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류동역 | ||
| | ||
| 연천 방면 개 봉 ← 1.3 ㎞ | 1호선 (144) | 인천 방면 온 수 1.9 ㎞ → |
| 역명 표기 | ||
| 경인선 | 오류동 Oryu-dong 梧柳洞 / [ruby(梧柳洞, ruby=オリュドン)] | |
| 1호선 | ||
| 주소 | ||
| 서울특별시 구로구 경인로20길 13 (오류동 66-10) | ||
| 역 코드 | ||
| 한국철도공사 | 803 | |
| 관리역 등급 | ||
| 보통역 (3급) (부천역 관리 / 한국철도공사 수도권서부본부) | ||
| 운영 기관 | ||
| 경인선 | 한국철도공사 | |
| 개업일 | ||
| 경인선 | 1899년 9월 18일 | |
| 1호선 | 1974년 8월 15일 | |
| 역사 구조 | ||
| 지상 2층 구조, 지상 1층 승강장 | ||
| 승강장 구조 | ||
| 2면 11선 쌍섬식 승강장 | ||
| 철도거리표 | ||
| 구로 방면 개 봉 ← 1.3 ㎞ | 경인선 오류동 | 인천 방면 온 수 1.9 ㎞ → |
1. 개요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 주막 터로 유명했던 곳
오류동역은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철도 시작을 알렸던 경인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하였다. 예로부터 서울로 가는 관문에 해당하여, 특히 주막 터로 유명했던 곳이다. <철도 100년사>에 따르면 오류동역 때문에 최초로 주모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59년 오류동선이 준공된 후 역사 신축과 증·개축을 통해 성장, 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에 따라 새로운 선상 역사로 문을 열고 1986년 증축을 진행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여객 승강장 외에도 화물홈과 야적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현재에는 2층 선상 역사로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개방 통로를 갖추고 지역주민들의 발로 역할하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
수도권 전철 1호선 144번. 서울특별시 구로구 경인로20길 13 (오류동 66-10) 소재.오류동역은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철도 시작을 알렸던 경인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하였다. 예로부터 서울로 가는 관문에 해당하여, 특히 주막 터로 유명했던 곳이다. <철도 100년사>에 따르면 오류동역 때문에 최초로 주모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59년 오류동선이 준공된 후 역사 신축과 증·개축을 통해 성장, 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에 따라 새로운 선상 역사로 문을 열고 1986년 증축을 진행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여객 승강장 외에도 화물홈과 야적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현재에는 2층 선상 역사로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개방 통로를 갖추고 지역주민들의 발로 역할하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
2. 역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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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역사 (1999년 준공) 3번 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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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역사 (1973년 준공, 1996년 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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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대 역사 (1959년 준공)[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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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합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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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 안내도 (크게보기) |
역명이 '오류역'이 아니라 '오류동역'인 이유는 예부터 이 일대를 '오류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는데 일제가 미국으로부터 부설권을 빼앗은 후 경인선의 역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오류골의 '골'(洞)도 한자로 바꾸면서 '오류동역'이 되었다. 1970년대 당시의 전철역 작명 규칙에 의해 '동'이 붙은 제기동역, 신설동역과는 전혀 다른 경우라고 볼 수 있다.[2] 물론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냥 '오류역'이라 불리기도 하고 마을버스 행선지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현재의 역사는 4대 역사로, 1999년 구로~부평 2복선화 때 신설된 선상역사이다. 초창기에는 계단과 휠체어리프트만 있었으나 2009~2010년에 온수역과 함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서 이동이 한층 편리해졌다.[3] 본래 1~3번 출구만 존재했으나 2018년부터 오류동 행복주택 입주에 맞춰 3번 출구 옆에 행복주택과 이어지는 4번 출입구를 개설했다. 또한 4번 출구 바로 앞쪽으로는 선로 위에 위치한 오류역문화공원이 있다.
그전에 쓰이던 3대 역사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할 즈음에 지어졌다가 2복선화 공사 당시 철거되었다. 1호선 개통 전까지 쓰이던 2대 역사는 2층짜리 하얀 건물이었으며, 3번 출구 쪽 주차장에 건물이 남아 있다.
