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21 19:45:30

NBA 드래프트/역대 1순위

1. NBA 드래프트 역대 1순위2. 여담

1. NBA 드래프트 역대 1순위

파일:NBA 로고.svg
NBA 드래프트 역대 1순위
<rowcolor=#ffc224> 년도 구단 선수 국적 포지션 소속교/팀
1947 피츠버그 아이언맨[1] 클리프턴 맥닐리 미국 가드 텍사스 웨슬리안 대학교
1948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2] 앤디 톤코비치 미국 가드/포워드 마샬 대학교
1949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 하위 새넌 미국 센터 캔자스 주립대학교
1950 보스턴 셀틱스 찰리 쉐어[3] 미국 센터 볼링 그린 주립대학교
1951 볼티모어 불리츠[4] 진 멜키오리 미국 가드 브래들리 대학교
1952 밀워키 호크스 마크 워크맨 미국 센터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1953 볼티모어 불리츠 레이 펠릭스R 미국 가드/포워드 맨체스터 브리티시아메리칸스[5]
1954 볼티모어 불리츠 프랭크 셀비[6] 미국 포워드/센터 펄먼 대학교
1955 밀워키 호크스 딕 리켓츠 미국 가드/포워드 듀케인 대학교
1956 로체스터 로열스 시휴고 그린[7] 미국 가드/포워드 듀케인 대학교
1957 신시내티 로열스 로드 헌들리 미국 가드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1958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엘진 베일러R 미국 포워드 시애틀 대학교
1959 신시내티 로열스 밥 부저 미국 포워드 캔자스 주립대학교
1960 오스카 로버트슨R[8] 미국 가드/포워드 신시내티 대학교
1961 시카고 패커스 월트 벨라미R 미국 센터 인디애나 대학교
1962 시카고 제피어스 빌 맥길[9] 미국 포워드/센터 유타 대학교
1963 뉴욕 닉스 아트 헤이맨[10] 미국 포워드/가드 듀크 대학교
1964 짐 반스[11] 미국 센터/포워드 텍사스 웨스턴 대학
1965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프레드 헤츨 미국 포워드/센터 데이비슨 칼리지
1966 뉴욕 닉스 카지 러셀 미국 포워드/가드 미시간 대학교
1967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지미 워커[12] 미국 가드 프로비던스 칼리지
1968 샌디에이고 로키츠 엘빈 헤이스 미국 센터/포워드 휴스턴 대학교
1969 밀워키 벅스 루이스 앨신더R[13] 미국 센터 UCLA
1970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밥 레이니어[14] 미국 센터 세인트 보너벤처 대학교
1971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오스틴 카 미국 가드 노터데임 대학교
1972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라루 마틴[15] 미국 센터 로욜라 대학교(일리노이)
1973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더그 콜린스 미국 가드/포워드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1974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빌 월튼 미국 센터 UCLA
1975 애틀랜타 호크스 데이비드 톰슨 미국 포워드/가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1976 휴스턴 로키츠 존 루카스[16] 미국 가드 메릴랜드 대학교
1977 밀워키 벅스 켄트 벤슨 미국 센터 인디애나 대학교
1978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마이칼 탐슨[17][18] 바하마 포워드/센터 미네소타 대학교
1979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매직 존슨[19] 미국 가드/포워드 미시간 주립대학교
1980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조 베리 캐롤[20] 미국 센터 퍼듀 대학교
1981 댈러스 매버릭스 마크 어과이어[21] 미국 포워드 드폴 대학교
1982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제임스 워디[22] 미국 포워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983 휴스턴 로키츠 랄프 샘슨R[23] 미국 센터 버지니아 대학교
1984 하킴 올라주원[24][25] 나이지리아[26] 센터 휴스턴 대학교
1985 뉴욕 닉스 패트릭 유잉R[27] 미국[28] 센터 조지타운 대학교
1986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브래드 도허티[29] 미국 센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987 샌안토니오 스퍼스 데이비드 로빈슨R[30] 미국 센터 미국 해군사관학교
1988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대니 매닝 미국 포워드 캔자스 대학교
1989 새크라멘토 킹스 퍼비스 엘리슨[31] B 미국 센터 루이빌 대학교
1990 뉴저지 네츠 데릭 콜먼R[32] 미국 포워드/센터 시라큐스 대학교
1991 샬럿 호네츠 래리 존슨R[33] 미국 포워드 UNLV
1992 올랜도 매직 샤킬 오닐R[34] 미국 센터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1993 크리스 웨버R[35] 미국 포워드 미시간 대학교
1994 밀워키 벅스 글렌 로빈슨[36] 미국 포워드 퍼듀 대학교
1995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조 스미스[37] 미국 포워드 메릴랜드 대학교
