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5 01:42:43

전미 농구 협회

NBA에서 넘어옴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4대 프로 스포츠 리그
농구 미식축구 야구 아이스하키
파일:NBA_2017.png NBA 파일:NFL_Logo.png NFL 파일:MLB Logo.png MLB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05_NHL_Shield.svg.png NHL

미국의 농구 리그
구분 명칭
프로 1군 NBA
동부 컨퍼런스 - 애틀랜틱 / 센트럴 / 사우스이스트
서부 컨퍼런스 - 노스웨스트 / 퍼시픽 / 사우스웨스트
사라진 디비전 - 미드웨스트 (1970년~2004년)
2군 NBA G리그
동부 컨퍼런스 - 애틀랜틱 / 센트럴 / 사우스이스트
서부 컨퍼런스 - 미드웨스트 / 사우스웨스트 / 퍼시픽
서머리그 라스베이거스 / 올랜도 (2018년 폐지) / 유타 (2019년 폐지) / 캘리포니아 (2019년 폐지)
연례 행사 NBA 올스타전 / NBA 파이널 / WNBA 올스타전 / NBA G리그 올스타전
여자부 WNBA
독립리그 IBA / PBL / ABA
대학농구 NCAA Division I / NCAA Division II / NCAA Division III
고교농구 Division I / Division II / Division III
유소년 리틀농구
† NBA와 프로리그를 양분하다 흡수합병당한 ABA와는 별개의 단체로 2000년에 창설되어 지금까지 운영중이다.

파일:NBA_2017.png
1. 소개2. 인기
2.1. 해외에서의 인기
3. 소속 팀4. 상세
4.1. 규칙4.2. 살인적인 일정
4.2.1. 플레이오프
4.3. 서고동저
4.3.1. 개별 사례4.3.2. 원인4.3.3. 비판
4.4. 서머 리그4.5. 샐러리 캡
5. 역사
5.1. 창설 이전5.2. 창설 이후
6. 역대 총재와 커미셔너7. 아시아의 NBA 도전사
7.1. 한국에서의 NBA
8. 역대 파이널 우승 횟수9. 기타
9.1. NBA를 향한 험난한 여정, 콜업과 10일 계약9.2. 생각보다 작은(?) NBA 선수들9.3. NBA선수로서 혜택
10. 관련 문서

1. 소개

NBA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1]

NBA 리그를 운영하는 미국프로농구 협회이자 미국과 캐나다의 30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는 프로농구리그. 원래 NBA라고 하면 이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편의상 이 단체가 주관하는 프로농구 리그를 의미하는 말로도 합쳐진 상황. 사실 NBL과 BAA가 합쳐지면서 둘의 이름을 합치다보니 어쩌다가 리그가 아니라 협회가 되어버렸다. 이름은 전미 농구 협회이지만, 리그의 흥행과 이익을 목표로 하는 프로농구 단체이기 때문에 국가대표 운영과는 관련이 없다.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USA Basketball'이라는 단체에서 관리한다.[2]

2. 인기

1980년대 초반 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라이벌 구도로 시작해서 1980년대 후반 마이클 조던이라는 대스타의 등장으로 최전성기를 누렸다면, 2010년대 중후반에는 스테판 커리르브론 제임스의 대결구도, 그리고 스몰라인업의 부상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현지에서는 NBA의 인기는 마이클 조던 시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 EPL, 프리메라 리가 다음으로 가장 인지도 있고 세계화가 가장 잘 된 미국 프로 스포츠 리그이며, NBA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미국 4대 스포츠 중 최다, 그리고 경기당 영업이익은 이미 MLB를 2배나 뛰어넘었다. 미국의 스포츠 사이트 ESPN이나 사용자가 가장 많은 야후 스포츠 등에서도 NBA는 NFL 바로 뒤에 위치한다.[3]

스타 플레이어의 파워에서도 매우 압도적이다. SNS 팔로워 수[4], 인기면에서 NBA 스타를 압도할 4대 스포츠 스타는 없으며, 쉬운 예를 들면 NHL 스타인 시드니 크로스비는 브루클린 넷츠 에이스인 디안젤로 러셀보다 인기가 떨어지고[5],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는 같은 지역내 크리스 폴[6]에게 인기가 밀리는 현실이다. 또 NFL 스타 중에서도 톰 브래디 등 일부 쿼터백을 제외하면 NBA 스타보다 인기가 현저히 떨어진다. 물론 예외는 있다.[7]

뿐만 아니라 미국인이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 30위 안에 농구선수만 절반이 넘게 포진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스타로 농구의 신이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을 비롯,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등이 최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

전국 중계권 계약에서도 NBA는 MLB보다 2배나 더 높은 계약을 체결했으며, 시카고 컵스가 108년만에 염소의 저주를 깨고 우승했던 2016년을 제외한 5년간의 NBA 파이널 시청률이 월드 시리즈의 시청률보다 높았다.

2.1. 해외에서의 인기

해외에서의 인기 만큼은 MLB, NFL, NHL가 다 덤벼도 NBA를 절대 못 이긴다.[8]

세계적으로 농구는 미국이 만든 구기종목[9]중에서 극강의 인기를 자랑한다[10]. 아프리카만 해도 앙골라케냐탄자니아,나미비아 같은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할 수 없는 나라에까지 NBA에서 자주 팀을 보내 친선경기를 가지는데, 농구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현지에서의 반응은 아주 뜨겁다.[11]

중남미나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 자주 해외 친선경기를 가진다. 스페인이나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터키나 러시아와 유라시아권 및 아랍에서도 자주 친선경기를 하러 갈 정도.[12] 또한, 애덤 실버 NBA 총재가 중국은 NBA에서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아예 매해 중국을 방문할 정도이다. 중국의 농구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며 중국내 농구 인구만 비공식적으로 억대이상이라 한다. 그만큼 인기가 뜨거운데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인구가 바글바글한 대도시가 아닌 지방 도시를 방문해도 몇만 명이 넘치게 몰려들 정도다보니 안타(Anta)나 리닝(Li Ning)같은 중국 스포츠 업계들이 거액을 제시하며, NBA 선수들 스폰서로 나서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제시한 돈이 나이키를 능가하는 수준이라 몇몇 선수가 계약하기도 했다.[* 예시로 안타와 계약한 클레이 탐슨이 있다.
필리핀도 농구 인기가 엄청나서 서민들이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보통 월급 1/3는 내야지 볼 수 있는 친선경기에서도 NBA에서 친선경기하러 왔다하면 매진이 된다. 필리핀은 미국, 중국과 더불어 공식 NBA 스토어가 있는 세 나라 중 한 나라이다.

3. 소속 팀

파일:attachment/NBA_MAP.jpg

2개 컨퍼런스 6개 디비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와일드카드 제도가 폐지되면서 야구, 하키와 달리 디비전의 의미가 대폭 줄어들었다. NHL과 달리 캐나다 소속팀이 토론토 랩터스 하나 뿐이다. 이전에 밴쿠버 그리즐리스가 있었으나 흥행 폭망의 문제로 연고지를 멤피스로 옮겨 이제는 오직 토론토뿐. 나머지는 전부 미국팀이다.

3.1. 동부 컨퍼런스

파일:NBA Eastern Conference logo (2018).png
애틀랜틱 센트럴 사우스이스트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불스 애틀랜타 호크스
브루클린 네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샬럿 호네츠
뉴욕 닉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마이애미 히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인디애나 페이서스 올랜도 매직
토론토 랩터스 밀워키 벅스 워싱턴 위저즈

3.2. 서부 컨퍼런스

파일:NBA Western Conference logo (2018).png
노스웨스트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덴버 너기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댈러스 매버릭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휴스턴 로키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멤피스 그리즐리스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피닉스 선즈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유타 재즈 새크라멘토 킹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3.3. 미드웨스트 디비전

4. 상세

파일:NBA_2017.png
NBA 로고는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활약했던 전설의 슈팅가드 제리 웨스트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13] NBA의 하부리그인 NBA G리그 로고는 그 분을 모델로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고, 딱히 특정 선수의 실루엣을 그린게 아니다.#

4.1. 규칙

NBA의 규칙은 국제 농구연맹 FIBA가 제정한 농구 규칙과 조금 다른점이 있다.
  • 3점슛 라인이 50cm정도 더 멀다. NBA의 3점슛 라인 거리는 7.24m로 한 때는 FIBA의 규정보다 1m나 더 멀었으나, 현재 FIBA나 KBL 모두 3점슛 라인을 50cm정도 늘렸다.
  • 게임시간이 쿼터당 12분. 도합 48분 경기를 한다. 이 때문에 타임아웃도 1개 더 많고, 파울 아웃도 5반칙이 아니라 6반칙이다. 또한 팀 파울 기준도 4개가 아닌 5개이다.
  • 벤치에 총 13명의 선수가 앉을 수 있다.[14]
  • 수비 3초룰이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NBA룰이 FIBA에 흡수되어 국제 공인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중국 CBA 리그외에는 수비 3초룰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 이는 KBL에서도 포기할 정도.
  • 보편적으로 홈 유니폼은 밝은색[15], 어웨이는 어두운 색의 유니폼을 입는다.[16]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이런 홈, 어웨이 유니폼의 구분이 어렵고, 팀별로 워낙 다양한 색상의 유니폼이 있다보니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유니폼 색만으로는 홈, 어웨이를 구분하기 힘든 수준. 가끔은 홈 팀이 어두운 색[17], 원정팀이 밝은색을 입을 때도 있다. 특히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홈 팀이 검정색 유니폼을 입는다. 2017-18시즌을 앞두고는 협회 에디션 - 아이콘 에디션 - 스테이트먼트 에디션 - 시티 에디션으로 유니폼을 정의해서 아예 홈, 원정구분이 사라졌다. 한국 축구에서 정의하는 대로 주 유니폼(협회 에디션), 제 X[18] 보조 유니폼으로 옮기는 게 그나마 정확하다.

NBA의 인기로 인해 표준농구 규칙이 NBA기준으로 바뀐 게 많다. 이전에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1st half, 2nd half로 진행되었으나 4쿼터로 운영되고 매우 익숙한 3점슛 라인도 1979-80 시즌부터 도입하여 활용하던 것을(ABA기준으로는 1961년) 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처음 도입했다.

4.2. 살인적인 일정

NBA는 경기일정이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정규 시즌만 25주간 82경기를 치른다.[19][20] 평균적으로 1주일에 4경기 꼴로 경기를 치른다. 백투백(2일 연속 경기) 일정도 간간히 있다. 경기 시간도 8분 더 많다.[21] 거기에 팀이 많다보니 백투백 경기로 2일 연속 비행기 타고 이동해서 다른 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게 미국 동-서부를 가르는 장거리라도 얄짤 없다. 거기에 플레이오프가 1라운드부터 7전 4선승 제도로 바뀌면서 파이널까지 갈 경우 최대 110경기, 최소 98경기를 소화한다.[22]

이쯤되면 다른 나라들의 리그는 어떤가 싶을 텐데, NBA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벌이는 리그가 한국의 KBL이다. KBL은 22주 동안 54경기. 10개의 팀이 한 팀당 6전로 진행된다. 평균적으로 1주일에 3경기 정도 소화하는데 정규리그 경기수부터 30경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다가, 원정거리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23] 세계 대부분의 농구리그는 1주에 한 경기씩 해서 30경기 안팎을 치른다. 중국은 20개 팀이 38경기.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유럽 상위리그의 경우 한 시즌에 평균적으로 34경기를 소화한다. 유로리그 결승 토너먼트까지 가는 유럽 상위권팀이 유로리그와 자국리그 다 합쳐서 8개월간 60경기 정도 소화한다. 경기 시간까지 감안하여 세계 평균이랑 따졌을 경우 NBA는 거의 3배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한다. 그야말로 지옥의 레이스.[24]

이 때문에 NBA에서도 경기 스케줄 조정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그렉 포포비치같은 몇몇 감독들은 이 지옥 같은 레이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주축 선수에게 휴식 시간을 더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이 설사 NBA 사무국과 NBA 방송사의 심기를 거스르고, 벌금을 먹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이다.

이런 빡빡한 일정이 지켜지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는데 예를 들어 1998-99 시즌은 직장폐쇄로 50경기로 단축되었다. 2011-12 시즌도 직장폐쇄로 66경기만 치뤄졌다.[25][26]

이런 지옥의 일정으로 인해 내외부적으로 불만이 제기되자 2017-18 시즌에는 개막을 앞당기고 백투백 경기를 종전보다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현재 언론, 전문가들을 통해 얘기되고 있는 개선책은 크게 두 방향이다. 1. 경기수 자체를 줄이던가, 2. 18시즌에 시범적으로 한 정책을 확대해서 정규시즌을 연장하고 시범경기를 줄여서 82경기를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치르던가. 다만 현실적으로 1은 불가능에 가까운게 경기수가 줄어들면 입장료 수익+TV중계료+광고료 등 관련 수익이 줄어든다. 이러면 구단주들이 버는 돈이 줄어듬과 동시에 BRI(Basketball related income: 농구 관련 수익)의 특정 %로 정해진 샐러리 캡이 줄어들고, 샐러리캡의 일정 %로 정해지는 최대액수 연봉도 줄어든다. 즉, 관련된 모두가 수익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돈을 벌만큼 번 슈퍼스타들을 제외하곤 이 안에 대해 대부분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크리스 웨버 등 은퇴한 선수들도 "82경기는 전통"이기 때문에 경기수 단축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 실질적으로 계속해서 2번의 방향을 확대하는 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

4.2.1. 플레이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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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Larry O'Brien Trophy)

컨퍼런스별로 1위 vs 8위, 2위 vs 7위 식으로 16강(동부 8팀+서부 8팀)-8강(1,8위전 승리팀 vs 4,5위전 승리팀/2,7위전 승리팀 vs 3,6위전 승리팀)-4강(컨퍼런스 파이널) 토너먼트를 치른 후, 6월쯤 동-서부 컨퍼런스 챔피언팀끼리 챔피언 결정전인 NBA 파이널을 치른다. NBA 파이널에서 우승한 팀은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받는다. 과거 동서부 디비전부터 시작된 NBA는 리그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17개로 팀이 늘어난 1970-71시즌부터 네 개 디비전, 즉 1. 서부해안의 퍼시픽, 중서부의 미드웨스트, 중부의 센트럴, 동부해안 쪽의 애틀랜틱 디비젼으로 개편되어 8강 플레이오프에서 10강, 12강에 이어 1984년에 부전승 제도가 사라지면서 현 16강 플레이오프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후 2004-05시즌부터 샬럿 밥캐츠 (현 샬럿 호네츠)가 창단하며 34년간 지속된 4대 디비전 체제는 사라지고, 6개 디비전 체제로 개편되게 된다.

