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문서명=문서명?문서명:calleeTitle) != null
문서의 [[https://namu.wiki/acl/|{{{#!html <span style="color: var(--espejo-link-color, var(--text-color))">ACL 탭</span>}}}]]을 확인하세요.#!if 리스트 == null
{{{#!html 2026년 6월 29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사퇴}}}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1 != null
[[홍명보호(성인 2기)]] 문서{{{#!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를}}}{{{#!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if 문서명1 = 문서명1 != null ? 문서명1 : calleeTitle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홍명보호(성인 2기)#s-|]]번 문단을}}}{{{#!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홍명보호(성인 2기)#자진 사퇴|자진 사퇴]] 부분을}}}}}}{{{#!if 설명2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2 != null
[[]] 문서{{{#!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를}}}{{{#!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if 문서명2 = 문서명2 != null ? 문서명1 : calleeTitle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 부분을}}}}}}}}}{{{#!if 설명3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3 != null
[[]] 문서{{{#!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를}}}{{{#!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if 문서명3 = 문서명3 != null ? 문서명3 : calleeTitle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 부분을}}}}}}}}}{{{#!if 설명4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4 != null
[[]] 문서{{{#!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를}}}{{{#!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if 문서명4 = 문서명4 != null ? 문서명4 : calleeTitle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 부분을}}}}}}}}}{{{#!if 설명5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5 != null
[[]] 문서{{{#!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를}}}{{{#!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if 문서명5 = 문서명5 != null ? 문서명5 : calleeTitle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 부분을}}}}}}}}}{{{#!if 설명6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6 != null
[[]] 문서{{{#!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를}}}{{{#!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if 문서명6 = 문서명6 != null ? 문서명6 : calleeTitle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 부분을}}}}}}}}}{{{#!if 설명7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7 != null
[[]] 문서{{{#!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를}}}{{{#!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if 문서명7 = 문서명7 != null ? 문서명7 : calleeTitle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 부분을}}}}}}}}}{{{#!if 설명8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8 != null
[[]] 문서{{{#!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를}}}{{{#!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if 문서명8 = 문서명8 != null ? 문서명8 : calleeTitle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 부분을}}}}}}}}}{{{#!if 설명9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9 != null
[[]] 문서{{{#!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를}}}{{{#!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if 문서명9 = 문서명9 != null ? 문서명9 : calleeTitle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 부분을}}}}}}}}}{{{#!if 설명10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if 문서명10 != null
[[]] 문서{{{#!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를}}}{{{#!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if 문서명10 = 문서명10 != null ? 문서명10 : calleeTitle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s-|]]번 문단을}}}{{{#!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 부분을}}}}}}}}}#!if 리스트 != null
한시적 넘겨주기로 연결되는 다른 문서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if 리스트 != null
{{{#!if 문서명1 != null || 문서명1 == null &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 {{{#!if 설명1 != null
2026년 6월 29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사퇴: }}}{{{#!if 문서명1 != null
[[홍명보호(성인 2기)]]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if 문서명1 = 문서명1 != null ? 문서명1 : calleeTitle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홍명보호(성인 2기)#s-|]]번 문단}}}{{{#!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홍명보호(성인 2기)#자진 사퇴|자진 사퇴]] 부분}}}}}}}}}{{{#!if 문서명2 != null || 문서명2 == null &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 {{{#!if 설명2 != null
: }}}{{{#!if 문서명2 != null
[[]]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if 문서명2 = 문서명2 != null ? 문서명2 : calleeTitle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s-|]]번 문단}}}{{{#!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 부분}}}}}}}}}{{{#!if 문서명3 != null || 문서명3 == null &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 {{{#!if 설명3 != null
: }}}{{{#!if 문서명3 != null
[[]]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if 문서명3 = 문서명3 != null ? 문서명3 : calleeTitle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s-|]]번 문단}}}{{{#!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 부분}}}}}}}}}{{{#!if 문서명4 != null || 문서명4 == null &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 {{{#!if 설명4 != null
: }}}{{{#!if 문서명4 != null
[[]]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if 문서명4 = 문서명4 != null ? 문서명4 : calleeTitle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s-|]]번 문단}}}{{{#!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 부분}}}}}}}}}{{{#!if 문서명5 != null || 문서명5 == null &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 {{{#!if 설명5 != null
: }}}{{{#!if 문서명5 != null
[[]]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if 문서명5 = 문서명5 != null ? 문서명5 : calleeTitle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s-|]]번 문단}}}{{{#!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 부분}}}}}}}}}{{{#!if 문서명6 != null || 문서명6 == null &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 {{{#!if 설명6 != null
: }}}{{{#!if 문서명6 != null
[[]]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if 문서명6 = 문서명6 != null ? 문서명6 : calleeTitle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s-|]]번 문단}}}{{{#!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 부분}}}}}}}}}{{{#!if 문서명7 != null || 문서명7 == null &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 {{{#!if 설명7 != null
: }}}{{{#!if 문서명7 != null
[[]]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if 문서명7 = 문서명7 != null ? 문서명7 : calleeTitle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s-|]]번 문단}}}{{{#!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 부분}}}}}}}}}{{{#!if 문서명8 != null || 문서명8 == null &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 {{{#!if 설명8 != null
: }}}{{{#!if 문서명8 != null
[[]]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if 문서명8 = 문서명8 != null ? 문서명8 : calleeTitle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s-|]]번 문단}}}{{{#!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 부분}}}}}}}}}{{{#!if 문서명9 != null || 문서명9 == null &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 {{{#!if 설명9 != null
: }}}{{{#!if 문서명9 != null
[[]]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if 문서명9 = 문서명9 != null ? 문서명9 : calleeTitle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s-|]]번 문단}}}{{{#!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 부분}}}}}}}}}{{{#!if 문서명10 != null || 문서명10 == null &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 {{{#!if 설명10 != null
: }}}{{{#!if 문서명10 != null
[[]]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if 문서명10 = 문서명10 != null ? 문서명10 : calleeTitle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 부분}}}}}}}}}| 대한민국의 축구인 | ||||
| <bgcolor=#fff,#fff> | ||||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373a3c,#ddd> 이름 | 홍명보 洪明甫|Hong Myung-bo | |||
| 출생 | 1969년 2월 12일[1] ([age(1969-02-12)]세) | |||
|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장동 (現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 ||||
| 국적 | | |||
| 신체 | 181cm|74kg[2]|B형 | |||
| 직업 |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축구 선수 (센터백[3], 수비형 미드필더 은퇴) | |||
| 소속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373a3c,#ddd> 선수 | 상무 축구단 (1991 / 군 복무) 포항제철 아톰즈[4] (1992~1997) 벨마레 히라츠카[5] (1997~1998) 가시와 레이솔 (1999~2001) 포항 스틸러스 (2002)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2003~2004) | ||
| 감독 | 대한민국 대표팀 (2005~2007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7~2008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9)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9~2012) 대한민국 대표팀 (2013~2014)[6] 항저우 뤼청 (2016~2017) 울산 HD FC (2021~2024) 대한민국 대표팀 (2024~2026)[7] | |||
| 행정 | 대한축구협회 (2017~2020 / 전무이사) | |||
| 국가대표 | 136경기[8] 10골 (대한민국 / 1990~2002)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f5f5f5,#2d2f34> 등번호 | 20[9] | ||
| 부모 | 아버지 홍인우, 어머니 강호연 | |||
| 형제자매 | 여동생 2명 | |||
| 배우자 | 조수미(1973년생, 1997년 3월 15일 결혼) | |||
| 자녀 | 장남 홍성민(1998년 11월 13일생) 차남 홍정민(2000년 10월 7일생) | |||
| 학력 | 서울광장국민학교 (졸업) 광희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졸업 / 33회)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 87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 / 석사[10])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11]) | |||
| 종교 | 무종교[12] | |||
| 서명 | }}}}}}}}} | |||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1996년에 한국 최초로 FIFA 올해의 선수 21위에 올랐다. 또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브론즈볼과 월드컵 올스타팀, FIFA 올해의 선수 17위, FIFA 100 등의 경력을 쌓았다.[13] 은퇴 이후에는 제70·75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26 FIFA 월드컵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선수 경력#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홍명보/선수 경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플레이 스타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플레이 스타일#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홍명보/플레이 스타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지도자 경력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지도자 경력#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홍명보/지도자 경력#|]]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1. 감독 스타일
전술적인 성향이나 철학, 개인만의 축구관 대신 매니지먼트 능력으로 팀을 운영하는 매니저형 감독.[14] 팀 매니지먼트 능력은 좋지만, 서서히 전술가형 감독으로 대세가 변하고 있는 와중에도 현대축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전략의 유연성이 적다는 평가를 받아왔다.2026 FIFA 월드컵에서 본인의 두 번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는데, 여기서 남아공을 상대로 충격적인 경기력으로 패배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며 국가대표팀이 본선에 처음 진출한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회를 포함해 72년 역사상 월드컵 단일 대회 최저 순위[15]를 기록하게 되었고, 이로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악의 감독이라는 오명을 썼다. 베켄바워를 롤 모델로 삼겠다고 했었는데, 베켄바워는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인물이다. 조별리그의 문턱을 넘지 못한 홍명보는 그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 셈이 되었다.
4.1.1. 전술
4.1.1.1. 울산 부임 전
울산 현대 부임 전 홍명보의 감독으로서의 문제점은 홍명보호(성인 1기)/논란과 평가, 홍명보호(성인 1기)/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에 너무나도 잘 정리되어 있으니 이 문서들을 참고하자.| |
물론 손흥민, 이청용, 지동원, 김보경은 모두 강철 체력으로 유명한 선수들이니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인 전술은 아니지 않냐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력만 문제인 게 아니란 것이 문제다. 당시 손흥민은 아직 포텐이 터지기 전인 유망주였고 이청용, 지동원은 부상으로 부진했으며 김보경도 폼이 엄청 떨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이들을 이용해 텐백+롱볼 역습으로 빈약한 전력을 극복해 보려던 나름의 현실주의 노선 전술은 이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부진으로 완전히 만화축구로 전락해 버렸다. 애시당초에 구자철은 공미를 소화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처진 공격수에 가깝게 플레이했고, 박주영은 분명 제로톱 같은데 타겟맨에 가깝게 뛰는 등 전체적으로 굉장히 괴상하게 돌아가던 팀이었다. 이 전술을 들고 나온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결과는 조별리그 탈락으로 끝났다.
용병술 솜씨는 미묘한 편이었다. 잘 쓸 때는 수준급의 용병술을 보여주지만[17], 못 쓸 때는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황당하고 납득하기 힘든 용병술을 보여주었다. 좋게 말하면 파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뜬금없는 용병술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안타깝게도 홍명보는 감독 스타일상 기본적으로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새로운 선수를 파악하는 적응 기간이 너무 길어서 원래 아는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언변 역시 말더듬이라 불릴 정도의 눌변으로 악명이 높다 보니 비호감으로 낙인찍히기 딱 좋다. 추억보정에 약해서 과거에 자신이 한 번 믿어줬을 때 잘해줬던 선수가 지금 엄청 부진해 다들 그만 쓰라 해도 이번에는 잘해 주겠지 하고 끝까지 믿으며 기적이 일어나길 비는 경향이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때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때 박주영을 끝까지 신임한 것이 대표적인데, 결과적으론 런던 올림픽 때는 진짜 믿음 끝에 기적이 일어났지만 브라질 월드컵 때는 홍명보와 박주영, 대한민국 대표팀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로 끝났다.
