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14:09:00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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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SA
대륙 연맹 FIBA 아메리카
국가 연맹 USA 바스켓볼
FIBA 랭킹 1위
별칭 Team USA, 드림팀
감독 스티브 커 (월드컵, 올림픽)
제프 밴 건디 (월드컵 예선, 아메리컵)
월드컵 출전 17회, 우승 5회
올림픽 출전 19회[1], 금메달 17회
아메리컵 출전 9회, 우승 7회
팬아메리칸 게임 출전 16회, 금메달 8회
용품 스폰서 나이키
링크 파일: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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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대 선수단
2.1. 1984년2.2. 1988년
2.2.1. NBA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한 계기
2.3. 1992년 - 드림팀 1기2.4. 1994년 - 드림팀 2기2.5. 1996년 - 드림팀 3기2.6. 1998년2.7. 1999년2.8. 2000년2.9. 2002년2.10. 2003년2.11. 2004년2.12. 2005년2.13. 2006년 - 리딤팀2.14. 2007년2.15. 2008년2.16. 2010년2.17. 2012년2.18. 2014년2.19. 2016년2.20. 2017년2.21. 2019년2.22. 2021년
2.22.1. 로스터2.22.2. 평가전2.22.3. 본선
2.23. 2023년2.24. 2024년 - 디 어벤져스
2.24.1. 평가전2.24.2. 본선
2.24.2.1. 조별 리그2.24.2.2. 토너먼트2.24.2.3. 총평
3. 역대 성적4. 최강의 드림팀 논쟁5. 드림팀은 계속될 수 있는가?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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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농구 국가대표팀을 설명하는 문서.

가장 유명한 별명은 'Dream Team\'으로 슈퍼스타들의 출석률이 낮아 명성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은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과는 달리 이쪽은 이견이 없는 세계 최강의 농구 대표팀이다.[2]

올림픽 예선, 월드컵 예선과 대륙간 대회의 경우 NBA 선수들 대신 대학 선수들이나 NBA G 리그, 해외 리그에서 뛰는 선수 등 레벨이 낮은 선수들이 출전하고 올림픽, 월드컵 본선에는 NBA 현역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이원화로 운영한다. 물론 저렇게 해도 예선 통과에는 문제가 없다.

2. 역대 선수단

2.1. 1984년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스티브 알포드 G 188cm 인디애나 대학교
5 제프 터너 F 206cm 밴더빌트 대학교
6 패트릭 유잉 C 213cm 조지타운 대학교
7 번 플레밍 G 196cm 조지아 대학교
8 앨빈 로버트슨 G 191cm 아칸소 대학교
9 마이클 조던 G 198cm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0 조 클레인 F 211cm 아칸소 대학교
11 존 콘칵 C 213cm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12 크리스 멀린 G 198cm 세인트 존스 대학교
13 웨이맨 티스데일 F 206cm 오클라호마 대학교
14 샘 퍼킨스 F 206cm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5 레온 우드 G 191cm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풀러턴 캠퍼스

감독 : 밥 나이트

코치 : 마이크 슈셉스키

조별예선에선 중국, 캐나다, 우루과이, 프랑스, 스페인과 함께 B조에 편성되었는데 5전 5승을 기록하며 8강에 진출하였다.

8강에선 서독, 4강에선 캐나다, 결승에선 스페인을 격파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2. 1988년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미치 리치몬드 G 196cm 캔자스 주립대학교
5 찰스 스미스 G 185cm 조지타운 대학교
6 빔보 콜스 G 185cm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7 허시 호킨스 G 191cm 브래들리 대학교
8 제프 그레이어 G 196cm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9 찰스 D. 스미스 F 208cm 피츠버그 대학교
10 윌리 앤더슨 G 201cm 조지아 대학교
11 스테이시 오그먼 F 201cm 네바다 대학교/라스베이거스 캠퍼스
12 댄 멀리 G / F 198cm 센트럴 미시간 대학교
13 대니 매닝 F 208cm 캔자스 대학교
14 J. R. 리드 F 208cm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5 데이비드 로빈슨 C 216cm 미국해군사관학교

감독 : 존 톰슨

88 서울 올림픽 준결승에서 소련 농구 국가대표팀에게 패배하면서 결국 소련 농구 국가대표팀에 우승을 넘겨준다. 이듬해인 1989년부터 프로 농구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되면서 그렇게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우리가 아는, NBA 스타선수들로 구성된 드림팀이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1972년 뮌헨 올림픽때도 결승에서 미국이 소련에게 진 적이 있는데,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오심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 당시 소련 농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소련(러시아)의 시점에서 다룬 영화가 쓰리 세컨즈다.

사실 1988년의 패배가 뼈아팠던 이유는, 1972년 올림픽은 오심 때문에 금메달을 강탈당한 것나 마찬가지였던 반면에 이때는 변명의 여지 없이 실력으로 패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NCA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팀은 성인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상당수 포함된 소련팀에 압도당했으며, 특히 슈퍼스타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공수양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미국의 에이스 데이비드 로빈슨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뒀다.[3] 또 하나 뼈아팠던 점은 상대가 다름 아닌 소련이었다는 것. 1988년이면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은 시기였고, 정치적 외교적 라이벌 관계만큼이나 스포츠에서도 치열한 라이벌이었던 소련에게 패한 것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토록 뼈아픈 패배였기에, 초대 드림팀이 처음 소화한 공식대회인 1991년 팬아메리칸 대회에서 손쉽게 우승을 차지한 후 공동주장인 래리 버드는 "우리는 바르셀로나에 가서 금메달을 합당한 자리에 되돌려놓을 것입니다"라는 코멘트를 남긴다.

여담으로, 올림픽 기간 중 고조된 반미감정[4] 때문에 이 경기 당시 잠실학생체육관을 가득 매웠던 한국관중들이 USSR을 연호하며 우방국인 미국 대신 적성국인 소련을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988년이면 소련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개혁·개방을 외치던 시점이고 노태우 정부에서도 북방정책을 표방하며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관계 정상화에 나섰던 상황이라 한국에서 소련에 대한 국가 이미지가 예전보다는 좋아졌던 판국에 반미감정까지 맞물리면서 이런 모습이 나온 것.

2.2.1. NBA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한 계기

영미권에서건 국내에서건 "미국이 소련에게 패배한 이후 NBA 선수들의 참가를 적극 권장했다"는 설이 널리 퍼져있는데,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메이저 언론 중 하나인 시카고 트리뷴의 1989년 기사를 보면 1989년 당시 뮌헨에서 열린 투표에서 미국 농구 연맹은 반대파에 속했으며, 직후 이뤄진 설문에서도 295명의 NBA 선수들 중 58명만이 참가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마이클 조던 역시 이미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참가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어쨌거나 NBA 선수들은 휴가를 날린다는 의미에서 대부분 참가하길 원하지 않았고, 선발 기회가 없어진 대학 선수들 입장에서도 불만스러운 결정이었다. 실제로 USA Basketball은 이런 측면에서 반대를 한 것인데, 이들은 아마추어 농구를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이 관리하는 것은 주로 고등학교나 대학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NBA에서도 매직 존슨이나 칼 말론처럼 올림픽에 참가한 적이 없는 선수들은 이 결정을 반겼다.[5]
1980년대를 지배한 3인방인 존슨, 래리 버드, 아이재아 토마스는 어쩌다보니 셋 다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1959년생 존슨의 경우 1976년 올림픽 당시 아직 고등학생인데다 졸업반도 아니어서 선발되지 못했으며 80년 올림픽 때는 이미 프로였고, 1956년생이고 마찬가지로 80년 당시 프로였던 버드는 실력은 76년 올림픽에 선발될만 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아직 대학 무대에서 한 경기도 못 뛰었기에 못 뽑혔다.[6] 1961년생 토마스는 올림픽에 출전할 만한 기회가 1학년 시즌을 마친 이후인 1980년 올림픽 뿐이었는데 당시 미국은 냉전 시대의 갈등(정확히 말하면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반발) 때문에 보이콧해 기회가 또 날아갔다.[7]

어쨌거나 1989년 당시 메이저 언론의 기사로 확인되는 것은 미국 농구 연맹이건 NBA 선수들이건 처음엔 참가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당시 선발 위원회였던 로드 손은 선수들의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NBA 최고 스타이자 애초엔 참가하기 싫다고 했던 조던 측에 러브콜을 날렸고, 혼자 고생하기 싫었던 조던은 "다른 선수의 참가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보류했다. 그런 와중에 위에 언급한대로 올림픽 참가에 미련이 컸던 매직 존슨이 버드와 조던을 설득해 참가하자고 했다고 한다. 당시 버드는 몸이 만신창이라 은퇴를 앞뒀는데, 매직은 "그냥 코너에 서 있거나 top of the key에 서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해도 돼. 내가 공을 줄테니까 그냥 쏴서 넣기만 하면 돼. 아직 그건 할 수 있지?"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조던에게는 "자네와 래리랑 함께 뛰는건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고, 셋이 같이 뛰면 재밌을 거다"라고 하면서 이미 버드를 설득했다고 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전설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역사에 남을 만한 로스터가 완성되자 모두가 합류하고 싶은 "꿈의 팀"이 된 것이다.

2.3. 1992년 - 드림팀 1기


파일:external/www.interbasket.net/1992-NBA-Dream-Team.jpg
파일: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로고.svg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수 명단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크리스찬 레이트너 F 211cm 듀크 대학교
5 데이비드 로빈슨 C 216cm 샌안토니오 스퍼스
6 패트릭 유잉 C 213cm 뉴욕 닉스
7 래리 버드 F 206cm 보스턴 셀틱스
8 스카티 피펜 F 201cm 시카고 불스
9 마이클 조던 G 198cm 시카고 불스
10 클라이드 드렉슬러 G 201cm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1 칼 말론 F 206cm 유타 재즈
12 존 스탁턴 G 185cm 유타 재즈
13 크리스 멀린 F 201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4 찰스 바클리 F 198cm 피닉스 선즈
15 매직 존슨 G 206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파일: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로고.svg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소속팀
감독 척 데일리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감독
코치 PJ 칼리시모 시튼홀 대학교 감독
코치 마이크 슈셉스키 듀크 대학교 감독
코치 레니 윌킨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

보통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드림팀을 떠오르지만, 이에 앞서 1992년 6월 미국에서 열린 제5회 아메리카 대륙 선수권 대회가 드림팀이 참가한 첫 국제대회다. 그야말로 미국 안방에서 미국은 농구가 제법 인기가 있을 참가국들을 뭉갰다. 그리고 주로 드림팀 하면 이 팀을 떠올린다.

1차전에서 쿠바를 136-57로 대파하고, 캐나다는 105-61, 도미니카 공화국은 112-52로 승리한 미국 드림팀은 가장 어려움을 겪으리라 본 아르헨티나도 128-87로 가지고 놀며 쉽게 이겼다. 이렇게 조 예선에서 모조리 100점 이상 대량 득점, 40점 차 이상 대승으로 전승을 거두고 4강전에서 푸에르토리코는 119-81, 그리고 결승에서 베네수엘라를 127-80으로 이기면서 6전 전승, 모두 100점 이상 대량 득점, 40점 차 이상 대승으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게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이고 무엇보다 미국 안방 경기라 그런지 국제적으로 관심도는 덜했다. 거기에 더 재밌는 점은 깨진 나라들도 승패보다는 드림팀을 보는것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바클리는 드림팀 다큐멘터리에서 자신들을 보고 환호하는 상대팀 선수들을 보면서 "야 우리 니네 박살내러 온거야..."하며 당황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해 열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으면서 드림팀 이름을 세계에서 알리게 된다. 유튜브 등지에서 돌아다니는 드림팀 다큐를 보면 이들이 처음 훈련할때는 손발이 안 맞다가 점점 서로에게 맞춰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많이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스카티 피펜이 누드 비치에 가서 희희낙락하는 모습도 나오고, 존 스탁턴이 강제 관광객 코스프레당하는 굴욕이나 바클리가 인파를 몰고 다니며 놀았다는 후일담도 있다. 특히 마이클 조던의 끝없는 체력에는 다른 NBA 선수들도 기겁했다. 그는 경기하고, 밤새 카드놀이하고 다음날 골프치고, 잠깐 눈붙이고 또 경기하러 나가고...이걸 끝없이 반복했다고 하는데, 이 밤새 카드 놀이엔 찰스 바클리, 매직 존슨 등 다른 선수들도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짓거리를 계속 하자 매직이나 다른 선수들은 "마이클, 난 자네처럼 못하겠네. 잠 좀 자야겠어"하면서 리타이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매직은 조던이 하는 매일 골프 멤버도 아니었다! 이건 감독이라 체력적 여유가 있던 척 데일리랑 같이 한 것.[8] 참고로 데이비드 로빈슨은 이 골프에 한번 하곤 "오늘 경기에서 무지 지치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뛰는 조던을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한다. 어시스턴트 코치로 합류했던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은 올림픽 후반에 마이클이 구석에서 쪽잠을 자는 걸 보고 "이번 대회에서 마이클이 자는 거 처음 본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너무 안 맞아서 대학선발팀[9]에게 패배[10]하기도 했다. 이 경기에 대해선 에이스인 조던이 거의 뛰지 않은 것과 적절하지 않은 선수 교체로 인해 당시 감독인 척 데일리가 스타의식에 쩔어있던 선수들이 정신차리라고 일부러 엉망으로 경기를 운영했다는 의혹이 당시 어시스턴트 코치인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11] 물론 증거는 없고 당사자인 데일리 감독이 고인이 되었기에 증명할 바는 없지만 아래의 정황상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 척 데일리 감독은 경기전 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모두 내보냈고 경기 후 전광판의 스코어를 즉시 지우라고 지시한 후에야 언론을 불러들였다. 후자의 경우, 패배의 의미를 확대해석하는걸 막기 위함이지만 전자의 경우, 사상 최고의 선수 12명이 모인 팀이 질 것이라는 걸 어떻게 예측했을까?
  • 당시 스코어를 보면 알겠지만 이때 경기 시간은 20분이 좀 넘을 정도로 매우 짧았다. 또한 당시 목격자가 없어 확인된 적은 없지만 전반만 끝나고 데일리 감독이 경기를 끝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경기가 길어지면 드림팀 선수들이 점수를 추격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점수가 뒤쳐졌을 때를 노려 재빨리 끝냈을 가능성이 크다.
  • 이 의혹을 제시한 당사자가 슈셉스키, 또한 이 발언을 한 게 2012년이란 것이다. 슈셉스키는 어시스턴트 코치로서 데일리를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인데 그가 노골적으로 "척이 고의 패배했죠(Chuck threw the game)"라고 했다. 또한 그는 평생을 대학감독으로 보낸 레전드급 지도자이다. 비록 자신의 제자 레이트너가 있다고 해도 프로로 구성된 팀을 대학팀이 이기는 게 기분나쁠리가 없는데 이 승리에 대해 폄훼할 이유가 없다. 또한 대학팀의 주축 중 상당수 (힐,바비 헐리) 등은 그의 듀크대 제자였으며 특히 작고 재빠른 헐리는 장신이 대다수던 드림팀 가드들을 당혹스럽게 할 정도였다. 슈셉스키는 드림팀과 몇달 같이 일했지만 대학 선수들과는 4년내내 일했다(당시 듀크는 대학선수들은 전원 졸업이라는 방침을 고수). 고의 패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굳이 20년 후에 애재자들의 활약에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다.
  • 마지막으로, 위에 언급됐듯이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마이클 조던이 거의 뛰지 않았다. 이 양반의 승부욕은 거의 병적이란 걸 생각하면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12][13]

