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00:45:51

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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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colcolor=black> 영어 <colcolor=black>Hippie, Hippy
한국어 히피
일본어 ヒッピー
러시아어 Хиппи, Хиппаны(복수형)
1. 개요2. 역사
2.1. 탄생2.2. 몰락2.3. 여피2.4. 사회의 시선
3. 미국 이외의 사례
3.1. 서유럽3.2. 일본3.3. 한국3.4. 동유럽
4. 특징
4.1. 히피식 이름짓기4.2. 히피 룩
5. 대중매체에서
5.1. 부정적으로 묘사된 작품들5.2. 히피 캐릭터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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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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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분장을 한 뚱이와 스폰지밥 히피 운동을 상징하는 비틀즈의 곡 <All You Need Is Love>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위시한 서양권에서 10~30대 위주로 발생한 하나의 문화풍조 및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2. 역사

2.1. 탄생

파일:The Vietnam War And How It Empowered The Hippie Movement.jpg

1960년대 중후반, 베트남 전쟁의 교착 상태와 불안한 미국 사회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지기 시작했다.[1] 이에 기존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평화를 사랑하며,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인간성을 중시하면서 물질 문명을 부정하는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히피이다.

히피의 뿌리는 비트닉[2]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비트닉 자체가 보헤미안적 태도를 지닌 반항아 문학청년들이었다. 잭 케루악앨런 긴즈버그를 비롯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를 숭배했다. 이 흐름은 훗날 모드족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점점 요란한 패션과 약물 문화, 자유, 평화의 사상이 합쳐지면서 히피 문화가 도래하게 된다. 히피는 대략 1966년경을 기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자유분방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정신적 해방을 위한 마약 사용, 집단 난교와 공동생활 등이 대표적인 상징이다. 이들의 상징적인 모습들은 사실 미국 원주민(인디언)들의 생활양식을 많이 따라하였다. 자유분방한 복장은 미국 원주민의 복장을 변화한 스타일이고, 마약을 통한 정신해방은 미국 원주민의 연기 흡입을 통한 명상, 떠돌아다니는 공동생활 역시 미국 원주민이 거주지를 자주 옮긴 것과 같다. 백인계 미국인과 다르게 보이려고 선택한 것이 바로 이색적으로 보인 미국 원주민의 생활양식이었던 것. 다만 미국계 원주민은 싸이코델릭 약물을 사용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이러니.

히피는 당시 베트남 전쟁 반대로 큰 호응을 얻던 반전 사상의 아이콘격으로 떠올랐다. 당시는 학생운동이나 청년운동이 힘을 얻던 시대였고, 이들은 종종 폭력투쟁으로 발전했는데, 히피는 철저히 무대응 무저항을 원칙으로 행동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초기에는 히피가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집단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는 행동을 연좌시위(sit-in)를 넘어선 행동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를 'Be-in'이라고 불렀다. 당시 Human Be-in의 영상

히피 이전의 서브컬처 집단들도 약물을 사용했지만, 그 전까지 약물은 괴팍한 재즈 뮤지션이나 거친 사나이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LSD의 구세주라 불리는 티머시 리어리[3]가 "Turn On, Tune In, Drop Ou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약물사용을 통한 정신구조의 확장 및 해방을 주장하면서 약물은 히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때 생긴 단어가 바로 마약을 통한 정신세계의 탐험을 뜻하는 "Trip"이다. 이 단어는 지금까지도 마약을 경험했다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4] 이 때문에 히피는 단순한 서브컬쳐를 넘어서 "반문화 운동"(Counter-Culture movement)라는 칭호를 얻는다.

