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오든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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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오든 Greg Oden | |
본명 | 그레고리 웨인 오든 주니어 Gregory Wayne Oden Jr. |
출생 | 1988년 1월 22일 ([age(1988-01-22)]세) |
뉴욕 주 버팔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
신장 | 213.4cm (7' 0")[1] |
체중 | 129.3kg (285 lbs) |
윙스팬 | 224cm (7' 4") |
포지션 | 센터 |
드래프트 | 200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지명 |
소속 구단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2007~2012) 마이애미 히트 (2013~2014) 장쑤 드래곤스 (2015~2016) |
등번호 | 52번 - 포틀랜드 20번 - 마이애미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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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NBA의 농구선수. 센터 유망주로 커다란 관심을 받으며 NBA에 입성했으나 부상 때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 한 비운의 1번픽이다.2. 최고의 기대주
오든은 고등학생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인디애나의 로렌스 노스 고교에서 팀을 인디애나주 3연속 챔피언으로 만들고 게토레이 선정 청소년 농구선수에 선정, 2006년 인디애나의 Mr. Basketball,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도 뽑히는 등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제 2의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졸업 당시 오든의 기술은 무르익지 않았었다. 득점 스탯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기술보다는 우월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으로 욱여넣는게 많았고 시야나 농구센스는 크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대를 받은 것은 오든은 드래프트 당시 아직 10대일 정도로 어렸고, 레전드 중에서도 패트릭 유잉이나 하킴 올라주원처럼 대학 때는 주로 신체스펙 위주로 득점을 하다가 프로 데뷔 후 뛰어난 기술을 장착한 선수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잉과 하킴 모두 기본기가 매우 뛰어나 기술을 장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2] 오든 역시 빅맨으로서 기본기가 뛰어났다. 결정적으로 가르칠 수 없는 신체스펙 자체가 매우 좋았다.
즉, 원석 상태에서도 즉시전력감, 조금만 잘 다듬으면 리그를 호령하는 최고의 센터로 성장할거라 기대받았다. 심지어는 낮게 잡아도 유잉이라느니 망해도 무톰보라느니 하는 등 오버스러운 평가들도 있었을 정도인데, 저들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레전드 센터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오든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무지막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상으로 날개를 펼쳐보지도 못 한 오든의 커리어는 유잉이나 무톰보는 커녕 앞서 21세기 NBA의 1번픽 실패 사례로 자리잡은 콰미 브라운에게도 미치지 못 한다.[3] 또다른 1번픽 실패 사례인 앤서니 베넷보다는 오든이 낫다고 할 수 있지만, 베넷은 당시 드랩풀 자체가 최악이었던데다 원래는 거기서도 Top5~10 정도로 예상되던 중 깜짝 1번픽이 된 경우라 똑같이 실패했더라도 오든의 그것이 훨씬 더 파격적이었다.
3. NBA 경력
3.1. NBA를 뒤바꾼 포틀랜드의 5.3%
2007년 드래프트 1번픽의 주인공은 5.3%의 확률을 뚫고 당첨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다. 포틀랜드는 2004년부터 계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리빌딩중인 팀이었는데 2006년 드래프트 출신 슈팅 가드 브랜든 로이와 파워포워드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올 루키 퍼스트 팀에 들어갔으며 특히 로이는 2007년 올해의 루키에 선정될 정도로 자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행운 뒤에 또다른 미래의 기둥을 얻을 기회까지 손에 넣은 포틀랜드는 당시 부족했던 센터진을 보강하기 위해 얼씨구나 하고 그렉 오든을 선택하고, 듀란트는 2번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지금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가게 된다. 듀란트를 선택했어야 했다는 일부 의견이 있었지만 1984년 드래프트의 샘 보위[4] 같은 일이 또 있지 않은 이상 포틀랜드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줄은 몰랐다.