4.1.1.2. 울산 부임 후
자신의 너무나도 좁은 전술 폭의 한계를 깨달은 것인지 울산 HD FC의 감독을 맡은 후에는 4-1-4-1 등 전술의 변화를 주면서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22 시즌부터는 경기마다 다른 전술을 꺼내며 플랜 A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른 K리그 국내 감독들이 좁은 풀로 축구 트렌드에 뒤쳐지기에 홍명보가 상대적으로 나아 보였던 것이지, 대부분의 다른 국내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전술적인 면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울산은 당시 리그에서도 수준급의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홍명보의 울산 시절 우승 경력은 타 팀들에 비해 수준급이었던 울산 선수들의 덕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홍명보는 울산 감독 재임 당시 리그에서의 우승과는 별개로, 국제 무대인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매우 부진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주전 선수가 출전할 수 없을 때는 남은 주전 멤버의 포변과 교체 멤버들을 활용하며[18] 불리한 경기에서 꾸역승을 해내기도 했다. 또한 이전에는 의문부호가 붙던 교체 전술도 울산 부임 이후에는 교체 선수를 투입하고 승리한 경기가 많아졌다. 2022년 K리그 파이널 라운드의 사실상의 결승전이라고 볼 수 있는 35라운드 현대가 더비에서 이러한 용병술이 나왔는데, 김태환을 빼고 마틴 아담을 투입했는데 교체로 들어간 마틴 아담이 추가 시간에만 멀티 골을 꽂아넣고 역전승을 거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마틴 아담은 리그에서도 수준급의 스트라이커 자원이기에 선수 개인의 역량 몫도 컸으며, 이 사례는 끌려가는 상황에서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넣는 대단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교체 전술에 불과하기에 이걸 두고 감독 역량이 우수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부임 첫 시즌에 우승은 실패했지만 공격 축구를 보여 준 덕에 선수와 관중 모두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2022년에는 리그 초반 선두로 치고 나갔고 중반 이후 전북의 급반등으로 매서운 추격을 받았으나 결국 승점 3점 차이로 간신히 우승을 이뤄냈다. 물론 이는 선두 경쟁 라이벌인 전북 현대 모터스가 당시 김상식의 지휘하에 졸전을 펼치며 초반 우승 레이스에서 승점을 많이 잃은 탓도 크다. 실제로 이후 전북의 김상식 감독은 전술적 역량에 대한 비판과 분출하는 사퇴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불명예 사임하였다. 또한 2020년 이후 김기동, 이정효와 같이 울산보다 스쿼드가 한참 부실한 약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국내 감독들이 등장하며, 울산 시절의 우수한 성적에 홍명보 감독 개인 역량의 지분이 컸는지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홍명보의 용병술 실패 사례들은 런던 올림픽 시절 김기희의 군 면제를 위한 센터백 교체나 인천전에서의 설영우 센터백 포변 등 대부분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명장병 걸린 감독이란 뜻은 아니다. 그러나 엔트리 선발 자체에서는 문제점을 종종 노출하기도 한다. 울산 감독 부임 이후에는 교체 카드가 잘 들어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여전히 전술가로서의 능력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비록 K리그1 2연패를 이뤄 내긴 했지만 리그에서의 좋은 성적은 단지 K리그 내에서 수준급인 울산의 스쿼드 몫이 컸다는 비판이 있으며, 실제로 홍명보는 울산 감독 재임 당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매우 부진했다. 2023 시즌 후반기 박용우의 이적 후 팀의 성적이 급격하게 흔들린 점 등도 선수 기량에 의존하던 홍명보의 전술적 역량에 의문부호를 붙였다. 또한 리그에서의 호성적과 별개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연이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끝에 2022 시즌은 40강 조별 리그 탈락, 2023 시즌도 하마터면 40강 조별 리그 탈락할 뻔하는 위기를 겪었으며[19], 2023 시즌 이후 구스타브 루드빅손과 에사카 아타루가 인터뷰에서 홍명보가 전술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별로 없다고 지적하는 내용을 밝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울산 현대에서 그의 모습을 조합하자면 여전히 전술가로서의 면모는 떨어지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라는 오명을 쓴 국가대표 시절에 비하면 어느 정도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무난한 용병술, 매니지먼트 능력을 앞세워 울산 현대를 K리그 왕조 팀으로 변모시킨 점에서 칭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도, 2023-24 AFC 챔피언스 리그 4강 요코하마와의 2차전에서의 경기로 인해 퇴색되었다. 10년 전 본인이 저지른 실수였던 믿음의 축구를 다시 보이며, 상대가 전반에 퇴장 당했음에도 위협적인 공세를 전혀 펼치지 못하고 승부차기까지 끌고가 결국 탈락했기 때문이다. 무려 10여 년 전의 대참사를 통해 성장한 부분이 있었다면 보여선 안 될 모습들을 그대로 보였다. 심지어 요코하마가 퇴장당해서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전반부터 3:0이라는 참사격인 스코어로 시작했던 것은 덤이다.
4.1.1.3. 대표팀에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호(성인 2기)#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홍명보호(성인 2기)#전술 스타일|전술 스타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1.2. 장기적인 운영 능력
울산 시절에도 그랬고 대표팀 2기 체제에서도 전술적인 능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지만, 홍명보가 현장에서 지도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다름아닌 장기적인 안목이 좋다는 것이다.실제로 축구는 단판에 끝나는 스포츠가 아니고 여러 번의 매치를 거쳐 종합적인 승점으로 우열을 가리는 장기전 종목인데 레스터 시티와 같이 일시적인 돌풍을 일으키던 도깨비 팀들의 경우 잠깐이나마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긴 해도 그다지 강팀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건 장기전에서의 뒷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장기 레이스에서의 운영도 강팀의 필수 조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홍명보는 울산 시절 이 부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울산 감독 시절 2023 시즌 32라운드 동해안 더비 땐 당시 박용우의 이적과 많은 일정으로 인해 굉장히 힘겨운 순위권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홍명보는 무리하게 이기려 하지 않고 그냥 안전하게 무나 캐자는 초강수를 두게 된다. 포항은 울산의 최대 라이벌인 만큼 팬들은 물론 심지어 선수단 사이에서도 반발이 심했지만 홍명보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고 결국 희대의 늪축구로 0:0 무승부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당시에도 라이벌 포항을 상대로 쫄보 축구나 하냐는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그 시즌 우승팀은 울산이었다.[20]
위의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홍명보는 당장의 몇몇 기적적인 대승을 거두는 것보단 1:0, 0:0 등의 뜨뜻미지근한 경기로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저런 안전을 누적시켜 결과적으론 승점에서의 이득을 챙기는 데 능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 커리어의 대표적인 오점으로 불리며, 전 국민적 질타를 받은 2014 월드컵과 2026 월드컵, 그리고 항저우 뤼청 감독 때는 본인의 장기 플랜이 어그러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21]
장기적 플랜에 좋다는 점 때문인지 라운드 로빈(흔히 말하는 풀 리그) 방식의 대회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이나,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약한 면모를 보인다. 울산 감독 시절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 리그 단계에서 부진해서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토너먼트에 올라도 충분히 결승까지 갈 법한데 올라가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며, 런던 올림픽 역시 동메달을 따긴 했으나 일본전과 스위스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들은 무승부로 겨우 연명했었다. 두 번의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며 두 번의 월드컵을 지휘했는데, 월드컵 통산 6경기 1승 1무 4패에 무실점 경기는 없었다.
4.1.3. 매니지먼트
감독 생활 내내 전술적 평가에 관해서는 말이 많았지만 그와 별개로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매니지먼트 능력은 국내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장 K리그 감독 P급 라이선스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인 2020년 이전인 2010년에 이미 이를 보유하고 있었다. 역대 국대 감독을 보면 박종환 시절엔 최순호, 최인영, 이태호, 변병주, 박경훈이 무단 이탈 사건을 일으켰고, 김호, 아나톨리 비쇼베츠 시절에는 홍명보가 항명을 했으며, 차범근은 울산 감독 시절 최강희와 대판 싸웠던 적이 있고 조 본프레레는 이을용과 불화를 빚었고 최강희는 기성용을 위시한 해외파에게 아예 감독으로서 무시당하는 최악의 곤욕을 치렀고, 울리 슈틸리케 시절엔 선수단 전체가 항명을 했으며#, 신태용은 성남 감독 시절 윤빛가람의 태업과 라돈치치와의 불화로 고생했고, 위르겐 클린스만은 팀을 아예 방치해서 손흥민이 은유적으로 감독을 비판하는 등 선수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결국 아시안컵에서 선수단 불화 사태로 이어졌다.[22] 하지만 홍명보가 국대 감독이던 시절만큼은 신기하게도 개성이 강한 국대 선수들이 하나같이 순한 양 모드가 되어서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보였다.[23]전임 감독과의 불화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 기성용과 자기 친구와 불화를 겪고 캐삭빵을 하기도 했던 박주영 등등 성격이 특이하기로 유명한 해외파 선수를 모조리 품어내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해외파 선수들은 신기할 정도로 홍명보 체제에선 큰 말썽 없이 조용했다. 심지어 월드컵 마지막 벨기에전 이전까진 계속 벤치에만 앉아 있었던 김승규, 김신욱과 부상에도 감독 명령에 억지로 뛰어야 했던 홍정호 등은 홍명보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법한데도 홍명보가 사퇴할 때 격렬히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고, 대표팀 내의 파벌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했던 곽태휘 역시 홍명보를 은근히 실드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저 선수들이 대인배인 게 제일 크긴 하겠지만 그래도 위 사례들이랑 비교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홍명보가 김호, 박종환 같은 소위 '호랑이' 스타일 코치는 아니다. 대표팀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오히려 화를 거의 안 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심지어 세간에 알려진 꼰대 이미지와 정반대로 선수들과 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군기도 널널하게 잡는 편이다. 자칫하면 호구 잡히기 쉬운 성향 탓에 당시 수비 코치인 김태영이 총대 메고 군기반장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데, 김태영이 선수들을 잡고 다니자 오히려 홍명보가 김태영에게 애들 잡지 말라고 혼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다고 덕장이라 부르기엔 애매하다. 일단 마틴 오닐이나 해리 레드냅마냥 쓸놈쓸 성향도 있고, 코치 시절 미들즈브러 FC에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던 이동국을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 데려가기 위해 간청하거나 월드컵 시절 부상 여파로 폼이 엉망이던 홍정호, 김영권, 곽태휘를 강제로 경기를 뛰게 하는 등 쌍팔년도 스타일 기질도 있다.[24] 그렇다고 무조건 엄한 건 아니고 선수들을 챙겨줄 땐 확실히 챙겨준다. 덕장과 독재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이것이 조화가 잘못되면 이도저도 아닌 미묘한 성격의 리더가 될 수도 있지만 홍명보는 이런 두 성향의 조화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하나된 팀'을 지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게 말만 들으면 좋아 보이지만 이걸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단 게 문제. 사람 사는 세상에 크건 작건 다툼이 없을 수 없고 그건 팀 내에서도 마찬가진데 홍명보는 이런 팀 내의 분열을 아예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홍명보호의 예를 들면 당시엔 감독 부임 전부터 해외파 vs 국내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고 이 두 파벌을 모두 끌어안으려면 팀내 분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홍명보가 (자신이 해외파[25]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국내파를 아예 포기하고 해외파로만 대표팀을 꾸린다는 최악의 선택을 했던 걸 생각해 보자.[26]
홍명보가 이렇게 병적으로 '하나된 팀'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고는 하나 인터뷰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우선 공식석상에서 자기 선수들의 실수를 거론하여 경기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오히려 자기 선수들의 책임을 부각하여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실제로 2026 북중미 월드컵 당시에는 김승규 골키퍼의 실수를 감독인 본인이 직접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등 경기 패배의 원인을 선수에게 돌리는 인터뷰로 국민적 질타를 받기도 했다. 타 국가대표팀 감독들 중에 경솔하게 자기 선수를 비판하다 팀 내 분위기를 망쳤던 케이스가 많았는데, 홍명보는 이들과 비교해도 실언이 잦고 여론을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선수 탓과 같은 부족한 인터뷰 실력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남기고 맞이한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반복되며, 여론의 반감을 더욱 사며 대표팀 감독직에서 좋지 않은 모습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반면 (좋지 않게) 자신을 떠난 선수에게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울산의 뒤통수를 치고 J리그로 이적한 오세훈을 두고서는 "우리 선수가 아니니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또한 울산과 임대 연장 계약을 논의하던 중 전북과도 임대 계약에 대해 논의하면서 전북으로 이적한 아마노 준을 두고서는 모두를 당혹케 할 정도로 강한 수위의 비난 발언을 KBS 9시 뉴스 인터뷰 등에서 하기도 했다.[27] 이처럼 자기 선수냐 아니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갈린다.[28]
사실 이건 홍명보의 전략적인 인터뷰라 보는 시각이 많은데, 주축 선수들이 계속 팀과 좋지 않게 헤어지며 팀 내 선수진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위험이 있으면 '탈영병을 공개처형하는' 방식으로 팀을 하나로 결집시키려 한다는 것.' 이렇듯 팀 분위기를 확실히 휘어잡는 그의 언론플레이는 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지만 (인간적인 면과 별개로) 팀의 감독으로선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게다가 의도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다른 국가의 리그에 비해서 조용하고 화제거리가 없는 K리그에서 이런 화제를 만들어 K리그에 관심을 끄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사실 홍명보가 선수들에게 안 먹히고 대접받는 것은 '국대 레전드 출신 감독'이라는 메리트가 꽤 크다. 카리스마고 뭐고 딴 거 다 집어치우고 그 팀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긴 대선배인데 후배들 입장에선 말 안 듣고 개길 수도 없는 것. 참고로 해외에서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29], 앨런 시어러, 젠나로 가투소, 게리 몽크[30], 지네딘 지단 등 구단 레전드가 그 구단 감독을 맡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들은 감독으로서의 성패와 별개로 높은 확률로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감독 말을 들으면 '병역 혜택이라는 최고의 포상'까지 더해지니 선수 입장에선 충성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특징 탓에 국대 감독 시절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감독으로서의) 홍명보를 안 좋게 보지만 정작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은 가장 존경하는 은사로 홍명보를 꼽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현역 시절 후광빨로 장악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과묵하고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성격, 언론으로부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거기에 대한 시선과 비판을 본인에게 돌림으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는 성격과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등 리더십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다. 이런 리더십은 그동안 울산에게 모자랐던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 주며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만들었다. 이렇게 쌓아올린 멘탈리티는 다음 해에도 그 진가가 드러났는데 네 번의 동해안 더비와 현대가 더비, 총 여덟 번의 더비 매치에서 겪은 패배는 단 한 번뿐이었다. 즉 아무리 다른 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도 더비에서 잡아야 할 경기는 귀신 같이 잡아냈단 소리이며, 근 몇 년간 울산이 우승을 놓친 결정적 이유가 결정적 순간에 라이벌 팀들을 만났을 때 이전에 당한 기억이 되살아나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경기를 내주는 바람에 다 잡은 우승이 날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이 위닝 멘탈리티가 홍명보의 울산의 핵심이었다.