1967년 사랑의 여름으로 대표되는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몇몇 히피는 아예 인도일본 등으로 직접 여행가서 전통무술과 요가, 불교동양 종교철학을 배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동양문화에 심취한 인물 중 스티브 잡스조지 해리슨이 유명하다.[5] 다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와패니즈들과 인도 여행에 대한 이상한 환상이 생기기도 했다(...).[6][7]

당시 앨런 긴스버그를 위시한 진보적인 지식인과 작가들도 히피 무브먼트에 대거 참여했다. 흑인들의 민권운동,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선 무장투쟁운동도 이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게 바로 유명한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이다. 이에 대한 묘사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짧지만 자세히 등장한다. 히피인 등장인물 제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길거리 생활을 하거나, 마약을 통해 정신세계 체험을 하거나 흑표당의 아지트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2.2. 몰락

하지만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휴버트 험프리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면서 미국이 68운동이 한풀 꺽인데다가 1970년대가 되면서 여러 가지 사건이 터지고, 히피의 이상은 점점 흔들리기에 이른다. 특히나 찰스 맨슨이 일부 극단적 히피들의 컬트 교주로서 군림하며 살인을 사주하고, 그들을 세뇌하여 착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미지에 심한 타격을 입었으며 당시 불길처럼 번지던 크랙 코카인 등 마약의 범람 등으로 인해 히피들에 대한 내외부적인 인식이 변하게 된다. 실제로 1969년~1972년은 히피 살인마의 시대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히피들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히피 운동이 사회적인 변혁을 일으켜 줄 것이라 기대하고 동조했던 운동권들도 히피들의 무능함에 학을 떼고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펑크가 떠오르던 1970년대 중반 쯤에 이르러선 히피 무브먼트는 사실상 와해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히피들은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 등을 개최하면서 이제 1969년이 지나고 1970년대가 되면 사랑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리라는, 지금 돌이켜보면 터무니없는 이상향에 젖어 있었다.[8][9] 하지만 알타몬트 공연의 헬스 엔젤스 사건 같은 것이 터지고, 베트남전이 종결되면서 급격히 세력을 잃는다.

이들 사상의 주요한 모토였던 록 음악[10]도 1970년대를 넘어가며 히피 신비주의를 버리고 급격히 세속화된다. 1980년대쯤 되면 이제 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받게 된다. 이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소설로는 토머스 핀천의 바인랜드가 있다.

결정적으로 1980년대에는 에이즈의 공포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강타하며 약물 파티[11], 집단 난교로 대표되는 히피 문화는 끝장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히피 세대를 대변한 록 아티스트를 들자면 도어즈, 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크림, 모비 그레이프 등등이 있고, 비틀즈조차도 당시의 히피 세대의 사조를 따랐다.[12]

히피 세대의 "무사안일", "막연한 평화주의"는 훗날 펑크 무브먼트에게 미친듯이 까이게 된다.[13] 그들의 자식뻘인 X세대도 히피들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사회학적으로는 히피의 공동체는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방증하는 결과밖에 되지 못했으며 공동분배를 주장하던 수많은 히피집단은 사실상 딜레마에 당착하여 내부적으로 붕괴되었다.

거기다가 히피 중 극단적인 쪽은 80년대에 반대쪽 극단인 신비주의 기독교로 빠져서 반대방향으로 신나게 역주행하며 삽질을 하기도 했다. 물론 기독교계는 이를 고깝게 보았고, 대다수의 히피들은 신비주의적 색채가 강한 자신들만의 교단을 만들어 분리하기에 이른다.

위와 같은 모순과 문제점에다 히피문화를 즐겼던 부모 세대들이 나이 먹고 꼰대로 돌변하면서 오늘날 자식뻘, 손자뻘인 Z세대들과 갈등이 빈번한 편이다. 반대로 꾸준히 유연한 사고를 유지하려고 했던 부류도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젊은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는 과거 1960년대 스타일의 히피들은 거의 종적을 감춘편이지만 아직도 정착하는 삶 보다는 방황하는 삶을 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스스로 돈이 없거나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들, 특히 일부 젊은이들이 현대판 히피가 되는 경우는 아직도 있다. 특히 과거에 히피 문화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시 지역에는 이런 유사한 문화들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남아있는 편이다. 현재 힙스터라고 불리는 부류가 이런 히피 문화중에 일부를 변조해서 계승했다.

