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병길이 서술한 천문서 성경(星鏡)에 대한 내용은 성경(천문서)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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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목차 | 위경 및 제안된 문서 |
최초로 인쇄된 성경인 구텐베르크 성경 |
1. 개요2. 명칭3. 영향력4. 권수5. 구약성경과 신약성경6. 정경과 외경7. 성경 본문의 다양성8. 읽거나 해석하는 방법
8.1. 성경에서 근거하는 태도와 방법8.2. 성서주석학을 통한 성경 읽기
9. 번역10. 논란11. 성경의 책들12. 등장인물(등장순)13. 에피소드14. 지명15. 학문16. 성경 디자인 선택 요령17. 참고: 성경 속의 화폐 단위와 도량형18. 참고: 성경 속의 달력19. 연표20. 기타8.2.1. 주의: 구약의 폐기는 신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8.3.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 읽기8.4. 성경을 읽는 순서20.1. 성경 없음 구절
21. 주요 문헌22. 외부 링크[clearfix]
1. 개요
성경(聖經, Sacra Scriptura) 혹은 성서(聖書, Sacra Biblia)는 유대교·사마리아교와 그리스도교의 경전 모음집이다.종교 및 전통마다 경전으로 삼는 범위가 다른데, 사마리아교와 과거의 사두가이파는 토라만을, 현대 랍비 유대교에서는 타낙(구약성경) 24권을,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성경[1] 및 신약성경을 범위로 한다. 또한 이슬람의 쿠란 속에서 내용과 구절들을 뒷받침할 때 많이 언급되는 책이다.[2]
2. 명칭
<colbgcolor=#fbd200,#444> 언어별 명칭 | |
히브리어 | <colbgcolor=#fff,#191919>ביבליה |
아람어 | ܟܬܒܐ ܩܕܝܫܐ |
코이네 그리스어 | τὰ βιβλία [ ta biblia] |
라틴어 | Biblia Sacra, Sacra Scriptura, Sacra Pagina |
영어 | (Holy) Bible, Holy Scriptures |
한국어 | 성경(聖經), 성서(聖書) |
성경3(聖經)
발음[성ː경]
「명사」
「1」 종교상 신앙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 기독교의 성경, 불교의 팔만대장경, 유교의 사서오경, 이슬람교의 코란 등이 있다. ≒성전.
「2」 『기독교』 기독교의 경전. 신약과 구약으로 되어 있다. ≒성경전서, 성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성경(聖經)은 넓게는 종교 일반의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다만 현대 한국어에서 이런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사실상 용례가 소멸하다시피 했고, 압도적으로는 기독교의 책에 대해 쓰인다. 기타 한자 문화권에서도 성경이란 단어를 기독교의 경전만을 가리키고 있으며 기타 다른 종교의 경전은 고유 명사(쿠란, 베다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3][4]발음[성ː경]
「명사」
「1」 종교상 신앙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 기독교의 성경, 불교의 팔만대장경, 유교의 사서오경, 이슬람교의 코란 등이 있다. ≒성전.
「2」 『기독교』 기독교의 경전. 신약과 구약으로 되어 있다. ≒성경전서, 성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영어의 Bible은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어원이 같다. 당시에는 서적이 동물의 가죽[5]을 나무막대 등에 돌돌 말아서 한 면에만 글을 쓰던 형태와, 지금의 책과 비슷하게 제본하여 양면에 글을 쓰는 형태가 있었다. 이때 지금의 책과 비슷하게 만들던 것이 파피루스다. 영어의 Bible이라는 단어는, 이 파피루스를 당시 전 세계로 수출하던 페니키아의 비블로스(Byblos)라는 도시에서 따왔다. 단순히 파피루스의 발음이 순화되어 비블로스로, 그리고 그 비블로스가 바이블로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다. 둘 중 어느 경우이든 Bible은 '책'과 관련있는 어근으로, 따라서 (Holy) Bible은 (성)서로 직역할 수 있다.[6]
또다른 표현 Holy Scriptures(Sacra Scriptura)는 종교 경전을 일컫는 Scripture(Scriptura)[7]에 Holy(Sacra)를 붙인 표현이다. 따라서 Holy Scriptures는 '성경'으로 직역할 수 있다.
3. 영향력
성경은 전 세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이다. 구약과 신약의 성경의 많은 인물들과 일화들은 성경이라는 경전의 범주를 넘어 현대인에게조차 상식의 범주에 해당한다. 현재의 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며,[8] 이슬람 문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9] 이슬람도 기독교와 같이 유대교를 뿌리로 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쿠란도 성경과 내용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유사하거나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저자가 무신론자인 책에서도 성경 구절이 직접 인용되거나, 성경에서 비롯된 일화나 인명, 지명 등이 사용될 정도. 또, 많은 창작물들에서 성경이 소재로 사용된다. 당장 서구권만 가도 요한(John), 마태오(Matthew), 바오로(Paul), 야곱(Jacob), 시몬(Simon), 베드로(Peter) 등 성경에서 따온 이름들이 굉장히 많고[10] 에스파냐어에선 예수(Jesús)도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성경을 소재로 한 서양 예술작품들과 각종 문학, 음악, 조각, 그리고 성경 속 사건들을 기념하는 부활절ㆍ성탄절 문화 등 전 세계에 널리 퍼진 기독교 문화권의 상당 부분이 성경에 기반한 기독교적 관습에서 비롯되었다.[11]근대 이후로 지구상에 기독교 선교사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어지면서 기독교 문화와 거의 무관했던 곳은 전근대의 동아시아나 서아프리카·남아프리카[12],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정도. 이외에도 동양 문화에도 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현대에는 그나마 한국을 제외한 동북아시아가 기독교와 좀 동떨어져 있는 편이지만, 그마저도 서구 문명의 영향을 깊게 받아 천사, 악마나 천국 지옥과 같이 성경에 등장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요소에 익숙해져 있는 등, 종교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문화적으론 기독교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그리고 불교도 기독교적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하거나 일부 학자들에 의해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점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게 과해서 예수불자설이나 불교도 이슬람교처럼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주장해서 문제이긴 하다. 또한 사람들이 유교, 불교 경전[13]보다 성경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등 성경 그 자체의 영향력도 상당하고 할 수 있다.[14]
성경을 열성적으로 가르쳐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요즘에야 성경 내용을 한 줄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워낙 다양한 주제와[15] 다양한 형식이[16] 한데 엮여 있어서 내용을 요약하기가 힘든 책이다. 성경 내용의 주요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를 요약하는 것 자체가 기독교 교파마다 달라서 통일되고 확정된 요약은 거의 없다. 현대에 들어 오락거리로 크게 환영받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에 비하면 오락거리로서의 성격은 희미하다.[17] 기본적으로 무대가 사람 사는 땅에 맞춰져 있어서 성격 자체도 차이가 나는 편이고.[18] 하지만 서양 대중문화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기에 각종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연극 등에서도 성경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 경우가 많고 등장인물도 성경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변형시킨 경우도 많기에 그 흔적을 아는 사람은 찾기 쉽다.
어떤 분야에서 성경처럼 떠받드는 책을 '무엇무엇의 바이블'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가령,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공산주의의 바이블, 동의보감은 한의학의 바이블이라는 식으로.
현재 한국 기독교 성경은 개신교와 천주교의 번역본이 다르다. 개신교 측에서 한국 천주교와 함께 공동번역 성서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개역한글판을 주로 사용했다. 개신교는 단일교파인 천주교와 달리 의견이 통일되지도 않기 때문에, 어느 번역본을 쓰는지는 교파나 예배당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19] 반면 한국 천주교는 줄곧 공동번역판을 쓰다가, 결국 2005년 11월 말(대림 시기)부터 시간 전례를 제외한 전례 중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천주교 신자들은 최소한 공동번역 성서를 하나쯤 소장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기도와 묵상에 이 성서를 활용하는 것에도 제약을 두지 않는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성경/번역 문서 참고. 그 외에 상기한 대로 성경 목록도 좀 다르다.
4. 권수
현대에는 단일한 책 1권으로 엮어져 나오지만, 동시에[20] 여러 문서들을 한데 묶어서 만든 전집(全集)이다. 때문에 성경전서라고도 불리며 총 73권(가톨릭)[21] 또는 66권(개신교)이다.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에서는 일찍이 유대교의 마소라 본문에 포함되지 않았던 7권을 외경이라 부르며 제외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이 7권을 '제2경전'으로서 정경으로 분류한다.[22] 여기에 예수의 새 계약(新約)이 명시되었냐 여부로 39권(개신교) · 46권(가톨릭) / 신약 27권으로 나뉘며, 세세하게 들어가면 오경, 역사서, 지혜문학, 예언서 등등 여러 구분이 있지만 성경공부 많이 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여기까지는 잘 모르고 대부분이 구약과 신약 정도만 구분한다.여기서 약(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約束)을 뜻한다. 즉, 구약은 구세주를 보내주겠다는 옛날의 약속, 신약은 구세주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새로운 약속이다. 다만 신약이 있으니 구약이 무의미하다는 식으로는 기독교에서 간주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구약은 성경이라는 올리브 나무의 뿌리이며, 신약은 열매이다.
신구약을 영어로는 각각 Old Testament, New Testament라고 하는데, 일반명사 'testament'는 증언, 유언이라는 뜻이나 성경의 'Testament'는 약속이 적힌 증명서라는 뜻이다. 어두의 대소문자 차이에 주목하자.
기록 연대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기원후 200년대까지 추정하지만, 고문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정확한 작성 연대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오래전에 기록된 책부터 가장 최근에 기록된 책 사이의 연대가 약 1,200년이나 되어서 당연히 저자도 여러 명. 한 사람이 1권만 쓰기도 하고 여러 권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저자가 누구인지 언급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생각보다 세간에 알려진 저자가 실제 저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고, 많은 책이 저자 불명. 몇몇 책은 후대에 가필된 내용이 있다는 의심 혹은 확증도 있기도 하다. 구약의 정립 역사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현재의 신약 성경 목록이 완성된 건 로마 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경의 경우는 그 이전에 유대교에서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었으나, 신약의 경우는 느슨하고 통일되지 않았었다. 지역 교회마다 경전으로 인식하는 문서가 달랐을 정도. 그러다가 서기 367년에 성 아타나시오가 현재의 신약 27권 목록을 제안한 것이 397년에 열린 카르타고 공의회를 통하여 동/서방 교회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구약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46권을 확정하였지만 이는 서방교회에서만 받아들여졌다. 그 후 개신교에서는 교단별로 공회를 열어서 구약을 39권으로 축소하는 데 합의하였다. 자세한 것은 외경 참고.
5.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자세한 내용은 성경/구약성경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성경/신약성경 문서 참고하십시오.
구약성경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이해에 의하면 야훼와 이스라엘의 오래된(낡은X) 영원한 계약을 다루는 책이며, 타낙(תַּנַ״ךְ)에 대응한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교의 이해에 의하면 예수의 새로운 계약(신약)으로 갱신(폐기X)되고 계속되는 이스라엘(=교회)의 영원한 계약을 다루는 책이다.
6. 정경과 외경
교파별 정경 일람 (한국어 위키백과)교파별 정경 일람 (그리스어 위키백과)
외경 (히브리어 위키백과)
해당 교파가 공식적인 성경으로 인정한 복음서나 기록들을 정경(正經), 그 안에 포함되지 않은 성경들을 외경(外經)이나 위경이라고 한다.
일단 가톨릭은 구약에서 제2경전(총 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23], 개신교는 이를 외경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구약성경이 어디까지 경전이고 아닌지는 교회내에서도 논란거리였다. 70인역이 정경인지 히브리어 경전이 더 우월한지 의견차가 있었으나 70인역을 따르는 집단이 다수였다. 이는 397년 서방교회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24][25] 구약 정경을 규정할 당시 제2경전이 포함된 그리스어 70인역 성서를 주된 기준[26]으로 정했다. 반면 개신교는 마르틴 루터가 히브리어 성서의 우월성을 중시한 소수 교부[27]들의 의견대로 구약정경 39권만을 따른 이후 대부분의 종교 개혁가들이 루터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원전이 존재하는 성서만으로 이루어진 루터 기준의 구약 정경 목록 확립은 기원후 90년경 유대교 바리사이파에 의해 기원후 90년경 얌니아(Jamnia, 지금의 야브네/Yavneh)에서 개최된 것으로 전해지는 소위 "얌니아 회의"에서 정해졌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성경의 원류에 해당하는 유대인의 성경 타나크는 대략 B.C. 1500~400년대 사이에 오랜 세월을 거쳐 바벨론, 블레셋,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낱권들로 기록된 경전들이 제시하는 사상들에 대한 대안적인 사상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제시하려고 저술한 문서들로, 오랜 세월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얌니아 회의를 통해 현재의 분류가 확립되었다는 전승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예루살렘 멸망 후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가 얌니아에 세운 학교에서 유대교인들이 타나크(구약성서)의 경전 목록을 완결시켰다는 전승으로, 유대학자 하인리히 그래츠(Heinrich Graetz)가 1871년 처음 제시한 이래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던 정설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서 이들은 바리사이파 유대교로서 방향을 설정하고, 기독교와 관계를 단절하고, 경전의 정경 범위를 규정하는 의결을 내렸다고 한다.
즉 개신교의 정경은 본래 구약이 히브리어로 쓰인 만큼 '그리스어 성서보다 히브리어 성서가 더 오래되었고 더 정경에 가까울 것'이라는 의견[28]에 따라 70인역을 배제하여 결정된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나 장 칼뱅이나 모두 '외경은 정경만큼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읽으면 유익하다'고 평가했으므로, 오늘날 개신교에서 외경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쓰여진 내용의 진실성이나 역사적 가치 등도 상당 부분 인정한다. 단지 경전으로서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의 상당수 학자들은 얌니아 회의 자체가 실제로 개최되었는지, 외경을 읽는 자들을 저주내렸는지, 설령 회의가 개최되었더라도 '구약 정경 39권'이라는 결론이 여기서 도출되었는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학계에선 집회서 읽는 이단 저주기도문 얘기로 얌니아 회의는 개신교 정통성을 무너뜨리려는 가톨릭 학계의 음모론 취급도 한다. 실제로 얌니아 회의가 있었더라도 여기서 정경을 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 회의의 존재자체에도 회의적인 경우도 늘고있다. 실제로 오늘날 얌니아회의는 존재가 부정되는 추세다.[29]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1947년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사해문서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어 70인역 성경에 포함된 제2경전의 일부[30]와 희년서 등의 위경을 포함한다. 다만 이 문서는 그냥 유대 신비주의 에세네파 문서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본래 그전까지 2천 년간 제2경전은 원문인 히브리어 경전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개신교, 유대교로부터 제2경전이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있다. 설령 사해문서가 발견됐다 하더라도, 초기 교회 시절부터 히브리어 원본이 안 보였던 제2정경(외경)은 그 권위가 의심스럽다면서 개신교에선 신경쓰지 않는다.
교부들의 경우 통상적으로는 제2경전의 정경성을 인정하였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는 제2경전을 정경으로 봤다.
이러한 고찰의 대상이 되어 성경 정전 목록 전체에 들어가는 것은 다음과 같다:
모세 오경, 즉 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예수 나베의 책 한 권[31], 판관기 한 권, 룻이라고 부르는데 열왕기 첫 대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책자 한 권, 그다음 열왕기 네 권, (사상적으로는) 연속되지 않지만 이 책들과 나란히 이어지고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역대기 두 권이다. 이것은 역사(서)이며 (서로) 연관되는 시대를 담고 있고 사건의 순서를 지키고 있다.
차원을 달리하는 다른 책들은 이 순서나 자체들끼리도 연관이 없다: 욥기와 토빗기, 에스테르기와 유딧기, 마카베오기 두 권과 에즈라기 두 권인데, 이들은 열왕기 혹은 역대기에까지 끝난 정연한 역사를 뒤잇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예언서들이 나타나는데 다윗의 시편 한 권, 솔로몬 세 권, 즉 잠언·아가·코헬렛이다.
그리고 다음 두 책, 즉 지혜서라는 책과 집회서라고 일컫는 책은 어떤 유사성 때문에 솔로몬의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시라의 아들 예수가 이 (두) 책을 썼으리라는 개연성이 훨씬 높다. 그러나 이 책들은 권위에 있어서 그럴듯하기 때문에 예언서에 넣을 수 있겠다.
그 나머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언서라고 일컫을 책으로, 열두 예언자에게 한 권씩으로 되어 있다. (이 책들은) 서로 연관이 있고 한 번도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한 책으로 간주되고 있다: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
그러고 나서 네 예언서는 부피가 크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 에제키엘서, 이 마흔네 책으로 구약의 권위는 끝난다.
신약의 (권위는) 네 권의 복음서, 곧 마태오와 마르코와 루카와 요한이 쓴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 열네 편, 즉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갈라티아와 에페소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티토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 있다. 베드로의 (서간) 두 편, 요한의 (서간) 세 편, 야고보 (서간) 한 편, 유다 (서간) 한 편이 있다. 또 사도행전과 요한묵시록이 있다.[32]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 2,8,13, AD 396~397 저술,[33] 성염 역주
모세 오경, 즉 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예수 나베의 책 한 권[31], 판관기 한 권, 룻이라고 부르는데 열왕기 첫 대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책자 한 권, 그다음 열왕기 네 권, (사상적으로는) 연속되지 않지만 이 책들과 나란히 이어지고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역대기 두 권이다. 이것은 역사(서)이며 (서로) 연관되는 시대를 담고 있고 사건의 순서를 지키고 있다.
차원을 달리하는 다른 책들은 이 순서나 자체들끼리도 연관이 없다: 욥기와 토빗기, 에스테르기와 유딧기, 마카베오기 두 권과 에즈라기 두 권인데, 이들은 열왕기 혹은 역대기에까지 끝난 정연한 역사를 뒤잇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예언서들이 나타나는데 다윗의 시편 한 권, 솔로몬 세 권, 즉 잠언·아가·코헬렛이다.
그리고 다음 두 책, 즉 지혜서라는 책과 집회서라고 일컫는 책은 어떤 유사성 때문에 솔로몬의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시라의 아들 예수가 이 (두) 책을 썼으리라는 개연성이 훨씬 높다. 그러나 이 책들은 권위에 있어서 그럴듯하기 때문에 예언서에 넣을 수 있겠다.
그 나머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언서라고 일컫을 책으로, 열두 예언자에게 한 권씩으로 되어 있다. (이 책들은) 서로 연관이 있고 한 번도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한 책으로 간주되고 있다: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
그러고 나서 네 예언서는 부피가 크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다니엘서, 에제키엘서, 이 마흔네 책으로 구약의 권위는 끝난다.
신약의 (권위는) 네 권의 복음서, 곧 마태오와 마르코와 루카와 요한이 쓴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 열네 편, 즉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갈라티아와 에페소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 두 편, 티토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 있다. 베드로의 (서간) 두 편, 요한의 (서간) 세 편, 야고보 (서간) 한 편, 유다 (서간) 한 편이 있다. 또 사도행전과 요한묵시록이 있다.[32]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 2,8,13, AD 396~397 저술,[33] 성염 역주
다소 복잡한 건 불가타의 번역자인 예로니모(히에로니무스)인데, 불가타 번역 당시에는 제2경전의 경전성을 부인했으나, 이후에는 제2경전을 다시 성경으로 인용하였다.
베들레헴에서 예로니모는 히브리 성경만을 라틴어로 번역하기로 결정하고 집회서와 지혜서의 경전성을 분명하게 배제하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분명한 입장 표명과 달리 행동한다. 404년부터 그는 집회서의 한 구절을 성경으로 인용하고, 지혜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모리스 질베Maurice Gilbert, 《하늘의 지혜: 잠언, 욥기, 코헬렛, 집회서, 지혜서》Les cinq des Sages: Proverbs, Job, Qohélet, Ben Sira, Sagesse, 안소근 번역, 성서와함께, 2016, p.198
모리스 질베Maurice Gilbert, 《하늘의 지혜: 잠언, 욥기, 코헬렛, 집회서, 지혜서》Les cinq des Sages: Proverbs, Job, Qohélet, Ben Sira, Sagesse, 안소근 번역, 성서와함께, 2016, p.198
벤 시라의 많은 인용문이 교부 문헌에 나타난다.(Maurice Gilbert, Ben Sira: Receuil d'Etudes: Collected Essays. BETL 264 . Leuven: Peeters, 2014., 61-84) 기원후 2세기 초에 이미 집회 4,31의 인용문이 두 문헌에 나타나고(〈디다케〉, 4,5; 〈바르나바의 편지〉, 19,9), 아우구스티누스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각기 300개의 인용문을 포함한다. 히에로니무스의 초기 작품에서는 히브리어 졍경에서 집회서를 제외한 듯하지만
John L. McLaughlin 등,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12: 잠언·코헬렛·아가·지혜서·집회서》The Jerome Biblical Cmmentar for the Twenty-First Century: Introduction to the Wisdom Literature, Proverbs, Ecclesiastes, Song of Songs, Wisdom of Solomon and Sirach(2022), 박연식 번역, 성서와함께, 2024, p.280
[
Patrologia Latina(PL) 28,600-603.1242]
, 후기 작품(가령 PL 24,67D)은 집회서를 성경으로 받아들여 몇몇 구절을 인용한다(Gilbert, Ben Sira, 85-95).John L. McLaughlin 등,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12: 잠언·코헬렛·아가·지혜서·집회서》The Jerome Biblical Cmmentar for the Twenty-First Century: Introduction to the Wisdom Literature, Proverbs, Ecclesiastes, Song of Songs, Wisdom of Solomon and Sirach(2022), 박연식 번역, 성서와함께, 2024, p.280
기독교가 정경화 작업을 완료한 것은 4세기다. 그 이전에도 기독교에서 성경의 정경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목할 만한 권위있는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유대교에서 내부의 기독교인들을 외경을 보았기에 멸망당해 마땅할 이단으로 몰아 축출했다는 정도이거나, 기독교 내적으로 당시 이미 확정된 유대교의 타낙 목록에 관심을 보이며 그들의 성경과 우리의 성경이 다르다는 점을 구분하는 정도일 뿐이며, 우리의 성경에 제2경전 혹은 외경이 포함되었다는 단편적인 정보만 전해질 뿐이다. 즉, 4세기에 들어서야 기독교 내적으로 확고한 결정이 내려진다는 점에서 어디에서 무슨 주장을 어떻게 하든 사실상 개연성이 부족해질 뿐이다.
그렇기에 '유대교 전통에는 속하지만 타낙(유대교 정경)은 아니되, 기독교 정경으로써의 지위에 논쟁이 있는 문서'를[34] 정경으로 인정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학술적인 문제 뿐 아니라,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간의 근본적인 신앙관의 충돌 문제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리하면 구약이라고 부르는 유대교의 답습 부분이든 아니면 신약이라는 기독교의 자체적인 경전이든 관계 없이 "유대교가 먼저 정하고 난 한참 다음에야 자체적으로 그동안 70인역을 따르자는 다수파 기준대로 기독교 내적으로 정한 것"인데, 이것이 나중에 "개신교가 생겨날 당시 자증성과 같은 자체적 교리 타당성과 과거 히브리어 경전을 더 중시한 소수교부의 의견에 따라 그동안의 주장을 무효화하고 새로이 성경관을 세운 것으로 보면 된다. 어차피 개신교는 성경이 무오하고 교황과 공의회도 오류가 있다고 보니 이거 가지고 논쟁하기도 그렇다.
개신교에선 제1경전과 제2경전 사이에는 신학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다고 본다. 제1경전이 주의 권능과 은총을 중시한다면, 외경은 교회와 신앙 공동체(제2경전에 의하면 이스라엘)를 중시한다고. 그 외에도 마카베오기 하권의 구절 등을 거론하며 사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다. 또 다른 것은 신약성경의 인용성의 차이인데, 일반적 인용과 성경 권위로서의 인용이 있다는 것으로 신약성경의 인용한 구약의 구절들을 보면 성경 권위에 따른 인용에는 외경의 내용이 없다는 사례를 든다. 일반적인 인용으로는 그리스 철학자 말이나, 외경의 목록도 포함된다. 대한성서공회의 설명에 나온다.[35]
정교회는 76권을 정경으로서 인정하지만 각 국가별 교회에 따라서 약간의 시선 차이가 있으며, 주요국의 정교회는 공통적으로 제2경전에서 교리를 도출하지는 않는다.[36] 천주교는 이 70인역을 다시 라틴어로 번역한 성 히에로니무스의 불가타 성서를 주된 기준으로 70인역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므낫세의 기도와 에스드라 1, 2서가 빠져 있다.
유대교도 구약은 기독교와 공유하며, 그중 모세5경이라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토라(율법)로서 특히 중요시한다. 또 신약을 대신하여 탈무드가 성경에 준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대교와 정 반대로 초기 기독교의 이단 종파 중에는 아예 구약은 인정하지 않고 신약성경만 정경으로 인정한 교파도 있었다. 마르키온파 참고.
참고로 정경이나 외경과 대비되어 위경으로 분류된 문서들에 대해 위서 판별 같은 외적 판단 없이 순수하게 내용으로 평가하는 내적 평가로 비교하자면, 위경으로 분류된 문서들 대부분은 왜 교회에서 버려졌는지 현대적 기준에서 봐도 이해가 된다. 위경으로 분류된 문서들 대부분은 무슨무슨 묵시록 같은 말세 사상을 조장하는 종말론 문서들이다. 아무개가 바울로 같은 사도나 예언자들의 도움으로 지옥 구경을 하고, 악마가 갖은 방법으로 죄지은 자들을 고문하는, 철학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장면들만 나오다가 예수나 주를 만난다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다.
이런 문서들이 교회 내에 계속 있었다면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고 철학이나 종교적인 의미도 없으니, 어느 신학 노선이 주도권을 잡던 간에 사장될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음은 분명하다.
7. 성경 본문의 다양성
7.1. 약어
- [...]":"[...]: [...]장 [...]절
- ABP: Apostolic Bible Polyglot
- LXX: 칠십인역
- MT: 마소라 사본
- [...]Q[...]: 사해사본
- SP: 사마리아 오경
- Vg: 불가타
7.2. 창세기
1:1:- בראשית (태초에): MT 4QGenb (4QGeng) SP
ἐν ἀρχῇ: LXX
ברשית֯: 4QGenh - 다수의 MT에서 בראשית에서 첫 글자 베트는 다른 보통 글자에 비해 4배 더 크다.
- Masechet Sofrim에 따르면 원래 בראשית의 모든 글자가 다른 보통 글자에 비해 더 컸다.
- אלהים (신들, 하나님, 또는 서쪽[37]): MT (4QGenb) 4QGeng SP
ὁ θεὸς (신): LXX ABP - הַשָּׁמַיִם (하늘들): MT 4QGeng SP
τὸν οὐρανὸν (천국 또는 하늘): LXX
18:3:
- אדנים (주들): m. Shevuot 35b
אֲדֹנָ֖י (주): MT SP MTGinsberg MM MAM
κύριε: LXX ABP
יהוה (YHWH): Kennicott155 178 189 244 587 (MT יהוה, Ginsberg §107; cf. BHS, XV)
יהוה אדני (YHWH 주): Kennicott9 193 sup. ras. 6 - בעיניך: MT
בעיניכם: SP - תעבר: MT
תעברו: SP - עבדך: MT
עבדכם: SP
8. 읽거나 해석하는 방법
주님께서는 성경에서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셨기에 성경 해석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성경 저자들이 정말로 뜻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며, 주님께서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문학 유형들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예언적·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자들은 성경 저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그 시대와 문화의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려 하였고 또 표현한 그 뜻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 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 방식, 언어 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類比)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성경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경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 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주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계시헌장12
성경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문학 유형들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예언적·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자들은 성경 저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그 시대와 문화의 여러 조건들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들을 이용하여 표현하려 하였고 또 표현한 그 뜻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 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 방식, 언어 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類比)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성경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경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 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주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계시헌장12
기독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놓고 종파가 갈라진다. 같은 기독교인끼리 증오하고 정죄하는 경우도 많다. 신학적 견해가 판이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비슷한 신학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파고 들면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주요 교단에서 이단, 사이비로 판정한 자들은 분별해야 하나 성경은 어지간히 심각한 문제가 아닌 이상 다투지 말고 사랑으로 하나되라고 말한다.[38]
교인 중 성경을 인간이 해석해서는 안되고, 성서무오설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 신학자 중 성서무오설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회 현장에서는 설교의 편의성과 교인들의 신앙심 고취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서무오설을 전할 따름이다. 성경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므로 모든 말씀이 지금 2천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몇 천 년 전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여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인도 있다. 그러나 신학계 주류 입장은 성경의 모든 구절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39] 말씀을 들어 구원 받기 위해서는 할례, 5대 제사를 비롯한 구약의 613개 율법을 현재에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교인이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통 신학자의 견해에 따라 성경을 성경 전체, 또는 각 문헌 전체를 기준으로 해석하지 않고 일부 구절을 떼어서 그것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단의 주장을 하게 된다.