선수들의 인성과 기본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울산 현대 축구단 일부 선수가 2023년 초 포르투갈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서도 무례하게 행동해 홍명보 감독에게 혼났다는 일화가 있다. 전지훈련 식당 아주머니한테 버릇없이 굴자, 홍명보가 "너희 그러는 게 어른으로서 할 짓이냐?"라고 말하며 선수들을 진지하게 혼냈다고. 선수들은 식당에서 먹은 음식을 안 치우고 그냥 갔고 홍명보가 이 모습을 목격하고는 "난 축구만 잘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 예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 현대의 2023 시즌 우승 이후, 인종 차별 사건, 김태환 이적 사가 등을 통해 팀 내부가 상당히 시끄러웠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 와중에도 팀을 휘어잡아 관리했다는 것이 드러나며 시즌 막판 전술적 능력이 지적되며 고생한 것과는 별개로 다시 한 번 매니지먼트 능력 하나만큼은 압도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고평가를 받았다.
부임 적합성 논란으로 인해 여론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손흥민·김민재·이강인 등 대표팀의 핵심 선수들은 홍명보 2기 출범 이후에는 외부에 어떠한 불화도 노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강인은 아예 기자 회견에서 공개적으로 홍명보 감독을 지지하는 발언까지 한 것을 고려하면, 1기 시절보다 스타성과 개성이 훨씬 강한 선수단을 이끌고 있음에도 선수단 장악력과 내부 관리 능력만큼은 확실히 강점으로 평가받을 만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2기 시절 내내 대표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손흥민과의 기싸움 및 불화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그의 매니지먼트 능력에 대한 여론과 평가는 부정적으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 이번 대표팀에서 오만, 팔레스타인 등 아시아 약체 팀과 경기할 당처럼 성적이 나올 때는 상술한 것처럼 선수들도 군말 없이 따른 것으로 보이나, 결국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을 낸 이후 다시 한번 선수단과의 불화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향후 어떤 평가가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후에 월드컵 멤버 중에서 홍명보의 대표팀 관리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꺼내는 선수가 나올 경우 홍명보의 매니지먼트 능력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4.2. 행정가 경력
2017년 대한축구협회의 파동에 따른 조직 개편에서 전무이사로 선임되었다.[31] 감독 시절의 실책이 크기는 하지만 선수 시절의 경력과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성과 등 실적이 없는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다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홍명보 본인은 이전부터 지도자보다 행정가 쪽을 꿈꾸고 있었다. 본인의 자서전에도 행정가가 되는 것을 더 희망하기도 했으니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론 본인이 원하던 대로 행정가가 된 셈. 다시 감독직을 절대로 수행하지 않으리라곤 할 수 없겠지만, 일단 감독 생활의 끝이 썩 유쾌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로 다시 가닥을 잡았으니 감독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지도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행정가의 길을 갈 작정이라고 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2026 북중미 월드컵이라는 두 번의 참사 이후 다시 감독직을 맡기는 어렵게 된 상황이기에 행정가로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붉은악마는 홍명보를 향해 축구계를 영원히 떠나야 한다며 강한 비판을 가했고, 이와 같이 축구계 전반에서 홍명보의 국가대표 감독직 실패를 향해 거센 비판이 쏟아지는 만큼 행정가로 축구계에서 일할지는 미지수이다.단 홍명보의 행적에서 드러나듯 대한축구협회 파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치 라인을 탄 인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축구 팬들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박지성, 홍명보를 발탁한 협회의 깜짝 인사가 애초에 근본적으로 스타 마케팅이자 2002년 추억보정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구조 개편으로 이미지 쇄신을 꾀했던 대한축구협회의 이미지는 좋아지기는커녕 바닥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32] 애초에 전무이사라고 하면 고위 임원급 보직인데, 홍명보는 행정가 준비를 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행정 실무를 수행한 적은 없으니 못해도 전무급의 고위직은 아닌 위치에서 시작해야 정상이다. 즉 사실상 낙하산이다.
애초에 행정가라는 어감 때문에 착각하기 쉬울 뿐, 우리가 생각하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은퇴 이후 대한민국 축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고위직을 지망했다고 봐야 한다. 현장에서 뛰기보다는 바로 고위직에 오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인데 뒤에 나오는 해설가들 비판 발언들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2018년 3월 22일 서울특별시 중구 두타몰 특설 무대에서 열린 2018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컬렉션 런칭 이벤트 '이빨을 드러내라' 토크쇼에 참석했다.[33]
김판곤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데에 홍명보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김판곤의 말로는 서로 연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왜 본인을 추천했는지 놀랐다고.[34] FC 바이에른 뮌헨과 MOU 계약을 맺거나,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해 김판곤과 같이 선수 차출을 위한 협상을 뛰는 등 행정가로서는 큰 실책이라 할 것 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대한축구협회는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홍명보가 전무이사로 부임하기 전에는 비주류 인사가 선임되기 힘든 구조였으나, 다름아닌 축협의 황태자 소리를 듣던 홍명보가 이러한 행보를 보이면서 비주류 인사 섭외가 전보다 늘어났다. 김판곤 체제가 결과를 내며 팬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를 초빙하고 뒤에서 힘을 실어준 홍명보 역시 호평을 받았다.
2021년에 대한축구협회의 전무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울산 HD FC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행정에는 잠시 손을 놓게 되었다. 그런데 홍명보가 협회에서 물러나더니 김판곤도 손발이 하나씩 잘리면서 그가 구축한 체계가 무너지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잦아졌고[35] 결국 김판곤이 물러난 이후 대한축구협회가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홍명보와 김판곤이 계속 재평가되고 있다.
한편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이 터지면서 난리가 났는데, 그동안 대한축구협회 내부에서는 사면론이 꾸준히 일었지만 홍명보가 이러한 주장을 원천 차단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홍명보가 물러나고 나서야 이런 불순한 건의가 협회 윗선에 올라갔다고 한다. 행정가로서 홍명보의 능력이 한 번 더 주목된 셈, 덕분에 사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이영표, 이동국, 이임생 등과는 달리 홍명보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아졌다.
홍명보와 김판곤이 나간 이후의 대한축구협회는
5. 평가
5.1. 선수
"홍명보가 만일 지금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그러나 지금 늦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의 칼럼리스트 랍 휴스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의 칼럼리스트 랍 휴스
"한국이 예선에서 탈락한 것은 결코 한국 축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차범근 감독은 홍명보 같은 유능한 선수를 몰라 봐 그를 공격수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39]
아나톨리 비쇼베츠
아나톨리 비쇼베츠
"그 주장(홍명보)의 플레이를 정말 좋아한다. 경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 뛰어난 수비수다. 그런 수비수가 있어서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리오 퍼디난드[40]
리오 퍼디난드[40]
"좋은 선수는 많지만 위대한 선수는 많지 않다. 위대한 선수란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성품, 태도, 마음가짐 모두가 균형을 이루는 선수다. 그런 면에서 선수 홍명보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앞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이영표
이영표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의 인기 선수 중 하나였다. 14년간 국가대표팀에서 137경기를 출전한 대한민국 역대 최다 A매치 출전자였으며[41],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무려 네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선 수비수임에도 팀 공격의 핵심 역할을 했고[42] 유럽 강호들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이때부터 유럽 클럽들도 여러 이적설을 띄우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FIFA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득표하여 21위에 올랐다.[43]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한국이 4위라는 엄청난 이변을 만들어 낸 것에 영향을 받아,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브론즈볼과 월드컵 올스타팀, FIFA 올해의 선수 17위, FIFA 100 등에 올랐다.[44]
5.2. 감독
2009 U-20 월드컵 8강 6위[45],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차지하는 등 초반에는 연령별 대표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많은 국민들에게서 호평을 받았고, 2012년 당시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 이후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A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기존에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뜨리고 자신이 올림픽에서 썼던 '런던 세대'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는 등 '으리 축구' 논란을 일으켰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쇼크를 당하며 부진한 성적으로 국민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46] 이후 2016년 중국 슈퍼 리그의 항저우 뤼청 감독을 맡았으나 1년 만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며 사실상 지도자로서 경력이 끝난 것으로 보였다.그러다 2021년,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으면서 명예회복과 재기를 노렸으며 2022년과 2023년, K리그1 2연패를 달성하면서 감독으로서 재기에 성공했다.
