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니스 하슬렘의 수상 이력 및 역대 등번호 | |||
{{{#!folding ▼ | |||
2006 | 2012 | 2013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tablebordercolor=#000> | 마이애미 히트 기록 보유자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9a01b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000 | <colbgcolor=#000><colcolor=#FFFFFF> 최다 출장 | 드웨인 웨이드 (Dwyane Wade) - 948경기 (2003~2016, 2018~2019) |
최다 득점 | 드웨인 웨이드 (Dwyane Wade) - 21556점 (2003~2016, 2018~2019) | |
최다 어시스트 | 드웨인 웨이드 (Dwyane Wade) - 5310개 (2003~2016, 2018~2019) | |
최다 리바운드 | 유도니스 하슬렘 (Udonis Haslem) - 5791개 (2003~2023) | |
최다 블락 | 알론조 모닝 (Alonzo Mourning) - 1625개 (1995~2003, 2005~2008) | |
최다 스틸 | 드웨인 웨이드 (Dwyane Wade) - 1492개 (2003~2016, 2018~2019)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 | 마이애미 히트 영구결번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ccac00> No. 1 | No. 3 | No. 10 | No. 23 | No. 32 |
<rowcolor=#f9a01b> 크리스 보시 (Chris Bosh) | 드웨인 웨이드 (Dwyane Wade) | 팀 하더웨이 (Tim Hardaway) |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 샤킬 오닐 (Shaquille O'Neal) | |
<rowcolor=#ccac00> No. 33 | No. 40 | ||||
<rowcolor=#f9a01b> 알론조 모닝 (Alonzo Mourning) | 유도니스 하슬렘 (Udonis Haslem) |
마이애미 히트 등번호 40번 | ||||
팀 제임스 (1999~2000) | → | 유도니스 하슬렘 (2003~2023) | → | 영구 결번 |
<colbgcolor=#000> 마이애미 히트 No. 40 | |
<colcolor=#fff> 유도니스 조닐 해슬럼 Udonis Johneal Haslem | |
출생 | 1980년 6월 9일 ([age(1980-06-09)]세) |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플로리다 대학교 |
신장 | 203cm (6' 8") |
체중 | 106kg (235 Ibs)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프로 입단 | 2002 NBA 드래프트 언드래프티 |
소속 팀 | 샬롱 쉬르 손[1] (2002~2003) 마이애미 히트 (2003~2023) |
등번호 | 40번[2]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전 농구선수로 2002년 데뷔 이후 은퇴 해인 2023년까지 활약했던 명실상부한 히트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별명은 U.D. 빈스 카터와 자말 크로포드의 은퇴로 리그 최고참 선수였다.[3]팀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했기에 본인의 최고 전성기였던 시절 BIG 3 결성과 유지를 위해 소위 말하는 밀당도 없이 자신의 페이컷을 기꺼이 감수했을 정도로 꾸준히 궂은 일을 도맡아 해오며 지역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2.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하슬렘은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마이애미 고등학교 시절 1997년과 1998년에 챔피언쉽에도 이끌었다. 플로리다 대학시절 경기당 평균 13.7 점, 6.7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했고 통산 1,782득점 (플로리다 대학 통산 3위), 831리바운드 (플로리다 대학 통산 10위)를 기록한 괜찮은 포워드로 활약했지만 소위 말하는 언더사이즈 빅맨으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면서 2002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2.2. 선수 시절
플로리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LNB 소속의 샬롱 쉬르 손과 계약해 평균 16.1득점과 9.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미국으로 귀국해 2003년에 열린 마이애미 히트의 서머 리그에서 활약을 인정받으며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
1년차 때는 브라이언 그랜트와 라마 오돔의 백업으로 뛰었으며 리바운드와 수비력을 펼쳐 NBA All-Rookie Second Team에 선출되었다. 2004-05시즌에는 오돔이 레이커스로 이적하자 샤킬 오닐, 캐론 버틀러, 브라이언 그랜트와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얻고 이적하며 파워 포워드로 정착해 나갔다.
