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0><colcolor=#fff> 그리고리 라스푸틴 Григорий Распутин | Grigori Rasputi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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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Григо́рий Ефи́мович Распу́тин[1] Grigori Yefimovich Rasputin |
| 출생 | 1869년 1월 21일[2] |
| 러시아 제국 토볼스크 현 튜멘 군 포크롭스코예 (現 러시아 튜멘주 야르코보구 포크롭스코예) | |
| 사망 | 1916년 12월 30일[3] (향년 47세) |
| 러시아 제국 페트로그라드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 |
| 국적 | |
| 직업 | 농부, 종교인, 황실 관계자 |
| 신체 | 193cm, 85kg, O형(Rh-) |
| 부모 | 조부 야코프 라스푸틴 아버지 예핌 야코블레비치 라스푸틴 어머니 안나 바실리예브나 파르슈코바[4] |
| 배우자 |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두브로비나 (1887년 결혼) |
| 자녀 | 장남 드미트리 라스푸틴 (1897~1937) 장녀 마트료나[5] 라스푸티나 (1898~1977) 차녀 바르바라 라스푸티나 (1900~1925) |
| 다른 4명의 자식은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 | |
| 종교 | 러시아 정교회 |
1. 개요
러시아 제국 말기의 인물.2. 특징
흔히 정교회에서 성직자로 서품을 받거나 수도자가 된 적이 없으나, 카리스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자 평을 들으며 점차 추종자를 얻은 끝에 로마노프 황실과 접촉하여 러시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 알렉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을 호전시킨 업적으로 황제의 탄탄한 신임을 얻은 후부터 비선실세가 되어 국정을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러시아 제국의 몰락에 막대하게 일조했다고 알려졌다.당시 러시아 제국은 유럽 주요 국가 중에서도 전제군주제 체제와 농노제에 머물러 있었고, 대내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미 망국의 요인이 가득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의 멸망을 앞당기고 로마노프 왕조의 이미지에도 크게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구권에서 라스푸틴은 간신의 대명사 중 하나처럼 되었다. 실제로는 성직자도 수도자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는 괴승(безумный монах), 영어권에서는 미친 수도자 라스푸틴(Rasputin the Mad Monk), 한국에서는 요승 라스푸틴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이미지와는 달리 차르 부부는 결코 라스푸틴에게 맥 없이 홀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니콜라이 2세에게 라스푸틴의 비행을 보고했기에 이미 알고 있었고, 라스푸틴이 황실에서 사고쳐서 분노한 차르의 명령으로 내쫓기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부부가 그를 결정적으로 내쫓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이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라스푸틴이 개입하면 알렉세이 황태자의 혈우병 증세가 기가 막히게 진정된다는 것이었다.
라스푸틴이 비선실세로서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도 이미지일 뿐, 실제로는 정치 쪽으로는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한다.
3. 이름에 관해서
그의 성 라스푸트(распут)가 '방탕'이란 뜻이고, 그리고리가 방탕한 놈이라서 '라스푸틴'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은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서 유래되어 퍼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어로 '방탕'은 라스푸츠트보(распутство)이다. 현대 러시아어로 라스푸트(распут) 자체는 아무런 뜻이 없고 드물게 인명으로 쓰일 뿐이다.《러시아어 사전》에 따르자면 распут-라는 단어들은 마냥 긍정적이진 않지만 중립적인 단어로서 '얽히다', '엮이다'라는 어원이며 '교차로'(распутье)란 뜻도 있다.러시아어 위키피디아에서는 '라스푸틴'이란 성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상 나손 표도로프(Насон Фёдоров)의 별명이 로스푸타(Роспута)였는데, 이 별명이 후대로 넘어가면서 로스푸틴(Роспутин)이 되었다가 19세기부터 라스푸틴(Распутин)으로 발음이 와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58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미 '라스푸틴'이라는 성을 가진 이가 그리고리의 아버지 예핌 라스푸틴을 포함하여 30명이 넘었다. 유래를 따지자면 '라스푸틴'이라는 성은 라스푸티차와 교차로에 가깝다고 한다. 출처
상식적으로 라스푸틴의 조상도 개성(改姓)하면서 자신을 방탕한 놈이라고 정할 리는 없으니 러시아어 위키피디아의 서술이 더 신빙성이 높다. 성의 유래가 방탕한 놈이라는 것은 그저 끼워 맞추기에 불과하다. 아마도 당대의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을 집필하던 이가 어중간하게 러시아어를 알아서 생긴 오역일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라스푸티차와 엮어서 라스푸틴의 진짜 저주는 러시아 혁명이 아니라 라스푸티차라고 한다는 개그도 있다. 몇몇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이 라스푸티차라는 단어와 라스푸틴이라는 이름의 앞부분 음절이 비슷하기 때문에, 과거 만화 영화 '아나스타샤'에서 등장하는 악독한 라스푸틴이 퍼부은 저주가 러시아 혁명이 아니고 라스푸티차 현상으로 러시아의 교통이 마비되는 것이라는 유머도 있을 정도다. 당연히 라스푸티차 현상은 라스푸틴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있던 러시아 특유의 자연재해이다.
4. 생애
4.1. 초기 생애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라스푸틴은 1869년 시베리아 튜멘 군의 작은 마을인 포크롭스코예(Покровское)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는 다녔지만, 학업이 불량해서 문맹이었다. 그의 부모인 예핌과 안나 사이에는 예브도키야, 드미트리, 안드레이, 글리케리야, 마리야 등 여러 자식이 있었으나 모두 영아기에 사망하고 그리고리 한 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라스푸틴은 1887년 프라스코비야 두브로비나를 만나 결혼하여 자식 7명을 낳았으나 살아남은 자식은 드미트리, 마트료나(마리야),[6] 바르바라 등 3명 뿐이었다. 그렇게 가정을 이룬 라스푸틴은 1897년부터 15년 동안 '신통한 힘을 발휘하는 자'를 자처하며 러시아 전역을 떠돌았다. 그리스 왕국의 아토스 산, 오스만 제국의 카파도키아, 예루살렘 등을 순례하며 영적 스승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7]
정식으로 신학을 배운 적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마지막 차르》에 따르면 흘리스트파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졌다고 한다. 흘리스트파는 죄를 지어 그 죄를 사함으로서 천국에 도달한다는 종교적 신념을 가졌으며 러시아 종파 중 가장 악질적이고 비밀스러웠다고 한다. 그들은 일부러 죄를 지어야 했으므로 의례 중 난교를 하거나 채찍질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의례 끝에 처녀의 가슴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이러한 흘리스트파의 의례는 원래 술꾼, 난봉꾼이던 라스푸틴 성향과 잘 맞았고 영적 체험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넷플릭스 다큐의 설명은 일부 걸러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 흘리스트파는 그 옛날의 보고밀파처럼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하고 성욕과 식욕 등을 억제했고 의례 중의 난교와 채찍질은 루머로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 종파 중 가장 악질적이고 비밀스럽지도 않았다.[8]
4.2. 차르 부부의 신임을 얻다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부터였다. 그는 강신술, 신지학 등, 여러 사이비 종교적 활동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각 지방의 사람과 귀족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 내 귀부인에게 큰 추앙을 받았으며 그 중에는 훗날 그를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소개하는 안나 알렉산드로브나 비루보바 부인과, 밀리차 대공비, 아나스타시야 대공비[9]와 같은 황족도 다수 있었다.[10]그리고 1905년 11월, 라스푸틴은 비루보바 부인의 주선으로 처음으로 차르 부부와 접견했는데,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신의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큰 호감을 샀다. 그 뒤 황태자의 치료를 위해 알렉산드라 황후의 부름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왔고, 이 첫 치료에서 라스푸틴은 혈우병으로 인해 사경을 해매고 있던 알렉세이 황태자의 상태를 호전시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당시 니콜라이 2세는 알렉산드라 황후와의 사이에서 1남 4녀를 보았는데, 막내인 알렉세이 황태자가 혈우병 환자로 태어난 탓에 황제 부부와 온 황실이 근심하던 차였다.[11] 하나밖에 없는 황태자가 불치병에 걸린 끔찍한 현실에서 차르 부부는 여러 의사를 황태자에게 붙여봤으나 차도는 없었고,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스푸틴에게 처음으로 치료를 맡겼다.
