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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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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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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
민주화운동 진보편향 명칭설 · TV조선의 왜곡 · 채널A의 왜곡 · 지만원의 날조 · 5.18 연고대생 북한간첩설 · 무장폭동설 · 북한개입설 · 유공자 관련 왜곡 · 그날의 광주 모욕 사건

1. 개요2. 주요 왜곡설3. 유포되는 이유
3.1. 군부에 의한 언론 통제와 왜곡3.2. 특정 정치 세력의 정치적 목적3.3. 김대중, 광주, 더 넓게는 민주당계 정당, 전라도 비하를 위한 수단3.4. 극우들의 입장
3.4.1. 기성 강경 우파 ~ 극우의 경우3.4.2. 신흥 극우의 경우
4. 결론5. 왜곡이 사회에 미친 영향6. 관련 법정공방
6.1. 2012년의 지만원의 무죄판결 논란
6.1.1. 지만원은 왜 무죄가 되었나?6.1.2. 법원 판결문 요약
6.1.2.1. 지만원의 김대중 명예훼손 재판
7. 5.18 기념재단과 광주광역시의 법률조치 선언8. 폭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점9. 북한 선전기관의 왜곡10. 관련 어록

1. 개요

5ㆍ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1조의2(정의)
① 이 법에서“5ㆍ18민주화운동”이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② 이 법에서“반인도적 범죄”란 제1항에 따른 기간 동안 국가 또는 단체ㆍ기관(이에 속한 사람을 포함한다)의 민간인에 대한 살해, 상해, 감금, 고문, 강간, 강제추행, 폭행을 말한다.
제8조(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신문, 잡지, 방송, 그 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의 이용
2.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ㆍ게시 또는 상영
3. 그 밖에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등에서의 발언
② 제1항의 행위가 예술ㆍ학문, 연구ㆍ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age(1980-05-1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극우 세력에 의해 지속적인 날조와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삼권분립을 구성하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객관적 근거를 들어 인정한 민주화운동으로, 그 기록물은 2011년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고, 무장폭동설에 대해서는 시민군이 일으킨 폭동이 아니라 오히려 신군부폭동적 시위진압이었음이 확인되었으며,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는 2013년 박근혜 정부국방부도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였기에 역사적, 사회적 평가가 완벽히 끝난 사건이다. 2024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소설가 한강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그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으로 밝혔기에, 이제는 노벨상으로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2010년대 들어서는 전두환, 지만원, 극우정당, 일부 친박 등 현실 세계의 기성 극우를 넘어 디시인사이드, 일베저장소, 우파 유튜버 등 인터넷 세계의 신흥 극우에 의해서도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 전라도 폭도들이 일으킨 무장폭동으로 비하하는 주장이 유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간인 고문 사건운동권 관련 사건사고에 대한 비판 여론을 악용하여 민주화 시위 자체를 폄하하고, 보수정당의 불모지인 호남 지방을 '빨갱이 폭도들의 지역'으로 매도하여 자신들의 극단적인 혐오 정서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라질 줄 모르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으로 인해 2020년 12월 9일 5.18 왜곡처벌법제21대 국회에서 통과되어 5.18 민주화운동에 관련해 허위 사실을 근거로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행위는 최대 징역 5년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로 간주되었다. 이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스라엘에서 홀로코스트 부정을 범죄로 취급하고 르완다에서 르완다 내전 중 있었던 투치족 학살을 부정하는 것을 불법화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과거 5.18 민주화운동은 제5공화국 시기에는 집권 신군부에 의해 '불순분자 또는 김대중의 사주로 인해 발생한 폭동'으로 왜곡된 탓에 '광주사태'로 에둘러 표현되었으나, 1987년 6월 항쟁6.29 선언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진상규명과 재평가 및 명예회복이 시작되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노태우는 선거 다음날 '화합을 위한 구체적 조치로 새 정부에 민주화합 추진본부를 대통령 직속으로 곧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이 약속은 실제로 지켜져 1988년 1월 11일 민주화합추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동년 2월 13일 민주화합추진위원회는 5.18을 '광주 학생, 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투쟁의 일환'으로 평가내렸으며 노태우도 이를 인정하였다. 제13대 국회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조사에 착수하였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5.13 담화를 발표해 "19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 정부입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5.18에 대한 재평가를 천명하였다. 이후 1995년 11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 특별법에 근거해 12.12 군사반란5.17 내란,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의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고, 검찰의 수사에 의해 '신군부 인사의 쿠데타를 통한 집권 의도와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1997년 대법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신군부국헌문란행위에 항의하는 광주시민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것'으로 정의하며 공식적으로 재평가하였고, 전두환 등 신군부 인사들은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되어 중형을 선고받았다.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에는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주관하는 국가기념일로도 지정되었으며, 희생자들을 5.18 망월묘역에서 이장한 국립 5.18 민주묘지가 조성되었다.