8.1. 성경에서 근거하는 태도와 방법
- 온유함으로 받는다(약1:21)
-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다(딤후1:13; 히4:2; 11:6)
- 말씀을 사랑한다(시119:48, 97,113, 167; 딤후1:13)
- 말씀이 풍성히 거하도록 한다(골3:16)
- 말씀을 마음에 둔다[40](눅2:19-51; 시119:11)
- 말씀을 즐거워한다(시119;99, 148)
- 날마다 상고한다(요5:39; 행17:11)
- 종일 묵상한다(시119:97)
- 주야로 묵상한다[41](수1:8; 시1:2)
- 성령의 조명을 받아 상고한다[42](요14:16-17; 벧후1:20-21)
- 말씀을 따라 삼간다(시119:9)
- 항상 곁에 두고 읽는다(신17:19; 수1:8)
- 자세히 읽는다[43](사34:16)
-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깨닫는다(행8:30-31; 17:2)
- 말씀에 순종한다(약1:22; 벧전2:8; 계1:3)
- 자녀들에게 가르친다(신11:19)
- 논쟁이 아니라 유익을 위해 힘쓴다[44](딤후2:14; 딛3:9)
8.2. 성서주석학을 통한 성경 읽기
성경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문자적 의미(literal sense)다. 문자적 의미는 눈이 보이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다. 대부분의 경우 문자적 의미만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이 의미만으로 성경의 깊은 가르침을 파악할 수 없다. 문자적 의미만을 고집하는 축자주의(literalism)는 때로 근본주의 해석을 낳고 이 해석이 반인륜적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
둘째는 문학적 의미(literary sense)다. 문학적 의미는 성경 저자가 본문 안에 담아 전달하려는 메시지다. 이 의미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역사비평의 제반 방법이 유용하다. 그러나 문학적 의미에만 매달리게 되면 성경 본문을 과거의 틀에 가둘 수 있다. 또한 본문 해석에 대한 수많은 가설과 이론으로 본문 자체를 해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는 영적 의미(spiritual sense)다. 영적 의미는 문자적 의미와 문학적 의미를 넘어서 성경을 읽는 오늘의 독자에게 성령께서 선물하시는 현실적 의미다.
-바오로딸, 《거룩한 독서를 위한 성경 주해》 총서 머리말
우리는 일상에서 말을 할때든 진지한 문어체를 구사할때든, 문자적 의미와 비유, 수사적 의문 등을 자연스럽게 섞어가며 발언한다. 요컨대, 우리는 서로간에 '문학적 의미'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성경 역시도 글이니만큼, 본문 자체는 '문학적 의미'에서 독자에게 말을 한다. 그렇기에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혹은 비유로만 파악하려는 것은 올바른 독법이라 할 수 없다. 다만 저자와 독자 사이에 놓인 시공간의 격차 때문에 본문의 문학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그렇기에 진지하고 열정적인 학습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45]둘째는 문학적 의미(literary sense)다. 문학적 의미는 성경 저자가 본문 안에 담아 전달하려는 메시지다. 이 의미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역사비평의 제반 방법이 유용하다. 그러나 문학적 의미에만 매달리게 되면 성경 본문을 과거의 틀에 가둘 수 있다. 또한 본문 해석에 대한 수많은 가설과 이론으로 본문 자체를 해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는 영적 의미(spiritual sense)다. 영적 의미는 문자적 의미와 문학적 의미를 넘어서 성경을 읽는 오늘의 독자에게 성령께서 선물하시는 현실적 의미다.
-바오로딸, 《거룩한 독서를 위한 성경 주해》 총서 머리말
가령 신명기에서 전쟁에 관한 율법을 보자. 신명기는 "히타이트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모조리 전멸시켜야 한다"(신명 20,17)고 말한다. 이는 마치 전쟁 중인 이스라엘인 독자에게 가나안인 전멸을 의도하는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그러한 독법은 단지 현대인의 감수성과 충돌하는 것을 넘어, 신명기 본문이 의도하는 1차적 의미와도 거리가 멀다. 여기 제시된 민족들은 신명기가 저술될때 이미 사라졌기에 이들 민족에 대해 유다인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현대 한국인이 거란족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실생활에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었다. 아래에서 게오르크 브라울리크가 지적하듯, "이 법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꼬집어 열거하고(20,17), 훗날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절멸 전술은 분명히 반대한다. 실제로 가나안인들의 근절을 겨냥했다면, 이 법은 대상 없는 요구를 한 셈이다." 오히려 신명기는 이미 쇠퇴한 과거의 민족들에 대해서는 절멸을 말하지만, 독자와 인접하여 사는 인근 민족들에 대해서는 절멸 언급을 피하는 곡예를 구사한다.[46]
신명기가 서술하고 또 명령하는 가차없는 폭력에 의한 땅 정복은 하나의 관념적 구상물이다. 이것은 신앙이 요구하는 철저함의 상징,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역사 안에서 완수하신다는 사실의 상징이다. 이민족 전멸 명령의 정형화된 적용은, 가나안 땅 점유 이후의 전쟁들뿐 아니라 훗날 유배로부터 이스라엘의 귀향과 관련해서도, 단호히 배제된다.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곳 주민 전체를 전멸시켰다는 전쟁은, 그 가설을 신명기가 설계하고 그 가설의 성취를 여호수아기가 보도하지만, 역사상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땅 주민들의 씨를 말린 잔혹하고 거룩한 전쟁이라는 표상은, 오래된 전승 요소들[예컨대 전리품 획득을 포기하고 신에게 사람·가축·물적 재화를 완전(절멸) 봉헌하는 승전, 이른바 헤렘herœm전쟁에 관한 보도들. 이미 멸망한, 부분적으로는 전설적인 종족들 목록. 토박이 종족들의 추방을 포함한 땅 약속들]을 의도적으로 체계화하고 일반화한다. 이 은유Metaphrik의 개별적 모티브들(예컨대 군사적인 테러 위협)은 아무래도 신아시리아의 선전포고와 언어와 표상 세계에서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스라엘 초창기의 '사실史實적' 재구성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니, 이민족 절멸 계명은 문학적으로 처음부터 우화적·종교적인 의미에서 말해진 것이다. 과연 이 계명은 일러야 요시야 시대에서, 즉 이 계명이 적용되는 종족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7세기 말엽인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미 자기 땅의 큰 부분을 다시 잃었다. 적과 적의 소유물을 절멸시킨다는 헤렘이라는 개념은, 온 땅이 너희 소유이며, 너희가 하느님을 철저히 신뢰하기만 하면, 그분은 그것을 너희에게 넘겨주실 것이다, 또는 잃어버린 땅을 다시 마련해 주실 것임을 암시하고자 했다. 하느님은 당신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당신께 맞서는 모든 자에게 압도적 승리를 거두신다. 여호수아기의 경우도 비슷한데, 이 책은 (신명기계 가나안 땅 정복 설화의) 이 발생사적 단계에서 신명기와 조화를 이룬다. 가나안 땅 점유가 처음에는 정탐자들의 보고를 듣고 난 이스라엘의 불신 때문에 좌절되었고(신명 1,32; 참조: 9.23-24), 여호수아 주도하에 성공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었다(요약: 여호 21,43-45). 여기서 묘사하는 전투들의 철저성은, 여호수아기의 본디 의미에 따르더라도, 이스라엘 역사 초창기의 초토화 전술에 대한 사실史實적 확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 신뢰의 철저성에 관한 설화적 상징이다. 이 철저한 하느님 신앙(이에 근거해 이스라엘은 초창기에 자기 땅을, 즉 자신의 행운을 얻었다)의 전쟁 은유는 또한 훗날 수백 년간의 국가 존립 이후 실패한 역사의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모세가 요르단 동쪽의 아모리족 임금들과의 헤렘 전쟁을 약설略說하기 전에, 신명기 화자話者의 중간 언급은 뒤이어질 야훼와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들과 이민족 절멸을 세계사적 '통례적'인 현상들로 상대화한다. 야훼께서 편을 드셨던(2,21.22) 이스라엘 이웃 종족들(2,12.23)도 이미 당시의 전前 주민들을 결딴냈다.
신명기 7장의 관점에 따르면, 헤렘은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 애착의 한 귀결이며, 이스라엘이 하찮고 숫자 적고 힘없지만 야훼에게 선택된 것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역사적 행동의 도구가 되기 위함이다. 약속의 땅의 강력한 일곱 민족을 절멸(완전) 봉헌하라는 명령의 배경에는, 전쟁을 역사 안에서의 신의 '심판'으로 여기는 근동의 통상적 견해가 있다. 여기서는 인종차별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며, 참으로 겨냥하는 바는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끝끝내 신뢰해야 할 이 세상에서 하느님 행동의 절대주권임을 이 관념의 보편주의적·신학적 단초가 분명히 알려 준다.
9,1-7에서 요르단 서쪽 땅의 정복이란, 은총과 공로에 관한 엄밀한 신학적 논증의 표현 수단일 따름이다. 이 논증은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염두에 두고, 가나안인들의 악함을 평준화한다. 그러므로 양쪽 모두 땅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끊임없는 거부·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얻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야훼께서 우두머리 조상들에게 하셨던 맹세에 충실하신 덕분이다. 다시 말해, 순전한 은총의 선물이다.
20,10-20의 전쟁에 관한 법은 후대의 전쟁들과, 여호수아 지휘하의 유일회적 주민 절멸 정복 전쟁을 명백히 구별하고 있다(20,15-18). 이 법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꼬집어 열거하고(20,17), 훗날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절멸 진술은 분명히 반대한다. 실제로 가나안인들의 근절을 겨냥했다면, 이 법은 대상 없는 요구를 한 셈이다.
29,21-27은 유배를 앞서 내다본다. 그때에는 다른 민족들에게 대항하는 일이 아예 없어질 것이다. 다른 민족들은 이 재앙의 원인을 묻다가, 자신들의 대답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역사 안에서 당신의 권리를 관철하셨다고 이스라엘과 함께 신앙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가나안의 일곱 민족을 그렇게 위험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던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이스라엘을 자기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미혹할 터였다.
이어지는 30,1-10의 귀향 예언은 유배된 자들을 이민족들 사이에서 데려옴과 관련하여, 이집트 탈출 때와는 달리, 하느님의 폭력 행위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특히 약속의 땅의 새로운 소유에 관한 예언에, 이민족 절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스라엘의 집합과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은 이스라엘의 폭력 행위 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게오르크 브라울리크G. Braulik OSB, "신명기",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259-261쪽
또한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후대 독자들의 '수용 미학'[47] 관점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성경 역시도 많은 문학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경원시할 수는 없지만, 많은 문학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어쩌면 저자가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곳 주민 전체를 전멸시켰다는 전쟁은, 그 가설을 신명기가 설계하고 그 가설의 성취를 여호수아기가 보도하지만, 역사상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땅 주민들의 씨를 말린 잔혹하고 거룩한 전쟁이라는 표상은, 오래된 전승 요소들[예컨대 전리품 획득을 포기하고 신에게 사람·가축·물적 재화를 완전(절멸) 봉헌하는 승전, 이른바 헤렘herœm전쟁에 관한 보도들. 이미 멸망한, 부분적으로는 전설적인 종족들 목록. 토박이 종족들의 추방을 포함한 땅 약속들]을 의도적으로 체계화하고 일반화한다. 이 은유Metaphrik의 개별적 모티브들(예컨대 군사적인 테러 위협)은 아무래도 신아시리아의 선전포고와 언어와 표상 세계에서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스라엘 초창기의 '사실史實적' 재구성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니, 이민족 절멸 계명은 문학적으로 처음부터 우화적·종교적인 의미에서 말해진 것이다. 과연 이 계명은 일러야 요시야 시대에서, 즉 이 계명이 적용되는 종족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 유래한다. 기원전 7세기 말엽인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미 자기 땅의 큰 부분을 다시 잃었다. 적과 적의 소유물을 절멸시킨다는 헤렘이라는 개념은, 온 땅이 너희 소유이며, 너희가 하느님을 철저히 신뢰하기만 하면, 그분은 그것을 너희에게 넘겨주실 것이다, 또는 잃어버린 땅을 다시 마련해 주실 것임을 암시하고자 했다. 하느님은 당신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당신께 맞서는 모든 자에게 압도적 승리를 거두신다. 여호수아기의 경우도 비슷한데, 이 책은 (신명기계 가나안 땅 정복 설화의) 이 발생사적 단계에서 신명기와 조화를 이룬다. 가나안 땅 점유가 처음에는 정탐자들의 보고를 듣고 난 이스라엘의 불신 때문에 좌절되었고(신명 1,32; 참조: 9.23-24), 여호수아 주도하에 성공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었다(요약: 여호 21,43-45). 여기서 묘사하는 전투들의 철저성은, 여호수아기의 본디 의미에 따르더라도, 이스라엘 역사 초창기의 초토화 전술에 대한 사실史實적 확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 신뢰의 철저성에 관한 설화적 상징이다. 이 철저한 하느님 신앙(이에 근거해 이스라엘은 초창기에 자기 땅을, 즉 자신의 행운을 얻었다)의 전쟁 은유는 또한 훗날 수백 년간의 국가 존립 이후 실패한 역사의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모세가 요르단 동쪽의 아모리족 임금들과의 헤렘 전쟁을 약설略說하기 전에, 신명기 화자話者의 중간 언급은 뒤이어질 야훼와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들과 이민족 절멸을 세계사적 '통례적'인 현상들로 상대화한다. 야훼께서 편을 드셨던(2,21.22) 이스라엘 이웃 종족들(2,12.23)도 이미 당시의 전前 주민들을 결딴냈다.
신명기 7장의 관점에 따르면, 헤렘은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 애착의 한 귀결이며, 이스라엘이 하찮고 숫자 적고 힘없지만 야훼에게 선택된 것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역사적 행동의 도구가 되기 위함이다. 약속의 땅의 강력한 일곱 민족을 절멸(완전) 봉헌하라는 명령의 배경에는, 전쟁을 역사 안에서의 신의 '심판'으로 여기는 근동의 통상적 견해가 있다. 여기서는 인종차별주의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며, 참으로 겨냥하는 바는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끝끝내 신뢰해야 할 이 세상에서 하느님 행동의 절대주권임을 이 관념의 보편주의적·신학적 단초가 분명히 알려 준다.
9,1-7에서 요르단 서쪽 땅의 정복이란, 은총과 공로에 관한 엄밀한 신학적 논증의 표현 수단일 따름이다. 이 논증은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염두에 두고, 가나안인들의 악함을 평준화한다. 그러므로 양쪽 모두 땅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끊임없는 거부·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얻는다면, 그것은 오로지 야훼께서 우두머리 조상들에게 하셨던 맹세에 충실하신 덕분이다. 다시 말해, 순전한 은총의 선물이다.
20,10-20의 전쟁에 관한 법은 후대의 전쟁들과, 여호수아 지휘하의 유일회적 주민 절멸 정복 전쟁을 명백히 구별하고 있다(20,15-18). 이 법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꼬집어 열거하고(20,17), 훗날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절멸 진술은 분명히 반대한다. 실제로 가나안인들의 근절을 겨냥했다면, 이 법은 대상 없는 요구를 한 셈이다.
29,21-27은 유배를 앞서 내다본다. 그때에는 다른 민족들에게 대항하는 일이 아예 없어질 것이다. 다른 민족들은 이 재앙의 원인을 묻다가, 자신들의 대답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역사 안에서 당신의 권리를 관철하셨다고 이스라엘과 함께 신앙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가나안의 일곱 민족을 그렇게 위험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던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이스라엘을 자기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미혹할 터였다.
이어지는 30,1-10의 귀향 예언은 유배된 자들을 이민족들 사이에서 데려옴과 관련하여, 이집트 탈출 때와는 달리, 하느님의 폭력 행위에 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특히 약속의 땅의 새로운 소유에 관한 예언에, 이민족 절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스라엘의 집합과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은 이스라엘의 폭력 행위 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게오르크 브라울리크G. Braulik OSB, "신명기",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259-261쪽
가령 구약성경의 아가에서 이러한 예를 볼 수 있다. 아가는 유대교에서도 그리스도교에서도, 하느님과 '여성으로 표현된 백성'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본문 그 자체로만 보자면 아가는 그냥 남녀간의 사랑노래이며, 신학적인 이야기는 본문 안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의 주석학자들은 아가의 문학적 의미를 주석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의 우의적 감상이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구약 정경에 아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본문 그 자체에서는 보이지 않는 우의적 해석을 맥락적 의미에서 옹호해준다.
아가의 신학에 관한 물음에 관련하여 거듭 숙고되는 문제를 쿨C. Kuhl은 이렇게 둘러 말한다: "아가에는 종교적 사상이라는 게 전혀 없다. 과연 책 전체에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하느님도 종교도 ··· 나오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 책이 정경이 될 수 있었고 더구나 축제 두루마리에 들어가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회피할 수 없다."(C. Kuhl, Das Hohelied und seine Deutung, 1937, 141). 아가에 대한 우의적이고 제의적인 해석은 이른바 매우 세속적인 이 사랑 노래 모음집에서, 텍스트 자체는 제공하지 않는 신학적 의미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라고 흔히 비판받는다. 하지만 문학 기호론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우의적 해석을 아예 그릇된 것으로 평가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한 텍스트의 의미는 그때그때의 맥락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하나의 문학적인 텍스트, 다시 말해 다소간 '열려 있는 텍스트'는 다양한 맥락화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획득한다.아가를 성경이라는 맥락 안에서 읽는 독자에게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관계의 길고 긴 여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성경에서, 이 관계는 사랑과 혼인이라는 개념과 은유를 통해서 표현되거니와(참조: 호세 2장; 예레 2장; 에제 16장; 23장)] 우의적·예형론적 이해가 실로 수긍이 간다. 아가의 이른바 '원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것은 반反맥락화 또는 재맥락화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루트거 슈빈호르스트쇤베르거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 "아가",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680-681쪽
-루트거 슈빈호르스트쇤베르거Ludger Schwienhorst-Schönberger, "아가",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680-681쪽
구체적인 성경 해석의 예시로 '노예제'를 생각해보자. "과연 성경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신구약 저자들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1차적인 문필적 의도에서 말하자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인간 저자들은 분명하게 노예제를 전제하고 있다. 가령 바울로는 필레몬서에서 노예제를 하나의 사회적 현실로서 전제하고 있으며,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결국 성경의 인간 저자들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의도했을 의미에서만 보자면, 성경은 노예제 폐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노예제는 하느님의 뜻에 반대된다'는 결론은 성경의 내부 논리로부터 합리적인 연역적 귀결로서 도출이 된다. 이런 견해는 고대, 중세, 근대를 거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점점 확산되었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리스도인들의 건전한 '상식'이 되었다. 결국 "인간 저자들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가(과거형)"에서는 성경이 노예제 반대에 근거를 주지 않지만, "성경이 지금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현재형)에서는 분명하게 노예제 반대의 근거가 된다. 후자의 독서법은 비그리스도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 의도의 정당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책의 의미를 벗어난 것이지만, 성경을 '인간 저자와 성령의 공동 저작'으로 보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당한 것이다. 물론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인간 저자의 문필적 의도를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가지 의미 모두가 중요하다. 바울로는 노예제를 전제하였었지만(과거형), 바울로 서간은 노예제를 반대하고 있다(현재형).
성경이 쓰여진 시대는 인쇄 기술이 미발달하였고, 일일이 필사를 하여 옮기던 시대였다. 때문에 간혹 앞뒤 일관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나 많은 기독교 종파들은 대체적으로 하나의 성령 아래에서 씌어졌기에 내용상의 오류나 불일치는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예수가 태어날 것을 가브리엘 천사가 예고하는 장면에서는,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나자렛의 요셉에게 예고하는 것으로 나오나 루카 복음서에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예고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복음서의 상이한 차이를 '모두 다 받아들여'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수태고지 장면은 처음에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후, 성모 마리아의 정절을 의심하던 나자렛의 요셉에게 다시 한번 예고한 것이라는 식으로. 복음서마다 상이한 십자가상 7언(가상칠언)의 발언 차이도 복음서마다 묘사된 모든 말을 예수가 다 했다고 보는 게 신학계 정설이다.
성경은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과정에서 편집되거나 첨가된 것이 많다. 그래서 후대에 첨가된(혹은 그렇다고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현대 번역에서 해당 부분을 괄호 치고 주석으로 '오래된 사본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고 표시한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의 끝자락 또는 요한복음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이야기가 있다. 필사자들의 의도적인 왜곡도 있을 수 있지만 기독교는 공인되기 이전에는 탄압받고 숨어서 믿는 종교였기에 기록물 역시 은밀한 방법으로만 전수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확인·대조를 못 한 것이 한 원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는 그 내용이 역사적 배경이 나오지만 모든 서술이 실제 사건에 100% 기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상기되었듯, 성경에는 비슷한 내용인데 논점은 다른 경우도 있다. '누구누구가 멸절당했다'라는 내용과 '누구누구는 구원받았다'라는 기록(예리코 vs 니느웨)들이 그 예시. 다만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예를 들어 예리코는 악의 길을 걸어 멸절되는 원리를, 니느웨는 전도자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식으로 서로 다른 논점을 가지고 파악함으로써 모순을 피해갈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 점은 고려하자.
8.2.1. 주의: 구약의 폐기는 신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아래 문헌에서도 강조되다시피, 그리스도인 독자가 구약을 신약에 의해 폐기되었거나 철 지난 문서로 보는 건 올바른 독법이 아니다.이러한 왜곡된 독법을 바로잡는 것은 유다교의 시선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한다.그리스도인 독자가 구약의 내적 역동성의 종착점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이것은 소급적인 인식이며 그 출발점은 본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선포된 신약의 사건들에 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본문 안에서 선포된 내용을 보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비추어, 그리고 성령 안에서 본문 안에 숨겨져 있던 잉여 의미(surplus de sens)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교황청 성서위원회(위원장: 요제프 라칭거),《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 제2부 가.6.[48]
-교황청 성서위원회(위원장: 요제프 라칭거),《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 제2부 가.6.[48]
여기서 관건은 결국 성경의 개개 텍스트들의, 그리고 그리스도교 성경의 경우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두 부분의 고유한 가치와 의의를 인정해 주고, 그것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규범적 토론으로 이끄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해석학을 규범적 토론의 해석학이라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론상으로 또는 대화상으로 이 토론은 이를테면 같은 눈높이에서 이루어지거니와, 여기서는 그때그때 논의되는 하느님 인식들과 하느님 이해들이 신중히 비교되고 관련지어지고 분석되어야 한다.
...... 간단한 예를 통해 설명해 보자.
코헬렛이 죽음을 인생의 종지부로 주장한다고 해서, 신약성경의 부활 소식에 근거하여 그 책을 신학적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비난하고 또 거기서 신약성경에 의해 지양되어야 마땅한 구약성경의 전형적 한계를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매우 유익한 코헬렛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더 나아가 신약성경의 부활신학에서 한 중요한 차원을 빼앗는 것인즉, 이 차원은 바로 코헬렛과의 대화에서 명료해진다. 코헬렛은 죽음이 인간 삶을 끝장내며 이것은 하느님도 취소하시지 않는다고 도발적이고 매정하게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코헬렛에게 인간의 삶이 의미 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죽음의 권세에 맞서 코헬렛은 즐거움을 촉구하거니와, 즐거움은 하느님의 선물이요(3,13) 그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신다.(5,19). 이렇게 즐거움은 인간이 자신의 필멸성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고, 또 자기 삶을 하느님의 현존 안의 삶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이 된다. 코헬렛의 하느님은 현재의 하느님이니, 그분은 현재의 삶을 안배하시고 사람을 가상의 세계로의 혹은 아예 환상적인 미래로의 도피에서 지켜 주고자 하신다. 그런 도피를 코헬렛은 가로막는다. "네가 가야 하는 저승에는 일도 계산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9,10). 코헬렛이 '죽음 후의 삶'이라는 관념을 거부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하느님 현존의 시간으로서 '죽음 전의 삶'에 대한 중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아도 고유한 중요성을 지닌 언명인즉, 신약성경과 상충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죽음 전의 삶'과 근본적 연장선상에 있는) '죽음 후의 삶'에 대한 믿음에 하찮지 않은 심층 차원을 선사한다.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이종한 옮김, 33-34쪽.[49]
...... 간단한 예를 통해 설명해 보자.
코헬렛이 죽음을 인생의 종지부로 주장한다고 해서, 신약성경의 부활 소식에 근거하여 그 책을 신학적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비난하고 또 거기서 신약성경에 의해 지양되어야 마땅한 구약성경의 전형적 한계를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매우 유익한 코헬렛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더 나아가 신약성경의 부활신학에서 한 중요한 차원을 빼앗는 것인즉, 이 차원은 바로 코헬렛과의 대화에서 명료해진다. 코헬렛은 죽음이 인간 삶을 끝장내며 이것은 하느님도 취소하시지 않는다고 도발적이고 매정하게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코헬렛에게 인간의 삶이 의미 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죽음의 권세에 맞서 코헬렛은 즐거움을 촉구하거니와, 즐거움은 하느님의 선물이요(3,13) 그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신다.(5,19). 이렇게 즐거움은 인간이 자신의 필멸성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고, 또 자기 삶을 하느님의 현존 안의 삶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이 된다. 코헬렛의 하느님은 현재의 하느님이니, 그분은 현재의 삶을 안배하시고 사람을 가상의 세계로의 혹은 아예 환상적인 미래로의 도피에서 지켜 주고자 하신다. 그런 도피를 코헬렛은 가로막는다. "네가 가야 하는 저승에는 일도 계산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9,10). 코헬렛이 '죽음 후의 삶'이라는 관념을 거부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하느님 현존의 시간으로서 '죽음 전의 삶'에 대한 중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아도 고유한 중요성을 지닌 언명인즉, 신약성경과 상충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죽음 전의 삶'과 근본적 연장선상에 있는) '죽음 후의 삶'에 대한 믿음에 하찮지 않은 심층 차원을 선사한다.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이종한 옮김, 33-34쪽.[49]
28. ... 신약 성경이 존재하기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관계에 대한 질문, 예를 들어 신약 성경의 내용이 구약 성경의 내용을 대신하거나 무효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2세기에 마르키온이 이러한 입장을 내세웠다. 그는 신약 성경이 약속의 책인 구약 성경을 낡아 버린 것으로 만들어, 해가 떠오르면 달빛이 더 이상 필요 없듯이 새로운 것의 광채 안에서 구약 성경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히브리 성경과 그리스도 성경의 뚜렷한 단절은 결코 그리스도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리스도 교회는 144년에 마르키온을 쫓아내며 그가 주장한, 구약 성경의 모든 요소를 제거한 순수한 그리스도 성경이라는 개념을 배척하였다. 그리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주인이신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증언하여 두 성경의 일치, 곧 계약들의 일치(concordia testamentorum)를 견지하였다.
29. 물론 이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맺고 있는 관계의 일부일 뿐이다. 구약 성경의 공동 유산은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유대의 중요한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두 신앙 공동체들의 관계에 근본적 긴장을 야기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성경에 비추어 구약 성경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한 확신을 지닌 것이다.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구약 칠경 발췌 주해」[Quaestiones in Heptateuchum], 2,73). 이러한 의미에서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의 선포이며 신약 성경은 구약의 최고의 주해라고 정의하였다(「에제키엘서 강론」[Homiliae in Ezechielem], I, VI, 1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16항 참조).
30.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주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성경을 구약 성경의 완성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쉽게 줄 수 있다. 이러한 인상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서기 70년의 제2성전 파괴라는 재난 이후에 유다교도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성전에 묶여 있던 사두가이들은 이 재난에서 살아남지 못하였기에,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고유한 방식을 이미 발전시켰던 바리사이들을 따르는 랍비들이 유다교 신앙의 중심이 되어 성전 없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된 것이다.
31. 이에 따라 이 상황에 대한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을 읽는 새로운 두 방식, 곧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론적 주해와 역사적으로 발전하게 된 유다교의 랍비 방식의 주해가 나타난 것이다. 이 두 방식의 주해는 저마다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을 담고 있기에 그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회와 성전 파괴 이후의 랍비 중심의 유다교는 나란히 발전하였지만 서로 대립하고 서로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기에 이 문제를 신약 성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수세기에 걸친 이러한 상반된 입장을 넘어서서, 성경을 읽는 새로운 이 두 방식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어 “풍요로운 상호 보완성”을 이해하고 “하느님 말씀의 부요를 깊이 이해하도록 서로 돕도록”(「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49항) 하는 것이 유다교와 가톨릭이 나누는 대화의 과제가 되었다. 2001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 발표한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The Jewish People and Their Sacred Scriptures in the Christian Bible)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다교의 성경 해석이 가능한 해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고 또한 인정해야 하며 “그것은 제2성전 시대의 유다교 성서와 연속성을 지닌 해석으로서 병행적으로 발전한 그리스도교 해석과 유사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각자의 신앙관과 연관되어 있는데, 해석은 그 신앙관의 결과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가지 해석을 다른 해석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22항).
-교황청 유다교위원회, 〈가톨릭과 유다교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문제에 대한 숙고〉[50] #cbck#archive
29. 물론 이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맺고 있는 관계의 일부일 뿐이다. 구약 성경의 공동 유산은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유대의 중요한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두 신앙 공동체들의 관계에 근본적 긴장을 야기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성경에 비추어 구약 성경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한 확신을 지닌 것이다.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구약 칠경 발췌 주해」[Quaestiones in Heptateuchum], 2,73). 이러한 의미에서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의 선포이며 신약 성경은 구약의 최고의 주해라고 정의하였다(「에제키엘서 강론」[Homiliae in Ezechielem], I, VI, 1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16항 참조).
30.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주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성경을 구약 성경의 완성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쉽게 줄 수 있다. 이러한 인상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서기 70년의 제2성전 파괴라는 재난 이후에 유다교도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성전에 묶여 있던 사두가이들은 이 재난에서 살아남지 못하였기에,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고유한 방식을 이미 발전시켰던 바리사이들을 따르는 랍비들이 유다교 신앙의 중심이 되어 성전 없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된 것이다.