그가 사용한 치료 요법이 무엇인지는 최대 미스터리이다. 차르의 주치의들은 이 괴승이 나타나서 알렉세이를 치료하는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라스푸틴이 알렉세이의 곁에 나타나면 알렉세이의 출혈은 멈추고 용태가 호전되었으며 심지어 전화나 전보로 치료하기도 했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여러 설명이 나왔으나 모두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가장 적대적인 추론은 라스푸틴이 황태자를 몰래 중독시켰다가 자신의 방문에 맞춰 독약을 투약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하지만 차르의 호의에 의지할 뿐인 평신도 라스푸틴이 어떻게 차르의 황실을 조종해서 차르와 차리나도 모르게 황태자에게 독을 먹였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또 다른 설명은 최면술이지만 라스푸틴이 최면술을 배운 시점은 1913-14년 사이로 이미 라스푸틴이 황태자를 치료하기 시작한 지 8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라스푸틴이 황태자에게 최면술을 거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라스푸틴의 유력한 무기인 말빨에 주목해서 황태자에게 심리 치료를 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유명하지만, 라스푸틴은 황태자가 두 살인 1906년부터 황태자를 치료했다. 두 살배기가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으니 역시 잘못된 설명이다. 게다가 라스푸틴은 전술했듯이 황태자를 원격치료하기도 했다.
결론은 둘 중 하나이다. 라스푸틴에게 정말로 신통력이 있었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기가 막힌 우연의 연속에 불과했단 것이다. 사실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는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결코 라스푸틴에게 맥 없이 홀리지 아니하였다. 특히나 니콜라이 2세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때문에 라스푸틴은 사고쳐서 황궁에서 수 차례 추방됐다가 용서받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가장 심각한 스캔들인 1912년에 라스푸틴과 황후, 황녀들이 주고받은 서신이 유출됐을 때는 알렉산드라조차 노해서 라스푸틴을 접견하길 거부했으나, 라스푸틴은 내출혈로 죽어가던[12] 알렉세이를 기적적으로 소생시킴으로써 황실 복귀에 성공했다.
4.3. 요승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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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푸틴의 손에 놀아나는 차르 부부를 풍자한 그림[13] |
니콜라이 2세는 정치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 즉위했을 당시 자신의 매제에게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황제로서 준비가 안 된 인물이었다. 이는 니콜라스 2세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후 연이은 실정으로 보면 총체적 난국이라 할 정도로 무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 나라를 다스려 주겠다는 라스푸틴이 나타나고, 특히 사랑하는 아내 알렉산드라가 황태자를 구해준 라스푸틴을 감싸고 도니 마음 약한 니콜라이는 그를 두둔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알렉산드라 황후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내성적이고 신비주의 면모가 있다. 알렉산드라는 황후가 사교계의 중심으로서 차르를 도와 귀족을 이끌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러시아 황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일이 빈번했기에, 황제를 보필해야 하는 황후로서는 완전히 실격이었다.
이런 무능한 차르 부부를 등에 업고 라스푸틴은 차르 부부 앞에서는 성자인 척 하면서 뒤로는 세력을 점점 키워나가다 못해 황실 내 귀부인에게 성추행도 서슴치 않는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해왔고 차르 부부도 이를 막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두둔했다.[15] 당연히 라스푸틴은 황족과 귀족에게 공분을 샀으며 당장 황태후인 덴마크의 다우마 공주, 황제의 막내 여동생 러시아의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황후의 둘째 언니인 옐리자베타 대공비도 "라스푸틴을 멀리하라"라고 충고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 황후는 이런 친인척들의 간언을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16]
또한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딸들인 공주들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공주들이 잠옷 바람으로 있는 방에 드나들 정도였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공주들 앞에서는 경건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였고 공주들도 그를 '남동생의 병을 고쳐준 착한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해서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으며[17], 총살당하는 그 순간까지 라스푸틴의 사진을 부적 삼아 몸에 지니고 있었다.[18]
당시 4명의 황녀들이 혈우병 환자라는 기록은 없었고[19] 황녀 모두가 처형되어 자손을 남기지 못했지만 아나스타시야 황녀는 발가락 염증과 기관지염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당시로서 드문 연애결혼 끝에 화목한 가정을 꾸렸지만, 알렉산드라는 러시아 사교계에서 겉돌고 있었고 겨우 얻은 아들이 혈우병이란 사실에 자신 때문이란 죄책감으로 우울증 증상까지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황태자 뿐만 아니라 황녀들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텐데 아마 이런 마음을 파고들어 라스푸틴이 공주들의 지지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라스푸틴이 황후와 공주들을 범했다.'는 성추문이 끊이지 않았으며[20] 심지어 이런 소문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황제 일가가 폐위된 뒤 유배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황족을 구경한 주민들이 알렉산드라 황후를 보고 "저 늙은 여자에게 대체 뭐가 좋다고 라스푸틴이 껄떡댄 걸까?"라고 수근거렸을 정도였다. 이후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처형한 뒤에 시신을 묻는 작업을 맡은 볼셰비키들은 "니키와 그 독일 썅년에게 라스푸틴이 자기들 등 뒤에서 지들 딸래미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두 눈으로 보게 해주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황족을 처형한 야코프 유롭스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21][22]
4.4. 국정농단과 반론
라스푸틴이 지나칠 정도로 국정에 간섭하긴 했지만, 결과만이라도 좋았더라면 요승이라느니 미친 수도자라느니 하는 말을 듣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라스푸틴의 간섭은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전쟁으로 러시아의 국내 외 사정이 안 좋아지자 니콜라이 2세와 라스푸틴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나마 좋게 봐줄 만한 건 대부분의 일에서 전쟁 반대를 주장하며 러시아 제국을 평화 상태로 유지하는데 기여했다는 것 정도. 애초에 라스푸틴은 1차 세계대전에 러시아가 끼어드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23] 그러나 발칸반도에 러시아 영향을 강하게 하고 싶던 니콜라이 2세는 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였다.이러한 비선실세 이야기와 관련해서 수정주의적 주장이 나온다. 일단 아무리 러시아 제국이 당대 서유럽의 선진국만은 못해도 세계 열강으로 손꼽히는 강국인데, 문맹이 실세로서 국가에 암약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 지금까지 라스푸틴에 대한 이야기들은 매우 과장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다양한 여행 경험이 있고 카운슬링에 매우 뛰어난 평신도인 라스푸틴이 반전주의와 독일계 황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때문에, 실세로서 무언가를 할 능력이 없는데도 과도하게 매도당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제정 붕괴 후 임시정부의 조사와 이후 소련 학계의 조사에서도 러시아 제정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기 좋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과대평가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라스푸틴 국정농단설을 주장했던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도 라스푸틴이 죽어도 제 2, 제 3의 라스푸틴이 나타날 거란 식으로 은근슬쩍 의견을 철회했다. 또한 니콜라이 본인도 여러 기록에서 라스푸틴을 그저 황후를 얌전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정도로 여길 뿐이었다고 언급되었다. 라스푸틴의 조언 대부분은 무시당하거나 어쩌다 들어줘도 굳이 라스푸틴이 아니었더라도 실행될 개연성이 충분한 일이었다고 정리되었다.