여담으로 당시 1,2순위 픽이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만큼 오든과 듀란트를 지명하기 위해서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탱킹을 보스턴과 멤피스가 직접적으로 대놓고해서 지탄아닌 지탄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1,2순위 픽은 가장 확률이 높았던 보스턴과 멤피스가 아닌 포틀랜드와 시애틀에게 떨어졌고 졸지에 20%의 확률로 4순위까지 떨어진 보스턴은 분노의 트레이드를 통해서 폴 피어스-케빈 가넷-레이 앨런으로 이어지는 빅3를 완성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 보스턴의 빅3에 막혀 플레이오프에서 좌절한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는 그 유명한 '디시전 쇼'로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 크리스 보쉬,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슈퍼팀을 결성하였다. 르브론-보쉬-웨이드의 빅3를 계기로 다른 슈퍼팀 역시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 결과 2010년대-2020년대 NBA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슈퍼팀 기조가 완성되면서 이 포틀랜드의 5.3%는 '슈퍼팀 시대의 도래'라는 NBA 역사를 완전히 뒤바꾼 5.3%가 되었다.
3.2. 날아간 루키 시즌
포틀랜드 팬들은 그들의 팀이 몇년 후에는 환상적인 로스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던 도중 오든이 무릎검사를 받은 결과 오른쪽 무릎에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을 받아야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된다.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은 긴 재활기간을 필요로 하는 수술이라 오든의 루키시즌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났다.오든이 사라진 07-08 시즌 신인왕은 당연히 케빈 듀란트가 차지했다. 그러나 시애틀은 고작 20승밖에 못한 반면 포틀랜드는 플레이오프 진출은 실패했을망정 그럭저럭 괜찮은 시즌을 보낸다. 로이와 알드리지가 더욱 멋진 모습을 보여줬으며 다른 멤버들도 평타는 쳐줘 오든이 없어도 이정도인데 그의 합류 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듀란트가 신인왕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리 인상적인 모습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오든에 대한 기대감이 더했다. 듀란트는 평균 20.3점을 올렸지만 야투율이 43%, 3점슛 성공률이 28.8%로 그렇게까지 뛰어나진 않은 성적인데다가 좋은 신체조건에도 리바운드와 수비에서 평이한 모습을 보였다. NBA팬들은 2000년대 초~중반에 걸쳐 조나단 벤더, 대리우스 마일스, 스트로마일 스위프트 등 '운동능력 좋고 다재다능한 장신 선수들의 몰락'을 수차례 봐온 지라 슈팅가드 포지션에서 적응에 난항을 겪던 듀란트를 두고 의구심을 표하는 시선도 있었다.[5] 게다가 08시즌 루키 퍼스트팀 멤버들도 듀란트, 알 호포드, 루이스 스콜라, 알 손튼, 제프 그린이었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듀란트를 제외하곤 전부 건실한 롤플레이어 정도 기대치였는지라 확실한 대박으로 여겨졌던 오든을 픽한 포틀랜드가 아직까진 승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듀란트는 2년차 때 안 어울리던 슈팅가드 포지션에서 탈출하면서 빠르게 슈퍼스타로 성장했고, 훗날 호포드나 마이크 콘리, 조아킴 노아 등도 두각을 나타내는 가운데 오든만 지지부진하게 된다.
3.3. 데뷔
그러나 1년 미뤄진 루키 시즌, 오든은 데뷔전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13분만에 코트 밖으로 나갔고 그 후 2주 동안 쉬게 된다. 그나마 부상부위는 문제의 무릎이 아닌 발목이었다. 2009년 1월 밀워키 벅스전에서 24득점 1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포텐셜을 보여줬으나 2월달에 무릎부상으로 다시 3주를 쉬게 된다. 포틀랜드는 오든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부상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54승을 챙기며 플레이오프에 돌아왔다. 1라운드에서 휴스턴 로키츠에게 2:4로 패배.[6]오든은 61경기에 출장해 평균 21분을 뛰며 8.9득점, 7.0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파울 트러블에 잘걸리는 약점을 보이기는 했지만 인사이드에서의 존재감은 상당했기에 부상 후유증을 떨쳐내고 리그에 적응한다면 여전히 좋은 재목이 될 수 있어 보였다.