31. 이에 따라 이 상황에 대한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을 읽는 새로운 두 방식, 곧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론적 주해와 역사적으로 발전하게 된 유다교의 랍비 방식의 주해가 나타난 것이다. 이 두 방식의 주해는 저마다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을 담고 있기에 그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회와 성전 파괴 이후의 랍비 중심의 유다교는 나란히 발전하였지만 서로 대립하고 서로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기에 이 문제를 신약 성경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수세기에 걸친 이러한 상반된 입장을 넘어서서, 성경을 읽는 새로운 이 두 방식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어 “풍요로운 상호 보완성”을 이해하고 “하느님 말씀의 부요를 깊이 이해하도록 서로 돕도록”(「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49항) 하는 것이 유다교와 가톨릭이 나누는 대화의 과제가 되었다. 2001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 발표한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The Jewish People and Their Sacred Scriptures in the Christian Bible)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다교의 성경 해석이 가능한 해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고 또한 인정해야 하며 “그것은 제2성전 시대의 유다교 성서와 연속성을 지닌 해석으로서 병행적으로 발전한 그리스도교 해석과 유사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각자의 신앙관과 연관되어 있는데, 해석은 그 신앙관의 결과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가지 해석을 다른 해석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22항).
-교황청 유다교위원회, 〈가톨릭과 유다교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문제에 대한 숙고〉[50] #cbck#archive
구체적인 예시로 이사야서 7장 10-17절을 들어 말히자면, 이 예언은 1차적으로 당시 남왕국의 왕자 탄생을 예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서는 1차적으로 동시대 유다인들이 들으라고 나온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남왕국의 왕자 탄생을 넘어, 더 미래의 어떤 신적인 사건을 예고한 것으로 보는 것은 신약의 시선에서 뿐만 아니라, 유다교의 자기 이해에도 부합한다. 왜냐하면 칠십인역에서도 이미 이 구절을 과거 남왕국의 왕자 탄생 예고를 넘어, 미래에 있을 '동정녀에 의한 메시아 탄생 예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은,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예언이나 예형이 먼저 있었던 사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집트 탈출을 바빌론 탈출의 예형으로 보았다고 해서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이 이집트 탈출의 의의를 부정한 게 아니며, 베드로 1서 3장 20-21절이 노아의 방주를 세례의 예형으로 해석했다고 해서 저자가 노아의 방주를 무슨 동화책 읽듯이 한 게 아니듯, '남왕국 왕자 탄생'과 '동정녀에 의한 메시아 탄생'은 서로를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이사 7,10-17의 단락에서도 일차적으로는 아하즈 시대를 배경으로 이 말씀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그다음에 비로소 마태오 복음서가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피해야 할 가장 큰 오류는, 이 예언을 아하즈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같은 본문을 예수님께는 적용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다. 구약의 예언서들에서도 어떤 시대의 예언이 다른 시대에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의 본문은 어느 한 시대에 매이지 않고 계속적인 재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 지녔던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그와 다른 의미를 더 지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소근 수녀,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이사야서 1-39장》, 바오로딸, 2016, 137쪽
현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하나의 텍스트가 이렇게 재해석되는 과정이 기이하게 보일 수 있으나, 성경은 기본적으로 히브리 문화권에서 그들의 문체와 이야기 방식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엔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도 미드라쉬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이웃 종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신약이 구약을 보는 시선과 고대 그리스도고 교부들의 성경 주해에서 '히브리적 사고'가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가령 바울로만 하더라도, 오늘날 현대인의 사고 과정으로 그의 서간을 읽으면 사고 과정이 매우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히브리 문화의 예형론과 미드리쉬적 논법을 고려한다면, 바울로의 말하기 방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안소근 수녀,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이사야서 1-39장》, 바오로딸, 2016, 137쪽
미드라시적인 서술은 구약성서(집회 7:27-28, 1마카 7:16-17)와 신약성서(갈라 4:21-31, 히브 3:7-4:11, 7:1-10) 및 쿰란문학에서 나타난다. 요한 6:31-60과 지혜 11:2-19:22는 미드라시적인 설교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가톨릭대사전, '미드라시' 항목
-가톨릭대사전, '미드라시' 항목
어떤 교부들은 아주 일찍부터 성경 해석에 대한 유다인들의 전승에 몰두하였다. 오리게네스, 에우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는 무수한 해석에 유다 전승을 근거로 끌어 댄다. 에프렘과 아프라하트 같은 시리아 교부의 저서에서 라삐들의 성경 해석 전승과 병행하는 구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오리게네스와 히에로니무스는 팔레스티나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당대의 유다인들과 접촉한 것이 분명하고, 그 전승들이 유다인들에게서 왔다고 명확히 밝히기도 한다. ... 히에로니무스가 유다인들의 문헌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이는 퍽 확실한 것 같다. 그의 서한 36번에서 그는 유다인의 회당에서 적지 않은 책을 빌렸다고 했고, 카인의 죽음에 대한 유다인들의 전승를 인용하면서 "히브리인들의 문서 보관실에서" 재확인했다고 한다.
-귄터 스템베르거(Günter Stemberger) 씀. 이수민 번역. 《미드라쉬 입문 ―라삐들은 성경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개론, 선택과 본문》 333-334쪽
그리고 교황청 성서위원회 문헌인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에서 잉여 의미(surplus de sens)라는 과감한 단어를 선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예형론적 사고에서는 '예형'[51] 그 자체를 통해 '본형'[52]을 유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집트 탈출만으로는 바빌론 탈출을 유추할 수 없듯[53], 구약의 사건 그 자체에서는 신약을 유추할 수 없다. 다시 이사야서의 예를 들자면, 남왕국 왕자 탄생 자체에서는 당연히 예수 탄생을 유추할 수 없다. 그러나 칠십인역이 이를 동정녀에 의한 메시아 탄생으로 읽었고, 훗날 예수 사건이 경험되었기에,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예수 탄생'이라는 의미가 자명해진 것이다. 곧, 바빌론을 탈출한 유다인들이 이집트 탈출 사건의 의의를 치워버려서는 안되듯이, 그리스도인이 구약의 의의를 치워버려서도 안된다는 것이다.-귄터 스템베르거(Günter Stemberger) 씀. 이수민 번역. 《미드라쉬 입문 ―라삐들은 성경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개론, 선택과 본문》 333-334쪽
동일한 원리로, AD 1세기의 통일되지 않은 수많은 메시아관을 어리석다느니 무식하다느니 하면서 조롱하면 안된다.
1세기의 유다인들은 모두 메시아를 기다렸는가? 확실히 아니다. _사정이 그런 만큼 신약성서의 독자는 당시의 모든 유다인들이 폭넓게 받아들인 통일된 메시아니즘을 이 시대에 투사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_ 사실 예수의 면모에 다양한 메시아적 동기를 환원적으로 적용시킨 사람들은 바로 베드로 내지 나아가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노선을 따르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에 속한 이들이었다. 쿰란을 비롯하여 1세기 유다교 안에서 상황은 모호하였다. 그러기에 유다인들은 모두 군사적(軍士的)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예수는 사랑를 설파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자들을 찬양함으로써 권위를 인정받았다는 식의 단순한 설명에 너무 조급하게 동조해서는 안 된다.
-Charles Perrot 씀. 백운철 번역.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231-232쪽
신약의 관점으로도, "예수는 메시아이다"라는 신앙고백은 구약성경 책 자체만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며, '예수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구약 텍스트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교 관점에서도 구약 텍스트의 1차적 의미는 보존됨이 당연하다.-Charles Perrot 씀. 백운철 번역.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231-232쪽
신약성경 문서들이 이스라엘 성경에 터하여 쓰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성경 독해의 해석학적 단초는 분명해진다. 신약성경은 이스라엘 성경(또는 그냥 구약성경)의 빛 안에서 읽혀야 한다. 자주 인용되는 고대 교회의 성서학자요 번역자인 히에로니무스의 말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를, '구약성경을 알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살짝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이종한 옮김, 23쪽.[54]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 성전(聖殿)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구약 시대의 유다교에서 성전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비록 제의(祭儀)를 겉치레로만 할 경우 비판 받기도 하며, 성전이 없던 시대도 구약이 다루고는 있으나, 성전이 구약에서 얼마나 강조되는지는 두 말하면 입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종말론적 대사제로 고백하면서 예루살렘 성전 제의의 문자적 준수를 하지 않게 되었으며, 유다교 역시 〈가톨릭과 유다교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문제에 대한 숙고〉 30항에서 볼 수 있듯, 성전 파괴 이후에 '성전 없는 유다교'인 라삐식 유다교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구약에서 성전을 가리키는 구체적인 구절들을, 21세기 그리스도교와 유다교가 '철 지난 구절'로 읽을 수는 없다. 이 구절들의 문자적 준수는 21세기에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에 이 구절을 적은 저자가 의도한 1차적인 문필적 의미를 고려할 때,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고유한 성전 이해를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이종한 옮김, 23쪽.[54]
8.3.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 읽기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경을 읽는 방법이 특별히 설명할 가치가 있다. 토마스는 당대까지 통용되던 교부들의 성경 해석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현대 성서학의 기본 전제를 함축하고 있는 매우 중용적인 가르침을 남겼다.제9절: 성경은 은유적·상징적 화법을 써야 할 것인가[55]
아홉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경은 은유를 쓰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사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56] 최하위 가르침의 고유한 것은, 모든 학문 중에 최상위를 차지하는 이 학문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가지가지의 유사(類似)나 표상(表象, 표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은 모든 가르침 중에 최하위에 있는 시가(詩歌) 고유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유사를 사용하는 것은 이 학문에는 적합하지 않다.
1.그 밖에도 이 가르침의 임무는 진리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들에게는 포상도 약속되어 있다. 「집회서」 제24장 제31절에서는 "나를 빛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사를 통해서는 진리가 은폐된다. 물체적 사물들의 유사 밑에 신적인 것들을 전달하려는 것은 이 가르침에 적합하지 않다.
1.그 밖에도 어떤 피조물들은 탁월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신적 유사에 접근한다. 따라서 만일 피조물들에서 어떤 것은 하느님한테로 (하느님과 비슷한 것으로) 취해진다면 이런 채택은 할 수 있는 한 탁월한 피조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최하위의 피조물들에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흔히 이런 사례가 발견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다.
「호세아서」 제12장 제10절에서는 "나는 그들에게 환상을 많게 하였으며 예언자로 하여금 내 유사를 사용케 하였다."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사에 의해 전하는 것은 은유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은유를 쓰는 것은 거룩한 가르침에 속한다.
나는 이상의 것에 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물체적 유사 밑에 전하는 것은 성경에 적합하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그 본성에 따라 배려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감각적인 것을 통해 초감각적인 것, 가지적인 것에 이르는 것이 본성적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인식이 감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영적인 것이 물체적 사물들의 은유 밑에 우리에게 전달되게 되는 것은 적절한 것이다. 또 디오니시우스가 「천상위계론(天上位階論)」 제1장에서 "신적인 광명은 여러 거룩한 베일로 감싸이지 않고서는 달리 우리에게 비쳐질 수 없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점을 말한 것이다. 영적인 것들이 물체적 사물들의 은유 밑에 제시되게 되는 것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1장 제14절에서도 "나는 유식한 사람에게나 무식한 사람에게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한 바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주어지는 성경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것은 초감각적인 것을 그 자체로서는 이해하기에 적합하지 못할 만큼 무식한 사람들도 어떻든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그러므로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시가(詩歌)는 그 표현을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그것은 표현이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이 은유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필요하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1.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신적 계시의 빛은 디오니시우스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것을 가리고 있는 감각적 형상 때문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진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계시를 받은 정신들로 하여금 유사성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히려 초감각적인 것들의 인식으로 그 정신들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다. 또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세계에 대해 가르침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성경의 한 곳에서 은유로 전해지는 것이 다른 데서는 더 명백히 설명되는 것이다. 또한 형상적(形像的) 숨김 자체는 탐구자들의 훈련을 위해서도, 불신자들의 조소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유용하다. 여기에 대해 「마태오 복음서」 제7장 제6절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마시오."라고 한다.
1.셋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디오니시우스가 「천상위계론」 제2장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성경에서 신적인 것들을 고귀한 물체의 형상들로보다는 천한 물체의 형상들로 전하는 것은 더 적절한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쨰로는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 정신이 더 쉽게 오류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신적인 것들에 대해 말해지는 것은 고유한 의미로 말해지는 것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만일 고귀한 물체의 형상들로 신적인 것들이 표현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물체보다 고귀한 어떤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주 의심스러울 것이다. ─둘째로는 이 방법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갖는 인식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무엇인가보다는 무엇이 아닌가가 우리에게 더 명백하다. 따라서 그 유사가 하느님에게서 멀면 멀수록 더욱더 그런 유사는 하느님에 대해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에 대한 더 참된 평가를 하게 된다. 셋째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써, 신적인 것이 부당한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감추어지는 것이다.
제10절: 성경은 한 자구(字句) 안에 여러 의미를 갖는가[57]
열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경은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 다시 말해 역사적 혹은 자의적(字義的) 의미, 우의적(寓意的) 의미, 전의적(轉義的) 내지는 도덕적, 신비적(천상적) 의미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사실 한 성경 안에서의 여러 의미는 혼란과 기만을 조성하며 논증의 견고성도 없게 된다. 따라서 의미가 다양한 명제들에서는 논증이 진행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논증에 따른 어떤 오류들이 지적된다. 그런데 성경은 어떠한 오류도 없이 진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 효과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가 전해지면 안 된다.
1.그 밖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의 유익론」에서 "구약이라고 불리는 책은 네 가지로 전달된다. 즉 역사적으로, 원인론적으로 소급하여, 유비적으로, 우의적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넷은 앞서 말한 넷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경의 같은 자구가 앞서 말한 네 가지 의미로 해설되는 것은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그 밖에도 앞서 말한 의미 외에도 그것들에 내포되지 않는 비유적 의미가 발견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도덕론」 제20권에서 "성경은 그 화법 자체로 모든 학문을 초월한다. 그것은 같은 언사(言辭)를 통해 행적을 말함과 동시에 비의(秘義)를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상의 것에 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성경의 작가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말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사물 자체도 제공하는 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에 있어서 말은 의미를 표현하는데, 이 학문은 말로 표현된 사물들이 또한 다른 어떤 것을 의미케 하는 고유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말이 사물을 표현하는 첫째 표현이 첫째 의미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첫째 의미는 역사적 내지는 자의적 의미다. 그런데 말을 통해 표현된 사물들이 다시 다른 사물들을 표현하는 의미 표현은 영적 의미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런 영적 의미는 자의적(字義的) 의미에 기초를 갖고 있으며 또 그것을 전제로 한다.
이 영적 의미는 세 가지 모양으로 구분된다. 사실 사도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제7장 제19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옛 법은 새 법의 상징이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가 「교회위계론」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새 법 자체는 '미래 영광의 상징'이다. 또한 새 법에 있어서는, 머리(그리스도)에서 행해진 것은 우리가 행해야 할 것들의 징표다. 그러므로 옛 법의 것들이 새 법의 것들을 의미한다는 데는 우의적 의미가 있으며, 그리스도에 있어서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들 안에 이루어진 것들이 우리가 행해야 할 것들의 상징이라는 데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영원한 영광 안에 있는 것들을 의미할 때는 천상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작가가 의도하는 바는 자의적 의미이며, 또한 성경의 작가는 모든 것을 동시에 그 지성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자의적 의미를 따라 성경의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를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론」 제12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부적(不適)한 것이 아니다.
1.그러므로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다수성은 다의성 혹은 (이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다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나의 말이 많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의미들이 다수화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말을 통해 의미가 표현된 사물 자체들이 다른 사물들의 징표일 수 있으므로 다수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안에서는 어떠한 혼란도 야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의미는 하나의 의미, 즉 자의적 의미에 기초를 갖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점에서만 논증이 이끌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스파인 빈센티우스를 반박하는 서간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의적 의미로 말해지는 바에서 논증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성경에서 어떤 것이 잃어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의미 안에 내포된 신앙에 필요한 것으로서, 성경의 다른 곳에서 자의적 의미로 명백하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1.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이미 말한 셋, 즉 역사, 소급적 원인, 유비 등은 자의적인 의미라는 하나에 속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설명하는 바와 같이 역사는 어떤 것이 단적으로 서술될 때이고, 소급적 원인이란 말해지는 것의 원인이 지적되는 경우인데, 예컨대 「마태오 복음서」 제19장 제8절에서 모세가 왜 아내를 버릴 허락을 주었는지의 원인을 주께서 직접 지적하시는 경우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유비는 성경의 한 곳의 진리가 다른 곳의 진리에 배치되지 않는 경우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네 (의미) 중 우의적인 것만이 세 영적 의미를 위해 제시된다. 예컨대 성 빅토르의 위고는 우의적 의미 안에 신비적(천상적) 의미도 포함시킨다. 그는 그의 「명제론집」 제3권에서 세가지 의미, 즉 역사적·우의적·전의적(비유적) 의미만을 제시한다.
1.셋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비유적 의미는 자의적 의미에 내포된다. 그것은 어떤 것은 말을 통해 고유하게 표현되고 또 어떤 것은 형상적(形像的)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자의적 의미는 형상(形像) 자체가 아니고 형상화된 것이다. 예컨대 성경에서 하느님의 팔이라고 할 때 자의적 의미는 하느님이 이런 지체를 지녔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지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 즉 작용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성경의 자의적 의미에는 결코 거짓이 내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제1부 제1문 9-10절
아홉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경은 은유를 쓰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사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56] 최하위 가르침의 고유한 것은, 모든 학문 중에 최상위를 차지하는 이 학문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가지가지의 유사(類似)나 표상(表象, 표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은 모든 가르침 중에 최하위에 있는 시가(詩歌) 고유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유사를 사용하는 것은 이 학문에는 적합하지 않다.
1.그 밖에도 이 가르침의 임무는 진리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진리를 드러내는 사람들에게는 포상도 약속되어 있다. 「집회서」 제24장 제31절에서는 "나를 빛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사를 통해서는 진리가 은폐된다. 물체적 사물들의 유사 밑에 신적인 것들을 전달하려는 것은 이 가르침에 적합하지 않다.
1.그 밖에도 어떤 피조물들은 탁월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신적 유사에 접근한다. 따라서 만일 피조물들에서 어떤 것은 하느님한테로 (하느님과 비슷한 것으로) 취해진다면 이런 채택은 할 수 있는 한 탁월한 피조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최하위의 피조물들에서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흔히 이런 사례가 발견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다.
「호세아서」 제12장 제10절에서는 "나는 그들에게 환상을 많게 하였으며 예언자로 하여금 내 유사를 사용케 하였다."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사에 의해 전하는 것은 은유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은유를 쓰는 것은 거룩한 가르침에 속한다.
나는 이상의 것에 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물체적 유사 밑에 전하는 것은 성경에 적합하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그 본성에 따라 배려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감각적인 것을 통해 초감각적인 것, 가지적인 것에 이르는 것이 본성적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인식이 감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영적인 것이 물체적 사물들의 은유 밑에 우리에게 전달되게 되는 것은 적절한 것이다. 또 디오니시우스가 「천상위계론(天上位階論)」 제1장에서 "신적인 광명은 여러 거룩한 베일로 감싸이지 않고서는 달리 우리에게 비쳐질 수 없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점을 말한 것이다. 영적인 것들이 물체적 사물들의 은유 밑에 제시되게 되는 것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1장 제14절에서도 "나는 유식한 사람에게나 무식한 사람에게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한 바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주어지는 성경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것은 초감각적인 것을 그 자체로서는 이해하기에 적합하지 못할 만큼 무식한 사람들도 어떻든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그러므로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시가(詩歌)는 그 표현을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그것은 표현이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이 은유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필요하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1.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신적 계시의 빛은 디오니시우스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것을 가리고 있는 감각적 형상 때문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진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계시를 받은 정신들로 하여금 유사성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히려 초감각적인 것들의 인식으로 그 정신들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다. 또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세계에 대해 가르침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성경의 한 곳에서 은유로 전해지는 것이 다른 데서는 더 명백히 설명되는 것이다. 또한 형상적(形像的) 숨김 자체는 탐구자들의 훈련을 위해서도, 불신자들의 조소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유용하다. 여기에 대해 「마태오 복음서」 제7장 제6절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마시오."라고 한다.
1.셋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디오니시우스가 「천상위계론」 제2장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성경에서 신적인 것들을 고귀한 물체의 형상들로보다는 천한 물체의 형상들로 전하는 것은 더 적절한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쨰로는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 정신이 더 쉽게 오류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신적인 것들에 대해 말해지는 것은 고유한 의미로 말해지는 것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만일 고귀한 물체의 형상들로 신적인 것들이 표현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물체보다 고귀한 어떤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주 의심스러울 것이다. ─둘째로는 이 방법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갖는 인식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무엇인가보다는 무엇이 아닌가가 우리에게 더 명백하다. 따라서 그 유사가 하느님에게서 멀면 멀수록 더욱더 그런 유사는 하느님에 대해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에 대한 더 참된 평가를 하게 된다. 셋째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써, 신적인 것이 부당한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감추어지는 것이다.
제10절: 성경은 한 자구(字句) 안에 여러 의미를 갖는가[57]
열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경은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 다시 말해 역사적 혹은 자의적(字義的) 의미, 우의적(寓意的) 의미, 전의적(轉義的) 내지는 도덕적, 신비적(천상적) 의미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사실 한 성경 안에서의 여러 의미는 혼란과 기만을 조성하며 논증의 견고성도 없게 된다. 따라서 의미가 다양한 명제들에서는 논증이 진행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논증에 따른 어떤 오류들이 지적된다. 그런데 성경은 어떠한 오류도 없이 진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 효과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가 전해지면 안 된다.
1.그 밖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의 유익론」에서 "구약이라고 불리는 책은 네 가지로 전달된다. 즉 역사적으로, 원인론적으로 소급하여, 유비적으로, 우의적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넷은 앞서 말한 넷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경의 같은 자구가 앞서 말한 네 가지 의미로 해설되는 것은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그 밖에도 앞서 말한 의미 외에도 그것들에 내포되지 않는 비유적 의미가 발견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도덕론」 제20권에서 "성경은 그 화법 자체로 모든 학문을 초월한다. 그것은 같은 언사(言辭)를 통해 행적을 말함과 동시에 비의(秘義)를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상의 것에 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성경의 작가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말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사물 자체도 제공하는 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에 있어서 말은 의미를 표현하는데, 이 학문은 말로 표현된 사물들이 또한 다른 어떤 것을 의미케 하는 고유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말이 사물을 표현하는 첫째 표현이 첫째 의미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첫째 의미는 역사적 내지는 자의적 의미다. 그런데 말을 통해 표현된 사물들이 다시 다른 사물들을 표현하는 의미 표현은 영적 의미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런 영적 의미는 자의적(字義的) 의미에 기초를 갖고 있으며 또 그것을 전제로 한다.
이 영적 의미는 세 가지 모양으로 구분된다. 사실 사도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제7장 제19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옛 법은 새 법의 상징이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가 「교회위계론」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새 법 자체는 '미래 영광의 상징'이다. 또한 새 법에 있어서는, 머리(그리스도)에서 행해진 것은 우리가 행해야 할 것들의 징표다. 그러므로 옛 법의 것들이 새 법의 것들을 의미한다는 데는 우의적 의미가 있으며, 그리스도에 있어서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들 안에 이루어진 것들이 우리가 행해야 할 것들의 상징이라는 데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영원한 영광 안에 있는 것들을 의미할 때는 천상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작가가 의도하는 바는 자의적 의미이며, 또한 성경의 작가는 모든 것을 동시에 그 지성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자의적 의미를 따라 성경의 한 자구 안에 여러 의미를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론」 제12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부적(不適)한 것이 아니다.
1.그러므로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다수성은 다의성 혹은 (이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다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나의 말이 많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의미들이 다수화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말을 통해 의미가 표현된 사물 자체들이 다른 사물들의 징표일 수 있으므로 다수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안에서는 어떠한 혼란도 야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의미는 하나의 의미, 즉 자의적 의미에 기초를 갖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점에서만 논증이 이끌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나투스파인 빈센티우스를 반박하는 서간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의적 의미로 말해지는 바에서 논증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성경에서 어떤 것이 잃어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의미 안에 내포된 신앙에 필요한 것으로서, 성경의 다른 곳에서 자의적 의미로 명백하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1.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이미 말한 셋, 즉 역사, 소급적 원인, 유비 등은 자의적인 의미라는 하나에 속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설명하는 바와 같이 역사는 어떤 것이 단적으로 서술될 때이고, 소급적 원인이란 말해지는 것의 원인이 지적되는 경우인데, 예컨대 「마태오 복음서」 제19장 제8절에서 모세가 왜 아내를 버릴 허락을 주었는지의 원인을 주께서 직접 지적하시는 경우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유비는 성경의 한 곳의 진리가 다른 곳의 진리에 배치되지 않는 경우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네 (의미) 중 우의적인 것만이 세 영적 의미를 위해 제시된다. 예컨대 성 빅토르의 위고는 우의적 의미 안에 신비적(천상적) 의미도 포함시킨다. 그는 그의 「명제론집」 제3권에서 세가지 의미, 즉 역사적·우의적·전의적(비유적) 의미만을 제시한다.
1.셋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비유적 의미는 자의적 의미에 내포된다. 그것은 어떤 것은 말을 통해 고유하게 표현되고 또 어떤 것은 형상적(形像的)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자의적 의미는 형상(形像) 자체가 아니고 형상화된 것이다. 예컨대 성경에서 하느님의 팔이라고 할 때 자의적 의미는 하느님이 이런 지체를 지녔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지체를 통해 표현되는 것, 즉 작용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성경의 자의적 의미에는 결코 거짓이 내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제1부 제1문 9-10절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대까지 통용되던 교부들의 성경해석법을 간단히 짚어야 한다. 교부들의 성경해석법은 기본적으로 약간의 바리에이션 차이만 있을 뿐 오리게네스가 틀을 잡은 것인데, 오리게네스는 성경의 의미를 다음 세 가지로 구분했다.
ㄱ. 영적 의미 = 영성적 의미 ㄴ. 혼적 의미 = 도덕적 의미 ㄷ. 신체적 의미 = 자의적(字義的, 문자적)) 의미[58] |
토마스의 해석이 지니는 특징은, 이러한 구분법을 계승하되 문자적 의미가 성경 해석의 기초라는 데 초점을 찍음으로써 주관주의의 위험을 극복한 것이다. 토마스는 성경의 의미를 다음과 깉이 구분하였다.
ㄱ. 자의적(字義的, literal, 문자적)) 의미 = 역사적(historical) 의미 ㄴ. 영적(spiritual) 의미 -우의적(allegorical) 의미 -도덕적(moral) 의미 = 전의적(轉義的, tropological) 의미 -천상적(anagogical) 의미 |
이러한 구분법은 근본적으로 오리게네스의 바리에이션이며 따라서 교부들의 구분을 계승한 것이지만, 토마스는 성경의 모든 의미가 문자적 의미에 기초한다고 보았다. 곧, 성경 텍스트 자체가 독자들에게 의도하는 1차적인 문필적 의미를 이해하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필적 의미를 해석한 후에야, 그냥 문필적 의미에서 머무르던가, 혹은 그 문필적 의미에 기초하여 영적 의미로 나아가든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의 해석법은, 근본적으로는 교부들의 해석법을 계승한 매우 전통적인 해석법이면서도, 성경 해석자의 기초적인 작업은 텍스트 자체의 문필적 의미라는 것에 초점을 찍음으로써, 현대적인 성서주석학을 함축하고 있다.
8.4. 성경을 읽는 순서
성경을 읽는 획일적인 순서가 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독자가 원하는 순서대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처음으로 성경 통독을 도전하는 사람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순서는 추천할 수 있다.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대강의 이야기 뼈대를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이야기 성격을 갖는 책들을 먼저 읽는 게 좋다.
우선 신약의 경우는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연속으로 읽는다. 이 두 책은 (전통적 견해로든, 현대 성서학의 견해로든) 단일 저자의 2부작이기 때문에 함께 붙여서 읽어야 줄거리와 주제, 문학적 구조가 쉽게 파악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육화부터 로마 제국 전역으로의 교회 확산까지 전체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바울로 서간 중 친서[61]들의 경우는 저작 연대순으로 읽으면 신학이 원숙해져가는 과정을 따라갈 수 있어서 매우 좋다.[62] 친서들의 저작 시점은 데살로니카 전서-필립비서-고린토 전서-고린토 후서-갈라디아서-로마서-필레몬서 순이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신약에서 뼈대는 잡은 것이니, 나머지는 취향껏 순서를 조절하며 읽으면 된다.
구약의 경우도 역사 이야기를 중심으로 뼈대를 잡아야 한다. 우선 모세오경(토라)을 하나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모세오경은 비록 여러 문헌들의 합성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인 편집 형태에서는 모세오경 전체가 하나의 책으로 읽히길 의도하고 완성되었다. 하나의 책이 다섯 경전으로 나누어진 건 단지 분량상의 이유 때문이며, 전통적 견해로든 학술적 견해로든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단일한 책이다. 이 순서로 읽으면, 성조들이 받은 약속 및 가나안을 향한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 모세오경을 다 읽었으면 열왕기 하권까지 연속으로 읽는다.[63] 비록 이외에도 바빌론으로부터의 귀환 등 역사 이야기가 구약에 더 남아있지만, 여기까지 읽었으면 구약 역사의 핵심 뼈대를 튼튼하게 잡은 것이다. 나머지 구약 책들은 취향껏 순서를 섞어 읽으면 된다.
신약과 구약 중 무엇을 먼저 읽을지는 딱히 무엇이 정답이라 할 것은 없지만, 신약을 먼저 읽거나, 혹은 신구약을 병행해가며 읽는 게 더 쉽다.
9. 번역
자세한 내용은 성경/번역 문서 참고하십시오.역사가 오래된 책이고 인기도 많다보니 번역본 수도 많고 번역과 관련된 설왕설래도 무지하게 많다.
하위 문서: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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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어에서는 외래어 표기도 가톨릭, 개신교, 공동번역 성서, 외래어 표기법이 다 달라 문제가 되고 있다.