재기 이후 국가대표 감독에 선임된다는 설이 퍼졌고, 논란 속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이후 대표팀에 이미 기대를 잃은 축구 팬들에게, 3백 전술을 고집하는 모습과 연이은 A매치에서의 부진을 보이며 큰 실망을 안겼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진출한 26 FIFA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1승 2패와 더불어 3차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몬테레이 참사를 일으켜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32강 자력 진출은커녕 경우의 수에 매달리다가 결국 진출 가능성이 전부 소멸하면서 비참하게 탈락, 12년 전을 능가하는 조별리그 연속 탈락의 충격적 결과를 보여주며 지도자 경력에 치명타를 맞았다. 어찌저찌 K리그나 동남아시아 쪽에서 근근이 감독직을 이어간다 한들 실리와 명분을 전부 잃은 감독 홍명보가 이전과 같은 반등을 할 가능성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명보는 분명히 선수 시절에는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명선수였지만, 감독으로서는 선수 시절의 명성에 비하면 평가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클럽팀에서는 성과가 아예 없진 않았으나 국가대표팀에서는 1기와 2기 모두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성적과 함께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광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성과를 남겼기에 축구를 넘어 종목 불문 역대 최악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된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홍명보호가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특히 약팀 남아공을 상대로 최악의 졸전 끝에 참패하자[47] 후배 김영광 등 수많은 축구인이 홍명보 나가를 외치며 홍명보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을 정도이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의 조별 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SNS를 통해 홍명보 감독을 직격하며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했다며 비판까지했다.
결국 2026년 6월 29일,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의 충격적인 경기력과 조별리그 탈락의 후폭풍으로 자신의 두 번째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하면서 불명예스럽게 국가대표 감독 커리어를 끝내고 말았다. 그런데 사퇴 기자 회견에서 회견을 녹화로 진행한데다 미리 적어놓은 입장문만 10여분 정도 짧게 낭독한 후 기자들의 질의응답은 전혀 받지 않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기자 회견이 아닌 무성의한 입장문 발표회였을 뿐이었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퇴장하는 등 태도가 매우 불량해 대중들의 큰 비난을 받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국내 식당과 편의점, 카페 등 곳곳에 아예 '홍명보 출입금지' 표시판이 붙은 정황이 포착되고[48], 심지어는 인터넷상에서 살해를 하겠다는 둥 협박성 글도 자주 게시되어 대중의 분노가 매우 큰 상황이다.
5.3. 행정가
대한축구협회에서 전무이사로 활동했던 초반에는 A대표팀 감독 시절의 비판, 낙하산 인사 문제, 당시 축구협회의 논란에 의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다가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에 김판곤 전 홍콩 감독을 선임하여 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 처리를 상당히 개선시켰다.원래 본인의 꿈은 지도자가 아닌 행정가였는데, 처음부터 협회에서 앉혀준 국가대표 코치가 아닌 행정가로서 말단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면 지금보단 평가가 백배 나았을 수도 있다. 꾸준히 행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데다 K리그 승부조작범의 사면과 관련해서 완강하게 거부를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행정가로서 본인이 고평가를 받았던 시스템들을 정작 본인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무시하거나 파괴해버리는 행위를 보여주면서 행정가 시절에 대한 평가도 같이 하락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축구행정가 홍명보와 축구감독 홍명보는 별개로 평가받아야 마땅하고 팬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으나, 정작 이후 본인이 직접 그 잘 만들었다는 시스템과 원칙들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자 정말로 행정가 시절의 업적들이 홍명보 본인의 손에서 나온 것이 맞느냐는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다른 국가대표팀 감독과 달리 홍명보는 협회의 행정을 모두 아는 입장에서 이런 행위를 저질러버리니 더 의문을 낳는 행보였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 대한민국 유니버시아드 축구 국가대표팀
- 하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1991
6.1.2. 개인 수상
- FIFA 올해의 선수 후보[49]: 2002 (17위), 1996 (21위)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2002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2002
- FIFA XI: 1997
- AFC 아시안컵 토너먼트의 팀: 2000
- AFC 아시안컵 올타임 XI: 2018
- AFC 아시안컵 올타임 드림 XI: 2023[50]
- AFC 아시안 올스타[51]: 1997, 2000
- AFC 명예의 전당: 2014
- AFC 아시아 월드컵 올타임 XI: 2020[52]
- K리그 MVP: 1992
- K리그 베스트 XI: 1992, 1994, 1995, 1996, 2002
-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2013
- K리그 공로상: 2012
- K리그 명예의 전당: 2023
- J리그 디비전 1 베스트 XI: 2000
- J리그 디비전 1 올스타: 1999, 2000, 2001
- KFA 대상: 2009[53]
- 백상체육대상 대상: 1994
- FIFA 100: 2004
- IFFHS 20세기 아시아팀 (1901–2000)
- IFFHS 올타임 아시아 드림팀: 2021
6.1.3. 수훈
6.1.4. 통산 기록
6.1.4.1. 클럽
| <rowcolor=#fff>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리그컵 | |||
| <rowcolor=#fff>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 1992 | 포항제철 아톰즈 | 한국프로축구대회 | 29 | 1 | - | - | 8 | 0 |
| 1993 | 포항제철 아톰즈 | 한국프로축구대회 | 11 | 1 | - | - | 1 | 0 |
| 1994 | 포항제철 아톰즈 | 코리안리그 | 17 | 4 | - | - | 0 | 0 |
| 1995 | 포항 아톰즈 | 코리안리그 | 24 | 1 | - | - | 7 | 0 |
| 1996 | 포항 아톰즈 | 프로축구대회 | 29 | 7 | 0 | 0 | 5 | 0 |
| 1997 | 포항 스틸러스 | 프로축구대회 | 0 | 0 | 0 | 0 | 6 | 0 |
| 1997 | 벨마레 히라쓰카 | J리그 | 10 | 0 | 3 | 1 | 0 | 0 |
| 1998 | 벨마레 히라쓰카 | J리그 | 32 | 2 | 2 | 0 | 0 | 0 |
| 1999 | 가시와 레이솔 | J리그 디비전1 | 28 | 5 | 4 | 2 | 5 | 2 |
| 2000 | 가시와 레이솔 | J리그 디비전1 | 29 | 2 | 2 | 0 | 2 | 0 |
| 2001 | 가시와 레이솔 | J리그 디비전1 | 15 | 0 | 0 | 0 | 3 | 0 |
| 2002 | 포항 스틸러스 | K-리그 | 19 | 0 | 0 | 0 | 0 | 0 |
| 2003 | LA 갤럭시 | 메이저리그 사커 | 25 | 0 | 2 | 0 | - | - |
| 2004 | LA 갤럭시 | 메이저리그 사커 | 31 | 0 | 0 | 0 | - | - |
6.1.4.2. 국가대표
2002년 11월 20일 기준이다.| <rowcolor=#fff> 연령 | 출전 | 골 |
| U-17 | 0 | 0 |
| U-20 | 0 | 0 |
| U-23 | 1 | 0 |
| A대표 | 137[55] | 10 |
| 합계 | 138 | 10 |
6.2. 감독
6.2.1. 대회 기록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09~2012)
- 울산 현대/울산 HD FC (2021~2024)
- K리그1: 2022, 2023
6.2.2. 개인 수상
-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2012
- K리그1 감독상: 2022, 2023
- K리그 이달의 감독상: 2021년 8월, 2022년 3월, 2023년 2~3월
- 한국체육기자연맹 올해의 지도자상: 2022
7. 논란 및 사건 사고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논란 및 사건 사고#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홍명보/논란 및 사건 사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어록
8.1. 명언
니네 거짓말쟁이야? 새끼들아!
그 사람들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해. 그 사람들은 그 결과 하나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이야, 여러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 건 사실이라고. 그런 측면에서 다음, 다음 경기까지 우리가 세트를 묶어서 잘 훈련할 수 있도록 하자.
푸른파도2 2화
푸른파도2 2화
자 수고했고 경기 결과 아쉽지만... 이거는 경기 결과, 결과를 떠나서 다른 이야기이지만 너네 왜 경기 계속하면서 조금만 부딪히면 아! 하고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 심판 쳐다보고. 여기는 내가 얘기했지! 인터내셔널 매치라고. 그러고 골 먹고 전부 다 심판(보고) 손 들고. (운동 가방을 걷어차며) 이게 팀이야? 이게 팀이야?? 전부 다 넘어지면 "아!", "아!"! 내가 분명히 얘기했지! 이건 또 다른 경기라고, K리그 아니라고!! 더 힘들면, 넘어지면 빨리 일어나서 다음 갈 생각을 해야지. 넘어지면 손 들고 레프리 쳐다보고! 이거는 경기 결과하고 다른 얘기야. 니들의 이 부분은 오늘 분명 최악이었어 내가 보기엔!
푸른파도2 4화에서 나온 대사로, 축구 팬들에게 제일 유명한 발언이다. 당시 경기에서 경합중 자빠지고 심판에게 어필하다 역습을 허용한 설영우로 인해 나온 발언.
푸른파도2 4화에서 나온 대사로, 축구 팬들에게 제일 유명한 발언이다. 당시 경기에서 경합중 자빠지고 심판에게 어필하다 역습을 허용한 설영우로 인해 나온 발언.
우리 서포터를 솔직히 이야기하면 굉장히 다른 서포터들에 비해서 양반이야.
한 가지만 딱 얘기할게. 오늘 끝나고 니네들이 정말로 좋은 선수, 잘하는 선수라고 한다고 하면 현대가 더비 이번주 주말에 이겨. 경기 내용이고 컨디션이고 필요 없어. 이겨. 이기는 길밖에 없어. 무슨 얘긴지 알겠어? 이길 수 있어. 빨리 이틀 동안 회복해 가지고 주말에는 진짜로 우리 팬들 실망시키지 말자.
2022년 FA컵 4강 현대가 더비 탈락 후
2022년 FA컵 4강 현대가 더비 탈락 후
마지막 날 여러분한테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유감이고... 우리는 지금 계속 이 과정에서 어떤 선수가 어떤 선수와 조합이 잘 맞는지 계속 지켜보는 과정인데 내가 그 안에서 조끼를 못 입었다고 해서 벌써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 보이고 그런 선수 몇 명 있어. 용병도 마찬가지고. 나한테 중요한 것은 누구였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나한테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만큼 좋은 태도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중요하지. 내가 누구였나, 지난 해 어떻게 했다,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여기는 모두 다 11명을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자리고, 조금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경기장에 나가야 하는 게 맞아. 그렇게 아니면은 너네 다 죽어. 올해 다 죽는다고. 작년에 우승한 거? 작년에 우승한 거 누가 지금 기억해? 어제 내린 눈이야 보이지도 않아.[58] 작년에 우승했다고 올해 쉬울 것 같아? 내가 얘기했잖아. 더 어려울 거라고. 내가 굉장히 오늘 마지막 날이라서 내가 너네한테 이런 얘기 하는 게 굉장히 유감이야. 진짜로.
푸른파도3 1화
푸른파도3 1화
세상에는 완벽한 준비라는 건 없어. 그 준비가 얼마만큼 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도 결과를 낼 수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고. 이제 개막전, 38경기 중에 한 경기야. 3점을 따도 되고, 1점을 따도 되고, 0점을 따도 되는 경기야. 근데 세상 살다 보면 똑같은 일이지만 어떤 걸 너무 많이 잃을 수도 있고, 어떤 건 너무 많이 얻을 수도 있는 거야. 우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또 어떤 내용을 가져오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많은 걸 잃을 수도 있고, 또 많은 걸 얻을 수도 있다고. 전북? OK, 다 인정해. 걔들이 얼마나 칼을 갈겠어? 얼마나 우릴 죽이고 싶겠어? 근데 그걸 알고도 그냥 칼을 맞아? 걔들이 정말 총칼을 들고 나올 걸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하고 거기에 맞으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니야. 예측하고 대비해. 개인적으로도, 팀으로도.
푸른파도3 2화
푸른파도3 2화
승점 3점 딴 거 축하할 일이고 기뻐할 일이야. 근데 그거 외에는 후반전은 내가 보기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아. 여러분 만족해, 후반전? 이런 축구 계속 할 거야? (중략) 승점 3점 딴 거 OK, 6연승 OK. 그거는 여러분들이 축하받을 일이고 기뻐해야 될 일이야.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나은 팀으로, 더 강한 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즐겁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확하게 반성할 때는 반성하자고.
푸른파도3 3화
푸른파도3 3화
축구란 게 내 마음대로, 준비한 대로 되면 그게 축구야? 축구 아니라고.