2005-06 시즌까지는 승률보다 디비전 내 성적을 우선시해서 플옵 시드와 실제 승률간의 괴리가 있었다. 즉, 각 디비전 1위팀간 승률에 따라 1, 2, 3번시드를 먹고 2위팀 중 가장 성적 좋은 팀이 4번시드를 먹는 방식이었다. 이렇다보니 2005-06 시즌 덴버 너기츠는 44승 38패로 승률은 서부 공동 7위였는데 당시 노스웨스트 디비전이 죄다 막장이었던 관계로 그 성적으로 디비전 1위를 차지하면서 3번시드를 가져갔다. 그리고 1라운드 대진에서 만난 6번시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가 47승 35패로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 물론 시드 상으로만 덴버가 상위시드였기에 홈코트 어드밴티지는 그대로 클리퍼스의 것이었고 플옵 결과도 1승 4패로 덴버의 광탈.[27]

또한 2005-06 시즌의 경우 서부 1, 2위의 승률을 거둔 스퍼스와 매버릭스가 같은 디비전이라 메인 이벤트여야 될 이들의 대결이 2라운드에 벌써 이뤄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2006-07 시즌부터는 포맷이 바뀌었는데 기존처럼 디비전 1위팀 세팀과 이들을 제외하고 가장 성적이 좋은 팀 하나를 묶어서 이들 네팀들을 성적순으로 세우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같은 디비전에서 서부 1, 2, 3위팀이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2005-06 시즌까지는 서부 1위팀만 1번 시드를 받고 나머지 팀들은 4, 5번 시드가 되어 1라운드에서(!!) 맞붙게 된다. 그러나 바뀐 방식으로는 위의 예시에서 1위팀은 1번시드, 2위팀은 2번시드를 받고 나머지 디비전의 1위팀들이 각각 3, 4번 시드를 받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더라도 서부 3위팀이 5번시드를 받아 좀 억울한 감이 있지만 기존 방식보다는 훨씬 공평하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웬만해선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면 디비전 우승팀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기존 방식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강한 디비전에 속한 팀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 상당히 균형잡힌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2015-16 시즌부터 각 컨퍼런스에서 승률이 높은 8팀이 디비전 성적과 관계없이 실제 승률 순으로 플옵 시드를 배정받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디비전 1위가 가지는 이점들도 사라졌다. 기존 룰에서는 승률이 조금 낮아도 디비전 1위만 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론, 최소 4번 시드까지 보장됐지만 변경된 제도에서는 극단적인 경우[28] 아예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승률 순으로 시드를 배정하므로 이제는 상위 시드팀이 무조건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타이브레이커 룰도 변경되었다. 승률이 같은 두 팀이 발생할 경우 플레이오프 시드배정과 홈코트 어드밴티지 모두 맞대결 성적이 제일 우선순위가 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룰에서 승률이 같은 두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경우 한 쪽이 디비전 우승팀이면 그 팀이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갔지만 2015-16 시즌부터는 먼저 맞대결 성적으로 타이브레이커 룰을 따진다. 디비전 우승을 못한 팀이 디비전 우승팀을 만나더라도 맞대결 성적에서 우위에 있는 경우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 올 수 있게 된 것. 출처

종합적으로 봤을때 2018-19시즌 현재, 디비전의 효과는 "비교적 가까이 있는 같은 디비전의 팀들과 좀 더 많은 수의 정규시즌 경기를 치르게 된다"는 것과 별 큰 의미는 없는 "디비전 챔피언"이라는 것, 그리고 타이브레이커에서 약간 이득을 보는 것 외에는 거의 없어졌다. [29]

4.3. 서고동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팀전력상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던[30] 양대 컨퍼런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밸런스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고[31], 파이널에서는 서부팀의 확연한 우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8년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2019년까지 총 21번의 파이널에서 서부팀이 14회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동부팀은 7회 우승에 그쳤다.

NBA 팬들 중에서도 동부 컨퍼런스는 가짜리그, 서부 컨퍼런스의 하위리그라며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악의적인 폄하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게, 실제로 동부팀과 서부팀의 전력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의 경우 컨퍼런스 개편을 해 서부 일부 팀을 동부 쪽으로 소속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실제로 2017년 오프시즌 폴 조지, 지미 버틀러가 서부로 팀을 옮기면서 역대급 서고동저가 올거라고 예상할 때 아담 실버 총재가 플레이오프 방식을 일부 바꾸는 것을 논의했다가 현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4.3.1. 개별 사례

  • 1998-99 시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위에 언급한대로 마이클 조던 은퇴 이후 서부에는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팀 던컨, 크리스 웨버 등으로 이어지는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차례로 나오는 반면 동부에선 이렇다할 슈퍼스타들을 발굴하지 못했다. 그리고 왕조를 이끌었던 시카고 불스와 강호 뉴욕 닉스가 각각 프런트 운영에 있어 잘못된 선택들을 반복하면서 모두 암흑기에 빠져버렸다. 반면 서부는 LA 레이커스가 90년대 중반의 주춤했던 시기를 극복하고 다시 왕조를 세웠다. 이 시기는 진짜로 서부 파이널을 뚫고 올라온 팀들이 곧 NBA 파이널에서도 우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2003-04 시즌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 등 황금 세대라 불리는 03 드래프티들의 루키 시즌이다. 단일팀 기준으로 1위는 동부팀인 인디애나 페이서스(61승)이나 컨퍼런스 전체 승률로 보았을때 서부가 동부 상대로 266승 154패, 63.3%의 승률을 가져간 역대급 서고동저 시즌이었다. LA 레이커스, 새크라멘토, 댈러스, 샌안토니오, 포틀랜드같은 기존 강팀에 케빈 가넷을 위시로 한 미네소타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서부는 더욱 더 치열해진 경쟁구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하위권팀들도 부진했던 것이 아닌 게 서부 꼴찌 LA 클리퍼스는 28승으로 이보다 더 안 좋은 성적을 기록한 동부팀이 세 팀이나 있었다. 하지만 최종 우승팀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마이클 조던 은퇴 이후 LA 레이커스, 샌안토니오가 양분하던 NBA 우승 트로피를 6년만에 동부팀에서 다시 가져오게 되었다.
  • 2008-09 시즌
2008-09 시즌의 경우엔 전체 컨퍼런스 성적으론 동부가 서부보다 12승을 더 했음에도 서고동저라고 분류가 되는 시즌이었다. 우선, 전체 승률 1~4위 중 세 팀이 동부이다. (클리블랜드 66승, 보스턴 62승, 올랜도 59승) 하지만, 서부의 플레이오프권 팀들의 승수가 인플레이션되어서 동부에서 47승으로 4위를 기록한 애틀란타가 서부로 가면 9위로 플레이오프 탈락을 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위권에서의 동부가 서부를 압도하면서 승수를 역전시켰다. 서부에서 9위 피닉스의 승수가 46승이고 다음 순위인 골든스테이트의 승수가 29승으로 동부에 적용하면 꼴찌인 워싱턴 바로 윗 순위이다. 결국 하위권 팀들의 성적은 그닥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서고동저로 불리던 시즌이다.
  • 2013-14 시즌
2013-14 시즌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서고동저가 절정에 달했던 시즌이었다. 우선, 전체 승률 1~3위가 모두 서부팀이다. 그리고 플레이오프를 아쉽게 탈락한 피닉스 선즈의 승수가 48승인데 동부에서 3번 시드를 따낸 토론토 랩터스의 승수와 같다. 동부는 노골적으로 탱킹하는 팀이 생기면서 밀워키 벅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20승을 채우지 못했다. 전체 성적으로도 서부가 동부보다 100승 이상을 더 거둘 정도로 전력 불균형이 심했다.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구분 없이 모두 서부가 동부 상대로 압도했던 진정한 역대급 서고동저 시즌이었다.[32]
  • 2014-15 시즌
스테판 커리라는 새로운 아이콘의 탄생과 더불어 시즌 초반에는 서부가 동부를 상대로 70% 이상의 승률을 가져가면서 역대급 서고동저가 올거라는 예상과 함께 이 시점부터 동서부 개편 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이후 동부팀들의 약진과 더불어 동/서부 컨퍼런스 상대전적은 263승 187패 승률 58.44%로 서부팀의 우세로 끝났다. 이 수치만 보면 심각한 서고동저가 맞으나 시즌 초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상태. 우승팀은 서부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2015-16 시즌
2015-16 시즌의 경우엔 시즌 초반, 동부팀들의 약진으로 서고동저가 해결되나 싶었으나, 서부의 강팀들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동부는 다시 한 번 서부를 상대로 균형을 맞추거나 우위를 점한 시즌이 되지 못했다. 동/서부 컨퍼런스 상대전적은 232승 218패로 서부의 근소한 우위이다. 하지만 서부팀에서 역대급 1,2위팀들이 나오면서 전력 불균형에 대한 얘기가 나왔던 시즌이기도 하다. 골든 스테이트와 샌안토니오가 나란히 73승과 67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동부팀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역대급 탱킹을 이어가는 와중에 정규시즌을 10승으로 마무리한 것의 임팩트와 엮여서 서고동저가 심한 것처럼 보였던 시즌이었다. 하지만 우승팀은 동부팀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 2016-17 시즌
작년 시즌보다는 서고동저가 심화된 시즌이다. 게다가 케빈 듀란트가 골든스테이트로 이적하면서 NBA 역사를 통틀어서도 역대급 슈퍼팀의 탄생이 나온 시즌이기도 하다. 서부 1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67승), 2위 샌안토니오 스퍼스(61승), 3위 휴스턴 로키츠(55승)가 그대로 전체 1~3위가 되었으며 동부 1위팀인 보스턴 셀틱스(53승)와 서부 1위팀과의 승리 차이가 14승이나 차이가 나는 등 상위권에서 동부가 서부에 일방적으로 밀린 형세이다. 반면 하위권은 동-서부 비교적 대등한 시즌이기도 하다. 우승팀은 서부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2017-18 시즌
2017-18 시즌을 앞두고 폴 조지와 지미 버틀러, 폴 밀샙, 카멜로 앤서니 등 동부의 올스타급 선수들이 시즌 이후에 줄줄이 서부 팀으로 이적함에 따라 서고동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였다. 물론 서부의 유타에서 동부의 보스턴으로 이적한 올스타 레벨의 고든 헤이워드같은 사례도 있긴 하지만 전문가나 일반 팬 사이에서도 2017-18 시즌 NBA가 역대급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가 될 거라는 예측이 주류였다. 막상 시즌에 돌입하고 나서는 동부팀들이 예상보다 선전하면서 동/서부 컨퍼런스 상대전적은 서부가 237승 213패로 오히려 작년보다 더 완화되었다. 심지어 시즌 초반에는 동부가 서부를 상대로 이기는 경기가 더 많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승팀은 역시 서부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고 11년만에 파이널 4:0 스윕이 나오면서 서고동저 얘기가 다시 나왔다.
  • 2018-19 시즌
FA 시장이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수 커리어를 쭉 동부에서 보내던 르브론 제임스의 레이커스행이 확정되면서 또 한 명의 슈퍼스타가 서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카와이 레너드라는 서부의 슈퍼스타가 동부인 토론토로 이적했다. 그리고 미네소타에서 팀원들과 사이가 안 좋은 지미 버틀러가 2:3 트레이드를 통해 팔라델피아로 이적하며 동부로 새롭게 합류했다. 한때 서부가 더블스코어 가까이 벌렸지만 현재는 상당히 완화된 상태. 또한 트레이드로 동부의 상위팀들이 상당한 전력보강을 하면서 상향평준화가 되었다. 다만, 시즌 종료 2주 전 시점부터 서부 팀들이 다시 승률을 끌어올리면서 상대전적은 서부가 252승 198패로 결과적으로 봤을때는 작년보다 벌어졌다. 하지만 우승팀은 동부팀 토론토 랩터스로 3년만에 동부팀이 우승에 성공했다.

