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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arlem Globetrotters미국의 묘기 농구단(exhibition basketball team). 정식 농구단이 아닌 퍼포먼스단에 가깝다.
사실 이름과 달리 할렘을 연고지로 두고 경기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기반을 할렘에 두고 있긴 하지만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벤트 경기와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유랑농구단에 가깝다. 미국에서 투어할때는 주로 NBA팀이 없는 비교적 작은 도시에서 경기를 하지만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바클리스 센터 등 NBA급 경기장에서 경기할 때도 있다.[1]
엄밀히 말하면 기반이라고도 하기 힘든 것이 역사적 기원은 1920년대 시카고인데다 현재 사무실은 애틀랜타에 있다. 흑인 문화의 상징인 할렘을 이름에 붙였을 뿐 할렘과는 딱히 밀접한 관계가 없는 팀이다. 심지어 할렘에서 처음 경기를 한 것은 창단으로부터 40년 넘게 지난 1968년이다. 고로 할렘의 글로브트로터스의 경기를 보고 싶으면 무턱대고 할렘으로 가는게 아닌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찾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일례로 2019년엔 3~5월 동안 유럽투어가 잡혀 있기 때문에 뉴욕에선 구경도 할 수 없다.
2. 특징
글로브트로터스의 가장 큰 특징은 볼거리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묘기 농구도 하지만 즉석에서 콩트를 하거나 선수들이 개그를 치고 소품도 이용하는 등 농구경기라기보단 농구 "공연"에 가깝다. 물론 선수들은 기량 자체도 제법 뛰어나고 실제 승리를 위해 경기를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화려한 덩크와 현란한 묘기를 중시한다. 이 때문에 글로브트로터스 선수들은 운동능력과 화려한 개인기만큼은 NBA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NBA 올스타 주간에 유명인사들이 참가하는 celebrity game에 몇몇 선수들이 참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NBA선수들보다 덩치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고난도 덩크와 현란한 개인기로 좌중을 압도한다. [2]할렘은 드래프트도 하는데 사실 그냥 반장난으로 하는 것이라 별 의미는 없다. 물론 실제로 지명된 선수들 중 계약하는 이들도 있지만 진짜 아무나 막 부르는 경우도 있어서 리오넬 메시, 우사인 볼트, 무키 베츠, 마리아노 리베라, 네이마르, 크레이그 세이거[3], 케빈 하트, 갤 가돗 등 말도 안되는 사람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
할렘의 선수들은 매우 뛰어난 덩크, 화려한 드리블 실력과 각종 묘기를 자랑하지만 객관적으로 농구 실력 자체는 프로급에 미칠까 말까다. 여기서 얘기하는 프로는 NBA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하부리그 수준을 의미한다. 할렘 선수 중 영어 위키백과 페이지가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인 디지 잉글리시(Dizzy English)의 경우 NBA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이후 NBA공식 하부리그인 D-리그 (현 G리그)에서 몇 년 동안 뛰다가 글로브트로터스에 합류한 케이스이다. 심지어 하부리그에서도 한자리수 득점을 하는 평범한 선수였다. 연봉 수준만 보아도 몇 만 달러에서 많이 받아야 20만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많은 편이긴 하지만 1년 내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어하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페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물론 경기 수준이 NBA처럼 빡세진 않다)[4]
수준과 별개로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팀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농구 경기 수준보다는 내용이 얼마나 재밌느냐에 초점을 더 맞추기 때문에 농구실력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한 진지한 농구기술이 아닌 농구트릭 관련해서 이들을 따라올 이들은 거의 없다.
