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07:48:32

윤석열/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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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미담2.2. 이름의 표기와 발음

1. 개요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여러 가지 여담을 설명한 문서이다.

2. 상세

  • 파일:NISI20220310_0018577548_web.jpg
    휘호는 한글을 주로 쓰는 것으로 보인다.
  • 상당한 애주가로, 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SK그룹 회장 최태원윤석열과 동기생이다. 나이도 같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최태원이 굽신거린다는 반응이 많다. #
  • 대한민국 최초의 9수 대통령이다. # 물론 서울대학교라는 유수의 정재계 인사를 배출한 대학교지만 9수를 했다.
  • 역대 대통령-정치인 중에서 가장 귀족적이지 않고 탈권위주의자라는 평들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엄연한 정치인임에도 권위가 있어 보이진 않고 동네 아저씨같다. 이것도 윤석열 자신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으로 보긴 한다. # 명문가에 하인을 보유한 귀족 그 자체였던 장택상 국무총리와 비교하면 확실히 대조된다.
  • 그는 나무위키(...)를 공략으로 참고하겠다고 언급하다 대중적으로 크게 질타를 받았다. 애초에 나무위키를 공략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공적인 사람으로서 심각한 말 실수에 가깝다.
  • 대통령 취임 이후 국가 경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수출은 2023년 연간 6327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7.4% 감소했다. 월별로 보면 윤석열 정부 취임 후 총 20개월 중 12개월(2022년10월~2021년9월) 동안 수출이 감소해 평균 무려 2.5%나 줄었다. 평균 증가율은 9%다. 또한 대기업 감세로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같은 재벌들에게만 특혜를 주었다(...). # 공무원의 월급을 줄여서 공직 기강을 하락시켰다고 분석되며, 대기업 재벌 감세로 인한 세금충당을 일반 국민들이 부담하게 되었다.
  • 3S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다고 밝혔다.
  •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 후 아내 김건희가 안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었다. 12살 연하로, 2012년 3월에 결혼했다. 결혼 당시 윤석열이 51세. 재혼이 아닌 엄연한 초혼으로, 상당히 늦은 결혼이다. 일에 신경 쓰다 보니까 결혼이 매우 늦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검사들끼리 사담으로 '검찰 총각 대장'이라는 뜻의 검찰총장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적이 있다고 한다.[1] 결혼한 이듬해 늦둥이 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루머이고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다. 사실 아이가 생긴 적이 있긴 하나, 유산하고 말았다고. 이후 다시는 임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2]
  • 아내 김건희가 접대부 쥴리 의혹이 있자 논란이 되었는데 명예로운 검사가 천한 접대부랑 결혼할리가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르지만 한편 김건희가 실제로 접대부 쥴리라는 의혹을 재기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구속되어 지금 감옥에 있다. #
  • 윤여준환경부장관과도 같은 파평 윤씨이므로 먼 친척이다. 언론에서 굳이 촌수를 따지지 않고 종친이라고만 언급된 것을 보면 아주 먼 일가친척인 모양.[3] 윤석열이 21살 아래이지만, 항렬로는 '아저씨뻘'이라고 한다.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후 특별수사팀장에서 좌천되어 고검에서 근무하던 시절 수 많은 로펌에서 제의가 왔으나 모두 거절하면서 까마득한 후배들 밑에서 평검사로 업무를 계속 했다.
  • 윤석열은 초급 검사 시절에 김광림 차관 밑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사위가 바로 손준성 고위 검사인데 고발사주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김광림 차관의 사위로 700억대 현물성 재산을 가졌고 현직 검사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도 알려졌다. 역대 검사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1조 4,500억원(2021년 기준)을 보유한 홍석조 고위 검사다.
  • 2013년에는 재산 과다 신고를 했다가 징계를 받았다. 부인 김건희가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4억 5천만 원을 담보 대출받았는데 이 채무를 실수로 신고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과다 신고한 것. 이 당시 여론은 징계가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탈세 등을 위해서 재산을 축소 신고를 하는 사례는 많아도, 재산을 과다 신고하는 사례는 매우 적고 이를 처벌하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박범계 의원의 페이스북 글이 이 문제에 대해 윤석열을 옹호하고 검사 일을 계속 맡아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올린 글이다. 다만, 윤석열의 사례와는 별개로 한 공직자가 '재산을 과다 신고했다고 처벌하는 규정은 법에 위배된다'라고 주장하며 건 소송에 대해 법원에서 '과다 신고 또한 재산의 부당 증식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처벌하는 규정은 적법하다'라는 판결을 내린 적은 있다. 쉽게 해석하면, 고위공직자가 '어떠한 조건의 성사'를 조건으로 청탁을 받고 일이 완료된 후 뇌물을 받기로 했다면, 일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꾸준히 과다 신고를 해야 서류상으로 갑자기 재산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재산 과다 신고를 막는 규정이 있는 것이다.[4] 당시 징계 내용은 감봉 1개월이었으나 이 말고도 두 가지의 징계 사항이 합쳐진 것이다.#
  • 국정원 사건 청문회 당시 새누리당 측이 '윤석열은 민주당에서 키운 좌파 검사인데,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당시에 민주당 이상수 전 사무총장, 안희정 충남지사,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수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을 외화관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결국에는 이들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저들에게 심판의 철퇴를 내리도록 했던 사람이 윤석열 검사장 본인으로 판명되자 자유한국당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런 경력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이 진정성을 얻는 데 더욱 도움이 되었으니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 당시의 '윤석열이 당파적이고 편파적이었다'며 이번 인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후 문재인 정부 첫 정무수석이었던 전병헌을 수사해 직접 사퇴까지 시키자[5] 자유한국당은 완전히 조용해지고 말았다.[6]

    그로부터 2년 후,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엄정하게 수사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하게 되었는데, 정작 그 명령 그대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고 이에 더해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과 문재인 정권의 고위직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을 수사하며[7] 살아있는 정권에 칼질했다. 윤석열이 특정 수사 경과 또는 그 결과만을 가지고 그가 어느 편을 들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말,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하여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하고, 징계를 청구하는 일도 일어났다.