10. 논란
자세한 내용은 성경/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하위 문서: 성경/논란/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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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성경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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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공동번역성경을 따랐다. 우선 한국 가톨릭에서는 변형없이 제목의 앞 두 자를 약자로 쓴다. 상, 하, 첫째, 둘째 등은 앞에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한다. 예를 들면 사무엘기 상권은 '1사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책장에 세 권씩 표시해 놓을 때는 중복되건 말건 첫 번째 글자만, 변형 없이 표기한다. 아래에서 말하는 '학슥말', '딤딛몬', '히약벧'과 같은 경우도 '하즈말', '티티필', '히야베' 등으로 매우 깔끔하게 표시된다(일부 판형은 '창세탈출레위', '티모티토필레'처럼 두 글자씩 된 것도 있다).
한국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각 권 제목의 첫 글자를 사용하지만, 첫 글자가 겹칠 경우 2번째 글자를, 그도 겹칠 경우는 세 번째 글자를 쓰거나, 특정 글자를 뽑은 뒤 그 뒷자의 초성을 받침으로 끌어다가 쓴다. 참고로 성경에는 원하는 경서를 찾기 쉽게 보통 세 권씩 묶은 다음 책장 옆면에 동그랗게 공간을 내어 '창출레', '민신수' 등으로 약자를 표시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뒤로 갈수록 글자가 안드로메다로 가기 때문에 생각없이 표시들을 읽다 보면 '학슥말', '딤딛몬', '히약벧' 등과 같은 외계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약자로만 쓰이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긴 하다.
한국과 달리 영어 성경은 가톨릭, 개신교 가릴 것 없이 상, 하, 첫째, 둘째 등은 앞에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한다. (예: 고린토후서 → 2 Corinthians)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한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독어권의 경우 동일한 고린토전서를 가톨릭에선 1 Kor라고 띄어쓰고 Eins Korinther라고 읽지만, 개신교에선 1Kor라고 붙여쓰고 Erster Korinther라 읽는다.
장과 절을 나누는 기호의 경우 가톨릭과 개신교를 불문하고 유럽 대륙에서는 콤마(,)를, 영어권에서는 콜론(
:
)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대륙 신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 가톨릭은 콤마(,)를 쓰고, 영어권 신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에서는 콜론(:
)을 쓰는 전통이 각각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콜론과 콤마를 바꾸어 써도 서로 다 알아보긴 한다.물론 이건 신학적 차이라기 보다는 각 공동체 정체성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뭐가 옳다 그르다로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하자.
11.1. 히브리 성경
히브리 성경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정경이다. 그 외의 구약 책들은 각 교파의 인정 여부에 따라 제2경전 혹은 외경으로 불린다. 원문은 히브리어 및 아람어로 되어있다.다음 표의 셀 배치는 그리스도교에서 인식하는 히브리 성경 순서 및 그리스도교의 4분 구조(오경, 역사서, 지혜문학, 예언서)를 따랐다. 다만 가장 오른쪽 열의 숫자는 타낙의 순서를 의미하며, 해당 열의 T, N(n), K는 순서대로 토라, 느비임,[64] 케투빔이다. 밑줄은 '축제 두루마리들'(megillōt)을 의미한다.[65]
대분류 | 가톨릭 성경 | 공동번역 성서 | 개신교 개역·새번역 성경 | 영어 약칭[NRSV] | 타낙의 순서 및 분류 |
모세오경 | 창세기 (창세) | 창세기 | 창세기 (창) | Gen | T1 |
탈출기 (탈출) | 출애굽기 | 출애굽기 (출) | Ex | T2 | |
레위기 (레위) | 레위기 | 레위기 (레) | Lev | T3 | |
민수기 (민수) | 민수기 | 민수기 (민) | Num | T4 | |
신명기 (신명) | 신명기 | 신명기 (신) | Deut | T5 | |
역사서 | 여호수아기 (여호) | 여호수아기 | 여호수아 (수) | Josh | N6 |
판관기 (판관) | 판관기 | 사사기 (삿) | Judg | N7 | |
룻기 (룻) | 룻기 | 룻기 (룻) | Ruth | K30 | |
사무엘기 상권 (1사무) | 사무엘 상 | 사무엘상 (삼상) | 1 Sam | N8 | |
사무엘기 하권 (2사무) | 사무엘 하 | 사무엘하 (삼하) | 2 Sam | N9 | |
열왕기 상권 (1열왕) | 열왕기 상 | 열왕기상 (왕상) | 1 Kings | N10 | |
열왕기 하권 (2열왕) | 열왕기 하 | 열왕기하 (왕하) | 2 Kings | N11 | |
역대기 상권 (1역대) | 역대기 상 | 역대상 (대상) | 1 Chr | K38 | |
역대기 하권 (2역대) | 역대기 하 | 역대하 (대하) | 2 Chr | K39 | |
에즈라기 (에즈) | 에즈라 | 에스라 (스[67]) | Ezra | K36 | |
느헤미야기 (느헤) | 느헤미야 | 느헤미야 (느) | Neh | K37 | |
에스테르 (에스) | 에스델 | 에스더 (에[68]) | Esth | K34 | |
지혜문학[69] | 욥기 (욥) | 욥기 | 욥기 (욥) | Job | K28 |
시편 (시편) | 시편 | 시편 (시) | Ps(s) | K27 | |
잠언 (잠언) | 잠언 | 잠언 (잠) | Prov | K29 | |
코헬렛 (코헬) | 전도서 | 전도서 (전) | Eccl | K32 | |
아가 (아가) | 아가 | 아가 (아) | Song | K31 | |
대예언서 | 이사야서 (이사) | 이사야 | 이사야 (사) | Isa | n12 |
예레미야서 (예레) | 예레미야 | 예레미야 (렘) | Jer | n13 | |
애가 (애가) | 애가 | 예레미야애가 (애) | Lam | K33 | |
에제키엘서 (에제) | 에제키엘 | 에스겔 (겔) | Ezek | n14 | |
다니엘서 (다니) | 다니엘 | 다니엘 (단) | Dan | K35 | |
소예언서 | 호세아서 (호세) | 호세아 | 호세아 (호) | Hos | n15 |
요엘서 (요엘) | 요엘 | 요엘 (욜) | Joel | n16 | |
아모스서 (아모) | 아모스 | 아모스 (암) | Am | n17 | |
오바드야서 (오바) | 오바디야 | 오바댜 (옵) | Ob | n18 | |
요나서 (요나) | 요나 | 요나 (욘) | Jon | n19 | |
미카서 (미카) | 미가 | 미가 (미) | Mic | n20 | |
나훔서 (나훔) | 나훔 | 나훔 (나) | Nah | n21 | |
하바쿡서 (하바) | 하바꾹 | 하박국 (합) | Hab | n22 | |
스바니야서 (스바) | 스바니야 | 스바냐 (습) | Zeph | n23 | |
하까이서 (하까) | 하깨 | 학개 (학) | Hag | n24 | |
즈카르야서 (즈카) | 즈가리야 | 스가랴 (슥) | Zech | n25 | |
말라키서[70] (말라) | 말라기 | 말라기 (말) | Mal | n26 |
11.2. 제2경전
자세한 내용은 제2경전 문서 참고하십시오.히브리어 성경 39권 외에 가톨릭이 구약으로 인식하는 경전들을 말한다. 한국어로는 가톨릭 성경 및 공동번역성서에서 읽을 수 있다.
현대 개신교에서는 교파에 따라 입장은 다른데, 아예 교회 공동체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대표적으로 개혁주의 계통 근본주의 교단, 성경침례교 등)이 있는가 하면, 주의 말씀으로서 따를 수는 없지만 역사적인 가치나 학문적인 가치는 있다고 보는 입장(대표적으로 성공회[71])도 있다. 이 때문에 성서학이나 신구약 중간사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자 제2경전이 수록된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성경까지 구비해 놓는 개신교 목사들도 있다. 다만 18세기 말까지 모든 전승의 개신교는 제2경전을 (정경으로서는 아니더라도) 성경에 실었다.
프로테스탄 전승은 이 책들을 경전으로 인정하기를 유보한 나머지 결국 어떤 경전적 지위도 부여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신앙에 필요하다기보다는 '유익한' 작품으로 취급됨으로써 그야말로 완전히 거부되었던 것은 아니다(묵시록들은 루터[M. Luther]의 다양한 성경 판에서 늘 자리하고 있다). ('숨기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에서 파생한) '외경'(Apocrypha)이라는 명칭으로 묶여, 이 책들은 성경 판에서 부차적인 자리로 밀려났다. 18세기 말까지 모든 전승의 개신교는 이 책들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에, 또는 성경 끄트머리에 모아 놓았으나, 이후 규모가 큰 성서학회의 영향 아래 외경들은 (Segond,[72] Osterwald 등과 같은) 개신교 성경 판에서 점차 사라져 갔으며, 오늘날 이 책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50쪽[73]
엄밀히 말하면 1세기 경의 원시 교회 공동체에서 확정된 성경 목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경 목록 확정 작업이 이루어지는 4세기 경에 좁은성경 목록과 넓은성경 목록을 지지하는 주장이 맞섰으나 결국 동서방에서 모두 넓은성경 목록이 보편적으로 채택되었다. 서방의 경우 불가타를 번역하던 시절의 히에로니무스가 대표적인 소수파 교부로서 좁은 목록을 지지했으나 이후 히에로니무스 본인부터가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용하면서 태도가 바뀌었고, 동시대의 카르타고 시노드에서 현재의 가톨릭 정경목록이 확정되었다. 다만 중세엔 좁은 목록을 지지한다고 해서 파문된 것은 아니고 가톨릭 내부의 소수파 견해로서 묵인은 되었으나, 종교개혁 때 가톨릭vs개신교의 논쟁이 정경목록과 결부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근현대에는 "넓은목록을 믿어야 가톨릭, 좁은목록을 믿어야 개신교"라는 교단 정체성으로 다뤄지고 있다. 가령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 정경목록을 개신교를 겨냥한 교의로서 다뤘으며,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외경이 정경은 아니지만 유익한 책이다"라는 초기 태도가 점점 강경해졌다. 그래서 초기 개신교 성경들엔 유익하다고 실린 제2경전들이 현대 개신교 성경엔 아예 없다.-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50쪽[73]
아래의 7권은 가톨릭, 정교회에서 인정하는 소위 '제2경전'이다.[74] 이 책들은 유대교의 카논이 확립되기 전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인 70인역(Septuagint)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으나, 이후 유대교 정경으로 확립된 마소라 사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책들이다. 개신교에서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으로 분류한 표면적 이유는 종교개혁 시기 '마소라 사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리스어판만 있고 히브리어 원본이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었지만, 훗날 사해문서를 통해 이들 경전의 히브리어 원본이 발굴되었다.
이들은 원래 그리스어로 쓰인 책들과 히브리어/아람어에서 번역된 책들로 나눌 수 있는데, 유딧기, 지혜서, 마카베오 하권, 에스테르기 칠십인역 추가분, 칠십인역 다니엘서 14장은 전자에 속한다. 반면 마카베오 상권, 집회서, 토빗기, 칠십인역 다니엘서 13장은 후자에 속한다.
대분류 | 가톨릭 성경 | 공동번역 성서 | 영어 약칭[NRSV] |
역사서 | 토빗기(토빗) | 토비트 | Tob |
유딧기(유딧) | 유딧 | Jdt | |
에스테르기(에스)[LXX+] | 에스델[LXX+] | Esth | |
마카베오기 상권(1마카) | 마카베오상 | 1 Macc | |
마카베오기 하권(2마카)[78] | 마카베오하 | 2 Macc | |
지혜문학 | 지혜서(지혜) | 지혜서 | Wis |
집회서(집회) | 집회서 | Sir | |
예언서 | 바룩서(바룩)[79] | 바룩 | Bar |
다니엘서(다니)[LXX+] | 다니엘[LXX+] | Dan |
11.3. 동방교회의 구약성경
동방의 교회들은 대부분 경전 목록에 대하여 결정을 내린 적이 없기에 엄격하지 않은 목록을 가지고 있다. 가령 정교의 정경 목록이 시리아의 목록과 다를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정교 안에서도 획일적인 정경 목록은 없다.11.3.1. 정교회 구약성경
정교회 경전은 칠십인역성경이라는 (에스테르기와 다니엘서를 포함한) 그리스어 역본의 히브리어 경전 책 전체를 포함하며, 여기에 그리스어로 anagignōskomena('인정받은 책', 이 의미에서 유래한 '읽힌 책')로 규정되어 권위가 문제시되지 않는 열 권의 책이 덧붙여진다. 우리는 여기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제2경전, 정교회 경전 구분에 따르면 (유딧기, 토빗기, 마카베오기 상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편지 등) 여덟 권의 책을 더 만나며, 서방교회 경전에 없는 마카베오기 3권과 (그리스어 에즈라기 상권과 고대 슬라브어 에즈라기 하권이라 불리는) 에즈라기 3권 등 두 권이 포함된다.
다른 책들의 경전성은, 이 문제에 대하여 결정을 내린 적이 없는 정교회 안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들 가운데는 흔히 (이미 다른 곳에서 확인된 다른 오데스[Odes, 송가들]와 함께) 므나쎄의 기도와 시편 151편이 거론된다. 마카베오기 3권과 에즈라기 3권은 각각 (그리스 정교회에서) 마카베오기 4권과 (에즈라기 3권이라 부르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에즈라기 4권으로 자주 보충된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8쪽
다른 책들의 경전성은, 이 문제에 대하여 결정을 내린 적이 없는 정교회 안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들 가운데는 흔히 (이미 다른 곳에서 확인된 다른 오데스[Odes, 송가들]와 함께) 므나쎄의 기도와 시편 151편이 거론된다. 마카베오기 3권과 에즈라기 3권은 각각 (그리스 정교회에서) 마카베오기 4권과 (에즈라기 3권이라 부르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에즈라기 4권으로 자주 보충된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8쪽
11.3.2. 시리아 구약성경
시리아 성경들은 (에스테르기, 욥기, 아가, 에즈라-느헤미야기, 또는 역대기에 있어 몇 가지 난제와 함께) 히브리어 경전 책 대부분을 취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경전도 모두 수용되었으며, 가끔 에즈라기 3-4권, 마카베오기 3-4권, 므나쎄의 기도, 시편 151편도 발견된다. 바룩의 서간 또한 여러 차례 등장하며, 마소라 수사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바룩의 서간을 포함하는) 바룩의 시리아어 묵시록은 가끔 확인되었다가 결국 시리아어 성경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은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했던 시리아 저자들에 의해 수차례 인용되었다. 오데스 역시 전례 수사본 밖으로 밀려났으며, 시리아어 외경 시편들과 지혜서는 시리아 성경에 들어선 적이 없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8-379쪽
반면에 (바룩의 서간을 포함하는) 바룩의 시리아어 묵시록은 가끔 확인되었다가 결국 시리아어 성경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은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했던 시리아 저자들에 의해 수차례 인용되었다. 오데스 역시 전례 수사본 밖으로 밀려났으며, 시리아어 외경 시편들과 지혜서는 시리아 성경에 들어선 적이 없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8-379쪽
11.3.3. 아르메니아 구약성경
아르메니아 경전 목록은 여러 개가 있으나, 이 목록들은 그리스어로 번역되(거나 그리스어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실질적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이다. 아르메니아 성경과 전례 독서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쉽게 - 칠십인역성경의 통상적인 제2경전 이외에 - 요셉과 아세넷, 요셉의 생애, 열두 성조의 유훈, 예언자들의 생애, (아르메니아어로 에즈라기 3권이라 불리는) 에즈라기 4권, 므나쎄의 기도와 같은 그리스어 또는 시리아어 번역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책들은 아르메니아 구약성경에서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에녹의 환시와 모세의 죽음과 예언자들의 기타 다수의 '생애' 또는 '죽음'의 경우이다. 이 작품들이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누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9쪽
다른 책들은 아르메니아 구약성경에서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에녹의 환시와 모세의 죽음과 예언자들의 기타 다수의 '생애' 또는 '죽음'의 경우이다. 이 작품들이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누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9쪽
11.3.4. 에티오피아 구약성경
에티오피아의 다양한 경전 목록 연구는 2개의 경전을 밝혀냈다. 두 경전 모두 (구·신약) 성경 전체를 합쳐 81권에 이르나, 그 차이와 구성은 다양하다.
현대 에티오피아 성경에 의해 받아들여진 '협의의 경전'은 그리스어 역본으로 - 에스테르기와 다니엘서의 첨가 부분과 시편 151편을 포함하여 - 히브리어 성경책 전체를 담고 있다. 여기에 에녹서, 희년서, 에즈라기 3-4권,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1-4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경전에 빠져있는) 에티오피아어 마카베오기 1-3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나머지'라 불리는 책을 애가와 함께 엮은 예레미야의 역대기 또는 '바룩의 나머지 말씀들'이 덧붙어 있다. 나아가 므나쎄의 기도가 있으나 (2역대 33,12에 이어) 역대기에 통합된 채 별도의 온전한 책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광의의 경전'은 성경책들의 다른 셈법을 제안한다. 에즈라-느헤미야기를 제외하는 대신에, 요셉 벤 고리온 유다인들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 책은 그러나 지금은 에티오피아의 통합 정교회에 의해 사용되지 않는다. 이사야의 승천과 같은 다른 작품들은 협의의 경전에도, 광의의 경전에도 속하지 않는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9-380쪽
현대 에티오피아 성경에 의해 받아들여진 '협의의 경전'은 그리스어 역본으로 - 에스테르기와 다니엘서의 첨가 부분과 시편 151편을 포함하여 - 히브리어 성경책 전체를 담고 있다. 여기에 에녹서, 희년서, 에즈라기 3-4권,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1-4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경전에 빠져있는) 에티오피아어 마카베오기 1-3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나머지'라 불리는 책을 애가와 함께 엮은 예레미야의 역대기 또는 '바룩의 나머지 말씀들'이 덧붙어 있다. 나아가 므나쎄의 기도가 있으나 (2역대 33,12에 이어) 역대기에 통합된 채 별도의 온전한 책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광의의 경전'은 성경책들의 다른 셈법을 제안한다. 에즈라-느헤미야기를 제외하는 대신에, 요셉 벤 고리온 유다인들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 책은 그러나 지금은 에티오피아의 통합 정교회에 의해 사용되지 않는다. 이사야의 승천과 같은 다른 작품들은 협의의 경전에도, 광의의 경전에도 속하지 않는다.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2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379-380쪽
11.4. 신약성경
복음서, 사도행전[82], 서간서(서신서), 예언서(요한묵시록)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의 서간에서 ●로 표시된 것은 주석학적 관점에서 바울로 친서이다.[83]대분류 | 가톨릭 성경 | 공동번역 | 개신교 개역·새번역 성경 | 영어 약칭[NRSV] |
복음서 | 마태오 복음서 (마태) | 마태오의 복음서 | 마태복음 (마) | Mt |
마르코 복음서 (마르) | 마르코의 복음서 | 마가복음 (막) | Mk | |
루카 복음서 (루카) | 루가의 복음서 | 누가복음 (눅) | Lk | |
요한 복음서 (요한) | 요한의 복음서 | 요한복음 (요) | Jn | |
사도행전[85] | 사도행전 (사도) | 사도행전 | 사도행전 (행) | Acts |
서간[86] | ●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로마) |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 ● 로마서 (롬) | Rom |
●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코린) |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 고린도전서 (고전) | 1 Cor | |
●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코린) |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 ● 고린도후서 (고후) | 2 Cor | |
●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갈라) | ●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 ● 갈라디아서 (갈) | Gal | |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 |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 에베소서 (엡) | Eph | |
●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리) | ●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 ● 빌립보서 (빌) | Phil | |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 |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 골로새서 (골) | Col | |
●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테살) | ●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 1 Thess | |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테살) |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 데살로니가후서 (살후) | 2 Thess | |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티모) |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디모데전서 (딤전) | 1 Tim | |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티모) |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 | 디모데후서 (딤후) | 2 Tim | |
티토에게 보낸 서간 (티토) | 디도에게 보낸 편지 | 디도서 (딛) | Titus | |
●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필레) | ●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 ● 빌레몬서 (몬) | Philem | |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히브) |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 히브리서 (히) | Heb | |
야고보 서간 (야고) | 야고보의 편지 | 야고보서 (약) | Jas | |
베드로의 첫째 서간 (1베드) | 베드로의 첫째 편지 | 베드로전서 (벧전) | 1 Pet | |
베드로의 둘째 서간 (2베드) | 베드로의 둘째 편지 | 베드로후서 (벧후) | 2 Pet | |
요한의 첫째 서간 (1요한) | 요한의 첫째 편지 | 요한일서 (요일) | 1 Jn | |
요한의 둘째 서간 (2요한) | 요한의 둘째 편지 | 요한이서 (요이) | 2 Jn | |
요한의 셋째 서간 (3요한) | 요한의 셋째 편지 | 요한삼서 (요삼) | 3 Jn | |
유다 서간 (유다) | 유다의 편지 | 유다서 (유) | Jude | |
요한묵시록 | 요한묵시록 (묵시) | 요한의 묵시록 | 요한계시록 (계) | Rev |
가톨릭 성경 / 공동번역 성서 / 개신교 성경은 각각 성경의 제목을 붙이는 데에 규칙이 있다. 가톨릭 성경과 공동번역 성서는 '~에게'나 '~의' 등과 같은 조사를 쓰는 반면에, 개신교 성경에서는 조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짧고 간결하게 제목을 붙인다. 천주교 성경에서는 복음서와 단 한편으로만 이루어진 서간은 '~의'를 빼고, 베드로 서간과 요한 서간같이 두 편 이상인 서간에서는 '~의'를 사용하는 반면에, 공동번역 성서는 모든 복음서와 서간에 '~의'를 사용하고 있다. 천주교 성경에서는 특정 지역의 교회로 보낸 바울로의 서간들은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라 하고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 하는 반면에,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모두 '~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통일하였다.
공동번역 성서의 각각의 제목들 가운데 천주교 성경 명칭과 개신교 성경 명칭을 섞은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다.[87]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천주교에서는 '루카' / 공동번역에서는 '루가' / 개신교에서는 '누가'
- 천주교에서는 '코린토' / 공동번역에서는 '고린토' / 개신교에서는 '고린도'
- 천주교에서는 '필리피' / 공동번역에서는 '필립비' / 개신교에서는 '빌립보'
- 천주교에서는 '테살로니카' / 공동번역에서는 '데살로니카' / 개신교에서는 '데살로니가'
신약의 책들의 배열은 가톨릭과 개신교 간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오늘날에도 성경 판본들은 그 사용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준다. 눈 밝은 사람은 목차만 보고도, 그 독자가 어떤 교파에 속해 있는지 또는 어디에 귀속감을 느끼는지 알아챈다. ...... 신약성경에서도 서간들의 순서가 판본에 따라 상당히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다. 한 가톨릭 성경 판본에서는 야고보서가 '가톨릭 서간들'을 이끈다. 반면 한 루터 성경은 야고보서를 서간 전체의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가톨릭 서간들'이라는 분류는 기피한다. 가톨릭 성경 판본에서는 바오로 서간집을 종결짓는 히브리서 역시, 루터 성경 판본에서는 뒤로 밀려나 야고보서 앞에 자리잡고 있다. 취리히 성경은 가톨릭 성경 판본의 순서와 일치하지만, 히브리서는 바오로 서간집에서 집어내어 '나머지 서간들' 맨 앞에 놓았다(1955년 판본: 그러나 2007년 판본은 전혀 세분하지 않았다).
바오로 서간들독일어 공동번역 성경 | 루터 성경 | 취리히 성경(1955) |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가톨릭 서간들
야고보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1>···
서간들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1>···
바오로 서간들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나머지 서간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
이 상이한 순서는 신학적 결단에 기인한다: 루터에게 야고보서는 '짚북데기 편지'였다. (바오로 서간들과는 달리) 믿음에 비해 행업을 너무 강조하기(야고 2,14) 때문이다. 히브리서 역시, 이른바 두 번째 회개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히브 6,4-8) 것만으로도, 루터에게 호감을 얻지 못했다. (믿는 이의 죄의 용서는 오직 은총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루터 신학의 한 핵심이었다.)
-Martin Ebner/Stefan Schreiber (Hrsg.), 『신약성경 개론』,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13, 13-15쪽[88]
-Martin Ebner/Stefan Schreiber (Hrsg.), 『신약성경 개론』,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13, 13-15쪽[88]
가령 독일어 성경 번역들을 보면 공동번역에서는[89] 서간을 바울로 서간과 가톨릭 서간으로 구분하고, 바울로 서간의 맨 마지막에 히브리서가 온다. 반면 루터 성경에서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의 순서를 뒤로 옮겼으며 취리히 성경(1955)에서는 책의 배열 순서는 전통을 따르되 히브리서를 바울로 서간에서 제외했다. 이는 신학적인 이유보다는 각자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90] 물론 각 번역이 반드시 위에서 설명한 카테고리 3개 중 하나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막기 위해선 어느정도는 이 배열법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11.5. 외경 및 위경
자세한 내용은 외경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위경 문서 참고하십시오.
정경에서 제외된 문헌이다. 특히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제2경전 부분을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 표현한다. 후대의 창작물의 경우 위경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개신교에서 외경으로 통칭하는 경우도 있으며, 가톨릭에서는 보통 이러한 문서를 외경으로 표현하므로 외경이라는 말이 주로 쓰이고 있다.
나무위키에서는 구분을 위하여 일반적인 내용은 외경 문서로, 거의 대부분의 주류 종파에서 인정하지 않는 경전은 위경 문서로 분리하여 서술한다.
한편 신약의 경우는 기독교의 거의 모든 종파에서 27권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 27권에 들어가지 않는 책은 모두 위경 또는 외경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위경으로 토마스 복음서나 유다 복음서가 있다. 4세기 이전의 초기 기독교에서는 클레멘트 1서·2서, 헤르마스의 목자, 디다케[91], 바르나바 서간, 베드로 묵시록, 야고보 원복음, 코린토 3서, 테클라행전 등을 정경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었으나, 27권의 신약 정경 목록이 확정되면서 이들은 외경으로 빠졌다.
12. 등장인물(등장순)
- 이름순 정렬은 분류:성경/등장인물 참고.
12.1. 오경
- 아담
- 하와(이브)
- 에덴의 뱀
- 카인(가인)
- 아벨
- 셋
- 에녹
- 노아
- 니므롯
- 그리고리
- 베네 하 엘로힘
- 아브라함
- 사라
- 멜기세덱
- 롯
- 하갈
- 이스마일(이스마엘)
- 이사악(이삭)
- 레베카(리브가)
- 야곱
- 에사오(에서)
- 라반
- 레아
- 라헬
- 유다
- 요셉(창세기)
- 모세
- 아론
- 미리암
- 여호수아
- 발람
- 발락
- 투발카인
12.2. 역사서
- 여호수아
- 라합
- 기드온
- 삼손
- 룻
- 나오미
- 역대 이스라엘 국왕
- 역대 유다 국왕
- 사무엘
- 사울
- 다윗
- 골리앗
- 요나단
- 요압
- 나단
- 압살롬
- 솔로몬
- 엘리야
- 엘리사
- 시바의 여왕
- 에즈라(에스라)
- 느헤미야
- 이제벨
- 유딧
- 토빗
- 에스텔(에스더)
- 모르드개
-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
- 하만
- 유다 마카베오
12.3. 지혜문학
12.4. 예언서
12.5. 복음서 및 사도행전
- 성모 마리아
- 마리아의 남편 나자렛의 요셉
- 예수[JESUS]
- 헤로데 왕
- 동방박사
- 세례자 요한
- 12사도
- 사도 베드로
- 사도 요한
- 대 야고보
- 사도 필리포스
- 바르톨로메오(바돌로매)
- 마태오
- 사도 토마스
- 유다 타대오
-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
-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남매
- 회당장 야이로와 그의 딸
- 마리아 막달레나
- 헤로데의 의붓딸
- 본시오 빌라도
- 바라빠
- 회개한 도둑
- 아리마태아의 요셉
- 스테파노 부제·집사
- 사도 바오로
12.6. 서간 및 묵시록
13. 에피소드
14. 지명
15. 학문
16. 성경 디자인 선택 요령
- 판본을 고려하는 경우: 성경은 다양한 크기의 판본으로 출판되고 있는데, 용도에 따라 적절한 판본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포켓, 특소형(A6 이하, 국반판 이하) - 휴대하기에 매우 좋다. 그러나 글자가 너무 작아서 책상에 앉아 통독하기에는 무리이며, 빠뜨리거나 잃어버리기도 쉽다. 주로 학교 주변이나 군부대 등을 상대로 배포하는 성경의 사이즈가 이렇다.
- 소형(B6 계열, 46판) - 포켓·특소형과 중형 사이의 중간 포지션. 예배용이나 휴대용으로 중형이 무겁다 싶으면 이쪽이 좋지만, 진지한 통독용이 주된 용도라면 중형을 고려하는 게 낫다.
- 중형(A5 계열, 국판) - 다용도로 쓰이기에 적당한 크기. 통독용으로도 괜찮고, 예배용으로도 괜찮고, 휴대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수준.
- 대형(B5 이상 크기, 46배판~국배판) - 책상 위에서 진지하게 통독할 용도라면 분위기도 나고 글자도 비교적 커서 특히 시력이 나쁜 사람이 보기에 편하다. 그러나 휴대용이나 예배용으로 쓰기에는 크고 무겁다.
- 제본 유형을 고려하는 경우
- 하드 커버 - 가죽 커버 장정에 비해 값은 비교적 저렴하지만 휴대용으로는 좋지 않으며, 탁상용, 장서용으로 적합하다. 만약 자신의 성향이 집 밖에선 그냥 스마트폰으로 성경 보는 스타일이라면(=즉 종이 성경을 집 안에서만 읽는다면) 하드 커버가 가장 실용적이다. 무선제본(glued binding)된 것도 있고 실제본(sewn binding)된 것도 있다. 국외에서는 하드 커버에 가죽을 씌운 성경(독서대에 놓고 쓰는 전례용 대형 성경)을 볼 수 있는데, 2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된다. 휴대성을 포기한다면 실제본 된 하드커버가 가장 가성비가 좋다.