은퇴 선수들이 나와 노가리까는 프로그램인 Open court에서 당시 드림팀의 멤버 찰스 바클리의 회상이 따르면 "우린 이제 막 만나서 손발도 안 맞춘 상태였어. 그리고 이 대학생 애들은 다음 드림팀이 될 애들이니까 '손발이나 풀까' 이 정도였지. 근데 막 덩크하고 바비 헐리는 웨버랑 힐한테 앨리웁 패스 던지고 막 이러는겨. 이제 점수차이도 나겠다 슬슬 시작해볼까? 하는데 경기를 갑자기 끝내버리더라고. 그래서 다음 날에는 '제대로 하자'하고 박살냈지" 웨버는 당시 대학 선수들이 NBA 선수들을 눈앞에서 보니 경이적이라 이 악물고 뛸수 밖에 없었다며 "다음날 경기에서 완전히 박살났지 (they killed us). 한 점도 못 넣었어. 자유투건 레이업이건"이라고 회상. 한 점도 못 넣은 건 과장이 섞여있다고 해도 칼을 갈고 나온 11명의 명예의 전당 멤버들에게 대학선수들이 작살난 건 확실하다. 물론 전날 거의 못 뛴 마이클 조던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올림픽 대비 훈련 막바지에는 차세대 농구 황제 조던과 1980년대 최고 스타 매직 존슨의 연습경기 도중 신경전도 볼 수 있는데, 이 연습 게임은 조던이 자신이 해본 최고의 게임이라고 술회할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올스타전조차 HOF(명예의 전당)들만 경기 한 적은 거의 없는데 이건 그 레벨 이상이니. 다만 드림팀의 유일한 대학생 선수였던 크리스찬 레이트너만 예외. 웃긴 건 매직과 조던 둘 다 레이트너는 여기 낄 군번이 아니라 했다는 거. 매직은 "칼리지 키드? 우린 걔 필요없어 너네나 가져"라고 말하고, 조던은 "탑레벨의 자존심 대결인데 칼리지 키드는 도움도 안되고 필요없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 멘트는 2012년에 방송된 다큐 제작과정에서 한 인터뷰이다. 즉, 조던과 매직은 물론이고 레이트너까지 은퇴한지 한참 지난 시점인데 이름으로 안 부르고 college kid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조던과 매직은 모두 이 경기를 둘의 자존심 대결로 받아들였다. 1991년 파이널의 결과는 조던의 승리로 났지만, 아직 플레이어 레벨에서는 내가 밀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매직과 '이제는 내가 이기지~'라고 생각했던 조던이 불 붙으면서 올림픽 본 경기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승부욕을 팀내 연습경기에서 활활 불태웠다. 당시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희생적인 플레이로 이름난 매직이 이 정도로 승부욕을 불태우면서 1-on-1을 하는 경기는 거의 처음이었다고. 경기 결과는 조던 팀의 승리. 한편 매직과 80년대를 양분한 버드는 허리가 아파서 "그러든지 말든지..."란 태도로 코트 구석에 엎드려 있었다. 드림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둘의 라이벌 전은 굉장해서 조던은 틈만 나면 매직에게 "님 시대는 갔음!" 드립을 서슴지 않았고 매직 역시 "너는 아직 안된다"는 드립을 쳤으나 이 경기에 패한 이후 매직은 버드에게 "우리들의 시대는 갔나보다." 라고 헛웃음을 치며 인정을 했다고 한다. 버드의 반응은 "님 몰랐음? ㅋ" 의 반응... 실제로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레이트너와 허리가 아팠던 버드는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 매직 존슨, 로드 쏜 등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 때 매직의 팀이 8점차로 앞서고 있었는데 이때 매직이 "여기는 시카고 스타디움이 아냐"라고 조던에게 도발을 했다고 한다. 매직은 이에 대해 "내가 그 말을 왜 했을까요..."라고 회상했는데, 이후 조던이 매 공격권마다 득점하면서 결국 2점차로 앞서게 됐다고...한번은 조던이 파울을 얻어내자 매직이 분노해 경기장 천장에 공을 던지면서 "NBA랑 똑같잖아! 시카고 스타디움을 여기로 옮겨왔을 뿐이야!"라고 불평했고, 여기에 대해 조던은 "지금은 90년대야"라고 답했다. 연습 이후 버스에 올라탔을 때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으나, 매직이 같은 팀이었던 찰스 바클리에게 "찰스, 우리가 The Man(조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나봐"라고 하자 웃음이 터졌고 이후 다들 왁자지껄하며 "내 생애 최고의 연습이었다"면서 친해졌다고 한다.[14]

대회 내내 타임아웃조차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앙골라는 경기 막판 작전타임을 요청하더니 드림팀 선수들의 사인을 받고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 사실상 이때의 드림팀은 거의 어벤져스 급이었다. 그야말로 개개인 멤버들이 해외선수들의 우상이었다. 이 12명 중 크리스찬 레이트너를 제외하고 모두 개인 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으며, 2009년에는 아예 팀 전체가 미국 올림픽&패럴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0년에도 아예 팀 자체가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리고 2017년 에는 FIBA 명예의 전당에도 아예 팀 자체가 헌액되었다.

문자 그대로 완벽에 가까웠던 이 팀의 가장 큰 약점은 일단 레이트너고 그 다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주장인 매직과 버드였다. 버드의 경우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고 80년대를 양분한 NBA의 아이콘이었지만, 이 시점에서 부상이 너무 심해져 마지막 시즌인 91-92시즌은 거의 어거지로 치러야했다. 주위 사람들의 회고에 따르면 경기를 치르고 집에 가 "한니발 렉터스러운" 온몸을 교정하는 전신교정기를 착용하고 하루종일 있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연봉만 받을 순 없다"는 버드의 자존심과 고집이 낳은 결과로, 실제로 그가 워낙 상징적인 존재라 92시즌 이후에 "뛰지 않아도 좋다"면서 셀틱스가 고액 연봉을 제안했으나 그냥 은퇴했다고 하며 올림픽 시점에서는 앉아있기도 힘들어해 경기에 뛰지 않을때는 마루바닥에 누워있을때가 많았다. 매직의 경우 은퇴한지 1년이 지났지만, 나이도 비교적 젊었고 (만 33세) 몸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던 시절. 문제는 그의 키였다. 초장신(206cm) 포인트가드였던 매직은 젊은 시절에도 PG수비를 힘들어해, 레이커스는 슈팅가드였던 바이론 스콧(191cm)에게 PG수비를 맡기고 매직은 슈팅가드나 스몰포워드 수비를 주로 했다. 그런데 당시 드림팀은 상당히 빅라인업이라 스타팅 라인업에서 매직보다 작은 선수가 198cm인 마이클 조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작고 재빠른 포인트가드였다.

물론 올림픽 기간에 이 단점이 부각된 적은 없었다. 상대라도 되어야 약점이 부각되든지 할 것 아닌가. 문제는 대학선발팀과의 연습경기. 듀크대의 바비 헐리(183cm)는 장신숲을 요리조리 다니며 맹활약했다. 물론 조던은 아이제아 토마스(185cm)와 매치업될 정도로 작은 선수들을 잘 막는 특급 수비수였지만, 문제는 위에 언급됐다시피 1차전에서 척 데일리는 뭔가 노리는 바가 있었는지 조던을 거의 쓰지 않았다. 이상적으로라면 당시 드림팀은 버드는 선발하지 않고 존 스탁턴 - 마이클 조던 - 찰스 바클리 - 칼 말론 - 데이비드 로빈슨/패트릭 유잉의 선발진을 꾸려야했다. 특히 185cm에 재빠르고 수비력이 뛰어난 스탁턴은 매직의 약점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었으며, 매직보다 월등한 외곽슛 능력으로 스페이싱도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드림팀"이란 점에서 1980, 90년대를 대표하는 3인방 매직, 버드, 조던은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으며, 매직과 버드는 상징적인 존재로 선발 라인업에 끼긴 했으나 많이 뛰지는 않았다. 물론 이들이 약점이란 것도 굳이 따지면 약점이란 거지, 상대가 NBA 레전드 팀급 일 때나 통하는 이야기이지 올림픽에서는 별 의미 없었다.

첫 경기에서 앙골라를 116-48, 크로아티아를 103-70, 독일을 111-68, 브라질을 127-83, 스페인을 122-81로 이기면서 아메리카 선수권처럼 똑같이 전승에 조예선 100점 이상 대량 득점, 30점 차 이상 대승으로 마무리했다. 8강에서 만난 상대가 바로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에서도 만난 푸에르토리코였지만 여기서도 미국에게 115-77로 패한다. 그리고 4강에서 리투아니아를 127-76으로 손쉽게 처바른다. 마지막 결승에서 재대결한 게 크로아티아. 하지만 역시나 117-85로 문제없이 이기며 8전 전승, 모두 100점 이상 대량 득점, 30점 차 이상 대승으로 우승을 거뒀다.

이렇게 보면 상대팀들은 뭐 허접만 모은 것 같은데 여기서 드림팀과 맞붙은 남미 강호 브라질, 1991년 유로바스켓을 우승한 유럽 강호 유고슬라비아에서 나온 크로아티아[15], 역시 소련에서 나온 리투아니아[16], 역시 유럽 강호 스페인이었고 비록 동네북이라고 해도 앙골라는 아프리카 선수권 대회 최다 우승이자 1989, 1992년 아프리카 선수권 우승팀, 아프리카에서는 농구 최강급인 상대였으며 푸에르토리코는 중미에서도 손꼽히는 농구 강호로 아메리카 선수권도 여럿 우승하던 상대였기에 모두 각 대륙 선수권 대회 우승 후보급 및 우승팀들을 상대한 셈이었다.

또한 마이클 조던은 사상 최초로 단일 연도에 NBA 파이널 우승+정규시즌 MVP+파이널 MVP+올림픽 농구 금메달을 모두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17]

2.4. 1994년 - 드림팀 2기

  • 참가 대회: 1994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캐나다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11 케빈 존슨 G 185cm 피닉스 선즈
5 마크 프라이스 G 183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4 조 듀마스 G 191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9 댄 멀리 G 198cm 피닉스 선즈
10 레지 밀러 G 201cm 인디애나 페이서스
4 스티브 스미스 G 203cm 마이애미 히트
15 래리 존슨 F 201cm 샬럿 호네츠
12 도미니크 윌킨스 F 203cm 보스턴 셀틱스
7 숀 켐프 F 208cm 시애틀 슈퍼소닉스
6 데릭 콜먼 F 208cm 뉴저지 네츠
13 샤킬 오닐 C 216cm 올랜도 매직
14 알론조 모닝 C 208cm 샬럿 호네츠

결승에서 숙명의 라이벌이던 소비에트 연방의 후예 러시아를 맞아 137-91로 압도적인 우승을 거뒀다.

아이제아 토마스(G, 185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팀 하더웨이(G, 183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부상으로 인해 불참.

샤크는 진지하게 1994년 드림팀이 1992년의 원조 드림팀보다 강하다고 주장한다.

전력과 별개로 1990년대 드림팀 중 가장 저돌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던 팀이다. 거의 베테랑들로 이뤄진 1992년, 1996년과 달리 20대 젊은 선수들이 많고, 특히 오닐과 모닝, 켐프, 콜먼, 허리부상 이후라 파워가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 충분히 실력있던 존슨은 역대 가장 운동 능력이 뛰어난 골밑이다.

2.5. 1996년 - 드림팀 3기

번호 이름 포지션 신장 소속팀
4 찰스 바클리 F 198cm 피닉스 선즈
5 그랜트 힐 F 203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6 앤퍼니 하더웨이 G 201cm 올랜도 매직
7 데이비드 로빈슨 C 216cm 샌안토니오 스퍼스
8 스카티 피펜 F 201cm 시카고 불스
9 미치 리치몬드 G 196cm 새크라멘토 킹스
10 레지 밀러 G 201cm 인디애나 페이서스
11 칼 말론 F 206cm 유타 재즈
12 존 스탁턴 G 185cm 유타 재즈
13 샤킬 오닐 C 216cm 올랜도 매직
14 게리 페이튼 G 193cm 시애틀 슈퍼소닉스
15 하킴 올라주원[18] C 213cm 휴스턴 로키츠

감독 : 레니 윌킨스

문제없이 금메달을 거둬들였다. 특히 3기 드림팀은 전후의 다른 드림팀들과 달리 센터진이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는데 은메달을 땄던 유고슬라비아의 센터였던 블라디 디박[19]이 "오닐, 올라주원, D. 로빈슨이 돌아가며 나오니 무슨 수로 이기겠나"고 한탄했을 정도. 전문가나 팬들은 드림팀 3이 드림팀 1과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팀으로 여긴다.

실제 샤킬 오닐은 NBA Open Court에서 자신이 활약한 이 팀이 1992년에 참여한 팀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바클리의 반응은 "얘 또 이러네..." 의 반응(...). NBA Open Court에는 그 1996년에 오닐과 함께 뛰었던 레지 밀러 뿐 아니라 1992년과 1996년 모두 뛴 바클리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양 팀에서 뛰어본 바클리의 경우에는 사실상 1992년 드림팀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1996년은 저 무시무시한 로스터에도 불구하고 1992년만큼 압도적이진 않았다. 1992년 드림팀은 동메달팀인 리투아니아를 4강에서 51점차로 털어버리면서 올림픽 8경기동안 평균 43.7점차로 우승을 했는데, 1996드림팀의 점수차는 고작 30.5점차에 불과했다. (4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1996년에도 동메달을 차지한 리투아니아와 점수차는 22점이었다.) 또한 1992팀은 전경기를 100점 이상을 넣었고 평균 117.2점을 넣었는데, 1996팀은 100점을 넘긴 경기가 네 번에 평균 102점이었다. 1992팀이 앙골라를 양학해서 얻은 점수가 있지만 1996팀도 중국을 상대로 133점이나 넣으며 양학했으니 상황은 같았다.[20] 실제로 1992팀을 상대로 35점 차 이내로 접근한 팀은 크로아티아가 유일했는데(예선 당시 33점, 결승서 32점. 즉, 드림팀은 가장 껄끄러운 상대를 두 번이나 만났다는 얘기) 1996팀은 35점차 이긴 경기가 중국전 뿐이다.

2.6. 1998년

  • 참가 대회: 1998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그리스
번호 이름 포지션 신장 소속팀
4 트라잔 랭던 SG 193cm 듀크 대학교
5 마이클 호킨스 PG 183cm 올림피아코스
6 K. 개리스 PG 188cm 덴버 너기츠
7 제이슨 새서 SF 201cm 수 폴스 스카이포스
8 지미 킹 SG 196cm 쿼드 시티 썬더
9 빌 에드워즈 SF / PF 203cm 칼체 폼페오 로마
10 지미 올리버 SG / SF 196cm 시우다드 데 우엘바
11 웬델 알렉시스 PF 206cm 알바 베를린
12 제라드 킹 F 206cm 폰타나프레다 시에나
13 데이비드 우드 PF 216cm 록포드 라이트닝
14 아쉬라프 아마야 F 203cm 아이다호 스탬피드
15 브래드 밀러 C / PF 211cm 비니 비아지 리보르노

조별예선에서는 2승 1패 조 2위로 2라운드에 진출했고 2라운드에서 3전 전승을 기록하며 5승 1패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이탈리아를 3점차로 이겼으나 4강에서 러시아한테 일격을 당했고 3•4위전에서 개최국 그리스를 대파하며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2.7. 1999년

  • 참가 대회: 1999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 푸에르토리코
번호 이름
4 스티브 스미스
5 제이슨 키드
6 앨런 휴스턴
7 리처드 해밀턴
8 팀 하더웨이
9 톰 구글리오타
10 케빈 가넷
11 빈 베이커
12 월리 저비악
13 팀 던컨
14 게리 페이튼
15 엘튼 브랜드

10전 10승으로 손쉽게 우승을 차지하였다.

