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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대한민국/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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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2. 전근대3. 전근대 이후4. 지진 목록

1. 설명

한국에서 벌어진 지진의 현황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다.

2. 전근대

예로부터 지진 관련 기록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으며 이는 한반도 역시 절대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역사적인 증거 중 하나다. 신라 혜공왕 15년에 약 100명의 사망자 기록이 있으며 신라에는 도합 40건의 지진이 있었다. 고려사에 지진이 약 150회 이상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地震) 관련 기록은 무려1,899건이다. 중종 시기 498건, 명종 시기 364건, 숙종 시기 236건 등이다. 이러한 기록들 중에서 대표적인 지진들을 표로 실었다. MMI 기준 추정 최대진도 VI 이상인 것만 다룬다.(다만 최대진도 VI는 그 수가 많아서 일부만 실었다.) 추정 규모는 6.0 이상일 경우 빨간색/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같은 해에 백두산, 한라산 등 국내 화산이나 아소산 등 한반도 주변 화산에서 폭발성 활동이 있었던 경우에는 발생일자 뒤에 ★를, 지진이 일어나기 전 5년 이내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M7.0 이상의 대지진이 있었던 경우에는 발생일자 뒤에 ☆를 넣었다. 한반도에서 최대진도'IX(6강) 이상의 지진은 15번있었다. 메르칼리 진도 VIII는 일본 기상청 진도의 5강~6약(5+ ~ 6-), 메르칼리 진도 IX는 일본 기상청 진도의 6강(6+)에 대응된다. 진도 X 이상은 일본식 진도 7에 대응된다.
발생지(진앙지) 발생일자 추정 규모 추정 최대진도
(MMI)
사상자 수 비고
경기도 광주시 89년 6월경 M6.3 IX
평양직할시 501년 M6.3 VIII
경상북도 경주시 630년 M6.3 VII~VIII [1]
경상북도 경주시 779년 3월 M6.3[N]
M6.7[L]
M7.0[S]
IX 사망 100+ 두 번째로 강력한 지진.[5]
경상북도 군위군 1025년 8월 3일 M5.2 VI
경상북도 경주시 1036년 7월 17일 M6.3 IX [6]
개성직할시 1260년 7월 23일 M6.3 VIII
개성직할시 1311년 11월 12일 M5.0 VI [7]
개성직할시 1385년 8월 24일 M6.3 VIII [8]
경상북도 울진군-영양군 1405년 3월 3일★ M5.2 VI
경상북도 안동시-의성군 1416년 5월 14일 M6.1 VII [9]
경상북도 김천시-성주군 1427년 10월 5일 M5.8 VII [10]
전라북도 전주시 1428년 8월 24일 M5.2 VI [11]
경상남도 함양군 1430년 5월 9일 M5.8 VII [12]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1430년 9월 30일 M5.8 VI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청도군 1431년 3월 10일 M5.2 VI
진앙지 미상 1436년 5월 20일 M6.4 VIII [13]
충청북도 증평군 1437년 2월 28일 M5.8 VII
전라남도 순천시 1455년 1월 15일 M6.4 IX
광주광역시 1455년 1월 24일 M6.3 IX
전라북도 익산시 1502년 8월 20일 M5.8 VII
경기도 평택시 1503년 7월 5일
1503년 9월 13일
M5.2 VI
서울특별시 1518년 6월 25일 M6.7 IX [14]
황해도 배천군 1518년 7월 2일 M6.7 IX
충청북도 청주시 1522년 9월 12일 M5.0 VI
경상북도 김천시 1528년 4월 27일 M5.8 VII [15]
황해도 평산군 1546년 6월 20일 M6.4 VIII [16]
서울특별시 1546년 6월 27일 M5.7 VII
평안남도 순천군 1546년 6월 29일 M6.4 VIII [17]
대구광역시-경상북도 경산시 1553년 3월 2일 M6.3 VIII [18]
충청남도 홍성군 부근 1594년 7월 20일 M6.4 VIII
함경북도 삼수군 1597년 10월 6일★ M5.8 VIII [19]
경기도 수원시 1613년 7월 16일 M6.4 VIII [20]
개성직할시 1632년 2월 26일 M6.4 VIII
부산광역시 동래구 1643년 5월 30일 M6.4 VIII [21]
경상남도 진주시 1643년 6월 9일 M6.4 VIII~IX 사망 2 [22]
울산광역시 앞바다 1643년 7월 24일 M6.5[N]
M6.7[L]
M7.2±0.2[S]
[26]
X 세 번째로 강력한 지진
쓰나미 발생[27]
황해 1668년 7월 31일★☆ M6.4 VI 쓰나미 발생[28]
경상남도 거창군 1670년 10월 4일☆ M6.0 VII [29]
전라북도 순창군 1670년 10월 30일☆ M6.3 VII~VIII
강원도 양양군-강릉시 앞바다 1681년 6월 12일 M6.5 VIII [30]
강원도 홍천군 1681년 6월 17일 M6.4 VIII
강원도 양양군-강릉시 앞바다 1681년 6월 26일 M7.5 IX 첫 번째로 강력한 지진
쓰나미 발생[31]
서울특별시 1692년 11월 2일 M5.5 VII
전라북도 전주시 1702년 8월 26일★ M6.4 VIII [32]
경기도 강화군 1707년 1월 3일★ M5.8 VII [33]
개성직할시 1714년 3월 15일 M6.7 IX [34]
함경북도 청진시 1810년 2월 19일 M6.7 IX [35]