그러므로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무장폭동설, 북한 개입설 등은 대한민국에서 삼권분립의 축들인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확인하고 민주화 운동인 것으로 일치하여 내린 결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발언이며, 이는 현행 법률에 따라 허위사실유포로 처벌될 수 있는 범죄 행위이기도 하다.

나무위키에서도 편집지침에 따라 민간인 학살 행위를 저지른 세력을 옹호하는 서술을 엄금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왜곡에 대한 반박의 형태로만 서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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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요 왜곡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은 크게 '북한개입설'과 '무장폭동설', '유공자 관련 왜곡' 세 가지로 나뉘며 최근에는 QAnon 성향의 음모론까지 가세하였다. 또한, 이러한 주장들이 계속되며 급기야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보도되기도 하였다.

2.1. 북한개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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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무장폭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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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딥스테이트,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개입설

#, #, #, 평화나무의 기사[1]
QAnon 계열의 음모론자들이 국내에도 유입되면서 기존 음모론을 빨아 먹는 QAnon답게 QAnon의 필수 요소인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이 5.18 민주화운동에 개입했으며, 북한개입설과 무장폭동설 주장의 허점이 이들이 개입했다면 충분히 해결된다는 왜곡이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이들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 딥스테이트,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참조.

2.4. 유공자 관련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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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광주항쟁 성역화 및 왜곡처벌법 관련 논란


윤서인을 비롯한 일부 극우들은 광주 사태는 성역화가 되고 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을 탄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 우경화 된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도 이러한 주장들이 등장하곤 한다. #1[2]#2#3[3]

이들은 5.18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폭동설 등의 왜곡 주장을 끼워 넣고, 그에 따라 실질적인 피해자와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이것은 사학 측면보다는 원래 그러한 주장을 했던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들며 성역화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윤서인은 항쟁이 폭동의 성격을 띠었다는 건 사실이라고 근거 없는 왜곡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또한 현재 잔존해있는 왜곡 주장은 대부분 5.18의 역사왜곡에서 기인한 것들이 많은데, 이러한 역사 왜곡이 반박되고 받아 들여지지 않자, 역으로 개별 유공자에 대한 의혹 제기를 하는 식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므로 실질적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장들이 심지어는 국회 공청회교육의 장까지 올라올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이를 규제할 수단이 전무한 상황이다. 가령 5.18 피해자들이 법적으로는 '집단'으로서 간주되었기 때문에 2012년 지만원 무죄 판결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었거나 하는 식이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명시함과 동시에, 21조 제4항에서 언론·출판을 통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헌법 제37조 제2항을 통해 규율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선까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법적인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성역화가 아닌, 과도한 왜곡 주장이 국회 공론장에까지 등장하게 된 상황에서 선택한 차악이자, 왜곡 세력의 자승자박이라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의 법률이 사적인 대화가 아닌 '언론/출판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사학계의 우려와 달리 학문·예술의 자유와 보도의 자유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완충제로서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했다는 점 또한 제기된다. #

2020년 10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이 소위 '5.18 역사왜곡처벌법'[4]과 '5.18 진상규명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법제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위의 왜곡으로서의 수단이 아닌, 다른 의미의 성역화 비판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역사에 대해 잘못된 주장, 선동을 한다면 그걸 반박을 통해서 해결해야지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며 역사적 논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다. 사학과 교수들의 비판 진중권의 비판

해당 비판은 위 극우 세력의 주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을 우려하거나 이미 명백한 사실이기에 굳이 법으로 제정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임경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유럽처럼 법으로 금지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요소가 있으므로 법의 대상과 목적, 명칭, 내용을 좁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진중권은 '반 자유주의적 입법'이라면서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죄를 없애려면 반대편 편향도 허용해야 논리에 옳다고 말했다.

3. 유포되는 이유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적 차원에서 면밀한 조사와 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좌우를 불문한 대다수의 제도권 정치 세력은 그 결과, 즉 민주화 운동으로서의 5.18을 수용하고 있다.[5] 5.18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5.18에 대한 왜곡을 멈춰야 할 당위성을 부여함에도 불구하고 5.18의 왜곡을 멈추게 하는 동인이 되지는 못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을 벌이는 주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소위 기성 혹은 뉴라이트 등으로 대표 되는 극우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신흥 극우라고 할 수 있는 과거 일간베스트 저장소, 현재 디시인사이드 계열 인터넷 커뮤니티와 네이버 뉴스/댓글이다. 이러한 주체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왜곡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문헌과 자료들을 통해서 대략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3.1. 군부에 의한 언론 통제와 왜곡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정당한 저항권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압 후 철저한 언론 통제가 이루어졌다.
(기사 1) 5.18직후 언론통제 보여주는 자료 발견
(기사 2) 35년 전 난도질 당한 신문... '빨간펜'을 이겨낸 진실