1996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앨런 아이버슨R[38] 미국 가드 조지타운 대학교
1997 샌안토니오 스퍼스 팀 던컨R[39] 미국 포워드/센터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1998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마이클 올로워칸디[40] B 나이지리아[41] 센터 퍼시픽 대학교
1999 시카고 불스 엘튼 브랜드R[42] 미국 포워드 듀크 대학교
2000 뉴저지 네츠 케년 마틴 미국 포워드 신시내티 대학교
2001 워싱턴 위저즈 콰미 브라운[43][44] B 미국 센터 글린 아카데미
2002 휴스턴 로키츠 야오밍[45] 중국[46] 센터 상하이 샤크스
2003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르브론 제임스R[47] 미국 포워드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2004 올랜도 매직 드와이트 하워드 미국 센터 사우스웨스트 애틀랜타 기독학교
2005 밀워키 벅스 앤드류 보것[48] 호주[49] 센터 유타 대학교
2006 토론토 랩터스 안드레아 바르냐니[50] B 이탈리아[51] 포워드/센터 베네통 트리비소[52]
2007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그렉 오든[53] B 미국 센터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2008 시카고 불스 데릭 로즈R[54] 미국 가드 멤피스 대학교
2009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블레이크 그리핀R[55] 미국 포워드 오클라호마 대학교
2010 워싱턴 위저즈 존 월[56] 미국 가드 켄터키 대학교
2011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카이리 어빙R[57] 미국[58] 가드 듀크 대학교
2012 뉴올리언스 호넷츠 앤서니 데이비스[59] 미국 포워드/센터 켄터키 대학교
2013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앤서니 베넷[60] B 캐나다[61] 포워드 UNLV
2014 앤드류 위긴스R[62] 캐나다 가드/포워드 캔자스 대학교
2015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칼앤서니 타운스R[63] 미국[64] 센터 켄터키 대학교
2016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벤 시몬스R[65] 호주 가드/ 포워드[66]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2017 마켈 펄츠[67] B 미국 가드 워싱턴 대학교
2018 피닉스 선즈 디안드레 에이튼[68] 바하마 센터 애리조나 대학교
2019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자이언 윌리엄슨[69] 미국 포워드 듀크 대학교
2020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앤서니 에드워즈[70] 미국 가드 조지아 대학교
2021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케이드 커닝햄[71] 미국 가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2022 올랜도 매직 파올로 반케로R[72] 미국 포워드 듀크 대학교
2023 샌안토니오 스퍼스 빅터 웸반야마R[73] 프랑스 센터 메트로폴리탕 92[74]
2024 애틀랜타 호크스 자카리 리사셰[75] 프랑스 포워드 JL 부르[76]
2025 댈러스 매버릭스 쿠퍼 플래그 미국 포워드 듀크 대학교

2. 여담

  • 이 명단에 어째서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코비 브라이언트, 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제리 웨스트, 빌 러셀, 케빈 가넷, 니콜라 요키치, 덕 노비츠키, 칼 말론, 야니스 아데토쿤보 등 역대급 선수들이 왜 이 목록에 없는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당시에는 12명의 선수 모두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먼저 조던은 1984년에 1라운드 3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지명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던이 역대급 선수가 되리란 예상은 있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빅맨의 시대였고 가드였던 조던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77] 그를 대신해 1순위로 뽑힌 선수는 하킴 올라주원, 물론 올라주원도 소위 말하는 4대 센터의 일원으로서 휴스턴 로키츠의 2연속 우승을 이끌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위대한 선수이므로 조던의 윗 순위라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다.[78]

    문제는 2순위로 뽑힌 샘 보위... 물론 포틀랜드는 이미 슈팅 가드 포지션에 짐 잭슨이란 좋은 선수가 있고, 그 뒤를 이어 클라이드 드렉슬러라는 뛰어난 유망주가 있었던 데다[79] 가드가 아닌 센터가 급했기 때문에 지명한 것이며 찰스 바클리존 스탁턴은 당시로서는 상위 픽을 소모한다는 판단이 거의 불가능했던 선수였다. 그리고 보위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포텐이 만개하지 못한 케이스이므로 결과론일 뿐이지만, 어쨌든 지금도 이 선택은 NBA는 물론 미국 스포츠 전체로 보아도 역사상 가장 멍청한 픽으로 주구장창 까이고 있다.