조선왕조실록 기록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지진에 관한 기록 중 대다수는 '~~에 지진이 있었다'라는 식으로 한 줄 정도 적고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지진의 규모나 사태의 심각성 등의 이유로 자세하게 서술하는 경우도 있다.
여담으로, 광해군이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을 사사할때도 수원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다.
유시(酉時)에 세 차례 크게 지진(地震)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가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城堞)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노숙하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고로(故老)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八道)가 다 마찬가지였다. - 중종실록 33권, 중종 13년 5월 15일(1518년)
전형적인 지진 묘사. 지진이 일어났을 때 혼란한 분위기를 서술하고 있다.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갔으며 한참 뒤에 그쳤다. 처음에는 소리가 약한 천둥 같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집채가 모두 흔들리고 담과 벽이 흔들려 무너졌다. 신시(申時)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 - 명종실록 3권, 명종 1년 5월 23일(1546년)
경상감사 장계의 내용이다. 좌도가 안동에서부터 동해·영덕 이하를 경유해 돌아서 김천 각 읍에 이르기까지, 이번 달 초 9일(辛未) 신시(오후 3시-5시), 초 10일 진시(오전 7시-9시)에 두 번 지진이 있었다. 성벽이 무너짐이 많았다. 울산 역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마찬가지로 지진이 있었다. 울산부의 동쪽 13리 밀물과 썰물이 출입하는 곳에서 물이 끓어올랐는데, 마치 바다 가운데 큰 파도가 육지로 1,2보 나왔다가 되돌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건답 6곳이 무너졌고, 물이 샘처럼 솟았으며, 물이 넘자 구멍이 다시 합쳐졌다. 물이 솟아난 곳에 각각 흰 모래 1,2두가 나와 쌓였다. - 승정원일기, 인조 21년 6월 9일 및 10일(1643년)
위의 지진은 1643년 7월 25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최대규모 M7.0의 지진에 대한 기록으로, 쓰나미, 토양 액상화, 건물 붕괴 등등의 지진으로 인한 각종 재난이 기록되어 있다.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한수원의 「원전부지 최대지진 조사․연구」보고서에 등장한 역사지진목록1 도표의 M9.82 수치를 보고 이 지진의 추정 규모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우선 보고서의 수치는 과거 지진의 기록이 아니라 확률론에 기반한 것이며, 실제 발생확률이 거의 없는 경우까지도 상정하여 이같은 높은 수치를 얻었던 것이다. 한수원의 해명
강원도(江原道)에서 지진(地震)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가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襄陽)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雪岳山)의 신흥사(神興寺) 및 계조굴(繼祖窟)의 거암(巨巖)이 모두 붕괴[崩頹]되었다. 삼척부(三陟府) 서쪽 두타산(頭陀山) 층암(層巖)은 옛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모두 붕괴되었다. 그리고 부(府)의 동쪽 능파대(凌波臺) 수중(水中)의 10여 장(丈)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潮水)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步) 혹은 5, 60보 노출(露出)되었다. 평창(平昌)·정선(旌善)에도 또한 산악(山岳)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巖石)이 추락하는 변괴(變怪)가 있었다. 이후 강릉(江陵)·양양(襄陽)·삼척(三陟)·울진(蔚珍)·평해(平海)·정선(旌善) 등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는데, 이때 8도(八道)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 숙종실록 11권, 숙종 7년 5월 11일(1681년)
이 기록에서는 무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산사태를 연상시키는 묘사가 나온다. 이 기록에서 나온 지진이 위에서 말한 양양 지역[36] 규모 7.5급으로 추정되는 지진이다.