3. 역사
옛날에는 오히려 NBA를 압도하기도 했었는데, 초창기 NBA는 흑인 선수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재능있고 운동능력이 뛰어난 흑인선수들이 모두 할렘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NBA최강 센터인 조지 마이칸이 버티는 챔피언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가 할렘과의 친선전에서 두 차례 패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5]그러나 NBA가 흑인선수들을 받아들이면서 더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NBA로 뛰어난 흑인선수들이 몰려들었고 NBA와 격차는 점점 벌어지면서 현재는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6] 물론 할렘에 입단하는 순간부터 팀전술이나 기본기 훈련이 아닌 개인기만 연습하게 되므로 현재 할렘 출신으로 NBA에 진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할렘 출신으로 NBA스타가 된 마지막 선수는 6,70년대에 선수생활을 한 코니 호킨스(Connie "The Hawk" Hawkins)로 승부조작 관련 의심을 받아 (혐의가 입증된 적은 없다) 대학을 자퇴한 후 ABA 등 다른 리그들을 돌아다니다가 뒤늦게 NBA에 진출해 4회 올스타가 됐다.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출신으로 역대 최고의 선수는 당연히 윌트 체임벌린인데, 윌트는 상대팀들이 노골적으로 자기만 막아대는 통에 농구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빨리 돈도 벌고 싶은 마음에 3학년을 마치고 프로진출을 선언한다. 문제는 당시 NBA는 조기진출자들을 받지 않았다는 것. 당시 NBA는 조기프로진출자들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4년이 지난해가 되어야 드래프트 신청이 가능하다는[7] 규정을 두었기 때문에 체임벌린은 당시로선 거액이었던 5만 달러를[8] 받고 글로브트로터스에 합류하게 된다.
체임벌린은 1년만 뛰고 NBA로 진출해 온갖 기록이란 기록은 다 깨게 되지만, 진지한 농구가 아닌 보여주고 즐기는 농구를 지향하는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에서는 더블팀이나 거친 파울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 시절을 "가장 즐겁게 농구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으며[9], NBA에 진출한 이후에도 종종 투어에 합류하곤 했다. 체임벌린이 자주 하던 기믹 중 하나가 글로브트로터스의 주장 메도우락 레몬이 넘어지면 윌트가 그를 부축하는게 아니라 마치 아이처럼 그를 집어 올려서 공중에 휙 던졌다가 받는 장난이었는데, 문제는 레몬이 94.5kg의 거구였다는 것. 레몬은 훗날 체임벌린이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운동선수"라고 회고했다.
4. 워싱턴 제너럴스
묘기 농구를 하는 팀답게 화려하게 이들이 농구를 하는 동안 쳐발릴 희생양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가장 오래 해온 것이 바로 1952년에 창단된 워싱턴 제너럴스다. 아예 할렘 운영진이 소유권을 갖고 있어서 이들의 투어에 같이 다니며 쳐발리는 게 주 임무다.이들은 존재 이유 상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들로 이뤄져있으며, 할렘이 화려하게 농구를 하는 동안 전술과 팀플레이를 포함한 정석적인 5대5 농구를 하다가 지는게 주 패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너럴스 선수들 중 실력이 부각되거나 캐릭터가 부각되는 선수들은 할렘으로 "트래이드"(사실상 승급이다)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현재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에서 뛰고 있는 팀 역사상 최단신(157cm) 중 하나인 존 홀(John "Too Tall" Hall)로 생계를 위해 대학 자퇴후 근근히 살아가다가 워싱턴에 합류, 이후 할렘으로 이적했다.
워싱턴의 할렘전 패배수는 수천경기가 넘어가는데 반면 승리한 경기는 많게는 6경기에서 적게는 한 경기까지 있다. 초창기에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있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은데, 공식 웹사이트 상으론 1954년, 1958년, 1971년 각각 세 번으로 밝히고 있으며, 이 중 그 존재가 확실한 1971년 패배가 역사상 유일한 패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당시 "뉴져지 레즈"란 이름을 쓰던 워싱턴은 마틴 테네시에서 100대 99로 승리를 거두며 이들이 할렘을 상대로 당하던 2495경기 연패기록을 끊었는데, 이 경기에서 글로브트로터스는 평상시처럼 신나게 묘기를 펼치다가 정작 자신들이 이겨야 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결국 2분 남겨놓고 12점차로 뒤지게 되자 글로브트로터스답지 않게 정상적인 농구를 하며 역전까지 한다.