푸른파도3 5화
푸른파도3 5화
내가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항상 어떤 상황이라도 배움의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쉽게 얘기하면 모든 일들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지. 여러분한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러분 인생이나 축구가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러분이 제일 잘해야 되는 건 축구야. 괜히 SNS에 감성글 올리고 '내 기분이 어떻다', '나 어디 가서 옷 샀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럴 수 있다'라고 하지만 여러분이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거는 그게 아니라 운동장에서 좀 더 시간을 내서 땀 흘리고, 부족한 거 메워야 되고, 그게 제일 여러분한테는 중요한 거라고. 근데 여러분이 축구만 잘하면, 문수경기장 안에 가면 그건 내가 직접 느낄 수 있어. 아니 눈으로도 볼 수 있어. 거기에 여러분 보이지 않는 거에 자꾸 손 뻗으려 하지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거기에 좀 더 시간을 들였으면 좋겠어.
내가 여러분들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패배에 대해서, 물론 패배라는 거는 굉장히 뼈아프고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돼. 하지만 특히 우리 울산 같은 경우는 이제 1번 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약올리고 더 해. 내가 얼마 전에 얘기했지? 그걸 이겨내는 방법은 우리가 경기장에서 이기는 거야. 그거 외에는 답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우릴 시기해? 경기장에서 더 얄밉게 축구하면 돼. 그리고 승리를 가져오면 되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푸른파도3 7화
내가 여러분들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패배에 대해서, 물론 패배라는 거는 굉장히 뼈아프고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돼. 하지만 특히 우리 울산 같은 경우는 이제 1번 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약올리고 더 해. 내가 얼마 전에 얘기했지? 그걸 이겨내는 방법은 우리가 경기장에서 이기는 거야. 그거 외에는 답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우릴 시기해? 경기장에서 더 얄밉게 축구하면 돼. 그리고 승리를 가져오면 되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푸른파도3 7화
지금은 운동장에서 웃지 마. 웃지 말고 고통 느끼면서 전북전 이길 때까지 참아. 그 다음에 웃어. 그 다음에 전북 박살 낸 다음에 웃으라고.
오늘 지금 밖에 날씨 덥고, 습도 높고, 여러분 집중력 떨어져. 하지만 어느 누구도 90분 동안 휘슬 불기 전까지 집중력 떨어뜨리지 말잔 말이야. (중략) 오늘 팬들도 많이 왔는데 오래간만에 우리가 팬들한테 결과? OK. 결과 주는 게 제일 좋아.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뭔가 감동 있는 경기를 한번 해보자고.
세상에 예를 들면은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좋지 않을 때 일반 사람들하고 달라. 더 그만큼 혹독한 시간을 보낸단 말이야. 여러분도 마찬가지야. 나는 매일매일 웃으면서 운동할 수 있어. 근데 그게 꼭 답은 아니야. 어떨 때는 우리가 힘든 모습도 보여야 되고, 힘들어해야 되고, 그래야지 오늘같이 통쾌한 승리가 있단 말이야.
푸른파도3 8화
오늘 지금 밖에 날씨 덥고, 습도 높고, 여러분 집중력 떨어져. 하지만 어느 누구도 90분 동안 휘슬 불기 전까지 집중력 떨어뜨리지 말잔 말이야. (중략) 오늘 팬들도 많이 왔는데 오래간만에 우리가 팬들한테 결과? OK. 결과 주는 게 제일 좋아.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뭔가 감동 있는 경기를 한번 해보자고.
세상에 예를 들면은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좋지 않을 때 일반 사람들하고 달라. 더 그만큼 혹독한 시간을 보낸단 말이야. 여러분도 마찬가지야. 나는 매일매일 웃으면서 운동할 수 있어. 근데 그게 꼭 답은 아니야. 어떨 때는 우리가 힘든 모습도 보여야 되고, 힘들어해야 되고, 그래야지 오늘같이 통쾌한 승리가 있단 말이야.
푸른파도3 8화
상대 선수 명단 보지 말고 팀을 보라고 얘기한 적 있어. 뭔가 안도하는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왜? 여기 지금 나온 멤버 보고. 경기는 뭔가 우리가 만들어 가는가 하지만 또 중요한 순간에 어택해 가지고, 서로 우왕좌왕하다가 실점할 거고 그럴 거라고. 여러분들 내 말 명심해. 내 말대로 다 되니까.
푸른파도3 11화
푸른파도3 11화
자신감이란 거는 행동하는 거야. 시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거기에서 실수하더라도, 생각해 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여러분들이 뭔가 또 배우면서, 느끼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푸른파도4 3화
푸른파도4 3화
8.2. 실언
기본적으로 중동 애들은, 부담감이나 압박감이 우리 선수들 보다 적어. 이유는 쟤네는 잘 돼도 알라신이고, 못 돼도 알라신이야. 내일 여러분들은, 우린 알라신하고 싸우는거야. 오만과 싸우는 게 아니라 알라신하고 싸우는거야. 신하고 싸우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야 되겠는 건 알겠지?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당시 오만전을 앞두고.#[59][60]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당시 오만전을 앞두고.#[59][60]
손흥민이 잘하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잘하는 선수와 자기를 희생해 주변을 좋게 만드는 선수가 있는데, 손흥민은 전자.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던 손흥민을 최종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한 말[61]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던 손흥민을 최종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한 말[61]
모든 사람이 잘한다고 하니까 뽑았다.
2013년 대표팀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손흥민을 발탁했을때 한 말
2013년 대표팀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손흥민을 발탁했을때 한 말
우리나라 A급 선수들은 유럽에 나가면 거의 B급인데,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그보다 밑에 있다. 잘 하지만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와, 수준은 떨어져도 경기에 나가고 있는 선수가 있을 때 선수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사퇴 기자회견 현장에서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쓰지 않겠다'라는 본인이 세운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한 변명[62]
사퇴 기자회견 현장에서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쓰지 않겠다'라는 본인이 세운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한 변명[62]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습니다. 이게 제가 팬들에게 말한 것과 달리 마음 바꾼 이유입니다.[63]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실패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반대로 강한 승부욕이 생겼습니다.[64]
불공정하다거나 아니면 특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력강화위원회에서 1순위로 올려놨기 때문에 제가 감독직을 받은 거였습니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 조계원 위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
2024년 국정감사에서 조계원 위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
국가대표팀에 마지막으로 봉사를 한 번 하고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저는 다시는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나와서 제가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희망을 보았다.
동아시안컵 한일전 패배 이후
동아시안컵 한일전 패배 이후
주장 교체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개인을 위해서, 팀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시점.
9월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LA로 이적한 것을 두고
9월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LA로 이적한 것을 두고
겁이 나는 것도 어, 사실이에요. 그런데 하지만,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거를 흔들리면 안 되는 거죠. 그럴 때 감독이 흔들리면은 팀이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게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후회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1회 중 홍명보 개인 인터뷰에서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1회 중 홍명보 개인 인터뷰에서
단어 알지?
싸워.
오늘 경기장 나가서 싸워.
바보같은 행동을 해서 퇴장을 받는다거나 그거는 절대 안 돼. 하지만 순간, 순간, 순간마다 싸워. 나는 오늘 그거, 여러분, 볼 거야.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5회 중 2025년 11월 18일 친선경기 가나전 당일 팀 미팅에서[65]
싸워.
오늘 경기장 나가서 싸워.
바보같은 행동을 해서 퇴장을 받는다거나 그거는 절대 안 돼. 하지만 순간, 순간, 순간마다 싸워. 나는 오늘 그거, 여러분, 볼 거야.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국대: 로드 투 노스 아메리카 5회 중 2025년 11월 18일 친선경기 가나전 당일 팀 미팅에서[65]
데이터를 봤을 때 멕시코전보다 뛰는 양이 조금 줄었지만, 고강도(러닝)는 조금 더 많았다. 체력적으로 멕시코전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 선수들이 느려 보인 것에 대해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남아공전 졸전 원인을 묻는 기자들에게[66]
남아공전 졸전 원인을 묻는 기자들에게[66]
9. 별명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홍명보/별명#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홍명보/별명#|]]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0. 여담
- FIFA 월드컵 본선 무대를 가장 많이 경험한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인이다. 선수로서 1990년을 시작으로 1994년, 1998년, 2002년을 통틀어 16경기를 뛰었다. 지도자로는 수석 코치로 2006년 감독으로 2014년과 2026년에 각각 선수들을 지휘한 바 있다.
- 위의 짤에서 보이듯이, 사적인 자리에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며, 평소 성격도 침착하고 과묵하다. 결혼을 한 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홍명보의 아내는 "가끔 인형과 대화하는 것 같다"라고 느꼈다고 한다.[67] 선수 시절 출연한 TV 프로그램에서 직접 밝히길 프로포즈는 "김치찌개를 잘 끓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끓여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울산 감독 시절에는 팬들이 사진 촬영을 요청할 때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찍어주기도 했다.
- 팀에서의 등번호는 20번. 처음 국가대표로 출전했을 때부터 달았던 번호로 황선홍의 18번처럼 홍명보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았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함께 가장 유명한 20번 선수로서 한국 축구 한정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등번호가 되었다. 홍명보가 은퇴하자 그를 존경했던 포항 후배 이동국이 이어받았고, 이동국의 국가대표 차출이 불안해지자 제 2의 홍명보라 평가를 받는 홍정호가 이어받았다. 지금도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공격수가 주로 다는 20번을 수많은 한국 수비수들이 너도나도 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2002년 국대 시절에 주장 홍명보에게 이천수가 명보야. 밥먹자!라고 반말을 했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소문으로는, 김남일이 반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김남일 본인이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고 진짜로 이렇게 말을 한 사람은 이천수였다고 밝혔다. 이에 홍명보는 2021년 인터뷰에서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둘 중에 누구였든지 반말을 할 만한 사람들이지 않느냐라고 농담을 했다. 참고로 이천수와 홍명보의 나이 차이를 현재 2020년대로 체감하자면 대표팀에서 거의 막내급인 이강인이 국대에서 은퇴한 기성용이나 구자철한테 반말을 하는 정도로 비교할 수 있다. 실제로 이천수는 2002년 세대에서 거의 막내급이었다.
- 나중에 이천수가 해명하길, 팀원들끼리 딱딱한 위계 질서를 깨기 위해서 선후배 관계와 상관없이 서로 반말을 하도록 명령을 한 사람이 다름아닌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고 한다. # 이천수가 말하길, 거스 히딩크 감독이 본인을 따로 불러서 밥을 먹고 있는 홍명보에게 반말을 하라고 직접 시켰다는데 본인은 그 순간이 엄청나게 무서웠다고 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말을 듣지 않으면 엔트리에서 짤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고 회상하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뻘개지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한다. 옆에서 홍명보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본 선배들은 거의 뒤집어지듯이 웃었다고 한다.
- 선수/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를 모두 달성한 케이스. 다만 홍명보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 축구단에서 병역 생활을 했고 그나마 4대 독자여서 6개월만 복무했다. 원래 당시 기준으로는 방위 대상이지만 그냥 본인 희망으로 상무에서 복무한듯 하다.