- 비닐 커버 - 보급형 성경책에 흔히 사용된다.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지만, 표지가 쉽게 너덜너덜해지는 단점이 있다. 비닐커버는 자주 쓰다보면 접질려지는 부위에 금이 가면서 결국은 뜯겨나간다.자주 읽어볼 것이라면 양장본이나 가죽(인조가죽·천연가죽·재생가죽)커버를 쓴 성경책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 가죽 커버 - 천연가죽이냐 인조가죽이냐에 따라 가격 및 내구도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천연가죽이면 사실상 성경에 투자할 수 있는 최고액이며 그만큼 내구성도 가죽 갑옷급이지만, 인조가죽이면 그냥 소모품이라 생각해야 한다. 오픈형과 지퍼형이 있는데, 한국 개신교 성경책은 오픈형보다 지퍼형이 더 일반적이다. 가죽 중에서도 천연가죽을 쓴 것이 가장 비싸고 그 가치를 가장 높게 쳐주지만, 오늘날 나오는 가죽커버의 성경의 대부분은 천연가죽이 아닌 인조가죽(PU)이다. 1990년대까지 나온 가죽커버 성경들은 인조가죽이 아닌 돼지가죽이나 소가죽을 쓴 것이 많았지만, 제작비용을 낮추기 위해 점차 인조가죽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단 가죽커버을 쓰는 영미판 성경책 중에 bonded leather라는 설명이 있는 책은 인조가죽이 아닌 재생가죽을 쓴 책이다. 참고로 인조가죽도, 재생가죽도 아닌, 진짜 천연가죽커버를 쓴 책은 정말 비싸다.그중에서도 염소 가죽커버(goat skin leather)를 쓴 성경책이 가장 비싸, 그 가격이 최소 10만 원대다.[93] 영미권의 영어성경책을 기준으로, 비교적 하급인 돼지가죽이나 소내피가죽을 쓴 것도 최소 5만 원. 한국에서는 일부 성경 수집가가 아닌 이상 가죽의 품질과 종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이 때문에, 한국어 성경책은 인조가죽커버를 쓴 것들이 지배) 서양에서는 성경 커버 덕후들이 적지 않아 일부 출판사에서는 고급 천연가죽 커버를 사용한 성경을 내놓기도 한다. 천연표피가죽은 너무 거칠게 다루거왔거나 관리를 엉망으로 하지 않는 이상 원형을 상당히 오래 유지하며[94], 천연내피가죽은 사용을 반복하다보면 겉면 코팅이 벗겨지는 수준이고[95], 재생가죽과 인조가죽은 사용을 반복하다보면 가죽과 코팅이 점점 떨어져나간다. 인조가죽의 경우 아예 가죽이 가루로 떨어져나간다! 최근에는 개신교, 천주교 막론하고 국내 성경출판업계에서는 천연가죽커버 사용을 장기적으로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인조가죽커버 내구성에 관한 클레임 때문인 듯. 2020년대인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는 천연가죽커버를 쓰는 경우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 천연가죽 커버 - 가장 품질(내구성)이 좋고, 가장 비싸다. 재생가죽, 인조가죽과 다르게 칼로 일부러 찢거나 관리를 엉망으로 하거나 그러지 않는 이상 가죽 커버자체가 갈라지거나 부스러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염소가죽을 제일로 쳐준다. 품질은 염소가죽 > 소가죽 > 돼지가죽[96] 순이다. 그리고 표피가죽(skin 또는 top-grain)은 내피가죽(split)보다도 더 고급이다. 외피가죽은 흔히 goatskin, calfskin으로 불리는 가죽이 이쪽이며 천연가죽 재질의 지갑처럼 견고하고 질기다. 내죽(split)가죽은 벨트에 쓰이는 가죽과 비슷하며 표피가죽보다는 내구성이 떨어진다. 물론 내피가죽이라도 재생가죽, 인조가죽에 비해 내구성은 훨 낫다. 양가죽 커버는 흠집이 잘 난다는 단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고, 외국에서도 그리 고급으로 쳐주지는 않는다. 아무런 설명(goatskin, calfskin, calf-split, cowhide 등) 없이 단지 'genuine leather'로 홍보하는 성경책은 십중팔구 하급의 돼지내피가죽(pig split)을 썼다고 보면 된다. 고급 천연가죽 커버를 사용하는 출판사로 케임브리지대 출판부, Allan 등으로 알려져 있다.[97]
- 재생가죽 커버 - 인조가죽에 비해 천연가죽 느낌에 가깝지만 내구성은 천연가죽에 비하면 떨어진다. 천연가죽 조각과 합성수지를 섞어 접착제로 가공하여 만든다. 가죽계의 MDF라 할 수 있는 가죽. 재생가죽이라도 천연가죽 성분 포함율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가죽 섬유 이외의 잡다한 것을 집어넣은 비율이 클수록 품질이 떨어진다. 다만, '내구성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마라'는 일반적인 평가 답게, 저렴하게 마구 쓸 용도가 아닌, 오래 두고두고 쓸 용도라면 천연가죽 커버를 쓴 것을 선택하는 것이 훨 낫다. 가격은 인조가죽 커버를 쓴 성경책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미권에는 재생가죽 커버를 쓴 성경책이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성경책이 거의 없다.
- 인조가죽 커버 - 요즘 나오는 가죽 커버 성경책 중 특별히 천연가죽이나 재생가죽를 썼다고 명기하지 않는 이상 거의 이쪽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에 나온 가죽커버 성경은 거의 이쪽이다.[98]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것이 일반적이지만, 영미권의 일부 초염가판 성경책처럼 종이와 합성수지를 섞어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 TruTone, Duo-Tone과 같은 이탈리아제 인조가죽은 매우 부드럽고 탄력성과 신축성이 매우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흠집이 잘 나며, 무더위 때 방치하면 합성수지 성분이 녹아서 다른 물건에 달라붙는 경우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내구성 측면에서는 아무리 좋은 인조가죽도 천연가죽 보다 한 등급 아래로 쳐준다. 인조가죽은 천연가죽처럼 오래 갈 것 같지만, 몇 년을 쓰다보면 반드시 인조가죽이 가루처럼 떨어져나간다.[99] 따라서 인조가죽을 쓴 성경책은 곱게 오래 모시라는 용도로 쓰기 보다는 그냥 싼값에 쓰는 것으로 쳐주자. 이렇게 인조가죽의 내구성이 안 좋다보니, 인조가죽 커버가 너덜너덜해진 성경을 리폼해주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가죽 공방에서는 단순한 표지갈이, 예술제본 공방에서는 무선제본된 책을 분해하여 수작업으로 다시 제본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지만, 비싼 가격을 들여 맡길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 천(fabric/canvas) 커버 - 가죽 커버만큼이나 견고하고 오래 간다. 하드 커버에 천을 씌울 수도 있고, 소프트 커버로 제작할 수도 있다. 주로 청바지와 동일한 재질의 천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페이퍼백(paperback) - 국내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지만 유럽, 미주 등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성경을 자주 참고해야 하는 신학생, 목회자 및 신자들이 서브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가죽커버를 사용한 성경과 다르게 보조용으로 마구 쓰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는 것. 페이퍼백 성경책 중 대부분은 떡제본(glued binding)이라 견고하지 못하다.
- 종이: 일반적으로 고급 박엽지가 사용된다. 성경책에 쓰인 종이의 품질은 변색이 잘 안 되는 등 다른 책에 비해 좋은 편이지만, 박엽지의 높은 단가는 커버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주요 원인이다. 다만 영미권의 페이퍼백 성경책의 경우 일반 단행본 페이퍼백과 다를바 없다.
- 찬송가 합본 여부: 찬송가 합본판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따로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어 예배용으로 많이 사용된다.[100]
- 색인: 옆면에 반달 색인이 있을 경우 성경 구절을 좀 더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 주석, 해설 여부: 한편 개역 성경 중에는 관주[101]가 붙어 있는 것도 있으며, 톰슨 주석성경처럼 주해, 해설이 덧붙여진 성경이나 일러스트, 도판 등이 첨부된 성경도 있다.
- 외국어 병기: 국한문 혼용, 영한, 일한, 중한, 불한 성경 등이 판매되고 있다.
- 세로쓰기/가로쓰기: 개역한글판 성경은 70년대까지는 거의 세로쓰기로 출판되었으나 80년대부터 가로쓰기로 편집된 개역한글판 성경이 나오면서 빠르게 소멸되어 갔고 90년대에 이르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세로쓰기로 된 개역한글판 성경은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헌책방에 가면 세로쓰기로 된 개역한글판 성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색상: 개신교 성경의 경우 과거에는 비닐, 가죽, 하드커버 불문하고 검은색 표지가 압도적이었으나, 지금은 표지 색상이 다채로워지면서 오히려 검은색 표지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책 태두리를 빨간색 물감으로 도색하거나 마블링한 것, 금박, 은박을 입힌 것 등이 있다.
- 오픈식/지퍼식: 일반 책 형태로 된 오픈식과 지퍼가 달려 열고 닫을 수 있는 지퍼식이 있다. 대체로 지퍼식이 더 비싸다. 지퍼식은 휴대하기가 편해서 근래의 개신교 예배용 성경들은 오픈식보다 지퍼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반면 집에 두고 통독하기에는 오픈형이 편하며, 대형 사이즈처럼 휴대성을 포기하고 아예 통독에만 올인한 경우에는 지퍼가 의미가 없다.
- 기타 편집 방식에 따라: 특수한 의도 하에 편집된 성경들도 시중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디오북, 낱권 성경, 시대 순으로 성경 텍스트를 재배치한 통독 성경이다.
- 한편 인쇄 매체가 아닌 오디오나 전자책 형태로 나오는 성경도 있다.
- 오디오 성경: 카세트 테이프나 오디오 CD, MP3로 나온 성경으로 낭독 방식이나 녹음 속도에 따라 몇 가지로 구별된다.
- 평면 낭독: 성경 텍스트를 그대로 낭독한 것.
- 입체 낭독: 성경 텍스트에 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낭독한 것으로 대화체의 경우 남성 화자의 경우 남성 성우가, 여성 화자의 경우 여성 성우가 분담하며 배경 음악이나 효과음 등을 삽입하기도 한다.
- 정속 낭독: 일반적인 낭독 속도로 녹음된 것.
- 고속 낭독: 고배속으로 녹음된 것으로 보다 짧은 시간에 집중하여 들을 때 효과적이다.
- 전자 성경: PMP, MP4, 스마트폰을 통해 열람할 수 있도록 E-Book 형태로 나온 성경.
번역본 선택 요령은 성경/번역 문서 참고.
한편 성경은 판본에 따라 구입 난이도가 다르다.
- 개신교 개역 성경: 비단 개신교 전문 서점이 아닌 온라인 서점 및 시중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아주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동네 서점은 물론, 심지어 학습서, 문제집을 주로 취급하는 학교 앞 서점이나 대학 구내서점에서도 간간이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개역한글판이 절판된 현재 시판되는 개역 성경은 대부분 개역개정판이지만 동네 서점에서는 여태 팔리지 않은 개역한글판 성경이 서가 한 귀퉁이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비치되어 있는 경우도 이따금 눈에 띈다. 또한 헌책방에 가도 헌 성경책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개신교 새번역 및 기타 사역본들: 일부 판본은 시중 서점에서도 비치해 두고 있지만, 개신교 전문 서점에 가면 보다 다채로운 판본을 접할 수 있다.
- 공동번역: 1999년 개정판은 개신교 서점에서도 한두권 쯤 구비해 두고 있지만,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출시되어 있는 개역 성경이나 다른 사역본들과 달리, 비닐 커버본 단 1종 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편 1977년 초판은 외경 포함본, 불포함본 불문하고 현재 절판된 상태라 개신교 전문 서점이나 성공회 성당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으므로 헌책방으로 가야 한다.
- 가톨릭 번역: 가톨릭 성경은 오프라인 시중 서점에서 보기가 쉽지 않으므로 성당 성물방이나 가톨릭 전문 서점[102]으로 가는 게 빠르다. 물론 인터넷의 경우 시중 서점[103]에서 쉽게 찾을 수는 있지만 재고 공급이 시중 서점보다는 가톨릭 전문 서점들에 우선하고 있으므로 바오로딸, 분도 등 가톨릭 인터넷 서점들에서 주문하는 게 가장 쉽다.
- 킹 제임스 성경 한국어역본: 말씀보존학회 등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표방하는 교단에 대한 이단 시비가 있긴 하지만, 개신교 서점에 가면 의외로 이들이 번역한 역본이 비치된 걸 볼 수 있는데, 주류 교단에서 배척하는 것은 킹 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한 진짜 성경이라는 그들의 주장이지, 킹 제임스 성경 자체가 아니므로, 이단과 무관한 일반 개신교 서점에서도 킹 제임스 성경 역본을 취급하고 있다.
- 신세계역 성경: 가톨릭, 개신교 전문 서점에서는 당연히 취급하지 않으며, 시중 서점에서도 보기 어렵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이거나 지인 중에 여호와의 증인이 있지 않는 이상 입수하기 어렵다.
17. 참고: 성경 속의 화폐 단위와 도량형
화폐 단위(구약)
(신약)
무게 단위
길이 단위
부피(고체) 단위
부피(액체) 단위
-정태현 《성서 입문 상권》 개정판 73쪽
단위 | 정도 | 우리 화폐(원)[104] |
게라 | 1/10 베카 | 2천 |
베카 | 10게라, 1/2세켈 | 2만 |
세켈[105](하루 품삯) | 2베카, 20게라 | 4만 |
미나 | 50세켈, 100베카 | 100만 |
탈렌트 | 60미나, 3000세켈 | 1억 2천만 |
금 1세켈 | 은의 16배 | 64만 |
금 1미나 | 3,200만 | |
금 1탈렌트 | 19억2천만원 |
(신약)
유다 화폐 | 그리스 화폐 | 로마 화폐 |
1렙톤[106][107] | ||
2렙톤 | 1콰드란스 | |
4콰드란스=1아스 | ||
1드라크마 | 16아스=1데나리온[108] | |
2드라크마=1디드라크마 | 2데나리온 | |
1세켈 | 1스타테르 | 4데나리온 |
25드라크마 | 1아우레우스 | |
30세켈 | 1미나 | 100데나리온 |
*1탈렌트=60미나, 6천데나리온=240아우레우스 |
무게 단위
단위 | 정도 | 미터법(g) |
게라 | 1/20세켈 | 0.6 |
베카 | 10게라, 1/2세켈 | 5 |
핌 | 1.5베카, 3/4세켈 | 7 |
세켈 | 2베카, 1.5핌 | 11.5 |
미나 | 75핌, 50세켈 | 685 |
탈렌트 | 60미나, 3000세켈 | 41.1Kg |
길이 단위
단위 | 정도 | 미터법(cm) |
손마디 | 1/12[109] | 2 |
엄지-검지사이 | 4손마디, 1/3테파 | 7.5 |
테파 | 12마디, 3엄지-검지 | 22.5 |
손목-팔꿈치사이 | 3.75엄지-검지, 1.25테파 | 30 |
암마/페키스 | 6·7엄지-검지, 2뼘 | 46 |
두 팔 | 4암마, 8테파 | 2m |
스타디온 | 185m |
부피(고체) 단위
단위 | 정도 | 미터법(l) |
록 | 1/4캅 | 0.5 |
캅 | 4록 | 2.2 |
오메르 | 7록, 1.8캅 | 4 |
스아 | 3.33오메르 | 13 |
에파 | 1/10호메르, 3스아 | 40 |
레텍 | 15스아, 5에파 | 200 |
호메르 | 10에파, 2레텍 | 400 |
부피(액체) 단위
단위 | 정도 | 미터법(l) |
록 | 1/12힌 | 0.5 |
캅 | 4록, 1/3힌 | 2.2 |
힌 | 12록, 3캅 | 6.5 |
스아 | 6캅, 2힌 | 13 |
밧 | 3스아, 6힌 | 40 |
호메르 | 10밧, 60힌 | 400 |
-정태현 《성서 입문 상권》 개정판 73쪽
18. 참고: 성경 속의 달력
순번식 | 우리식 | 가나안식 | 바빌론식 | 히브리식 | 농사 |
첫째 달 | 3월 | 아빕 | 니사누 | 니산 | 보리, 아마 수확 햇곡식 축일 |
둘째 달 | 4월 | 지우 | 아야루 | 이야르 | |
셋째 달 | 5월 | 시바누 | 시완 | 이른 무화과 수확 | |
넷째 달 | 6월 | 두우주 | 탐무즈 | 포도 수확 | |
다섯째 달 | 7월 | 아부 | 압 | 올리브 수확 | |
여섯째 달 | 8월 | 울룰루 | 엘룰 | 대추야자, 여름 무화과 수확 | |
일곱째 달 | 9월 | 에타님 | 테쉬리루 | 티쉬리 | |
여덟째 달 | 10월 | 불 | 아라삼누 | 마르헤쉬반 | 밭갈기, 겨울 무화과 수확 |
아홉째 달 | 11월 | 키슬리무 | 키슬레우 | 씨뿌리기 | |
열째 달 | 12월 | 테비투 | 테벳 | ||
열한째 달 | 1월 | 샤바투 | 스밧, 세바트 | 아몬드 꽃 핌 | |
열두째 달 | 2월 | 아다루 | 아다르 | 감귤류 과일 수확 | |
윤달 | 베아 |
-정태현 《성서 입문 상권》 개정판 78쪽
19. 연표
※연표 출처: 《주석 성경》Traduction œcuménique de la Bible,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 pp.1029ff(연표 웹링크)<rowcolor=#000> 1. 선사 시대 | ||
초기 구석기. | (기원전)400000 | (티베리아스 호수 근처) 우베이디야에서 근동의 가장 오래된 인간의 자취 발굴. 아슐기 문화. |
중기 구석기. | 90000 | 무스테리안기 문화(카프제, 케바라). |
후기 구석기. | 40000 | 오리냑기 문화에 이어 나투피안기 문화. |
신석기. 선 도자기 A. 선 도자기 B. 도자기기. | 8500 | 주거지 조성 시작. 농업과 목축업. 예리코 건설. 예리코, 문하타, 텔레일랏, 엘 가술. |
금석기 시대. | 4300 | 야금술 시작(금석). |
메소포타미아:수메르에 이어 아카드 왕국. | 3500 | 설형문자 출현. |
<rowcolor=#000> 2. 제국 탄생 | ||
(기원전) 3300 | 가나안: 초기 청동기 시대 도시 출현 | |
이집트: 고 왕국 시작, 수도 멤피스 건설. | 3100 | 상형문자. |
대 피라미드. | 2600 | |
메소포타미아: 아카드의 사르곤 제국. | 2324-2154 | |
2300 | 초기 청동기와 중기 청동기 사이. | |
이집트: 중왕국. | 2100 | '저주 문서.' |
메소포타미아: 우르 제3왕조. 아모리인들의 침입과 정착. | 2000 | 중기 청동기 II(2000-1550년). |
1900년부터 바빌론 제1왕조, 함무라비 치세(1792-1750년). | ‘함무라비 법전’, ‘아트라 하시스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아브라함 씨족이 가나안 땅에 도착. | |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의 중간 시대, 힉소스 시대(1730-1550년). | 성조 시대 |
<rowcolor=#000> 3. 이집트 - 가나안 | ||
이집트 | 연대 | 가나안 |
신 왕국(1950-1070년). | (기원전)1550 | 후기 청동기 I(1550-1400년). |
투트모세 3세의 수차에 걸친 가나안 원정, 므기또 전투(1480년경). | '타아낙 서판.' | |
1400 | 후기 청동기 II(1400-1200년). | |
아멘호테프(일명 아크나톤) 치세(1350-1334년). | '엘 아미르나 서한,' 가나안에 이집트의 봉건 도시 국가 건설. 예루살렘의 우두머리 압디 히바 언급. | |
히타이트 신왕국(1450-1090년). 우가릿(=라스 사믈라): 알파벳 문자(14세기). 이집트(19왕조): 세티 1세(1317-1304년). | '바알 신화.' | |
람세스 2세(1304-1238년), 히타이트인들과 카데스에서 전쟁, 이어서 동맹. | 1300 | 이집트군 가나안 주둔: ‘벳 스안 석비.’ |
1250 | ||
메르네프타(1238-1209년), ‘재위 5년의 석비’에서 리비아인들과 ‘이스라엘’이라 하는 종족에 대한 승리 기념. | 이집트의 모세. 가나안, 특히 산악 지대에 다양한 종족들 정착. |
<rowcolor=#000> 4. 정치적 조직을 추구하는 지파들 | ||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연대 | 팔레스티나 |
이집트(제20왕조): 람세스 3세(1194-1163년), 필리스티아인들을 포함한‘해양 민족들’패퇴. | (기원전)1200 | 철기 시대 I(1200-1000년). 패전한 필리스티아인들이 가나안 연안 남부에 정착. |
'판관들'의 시대(1200-1030년경) | ||
메소포타미아: 1100년경 티글랏 필에세르 1세 (1115-1077년) 치하에서 아시리아 제국 패권 장악, 이어서 아람인들의 압력으로 쇠퇴. | 1100 | |
여러 아람 왕국 탄생(다마스쿠스, 초바, 하맛). | ||
이집트(제21왕조): 수도 타니스. 왕권 쇠약. | 1050 | 1050년경 필리스티아인들이 아펙에서 이스라엘과 싸워 승리. |
이집트: 파라오 시아문(1000-984년). 다마스쿠스: 임금 르존. | 1000 | 벤야민 지파의 사울, 유다 지파의 다윗(1010- 970년경: 2사무 2―1열왕 2), 다윗의 아들 솔로몬(970-933년경: 1열왕 2―11)과 함께 왕정 제도 탄생. |
<rowcolor=#000> 5.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933-722년) | |||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연대 | 이스라엘*[110] | 유다 |
이집트(제22왕조, 950-730년): 시삭 1세(950-929년), 팔레스티나 원정(므기또 석비). | 예로보암 1세(933-911년), 북 왕국 창건. | 르하브암(933-916년), 시삭에게 조공. 아비얌(915-913년). | |
나답(911-910년). * | 아사(912-871년), 바아사를 치려고 벤 하닷과 동맹. | ||
다마스쿠스: 벤 하닷 1세. | (기원전) 900 | 바아사(910-887년). 엘라(887-886년). * 지므리(7일천하). * 오므리(886-875년), 수도 사마리아 건설. | |
아시리아: 아슈르나시르팔 2세(883-859년). 살만에세르 3세(858-824년), 아시리아 제국의 팽창 정책 재개에 맞서 반 아시리아 동맹 결성(카르카르 전투, 853년) | 아합(875-853년), 페니키아 여인 이제벨과 혼인, 아람과 전쟁, 반 아시리아 동맹 가입(카르카르 전투, 853년) | 여호사팟(870-846년), 아합과 동맹. | |
다마스쿠스: 벤 하닷 2세. | 예언자 엘리야. | ||
모압: 메사 임금(840년경 세워진 석 비에서 이스라엘과 싸워 이긴 승리 기념). 다마스쿠스: 하자엘이 벤 하닷 2세를 암살하고 등극하나 841년 살만에세르 3세에게 패함. | 850 | 아하즈야(853-852년). 요람(852-841년), 모압 임금 메사와 싸우기 위하여 출정. 예언자 엘리사. * | 여호람(848-841년), 아합의 딸 아탈야와 혼인. |
아하즈야(841년). | |||
예후(841-814년), 하자엘에게 요르단 동쪽 땅을 빼앗기고 살만에세르 3세에게 조공(841). | 아탈야(841-835년), 다윗 왕조를 위기에 빠트림. | ||
다마스쿠스: 벤 하닷 3세. | 여호아하즈(820-803년), 벤 하닷 3세와 갈등 관계. | 요아스(835-796년), 사제들의 계략으로 등극하나 신하들의 모반으로 살해됨. | |
아시리아: 아닷 니라리 3세(810- 783년), 803년 다마스쿠스 세력 약화시킴. [그리스에 도시국가들 출현] | 800 | 여호아스(803-787년), 803년에 아닷 니라리 3세에게 조공을 바치지만, 벤 하닷 3세와 아마츠야와 싸워 승리. | 아마츠야(811-782년), 신하들의 모반으로 살해됨. |
예로보암 2세(787-747년), 이스라엘 국력 회복. | 아자르야(= 우찌야, 780-740년). | ||
아시리아: 783-745년 사이 서쪽 지방에 대한 영향력 약화. | |||
750 |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 | 750년 요탐 집정. | |
즈카르야(747년). * | |||
다마스쿠스: 르친. 아시리아: 티글랏 필에세르 3세 (747-727년), 정복한 국가들 병합, 주민 강제 이주(732년 다마스쿠스 등), 729년 풀이라는 이름으로 바빌론 왕권 인수. | 살룸(747-746년). * 므나헴(746-737년), 737년에 티글랏 필에세르 3세에게 조공. 프카흐야(736-735년). * | 요탐(740-735년). 예언자 이사야와 미카. | |
페카(735-732년), 아하즈에게 맞서 르친과 동맹, 왕국의 일부가 티글랏 필에세르 3세에게 합병 (734-733년). * | 아하즈(735-716년?), 페카와 르친에게 맞서 티글랏 필에세르 3세에게 원병 요청, 티글랏 필에세르 3세에게 조공. | ||
살만에세르 5세(726-722년). | 호세아(732-724년), 이집트와 동맹 시도, 사마리아 포위됨. | 728년경 히즈키야 집정. | |
사르곤 2세(722-705년). | 722년 사마리아 함락, 주민 유배, 북 이스라엘 왕국의 종말. |
<rowcolor=#000> 6.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유다 왕국 | ||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연대 | 유다 |
아시리아: 사르곤, 711년 아스돗 점령. 바빌론: 721-711년 므로닥 발아단의 지휘 아래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시도. | 히즈키야(716-687년: 2열왕 18―20), 아시리아로부터 독립 시도, 바빌론(므로닥 발아단이 보낸 사절)과 이집트와 접촉, 예루살렘 요새화(‘실로암 지하 수로 비문’), 입법서. | |
이집트: 제25왕조(누비아 왕조), 샤바카(715?-696년). 티르하카(690년경 집정, 685-664년 재위). | ||
아시리아: 산헤립(704-681년), 701년 히즈키야를 포함한 서쪽의 반아시리아 동맹 세력을 제압하러 원정. | (기원전) 700 | 701년 산헤립 원정, 예루살렘 포위, 히즈키야가 산헤립에게 조공. 예언자 이사야 활동(후기). |
아시리아: 에사르 하똔(680-669년), 671년경 북부 이집트 점령. | 므나쎄(687-642년), 아시리아에 항복. 예언자 나훔. | |
아시리아: 아슈르바니팔(668-630/626년), 니네베에 도서관 건립, 650년경 이집트 제26왕조의 프삼메티쿠스에게 격퇴. 바빌론: ‘신바빌론’ 왕국(626-539년). 바빌론인들(나보폴라사르)과 메디아인들 (키아카레스)이 니네베를 파괴하고(612년)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킴(606년). | 650 | 아몬(642-640년). 요시야(640-609년: 2열왕 22,1―23,30), 아시리아의 패권 거부, 신명기의 노선에 따라 종교 개혁, 예루살렘 성전의 중심 역할, 파라오 느코와의 전투에서 패전하고 전사. 예언자 스바니야. 여호아하즈(609년), 재위 삼 개월 만에 느코에게 폐위되고 그의 동생 여호야킴 즉위 |
바빌론: 네부카드네자르(605-562년), 605년 카르크미스에서 이집트 파라오 느코 (609-594년)의 군대를 쳐 이기고 옛 아시리아 제국 장악. | 600 | 여호야킴(609-598년), 605년부터 바빌론에 종속, 602년경 반기. 예언자 예레미야와 하바쿡. 여호야킨(598-597년: 2열왕 24,8-17),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포위, 예루살렘 항복, 에제키엘을 포함한 주민 제1차 유배, 임금 유배. 요시야의 아들 치드키야(597-587년). 593년경 예언자 에제키엘 활동 전개. 589년 치드키야가 바빌론에 반기. |
588-587년: 네부카드네자르가 티로 포위, 13년 동안 지속. [563년: 석가 출생] [551년경: 공자 출생] | 588년: 예루살렘 포위 시작, 예레미야 체포. 587년 7-8월: 예루살렘 함락, 치드키야 체포, 성전 파괴(2열왕 25,8-21), 주민 제2차 유배, 9/10월에 총독 그달야 피살. 582-581년: 제3차 유배. 561년: 바빌론의 에윌 므로닥이 여호야킨 임금을 사면. |
<rowcolor=#000> 7. 페르시아 시대(538-333) | ||
페르시아 | 연대 | 유다 |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551-529년) 539년 바빌론 점령. | (기원전)550 | 538년: 바빌론의 유다인들이 세스바차르의 인도 아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허락하는 키루스의 칙령 반포. |
캄비세스(530-522년). | 제단 복구. | |
다리우스(522-486년), 마라톤 전투(490년)에서 그리스 군에 패배. [510년: 로마 공화 제도 채택]. | 520-515년: 예루살렘 성전 재건. 총독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 활약.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 | |
500 | ||
크세르크세스 1세(496-464년),살라미스 해전(480년)에서 그리스 군에 패배. [469년: 소크라테스 출생]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464-424년). | ||
450 | ||
445-432년: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체류. | ||
[429년: 플라톤 출생] 크세르크세스 2세(423년). 다리우스 2세(423-404년). |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므네몬(404-359년). | 440-400년: 나일 강 상류 이집트에 정착한 유다인들과 서신 교환(‘엘레판틴 파피루스’). | |
[384년: 아리스토텔레스 출생] [372년: 맹자 출생] | 400 |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오코스(359-338년). 아르세스(338-336년). 다리우스 3세 코도마누스(336-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제,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정벌. | 350 | 398(458?)년: 에즈라가 예루살렘에서 입법 활동, 토라 형성. |
<rowcolor=#000> 8. 헬레니즘 시대(333-63) | |||
이집트 | 시리아 | 연대 | 유다 |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323-282년). |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311-281년). | 320-20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티나 통치. | |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282-246년). |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281-261년). | 300 | |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261-246년). | 250 | 알렉산드리아에서 토라가 그리스 말로 번역(‘오경’). | |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246-222년). |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246-225년). | ||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222-205년). | 안티오코스 3세 대제 (223-187년). | ||
[218-210년: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인들이 한니발을 제압하고 에스파냐와 지중해 섬들 차지] | |||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204-180년). | 200년: 안티오코스 3세가 파네이온에서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장군 스코파스를 패퇴시킴. | 200 | 200-142년: 셀레우코스 왕조가 팔레스티나 통치. |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180-145년). |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187-175년). | 유다인들과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자들 사이에 갈등 시작. 예루살렘의 수석 사제들 사이의 알력. | |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년), 이집트 원정. | 167년: 유다교의 경신례를 금하는 법령,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에게 헌정, 사제 마타티아스(그 집안 이름이 하스몬)의 주도로 유다인들이 항전 전개. | ||
166년: 마카베오라 불리는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가 항전 계승(166-160년). | |||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164-161년). | 164년: 성전을 되찾고 정화(성전봉헌 축제 거행). ‘다니엘서’ | ||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162-150년) | 셀레우코스 왕조에 대한 항전 계속, 시리아 장수 니카노르 무찌름(‘니카노르의 날’ 축제 거행). | ||
160년: 유다 마카베오 죽음. | |||
[150-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가 로마인들에게 멸망하고, 그리스는 로마 제국의 속주로 전락] | 150 | ||
알렉산드로스 발라스(150-145년). | 160-143년: 유다의 막내 형제 요나탄 (152년에 대사제로 임명)이 항전 계승, 주변을 정복하여 유다인들의 영토 확장. |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피스콘(145-116년) |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145-138년). | 143-134년: 요나탄의 둘째 형 시몬이 항전 계승(142년에 대사제 겸 총독으로 임명). | |
안티오코스 6세 (144-142년). 트리폰(142-138년). | |||
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138-129년). | 142-63년: 유다 독립 쟁취(하스몬 왕조). | ||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134-104 년), 사마리아 성전 파괴. | |||
왕국이 쇠퇴하여 무정부 상태. | 요한 히르카노스의 아들 아리스토불로스 1세(104-103년)가 왕이라는 칭호 사용. | ||
아리스토불로스 1세의 동생 알렉산드로스 얀내오스(103-76년). | |||
100 | 알렉산드로스의 아내 알렉산드라(76-67년) | ||
알렉산드라의 아들 히르카노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왕직과 대사제직을 놓고 다툼. | |||
64년: 로마 제국의 장수 폼페이우스가 안티오키아에서 시리아를 로마제국의 속주로 병합. | 63년: 로마 제국의 장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 점령. |
<rowcolor=#000> 9. 로마 시대(기원전 63년 이후) | |
로마 | 유다 |
(기원전) | (기원전) |
[57년: 신라 건국(삼국사기)] | |
50년: 팔레스티나의 혼란스러운 정황. 히르카노스 2세가 대사제직을 수행하지만 나라는 그의 대신으로 이두매아 출신인 안티파테르가 다스림 | |
44년: 카이사르 살해 | |
40-31년: 안토니우스가 동방을, 옥타비아누스가 서방을 통치 | 40년: 파르티아의 침입.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아들 안티고노스가 왕직과 대사제직 수행, 국내 갈등 심화. |
[37년: 고구려 건국(삼국사기)] | 37년: 안티파테르의 아들 헤로데 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기원전 4년까지 통치. |
31년: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 격퇴. | |
29년: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27년부터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기원후 14년까지 통치. 시리아가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 | |
24년: 헤로데가 로마로부터 트라코니티스, 바타내아, 아우라니티스, 그리고 파네아스 통치권을 위임받음. | |
20년 겨울-19년: 예루살렘 성전 개축 개시. | |
[18년: 백제 건국(삼국사기)] 10년(?)경: 제국의 인구 조사에 관한 다양한 정보. 9-6년: 시리아 총독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 |
7-6년경(?): 예수님 탄생. | |
6-4년: 시리아 총독 퀸틸리우스 바루스. | |
4년 3월말-4월초: 예리코에서 헤로데 사망. 4년 파스카 축제(4월 11일): 아르켈라오스가 예루살렘에서 소요 진압하고 왕으로 임명되기 위하여 로마 방문. 4년: 갈릴래아 출신 유다와(사도 5,37 참조) 바리사이인 차독(열혈당원 출신, 마태 22,17 참조)의 독립 운동 | |
4년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헤로데의 유언을 추인하나 그의 아들 아르켈라오스에게 왕이라는 칭호 불허. 기원전 4년-기원후 6년: 유다와 사마리아의 영주 아르켈라오스. 기원전 4년-기원후39년: 갈릴래아와 페래아의 분봉왕 헤로데 안티파스. 기원전 4년-기원후 34년: 골란, 바타내아, 트라코니티스, 아우라니티스, 이투래아 지방의 분봉왕 필리포스. | |
(기원후) | (기원후) |
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아르켈라오스를 페위시켜 현 프랑스의 비엔으로 유배 보냄. | 5-10년 사이: 타르수스에서 바오로 탄생. |
6-41년:유다는 (카이사리아를 수도로) 지방 행정관 (신약 성경에서는 흔히 ‘총독’이라 부름)이 직접 통치하는 속주로 승격. 6년: 요세푸스에 따르면 시리아 총독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14년 8월 19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사망하고 티베리우스(14-37년)가 즉위. 15-26년: 유다 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티우스. 26-36년: 유다 총독 본시오 빌라도. | |