그러나 제너럴스의 창시자이자 당시 만50세이던 가드 레드 클러츠가 위닝샷을 넣고, 위에 언급된 글로브트로터스의 레몬이 마지막 슛을 놓치면서 결국 글로브트로터스는 패배를 하게 된다. 당연히 이겨야 할 글로브트로터스가 질 판이기에 주최측에선 경기시간을 멈추려 했지만 실패하고, 관중들의 충격과 실망 속에 경기가 끝난다. 클로츠의 표현에 따르면 "팬들이 마치 우리가 산타 클로스를 죽인 것처럼 바라봤다"고.[10] 레몬은 분노해 "니들이 진 거야! 난 안 졌어!"라고 소리쳤고, 어린이 팬들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글로브트로터스와 제너럴스의 경기는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실제로 2015년에 진행된 경기)
경기 진행 중 일부만 서술하면 (제너럴스는 볼드체로 표시)
하프코트 샷 실패-> 관객석으로 가서 관객과 대화 (워싱턴 제너럴스는 리바운드 잡아 속공 득점)->하프코트에서 살짝 앞선 곳에서 외곽 시도-> 탭덩크 시도 실패 (워싱턴이 리바운드 후 3점 성공)-> 인바운드 후 할렘 선수가 자기 골대에 자살골 연이어 시도->화난 동료들이 "저기로 넣는거라고!"라고 하자 자살골 넣으려던 선수가 "아녀. 이 골대가 더 가깝다구"라며 만담 후 다섯명이 공중에서 패스를 돌리다가 화려한 앨리웁 덩크로 마무리 (워싱턴 제너럴즈 3점슛 실패) ->공중 패스 후 앨리웁 덩크 시도하나 실패(워싱턴 제너럴스 롱2를 쏘나 에어볼) ->포스트업에서 과장된 포즈로 엉덩이 치기를 하자 워싱턴 선수가 파울하나 심판이 딴짓하다 보지 못하나 '까짓거' 하는 듯 파울을 불어줌.->자유투를 쏘는데 얼어붙은채로 10초동안 멍때리다가 바이얼레이션이 나오는 순간 (볼을 받은지 10초안에 자유투를 쏘는게 전세계 공통된 룰이다) 볼을 허공에 던져서 다시 되돌아오게 하는 트릭을 함 ->심판이 자유투 쏠 할렘 선수에게 2구를 위해 볼을 주는 척하다가 슬쩍 공을 워싱턴 선수에게 헌남[11]
이런 식으로 경기 자체가 매우 장난스럽게 진행이 되며, 할렘은 모든 득점시도를 화려하게, 혹은 재미있게 하는 반면 워싱턴은 정말 진지하게 공격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와이드오픈 중거리슛에서 에어볼을 내는 등 할렘보다 몇 수 아래의 기량이라 저렇게 하면서도 할렘이 쉽게 이길 수 있는 것.[12] 또한 보면 알겠지만 농구만큼이나 개그와 꽁트, 묘기의 비중이 크며, 매우 재미있다.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농구 "경기"라기보단 농구 "공연"에 가깝기 때문.
5. 기타
- 한국에서는 데니스 로드먼이 2013년 방북 당시 이들을 대동하고 가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90년대에 내한해서 서울잠실학생체육관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shorts/uH_OFsGq6SU
-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흑인 에이스 투수 중 하나인 밥 깁슨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함과 동시에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와도 계약했으며 마이너리그에 출장하기 전 1년간 이곳에서 농구선수로 뛰었다. 깁슨은 대학도 농구 장학금으로 갔을 만큼 만능 스포츠맨이었지만, 글로브트로터스의 잦은 원정공연 일정 탓에 농구와 야구를 병행하는 것은 1년만에 그만두고 야구에 전념했다.
- 1954년 전설적인 명배우 시드니 푸아티에이가 이 팀의 선수 역으로 나온 영화 <Go, Man, Go>가 개봉했다. 당시 매우 드문 동아시아계 촬영감독이었으며 아카데미 촬영상을 두 번 탄 제임스 웡 하우가 연출했는데, 이 영화의 촬영은 다른 사람[13]에게 맡겼다. 수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를 만들었으며 초창기에 코치 역을 한 에이브 새퍼스틴(Abe Saperstein)이 중점적으로 묘사되며 실제 선수들이 경기 장면에 등장한다. 영화 막판 경기에서 전원 백인 팀을 상대로 이긴다.