3. 전근대 이후

1905년 인천관측소에서 기계식 지진계를 도입한 이후로 일제강점기 동안 추가적으로 5개의 관측점을 더 설치해서 총 6개의 관측점을 가진 현대적인 지진관측망을 운영하였다.[37] 그 후 광복과 분단, 한국 전쟁[38] 등 혼란한 사회상을 거치면서 관측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1963년 3월경부터 다시 관측이 재개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한국 지진 관측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No. 규모(M) 발생연월일 진원시 진앙
위도(°N) 경도(°E) 발생지역
1 5.8 2016. 09. 12 20:32:54 35.77 129.18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화곡리 산 239-3
2 5.4 2017. 11. 15 14:29:31 36.12 129.36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천리 547-2
3 5.3 1980. 01. 08 08:44:13 40.20 125.00 평안북도 의주-삭주-귀성 지역
4 5.2 2004. 05. 29 19:14:24 36.80 130.20 경상북도 울진군 동쪽 약 80㎞ 해역
1978. 09. 16 02:07:05 36.60 127.90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354
6 5.1 2014. 04. 01 04:48:35 36.95 124.50 충청남도 태안군 서북서쪽 약 100㎞ 해역
2016. 09. 12 19:44:32 35.76 129.19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690
8 5.0 2016. 07. 05 20:33:03 35.51 129.99 울산광역시 동구 동쪽 52㎞ 해역
2003. 03. 30 20:10:52 37.80 123.70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도 서남서쪽 약 80㎞ 해역
1978. 10. 07 18:19:52 36.60 126.70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장성리 119-10
지진 발생일 기준으로 한국의 지진 역대 톱 10은 위와 같다.# (북한 지역 포함, 1978년부터의 자료)