역이 저지대에 있으며 과거에는 바로 옆에 '오류천'이라는 작은 개울이 흘렀다. 그러나 1990년대 2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도로로 복개되었다. 1~2번 출구 앞에 있는 작은 도로가 그 흔적이다. 한동안 이 도로가 주 통행로로 사용되었으나 2008년에 서해안로가 개통하면서 주차장으로 사용하다 일부는 건물, 산책로 등으로 변모하면서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역과 남부순환로 사이에 남아 있던 오류천 나머지 구간도 서해안로 공사와 함께 복개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때문에 장마철 집중호우가 내리면 철길이 침수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 역은 한때 시종착역 역할도 수행하였다. 서울시에서 발간한 서울지하철 30년사(2003)에 따르면 1979~1987년에 이 역에서 시/종착하는 열차가 있었으며 주로 서울지하철공사 차량으로 운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소수의 하행 오류동행이 있었다고 한다.[4] 현재는 구일역 교량 개량공사 때마다 가끔씩 인천발 구로행을 오류동행으로 단축 운행한다.
역 서쪽으로 지선인 오류선이 분기한다. 오류선은 화물철도인 경기화학선과 군용철도인 3군지사선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경기화학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폐선되었고 후자도 2016년을 끝으로 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있다. 90년대 말 서울 지하철 7호선 2차 신규차량 반입 당시 오류선에 있던 연결선로를 통해 천왕기지로 들어갔다.
바로 옆에 코레일 서울장비사업소가 있고 오류선도 분기하여 화물 및 철도 운영 측면에서는 중요한 역이기 때문에 역 구내가 크고 선로도 많다. 과거에는 철도청 중앙보급사무소도 있었는데 행복주택이 들어서면서 중앙보급사무소 건물과 선로가 철거되었다.
반면 승하차객 수는 많지 않은데 남쪽 근거리에 개웅산이 있고, 북쪽에도 멀지 않은 거리에 매봉산이 있어 역세권이 주변 개봉역, 역곡역에 비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인선 원년 6개역[5] 중 종점이자 선로 용량 문제로 급행열차 진입이 불가능한 인천역과 더불어 급행이 정차하지 않는 유이한 역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 구로구 제2선거구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후보로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인제 후보가 부천종합운동장역에서 오류동역까지의 남부광역급행철도 구간을 서부권 광역급행철도(GTX-D)에 연계 추진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하고 선거운동을 벌였으며, 당선에 성공했다. 김인제는 그 후 상임위인 기획경제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게 됐다.[6] 또한 같은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국민의힘 문헌일 구청장도 오류동역에 GTX-B 환승역을 설치하겠다는 유사한 공약을 발표하고 당선됐다.
3. 역 주변 정보
과거 에드몬슨식과 마그네틱 승차권이 쓰이던 시절 승차권을 제조하는 공장이 있었고 행복주택 공사 전까지 건물이 남아 있었지만 현재는 그 부지에 구로문화원과 행복주택이 들어서 있다.백종원의 골목식당 - '오류동' 편이 이 역 근처 일대의 골목에서 촬영되었다.