4.3.2. 원인

  • 동부와 서부 프런트의 인식 차이
    미국은 동부에 대도시가 더 많고 빅마켓 역시 동부쪽이 조금 더 많다.[33] 역설적으로 그렇게 유리한 조건 때문에 동부를 대표하는 뉴욕 닉스, 시카고 불스 같은 팀들이 우승 위한 운영이 아닌 적당히 관중 수익만 올리는 운영을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계약 등으로 스스로 암흑기에 빠지는 등 운영 쪽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는 반면, 서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댈러스 매버릭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을 필두로 운영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상위픽으로 뽑은 선수들이 기대치만큼 크는 경우가 서부가 좀 더 많았고 심지어 하위픽에서 대박이 터지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서부가 조금 더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도 단순히 빅마켓에 의한 편견일 뿐이다. 동부에도 토론토 랩터스,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같은 경우, 나름 빅마켓이면서 팀 운영을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덜어낸 반면 서부에도 피닉스 선즈,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경우는 잘못된 계약들로 고생을 하는 등 운영을 못하는 팀들도 있다. 결국 잘하고 못하고는 그냥 반반인데 특히 프런트의 차이에서 마치 뉴욕과 시카고만 동부인 것 마냥 대표해서 나오는 얘기들인 셈이다.
  • 르브론 제임스의 8연속 NBA 파이널 진출
    르브론 제임스는 동부팀인 클리블랜드와 마이애미에서만 커리어를 보냈던 선수로서 현재 8년 연속 NBA 파이널 진출 및 9번의 NBA 파이널 진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르브론의 8년 연속 파이널 진출 기록이 동부 컨퍼런스라서 가능했었다는 주장과 더불어 르브론의 파이널 연속 진출 기록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이들이 자주 드는 근거가 바로 이 서고동저 현상이다. 아직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실질적인 결승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르브론이 우승을 하면 '경쟁이 치열한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지친 상태인 팀을 상대로 거저 얻는다'[34]는 식이며, 준우승을 하면 '결국 서부가 압도하는구나' 식으로 서고동저가 다시 한 번 확인이 되는 셈이 되는 식의 주장이 계속해서 반복이 된다. 2000년대 초반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실질적인 결승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2018년 파이널이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르브론의 파이널 전적은 3우승 6준우승에 개별 경기로 따지면 18승 31패로 승률이 3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파이널 진출 시즌 동부 PO 전적은 108승 31패, 승률 77%로 파이널만 가면 승률이 반토막이 나버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8년 연속 NBA 파이널 진출은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35] 물론 여기에는 단순히 서고동저 외에도 8번 중 절반 이상인 4번이 한창때의 동부팀 들이 빅3로 한 팀에 모여서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도 참작해야 하겠지만.[36]

4.3.3. 비판

서고동저를 나누는 기준의 모호성

같은 표본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경우 아메리칸 리그가 11번, 내셔널 리그가 9번으로 월드시리즈를 우승하면서 비교적 균형이 맞는 분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 단위로 끊어보면 2000년대는 아메리칸 리그가 우세, 현재까지는 내셔널 리그가 우세한 구조이다. 결국 표본을 몇년으로 나누기 나름인 것이다. 만약 30년의 단위로 본다면 비교적 대등할 수도 있다. 최근 10년의 표본으로 메이저 리그는 내셔널 리그가 우승을 많이 가지는 구조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오지 않는 반면 NBA에서만 서고동저로 많은 얘기가 나온다. 또한, 그 서고동저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다. 기준은 각각이다. 플레이오프를 배제한 동서부 전체 승률, 상위 플레이오프 8팀의 동서부 상대 승률, 상위시드팀들의 상대 승률, NBA 파이널 우승 횟수 등등 다양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때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그 예로 08-09 시즌의 경우 승률로는 동부가 더 우세한 시즌임에도 상위팀들의 승률로만 계산하면 서부팀들이 압도적이기에 서고동저라는 것이고, 그 전 시즌인 07-08 시즌의 경우 전체 1-2위가 동부팀에서 나왔지만 이럴때는 서고동저에서 동부 1-2위팀이 배제하면서 나머지가 압도적이라는 이유로[37], 17-18 시즌의 경우 상위권팀들은 서부팀들이 많이 우세하지만 하위권팀들은 동부팀들의 승수가 더 많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드래프트에서 상위픽을 많이 가질 확률은 서부팀이 좀 더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면 성적 역순으로 상위픽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도 탱킹마저도 서고동저라는 얘기들을 진지하게 한다. 동부 하위팀들이 일방적으로 밀린 시즌의 경우는 탱킹이라도 동고서저다라는 얘기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항목에도 그렇듯이 르브론 제임스가 우승한 시즌(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5-16 시즌)에서도 서고동저라는 인식이 나오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며 서부팀이 우승했던 시즌에선 서고동저가 심하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 것에 비해 동부팀이 우승한 시즌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에는 일관성의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4.4. 서머 리그

해마다 오프 시즌이 되면 NBA는 서머리그를 열어 유망주들의 기량을 팬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해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신인과 NBA 진출을 노리는 해외 유망주들, 하위 리그에서는 꿈의 무대 입성을 노리는 이들을 초대해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커리, 듀란트, 조지, 크리스 폴, 블레이크 그리핀 등 대학 무대를 평정했던 이들이 서머리그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팬들에게 선보이며 각 구단 스카우터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현재의 NBA 서머리그라스베이거스운영되고 있다.
올랜도는 2017년 대회 끝으로 해체되었고, 유타 주캘리포니아는 2018년 대회로 해체되었다.
파일:external/media.graytvinc.com/NBA+SUMMER+LEAGUE+LOGO.jpg NBA Summer League
리그 명창설년도
해체년도
참가팀경기장위치수용인원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2004년32개팀콕스 파빌리온네바다주 패러다이스 2,500명
토머스 & 맥 센터 18,776명
올랜도 프로 서머리그2013년
2018년
9개팀암웨이 센터플로리다올랜도 18,846명
유타 재즈 서머리그2015년
2019년
4개팀비빈트 스마트홈 아레나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
19,911명
존 M. 헌츠맨 센터 15,000명
캘리포니아 클래식 서머리그2018년
2019년
4개팀골든 1 센터캘리포니아새크라멘토 17,608명

4.5. 샐러리 캡

NBA의 샐러리 캡 제도는 굉장히 복잡하다. 자세한 것은 샐러리 캡/NBA 문서 참조.

5. 역사

5.1. 창설 이전

최초의 프로농구 리그는 1899년에 창설된 NBL이었지만, 오래 못 가 1904년에 해체되었고, 그 다음 1925년에 ABL이 창설되었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1931년에 해체되었다.[38]

그러나 1932년 FIBA의 창설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농구 종목 채택을 계기로 농구의 저변이 넓혀졌고, 1933년에 ABL의 재개, 1937년에 NBL이 창설되어 NBA의 탄생을 위한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5.2. 창설 이후

1946년에 BAA라는 이름으로 창립, 1949년도에 NBL[39]을 흡수합병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BAA시절 원년 팀은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뉴욕 닉스, 디트로이트 팰컨스[40],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스탁스[41], 워싱턴 캐피톨스[42], 토론토 허스키스[43],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44], 세인트루이스 봄버스[45], 클리블랜드 레벨스[46], 피츠버그 아이언맨[47]이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팀은 뉴욕 닉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48], 보스턴 셀틱스이다.

1948년에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포트 웨인 졸너 피스톤즈, 로체스터 로열스, 인디애나폴리스 제츠 등 4개팀, 1949년에 시라큐스 내셔널즈,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시보이건 레드스킨스, 데이턴 렌즈(Dayton Rens), 덴버 너게츠(현재의 덴버 너게츠와는 무관), 앤더슨 패커스 등 6개팀이 각각 합류함으로써 17개 팀 체제가 정립되었으나, 너무 많아서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자, 다음 해에는 11개 팀으로 줄었고, 1954년부터 8개팀 체제로 바뀌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셀틱스의 황금기 등으로 주목을 받자, 1960년대부터는 새 팀의 가입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1976년부터 경쟁단체인 ABA를 흡수하면서 4개팀(인디애나 페이서스, 뉴저지 네츠, 덴버 너게츠, 샌안토니오 스퍼스)이 가입했고, 줄리어스 어빙이 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1970년대까지 NBA보다는 대학 농구가 인기가 많을 뿐더러 결승전마저도 녹화로 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없었고, 게다가 여러 번 터지는 선수들의 마약 스캔들 등으로 이미지가 안 좋아졌던 적이 있었다.[49] 심지어는 덴버 너기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유타 재즈를 위시한 3개의 비인기팀들이 합병을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데뷔, 1984년에 입단한 마이클 조던의 활약으로 NBA는 인기가 급상승했고, 마침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는 인기가 미식축구에게 많이 밀리고 야구와 2위 싸움을 하고 있지만 그 대신 세계적인 인기로는 미국 내 구기종목 중에서 최고라 유럽 및 아시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상당하다. 농구의 인기가 높은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세계 2위라고 한다.[50]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이걸 보고 자신들도 중국 진출을 했으나 그다지 성과는 없다. 미국구기종목에서 가장 국제적으로 홍보를 잘한 프로 스포츠로 알아준다. 앙골라나 여러 아프리카 및 많은 나라에 현역선수들이나 농구 유망주들을 보내 친선경기 및 사인회를 꾸준히 하기 때문이다.

2011년 7월부터 단체교섭이 결렬되어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덕분에 시즌아웃이 될 뻔한 상황에서 타팀으로 이적도 막혔기에 선수들이 타국 리그로 건너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단체교섭이 늦게나마 타결되어 2011년 크리스마스에 시즌 개막하기로 합의하고 2011~12시즌을 66경기 시즌으로 진행했다.

2014년까지 총재는 유대인 출신인 전직 변호사 데이비드 스턴(1942년생)으로 1984년부터 총재를 맡고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NBA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것에는 엄청난 기여를 했다. 다만 30년 가까운 장기집권에 대하여 스턴에 대한 반대도 심해져서[51] 결국 스턴은 2014년 딱 30년 만에 총재에서 물러나고 부총재인 애덤 실버(역시 유대인)가 5대 총재가 되었다. 현재로서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괜찮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는 편.[52]

6. 역대 총재와 커미셔너

  • 초대: 모리스 포돌로프 (1946~1963) : 참고로 NBA 정규시즌 MVP 수상자에게 주는 모리스 포돌로프 트로피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 2대: J. 월터 케네디 (1963~1975) : 훗날 그를 기리기 위해 'J. 월터 케네디 시티즌십 어워드'가 만들어졌다. 1967년부터 1975년까지 초대 커미셔너였다.
  • 3대: 래리 오브라이언 (1975~1984) : NBA 파이널 트로피의 주인공. 이분은 과거 민주당 소속 중역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한 바 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로도 알려진 바 있다. 그는 NBA에서 9년간 일하면서 1976년에 ABA를 합병시켰고, 1975년에는 CBS와 중계권 계약을 맺은 뒤에 1980년대 초반부터 중계권료를 최고액으로 올렸으며, 1983년에는 샐러리 캡 제도를 도입했다.
  • 4대: 데이비드 스턴 (1984~2014) : 현재의 NBA를 만들어 낸 장본인.
  • 5대: 아담 실버 (2014~ )

7. 아시아의 NBA 도전사[53]

순서 이름 국적 클럽 기간
1 왕즈즈 중국 댈러스 매버릭스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마이애미 히트
(2001~2002)
(2002~2003)
(2003~2005)
2 야오밍 중국 휴스턴 로키츠 (2002~2010)
3 멍크 바터[54] 중국 덴버 너기츠
샌안토니오 스퍼스
토론토 랩터스
(2002)
(2002~2003)
(2003~2004)
4 하승진 대한민국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2004~2006)
5 타부세 유타 일본 피닉스 선즈 (2004)
6 이젠롄 중국 밀워키 벅스
뉴저지 네츠
워싱턴 위저즈
(2007~2008)
(2008~2010)
(2010~2011)
7 쑨웨 중국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08)
8 하메드 하다디 이란 멤피스 그리즐리스
피닉스 선즈
(2008~2013)
(2013)
9 저우치 중국 휴스턴 로키츠 (2017~2018)
10 와타나베 유타 일본 멤피스 그리즐리스 (2018~)

최초로 NBA에서 활약한 아시아인 선수는 1947년에 뉴욕 닉스에서 뛰었던 와타루 미사카인데, 구태여 역사에 이름을 남길 필요까지 없는게 그는 순수 일본인이 아닌데다 겨우 3경기만 뛰었기 때문이다.[55][56]

이후 반세기 동안 NBA에는 아시아인 선수가 전무한 상황이었다가[57] 2001년에 중국의 왕즈즈(王治郅)가 댈러스 매버릭스에 들어오면서 NBA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해 2002년에 야오밍과 멍크 바터가 진출, 2004년에 한국의 하승진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통해 진출했고, 같은 해에 일본의 타부세 유타가 진출하는 등 아시아 출신 NBA 리거들이 늘어났지만, 결국 성공한 선수는 야오밍뿐이다.[58]

아시아인들이 NBA에서 활동하는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가장 큰 장벽은 운동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NBA에서 그나마 몇년동안 살아남았던 선수들인 야오밍, 이젠롄, 왕즈즈 등은 NBA에서 비슷한 체격을 가진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들이었다.[59] 사실 아시아에서도 종종 NBA급의 체격을 가진 선수들이 종종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흑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백인급에 버금가는 운동능력을 지니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농구는 좁은 공간에서 거대한 덩치들이 자주 부딛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힘과 점프력이 안되면 살아남을 수 없고[60], NBA는 페이스가 무지막지하게 빠른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피드와 체력이 안되면 끝이다.

NBA에서 운동능력이 쳐지기로 유명한 191cm가드 스티브 내쉬의 점프력이 79cm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운동능력이 좋기로 유명한 183cm 가드 이상민의 전성기 점프력이 85cm정도이다. 한마디로 NBA기준 저질 운동능력도 한국 기준으로는 상급이라는 것. 제레미 린 역시 191cm에 경기 중 덩크를 성공시킬 정도로 아시아인으로서는 사기급의 운동능력이지만, NBA 가드 기준으로는 평균을 약간 뛰어넘는 수준이다. [61] -이 서술에 대해 의문이 있는데, 제레미 린은 점프력은 몰라도 민첩성은 NBA가드들 중에서도 빠른편이라고 할 수 있다. 포인트가드에게 점프력보다 순발력과 민첩성이 더 중요한 덕목일 수 있다. 제레미 린은 그 전의 스테레오 타입의 아시안 가드에서 벗어나는 반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추가설명:린의 민첩성은 확실히 NBA가드치고도 빠른 편이다. 그러나 점프력과 힘, 체력은 평범, 스피드 뛰어나기 때문에 평균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드래프트 당시 린의 운동능력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평가되었다. 린이 그간 아시아가드들에 대한 편견을 벗어난 스타일인 것 맞지만 그건 플레이스타일 얘기고 여기서 말하는 운동능력 측면에선 NBA 가드치고 평균이상인게 맞다. 일단 운동능력이 되어야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든 말든 할게 아닌가? 즉, 린은 야오밍과 이젠롄, 왕즈즈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체격의 NBA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운동능력을 지닌 아시아계 선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느나, 운동능력으로 압도하는 정도는 아니란 소리, 다시 말해 평균 이상이란 소리다.

최진수의 경우 NBA포워드급의 신장을 지녔지만 NBA도 아니고 NCAA에서조차 뒤쳐졌는데, 점프력이나 스피드는 기준에 어느 정도 됐지만 파워가 지나치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와 운동능력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NBA진출이 기대되었던 유망주였지만, 대학 수업 문제도 있고 실력 문제도 있어서 결국 NCAA에서 국내로 돌아와야했다.