2.3. 여피

한편 왕년의 히피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계층의 자녀들 중 80년대에 이르러 '여피족'으로 진화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70년대 젊은 시절에는 히피 문화에 빠져 흥청망청 보냈지만, 슬슬 취직을 걱정할 30대가 되자[14] 다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화해한 뒤 부모에게 회사 고위직 혹은 회사 주식을 물려받고 바지사장으로 적당히 살면서, 대개 헬스 클럽에서 몸을 만들면서 소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코카인을 하면서[15] 연예인 혹은 모델들과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이런 여피족들의 생활상은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 잘 묘사되어 있다.

2.4. 사회의 시선

히피문화가 태동했을 당시만 해도 평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사회와 충돌을 일으킨데다가 찰스 맨슨으로 대표되는 히피 살인마들이 등장하자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히피에 대해 일부 긍정적이던 운동권부터 시작해서 기존부터 비판적이던 보수적·기독교적 세력들에게 완전히 십자포화를 얻어맞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다시피 했으며. 무엇보다 미국의 68운동이 실패로 끝난지라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이룩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실 히피들이 저평가를 받는것은 본인들 자업자득인 집단난교와 무위도식, 마약도 있기는 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베트남전 자체를 민주당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시작했었기 때문에 베트남전 반대를 놓고 민주당 지지층은 분열양상을 보였고, 공화당 지지층들은 히피들을 날라리 취급했던지라 히피들이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클지 언정, 정치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불충분했다. 더군다나 1968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이 근소한 표차로 당선된 이래부터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당선되기 이전까지 민주당은 24년 동안 대통령직을 단 4년만 차지했었으며, 이 때문에 이 시대를 경험해본 민주당 장년층 이상 지지층들은 히피들을 뭘 모르는것들이 괜히 판이나 흐려놓아서 노동자들을 닉슨측에 붙게나했다면서, 반전시위와 히피들을 혐오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현재에는 자유로운 사상을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 히피문화에 대해 조금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고, 반대로 더 보수적이거나 기독교를 강하게 믿는 사람들일수록 히피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대중적인 평가는 '생산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마약이나 빨고 난교나 일삼아 에이즈를 퍼트리는 반사회적 집단' 정도이며 히피들의 어버이 세대라 할 수 있는 비트 세대에게서 학대받고 자라나 사회적으로 삐뚤어진 사람들이라는 평가가 많다.[16] 물론 실제로도 마약,난교,에이즈 창궐과 온갖 컬트문화 범람에 아주 지대한 공이 있는 집단인건 맞긴 하다. 현대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정치적 올바름'[17] 역시 히피와 68운동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난교는 자유로운 성문화로, 각종 컬트문화는 문화의 다양성 등으로 어떻게든 포장이라도 가능한데, 다른건 몰라도 마약 만큼은 만국 공통으로 포장이 안되는 막장짓인지라 더더욱 저평가를 스스로 자초했다. 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여주인공 제니 커런.

물론 히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1960년대 중반후터 1970년대 초반까지 히피들이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무시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 철군 같은 경우는 히피가 좋은 영향을 끼친 몇 안되는 사례로 소개되고, 성혁명을 이끄면서 대도시와 그 근교에서도 성적으로 자유로워지게 된것도 이 때였다. 하지만 정부뿐만 아니라 참전용사에 대한 괴롭힘과 린치를 가했다는 어두운 면이 있다. 반전주의 같은 사상도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념으로 인정받기 시작하기도 하고, 당시 공동체의 가치, 분위기가 아주 강했던 사회에서 개인주의적 생각도 철부지들의 일탈이라는 인식에서 하나의 생각으로 존중받기 시작했고, 미국이 대도시와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성적으로 자유로워지게 된것도 히피문화의 영향이 그 만큼 크다는것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근대주의적 시대에서 탈근대주의를 이끈 문화 운동이기도 하다.[18] 패션으로는 비격식 차림을 더욱 보편화시켰다. 사실상 페도라의 종말을 불러왔고, 일상에서의 정장 착용 쇠퇴에 영향을 주면서 여자에게도 청바지를 주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영향을 준다.