2013년 5월 20일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발표한 철도부지 행복주택 사업을 실천하기 위하여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행복주택 시범지구에 지정되었다. 2017년 11월 준공을 완료하고, 2018년 4월부터 총 890가구가 입주했다.[7]
3.1. 출구 정보
| | |
| 1 | 금강펜테리움아파트 동인아파트 남부종합상가 우림필유아파트 |
| 2 | 오류2동주민센터 오류2치안센터 서울오류남초등학교 한국교통안전공단(구로검사소) 덕일전자공업고등학교 천왕역환승센터(주차장) 천왕연지마을 1단지 |
| 3 | 오류1동주민센터 오류1치안센터 서울오류초등학교 |
| 4 | 오류동행복주택 구로아트센터 동부그린아파트 |
4.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fff,#1c1d1f><tablebordercolor=#0052a4><bgcolor=#0052a4> 연도 ||
||<bgcolor=#0052a4> 비고 ||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1974년~2009년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1974년 | 8,464명 | |||
| 1975년 | 9,526명 | ||||
| 1976년 | 11,757명 | ||||
| 1977년 | 14,635명 | ||||
| 1978년 | 19,340명 | ||||
| 1979년 | 22,812명 | ||||
| 1980년 | 20,850명 | ||||
| 1981년 | 20,690명 | ||||
| 1982년 | 19,930명 | ||||
| 1983년 | 21,476명 | ||||
| 1984년 | 23,565명 | ||||
| 1985년 | 25,261명 | ||||
| 1986년 | 28,562명 | ||||
| 1987년 | 29,906명 | ||||
| 1988년 | 33,557명 | ||||
| 1989년 | 32,771명 | ||||
| 1990년 | 36,163명 | ||||
| 1991년 | 36,440명 | ||||
| 1992년 | 40,058명 | ||||
| 1993년 | 39,489명 | ||||
| 1994년 | 38,028명 | ||||
| 1995년 | 39,335명 | ||||
| 1996년 | 38,028명 | ||||
| 1997년 | 38,050명 | ||||
| 1998년 | 35,501명 | ||||
| 1999년 | 32,353명 | ||||
| 2000년 | 27,791명 | 비고 | |||
| 2001년 | 31,388명 | ||||
| 2002년 | 34,288명 | ||||
| 2003년 | 36,884명 | ||||
| 2004년 | 27,687명 | ||||
| 2005년 | 25,976명 | ||||
| 2006년 | 25,302명 | ||||
| 2007년 | 24,764명 | ||||
| 2008년 | 24,435명 | ||||
| 2009년 | 23,878명 | }}}}}}}}} | |||
| 2010년 | 23,307명 | ||||
| 2011년 | 23,154명 | ||||
| 2012년 | 22,833명 | ||||
| 2013년 | 22,449명 | ||||
| 2014년 | 22,381명 | ||||
| 2015년 | 23,428명 | ||||
| 2016년 | 23,401명 | ||||
| 2017년 | 23,078명 | ||||
| 2018년 | 22,988명 | ||||
| 2019년 | 24,706명 | ||||
| 2020년 | 18,988명 | ||||
| 2021년 | 19,640명 | ||||
| 2022년 | 20,703명 | ||||
| 2023년 | 21,595명 | ||||
| 2024년 | 21,811명 | ||||
| 2025년 | 21,488명 | ||||
| 출처 | |||||
| 한국철도공사 광역철도 수송통계 자료실 (시간대별 승하차)[8] | |||||
- 바로 옆 개봉역과 비슷하게 90년대 초 정점을 찍고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2000년에는 인근에 7호선 천왕역이 개통하며 이용객이 약 5천 명 감소해 3만 명 선이 붕괴되었다.
- 개봉역만큼은 아니지만 이 역도 경인로 대로변에 있지 않고 남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기 때문에 버스와의 경쟁에서 다소 불리하다. 오류동 주민 중에서도 이 역까지 추가로 걷기보다 경인로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신도림역까지 가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 역세권에 고층 오피스텔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는 2만 명대 초중반에서 하락세가 멈췄다.
5. 승강장
| |
| 스크린도어 설치 이전 1호선 승강장 |
| ↑ 개봉 | ||||||||||||||
| ㅣ | ㅣ | ㅣ | ㅣ | ㅣ | 1 | 2 | ㅣ | ㅣ | 3 | 4 | ㅣ | ㅣ | ㅣ | ㅣ |
| 온수 ↓ | ||||||||||||||
| 1 | | 완행 | 구로·용산·광운대·소요산 방면 |
| 2 | 미사용 승강장 (통과선) | ||
| 3 | |||
| 4 | | 완행 | 부천·송내·동인천·인천 방면 |
2019년 1월 스크린도어가 완공되어 가동 중에 있다. 일부 역명판에서의 오류동역 표기가 'ファンえき'로 표기되어 있다. 한국어로 옮기면 '팬역'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틀린 표기이다. 대표적으로 구로역 6번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용산급행 열차의 5-1번 칸이 틀린 표기를 하고 있다.