한국의 경우, 지나치게 팀 플레이를 우선시하는 농구와 학원 스포츠 문화가 걸림돌로 꼽힌다. 제레미 린이 린새니티 열풍을 일으킬 당시, "국내에서는 지나치게 억압적인 학원 스포츠 문화에서는 제레미 린 같은 선수가 탄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62] 실제로 국내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학생선수들은 감독의 불호령과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조재중 그 결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국내 선수들은 프로레벨에서조차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또한 본인의 의향에 상관없이 키가 크면 무조건 농구를 시키는 풍토 역시 학생들의 재능을 꽃피우는데 제약을 준다. 케빈 가넷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센터급의 신장이었고 공식 포지션도 센터였지만, 포인트 가드를 포함해 5가지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다. 이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마찬가지였으며, 미국 학원 스포츠에서는 보통 선수 본인이 실력이 되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의 거의 비정상적인 승부욕과 노력, 최고의 재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진심으로 농구를 사랑했다는 점이 크다.[63] 실제로 조던은 "농구를 가르치려면 먼저 농구를 즐기고 사랑하는 법부터 가르쳐야한다. 기술은 그 다음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뭐든 간에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뭔가 특출난 걸 해낼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했던 허재 같은 선수는 그야말로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사실 허재는 정봉섭최인선이라는 당대의 대인배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것이 크지만 또한 야오밍 역시 다른 중국선수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NBA스타일을 배우려고 했던 점에서 "전형적인 아시아 선수의 스타일"이 NBA에서 살아남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만 찍어내는 천편일률식의 양성문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

물론 위의 서술은 팀플레이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지나치게 팀플레이만을 우선시하느라 창의적인 플레이를 아예 등한시하는 문화가 창의적인 플레이어를 배출하는데 해가 된다는 얘기다.
당연히 농구에서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아주 어린 나이부터 팀플레이를 가르친다. 그러나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것과 팀플레이 하라고 강요하는 건 천지차이다.
즉, 위의 서술은 개인플레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팀플레이하라고 강요하는 강압적인 학원스포츠가 선수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걸 막는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중고등학생이 크로스오버를 경기중에 하면 감독이 구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덩크를 해도 맞는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단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걸 문제 삼는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정해진 플레이에서 벗어나는 플레이를 하면 구타와 욕설이 날아오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창의적인 플레이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팀플레이 중시가 문제되는게 아니고 억압적인 환경이 문제라는 것.

NBA는 미국의 4대 스포츠리그 중에 유일하게 한국인, 한국계가 우승을 해보지 못한 리그로 남아있다.[64] NFL은 2006년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하인스 워드가 우승과 더불어 MVP까지 수상했었고, MLB는 김병현이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으며, NHL은 한국계 백지선(짐 팩) 현 한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감독이 1991년과 1992년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2번 스탠리컵을 들어올렸다.

7.1. 한국에서의 NBA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NBA 방송 기록은 1970년 10월 24일에 MBC에서 방영된 뉴욕 닉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간의 NBA 파이널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1990년대에 마이클 조던드림팀을 앞세운 NBA의 세계화 전략을 통해 한국에도 NBA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1990년대 초중반 슬램덩크마지막 승부, 그리고 농구대잔치의 붐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NBA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당시 초등학생들까지도 NBA를 챙겨보고 선수들의 카드를 모았을 정도. 적어도 TV에서 NBA를 보기는 지금보다 편했을 정도다. AFKN이나 위성 NHK, 스타스포츠 등을 통해서 쉽게 볼 수 있었고, 지상파 방송으로는 SBS가 한창도 위원[65]의 해설과 함께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매주마다 한 경기씩 녹화중계를 했다. 이후 케이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경인방송-MBC ESPN-SBS 스포츠-슈퍼액션 등에서 생중계로 방영하였다.

2004년에 데뷔한 하승진을 빼고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NBA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나름 큰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후 90년대 NBA 세계화의 주역들이 은퇴하고 KBL이 막장이 되어 농구 붐이 사그라들면서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다소 매니악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 시절이 워낙 인기가 많았고 여전히 1980~90년대 슈퍼스타들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기에 잠재적인 국내에서의 인기는 실제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KBL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팬들이 상위호환인 NBA로 갈아타는 모습도 심심치않게 나타나고 있다 카더라.

현재 국내 TV 중계권은 2014년부터 SPOTV에서 갖고 있다.[66] 2015시즌 부터 꾸준한 중계를 통해 팬덤의 저변이 확대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스테판 커리라는 슈퍼스타의 스텝업과 그가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73승 신기록 레이스와 함께 또다른 대스타인 르브론 제임스와의 라이벌리 형성을 통해 국내 NBA 팬덤이 점점 확대되었다. 자연스레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비교하는 여론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과거 1990년대 NBA에 빠졌다가 관심을 접은 사람들이 다시 NBA를 보기 시작했다. 중계방송의 확대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이 쉬워지고 국내의 언론들도 NBA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점차 국내의 NBA 열기는 상승할 전망이다. 근데 그와 동시에 무개념 팬들과 어그로꾼들이 늘어가고 있다...

2019년 현재, NBA 중계는 SPOTV와 NBA 공식홈페이지, 두 곳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SPOTV는 BIG 6팀[67] 위주로 편성해 중계중이다. 기본적으로 유료중계이지만 무료 중계도 1주에 몇번씩 하는중인데 NBA의 세계화를 위해 NBA측이 일부러 무료중계 조항이 삽입된 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다.
NBA 리그패스는 NBA 공식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한글화도 되어있고 원화 결제도 지원한다.

현재 SPOTV의 NBA 중계는 김명정, 박찬웅 캐스터[68]조현일, 박세운[69] 해설위원이 담당하고 있는데, 좋은 중계퀄리티로 축구와 야구에서와는 다르게 무한찬양을 받고 있다.

슈퍼스타들이 서부에 포진해 있고, 이 팀은 아예 주전 라인업 전체를 슈퍼스타로 꾸리면서 서부팀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이다. 실력이 서부가 더 높기도 하고. 실제 서부에 스테판 커리, 르브론 제임스,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 케빈 듀란트, 데릭 로즈 등 스타들이 다양한 팀에 포진해 있는 반면 동부에는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등 전통 있는 팀들을 제외하면 선수들 이름값이 떨어지는 실정이라...18-19 시즌 샌안토니오 레너드가 토론토로 이적했지만 이번엔 르브론 제임스가 서부로 가면서 오히려 서부 인기 편중이 늘어날 예정이다. 그러나 르브론이 서부로 떠나면서 레이커스가 플옵 진출에 실패하며 카와이 레너드, 야니스 아데토쿤보, 카이리 어빙 등의 동부 젊은 스타들이 주목받게 되었고 브루클린 네츠가 분전하면서 빅마켓 뉴욕 농구의 체면을 세웠다.

8. 역대 파이널 우승 횟수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보스턴 셀틱스 17 4 1957,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6, 2008
1958, 1985, 1987, 2010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6 15 1949, 1950, 1952, 1953, 1954,
1972, 1980, 1982, 1985, 1987,
1988, 2000, 2001, 2002, 2009,
2010
1959, 1962, 1963, 1965, 1966,
1968, 1969, 1970, 1973, 1983,
1984, 1989, 1991, 2004, 2008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6 4 1947, 1956, 1975, 2015, 2017,
2018
1948, 1964, 1967, 2016, 2019
시카고 불스 6 0 1991, 1992, 1993, 1996, 1997,
1998
-
샌안토니오 스퍼스 5 1 1999, 2003, 2005, 2007, 2014 2013
필라델피아 76ers 3 6 1955, 1967, 1983 1950, 1954, 1977, 1980, 1982,
2001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3 4 1989, 1990, 2004 1955, 1956, 1988, 2005
마이애미 히트 3 2 2006, 2012, 2013 2011, 2014
뉴욕 닉스 2 6 1970, 1973 1951, 1952, 1953, 1972, 1994,
1999
휴스턴 로키츠 2 2 1994, 1995 1981, 1986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 4 2016 2007, 2015, 2017, 2018
애틀랜타 호크스 1 3 1958 1957, 1960, 1961
워싱턴 위저즈 1 3 1978 1971, 1975, 197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 2 1977 1990, 1992
시애틀 슈퍼소닉스[70] 1 2 1979 1978, 1996
밀워키 벅스 1 1 1971 1974
댈러스 매버릭스 1 1 2011 2006
볼티모어 불리츠[71] 1 0 1948 -
새크라멘토 킹스 1 0 1951 -
토론토 랩터스 1 0 2019 -
피닉스 선즈 0 2 - 1976, 1993
유타 재즈 0 2 - 1997, 1998
브루클린 네츠 0 2 - 2002, 2003
올랜도 매직 0 2 - 1995, 2009
시카고 스택스[72] 0 1 - 1947
워싱턴 캐피톨스[73] 0 1 - 1949
인디애나 페이서스 0 1 - 2000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0 1 - 2012

9. 기타

2011년경 촬영된 <Ultimate All-star Fantasy Draft>에서 찰스 바클리, 케빈 맥헤일,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스티브 커, 케니 스미스 등 NBA 출신 해설자들이 모여서 역대 NBA 선수들을 놓고 가상 드래프트를 펼쳤다. NBA 전현직 농구인들이 대충 선수들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 참고로 바클리는 올스타전인줄 알고 앨런 아이버슨을 1픽으로 골라버렸으며 케빈 맥헤일은 셀틱스 출신답게 셀틱스 레전드 래리 버드를 2위로 뽑았다. 그는 여기서 로스터 전원을 셀틱스에서 뛴적이 있는 선수 위주로만 구성했다. 역대 최고 명문인 셀틱스는 출신 선수들과 골수팬들이 Celtic nation이라고 부를 정도로 프라이드가 강한데, 역대 최고의 선수를 자진해서 걸렀다는 점에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게 웬 떡이나며 마이클 조던을 픽하려는 레지 밀러에게 주변에서 "샘 보위"를 픽하라고 놀리고 있다 : ##

NBA 선수의 평균 체격 조건은 12-13시즌을 기준으로 신장 6'7" (약 201cm), 체중 222lbs (약 101kg)이다.[74] 각 포지션별 차이는 있다. 알다시피 센터가 가장 크고 포인트가드가 가장 작다. 하지만 NBA에서 가장 작은 포지션인 포인트가드도 평균 6'2" (약 188cm)로 매우 큰 편이다. 미국 4대 스포츠 중 신장은 가장 크고 체중은 NFL 다음으로 무겁다.

아디다스가 유니폼 독점 계약을 맺어왔으나 2017-18시즌 부터는 나이키가 유니폼을 제작하게 된다. 또한 KBL과 유럽 각국 농구리그처럼 유니폼에 광고 부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미국 프로스포츠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유니폼 광고 부착에 대해 상당히 꺼리는 분위기이다. 돈이 되는 명명권 판매조차 빅클럽들은 꺼리는 곳이 미 프로스포츠. 2005년 데이비드 스턴 총재 때도 이와 유사한 계획을 하려다 무산되었다.

흔히 관심없는 사람들은 흑인선수들만 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경우도 있는데, 2015년 기준으로 NBA선수의 인종 비율은 흑인 74.4%, 백인 23.3%, 기타(히스패닉+동양인)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NBA역사상 흑인비율이 80%를 넘은 적은 거의 없으며 1995년과 2011년이 약 80%로 가장 높았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NBA는 백인 위주였다. 영화 Glory Road에 보면 60년대 대학농구에서는 흑인들이 운동능력은 뛰어나도 머리가 더 우수한 백인선수들을 이길 수 없다는, 지금 보면 웃기지도 않는 편견이 널리 퍼져있었으며, 각 팀마다 흑인들이 면피용으로 한 두명 정도였다. 당대 최고의 팀이었던 켄터키 대학의 명장 아돌프 럽 감독은 수십년동안 단 한명의 흑인선수도 데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1966년에 사상 최초로 흑인으로만 이뤄진 팀[75]인 텍사스 웨스턴 대학이 켄터키 대학을 꺾고 우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흑인의 스포츠 재능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해에 준우승한 켄터키 대학의 주전으로는 훗날 NBA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명예의 전당급 감독이 되는 팻 라일리가 있었다.

50년대부터 70년대를 거치면서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엘진 베일러,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카림 압둘 자바 등 우수한 흑인 선수들이 나오면서 70년대쯤 되면 "백인선수의 우수성"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였는지 철저히 까발려진다. 그러면서 70년대에는 운영자들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흑인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는데, 이러한 위기감은 닉스가 최초로 전원이 흑인인 팀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달한다. 물론 60년대와 비교해 높았다는 얘기지 현재보다는 훨씬 낮았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흑백분리정책이 철폐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흑인들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NBA의 주고객층은 압도적으로 백인이 더 많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브 코웬스나 존 하블리첵 등 훌륭한 백인 선수들이 있긴 했지만 그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리그를 주름잡는 카림이나 줄리어스 어빙 등은 모두 흑인이었다. 이로 인해 NBA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데, 1980년도 결승 6차전은 우승이 결정된 경기임에도 녹화중계될 정도... 이 상황을 뒤집은 것이 1979년에 데뷔한 "백인" 래리 버드였다. 신인임에도 리그 최고 선수들과 대등한 수준의 엄청난 실력을 자랑했던 버드의 활약은 이미 박살난 백인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기에 충분했고, 그는 White hope(백인들의 희망)라고 널리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매직 존슨과의 대학시절부터 계속된 라이벌 관계로 인해 NBA는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NBA 고객들 중에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고, 흑인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백인 팬들의 거부감도 점점 줄어들면서 더 이상 흑인이 많다는 이유로 NBA 인기가 타격을 입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게 마이클 조던이었는데, 이미지 관리의 달인이었던 그는 최고의 실력과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흑인 마이클 조던"이 아닌 "유명인사 마이클 조던"으로 알려지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을 만한 이슈나 인종논란이 생길 법한 이슈에는 조심스럽게 코멘트를 하거나 노코멘트로 일관했는데, 이와같은 그의 행보는 비록 일부 흑인 팬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백인이 대다수인 주류 미국 사회의 사랑을 받는데 도움이 되었다. 당시 그의 위상에 대해 한 방송인은 "마이클 조던 이전까지는 14세 백인 소녀가 흑인 남자 운동선수의 포스터를 방에 걸어놓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96년에 데뷔한 신인 앨런 아이버슨이 "나는 마이클을 상대할 수 있다"고 당돌하게 말을 하자, 미국의 Sports Center는 이 말에 대해 "(이 멘트로 인해) 마이클은 기분이 상했죠(offended). 그리고 마이클이 기분이 상하면, 미국이 기분이 상하는 겁니다.(And when Michael is offended, America is offended.)"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는 유럽 선수들의 NBA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백인 비율 더 높아지는 추세이다. 물론 미국의 4대 인기 스포츠 중에서는 흑인 비율이 가장 높다. 다만 구단주들은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인 샬럿 호네츠 빼고 백인들이 다수이다.