그리고 변조된 히피문화 자체는 현재까지도 세계의 대중문화속에 많이 녹아있다. 유명 팝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중에도 히피들의 감정적이고 짧은 사랑과 배신을 주제로 하는 곡들이 제법 많다. 히피는 예나 지금이나 여유와 낭만을 중시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으로 많이 통하지만, 사회적인 틀에 구속되기를 좋아하지 않고 다소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엄격하고, 강압적이며 보수적인 환경에서는 적응하기 어렵다.

3. 미국 이외의 사례

3.1. 서유럽

1960년대 서유럽에도 많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68운동의 직접적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들 또한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에 나섰다. 또한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강하게 끼쳐도 정치적으로 끼친 영향력이 적은 미국 히피에 비해서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제법 끼친 편이다. 또한 프랑스, 영국, 서독,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를 비롯한 각 나라들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이들 나라들이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항공료가 비쌌던 당시, 서유럽 각지에서는 버스나 밴을 타고 터키이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을 거쳐 최종적으로 인도고아네팔카트만두(당시 네팔에서는 대마초가 합법이었다)를 향하는 이른바 '히피 트레일'이 성행하였으며 이후 배낭여행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히피 트레일은 히피 문화가 사그러든 70년대 중반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다가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단절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현재도 인도의 고아 등지에 가면 그 시절 히피 문화의 자취를 느낄 수는 있다.

3.2. 일본

일본에서도 서양과 비슷한 시기에 '후텐족'(フーテン族)[19]이란 명칭으로 히피 풍조가 널리 퍼졌었다. 주로 신주쿠역 근처 광장에서 시너를 흡입하고[20] 몽롱해진 채로 여기 저기 기웃거리거나, 혹은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이상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댄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중앙일보 1968-07-11 《[후뗑…일본의「히피」족》] 캔(밴드)의 보컬이었던 다모 스즈키가 후텐족 출신으로 유명하며, 나가시마 신지(永島慎二)의 만화 후텐은 이런 일본 후텐족을 다루고 있다. 물론 히피음악이 나름대로 유행하기는 했어도 일반 사회인들과 남학생들은 장발을 하지못했다.

3.3. 한국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통기타 청년 문화가 히피 문화에 일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군사정권에서는 풍기문란 비슷한 행위로 간주하고 탄압했으며, 여기에 대마초 파동이 더해지면서 탄압을 더욱 많이 받아 사회적으로 크게 확산되진 못했다. 당시에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장발 머리 스타일도 히피 스타일에서 유래된 문화였는데 당시 경찰들은 장발을 하고있는 청년들을 모조리 붙잡아서 강제로 머리를 밀어버리고 "정신교육"을 명목으로 군대에 강제로 입대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장발머리를 하고 다니던 청년들은 단발보다 장발이 더 전통에 가깝다고 항변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밀어버렸다. 다만 이 당시 유행어였던 '아더메치'[21]라는 단어도 한국판 히피족들이 쓰던 말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화지, Changstarr*, 히피는 집시였다 정도가 히피 룩을 차용하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3S정책의 일환으로 더 이상 장발에 대한 단속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군대와 학교[22], 다수의 직장에서는 여전히 머리를 기르지 못했다. 그래도 홍콩스타들이 장발을 종종 하고다녔기 때문에, 대학생과 직장에 취직하기전의 청년들이 종종 장발스타일 머리를 하기는 했고, 이러한 유행이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3.4. 동유럽