6. 연계 버스
||<-4><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52a4><tablebgcolor=#ffffff,#1c1d1f><bgcolor=#0052a4> 오류동역 연계 버스 정보 ||
| 출구 | 정류소 | 노선 |
| 2번 | 오류동역2번출구 (17601) | |
| 오류동역.시장입구 (17476) | ||
| 3, 4번 | 오류동역 (17171) | |
| 오류동역 (17172) |
7. 사건 사고
- 1899년 12월 28일 오전, 인천발 열차가 부평역에 도착했을 때 도적 40여 명이 열차에 올라서는 오류동역에 도착했을 때 열차에 실려 있던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9]
- 1919년 2월 19일 오전 7시경 남대문(現 서울역)발 인천행 열차와 인천발 경성[10]행 열차가 오류동역 부근에서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여학생 3명이 머리를 다치는 부상을 입었으며 선로는 오전 10시 30분경 복구되었다.[11] 사고의 원인은 기관사의 신호 무시였으며 재산 피해액은 약 8백만 원[12]이라고 한다.[13]
- 1923년 12월 8일 오전 10시경에 33세 류영우 씨는 부산진역에서 구포역까지의 승차권을 사서는 김천역까지 와서 이틀간을 지내다 다시 승차권 없이 서울역까지 와서 또 이틀을 지내며 구직활동을 벌였으나 실패한 후 용산역 쪽으로 되돌아가서 인부로 이틀을 일하고 12월 14일, 고향인 거창으로 귀향하기 위해 경부선 열차를 탄다는 것이 실수로 경인선 열차를 타는 바람에 오류동역에서 부정승차한 것이 적발되어 소사역(現 부천역)역장의 고발로 인천경찰서에 구금되었다.[14]
- 1924년 3월 31일 오전 9시경 오류동역을 통과해 영등포역에 도착한 급행열차 기관사가 오류동역에서 받은 타부테트[15]를 주려고 하는데 도중에 신호표를 분실한 것을 알아채고 되짚어 찾다 오류동역 구내에서 발견되었다.[16]
- 1925년 7월 중반경 오류동역부터 용산역 구간 사이 선로를 비롯한 일대가 침수되었다.[17]
- 1925년 12월 24일 오후 9시 11분경 서울발 인천행 225호 열차 고장으로 인해 오류동역에서 멈추었는데 복구가 예정보다 25분 지연되어 오후 10시 출발했다.[18]
- 1933년 6월 19일경 40대 남성 노동자가 공사장에서 퇴근하고 술에 만취한 채 오류동역의 유리창을 깨고 일본인 야에가시를 포함한 4명을 폭행한 것도 모자라 주재소[19] 순사와도 싸움을 벌이다 붙잡혀 인천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사건이 있었다.[20]
- 1933년 9월 18일 오후 11시경 오류동역에서 불과 3km 떨어진 지점에서 신원 불명의 30대 추정 청년이 열차에 치여 즉사했다.[21]
- 1934년 6월 20일 오전 6시경 오류동역을 출발하던 인천행 431호 열차에서 약 1.5km 지점을 지날 때 오류동역 역무원 김 씨가 뛰어내리다 바퀴 밑으로 끌려 들어가는 바람에 즉사하는 사고가 있었다.[22]
- 1936년 4월 30일 오후 9시 30분경 상인천(現 동인천역)행 열차가 오류동역을 통과할 때쯤에 30세 이노마 씨가 선로에 투신해 열차에 치여 숨졌다.[23]
- 1936년 6월 21일 오후 4시 46분경 46호 열차[24]가 오류동역 부근에서 돌아다니던 4세 남자아이를 치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25]
- 1938년 5월 10일 오전 10시경 오류동역 근처 철도 길목을 건너다 67세 원 씨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26]
- 1938년 6월 4일경 가출해 한참을 귀가하지 않은 18세 소녀 라 양이 6월 8일, 오류동역에서 20대로 추정되는 남성과 함께 있었다는 증언을 기반으로 소녀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27]
- 1939년 10월 13일, 29세 남성이 오류동역에 접근하던 서울발 인천행 411호 열차에 투신해 숨졌다.[28]
- 1956년 12월 16일 오후 12시 37분경 경유를 실은 인천발 1412호 화물열차가 역무원의 실수로 기관차 1량과 유조화차 3량을 포함한 5량이 탈선 전복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60톤의 경유가 쏟아져 나왔다.[29]