백인 스타들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긴 하지만 "미국 출신 백인"의 경우 거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프로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소년 시스템이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어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팀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이 많고 미국의 흑인선수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학원스포츠 문화로 창의적인 플레이와 뛰어난 운동능력이 장점이라면, 이도저도 아닌 미국의 백인선수들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덕 노비츠키(독일), 가솔 형제(스페인), 스티브 내쉬(캐나다) 등 최근 몇년간 두각을 나타난 백인선수들은 거의 유럽이나 비미국 출신이며, 미국 백인 슈퍼스타는 케빈 러브 정도 뿐이다. 외형상 백인으로 보이는 클레이 탐슨이나 블레이크 그리핀 등은 흑인으로 분류된다.

드레스 코드가 존재한다. NBA의 게임, 인터뷰, 자선행사등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은 힙합스타일의 복장[76]을 착용할 수 없다. 코치는 정장 혹은 재킷을 착용해야한다.[77] 이러한 드레스 코드는 05-06 시즌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04-05 시즌 인디애나-디트로이트의 경기중 벌어진 초유의 관중폭행 사태[78]로 인한 리그의 이미지 하락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여타 다른 북미 스포츠처럼 NBA League Pass라는 이름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북미스포츠들과 달리 해외에서도 NBA의 인기가 높은 덕에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어지간한 나라에 모두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구독비는 18-19시즌 전 경기 기준 192,800원이다. MLB.tv와 달리 동시 시청이 불가능[79]하기 때문에 공구 등의 편법이 불가능해 체감 가격은 더더욱 비싸게 느껴지는 편이다. 하지만 VPN으로 저렴한 국가로 우회하여 결제하는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NBA도 언젠가 32팀 체제로 확장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2020년까지 키 아레나[80]를 NBA와 NHL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게 리노베이션 할 예정이고, 동시에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부활을 꿈꾸는 시애틀이 확장팀 1순위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5월에 NBA 간부가 스프린트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 캔자스시티가 언젠가 NBA팀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언급함에 따라 # 캔자스시티도 상당히 유력해졌다.

NBA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로는 1984년,[81] 1996년,[82] 2003년[83] 드래프트가 손꼽힌다.

9.1. NBA를 향한 험난한 여정, 콜업과 10일 계약

실력 부족으로 퇴출되거나, 아예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한 선수들이 농구를 계속 하고자 할 경우, 보통 다른 나라 프로농구리그로 가서 돈을 벌거나, NBA의 공식 하위리그인 NBA G-리그에서 뛰며, NBA 진출은 노리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아시아나 유럽의 리그로 갈 경우, G-리그에서 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NBA 도전기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 기사화되어 잠깐 유명세를 탄 무명 선수 Zabian Dowdell 의 경우, 유럽에서 75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D리그의 털사에서 1만 3천달러 받는 계약을 선택했다고 한다.[84]

보통 NBA에 근접한 선수들은 웬만한 다른 나라 리그에서 에이스이거나 팀의 주축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거액을 받는다. 반면 G-리그에서는 연봉수준이 A급이거나 B급[85]으로 나뉘며, A급은 우리 돈으로 2,000만원 정도이며, B급은 그 이하를 받는데, 가정이 있는 선수들의 경우 이것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아무리 타지생활이라고 해도 수입만 놓고 보면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외국인 선수에 대해 샐러리 캡이 존재하는 한국 프로농구에서도 팀당 2명의 외국인 선수 도합 상한선이 70만 달러라서 기본적으로 억대 연봉은 보장받고 시작한다.

근데 이건 NBA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스포츠 자체가 2부에게 많은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이 현실이라서 그렇다. 1부와 2부는 모두 프로지만, 미국에서는 2부 선수들에게 대접을 악랄하게 하며, "꼬우면 1부로 올라와라"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추신수도 1부와 2부의 차이는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왜 저 푼돈 받고도 G-리그에 목 메느냐? 바로 NBA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NBA G-리그는 NBA 구단들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로 선수 수급이 필요한 구단이 언제든지 콜업(call-up)할 수 있다.[86] 션 킬패트릭의 경우, 2014-15시즌에 G-리그 팀 델라웨어 87ers의 팀 단체 사진을 찍던 도중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부름을 받았다. 미네소타는 NBA팀에게 경기를 치르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 선수 수인 8명을 채우지 못해 급히 그를 부른 것이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합류한 팀 프레이저의 경우, 식서스가 경기를 치를 장소인 보스턴과 가까운 메인 주 포틀랜드[87] 연고의 G-리그 팀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로 부름을 받았다. 반면 해외리그에서 뛸 경우 시즌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NBA팀에 합류할 수 없고, 사실상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기도 힘들다.

이 때 선수들의 편의가 아닌 팀의 편의에 따라 부르기 때문에, 별의 별 해프닝이 다 있다. 앞서 언급된 킬패트릭의 경우 델라웨어에서 사진 찍다가 불과 경기 세 시간 전에 콜업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75분 만에 숙소에서 가방 챙겨 나와서 134마일을 자기 차로 미친듯이 달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도착해 차를 길거리에 세워두고, 준비를 마친 후 겨우 경기 시작 전 팀연습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88]

역시 앞서 언급한 프레이저는 자기 운동장비를 챙기러 G-리그 팀의 건물에 갔지만 직원들이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예전에 보스턴 셀틱스의 트레이닝 캠프에서 뛸 때 셀틱스의 가드 에이버리 브래들리가 자기와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었다는 걸 기억하곤, 상대팀 셀틱스 선수인 브래들리의 농구화를 빌려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89]

이렇게 콜업된 선수들은 NBA팀과 10일 계약을 하게 된다. 이 10일 계약은 말 그대로 NBA팀에 10일동안 합류하게 되는 계약으로, 보통 NBA팀은 이 기간에 3경기, 많으면 4경기 정도 치른다. 이 때 10일 계약 선수들은 팀이 잡아준 숙소에 머물며, 전세기/전용기, 연습장, 체력단련실, 마시지룸, NBA팀들이 지급하는 원정경기 경비 등 팀의 모든 혜택을 다 누릴 수 있다. 이들은 NBA 최소 연봉의 10일치를 받게 되는데, 최소 연봉이라 해도 NBA라 연봉이 수 십만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이 돈만 해도 무시할 만한 수치가 못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G-리그에선 아무리 받아봤자 3만불이 안되는데 킬패트릭의 경우 15시즌에 10일 뛴 대가로 4만9천709달러를 받았다.[90] 즉, NBA에서 10일 일한 것이 G-리그에서 시즌 내내 일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다. 이들은 NBA선수들과 완전히 동등한 신분이긴 하지만,[91] 고작 10일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한해에 수 천만 달러에서 1억달러를 연봉으로 쓰는 NBA팀 입장에서 5만불 짜리 선수는 얼마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나 다름없고[92], 실제로 나태한 모습을 보이거나 팀에 도움이 안되는 선수는 하루만에 방출되기도 한다.

자신이 10일계약 선수 출신이기도 한 에이버리 존슨은 10일 계약 선수 생활에 대해 "잠도 거의 못 자고, 항상 폰을 보고 있다. 누구도 당신의 집에 리무진을 보내거나 당신 부인을 위해 장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영수증을 제출하는 생활이다"[93]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10일 계약 출신이었지만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선수들도 있다. 존슨은 16년간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영구결번까지 되었으며, 커트 램비스는 건실한 롤플레이어로 14년간 NBA에서 뛰며 4차례 우승을 했고, 앤소니 메이슨은 올스타에까지 올랐다.

9.2. 생각보다 작은(?) NBA 선수들

NBA는 평균신장이 1990년대에 이미 2미터를 넘을 정도로 체격이 거대한 선수들의 리그이다. 그런데 보다보면 기록된 신장보다 조금 작은 선수들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물론 2미터 거인들의 신장을 비교하는 건 대다수 일반인들에겐 무리지만, 일반인들과 비슷한 스티브 내쉬 (191cm)같은 선수들의 경우 키에 대한 논란이 많이 올라온다. ("내가 봤더니 185밖에 안되더라, 커봐야 188이다 등등)

이는 NBA가 기본적으로 농구화를 신고 키를 재며, 신장 기입을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자율에 맡기는지라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94] 물론 선수들의 자율에 맡긴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드래프트 전 신체검사 제도가 있고, 팀들이 딱 보면 어느 정도 키인지 알기 때문에 진짜 신장에 가까운 신장을 기재한다. 근데 신장이 제멋대로인 이유에는 굽이 최소 1인치(2.5cm) 이상인 농구화의 "굽," 그리고 피트와 인치로 표기하는 특성상 몇cm정도 차이는 무시되기 때문이다.

먼저 농구화를 신으면 키가 최소 1인치는 커진다. 여기서 맨발로 키를 재는 프로리그 (한국 등)과 차이가 난다. 또한 인치가 2.5cm 단위로 끊기기 때문에 키가 정확하게 표기되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 189cm인 선수A와 191.5cm인 선수 B가 있다고 치자. 1인치는 농구선수에게 무시할 차이가 아니다.[95] 그런데 A선수는 농구화를 신으면 192cm라서 6피트4인치(193cm)로 표기하고 B선수는 조금 굽이 낮은 농구화를 신고 194.5cm이지만 193cm로 표기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키 차이가 나는 선수들이지만 똑같은 키가 되는 것이다.[96]

더 심한 케이스는 시카고 불스에 각각 2003년과 2004년에 드래프트 된 커크 하인릭과 벤 고든. 2004-05시즌 당시 두 선수는 동일하게 6피트 3인치(191cm)로 표기되었지만 누가 봐도 키 차이가 있었다. 이는 실제로 하인릭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하인릭의 키는 6피트 2.75인치, 고든은 정확히 6피트 1인치로 두 선수 사이에서는 1.75인치(4.5cm)로 거의 2인치에 달하는 키 차이가 있었다. 이는 포지션 평균 사이즈와 언더사이즈를 가르는 키 차이이다.

보통 선수들은 이렇게 소수점이 남는 경우 반올림한다.[97] 문제는 신발 신고 6피트 3.75인치라 원한다면 충분히 6-4로 표기될 수 있는 하인릭이 0.75인치를 깎고 6피트 3인치로 표기되길 원했고, 반대로 신발 신고 6피트 2.25인치라 웬만하면 6-2로 표기될 고든이 올려서 둘이 같은 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두 선수의 포지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당시 둘은 대학시절 둘다 듀얼가드였지만 하인릭은 포인트가드 소화 능력이 출중했고, 실제로 데뷔와 동시에 완벽한 포인트가드 전환을 이뤄냈다. 포인트가드로서 190이 넘는 신장은 엄청난 어드밴티지였기에 굳이 키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던 것. 반대로 고든은 슈팅가드에 가까웠고, 6-4, 6-3도 작은 마당에 6-2의 슈팅가드는 그야말로 땅꼬마에 가깝다. [98]

이처럼 단신 선수들은 키를 될 수 있는대로 키우는 성향이 있어 오류가 나기 십상이다. 8,90년대에는 신체검사 결과가 공표되지 않았기에 추정에 가깝지만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맨발키가 188cm 정도에 불과했지만 한때 6피트5인치(195cm)까지 스스로 뻥튀기했던 존 스탁스가 있다. (말년에 6피트 2인치로 슬그머니 바꿨다;;;) KBL에 오는 외국인 선수들이 KBL신장과 NBA진출 시도할 때 신장이 다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물론 이유 중 하나는 KBL특유의 목집어넣기와 무릎빼기로 작아보이기(...)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이들 대부분 미국 기준으로 언더사이즈들이라 미국에선 최대한 커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99]

예외적인 케이스는 아예 초단신이라 키워봤자 의미가 없는 경우로 5피트 9인치라 표기되는 아이재아 토마스(1989) 등이 있다. 토마스는 사실 맨발키가 5피트 8.75인치고, 신발 신으면 5피트 10인치가 넘는지라 사실 NBA식이면 5피트 10인치로 표기되어야 맞다. 그러나 5-9이건 5-10이건 NBA기준으로 초단신이라 메리트가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냥 맨발키로 쓰는 것.

또 다른 케이스는 포지션 대비 키가 엄청 커서 마찬가지로 키를 부풀릴 메리트가 없는 경우다. 마누트 볼, 숀 브래들리를 포함해 대부분 초장신 센터들은 맨발키를 그대로 표기한다. KBL에서 맨발키가 221cm 넘게 나왔던 하승진도 NBA에서 221cm로 표기됐다. 다만 야오밍은 좀 애매한게 그는 분명히 드래프트 당시에 맨발 7-5/신발 신고 7-6이었다. 그런데 루키시즌엔 7-5로 표기되다가 2년차부터 7-6으로 표기됐다.[100]

그 외에 누가봐도 7피트로 표기되는 선수들보다 확연히 큰 케빈 가넷 역시 6피트 11인치 표기를 데뷔부터 은퇴까지 고집했다.[101]

특이한 케이스는 빌 월튼. 70년대에 황금기를 보낸 백인센터였던 그는 6피트 11인치로 표기됐지만 당시 당연한 듯 7피트1인치 내지는 7피트 2인치로 받아들여졌다. 위에서 언급된 시대적 한계 때문에 정확한 그의 키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7-2였던 카림 압둘자바와의 매치업 영상을 보면 키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보인다.(https://www.youtube.com/watch?v=Ybv618uKanM) 실제로 3인치나 작다면 엄청난 차이가 나야 함에도.
86년 파이널에서 월튼의 보스턴 셀틱스휴스턴 로키츠와 붙었을때 프로필상 월튼이 213cm으로 표기되던 하킴 올라주원보다 훨씬 큰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하킴은 훗날 자신의 맨발키가 208cm에 가깝다고 인정했다. 어쨌든 월튼이 실제로 7피트 2인치라면 정말 키를 엄청나게 깎은 셈이다.[102]

9.3. NBA선수로서 혜택

NBA선수들은 2018-19 시즌 기준으로 최소연봉이 신인 기준 83만 8천달러가 조금 넘는다.[103] 게다가 NBA에서 초고액 연봉자들의 경우 한화로 340억원이 넘어가며, 광고 수익까지 합하면 그 두배에 가깝게 벌 수 있다. 마이클 조던의 경우 1998년 물가로 연봉만 3천3백만불, 광고 수익이 4천만 달러가 넘었을 정도다.[104]

NBA선수로서 혜택은 이 정도 엄청난 수익, 팬들의 사랑과 인기도 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NBA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만 해도 팀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들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일단 NBA팀들은 엄청난 돈벌이 수단이 선수들을 말 그대로 모시고 다닌다. 한국에서처럼 자기 유니폼이나 신발, 짐을 챙기고 이럴 필요가 전혀 없이 그냥 라커룸에 경기 장비들이 전부 구비되어 있다. NBA에서 잡일이란 걸 조금이라도 하는 선수들은 오직 신인 뿐이고, 이조차도 호텔방으로 선배들 짐가방을 옮기거나 연습때 도넛 등 간식거리를 챙겨오는 정도다. 물론 이것도 전통에 가까운 것이라 실제로 힘든 일을 하진 않으며 그나마도 잠깐 부려먹고 만다.