이 중 가장 인지도 있는 것은 2016년 9월 12일부터 발생하여 약 2년 동안 여진이 발생한 경주 지진이다. 최대 규모 5.8의 지진이 인구 밀집지역인 경주시 일대를 덮친데다, 지진 관측 이래로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 전국민이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거기다 여진도 계속되어 언제 끝날 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그리고 2017년 포항 지진이 발생하였는데, 규모는 경주 지진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으나 진원 깊이가 얕아 피해가 커졌다. 바로 다음 날 시행될 예정이었던 수능이 연기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고,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 그 이전에는 1978년 10월 7일에 일어났던 충남 홍성 지진이 인지도가 있었다. 20세기 들어서 발생한 지진 중 다른 지진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홍성 지진은 인구 밀집 지역인 홍성읍을 강타한 지진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진으로 홍성읍 지역의 건물 50%가 파괴(정확히는 가옥 2,800여 채에 균열이 생겼고, 2명이 다쳤다.)가 되었고 5억여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하였고, 한국이 지진에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도 이때부터 생겼다. [39][40]
    또한 홍성지진이 일어나기 1달전에 일어나 홍성 지진과 함께 한국이 지진안전지대가 아님을 증명(?)한 규모 5.2 속리산 지진도 있다.
  • 그리고 2년 뒤인 1980년 1월 8일 평안북도 의주군 일대서 경주 지진 이전까지 한반도 최대 규모의 지진이였던 의주 지진이 일어났다. 규모는 5.3.
  • 1981년 4월 15일 경북 포항시 동쪽 약 65km 해역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일어났다.
  • 1982년 3월 1일 경북 울진군 북동쪽 약 45km 해역에서 규모 4.7의 지진이 일어났다.
  • 1996년 12월 13일 13시 10분 17.3초 강원도 영월군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일어났다. 진앙의 깊이가 20km에 불과해 규모에 비해 진동이 넓게 감지되었다.
  • 1997년 6월 26일 03시 50분 21.8초 경북 경주시 동남동쪽 9km 지역에서 규모 4.2의 지진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진앙지가 2016년 경주 지진이 일어났던 곳 근처다.
  • 2007년 1월 20일 20시 56분 53초 강원도 오대산 일대에서 규모 4.8의 오대산 지진이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월정사 벽에 균열이 생기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후에도 4차례의 여진이 일어났다.
  • 2009년 5월 2일 07시 58분 28초 경북 안동시 서남서쪽 2km 지역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일어났다.
  • 2014년 4월 1일 04시 48분 35초 태안군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km 해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일어났다. 즉 5번째로 강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었을 정도. 약 4시간 30분 뒤에 같은 곳에서 규모 2.3의 여진이 한 번 더 일어났다.
  • 2017년 9월 3일 오후 12시 29분경 함북 길주 인근에서 규모 5.7의 지진이 발생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의한 인공지진이다.
  • 2017년 11월 15일 14시 29분 31초에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km 지역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그 이전인 14시 22분쯤에도 경북 포항시 북구 북서쪽 7km 지역에 2.6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 후 14시 32분에 같은 지역에 3.6의 지진이 일어났다. 14시 46분이랑 52분에 같은 지역에서 규모 2.5,2.4의 여진이 발생했고 이후에 15시,15시 3분에 규모 2.8~2.9의 여진이 발생했다. 16시 49분 30초에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8Km 지역에서 4.3의 여진이 발생 했다. 그 여파로 포항의 수능 고사장 일부에 균열이 발생하여 16일 잡힌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 2018년 2월 11일 05시 03분 03초 경북 포항시 북구 북서쪽 5km 지역에서 규모 4.6의 지진이 일어났다. 새벽 시간대였지만 인접 지역 주민들이 모두 놀라 깨고 대피하기도 하였다. 대구나 울산에서도 느껴졌다 하며 이것은 17년 일어난 포항지진의 여진이라 한다. 그날 규모 2이상의 여진이 9차례 발생하였다.
  • 2019년 2월 10일 12시 53분 경북 포항시 북구 동북 동쪽 50km 해역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했다,

위 표를 볼때 2000년대 들어서 탑10급 지진은 총 13건(공동 10위가 4건)중 9건, 2010년 이후로 좁혀도 탑10급이 6건이고, 그중에서도 2016년에만 3건이 집중되면서 더 이상 대한민국도 지진에서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봐야한다는 평. 특히나 규모 5 이상의 6~7할이 2010년 이후에 집중된데다, 최고수준의 지진이 가장 최신(2016년 9월 13일 기준)이란 점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봐야할듯.

한반도에서 직접 일어난 지진은 아니지만,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 구마모토에서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이 일어나면서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도 상당한 진동이 전해졌다.