2005-06시즌에는 모든 경기에 나갔으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시카고 불스와 대결을 펼쳤으나, 하슬렘이 파울이 아니라고 항의하자 문 마우스피스를 조 크로포드 심판을 향해 던져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크로포드 심판에게 고의적으로 마우스피스를 던진건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팬들과 팀 동료들 그리고 크로포드 심판에게 사과하였다. 그리고 NBA는 이 사건을 검토한 결과, 하슬렘에게 2차전 출장을 정지시켰다. 이후에도 주전 파워 포워드로 출장하여 꾸준하게 수비, 허슬을 보여주며 활약했고, 드웨인 웨이드의 굉장한 활약을 묵묵히 도와 2006 NBA 파이널에서 챔피언인 댈러스 매버릭스를 격파하고 마이애미 히트의 창설 이후 첫 NBA챔피언 획득에 공헌했다..[4]
2006-07시즌에는 샤킬 오닐이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었고 알론조 모닝의 부상도 이어져 가고 있었으나, 하슬렘은 포지션을 센터로 변경하고 평균 12개의 득점과 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2008-09시즌에는 다시 파워 포워드로 뛰게 되었으며, 림프로텍터이지만 리바운드가 약한 저메인 오닐과 골밑 파트너가 되어 히트의 리바운드 리더로 활약한다. 드웨인 웨이드가 득점왕을 얻어내는 등 활약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애틀랜타 호크스에게 패하여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2010-11시즌에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이적한 르브론 제임스와 토론토 랩터스에서 이적한 크리스 보시 그리고 드웨인 웨이드가 재계약을 맺는 데에 성공한 데 이어, 하슬렘도 7월 12일에 히트와 재계약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댈러스 매버릭스와 5년만에 2011 NBA 파이널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복수의 쓴 맛을 보게 된다.
2011-12시즌에는 6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6득점과 7.3개의 리바운드를 정규 시즌에 기록하였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2012 NBA 파이널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만나 2006년 이후 6년만에 두번째 NBA 챔피언쉽을 갖게 되었다. 하슬렘은 플레이오프에서 4.8득점, 6.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2012-13시즌에는 셰인 배티에의 출장기회가 늘어나자 하슬렘은 교체선수로만 나왔다. 11월 21일에 열린 밀워키 벅스전에서는 알론조 모닝이 기록한 4807개의 리바운드 기록을 깨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으로 역대 리바운드 1위를 기록한 드래프트 미지명 선수가 되었다.
2013년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는 3차전과 5차전에서 9개 가운데 8개를 쏘았고, 2013 NBA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만나 7차전 끝에 누르고 히트의 세 번째 NBA챔피언을 얻게 된다.
히트가 결승전에서 패하자, 우는 르브론을 달래고 있는 유도니스 하슬렘.
2013-14시즌에는 54승을 기록하며 4년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2014 NBA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다시 맞붙게 되었으나, 1-4로 대패하였다.
2014년 7월 18일에는 히트와 2년계약을 체결하였다. 2015년 2월 20일에 열린 뉴욕 닉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본인의 첫 3점을 기록하여 111-87로 승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순위권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16시즌부터는 후술하겠지만 경기에 직접 많이 뛰기 보다는 락커룸 리더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20-21시즌엔 아예 한경기도 출장 안할것 같았으나 5월 14일, 초반부터 승기를 잡은 필라델피아전에 교체 출전 2분간 4득점을 기록하고 드와이트 하워드와 언쟁을 벌이다 퇴장당했다(…).
21-22 시즌 코로나로 인해 구멍이 숭숭 뚫린 마이애미 스쿼드에서 강제로 벤치 믿을맨이 되었다(...). 빈말이 아니라 그리 길게 뛰진 못해도 벤치에서 나와주면 나이에 안맞는 허슬과 터프함으로 제 몫을 다하는 중. 이후에는 투웨이 계약자들로 순항하자 다시 라커룸 리더의 소임을 다하는 중.
올스타전이 끝나고 3월 24일, 지미 버틀러와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당시 마이애미는 연패를 당하며 1위수성에 차질을 빚고 있었는데 이때 버틀러의 무리한 수비도박이 먹히지 않으면서 하슬렘과 버틀러의 갈등이 방송에 그대로 타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스포동과 라우리 모두 인터뷰에서
22-23 시즌도 역시 현역 연장을 선택하면서 디르크 노비츠키,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원클럽맨 20년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되었고 이번 시즌 종료 후 현역을 은퇴한다고 했다. 또한 40번 역시 영구결번 될 예정이다.