4.5. 죽음과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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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과 그의 아내 이리나 공주 |
1916년 12월 20일, 펠릭스 유수포프를 중심으로 한 반(反) 라스푸틴 황족·귀족이 라스푸틴 몰래 궐석재판을 실시하고, 일방적인 재판 진행 끝에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유수포프 가문은 유목민계 노가이 칸국의 지도자 유수프비(Юсуф-бий)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본래는 무슬림 가문이었으나 17세기 무렵에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표도르 1세로부터 공작위를 받게 됐다.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은 군 중장이었던 펠릭스 수마로코프엘스톤(Феликс Сумароков-Эльстон) 백작과 지나이다 유수포바(Зинаида Юсупова) 여공 부부의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펠릭스의 형 니콜라이는 젊었을 때 결투하다가 죽었기에 펠릭스가 유수포프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성씨를 이어받았다. 유수포프 가문은 어머니의 가문이었다. 그럼에도 외가의 후계자가 된 이유는 외가의 마지막 구성원이 펠릭스 공작의 어머니 지나이다 유수포바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펠릭스의 아내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 로마노바(Ири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는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 러시아의 크세니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의 딸이므로, 펠릭스는 니콜라이 2세의 조카사위(생질서)가 된다. 펠릭스의 장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24]는 니콜라이 1세의 막내 아들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4남으로 펠릭스의 장모이자 산드로 본인의 아내인 크세니야와는 5촌 숙질간이었다.
황족 중에서도 라스푸틴을 죽이고 싶어 안달난 이들은 많았으나, 유수포프가 굳이 앞장서 라스푸틴 암살에 총대를 메고 나선 이유는 유수포프가 자신의 불운이 라스푸틴이 초래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유수포프를 라스푸틴이 게이라고 모욕했다는 설이 있는데 라스푸틴의 딸 마리야가 유수포프가 라스푸틴에게 흑심을 품었다고 주장한 것이 원 출처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학자들은 이를 마리야가 아버지를 신비화 하면서 나온 거짓으로 본다.[25] 유수포프는 다른 많은 러시아 귀족들처럼 라스푸틴이 제정을 망치는 간신이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그를 죽여야 한다고 마음 먹은 것은 그의 어머니 지나이다가 황후에게 라스푸틴 험담을 하다가 축객령을 선고받았고, 자신의 아버지인 엘스톤 백작이 1915년 폭동에 대응하지 못한 죄로 모스크바 총독에서 해임된 후 이것이 모두 라스푸틴의 음모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유수포프는 더 나아가 라스푸틴이 러시아를 망치고 정교회를 해체하려고 하니 자신이 그를 죽이면 자신이 러시아를 구한 영웅이 되리라고 믿었다. 유수포프 공작의 아내 이리나 공주의 미모에 흑심을 품은 라스푸틴이 찝적대자 공작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 그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설도 유명하나 이것도 영화에서 나온 것이 시초에 가깝다. 애초에 라스푸틴 암살 음모는 유수포프 공작 혼자서 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 유수포프는 종범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많은 점에서[26] 유수포프의 개인 동기만 집중하면 사건을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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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수포프 공작의 아내 이리나 공주 |
유수포프는 우선 라스푸틴에게 자신이 병이 있는데 무능한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하니 라스푸틴의 신통력으로 치료해 달라고 아부했다. 이에 라스푸틴은 흡족해 하면서 유수포프에게 몇 차례 안수 치료를 해주었다. 유수포프는 라스푸틴이 자신에게 최면술을 걸어 꼼짝을 못하게 했는데 그 경험이 실로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유수포프는 여러 동맹자들을 구하려 했으나 라스푸틴의 정적들은 의외로 참여를 거부했는데 특히 자유주의자들은 어차피 라스푸틴을 죽여도 제 2, 제 3의 라스푸틴이 나올 것이니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오컬트에 평소에 심취했던 유수포프는 라스푸틴이 정말로 신통력이 있는 요승이니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주장, 드미트리 대공을 비롯한 여러 동맹자들을 포섭하는데 성공하는데 특히 드미트리 대공을 데리고 온 것은 황족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관례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수포프는 집주인이 손님을 해치면 접대의 관습을 어기는 불명예라는 점에서 마지막에 고뇌했으나 결국 영웅심에 암살을 강행하게 된다.
1916년 12월 30일, 라스푸틴은 유수포프와 반(反)라스푸틴 황족들의 계략에 속아 잔치에 초대되었다. 라스푸틴은 황후에게 자신이 이리나의 초청을 받아서 유수포프 공작가를 방문하다고 했으나 황후는 이리나는 크림 반도에 있고 지금 유수포프 가문의 어른들은 다 집을 비웠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별일 아니라고 여겨 무시했다. 라스푸틴은 6명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청산가리가 든 케이크와 와인을 먹었다.[27] 그런데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고 죽었어야 할 라스푸틴은 2시간이 지나도 죽기는 커녕 노래를 부르고 파티를 즐겼다. 청산가리는 섭취 시 의식을 잃기까지 약 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위험한 독극물이므로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이유에서든 독이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28] 다만 어느 정도의 중독 증상은 보여 음식을 삼키는 것을 힘들어했다. 놀란 암살자들은 속으로 공포에 떨었지만 너무 늦으면 시체를 몰래 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결국 계획의 핵심 인물인 유수포프가 권총을 꺼내 라스푸틴을 쏘았다. 라스푸틴은 쓰러졌고 그 직후 암살자들은 즉시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외투를 두고 온 바람에 황급히 돌아온 유수포프가 분풀이를 하기 위해 라스푸틴의 시신(?)을 잡고 마구 흔들었을 때 라스푸틴은 살아있었고, 오히려 유수포프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했다. 놀란 유수포프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라스푸틴은 황후에게 모두 고해바치겠다고 저주하면서 집 밖으로 도주했다. 이에 다른 황족들이 추격하여 2방을 추가로 발사, 이 중에서 2번째로 쏜 총알이 이마를 관통해서 즉사했다. 시신은 네바 강으로 던져졌고 이후 수습됐다. 총을 맞고 곤봉으로 두들겨 맞아도 멀쩡했으며 심지어 네바 강 얼음에 손톱자국이 남았다느니 어쩌니 하는 도시전설 썰들이 유명하지만 모두 라스푸틴의 유명세에 힘입은 구라에 불과하고 당시 부검서에는 총상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분명히 규명되었다. 코소로토프가 작성한 부검 의견서 원본은 불행히도 러시아 혁명의 혼란 와중에 소실되었으나 코소로토프가 혁명 이후에 남긴 인터뷰 및 부검을 위해 찍은 사진들은 발굴되었다. 이것들이 발굴되기 전까진 작가와 일부 역사가들까지도 온갖 소설을 써내서 라스푸틴의 죽음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가중하는 데 한목했다. 라스푸틴의 성기가 사망 후 절단됐단 주장도 있으나 이 역시 낭설에 불과하다.
