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맥다이스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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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베스트팀 | |||
| 3rd : 1998-9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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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키스플렌 맥다이스 Antonio Keithflen McDyess | |
출생 | 1974년 9월 7일 ([age(1974-09-07)]세) |
미시시피 큇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앨라배마 대학교 |
신장 | 206cm (6' 9") |
체중 | 111kg (245 lbs)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센터 |
드래프트 | 1995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지명 |
소속 팀 | 덴버 너기츠 (1995~1997) 피닉스 선즈 (1997~1998) 덴버 너기츠 (1998~2002) 뉴욕 닉스 (2002~2004) 피닉스 선즈 (2004)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4~2009)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9~2011) |
등번호 | 24번 - 덴버 / 디트로이트 14번 - 피닉스 34번 - 뉴욕 / 샌안토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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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농구선수. 4대 센터의 커리어 중후반부에 데뷔해서 준척급 빅맨으로 이름을 날렸다.2. 커리어
2.1. NBA 입성 이전
앨라배마 대학교 시절부터 최고의 빅맨으로 군림했으며, 2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를 신청해 1995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LA 클리퍼스에 지명되었다. 그러나 지명 직후 로드니 로저스와 1라운드픽과 맞바뀌어 덴터 너기츠로 트레이드되었다.[1]2.2. NBA 입성 이후
2.2.1. 덴버 너기츠 1기
데뷔 시즌부터 13.4득점 7.5리바운드 1.0어시스트 1.5블록슛이라는 신인치고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안착에 성공했고, 루키 퍼스트팀에도 선정되었다.이후 2년차 시즌에는 팀의 주전 센터 디켐베 무톰보가 애틀랜타 호크스로 떠났고, 팀 성적은 21승 61패로 처참했지만 센터 슬롯에서도 나오며 라폰소 엘리스와 함께 고군분투했다.[2]
결국 리빌딩을 목표로 한 덴버 프런트의 결단으로 3각 트레이드에 맞물려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었다. 대가는 미래 1라운드 픽 3장과 2라운드 픽 2장. 덴버로서는 리빌딩을 위한 슬롯이 맥다이스밖에 없었던 데다, 마침 맥다이스 또한 덴버와 연장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팀의 간판스타 치고는 꽤 속전속결로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3]
2.2.2. 피닉스 선즈 1기
피닉스로 트레이드된 맥다이스는 커리어 처음으로 제이슨 키드라는 엘리트 포인트 가드와 함께하게 된다. 전 시즌 바클리의 이탈이라는 대형 악재에도 나름 선방했던 피닉스 입장에서 맥다이스의 가세는 큰 힘이 되었다. 맥다이스의 개인 기록은 평균 15.1득점으로 다소 하락했지만 56승 26패로 서부 4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고, 맥다이스 또한 커리어 첫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른다.그러나 신인인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의 트윈타워가 이끌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1라운드에서 패배를 당하고 만다. 하지만 맥다이스는 샌안토니오의 트윈타워를 상대로 17.8득점 13.3리바운드 1.0어시스트 1.5블록을 기록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내었다.
2.2.3. 덴버 너기츠 2기
FA로 풀린 맥다이스는 피닉스와의 연장 계약과 덴버로 리턴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덴버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다소 논란이 될 만한 언행이 있었는데, 덴버와 구두계약을 해놓은 상태에서 피닉스와 재계약할 수도 있다고 간을 본 것이었다. 이 때문에 피닉스 시절 동료 제이슨 키드, 렉스 채프먼, 조지 맥클라우드는 맥다이스를 설득하고자 눈보라를 뚫고 덴버까지 날아갔지만, 당시 덴버 사장 댄 이젤의 방해로 맥다이스를 만나지도 못하고 허탕을 쳐야 했다. 이런 잡음 끝에 맥다이스는 결국 덴버와 6년 67.5m의 거대 계약을 체결했다.하지만 단축시즌으로 50경기만 치른 98-99 시즌 14승 36패에 그치며 팀은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하지만 개인성적으로는 커리어하이를 찍었는데, 무려 21.2득점 10.7리바운드 2.3블록 1.5스틸로 엘리트 파워 포워드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올스타에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커리어 처음이자 유일한 올 NBA 팀인 올 NBA 써드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다음 시즌에는 올스타급 가드 닉 반 엑셀이 트레이드로 합류했고, 맥다이스와 엑셀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35승 47패로 전 시즌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맥다이스는 19.1득점 8.5리바운드 2.0어시스트 1.7블록로 전 시즌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지만, 시즌 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뽑혀 금메달을 획득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00-01 시즌엔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선수로 선발되었다. 20.8득점 12.1리바운드 1.5블록이라는 성적은 엘리트 빅맨의 위치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시즌 10경기를 남기고 왼쪽 무릎 부상을 당하며 잔여 시즌 아웃을 당했고, 팀도 끝내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40승 42패로 맥다이스가 온 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01-02 시즌 시작 직전 왼쪽 무릎 인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짐승형 파워덩커로 불리던 그에게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진 순간이다. 시즌 마지막 10경기에는 출전했지만 위력이 확실히 줄어들었고, 결국 덴버는 그를 뉴욕으로 트레이드했다. [4]
2.2.4. 뉴욕 닉스
시즌을 통으로 날렸음에도 뉴욕 팬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다. 그도 그럴것이 맥다이스는 뉴욕에게 있어서 패트릭 유잉 시대 이후 최초로 가지게 된 올스타급 빅맨이었고, 캠비와 잭슨 같은 팀의 주전 센터와 포인트가드는 물론, 간만에 제대로 행사한 상위 드래프트픽으로 뽑은 유망한 신인 네네까지 얹어주는 큰 출혈을 감수하고 데려온 선수였다.그 기대에 걸맞게 02-03 시즌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두 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지만, 두 번째 경기 종료 직전 팁인 덩크 후 착지 과정에서 왼쪽 무릎 슬개골 부상을 입고 또 시즌 아웃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이 부상은 맥다이스의 올스타급 기량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다.