3.4. 부상, 또 부상
09-10 시즌이 시작되고 오든은 주전 센터가 되어 11월에는 24득점 12리바운드, 12월 1일에는 20리바운드라는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우며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12월 5일 21경기만에 왼쪽 슬개골 골절로 실려나가서 다시 남은 시즌을 날려먹고 스타급 센터의 꿈은 사라졌다.여기서 부상행진이 끝났으면 다행이었겠지만 10-11 시즌을 앞두고 왼쪽 무릎에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을 받으며 또다시 코트에 서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포틀랜드는 꾹 참고 드래프트 이후 4년이 지난 오든을 1년 더 남겨놨으나 오든은 2012년 2월 또또다시(…) 왼쪽 무릎에 이상이 발견되어 세 번째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을 받았다.
역대급 센터가 될것으로 기대받았던 오든은 역대급 유리몸으로 확정받으며 2012년 3월 15일 포틀랜드에서 방출된다. 5시즌동안 82경기, 즉 겨우 1시즌 동안 뛴 셈이다. 뛰어난 재능의 선수가 부상으로 몰락하는 일이야 흔하지만 역시나 슈퍼스타급 자질을 가지고 있던 브랜든 로이도 무릎 때문에 10-11시즌 이후 포틀랜드에서 은퇴했으며 로이-알드리지-오든 3인방이 멀쩡하게 성장했다면 챔피언십 차지도 가능해보였기에 더욱 아쉬운 일.
한편 흔히 오든을 제 2의 샘 보위라 하지만, 사실 엄연히 샘 보위의 굴욕이다. 보위는 3년차에 정강이가 완전골절(...)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기 전까지[7] 2년간 약 120경기를 당당히 주전으로 뛰었으며, 시즌아웃된 3년차를 빼더라도 거의 10년 동안 매년 60경기 이상을 주전으로 꾸준히 뛰며 10점 8리바 1.5블록슛을 기록하는 수비형 센터로 활약했다. 기대치에 못 미친 건 사실이지만, 오든이 데뷔 후 근 3년간 뛴 경기조차 없다는 걸 생각하면...
3.5. 이후 행적
오든이 아직 은퇴를 선언한건 아니고 나이도결국 2013년 8월 2일 마이애미 히트와 2년 미니멈 딜로 계약하였다. 센터보기엔 마른 몸인 크리스 보시와 34살의 늦깎이 백업인 버드맨 크리스 앤더슨으로 버티다가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히봇대 로이 히버트에 탈탈 털리며 탈락 위기까지 갔던 센터진 보강을 위해 사인했다. 실질적인 목적은 히버트에 대한 몸빵용 인간 방패역할로 기대된다.
오든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마이애미에서 플레이하는게 쥑이는 이유는요, 르브론이 있는팀에서 아무리 제가 x신짓을 해도 사람들이 저한테 욕 안할걸요, 저한테 패스한 르브론을 욕하지."
10월 23일 프리시즌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경기에서 거의 4년만에 코트에 돌아왔다. 4분 뛰면서 2득점 2리바운드를 적립, 소박한 기록이었지만 덩크 슛 성공 순간 오든 본인은 감개무량했을듯. 하지만 막상 정규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또 양쪽 무릎부상을 당한다.(…) 1월 15일 워싱턴 위저즈전에서 드디어 정규시즌 출장에 성공했다. 결국 13-14시즌이 끝나자 FA.
결국 2015년 NBA를 떠나 CBA의 장쑤 드래곤스와 1년 120만달러로 계약하였으나 손목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11월 29일 빠이와의 11라운드 경기에 첫 출장. 장쑤는 개막 6연패 끝에 첫승을 하면서 중위권에 머물러 있다.