2.8. 2000년

번호 이름 포지션 신장 소속팀
4 스티브 스미스 G 203cm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5 제이슨 키드 G 193cm 피닉스 선즈
6 앨런 휴스턴 G 198cm 뉴욕 닉스
7 알론조 모닝 C 208cm 마이애미 히트
8 팀 하더웨이 G 183cm 마이애미 히트
9 빈스 카터 F 198cm 토론토 랩터스
10 케빈 가넷 F 211cm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1 빈 베이커 F 211cm 시애틀 슈퍼소닉스
12 레이 앨런 G 196cm 밀워키 벅스
13 안토니오 맥다이스 F 206cm 덴버 너기츠
14 게리 페이튼 G 193cm 시애틀 슈퍼소닉스
15 샤리프 압둘라힘 F 206cm 밴쿠버 그리즐리스

역시 금메달을 거두긴 했지만 여러 말이 많았다.

사실 이 라인업은 네임밸류는 화려하지만 정통 센터가 언더사이즈인 모닝 단 한명뿐이라 혹시 모닝이 부상이라도 입을 경우 답이 없다는 위험이 있었다. 당시 모닝은 오닐과 함께 NBA 에서 유일하게 20득점-10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엘리트 센터였고 실제 올림픽에서도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다. 아마 모닝이 없었다면 2004년 올림픽처럼 금메달 달성이 쉽지 않았을 정도로 상위 토너먼트로 갈수록 아슬아슬한 경기가 많았다. 최장신 가넷은 커리어 후반으로 갈수록 센터 역할도 많이 했지만 이때는 스몰포워드-파워포워드를 오갈 때였고 베이커 역시 키는 크지만 내외곽을 오가는 포워드였고 센터 포지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맥다이스는 간헐적으로 센터가 소화가능했지만 역시 센터치곤 키가 작았다. 사실 이때는 90년대를 호령한 센터들이 거의 은퇴하거나 엄청 노장이 된 때라 뽑을 만한 선수가 마땅치 않았던게 사실이다.[21] 이 상황이니 포워드들로 자리를 메운 것.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센터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은 균형이 잘 맞는데다 네임밸류도 압도적이고 모닝이 키는 좀 작아도 워낙 뛰어난데다 가넷은 비록 센터는 아니지만 골밑수비가 매우 강한 선수라 괜찮았다. 하지만 4년 후 센터 기근이라는 문제점은 드림팀에게 굉장히 큰 문제점으로 적용하고 만다.

2.9. 2002년

  • 참가 대회: 2002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미국
번호 이름 포지션 신장 소속팀
4 마이클 핀리 G 201cm 댈러스 매버릭스
5 배런 데이비스 G 191cm 뉴올리언스 호네츠
6 안드레 밀러 G 188cm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7 저메인 오닐 C 211cm 인디애나 페이서스
8 안토니오 데이비스 C 206cm 토론토 랩터스
9 폴 피어스 F 201cm 보스턴 셀틱스
10 레지 밀러 G 201cm 인디애나 페이서스
11 숀 매리언 F 201cm 피닉스 선즈
12 제이 윌리엄스 G 185cm 시카고 불스
13 벤 월러스 C 206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4 엘튼 브랜드 F 203cm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5 라예프 라프렌츠 F 211cm 댈러스 매버릭스

드림팀 최악의 결과. 1998년 그리스에서 열린 FIBA 농구 월드컵에서는 3위에 그쳤던 미국이지만 대학팀 위주로 나갔기에 그럴만 했다. 그러나 2002년 대회는 안방인 미국에서[22]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농구 월드컵였음에도 겨우 6위라는 이 대회 역대 최악의 결과를 맞이해 비난이 속출했다.(우승은 당시 유고슬라비아로 나온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차지했다.)

사실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못하는 선수들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의심의 여지없는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냐 하면 그건...특히 라프렌츠는 커리어 하이가 2001-2002시즌 댈러스로 트레이드 되기 전 덴버에서 기록했던 14.9득점에 7.4리바운드에 불과한 선수였다. 당시 워낙 센터 기근의 시대여서 센터자리에서 저 정도 성적이면 괜찮은 거긴 한데...

이때 선수들의 네임밸류 및 종합적인 실력은 NBA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시작한 이후 단연 최악이었지만 사실 올림픽 출전 국가들 중 선수들의 면면만 따지고보면 이때도 단연 최강이었다. 2004년에 미국을 관광시킨 아르헨티나의 마누 지노빌리도 따지고 보면 당시 NBA 올스타 수준이었을 뿐인데, 2002 라인업에서는 올해의 수비수(벤 월러스)에다가 바로 직전 시즌에 올스타에 뽑힌 선수만 네 명(배런 데이비스, 폴 피어스, 엘튼 브랜드, 저메인 오닐)에 아직 실력이 있던 베테랑 레지 밀러에 올스타에 준하던 안드레 밀러, 마이클 핀리 등도 있었다. 실제로 NBA에서 주전급으로 뛸 정도면 유럽 상위 리그에서 스타급이란 걸 생각하면 개개인의 실력만 보면 어떤 유럽의 강팀도 이 팀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또한 웬만한 유럽 강호라도 NBA급 선수들은 팀의 에이스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주축이 되는데 이 팀은 팀내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도 당연히 NBA급이다.

문제는 다른 국가대표팀은 청소년 시절부터 매번 비슷한 선수들이 소집되기 때문에 서로 손발도 잘 맞고, 비시즌 중이라 짧은 기간이지만 단체 훈련도 빡세게 해서 조직력이 상당히 좋다. 그런데 미국은 스타들이 모이는 특성상 단체 연습을 빡세게 시키기도 애매하고 이때만 해도 2회 이상 출전자가 드물 정도로 매번 거의 다른 멤버들이 모였다. 실제로 올스타전같은 경우에도 실상 뽑히는 선수들이 매번 뽑힘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술이 없다시피하다보니 선수들의 엄청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경기력 자체는 높지 않다. 열심히 안하는 탓도 있겠지만....초반에 선수들이 어이없는 수비와 턴오버쇼를 선보이다가 후반돼서 슬슬 빡세게 해서 승부가 나는 게 거의 패턴이 될 정도...근데 사실 빡세게 할 때도 자세히 보면 개인 플레이에 의존하지 팀 전술을 보이는 경우는 없다. 예외는 2006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경우처럼 조직력으로 유명한 팀의 멤버들이 4명이나 뽑혀 한꺼번에 기용됐을 때 정도.

농구는 조직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 조직력에서 딸리다 보니 미국은 표면상 실력보다 활약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전까지의 대표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실력이 엄청나게 차이나서 무난히 이겼는데, 2002년부터는 그렇게까지 엄청난 스타들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술 이행 능력이 딸리니 이 참사가 난 것. 그래서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코비 브라이언트(좀 늦게 합류한 편) 등이 주축이 된 이후론 2회, 3회 참가자들도 흔히 나오고 팀 훈련도 이전보다 훨씬 빡세게 하는 편이다.

그래도 농구 국제대회로서는 최고 권위 대회인 2년 후 개최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이 흑역사를 극복하고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하지만 2년 후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한 흑역사가 탄생하고 만다.

2.10. 2003년

  • 참가 대회: 2003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 푸에르토리코
번호 이름 포지션 신장 소속팀
4 앨런 아이버슨 G 183cm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5 제이슨 키드 G 193cm 뉴저지 네츠
6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G / F 201cm 올랜도 매직
7 저메인 오닐 C 211cm 인디애나 페이서스
8 빈스 카터 G 198cm 토론토 랩터스
9 닉 콜리슨 F 206cm 시애틀 슈퍼소닉스
10 마이크 비비 G 185cm 새크라멘토 킹스
11 케년 마틴 F 206cm 뉴저지 네츠
12 레이 앨런 G 193cm 시애틀 슈퍼소닉스
13 팀 던컨 F 213cm 샌안토니오 스퍼스
14 엘튼 브랜드 F 203cm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5 리처드 제퍼슨 F 203cm 뉴저지 네츠

결승에서 미국 대표팀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106대 73으로 꺽고 대회 전적 10승 무패로 통산 5번재 우승을 차치한다.

2.11. 2004년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앨런 아이버슨 G 183cm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5 스테판 마버리 G 185cm 피닉스 선즈
6 드웨인 웨이드 G 193cm 마이애미 히트
7 카를로스 부저 F 206cm 유타 재즈
8 카멜로 앤서니 F 203cm 덴버 너기츠
9 르브론 제임스 F 203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0 에메카 오카포 C 208cm 샬럿 밥캣츠
11 숀 매리언 F 201cm 피닉스 선즈
12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F 208cm 피닉스 선즈
13 팀 던컨 C 213cm 샌안토니오 스퍼스
14 라마 오돔 F 208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5 리처드 제퍼슨 F 201cm 뉴저지 네츠



2002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 이은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최대 흑역사이자 농구판 미네이랑의 비극에 가까운 사건이다. 이는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하며 동메달을 차지한 부분도 있지만 2000년부터 지적된 높이 부족, 외곽 부족, 로스터 밸런스 붕괴, 기대했던 스타 선수들인 팀 던컨앨런 아이버슨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의 경기력 부진 등 문제점들이 한 개가 아닌 여러 개가 대회 내내 지적되면서 어떻게 보면 2002 FIBA 세계 선수권 대회보다 더 흑역사로 평가하는 팬들이 많다.[23] 동시에 팀 던컨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2000년대 초중반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라는 역대급 팀의 에이스로 두번의 정규 시즌 MVP, 세번의 파이널 MVP를 수상하며 소속팀을 다섯 번의 우승으로 이끄는 등 NBA에서도 손꼽히는 완벽한 커리어를 자랑하지만,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 대회 금메달이 없다는 점은 올해의 수비상이 없다는 점과 더불어 커리어의 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거기에 이 대회 내에서의 던컨의 활약도 8경기동안 경기당 12.9 득점, 9.1 리바운드, 1.6 어시스트, 0.0 블록, 첫번째 경기에서 7턴오버를 기록하는 등 기대에 걸맞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2점 적립이라거나 상대를 지워버리는 수비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앨런 아이버슨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단신인 183cm에 해당했지만 화려한 드리블과 스피드, 힙합 스타일로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까지 NBA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슈퍼스타 중 하나이자 2001년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지만 이 대회에서는 본선 8경기에서 13.8점 1.8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야투율은 37.8%로 초라한 편이었다.[24]

결국 2년전 세계 대회 비난에 이어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덜미를 잡힌 미국은 리투아니아를 제치고 동메달을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우승은 아르헨티나가 했다.

또한 당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NBA 감독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NCAA와 NBA 우승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대회 직전 2003-04 시즌에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NBA 챔피언에 등극하게 만든 NBA 역사상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래리 브라운이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드림팀을 결성한 이래로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그에게도 이 대회는 감독 커리어의 최대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거기에 당시 이 대회 대표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이끈 그렉 포포비치였는데 이후 4강에서 스퍼스의 에이스이자 아르헨티나의 농구 영웅인 마누 지노빌리가 이끈 아르헨티나 농구 국가대표팀에게 패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드러난 게 원인이었었는데 위에서부터 보면 2000년부터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난다. 바로 높이 부족. 2004년의 경우 센터를 볼 사람이 사실상 팀 던컨 단 한명이었고(아직 데뷔도 안한 오카포는 쩌리로 거의 뛰지 않았다) 던컨이 파울트러블에 걸리면 골밑은 무주공산이 되기 십상이었다.

당시 센터진은 던컨, 오카포에 파워 포워드진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라마 오돔, 숀 매리언이었는데, 스타더마이어는 2004-05시즌부터 센터로도 뛰지만 이때는 순수한 포워드에 가까웠고 오돔과 매리언은 둘 다 원포지션이 스몰 포워드인 선수들이 파워 포워드로 뛰는 케이스였다. (다만 오돔은 빅맨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해줬다) 게다가 스타더마이어는 골밑 공격에선 짐승이었지만 수비에선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카를로스 부저 역시 공격력과 리바운드는 좋았지만, 수비는 커리어 내내 약한 편이었다. 즉, 골밑 수비가 제대로 되는 선수가 던컨 딱 한명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외곽이 빵빵한 것도 아니었다. 이는 두 번째 요인으로 평가받는 점으로 스몰 포워드진의 경우, 르브론 제임스카멜로 앤서니 둘 다 당시 이미 NBA에서 20점 이상 득점하던 수준급 득점원이었고, 르브론은 심지어 다재다능한 스윙맨의 상징인 20점 5어시스트 5리바운드를 찍었고 카멜로는 루키 시즌 기량만 보면 그보다도 더욱 완성되어 있었으나 둘은 너무나도 어리고 경험이 없었다. 카멜로와 르브론은 팀 내 득점에서 각각 뒤에서 두번째, 네번째였으며 (2.4점 5.4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수비에서도 극히 평범한 활약을 했다.

3년차 시즌을 이제 마친 리처드 제퍼슨은 준올스타급이라고 할만한 좋은 선수였지만, 르브론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활약을 했을 뿐이었다. 슈팅가드 드웨인 웨이드 역시 루키시즌을 갓 마친 선수로 아직 기량이 만개하기 전이었다.

게다가 마버리, 아이버슨이라는 PG 라인은 실력은 좋으나 올스타전에나 어울리지 둘 다 볼욕심이 많은 선수라 다른 선수들을 살려줘야 하는 PG에는 안 어울린다. 실제로 아이버슨은 슈팅가드로 뛰었을때 위력이 극대화되었으며 마버리는 재능대비 가장 아쉬운 커리어를 보낸 선수 중 하나다. 사실 두 선수 모두 뛰어난 실력자들이므로 이 선수들을 중심으로 강팀을 꾸릴 수도 있다. 아이버슨은 실제로 그렇게 해서 우승 직전까지 갔었고. 그러나 이 팀처럼 공격재능이 넘쳐나는 팀에서는 PG가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데 이 두 명은 둘 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프리롤을 줘야 공격하면서 살아나는 스타일이다. 문제는 01식서스처럼 이타적이고 팀플레이가 능한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서 아이버슨만 중점적으로 살려주면 모를까, 자기 위주로 공격을 하는 온볼플레이어들을 데려다놓았으니 손발이 맞을래야 맞을 수가 없다. 다만 손발이 끔찍하게 안 맞긴 했지만 득점력이 뛰어난 아이버슨과 마버리는 던컨과 더불어 그나마 제몫을 해준 몇 안되는 선수였다.

골밑 수비보다도 더 큰 문제가 바로 외곽 수비다. 로스터 구성 자체가 굉장히 무리수였다. 당시 쓸만한 센터가 없는 한계상 던컨을 제외한 다른 한 자리는 포워드들로 메웠다. 그런데 골밑존재감이 있는 포워드가 없다보니(최강 센터였던 오닐, 센터소화가 가능한 포워드 가넷 등은 모두 이미 금메달리스트들이라 출전을 고사했다) 질보단 양으로 포워드들만 7명을 뽑았고, 그나마 원래 포지션이 포워드인 던컨과 오카포까지 하면 포워드를 무려 9명이나 뽑은 것이다. 가드는 세명, 심지어 듀얼가드인 웨이드와 수비 약한 아이버슨과 마버리이다. 이 따위로 밸런스가 엉망인 로스터이니 잘 될리가 없던 것. 이걸 축구로 비유하자면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아드리아누라는 네 명의 공격 자원을 너무 무리하게 돌려 중원과 수비 밸런스가 망가져 대회 내내 좋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인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 비슷한 케이스다.

골밑은 그나마 팀 던컨이라는 뛰어난 수비수 한 명이라도 있지, 외곽은 좋은 수비수가 전무하다. 아이버슨은 스틸의 귀재였지만 좋은 수비수였던 적은 없으며, 마버리 역시 평범한 수비수였다. 카멜로, 제퍼슨 둘 다 평이한 수비수이며, 훗날 좋은 수비수로 성장하는 르브론 역시 이때는 아직 수비력이 무르익기 전이었다.