매직 존슨의 최고 라이벌이자 동시기 NBA의 아이콘이라고 평가 받은 버드 같은 경우에는 원래 버드가 1978년 3학년을 마치고 4학년까지 대학을 다닐 예정으로 드래프트 신청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히 대부분의 구단이 내년에 뽑지 뭐...하는 생각으로 안뽑았는데 보스턴 셀틱스가 덜컥 6번 픽으로 지명했다. 참고로 NBA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을 안 했더라도 일정 자격을 갖는 선수들은 자동으로 드래프트 대상이 되어 선수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지명될 수 있다. 그 자격요건은 (미국인 선수의 경우) 1. 4년간 대학에서 뛰었을 것. 2.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국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을 경우, 고교 졸업 이후 4년이 지났을 것. 3. NBA 외의 프로리그 팀과 계약을 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외국인 선수의 경우) 4. 드래프트가 열리는 해 기준으로 만 22세 이상일 것 (즉, 드래프트가 2015년 6월 25일에 열린다면, 201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만 22세가 되는 1993년 12월 31일생까지 자동 참가대상이 되는 것이다) 5. NBA 외의 미국 리그의 프로팀과 계약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당연하지만 뽑혔다고 해서 강제로 NBA에 끌려와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수가 훗날 NBA에서 뛰기로 마음을 먹었을 경우에는, 그를 지명한 팀이 지명권을 트레이드하지 않는 한 무조건 그 팀과 계약을 해야 한다. 추가로 NBA 구단 입장에서는 "데뷔 안한 선수에 대한 권한" 역시 자산으로 취급되어 트레이드할 수 있다. 하지만 버드는 1978-79 시즌 합류를 거부했고, 셀틱스는 이 6번픽을 날려버리고 다른 선수를 뽑을 수 있었지만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지명권을 보호했으며 셀틱스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히도 1년 후에 대학을 졸업한 버드가 입단한 것이다. 1979년 드래프트 1번픽은 바로 매직이었는데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버드와 매직이 79년 1번픽을 놓고 경쟁했을 것이다.
코비 같은 경우에도 코비 브라이언트/생애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전년도에 고졸 신인으로 뽑힌 케빈 가넷이 잘 성장하고 있긴 했지만 고졸 신인들에 대한 주가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었고, 거기에 코비도 고졸 신인에 불과했고 평범한 체격에 운동능력만 좋은 18세 가드여서 원래 드래프트를 지명한 샬럿 호네츠가 13픽으로 뽑은 것이다. 이 때 당시 레이커스의 단장인 제리 웨스트가 선견지명을 발휘하여 당시 올스타급 센터로 평가 받은 블라디 디박을 트레이드로 샬럿에 주고, 코비를 데려온 것이라 어찌 보면 팀 입장에서는 모험을 한 것인데 결국 코비가 시즌이 보낼수록 성장을 하고, 거기에 코비의 영입으로 샐러리에 여유가 생긴 레이커스는 당시에도 최고의 센터인 샤킬 오닐마저 영입하는데 성공하면서 새로운 황금기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이런 점으로 인해 코비와 디박의 트레이드는 샬럿 입장에서는 최악의 트레이드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다만 당시 슈퍼스타 글렌 라이스를 영입하고 즉전감 센터가 필요했던 샬럿 입장에서도 고졸 유망주 하나 주고 준척급 센터를 영입했으니 바보짓이라고 하긴 그렇다. 게다가 레이커스가 샤킬 오닐을 영입했으니 잉여인거지 당시 29세였던 디박의 가치는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트레이드 당시에 오히려 환영했던 건 샬럿이었을 것이다.