농구화의 경우 사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와 계약하는 슈퍼스타들만 유명하지만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LA기어, 리닝, 안타, 피크 등 덜 알려진 브랜드와 계약하고, 그 아래급의 브랜드와 계약하는 이들은 더 많다. 개인 자격으로 브랜드와 계약하지 못한 선수들은 팀 차원에서 후원받고 있는 브랜드의 용품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105]

농구용품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과 연습장과 딸린 부대시설까지 이용이 가능한데 기본적으로 연습코트 뿐 아니라 헬스장, 통증 완화를 위한 핫텁, 마사지대와 마사지사, 식당, 경기 분석을 위한 비디오 시청실 등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동시에는 당연히 최고급 호텔만을 이용하며 심지어 농구 잡지 루키의 2007년 기사에 따르면 2007년 올스타 주간에 선수들과 가족들을 위해 특급호텔을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호텔에서 경기장, 경기장에서 공항 등으로 이동할 땐 당연히 최고급 버스이며, 이 버스는 NBA최장신 선수도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대형버스이다.

이동수단의 최고봉은 단연 비행기인데, 당연히 공항에서 수속을 밟거나 하는 일 없이 버스가 활주로로 직행해 바로 선수들이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게 한다. 현재 NBA팀들은 팀 상황에 따라 전용기를 이용하거나 전세기를 이용한다.

이 전세기/전용기들은 거의 날아다니는 호텔이라고 할 정도로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1996년 당시 시카고 불스의 생활을 찍은 영상에서 5분 40초부터 이들이 타고 다닌 전세기가 나온다.

보다시피 일단 전 좌석이 최소 비지니스 클래스~퍼스트 클래스이며 바와 뷔페식 식당이 있어 언제든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 또한 거구인 선수들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도 널찍하고 몇자리를 혼자 차지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그 외에 칸막이가 있는 객실형 좌석에서 코치진이 비행기에 설치된 TV를 보면서 전략을 짜거나, 마이클 조던이 론 하퍼 등 친한 동료들과 함께 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 영상은 1996년이기 때문에 현재 전세기는 시대에 맞춰서 시설이 좋아졌을 것이다. 96년 당시엔 저 정도 좌석이 퍼스트클래스 좌석이었고, TV도 저런 볼록한 TV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고 보면 정말 최고급의 시설뿐이란 걸 알 수 있다.

여담으로 같은 시카고 불스의 1987-88시즌 당시 원정생활 영상을 보면 얼마나 형편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데, 전세기가 아닌 일반 비행기(물론 1등석이긴 하다)를 타고 다니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공항에서 수속을 밟으며, 호텔도 특급호텔까진 아니고 심지어 유니폼도 일일히 트레이너가 직접 세탁해서 선수들에게 나눠준다음에 선수들이 챙겨간다. 위에 언급된 신인들이 잡일을 하는 전통도 여기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당시는 이게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실제로 잡역부들이 부족해서 트레이너가 직접 잡일을 할 정도였다. 당연히 당시 NBA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는데, 단적인 예로 샐러리캡이 팀당 612만 달러로 현재 9천9백만 달러의 16분의 1수준이었다.[106]

또 하나 주요한 혜택은 바로 원정경기시 팀에서 배급되는 식비. 이를 per diem(일일 경비)라고 부르는데 2017-18시즌 기준으로 NBA per diem은 원정에 나설때마다 하루당 129달러(한화 14만5천원)에 달하며 이는 미국 4대 스포츠 중 최고액수이다.

보통 원정 시작 전에 각 팀에서 원정경기 소요 날짜에 따라 계산된 식비를 봉투에 담아서 배급한다. 이를 쓰는 방식은 NBA선수들마다 각각 다른데, 연봉이 적은 편이었던 네이트 로빈슨같은 경우 젊은 시절 돈 많은 팀동료들한테 빈대붙고 자기 per diem은 그냥 부가수입으로 챙기거나, 마찬가지로 연봉이 적었던 카일 코버의 경우 필라델피아 76ers시절 아예 per diem을 생활비로 쓰고 연봉은 아껴놨다고 한다. NBA팀들은 6개월 시즌 중 절반을 원정경기로 보내기 때문에 보통 누적된 경비가 1만 달러에 육박하는 경우가 있어 무시할 액수가 못된다.[107]
지금은 어엿한 베테랑이 된 JR 스미스는 신인시절에 용돈 정도밖에 안되는 per diem을 제대로 쓰지 않고 과자같은 걸로 끼니를 떼우고 나머지는 삥땅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08]

베테랑들은 그들 입장에서 얼마 안되는 per diem을 굳이 챙기기보단 그냥 쿨하게 돈 없는 후배나 직원들에게 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해외 리그를 떠돌고 긴 무명생활 끝에 올스타까지 성장한 안토니오 데이비스는 고액연봉자가 된 말년에는 팀이 고용하고 있는 트레이너나 경호원들에게 나눠줬고 마커스 캠비같은 경우 어린 선수들이나 연봉이 적은 선수들에게 인심을 쓰곤 했다.