이 불가사의하기까지 한 라스푸틴의 사망 과정은 정황상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황족들이 자기들 딴에는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었든지 아니면 운이 나빴을 수도 있다. 분명 음식에 독을 타긴 탔지만 하필 라스푸틴이 음식에서 독이 안 든 부분만 우연히 골라서 먹었을 가능성도 있다. 누굴 독살하려고 준비한 음식에 죄다 독을 떡칠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독살 관련 사건에서는 의외로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작정하고 살해를 시도했는데도 죽지 않았다면 이건 정말 살해하려는 쪽이 멍청했거나, 라스푸틴이 천운을 타고났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말 라스푸틴이 괴물같은 생명력의 소유자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부검 책임자였던 코소로토프가 인터뷰한 기록에 의하면 라스푸틴의 시체에서는 익사나 독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괴승 라스푸틴의 죽음을 둘러싼 허와 실을 참고.
지금도 라스푸틴 처단 현장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수포프 궁전은 라스푸틴 처단 당시를 재현 및 보존하고 있고 박물관으로 쓰인다. 유수포프 궁전 홈페이지
라스푸틴의 시신은 1917년 2월 혁명이 터진 후에 임시 정부의 군대가 파내서 불태워 버렸다. 그의 생가는 1980년까지 남아있었으나 서방 관광객들이 몰려오자 책임비서였던 보리스 옐친의 손으로 철거된다.
5. 여담
- 라스푸틴의 비서 아론 시마노비치의 증언에 따르면 라스푸틴은 죽기 전에 밑의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이는 조작되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나 100% 지어낸 것은 아니고 라스푸틴의 생각이 어느 정도 담겼다고 평가받는다.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 편지를 남긴다.나는 내년 1월 1일이 오기 전까지 살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러시아 제국의 국민들과 러시아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내 형제와도 같은 러시아 국민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러시아 황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왕조는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지속할 테니까. 그러나 내가 만일 특권층, 귀족들의 손에 죽어 그들이 내 피를 솟구치게 만든다면, 그들의 손은 앞으로 25년 간 피에 젖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를 떠날 것이며, 25년 간 형제들은 형제들을 서로 죽이고 미워하게 될 것이고, 끝내 러시아에 귀족이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리라.러시아의 황제여, 만일 당신이 나 그리고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은 다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의 일족 중 누구라도 내 죽음에 연루된다면, 2년 내에 당신의 일족, 가족과 자식들까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러시아 민중들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나는 가지만, 나는 내가 사라진 이후 황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할 책무를 느낀다. 반성하고 신중히 행동하라. 당신의 안전을 생각하고, 당신의 일족들에게 내 피의 앙갚음이 있을 것임을 알려라.나는 죽을 것이며, 더 이상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굳게 가지며 당신의 가족을 생각하라.그리고리 씀.
그가 죽은 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황제 일가는 볼셰비키들에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을 계승한 소련은 적백내전, 공산당의 분열, 대숙청 등 내부 분열에 시달렸으며 정확히 25년 뒤에는 독소전쟁이 발발한다. 다만, 정작 암살 주범인 펠릭스 유수포프[29] 공작과 아내인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 유수포바[30]는 목숨을 건져 각각 1967년, 1970년까지 제 명을 누리다 죽었고 공범인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31]도 1942년까지 살다 죽었다. 라스푸틴 살해에 격노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가 가담자들을 처벌하려 했지만 다른 황족들이 탄원하여 잠시 가택연금에 처했다가 페르시아 국경으로 보내버렸다.
편지의 내용들은 사실 단순히 우연일 가능성이 높고 이 편지가 진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편지의 필체와 문법이 그가 생전에 썼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예언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상식적인 분석에 가깝다. 원래 예언이나 점술이라는 분야가 정말 초월적인 능력이라기보다는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해 어떤 사람인지 추리해내는 경우가 많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척척 알아맞히니 듣는 사람은 놀라고 신통하다고 느끼게 된다. 라스푸틴은 교묘한 언행으로 황제와 황후를 구워 삶고 온갖 모략에 도가 튼 귀족들 틈바구니에서 자기 세력을 키웠으니, 머리가 비상하고 정치감각도 있는 사람이었을 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내용이다. 라스푸틴이 상황과 자신의 처지를 판단하고 나서 내린 결론을 토대로 황제에게 보낸 일종의 협박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려는 니콜라이 2세에게 "전쟁에 개입하면 셀 수 없는 눈물이 강을 이룬다."라는 라스푸틴의 경고 역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말인데 전쟁은 승전국과 패전국을 가리지 않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가장 결정적으로 러시아의 패색이 짙던 1916년 하반기부터 정치권의 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구치코프를 중심으로 우파 세력들이 결집하고 있었고 라스푸틴이 죽은 12월에는 아예 쿠데타까지 모의했다. 이 12월 쿠데타 모의의 핵심 인물인 구치코프는 황제의 면전에서 라스푸틴을 쳐 낼 것을 강경하게 주장했으며 이에 알렉산드라 황후가 격분해 구치코프를 목 매달라고 길길이 날뛴 것은 유명한 일이었다. 만약 1916년 하반기에 페트로그라드에서 우파 세력들이 쿠데타를 성공시켰다면 가장 먼저 죽을 사람은 라스푸틴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라스푸틴의 편지는 단순히 정치권의 동향을 분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 라스푸틴이 황태자의 병을 가라앉힌 방식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항 응고 작용이 있는 해열제 아스피린의 복용을 중단시킨 것도 있겠으나 당시 라스푸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는 당시 목격자들도 증언하고 있다.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 올가 공주는 라스푸틴 반대에 앞장섰는데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그의 치유 능력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거기다 당시 곁을 지켰던 주치의조차 황태자의 증상 완화를 보고[32] 이는 도저히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했기에 라스푸틴의 능력이 귀족 사이에서 더 크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현재 의학으로도 라스푸틴이 정말 무슨 짓을 해서 알렉세이의 병을 완화시켰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라스푸틴이 황태자를 빈사 상태에서도 몇 차례나 살려내는 모습을 본 당시 사람이나 황제 부부로서는 그에게 매달리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 영국인 시녀 릴리 데인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직접 겪어본 후 라스푸틴을 신뢰했다고 한다. 2살 난 아들이 심각한 디프테리아로 위독할 때 라스푸틴이 찾아와 아이 침대 옆에서 눈에 힘 주고 빤히 쳐다보자 얼마 후 무슨 짓을 해도 안 깨어나던 아이가 눈을 뜨더니 갑자기 말까지 하면서 라스푸틴을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아들이 살아날 거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는데 그대로 되었다고 한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병원에서 열린 "에로틱 박람회"에서 라스푸틴의 성기라는 표본이 전시된 적 있다. 구글에 검색하면 사람 머리 길이만 한 사진을 볼 수 있는데, 그것만 해도 피가 빠지고 많이 작아진 것이다. 평소에는 길이가 30cm, 발기 시에는 40cm에 달했다고 한다.[33] 그의 추종자 중에는 이런 대물에 반한 여성도 꽤 있었다 카더라. 라스푸틴을 암살하고 나서 시신을 처리하던 이가 라스푸틴의 성기를 보고 요물이라며 칼로 잘라갔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살아있을 때 잘랐다고도 전해지기는 하나, 부검 담당자 인터뷰에 의하면 살아있을 때 성기는 붙어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뒤로 표본 통에 담겨있다.