커리는 스테판 커리/선수 경력 항목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뛰어난 슈터라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NCAA에서 탁월한 득점력을 보이던 슈터들이 NBA에서 신장, 체중, 운동 능력 등 피지컬 측면의 한계를 보이며 추락하는 예는 많았고 특히 커리는 대학 2학년 때 키가 187cm까지 자랐지만 여전히 포인트 가드의 신체와 슈팅 가드의 능력을 가진 전형적인 트위너였기 때문에 상위 픽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였다. 그래서 블레이크 그리핀, 하심 타빗, 제임스 하든, 타이릭 에반스, 리키 루비오, 조니 플린에 이어 1라운드 7픽이라는 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것이다. 이 때 뉴욕 닉스가 특히 커리를 엄청 탐내고 있었고 심지어 커리 본인도 뉴욕에 가길 원하면서 다른 팀과의 워크아웃을 거부하고 뉴욕이랑 워크 아웃을 진행했을 정도로 서로 서로 뉴욕행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알려진 뒷이야기에 의하면 골든스테이트가 커리를 지명하지 않았더라도 뉴욕에 가는 일은 없었을 확률이 높았다. 골든스테이트는 전통적으로 항상 좋은 빅맨을 원했고 당시 드래프트에 쓸만한 빅맨이 없던 것을 노려 피닉스 선즈에서 무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카드로 써서 커리의 지명권을 얻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양 팀은 드래프트에서 서로 어느 정도 합의를 마친 상태였는데, 이 합의에는 한 가지 선결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5픽, 6픽을 가지고 있던 미네소타가 커리를 뽑을 리가 없다는 것. 미네소타는 일단 5픽으로 리키 루비오를 뽑을 것이 거의 확정된 상태였는데, 리키 루비오를 뽑게 된다면 6순위에서 또 다시 언더 사이즈 가드인 커리를 지명할 리가 없을 것이라 본 것이다. 그렇기에 7픽을 가진 골든스테이트와 트레이드를 진행한 것이다. 거기에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라는 빅네임이 거론된 이유도 당시 골든스테이트는 몇 년째 쓸만한 빅맨이 없어서 빅맨에 혈안이 되어 있던 상태여서 피닉스의 제안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문제는 골스 내부에서 커리에 대한 평가 역시 굉장히 높았다는 것이다. 훗날 디 애슬랜틱 지의 골스 담당 기자 마커스 탐슨에 따르면 당시 골스의 단장이었던 래리 라일리가 커리가 1학년일 때부터 커리, 커리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애초에 골든스테이트는 커리가 7픽까지 내려올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피닉스와의 거래에는 '골스가 운좋게 높은 순번, 4~5 픽 이내로 커리를 데려올 수 있는 겅우'라는 골스 내부의 암묵적인 전제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드래프트 픽 추첨일에 7픽에 당첨됐을 때는 커리를 데려오는 것을 반쯤 포기한 상태가 되다시피했고, 자연스레 피닉스와의 거래도 거의 흐지부지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런데 드래프트 당일 뜻밖에도 커리가 7픽까지 내려왔다. 그 결과 골스 쪽에서는 어머 좋아라 하며 커리를 뽑았고 피닉스의 제안은 허공에 날아가버렸다. 사실 골스가 아닌 다른 팀이었더라도 커리가 7픽으로 뽑힌 이상 7픽 신인과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라는 빅 카드를 바꾸는 일은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픽 순위에 따라 루키 계약 액수가 달라지기에 두 선수의 샐러리가 아예 들어맞지를 않는 상황에서 심지어 스타더마이어는 FA가 코앞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커리 드래프트에서 제일 삽질을 한 팀은 바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였다. 5픽에서 루비오를 뽑은 것이야 당시 루비오에 대한 기대치와 평가가 높았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6픽에서 커리를 거르고 조니 플린을 뽑은 것이었다. 훗날 밝혀진 이유는, 커리는 워크아웃을 거른 반면, 플린은 워크아웃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보여준 리더십이 맘에 들었다나 뭐라나.... 심지어 포지션 중복을 고려해서 커리나 플린을 안 뽑겠다면 더마 드로잔이라는 차선책까지 있었음에도 말이다. 어쨌거나 팀버울브스의 이 어리석은 선택은 드래프트 당일부터 욕을 들어먹었고, 결국 10여년간 하위권에 머물러야 한 그야말로 참혹한 실패로 귀결되어 버렸다.
듀란트 같은 경우에도 당시 대학에서 슈퍼 스타긴 했지만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다소 떨어지는 수비 기본기와 불안한 볼 핸들링, 높은 드리블 자세, 너무 마른 체격 등이 단점으로 언급되었다. 거기에 07년 드래프트 당시 정말 오랜만에 그렉 오든이라는 센터 유망주가 등장했다. 오든의 경우 드래프트 당시 컴패리즌이 빌 러셀,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이었고 못해도 디켐베 무톰보같은 역대급 수비 스페셜리스트가 될 거라는 평가였다. 게다가 포틀랜드는 2-3번 포지션이 브랜든 로이, 트레비스 아웃로, 루디 페르난데즈 등으로 준수했지만 센터는 빈약했다. 결국 포틀랜드는 오든을 1순위로 지명했고, 듀란트는 2순위로써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향한다. 그러나 데뷔 시즌부터 두 선수의 운명은 완전히 엇갈려 오든은 유리몸으로 최악의 1픽으로 전락하고, 듀란트는 신인왕 수상 이후 NBA 역사에서 논해지는 슈퍼스타가 된다.