  • 국정원 특별수사팀으로 팀장과 부팀장으로 함께 일하던 윤석열과 박형철은 보복 인사로 좌천되었다. 이후, 박형철은 검찰을 나와 변호사 개업을 했고, 윤석열은 지방을 돌았다. 밀려났던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야 서울중앙지검장과 반부패비서관으로 명예 회복되는 줄 알았으나 박형철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및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과 연관해서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파일:external/8332926c20966411a518447fd781d53542d14c4b5ba34f562d83561c1a932940.jpg
  •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에 대하여 열린 국정감사 때 한창 눈을 감고 고민하던 중 사진이 찍혔는데, 하필이면 손가락 모양이 오묘하다. 다시 복귀한 2017년 당시에는 네티즌들에게 인생짤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후 대선후보로 등록되어 이곳저곳에서 출연을 하면서 멋쩍은 상황이 되면 검지나 중지로 눈썹 위를 긁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서 평소 습관인 듯하다.
  • 2017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밝혀진 바로는 64억 7,195만 원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2위를 차지했다.[8] 법무·검찰직 공무원 중에서는 1위이다. 다만 이 중 본인 재산은 약 2억 7천만 원 정도로 약 4% 정도만 차지한다. 나머지는 모두 전시기획자인 부인 김건희의 재산. 2019년 현재에는 신고된 재산이 65억 9,076만 원으로 늘었으나 정작 윤석열 본인의 실 재산은 2억 1,400만 원으로 오히려 줄어버렸다. 하지만 2024년 재산이 늘어나.74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 애초에 정치인 재산을 믿는 사람이 바보다. 정치인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신고한 재산은 10억 원 이었으나 2024년 기준 소유한 재산만 267조 원에 추정되고 있다. # #
  •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여러모로 우병우와 대조되는 인물인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박지원이 밝힌 과거 경력으론, 우병우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재직 당시 그 휘하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성격적인 면이 닮아서 서로 충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데, 윤석열은 능력으로만 따지면 우병우를 높이 평가한다고 밝힌 바가 있고[9] 오만방자하고 자기만 잘난 줄 안다는 소릴 듣는 우병우도 윤석열은 높게 평가하고 굉장히 신뢰했다고 한다.
  • 이명박 정부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당시 인천지검장과 민정수석인 최재경과는 서울지검 재직 당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으며 BBK 사건, 박연차 게이트 등 굵직한 사건들을 담당했었다.[10] 그리고 이후의 행보도 비슷한데 윤석열은 박근혜정부 당시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가 평검사로 좌천당했고 최재경 역시 안대희 전 대법관[11]의 중수부 폐지 주장에 반대하다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중수부 폐지와 동시에 전주지검장으로 좌천, 이후 인천지검장으로 복귀하나 유병언 검거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검찰에서 반강제로 쫓겨나게 된다.
  • 최순실 특검의 주요 검사로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서울지검장으로 온 이후에는 이명박에 대한 비리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좌천되었던 것은 두 대통령과 연관 된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수년 동안 아무 소식 없다가 다시 언론이 주목하게 된 계기는 최순실 특검에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복귀하였고, 이명박을 구속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그 칼을 사법부로 향하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의 조사를 위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소환하여 의전 서열 1위, 3위를 소환조사해본 검사가 되었다.[12] 사법농단 수사를 마치고 검찰총장에 임명이 된 후에는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조국의 비리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으며 연말인 12월에는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어마어마한 중노동을 하고 있는 대표격 인물이다. 박근혜-최순실,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두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어진 사법부, 심지어 2019년엔 버닝썬을 통한 사회문화계까지 건들게 생겼으니 그 누가 봐도 중노동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본인이 전부 담당 수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지검장으로서 본인이 총감독이 되어야하니 업무량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현 정부가 얼마나 윤석열의 능력을 출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이명박, 박근혜와 사법부를 관통하는 칼을 쥔 자라고 문재인 정부 초반에 불렸을 정도. 그러더니 이어 검찰총장이 된 지 40일만에 조국 관련 수사로 여지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 미식가이며 대식가다. 젊었을 때 하루에 5끼를 먹는 것이 기본이었을 정도로 많이 먹은데다 한참 젊을 때는 하루에 맥주 3만CC를 마셨다는 일화도 있으며, 나이가 든 지금도 방송에 나온 먹방만 봐도 상당히 많이 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밖에서 먹을 때는 단순히 '맛집'을 찾아다니는 정도를 넘어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 유래 등을 줄줄 꿰고 즉석에서 음식 강의가 가능한 정도라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게 자기 사람들이랑 밥 먹고 술 먹으면서 떠드는 거라고 하며 본인도 요리를 매우 잘 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13][14] 그 중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계란말이, 그리고 경상도 특유의 빨간 소고기뭇국이라고 한다. # 2021년 9월 19일 집사부일체에서 수준급의 요리 실력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 심지어 그 김건희 인터뷰 녹취록에서도 김건희가 "난 (밥을) 아예 안 하고 우리 남편이 다 하지."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가지로 식도락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즐기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 초대 먹방 대통령 이명박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이명박은 당시 나이 때문인지 크게 많이는 못 먹었고 윤석열은 그냥 많이 먹기에 궤가 반대라는 말도 있다.