그리고 23년 4월 9일(현지시간) 펼쳐진 올랜도 매직과의 리그 최종전이자 실질적인 본인의 정규시즌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 무려 24득점을 올리며 화려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 만 4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엘리웁 덩크를 성공시키며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날의 활약으로 기존 빈스 카터를 넘어서서 20+득점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었다.
이후 플레이오프에는 안 나올 것 같았으나 4월 23일(현지 날짜 22일) 밀워키와 치른 1라운드 3차전 가비지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교체투입되어 4쿼터 마지막 2분을 뛰었다. 기록은 무득점에 1 리바운드, 득실마진은 -5를 기록하였다.
이후 8번 시드로 NBA 파이널에 진출해 덴버 너기츠와 맞붙었으나 이미 승부가 결정난 3차전 4쿼터 때 교체 투입되어 뛴 것이 마지막 경기였고 팀은 준우승으로 마무리지으며 현역 은퇴를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분명 NBA 기준으로도 준수한 기량을 보여준 좋은 선수였지만 사실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결코 리그에 큰 족적을 남길 선수는 아니었으나, 출생, 학력, 커리어를 마이애미에서 보낸 성골 마이애미 가이로서[5] 팀의 리더 롤을 맡아 한 팀의 레전드가 된 특이한 커리어의 선수이다.특이하게 롤플레이어임에도 한 팀에만 머무는 행운을 누렸던 선수였다. 스타플레이어들은 가치가 높기 때문에 자기 의사에 따라 팀을 선택하는 게 비교적 자유롭고, 경우에 따라 트래이드 거부 조항을 갖기도 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한 선수의 비중이 절대적인 농구에선 전술의 중심인 슈퍼스타를 잘 보내지 않으려는 경우가 있다. 아예 판을 새로 짜지 않는한. 그러나 롤플레이어들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부품처럼 사고 팔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저니맨들 중 스타급은 샤킬 오닐처럼 본인이 원해서 자주 팀을 옮기거나, 90년대 스타 짐 잭슨처럼 엥간이 운이 없는 선수들 뿐이고 대부분 팀을 자주 옮기는 선수들은 롤플레이어. 저니맨까진 아니더라도 조력자 선수들은 팀내 발언권이 약하고, 옮기더라도 큰 타격이 없기 때문에 최소 몇번은 팀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하슬렘처럼 언드래프티인 선수들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팀이건 '불러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당장 뛰어야 한다. (콜업되자마자 팀에 합류하기 위해 134마일을 미친듯이 폭주해 와 겨우겨우 경기장에 온 션 킬패트릭같은 경우도 있다) 이런 선수들은 한 팀에서 10일 계약하고 짤리고, 다른 팀에서 좀 뛰다가 트레이드되는 등 이 팀 저팀 오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하슬렘은 드래프트 낙방 얼마 후 고향팀 마이애미 히트의 부름을 받아 20년째 뛰고 있으니 꽤나 복받은 셈.
80년생인 하슬렘은 커리어 후반부터는 경기를 거의 못 뛰고 있는데, 그럼에도 사실상 팀 전력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은 하슬렘을 몇년간 데리고 있고 계약을 제시한 것 자체가 프랜차이저이자 팬들에게 사랑받는 팀의 주장에 대한 예우로 볼 수 있다. 가령 하슬렘이 19-20시즌 재계약 소식을 알리며 사장 팻 라일리가 한 말이 "우리 주장이 17번째 시즌을 위해 돌아온 것이 자랑스럽습니다"였다. 사실상 은퇴냐 커리어 연장의 문제지, 오랫동안 주장을 해온 (스타급들이 있을때도 공동 주장) 히트의 상징같은 선수를 팽할 확률은 거의 없다. 이후 다가오는 시즌들에도 다시 재계약을 맺으며 주가가 높아진 '히트 문화'에서도 웃어른이자 라커룸 리더로써 역할을 다 했다.
4. 여담
- 대학은 플로리다, NBA도 마이애미에서만 뛰어온 명실공히 지역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스타성을 비롯한 전체적인 기량이 탑급은 아니다보니 인지도는 높지 않다.[6] 그래도 지역 내 지지도와 근속 기간만 따지면 드웨인 웨이드에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의 성골.
