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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837><colcolor=#fff> 시애틀 슈퍼소닉스 No. 24 | |
스펜서 헤이우드 Spencer Haywood | |
출생 | 1949년 4월 22일 ([age(1949-04-22)]세) |
미시시피주 실버시티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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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디트로이트 머시 대학교 |
신장 | 203cm (6' 8") |
체중 | 102kg (225 lbs)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드래프트 | 1971 NBA 드래프트 2라운드 30순위 버팔로 브레이브스 지명 |
소속 구단 | 덴버 로키츠 (1969~1970) 시애틀 슈퍼소닉스 (1970~1975) 뉴욕 닉스 (1975~1979) 뉴올리언스 재즈 (1979)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979~1980) 레예르 베네치아 (1980~1981) 워싱턴 불리츠 (1981~1983) |
1. 개요
미국의 전직 농구선수.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얼리 엔트리 제도를 창설자로 알려졌다.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슈팅 옵션을 가진 득점원이자 강력한 리바운더였다. 점프슛 외에도 장신을 이용한 턴어라운드 점퍼도 능숙했다.
2. 아마추어 시절
미시시피주 실버시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카고, 디트로이트로 이사해 어린 시절을 보낸 헤이우드는 퍼싱 고등학교에서 팀을 주 챔피언으로 이끌며 농구 선수로 두각을 드러냈다.트리니다드 주립 컬리지에서는 평균 28.2득점 22.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전국에서 주목받게 되자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에 뽑혀 주득점원으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1년만에 디트로이트 머시 대학교로 편입되어 평균 32.1득점 21.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NCAA 리바운드왕에 등극했다.
그러나 더 이상 보낼 일이 없다고 판단한 끝에 1년만에 다시 중퇴하고 30순위로 버팔로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었다가 ABA의 덴버 로키츠와 계약했다.
3. 선수 시절
루키 시즌에 경기당 30.0득점, 19.5리바운드로 팀을 서부지구 우승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며 신인왕과 리바운드왕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기며 윌트 체임벌린에 이어 2번째로 2천 500득점을 돌파한 선수가 되었다.덴버에서 화려한 루키 시즌을 보낸 뒤 6년 150만달러로 NBA의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계약했으나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선수와의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는 NBA 규정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방법원은 헤이우드의 선수 생활을 박탈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승소 판결을 내렸다가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시켜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지만 대법원은 1심 판결을 지지한다는 승소가 인정되면서 입단할 수 있게 되었다.
입단 첫해에 들어서 재판의 영향으로 33경기에만 출전해 20.6득점 12.6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이듬해 1971-72시즌 평균 26.2득점, 12.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NBA 올스타에 첫 출전했고, 올NBA 퍼스트팀에도 선정되어 NBA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수임을 증명했다.
이후에도 한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은 멀어지다가 입단 5년차인 1974-75 시즌에 43승 39패로 팀의 첫 플레이오프 진출에 청신호를 켰다. 플레이오프에서는 9경기동안 평균 15.7득점을 올린 뒤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닉스에서 20점 이하의 평균 득점이 떨어졌지만 팀 메이트였던 밥 맥아두와 함께 장신 포워드 콤비를 이끌며 1977-78 시즌 팀을 3시즌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1978-79 시즌 도중 뉴올리언스 재즈로 트레이드되어 필드골 성공률 49.7%, 자유투 성공률 84.9%로 커리어 하이를 찍은 뒤 이듬해 1979-80 시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해 카림 압둘자바, 거물급 신인이었던 매직 존슨과 함께 쇼타임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평균 9.7득점으로 가장 낮았지만 파이널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우승을 기록하고 1년만에 떠났다.
이후 1980-81 시즌 이탈리아 리그의 레예르 베네치아에서 1년을 뛰다가 1981-82시즌 워싱턴 불리츠에서 2시즌동안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현역을 은퇴했다.
그로부터 2007년 2월 26일, 등번호 24번은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영구결번되었으나 팀이 해체되기 전 마지막 영구결번자가 되었다.
4. 여담
- 선수 은퇴 후, 디트로이트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했으며 자서전을 출판하기도 했다.
- 닉스 시절인 1977년에 모델인 이만 무함마드 압둘마지드와 결혼했지만 1987년에 이혼했다.
5. 둘러보기
스펜서 헤이우드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 |
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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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
베스트팀 | |||
| 1st : 1971-72 · 1972-73 2nd : 1973-74 · 1974-75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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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헤이우드 | |
헌액 연도 | 2015년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5837> | 시애틀 슈퍼소닉스 영구 결번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ccac00> No. 1 | No. 10 | No. 19 | No. 24 | No. 32 |
<rowcolor=#ffffff> 거스 윌리엄스 (Gus Williams) | 네이트 맥밀란 (Nate McMillan) | 레니 윌킨스 (Lenny Wilkens) | 스펜서 헤이우드 (Spencer Haywood) | 프레드 브라운 (Fred Brown) | |
<rowcolor=#ccac00> No. 43 | 🎙️ | ||||
<rowcolor=#ffffff> 잭 시크마 (Jack Sikma) | 밥 블랙번 (Bob Blackburn) | ||||
* 영구결번자는 시애틀 시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키피디아와 Basketball-Reference 사이트에는 후신격 팀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그대로 기념하고 있지만, 팀이 부활하면 다시 가져갈 수 있다. |
덴버 로키츠 등번호 24번 | ||||
빌 맥길 (1968~1969) | → | 스펜서 헤이우드 (1969~1970) | → | 드와이트 월러 (1971~1972) |
{{{#FFD321 [[시애틀 슈퍼소닉스|시애틀 슈퍼소닉스]] 등번호 24번}}} | ||||
어빈 뮬러 (1969) | → | 스펜서 헤이우드 (1970~1975) | → | 데니스 존슨 (1976~1980) |
뉴욕 닉스 등번호 42번 | ||||
에디 마일스 (1971~1972) | → | 스펜서 헤이우드 (1975~1979) | → | 래리 데믹 (1979~1982) |
뉴올리언스 재즈 등번호 24번 | ||||
팀 창단 | → | 스펜서 헤이우드 (1979) | → | 론 분 (1979~1981)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31번 | ||||
젤모 비티 (1974~1975) | → | 스펜서 헤이우드 (1979~1980) | → | 커트 램비스 (1981~1988) |
{{{#fff [[시애틀 슈퍼소닉스|시애틀 슈퍼소닉스]] 등번호 24번}}} | ||||
마틴 클리브스 (2004~2006) | → | 스펜서 헤이우드 | → | 영구 결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