10. 관련 문서


[1] 한국에서는 전 농구협회라고 번역되지만 실제 직역하면 전 농구 협회란 뜻이다.[2] 한국도 이와 비슷한데, 대부분 프로선수이지만 국가대표로는 별개의 단체인 대한민국농구협회(KBA) 소속으로 출전한다.[3] 특히 MLB 인기가 하락세이기 때문에 더더욱 대비 효과가 크고, MLB 팬덤에서도 자체적으로 'MLB 위기설'을 꺼낼때 자주 등판시키는 리그가 NBA이다. 끝판왕인 NFL에게 밀리는건 그렇다쳐도, NBA에게 여러 지표에서 밀리는건 자존심이(...)[4] 이는 아무래도 유럽에서의 인기가 큰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5] 물론 미국 한정.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캐나다 국가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크로스비의 인기는 한국에서 전성기 시절의 박지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6] 18-19 시즌 현재 폴은 휴스턴 로키츠 소속.[7] 대표적으로 야구-풋볼 강세인 동부 지역은 야구선수들이니 미식축구 선수들이 농구선수들보다 인기가 많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2018 스포츠 스타 인기순위는 1위가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MLB), 2위 지안카를로 스탠튼(뉴욕 양키스-MLB), 3위 오델 베컴 주니어(뉴욕 자이언츠-NFL)이며 4위가 NBA 뉴욕 닉스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이다. 보스턴에서는 현 NFL의 간판 스타인 톰 브래디는 물론 데이빗 오티즈(은퇴), 무키 베츠, 볼티모어에서는 아담 존스, 워싱턴에서는 브라이스 하퍼(데이빗 오티즈 이하 모두 MLB 선수들)가 가장 인기가 많다.[8] MLB는 야구가 보급된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고(그나마 이마저도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한국이나 일본, 대만에 국한된다), NFL은 미국 고유의 종목인데다 장비가 필수라는 점에서, NHL은 계절 종목이라는 한계로 인해 체코나 핀란드, 스웨덴,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나라에서만 인기를 끌 뿐이다.[9] 배구도 있긴 하지만, 배구는 세계 골고루 인기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미식축구는 세계적 인지도는 말할 거 없고... 야구는 미국이 현대적으로 개량했다 뿐이지, 미국이 만든 구기종목이 아니며 역시 전세계적으로 보면 인기도에서 농구에게 압도적으로 밀린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농구를 능가하는 인기 단체 구기 종목은 축구밖에 없다.[10] 더구나 농구나 축구는 앞서 언급된 다른 구기종목들 보다 우위에 있는것이 바로 면적과 인원수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1대1, 2대2 같은 소규모의 인원으로도 경기가 가능한데다 풋살이나 하프 코트 경기와 같이 제한된 면적에서도 대결이 가능하다는 편리성까지 지녔다. 여기에 옥외에서나 실내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전천후성 비기까지 가지고 있다.[11] 축구의 인기에 가려져서 그렇지 아프리카에서 농구의 인기는 엄청나다. 케냐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농구를 하고 싶었는데, 어찌 림을 구해서 대충 나무로 골대를 만들어 집 근처에 뒀더니만 현지인들이 몰려와 덩크를 시도하기도 하며, 나중에는 그 곳이 농구 경기장이 되어버린 일화가 있다... 공과 골대만 있으면 농구도 많이 한다고...[12] 유럽내에서 nba는 축구다음가는 넘버2로 자리잡았다 남미도 마찬가지[13] 해당 디자이너 앨런 시겔은 제리 웨스트를 모델로 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정작 웨스트는 로고가 자신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또한 NBA는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웨스트가 모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 NBA 역사상 최장기간을 집권했으며, 세계적인 규모의 리그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중 하나로 꼽히는 전 총재 데이비드 스턴은 "기록이 없다"며 코멘트를 거부했으며, 현 총재 아담 실버도 이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 물론 이는 눈가리고 아웅에 가까우며, NBA 선수들을 포함해 모든 관계자들은 로고의 모델이 웨스트라는 걸 잘 알고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NBA의 공식 홈페이지의 제리 웨스트 페이지에 담긴 비디오 제목 자체도 그의 별명인 "The Logo"이다. 즉, NBA는 사실상 인정한 것. 디자이너 시겔은 NBA가 웨스트 모델 설에 대해 공식적으로 "도시 전설(urban myth)에 불과하다"고 입장을 정리하는 것에 대해 "그들(NBA)은 리그를 한 개인에 묶어두기보다는 제도화(institutionalize)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와 같은 추측에 대해 웨스트는 동의하면서, "(로고 사용은) 개인(=웨스트)을 영예롭게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리그의 이미지를 홍보하고자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웨스트는 "그래도 로얄티를 좀 받았다면 멋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끝 참고로 제리 웨스트는 모델료는 물론이고 로얄티를 지금까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NBA가 로고 사용으로 인해 매년 벌어들이는 라이센스비가 30억달러(한화 약 3조5천억원)에 달한다는 걸 생각하면, NBA가 웨스트가 로고 모델임을 인정했을 경우 그에게 지불했을 비용이 매년 수백만 달러에 달했을 수도 있다. http://mentalfloss.com/article/63937/does-jerry-west-get-royalties-being-nba-logo[14] 원래 12명이었고 2011~12시즌 일정의 빡빡함 때문에 예외적으로 CBA에서 조건부로 확대했었는데 그 이후 시즌에도 적용되었다.[15] 레이커스는 노란색[16] KBL은 초창기는 NBA와 같았으나, 현재는 정반대.[17] 가끔은 얼트를 입을 때도 있다.[18] 1이 아이콘 에디션, 2가 스테이트먼트 이런 식.[19] 같은 디비전 팀간 4경기(16경기)+같은 컨퍼런스 다른 디비전 팀간 3~4경기(36경기)+타 컨퍼런스 팀간 2경기(30경기).[20] KBL은 NBA 정규리그가 종료할 때쯤 챔피언결정전까지 거의 모든 일정이 끝난다. 그만큼 NBA의 일정은 빡세다.[21] 과거에 비하면 선수들의 평균 출장시간이 상당히 줄었다. 2018-19시즌이 진행중인 3월 2일 기준으로 NBA에서 가장 오래 뛰는 선수는 제임스 하든과 브래들리 빌로 37.4분, 36분대가 두명에 35분 이상 뛰는 선수는 모두 12명이다. 그러나 1997-98시즌을 보면 41.4분을 뛴 마이클 핀리를 선두로 무려 7명이나 40분 이상 뛰고, 38.8분이나 뛴 마이클 조던이 17위, 38.4분을 뛴 게리 페이튼이 20위일 정도로 엄청나게들 뛰었다. 시간을 10년 정도 더 돌려서 NBA 역사상 가장 페이스가 빠르고 피지컬했던 1980년대의 87-88시즌을 보면 체력부담 때문인지 90년대보단 적지만 2010년대보단 훨씬 많아서 1위 조던이 40.4분, 39분대만 네명에 톱 20 전원이 36.6분 이상 뛰었다. 그 다음시즌도 40분대의 조던이 1위, 전 시즌은 래리 버드가 1위로 40분대였다. 게다가 당시는 시즌 후반 체력 보강 차원에서 결장이란 개념은 있지도 않았기에 조던은 저러면서 둘 다 전경기 출장, 버드는 부상으로 8경기만 빠졌을 뿐이었다. 게다가 보스턴같은 팀이 팀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난 팀은 케빈 맥헤일같은 선수가 발의 뼈가 부러졌음에도 수술을 미루고 플레이오프를 전부 치르는, 그것도 39분씩 뛰는 미친 짓을 하다가 선수생명을 깎아먹기도 했다. 뭔가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터프한 시기 (...)인데다 관리도 못 받다보니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선수생명이 짧은 선수들이 많았다. 버드는 10년차에 몸이 아작나 마지막 세 시즌은 악으로 깡으로 버틴 수준이고 맥헤일과 아이재아 토마스는 둘 다 13시즌, 빌 레임비어는 14시즌만에 GG를 쳤다. 물론 카림 압둘자바, 로버트 패리쉬처럼 롱런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매우 드물었고, 유타의 말론&스탁턴은 80년대라기보단 90년대 선수들에 가깝다. 이에 대한 케니 스미스의 부심가득한 멘트가 바로 "Men played in the 80s". 포인트는 세계에서 가장 빡센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는 NBA선수들이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양호한 환경이라는 것. 심지어 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전세/전용기도 없이 일반인들과 같이 수속을 밟고 신인들 놀리느라 잡일 잠깐 시키는 지금과 달리 트레이너와 신인들이 일손이 부족해 잡일을 해야했다.[22] 여담으로 NHL도 정규시즌이 대략 7개월간 82경기인데, 10월 초부터 4월 초까지 농구시즌과 거의 겹친다. NHL과 NBA팀이 같은 도시를 연고지로 쓰는 경우, 거의 대부분 경기장을 같이 쓰기 때문에 시즌 도중에는 매일 마루 조각을 깔았다가 치웠다가를 반복한다. NHL도 똑같이 82경기를 치루긴 하지만 시즌기간이 2주정도 더 길다. 그리고 스타급 플레이어라고 해도 한 경기에 20분 이상 뛰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유럽의 주요 아이스하키리그들의 경우 6개월에 56경기를 치루는 일정으로 NHL이 다른 아이스하키 리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경기를 치룬다고 보기 힘들다. NBA팀 중 역대 가장 많은 경기수를 치른 팀은 2008년 보스턴 셀틱스로 플레이오프에서 7차전-7차전-6차전-6차전까지 가는 강행군 끝에 무려 108경기나 치르고 우승했다. 당연하지만 우승팀 중에서도 최다경기.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1994년 뉴욕 닉스는 우승을 못했다. 1라운드 3승1패 이후 7차전만 세번 연속 치렀으나 휴스턴에 패배. 즉, 당시 기준으로 NBA역사상 가장 빡센 시즌을 보내고서도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얘기) 반대로 현 16강 플레이오프로 정착한 이후 (과거엔 4팀만 가던 때도 있었으니 적절한 비교가 아니다) 가장 적은 경기수로 우승한 팀은 플레이오프 통틀어 한 경기 패배한 2001년 LA 레이커스. 당시엔 1라운드가 5전3승제라 15승1패로 통합 98경기 치르고 우승했다. 1라운드가 7전 4승제로 바뀐 2003시즌 이후 최소경기로 우승한 팀은 2017년 워리어스로 플레이오프에 단 1패만 하며 16승1패, 통합 99경기 치르고 우승했다.[23] 하지만 KBL도 리그 선수층에 비해 일정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장 사용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24] 단순히 경기수만 많은 게 아니라 경기시간 자체도 48분으로 국제규격이나 다른 리그에 비해 긴 데다가 페이스도 빠르다. 또한 선수들의 체격조건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거구들과 몸으로 부딫히는 데서 오는 체력 소모가 더 크다. 김승현의 경우에 전성기 시절 시카고 서머 캠프에 잠깐 참여했다가 체력이 도저히 안되서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다. 서머 캠프도 이 정도인데 정규시즌 리그는... 실제로 대학시절 30경기 안팎을 뛰다가 NBA에서 82경기를 처음 치르게 되는 신인 선수들은 초반에 아무리 잘하던 선수들도 중반쯤 되면 체력의 한계를 나타나며 부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걸 NBA에서는 보통 Rookie Wall"라고 부른다.[25] 두 차례 모두 파업(strike)이 아니라 직장폐쇄(lockout)였는데 국내팬들은 이 차이를 인지 못하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다고 나서는 것이고 직장폐쇄는 회사 측에서 일자리를 주길 거부하는 것이다. NBA의 경우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새로운 연봉체제에 대한 선수노조와 구단주(일반 노사갈등에 대입하면 사측의 입장에 해당한다)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26] 함정은 경기수가 줄었지만 일정은 더 빡세졌다는 것이다. 시즌 자체는 3개월로 절반이 되었는데, 정작 경기수는 82경기의 61%다 보니까 이틀 연속 경기를 뛰어넘는 3일 연속 경기가 나오는 등, 안 그래도 빡센 일정이 더욱 빡세졌다. 그래서 경기수가 줄었음에도 노장들이 많은 팀들 중 몇몇은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지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리그 공동 1위에 해당하는 정규시즌 성적을 거뒀음에도 2라운드에 포틀랜드에게 탈락한 전 시즌 준우승팀 유타 재즈.[27] 당시 시리즈 결과 https://www.basketball-reference.com/playoffs/2006-nba-western-conference-first-round-nuggets-vs-clippers.html, 클리퍼스 홈에서 열린 1차전은 2점차 접전, 덴버 홈에서의 3차전만 너겟츠가 승리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선 클리퍼스가 그리 어렵지 않게 승리했다. 시리즈 전체 득실점차도 +7.6점.[28] 나머지 두 디비전에서 승률 상위 8팀이 나온 경우[29] 특수한 상황 (정규시즌 최다승 등 기록 수립)이 아니면 NBA는 정규시즌 1위에 별다른 수상이나 혜택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정규시즌 성적으로 "챔피언"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디비전 챔피언 뿐이다. 다만 디비전 챔피언에는 트로피가 수요되지 않는다. 팀에 트로피가 공식적으로 수여되는 것은 NBA챔피언과 각 컨퍼런스 챔피언인데, 둘 다 플레이오프 결과로 결정이 된다. 예를 들어 99시즌의 경우, 뉴욕 닉스는 동부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으나 결승에 올라 동부 컨퍼런스로 기록되고 트로피도 받았다. 반면 동부 1위인 마이애미 히트는 디비전 챔피언으로만 기록됐다. 즉, 정규시즌 성적이 아무리 좋아봤자 플레이오프에서 죽을 쑤면 트로피는 받을 수 없다.[30]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동부의 근소 우위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당대에 잘나가던 소위 "왕조"가 어느 팀들이었는지 감안하면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대의 경우 서부는 LA 레이커스가 홀로 군림했지만 동부에는 보스턴과 필라델피아 양대 산맥이 있었고 후반부에는 디트로이트가 치고 올라오면서 동부쪽이 전체적으로는 우위였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양대 컨퍼런스 챔피언이 맞붙는 파이널에서는 LA 레이커스가 동부팀들을 잘 잡아냈고(5우승 3준우승) 전체적으로 80년대에는 우승 10번을 동서부가 정확히 5번씩 양분했다. 다만 실질적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 서부에선 레이커스 단 하나(실제로 이 시기에 우승을 한 서부팀은 레이커스 뿐이다)였던 반면 보스턴과 맞먹는 전력의 필라델피아(전반기), 디트로이트(후반기) 등이 있었던 동부가 더 빡센 것은 사실. 그나마 레이커스의 라이벌이었던 휴스턴의 전력은 끽해야 유독 보스턴을 애먹였던 (실제로 탈락시키기도 했던) 밀워키 벅스 수준이었다. 90년대는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단독으로 왕조로 군림했지만 조던의 1차 은퇴 시기였던 94년, 95년에는 서부팀 휴스턴 로키츠가 우승을 가져갔고 2차 은퇴 직후인 99년 역시 서부팀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109] 서부 컨파가 진짜 파이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던 2000년대 및 그 이후와 비교해보면 훨씬 더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31] 2000년대 초반 서고동저는 기존의 강호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동부의 신흥강호들이 상승세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게 컸다. 인디애나, 뉴욕 등 강호들이 주축선수들의 노화와 세대교체 실패로 무너졌고, 90년대 후반부터 떠올랐던 마이애미 히트는 알론조 모닝이 난데없이 신장병으로 아웃되면서 동기 샤킬 오닐이 최강으로 군림하는 동안 약체로 전락했다. 아이버슨이 두각을 나타냈던 필라델피아는 잦은 부상과 계속해서 바뀌는 팀구성으로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으며 가드-가드-포워드 빅3에 의존했던 밀워키는 골밑이 약해서 한계가 있었고, 올랜도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원맨팀이었다. 이 중 유일하게 강호로 자리잡은게 뉴져지 네츠였는데, 네츠 역시 센터가 전무하고 골밑을 어린 파워포워드 케년 마틴 한명에만 의지해야했다. 이러는 동안 서부엔 포틀랜드가 스카티 피펜을 데려오고, 90년대에 MVP까지 차지했던 센터 데이비드 로빈슨을 중심으로 한 강팀이었던 스퍼스는 또다른 최강의 빅맨 팀 던컨을 중심으로 2000년대 최강 팀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케빈 가넷, 디르크 노비츠키, 크리스 웨버 등이 던컨을 위협하는 최강의 파워포워드 라인을 구성해 각자 팀을 이끌었고, 새크라멘토 킹스가 오랜 약체의 역사를 뒤로 하고 강팀으로 떠올랐고, 레이커스는 드디어 넘치는 재능을 활용할 필 잭슨이란 지도자를 만나 2000년대 초반에 3연패를 달리며 왕조로 떠올랐다. 한 마디로 동부팀들은 하나도 안 풀리는 동안 서부팀들이 줄줄 풀리면서 확 기울어진 것.[32] 이때에 비하면 2017-18 시즌은 서고동저가 많이 완화된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7-18 시즌은 상위권에서 서부팀들이 동부팀들을 상대로 앞설뿐, 하위권 즉 탱킹 레벨에 있는 팀들끼리는 승수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쳐져 있다. 하지만 이 시즌은 전체 승률 뒤에서 1~3위도 모두 동부팀이었다.[33] 단적인 예로 뉴욕 같은 경우, 2000년대 초반에 그 삽질을 하면서도 왕조를 구축하고, LA라는 매력적인 빅마켓에 위치한 레이커스와 구단 가치 1,2위를 다투었다. 넘사벽인 뉴욕이란 시장, 그리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가치 덕분이었다. 시카고 불스도 뉴욕까진 아니어도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심지어 당시 서부엔 유독 가난한 구단주들이 많았다. 스퍼스 구단주 피터 홀트는 현재 자산 규모가 2억달러에 불과하고, 피닉스 선즈 구단주 로버트 사버는 4억달러다. 심지어 당시 워리어즈 구단주였던 크리스토퍼 코한도 2억 5천만 달러 수준.[34] 8년 내내 그런 건 아니었다. 2012년에는 동부 우승팀 마이애미가 서부 우승팀 오클라호마에 비해 더 어렵게 올라왔으며, 2013년의 경우 서부 우승팀 샌안토니오가 인디애나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 동부 우승팀 마이애미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올라왔다. 또한 2016년에도 클리블랜드가 나름 토론토와 접전을 벌였다. 어렵게 올라온 거는 다 이기고 쉽게 올라온 거는 다 지네? 뭔 이런 경우가...[35] 2012년 컨퍼런스 파이널, 2015년 플레이오프, 2018년 플레이오프와 같은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8년 연속 파이널에 간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당장 보스턴 빅3, 폴 조지의 인디애나, 데릭 로즈의 시카고, 애틀랜타, 토론토 등 르브론의 팀과 제대로 대적한 경우도 많았다.[36] 다만 2012년에는 보쉬가 부상당했다가 파이널에 복귀하였다.