- 장수한 선수계의 한 획을 긋는 중. 그리고 빈스 카터의 은퇴로 현역선수 중 최고참이 되었다.
- 터프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정도로 유명하다. 그 켄드릭 퍼킨스가 가장 터프했던 선수로 주저없이 UD를 꼽았고 그 다음에 드와이트 하워드를 뽑았으며, 본인도 그 성질머리 더러운 케빈 가넷은 '전혀 터프하지 않다'고 당당히 말하고 다닐 정도. 일례로 라스트 댄스 유행 당시, 리처드 제퍼슨과의 인터뷰에서 "분명 조던은 GOAT고 나는 조던을 좋아하지만, 조던이 나에게 그렇게 행동한다면 싸웠을것이다." 라고 당당히 말했던 적이 있다. 이후 21년 니콜라 요키치와 마키프 모리스의 충돌 이후 요키치의 형들[7]이 모리스를 위협하자 전혀 쫄지않고 "마이애미는 나의 도시다. 함부로 굴지 않는게 좋을것이다."라고 맞불을 놓을 정도.
이후 덴버의 마이애미 홈 원정에서는 덴버가 이긴지라 색이 좀 바랬다
- 2014 시즌 이후의 활약상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사실 진짜 활약이 없다시피하여 기록이 없는 것이다(…). 2015-16시즌에 37경기, 이후 해마다 16경기, 14경기, 10경기, 2020시즌엔 고작 4경기로, 4년 연속 평균 9분 미만으로 뛴 선수라 효율로만 따지면 오래전에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워낙 마이애미라는 프랜차이즈에서 큰 무게감을 갖는 존재이기에 활약의 정도만으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상술했지만 하슬렘이 2019-20시즌 재계약했을때 히트 공식 페이지의 기사 제목이 "주장이 돌아온다(The Captain returns)"였을 정도이다. 20-21시즌에도 약 200만달러에 재계약을 맺으며 극진히 대접하는 중. 클리퍼스가 지난 시즌 라커룸 리더의 부재로 침몰한 것을 생각하면 그의 존재감이 히트의 결속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2020년 마이애미가 6년만에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하슬렘은 00년대-10년대-20년대 파이널에 가본 선수 중 하나[8]가 되었다.
- 유도니스 본인은 마이애미의 소액 구단주/프런트가 꿈이며, 의자에 앉아 거드름피우는거 대신 선수들과 뛰며 소통하는 것이 그의 목표라 밝힌적이 있다. 그의 경이로운 몸관리와, 21-22 시즌 코로나로 신음하는 스쿼드에서 쏠쏠하게 벤치활약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마냥 꿈같은 소린 아니다. 실제 2022-23년 현재는 로스터의 한명보다는 오히려 락커룸의 주장 및 고참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사실상 반 코치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4.1. 현역 연장, 영구결번에 대하여
내가 드래프트 된 해 같이 드래프트 된 선수가 이제 둘 뿐이야. 그게 누굴까?
(르브론이 언급되자) 르브론이랑 나랑 03 클래스인건 맞아. 근데 난 대학 2년 나왔어. 그래서 그때 드래프트 되고 지금까지 현역은 루 윌와 나뿐이야.
굉장한 축복이야. 루나 나나 쉬운 길을 걸은 건 절대 아니지. 매해 드래프트된 신인들도 있었고, 부상과 싸워야했어.
(중략)
너희 모두 유도니스 하슬렘 알지? UD에 대한 미친 소리들도 알고?? 왜 아직도 쓰냐느니, 아직도 뛰냐느니 따위말야.
그거알아? 난 그의 팬이야. 왜냐고? 신인들에겐 베테랑이 필요해. UD같은 같은 선수는 신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밀어붙이기 위해서 매일 11시에 연습에 나타나고 매일 8시, 8시 30분까지 체육관에 있다고.
크리스 폴, 피닉스 시절 자신의 농구 캠프에서 베테랑의 가치를 논하며[9]
(르브론이 언급되자) 르브론이랑 나랑 03 클래스인건 맞아. 근데 난 대학 2년 나왔어. 그래서 그때 드래프트 되고 지금까지 현역은 루 윌와 나뿐이야.
굉장한 축복이야. 루나 나나 쉬운 길을 걸은 건 절대 아니지. 매해 드래프트된 신인들도 있었고, 부상과 싸워야했어.