그런데 그렇게 보존된 라스푸틴의 성기는 최소 3개라고 한다. 그중 하나는 해삼으로 판명되었으나 나머지 둘은 모두 실제 성기라고 하는 러시아 내의 풍문이 있다.[34] 그러나 이건 러시아 내 풍문일 뿐이라 검증할 길은 없다. 해삼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의 성기로 사기를 쳤다고 보는 게 옳다. 라스푸틴의 딸 마리야는 아버지의 음경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마리야는 1977년 사망할 때까지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위에 나온 러시아 박물관에 있는 음경 2개도 사람의 것이 아니라 대형 동물의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성기를 절단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6. 대중매체
의문의 치유 능력이나 암살 당시의 정황 등 여러 가지 미스테리한 면모 때문에 이런저런 루머에 연루된다. 대표적으로, 오컬트적인 힘을 빌리려 했던 아돌프 히틀러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 이는 《헬보이》에서도 다루어진다.
라스푸틴은 미디어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정도가 아니라 거의 90%는 악당 주술사 또는 만악의 근원으로 등장하여 큰 일을 벌인다. 거기다 음모론자들은 이 인간이 불사신 생 제르맹이 아닐까 망상하기도 한다. 창작물의 특성상 실제로 라스푸틴이 영적이거나 마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초인에 가까운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라스푸틴의 기이한 일대기는 영화로 수 차례 제작되었는데, 특히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다룬 영화나 영상물에서는 필수 요소로 등장하며, 라스푸틴 역 뿐만 아니라 니콜라이 2세 등 라스푸틴과 관련된 인물은 의외로 쟁쟁한 배우들이 연기한다.
실제 행적만 봐도 선역으로 그려질 수가 없는 인물이기는 하나, 특히나 러시아의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35] 관련 창작물에서는 백이면 백 악역으로 등장한다. 황실을 부정적으로, 혁명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작품에서는 당연히 천하의 악당이고, 반대로 혁명을 부정적으로, 황실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작품에서도 '황실이 실책을 일삼았던 건 사악한 라스푸틴이 선량한 황실 사람들을 속이고 농락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대머리 남캐같이 미형으로는 잘 안 나온다.
- 공작왕: 소련에서 온 괴승이자 육도 중 '스크레츠 그레고리'의 정체. 실은 군다리명왕의 화신으로 올가와 올젠 남매를 이용하여 공작왕 부활과 암흑 대일여래의 강림을 획책하는 악당. 우라고야의 풍신 란, 오니마루의 스승과 동기들을 눈 앞에서 학살한 원수이기도 하다.해봉이 놈은 정체가 그리고리 라스푸틴이라고 하자(이 말할 때 실사 사진이 배경으로 나온다.) 오니마루도 기겁하면서 "말도 안 돼! 그 놈은 미워하는 자에 의해 독을 먹고 촛대에 머리가 으스러져 죽지 않았냐?"라고 외치는데 '역사적으로 그렇게 죽었다고 위장되었지...'라고 해봉이 답한다. 나중에 대암흑천의 힘을 각성한 오니마루와 싸우다 뱀의 신 쿤달리니의 차크라를 폭주시키는데…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난다. 사실은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만든 인조마신. 결국 폭주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끔살. 2000년 초반에는 보아 누드라며 해적판에서 이 그레고리가 나오던 이 장면을 낚시짤로 올리던 게 많았다.[36]
- 근육조선: 원 역사처럼 러시아의 요승. 황화론… 비슷하게 동양의 문물이 러시아 제정을 무너트릴 거라는 망언과 함께 서양의 문물을 조선에 밀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한제국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 부설 비용을 다 떠넘기려고 하였으나, 반대로 대한제국에서 타티야나[37]를 이탄과 혼약시키기로 결심하고 이탄을 러시아로 보낸다. 그 후, 이탄 전용으로 러시아에 마련된 입신체비장에서 시녀를 겁탈하려다가 이탄에게 걸려 근육당해 백 브레이커로 척추가 두조각으로 부러지고 사흘 뒤에 사망했다. 다만 이탄은 죽일 생각까진 없었는데 아직 힘조절이 미숙한 탓에 라스푸틴의 척추가 부러졌던 것.
- 니콜라스와 알렉산드라(Nicholas And Alexandra, 1971): 닥터후의 4대 닥터로 유명한 톰 베이커가 열연했다.
- 닥터후: 사실 마스터였던 걸로 밝혀진다.
- 데빌 서머너 쿠즈노하 라이도우 대 초력병단: ATLUS의 게임. 다크 서머너로서 등장한다. 러시아 출신이라 그런지 체르노보그 같은 슬라브 계통의 악마나 마트료시카를 소환해서 전투를 벌인다. 후속작 데빌 서머너 쿠즈노하 라이도우 대 아바돈왕에도 등장.
- 더 게이머: 구존의 하나로 등장한다.
- 동방의 라스푸틴: 주인공이 황태자 주치의 자리를 선점한 덕분에 황실에 얼씬도 못하다가 전간기에 독일로 탈출해 히틀러, 스탈린과 한편이 된다.
-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는 주인공이 니콜라이 2세의 친구라 니콜라이 2세에게 미리 비타민 K의 존재를 알려줘서 아예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고 라스푸틴의 라이벌 표트르 바드마예프를 이용하여 몰래 처리한다. 물론 니콜라이 2세와 황후의 무능함으로 결국 역사대로 러시아 제국이 망하고 소련이 들어서며 주인공은 라스푸틴이 아니라 차르 그 자체가 문제라고 깐다.
- 드리프터즈 - 라스푸틴: 장발의 미형 남성으로 등장. 다른 매체에서 중년 남성으로 묘사된 것과 대조적이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라스푸틴(Rasputin: Dark Servant of Destiny, 1996): 미국의 텔레비전 영화. 라스푸틴의 일대기를 다뤘으며, 대다수의 다른 창작물과 달리 객관적인 시각으로 라스푸틴을 묘사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로 유명한 알란 릭맨이 라스푸틴 역을 열연했고, 니콜라이 2세는 이안 맥켈런 경이 담당했다. 영상
- 라스푸틴과 황후(Rasputin and the Empress, 1932): 각주에서 선술했듯이 MGM이 만들었다. 기사
- 라임색 전기담: 최종 보스로 나온다.