  •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대통령실 요리사들에게 조리법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 대선 후보 출마 이후 음식 먹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쩝쩝 소리를 거의 안 내는 편이다. 일단 어떤 음식이든 입에 넣고서 입을 꾹 다물고 오물거리며 먹는 스타일이라, 흔히 먹방이라고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조용히 먹는 편. 다만 면을 먹을 때는[15] 후루룩 소리를 과하게 내나, 어느 순간부터 미디어 노출이 잦아지자 국수도 끊어먹고 있다.
  • 운전면허가 없다고 한다. # 1982년,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큰 부등시(不等視)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는데, 병역면제 논란에 대해 "부등시로 운전면허도 취득하지 못했고, 현재도 계단을 오를 때 다소 어려움이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 또한 만일 자신이 운전면허 필기 시험을 봤다면 한 번에 못 붙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일각에서는 윤석열이 "나는 조직에 충성할 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한 발언을 두고서 검찰 조직을 우선시하는 '검찰주의자'라고 평가하는데, 이에 대해 본인은 "일각에서 나를 '검찰주의자'라고 평가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헌법주의자'다"라고 주장하였다. # 검찰 시절에는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무슨 정치성향의 정치인이든 무섭게 수사하기 때문에 검찰주의자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지지자들에게는 공정의 상징으로 평가받지만 박근혜 등 본인이 수사한 정치인들의 표는 일부 잃게 되었다.
  • 정치에는 줄곧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 2020년 1월 세계일보에서 진행한 차기 대통령선거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32.2%)에 이어 2위(10.8%)를 차지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보다 0.7%p 높은 수치이다. 특히 무당층과 새보수당 지지층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 자유통일당 김문수 대표가 데려오고 싶은 대선 후보 1순위로 꼽기도 했다. 이후 대검찰청 측의 요청으로 윤석열은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빠지게 되었으나 이후에는 요청을 하지 않아 계속 여론조사에 이름이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뒤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SBS 대선주자 특집방송 집사부일체(2021년 9월 19일, 187회)에 출연해 자신의 프로필[16]을 밝혔는데 최규하 전 대통령[17]과 같은 장신인 대통령이다. 흥미롭게도 최규하와 윤석열은 강릉 최씨와 인연이 깊다. 최규하는 본관이 강릉 최씨, 윤석열은 모친이 강릉 최씨이다.
  •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미국시카고학파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꼽았다.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고 했다. # 이를 두고 부친이 경제학자인 것이 윤 총장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윤 총장 본인 역시 공정거래 분야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 스누라이프에서 진행된 '2020 하반기 자랑스러운 서울대 동문상' 투표[18]에서 총투표수 2,116표 중 1,908표를 얻어 90.17%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였다. 2위인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672표, 31.76%)과 비교해도 격차가 매우 큰 수준이다. 반면 조국은 득표율이 2.17%밖에 안 된다. #
  • '걸레스님'으로 알려진 중광스님과도 연이 좀 있는데,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윤석열이 당시 5.18 민주화운동(1980년)에 대한 신군부의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가 피신 목적으로 강원도의 여러 사찰들을 전전하던 시절에 낙산사에서 중광과 마주쳤고, 윤석열이 먼저 중광을 알아보고[19] 인사를 건넨 뒤로 중광과 함께 산사 등을 돌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다만 윤석열 본인은 불자가 아니고[20] 그저 불교에 좀 호의적인 정도로[21] 3월 4일 사퇴를 전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나 좀 다녀볼까?"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윤석열이 지금의 아내와 만나게 된 것도 어느 스님이 나서서 중신을 서 준 것이었다고... #
  • 덩치에 비해 목소리가 상당히 하이톤인 편이다. 다만 하이톤인 것과는 다르게 목소리 자체는 굵은 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성대모사 대상으로도 많이 언급된다. 또한 서울에서 나고 자란 만큼 전통적인 서울 억양을 구사한다.[22]
  • 파일:윤석열.gif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시선처리를 하지 못해 '도리도리' 하는 듯한 모습[23]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고개를 자주 흔드는 이른바 '도리도리' 습관에 대해 비판적 평가가 나온 것을 두고 "옆에서 지적하고 있으니 차차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윤석열 친구' 권성동 "'도리도리' 습관, 지적하고 있으니 좋아질 것". 다만 검사시절에도 언론브리핑을 할 때 도리도리를 하는 모습이 있었고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라는 발언을 할 때에도 도리도리를 하고 있었다.
  • 윤석열이 대한민국 대통령당선되어 꽤 재미있는 기록들을 여럿 세우게 되었다. 일단 사상 3번째로 정치 경력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나머지 둘은 박정희전두환이기에 제6공화국 출범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승만의 경우, 무투표 당선에다가 재임기간도 2개월 10일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동대문구 갑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짧게나마 재직한 적이 있다. 윤보선은 서울시장(관선), 상공부장관, 국회의원 출신이며, 최규하 역시 외무부차관, 외무부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를 지내다가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명백히 대통령 이외의 제각기 정치 이력들이 존재한다. 다만 박정희는 비록 임시기관의 임시직이기는 해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장 직과 내각수반 직을 지냈고 전두환 역시 임시직이기는 해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 직을 지냈기 때문에 임시직으로나마 정치 이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태우부터 문재인까지는 전원 국회의원 유경험자들이며 노태우는 내무부장관, 노무현은 해수부장관, 이명박은 서울시장(민선), 문재인은 대통령비서실장도 역임했었다. 이로 보면 윤석열은 임시직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되는 기록도 세운 셈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최대도시이자 수도지만 대통령을 배출 못한 서울에서 태어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고[24], 의외로 아직 없던 서울법대 출신, 대한염증협회 가입자(취임후 3일)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거기에, 같은 성씨의 대통령이 두 번씩 나온다라는 한국의 묘한 징크스가 이어지게 되었다. 이승만 - 이명박, 박정희 - 박근혜, 노태우 - 노무현, 김영삼 - 김대중에 이어, 윤보선 - 윤석열이 이어지게 되는 것. 넷째는 사상 최초의 무자녀 기혼 대통령이자 후손없는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도 생긴다. 다섯번째는 여당이 정권 잡으면 2번연임하면서 10년을 유지하지만, 윤석열이 당선되면서 5년만에 정권교체가 되었다.