- 1958년 8월 13일 오전 1시 35분경 143호 화물열차가 오류동역 구내에 진입하는데 선로전환기를 미리 작동시켜 화차 3량이 탈선하였다.[30]
- 1958년 12월 16일 오전 8시경 46호 열차가 오류동역 구내에 진입할 때 23세 여성이 선로에 떨어져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31]
- 1960년 9월 10일 오후 5시 27분경 서울발 인천행 424호 여객열차가 오류동역에 진입하려다 역무원의 신호 실수로 약 150m 앞(오류동역 남쪽 200m 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인천발 청량리행 343호 화물열차를 들이받아 1명이 사망하고 57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약 3시간 동안 열차가 불통되어 큰 교통 불편을 겪어야 했다.[32]
- 1960년 10월 15일 오후 8시경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17세, 21세의 두 남성이 오류동역 구내에서 중동고등학교 재학생을 향해 칼부림 하는 사건이 있었다. 피해 학생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1개월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33]
- 1973년 11월 15일 오후 8시 10분경 서울발 인천행 425호 여객열차의 기관차가 고장 나서 후진을 하다 오류동역에 정차 중이던 후속열차 427호 열차를 들이받아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34]
- 1978년 6월 25일 오후 11시 55분경부터 오류동역 일대의 선로가 침수되어 3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8백여 명이 영등포역 구내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35]
- 1980년 4월 2일 오후 4시 30분경 17세 남성이 오류동역 구내에 정차 중이던 시멘트 화차 위에 무단으로 올라갔다 열차 상부의 고압선에 감전돼 즉사하는 사고가 있었다.[36]
- 1981년 7월 29일 오전 10시 10분경 오류동역 구내 선로에서 현장 실습 중이던 서울철도고등학교 재학생 17세 안 군이 인천발 서울행 176호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이 학생은 직접 선로에 널브러져 있던 쓰레기들을 줍던 중 유리 조각에 손가락을 다쳤고 급히 치료를 받으려 선로를 건너다 마주 오던 전동차에 치였다.[37]
- 1994년 5월 19일 오후 3시 35분경에 인천발 망우행 화물열차의 바퀴 일부가 빠지면서 화물칸 8량이 탈선돼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화물열차에 적재돼 있던 무연탄이 오류동역 구내로 쏟아지면서 경인선 열차가 불통되는 바람에 승객들은 다음 날까지 큰 교통 불편을 겪어야 했다.[38]
- 2018년 4월 26일 오후 12시 30분경 제K106열차에 30대(추정) 여성이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39] 이 사고로 30대 여성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네티즌들은 열차에 치인 직후 고개를 떨군 철도기관사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다.[40] 이와 관련해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18년 말까지 오류동역 PSD 실시설계를 완료하고[41], 2019년 6월 말까지 완공하겠다고 계획을 밝혔으며, 2019년 1월에 조기 완공되어 가동 중이다.[42]
- 2019년 10월 19일 오후 9시경 제K1135열차가 통과하던 중 여학생과 접촉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43] 이 사고로 17세 권 양이 사망하였으며, 1호선 급행 열차 운행이 잠시 중단되었다.[44]
- 2020년~2021년 구일역 교량 개량 공사로 일부 토요일 막차시간대 한정, 일시적으로 동인천·인천발 구로행 열차가 오류동역까지만 운행했다.