웨스트는 하필 같은 해 드래프트에 오스카 로버트슨이 같이 참여하면서 2순위로 밀려났고, 러셀은 체격이나 실력 문제가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차별 때문에 여러 구단들이 흑인 선수를 지명하기 주저했고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어 팀에 곧바로 합류할 수 없게 되자 1순위였던 로체스터에서 러셀 지명을 포기했다. 당시 세인트루이스가 연고지였던 2순위의 호크스도 세인트루이스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지역이었기에 러셀 지명을 주저하다가 보스턴에서 올스타급 선수인 에드 맥컬리와 클리프 헤이건을 받는 조건으로 러셀을 지명한 뒤 보스턴으로 트레이드한 것이다. 다만 세인트루이스도 이 두 선수와 함께 1957-58 시즌 팀 역사상 유일한 우승을 달성했기에 로체스터와는 달리 손해를 봤다고 하긴 그렇다.

가넷 같은 경우 워크아웃에서 보여준 엄청난 운동능력 덕분에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키만 본다면 빅맨이 어울렸으나, 당시에 100kg도 안되는 몸무게 때문에 파워 포워드를 보기엔 파워가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사실 또 다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바로 고졸 출신이었다는 점인데 당시 NCAA는 커녕 성인농구 경험이 전무한 풋내기로 수많은 전문가들은 그를 선택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도박이라는 평을 내렸고, 이마저도 워크아웃에서 말도 안되는 운동능력과 다재다능함으로 5순위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요키치는 우선 세르비아 리그 자체가 주목도가 떨어져서 성적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고, 스카우팅 리포트도 득점력에 대한 평가가 있긴 했으나 너무 느린 기동력 때문에 NBA 레벨에서 수비가 약할 것이라고 예측되어 2라운드 11순위, 전체 41순위라는 매우 낮은 드래프트 순위를 받은 것이다. 노비츠키는 당시 선수 알아보는 눈과 트레이드 감각이 있던 돈 넬슨보스턴 셀틱스보다 먼저 가로채서 댈러스에 데려오긴 했지만, 자세한 과정을 보면 애초에 댈러스는 노비츠키에게 6번 픽을 쓰기 아까워 픽다운을 해 9번 픽으로 뽑았으니 지금 같은 레전드로 성장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 농구 명문인 동유럽 국가들도 아니고 유럽에선 농구 변방에 가까운 독일 리그 출신 19세 소년에 불과하였고, 노비츠키 때는 유럽 출신 스타들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미국 교육을 받지 않고 독일 리그에서 직행한 선수는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5위 이내 픽순위를 받기에는 어려웠다.