- 레드얼럿 2: 유리의 모티브 중 하나에 이 사람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38] 일단 외모상으로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닮았고 실제로 캠페인 중에 나온 스탈린과 유리가 함께 있는 사진은 원래 스탈린이 레닌과 트로츠키가 함께 찍은 사진에 트로츠키 대신 자신을 합성한 사진을 조작한 거지만, 괴상한 초능력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이 사람을 따왔을지도.
- 마블 코믹스 - 콜로서스와 매직: 둘의 본명은 각각 표트르 라스푸틴과 일리야나 라스푸틴으로, 설정상 이 남매의 증조부가 바로 그리고리 라스푸틴이다.
- 명탐정 코난: 세기말의 마술사: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 범인인 '스콜피온'이 라스푸틴의 후예로 나오며, 러시아 황실의 보물은 명백히 라스푸틴의 것이 되었어야 한다는 망상 때문에 연쇄살인과 강도질을 하고 다닌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쏘는 이유는 라스푸틴이 총격을 당한 후, 오른쪽 눈이 없는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
- 미친 수도사 라스푸틴(Rasputin: The Mad Monk, 1966): 명배우인 크리스토퍼 리가 열연했다.
-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봉인된 라스푸틴의 왼고환이 나온다. 독일군들이 그걸 잘못 건드려서 봉인이 풀려버려 촉수로 날뛰는데, 옆에 있던 홍범도 장군이 그걸 옆에 있던 김일성의 머리에 "탈라샤가 되어라!!"라고 외치며 박아서 봉인시킨다. 이때 항의하는 김일성에게 "이제 베개 없이도 편하게 잘 수 있잖냐"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건 덤. 그런데 김일성이 이때부터 헛구역질을 하고 배가 불러오더니, 죽으면서 김정일에게 "사실 나는 너의 아바이가 아닌 오마이다."라는 충격 고백은 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 263회에서 라스푸틴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 1039회(2022년 11월 13일자)에서 다뤄졌다.
- 아나스타샤: 20세기 폭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찌질하고 사악한 흑마술사로 등장한다. 자신을 저버린 러시아 제국 황실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멀어서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바쳐가면서까지 니콜라이 2세와 그 처자식들에게 저주를 걸어 모두 죽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름 아닌 러시아 혁명. 위의 편지 일화 등을 반영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묘사 덕분에 작품이 정치적인 이유로 까이기도 한다. 일단 러시아 혁명 자체가 니콜라이 2세와 러시아 제국 황실의 무능함 때문에 생긴 일이었는데 그걸 악마의 저주로 인해 생긴 일로 묘사했기 때문. 도망치는 러시아의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과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태후를 죽이려다가 실제 최후처럼 얼음물에 빠져 가라앉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물론 이후에도 얼음물 밑에 거주지까지 마련하고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단, 몸은 정상이 아니라 사지가 걸핏하면 떨어져 나간다. 이는 그가 악마와의 계약으로 불사를 손에 넣어서로 묘사된다. 이후 러시아의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잡으려고 얼음물 밑에서 마법으로 온갖 술수를 쓰지만 다 실패, 결국 자기가 직접 나섰다가 아나스타시야 공주에게 악마와의 계약 매개체가 박살나 뼈다귀만 남은 채로 소멸한다. 꽤 악랄하고 집요하여 극중에서도 몰입감 있는 복수귀이자 악역이지만 중간중간 찌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 최고의 노래로 손꼽히는 <In the dark of the night>이 라스푸틴의 곡. 성우는 다름 아닌 백 투 더 퓨쳐의 에밋 브라운 박사로 열연한 크리스토퍼 로이드이다. - 아이언 하베스트 1920+, 사이쓰: 게임 속 메인 악역이자 흑막(?)으로 등장. 펜리스라는 비밀결사를 이끌고 니콜라 테슬라의 기술을 빼앗아 세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원역사랑 다르게 공산주의혁명을 이끄는 기행을 한다.
- 어쌔신 크리드 2: 템플 기사단 소속으로 게임 내 정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등장. 니콜라이 2세의 에덴의 조각을 퉁구스카로 가져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결국 암살단에게 1916년에 한 번, 1917년에 시체를 파내 에덴의 조각을 빼앗기고 시체가 불태워져 사실상 2번 암살당했다.
- 오르페우스의 창: 이케다 리요코가 그린 순정만화에서도 등장한다. 재현에 세세하게 신경쓰는 이케다 리요코답게, 그의 행적이나 죽음에 대해서도 굉장히 사실에 가깝게 재현해 놓았다.
- 올드 라스푸틴: 미국에서 라스푸틴의 이름을 딴 흑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맥주치곤 도수가 높은 9도 가량이다.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 계열[39]로 분류되며 단순히 도수만 높은 게 아니라 평론가나 맥덕사이에서 평이 좋은 맥주. 진하고 묵직한 맛이 나는데 일반적인 라거나 에일에 비해 그렇고 임페리얼 스타우트 계열에선 그렇게 센 편은 아니다. 또 커피 향 등이 난다는 게 특징이다. 일반적인 라거와 비슷한 맥주 맛을 생각했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이런 계열이 항상 그렇듯 여러 맥주 맛에 익숙하지 않다면 꺼려질 수도. 2023년에 CU를 통해 편의점에 캔 맥주로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보통 4캔에 만 원인 수입 맥주들을 다 뒤집어버리고 2캔에 12,000원이라는 초고가로 가격이 책정됐으며 캔 용량이 500ml가 채 안되는 473ml[40]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매니아층에게는 입소문이 비교적 좋은 편.
- 우국의 라스푸틴: 당시 일본의 외교관 사토 마사루가 겪었던 실화에 대한 자서전. 2010년 이토 준지가 만화화했다. 거기서도 라스푸틴이 등장한다.
- 월드 히어로즈 - 라스푸틴: ADK의 격투게임에도 수상쩍은 아저씨로 등장한다. 그리고 탑블레이드에서는 왠지 인위적으로 성수를 만들어낸 과거의 절대강자 기믹이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종말의 발키리: 인류 최강자인 에인헤랴르중 1인이 되어 등장이 확정됐다.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팟빵의 방송에서 4명의 진행자 중 '깡쌤(깡선생)'이 '러시아 혁명과 라스푸틴'을 119회 방송주제로 삼았다. 마침 정치적인 상황과 사회 분위기가 적절하게 겹쳐 많은 구독자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 춘풍의 스녜그로치카: 사무라 히로아키의 만화. 유수포프의 아내 이리나와 간통하여 사생아를 낳은 것으로 나온다.