그나마 매리언의 수비력은 좋은 편이었지만, 이 라인업의 문제는 작고 재빠른 수비수들에 대한 수비가 전혀 안 되었다는 것.[25] 실제로 이들의 대회 첫 경기였던 푸에르토리코전에선 작고 재빠른 가드 카를로스 아로요가 24점을 넣은 것을 포함해 상대팀의 가드진 세명에게만 도합 57점을 얻어맞았으며, 패배한 리투아니아와의 예선전에선 가드 사르나스 자시케비시우스에게 28점, 동메달 결정전에선 아비다스 마치아우스카스에게 24점을 허용했다.

아무튼 높이 문제는 2000년부터(정통 센터가 언더사이즈인 모닝 하나) 계속되었는데 2008년 리딤팀 역시 워낙 최고의 선수들이 있어 무난히 우승은 했지만 센터진의 세기가 약해 중국의 야오밍이나 스페인의 가솔 형제같은 골밑에 고생을 했다. 이는 2000년대 이어 계속된 센터 기근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멤버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국제 대회는 물론 프로 경험을 거친 선수들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원조 드림팀인 1992년 드림팀의 경우 3/4이상이 NBA 경력이 7년에서 10년 이상이 된 멤버들이다.[26] 여기에 레이트너를 제외한 로빈슨과 피펜 역시 최소한 4,5년을 뛴 베테랑에 실력 역시 명예에 전당 급을 갖추고 있다. 1996년 팀을 봐도 바클리, 올라주원, 스탁턴, 말론, 로빈슨, 피펜, 밀러, 리치몬드 등 절반이상의 베테랑으로 구성되어있고, 여기에 역대급이라 불리는 오닐, 페이튼, 페니, 그리고 힐이 함께 한 것이다.[27] 게다가 불안의 전초전이라는 2000년까지 어느정도 비록 네임벨류는 위 둣팀에 비해 한참 떨어지지만 절반 정도가 베테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28]

그런데 2004년 팀을 보면 그런 베테랑의 존재가 거의 없다시피하며 무엇보다 이전 대회들과는 달리 올림픽 농구를 경험해본 멤버가 한 명도 없었다. 하다못해 2000년 팀도 게리 페이튼이 1996년 드림팀과 함께 메달을 딴 경험이 있었으며, 스티브 스미스알론조 모닝이 1994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여해서 우승을 거둔 경험이라도 있다. 그런데 2004년 팀은 팀의 멤버들 중 이런 국제 대회 경험을 한 멤버가 하나도 없으며 충분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으로 볼 수 있는 선수들이 8년차 아이버슨, 마버리 그리고 7년차 던컨 뿐이다.[29] 매리언, 오돔은 1999년 데뷔한 선수들로 막 5년 정도를 채운 선수들이었으며, 제퍼슨은 2001년 데뷔로 3년차, 부저, 아마레는 소포모어를 간신히 넘긴 2년차 그리고 나중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되는 웨이드, 제임스, 앤써니 역시 이제 막 NBA 한 시즌을 끝낸 루키들에 불과했다. 이런 경험 부족한 선수들을 제대로 된 리더도 없이 내보내니 불안하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때 금메달 팀이었던 아르헨티나는 그렇다고 쳐도, 대표팀의 경기력 자체가 대회 내내 형편없었다. 가장 큰 충격은 조별 예선 1라운드에서 푸에르토리코에게 대패한 것이었다. 당시 푸에르토리코는 NBA에서 뛰는 카를로스 아로요가 뛰어난 활약을 보이긴 했지만, 아로요는 어디까지나 NBA에서 백업 가드였고 미국같은 올스타 팀을 상대로 미쳐 날 뛸 레벨의 선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푸에르토리코는 8강에서 탈락하고, 5, 6위 결정전에서 그리스에 패해 대회 6위에 그친 팀이었다. 이런 팀에게 19점차 관광을 당한 것이다.

미국은 2차전에서 대회 5위인 그리스에게 겨우 6점차 승리를 거두고, 다음 경기에서 예나 지금이나 국제무대에선 지극히 평범한 전력의 호주를 10점차로 꺾는다. 4번째 경기에선 리투아니아에게 4점차로 예선 2패째를 안으며, 5차전 앙골라를 상대로 대회 유일한 대승 (36점차)를 거둔다. 8강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8점차 승리한 미국은 다음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탈락, 동메달 결정전에서 리투아니아를 상대로 겨우 설욕하면서 노메달 굴욕을 피하게 된 것이다.

대회 통틀어 미국이 거둔 성적은 5승 3패이며, 득실점차가 +4.6점에 불과했다. 그나마 앙골라를 상대로 거둔 대승을 빼면 득실점차가 +0.1점에 불과한, 미국으로선 말 그대로 대굴욕이었다.

또한 2004 아테네 올림픽 농구에서 실패한 또다른 이유는 테러 관련 위험도로 인해 불참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부재도 많은 농구팬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본래 코비는 참가 의사를 밝혔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관련 때문에 불참을 하게되었다. 물론 총체적 난국을 코비 한명이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당시 리그 최고의 가드 수비수였던 그가 있었다면 상대팀 가드들의 폭주는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했을 것이며, 나이는 젋어도 NBA에서 이미 8년을 뛴 그는 팀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험 면에서 큰 보탬이 됐을 것이다. 또한 득점왕급 득점원이 외곽에 있으면 인사이드의 던컨 입장에서도 숨통이 트여 더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1년 전만 해도 대표팀에 있었던 NBA최고의 포인트가드 제이슨 키드가 빠진 것도 아쉬운 부분. 멤버들 대부분은 경험이 없는 반면 운동능력이 뛰어났는데,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키드가 있었다면 이들을 잘 활용했을 것이다.[30] 더군다나 이때 올림픽 멤버들도 테러위협 때문인지 정상 컨디션도 아니었다.

2.12. 2005년

  • 참가 대회: 2005 FIBA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 도미니카 공화국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타이어스 에드니 G 178cm 로토마티카 로마
5 마르케 페리 G 185cm 올림피아코스
6 린 그리어 G 185cm 폼페아 나폴리
7 찰리 벨 G 193cm 밀워키 벅스
8 알렉스 스케일 G 191cm 서울 삼성 썬더스
9 탕 해밀턴 F 201cm 페이엣빌 패트리어츠
10 론 슬레이 F 203cm 애슈빌 앨티튜드
11 아담 첩 C 208cm 울산 모비스 피버스
12 노엘 펠릭스 C 206cm 토크 엔 텍스트폰 팔스
13 애런 맥기 F 203cm 부산 KTF 매직윙스
14 제롬 비즐리 C 208cm 수폴스 스카이포스
15 크리스 랭 C 211cm 카페 맥심 버투스 볼로냐

미국은 캐나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파나마와 본선 A조에 편성되었는데 브라질과 파나마를 꺾었으나 캐나다한테 대패를 당하고 미국보다 한 수 아래인 베네수엘라한테 패하는 망신을 당하며 2승 2패 A조 3위로 8강 그룹에 직행하였다. 8강 그룹에서는 개최국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우루과이를 이겼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푸에르토리코한테 패했다. 8강 그룹에서 4승 3패로 3위를 기록하며 4강에 진출하였다. 4강에서는 브라질한테 패하며 3•4위전에 직행하였으나 또 베네수엘라한테 발목을 잡히며 4위로 대회를 마감하였다

2.13. 2006년 - 리딤팀

  • 참가 대회: 2006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일본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조 존슨 G 201cm 애틀란타 호크스
5 커크 하인릭 G 191cm 시카고 불스
6 르브론 제임스 F 203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7 앤트완 재이미슨 F 206cm 워싱턴 위저즈
8 셰인 배티에 F 203cm 휴스턴 로키츠
9 드웨인 웨이드 G 193cm 마이애미 히트
10 크리스 폴 G 183cm 뉴올리언스 호네츠
11 크리스 보시 F 208cm 토론토 랩터스
12 드와이트 하워드 C 211cm 올랜도 매직
13 브래드 밀러 C 213cm 새크라멘토 킹스
14 엘튼 브랜드 F 203cm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5 카멜로 앤서니 F 203cm 덴버 너기츠

아테네의 수모를 겪은 미국은 듀크대의 명장 마이크 슈셉스키[31][32]를 선임하고, 2003 드래프티로 본격적으로 NBA 스타로 떠오르던 르브론-카멜로-웨이드를 주축으로 세대 교체를 단행한다. 이른바 리딤팀(The Redeem Team)의 출범이었다. 세 선수 모두 이제 막 리그에 데뷔한 시점에서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다가 충격적인 탈락을 함께 맛봤기 때문에 설욕의 주축으로 삼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



2006 일본 세계 선수권의 전초전 격으로 한국에서 열린 비타500 월드 바스켓볼 챌린지에 출전했다. 한국과의 맞대결에서 미국은 충공깽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한국팬들을 충격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특히 이규섭의 와이드 오픈 3점슛을 블락으로 쳐낸 센터 드와이트 하워드의 플레이는 충격 그 자체였다.(본 영상 14분 58초 경)

그리고 시작된 2006 FIBA 일본 세계 선수권 대회. 2년전 충격적인 올림픽 우승 실패를 되갚기 위한 전초전에 나섰고, 준결승까지 전승을 달렸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이번에는 그리스에게 덜미를 잡혀 다시 한번 탈락했다. 그리스의 샤킬 오닐로 불리는 비밀병기 쇼르차니티스에게 골밑을 장악당하면서 그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렇게 미국을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간 그리스도 금메달을 못 따고 결승에서 스페인한테 47-70으로 털렸으니 미국으로서는 더 망신. 그나마 아르헨티나를 3, 4위전에서 이기면서 2년전 올림픽때 설욕을 하긴 했다. 스페인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미국의 거의 유일한 라이벌로 자리매김한다.

원래 미국 대표팀의 계획은 이 대회에서 우승해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하는 것이었지만 무산되면서 다음해에 있는 아메리카 예선(2007 FBIA 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참여해 2위 이상을 확보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2.14. 2007년

  • 참가 대회: 2007 FIBA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 라스베가스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천시 빌럽스 G 191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5 제이슨 키드 G 193cm 뉴저지 네츠
6 르브론 제임스 F 203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7 데런 윌리엄스 G 191cm 유타 재즈
8 마이클 레드 G 198cm 밀워키 벅스
9 테이션 프린스 F 206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0 코비 브라이언트 G 198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1 드와이트 하워드 C 211cm 올랜도 매직
12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C 208cm 피닉스 선즈
13 마이크 밀러 G 203cm 멤피스 그리즐리스
14 타이슨 챈들러 C 216cm 뉴올리언스 호네츠
15 카멜로 앤서니 F 206cm 덴버 너기츠

원래는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에는 NBA 선수들 중 주전 멤버가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33] 리딤팀 계획의 일환이자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진출권 획득을 위해 여러 핵심 멤버가 합류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34] 대회가 미국 네바다주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것 역시 대표팀에겐 쇼케이스 및 자존심 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기에 코비 브라이언트가 새롭게 팀에 합류하면서 활력소가 되었다.

조별 예선 4경기, 8강 4경기에서 평균 39.25득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전승을 거두면서 4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은 4강에서 푸에르토리코에게 135-91,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게 118-81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 리딤팀 결성 이후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아테네에서 미국 대표팀에게 굴욕을 준 아르헨티나를 8강에서 한번, 결승에서 한번 총 두 차례나 짓밟은 점은 팀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거기에 오히려 예선을 한번 더 치르게 된 것이 팀에 전화위복과 같은 이득이 되었는데, 1년전 세계 선수권 대회 탈락 후 슈셉스키 감독을 포함한 코치진이 파악한 문제인 '선수들의 FIBA 룰 적응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

2.15. 2008년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선수 명단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카를로스 부저 F 206cm 유타 재즈
5 제이슨 키드 G 193cm 댈러스 매버릭스
6 르브론 제임스 F 203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7 데런 윌리엄스 G 191cm 유타 재즈
8 마이클 레드 G 198cm 밀워키 벅스
9 드웨인 웨이드 G 193cm 마이애미 히트
10 코비 브라이언트 G 198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1 드와이트 하워드 C 211cm 올랜도 매직
12 크리스 보시 F 208cm 토론토 랩터스
13 크리스 폴 G 183cm 뉴올리언스 호네츠
14 테이션 프린스 F 206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5 카멜로 앤서니 F 203cm 덴버 너기츠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소속팀
감독 마이크 슈셉스키 듀크 대학교 감독
코치 짐 뵈하임 시라큐스 대학교 감독
코치 네이트 맥밀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감독
코치 마이크 댄토니 뉴욕 닉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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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팀의 명성을 되찾겠다라는 구호 아래 NBA 슈퍼스타들을 합숙까지 시켜가면서 조직력을 갖춰서 바짝 준비한 미국. 결국 이전 3개 대회 부진을 씻어내고 금메달 획득에 성공한다.

대회를 앞두고 펼친 5번의 평가전에서 리투아니아, 호주 등을 상대로 평균 118득점, 평균 31점차로 5연승을 거두면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회복했음을 선보였다.

베이징 대회를 앞두고 미국의 약점으로 꼽힌 것은 빈약한 센터진이었다. 팀 내 정통 센터가 드와이트 하워드 뿐인데다, 하워드의 약점은 예나 지금이나 파울트러블이었기 때문. 하지만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 이하 미국의 코칭스탭들은 풍부한 가드-포워드 물량을 활용한 전방 압박을 통해 상대 백코트부터 털어버리는 역발상 전술로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버렸다. 조별 예선부터 4강까지 큰 어려움 없이 7전 전승으로 갈 수 있던 원동력은 단연 미국의 에너지 넘치는 백코트 자원 물량이었다.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만난 홈팀 중국을 101-70으로 완파한데 이어 앙골라, 그리스를 제압하고 코비의 팀 메이트이자 전 시즌 NBA 파이널을 경험한 파우 가솔이 있는 스페인을 37점차로, 디르크 노비츠키가 있는 독일을 49점차로 완파하며 기량을 과시했다.

한편 이때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코비가 스페인과의 경기를 앞두고 스페인 팀의 훈련장을 찾아 가솔과 인사를 나누며 친목을 과시했다가 경기 당일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듯 반쯤 고의로 파울성 충돌을 일으킨 것.[35] 가솔은 이 일에 대해 당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하며 미국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 대회에 나왔는지를 느꼈다고 했다. 르브론과 카멜로 역시 팀 메이트인 상대 선수에게 저런 플레이를 하면서까지 팀 사기를 돋우는 코비의 모습을 보고 대회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했다고 밝혔다.

무난하게 B조 1위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미국은 호주를 116-85(31점차)로 4강에서 다시 만난 아르헨티나를 101-81(20점차)로 완파하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1996년 드림팀 이후 가장 압도적인 성과.

결승 상대로 다시 만난 스페인은 파우 가솔을 필두로 한 센터진과 루디 페르난데즈,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등 재기 넘치는 스윙맨들을 앞세워 미국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특히 호세 칼데론의 부상으로 대신 선발 출장한 17세 초신성 리키 루비오는 키드, 데론, 폴을 상대로 번뜩이는 재능을 보이며 많은 NBA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실제 4쿼터 한때는 미국의 리드가 2점차까지 줄어드는 등 위기를 맞았지만 이후 드웨인 웨이드의 활약으로 점수 차를 유지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코비 브라이언트가 해결사 역할을 해주며, 결국 리드를 빼앗기지 않고 118:107로 승리, 2002년부터 시작된 흑역사를 딛고 전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탈환했다.