이러한 언론 환경에서 5.18은 집권 세력에 의해 폭동으로 왜곡되었으며, 5.18과 관련한 정보는 신군부 정권에 의해 통제되었다. 이후 민주화 된 정권에서 5.18이 객관적인 증거의 검증을 통해 규명되기 이전까지 상당한 기간 이러한 언론 통제는 대중에게 5.18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유통되지 못하게 하였다. 5.18 발생 초기에 언론 등을 통해 왜곡된 악성 루머가 전파되었고 이는 상술한 언론통제와 함께 5.18 폭동설이나 북괴설이 생명력을 갖는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국내 언론통제를 넘어 해외를 대상으로 한 왜곡 작업도 있었다. 1980년 당시 신군부의 지시로 국립영화제작소가 해외 동포와 외국인들을 겨냥해 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광주의 반란”…신군부는 5.18을 어떻게 왜곡했나

2017년 5월 17일 한겨레에서 폭로한 뉴스에 따르면, 전두환은 보안사를 동원해 군부 정권에 불리한 사실들을 왜곡, 조작했다.#

2020년 경향신문 단독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기 위해 정부가 비밀리에 조직한 ‘80위원회’에 직접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당시 청와대 문건이 처음 확인됐다."고 기사가 나왔다.#

3.2. 특정 정치 세력의 정치적 목적

파일:자유당518왜곡1.webp
자유당(현 자유민주당)의 5.18 민주화운동 왜곡 현수막. 자유당은 강경 극우정당이다.
5.18 폭동설 및 북괴설 등의 악성 루머들이 정치권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로 5.18 학살의 피의자들이 광주 시민의 태도를 변명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광주에 퍼진 악성 유언비어나 광주 시민의 고조된 폭력과 이로 인한 긴장 상황이 고조되면서 계엄군의 과잉 진압을 불렀다고 말하며[6] 심지어 김대중의 부추김이 컸다는 변론까지 있었다.[7] 물론 이런 변명이 사실이라고 한들 12.12 군사반란의 정당성은 제로에 가깝고, 자기방어, 자기보호의 성격이 강한 변명에 불과하다. 가해자들에게 인권 침해의 시인은 사회적 지위, 업적, 재산, 가족, 인간관계 등 자신이 평생 쌓아 올린 성과들과 세계관에 대한 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8]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국가와 현 체제 및 정권의 안정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보수시민들의 입장에선 이러한 가해자들의 변명이 충분히 납득 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체제 및 정권의 안정은 보수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예를 들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에서 보수 시민들도 노무현 탄핵을 반대하기 위해 들고 일어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친이들이 박근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념적 근거다. 이런 논리로 인해 당시 국가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강경진압을 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로, 극우세력이 진보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5.18과 관련한 악의적 주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광주특위의 활동,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5.18 유공자법 등의 제정 등을 통해 5.18에 관한 도덕적 명분을 정치적 자산으로 확보한 진보 세력에 비해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우파세력은 5.18의 학살을 방조하거나 묵인했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극우 세력은 5.18의 역사적 인정으로 입게 된 도덕적 타격을 만회하기 위한 목적으로 루머들을 유포하고 확대시켰다. 문민정부부터 재평가가 이루어져 5.18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완성된 지금도 이렇게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된 의식이 남아 있다. 이에 더해 일부 극우 언론들이 5.18에 대한 재해석 및 수정주의를 빌미로 지속적으로 역사왜곡을 시도함으로서 5.18을 정치권에서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3.3. 김대중, 광주, 더 넓게는 민주당계 정당, 전라도 비하를 위한 수단

극우 세력이 왜곡과 더불어 전라도에 대한 비하를 같이 꺼내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9] 오프라인에서는 지만원이 가장 유명하고, 5.18과 관련된 기사 댓글창을 조금만 내려보면 이런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왜곡된 주장과 전라도 비하 드립까지 구사하는 것이 보통이고 김대중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폭동을 선동해서 5.18이 일어났다는 선동을 철석같이 믿는다.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 당시 김대중은 민주화운동의 지주이자 군사 정권에 눈엣가시로 찍혀 수감되어 있었다. 반공, 독재 숭배 프레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김대중의 민주화 항쟁에 대한 행적은 까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른 것을 트집잡는 것으로 방향성을 돌렸는데, 상술되었듯 북한 간첩이 배후에서 광주 시민들을 선동했다는 음모가 주를 이룬다.[10]