  • 대선 출마 선언을 한 2021년 6월 29일, 페이스북 계정을 처음으로 개설했다. 오전 9시경 처음 계정을 열었다가 캠프 측에서 베타테스트라며 잠시 비활성화했고, 이후 오후 5시 40분쯤 다시 열었다가 2시간 뒤 페이스북 본사에 의해 돌연 비활성화되었다. 이에 캠프 측은 "검토요청서를 페이스북 본사에 발송했고, 다음날 오후쯤에 비활성화 이유와 조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 현재, 페이스북에 검토가 끝나서 다시 활성화가 된 상태이다. 친구추가 요청이 갑작스럽게 많이 들어와서 비활성화가 되었다고 한다. 페이스북의 자기소개란에 "그 석열이 "형" 맞습니다고 적어놓아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하지만 이틀 뒤인 7월 1일 '애처가'와 '아메리칸 파이를?'이라는 2개 항목을 내렸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 다만 관련 논란을 의식한 듯 후에 ‘애처가’ 소개 문구는 복구되었다.
  • 이름의 초성만 보면 ㅇㅅㅇ다. 윤석열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ㅇㅅㅇ를 작성해 놓았다.
  • 김건희의 녹취록에 따르면 노무현의 영화를 보고 2시간 동안 울 정도로 뼛 속 깊이 노사모인 것으로 보여진다. # 김건희의 언급에 따르면 사실상 가장 존경하고 좋아했던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연설도 다 외우고 다닌다고. 노무현의 정치 감각을 메시에 비유하기도 해 축구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강정마을에 들렀을때는 노무현을 회상하다 잠시 감정이 북받쳐 울컥하기도 했을 정도로 노무현을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 또한 유세 스타일 역시 노무현을 어느 정도 참고한 듯 노무현과 유사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정치 롤모델이 노무현인 셈. 노무현 고향에 간 후에는 노무현을 선거 장사에 이용한다며 민주당을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렇게 비판당하자 민주당측에선 윤석열을 비난할 정도로 발끈하기도 했다.[25] 또한 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인수위 가동 전에 쉬면서 정국 구상을 하는게 어떻겠냔 제안에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되고 인수위 출범 전에 제주도 가서 쉬셨다. 필요한 일만 맡겨놓고 쉬려 한다'라며 팬덤도 몰랐을 이야기로 대답하기도 했다.#한 마디로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 것.
  • 의외로 노래 실력이 상당하다. 후보 시절 노래를 부른 영상이 남아 있으며, 2023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아메리칸 파이불렀다[26][27]. 술 자리에서 윤석열이 잘 부르던 노래는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로 시작하는 돈 맥클린의 빈센트아메리칸 파이였다. 익명을 부탁한 그들의 선배 A씨는 “석열이는 반주 없이 돈 맥클린의 노래를 가사도 보지 않고 멋지게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법대생이었다”고 말했다.[28] 괜히 바이든이 깁슨기타를 선물한게 아니다. J-45의 하위 기종인 j-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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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7마리를 키우고 있다. 유기견 2마리,[29] 유기묘 3마리, 일반 반려견 2마리[30]를 키우고 있으며, 유기견 보호단체 회원이기도 하다.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은 다음날인 2020년 12월 18일에 '토리'를 데리고 자택 인근에서 산책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 #
  • 이준석의 말에 의하면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과묵한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몇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떠들 정도의 엄청난 수다쟁이며 생각치도 못한 별별 것들을 다 외우고 다닐 정도로 잡학다식하다고 한다. 후술되어 있는 검찰 동료들의 썰을 보면 이미 주변인들에게 상당한 투 머치 토커로 유명한 듯하다. 후에 언론 관계자도 이에 대해 "대화해 보면 다 좋은데 말이 정말 많다"며 그가 투 머치 토커인 것을 확실하게 인증했다.#
  • 도리도리 말고도 연설 도중 "에-"라는 추임새를 붙이는 말버릇이 있다.[33] 완벽히 외운 연설을 외칠 때나 평소 말할 때는 그런 특징이 안 나는 것으로 보아 긴장해서 다음에 할 말이 생각이 바로바로 안 날 때 생기는 버릇으로 추정된다.
  • 사법시험에 여러 번 낙방했으면서도 공부보다는 지인들과 놀러다니는데 열중하자 어느날 어머니가 '자꾸 그러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야단을 쳤다. 그러자 윤석열은 "제가 장남인데 파볼테면 파 보세요"라고 받아쳤다고. 가히 서울법대생이자 사법시험 2차생[34]다운 답변이다. 당시 민법상 호주의 직계비속 장남은 호적에서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민법 제789조)[35] 현재는 개정되었다.
  • 대선 이후로 상당히 다이어트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검사 시절과 검찰총장 사직이후 내 몸무게가 100kg라 아무리 흔들어대도 안 흔들린다고 농담을 했는데, 이후 프로필을 90kg라고 정정한 걸 보면 대선레이스 속에서 많이 뺀 것 같다. 실제로 대통령 프로필 사진과 검찰총장 시절 프로필 사진을 보면 턱이 둘로 접히던 시절에서 턱선이 드러난다.사실 그냥 지역구만 돌면 되는 타 선거도 강행군인데 대선은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니 당연히 살이 빠질 수밖에 없다.
  • 영화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젊은 시절에도 명보극장에서 친구들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인상깊게 봤다고 하며, 노무현 전기영화인 변호인을 보고 2시간동안 울었다는 부인 김건희의 말이 있다.