- 1970년대에는 이들을 주연으로 한 TV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적도 있고, 무려 스쿠비 두 시리즈에 등장하기도 했다.
- 퓨쳐라마 시리즈에서도 준 레귤러 수준으로 등장하는데, 글로브트로터스들이 아예 농구공 모양의 행성으로 이주하여 대대로 선조들의 전통을 이으며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묘기농구 실력 뿐만 아니라, 다들 머리도 매우 좋아서 판스워스 교수와 맞먹는 수준. 플래닛 익스프레스 멤버들이 전부 서로 몸을 교환하는데 같은 인물끼리는 다시 바꿀 수 없게 되는 'The Prisoner of Benda' 에피소드에서는 글로브트로터스들이 판스워스 교수와 같이 연구한 끝에 모두의 몸을 원래대로 바꾸려면 한 번도 몸을 바꾸지 않은 사람 단 2명만 더 있으면 된다는 정리를 발견하는데, 이는 현실에서 에피소드 각본가의 이름을 딴 '킬러의 정리(Keeler’s Theorem)' 또는 '퓨쳐라마 정리(Futurama Theorem)'란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1] NBA팀이 있는 도시에서 공연할 때 그 팀 홈경기가 있으면 경기 중 시간을 들여 잠깐 소개해주기도 한다. 관객 측이 겹치기 때문에 홍보해주는 것. 이때 선수들 몇명이 나와 짧은 공연을 하는데, 눈돌아가는 묘기를 볼 수 있다.[2] 물론 "화려함" 면에서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거리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눈요깃감이 아닌 전체적인 드리블링 실력은 매우 떨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술의 완성도보다는 쇼맨쉽 위주로 파다보니 실전에서 기술을 써먹을 만큼 기본기가 잘 완성된 편은 아니다. 프리스타일 축구선수가 실제 축구시합에서 잘 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 슛이나 팀플레이로 가면 비교할 것도 없다.[3] 유명 스포츠 리포터로 드래프트 당시 65세의 노인이었다. 사실 이는 좀 찡한 사연이 있는데, 당연히 장난이긴 했지만 당시 투병 중이던 세이거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것을 기념해 존경의 의미로 뽑은 것이었다. 세이거는 "뽑혀서 영광이다"고 말을 남겼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결국 12월에 사망하고 만다.[4] 다만 미국 내 하부리그보다는 훨씬 많이 주는 편이다. 미국 하부리그는 NBA 문턱에 있는 선수들이 뛰고 있음에도 페이 수준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어서, 돈 때문에 NBA 꿈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가는 선수들이 많다. 그나마 외국리그는 정식농구라도 하지, 할렘의 "묘기농구선수"가 되면 농구선수로서 성장은 어려워져 사실상 NBA꿈은 접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많은 돈으로 꼬드기는 것.[5] 인종분리 시절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MLB 팀들이 사첼 페이지나 조시 깁슨 같은 우수한 흑인 선수들이 모인 니그로리그 팀과의 친선경기에서 패하기도 했다는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6] 이는 길거리 농구도 마찬가지였다. 6, 70년대까지만 해도 길거리와 프로의 수준 격차가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고, 길거리 출신 얼 먼로같은 전설도 있었던 데다가 (비록 거의 전부가 기록이 아니라 구전으로 언급되는 것 뿐이지만) NBA스타들과 길거리에서 맞짱떴다는 얼 매니걸트도 있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NBA가 흑인선수들을 받아들인 이후부터는 길거리던 할렘 글로브트로터스건 전체적인 수준은 NBA가 훨씬 높다. 그 격차가 지금만큼 크진 않았다는 소리.[7] 여담이지만 이 규정은 반대로도 적용된다. 즉, 4년이 지나지 않으면 드래프트되고 싶어도 못 되지만, 반대로 4년이 지났으면 드래프트가 되기 싫어도 될 수 있다. 