14년 뒤인 2022년, 넷플릭스를 통해 이때의 이야기를 다룬 리딤팀 - 다시 드림팀으로가 공개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36]

2.16. 2010년

  • 참가 대회: 2010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터키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천시 빌럽스 G 191cm 덴버 너기츠
5 케빈 듀란트 F 206cm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6 데릭 로즈 G 191cm 시카고 불스
7 러셀 웨스트브룩 G 191cm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8 루디 게이 F 203cm 멤피스 그리즐리스
9 안드레 이궈달라 G 198cm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0 대니 그레인저 F 203cm 인디애나 페이서스
11 스테판 커리 G 191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2 에릭 고든 G 191cm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3 케빈 러브 F 208cm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4 라마 오돔 F 208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5 타이슨 챈들러 C 216cm 뉴욕 닉스

미국이 결승전에서 터키를 만나 81-64로 우승.

2.17. 2012년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타이슨 챈들러 C 216cm 뉴욕 닉스
5 케빈 듀란트 F 206cm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6 르브론 제임스 F 203cm 마이애미 히트
7 러셀 웨스트브룩 G 191cm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8 데런 윌리엄스 G 191cm 브루클린 네츠
9 안드레 이궈달라 F 198cm 덴버 너기츠
10 코비 브라이언트 G 198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1 케빈 러브 F 208cm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2 제임스 하든 G 196cm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13 크리스 폴 G 183cm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4 앤서니 데이비스 C 208cm 켄터키 대학교
15 카멜로 앤서니 F 203cm 뉴욕 닉스

감독 : 마이크 슈셉스키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만나서 107-100로 승리. 결승전 게임 내용은 꽤 접전이었는데 당시 스페인도 파우 가솔, 마크 가솔, 서지 이바카 등 당시 현역 NBA 선수가 5명이 포진되어 있었고 미국이 스페인에 모든 포지션에 우위를 점했지만, 가장 핵심적인 센터진이 밀리는 바람에 드림팀도 나름대로 고전했던 경기. 경기 영상을 찾아보면 스페인이 미국을 앞서던 때도 있었다.[37]

어쨌든 미국이 2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또한 2012년의 르브론 제임스는 1992년 마이클 조던 이후 20년만에 단일년도에 NBA 파이널 우승+정규시즌 MVP+파이널 MVP+올림픽 농구 금메달을 수상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2.18. 2014년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스테판 커리 PG 191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5 클레이 탐슨 SG 201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6 데릭 로즈 PG 191cm 시카고 불스
7 케네스 페리드 PF 203cm 덴버 너기츠
8 루디 게이 SF 206cm 새크라멘토 킹스
9 더마 드로잔 SG 201cm 토론토 랩터스
10 카이리 어빙 PG 188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1 메이슨 플럼리 C 211cm 브루클린 네츠
12 드마커스 커즌스 C 211cm 새크라멘토 킹스
13 제임스 하든 SG 196cm 휴스턴 로키츠
14 앤서니 데이비스 PF 208cm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15 안드레 드루먼드 C 208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올림픽이 아니다보니 르브론이나 듀란트같은 MVP급 선수들은 빠지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역대 드림팀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팀이다. (평균 연령 24.08세)

일단 4강까지 전혀 문제없이 진출했다. 조별 예선에서는 핀란드를 상대로 114-55로 뭉개며 대회 최다 골득실차 승리를 기록했으며 조예선 최종 5전전승에 골득실차가 +166점이나 되었는데 이는 참가국 최다 골득실차였다.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개최국이란 점으로 가장 고전이 예상되는 스페인이 5전전승에 +120점으로 2번째이며 나머지는 +100점을 넘긴 나라가 없기에 4강전 리투아니아전을 이기면 스페인과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되었으나 스페인이 8강전에서 프랑스에게 52-65로 패하면서 일찌감치 탈락해버리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후 리투아니아를 완파하고 결승전에 올라온 세르비아마저 37점차로 박살내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94년 캐나다 월드컵에서 러시아를 46점차로 결승에서 이겨 우승한 미국이 세운 최다 결승 득점차에 이은 2위 기록이다.대회 내내 이렇다 할 위기상황조차 없다시피 했으며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으로 상대팀을 누르며 우승.

사실 당시에는 대부분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어마무시한 전력을 자랑했고, 이후 몇몇 선수들의 기량이 폭발하면서 재평가된 대표팀. 포인트 가드에 스테픈 커리와 카이리 어빙 그리고 슈팅 가드에 클레이 탐슨과 제임스 하든이 번갈아 나오는 가드진은 그야말로 사기다 못해 다소 폭력적으로 보여질 정도였으며, 파워 포워드로 나온 케네스 페리드는 정말 매니멀이라는 별명대로 짐승같은 운동능력을 보여주며 상대방 골밑을 찢다시피 했다. 거기에 스몰 포워드로 더마 드로잔, 파워 포워드로 엔서니 데이비스, 그리고 센터로 커즌스가 나오는 라인업 역시 강력함을 자랑했다. 만약 2012 드림팀의 르브론이나 듀란트가 합류했다면 1992 드림팀에 버금가는 팀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2.19. 2016년


파일:FB_IMG_1471818361235.jpg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지미 버틀러 SG 202cm 시카고 불스
5 케빈 듀란트 SF 211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6 디안드레 조던 C 211cm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7 카일 라우리 PG 183cm 토론토 랩터스
8 해리슨 반즈 SF 203cm 댈러스 매버릭스
9 더마 드로잔 SG 201cm 토론토 랩터스
10 카이리 어빙 PG 191cm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1 클레이 탐슨 SG 200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2 드마커스 커즌스 C 211cm 새크라멘토 킹스
13 폴 조지 SF 203cm 인디애나 페이서스
14 드레이먼드 그린 PF 201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5 카멜로 앤서니 SF 203cm 뉴욕 닉스

폴 조지(인디애나), 케빈 듀란트,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이상 골든스테이트), 드마커스 커즌스(새크라멘토), 카이리 어빙(클리블랜드)이 주전으로 나올 예정이다. 그밖에 카멜로 앤써니(뉴욕)와 카일 라우리, 더마 드로잔(이상 토론토)이 올림픽에 나선다고 전했다. 또한 ESPN의 마크 스타인 기자는 지미 버틀러(시카고)가 대표팀에 합류 소식을 밝혔다. 물론 더 두고봐야 하지만.

언급된 선수들은 모두 대표팀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중국,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와 총 5차례 평가전을 가졌는데, 모두 무난하게 30~50점 차이로 대파해버리며 우승 전망을 밝게 했다.

그러나 막상 본선에 가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약체인 중국이나 베네수엘라는 큰 점수차로 이기긴 했으나 후에 치러진 호주를 상대로 10점차 승리(말이 10점차지 마지막 까지 투 포제션 게임이었다) 세르비아, 프랑스[38]를 상대로 3점차 승리를 했다. 5전 5승을 하긴 했지만 국제대회 지역방어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2대2 수비 또한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드마커스 커즌스는 파울관리가 전혀 안되며 상대 빅맨들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디안드레 조던 역시 크리스 폴과 뛸 때 보다 영향력이 상당히 적다. 그나마 간간히 터지는 카멜로 앤서니케빈 듀란트가 에이스인 상황이다.

결승에서 세르비아를 만나 1쿼터까지 접전이었으나 2쿼터부터 폭발한 케빈 듀란트의 활약에 힘입어 96-66으로 세르비아를 대파하고 올림픽 3연패에 성공했다.

2.20. 2017년

  • 참가 대회: 2017 FIBA 아메리컵 아르헨티나-콜롬비아-우루과이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켄달 마샬 G 193cm 리노 빅혼스
5 빌리 바론 G 188cm 에스키셰히르
6 래리 드류 2세 G 188cm 수폴스 스카이포스
7 레지 윌리엄스 G / F 203cm 오클라호마 시티 블루
8 C. J. 윌리엄스 G 196cm 텍사스 레전즈
9 하비에르 문포드 G 191cm 그린스보로 스웜
10 레지 헌 G 193cm 리노 빅혼스
11 마샬 플럼리 C 213cm 뉴욕 닉스
12 대런 힐라드 F 198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3 자밀 워니 F 201cm 텍사스 레전즈
14 조나단 홈즈 F 206cm 캔턴 차지
15 알렉 브라운 C 216cm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올림픽 3연패에 성공한만큼 미국 대표팀 역시 과거 리딤팀 만큼의 긴장도를 가지지는 않게 되었고 이제 본선 진출권이 달린 대회도 아니게된만큼 2007년 대회와 달리 이전처럼 G 리그나 해외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그나마 시즌 중 조아킴 노아의 부상으로 NBA 데뷔 경험을 가져본 신인 마샬 플럼리 정도가 유일한 NBA 리거였고, 이후 KBL에서 뛰면서 국내 농구팬들도 이름을 알게된 자밀 워니 정도가 국내에 지명도 있는 선수.

물론 FIBA 월드컵이나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리지 않은만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스쿼드를 꾸렸고, 미국이 무난하게 전승으로 우승에 성공했다.

2.21. 2019년

파일:12034db2-e208-4c47-b633-20376987c03a.png 2019 FIBA 농구 월드컵 선수 명단
2019. 8. 24. 발표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데릭 화이트 G 196cm 샌안토니오 스퍼스
5 도노반 미첼 G 191cm 유타 재즈
6 조 해리스 G 198cm 브루클린 네츠
7 마커스 스마트 G 193cm 보스턴 셀틱스
8 해리슨 반즈 F 203cm 새크라멘토 킹스
9 제일런 브라운 F 201cm 보스턴 셀틱스
10 제이슨 테이텀 F 203cm 보스턴 셀틱스
11 메이슨 플럼리 C 211cm 덴버 너기츠
12 마일스 터너 C 211cm 인디애나 페이서스
13 브룩 로페즈 C 213cm 밀워키 벅스
14 크리스 미들턴 F 203cm 밀워키 벅스
15 켐바 워커 G 185cm 보스턴 셀틱스
파일:12034db2-e208-4c47-b633-20376987c03a.png 2019 FIBA 농구 월드컵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소속팀
매니징 디렉터 제리 콜란젤로 [A]
감독 그렉 포포비치 샌안토니오 스퍼스 감독
코치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코치 로이드 피어스 애틀랜타 호크스 감독
코치 제이 라이트 빌라노바 대학교 감독

많은 스타 선수들이 월드컵 참가를 고사했고, 여기에 부상으로 낙마하는 선수들마저 줄이어 결과적으로 올스타 경력의 선수가 단 세 명(브룩 로페즈, 켐바 워커, 크리스 미들턴)에 올-NBA 선수는 단 한 명뿐(켐바 워커)인 최종 엔트리가 완성되며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이번에야말로 월드컵 제패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우려를 입증하듯 대회를 앞두고 2019년 8월 24일 열린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포포비치 감독의 팀원인) 패티 밀스가 30득점으로 폭발한 호주에게 98-94로 무릎을 꿇었고, 국제 경기에서 13년만에 패배하며 국가대항전 연승 기록을 66연승으로 마감했다.

조별리그에서도 불안한 경기력이 계속 이어졌고, 결국 8강에서 프랑스를 만나 79-89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해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순위 결정전에서도 경기력은 여전히 바닥을 쳤는데, 세르비아한테 1쿼터를 무려 7-32로 내주는 대기록을 세우더니 결국에는 89-94로 패배했다. 이후 7, 8위 결정전에서 폴란드에게 87-74로 승리해 역대 최악의 성적인 7위로 마감했다.

아무리 로스터 전원이 NBA 선수들일지라도, 국제무대 우승을 위해선 더 영향력 있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필요함을 증명한 대회였다.

2.22. 2021년

2.22.1. 로스터

파일:2020 도쿄 올림픽 로고.svg 2020 도쿄 올림픽 선수 명단
2021. 7. 16. 갱신
번호이름포지션신장[40]소속팀
4 켈든 존슨 F 198cm 샌안토니오 스퍼스
5 잭 라빈 G 198cm 시카고 불스
6 데미안 릴라드 G 188cm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7 케빈 듀란트 F 211cm 브루클린 네츠
8 크리스 미들턴 F 201cm 밀워키 벅스
9 제러미 그랜트 F 203cm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0 제이슨 테이텀 F 203cm 보스턴 셀틱스
11 저베일 맥기 C 213cm 덴버 너기츠
12 즈루 할러데이 G 191cm 밀워키 벅스
13 뱀 아데바요 C 206cm 마이애미 히트
14 드레이먼드 그린 F 198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5 데빈 부커 G 196cm 피닉스 선즈
파일:2020 도쿄 올림픽 로고.svg 2020 도쿄 올림픽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소속팀
단장 제리 콜란젤로 [A]
감독 그렉 포포비치 샌안토니오 스퍼스 감독
코치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코치 로이드 피어스 애틀랜타 호크스 감독
코치 제이 라이트 빌라노바 대학교 감독
트레이너 제이슨 바일스 휴스턴 로키츠
트레이너 디온 칼훈 댈러스 매버릭스
트레이너 윌 세브닝 샌안토니오 스퍼스

릴라드, 빌[42], 부커, 테이텀, 아데바요 등 새로운 얼굴들이 다수 포진했다.

올림픽 출전이 유력했던 제임스 하든은 NBA 플레이오프에서 당한 햄스트링 부상 여파로 도쿄행이 무산됐다. 케빈 러브의 차출은 의외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2020-21 시즌을 부상으로 통으로 날려먹다시피 했기 때문. 그러나 결국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를 포기하게 되면서 대체 선수로 저베일 맥기가 선발 된다. 빌도 코로나19 이슈가 생기면서 팀을 이탈하게 되어 캘든 존슨이 대체 선수로 선발되었다. 여기에 추가로 2021 NBA 파이널 대진표가 피닉스 vs 밀워키로 결정나면서 부커와 미들턴, 할러데이의 체력 문제 역시 대두되었다.

한편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지미 버틀러, 크리스 폴 등 베테랑 선수들을 비롯해 앤서니 데이비스, 도노반 미첼 등 현역 스타들 역시 차출을 거절해 대표팀을 꾸리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일본에서 좀처럼 통제되지 못하는 코로나19 전파 상황.

2.22.2. 평가전

한국시간 7월 11일에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87:90 충격패를 당했다. 그래도 이 경기까지는 대표팀 소집 후 첫 경기에 상대 3점슛이 너무 잘 터지는 바람에 일격을 당했다고 볼 여지가 있었지만, 7월 13일에 열린 호주와의 친선경기에서도 83:91로 패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 다음 경기인 아르헨티나 108-80으로 대승을 거두었고,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83-76로 승리를 거두며 친선경기를 2-2로 마무리했다.

1992년 드림팀 구성 이후 친선경기 2연패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 아무래도 스코어러 위주로 짜인 로스터에서 리딩 가드의 부재, 답 없는 백코트 수비력, 빅맨진의 낮은 높이 등 약점들이 수없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센터진이 너무 약하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전임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 시절에도 같은 의견이 많았으나 그때는 드와이트 하워드, 타이슨 챈들러 등 믿을만한 정통 센터가 팀 로스터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고, 풍부한 가드-포워드 물량을 활용한 1선 압박을 통해 이 점을 극복했지만 이번에는 센터 자원이 전성기가 한참 지난 러브와 아직 미성숙한 아데바요 둘 뿐이고 포포비치 특유의 느린 템포의 농구가 슈셉스키 시절의 전략과 부조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

브래들리 빌이 코로나 프로토콜에 들어가고 케빈 러브가 고질적인 종아리 부상으로부터 회복하지 못해 두 선수는 최종 낙마가 확정되었다. 대체자는 자베일 맥기켈든 존슨이 7월 16일 선발되었다. 두 선수의 대체 선발 자체를 두고는 논란이 있는 편이지만 확실히 약점으로 꼽히는 골밑 강화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

물론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이들이 연습할 시간이 상당히 적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긴 한다. NBA 파이널이 있는 관계로 할러데이, 부커, 미들턴은 친선경기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고, 그린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이래저래 플레이오프에 뛰었기 때문에 합류가 늦어졌기 때문.