정말 놀랍게도, 소련 및 동구권에서도 히피들이 다수 있었는데, 이는 공산권 국가끼리의 관계개선을 위해 청년들끼리 이루어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진행했는데, 이 당시 체코에 유학을 간 어느 소련 젊은이가 히피문화를 배워[23] 자기 친구들에게 설파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인디가수들이 히피 영향을 많이 받았고, 청소년과 청년들 사이에서 장발도 유행했었다. 소련 당국도 초창기인 1960년대에는 히피들을 사회불순 세력으로 취급하여 히피들의 머리를 강제로 밀기도 했으나, 68운동이 미국과 프랑스, 체코 등에서 잠잠해진 1970년대 와서는 히피들의 사회적 파급력이 생각보다 덜하다는 점을 깨닫고, 단순한 반항 정도로 취급해서 청소년과 청년들이 장발을 하는것을 단속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대놓고 머리를 자르지 않았을뿐, 여전히 아니꼽게 본것은 맞아서 이 당시 텔레비전과 영화에 출연하는 주류 연예인들은 1980년대 후반에 규제가 완화될때까지 옷차림과 음악스타일은 히피영향을 받았을지 언정 장발은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며, 마찬가지로 남학생들도 학칙상 옷깃 아래로[24] 기르는 장발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9월 신학기때 여름방학 내내 기른 머리카락을 하고 다니다가 교사에 의해 강제로 이발당하거나, 집으로 되돌려지거나, 퇴학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때문에 구소련권에서는 소련을 경험한 세대들이 종종 록음악을 즐겨듣는 경우가 많다.

소련계 히피 중 대표인사로는 소련 락의 대부 중 한명인 "예고르 레토프"와[25], 그의 동거인이자 시인 겸 가수였던 "얀카 댜길레바"가 있다.

4. 특징

4.1. 히피식 이름짓기

이들의 자유분방함은 이름 짓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서 서양인들 중에 종종 '프리덤', '스타', '리프', '아시아'나 '아메리칸', '페어루자' 등등 사람 이름으로 쓰지 않는 영단어나 영어가 아닌듯한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 부모가 히피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경우 히피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5남매 중 호아킨만 빼면 그의 요절한 형 리버 피닉스를 비롯해 형제자매들의 이름은 전부 일반명사이다. 심지어 성씨인 피닉스도 개명한 것으로 원래 성씨는 바텀이었는데, 부모님이 바닥을 뜻하는 바텀보다 피닉스가 멋있다는 이유로 바꿨다고 한다.

가수 카니예 웨스트도 2남 2녀인 자녀들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지었는데 각각 노스, 세인트, 시카고, 이다.

배우 위노나 라이더의 부모도 히피였다고 하며, 위노나란 이름은 그녀가 태어난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다.

미국의 게임 제작자 아메리칸 맥기는 히피였던 어머니가 자식 이름을 '아메리카'라고 짓는 친구를 보고 자기 아이 이름은 '아메리칸'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4.2. 히피 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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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하면 생각나는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 무늬가 화려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누더기같은 옷을 "히피 룩"이라고 부른다. 맨발 혹은 버켄스탁 제품을 애용한다. 전신은 피콕 룩으로, 비틀즈 멤버들이 Revolver 세션 이후 장발에 수염을 기르면서 청년층에게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1970년대까지는 주류 사회에서도 유행했던 패션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는 서양권에서도 주류에서 밀려 났고, 현재에는 반사회적 패션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단순히 사회에 비판적인 젊은이 뿐만 아니라 반체제 운동가들에게서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며 널리 패션이 시도되고 있다. 유럽의 반체제적 좌파 정치인 중에서도 히피 룩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꽤나 많다. 대표적으로 포데모스의 당수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투리온.

요새는 자유로운 영혼이나 스타일을 '히피'라는 말보단 '보헤미안'으로 돌려쓰는 듯.

5.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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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흔히 생각되는 히피의 이미지
상술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인지 서양 대중매체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긍정적 또는 중립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특유의 차림세나 행동거지를 모티브로 한 경우이다.