게다가 북한 함경북도 동쪽 해상 및 함경북도 북동부 지역과 접한 러시아 프리모리예 지방에서도 M6.0 이상의 강진이 자주 발생하며, 지난 2010년 2월 18일에도 라선특별시와 불과 25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한-중국-러시아 접경지역에서 M6.7의 강진이 발생한 바가 있다. 다행히도 진원의 깊이가 560km나 되었기에 피해는 없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진앙의 깊이가 얕았더라면 라선특별시, 청진시, 회령시 등 함경북도 지역은 초토화되었을 것이고, 한반도 전역에 걸쳐 강한 진동을 느꼈을 것이다.

4. 지진 목록



[1] 이 지진은 칠숙석품이 난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했다.[N] NOAA 추정값이다.[L] 이기화 서울대 교수 및 기상청의 추정값이다.[S] 손문 부산대학교 지질환경과학과 교수의 추정값이다.[5] 역사지진들 중 인명피해 기록이 남아있는 몇안되는 지진이다. 기록은 단 한 줄로 남아 있는데, 삼국사기에 779년 3월경 경도(慶都; 경주)에 지진이 일어나 민옥이 무너지고 사망자가 백이 넘었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경주 남산에 부서지거나 넘어진 불상이 유독 많은 것도 이 지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6] 역사서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지진 때문에 불국사의 시설이 다수 무너졌고, 석가탑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한다.[7]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1311년 개경에서 지진이 발생해 왕궁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나와 있다.[8]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이날 송악산 서쪽에 있던 바위가 무너졌다고 한다.[9] 지진은 경북 전역에서 감지되었다.[10] 이 지진은 영남 지방 전역, 호남 지방 대부분의 지역, 충북 전역에서 감지되었다.[11] 이 지진은 전북 전역, 전남 일부 지역, 충남 일부 지역, 충북 대부분 지역에서 감지되었다.[12] 이 지진은 영남 지방 전역, 호남 지방 전역에서 40개가 넘는 지역에서 감지되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진앙지인 함양을 포함해서 현풍, 대구, 경산, 광주, 전주, 익산 등을 포함한 40개 이상의 지역에서 지진의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13] 이 지진은 지금의 함경북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감지되었다.[14] 이 지진은 제주도 및 함경북도 동부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감지되었다.[15] 이 지진은 충청도 전역, 호남 지방 전역, 영남 지방 전역에서 감지되었다.[16] 이 지진은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함경남도 전역에서 감지되었다.[17] 위의 평산 지진, 서울 지진과 더불어 열흘에 걸쳐 시리즈로 발생했다.[18] 이 지진의 진앙지는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시내 부근인데, 자인단층과 가까운 지역이기도 하다.[19] 이 해에 백두산 폭발이 있었다.[20] 이날 광해군이 김제남의 사사(사약형)를 명했다.[21] 아래 울산 지진, 진주 지진과 연동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22] 지진으로 인한 바위사태로 사망자 2명이 있었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N] NOAA 추정값이다.[L] 이기화 서울대 교수 및 기상청의 추정값이다.[S] 손문 부산대학교 지질환경과학과 교수의 추정값이다.[26] 여기서, 손문 교수의 추정값을 기록한 기사는 다음 사이트를 참고. 마지막으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헌철 박사는 이 지진에서 일어났다는 여러 현상들(대형 쓰나미 등)은 적어도 진도 VIII(Severe) 이상은 되어야 일어나는 것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 이전에 M8.0이나 M9.0까지 추정하기도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은 진도와 규모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실제로는 M6.5~7.4 로 보는 것이 옳다. 더 자세한 것은 해당 지진의 토론 항목을 참조하라.[27] 쓰나미가 실제로 발생했는지에 관해선 논란이 있다. 