(중략)
너희 모두 유도니스 하슬렘 알지? UD에 대한 미친 소리들도 알고?? 왜 아직도 쓰냐느니, 아직도 뛰냐느니 따위말야.
그거알아? 난 그의 팬이야. 왜냐고? 신인들에겐 베테랑이 필요해. UD같은 같은 선수는 신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밀어붙이기 위해서 매일 11시에 연습에 나타나고 매일 8시, 8시 30분까지 체육관에 있다고.
크리스 폴, 피닉스 시절 자신의 농구 캠프에서 베테랑의 가치를 논하며[9]
앞서 언급된 버틀러와의 갈등 관련 이슈와 더불어 히트 내의 사정을 잘 모르는 라이트 팬들이나 빅3나 웨이드 은퇴 이후에 유입된 신규 마이애미 팬들은 왜 사실상 은퇴수순을 밟은 것이나 다름 없는 하슬렘을 위해 왜 로스터 한자리를 비우냐는 질문이 늘 존재한다. 차라리 그 한 자리 스팟업 슈터라도 넣어야하는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이런 하슬렘에 대한 예외적인 대우는 팻 라일리의 방침과 마이애미 히트 문화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NBA는 특히나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들이 모이는 곳이고 농구라는 종목의 특성 + NBA의 인종구성 특성상 선수들의 에고가 매우 강해서 조금만 잘못해도 라커룸이 선수나 코치와의 갈등으로 통제불능 상태가 되기 쉬운 집단들이다. 당장 브루클린 네츠가 케빈 듀란트, 제임스 하든, 카이리 어빙이라는 네임밸류로는 역대급 빅 3를 결성했음에도 평지풍파를 겪으며 결국 셋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곳에서 팀 컬처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팀에 헌신적이고 강력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리더가 라커룸에 있으면서, 신인선수들을 다독이고 가르치며 중견급 선수들의 불화를 중재하고, 코치에 불만이 있어도 표시를 안내는 선수들의 고민을 대신 들어주고 해결하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라커룸 내 높은 신용을 가진 중재자가 필요하다. 일찍이 90년대만 해도 팀 에이스 1옵션 선수가 상대팀의 거친 수비에 당할 때 찰스 오클리나 릭 마혼같이 나서서 대신 몸빵을 서거나 인포서 역할을 하는 선수가 우대받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샐러리캡 운영의 문제와 국제화, 전국방송화로 그런 선수들의 설자리가 많이 줄었지만 히트에서 하슬렘은 백그라운드나 실적, 인성, 지역사회의 관계등 다양한 측면에서 히트 라커룸 내에서 이 역할을 오랫동안 떠맡았다. 그렇다고 실력이 아주 없다기엔, 르브론-웨이드-보쉬 빅3 시절에도 당당히 주전 파워포워드를 섰던 선수였다. 그렇기에 팻 라일리 사장과 구단은 당장 은퇴후 코치 전업 의사가 없더라도 그냥 존재 자체로도 히트에 필요한 하슬렘을 최저연봉 계약으로 남겨서 라커룸의 팀 문화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NBA 선수들은 공식경기에서 1시간동안 상대팀과 실전을 치르기 위해 그보다 몇배의 시간을 모여서 연습하고 단체행동을 한다. 때문에, 공식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팀의 연습과 단체행동을 위해 필요한 선수도 존재하는 것이다. 공식 경기에 못나오고 벤치를 달구는 선수를 주전자라고 놀리기나 하면 모를수도 있지만, 이 선수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팀원들과의 연습과 단체행동에서 활동하며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주는 플러스가 팀의 보이지 않는 퍼포먼스에 절대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 이런 구조에서 충성심과 허슬로 뭉친 베테랑의 존재는 팀에 큰 보탬이 되기 마련이다.레이커스가 자레드 더들리를, 골든스테이트가 안드레 이궈달라의 부재를 아쉬워한 적이 있었음을 생각해보자.[10]
영구결번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 굳이 기록과 실적만으로 영구결번을 정한다면 썬더의 닉 콜리슨은 애초에 거론 대상조차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슬렘은 우선 히트 프랜차이즈 내 리바운드 순위 1위이고[11] 구단의 3번 우승과 여섯 번 중 다섯번의 파이널 진출 당시의 주요 멤버로 활약한 결과 역시 존재한다.