2.22.3. 본선

2021년 7월 25일,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본선 조별예선 A조 1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루디 고베어가 버티는 상대 높이를 이겨내지 못한 채 76:83으로 패했다. 이로서 2019년에 이어 또 패배. 이렇게 되면서 평가전에서 프랑스를 이긴 일본한테 진지하게 질수도 있겠다는 반응도 나오는등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다. 다음날 슬로베니아 대표팀으로 나선 돈치치가 48득점 11리바운드라는 NBA에서도 보기 힘든 역대급 스탯을 찍으며 NBA 스타의 힘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며 더 비교되면서 까이고 있다.

그래도 2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지난 경기에 비해 템포를 끌어 올려 120:66,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점수차로 완승을 거두며 급한 불을 껐다. 팀플레이를 통해 이란 가드진을 와해시키며 지속적으로 외곽 찬스를 만들어 득점으로 계속 연결시키며 프랑스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3차전 체코전 역시 1쿼터 종료 시점에서 7점차로 뒤지는 등 생각보다 어려운 경기를 치렀으나, 케빈 듀란트의 역전 3점슛으로 스코어를 뒤집어 분위기를 바꿨다. 이후엔 테이텀의 활약으로 차이를 벌려 119:84로 대승을 만들어냈고 결국 조 2위로 8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8강에선 C조 2위를 차지한 스페인과 마주하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두 대표팀은 13년전 베이징, 9년전 런던에서 결승에서 만났던 팀이다. 거기다 2년전 스페인은 미국이 충격의 8강 탈락을 했던 바로 그 농구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어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는 평가.

실제로 스페인의 리키 루비오의 맹활약 때문에 경기 한때 10점차 이상으로 밀리는 등 초반 분위기가 좋지 않았으나, 스페인이 반복된 턴오버로 틈을 준데다가 다시 한번 듀란트가 30분 넘게 뛰며 29득점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역전에 성공해 결국 95:81로 승리,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선 아르헨티나를 97-68로 대파하고 올라온 호주와 맞붙게 되었다.

4강전 경기 초반에는 패티 밀스조 잉글스, 마티세 타이불 등 NBA 리거들의 활약으로 15점차까지 밀리며 2004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지만, 2쿼터 후반부터 케빈 듀란트의 찬물샷으로 따라붙기 시작했고 이후 데빈 부커, 잭 라빈, 즈루 홀리데이, 크리스 미들턴 등이 고른 활약을 펼치며 19점차 대승을 거두었다. 2쿼터 중반까지 미국은 첫 3점 10개를 모두 실패하며 최악의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3점슛 18개 중 9개를 넣으며 슛감이 되살아난 후로는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했다. 경기 후반 잭 라빈이 호쾌한 덩크 3번을 연달아 꽂아넣은 모습은 그야말로 백미.

결국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는 프랑스와 슬로베니아 중 승자와 맞붙게 된다. 프랑스는 조별예선에서 미국에 승리를 거둔 바 있고, 슬로베니아는 루카 돈치치가 대회 내내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최근 4번의 올림픽 결승전 중 가장 어려운 결승전이 될 확률이 높다.

프랑스가 슬로베니아를 격전 끝에 1점차로 잡아내며 승리, 미국으로선 결승에서 조별예선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가 생겼다.

결승전 초반에는 앞선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밀렸지만, 이번에는 바로 2쿼터에 역전에 성공하면서 리드를 잡았다. 경기 막판까지 프랑스가 추격해왔지만 미국이 듀란트, 테이텀, 즈루 등의 활약으로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고, 프랑스에서는 조별예선 맞대결 당시 승리의 주역이었던 포니에가 부진하면서 모멘텀을 잡지 못했다. 결국 미국이 87:82로 승리하면서 모든 우려를 이겨내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는 별개로 부상으로 낙마한 케빈 러브와 관련해서 언론과 인터뷰 도중 막말로 물의를 일으켰던 제리 콜란젤로 단장이 대회를 마치고 단장직에서 물러났다. 러브 역시 한 토크쇼에 나와서 콜란젤로를 대놓고 까며 불쾌감을 표했다. #

2.23. 2023년

번호이름포지션신장소속팀
4 타이리스 할리버튼 G 196cm 인디애나 페이서스
5 미칼 브리지스 F 198cm 브루클린 네츠
6 카메론 존슨 F 203cm 브루클린 네츠
7 브랜든 잉그램 F 203cm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8 파올로 반케로 F 208cm 올랜도 매직
9 바비 포르티스 F 208cm 밀워키 벅스
10 앤서니 에드워즈 G 193cm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1 제일런 브런슨 G 185cm 뉴욕 닉스
12 조시 하트 F 193m 뉴욕 닉스
13 자렌 잭슨 주니어 F 208cm 멤피스 그리즐리스
14 워커 케슬러 C 213cm 유타 재즈
15 오스틴 리브스 G 196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올스타급 선수가 단 세명에 불과했던 2019 월드컵 팀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유망주들로 구성된 팀이라 이번에도 우승 탈환에 실패할 거란 예측이 많다. 조별예선 3경기에서는 압승을 거두면서 우려를 씻나했지만 결국 2라운드에서 만난 리투아니아전에서 첫 패배를 당했다.

결국 4강 독일전에서 패하며 이번에도 우승에 실패했다. 이어서 북미 라이벌 캐나다에게 마저 연장접전 끝에 패배하면서 자존심마저 구기는 지난대회 못지않은 굴욕을 경험했다.

많은 면에서 지적사항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스티브 커를 비롯한 코치진이 크게 비판받았는데, 수비자 3초룰이 없고 3점 라인이 NBA보다 짧은 FIBA 룰에서는 빅맨 활용이 매우 중요함에도 무리하게 스몰볼 라인업을 끌고 가는 바람에 상대 빅맨들에게 너무 쉬운 실점을 허용하면서 패배를 자초했기 때문.

커의 전임자였던 포포비치 역시 헤맸던 사례도 더해져 국제대회에는 NBA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겸임시킬 것이 아니라 마이크 슈셉스키와 같은 NCAA 출신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2.24. 2024년 - 디 어벤져스[43]

농구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조롱거리가 되자[44] 르브론 제임스가 마지막 불꽃을 불태워 보자고 커리, 데이비스, 듀란트 등 나이상 마지막 국대가 유력한 선수들과 힘을 합쳐보자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만약 이 '라스트 댄스' 팀이 구축된다면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대표팀 이후로 가장 이름값이 높은 팀이 구축될 것이다. 특히 지카 바이러스 우려가 있었던 2016 리우, 코로나19 확산 문제가 있었던 2020(2021) 도쿄에 비해 대회가 열리는 위치(프랑스 파리) 등에서 한결 나은 편이라 선수들이 합류에 더 적극적일 수 있다.

4월 15일 ESPN을 통해 12명의 로스터중 11명이 확정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

남은 한 자리에는 카와이 레너드, 폴 조지, 파올로 반케로, 미칼 브리지스, 제일런 브런슨 등이 거론됐고, 카와이 레너드가 선발됐다. 그러나 레너드는 올림픽 개막을 보름 앞두고 갑작스럽게 하차 의사를 밝혔다. 미국 대표팀은 성명서를 통해 “레너드는 지난 몇 주 동안 올림픽을 위한 개인 훈련은 물론,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강도 높은 팀 훈련도 소화했다. 우리는 레너드가 경쟁할 준비가 됐다고 느꼈지만, 그는 올림픽 참가보단 남은 여름 동안 시즌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 판단했다.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라고 밝혔다. 미국 대표팀은 하차한 레너드의 자리를 데릭 화이트(보스턴)로 채웠다.
파일:2024 파리 올림픽 로고.svg 2024 파리 올림픽 선수 명단
2024. 7. 10. 기준
번호이름포지션신장[45]소속팀
4 스테판 커리 G 188cm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5 앤서니 에드워즈 G 193cm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6 르브론 제임스 F 203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7 케빈 듀란트 F 211cm 피닉스 선즈
8 데릭 화이트 G 193cm 보스턴 셀틱스
9 타이리스 할리버튼 G 196cm 인디애나 페이서스
10 제이슨 테이텀 F 203cm 보스턴 셀틱스
11 조엘 엠비드 C 213cm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2 즈루 할러데이 G 191cm 보스턴 셀틱스
13 뱀 아데바요 C 206cm 마이애미 히트
14 앤서니 데이비스 C 208cm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15 데빈 부커 G 196cm 피닉스 선즈
파일:2024 파리 올림픽 로고.svg 2024 파리 올림픽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소속팀
단장 그랜트 힐 -
감독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코치 에릭 스폴스트라 마이애미 히트 감독
코치 터란 루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감독
코치 마크 퓨 곤자가 불독스 감독

2.24.1. 평가전

  • 7월 11일 vs 캐나다 - 86 : 72 WIN
    첫 평가전을 승리하면서 기분 좋게 출발한다. 비록 1쿼터 시작 5분동안 단 하나의 야투를 성공하지 못하면서 10점차로 끌려다녔지만, 커리의 3점을 시작으로 야투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2쿼터 중반에 역전한 뒤로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승리했다. 다만 아직은 손발이 맞지 않아 생기는 턴오버와 헐거운 수비, 엠비드의 파울 아웃 등 아직 고쳐야 할 점은 여전히 있다.
  • 7월 16일 vs 호주 - 98 : 92 WIN
    미국 국가대표팀이 이기긴 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그닥 좋진 않았다. 한 때 점수차가 20점 이상 났지만, 3쿼터부터 미국 팀의 경기력이 저하하면서 결국 투 포제션까지 따라잡혔다. 그래도 역전 당하지 않고 리드를 지키면서 승리로 마무리했다. 여전히 많은 턴오버와 수비 문제가 부각됐으며, 특히 엠비드는 두 경기 모두 부진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 7월 18일 vs 세르비아 - 105 : 79 WIN
    경기 시작 전 엇비슷하게 흘러갈 거라는 예상과 달리 미국이 세르비아를 제대로 찍어눌렀다. 1쿼터까지는 동점으로 끝날 정도로 팽팽했지만, 2쿼터부터 점수차가 확 벌어지기 시작했다. 3쿼터에는 상대를 단 13점으로 틀어막았고 이것으로 사실상 경기는 끝났다. 여전히 주전들의 턴오버와 엠비드의 컨디션은 해결해야 하지만, 선수들의 개인 기량으로 26점차 대승을 거뒀다.
  • 7월 21일 vs 남수단 - 101 : 100 WIN
    평가전 최약체라고 평가받는 남수단에게 1점 차 진땀승을 거뒀다. 1쿼터 출발은 좋았으나, 남수단의 3점 폭격과 남수단의 수비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전반을 14점차로 끝냈다. 그래도 3쿼터부터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추격을 시작했고, 결국 커리의 딥쓰리로 역전, 다시 점수차를 벌려나갔다. 그러나 4쿼터 3분 경 남수단이 20초를 남기고 재역전을 하면서 패색이 짙어졌으나, 르브론이 클러치 레이업을 성공시켰고 결국 1점차 승리했다.
  • 7월 23일 vs 독일 - 92 : 88 WIN
    1쿼터부터 엎치락뒤치락한 치열했던 경기였다. 그러다 미국이 벤치 생산력을 앞세우며 벌려나갔고, 주전들도 흐름을 받으면서 전반은 7점차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독일이 무섭게 따라붙기 시작하더니, 미국의 안일한 경기력이 겹치며 3점차로 뒤쳐졌다. 4쿼터는 그야말로 초접전이었으며, 종료 1분 30초를 남기고 양 팀의 점수차는 1점차였다. 이 때 르브론이 3점을 성공하면서 달아나더니, 이후 돌파 성공으로 경기 승기를 잡았다.

케빈 듀란트가 부상으로 결장했음에도, 5번의 평가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미국팀의 최대 강점은 로스터 뎁스로 특히 앤서니 데이비스와 뱀 아데바요가 같이 나오는 투 빅 라인업은 굉장히 위력적이다. 그러나 팬들이 기대했던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으며, 수비나 턴오버 등 문제점들이 눈에 띈다. 그래도 곧 케빈 듀란트가 복귀 예정에, 부진했던 엠비드 또한 독일전에는 살아난 모습을 보인 건 분명 긍정적이다.

2.24.2. 본선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2024 파리 올림픽 선수단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000,#ddd
<colbgcolor=#fff><colcolor=#002b54> 감독 스티브 커
코치 마크 퓨 · 터란 루 · 에릭 스폴스트라
가드 4 스테판 커리 · 8 데릭 화이트 · 9 타이리스 할리버튼 · 12 즈루 할러데이 · 15 데빈 부커
가드-포워드 5 앤서니 에드워즈
포워드 6 르브론 제임스
C
· 7 케빈 듀란트 · 10 제이슨 테이텀
포워드-센터 14 앤서니 데이비스
센터 11 조엘 엠비드 · 13 뱀 아데바요
}}}}}}}}}}}} ||

2.24.2.1. 조별 리그
미국 농구팀은 C조로 세르비아, 남수단, 푸에르토리코와 맞붙는다.
  • 7월 29일 vs 세르비아 - 110 : 84 WIN
    요키치의 세르비아를 상대로 26점차 대승을 거뒀다. 케빈 듀란트가 복귀하자마자 단 16분 출전에 23점으로 폭격했고, 르브론이 21점 9어시 7리바를 기록하면서 뒤를 받쳐줬다. 요키치가 20점 8어시를 기록하면서 분전했으나, 그 혼자서 점수차가 벌어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46]
  • 8월 1일 vs 남수단 - 103 : 86 WIN
    평가전과 다르게 미국엔 듀란트가 있었다. 잠깐 위기에 빠진 순간 릅듀가 벤치에서 나와 경기 분위기를 바꿨고 3쿼터에 다시 흔들렸으나 체급차로 이겨내면서 결국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갔다. 1차전과 달리 엠비드가 나오지 않았고 1차전 나오지 않았던 테이텀, 할리버튼이 나와 무난한 활약을 해줬으나 혼자 EFF 마이너스를 기록한 커리의 심각한 부진이 새로운 문제거리로 떠올랐다. 게다가 커리는 수비에서도 심각한 구멍으로 팀의 약점이 되고 있다.
  • 8월 4일 vs 푸에르토리코 - 104 : 83 WIN
    이 경기를 승리하면서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달성했다. 1쿼터 푸에르토리코 선수들의 외곽슛이 터지면서 4점차로 뒤쳐졌지만 정신을 붙잡고 2쿼터에 16점, 3쿼터에 14점으로 묶어버리면서 가볍게 승리했다. 에드워즈가 26점을 올리면서 팀을 이끌었고, 엠비드가 15점으로 그 뒤를 받쳐줬다.
2.24.2.2. 토너먼트
  • 8강 8월 7일 vs 브라질 - 122 : 87 WIN
    8강 최약체로 여겨지던 브라질을 만났고, 모두의 예상대로 가볍게 승리했다. 전반부터 공수 양면에서 압도했으며, 사실상 이 때 승패가 정해졌었다.
  • 4강 8월 9일 vs 세르비아 - 95 : 91 WIN
    평가전부터 조별리그까지, 두 번의 경기에서 쉽게 승리를 거뒀던 세르비아와의 세 번째 경기이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달라진 전술[47]과 외곽포가 제대로 불을 뿜으며 3쿼터까지 리드당했고, 4쿼터 한때 점수가 15점까지 벌려졌다. 하지만 르브론의 트리플 더블 활약과 그간의 부진을 완벽히 씻어버린 커리의 3점슛 9개 포함 36점 8리바운드 퍼포먼스로 종료 3분 전 역전에 성공하며 4점 차 신승을 거두었다.
  • 결승 8월 11일 vs 프랑스- 98 : 87 WIN
    르브론의 덩크로 득점을 올리며 리드를 시작한 미국 대표팀은 시종일관 점수차를 벌리며 프랑스를 제압했지만 3쿼터 중반부터 프랑스가 점수를 올리며 따라잡는다. 4쿼터 중반 프랑스가 3점 차까지 따라붙은 위기 상황, 슈퍼스타 스테픈 커리의 3점슛이 기가 막히게 4연타로 터지며 승리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더블팀 수비를 피해 고각슛으로 넣어버리는 장면이 묘미.
2.24.2.3. 총평
원래부터 올림픽 농구는 NBA의 슈퍼스타 선수들이 드림팀을 이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농구 팬들에게 놓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꼽히지만, 이번 2024년 파리 올림픽은 어느덧 커리어 후반기에 접어든 NBA의 슈퍼스타들인 르브론 제임스, 스테픈 커리, 케빈 듀란트 등이 미국 국대로서 합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화제가 컸던 대회였다.

