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콜리슨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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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등번호 4번 | |||||||||||||||||||||||||||||||||||||||||||||||||||||||||||||||||||||||||
팀 창단 | → | 닉 콜리슨 (2008~2018) | → | 영구 결번 |
<colbgcolor=#007ac1><colcolor=#ffffff>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No. 4 | |
니콜라스 존 콜리슨 Nicholas John Collison | |
출생 | 1980년 10월 16일 ([age(1980-10-16)]세) |
아이오와주 오렌지 시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캔자스 대학교 |
신장 | 208cm (6' 10") |
체중 | 116kg (255 lbs) |
윙스팬 | 217cm (7' 1.5")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센터 |
드래프트 | 2003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2순위 시애틀 슈퍼소닉스 지명 |
소속팀 | 시애틀 슈퍼소닉스 (2003~2008)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2008~2018) |
등번호 | 4번 - 시애틀 / 오클라호마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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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서 수비, 스크린, 리바운드를 바탕으로 굳은 일과 성실함을 도맡아 왔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에도 공헌을 하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 신생팀 썬더 최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별명은 Mr. Thunder.[1]2. 선수 이전
아이오와 폴스 고등학교 시절부터 활약을 인정받아 1999년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 선출되었고, 캔자스 대학교에서는 동기생이자 같은 아이오와 주 출신인 커크 하인릭[2]과 함께 듀오를 결성하면서 NCAA 토너먼트 베스트 4[3]에 공헌했다. 대학 생활 마지막 해인 2003년에는 드웨인 웨이드가 이끈 마케트 대학교를 누르고 시라큐스 대학교와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나 신입생 카멜로 앤서니의 맹활약으로 인해 78-81로 패하면서 우승 트로피는 얻지 못했다.[4] 참고로 대학생 신분으로 2002년 인디애나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 대회 대표팀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었다.[5]
3. 선수 시절
2003~2008년까지의 슈퍼소닉스 시절 |
2008-09시즌 | 2017-18시즌 |
이후 2019년 3월 20일에는 구단 관계자들과 가족 등이 모인 가운데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시켰다. 게다가 한때 팀 동료였지만 선더와 껄끄러워진 케빈 듀란트도 현장을 찾아 축하해 주었다. 이날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는 20점 차를 좁히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지만 결국 패배했다.
팀을 지키고 롤플레이에 집중하고 락커룸 리더를 자처했던 이 선수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는데 있어서 단 한건의 이의 제기도 발생하지 않았다. 수많은 관중과 선,후배 선수들의 박수를 받으며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첫번째 영구결번으로 남게 된 인생의 영예를 안았다.
4.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수비형 빅맨으로 꿋꿋이 골밑을 지켰다. 괴물같은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들이 즐비한 NBA에서 그가 대학만큼 활약할 기회는 없었지만 섬세한 스크린, 이타적인 수비와 골밑 싸움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왔기에 오클라호마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였다. BQ도 상당히 좋았던 편이라 언더사이즈였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활약할 수 있었다.콜리슨의 장기는 지능적 수비위치 선점을 통한 공격자 차징파울 유도능력으로 키나 운동능력이 떨어졌음에도 골밑 수비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간 선점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날고기었던 선수들이 평균이하로 전락하는게 NBA인 만큼 그도 전철을 밟나 싶었지만, 특유의 높은 BQ와 이타적인 플레이, 군살없이 정석적인 농구로 현역 시절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믿음직한 선배였으며 락커룸 리더였고 결국 프랜차이즈 최초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러셀 웨스트브룩 역시 닉 콜리슨 같은 선배가 있어 든든하다며 여러차례 공언한 바 있었다.
5. 여담
- 수퍼스타가 아닌 보통의 선수가 NBA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칼럼을 썼다. 괴물같은 재능을 가진 NBA수퍼스타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원문 링크
- 성실하고 이타적인 플레이와 성격으로 오랫동안 OKC 선수단의 라커룸 리더, 보컬 리더로 활동했다. 함께 시애틀에서부터 활약했던 케빈 듀란트가 이적을 마음먹었을 때에도 콜리슨에게만큼은 먼저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 손대범 월간 점프볼 편집장의 '[맨투맨] ‘평균 5.9득점’ 닉 콜리슨이 영구결번 된 이유' 기사가 콜리슨이 가졌던 스탯 이상의 가치를 잘 설명해 놓았다.
- 2012 NBA 파이널에서 맞붙었던 마이애미 히트의 유도니스 하슬렘과 함께 베테랑 보컬 리더의 중요성을 상징한 선수로 손꼽혔다.
[1] 케빈 듀란트가 지어준 별명이다.[2] 시카고 불스에서 주전 포인트 가드로 오랫동안 활동했다.[3] 2002, 2003[4] 슛이 전부 들어가지 못했는데, 특히 자유투가 문제였다.[5] 2003년 5월호 농구잡지 루키에서 2003-04시즌 주목할 대학생 출신 신인으로 무려 카멜로 앤서니를 제치고 가장 먼저 나왔을 정도이니 그만큼 당시 주목도가 상당한 선수였다. 그리고 브라이언 쿡, 다르코 밀리시치 역시 기사에 실렸는데 그 결과는... 즉 제 아무리 NCAA 스타 혹은 NBA 유로 스카우터들이 칭찬을 한 선수들이라고 해도 NBA는 또다른 세계임을 알 수 있다.[6] 2001-02시즌 게리 페이튼이 32번째로 기록한 이후 가장 많았으며, 득점과 리바운드는 1997-98시즌 빈 베이커가 기록한 이후 최다기록을 세웠다.[7] 308경기에 출전했다.[8] 영상 1분쯤에 나오는 Only player from 2003 NBA Draft to never change team 이라는 자막이 그가 왜 오클라호마에서 그토록 사랑받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