주된 클리셰 및 스테레오타입으로는 생머리에 꽃을 달고 있는 모습, 에스닉한 패션 내지는 봉고 패션, 마약에 취해 늘어져 있는 모습, 원조 히피들의 캐치프레이즈(Make love, not war 등), 물담배, 평화기호 악세사리, 사이키델릭한 배경효과 등이 있다.

전투광 또는 공리주의 성향의 캐릭터들이 평화주의자를 히피라고 칭하는 모습도 보인다. 상술했듯이 미국에서 한 때 '히피=평화주의자'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이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평화주의자를 무작정 히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5.1. 부정적으로 묘사된 작품들

  • 네모바지 스폰지밥
    히피를 주제로 한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히피들이 집게리아에서 민폐를 끼치는 모습을 보였는데 작중에서 "이 짜증나는 히피들!"이라는 대사가 나왔다.
  • 사우스 파크
    에릭 카트먼의 평생의 숙원이 세상의 히피들을 다 죽이는 것이라고 하며, 스탠 마시는 사회를 바꾸겠다고 하면서 정작 아무것도 안 하고 마약이나 음악에 빠져있는 모습에 "이렇게 모여서 노래듣고 마약이나 하고 있느니 좀 세상에 도움되는 일을 찾으라."라고 히피들을 비판했다.