- 코르토 말테제 - 라스푸틴: 이탈리아의 만화. 이 작품에도 이 인물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라스푸틴이 등장한다. 다만 이쪽은 이름만 같은 별개의 인물.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쿠키런 어드벤처 - 35권~37권의 빌런으로 등장한다.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대가로 표토르 대제 청동상 아래 돌덩어리에 깔린 채 백 년 넘게 봉인되어 있었으나 빛의 세력의 우두머리인 천년나무의 간섭을 피하고 어둠의 시대를 열기 위해 석류 무녀가 그를 봉인에서 깨운다. 허브로 변장한 그는 석류 무녀의 도움을 받아 브브 일행을 이간질하여 모두 마계에 가두는 데 성공하지만, 얼마 안 가 자신의 변장을 눈치 채고 있던 브브와 그를 도와준 천년나무의 힘에 의해 전원 놓치게 된다. 브브 일행이 10년 후의 미래로 보내진 사이 석류 무녀와 함께 어둠의 시대를 열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데, 석류 무녀가 천년나무와의 전투로 입은 부상에서 오랜 시간 회복되지 않자 자신이 실세가 되어 공작 행세를 하게 된다. 시간 마법진으로 이동하다가 운이 나쁘게 자신의 집 앞으로 떨어진 버블을 하인으로 만들어 약 1년 동안 굴욕을 주며, 세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이용하여 석류 무녀를 암살하려 한다. 석류 무녀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착각한 그는 버블마저 죽이려고 하는데, 그의 속셈을 미리 알아챘던 석류 무녀의 함정에 역으로 당하면서 저승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떨어지게 된다.
-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 그리고리 라스푸틴(킹스맨 시리즈): 담당 배우는 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의 루나 러브굿의 아버지 제노필리우스 러브굿,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의 리저드로 유명한 리스 이판. 영상에서는 Boney M.의 Rasputin을 배경음악으로 썼고, 59초부터 담당 배우의 춤에 가까운 회전 액션 연기가 일품이기도 하다. 영상
- 탑블레이드: 블랙드랜져의 제작자로도 나온다. 물론 작중 시점에선 고인이다.
- 팀 포트리스 2: 헤비 웨폰 가이의 도전과제 이름으로 인용됐다. 그 내용은 한 목숨에서 데미지 1000을 입고 살아남는 것.
- 페이데이 2: 일부 맵에서 라스푸틴의 그림이 등장한다.
- 헬보이 - 그리고리 라스푸틴(헬보이)
- BLOOD+: 익수, 그것도 디바의 슈발리에 중 하나였다. 소냐란 소녀를 죽이고 그녀로 위장해 사야에게 접근했다가 죽는다.
- DayZ: 생존 서바이벌 게임. Rasputin Kvass라는 술이 등장한다. 게임 내 성능은 일반 음료수와 같다. 링크
- Fate/Grand Order: 본인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 코토미네 키레이에게 빙의한 상태로 출연한다. 자세한 행적은 해당 문서 참고.
- Rasputin: 독일의 디스코 밴드 Boney M.이 1978년 라스푸틴에 대한 곡을 써서 히트를 치기도 했다. 21세기에도 라디오에서 자주 틀어주기도 하며 예능 프로에서 1980년대 분위기가 나는 장면에서도 자주 나오는 곡. 유튜브 등 인터넷에서는 주로 기행으로 유명한 러시아 관련 밈 영상에 BGM으로 들어간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Warhammer/등장인물인 코스탈틴의 모티브를 제공했다. 죽을 정도의 상처를 받고도 살아있는 점과 러시아 문화권, 결정적으로 유사한 외모 등이 그와 비슷하다. 단 황실과 친했던 라스푸틴과 달리 황실과 매우 적대적이며 향락주의자인 라스푸틴과 달리 코스탈틴은 독선적인 광신도다. 그래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치하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전례 개혁을 추진했던 모스크바 총대주교 니콘이 모티브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 SCP 재단: 라스푸틴 본인이 주제인 SCP-4680으로 등장. 알고보니 신체 재생 능력이 있는 불사였단 설정. 암살 사건 당시 입었던 총상을 비롯한 외상들을 재생 능력을 이용해 죽은 것처럼 위장했고, 본인은 크라스노야르스크 인근의 작은 농장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그 뒤 2016년까지 숨어 살다가 재단에 발각되어 구금된다. 난행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위기에 놓이자 허먼 풀러의 불온한 서커스에서 불멸성을 가진 사람을 탈출시켜 주고 그 대가로 불멸성을 얻었다. 암살 음모에서 살아남은 후 종적을 감추고 살아가다가 동면을 취했는데, 잠든 사이에 성기를 도둑 맞았다. 이후 자신의 성기를 훔쳐내려 시도하다가 검거된 후 재단에 격리된다.
[1] 관련 가계도. 1906년부터 라스푸틴노비흐(Распу́тин-Но́вых)라는 성씨를 사용하였다. '노비흐'(Новых)는 러시아어 형용사 '노비'(новый)의 복수 생격형 표현이다.[2] 율리우스력 1월 9일.[3] 율리우스력 12월 17일[4] 다섯 명의 형제가 있었지만 모두 어릴 때 죽고 그리고리 라스푸틴 혼자 외동으로 자랐다.[5] 마리야로 개명.[6] 각주에서 선술했듯이 마리야로 개명했다. 라스푸틴 사후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갔다가 1935년 미국으로 이주해 서커스단의 호랑이 조련사로 살았다. #[7] 아토스 산이나 예루살렘, 카파도키아는 모두 그리스도교, 특히 정교회에서는 성지 혹은 유서 깊은 장소이다.[8] 실제로 거세파(스콥치)가 있었고 난교와 채찍질이 루머로 알려진 흘리스트와 달리 스콥치는 정말로 거세를 했으며 증거 사진도 남아 있다.[9] 몬테네그로 왕국의 초대 국왕 니콜라 1세의 딸들.[10] Smith, Douglas (2016). Rasputin: Faith, Power, and the Twilight of the Romanovs. Farrar, Straus and Giroux.[11] 황태자의 혈우병은 황후의 외할머니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유전된 것이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유럽의 할머니라 불릴 정도로 많은 자손을 두었고, 딸들과 손녀들은 또 유럽의 여러 나라로 시집을 가서 아이들을 낳았다.(자세한 것은 빅토리아 여왕/가족 관계 문서 참조) 그래서 알렉세이 황태자 외에도 여러 나라 왕실의 여러 후손이 혈우병 유전자를 물려받아 고생해야 했다.[12] 주치의들은 소생불가 진단을 내렸고, 이미 황태자의 서거를 알리는 포고문도 작성된 상태였다.[13] 위에 적힌 글은 현대 러시아어로 '러시아 황실 집안(Российский царствовавший дом)'이다.[14] 1909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직전 이토를 영접했던 사람 맞다. 저격 사건 당시 코콥초프는 러시아 재무대신이었다.[15] 실제로 공주들의 가정교사가 라스푸틴에게 성추행을 당한 걸 고발하자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이 하는 일은 모두 성스러운 것"이라며 오히려 가정교사를 해고하는 작태를 보였다. 황실의 시녀나 가정교사쯤 되면 본인도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는 귀족인 게 보통인데, 신분제가 있던 시절에 일개 평민 출신 종교인이 그런 사람을 추행한다는 것은 당연히 엄벌에 처해도 모자랄 일이다. 그런데도 황후는 오히려 라스푸틴을 두둔한 것.[16] 당시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황실 일원들과 러시아 사교계는 알렉산드라 황후를 그리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었기에 황제 부부의 대외적 인간 관계는 최악이었다. 결국 라스푸틴의 일로 인해 황후의 이미지는 걷잡을 없을 정도로 추락했고 아예 독일 스파이라는 시선까지 받게 되었다. 라스푸틴을 황실로 입성시켜 국정에까지 끌어들여서 나라를 망치는 알렉산드라 황후에 대한 평판이 어찌나 최악이었던지, 처형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시신을 묻던 볼셰비키가 알렉산드라 황후를 '독일 썅년'이라는 멸칭으로 불렀을 정도다.[17] 출처: Massie, Robert K. (1967). Nicholas and Alexandra. New York: Dell Publishing Co. ISBN 0-440-16358-7 pp. 199–200.