- 빠른 1969년생에다 87학번 동기 사이였던 황선홍과 매우 절친한 사이다. 출신 학교는 다르지만, 오랜 기간 국가대표에서 각각 공수 핵심으로 활약하며 함께한 바 있다. 국가대표로는 대학교 4학년이던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 무려 4회의 월드컵을 함께했다. 국가대표 은퇴식도 합동으로 치러졌다. 프로구단에서는 포항 스틸러스와 가시와 레이솔에서 팀메이트로 뛰었다. 게다가 지도자로 전업한 이후로 자신이 이끌었던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도유망한 선수들의 병역특례를 이끌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68]
- 이전부터 축구 팬 사이에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첫 4강을 이뤄 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으니,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호성적을 내는 게 아니냐"라는 10년 주기설(?)이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홍명보가 울산 감독으로서 17년 만에 울산 HD FC에 우승을 안기자, 사실 10년 주기설의 주체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홍명보가 아니냐라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고 실제로 홍명보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데 1992년 K리그 최초 데뷔 시즌 MVP 수상,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표팀 주장으로 4강 진출,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 2022년 울산 현대 감독으로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해 10년마다 대운이 온다는 기사도 쓰였다. # 결국 대한민국 역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서 10년 주기설은 대표팀과 홍명보 모두에게 적용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2032 AFC 아시안컵과 2032 브리즈번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을 홍명보가 맡으면 무조건 우승과 금메달을 딸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술 더 떠서 2042년에 2042 FIFA 월드컵 감독을 시키면 우승할 거라는 이야기들도 나왔는데 물론 이때 홍명보의 나이는 74세가 되기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나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 2026 FIFA 월드컵을 통해 월드컵 최고령 감독 기록을 경신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78세였기 때문이다.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개막전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진 경기에서 프랑스의 스트라이커 니콜라 아넬카에게 "와 봐! 새X야!"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도는데, 사실 이는 거짓이다. 애초에 말 자체가 별로 없는 홍명보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욕설을 하는 모습이랑 매치가 되는가?[69]
- 홍명보가 홍명바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는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 상황에서 호아킨의 슛이 이운재에게 막혀 대한민국의 4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KBS의 서기철 캐스터가 흥분한 나머지 홍명보를 홍명바로 발음한 것이다.
놀랍게도 홍명보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 만화가 존재한다. 제목은 '홍명보 이야기'. 이 만화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이며 작가는 닥터 노구치의 작가인 Toshiyuki Mutsu가 그렸다. 한마디로 작가가 홍명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정성껏 만든 만화책이다. 스펀지 시즌 1에서도 다룬 바 있다.
어게인!!의 작가 쿠보 미츠로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연재한 만화 3.3.7 박수[70]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학교선배이자 상사인 우메의 모티브가 홍명보라고 작가가 직접 밝혔다. 위의 닥터노구치 작가 작화에 비하면 꽤 많이 닮긴 했지만 차이점도 존재하는데, 우선 특유의 오대오 직모장발이 아닌 사카타 긴토키를 연상시키는 샤기컷 백발이며 맹한 눈빛의 우메와는 달리 홍명보는 상대의 이마를 히트비전으로 꿰뚫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다.
- 장남의 이름이 홍정민으로 잘못 나온 적이 있다. MBC 기분 좋은 날과 홍성민 군의 미술전시회 등에서 나온 게 그것인데, 여기서 둘째의 이름이 잘못 적혀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듯 하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요술봉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일본어로 봉을 '보'로 발음하기 때문에 나온 말장난. 원작에서는 4권 제 51막에서, 애니메이션에서는 1기 9화에 등장. 변신 시 사용자의 아버지를 누드로 만든다. 여담이지만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만화 자체에서 한국인 이름을 엉뚱한 데다 많이 쓴다. 월간 최홍만, 월간 최지우,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 야마토가 연재된 월간 최용수가 있다.[71] 거기에 위 짤방은 축까들이 홍명보 및 홍명보호를 깔 때 등장하기도 한다.
-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네이버 지식인 홍보 차원에서 각계 유명 인사들이 네티즌에게 묻고 싶은 것을 지식인에 올린 적이 있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오재석, 김승규와 함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3위 결정전 이란과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 중 병역 혜택을 우선으로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연평도에서 전사한 장병에게 염치 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고 말하며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운 야구 국가대표팀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사실 야구 선수들은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패스트푸드로 때운 반면 축구 대표팀은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 매끼 한국 음식을 비롯한 호화로운 식사를 했다. #
- 게다가 차범근이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하석주와 감동의 재회를 했는데[72] 칼럼에서 차범근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후 자신에게 연락을 안 한 선수는 하석주와 홍명보 뿐이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또 커졌다. 하석주야 각주에도 적혀 있듯이 죄책감이 너무 커서 연락을 못했고 차범근도 이를 이해했지만, 홍명보에게는 그럴 이유도 없었고 게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여론에게 비호감으로 찍혔었다.
- 1993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김호에게 락커룸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
- 김판곤 전 국가대표 선임위원장이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하기 직전에 여론이 험악해지자 마음고생이 심해져서 댓글에 대한 경험이 많은 홍명보한테 전화를 걸었고, 결과가 나오면 여론은 바뀐다며 김판곤을 위로해 줬다.
-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6년간 본인이 만든 장학재단인 홍명보장학재단을 통해 선행도 많이 하고 있다. 아무래도 설립자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축구 선수 육성이 주 목적으로 보인다. 홍명보 자선축구대회를 개최했으며 16년간 총 22억 8천만 원이 모였고 주로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 현역 시절 1994 FIFA 월드컵 미국, 유럽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수의 스페인 구단과 대표적인 명문 구단 FC 바르셀로나에서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2002년 당시 기사 원문은 삭제된 상태고 퍼온 기사 내용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앞두고 토지 80여 평을 11억 원에 매입해 '땅명보, 홍땅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 JTBC에서 방영한 '마이히어로' 에서 그에 일대기를 방영했다. 이때 대표팀 감독 선임 뒷이야기도 나오는데 사실 대표팀 감독을 하는 것에 대하여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나 김병지 등 주변 사람이 전부 반대했다고 한다. 당시 대표팀에 내부 관계자들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었고 대표팀 감독 자리도 이미 흙탕물이 돼 버려서 잃을 것이 더 많은 자리가 되어서 누가 와도 결과는 뻔한 상황이며 이번 월드컵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짐작했다고 한다. 홍명보 역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는 있었고 머리로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했으나 현재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이 자리를 맡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나라에 받은 혜택을 생각하면 피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홍명보 감독의 능력 부족도 능력 부족이지만 당시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울산 감독 부임 후 주목받고 있는 사실인데 아주 높은 확률로 '~하자고"라는 말투를 사용한다.
- 울산 HD FC 선수들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태도 문제를 보이자 라커룸에서 머리 끝까지 화난 상태로 "이게 팀이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유명하며, 실제로 유튜브에 접속하여 개빡친 홍명보라고 검색해서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홍명보 감독이 의자를 걷어차는 장면이 등장한다.
- 제주특별자치도를 좋아한다. 여행도 자주 다닐 정도라고 한다.
- 본인이 대한민국 축구계에 많은 파급력을 가진 것을 프로 선수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월드컵 경기를 뛰었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부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의 모든 경기에 개근해 총 16경기를 뛰었다.
- 2023년 3월, 대한축구협회의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으로 인해 과거 행정가 시절의 행보가 재조명받고 있다. 과거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재직 중이던 시절에도 사면 시도가 있었는데 당시 홍명보가 강력하게 반대했기에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 다른 이들처럼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안건 가결에 침묵을 지킨 이영표, 이동국, 이임생, 박경훈, 조원희 등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협회 임원진에 대한 여론이 바닥을 찍는 것과 반대로 홍명보는 진정한 2002 레전드로 재평가되고 있다. 홍명보-김판곤 시기 대한축구협회가 달라졌다는 호평이 많은 게 우연이 아닌 것임을 이번 사태를 통해 도리어 보여 준 셈이다.
- 선수 시절부터 현재까지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스타일에 살짝살짝 변화를 주는 건 여러 번 해 봤어도 기본은 귀 위를 살짝 덮고 목까지 기른 장발이다. 탈모도 없어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 181cm라는 큰 키와[73] 은퇴 후에도 유지하는 슬림한 몸매, 중후하고 젠틀한 이미지 덕에 수트빨이 굉장히 잘받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며, 여러 차례 패션 화보를 찍기도 했다.
-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과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김상식 감독과 친하기로 유명하다. 셋 다 고려대학교 87학번 동문이며, 2023년 한국시리즈가 열릴 때 LG 트윈스를 응원했다고 한다. 또한 비시즌 중에 김상식 감독이 울산에서 밥 한끼 먹었는데 자신에게 우승의 기운을 받겠다고 얘기했으며 정관장(당시에는 안양 KGC인삼공사)은 그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74] 아울러 2023년에만 야구, 축구, 농구에서 고려대학교 87학번 출신 감독이 이끄는 팀이 모두 우승을 했다.
- 박태하 감독과도 친한 사이다. 박태하는 1968년생이고 홍명보는 빠른 1969년생이라 친구 사이이며, 같은 시기에 포항 스틸러스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2024년 박태하가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으로 취임함으로서 라이벌 구단의 감독인 홍명보와의 스토리가 생기게 되었다. 다만 홍명보가 중간에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함에 따라 오래가지 못했다. 전적은 1승 1패.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는 선수로 월드컵에 나갔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26 FIFA 월드컵 때는 감독으로 월드컵에 나가 성인 때 말띠 해에 열리는 월드컵에 전부 출전하는 축구인이 되었다.
- 선수 시절 분데스리가의 VfB 슈투트가르트 (출처:2011년 12월 7일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 카를스루어 SC(출처:1997년 1월 10일 부산일보 기사), 세리에 A의 UC 삼프도리아(출처:1997년 1월 6일 문화일보 기사)), 프리미어 리그의 볼튼 원더러스(출처:2002년 7월 4일 KBS 기사) 등으로부터 이적 또는 임대 제안을 받았다.