27년경: 아레타스의 딸과 혼인하였던 헤로데 안티파스가 이복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혼인. 27년 가을: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루카 3,2 참조) 28년 파스카 축제: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요한 2,13). 29년: 세례자 요한 참수. 30년 4월 7일 금요일: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 30년 또는 31년 오순절: 예루살렘에 첫 공동체 설립(사도 2,42). | |
33-34년: 필리포스 분봉왕이 후손 없이 죽자 티베리우스 황제가 그의 영지를 시리아 속주에 편입. | |
36년 가을: 본시오 빌라도 로마로 소환. 36년 겨울-37년(?): 스테파노 순교, 공동체 일부 흩어짐, 곧이어 바오로의 회심. | |
37-41년: 황제 칼리굴라, 유다 총독 마르켈루스. 37년: 칼리굴라 황제가 아리스토불로스의 아들 아그리파스 1세에게 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필리포스와 리사니아스의 영토 하사(37-44년). | |
39년경: 바오로가 다마스쿠스를 탈출하여(2코린 11,32 이하) 처음으로 교회의 책임자들을 방문(갈라 1,18 이하). | |
41-54년: 황제 클라우디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에서 자기의 즉위에 일조한 아그리파스 1세에게 유다와 사마리아 하사. 그의 형 헤로데가 칼키스의 임금이 되고(41-48년) (아그리파스의 딸) 베르니케와 혼인 | |
43년경: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헬레니즘 세계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된 안티오키아 방문. 43년 또는 44년: 파스카 축제 전에 아그리파스 1세가 요한 사도의 형 야고보(일명 대 야고보)를 참수. | |
44년 봄: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가 죽자 유다는 총독이 직접 다스리는 속주로 복귀(44-66년). 44-46년: 유다 총독 쿠스피우스 파두스. 46-48년: 유다 총독 티베리우스 알렉산드로스. 48-52년: 유다 총독 벤디디우스 쿠마누스. | 48년경: 유다에 기근. |
48-53년: 아그리파스 1세의 아들 아그리파스 2세가 칼키스의 왕으로 다스림 | 48-49년: 예루살렘 사도 회의(사도 15,5 이하). |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크레스토스의 사주로 소요를 일으킨 유다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다”(수에토니우스). 사도 18,2 참조. | |
(51년)52년: 세네카의 형 갈리오가 그리스 남부 아카이아의 총독으로 임명. | 50-52년: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 50년 겨울부터 52년 여름까지 코린토 체류. 51년 ‘테살로니카서’. 52년 봄 갈리오 앞에 출두(사도 18,12 각주). 52년 여름 예루살렘 방문에 이어(사도 18,22) 안티오키아 도착. |
50-60년: 유다 총독 안토니우스 펠릭스. 펠릭스는 노예였다가 자유민이 된 팔라스의 형제로서 아그리파스 2세의 누이 드루실라와 혼인(사도 24,24 참조). | |
5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아그리파스 2세에게 칼키스 대신 필리포스와 리시니아스의 영지를 하사 (53-93년). 54-68년: 황제 네로. 55년: 네로 황제는 아그리파스의 왕국에 갈릴래아와 페래아의 일부를 보태 줌. | 53-58년: 바오로의 제3차 선교여행(사도 18,23 각주). 아폴로가 에페소에 이어 코린토에서 선교. 54-57년: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를 거쳐 에페소에 도착한 다음 2년 3개월 동안 체류. 56년(?): ‘고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56-57년: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57년 겨울-58년: 코린토 체류(사도 20,3. 그리고 1코린 16,6 참조).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58년 파스카 축제: 필리피 체류에 이어(사도 20,6) 선편으로 카이사리아 도착. 58년 여름: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 이끎. 58년 오순절: 바오로가 성전에서 체포되어 대사제 하나니아스와 최고의회에 출두. 카이사리아로 압송되어 펠릭스 앞에 출두. 58-60년: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서 미결수로 옥살이. |
60-62년: 유다 총독 포르키우스 페스투스. | 60년: 바오로가 페스투스 앞에 출두하여 황제에게 상소, 아그리파스 2세와 그의 누이 베르니케 앞에서 자기 변론. 60년 가을: 수인 바오로가 로마로 압송 중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몰타섬에서 겨울 맞음. 61-63년: 바오로가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사도직 수행.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
62-64년: 유다 총독 루케유스 알비누스. | 62년: 대사제 한나스가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돌로 쳐 처형하자 시몬이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교회를 이끎(에우세비우스). |
64년 7월: 로마 화재와 그리스도교 박해. 64-66년: 유다 총독 게시우스 플로루스. | 64년경:‘베드로의 첫째 서간.’ 64(또는 67)년: 로마에서 베드로 순교. 65-70년 사이: ‘마르코 복음서.’ |
66-67년: 네로가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아들 티투스에게 팔레스티나의 질서 회복을 명함. | 66년 여름: 플로루스가 유다인들을 십자가에 처형. 카이사리아와 전국에서 소요 사태. 66년 9월: 예루살렘에 반로마 제국 정부 수립. 67년: 베스파시아누스가 갈릴래아 지방 정복. |
68년 4월: 황제 갈바. 68년 6월: 네로 자살. | 68년: 베스파시아누스가 지중해 변 평원과 요르단 계곡 점령(쿰란 파괴). |
69-70년: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에게 예루살렘 포위를 명함. | 6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유다 지방 평정. 무력 독립 세력들이 예루살렘, 나아가 헤로디온, 마싸다, 마케루스 요새에서 항전 계속. 70년 파스카 축제: 티투스가 네 개의 군단으로 예루 살렘 포위. |
70년말: 유다 지방이 황제의 속주가 되고 카이사리아 지방은 로마의 식민지가 됨. | 70년 8월 29일: 예루살렘 성전의 안뜰이 점령되고 불에 탐. |
71-72년: 유다 총독 루킬리우스 바수스. | 71년 여름: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의 로마 개선 (‘티투스의 개선문’). |
73년: 유다 총독 플라비우스 실바. | 73년 파스카 축제: 실바가 마싸다를 포위하자 엘아자르와 동료들은 항복보다 집단 자결 택함. 라삐 요하난 벤 사카이가 야브네(=얌니아)에 학원 설립. |
79-81년: 황제 티투스. | 80년경: ‘마태오 복음서’, ‘루카 복음서’, ‘사도행전.’ |
81-96년: 황제 도미티아누스(티투스의 동생). | 80-90년 사이: ‘요한 복음서’와 ‘요한 서간.’ 95년경: ‘요한 묵시록.’ |
96-98년 황제 네르바. 98-117년: 황제 트라야누스. 111년에 그리스도교가 불법이라는 칙령 반포. | |
이후 130년에는, 제2차 동방 여행에 나선(128-134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에 들러 그곳을 Aelia Capitolina라는 이름으로, 성전은 유피테르를 위한 신전으로 재건할 것을 명한다. 131-135년에 제2차 유다 독립 항쟁이 일어나지만, 134년에 예루살렘이 다시 함락된다. 이듬해 예루살렘이 Aelia Capitolina라는 새 이름으로 재건되고, 골고타와 예수님의 무덤 터에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성전 터에는 유피테르와 그의 아내 유노, 지혜와 무용(武勇)의 여신 미네르바의 신전이 세워진다. 그리고 유다인들에게는 도시 입성이 엄금된다. |
20. 기타
- 성경에 수록된 책들 중 가장 긴 책은 시편이며[111][112], 가장 짧은 책은 요한 2서다.[113] 또한 가장 긴 장은 시편 119편이며[114], 가장 짧은 장은 시편 117편이다.[115] 한편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절은 사사기 6장 13절이며[116], 가장 짧은 절은 테살로니카 1서/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이다.[117]
- 2008년 해리스폴에서 조사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책 1위#, 2014년 역시 이 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보급판 성경의 옆면은 빨간색으로 처리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환경규제 강화, 생산단가 절감 문제 등으로 지금은 성경의 옆면은 빨간색으로 처리되어 있지 않다.[118]
- 국제기드온연합회에서 학교, 병원, 군부대(특히 훈련소), 교도소, 호텔 등 숙박시설에 무료로 성경을 배포해 주기도 한다. 국내에는 신약전서에 시편, 잠언이 부록으로 추가된 휴대용 크기(B7 크기)의 파란색 비닐표지 성경이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그밖에 국문과 영문이 병행된 신약성경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119]
- 성경은 같은 언어라 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거듭 번역되었기에 언어, 특히 문자로 기록된 언어의 발달, 변천 과정을 연구할 때 중요하고도 유용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킹 제임스 성경을 보면 17-18세기 영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개역한글판 성경을 보면 20세기 전반의 한국어의 모습을 대강 알 수 있다. 그래서 전세계 언어학자들이 (주로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각 나라이나 민족들의 언어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내는 핵심 참고 서적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며, 현재는 쓰이지 않더라도 과거에 쓰인 사어의 어휘나 문장에 대해 알아볼때 성경이 핵심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 천주교 신자가 제2경전이 포함된 일부 개신교 영어 성경을 구입할 경우, 반드시 With Deuterocanonicals (apocrypha), 또는 Catholic edition 문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만, With Deuterocanonicals 문구가 있는 성경은 우리나라의 공동번역성서 초판처럼 제2경전 문서들이 따로 모아서 배열되는 식으로 되어 있기에, 가톨릭 성경처럼 제2경전이 배열된 것을 원한다면 Catholic edition 문구가 있는 성경책으로 고르자. 사실 Catholic edition 문구가 붙은 개신교 성경 대부분은 가톨릭 교회의 인준을 받았다는 의미로 imprimatur를 받았다.
- 신학대학이나 신학대학원 등에 입학할 사람들, 특히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사람들이라면 학부든 대학원이든, 신입학이든 편입학이든 성경 시험은 거의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특히 총신대학교 같은 보수적인 색채의 학교 같은 경우는 지망하는 과가 신학과가 아니어도 성경 시험이 필수이니 유념할 것.
- 나무위키에서는 성경의 각 서의 호칭을 공동번역의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 현재 세계 성경의 최대 산지는 놀랍게도 기독교에 대하여 비우호적인 중국이라고 한다. 전세계 성경의 25% 물량을 책임진다고 하며 이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이 아무리 심해도 성경만큼은 절대 관세인상 품목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 조선 역대왕 이름을 외울 때 태정태세문단세하는것처럼 한국의 개신교인들 중에서 성서목록을 외우기 위한 한글자 줄임말[120] 늘어놓기도 있다. 구약은 '창출레민신수삿룻삼상삼하왕상왕하대상대하스느에욥시잠전아사렘애겔단호욜암옵욘미나합습학슥말' 신약은 '마막눅요행롬고전고후갈엡빌골살전살후딤전딤후딛몬히약벧전벧후요일요이요삼유계' 심지어 목록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도 있다.
-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와 더불어 서양 창작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이다. 개신교와 천주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도 아담과 이브, 선악과, 엑소더스, 방주, 솔로몬 등 구약의 요소들이나 예수, 12사도의 이름, 묵시록의 4기사, 사탄 등은 한번이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 당연히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쪽도 스노비즘이 심해 확실히 알려면 나름대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 반신론자 혹은 일부 무신론자[121]들로부터 소설책 드립을 듣는다. 더 나아가 세계 1위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놀림받기도 한다. 이런 묘사는 반종교인 사이에서 흔한 비판 방식으로, 유명한 반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에서 성경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유대인 신화[122]라고 표현했다. 물론 성경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신화(미신)으로 본다는 의미다. 사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성경을 사실로 봐야할 의무는 없으며 종교가 없거나 불가지론자인 이들에게는 유대계의 역사와 신화를 담은 경전 정도로 보는것이 주류 시각이다.
- 서아시아 부근에서 40이란 '매우 많다'를 의미하는 경우로 쓰인다고 한다. 성경에 40이란 수가 꽤 보인다. 이를테면 모세의 120년 생애가 40년 단위로 딱딱 나뉘었고,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가 모두 40년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광야를 떠돌아 다녔고, 예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기도를 드리며 시험을 받았다. 이때문에 성경에 나온 숫자를 바탕으로 연도를 역산하는데 무척 애를 먹고 숫자 그대로 역산할 경우 숱한 오류가 발생한다.
- 2024년 중국은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성경을 임의로 편집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사회주의적 가치를 담은 구절을 첨가하고, 공산주의적 신념을 반영하지 않는 구절을 삭제했다: 영상
20.1. 성경 없음 구절
'절없음'에 관한 대한성서공회의 설명#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질문 신약 성경 속에 (없음)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왜 이런 부분이 있나요? 답변 이전까지의 성서본문은 장절 구분이 없었지만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 1506~1559)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4판부터는 지금 우리의 성경과 같이 장절을 구분하여 인쇄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말 위에서 장절구분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오늘날 신약성서에서 절 구분이 어색한 부분들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절없음’ 현상이 생겨서 후대에 추가된 문장이라 삭제되었음을 의미하는 ‘절없음’ 문장과 함께 ‘어떤 사본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라는 각주가 있게 되었습니다. - 사도행전 15장 30~35절 - 사도행전 8장 34~38절 ‘절없음’ 부분은 번역자들이 실수하여 빠뜨린 것이 아니라, 앞뒤 문맥과 내용을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하여 후세에 편의로 첨부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본문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원본문과 같이 삽입한 내용을 빼고 ‘절없음’으로 남겼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1절을 찾아보면, 본문이 있어야 할 곳에 본문은 없고, 그 대신에, 괄호가 쳐 있고 그 괄호 안에 "21절 없음"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난외주 1번을 보라는 지시가 있습니다. 그 지시를 따라서 난외주 1번을 보면, "어떤 사본에, 21절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 사본이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 따다가 첨가한 것입니다. 18장 11절도, 본문이 없고 난외주에 "어떤 사본에는, 11절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사본이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가져다가 여기에 첨가시킨 것입니다. "-절 없음"이라고 된 부분은 고대 사본에 없는 본문입니다. 3세기 전후의 파피루스 사본이나, 4-5세기의 대문자 사본에는 없는 본문들입니다. 11세기 전후의 소문자 사본에만 나오는 본문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을 가지고 절을 구분하고 거기에 고유 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고대 사본에 없는 구절의 경우는, 절만 빼고, 절 번호는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은 확대된 사본입니다. 확대된 내용은 다른 어느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관련 구절에서 온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있는 난외주에서 거기에 첨가되어 있던 본문을 보면 결코 생소한 본문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 |
성경의 장과 절은 1551년 인쇄업자 로베르투스 스테파누스가 자신의 그리스어 성경 4판을 찍으면서 처음 도입하였다. 장과 절은 성령님께서 정해주신 것이 아니라 스테파누스가 자신의 성경을 다른 인쇄업자의 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워낙 편리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퍼졌고 현재까지도 스테파누스의 장과 절 구분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스테파누스 성경은 에라스무스가 편찬한 원어 성경 인쇄본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에라스무스 성경 계통을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이라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고, 에라스무스가 편찬한 성경은 최초의 원어 성경 인쇄본이었다. 종교개혁 시기 에라스무스 계통의 원어 성경이 신교 쪽 거의 모든 번역 성경의 대본이 되었다. 영어 비숍 성경, 영어 킹 제임스 성경, 독일어 루터 성경 등이 그 예이다.[123]
에라스무스는 늦은 시기의 그리스어 사본을 대본으로 사용했다. 현재 신학자들은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 11세기 사본이 대부분이다. 이 그리스어 사본에는 천 년의 시간 동안 필사하며 필사자들이 첨가한 이문(異文)이 들어 있었다. 본문비평학 학자들은 성경 사본을 연구하여 성경을 원본에 가깝게 재구성한다. 성경 원본에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그 부분을 삭제한다. 이러다보면 스테파누스 성경 기준에서 절 전체가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 운동장에 줄 서있는 학생들처럼 절을 하나씩 앞으로 다 당길 수는 없으므로 이런 부분은 절 번호를 남겨두고 내용에 '없음'이라고 쓴다. 현재 없음이 13곳에 나온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 마르코의 복음서 16장 9절 이후 내용, 마태오의 복음서 6장 13절[124]처럼 후대에 첨가된 것이 확실하지만 교회 역사에서 너무 중요해서 뺄 수 없는 부분은 대괄호 두 개로 묶어 둔다. 일부 고대 사본들에 없고, 본문비평학자들의 연구 결과 성경 원본에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을 때는 대괄호 한 개로 묶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성경 원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성경에는 있었지만 현재 성경에서 삭제된 이문들을 살펴보면 필사자들이 이문을 넣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 사도행전 15장 34절의 '없음' 구절은 스테파누스 성경에서 『실라는 거기에 머무르기로 작정하였다.』이다. 33절에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나온다. 그런데 40절에 실라가 바오로와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실라는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했는데 안 가고 안티오키아에 있었던 것이다. 필사자는 이 부분을 필사하다가 '왜 말이 안맞지?'라는 고민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는 구절을 첨가했다.
- 사도행전 8장 37절의 '없음' 구절은 『필립보가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자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이다.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는 장면에 필사자는 문답을 추가했다. 초기 크리스트교부터 세례 받을 때 문답을 하였다. 그런데 성경에 세례 받는 장면은 나오지만, 문답하는 장면이 안나온다. 필사자가 필사를 하다가 성경에 세례 문답을 하는 근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는 이 장면에 문답을 추가했을 것이다. 성경 원본에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냥 뺄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당시 교회 신자들은 세례 문답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 마태복음 17장 21절 '없음' 구절은 『그러나 이런 종류의 마귀는 기도와 단식을 하지 않고서는 쫓아낼 수 없다.』이다. 마가복음의 고대 사본 중 일부는 9장 29절이 『기도와 단식을 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라고 되어있다.[125] 필사하는 과정에서 마가복음의 이 구절이 마태복음으로 들어갔다.
- 마태복음 18장 11절의 '없음' 구절은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이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의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구절이 필사하는 과정에서 마태복음으로 들어갔다.
- '없음'은 아니지만 중세에는 매우 중요한 구문이었다가 현재 성경에서 빠진 예로 요한의 콤마 구문이 있다. 성경이 삼위일체론을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다보니 필사자가 필사를 하다가 삼위일체를 정확히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이문을 넣은 것이다. 브루스 메츠거 교수는 이 구절이 이전 사본에는 없다가 6세기 이후 만들어진 라틴어 사본에 점점 더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약 6세기 경에 성경을 라틴어로 읽던 필사자가 이 구절을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현재 대괄호로 묶어둔 구절의 예로 마태복음 21장 44절이 있다.[126] 이 구문은 본문비평학자들 사이에서 마태복음 원본에 없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원본에 있었는데 후대 일부 사본에서 빠진 것이다 의견이 팽팽하다.
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43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44 (그리고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 밑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45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46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1장 (공동번역)
43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44 (그리고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 밑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45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46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1장 (공동번역)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신 성경 말씀은 무슨 뜻이냐?
18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누구나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19 율법학자들과 대사제들은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알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무서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누가복음 20장 (공동번역)
18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누구나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19 율법학자들과 대사제들은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알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무서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누가복음 20장 (공동번역)
일부 고대 사본에 없고, 어색한 위치에 있고, 누가복음에 똑같은 문장이 있는 상황이다. 우리도 지금 볼펜으로 성경 필사를 하다가 문장을 하나 빼먹으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 힘드니까 옆의 여백에 빠뜨린 문장을 쓰는 경우가 있다. 옛날 성경 필사를 하던 사람들도 같은 행동을 했다. 그러면 다음 필사자는 그 내용을 본문에 넣어서 다시 깔끔하게 필사한다. 마태복음 21장 44절은 마태복음 필사본을 읽던 사람이 누가복음의 문장이 떠올라서 옆에 메모해 두었는데, 다음에 필사하던 사람이 빠뜨린 구절을 옆에 적어놓은 줄 알고 본문 속으로 집어넣었을 확률이 높다. 만약 초기에 필사되었고, 이문이 거의 없어 신뢰할 수 있으며, 21장 44절이 없는 마태복음 필사본이 발견되면 이 구절을 삭제할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현재까지 발견된 신뢰할 수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거의 다 들어있다는 의미이다.
- 인터넷에서 성경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이단인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사람들이 성경에 이문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1611년 출판한 킹 제임스 성경을 기준으로 이후 삭제된 구절을 다 복구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는 글 끝에 자신들만 보는 킹 제임스 성경 한글 번역본의 한 구절을 적어 놓는다. 요한계시록 22장 19절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안타깝게도 이단들이 애지중지하는 이 구절마저도 이문이 있다. 생명책은 생명의 나무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이다. 공동번역 성서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버리실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1. 주요 문헌
21.1. 성경
비평본 원문 및 고대 번역-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Deutsche Bibelgesellschaft, 51997. (B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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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blia Sacra Vulgata》. Deutsche Bibelgesellschaft, 52007. (Weber-Gryson Vulg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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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현: 《성경 입문》 상권. 한님성서연구소, 32022.
- 정태현: 《성경 입문》 하권. 한님성서연구소, 22023.
- 진규선: 《두근두근 성경공부》. 수와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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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매킨지 및 스티븐 헤인즈 (ed.):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한국기독교연구소, 2022 (trans. 유연희 등).
- 스티븐 L. 매킨지 및 존 캘트너 (ed.): 《최근의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고대 본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다》. 한국기독교연구소, 2023 (trans. 유연희 등).
- 로버트 H. 스타인: 《성경해석학》. 기독교문서선교회, 2011 (trans. 배성진).
- 모세 실바: 《교회는 성경을 오석해 왔는가》. 솔로몬, 2001 (trans. 심상법).
- D. A. 카슨: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선교회, 2002 (trans. 박대영).
성서신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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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기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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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비평 및 신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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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에브너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등: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2008). 분도출판사, 2013 (trans. 이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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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G. 큄멜: 《신약정경개론》. 대한기독교서회, 1999 (trans. 박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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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ael Satlow: How the Bible Became Holy. Yale University Press, 2015.
- Konrad Schmid 및 Jens Schröter: Die Entstehung der Bibel: Von den ersten Texten zu den heiligen Schriften. C. H. Beck, 2020.
- 김구원: 《70인역 성경으로의 초대》.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 김정훈: 《칠십인역 입문: 본문의 역사와 연구의 실체》. 바오로딸, 2009.
- 브루스 M. 메쯔거: 《사본학》.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trans. 강유중 및 장국원).
- 바트 어만: 《성경 왜곡의 역사》. 청림출판, 2006 (trans. 민경식).
- 천사무엘: 《사해사본과 쿰란공동체》. 대한기독교서회, 2004.
종교사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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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Day: God's Conflict with the Dragon and the Sea: Echoes of a Canaanite Myth in the Old Testament.
- Dag Øistein Endsjø: Greek Resurrection Beliefs and the Success of Christianity. Palgrave Macmillan, 2009.
- Irving Finkel: The Ark Before Noah: Decoding the Story of the Flood.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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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베르트 로핑크Nobert Lohfink ·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민족들》Der Gott Israels und die Völker: Untersuchungen zum Jesajabuch und zu den Psalmen. 가톨릭출판사, 2018 (trans. 박영식).
- 얀 아스만: 《이집트인 모세》. 그린비, 2010 (trans. 변학수).
- 에드윈 M. 야마우찌: 《페르시아와 성경》.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trans. 박응규).
- 조재형: 《그리스-로마 종교와 신약성서》. 감은사, 2021.
- 주원준: 《구약성경과 신들》. 한님성서연구소, 2018.
- 마르틴 헹엘: 《유대교와 헬레니즘 1》, 《2》, 및 《3》. 나남, 2012 (trans. 박정수).
사회-문화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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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rton L. Mack: The Rise and Fall of the Christian Myth: Restoring Our Democratic Ideals. Yale University Press, 2017.
- 더글라스 A. 나이트 (ed): 《고대 이스라엘 문화》.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trans. 임미영).
- 브루스 J. 말리나: 《신약의 세계》. 솔로몬, 2001 (trans. 심상법).