4. 은퇴 후
중국에서 뛴 이후 오든은 2016년 사실상 프로 경력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모교 오하이오 주립대로 복학하여 늦깍이 대학생의 삶을 살았다. 전공은 스포츠 산업이라고. 아울러 모교 농구팀의 학생 코치직도 맡았다. 2019년 5월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졸업 후 2019년 3대 3 농구 리그인 빅 3 리그의 에일리언스 팀에서 활약했다.
5. 이모저모
엄청난 노안으로 한국에서 불리는 별명이 그렉 여든(...). 끝없는 무릎부상으로 고생하자 나이를 속이고 들어온게 아니냐는 드립이 나올 정도다.왼쪽은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었던 전설의 센터 빌 러셀. 1934년생이다. 할아버지뻘에 가까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큰형과 막내동생같다(...). 참고로 저 사진은 2007년 드래프트 당시 미디어 데이 때 찍힌 사진이다. 즉, 파릇파릇한 19세 청년 오든의 모습이다. 이건 또 다른 레전드 센터 패트릭 유잉까지 셋이서 찍은 사진인데, 아버지뻘(62년생)인 유잉보다 주름이 많다.[8]
오든이 히트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이런 짤방까지 나왔다. 오든의 데뷔 이전 NBA의 노안하면 르브론 제임스였으나, 그 르브론이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엄청난 액면가를 자랑한다. 참고로 르브론이 1984년 12월생이니 오든이 무려 3년 1개월이나 어리다.
선천적으로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다르다고 한다. 때문에 드래프트 이전에도 부상우려가 많았는데 그대로 실현된 셈.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르면 각 다리에 걸리는 하중도 달라지고 자세도 틀어져서 무릎 뿐 아니라 허리와 척추까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사들의 소견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포틀랜드의 에이스였으나 고질적 부상으로 짧게 불타오른 브랜든 로이 역시 선천적으로 다리 길이가 달랐다고 한다.[9]
심지어 포틀랜드 의료진들이 얼마나 악명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 그를 진료한 주치의는 포틀랜드 의료진에게 양 다리가 선천적으로 길이가 다르니 무릎 보호를 위해 높이가 다른 특수하게 제작된 신발을 권했는데도 그들은 그러한 의견을 귀에 담지도 않았다고 한다. 빌 월튼이나 브랜든 로이 등 수준낮은 포틀랜드 의료진에 의해 상당한 재능인데도 불구하고 일찍 은퇴한 안타까운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정말 여담이지만 농구 만화인 슬램덩크와도 인연이 있는데 2006년경, 미국의 한 출판사가 슬램덩크 단행본을 미국시장에 판매할 계획으로 홍보 이벤트를 크게 열었는데 여기에 당시 초특급 유망주였던 그렉 오든을 초청했던 것. 덩치 산만한 그렉 오든이 블레이저스 저지를 입고 만화 행사장에 서서 MC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 정말 신선했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실제 맨발 키는 6' 11" = 210.8cm 이며 프로필 키는 농구화 신고 잰 것.[2] 기본기가 모자란 선수가 신체스펙만으로 득점하는 버릇이 들면 답이 없다. 드와이트 하워드가 좋은 예인데, 스탭이나 볼핸들링이 모자란 상태에서 득점롤만 높아지자 워낙 뛰어난 스펙이라 괜찮게 득점을 뽑아내긴 했으나 실수가 잦고 위력에 한계가 있었으며, 신체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위력이 급락했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같은 경우 기술은 좋았으나 골밑에서 기본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었다. (기술과 기본기는 다르다. 아마레처럼 득점기술이 좋은 선수들도 박스아웃이나 수비스탠스, 풋워크 등 기본기는 딸릴 수 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신체능력이 떨어지자 빅맨으로서 가치가 빨리 떨어졌다. 하워드는 그나마 수비력과 공격을 제외한 기본기가 매우 좋았기에 가치가 그렇게까지 많이 떨어지진 않은 것.[3] 오든이 그나마 건강할 때 보여준 수비 존재감은 공수 모두 애매했던 브라운보다야 확연히 뛰어나긴 했다. 