최고의 3점 슈터인 커리가 합류함으로서, 이번 미국 대표팀은 3점 슛의 비중을 크게 높인 양궁 농구 전략이 가능해지며 득점력 및 전술의 유연도가 더욱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며, 대회가 시작되자 그 기대는 적중했다. 비록 양궁 농구의 핵심이 되어주어야 할 커리가 8강 까진 부진하며 3점 슛을 제대로 꽂아 넣기 어려웠지만, 4강 세르비아 전부터 커리의 명불허전인 3점 슛이 폭발하기 시작하고 다른 멤버들도 적재적소에 3점 슛을 꽂아넣어주며 국가대표 레벨 경기에서 화려한 3점 슛 축제를 보여주었다. 미국과 금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강팀인 세르비아와 프랑스는 각각 니콜라 요키치빅터 웸반야마를 보유했기에 골밑 싸움에서 미국이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양궁 농구라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정답지를 적어낸 셈이다.

이번 미국 대표팀에서 가장 주목 받은 일명 릅커듀 트리오는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르브론은 메인 볼 핸들러 역할을 맡으며 득점이면 득점, 어시면 어시, 돌파면 돌파 모두 보여주며 농구 도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회 MVP에 선정됐다. 커리는 생애 첫 출전인 올림픽에서 초반엔 부진했으나 가장 중요한 준결승과 결승에서 평균 30점을 넣으며 미국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듀란트는 주로 스크린과 수비를 책임졌으며 팀이 필요할 때는 해결사 역할을 맡았다. 팀 내 가장 나이가 많은 이 세 명이 팀 내 평균 득점 1, 2, 3위라는 것부터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농구 선수로서의 수명이 많이 남지 않은 세 선수이기에,르브론은 50까지 뛰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48] 향후 이 세 선수가 은퇴할 때를 대비하여 앞으로 NBA의 티켓 파워를 책임져줄 스타 선수, 그리고 나날이 거세지는 유럽의 위협에 맞서 미국의 왕좌를 지켜낼 선수를 발굴해야 한다는 무거운 숙제를 남긴 대회이기도 했다.

3. 역대 성적

3.1. FIBA 농구 월드컵

  • 우승: 1954, 1986, 1994, 2010, 2014
  • 준우승: 1950, 1959, 1982
  • 3위: 1974, 1990, 1998, 2006

3.2. 올림픽

  • 금메달: 1936, 1948, 1952, 1956, 1960, 1964, 1968, 1976, 1984, 1992, 1996, 2000, 2008, 2012, 2016, 2020, 2024
  • 은메달: 1972
  • 동메달: 1988, 2004

3.3. FIBA 아메리컵

  • 우승: 1992, 1993, 1997, 1999, 2003, 2007, 2017
  • 준우승: 1989

3.4.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1951, 1955, 1959, 1963, 1967, 1975, 1979, 1983
  • 은메달: 1987, 1995, 1999
  • 동메달: 1991, 2011, 2015, 2019

4. 최강의 드림팀 논쟁

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코비 브라이언트가 "1992년 올림픽 당시의 드림팀 멤버보다 현재 드림팀 멤버가 더 뛰어나다"는 코멘트를 하여 화제가 됐다. 르브론 제임스 등도 "우리 2012년 팀이 이길 것 같다"고 말하면서 떡밥에 불을 붙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마이클 조던찰스 바클리는 그냥 'ㅋㅋㅋㅋㅋㅋㅋ', 래리 버드는 "걔들이 아마 이길 수 있을거야. 내가 은퇴한지 20년 됐고 우린 이제 너무 늙었거든."이라는 말로 확인사살했다. 이에 많은 언론들이 떡밥을 물었으나, 직접적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는 대부분 1992년의 원조 드림팀의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다. 2012년 드림팀은 1992년 드림팀과 비교하면 3번 포지션(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대적으로 열세이다. 가드진에는 사기 캐릭터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이 버티는데다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칼 말론, 찰스 바클리 등이 버티는 골밑과 타이슨 챈들러, 케빈 러브, A.데이비스가 버티는 골밑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평. 단 르브론과 듀란트는 2012년 당시 기준으로도 충분히 드림팀 1기에 뽑힐 수 있는 선수다. 버드의 경우 드림팀 당시 등 부상으로 인해 은퇴 직전의 상태였고, 피펜은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이나 다재다능함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라 피펜이 아무리 수비를 잘한다지만 르브론과 듀란트가 교대로 출장하면 막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1992 드림팀이 우세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그렇다면 만약 2012 드림팀에 그 스테판 커리까지 합류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두고 토론하는 경우도 있다.

샼은 자신이 뛴 1994년 드림팀이 킹왕짱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최강 원조(1992년) 드림팀과 맞붙을 수 있는 팀은 보통 드림팀 3기(1996년)를 꼽는다. 가드진은 몰라도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데이비드 로빈슨, 칼 말론, 찰스 바클리가 버티는 골밑은 확실히 원조 드림팀보다 드림팀 3기가 확실히 우위에 있다는 평이다. 게다가 드림팀 3기에는 당시에도 리그 최고의 선수 마이클 조던이 빠지긴 했지만 드림팀 1기 멤버가 5명이나 있기도 하고 피펜이나 말론은 드림팀 1기 때보다 드림팀 3기 때가 더 전성기였다.

1992 드림팀에서 PG진은 은퇴한지 1년이 지나긴 했지만[49] 1991 시즌에 퍼스트팀에 오른 매직 존슨과 당시 서른으로 개인 기량이 전성기의 존 스탁턴이다. 1996 팀은 파이널에서 조던을 괴롭힌, 비슷한 기량의 스탁턴과 페니 하더웨이, 게리 페이튼이다. 이 경우 1992는 매직급의 선수가 있다는 게 크지만 1996년엔 PG가 세명이고 수비력이 더 좋다는 점이 크기 때문에 우열을 따지기가 애매하다. 굳이 따지면 1996 시즌이 우위. 슈팅 가드의 경우 당해 MVP 투표 1, 2위에 오른 마이클 조던, 클라이드 드렉슬러 vs 레지 밀러, 미치 리치몬드다. 후자에 애도를 표한다.

스몰 포워드는 래리 버드, 스카티 피펜과 크리스 멀린 vs 스카티 피펜과 그랜트 힐인데, 사실 이름값만 보면 전자가 압도적이지만 당시 버드는 몸이 만신창이라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으로 본선 6경기 중 2경기만 뛰었다. 당시 퍼스트팀에 오른 최전성기 크리스 멀린은 무시할 레벨의 선수가 아니다. 공교롭게 멀린과 피펜은 각각 1992년에 올 NBA 퍼스트-세컨팀에 오른 스몰 포워드들인데, 피펜과 힐 역시 1996 시즌에 스몰 포워드로서 나란히 퍼스트-세컨팀에 올랐다. 게다가 썩어도 준치라고 버드란 선수가 하나 더 있는 걸 생각하면 스몰포워드는 (PG와 반대로) 1992년의 근소우위라고 볼 수 있다. 1996 시즌의 경우 1992년의 찰스 바클리, 칼 말론, 크리스찬 레이트너 vs 찰스 바클리와 칼 말론이다. 말론의 경우 위에서 1996년이 더 전성기라고 언급했지만 1992시즌과 1996 시즌 모두 퍼스트팀이었으며 개인 기량의 경우 오히려 만 29세로 젊고 운동 능력이 넘치던 1992 시즌이 앞서면 앞섰지 뒤지진 않았다.

특히 득점력. 수비력의 경우 갑자기 프로 12년차에 수비 퍼스트팀에 오른 걸 보고 "수비력을 각성했나보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말론은 1988년에 이미 수비 세컨팀에 오른 선수이다. 말론은 항상 뛰어난 수비수였지만 최정상급엔 한끗 모자라는 선수였는데, 올 디펜스팀 단골 멤버 데니스 로드맨이 나이가 들어 디펜스 팀에서 탈락하자 그 바로 밑 포워드 수비수들(호레이스 그랜트, 찰스 오클리, P.J. 브라운, 등) 중에서 가장 네임밸류가 높은 말론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의 올디펜스 팀은 포워드진이 다소 약세였는데, 이 덕분에 시즌을 절반이나 날린 스카티 피펜이 1998년 수비 퍼스트에 오르고, 루키 팀 던컨이 데뷔하자마자 세컨팀에 올랐다. 어쨌거나 포인트는 1996 시즌과 1992 시즌 말론의 기량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단골 퍼스트팀 멤버 말론이 1997년에 MVP에 오른 것은 갑자기 기량이 늘어서가 아니라 유타가 프랜차이즈 최다승인 64승을 거두는 등 크게 약진했기 때문이다. 반면 바클리는 1992년이 확실히 뛰어나다.

그는 1993 시즌에 MVP를 수상한 이후 기량이 계속해서 하락했기 때문. 아쉬운 점은 1992년이 더욱 확실한 우세를 잡지 못한다는 점인데, 나머지 한명의 파워포워드 크리스찬 레이트너가 NBA 레벨에서나 좀 괜찮았지 1992년이든 1996년이든 드림팀 레벨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센터진의 경우 슈팅가드진 이상으로 압도적인 1996년의 압도적인 우위이다. 일단 하킴은 유잉보다 뛰어난 선수였지만, 1992시즌에 아직 전성기 범위에 있던 30세의 유잉과 전성기를 찍고 하락세가 시작된 33세의 하킴이라면 백중세다. 애초에 4대 센터는 서로 실력차가 크지 않기도 하고. 1992년과 1996년 모두 퍼스트팀에 오른 데이비드 로빈슨의 경우 실력 차이가 크지 않다. (젊었을 때는 피지컬이, 나이 들어서는 원숙미가 있었다) 문제는 센터가 두명인 1992년에 반해 1996년엔 샤킬 오닐이란 괴물이 하나 더 추가됐다는 것이다. 이로서 센터는 압도적인 1996년의 우세다. 종합해보면 PG진은 1996년의 근소우위, SG는 1992년의 압도적인 우위, SF는 1992년의 근소우위, PF는 1992년의 우위, C는 1996년의 매우 압도적인 우위로 전체적으로 보면 로스터 뎁스나 실력은 비슷해 누가 유리하다고 할 정도가 아니다.

사실 최전성기의 조던과 드렉슬러, 유잉, 바클리 등이 있는 1992팀이 무게감은 확실히 더 크다. 그런데도 1996팀이 비슷한 이유는 1992팀이 로스터 두 자리를 사실상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버드야 선수 생명은 끝났더라도 상징성이 워낙 커서 절대 빼놓을 수 없지만, 유일한 아마추어 자리를 레이트너에게 준 건 정말 아쉬운 선택. 만약 여기에 데뷔하자마자 리그를 경악케한 괴물 대학생 샤킬 오닐을 포함시켜 1996년 샤크와 맞대결을 붙인다면, 물론 NBA 물을 4년이나 먹은 1996년의 샤크가 이제 1순위 지명을 받은 뉴비 샤크보다 훨씬 노련할테니 센터진에서 1996팀의 우세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압도적인 우세까지는 아니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50]

어쨌든 드림팀 3기(1996년)는 스페인과 리투아니아 전을 빼면 다른 경기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이겨버렸다. 예선에서 나이지리아 농구 국가대표팀을 156:73이라는 올림픽 농구 사상 최대 득점 & 점수차로 이겨버렸으며 결국 2회 연속 금메달에 성공했다.

다만 올림픽 본 무대에선 드림팀 1기(1992)가 드림팀 3기(1996)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다. 1992년은 평균 117.2점에 평균 득실 차이가 43.7점차에 달했는데, 1996년은 평균 102점에 득실차 30.5점차에 불과했다. 게다가 강팀들을 상대로 1992팀은 더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1996팀은 4강에서 28점차, 결승에서 26점차로 우승했으나, 1992팀은 4강에서 51점차, 결승에서 32점차를 기록했다. 심지어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32점은 이 대회 최소 득실점차다.

5. 드림팀은 계속될 수 있는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NBA 총재인 데이빗 스턴이 올림픽 농구도 축구처럼 나이 제한을 뒀으면 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더 이상 드림팀을 볼 수 없는 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한 NBA 스타들이 이에 반대하고, FIBAIOC도 반대 의사를 밝히자 스턴도 선수들의 뜻에 맡기겠다며 물러나면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10기 드림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나이가 제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IOC가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스턴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때 드림팀을 먼저 만들자고 하던 인물인데, 선수들 부상이 염려된다는 명분으로 이제와서 드림팀을 그만 보낸다는 건, NBA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FIFA가 막강한 힘으로 IOC를 무시하는 것과 달리, FIBA는 IOC를 무시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IOC와 같이 비판했으며 올림픽 농구로 NBA를 크게 알리곤 이제와서 올림픽에서 빠진다는 반발 및 선수들 비난으로 인해, 올림픽 드림팀은 계속될 전망이다.[51]