  • 대선 선거운동 기간부터 어퍼컷이 자신의 대표 셀레브레이션이 되었다. 처음에는 2월 15일 부산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호응을 위해 즉석에서 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되어# 선거운동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에는 연설을 다 마치고 어퍼컷을 보여주거나, 아예 유세차에 올라오자마자 어퍼컷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선된 이후에도 지방 일정 연설 도중 즉석에서 어퍼컷을 보여주고,# 심지어 인수위 해단식에서도 어퍼컷을 보여주는 등# 아예 어퍼컷을 본인의 시그니처 포즈로 삼고 있다.
  • 요리 실력이 상당하며 본인도 자부심이 꽤 강한듯 이걸 홍보 요소로 이용하기도 했다.[38]
  • 대한민국 정치사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굉장히 독특한 선거 이력을 가졌는데, 직접 선거로 행해지는 공직 선거 첫 도전에 대통령에 당선된 기록은 윤석열 외에는 박정희 뿐이다.[39] 또 만약 대통령 퇴임 이후 다른 선거에 도전하지 않는다면[40], 대통령 선거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선거 이력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보유하게 된다.
  • 윤석열이 재학 당시 서울대 법대 정원은 200~30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배정된 반이 다르면 본인이 활달하지 않은 이상은 동기들끼리 잘 모르고, 동아리 활동은 꽤 하는데 학생회 활동은 잘 안한다고 한다. 그 시절 윤석열의 동기인 석동현이 모 선배에게 전화를 하여 "형, 언제 입학했지?" 모 선배는 "기억이 잘 나질 않네" 석동현은 자꾸 얼버무리는 모 선배의 태도를 보고, 서울대 법대 학적과에 전화하여 모 선배에 대한 신상을 물어보니 "그런 이름은 입학한 적도, 졸업한 적도 없다"라고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모 선배는 서울법대생이라고 사칭한 학력위조를 비롯해 사기를 치기 위한 목적으로 저축은행을 인수하여 희대의 사기 행각을 저지른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 김찬경이다. 그 시절 그에 대한 소문이 삽시간에 번졌고, 서울대 79학번 동기인 윤석열, 석동현, 남기춘이 모 선배를 잡으려고 신림동을 샅샅이 뒤졌다고 한다.
  • 윤석열은 50세가 넘어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서초동 도로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차가 엄청 붐벼 한동안 도로가 마비였다고 한다. 결혼식에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대개는 바쁘고 하다보니 축의금만 보내는데, 동기를 비롯하여 지인들이 "윤석열이 장가를 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지 당연히 가야지" 실제로 결혼을 하나 안하나 확인하려고 갔다고 한다. 윤석열의 부모님도 결혼을 안한다고 딱히 엄청 보채지도 않았고 결혼을 해도 안해도 상관없다 이런식으로[41] 일관했다고 한다. 또한 윤석열의 여동생도 40살이 넘어서 결혼을 했다고 한다.
  • 먹는 것을 좋아하고 일을 하다보면 끼니를 거를 법도 한데 딱 식사시간되면 "밥부터 먹고 하자"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OO야 밥 먹으러 가자", 후배 왈 "제가 요즘 살이 쪄서, 다이어트중입니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윤석열이 후배에게 "다이어트 한다는 새끼들 치고 일 잘하는 새끼 한명도 못봤다고"그렇게 농을 치고 간다고 한다.[42]
  • 2023년 4월 24일 미 백악관 대변인이 윤석열을 대통령이라 불렀다.(...) #
  • 미 상원의회서 43분간 영어 스피칭을 했다. 중간중간 대본에 없는 내용을 즉시 프리토킹을 한 것으로 보아 영어 회화에는 꽤 능통한 편으로 보인다.

2.1. 미담


  • 학창시절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윤석열은 사법시험에 붙기 위해 9수를 하면서 '신림9동 신선'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신림동 '동생'들과 토론을 즐겼다고 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그의 주변엔 배 곯는 후배들이 없었더라'는 말도 전해온다. 연수원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 '군기 반장' 역할을 도맡았다고 한다.
  • 23기 동기인 조우성 로펌 CDRI(기업분쟁연구소) 대표 변호사에 의하면, 검찰을 잠시 그만두고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약 1년간 일했을 당시 의뢰인에게 그런 일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호통을 치는 등 다른 변호사들을 당황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윤석열은 적성에 안 맞는[43] 대형 로펌 변호사를 1년 만에 관두고 경력직 채용 형식으로 검찰로 복직했다고 한다.[44]
  • 연수원 동기모임에서 한 사람이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가 각자 먹은 만큼 그 사람에게 현찰을 주려고 했는데, 윤석열이 '이건 카드깡이다'라면서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밥값을 각자 현금으로 계산했다. 오히려 연수원 제23기 출신들(윤석열과는 동기)은 '그런 면이 있어서 우리가 윤석열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45] 카드깡은 보통 매출을 일으킨 후 일부 금액을 제외하고 현금으로 돌려받거나, 실제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사업자의 카드 매출기에서 일으킨 걸 의미하기에 저건 사실 아무 문제도 아니지만 윤석열이 대단한 원칙주의자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46][47]
  • 문재인 정부에서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부동산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정작 정부 관료들이 2020년까지도 집을 팔지 않고 다주택자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일었다. 이 가운데 윤 총장은 2018년 송파구 주택을 팔고 서초구 주택만 남겨놓아서 다주택자에서 1주택자가 되었다. 이것 때문에 "대통령 참모들도 대통령 지시를 무시했는데 윤 총장이 집 판 상황이 웃기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 # [48]
  • 장애견 토리에 이어 정직 이틀날인 11월 19일 TV조선 보도로 아내인 김건희씨에게 도시락을 싸주며 간호한다는 미담이 이어졌다. 윤 총장 지인들에 따르면 "아내가 스트레스를 워낙 많이 받아서 식사도 잘 못 하는 상황이라 체중이 너무 과하게 줄어 주변에서 걱정을 한다."라며 "윤 총장이 원래 요리를 잘하고 최근들어 아내에게 도시락까지 싸줄 정도다."라는 보도가 있었다.