5.2. 히피 캐릭터

6. 같이 보기



[1] 베트남전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 상당수가 심각한 PTSD에 시달리거나 마약중독자, 사회 부적격자, 범죄자 등이 되기에 이르렀다.[2] 이들의 스테레오타입베레모, 검은 폴로셔츠, 봉고드럼이었다. 심슨 가족에 나오는 네드 플랜더스의 부모가 그 당시 전형적인 비트닉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3] 바로 위의 Human Be-in 영상의 서두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는데, 약물의 사용을 예찬하며 히피가 되었다.[4] 1967년에는 아예 the trip이라는 영화도 나왔다.# 이 영화는 히피 시대의 중요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5] 특히 조지 해리슨이 부른 'My Sweet Lord'라는 노래는 이를 잘 표현한 노래이다.[6]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미덕을 자랑하는 미국의 이념에 지친 이들에게 '무소유의 개념'과 '내적인 평화'를 강조하는 동양 철학이나 불교의 정신은 이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양인들이 동양 문화와 사상과 철학에 대해 느끼는 신비감은 아시아권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선다. 물론 히피들의 동양문화에 대한 호의는 '서양은 문명적이고 과학적, 동양은 자연적이고 신비적'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7] 당장 영어에 나오는 '인과'라는 의미의 카르마'Karma', 도사라는 뜻의 구루'Guru'의 인도어나 선을 뜻하는 젠'Zen'과 같은 일본어도 이러한 배경에서 생긴 것이다.[8] 당장 이 당시에 나왔던 구호가 'Make a love, not the war', 즉 '전쟁이 아닌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자'였다.[9] 70년대에 대한 이상적인 낙관론은 사실 60년대 저항운동 전반에 걸쳐 흐르던 정서이기도 했다. 60년대 전공투 학생운동 세대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자신들이 서른이 넘을 때 쯤엔 전쟁도 인종차별도 없어질 거라 믿었다 한다. 그만큼 60년대가 격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10] 특히 약물의 힘을 빌린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음악. 록 중에서도 사이키델릭 록은 히피들의 지향점이 담긴 장르였다.[11] 현대에도 그렇지만 마약중독자들은 주사기 바늘값을 절약하기 위해 주사기를 돌려쓰는 경우가 많았다. 혈액으로 전염되는 에이즈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인 것.[12] 비틀즈는 히피로 출발한 아티스트는 아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아주 부드럽게 타면서 히피 문화를 이끌었다. 저 위에 기술된 찰스 맨슨도 비틀즈를 굉장히 숭상했다. 당장 경쾌하고 발랄한 노래를 부르던 비틀즈도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All You Need Is Love'같은 진지하고 심오한 내용의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으며 특히 존 레넌은 이후 이러한 사조에 완전히 몸담게 된다. 오죽했으면 존 레넌이 불렀던 'Imagine'이란 노래를 두고 '존 레넌이 공산주의를 찬양한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13] 펑크가 히피에게서 얻어온 것은 공동체 정신 하나밖에 없다. 그마저도 중요성만 자각한 거지 펑크의 공동체 문화는 히피하곤 다르다. "대충 공동체가 중요하긴 하지. 근데 쟤네(히피)는 개쓰레기 놈들이니까 쟤들 처럼은 말고." 정도의 반응.[14] 80년대 미국 사회가 로널드 레이건 집권 이후로 점차 보수적이고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되어가고 있었다는 점도 여피족의 등장에 영향을 끼친다.[15] 이 때문에 미국에서 코카인은 돈 많은 백인들이 하는 마약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헤로인이나 필로폰은 돈 없는 빈민들이나 갱스터, 레드넥들이 하는 이미지가 강하다.[16] 미국에서 학교체벌이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된것은 1970년대부터였고, 1960년대까지는 뉴저지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에서 학교체벌이 합법이었다.[17]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지자들을 소위 'PC충'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18]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으로 행동하자는 주의가 히피였는데, 보다 빨리 현대적인 사회로 변화하도록 영향을 끼친 것이다.[19] 한자로 '瘋癲'(풍전)이라고 쓰는데 본래 뜻은 키치가이처럼 '정신나간 사람'이란 뜻이다. '떠돌이'란 뜻으로도 쓰인다.[20] 대마초보다 구하기 쉽고 값이 쌌기 때문. 당연하지만 1980~90년대 한국 청소년들의 본드 흡입처럼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21] 니꼽고 럽고 스껍고 사하다라는 뜻.[22] 1982년에 중고등학교에서 두발자유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두발자유화는 이전보다 머리를 조금 길게 기를수있는 수준으로 200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남학생 장발은 이 시대에도 언감생심이었다. 남학생들이 장발을 할수있다는 개념은 2000년대의 대안학교에서부터나 나왔고, 현재도 비주류다.[23] 프라하의 봄 당시 시위대가 부르던 노래 중 Hey Jude가 있었을 정도로 당시 동구권에는 서구 음악이 암암리에나마 퍼져 있었다.[24] 이것도 학교와 교사마다 차이가 약간씩은 있었다.[25] 시베리아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반체제적인 것"들이 전부 융합되다보니 히피와 펑크가 융합되는 희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장 레토프 또한 히피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으면서도 1990년 이전에는 펑크 락을 주로 활동했다.[26] 폭동 진압복은 당시 처음 시범 제작된 물건으로 반은 실전 테스트를 겸해서 보낸 건데, 시리즈마다 나오는 전쟁전 미군 제식 방어구인 컴뱃 아머보다 좋게 나온다.[27] 드럼 탄창개머리판이 없는 짦은 반자동 산탄총이다.[28] 참고로 실존하는 부대이며, 폴아웃 세계관에서는 부대 상징이 빨간색 부분이 노란색으로 바뀐 디자인이다.[29] 이에 프라이빗은 "뭐야, 히피가 폭력을 쓰네?"라고 말했다.[30] 번즈 사장이 연구원 내지는 책임자였다.[31] 참고로 이때 경비원이 위검 서장이었는데 이 소독제에 천식이 완치되어 경찰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32] 허브 파월이 데뷔하는 2기 에피소드에서도 회상으로 등장하긴 했으나 이후 방영분과는 디자인이 달랐다.[33] 주인공인 스탠 스미스의 딸. CIA 직원으로 수꼴 성향을 가진 아버지와 달리 진보적이다.[34] 작품 자체가 미국의 6, 70년대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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