이 지진으로 영남 지방 전역이 최대진도 8(VIII)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진앙지인 울산은 최대진도 9~10(IX~X)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인명피해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데, 영남지역에서만 해도 엄청난 수의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이 없어 확정할 수 없다.. 만약 지금도 같은 진앙지에서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비 여하에 따라 피해가 클수도 있으며, 고리원전 등 동해안 원전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도 있다. 물론 안전장치가 있으니 심각한 피해까지는 안 갈 수도 있지만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28] 공교롭게도 이 지진은 1668년 7월 25일 중국 산둥 성에서 발생한 규모 M8.5, 최대진도 XII 지진과 겨우 1주일 차이가 난다. 게다가 이 지진이 일어났던 해에는 백두산이 분화하기도 했다.[29] 하필이면 이 지진은 바로 아래 행의 순창 지진과 함께, 경신대기근이 한창일 때 터졌다.[30] 이 지진은 6월 26일 양양 지진의 전진으로 추정된다. 더 정확한 자료가 있다면 정정 및 추가바람.[31] 1643년 울산 지진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적 지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악의 지진 중 하나. 이때 쓰나미까지 덮쳤다. 이 지진 이후에도 수개월간 여진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며 여진의 최대진도는 VI였다.[32] 이 지진은 남한 전역에서 진동이 감지되었다.[33] 이 해 10월 28일에 일본에서는 도카이 대지진 중 하나인 호에이 대지진(호에이 대지진은 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 셋 다 동시에 발생했으며, 규모는 M8.6이었다!)이 있었고, 12월 16일에는 후지산이 호에이 대분화를 일으켰다.[34] 이 지진은 한반도 전역에서 진동이 감지되었다.[35] 청진 지역은 지진다발지역인 러시아프리모리예 지방과 가깝다.[36]강원도 양양군 일대.[37] 이 기간 동안 발생했던 지진 중 가장 대표적인게 1932년 7월 4일의 지리산 쌍계사 지진으로 당시 리히터 규모는 5.1이다.[38] 한국 전쟁 중에도 한반도에 큰 지진이 한번 있었는데, 바로 1952년 3월 19일 평양에서 발생한 강서 지진이다. 한국은 당시 전란 상태여서 러시아나 중국, 일본 쪽의 기록으로만 남아있는데, 이 기록으로 미루어볼때 당시 리히터 규모는 M6.3 정도였다고 하며, 이는 한반도 및 인근지역에서 발생했던 계기지진 중 내륙에서 발생했던 지진으로써는 두번째로 강력하다.(가장 강력했던 것은 후술할 2010년 2월 18일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지진) 또한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도 1960년 10월 8일과 1977년 3월 9일에 북한 북동부와 접한 러시아 앞바다에서 규모 M6.8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1975년 6월 29일에는 동해상(정확하게는 북한 강원도 고성군 먼바다)에서 규모 M7.4의 지진이 발생했다. ### 게다가 2010년 2월 18일에도 북한의 라선특별시와 불과 25k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러시아 Lebedinoye 지역에서 M6.7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 이들 지진은 모두 2016년 발생한 경주 지진보다 0.5~1.0이나 더 높다. 그리고 1960년, 1975년, 1977년, 2010년 지진의 경우 진앙지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영토나 영해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질학적으로 한반도와 같은 지역에서 발생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한반도에서 이정도 규모의 지진이 언제든지 발생할수 있다는 방증이다.[39] 다만 홍성 지진의 경우 지진파가 멀리 퍼지지 않았고 홍성 지역에 집중되었기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해 앞서 발생했던 속리산 지진의 경우는 전라남도 광주시(현.광주광역시) 지역에서도 가구가 흔들리고 그릇에 떠놓은 물이 엎질러질 정도의 지진파가 전해졌으며, 새벽시간에 일어났던 지진이었던 만큼 서울 지역에서도 잠자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진동과 굉음으로 깼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 지진은 일본의 구마모토에서도 무감지진파가 감지되었다고 한다. #[40] 이 두 지진은 2년전 1976년 7월 28일 중국 허베이 성에서 일어났던 탕산 대지진의 영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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