  • 정직 처분을 받은 이후 반려견, 아내와 관련한 미담 보도가 잇따르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에게는 (내가 화제가 되었을 때와는 달리) 정감 넘치는 미담 보도가 잇따른다", "왜 미담 사진만 찍어 소개하고 질문하지 않는가", "장애견 입양 건, 장애견 이름, 산책 시간은 누가 알려주었는가"라며 언론 보도에 불만을 표현했다. # #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원래 미담이 없고 혐의만 있는 사람에겐 기자들의 질문이 공격적이다.", "조 전 장관님이 인생을 잘못 살아오셨나 보죠."라며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 중앙지검 검사장 시절 윤 총장이 중앙지검 간부들, 운전기사, 수행비서 등과 함께 순댓국을 먹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2020년 12월에 유튜브에 올라왔고 화제가 되었다. 기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 검사 출신이라서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지만, 윤석열 캠프에서 경제정책 자문을 맡은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49]는 윤 후보가 경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
    윤 후보가 경제학과 교수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평소 경제학 관련 책을 많이 읽으셨고, 검사로써 경제 관련 이슈를 많이 접하셔서 그런지,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탁월하다. 몇개월 전에 멋있는 한방이 없느냐는 질문에 국가 부채 관련 이슈를 설명해 드렸었다. 이후 본인이 직접 공부를 하시고 (한은 국채 직매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그걸 토론회에 딱 이야기 했다. 그런 부분이 나도 놀랐다.


    윤 후보는 경제 분야를 포함해 많은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뛰어나다. 그간 전문가들과 많은 토론을 해왔고 학습해 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열려있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 같다.
  • 2019년 검찰총장 재직 시절, 발달장애인 작가가 그린 스위스 풍경 작품을 구매해 대검찰청에 기증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초동 자택에도 다운증후군을 앓는 작가의 그림이 걸려있다고도 한다. #
* 초임검사 시절 2년 동안 하숙집에서 살았는데, 하숙집 아주머니(현재는 할머니) 말에 따르면 윤석열이 인성도 좋고, 인정도 있고, 의리도 있고, 정도 있다고 한다. 하숙집에서의 인연으로 무려 30년 정도나 지났는데도 2021년 10월 윤 후보의 대구 방문 일정 중 하숙집 할머니가 찾아오기도 했다.
  • 2022년 1월 서울의소리열린공감TV 등이 공개한 부인 김건희의 7시간 녹취록 중에는 "난 밥은 아예 안 하고 우리 남편이 다 한다"는 대목이 있었다. 이를 두고 오히려 윤석열의 가정적인 면모가 돋보인 대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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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판매되는 모습 인스타그램 게시물[50]
* 대구 서문시장의 노점상이 윤석열이 사용하는 베개와 똑같은 베개를 판매하며 윤석열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일이 생겼는데, 윤석열은 이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서문시장 상인분들 힘내시고 마니 파새오" 라는 응원의 메세지를 해시태그로 달았다. "영리행위에 이미지를 함부로 가져다 쓰는것이 초상권 침해 아니냐'는 댓글에는 "소상공인들께 도움이 된다면 초상권은 무료"라며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현지시각 2023년 6월 20일, 프랑스 순방 중 파리의 한 공원에서 천안함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모자를 쓴 채 산책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천안함 모자는 2021년 대선 출마 선언 이전에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인 전준영 씨에게서 받은 선물이다. #

2.2. 이름의 표기와 발음

  • 발음과 한글 표기
    • 그의 이름을 부를 때 [윤서결]인지 [윤성녈]인지를 두고 종종 논쟁이 되기도 한다.
    • 본인은 자기 이름을 [윤성녈]로 발음하고 그렇게 불러 주길 요청한다.[51]
      그런데 [윤성녈]이라는 발음은 'ㄴ' 첨가 및 비음화([윤석녈→윤성녈])를 적용한 발음인데, 표준 발음법 제7장 제29항에 따르면 한국어에서 'ㄴ' 첨가는 합성어나 파생어에서 앞 어근이나 접두사의 끝이 자음이고, 뒤 어근이나 (한자) 접미사의 첫 음절이 단모음 '이'나 반모음 y[j]로 시작하는 경우 나타난다.[52] 그런데 인명 '석열'은 합성어나 파생어가 아니므로(즉 '석-열'로 나뉘는 구조가 아니므로) 단순 연음만 한 [서결]이 원칙적으로는 맞는 발음이다.
    • 즉 원칙대로면 [윤서결]이 옳은 발음이나, 이름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본인이 [윤성녈]이라는 발음을 원한다면 그게 공식 발음이 된다. 언론 및 방송에서도 본인의 방식대로 [윤성녈]로 발음해준다. 국립국어원에서도 개별 인명에 관해서는 발음 규정이 없으며 [윤성녈]로 발음해도 문제없다고 밝혔다.국립국어원의 입장주영진의 뉴스브리핑
    • 본인이 [윤성녈]을 선호하다 보니 이름 표기가 '윤석렬'인 줄 아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포털에 윤석렬이라 검색해도 우수수 쏟아진다. 그럴 만도 한 게 /ㄱ/와 /ㄹ/가 인접하는 경우 그 발음이 [ㄱㄴ→ㅇㄴ]가 되기 때문에 표기가 '윤석렬'이라고 가정해도 발음이 [윤석녈→윤성녈]이 되어 당사자의 발음 [윤성녈]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즉 [윤성녈]이라는 발음을 들으면 '윤석렬'이라는 표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당장 윤석열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도 '윤석렬'로 오기(誤記)되어 있다. 그러나 한자 ''의 훈음은 '기쁠 열'로, '렬'에 두음법칙을 적용한 게 아니라[53] 원래 '열'이기 때문에 '윤석렬'은 잘못된 표기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나 각종 북한 매체에서도 이에 따라 윤석열로 표기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도 [윤성녈]이라고 발음한다.#
    • 정리하면 한글 표기는 '윤석열', 당사자의 공식 발음은 [윤성녈]이다.