바로 래리 버드의 케이스로, 버드는 인디애나 대학 입학 이후 분위기에 적응못해 자퇴, 이후 인디애나 주립대로 다시 진학해 3학년 시즌을 마쳤을때 이미 고교 졸업 후 4년이 지나있었다. 즉, 그는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도 안했고 프로 진출할 의사도 없었지만 드래프트 대상자였던 것. 이 규정을 이용해 보스턴 셀틱스가 그를 1라운드 6순위 지명권을 이용해 1년 먼저 선점해버린다.[8] 체임벌린이 할렘 합류하기 2년전에 보스턴 셀틱스에 합류한 빌 러셀이 받은 2만4천 달러보다도 많은 액수였다. 그런데 당시 글로브트로터스는 러셀에게도 5만 달러를 제안했다. 그러나 묘기농구에 관심이 없었던 러셀은 이보다 적은 액수에도 셀틱스에 합류하게 된다. 보스턴이 훨씬 규모가 큰 팀이란 걸 생각하면 할렘이 엄청난 출혈을 감수한 것. 이보다 작고 가난한 팀인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이후 더 큰 도시인 애틀랜타로 이전한다)는 원래 러셀을 뽑았으나 "그(러셀)이 5만달러를 원하던,2만5천을 원하는 상관없었다. 우린 돈이 없었거든"이란 말을 남기고 그를 셀틱스로 트래이드한다. 여담으로 당시 루키인 러셀이 받은 액수는 리그 연봉 1위인 동료 밥 쿠지의 2만5천달럌랑 거의 비슷한 액수였는데, 덕분에 러셀은 생계를 위해 부업을 할 필요가 없는 극소수의 선수 중 하나였다. 또한 러셀과 체임벌린이 당시 엄청난 존재들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러셀이 2순위로 밀린 이유는 1순위를 가진 로체스터 로얄스가 이미 모리스 스토크스란 걸출한 센터가 있고 러셀에게 지불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거물들에게 쇼미더머니를 시전할 정도로 당시 할렘의 위상이 높았던 것. 이것도 여담이지만 65년에 전성기에 오른 러셀과 체임벌린은 당시 역대 최고액인 10만달러에 계약하게 된다. 재밌는 뒷얘기가 있는데 둘은 친하면서도 라이벌이었고, 자존심이 강한 러셀은 "그(체임벌린)보다 1달러라도 적은 액수엔 계약안한다"고 공언했고, 둘이 계약을 서로 미루다 체임벌린이 10만 달러에 계약하자 러셀은 냉큼 10만1달러에 계약해버린다.[9] 윌트는 실제로 NBA에서 루키시즌이 끝난 후 은퇴선언을 했다. 진지하게 한 건 아니고 하도 두들겨맞고 심판도 외면해대니 이럴 바엔 그만두겠다고 한 것. 다만 이게 징징거리는 걸로 받아들여져 그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졌다. 한국의 서장훈도 그렇지만 압도적인 거인선수들은 심판판정에서 아무래도 손해를 본다.[10]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경기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글로브트로터스 선수들이다. 악당이 갑자기 주인공을 죽여버린 꼴.[11] 이 때 임페리얼 마치가 나온다.[12] 다만 2010년대 경기를 보면 제너럴스도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하기보단 할렘이 이기는 시나리오가 나오도록 협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저 경기에선 어린이 관중을 활용해 득점한 할렘에 대한 징계 차원에서 심판이 자기재량으로 제너럴스에 4점을 줘서(근데 알고보니 심판은 밑에 제너럴스 유니폼을 겹쳐입고 있는 제너럴스 팬이었다) 동점이 된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클러치타임에서 할렘이 제너럴스의 공을 스틸하고 할렘이 묘기를 하는데, 그 사이 마지막 슛을 던져야 하는 선수의 수비수가 자기 마크맨을 은근슬쩍 버리고 혼자 골밑으로 조깅해 태평하게 멀리서 슛을 구경하고 있다. 만약 저 때 제너럴스가 압박수비를 했다면 아차하는 사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압도적인 고수가 이길 확률이 99%라도 100%은 아니니까. 즉 기본적으로 열심히 농구를 하고 실력차 때문에 지는 건 맞지만, 위에 언급된 71년 사태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는 시나리오에 맞도록 협조하는 듯 보인다.[13] William O. Ste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