그러나 사실, 데이빗 스턴은 1992년 당시 NBA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위와 같은 이유로 막았다. NBA의 슈퍼스타들도 비시즌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적극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다름 아닌 마이클 조던[52]이 스폰서 나이키의 설득과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등 커리어 마지막을 앞둔 대 선배 스타들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어 자진해서 나섰고, 여기에 동조하면서 스턴이 드림팀 출전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 결정은 드림팀의 미디어, 경제적 성공 못지 않게 냉전 종식, 걸프전 승리 등으로 도취한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크게 자극했고, 이후 이어지는 미국 스포츠의 세계화에 신호탄이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앞서 나이키의 설득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이키가 자사 최고의 모델 마이클 조던찰스 바클리를 내세워 올림픽 농구를 대흥행으로 이끌고, 기어이 금메달 시상식에서 당시 대표팀 공식 스폰서 리복의 마크를 가려버리는 앰부시 마케팅의 절정으로[53], 전 세계에 나이키의 이름을 알린 것도 드림팀이 향후 계속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키워주는 요소. 나이키의 NBA 슈퍼스타들은 대다수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슈퍼스타들이고, 이 정도의 스포츠 스타들이 별다른 경쟁없이 유일하게 한꺼번에 출전하는[54] 올림픽 농구는 나이키의 가장 중요한 광고 행사 중 하나이기에 이들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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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2] 다만 이쪽도 유럽쪽 슈퍼스타들이 많아지며 미국과의 격차가 적어져 예전같은 위상은 아니다.[3] 이 경기에서 로빈슨은 19점 12리바운드 2블럭 2스틸을, 사보니스는 13점 13리바운드 1스틸 1블럭을 기록해 기록상으론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나이는 한살 차이에 불과해도) 소비에트 프로리그에서 1981년부터 뛰며 우승을 여러차례 거두고, 10대 시절부터 다양한 국제경험을 통해 1986년 FIBA월드컵(당시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까지 이끌었던 사보니스가 훨씬 노련한 플레이어였기에 로빈슨을 상대로 우세하게 경기를 이끌어갔다.[4] 메달 유망주로 꼽히던 복싱의 변정일이 석연치 않은 패배후 링에서 내려오지 않고 판정에 불복한 걸 NBC에서 희화화해 보도했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졌고, 이에 더해 대회 초반에 이미 일정을 끝낸 미국 수영대표팀이 서울 시내 모처에서 술을 마시다 만취상태로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린 사건까지 일어나서 올림픽 기간 중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었다.[5] 즉시(in a heartbeat) 참가하겠다고 했던 말론은 실제로 1992년에 이어 33세 노장이던 1996년에도 참가해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6] 버드는 74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명문 인디애나에 입학 직후 적응 문제로 자퇴, 이듬해 인디애나 주립대로 갔으나 전학생 규정으로 1학년 시즌인 1975-76시즌을 못 뛰었다. 만약 버드가 인디애나 대학을 정상적으로 다녔다면 2학년 시즌을 마친 직후였을 76년 올림픽엔 당연히 선발되었을 것이다.[7] 올림픽은 4년에 한번 있고 당시 NBA에 데뷔한 선수들은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당시 미국 선수들은 생애 한번 참가 기회가 있었다. 1970년 세계선수권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성인대표팀에 뽑힌 빌 월튼처럼 이론적으로 특급선수가 고등학교 4학년 때 선발되고 4년 후인 대학 4학년 때 선발될 수도 있으니 두번 참가할 수도 있지만,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농구 선수들 중 그런 경우는 없었다. (프로 참가가 허용된 현재는 경쟁력 수준이 넘사벽이라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러다보니 보통 대학생 때 한번 참가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저 셋처럼 적기인데 기회를 한번 놓치면 올림픽 참가 기회는 영영 날아가는 것.[8] 이 당시, 척 데일리가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와 라이벌 관계에 있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이끄는 감독이였던 배드보이즈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조던 입장에서 어느정도 데일리에 대해서도 앙금이 남아있었는데 후일담에 의하면 조던과 데일리 사이의 골프 경기를 통해 서로간의 감정을 해소했다고 전해진다.[9] 물론 미국 대학선발팀들 대회인 NCAA 흥행과 대회수준만 봐도 정말 웬만한 농구 강호 국가 대표팀도 고전할 수준이다. 당연히, 당시 이 대학선발팀도 훗날의 NBA 올스타가 즐비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 웨버, 앤퍼니 하더웨이, 그랜트 힐, 앨런 휴스턴 등[10] 팩트는, 경기가 풀타임 진행된 것이 아니므로 패배라기보다 점수 리드 당한 상태에서 강제 스톱된 것이다.[11] 흥미롭게도 이 경기에서 지게된 건 선수들이 이기적이 아니어서 이타적이어서 졌다는 것이다. 각 팀의 에이스들만 모아놨는데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잘 알기에 경쟁하려기 보다는 너무 서로 양보했다는 것. 스카티 피펜은 "우리는 서로의 자존심을 건들기를 싫어했고 서로의 영역을 건들기를 원친 않았다" 라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런걸 보면 슛을 쏴야할 상황에서 주저하고 다른 동료에게 패스하고 이런식으로 뭔가 주저하는 식의 농구를 했던 것.[12] 척 데일리의 빅 픽쳐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조던은 당시 대학팀의 하드 카운터로 작용할 수 있는 선수였다. 당시 드림팀에서 작은 가드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존 스탁턴밖에 없었는데, 스탁턴은 몸상태가 안 좋아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다. 2미터가 넘는 드렉슬러나 매직이 막는 무리수 미스매치였기 때문에 경기가 제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조던은 저 정도 작고 빠른 선수를 맨투맨으로 봉쇄할 능력이 있었으며,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으로 많은 득점을 쏟아부을 수 있는 선수였다. (조던은 전성기 아이재아 토마스을 플레이오프에서 맨투맨으로 막기도 했는데, 토마스는 드림팀을 고생시킨 바비 헐리보다 득점이나 핸들링이 월등함은 물론이고 스피드도 한 수 위이다) 즉, 지고 있는 경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카드였다. 그런데 그 선수가 거의 뛰지 않았다니 누가봐도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13] 게다가 상술됐듯이 병적인 승부욕의 선수라서 연습경기조차 본선경기보다 더 빡세게 뛰는 선수다.. 아무리 대학선수들과의 연습경기라도 이 양반이 참가하면 혼자서라도 대학선수들을 찍어눌렀을 것이다[14] 실제로 NBA선수들 상당수는 올림픽을 계기로 많이 친해진다. 조던과 패트릭 유잉은 84년 올림픽부터 절친이 되었으며, 유잉과 래리 버드는 92년 올림픽 때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15] 드라젠 페트로비치, 토니 쿠코치가 당시 크로아티아 대표팀 주전 멤버였다.[16] 88 올림픽 우승 당시 아비다스 사보니스를 비롯한 소련 대표팀의 핵심 멤버들이 리투아니아 출신이었다.[17] 그리고 이 기록은 정확히 20년 뒤에 제 2의 조던이라 불린 한 남자가 다시 달성하게 된다.[18] 올라주원은 나이지리아 태생으로, 1993년 4월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19] 1990년대 샤킬 오닐 이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주전 센터였으며 2001년에 NBA 올스타에 한 차례 선정된 수준급 선수다. 이런 선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 정도이니 당시 드림팀의 실력이란게 어떤 것이었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당시 한국 대표팀이 유고슬라비아와 맞붙었다가 63대 118 거의 더블 스코어로 박살났다.[20] 근데 중국은 조6개팀 중에서 4위로 8강 진출을 했으니 최약체는 아니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 이때 중국은 2승이나 했는데, 중국이 이긴 상대들이자 조 5,6위인 아르헨티나와 앙골라는 미국을 상대로 각각 28점차, 33점차로 중국보다 훨씬 선전했다. (중국은 63점차로 박살이 났다) 피지컬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국이 당시 역대 최강 피지컬이었던 미국에게 제대로 호구잡힌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떻게 봐도 1996 드림팀보다 1992 드림팀이 훨씬 더 압도적으로 상대를 이긴 건 맞다. 각각 대량 득점을 한 앙골라전/중국전을 뺀다고 쳐도 1992팀은 40.2점차, 1996팀은 27.3점차로 상대를 이겼다. 1996에서 앙골라전을 뺀다고 쳐도 31.6점차로 1992팀에 비할바가 아니다.[21] 얼마 후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나는 벤 월러스는 이때만해도 완전한 무명이었다. 샤킬 오닐은 96년에 이미 금메달을 딴 이후 출전을 고사하고 있었고, 그나마 뽑을 만한 선수는 블럭슛의 달인 테오 래틀레프 정도였겠지만 래틀레프는 부상이 심할 정도로 잦은 데다가 블록슛 능력에 비해 골밑 존재감이 부족했다.[22] 인디애나 주의 주도인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개최[23] 2002 세계선수권의 경우 위 로스터를 보면 알다시피 선수단의 무게감이 확연히 떨어지는 감이 있다. 미국이 본디 세계선수권(현 농구 올림픽)보다 올림픽을 훨씬 중시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세계선수권 성적이 좀 부진해도 올림픽만큼은 각잡고 준비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전까지 세계선수권에서는 미국이 다회 우승했지만 그동안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실적은 아니었는데, 올림픽에서만큼은 88년 이전까지 (승부 조작 의혹이 있는 72년을 빼면) 전승이었다. 04년 당시에도 스타들이 차출을 거부하는 와중에 MVP 출신 던컨과 아이버슨 등 최대한 뛰어난 기량의 스타들로 로스터를 꾸렸다. 일단 로스터 밸런스라던지 경험 부족 등 여러 폭탄이 있어도 네임밸류만큼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느니, 당시까지만 해도 '그래도 올림픽에서 드림팀이 절대 질리가 없다'는 낙관론이 주류였다. 무엇보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NBA 선수들이 처음 참가하여 금메달을 수상한 이래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모두 금메달을 수상했으니 2004년도에도 드림팀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연지사로 여겼다.[24] 유난히 던컨과 아이버슨에게만 비난이 강한거 같긴한데 저 중에서 가장 네임벨류가 높은 게 던컨과 아이버슨이기도 하다. 실제 저 시기에 던컨과 아이버슨의 위상에 걸맞은 선수는 올스타 출신인 마버리 정도다.[25] 사실 르브론의 덩치를 생각하면 수비력이 뛰어난 전성기 르브론이었어도 이 문제는 커버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수비가 좋아도 2미터가 넘어가면 180cm대 NBA급 포인트가드를 풀타임으로 수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역대 최고의 스몰포워드 수비수인 스카티 피펜과 카와이 레너드도 마찬가지로, 이런 선수들을 수비하는 건 조던처럼 190대 키가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근데 이 팀의 가드들은 전부 당시 기준 수비력이 좋지 못했다. 전성기의 웨이드였다면 저런 가드들을 틀어막는 게 가능했겠지만.[26] 매직, 버드, 드랙슬러, 조던, 바클리, 스탁턴, 유잉, 말론, 멀린[27]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센터 라인은 역대 최강급이다.[28] 스미스, 키드, 휴스턴, 모닝, 하더웨이, 페이튼 등이 있다.[29] 게다가 아이버슨과 마버리가 충분한 리더십을 가진 선수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30] 초창기 운동능력만 있고 기술적으로 많이 어설펐던 리처드 제퍼슨과 케년 마틴을 데리고 결승까지 올라간게 바로 키드이다. 키드가 공을 잡고 있는데 르브론, 카멜로, 제퍼슨, 매리언 등 운동능력 만빵인 스윙맨들이 망아지처럼 뛴다면 정말 어마무시한 위력의 속공을 할 수 있었다.[31] 2004년의 실패 이후 미국 농구위원회는 이름값보다는 FIBA 룰을 잘 이해한 아마추어 무대 감독을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하고자 했으며, 또한 슈퍼스타들을 잘 통솔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지닌 인물을 원했다. 대학 무대의 레전드로 많은 슈퍼스타들의 존경을 받는 슈셉스키가 적격이었다. 게다가 슈셉스키는 그 유명한 드림팀의 어시스턴트 코치 중 한명이었다.[32] 슈셉스키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 출신으로 슈퍼스타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가장 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지도자였다. 만일 이러한 슈셉스키에게 반항하는 슈퍼스타가 있다면, 그는 전미 대중들을 적으로 돌리게 되며 그러한 선수를 대중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다. 슈셉스키를 선임한 가장 큰 이유. 실제로 슈셉스키 부임 이후, NBA에서 성격 안좋기로 소문난 선수들도 국가대표팀만 오면 사고 치는 일이 없었다.[33] 보통은 NBA 선수들이 합류한다하더라도 벤치 멤버 정도 되는 선수들이 합류하고, 대다수는 G리그 내지 아마추어 유망주들로 구성된다.[34] 그도 그럴 것이 이미 2002년 세계 선수권 대회 4강 진출 실패, 2004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2006 세계 선수권 대회 3위라는 미국으로서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들이었다. 거기에 2006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해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진출권 획득에도 실패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2007년 이 대회에서 우승을 2위 이내 입상하지 못하면 미국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진출조차 못할수 있는 재앙과도 같은 사건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NBA 내에서도 2002년 파우 가솔의 외국인 선수 최초 신인왕 수상, 2005년과 2006년 캐나다인 선수인 스티브 내시의 백투백 시즌 MVP 수상, 2007년 디르크 노비츠키의 유럽 출신 선수 최초 시즌 MVP 수상, 토니 파커의 유럽 출신 선수 최초 파이널 MVP 수상을 했다. 실제로 2007녕 파이널은 역대 파이널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였다. 사정이 이랬으니 미국 농구 협회와 NBA 사무국 모두 위기를 계속 가질 수 밖에 없었다.[35] 파우 가솔의 팀 메이트라서 대강 전술을 파악하고 있다며 가솔이 마지막 스크린을 세팅하자 그대로 들이받으며 가솔을 밀어 넘어뜨렸다. 당시 당황한 가솔이 쓰러진 채 두리번거리는 것이 이 장면의 킬링 포인트. 당시 대표팀 동료인 웨이드, 르브론, 보쉬도 당시를 회상할 때 경악한 표정을 묘사하며 설명했다.[36] 리딤팀의 주역이었던 르브론과 웨이드가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37] 하지만 3쿼터까지 동점으로 팽팽했던 경기는, 4쿼터 들어 두터운 선수층으로 체력이 남아돌던 미국이 지칠대로 지친 스페인을 몰아붙여 결국 승리한다.[38] 이 경기에서는 4경기 내내 못하던 클레이 탐슨이 터진 게 컸다.[A] 피닉스 선즈의 초대 단장이자 전 구단주. 36년간 피닉스에 몸담았다.[40] 맨발 기준[A] 피닉스 선즈의 초대 단장이자 전 구단주. 36년간 피닉스에 몸담았다.[42] 빌은 캠프까진 참가했다. 그래서 국대 유니폼을 입은 사진은 있지만 정작 나간 국대 무대가 없다.[43] 르브론이 직접 이번 농구 국가대표팀의 명칭은 어벤져스로 확정지었다.[44] 대회 이전 육상 선수인 노아 라일스가 202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후 NBA 우승이 왜 세계 챔피언이냐고 주장하고 NBA 농구 선수들이 이를 황당해하며 드받은 적이 있었던지라 더 회자가 되었다.[45] 맨발 기준[46] 요키치가 코트에 있는 31분 동안 둘 다 똑같이 81점을 넣었지만, 요키치가 없는 단 9분 동안 미국은 23점을 넣은 반면 세르비아는 고작 3점밖에 넣지 못했다.[47] 그 전에 경기와는 다르게 지역방어 및 트윈 타워, 빅맨 스위치 등 다양한 전술을 꺼내들었다.[48] 물론 르브론 역시 대회 이후 인터뷰에서 2028 LA 올림픽을 뛰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49] HIV때문에 급 은퇴하긴했지만 매직의 몸 상태는 정말 멀쩡했다. 드림팀 다큐멘터리를 봐도 버드는 골골대는 게 눈에 띄게 보이지만 매직의 컨디션은 정상 수준이었다.[50] 뉴비라고 해도 샤크는 데뷔와 동시에 24.3점 13.9리바운드 3.5블럭이란 무지막지한 스탯을 찍었다. 리바운드와 블럭은 커리어 하이. 샤크는 데뷔 때부터 300파운드 정도의 묵직한 체격이었는데, 1996 샤크가 파워, 노련미, 기술에서 앞선다면 더 가벼운 루키 샤크는 스피드와 점프력, 체력에서 앞섰다. 96샤크가 더 좋은 선수지만, 야수처럼 움직이던 루키샤크도 1대1 매치업에서만큼은 전혀 밀리지 않는다. 파워에서 근소하게 밀리는 걸 스피드와 점프력으로 커버하니 제독의 경우 1992와 1996이 각기 노련미와 젊음이 서로 상쇄된다고 치고, 33세 하킴과 30세 유잉이 대동소이하다고 치면 두 센터진의 차이는 의외로 상당히 미세했을 가능상이 크다.[51] 사실 축구 월드컵과 농구 월드컵의 위상을 생각 하면 FIFAFIBA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축구 월드컵은 올림픽 축구는 물론 그 어느 리그보다도 위상이 더 높지만 농구 월드컵은 NBA리그보다도 위상이 낮기 때문이다. FIFA의 입장은 오히려 야구의 MLB, 농구의 NBA의 입장과 같은데 MLB의 경우는 실제로 올림픽에 선수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52] 조던 역시 1984년 금메달이 있었기에 굳이 한 번 더 나가야되나?라는 생각에 미온적인 반응이었다.[53] 당시 마이클 조던은 성조기를 몸에 둘러 리복 마크를 가려버렸다.[54] 축구는 규정상 U-23 선수들과 3명의 와일드카드만 나오므로 주목도에서 차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