- 어린 시절 별명이 '이쁜이'였다고 밝혔다.#
11. 둘러보기
| 홍명보의 역임 직책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 대표팀 | ||||
| 35대 | 8대 | 70대 | 75대 | |
| 클럽 | ||||
| 11대 | ||||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rowcolor=#fff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 김철수 (1983~1985) | 최순호 (1986~1987) | 이흥실 (1989~1990) | 박경훈 (1990~1991) | 박창현 (1992) | |
| <rowcolor=#ffffff>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
| 유동관 (1993) | 홍명보 (1994~1996) | 공문배 (1996) | 안익수 (1997) | 박태하 (1998~2000) | |
| <rowcolor=#ffffff>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 |
| 하석주 (2001~2002) | 김병지 (2003) | 김기동 (2004~2005) | 김성근 (2006~2007) | 김기동 (2007~2008) | |
| <rowcolor=#ffffff> 16대 | 17대 | 18대 | 19대 | 20대 | |
| 황재원 (2009~2010) | 김형일 (2010~2011) | 신형민 (2012) | 황지수 (2012~2017) | 김광석 (2018) | |
| <rowcolor=#ffffff> 21대 | 22대 | 23대 | 24대 | 25대 | |
| 배슬기 (2019) | 최영준 (2020) | 오범석 (2021) | 신진호 (2022) | 김승대 (2023) | |
| <rowcolor=#ffffff> 26대 | 27대 | 28대 | 29대 | 30대 | |
| 완델손 (2024~2025) | 전민광 (2025~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1%, #000 1%, #000 3.5%, transparent 3.5%, transparent 96.5%, #000 96.5%, #000 99%, #fff 99%), repeating-linear-gradient(45deg, #770007 2%, #e10030 5%, #e10030 7%, #e10030 10%, #e10030 12%, #770007 15%, #770007 17%, #e10030 20%, #770007 22%, #e10030 25%, #e10030 27%, #e10030 30%, #770007 32%, #e10030 35%, #e10030 37%, #770007 40%, #e10030 42%, #e10030 45%, #770007 4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1984년 이후 | ||||
| 초대 박창선 | 2대 조병득 | 3대 정해원 | 4대 정용환 | 5대 구상범 | |
| 6대 최인영 | 7대 이영진 | 8대 김판근 | 9대 최영일 | 임시 김병지 | |
| 10대 홍명보 | 11대 유상철 | 12대 이운재 | 13대 김남일 | 임시 이운재 | |
| 14대 김남일 | 15대 박지성 | 16대 박주영 | 17대 곽태휘 | 임시 하대성 | |
| 18대 구자철 | 19대 기성용 | 20대 손흥민 | |||
| 임시 주장의 기준은 정식 주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특정 단일 대회만을 위한 주장을 임시적으로 선임한 경우를 말한다. | |||||
| 월드컵을 본격적으로 나가기 전인 1980년대 중반 이전 시절은 제외된 불완전한 역대 주장 명단이다. | |||||
| 가시와 레이솔 주장 | ||||
| 시모타이라 다카히로 (1998~1999) | ▶ | 홍명보 (2000~2001) | ▶ | 와타나베 타케시 (2001~2002) |
| 홍명보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 개인 수상 | |||||||
| | 2022 · 2023 | ||||||
| | 2002 FIFA 월드컵 브론즈볼 | ||||||
| 베스트팀 | |||||||
| | 1992 · 1994 · 1995 · 1996 · 2002 | ||||||
| | | | | ||||
| 2021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 ||||
| 7월 조성환 (인천 유나이티드 FC) | → | 8월 홍명보 (울산 현대) | → | 9월 이병근 (대구 FC) |
| 2023 이달의 감독상 수상자 | ||||||||||||||||||||||||||||||||||||||||||||||||||||||||||||||||||||||||||||||||||||||||||||||||||||||||||||||||||||||||||||||||||||||||||||||||||||||||||||||||||||||||||||||||||||||||||||||||||||||||||||||||||||||||||||||||||||||||||||||||||||||||||||||||||||||||||||||||||||||||||||||||||||||||||||||||||||||||||||||||||||||||||||||||||||||||||||||||||||||||||||||||||||||||||||||||||||||||||||||||||||||||||||||||||||||||||||||||||||||||||||||||
| 3월 홍명보 (울산 현대) | → | 4월 고정운 (김포 FC) | }}} | |||||||||||||||||||||||||||||||||||||||||||||||||||||||||||||||||||||||||||||||||||||||||||||||||||||||||||||||||||||||||||||||||||||||||||||||||||||||||||||||||||||||||||||||||||||||||||||||||||||||||||||||||||||||||||||||||||||||||||||||||||||||||||||||||||||||||||||||||||||||||||||||||||||||||||||||||||||||||||||||||||||||||||||||||||||||||||||||||||||||||||||||||||||||||||||||||||||||||||||||||||||||||||||||||||||||||||||||||||||||||||||
| 홍명보의 기타 사항 | ||||||||||||||||||||||||||||||||||||||||||||||||||||||||||||||||||||||||||||||||||||||||||||||||||||||||||||||||||||||||||||||||||||||||||||||||||||||||||||||||||||||||||||||||||||||||||||||||||||||||||||||||||||||||||||||||||||||||||||||||||||||||||||||||||||||||||||||||||||||||||||||||||||||||||||||||||||||||||||||||||||||||||||||||||||||||||||||||||||||||||||||||||||||||||||||||||||||||||||||||||||||||||||||||||||||||||||||||||||||||||||||||
| ||||||||||||||||||||||||||||||||||||||||||||||||||||||||||||||||||||||||||||||||||||||||||||||||||||||||||||||||||||||||||||||||||||||||||||||||||||||||||||||||||||||||||||||||||||||||||||||||||||||||||||||||||||||||||||||||||||||||||||||||||||||||||||||||||||||||||||||||||||||||||||||||||||||||||||||||||||||||||||||||||||||||||||||||||||||||||||||||||||||||||||||||||||||||||||||||||||||||||||||||||||||||||||||||||||||||||||||||||||||||||||||||
| |
| {{{#!wiki style="color:white;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181818" | <colbgcolor=#00296d> A조 |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 니코 코바치 | 미겔 에레라 | 폴커 핑케 |
| B조 | 비센테 델 보스케 | 루이 판할 | 호르헤 삼파올리 | 엔지 포스테코글루 | |
| C조 | 호세 페케르만 | 페르난두 산투스 | 사브리 라무시 | 알베르토 자케로니 | |
| D조 | 오스카르 타바레스 | 호르헤 루이스 핀투 | 로이 호지슨 | 체사레 프란델리 | |
| E조 | 오트마어 히츠펠트 | 레이날도 루에다 | 디디에 데샹 | 루이스 페르난도 수아레스 | |
| F조 | 알레한드로 사베야 ☆ | 사페트 수시치 | 카를로스 케이로스 | 스티븐 케시 | |
| G조 | 요아힘 뢰프 ★ | 파울루 벤투 | 제임스 아피아 | 위르겐 클린스만 | |
| H조 | 마르크 빌모츠 | 바히드 할릴호지치 | 파비오 카펠로 | 홍명보 | |
| 역대 대회의 참가 감독 1930 | 1934 | 1938 | 1950 | 1954 | 1958 1962 | 1966 | 1970 | 1974 | 1978 | 1982 1986 | 1990 | 1994 | 1998 | 2002 | 2006 2010 | 2014 | 2018 | 2022 | 2026 | }}}}}}}}} | ||||
| 2026 FIFA 월드컵 참가 감독 | |||||
| {{{#!wiki style="color:#fff;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181818" | <colbgcolor=#000> A조 | 하비에르 아기레 | 휴고 브로스 | 홍명보 | 미로슬라프 코우베크 |
| B조 | 제시 마치 | 세르게이 바르바레즈 | 훌렌 로페테기 | 무라트 야킨 | |
| C조 | 카를로 안첼로티 | 모하메드 우에비 | 세바스티앵 미녜 | 스티브 클라크 | |
| D조 |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 구스타보 알파로 | 토니 포포비치 | 빈첸조 몬텔라 | |
| E조 | 율리안 나겔스만 | 딕 아드보카트 | 에메르스 파에 | 세바스티안 베카세세 | |
| F조 | 로날드 쿠만 | 모리야스 하지메 | 그레이엄 포터 | 사브리 라무시[1] → 에르베 르나르 | |
| G조 | 뤼디 가르시아 | 호삼 하산 | 아미르 갈레노에이 | 대런 베이즐리 | |
| H조 | 루이스 데 라 푸엔테 | 부비스타 | 요르고스 도니스 | 마르셀로 비엘사 | |
| I조 | 디디에 데샹 | 파페 티아우 | 그레이엄 아놀드 | 스톨레 솔바켄 | |
| J조 | 파일:2026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아이콘.svg 리오넬 스칼로니 |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 랄프 랑닉 | 자말 셀라미 | |
| K조 |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 세바스티앵 드사브르 | 파비오 칸나바로 | 네스토르 로렌소 | |
| L조 | 토마스 투헬 | 즐라트코 달리치 | 카를로스 케이로스 | 토마스 크리스티안센 | |
| 역대 대회의 참가 감독 1930 | 1934 | 1938 | 1950 | 1954 | 1958 1962 | 1966 | 1970 | 1974 | 1978 | 1982 1986 | 1990 | 1994 | 1998 | 2002 | 2006 2010 | 2014 | 2018 | 2022 | 2026 | }}}}}}}}} | ||||
[1] 본선 조별리그 1차전 직후 경질.
[1] 음력 1968년 12월 26일.[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프로필.[3] 스위퍼.[4] 現 포항 스틸러스.[5] 現 쇼난 벨마레.[6]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성적 부진, 토지 매입 논란 등이 있었으며 공식적으로는 개인적 논란으로 인한 자진 사퇴.[7] 2026 FIFA 월드컵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진 사퇴.[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공동 2위. 1998년 3월 7일에 열린 홍콩 대표팀과의 다이너스티컵 경기에서 홍콩에 게리 매키언(Gary McKeown)이라는 잉글랜드 국적의 외국인 선수가 기용되어 있었는데 FIFA는 이 경기를 A매치로 인정하지만 대한축구협회에서 A매치로 인정하지 않아 총 136경기로 기록했다. FIFA 기록 자체도 대한축구협회와 같은 136경기다.[9] 홍명보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 이후 국가대표에서 장현수, 권경원 등 대체적으로 수비수의 고정 등번호가 되면서 K리그 내에서도 주로 수비수가 많이 다는 번호이기도 하다.[10] 석사 학위 논문: 운동선수의 무산소와 유산소 훈련 특성이 항산화 효소와 지질과산화에 미치는 영향(2005. 2., 지도교수: 김성수)[11] 박사 학위 논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2016. 8., 지도교수: 강현민)[12] #[13]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급 선수가 나오기 힘든 포지션이 센터백과 골키퍼인데 동양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다른 인종보다 체구가 작고 체구가 클 경우 민첩성 등에서 손해를 보는데 이 부분이 센터백으로서 가져야 할 강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굳이 센터백으로 한정하지 않고 차범근, 손흥민을 포함한 모든 필드 플레이어와 비교했을 때도 홍명보는 국가대표로서 이룰 수 있는 걸 대부분 이뤘다고 볼 수 있다.[14] 사실 한국에는 전술가형 감독보다는 매니저형 감독이 더 많고, 전술보다는 리더십과 원팀을 우선시하는 악습이 있다. 그러다가 2020년대 들어서부터 한국이 축구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15] 34위.[16] 아마 박지성이 국대 은퇴를 번복했다면 박지성도 무조건 이 윙어 포지션에 투입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술에는 체력이 되고 수비력도 좋은 윙어가 필수이기 때문.[17] 대표적인 게 런던 올림픽 영국전 때 지동원을 투입했던 것이다.[18] 코로나19 집단 감염과 국대 차출로 기용 가능한 센터백 자원이 부족할 때 풀백을 좌우 스토퍼로 놓았고 윙어를 윙백에 놓는 3-4-3 전술로 풀 주전 상태인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해 이겼다. 당시 포항의 감독이 졸장도 아니고 명장인 김기동이었음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19] 저장 FC가 40강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99분 극장골을 넣은 덕분에 멜버른 시티를 40강 조 2위 경쟁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만약 그 골이 없었으면 결과적으로 울산은 2년 연속으로 40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20] 결과론이긴 하지만 홍명보의 판단이 옳았다 볼 수 있다. 무리하게 이기려고 라인 올리다 역습 먹고 지기라도 하면 진짜 우승이 물 건너갈 수도 있었으며 설사 이기더라도 선수들이 전부 갈려 이후 경기에서의 선전도 장담하기 어려웠다.[21] 브라질 월드컵 땐 일단 부임 기간이 너무 짧아서 장기 플랜이고 뭐고 뭘 해 볼 틈조차 없었으며, 항저우 감독 땐 본인이 육성한 유망주들을 구단에서 전부 팔아 버려서 장기적인 구상이 전부 물거품이 된 게 컸다.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결국 본선 1년을 앞둔 시점에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로 인해 어떻게든 3백을 입혀 보려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함과 동시에 플랜 A가 틀어지면 대책을 꺼내지 못하는 본인의 전술적 단점과도 겹치면서 2번째 월드컵마저 크게 말아먹고 말았다.[22] 거스 히딩크와 허정무는 성적으로 선수들에게 인정받은 특이 케이스니 제외. 조광래는 이청용이 그의 전술을 어려워한 탓에 불평한 적이 있긴 하나 선수와의 관계는 결코 나쁘지 않았으며, 파울루 벤투는 아시안컵 도중 이승우가 출전하지 못 한 것에 불만을 갖고 물병을 걷어찬 사건이 있었지만 이걸 제외하면 국가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이 벤투의 능력을 상당히 신뢰하며 그를 잘 따르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결국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좋은 결과로 따라와 주었다.[23] 현재 울산 홍명보 감독의 핵심 주전인 김영권이 BJ 감스트와 합방에서 이야기하길 본인이 청대 시절 당시 홍명보 감독에게 몇 안되는 쌍욕을 먹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는데, 일화로 훈련 중 집중력이 떨어진 나머지 기본적인 실수를 엄청해 훈련을 중단시키고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 불러세운 뒤 "야 김영권 네가 축구를 그렇게 잘해?"