1년이 넘는 재활 끝에 03-04 시즌 12월에야 뉴욕 닉스의 선수로서 첫 출장을 했지만, 18경기간 보여준 모습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8.4득점 6.6리바운드 1.1어시스트라는 롤플레이어 수준의 활약에 그친 채, 실망한 뉴욕의 팬들을 뒤로 하고 포텐을 본격적으로 터트렸던 팀인 피닉스 선즈로 5대3 트레이드로 이적한다.
2.2.5. 피닉스 선즈 2기
피닉스에서는 본인이 컴패리즌으로 뽑혔던 파워 포워드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의 백업으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24경기 동안 평범한 성적으로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한다.2.2.6.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유리몸이었던 그를 데려가려는 팀은 많지 않았고, 디트로이트에 자유계약으로 합류한다. 당시 배드 보이즈 2기에서 벤 월러스, 라쉬드 월러스가 굳건한 주전이었던 만큼 이들의 백업 역할이 기대되었다.그리고 디트로이트가 기대한 백업 빅맨 역할을 그는 충분히 해내었다. 기존의 역동적인 플레이 스타일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플레이 스타일로 변신했고, 이전에도 가지고 있었던 옵션인 미드레인지 슛을 더욱 갈고 닦았다. 스크린, 도움수비, 박스아웃 등을 비롯한 허슬 플레이는 덤이다.
이전에는 1번밖에 밟아보지 못한 플레이오프 무대지만, 디트로이트에서 그는 04-05 시즌부터 08-09 시즌까지 5년 연속으로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우승을 추가하지는 못했지만 팀으로선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영예를 겪은 시기이다.
08-09 시즌 중반인 2008년 11월 3일 천시 빌럽스와 앨런 아이버슨 골자의 트레이드를 통해 덴버에 복귀하지만, 자신을 버린 덴버에 감정이 상한 그는 덴버에서 뛰지 않겠음을 선언하고 웨이브되었다. 결국 디트로이트에 다시 합류하지만, 디트로이트는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에 1라운드 스윕패를 당하고 덴버는 천시 빌럽스와 카멜로 앤서니의 쌍포를 앞세워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한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2.2.7. 샌안토니오 스퍼스
다시금 FA가 된 맥다이스는, 첫 플레이오프 상대팀이기도 했던 샌안토니오에 합류해 팀 던컨의 백업으로 뛰게 되었다. 백업으로 나름 쏠쏠한 활약을 하고 16년 간의 긴 커리어를 마감하였다.3. 플레이 스타일
숀 켐프 등 짐승형 파워덩커의 계보를 잇는 선수로, 역대 파워포워드 중 덩크의 파워풀함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화려한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다.[5]용수철과도 같은 점프력에 힘으로 무수한 하이라이트 필름을 양산했고, 풋워크나 인사이드에서 움직임도 괜찮아 전반적인 득점력이 괜찮았다. 운동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드레인지 점퍼도 쏠쏠했고, 수비도 성실하게 하는 편이었다. 특히 운동능력을 십분 활용한 파리채 블락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01-02 시즌과 02-03시즌 시범경기에서 잇달아 무릎 부상을 당한 후 플레이스타일을 크게 바꾸게 된다.
3년간 52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이후 2년 연속 전경기 출장을 하며 강팀이었던 디트로이트의 핵심 식스맨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 이전의 괴물같은 모습은 더이상 없었지만 스크린, 리바운드, 수비 등 궂은 일을 담당하며 백업 빅맨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4. 여담
현역시절 강해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심성이 착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1] 클리버스는 맥다이스를 보내며 받아온 픽으로 브렌트 베리를 지명했다.[2] 이 성적으로도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고, 정작 1순위 지명권은 데이비드 로빈슨의 시즌 아웃으로 단 1시즌만을 망친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가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팀 던컨을 지명한다.[3] 참고로 이때 받은 1998년 드래프트 지명권으로 덴버가 지명한 선수가 다름아닌 터란 루이다. (지명 직후 닉 반 엑셀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4] 대가는 마커스 캠비, 네네, 마크 잭슨.[5] 후대 선수로는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블레이크 그리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