[18] 출처: Robert K. Massie, The Romanovs: The Final Chapter p. 8[19] 유전성 혈우병의 경우 혈우병 유전 인자를 가진 X염색체 두 개를 모두 가진 여아는 대부분이 사산된다. 거기다 니콜라이 2세가 혈우병 환자가 아닌데다 혈우병 유전자는 열성이기 때문에 황녀 넷은 모두 혈우병 환자가 아니다.[20] Mager, Hugo. Elizabeth: Grand Duchess of Russia, Carroll and Graf Publishers, Inc., 1998[21] 자신들이 황제 일가를 죽이기 전에 황녀들을 강간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징징댄 것이다. 이들은 시신을 묻을 트럭을 징발한 표트르 예르마코프가 모은 사람들이었는데, 질이 안 좋은 죄수들이었다니 놀라울 것도 없을 듯. 자세한 것은 Wendy Slater의《The Many Deaths of Tsar Nicholas》 2 참고.[22] 다만 한국에서는 왠지 모르겠지만 "공주들이 라스푸틴을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 이런 추측이 도는 이유는 덕혜옹주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비극적인 삶과 낭만적인 이야기가 맞물리고, 거기다 올가 황녀가 라스푸틴을 멀리하라고 간언한 니콜라이 2세의 막내 여동생인 러시아의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과 이름이 같은 데다가 총명한 제 1황녀로서 알렉세이 황태자를 제치고 황위계승자 이야기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라스푸틴을 싫어했다는 추측이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23] 사실 이건 라스푸틴의 상황도 근거가 될 수 있다. 라스푸틴이 실세가 된 건 알렉산드라 황후의 뒷배가 작용했는데 알렉산드라 황후는 독일계고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하는 거니 전쟁이 일어나면 황후에 대한 인심도 안 좋아지고 그건 자기에게 좋을 리가 없다. 거기다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원인은 사라예보 사건이라서 2차 세계대전과 다르게 동맹국 측인 독일과 사건의 피해자인 오스트리아에게 명분이 더 기울어 있어서 똑같은 군주국인 영국은 물론 공화국인 프랑스조차 세르비아가 잘못했다고 일관했다.[24] '산드로'라는 애칭이 있다.[25] 유수포프 본인은 라스푸틴에게 안수 치료를 받은 경험을 서술하는데 내용이 딱 BDSM이다.[26] 다만 그 배후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른 러시아 황족들부터 심지어 영국이 사주했단 주장까지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부족하다.[27] 라스푸틴은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 보니 위산 과다가 생겨서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러시아 근현대편 77페이지에서 라스푸틴은 1914년에 겪은 암살 미수 이후로 단 음식과 술을 먹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유수포프 일당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하여 케이크 외 다른 음식과 술에도 모두 독을 준비했다.[28] 당시 부검 기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라스푸틴의 위 속에는 독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없었다고 한다. 변질된 청산가리를 써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청산가리는 완전히 밀봉하지 않고 장기간 보관하면 공기 중의 산소와 서서히 반응하여 탄산 칼륨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살해 실패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없었던 공작 일당이 필요한 독의 양을 잘못 산정했다는 설도 있지만 일당 중에는 의사도 있었다. 아무리 19세기 말 의학이 지금에 비하면 떨어지는 수준이라고 해도 명색이 의사인데 독극물인 청산가리의 치사량을 모를 리가 없다. 청산가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독으로 사용되었기에 당시 의사들도 그 독성을 잘 알고 있었다.[29] 펠릭스 유수포프는 혁명 이후 소련 정부에서 고위직을 제안했으나 거절한 적이 있다.[30] 1932년 MGM에서 <라스푸틴과 황후(Rasputin and the Empress)>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나타샤'라는 캐릭터가 라스푸틴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 '나타샤'라는 캐릭터는 MGM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이리나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심원단은 영화를 2번 검토한 이후 원고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데 동의했다. 이리나와 남편 펠릭스 유수포프는 항소 법원에서 손해 배상금 12만 7373달러를 받았다. 이후 더 이상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 영화는 수십 년 동안 배급이 중단되었다. 소송사건 이후 다른 영화 제작사들은 비슷한 법정 소송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픽션 면책 조항을 넣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난 이후 영화 뿐만 아니라 게임, 애니, 소설, 만화 등의 매체에서도 픽션 면책 조항이 도입되기 시작했다.[31] 아버지와 이복동생은 이후 공산 혁명으로 살해당했지만 본인은 라스푸틴을 죽인 덕분에 살아남았다. 물론 혁명으로 인해 고국에서 쫓겨나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평생을 외국을 전전하다 죽었기는 하다.[32] 이 때 황태자 알렉세이는 부상으로 인한 내부 혈종과 합병증으로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33] 물론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있으며 실제 크기는 20cm 중반대라고 추정된다. 이것만 해도 놀라 기절할 만한 거근인 건 사실이지만.[34]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복음경증(diphallia)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음경이 2개 이상 달린 경우이다. 정상적인 성기가 2개 달린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혐짤로 분류될 만큼 이상하다. 정 궁금하다면 구글에 영명을 쳐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라스푸틴의 성기가 컸다는 소문은 많아도 성기가 2개였다는 소문은 없으므로 이럴 가능성은 없다. 정말 성기가 2개였다면 단순히 성기가 컸다는 것보다 훨씬 기괴한 일이기 때문에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35] 러시아식 발음이나 당시의 작위를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부르는 게 맞지만, 해당 매체들이 한국어로 번역될 때는 보통 '아나스타샤 공주', '아나스타샤 황녀' 등으로 지칭된다.[36] 해적판에선 보아라고 나오지만 정발판에선 원어판 번역 그대로 "나는 뱀의 신 쿤달리니!"라고 한다.[37] 당대 최고의 미인이며 키도 굉장히 크다.[38] 실제로 컨셉 아트 중 라스푸틴의 모습을 한 유리가 존재했다. 아마 기획 당시엔 라스푸틴과 동일 인물로 설정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게 정설이라면 확장팩 유리의 복수도 사실 러시아 제국을 몰락시킨 소련 공산당에 대한 반공주의 수도승 라스푸틴의 복수라는 의미도 된다.[39] 맥주 분류법의 일종으로 러시아 제국에 맥주를 수출하기 위해 얼어붙지 않게 하려고 도수를 높이는 등의 조치를 취한 맥주를 분류하는 용어이다. 그냥 '임페리얼 스타우트'라고 하기도 한다.[40] 16US fl.oz에 해당하는 부피로 스타벅스의 그란데 사이즈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