그러나 브라운은 이러나저러나 NBA에서 12시즌을 버티며 600경기 넘게 출전한, 다시말해 1번픽이라서 문제였을 뿐 평범한 선수로서는 썩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보낸 데 비해, 오든은 통산 출전 수가 100경기를 겨우 넘어가는 수준이라 커리어 자체는 결코 브라운보다 위라고 할 수 없다.[4] 전체 2번으로 포틀랜드에서 선택한 센터. 유리몸으로 픽 순위에 비하면 부진한 커리어를 보냈다. 이후 픽으로 뽑힌 스타로는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있다. 당시 1시즌 전 뽑은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있어서 동포지션에 플레이스타일 마저 유사한 조던은 지나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였다. 또한 스탁턴은 결과적으로 역대급 포인트 가드로 성장한 것이지 당시에는 그냥 무명 가드였고, 유타팬들 역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찰스 바클리, 샘 퍼킨스, 케빈 윌리스, 오티스 도프 같은 파워 포워드/센터 자원을 놓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자세한 내용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란에 가서 보는걸 추천 함. 다만 저 선수들을 거르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바클리는 레전드로 성장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198cm의 단신 센터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몸무게가 너무 나가 NBA에서 얼마나 잘할지 불명이었다. 게다가 오번대학은 바클리가 입할할 당시까지 한번도 NCAA 토너먼트에 못 나갔으며, 그가 3학년때 처음으로 진출해 1라운드 탈락했다. 올림픽 선발전에서 맹활약으로 5순위까지 올린것만 해도 대단했던 것. 샘 퍼킨스는 그나마 부위와 같이 올아메리칸 세컨팀에 이름을 올렸으나, 센터치곤 단신이라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쏘프는 자기 컨퍼런스인 빅이스트에서만 이름을 날렸을뿐 올 아메리칸 급도 아니었고, 윌리스는 자기 컨퍼런스에서도 수상을 못했다. 결국 당시 기준으로 7피트 1인치에 실력도 있던 보위는 적어도 드래프트 당시에는 이런 선수들과 비교될만한 수준의 유망주가 아니었다.[5] 물론 듀란트는 저들과 달리 훌륭한 기본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7피트에 가까운 장신을 슈팅가드로 기용하는 무리수를 둔 감독의 문제가 컸다. 실제로 그는 감독 교체 이후 3번에서 맹활약하면서 루키 시즌 애매한 모습이 오직 포지션 문제였다는 것을 증명해냈다.[6] 그러나 사이즈와 힘, 운동능력에 탁월한 수비센스를 이용해 로켓츠의 막강한 센터 야오밍을 괴롭히면서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7] 참고로 대학 시절에 보위는 신입생 주제에 결과적으로는 보이콧으로 참가하지는 못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국가대표에 선발되기도 하고, 이후 1년짜리 정강이 부상을 입고도 복귀 후 굉장한 활약을 펼쳤다. 그 다리로 하킴 올라주원을 틀어막기도 하고. 포틀랜드가 바보거나 미쳐서 뽑은 게 절대 아니다.[8] 참고로 저 링크를 누르면 나오는 사진 중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는 얼굴이 비교적 팽팽한 아저씨는 오든보다 무려 23세가 많은 레전드 데이비드 로빈슨이다. 절대 오든이 형이 아니다![9] 종목은 다르지만 축구에서는 아스날 FC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였던 파트리크 비에라가 선천적으로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랐다. 그의 다리는 한쪽 다리가 다른쪽 다리보다 3cm나 길다고 한다. 뛸 때야 모르겠지만 사실 반듯하게 선 자세를 가만 보면 매우 구부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좋지 못한 신체조건이 하향세가 빨리 오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아스날 시절 주장이었던 토니 아담스가 비에라의 다리 길이가 상이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말년에는 부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했었는데 과연 그 말대로 30대가 넘어간 인테르 시절 이후부터 점점 부상이 많아졌다. 근데 오든은 그 비에라보다도 덩치가 크다보니 30대가 아닌 데뷔 직후부터 부상이 찾아온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