  • 로마자 표기
    • 국민의힘에서는 로마자 표기로 Yoon Suk Yeol[54]을 사용하고 있다.
    • 본인이 직접 개설해 만든 페이스북 계정은 sukyeol.yoon[55][56]으로 되어 있다.
    • 언론에서는 주로 Yoon Suk-yeol[57]을 사용하고 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나온 표기에 따라 Yoon Seok-youl이 사용되기도 하였고, 성씨를 제외한 이름 부분에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적용한 Yoon Seok-yeol 표기 등도 혼용되고 있다.
    • 검찰총장 임기 중에는 로마자 표기가 혼용되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는 Yoon Seok Youl로 표기가 되어 있으며, 대검찰청 화상 회의 때는 YOON Suk-yeol로 표기된 명패를 사용하였다.
    • 나무위키에서는 토론을 통해 프로필 난의 로마자 표기를 Yoon Suk-yeol[58]로 결정하였다.


[1] 그리고 별명대로 검찰총장이 되었다.[2]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 수사를 하면서 정권의 공격을 당했고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유산됐다고 기사가 나왔다. #[3] 사실 윤씨는 인구수 8위로 백만 명이 넘으며, 파평 윤씨는 그 중에서도 3/4을 차지하는 대성(大姓)이다. 즉, 애초에 워낙 많기 때문에 8촌 이내의 가까운 친척이 아닌 이상 종친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4] 물론 이렇기에 4억 5천만 원을 과다신고하는 경우는 당연히 없다. 나 뇌물 받았어요라고 자수하는 꼴밖에 안 되기 때문. 저런 경우야 누가 봐도 단순 본인 과실이긴 하지만.[5] 영전 당시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혹시라도 여당은 봐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윤석열을 옹호했는데, 이 건으로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제대로 보여주었다.[6] 윤석열은 이명박 정부 당시 중수1과장을 지내는 등 이전부터도 권력 밖에 있었다고는 보기 힘든 인물인데 사실 중수부 재직 당시 윤석열의 직속상관이던 중수부장이 바로 이명박우병우라고 불리던 최재경이였고 지검장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인 최교일이였다. 사실 2018년 이전의 커리어로만 따지면 이명박 정부 시절에 가장 잘나갔던 셈이다.[7]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송철호울산광역시장, 황운하 국회의원(前 대전경찰청장)이 이 의혹과 관련되어 검찰에 범죄 혐의 피의자로 입건되었다. 檢, 울산경찰청 등 압수수색…송철호·송병기·한병도 피의자 적시[8] 1위는 장하성 정책실장(93억), 3등은 조국 민정수석(43억 8,981만).[9] 참고로 박영수 특검도 특검 종료 후 한 인터뷰에서 "우병우, 내가 부장검사 때 30명 가까이 사망한 방화 사건을 맡아서 우병우 검사를 데리고 수사했는데, 일은 참 잘해, 일은…" 이라며 우병우의 능력은 높이 평가했다.[10] 여담으로 윤석열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우병우도 박연차게이트 당시 노무현을 수사했었다.[11] 검사 출신 대법관이다. 재미있는 것은 본인 역시 노무현 정부 당시에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바 있으며 대법관 퇴임 이후 변호사 개업과 동시에 새누리당에 입당했다.[12] 다만 지휘를 하지, 직접 조사하지는 않는다.[13] 아버지가 윤석열더러 "검사 관두면 변호사 말고 식당 해라"라고 말했었을 정도.[14] 윤석열이 밝히길 어머니가 요리를 잘 하셨고,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무언가 하시면 옆에서 지켜보았다고 한다. 아마도 윤석열이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걸로 보인다.[15]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나왔을 때는 식객 작가인 허영만 앞에서 부산은 밀면, 충청도는 멸치국수, 경상도는 안동국시다!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국수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면 예찬론을 밝혔다.[16] 신장 178cm, 체중 90kg.[17] 신장 178cm. 관련 자료.[18] 최대 3명까지 복수투표가 가능하다.[19] 당시 중광은 조계종단에서 용인될 수 없는 갖은 기행으로 1979년에 승적을 박탈당한 뒤였다.[20] 윤석열의 모친은 실제 불자로, 강릉시 출신인데, 강릉시를 위시한 강원도 영동 지방은 경상도와 마찬가지로 불교세가 상당한 강세를 보이는 곳이다. 또한 윤 전 총장의 외가에서도 강원도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강릉에서 11, 제12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봉모 전 의원이 윤석열의 외할머니의 동생이다.[21] 무종교자였던 박정희도 아내인 육영수 여사가 불자라 나름 불교에 호의적이었다. 다만 박정희는 결혼식을 성당에서 올렸고 장례 미사도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하는 등 천주교 쪽에 조금 더 가까웠다. 실제로 박정희는 종교계와 잔뜩 싸웠지만 직접적인 탄압은 없었다.[22] 80년대 서울시민 인터뷰 영상들을 찾아보면 말투의 유사성을 느낄 수 있다.[23] 그래서 도리도리, 윤도리라는 별명이 생겼다.[24] 단, 부친은 충청남도 출신이므로 고령층이 정의하는 서울토박이에 들어맞지는 않는다. 노인들은 아무리 본인이 서울 출신이더라도 부모, 특히 부친이 지방 출신이라면 본인을 서울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25] 사실 친노란 단어는 노무현 사후로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 양측에서 모두 말도 안되게 남용되긴 했다. 