 군들은 각각 대덕군, 완주군, 광산군으로 개칭되었다.

1936년 10월 1일, 함경북도 경흥군 나진읍이 나진부로 승격되었다.

1936년에 부역 확장이 있었고, 평안남도 평양부를 제외한 부 이하 모든 동리를 정으로 바꾸었다. 이전에 동리통폐합을 할 때부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정(町)으로 바꾸며 이화 및 차별 기조에서 동화 기조로 바꿔 피지배민족의 민족성을 말살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1938년, 진위군평택군으로 개칭되었다.

1941년 10월 1일, 함경북도 성진군 성진읍을 성진부로 승격하였다. 기존 군은 학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42년, 원산부의 농촌 지역이었던 덕원군함경남도 문천군에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또한 함경북도 갑산군으로부터 혜산군이 분리 신설되었다.

1943년, 경기도 경성부에 최초로 구(區)가 도입되었다. 산하에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영등포구 7개가 설치되었다.

1944년 10월 1일,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이 흥남부로 승격되었다.

1944년 11월, 서대문구로부터 마포구를 분리 신설하였다.


[1] 저 중에서 개성부대구부의 휘장은 8.15 광복 이후에도 사용되었으며, 특히 대구부 휘장의 경우는 1996년까지 사용됐다.[2] 다만 일본 본토 역시 1947년 개헌 전까지 지자체장은 관선이었다.[3] 현대 기준으로 보면 기존 의 이름을 신시가지 지명으로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남시, 고양시를 각각 분당시, 일산시로 바꿔버린 격이다. 이렇게 이름이 바뀐 뒤 8.15 광복 이후에도 해당 명칭이 그대로 이어진다. 동래부가 부산부가 된 것도 동래는 구시가지, 부산은 왜관이 있는 신시가지였기 때문이다.[4] 현재 서울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오리지널 시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