말론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평가가 높은 편이었으나 대학에서 학년이 오를수록 스탯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여 평가를 상당히 깎아먹었고 드래프트에서 13픽까지 밀리게 된 것이다. 아데토쿤보는 2013년 드래프트 자체가 괜찮은 유망주가 씨가 말라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결국 다수의 팀들이 해외로 시선을 돌렸고 실제로 아데토쿤보도 당시 NBA 세계에서 잘 알려진 유망주였지만, 아데토쿤보 정도의 유망주가 10번대 픽으로 예상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2013년 NBA 드래프트가 얼마나 유망주 풀이 얕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2012-13 시즌 당시 아데토쿤보는 하필 그리스 2부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1부 리그 올스타전에 팬서비스 차원에서 특별 참가자로 선정되어 뛰었지만, 만 18세의 그리스 2부 리그에서 뛰는 소년은 소위 raw potential만 보는 로또급 유망주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NCAA 경험이 없고 정보가 산정된 미지의 규격 외 선수다 보니 아데토쿤보는 어느 정도 폭망 아니면 대박으로 평가받았가 때문에 15순위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농구 종목 특성 상 빅맨에 대한 선호는 예나 스몰볼이 대세인 지금이나, 미래에도 여전할 것이기에 현재 팀 구성원 중 출중한 빅맨이 둘 이상 있는 게 아니라면 기타 조건이 비슷하다는 전제 하에 그 중 체격 조건이 가장 좋은 빅맨을 1순위 입장에서 지나치기 매우 어렵다. 허나 1순위라도 무조건 잘 적응한다는 보장은 없고, 미 프로 스포츠 중 세계화에 가장 성공한 NBA인 만큼 매년 전 세계의 괴물들이 몰리는 풀이기에 결과론적으로 후 순위 선수들이 대박나는 경우가 많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 콰미 브라운이나 그렉 오든, 앤서니 베넷 등의 실패작이 껴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뽑힐 만한 선수가 뽑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80]
    99년 이후 1픽으로 베스트 5를 꾸리면 어빙 - ?[81] - 르브론 - AD - 하워드의 라인업으로 나올 가능성이 큰데, 나머지 2~60픽 선수들 중에서 베스트 5를 꾸리면 커리/웨스트브룩/파커 - 하든/웨이드 - 듀란트/카와이/카멜로 - 아데토쿤보/스타더마이어 - 요키치/가솔/엠비드/하워드와 같은 초호화 라인업이 가능하다. 혹은, 커리 - 탐슨 - 듀란트 - 그린 - 가솔로 꾸릴 수도 있다. 조합 면에서 2~60픽 팀에게 질 확률이 더 높은게 사실이다.
    상술했 듯 일단 빅맨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순위이기에 다른 포지션이 소외되는 점이 작용한다 하겠다.
참고로 역대로 따져서 1픽팀과 2~60픽팀을 고르면 대략 매직 - 아이버슨 - 르브론 - 던컨 - 카림 vs 스탁턴 - 조던 - 버드 - 말론 - 러셀 쯤으로 볼 수 있다.[82]
  • 현재까지 1픽을 한 번도 얻지 못한 팀은 6개로 인디애나 페이서스, 마이애미 히트, 멤피스 그리즐리스, 유타 재즈, 오클라호마시티 썬더[83], 덴버 너기츠가 있다.


[1] 1947년 해체[2] 1949년 해체[3] 밥 쿠지 3순위 지명[4] ABL을 거쳐 1949년부터 1954년까지 존속했다 해체된 구단으로 동명의 팀명을 사용했던 워싱턴 위저즈와는 별개의 구단이다.[5] ABL 소속[6] 밥 페팃 2순위 지명[7] 빌 러셀 2순위 지명[8] 제리 웨스트 2순위, 레니 윌킨스 6순위 지명[9] 존 하블리첵 7순위 지명[10] 네이트 서몬드 3순위 지명[11] 윌리스 리드 2라운드 8순위 지명[12] 얼 먼로 2순위, 월트 프레이저 5순위 지명[13] 이후 카림 압둘자바로 개명[14] 피트 마라비치 3순위 지명[15] 폴 웨스트팔 10순위 지명, 줄리어스 어빙 12순위 지명됐으나 미입단[16] 로버트 패리시 8순위 지명[17] 클레이 탐슨의 아버지이다. 더불어 최초로 외국국적자가 1순위로 지명된 케이스.