라커룸에서의 하슬렘의 공헌과 히트 특유의 문화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해보자
1. 히트 컬쳐의 수호자
2. 하슬렘의 은퇴경기 후 인터뷰 전문
2024년 1월 19일, 히트 구단은 공식적으로 하슬렘의 등번호 40번을 영구결번시켰다. 그의 영혼의 파트너 드웨인 웨이드[No.3]는 물론이고 알론조 모닝[No.33], 팀 하더웨이[No.10], 마리오 찰머스[15], 셰인 배티에, 고란 드라기치 등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1] 현 엘랑 샬롱[2] 팻 라일리 사장이 영구결번을 공인하였다.[3] UD가 선수 생활을 시작한 2002년에 제일런 그린이 태어났다![4] 단 이 파이널은 편파판정으로 논란이 많은 편인데 얼마나 논란이 크면 현재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특히나 웨이드가 돌파만 하면 수비하는 선수들은 도대체 왜 파울이나며 격하게 항의 했을 정도... 오죽했으면 필 잭슨이 댈러스의 구단주인 큐반이 그동안 심판들한테 밉보인거 같다며 아리송한 말을 남겼을 정도... 판단은 자유에 맡긴다.[5] 드래프트를 못 받았을 때 잠깐 프랑스 리그에서 뛴 적이 있긴 하다.[6] 이는 팬덤이 팀 단위가 아닌 슈퍼스타 단위로 형성되는 국내 팬덤 얘기이다. 마이애미에서 하슬렘의 인기는 슈퍼스타들에게는 밀리지만, 오랫동안 플로리다에서 뛰어오며 사실상 성골 취급을 받는 홈타운 보이인 만큼 지지도가 상당히 높다. 애초에 기량이 거의 사라진 하슬렘을 방출하거나 트래이드하지 않고 계속 데리고 있고, 굳이 다시 한번 불러온 이유도 그를 팽하면 홈팬들에게 있는욕 없는욕 다 먹을게 뻔하기 때문. 대니 에인지가 셀틱스에서 수많은 토사구팽을 저질렀을때의 반응을 생각해보자.[7] 실제 MMA 선수들이다![8] 다른 선수 중 대표격으로는 한때 그의 동료였던 르브론 제임스가 있다.[9] 여담으로 폴은 1라운드 4픽, 하슬렘은 언드래프티드다. 사실 입단과정은 하늘과 땅 수준으로 난이도 차이가 있었다.[10] 이런 베테랑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때로는 은퇴한 상태의, 혹은 은퇴하려는 베테랑들을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 필 잭슨과 관련된 두 명의 베테랑들이 대표적인데, 96년 시카고 불스에서 잠깐 뛰며 우승을 경험하고 은퇴한 백업 파워포워드 존 샐리는 99년에 복귀해 잭슨이 새롭게 합류한 레이커스에 합류해 4번째 우승을 했다. 당시 샐리는 은퇴한지 3년이나 지나고 몸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레이커스에서 45경기동안 평균 6.7분(플레이오프 4.3분) 뛰며 1.6점 1.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력만 보면 이런 선수한테 플레이오프까지 로스터 한자리를 줄 이유가 없다. 샐리보단 훨씬 실력이 좋았지만(주전 가드였다) 99년에 은퇴하려다가 잭슨이 불러와 레이커스에서 두 차례 더 우승한 론 하퍼도 마찬가지. 실력 면에서 보면 이 둘은 얼마든 대체가능하며, 특히 샐리는 사실 아무 최소연봉급 선수 데려와도 더 잘 뛰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 친화력을 바탕으로 라커룸에서 수치화할 수 없는 공헌을 해주는 선수이기 때문에 데리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프랜차이저로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하슬렘 같은 선수라면 훨씬 더 소중한 존재이다.[11] 알론조 모닝, 드웨인 웨이드와도 격차가 꽤 난다. 그나마 뱀 아데바요가 경신은 가능한데 21-22시즌 기준 이제야 반 정도 따라잡았다.[No.3] 영구결번. 06년, 12년, 13년 우승멤버, 06년 파이널 MVP[No.33] 영구결번. 06년 우승멤버[No.10] 영구결번[15] 마이애미 빅3 시절 주전 포인트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