- 2022년 8월 8일 중부 집중호우로 인해 물에 잠겼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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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란 지붕 건물 오른쪽에 있는 이층짜리 건물이며, 역명판만 뜯기고 아직까지 남아있다.[2] 1980년대부터는 다시 '동'을 붙이지 않는 기존의 방식으로 회귀했다. 예외적으로 경북선 개포역으로 인해 같은 역명을 사용할 수 없는 수인분당선 개포동역처럼 '동'자를 붙일 수 있다.[3] 「오류·온수역 엘리베이터 10월 완공」 구로타임즈, 2009-08-24[4] 그렇기 때문에 롤지식 행선기에는 실제로 운행 횟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오류동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 롤지의 마지막 판인 2003년 판에도 천안역, 덕소역과 같이 목록에 남아 있었다.[5] 인천-동인천-부평-부천-오류동-노량진[6] 서울특별시의회[7] 「행복주택 시범지구 윤곽…오류, 가좌 등 7곳 선정」, 노컷뉴스, 2013-05-20[8] 과거 자료 출처: 철도통계연보(~2004년), 현재 출처의 역별 수송실적(2005년~2023년)[9] ⌈작일 오전에 부평 오류동 철도 정거장에서 대적을 만났는데⌋ 제국신문, 1899-12-29[10] 남대문역을 따로 표시한 것으로 보아 1개월 뒤에 폐역 처리된 서대문역으로 추정됨.[11] ⌈경인 기관차의 충돌⌋ 매일신보, 1919-02-20[12] 현재 가치로 수천억 원 정도.[13] ⌈충돌 열차의 기관수, 신호 무시로 기소됨, 손해액은 약 팔백만 원⌋ 매일신보, 1919-02-27[14] ⌈무권 승차한 청년 경찰서에 구금되어⌋ 조선일보, 1923-12-18[15] 통표로 추정.[16] ⌈급행거역전 신호표를 잃고서 작일 경인선에서⌋ 동아일보, 1924-03-31[17] ⌈탁류에 무친 경인 연선 부락⌋ 동아일보, 1925-07-13[18] ⌈오류동 기차 고장⌋ 조선일보, 1925-12-27[19] 지금의 파출소에 해당.[20] ⌈폭행하다 경찰에⌋ 조선일보, 1933-06-22[21] ⌈청년 철도 자살⌋ 동아일보, 1933-09-21[22] ⌈역원이 역사⌋ 동아일보, 1934-06-26[23] ⌈자살 기수, 미수⌋ 조선일보, 1936-05-03[24] 이 열차는 전날에도 운행 중에 60세 노인을 치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25] ⌈소아는 역사 작부는 도주 경인선의 사고⌋ 동아일보, 1936-06-23[26] ⌈오류동역에서 노파 일명 역사⌋ 조선일보, 1938-05-11[27] ⌈십팔세 소녀 출가⌋ 조선일보, 1938-07-20[28] ⌈철도 자살한 청년⌋ 조선일보, 1939-10-17[29] ⌈화차 등이 탈선 전복, 오류동역서 사고⌋ 경향신문, 1956-12-18[30] ⌈여객들에 큰 불안⌋ 경향신문, 1958-08-14[31] ⌈처녀 이명 사상 대구 등 열차 사고⌋ 조선일보, 1958-12-18[32] ⌈오류동역 구내서 열차 충돌⌋ 조선일보, 1960-09-11[33] ⌈고아원생이 칼부림⌋ 조선일보, 1960-10-20[34] ⌈고장 열차 후진하다 뒤차 받아 삼명 부상⌋ 동아일보, 1973-11-16[35] ⌈⌈수도 서울⌋ 하루 비에 또 물난리⌋ 동아일보, 1978-06-26[36] ⌈화물차에 올라갔다 전철 고압선 감전사⌋ 조선일보, 1980-04-02[37] ⌈현장실습 철도고생 전동차에 치여 숨져⌋ 경향신문, 1981-07-30[38] ⌈오류동역 화물열차 전복 사고로 교통 대혼란⌋ KBS, 1994-05-19[39] 레일블루[40] 「오류동역 투신 사고 직후 기관사가 보인 행동」, 국민일보, 2018-04-26[41] 국가철도공단[42] 국가철도공단 > KR 홍보 > 보도ㆍ참고ㆍ해명자료(목록)[43] 레일블루[44] 「지하철 오류동역서 여고생 열차에 치어 사망…“사고 경위 조사 중”」, KBS, 2019-10-19[45] 「[속보] 서울 지하철 1호선 개봉역~오류동역 구간 침수 "상·하행 일시 중단"」, 매일신문, 202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