[18] 래리 버드 전체 6순위 지명[19] 시드니 몽크리프 5순위 지명[20] 케빈 맥헤일 3순위 지명[21] 아이제아 토마스(1961) 2순위 지명[22] 도미니크 윌킨스 3순위 지명[23] 클라이드 드렉슬러 14순위 지명[24] 샘 보위 2순위, 마이클 조던 3순위, 찰스 바클리 5순위, 존 스탁턴 16순위 지명[25]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행정상 이름은 아킴이었는데 그 이유는 항목 참조[26]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1순위 지명자. 후에 미국으로 귀화하여 1996년 올림픽에서 미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한다.[27] 크리스 멀린 7순위, 칼 말론 13순위, 조 듀마스 18순위 지명[28] 자메이카 국적도 가지고 있다.[29] 데니스 로드맨 2라운드 27순위 지명[30] 스카티 피펜 5순위, 레지 밀러 11순위 지명[31] 팀 하더웨이 14순위, 숀 켐프 17순위, 블라디 디박 26순위 지명. 빛나지는 않지만 팀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들이 많이 지명됐다. 대니 페니 2순위, 션 엘리어트 3순위, 글렌 라이스 4순위, 닉 앤더슨 11순위, 무키 블레이락 12순위, 데이나 바로스 16순위, B.J.암스트롱 18순위, 클리포드 로빈슨 36순위, 디노 라쟈 40순위 등.[32] 게리 페이튼 2순위 지명[33] 디켐베 무톰보 4순위 지명[34] 알론조 모닝 2순위 지명[35] 3순위 앤퍼니 하더웨이와 지명 직후 맞트레이드됐다. 역대 드래프트 사상 가장 낮은 확률(1.52%)로 전체 1순위에 당첨된 케이스.[36] 제이슨 키드 2순위, 그랜트 힐 3순위 지명[37] 케빈 가넷 5순위 지명[38] 레이 앨런 5순위, 코비 브라이언트 13순위, 스티브 내쉬 15순위 지명[39]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9순위 지명[40] 빈스 카터 5순위, 덕 노비츠키 9순위, 폴 피어스 10순위 지명[41] 영국 국적도 가지고 있었다.[42] 스티브 프랜시스 2순위, 리차드 해밀턴 7순위, 론 아테스트 16순위, 마누 지노빌리 2라운드 57순위 지명.[43] 고졸선수 최초의 1순위 지명자.[44] 파우 가솔 3순위, 토니 파커 28순위 지명.[45]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9순위 지명[46] 최초이자 유일한 아시아 출신의 1순위 지명자. 이후 아시아권에선 이젠롄하치무라 루이가 1라운더로 지명되었다.[47] 다르코 밀리시치 2순위, 카멜로 앤서니 3순위, 크리스 보시 4순위, 드웨인 웨이드 5순위 지명.[48] 크리스 폴 4순위 지명.[49] 호주인 최초의 1순위 지명자.[50] 라마커스 알드리지 2순위, 라존 론도 21순위, 카일 라우리 24순위 지명.[51] 순수 유럽인 최초의 1순위 지명자. 이전에 지명된 올로와칸디의 경우에는 영국과 나이지리아의 이중 국적자이다.[52] LBA 소속[53] 케빈 듀란트 2순위 지명[54] 러셀 웨스트브룩 4순위, 케빈 러브 5순위 지명.[55] 제임스 하든 3순위, 스테판 커리 7순위, 더마 드로잔 9순위 지명.[56] 드마커스 커즌스 5순위, 폴 조지 10순위 지명.[57] 켐바 워커 9순위, 클레이 탐슨 11순위, 카와이 레너드 15순위, 니콜라 부세비치 16순위, 지미 버틀러 30순위 지명.[58] 호주 국적도 가지고 있다.[59] 브래들리 빌 3순위, 데미안 릴라드 6순위, 안드레 드러먼드 9순위, 드레이먼드 그린 2라운드 35순위, 크리스 미들턴 2라운드 39순위 지명.[60] 빅터 올라디포 2순위, 야니스 아데토쿤보 15순위, 루디 고베어 27순위 지명.[61] 캐나다 출신 최초의 1순위 지명자.[62] 조엘 엠비드 3순위, 줄리어스 랜들 7순위, 잭 라빈 13순위, 니콜라 요키치 2라운드 41순위 지명.[63] 디안젤로 러셀 2순위,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4순위, 데빈 부커 13순위 지명.[64]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도 가지고 있다.[65] 브랜든 잉그램 2순위, 제일런 브라운 3순위, 도만타스 사보니스 11순위, 파스칼 시아캄 27순위, 디존테 머레이 29순위 지명, 프레드 밴블릿 언드래프티.[66] 포인트가드와 포워드를 오갈수 있지만, 펄츠 합류이후에는 포워드로 출장하는 빈도가 높다.[67] 제이슨 테이텀 3순위, 디애런 팍스 5순위, 도노반 미첼 13순위, 뱀 아데바요 14순위 지명.[68] 루카 돈치치 3순위, 자렌 잭슨 주니어 4순위, 트레이 영 5순위, 미칼 브리지스 10순위,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11순위, 제일런 브런슨 2라운드 33순위 지명.