[37] 15-16 시즌은 반대로 서부 전체 1-2위팀의 예를 상세히 나열하면서 역대급 팀들이 서부에 두 팀이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고동저라고 불리기도 했다.[38] 현재 NBA에 존재하는 팀인 보스턴 셀틱스가 ABL 팀인 '오리지널 셀틱스'에서 따온 것이다.[39] NBA 이전에 존재했던 미국의 프로농구리그[40] 1947년 해체[41] 1950년 해체[42] 1951년 해체[43] 1947년 해체[44] 1949년 해체[45] 1950년 해체[46] 1947년 해체[47] 1947년 해체[48] 필라델피아에서 연고이전[49] 이것 때문인지 1984년에 부임한 데이비드 스턴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마약 퇴치 정책이다.[50] 월간 루키 2012년 10월호 참고. 코비 브라이언트 및 NBA 중국 수익관련기사[51] 이전 글에는 마치 스턴이 드림팀 결성에 기여한 것처럼 나왔으나 전혀 아니다. 처음에는 결사반대하고 막으려다가 IOC에게 여러 모로 굴복한 것일뿐.[52]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前구단주 스털링 사건에 관해 신속하게 처리해 많은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53] 제레미 린 등 순수 아시아 대륙 태생이 아닌 선수들은 제외.[54] 내몽골 태생인 거구의 센터로 힘 따지고 보면 샤킬 오닐에게도 밀리지 않았으나 운동능력이 저질이고(특히 키를 감안해도 NBA 기준 절망적으로 느렸다) 기술도 별로라 살아남지 못했다. 그래도 스퍼스 소속으로 챔피언 반지는 하나 챙겼다.[55] 이 사실을 최초로 다룬 <바스켓볼 다이제스트> 2002년 2월호에 의하면 그가 뛸 당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의식이 팽배했으며, 감독은 그에게 한 마디 건네지 않은 데다 구단으로부터 강제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농구에서 뺄 수 없는 흑인 선수조차도 미국에서 제대로 뛰기 어렵던 시절이니.[56] 단, 이건 와타루 미사카가 일본인이었다는 점과, 해당 시기가 2차 대전이 종료된지 겨우 2년 뒤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57] 굳이 억지로 엮어 본다면 1988년에 마이애미 히트에서 데뷔해 NBA에서 10여년간 주전으로 활약했던 로니 세이컬리(레바논 태생)이 있었고, 1995년 오프시즌에 유타 대학교 출신인 중국인 선수 마젠(马健)이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트레이닝 캠프에 초청받았으나 당시만 해도 아시아인들의 기량이 검증되지 않았던데다가 신장과 포지션에서의 역할이 매치 되지 않는 트위너로 전락하면서 입단이 무산되었고, 후웨이동 역시 1998년과 2000년에 댈러스 매버릭스올랜도 매직에서도 각각 제의가 들어왔으나 부상으로 무산되었다. 북한의 유명 농구선수 리명훈 역시 1999년에 캐나다로 가서 NBA 진출을 위해 맹훈련했으나 결국 NBA 문턱에는 못 갔다.[58] 성공은 아니지만 사실 왕즈츠나 이젠롄도 기대치나 명성에 비해 못 했을 뿐 롤플레이어로 충분히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고국리그에서 슈퍼스타 대접받으면서 편하게 선수생활 할 수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빡센 리그에서 굳이 후보선수로 뛸 이유가 없어서 그렇지...[59] 특히 이젠롄은 케빈 가넷에 비견될 정도로 NBA기준으로도 사기적인 운동능력을 지녔다. 야오밍은 절대적으로 보면 운동능력이 낮은 편이지만 226cm 이상의 소위 말하는 "거인"센터중에는 단연 최강이었다.[60] KBL의 경우 하승진급의 덩치가 골밑에 있으면 그것 자체만으로 상대팀에겐 위협이 된다. 그런데 NBA에서는 하승진이 아니라 야오밍이라도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을 정도로 괴물들이 즐비하다. 야오밍은 NBA에 오기 직전에 중국리그를 완전히 평정하고 왔는데, 루키시즌 골밑에서 레이업을 하다가 같은 루키였던 211cm의 네네 힐라리우에게 뒤에서 블럭당했다. 아시아 무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무브. 쉽게 말해 KBL에서 한시즌에 덩크 블럭이 얼마나 나오는가? 그런데 NBA에서는 원맨속공의 덩크조차 종종 블럭이 나온다. 사실 블럭능력이 뛰어난 네네까지 갈것도 없이 175cm의 초단신인 네이트 로빈슨조차 야오밍을 한번 블럭한 적이 있다. NBA 선수들이 얼마나 상식밖의 괴물들인지 보여주는 부분.[61] 제이슨 윌리엄스나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같은 선수들은 스피드는 빠르지만 점프력은 NBA 가드 기준으로 평범한 편에 속하고 키가 178cm에 불과한데도 경기 도중에 덩크를 무난히 성공시킨 적이 있다. 즉, NBA 기준에서 178인 선수가 덩크능력이 있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는 것. 참고로 이건 국내 기준으로 김승현의 키와 같다.[62] ‘엘리트주의’ 학원 스포츠에서 ‘린새니티’는 없다 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711000658[63]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NBA팀들은 선수들과 계약할 때 스키나 오토바이, 스카이다이빙 등 부상위험이 큰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었는데, 이 중에 농구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연습도 못하는 건 아니고, 자선경기나 야외경기 역시 팀이 합의해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던은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든지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고, 이런 조항을 넣은 선수는 조던이 최초였다. 이는 일명 "농구에 대한 사랑(for the love of the game)" 조항으로 불린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조항이 상당히 흔해졌다고 한다.[64] 사실 여기엔 어느 정도 운빨도 있다. 유일한 NBA선수인 하승진이 입단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하필 당시 리빌딩하던 시점이라 플레이오프 근처에도 못 갔던 것. 실제로 중국인으로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인 멍크 바터와 쑨예는 NBA기준으로 하승진(두 시즌 통산 평균 6.9분 1.5점 1.5리바운드)과 별 차이도 없는 폐급 선수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아시아인으로 유일한 NBA슈퍼스타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 야오밍은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사실 멍크 바터는 덴버에서 첫 시즌동안 15분 뛰며 5.1점 3.6리바운드란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시즌동안 각각 3.8분 0.8점 0.8리바운드, 5.7분 1.1점 1.1리바운드란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더욱 심한 건 6피트9인치 콤보가드로 기대를 받았던 쑨예로 09시즌 딱 1년 뛰면서 2.8분, 0.6점 0.2어시스트 0리바운드 0.1스틸 0.1블럭이란 엄청난(...) 기록을 냈다. 구체적으로 슛 11개 던져 3개 넣어 6점, 어시스트 2개, 0리바운드 1스틸과 1블럭을 했다. 10경기동안. 하승진 커리어에서 유일한 하일라잇이었던 2004-05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그가 24분 뛰면서 기록한 13점 5리바운드 1스틸보다도 쑨예가 NBA 커리어 내내 쌓은 기록이 더 적다(...). 한마디로 쑨예나 바터나 NBA기준으로는 하승진과 별 차이도 없는 선수들이었던 것. 그런데 이들은 운좋게 강팀에 합류해 우승반지를 하나 챙겼다. 사실 덴버에서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바터는 제쳐두고라도 쑨예는 강팀 레이커스가 아니라 그 어떤 팀에서라도 출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택도 없는 돌파하다가 어이없이 공 흘리기, 쉬운 슛 놓치기, 수비에서 정신 놓기 등...오죽하면 36분 환산 기록이 평균 7.7점 2.6어시스트다(...)PER은 마이너스에 트루슈팅 퍼센트가 2할대라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차라리 골밑에 거대한 덩치 하나 박아놓는 효과가 있는 하승진이 그나마 나을 정도다.[65] 당시 본업은 이화여대 농구부 감독이었다.[66] 2015-16 시즌에는 skySports도 중계권을 구입하여 skySports에서도 SPOTV가 제작하는 중계방송이 송출되었다. 2016-17 시즌 현재 skySports에서는 녹화중계로 편성 중.[67]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휴스턴 로케츠,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식서스, 토론토 랩터스[68] 박찬웅 캐스터는 게다가 농구선수 출신이다.[69] CBS 기자. 2017-2018 시즌 올스타전 중계에서 갑작스레 나온 재채기로 빅재미를 선사했다(...)[70] 2008년 해체.[71] 1954년 해체.[72] 1950년 해체.[73] 1951년 해체.[74] 역대 레전드급 선수중 저 평균체격과 일치한 선수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이다.[75] 물론 백인 선수들도 있었지만 이 경기에서 뛰지 않았다.[76] 저지, 모자, 두건, 티셔츠, 큰 장신구, 스니커등[77] 이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했던 두 선수가 앨런 아이버슨팀 던컨이다. 아이버슨은 평소에 개성 넘치고 화려한 힙합 패션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이고, 팀 던컨은 그냥 정장이 불편하고 귀찮아서 (...)[78] 자세한 사항은 론 아테스트 문서 참조.[79] 리그 패스를 시청 중인 상태에서 다른 기기로 접속하면 시청 중이던 기기의 접속이 끊기며 로그아웃되어버린다. 심지어 태블릿으로 경기 보며 박스스코어 확인하려고 폰으로 모바일앱을 켰을 뿐인데도 태블릿이 동시 접속으로 끊기며 로그아웃되는 경우가 있다.[80] 슈퍼소닉스 홈구장이였다[81] 1순위 하킴 올라주원, 3순위 마이클 조던, 5순위 찰스 바클리, 16순위 존 스탁턴[82] 1순위 앨런 아이버슨, 5순위 레이 앨런, 13순위 코비 브라이언트, 14순위 페자 스토야코비치, 15순위 스티브 내시[83] 1순위 르브론 제임스, 3순위 카멜로 앤서니, 4순위 크리스 보쉬, 5순위 드웨인 웨이드[84] https://www.si.com/nba/2016/01/04/nba-10-day-contract-phoenix-suns-zabian-dowdell-alvin-gentry[85] 원래 C급까지 있었으나 17시즌부터 폐지.[86] 사실상 미국 내 하부리그 선수들은 시즌 내내 오디션을 보는 것에 가깝다. 해외로 가는 선수들은 NBA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 비열하게 이중계약에 야반도주했던 버나드 블런트가 계약했던 리그는, 항목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두시즌만에 망한 소규모 허접한 리그였다. 돈도 별로 안 주는 이런 리그들에서 뛰는 유일한 이유는 NBA 스카우터들에 근접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NBA 스카우터들도 싸게 써먹을 수 있는 선수들을 찾기 위해 (아래 나오지만 보통 10일 단위로 최소연봉 계약) 이런 리그들을 샅샅히 뒤진다.[87] 훨씬 유명한 도시이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연고지인 오레건주 포틀랜드와 다른 곳이다.[88] 15시즌에 고작 4경기, 그 다음 시즌엔 31경기밖에 못 뛰는 등 입지가 불안했던 킬패트릭은 16년에 브루클린 네츠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89] https://www.si.com/nba/2017/01/23/nba-10-day-contract-travel-journey-tim-frazier-sean-kilpatrick[90] https://www.denverstiffs.com/2016/1/18/10783974/the-most-unique-contract-in-sports-the-nba-10-day-contract[91] 물론 동등하다는 건 공식적인 NBA 선수란 얘기일 뿐이지, 팀내 입지에선 당연히 팀내 최하위이다. 여기에 신인이라면 그 위상이 더욱 추락한다.[92] 물론 NBA팀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5만불이 진짜 껌값처럼 버려도 되는 돈은 아니다. 다만 쓸모없는 선수를 로스터에 두고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다른 선수를 놓치는게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손해를 무릅쓰고 선수들을 방출하는 것이다.[93] NBA의 스타플레이어들은 워낙 알아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택시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사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이 중 특이한 경우는 코비 브라이언트인데, LA의 악명 높은 교통혼잡을 버틸 수 없어서 경기장까지 자가용 헬리콥터로 출근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헬기는 코비의 개인 소유는 아니고 렌트한 것인데, 팀 동료 스티브 블레이크가 급하게 치료 받아야 할 때, 빌려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은퇴 후, 지금도 아내와 기념일을 챙기는 용도로 잘 타고 다닌다고 한다.(...)[94] 이같은 케이스가 데뷔 후 표기 신장이 198cm->201cm->다시 198cm로 바뀐 코비 브라이언트, 데뷔 이후 2000년대 초중반에 7피트(213cm)로 바꿨다가 다시 6-11로 낮춘 팀 던컨 등이 있다. 또한 스카티 피펜은 선수생활 내내 6피트 7인치(201cm)로 표기되다가 선수생활 말기인 30대 후반에 갑자기 6피트8인치로 바꿨다.[95] 206cm인 파워포워드는 조금 작은 감이 있지만, 208cm는 파워포워드 평균신장이다.[96] 후자의 케이스에 가까운게 신발 신고 194cm가 조금 넘지만 193cm로 표기되는 드웨인 웨이드이다. 이 때문에 웨이드는 6-4급 선수들 중에 상당히 큰 편이다.[97] 2003년 드래프트 신체검사 결과이다. https://www.nba.com/media/bulls/lottery_vitals_03.pdf 대부분의 선수들이 신발신은 키/반올림하는 걸 볼 수 있다.[98] 이 정도 키의 슈팅가드들은 2004 덩크 챔피언 프레드 존스같이 롤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다. 183cm인 앨런 아이버슨은 워낙 예외적인 존재고, 그조차도 슈팅가드 수비를 191cm에 달하는 장신 PG 에릭 소노우가 대신 해줬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전성기 몇년만 슈팅가드로 뛰었을뿐 데뷔도 포인트가드로 했고, 커리어 대부분을 포인트가드에서 출전했다. 그는 슈팅가드 수비를 거의 할 수 없는 선수였기 때문.[99] 이 때문에 신발 굽 1인치, NBA에서 키 부풀리기 0.5~1인치, KBL에서 키 줄이기까지 해서 NBA식 키와 실제 키 사이에 2~3인치 정도 차이가 나곤 한다. 가장 심한 케이스는 201.7cm로 KBL에서 측정됐지만 미국에선 211cm(6피트 11인치)로 표기된 나이젤 딕슨인데, KBl키가 실제일 경우 미국식으로 농구화를 아무리 굽높은 걸 신어봤자 절대 6피트9인치를 넘길 수 없다.[100] NBA식 표기법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나무위키를 포함해 일각에선 그가 데뷔 후 자랐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만 22세인 야오밍이 데뷔 이후 자라는게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이에 대한 출처를 찾아볼 수가 없다. 추가바람.[101] 하도 키에 대해 질문이 많자 장난스럽게 "난 6피트 13인치에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피트-인치법은 12인치가 끝.[102] 월튼은 극심한 부상으로 인한 오랜 투병으로 신체가 많이 굽어 현재 현역시절에 비해 키가 많이 줄은 상태라 현재 월튼의 키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103] NBA는 철저히 연차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기 때문에 연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소/최대 연봉이 달라진다. 10년차 이상 베테랑이라면 NBA와 풀타임 계약을 한 것만으로 1년에 293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 물론 NBA입성이 아슬아슬한 선수의 경우 처음부터 1년 계약을 맺기보단 단기계약을 맺는게 보통. 또한 베테랑 선수들이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걸 막기 위해 3년 이상 뛴 (연차로 따지면 4년차) 베테랑 선수들을 계약하는 팀에겐 NBA차원에서 보상을 해줘서 2년 경험을 가진 선수(3년차)의 미니멈 연봉만 지불할 수 있게 해주고 차액을 NBA에서 보상해준다. 예를 들어 13년차 선수를 계약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팀은 원칙적으로 293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해당 규정으로 인해 3년차 선수의 연봉인 151만2천 달러 정도만 지불해도 된다. 물론 해당 선수는 연봉을 다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그 차액인 142만 달러 정도는 NBA사무국에서 지불해준다는 얘기. https://www.hoopsrumors.com/2018/06/nba-minimum-salaries-for-201819.html[104] 물론 조던은 80년대 후반에 장기계약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커리어 대부분 기간동안 헐값에 뛰었다. NBA가 새로운 TV중계권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장기 계약을 했는데, 그동안 치솟은 NBA의 인기 덕분에 그 계약액수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계약 당시만 해도 NBA에서 1,2위를 다투던 계약이 순위권에도 못 드는 헐값으로 전락한 것. 비슷한 예가 스카티 피펜 예를 들어 1995-96시즌의 경우 조던의 연봉은 385만달러로 토니 쿠코치보다 고작 29만달러 많았으며 피펜은 심지어 쿠코치보다 50만달러 넘게 적었다. 해당 시즌 연봉 1위는 패트릭 유잉의 1천8백만달러, 2위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981만 달러였으며, 당시 리그 평균 연봉이 415만 달러였으니 조던과 피펜이 얼마나 헐값에 뛰었는지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조던이 계약기간이 끝난 97년, 98년에 초고액을 받을 것은 이미 예정되어있었지만, 무려 통합 6천3백만달러를 받은 것 (선수생활 받은 연봉 총액의 2/3)은 시카고 불스의 삽질 때문이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105] 물론 이런 선수들은 조던처럼 매 경기 농구화를 갈아신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다.[106] 여담이지만 영상을 보면 당시 감독 덕 칼린스가 필 잭슨 코치를 칭친하며 "저 친구는 곧 감독이 될 거에요"라고 하는데, 머지않아 본인의 자리에 잭슨이 앉게된다(...).[107] 다만 이건 그가 2라운드 출신 최소연봉자였던 식서스 시절 얘기이다. 당시 그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지만 현재 그는 16년차 베테랑에 누적연봉도 7천만달러가 넘는 부자이니 지금은 다를 확률이 높다.[108] NBA Rookies 2005년 판에 나온 장면인데 당시 JR은 19세 신인이라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자기 돈으로 산 집이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아직 애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좋은 모습은 아닌데, 몸관리가 생명인 프로가 과자로 끼니를 떼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