- 요아킴 예레미아스: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1992.
이스라엘 또는 유대교의 역사:
- John J. Bimson: Redating the Exodus and Conquest. University of Sheffield, 1978.
- Diana Vikander Edelman (ed.): The Fabric of History: Text, Artifact and Israel's Past. Sheffield Academic Press, 1991.
- Israel Finkelstein: The Archaeology of the Israelite Settlement. Israel Exploration Society, 1988.
- Philippe Guillaume 및 Axel Knauf: A History of Biblical Israel: The Fate of the Tribes and Kingdoms from Merenptah to Bar Kochba. Equinox Publishing,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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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Van Seters: In Search of History: Historiography in the Ancient World and the Origins of Biblical History. Yale University Press, 1983.
- 롤랑 드 보Roland de Vaux: 《구약 성경의 제도들 1》 및 《2》.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6-2017 (trans. 김건태).
- J. 맥스웰 밀러 및 존 H. 헤이스: 《고대 이스라엘 역사》.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3 (trans. 박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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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무엘: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동연출판사, 2009.
역사적 예수 연구:
- Richard Carrier: On the Historicity of Jesus: Why We Might Have Reason for Doubt. Sheffield Phoenix Press, 2014.
-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나자렛 예수: 말씀과 역사》Jesus von Nazaret: Botschaft und Geschichte (1993). 분도출판사, 2002 (trans. 정한교)
- 김기흥: 《역사적 예수》. 창비, 2016.
- 조나단 리드 및 존 도미닉 크로산: 《예수의 역사》. 한국기독교연구소, 2010 (trans. 김기철).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예수 마음 코칭: 평신도를 위한 역사 비평학》Jesus von Nazaret - Was er wollte, wer er war. 생활성서, 2015 (trans. 김혁태)
- 아네테 메르츠 및 게르트 타이쎈: 《역사적 예수》. 다산글방, 2010 (trans. 손성현).
- 마커스 보그: 《예수 새로 보기》. 한국신학연구소, 1997 (trans. 김기석).
- 윌리엄 브레데: 《윌리엄 브레데의 메시야의 비밀》. 한들출판사, 2018 (trans. 최태관).
- E. P. 샌더스: 《예수와 유대교》.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8 (trans. 황종구).
- Ibid. 《예수운동과 하나님나라》. 한국신학연구소, 2003 (trans. 이정희).
- 에밀 쉬러: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 수와진, 2022 (trans. 진규선).
- 루돌프 슈낙켄부르크Rudolf Schnackenburg: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us: im Spiegel der vier Evangelien (1998). 분도출판사, 2009 (trans. 김병학).
- 알베르트 슈바이처: 《예수의 생애 연구사》. 대한기독교서회, 1995 (trans. 허혁).
- 루톨프 오토: 《예수》.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진규선: 《마리아의 아들》. 수와진, 2023.
- 마르틴 캘러: 《역사학의 예수와 성서의 역사적 그리스도》. 수와진, 2022 (trans. 진규선).
- 존 도미닉 크로산: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trans. 김준우).
- 로버트 펑크: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trans. 김준우).
- 샤를르 페로Charles Perrot: 《예수와 역사》Jésus et l'hostoire. 가톨릭출판사, 22012 (trans. 박상래).
- 로버트 M. 프라이스: 《복음서의 탄생》. 예린출판, 2022 (trans. 이해청).
- 리처드 호슬리: 《예수와 제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trans. 김준우).
복음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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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nnis McDonald: The Homeric Epics and the Gospel of Mark. Yale University Press, 2000.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차원》Wie Hat Jesus Gemeinde Gewollt?: Zur gesellschaftlichen Dimension des christlichen Glaubens (1982), 분도출판사, 21996 (trans. 정한교)
- 버튼 맥: 《잃어버린 복음서》.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trans. 김덕순).
- 루돌프 불트만: 《공관복음서 전승사》. 대한기독교서회, 2000 (trans. 허혁).
- Ibid. 《요한복음서 연구》. 성광문화사, 1990 (trans. 허혁).
- E. P. 샌더스: 《공관복음서 연구》. 대한기독교서회, 1999 (trans. 이광훈).
- 존 도미닉 크로산: 《비유의 위력》. 한국기독교연구소, 2012 (trans. 김준우).
바울로 및 바울로 서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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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do Schnelle: Paulus: Leben Und Denken. De Gruyter, 2014.
- William O. Walker Jr.: Some Surprises from the Apostle Paul. Polebridge Press, 2017.
-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바울로: 사도요 증인》Paulus von Tarsus. Apostel und Zeuge (1996). 분도출판사, 2008 (trans. 이종한)
- 제임스 D. G. 던: 《바울신학》.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9 (trans. 박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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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메이트라Frank J . Matera: 《바오로 신학: 하느님의 구원 은총》God's Saving Grace: A Pauline Theology. 바오로딸, 2016 (trans. 한충식)
- 존 M. G. 바클레이: 《바울과 선물》. 새물결플러스, 2019 (trans. 송일).
- E. P. 샌더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알맹e, 2018 (trans. 박규태).
- 이영헌: 《바오로 신학의 기본사상》. 바오로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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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es Tabor: Paul and Jesus: How the Apostle Transformed Christianity. Simon & Schust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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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헬름 부세트: 《퀴리오스 크리스토스(상)》.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루돌프 불트만: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1993 (trans. 허혁).
- 바트 어만: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갈라파고스, 2015 (trans. 오강남).
- 샤를르 페로Charles Perrot: 《예수 이후: 초대교회의 직무》Après Jésus: Le Ministère chez les premiers chrétiens (1993). 가톨릭출판사, 2002 (trans.백운철)
- 래리 허타도: 《주 예수 그리스도》. 새물결플러스, 2010 (trans. 박규태).
내세 및 부활 교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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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yggve N. D. Mettinger, The Riddle of Resurrection: "Dying and Rising Gods" in the Ancient Near East. Eisenbrauns, 2013.
- Markus Vinzent: Christ's Resurrection in Early Christianity. Routledge, 2011.
-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죽음 부활 영원한 생명 바로 알기》Am Ende das Nichts? Über Auferstehung und ewiges Leben. 생활성서, 2022 (trans. 김혁태)
- 오데트 맨빌Odette Mainville 외 공저: 《부활》Résurrection. 성서와함께, 2018 (trans. 안영주).
- 요한네스 바이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바트 어만: 《두렵고 황홀한 역사》. 갈라파고스, 2020 (trans. 허형은).
영지주의 및 외경 연구:
- 바트 어만: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이제, 2008 (trans. 박철현).
- 크레이그 A. 에반스: 《고대문헌개론》. 솔로몬, 2018 (trans. 김주한 및 박정훈).
-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동연출판사, 2020.
탈구조주의 비평:
- 제임스 K. A. 스미스: 《해석의 타락》. 대장간, 2015 (trans. 임형권).
- 케빈 밴후저: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IVP, 2008 (trans. 김재영).
페미니즘 비평:
- Carol Meyers: Discovering Eve: Ancient Israelite Women in Context.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탈식민주의 비평:
- R. S. 수기르타라자: 《탈식민주의 성서비평》. 분도출판사, 2019 (trans. 양권석 및 이해청).
퀴어 비평:
- 야마구찌 사토꼬: 《동성애와 성경의 진실》. 무지개신학연구소, 2018 (trans. 양희매).
21.4. 고대 문헌 및 자료
- https://www.deadseascrolls.org.il
- https://www.earlychristianwritings.com
- https://www.earlyjewishwritings.com
- F. 마르티네즈 및 E. 티그셸라아르 (ed.): 《사해문서 1》, 《2》, 《3》, 및 《4》. 나남, 2008 (trans. 강성열).
-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1》 및 《2》. 나남, 2008 (trans. 박정수 및 박찬웅).
- 이정순 (ed.): 《나그함마디 문서》. 동연, 2022 (trans. 이규호).
- 제임스 B. 프리처드 (ed.): 《고대 근동 문학 선집》 (1969, 3판). 기독교문서선교회, 2016 (trans. 강승일 등).
- 필론: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작품집 1》. 아카넷, 2022 (trans. 문유일).
원문 번역 외경:
- 《구약 외경 1》[130]. 한남성서연구소, 22022 (trans. 송혜경).
- 《구약 외경 2》 [131]. 한남성서연구소, 2023 (trans. 송혜경).
- 《신약 외경 1》 [132]. 한남성서연구소, 22021 (trans. 송혜경).
- 헤르마스: 《목자》. 분도출판사, 2002 (trans. 하성수).
21.5. 사전
- Horst Balz 등: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ThRE). De Gruyter, 1993–2006.
- Bob Becking 등: Dictionary of Deities and Demons in the Bible (DDD). Brill, 1999, 2판.
- Hans Dieter Betz 등: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 (RGG). Mohr Siebeck.
- Charles Augustus Briggs 등: Brown–Driver–Briggs (BDB).
- Gerhard Kittel: Theologisches Wörterbuch zum Neuen Testament (ThWNT; 영어: TDNT). W. Kohlhammer.
- Stanley E. Porter: Dictionary of Biblical Criticism and Interpretation. Routledge, 2006.
- 발터 바우어: 《바우어 헬라어 사전》. 생명의말씀사, 2017 (trans. 이정의).
- 아서 G. 팻지아 및 앤서니 J. 페트로타: 《성서학 용어 사전》. IVP, 2021 (trans. 맹호성 및 하늘샘).
21.6. 주석
- A Postcoloni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Writings
- Eerdmans Critical Commentary series
- Evangelisch-Katholischer Kommentar (EKK)
- Hermeneia Commentary series
- IVP 성경비평주석 (영어: Eerdmans Commentary on the Bible)
- NICNT 시리즈 (영어: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 NICOT 시리즈 (영어: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 NIGTC 시리즈 (영어: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series)
- WBC 시리즈 (영어: World Biblical Commentary series)
- 국제비평주석 시리즈 (영어: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series; ICC)
- 국제성서주석
- 사크라 파지나 성경 연구 시리즈 (영어: Sacra Pagina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 아빙돈 성경주석 (영어: The Abingdon BIble commentary)
- 알맹e 크리티가 성경주석 시리즈
- 앵커바이블 주석 시리즈 (영어: Anchor Yale Bible Commentary series; AncBC)
- 어빙던 주석 (영어: Abingdon Commentaries)
-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영어: The Women’s Bible Commentary)
- 《제롬 성경 주해》(영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JBC, 1968)
- 《새 제롬 성경 주해》(영어: The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 1990)
-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영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2022)
- 《주석 성경》 (불어: Traduction œcuménique de la Bible)
- 퀴어 성서 주석 (영어: The Queer Bible Commentary)
21.7. 문헌 개론
- John F. Evans: A Guide for Biblical Commentaries & Reference Works. 2010.
- 데이비드 R. 바우어: 《성경 연구를 위한 손안의 서재》. 새물결플러스, 2014 (trans. 왕희광 및 황의무).
21.8. 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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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
Anchor Bible
ABD
Anchor Bible Dictionary. Edited by D. N. Freedman. 6 vols. New York. 1992
AGJU
Arbeiten zur Geschichte des antiken Judentums und des Urchristentums
ANET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Edited by J. B. Pritchard. 3d ed. Princeton, 1969
BETL
Bibliotheca ephemeridum theologicarum lovaniensium
Bib
Biblica
BibInt
Biblical Interpretation
BibInt
Biblical Interpretation Series
BibSem
The Biblical Seminar
BIS
Biblical Interpretation Series
BL
Bibel und Liturgie
BSIH
Brill’s Studies in Intellectual History
BTB
Biblical Theology Bulletin
BTS
Biblical Tools and Studies
BZAW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BZNW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CBQ
Catholic Biblical Quarterly
CBQMS
Catholic Biblical Quarterly Monograph Series
CC
Continental Commentaries
CEJL
Commentaries on Early Jewish Literature
CH
Church History
CJR
Contemporary Justice Review
COS
The Context of Scripture. Edited by W. W. Hallo. 3 vols. Leiden, 1997–
CurBR
Currents in Biblical Research
CV
Communio viatorum
DCL
Deuterocanonical and Cognate Literature
DJD
Discoveries in the Judaean Desert
ECL
Early Christianity and Its Literature
EKK
Evangelisch-katholischer Kommentar
ETL
Ephemerides Theologicae Lovanienses European Studies
FAT
Forschungen zum Alten Testament
FRLANT
Forschungen zur Religion und Literatur des Alten und Neuen Testaments
GSC
Die griechischen christlichen Schriftsteller der ersten Jahrhunderte
HdO
Handbuch der Orientalistik
HTS
Harvard Theological Studies
HvTSt
Hervormde teologiese studies
ICC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JAAR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JBC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JBL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JECS
Journal of Early Christian Studies
JETS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JR
Journal of Religion
JRA
Journal of Roman Archaeology
JSHJ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Historical Jesus
JSHRZ
Jüdische Schriften aus hellenistich-römischer Zeit
JSJ
Journal for the Study of Judaism in the Persian, Hellenistic, and Roman Periods
JSJSup
Supplements to the Journal for the Study of Judaism
JSNT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JSNTSup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Supplement Series
JSOTSup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Supplement Series
JSP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JTS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KEK
Kritisch-exegetischer Kommentar über das Neue Testament (Meyer-Kommentar)
KTU
Die keilalphabetischen Texte aus Ugarit. Edited by M. Dietrich, O. Loretz, and J. Sanmart.n. AOAT 24/1. Neukirchen-Vluyn, 1976. 2d enlarged ed. of KTU: The Cuneiform Alphabetic Texts from Ugarit, Ras Ibn Hani, and Other Places. Edited by M. Dietrich, O. Loretz, and J. Sanmartín. Münster, 1995 (= CTU)
LCL
Loeb Classical Library
LNTS
Library of New Testament Studies
MDAI
Mitteilungen des Deutschen archäologischen Instituts
NedTT
Nederlands theologisch tijdschrift
Neot
Neotestamentica
NHMS
Nag Hammadi and Manichaean Studies
NICNT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NIGTC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NTD
Das Neue Testament Deutsch
NTOA
Novum Testamentum et Orbis Antiquus
NTS
New Testament Studies
NovT
Novum Testamentum
NovTSup
Novum Testamentum Supplements
OECS
Oxford Early Christian Studies
PAWB
Potsdamer Altertumswissenschaftliche Beiträge
PHSC
Perspectives on Hebrew Scriptures and Its Contexts
PIBA
Proceedings of the Irish Biblical Association
PRSt
Perspectives in Religious Studies
RBS
Resources for Biblical Study
RivB
Rivista Biblica
SAAA
Studies on the Apocryphal Acts of the Apostles
SBLEJL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Early Judaism and Its Literature
SBLSP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eminar Papers
SBLSymS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ymposium Series
SBT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SecCent
Second Century
SemeiaSt
Semeia Studies
SNTSU (SNTU.A)
Studien zum Neuen Testament und seiner Unwelt
SPhiloA
The Studia Philonica Annual
SSEJC
Studies in Early Judaism and Christianity
STAC
Studien und Texte zu Antike und Christentum
TBT
The Bible Today
TDNT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Edited by G. Kittel and G. Friedrich. Translated by G. W. Bromiley. 10 vols. Grand Rapids, 1964–1976
TPQ
Theologisch-praktische Quartalschrift
TU
Texte und Untersuchungen
TUGAL
Texte und Untersuchungen zur Geschichte der altchristlichen Literatur
VCSup
Vigiliae Christianae Supplements
VTSup
Vetus Testamentum Supplements
WBC
Word Biblical Commentary
WMANT
Wissenschaftliche Monographien zum Alten und Neuen Testament
WUNT
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en zum Alten und Neuen Testament
ZÄS
Zeitschrift für ägyptische Sprache und Altertumskunde
ZNW
Zeitschrift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und die Kunde der älteren Kirche
ZPE
Zeitschrift für Papyrologie und Epigraphik||
22. 외부 링크
[1] 개신교에 의하면 타낙과 구성하는 책은 같지만 배치 방식이 다르고, 가톨릭에 의하면 타낙 및 제2경전, 동방교회의 경우 각 전통에 따라 범위가 상이하다.[2] 성경 중 토라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구약성서 후반부 예언서들과 겹치는 부분은 적은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이사야같은 선지자들이 매우 중요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게 쿠란에는 아주 간략하게만 등장한다. 따라서 이슬람 학자들도 성경의 단편적인 번역이나마 자주 참조해야만 했다.[3] 이에 대해 왜 하필 기독교 경전만 성스럽다고 특별취급하냐며 영어 '바이블'로 대체하자는 말도 있지만, 이건 언어의 사회성에 무지한 태클이다. 가톨릭 신자가 '대승불교'라는 말을 쓴다고 대승불교가 상좌부불교보다 낫다고 인정하는 건 아니며, 개신교 신자가 '정교회'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자신들을 '틀린 교회'로 보는 게 아니고, 한국인이 옆 나라를 '일본'이라 부른다고 해서 그 나라가 태양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4] 불교의 경전을 불경이라고 하듯 과거 기독교의 명칭이 성교(聖敎)였기 때문에 여기에 기인해 성경이라고 부르게 된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것이라고 한다.[5] 양의 가죽으로 만들면 양피지.[6]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그냥 별도의 수식어 없이 '그 책(영어로 'the book')' 이라고만 해도 성경을 뜻한다. 여기에 '위대한, 존귀한, 성스러운' 따위의 표현이 붙거나 'THE BOOK'과 같이 대문자로 강조된다면 확실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 표현이 쿠란을 가리킨다.[7] 그래서 기독교 외의 꾸란, 베다, 불경, 논어 등 '경' 일반을 Scripture(Scriptura)라 한다. 여기서 Scriptura 자체는 필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Scriptus에서 왔다.[8] 다만 '악마의 이름은 루시퍼'라는 식으로 성경 본문 자체에서는 기인하지 않는 것도 있다.[9] 다만 이슬람교에선 예수도 25명의 예언자들 중 한명으로 보기 때문에 그 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당 부분 참고.[10] 여담이지만 영어 표기를 독일어 발음법으로 읽어보면 실제 이름에 근접하는 소리가 난다.[11] 그렇기 때문에 딱히 기독교랑은 관련없어 보이는 작품들도 의외로 몇 가지 기독교적인 소재(또는 오마주)들로 채워진 경우가 많다.[12] 지금이야 이슬람교 문화권에 속하지만, 고대 북아프리카는 메이저 초대 교회들이 터를 잡고 있던 곳이었다. 중아프리카도 이보다는 덜하지만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참고.[13] 이 쪽은 아예 팔만대장경, 반야심경을 제외하면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14] 물론 중국에서는 소홍서라는 특이 케이스가 있지만, 이것도 이젠 옛말이다. 오리지널 판본이라 할 수 있는 공산당 제작본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는 성경의 기록을 깨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을정도로 많이 찍어대서 헌책방이나 인터넷 서점 등에서 구하기는 매우 쉽기는 하다. 이렇게 된것은 중국내에서도 마오쩌둥이 비판적으로 재평가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을 정부차원에서 부정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실책이라고 비판받으며,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엇갈린다.[15] 심지어는 성경 각 책의 주제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관계가 이러한데, 신중하게 학습하면 둘을 모순 없이 이해할 순 있지만 일단 겉으로 보이는 주제는 어느정도의 긴장 관계를 이룬다.[16] 역사서, 운문, 소설, 서간.[17] 부주의하게 다루면 논란거리가 발생할 수 있는데다가, 사실 그리스 신화만 하더라도 고전기 아테네 시절에는 "시인들이 신들을 소재로 불경한 이야기를 쓴다"고 비판 받았다. 올림포스 종교가 소멸하고, 옛 그리스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믿었을 이야기에 시인들의 이야기들도 이것 저것 섞여 '그리스 신화'라는 이름으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시인들의 이야기를 올림포스 종교 그 자체와 동일시하지는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8] 성경의 내용은 어느 신이 어느 신을 사랑했는데 어느 신이 질투했다는 식의 이야기나, "제우스가 형제들과 연합하여 크로노스를 이기고 왕이 되었다" 류의 이야기보다는, 고대 근동 법전이나 종교적인 역사 체험담, 신탁 등에 가깝다.[19] 대체적으로 개역개정판을 쓰고 있지만, 일부 교파나 교회에서는 개역한글판 혹은 새번역, 혹은 공동번역을 쓰는 경우가 있다.[20] 두 관점이 해석학적으로 모두 유효하다. 곧, 성경 내부에는 다양한 전승들이 독립적으로 있기에, 이들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는 달리 독립적으로 해석된다. 가령 아가를 성경의 다른 책들과는 독립된 맥락에서 그 자체로 보자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연애시이다. 그러나 성경이든 세속 문학이든,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그 자체만이 아니라 텍스트가 위치한 맥락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이는 그림을 감상할 때 그림 자체를 감상하는 것과, 다른 그림과 함께 전시되고 의도적으로 위치가 배열된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이 다른 것을 생각하면 쉽다.(이 경우 하나의 그림은 다른 그림과 같은 맥락에 묶임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렇기에 아가를 '현재 성경에 배치되어 있는 맥락에서' 읽는 것도 엄연히 학술적으로 정당한 관점이다. 요약하자면, '텍스트 자체로서 감상하기'와 '텍스트가 배치된 맥락에서 감상하기'가 모두 중요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성경'을 여러 책의 '전집'으로 읽는 것과 하나의 단권화된 '성경'으로 읽는 것이 둘 다 정당하다.[21] 전문 다운로드[22] 정교회의 경우는 동일한 정교회 내부에서도 구약의 범위 및 권위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23] 나머지 정경들과 '완전하게' 동일한 권위를 지닌다고 본다.#[24] 카르타고 공의회는 세계공의회가 아니라 지역공의회이지만, 여기서 나온 정경 목록을 교회는 쭈욱 인용하였다. (신약의 정경이 정해진 것도 바로 카르타고 공의회다.) 이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기존의 목록을 그대로 '세계공의회의 자격으로' 재확인하였다. 참고로 공의회 전 불가타에서 에스드라 3, 4 등이 들어있어 그 책들이 정경이었다고 오인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책들은 정경으로서 불가타에 들어있는 게 아니라 '참고용'으로 실려있던 것들이다. 물론 교리적으로는 그 책들이 정경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최초로 정경 목록을 정했다고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잘못된 이해 탓이다.[25] 에스드라 3권과 4권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에스드라 상권과 하권이다. 왜냐하면 불가타에 실려있던 에스드라 1~4권 중에서 1권과 2권은 정경으로 인정되고(이 두 책은 오늘날 각각 에즈라와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에스드라 3권과 4권은 정경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노바 불가타 성경에는 LIBER ESDRÆ가 실려있는데, 이건 에즈라서이다. 사실 에즈라와 에스드라는 둘 다 같은 뜻인데 그냥 히브리어냐 라틴어냐의 차이뿐이다. 하지만 보통 에스드라라고 부르면 서방교회가 모두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 두권을 몰한다.[26] 하지만 천주교의 정경이 70인역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마카베오기 제3서, 제4서 등이 대표적인 예. 이들은 70인역에는 포함되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으로 규정되지 않았고, 당연히 천주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27] 히에로니무스, 아타나시오 등[28] 불가타 성경의 번역으로 가톨릭에 큰 영향을 끼친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어 성서의 권위를 그리스어 성서보다 더 인정했다는 점을 근거로 드는 경우도 있다.[29] 이외에도 초대 교회에서 이미 추려서 '정경'이라는 것을 대체적으로 정해놓고 썼다는 등 여러 가지 신학적 견해가 있다.[30] 토빗기, 집회서, 바룩서의 6장 '예레미아의 편지'[31] (번역자 주석) Jesu Nave라는 이름은 카르타고 목록에 쓰이고 있다. 눈(Nun)의 아들 요수에(Josue/여호수아)를 가리킨다.[32] Totus autem canon scripturarum in quo istam considerationem versandam dicimus, his libris continetur. Quinque Moyseos, id est Genesi, Exodo, Levitico, Numeris, Deuteronomio, et uno libro Iesu Nave, uno Judicum, uno libello qui appellatur Ruth, qui magis ad regnorum principia videtur pertinere. Deinde quatuor Regum et duobus Paralipomenon, non consequentibus, sed quasi a latere adjunctis simulque pergentibus. Hæc est historia quæ sibimet annexa tempora continet, atque ordinem rerum. Sunt aliæ tanquam ex diverso ordine, quæ neque huic ordini, neque inter se connectuntur, sicut est Job et Tobias et Hester et Judith et Maccabæorum 345libri duo, et Esdræ duo, qui magis subsequi videntur ordinatam illam historiam, usque ad Regnorum vel Paralipomenon terminatam. Deinde Prophetæ, in quibus David unus liber Psalmorum et Salomonis tres, Proverbiorum, Cantica canticorum, et Ecclesiastes. Nam illi duo libri, unus qui Sapientia, et alius qui Ecclesiasticus inscribitur, de quadam similitudine Salomonis esse dicuntur. Nam Jesus filius Sirach eos scripsisse constantissime perhibetur. Qui tamen quoniam in authoritatem recipi meruerunt, inter Propheticos numerandi sunt. Reliqui sunt eorum libri qui proprie Prophetæ appellati sunt, duodecim Prophetarum libri singuli; qui connexi sibimet, quoniam nunquam sejuncti sunt pro uno habentur. Quorum prophetarum nomina sunt hæc, Osee, Joel, Amos, Abdias, Jonas, Michæas, Naum, Abacuk, Sophonias, Aggæus, Zacharias, Malachias. Deinde quatuor Prophetæ sunt majorum voluminum, Esaias, Hieremias, Daniel, Ezechiel. His quadragintaquatuor libris veteris testamenti terminatur authoritas. Novi autem quatuor libris Evangelii secundum Matthæum, secundum Marcum, secundum Lucam, secundum Joannem; quatuordecim Epistolis Pauli Apostoli, ad Romanos, ad Corinthios duabus, ad Galatas, ad Ephesios, ad Philippenses, ad Thessalonicenses duabus, ad Colossenses, ad Timotheum duabus, ad Titum, ad Philemonem, ad Hebræos, Petri duabus, tribus Joannis, una Judæ, et una Jacobi, Actibus Apostolorum libro uno, et Apocalypsis Joannis libro uno.[33]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은 두 단계로 저술되었다. "전반부(서론~3,25,35)가 집필된 시기는 그의 주교직 초기에 해당하는 396년, 늦어도 397년 초로 추정한다. ... 후반부(3,25,36~4 끝까지)의 집필 연대는 426년경으로 추정한다."(by 성염 역주, 같은 책 32-33쪽)[34] 제2경전이란 단어는 일부러 피하였다. 왜냐하면 최소한 이 문서에서 제2경전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정경 목록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만을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경을 비교하면 이 문서에서 제2경전이라고 언급한 7권 외에도 눈에 띄는 차이가 더 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 성경의 다니엘서 3장 24-90절은 개신교 성경에는 빠져 있다.[35] 개신교의 반론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구약 구절을 신약이 인용할 때는