[69] 자 모란트 2순위, 다리우스 갈랜드 5순위, 코비 화이트 7순위, 타일러 히로 13순위 지명, 루겐츠 돌트 언드래프티.[70] 라멜로 볼 3순위, 데니 아브디야 9순위, 타이리스 할리버튼 12순위, 타이리스 맥시 21순위 데스몬드 베인 30순위 지명.[71] 제일런 그린 2순위, 에반 모블리 3순위, 스카티 반즈 4순위, 조쉬 기디 6순위, 프란츠 바그너 8순위, 알페렌 센군 16순위, 트레이 머피 3세 17순위 지명, 오스틴 리브스 언드래프티.[72] 쳇 홈그렌 2순위, 제이든 아이비 5순위, 셰이든 샤프 7순위, 다이슨 다니엘스 8순위, 제일런 윌리엄스 12순위 지명.[73] 브랜든 밀러 2순위, 아멘 탐슨 4순위, 어사르 탐슨 5순위, 빌랄 쿨리발리 7순위, 그레이디 딕 13순위 지명.[74] LNB 엘리트 소속[75] 알렉스 사르 2순위, 스테폰 캐슬 4순위 지명.[76] LNB 엘리트 소속[77] 마이클 조던/생애 항목에 들어가면 설명되어 있지만 슈팅 가드 자체에 대한 기대치는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가장 낮다. 실제로 5개 포지션이 확립된 이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힌 선수 중 주 포지션이 슈팅 가드인 선수는 1967년의 지미 워커와 1971년의 오스틴 카, 1975년의 데이비드 톰슨인데(아이버슨은 전성기 땐 슈팅 가드로도 뛰었지만 초창기엔 포인트 가드였다.) 이 중에서 슈퍼스타로 성장한 선수는 톰슨 뿐이다. 또한 조던 이전까지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유일하게 MVP를 배출하지 못한 포지션이기도 했다. 거기에 파이널 MVP도 조던의 수상 이전까지 슈팅 가드 포지션으로 수상한 선수는 제리 웨스트, 존 하블리첵, 데니스 존슨, 조 듀마스 이렇게 단 네 명의 선수만 수상하였다.[78] 지금도 사람들에 따라서는 84년 드래프트를 다시 해도 하킴이 조던보다 앞순위일 거라는 평가도 많다. 팬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정 중 하나다.[79] 아이러니한 건 원래 포틀랜드의 지명권을 갖고 있던 인디애나의 경우 가드가 약점이라서(실제로 가드인 번 플레밍을 뽑았다.) 가드 중 최고 유망주인 조던을 뽑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것이다.[80] 콰미 브라운이나 앤서니 베넷이 속했던 2001, 2013년도는 전반적으로 인물이 없었다. 2013년 이전까지만 해도 역대 최악의 드래프트 랭킹에 2001년 로스터가 뽑혔을 정도. 다만 2001년 같은 경우 3픽인 파우 가솔과 28픽인 토니 파커가 뛰어난 실적을 쌓고 두 선수 모두 영구 결번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 그 외에도 2픽 타이슨 챈들러, 10픽 조 존슨, 19픽 잭 랜돌프 등은 늦게나마 올스타와 올NBA팀에 선정되고, 25픽 제럴드 월러스도 늦게나마 올스타에 선정되면서 나쁘지 않은 드래프트로 재평가를 많이 받게 되었다. 거기에 길버트 아레나스는 이들보다는 빠르게 올스타와 올NBA팀에 선정되었지만 총기 사건을 기점으로 몰락하게 된다. 13년 드래프트도 17-18시즌 정도나 와서야 2순위 빅터 올라디포, 스티븐 아담스 10순위 C.J. 맥컬럼, 12순위 스티븐 아담스, 그리고 15순위 야니스 아데토쿤보 등이 보여서 그렇지 당시 드래프트 전까지의 상황은 1순위가 도토리 키재기로 날마다 바뀌는 혼돈의 카오스였다. 1픽을 쥐고 있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약간 도박수를 둔거고 결론적으로 폭망했다고 보는게 맞다. 참고로 맥컬럼은 2016년, 아데토쿤보는 2017년, 올라디포는 2018년 MIP(기량발전상)를 받았다. 기묘한 드래프트.[81] 이 자리에 데릭 로즈벤 시몬스가 들어갈만 했으나, 기량이 심각하게 저하된 지금은 민망한 수준이다. 현재는 앤서니 에드워즈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에 가장 유력한 후보라 할 수 있다.[82] 식스맨으로는 1픽은 샤킬 오닐,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오스카 로버트슨 등을 꼽을 수 있고 2~60픽 팀에서는 스테판 커리, 스티브 내시,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듀란트, 제임스 하든, 야니스 아테토쿤보, 디르크 노비츠키, 니콜라 요키치 등이 출격이 가능하다.[83] 해체된 시애틀 슈퍼소닉스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