민주당계 정당 측에선 노무현 재단은 초기엔 정권의 눈길이 있었다 치더라도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도 노무현의 추모나 노무현의 사후 명예를 위해 행동하기보단 과격파 민주당계 정치인의 양성소로 운용됐고, 결국 이쪽에선 코에 꿰고 싶으면 노무현을 존중한답시고 친노라고 위장했다.#[26] 윤석열 대통령 ‘아메리칸 파이’ 열창 백악관서 기립박수 받아[27] 윤석열.com으로도 해당 영상으로 들어가진다.[28] 낙방생 윤석열, 김선수의 사시 합격을 위해 이종찬을 만나다[29] 한 마리는 '토리'(진돗개), 한 마리는 '나래'(믹스견)라고 한다.[30] '써니'와 '마리'. 견종은 비숑프리제이다.[31] iPhone 12 Pro사용하는 사진도 있으며 2개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듯 하다.[32] 자세히 보면 옥은호 후보의 포스터도 없다.[33] 전통적인 서울 방언 구사자들의 특징 중 하나.[34] 윤석열은 객관식 시험인 사시 1차시험은 계속 합격했으나 주관식 시험인 사법시험 2차시험에 계속 낙방했다.[35] 아버지의 호주 지위를 승계받아야 할 상속자이기 때문. 이 때문에 장남은 결혼해도 아버지의 호적에 그대로 남았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호주가 될 수 있었다. 반면, 차남 이하의 경우 결혼과 동시에 아버지의 호적에서 제적되고 본인이 호주인 새 호적을 받았다.[36]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에 이용한 차량이다.[37] 취임식 때는 현대 에쿠스 스트레치드 리무진을 탔다.[38] 요리에 민감한 한국인들 특성상 어지간히 실력 좋은거 아니면 쓰기 힘든데 이로 봤을 때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듯 보인다.[39] 최규하전두환 역시 공직 선거 첫 도전에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으므로 논외.[40] 의외로 대통령 퇴임 후에 국회의원이나 서울특별시장 등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는 전혀 제한이 없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그런 사례는 윤보선 전 대통령 한 명밖에 없다. 그러나 윤보선은 유일하게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제 하 상징적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이라서 대통령의 의미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므로 동일 선상에서 보기는 어렵다. 즉 현재와 같은 대통령제 하 국가수반과 정부수반을 겸한 대통령 출신으로서 퇴임 후 타 선출직에 진출한 사람은 아직 없다.[41] 윤기중은 형 윤우중(1915~1966)과 윤좌중이 있어서 삼남인 데다 큰형 윤우중이 집안의 장손이자 윤석열의 사촌형인 윤석구(1942~2009)를 이미 낳았으므로 대를 잇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본인은 친손자녀를 보지 못하고 별세했다.[42] 실제로 검사 집단은 일 많은 한국 공직 중에서도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는 집단인지라(성과에 미쳐있는 만큼 바쁘다고 보면 쉽다)잘 먹는게 중요하긴 하다.[43] 변호사는 의뢰인이 아무리 심한 짓을 했어도 법정에서는 의뢰인을 감싸줘야 하는데, 의뢰인들을 혼내는 건 변호사가 할 일이 아니다.[44] 어차피 변호사가 본인에게 맞지 않는 것을 확인했겠다, 전관예우 덕을 볼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수사에만 온 힘을 쏟았던 것으로 보인다.[45] 나중에 윤석열의 상관이 되어 서로 강하게 충돌하게 되는 23기 동기 박범계도 이렇게 밝힌 바 있다.[46] 카드와 인터넷뱅킹이 보편화된 현재는 저런 거래가 너무 일상화되고 말았는데 현재는 어떻게 결제하는지 불명.[47] 사실 저런 거래는 농담삼아 카드깡이라고 불리고 넒은 의미에서 보면 카드로 일어나는 허위거래는 맞아서 카드깡은 맞긴 한데 이거 다 잡아넣으면 지금쯤 전 국민 대부분이 교도소에서 출퇴근하고 등하교하고 있을 것이다.[48] 윤석열과는 반대로 추미애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아파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오피스텔을 보유한 다주택자였다. #[49] 윤석열 캠프의 대표적인 경제책사로 여러 언론에서 소개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으며,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과 한국판 뉴딜에 반대해온 거시경제 전문가이다.[50] 포스트의 컨셉은 반려견 "토리"의 시점이지만, 사진에 등장한 저 고양이는 반려묘로 키우는 "나비"다.[51] 한국일보, [우리말 톺아보기] 윤서결? 윤성녈?[52] 예: 솜-이불[솜ː니불\], 색-연필[생년필\], 태평-양[태평냥\], 식용-유[시굥뉴\][53] 이 '열'은 '윤석열'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자이므로 애초 두음법칙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54] 다만 붙임표, 띄어쓰기, 대소문자 등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정된 바가 없다.[55] "SNS로 직접 소통을 하겠다"고 밝힌 뒤 처음 열린 계정이다. 페이스북을 하는 뒷모습이 나와있다.[56] 철자는 국민의힘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다.[57] 국민의힘 표기를 바탕으로 AP통신 스타일북의 한국인 성명 표기에 따른 것이다.[58] 이는 로마자 표기에 하이픈 사용을 권장하는 국립국어원을 근거 자료로 채택했다. 토론 근거 6순위에 해당한다.[59] 연음을 적용한 [서결\]도 아니고 'ㄴ' 첨가 및 비음화를 적용한 [성녈\]도 아닌, 끊어 읽은 [석.열\]을 기준으로 옮긴 것이다.[60] 총리관저 자료 외무성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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