그러나 특정한 어구가 없으면 非성경 인용이라는 이 주장은, 잠언 11,31을 명백하게 인용하는 1베드 4,18이 아무런 어구 없이 그냥 인용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즉 이 방법론은 '특정 구절이 성경으로서 인용되었다는 입증'으로는 사용될 수 있지만, '특정 구절이 非성경으로서 인용되었다는 입증'엔 쓰일 수 없다.[36] 후술하겠지만, 정교회는 가톨릭의 트리엔트 공의회처럼 세계 공의회 차원에서 정경을 정한 바가 없다. 그렇기에 지역 교회마다 시선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의 경우 카르타고 공의회를 기본으로 정경 목록을 유지해 왔지만, 이 떡밥을 완전히 종결시켜 버린 건 세계 공의회인 트리엔트 공의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개신교에서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비판적이다. 애초에 개신교를 반박하기 위해 나온 공의회이므로 좋아할 리가 만무하지만.[37] https://earlywritings.com/forum/viewtopic.php?t=4016[38]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골로사이서 3:13-14)[39] 마태오의 복음서 5:17-18[40]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면 사실상 한계가 있다.[41] 사실상 위의 내용과 같이 보면 평생을 이 책과 같이하라는 얘기가 된다[42] 상당히 추상적인 부분이라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대목[43]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통독에 힘쓰는데 사실 이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44] 흔히 속칭 예수쟁이들이 어기는 부분[45] 물론 성경은 최종학력이 국민학교인 아저씨도 즐기는 책이며, 반드시 주석서를 학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세 학설이든 요즘 학설이든 일단 주석서가 있으면 훨씬 낫다. 안타까운 점은, 성경이 접근성이 높으면서 비로소 이해하기에 난이도도 높은 문헌이라, 인터넷에서 주관적인 독후감에 의한 잘못된 정보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이든 무신론자에 의해서이든) 범람한다는 점이다.[46] 신명기는 에돔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 마라. 내가 세이르 산을 에사우에게 소유지로 주었으므로, 너희들에게는 그들의 땅을 한 치도 주지 않을 것"(신명 2,5)이라 말하며, 비슷하게 모압에 대해서도 "모압을 괴롭히지도 말고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도 마라. 내가 아르를 롯의 자손들에게 소유지로 주었으므로, 너희에게는 그 땅 어느 곳도 소유지로 주지 않을 것이다."(신명 2,9)라고 한다. 현대 한국인이 애증을 느끼는 대상이 거란족이나 선비족이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임을 고려하면, 신명기가 얼마나 의도적이고 정교한 곡예를 구사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47] 독어 Rezeptionsästhetik: 텍스트가 내용을 그릇처럼 자체 안에 담고 있지 않으며, 텍스트의 의미는 오히려 독서 행위를 통해 창출·성립된다는 데서 출발하는 문학 이론. 여기서 텍스트는 독자와 상호 작용을 해야 하는, 반쯤 비어 있는 독서 지침으로 파악된다. Rezeptionsästhetik에 의하면 문학 유형에 따라서 텍스트의 의미는 많거나(예: 기술적인 사용 설명서) 혹은 적게(예: 픽션) 확정되어 있다.[48] 다음 링크에서 각 언어 번역을 볼 수 있다: # 원문은 프랑스어이다.[49] 굵은 글씨는 책에서 강조된 것이다.[50] 굵은 글씨는 원문에서 강조한 것.[51] 시간적으로 앞에 오는 것[52] 시간적으로 뒤에 오는 것이자, 예형이 가리키는 것[53] 예레미야 등이 바빌론 탈출을 제2의 이집트 탈출로 예고했고, 바빌론의 멸망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이 경험되었기에 이런 유추가 성경 독자들에게 자명해진 것이다.[54] 굵은 글씨는 책에서 강조된 것이다.[55] 병행문헌: 「명제론집」 제1권 서문 제5절: 제34구분 제3문제 제1절, 제2절. 「이교도논박대전」 제3권 제119장. 「보에티우스의 삼위일체론 주해」 제2문제 제4절 참고.[56] 제1문제 제5절[57] 병행문헌: 「명제론집」 제1권 서문 제5절, 제4권 제21구분 제1문제 제2절 제1소문제 제3이론에 대한 해답. 「능력론」 제4문제 제1절. 「임의(자유)문제토론집」 제3권 제14문제 제1절, 제7권 제6문제 전체.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4장, 제7강 참고.[58] 주의를 주자면, 여기서 말하는 '문자적' 의미는 근본주의식 성경 해석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의 텍스트 자체가 의도하는 문필적(문학적) 의미를 말한다.[59] 특히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읽어내는 데 매우 큰 공헌을 하였다.[60]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정작 이 해석법의 창시자인 오리게네스는 통념과 달리 대부분의 해석이 문자적 해석이며, 구절의 문자적 의미가 불분명하다거나 혹은 도덕적, 영성적 의미가 분명한 경우에 매우 신중하게 도덕적이거나 영성적 의미를 탐색하였다. 즉 이 해석법의 문제점은 오리게네스 당사자보다는 후대인들의 오남용에 있다. 지금도 아마추어나 사이비 해석자들이 (오리게네스의 해석법을 악용하여) 주관적인 독후감을 성경 해석법이라고 끄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61] 로마서, 갈라디아서, 두 개의 고린토 서간, 데살로니카 전서, 필립비서, 필레몬서[62] 바울로의 문체는 격정적인 파이터 논객의 문체에 가깝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맨 처음 배치된 바울로 서간이 하필이면 로마서라서 처음부터 도전하면 매우 어렵다.[63]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은 구약학에서 DtrG(Deuteronomistisches Geschichtswerk,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부르는 역사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명기를 편집한 학파가 이 책들을 작성했으며, 따라서 하나의 연속된 역사 시리즈라고 봐야한다. 여기서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룻기를 끼워넣으면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구약 배치에 부합한다. 엄밀히 말하면 룻기는 DtrG에 속하지는 않으니 나중에 읽어도 나쁘지는 않으나, 책이 짧아서 DtrG의 전체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데다가 배경 시대도 사무엘기 직전이니까 이왕이면 같이 읽는 게 좋다.[64] 대문자 N은 타낙 분류상 '전기 예언서'에 속한다. 여기에 신명기를 추가하면, Martin Noth가 말하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일치한다. 소문자 n은 타낙 분류상 '후기 예언서'에 속한다.[65] 타낙의 순서와 카테고리 출처: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책",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37쪽의 표;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1-22쪽의 표[NRSV] 영어 번역마다 약칭은 다르며, 여기선 NRSV를 기준으로 했다.[67] 새번역에서는 '라'[68] 새번역에서는 '더'[69] 다른 이름: 시가서, 문학서[70] 구약성경의 마지막 권[71]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 비치된 공동번역 성경책들은 모두 다 제2경전이 포함된 가톨릭판이다.[72] 발췌자 주석: La noubelle Bible Segond(NBS) : 개신교 목사 Segond의 작품을 기초로 한 불어권 개신교 성경.[73] 한국어판은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출판했으나, 원서는 불어권의 에큐메니컬 구약 입문서이다. 집필진도 가톨릭에 한정되지 않았다.[74] (영어)Deuterocanonical Books. 주의를 주자면 신명기(Book of Deuteronomy)가 '하급 계명'이 결코 아니듯이, 제2(Deuter)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하급'을 확정하지 않는다. 이 범위의 책들은 가톨릭에서 히브리 성경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반면 동방 정교회는 제2경전의 성서적 권위에 관하여 한 번도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적이 없었다.[NRSV] [LXX+] 칠십인역 추가분[LXX+] [78] 가톨릭의 전구 교리와 연옥 교리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또한 개신교의 정경 목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여기에 적혀있어서 성서 주석학적으로도 중요한 책이다. 항목 참조.[79] 예레미야의 편지를 포함한다.[LXX+] [LXX+] [82] 루가 복음서의 저자 루가가 작성한 문서로 루가 복음서의 속편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문서가 아니므로 복음서에 들지도 못하고, 교회로 보내는 편지가 아니므로 서간서에 들지도 못해 일반적으로 이렇게 따로 분류한다. 혹은 구약성경의 열왕기나 역대기, 여호수아, 판관기 같은 역사서로 분류하기도 한다.[83] 친서 목록은 Martin Ebner와 Stefan Schreiber의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를 따랐다.[NRSV] [85] 저자는 루가[86]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가톨릭) 혹은 필레몬서까지(개신교)가 전통적인 바울로 서간 목록에 속한다. 그러나 주석학적인 관점에서는 에페소서, 디모테오서, 디도서, 히브리서 등은 다른 저자가 쓴 것으로 본다.[87] 시기 상으로는 개신교 개역 성경(1961, 1998년 개정) → 공동번역(1977) → 가톨릭(2005) 순으로 출간되었다. 섞었다기 보다는 시대에 따라 표기가 변화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가톨릭 성경은 현재의 외래어 표기법이나 현대식 지명을 적극 반영한 판본이기도 하다. (예: 바로→파라오)[88] 볼드체로 강조된 것은 책에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89] 에큐메니컬로 계획된 번역이지만 현재는 개신교에서 쓰지 않는다.[90] (주석학적으로 친저성이 부정되는) 히브리서를 바울로 서간에 넣는 가톨릭도, 히브리서는 제외하지만 (역시 주석학적으로는 친저성이 부정되는) 에페소서는 바울로 서간에 넣는 개신교도, 카테고리 분류에서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카테고리 분류가 아니라 학문적인 친저성 논의에서는 가톨릭 학자가 히브리서의 친저성을 부정할 수도, 개신교 학자가 에페소서의 친저성을 부정할 수도 있다.[91] 서기 100년경의 시리아 지역 시골 교회의 교리서+전례 지침서다.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생활을 잘 알수있는 자료지만, 후에 사도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경에서 밀려났다.[JESUS] [93] 염소 가죽커버를 쓴 한국어 성경책이 양산되는 것 같지는 않다.[94] 천연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95] 가죽 벨트가 낡아지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96] 가성비는 돼지가죽이 가장 좋다고 한다.[97] 고급 가죽성경책의 대부분이 KJV와 같은 개신교 성경책(+NRSV 같은 일부 공동번역 에큐메니컬 성경책)이며 고급 가죽을 쓴 가톨릭 성경이 드문 편이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리 좋은 가죽성경책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게 된 것.[98] 업계 관계자말에 따르면, 인조가죽 커버를 하급 돼지가죽으로 재질을 바꾸는 것으로도 1~2만 원이 인상된다고 한다.[99] 특히 2000년대 초, 중반에 유행했던 소위 '이탈리아제 고급 인조가죽'을 쓴 개신교 성경책들과 2015년 이전에 인쇄된 천주교(한국어 새번역) 성경책들은 1년도 지나지 않아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나갔다는 문제점이 많이 보고되었다.[100] 여담이지만 통일 찬송가가 채택되기 이전인 1983년 이전까지는 교단마다 사용하는 찬송가가 서로 달라 성경과 찬송가의 합본이 곤란했다.[101] “관주(貫珠 혹은 串珠)” 성서란 전후참조(前後參照) 표시가 되어 있는 성서를 일컫는다. 출처-대한성서공회 "관주 성서"[102] 바오로딸, 분도 등에서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한다.[103] 교보문고, 알라딘, YES24[104] 발췌자 주석: 출처가 되는 책의 초판은 2000년에, 개정판은 2010년에 나왔다. 이를 감안하고 볼 것.[105] 이 단어는 현대 이스라엘의 화폐 단위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106] 책 속 주석: 화폐의 최소 단위.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해당한다.[107] 발췌자 주석: 이 책에 실려있는 신약 시대 화폐표를 기반으로 환산할 경우, 1랩톤은 1/128데나리온이다. 즉 노동자의 하루 좋은 품삯의 1/128.[108] 책 속 주석: 데나리온은 로마 시대에 나온 화폐 단위로서 노동자의 하루 좋은 품삯(현재 7만원쯤)이다. 그런데 구약의 하루 품삯이던 1세켈이 신약에 와서는 4데나리온으로 바뀐다. 따라서 신약의 1세켈은 4일 품삯에 해당한다.[109] 발췌자 주: 무슨 단위인지 책에서 누락되어있다. 추정컨대, 1/12테파를 말하는 듯하다.[110] 별표(*)는 왕조 교체를 말한다.[111] 신약에서 가장 긴 책은 사도행전.[112] 장 수만 자그마치 150장이고 절 수가 176절이 넘게 있는 119편이 존재한다!![113]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은 오바드야/오바댜.[114] 총 176절이 있다[115] 신약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은 마태오 복음서/마태복음 26장, 가장 짧은 장은 요한 묵시록/요한 계시록 15장.[116] 신약에서 가장 긴 절은 로마서 4장 16절.[117] 구약에서 가장 짧은 절은 레위기 11장 15절.[118] 1980년대에 나온 반공소설 중에는 빨간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목사 행세를 한 간첩 이야기가 있다.[119] 최근 이 성경책의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판형이 미세하게 작아진 것으로 보아 표지갈이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120] 한글자라고 썼지만, 일부 목차는 2음절로 축약했다.[121] 꼭 무교가 아니더라도 타종교인들도 포함되기도 한다.[122] 이스라엘 신화, 유대 신화라고도 쓰인다.[123] 이 글은 에라스무스 성경의 오류를 주로 다루지만 에라스무스가 원어 성경을 인쇄한 것은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124] 주기도문의 송영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유대인들은 기도를 마칠 때 꼭 송영을 하였다. 송영이 없는 마태오의 복음서 원본이 특이한 것이다. 원본에 없으므로 예수님께서 송영을 하였을거라고 확실할 순 없지만, 당시 관습 상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주기도문을 외운 후 송영을 하였을 것이다.[125] 올바른 성경 구절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126] 한글 번역본에 따라 표시하지 않기도 하고, 괄호로 묶기도 한다.[127] Nestle-Aland는 오늘날 신약 본문의 표준이며, 중역을 제외한 한국 가톨릭/개신교 성경들도 Nestle-Aland 혹은 GNT를 원문으로 한다. "1898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출판된 에버하르트 네스틀레Eberhard Nestle''의 『그리스어 신약성경』Novum Testamentum graece이 새 시대를 여는 판본이 되었다. ... 아들 에르빈 네스틀레Erwin Nestle가 이어받아 공을 들인 1927년의 13판은 본문을 교정하고 특히 본문비평 장치를 첨가했는데, 여기서 그리스어 사본 • 고대 번역본 • 교부 인용문 속의 이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로써 학술적인 문고판 판본이 생겨났거니와, 이것이 신약성서학의 표준 본문으로 빠르게 부상浮上했다.
1952년 21판부터는 쿠르트 알란트Kurt Aland가 공동 편집자로 참여했는데 ... 『네스틀레-알란트』 27판(NA27)은 현재 신약성경 본문 주석의 학술적 토대다."
[
성경에]
기록되어있다고나 쓰여있다는 식으로 구약의 권위를 드러내는 반면, 제2경전의 인용에서는 그런 언급이 없으로 '성경이 아닌' 그냥 인용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특정한 어구가 없으면 非성경 인용이라는 이 주장은, 잠언 11,31을 명백하게 인용하는 1베드 4,18이 아무런 어구 없이 그냥 인용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즉 이 방법론은 '특정 구절이 성경으로서 인용되었다는 입증'으로는 사용될 수 있지만, '특정 구절이 非성경으로서 인용되었다는 입증'엔 쓰일 수 없다.[36] 후술하겠지만, 정교회는 가톨릭의 트리엔트 공의회처럼 세계 공의회 차원에서 정경을 정한 바가 없다. 그렇기에 지역 교회마다 시선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의 경우 카르타고 공의회를 기본으로 정경 목록을 유지해 왔지만, 이 떡밥을 완전히 종결시켜 버린 건 세계 공의회인 트리엔트 공의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개신교에서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비판적이다. 애초에 개신교를 반박하기 위해 나온 공의회이므로 좋아할 리가 만무하지만.[37] https://earlywritings.com/forum/viewtopic.php?t=4016[38]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골로사이서 3:13-14)[39] 마태오의 복음서 5:17-18[40]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면 사실상 한계가 있다.[41] 사실상 위의 내용과 같이 보면 평생을 이 책과 같이하라는 얘기가 된다[42] 상당히 추상적인 부분이라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대목[43]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통독에 힘쓰는데 사실 이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44] 흔히 속칭 예수쟁이들이 어기는 부분[45] 물론 성경은 최종학력이 국민학교인 아저씨도 즐기는 책이며, 반드시 주석서를 학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세 학설이든 요즘 학설이든 일단 주석서가 있으면 훨씬 낫다. 안타까운 점은, 성경이 접근성이 높으면서 비로소 이해하기에 난이도도 높은 문헌이라, 인터넷에서 주관적인 독후감에 의한 잘못된 정보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이든 무신론자에 의해서이든) 범람한다는 점이다.[46] 신명기는 에돔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 마라. 내가 세이르 산을 에사우에게 소유지로 주었으므로, 너희들에게는 그들의 땅을 한 치도 주지 않을 것"(신명 2,5)이라 말하며, 비슷하게 모압에 대해서도 "모압을 괴롭히지도 말고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도 마라. 내가 아르를 롯의 자손들에게 소유지로 주었으므로, 너희에게는 그 땅 어느 곳도 소유지로 주지 않을 것이다."(신명 2,9)라고 한다. 현대 한국인이 애증을 느끼는 대상이 거란족이나 선비족이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임을 고려하면, 신명기가 얼마나 의도적이고 정교한 곡예를 구사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47] 독어 Rezeptionsästhetik: 텍스트가 내용을 그릇처럼 자체 안에 담고 있지 않으며, 텍스트의 의미는 오히려 독서 행위를 통해 창출·성립된다는 데서 출발하는 문학 이론. 여기서 텍스트는 독자와 상호 작용을 해야 하는, 반쯤 비어 있는 독서 지침으로 파악된다. Rezeptionsästhetik에 의하면 문학 유형에 따라서 텍스트의 의미는 많거나(예: 기술적인 사용 설명서) 혹은 적게(예: 픽션) 확정되어 있다.[48] 다음 링크에서 각 언어 번역을 볼 수 있다: # 원문은 프랑스어이다.[49] 굵은 글씨는 책에서 강조된 것이다.[50] 굵은 글씨는 원문에서 강조한 것.[51] 시간적으로 앞에 오는 것[52] 시간적으로 뒤에 오는 것이자, 예형이 가리키는 것[53] 예레미야 등이 바빌론 탈출을 제2의 이집트 탈출로 예고했고, 바빌론의 멸망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이 경험되었기에 이런 유추가 성경 독자들에게 자명해진 것이다.[54] 굵은 글씨는 책에서 강조된 것이다.[55] 병행문헌: 「명제론집」 제1권 서문 제5절: 제34구분 제3문제 제1절, 제2절. 「이교도논박대전」 제3권 제119장. 「보에티우스의 삼위일체론 주해」 제2문제 제4절 참고.[56] 제1문제 제5절[57] 병행문헌: 「명제론집」 제1권 서문 제5절, 제4권 제21구분 제1문제 제2절 제1소문제 제3이론에 대한 해답. 「능력론」 제4문제 제1절. 「임의(자유)문제토론집」 제3권 제14문제 제1절, 제7권 제6문제 전체.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4장, 제7강 참고.[58] 주의를 주자면, 여기서 말하는 '문자적' 의미는 근본주의식 성경 해석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의 텍스트 자체가 의도하는 문필적(문학적) 의미를 말한다.[59] 특히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읽어내는 데 매우 큰 공헌을 하였다.[60]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정작 이 해석법의 창시자인 오리게네스는 통념과 달리 대부분의 해석이 문자적 해석이며, 구절의 문자적 의미가 불분명하다거나 혹은 도덕적, 영성적 의미가 분명한 경우에 매우 신중하게 도덕적이거나 영성적 의미를 탐색하였다. 즉 이 해석법의 문제점은 오리게네스 당사자보다는 후대인들의 오남용에 있다. 지금도 아마추어나 사이비 해석자들이 (오리게네스의 해석법을 악용하여) 주관적인 독후감을 성경 해석법이라고 끄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61] 로마서, 갈라디아서, 두 개의 고린토 서간, 데살로니카 전서, 필립비서, 필레몬서[62] 바울로의 문체는 격정적인 파이터 논객의 문체에 가깝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맨 처음 배치된 바울로 서간이 하필이면 로마서라서 처음부터 도전하면 매우 어렵다.[63]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은 구약학에서 DtrG(Deuteronomistisches Geschichtswerk,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부르는 역사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명기를 편집한 학파가 이 책들을 작성했으며, 따라서 하나의 연속된 역사 시리즈라고 봐야한다. 여기서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룻기를 끼워넣으면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구약 배치에 부합한다. 엄밀히 말하면 룻기는 DtrG에 속하지는 않으니 나중에 읽어도 나쁘지는 않으나, 책이 짧아서 DtrG의 전체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데다가 배경 시대도 사무엘기 직전이니까 이왕이면 같이 읽는 게 좋다.[64] 대문자 N은 타낙 분류상 '전기 예언서'에 속한다. 여기에 신명기를 추가하면, Martin Noth가 말하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일치한다. 소문자 n은 타낙 분류상 '후기 예언서'에 속한다.[65] 타낙의 순서와 카테고리 출처: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책",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37쪽의 표; 드 쀠리Albert de Pury, "구약성경의 경전", Th. 뢰머Thomas Römer 외 공저, 《구약성경 입문》Introduction à l'Ancien Testament 제1권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9), 21-22쪽의 표[NRSV] 영어 번역마다 약칭은 다르며, 여기선 NRSV를 기준으로 했다.[67] 새번역에서는 '라'[68] 새번역에서는 '더'[69] 다른 이름: 시가서, 문학서[70] 구약성경의 마지막 권[71]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 비치된 공동번역 성경책들은 모두 다 제2경전이 포함된 가톨릭판이다.[72] 발췌자 주석: La noubelle Bible Segond(NBS) : 개신교 목사 Segond의 작품을 기초로 한 불어권 개신교 성경.[73] 한국어판은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출판했으나, 원서는 불어권의 에큐메니컬 구약 입문서이다. 집필진도 가톨릭에 한정되지 않았다.[74] (영어)Deuterocanonical Books. 주의를 주자면 신명기(Book of Deuteronomy)가 '하급 계명'이 결코 아니듯이, 제2(Deuter)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하급'을 확정하지 않는다. 이 범위의 책들은 가톨릭에서 히브리 성경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반면 동방 정교회는 제2경전의 성서적 권위에 관하여 한 번도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적이 없었다.[NRSV] [LXX+] 칠십인역 추가분[LXX+] [78] 가톨릭의 전구 교리와 연옥 교리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또한 개신교의 정경 목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여기에 적혀있어서 성서 주석학적으로도 중요한 책이다. 항목 참조.[79] 예레미야의 편지를 포함한다.[LXX+] [LXX+] [82] 루가 복음서의 저자 루가가 작성한 문서로 루가 복음서의 속편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문서가 아니므로 복음서에 들지도 못하고, 교회로 보내는 편지가 아니므로 서간서에 들지도 못해 일반적으로 이렇게 따로 분류한다. 혹은 구약성경의 열왕기나 역대기, 여호수아, 판관기 같은 역사서로 분류하기도 한다.[83] 친서 목록은 Martin Ebner와 Stefan Schreiber의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를 따랐다.[NRSV] [85] 저자는 루가[86]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가톨릭) 혹은 필레몬서까지(개신교)가 전통적인 바울로 서간 목록에 속한다. 그러나 주석학적인 관점에서는 에페소서, 디모테오서, 디도서, 히브리서 등은 다른 저자가 쓴 것으로 본다.[87] 시기 상으로는 개신교 개역 성경(1961, 1998년 개정) → 공동번역(1977) → 가톨릭(2005) 순으로 출간되었다. 섞었다기 보다는 시대에 따라 표기가 변화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가톨릭 성경은 현재의 외래어 표기법이나 현대식 지명을 적극 반영한 판본이기도 하다. (예: 바로→파라오)[88] 볼드체로 강조된 것은 책에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89] 에큐메니컬로 계획된 번역이지만 현재는 개신교에서 쓰지 않는다.[90] (주석학적으로 친저성이 부정되는) 히브리서를 바울로 서간에 넣는 가톨릭도, 히브리서는 제외하지만 (역시 주석학적으로는 친저성이 부정되는) 에페소서는 바울로 서간에 넣는 개신교도, 카테고리 분류에서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카테고리 분류가 아니라 학문적인 친저성 논의에서는 가톨릭 학자가 히브리서의 친저성을 부정할 수도, 개신교 학자가 에페소서의 친저성을 부정할 수도 있다.[91] 서기 100년경의 시리아 지역 시골 교회의 교리서+전례 지침서다.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생활을 잘 알수있는 자료지만, 후에 사도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경에서 밀려났다.[JESUS] [93] 염소 가죽커버를 쓴 한국어 성경책이 양산되는 것 같지는 않다.[94] 천연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95] 가죽 벨트가 낡아지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96] 가성비는 돼지가죽이 가장 좋다고 한다.[97] 고급 가죽성경책의 대부분이 KJV와 같은 개신교 성경책(+NRSV 같은 일부 공동번역 에큐메니컬 성경책)이며 고급 가죽을 쓴 가톨릭 성경이 드문 편이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리 좋은 가죽성경책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게 된 것.[98] 업계 관계자말에 따르면, 인조가죽 커버를 하급 돼지가죽으로 재질을 바꾸는 것으로도 1~2만 원이 인상된다고 한다.[99] 특히 2000년대 초, 중반에 유행했던 소위 '이탈리아제 고급 인조가죽'을 쓴 개신교 성경책들과 2015년 이전에 인쇄된 천주교(한국어 새번역) 성경책들은 1년도 지나지 않아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나갔다는 문제점이 많이 보고되었다.[100] 여담이지만 통일 찬송가가 채택되기 이전인 1983년 이전까지는 교단마다 사용하는 찬송가가 서로 달라 성경과 찬송가의 합본이 곤란했다.[101] “관주(貫珠 혹은 串珠)” 성서란 전후참조(前後參照) 표시가 되어 있는 성서를 일컫는다. 출처-대한성서공회 "관주 성서"[102] 바오로딸, 분도 등에서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한다.[103] 교보문고, 알라딘, YES24[104] 발췌자 주석: 출처가 되는 책의 초판은 2000년에, 개정판은 2010년에 나왔다. 이를 감안하고 볼 것.[105] 이 단어는 현대 이스라엘의 화폐 단위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106] 책 속 주석: 화폐의 최소 단위.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해당한다.[107] 발췌자 주석: 이 책에 실려있는 신약 시대 화폐표를 기반으로 환산할 경우, 1랩톤은 1/128데나리온이다. 즉 노동자의 하루 좋은 품삯의 1/128.[108] 책 속 주석: 데나리온은 로마 시대에 나온 화폐 단위로서 노동자의 하루 좋은 품삯(현재 7만원쯤)이다. 그런데 구약의 하루 품삯이던 1세켈이 신약에 와서는 4데나리온으로 바뀐다. 따라서 신약의 1세켈은 4일 품삯에 해당한다.[109] 발췌자 주: 무슨 단위인지 책에서 누락되어있다. 추정컨대, 1/12테파를 말하는 듯하다.[110] 별표(*)는 왕조 교체를 말한다.[111] 신약에서 가장 긴 책은 사도행전.[112] 장 수만 자그마치 150장이고 절 수가 176절이 넘게 있는 119편이 존재한다!![113]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은 오바드야/오바댜.[114] 총 176절이 있다[115] 신약 성경에서 가장 긴 장은 마태오 복음서/마태복음 26장, 가장 짧은 장은 요한 묵시록/요한 계시록 15장.[116] 신약에서 가장 긴 절은 로마서 4장 16절.[117] 구약에서 가장 짧은 절은 레위기 11장 15절.[118] 1980년대에 나온 반공소설 중에는 빨간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목사 행세를 한 간첩 이야기가 있다.[119] 최근 이 성경책의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판형이 미세하게 작아진 것으로 보아 표지갈이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120] 한글자라고 썼지만, 일부 목차는 2음절로 축약했다.[121] 꼭 무교가 아니더라도 타종교인들도 포함되기도 한다.[122] 이스라엘 신화, 유대 신화라고도 쓰인다.[123] 이 글은 에라스무스 성경의 오류를 주로 다루지만 에라스무스가 원어 성경을 인쇄한 것은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124] 주기도문의 송영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유대인들은 기도를 마칠 때 꼭 송영을 하였다. 송영이 없는 마태오의 복음서 원본이 특이한 것이다. 원본에 없으므로 예수님께서 송영을 하였을거라고 확실할 순 없지만, 당시 관습 상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주기도문을 외운 후 송영을 하였을 것이다.[125] 올바른 성경 구절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126] 한글 번역본에 따라 표시하지 않기도 하고, 괄호로 묶기도 한다.[127] Nestle-Aland는 오늘날 신약 본문의 표준이며, 중역을 제외한 한국 가톨릭/개신교 성경들도 Nestle-Aland 혹은 GNT를 원문으로 한다. "1898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출판된 에버하르트 네스틀레Eberhard Nestle''의 『그리스어 신약성경』Novum Testamentum graece이 새 시대를 여는 판본이 되었다. ... 아들 에르빈 네스틀레Erwin Nestle가 이어받아 공을 들인 1927년의 13판은 본문을 교정하고 특히 본문비평 장치를 첨가했는데, 여기서 그리스어 사본 • 고대 번역본 • 교부 인용문 속의 이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로써 학술적인 문고판 판본이 생겨났거니와, 이것이 신약성서학의 표준 본문으로 빠르게 부상浮上했다.
1952년 21판부터는 쿠르트 알란트Kurt Aland가 공동 편집자로 참여했는데 ... 『네스틀레-알란트』 27판(NA27)은 현재 신약성경 본문 주석의 학술적 토대다."
[
슈테판 슈라이버, 〈신약성경 본문〉Der Text des Neuen Testaments in 마르틴 에브너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등 공저,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2008), 이종한 번역, 분도출판사, 2013, pp.85-86.]
[128] Nestle-Aland와 연동된 프로젝트이다. "『네스틀레-알란트』 27판에 필적하는 것이 『그리스어 신약성경』Greek Bew Testament 4판(GNT4)인데, 본문은 NA27과 동일하지만 다른 본문비평 장치를 제시히며, 네 단계로 나누어진 사정査定 체계는 비전문가가 이문의 가치를 판정하는 것을 손쉽게 해 준다. GNT4는 특히 그리스어 본문을 가지고 수행하는 '실용적' 작업(예를 들어 자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위해 기획되었다." [
에브너/슈라이저 등, 같은 책, p.86.]
[129] 본래 원서 초판은 영어Our Fathers have told us: Introduction to the Analsys of Hebrew Narratives로 나왔지만, 3판(2011)은 불어로, 4판(2012)은 이탈리아어로 나왔다. 한국어판은 저자의 요청으로 이탈리아어판을 원서로 한다[130] 에녹 1서, 솔로몬의 시편, 요셉과 아세넷, 예언자들의 생애, 아리스테아스의 편지[131] 바룩 2서, 3서, 4서, 에즈라 4서[132] 야고보 원복음, 토마 유년기 복음, 토마 복음, 이집트인들의 복음, 베드로 복음, 니코데모 복음(=빌라도 행전), 프리어 로기온, 사도들의 편지, 진리의 복음, 에비온파 복음, 나자렛파 복음, 히브리인들의 복음, 에게르톤 복음, 옥시린쿠스 840, 옥시린쿠스 1224, 파윰 단편(=P. Vindob. G 2325)[133] 대한성서공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개역개정, 개역한글, 표준새번역, 새번역, 공동번역, 공동번역 개정판, CEV(현대영어역)이 제공된다.[134]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05년판 성경, 200주년 신약성서, 공동번역 성서, 최민순 역 시편, 주석 성경이 제공된다.[135] 개신교 계열 사이트. 개역개정, 개역한글,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NIV, KJV, NASB이 제공된다. 부가기능으로 새찬송가, 찬송가, 성경용어빈도조사 기능이 제공된다. '다국어성경'답게 중국어판 성경인 简体中文和合本 (CUV Simplified, 간체 중문 화합본), 繁體中文和合本 (CUV Traditional, 번체 중문 화합본), 아제르바이잔어판 성경인 2010년판 아제르바이잔어 성경도 제공된다. 일본어판 성경은 신공동역, 신개역, 구어역을 제공하지만, 메뉴에서 바로 접근할 수는 없고, 타 역본 성경에서 대역으로 접근할 수 있다. 중국어판은 옛 번역본이라 일부 글자(嗎·吗)는 과거의 맞춤법(麼)을 따르고 있으니 주의.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