라며 팀에서 나가라고 들었고 나중에 숙소 도착 후 "진짜 짐을 싸야 하나?"라고 고민할 때 홍명보가 감독실에 따로 본인을 불러 "오늘 같은 정신 상태면 짐 싸서 나가라. 하지만 앞으로 오늘 같은 정신 상태를 갖지 않겠다고 나한테 약속하면 너는 내가 앞으로 데리고 가겠다"라고 이야기 해 김영권이 홍명보 감독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24] 이 탓에 이동국은 경력이 꼬여 버렸고 월드컵 수비진의 경우 말 그대로 시원하게 멸망했다.[25] 해외파의 주축은 거의 대부분 런던 올림픽 당시의 멤버들이다.[26] 사실 이 대표팀 내의 균열은 홍명보뿐 아니라 후임 감독들조차 완전히 봉합하는 데 실패했고 이 모든 사태의 만악의 근원인 기성용이 은퇴한 뒤에야 수그러들었다.[27] 49초부터.[28] 2023 시즌 홈 개막전에서 전북을 상대했는데 울산 서포터들이 'うそつき あまの'(거짓말쟁이 아마노의 일본어)라는 걸개를 내걸면서 아마노를 디스했다.[29]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미들즈브러의 감독인 스티브 맥클라렌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미들즈브러를 떠나자 선수 생활 은퇴와 동시에 미들즈브러의 임시 감독을 맡았다. 사실 감독 부임 당시에 제대로 된 자격증이 없어서 임시 감독이 되었던 것이지만 그전 시즌부터 맥클라렌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으며 임시 감독 부임 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후에 정식 감독으로 임명된다.[30]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 도중에 전임 감독 미카엘 라우드럽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었고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정식 감독이 되었다. 사우스게이트와 비슷하지만 시즌 도중에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었다는 차이가 있다.[31] '축구협회 조직개편... 전무 홍명보, 유스본부장 박지성', 김태현, 국민일보, 2017년 11월 8일. 참고로 박지성은 유스전략본부장이고 기술발전위원장은 놀랍게도 이임생. 1990년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란 점을 두고 선임한 것이라 비판이 있다.[32] '한국축구 쇄신 핵심 '홍명보·박지성' 위기 탈출 '특급 조커'로 나선다', 권영준, 스포츠월드, 2017년 11월 8일[33] 인사말하는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이사, 2018년 3월 22일, 네이버 스포츠 박지혜 기자.[34] 당시 김판곤은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홍콩축구협회의 전반적인 큰 역할을 맡으면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으나,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감독님이 적격인 것 같습니다"라는 홍명보의 설득에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35] 대표적으로 U-23 대표팀 감독 선임이 있다. 김판곤은 파울루 벤투 때처럼 검토, 인터뷰, 재검토 등 절차를 거치려 했으나, 감독 후보 인터뷰도 다 안 끝났는데 대한축구협회의 높으신 분들이 황선홍을 냅다 U-23 대표팀 감독으로 결정해 버렸다.[36] 사실 이 경기는 요르단 측이 홈 유니폼을 입은 경기였지만, 요르단의 홈 유니폼은 상하의 둘 다 흰색이다. 홈 어웨이라곤 해도 원래 흑백 TV에서는 상대팀과 겹치지만 않으면 홈 유니폼을 입는 게 원칙이다.[37] 어찌보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홍명보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로도 볼 수 있다. 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38] 다만 이 말은 해설자가 홍명보를 칭찬한 게 아니라 그 말디니를 두고도 옆에서 수비를 조율하려 드는 걸 보고 비꼰 거라는 의견도 있다.[39] 이 발언은 여러모로 이상한 게 홍명보는 미드필더로 놓기에도 기본기가 부족한 편이었지만 탁월한 축구 지능으로 리베로 역할을 맡은 선수인데 이런 선수를 공격수로 놓지 않았기에 탈락했다는 얘기는 상당히 기괴하다. 오히려 홍명보는 차범근호에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그나마 좋은 평을 받았다.[40] 2005년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박지성이 리오 퍼디난드 본인에게 들었던 내용을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41] 2025년 10월 14일 손흥민이 파라과이전에 출전하며 138경기로 기록 경신.[42] 스페인과의 24강 조별 리그 1차전에서 1골 1도움으로 득점에 모두 관여했고, 3차전인 독일전에서는 0:3으로 뒤진 후반전 상황에서 황선홍과 함께 연달아 득점하여 2:3까지 치고 올라갔다.[43] 다만, 이 시기에는 1996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고 홍명보 본인도 태업 의혹을 받던 시기였다.[44]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급 선수가 나오기 힘든 포지션이 센터백과 골키퍼인데 동양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다른 인종보다 체구가 작고, 체구가 클 경우 민첩성 등에서 손해를 보는데 이 부분이 센터백으로서 가져야 할 강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아 센터백 중 이만한 수상 경력을 쌓은 선수는 없으며, 김민재와 함께 최고의 한국인 센터백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시아 역대 베스트 11을 뽑을 때 이 둘은 거의 고정이며 뒤로 거론될 수 있는 선수들은 유럽 빅리그에서 활동한 요시다 마야, 라만 레자에이, 쑨지하이, 토미야스 타케히로 정도다. 사실 굳이 센터백으로 한정하지 않고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을 포함한 모든 필드 플레이어와 비교했을 때도 홍명보는 국가대표로서 이룰 수 있는 걸 대부분 이뤘다고 볼 수 있다.[45] 2009년 당시의 8강은 1991년 대회에서의 8강 토너먼트 진출(최종 8강 8위) 이후 무려 18년 만에 이루어낸 쾌거였다.[46]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 문서와 홍명보호(성인 1기)/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 참고.[47] 한 점 차로 지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팀과 남아프리카 팀의 실력 차이가 한참 나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지리라고 예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 패배로 대한민국이 조 3위로 떨어지는 것이 확정됐다.[48] 한 인터넷 게시글에서는 오히려 홍명보 출입환영이라는 문구를 적어 가게 입구에 붙여놨는데, 알고보니 그 가게가 정신과 병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49] 1996, 2002[50] 팬 투표[51] 2000년 폐지[52] 팬투표, 옵타 선정 베스트 XI에 모두 포함되었다.[53] 이광종과 공동 수상.[54] 2002 월드컵 선수단 전원 수훈.[55] 출처[56] 부숴버려[57] 이 말은 2023년 K리그 공식 유튜브 채널 인터뷰를 통해, 홍명보 본인이 한 최고의 명언으로 꼽았다.[58]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가 유로 1988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했던 발언을 인용했다.[59] 2026 FIFA 월드컵 이후 홍명보 감독이 사임하자 이 발언이 재조명되어 "알라신 전술"이라며 많은 조롱을 당했다.[60] 선수들이 투지를 다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알라하고 싸운다는 발언은 이슬람을 모독하는 발언이기에 문제가 크다.[61] 축구인으로서 홍명보가 처참히 몰락한 202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팀 감독인 리오넬 스칼로니와 크게 대조되는 발언이다. 스칼로니는 역대 아르헨티나 팀 감독 가운데 메시를 가장 잘 활용한다는 평을 듣는 동시에 메시가 없으면 별 것 아니라는 말을 듣던 아르헨티나 팀을 환골탈태시켰다는 평도 받고 있는데, "메시를 어떻게 다루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메시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하고 답한 바 있다. 즉 정말로 "자기가 잘하는 선수" 가 맞다면 데려다가 적절히 쓰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역량이다.[62] 네이버 기사 댓글에는 역시나 '솔직히 사실 아니냐.'는 투의 허언이 많은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말이 안되면서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물론 유럽 (주요) 리그 수준이 국내 K리그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선수 개개인의 역량과는 다른 얘기이다. 해외파가 처음부터 해외파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유럽 구단에 소속되면 이름값은 높아지겠으나 실력이 한순간에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차근차근 실력과 경험을 쌓고 두각을 보여 K리그, 나아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활약상을 보여 세계의 눈도장을 받고 유럽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며, 그를 위해 국내외의 인재들을 분석하고 선발해서 월드컵에서 활약할 기회를 부여하여 짧게는 월드컵에서의 호성적을 받고, 길게는 한국 선수들에게 명문 구단과 계약하고 빅리그에 진출하여 대성할 길을 열어주는 것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의 업무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물론 유럽 구단의 러브콜을 받아 유럽에 진출한 선수가 진출 당시에는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고 활약을 보여서 간 것은 사실이나, 유럽 진출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경기의 폼을 잃은 벤치워머들이 현재 K리그 주전 선수들보다 언제나 클래스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논리라면 해외파 선수, 특히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23명 이상이 되면 월드컵 엔트리에 K리그 선수를 하나도 뽑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홍명보와 반대되는 훌륭한 예가 2002년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이다. 그는 K리그에서 활동하던 부산 아이콘스의 수비수 송종국을 오른쪽 윙백으로 기용하여 세계적으로 이름난 선수였던 루이스 피구를 지워버렸고, 이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송종국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하게 되며, 불발되었지만 아스날 FC에서도 제안을 받을 정도가 된다. 이후 2020년 12월 홍명보가 직전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울산 HD FC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자, 사람들은 이 발언을 재조명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홍명보 감독님, 'B급 발언' 해명하셨나요?[63] 거절 의사를 밝혔던 국가대표팀 감독을 수락한 이유를 밝히면서. 이는 홍명보를 조롱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64] 로빈 반 페르시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면서 남긴 "내 안의 작은 아이가 속삭였다"라는 말과 유사하여 화제가 되었다. 작은 홍명보라는 말로 위의 말과 함께 홍명보를 조롱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65]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FIGHT'라는 한 단어를 띄워놓고 선수단에 동기부여를 목적으로 한 말이지만, 홍명보가 울산 시절 선수들에게 멘털리티를 고취하고자 뱉은 숱한 명언들과 비교하면 수준이 심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홍명보의 무전술을 의미하는 조롱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프레젠테이션 중 전술과 관련된 내용은 유출을 우려해 편집되었거나 촬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66] 이 인터뷰로 인해 홍명보 나가 밈이 나오며 홍명보 사퇴 여론에 더욱 불을 지폈다.[67] 홍명보의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서 언급.[68] 홍명보는 2012년 올림픽 대표팀에서 동메달을 지휘하여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김영권, 지동원 등이 병역특례를 받았고, 황선홍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서 금메달을 지휘하여 백승호, 정우영, 홍현석, 이강인 등이 병역특례를 받았다.[69] 홍명보는 기분이 수틀리면 욕 대신 그 특유의 돌부처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살짝 깔고 노려보는 버릇이 있다. 대표적으로 술집에서 홍명보를 만난 알바가 술을 잘못 내왔던 썰 등이 있다.[70] 이 만화는 학산문화사에서 정발되었다.[71] 몇몇 자막에서는 제이온스라고 되어 있다. 뜻은 같고 발음의 차이다.[72] 하석주는 월드컵 때 자신이 한 실책이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 이후로 차범근과 연락을 못 했다고 한다.[73] 2026년 기준 대한민국 남성 평균키가 174cm인 것을 감안하면 홍명보의 연령대는 물론 요즘 젊은 사람과도 비교했을 때도 큰 편이다.[74]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 및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EASL을 모두 우승했다.
분류
- 홍명보
- 1969년 출생
- 광진구 출신 인물
- 서울광장초등학교 출신
- 광희중학교 출신
- 동북고등학교 출신
- 고려대학교 출신
- 고려대학교 대학원 출신
- 국제결혼한 인물
- 센터백
- 수비형 미드필더
- 1992년 데뷔
- 2004년 은퇴
- 상무 축구단/전역
- 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
- 포항 스틸러스/역대 주장
- 포항 스틸러스/명예의 전당
- K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쇼난 벨마레/은퇴, 이적
- 가시와 레이솔/은퇴, 이적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은퇴, 이적
- K리그1 MVP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득점자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
-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00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선수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자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체육훈장 맹호장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코치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감독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저장 FC/역대 감독
- 울산 HD FC/역대 감독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감독
- 2026 FIFA 월드컵 참가 감독
- 인터넷 밈/축구 감독/대한민국
- 대한민국의 축구 행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