대한민국 정치 지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게 된 것도 원인이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점진적으로 전라도는 반보수 경향이 심화되었다.[11] 보수 세력이 전라도에서 몰락한 것은 단번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경제발전, 인사 기용에서 노골적으로 전라도는 비주류로 배척받았고, 이는 전라도의 인구 수 정체 (전북은 감소)로 이어졌다. 김대중은 이에 대한 움직임에 대해 전라도 사람들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인물론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그저 "김대중"을 비하하려는 것으로는 배경 지식 이해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민주화 이후 전라도에서 보수 정당이 그나마 많이 득표율을 올린 수준은 20% 정도였고 보통 10%도 올리지 못했다. 근래에 보수를 강타한 사건 이후로는 한때 보수 정당 지지율 0%라는 믿기지 않은 수치를 찍은 적도 있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서도 드러났다. 경상도(특히 부울경)에서 상승하는 민주당 득표율과 반등하기는커녕 하락하는 전라도의 보수 지지율을 들어 전라도의 정치 수준을 북한과 같은 수준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12] 물론 민주계의 지속적인 경상도 진출 도전 시도, 보수 세력의 전라도 무관심과 따돌림은 보지 않고 그저 표만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들에게 총칼을 들이밀고 수많은 가족과 지인들을 학살한 세력의 후신들을 쉽사리 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에 더해 끊임없이 5.18을 부정하는 망언들이 터져나오고 왜곡적 주장이 지속적으로 보수정당 내에서도 계속 나오는 실정이니 더더욱 보수정당을 지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전라도에서 활동한 보수 정당 내 정치인들도 일부 있었지만,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지역 내에서 비주류에 불과했다. 그 중 한 명인 이정현친박 성향을 내세우며 활동했기에 철저히 매장되었다. 그리고 그나마 성과를 거둔 정치인 중에서조차 광주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왜곡을 일삼는 경우는 없었다.

극우 세력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끄집어 내고, 심하면 조작까지도 해 전라도를 좌파 투성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가 없다는 근거없는 통계로[13] 그저 "만악의 근원"으로 치부한다. 이북 김씨 일가의 본관이 전라도라고, 경상도 출신 주요 민주당계 대통령도 본관이 전라도라고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고 하며[14], 김제동(경상북도 영천시 출신)처럼 말투에서 동남 방언이 짙은 유명인도 밉보이면 전라도라고 우기니 답이 없다.

그 밖에 다른 의견으로 김대중과 민주당계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심으로 인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북한개입설이 계속 나온다는 추측도 있다. 실제로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나 북한 첩자가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거의 100%는 김대중과 민주당계를 가리켜 "북한에 나라를 팔아넘기려 한 빨갱이 매국노들"이라면서 극렬히 증오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김대중이 대표하는 민주당계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정당화시키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어떻게 해서든 부정하고 깎아내릴 필요가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힘을 발휘하는 권위주의적 반공주의 정서를 이용하여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측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아무리 찾아내 보여줘도, 그들은 결코 납득하지 않으며 계속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여 김대중과 민주당계에 대한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정당성을 흔들려 들 것이다. 이는 애초에 광주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이 사실에 기초한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정치적 대립의 일환으로 벌어진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일로 진보 진영 쪽에서 박정희의 혈서와 만주군 복무 사실을 들어 그를 친일파라고 공격하자, 박정희의 지지자들 중 극성스러운 부류들이 "일제 강점기 때는 모든 조선인이 다 친일파였다. 그러니 너희들은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공격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아예 조선의 독립운동 자체를 부정하면서 반박하는 태도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자기가 숭배하는 정치인을 위해서 자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극우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적대 세력인 문재인 대통령과 그 뿌리인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및 민주당을 무너뜨리기 위한 결정적인 무기가 바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가리켜 계속 북한군이나 북한 첩자가 개입한 폭동이라고 왜곡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자기들은 손해보는 것이 없고, 어쩌다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주장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식의 파급효과가 있다면 그것이 곧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이어져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5.18로부터 [age(1980-05-18)]년이나 세월이 흘렀고, 5.18의 진실을 다룬 수많은 대중 예술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5공 청문회를 비롯하여 당시의 참혹한 현실이 이미 수십 번도 더 폭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개입했거나 국가 전복을 노린 공산 폭동이었다는 왜곡된 주장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반공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 예로 5.18 민주화 운동이 북한 간첩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발언을 하여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샀던 지만원의 경우도 그 개인에 대한 공격만 있었지, 그런 발언이 나왔던 사상적 토대인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었다.

사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억압한 계엄군의 학살도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기초한 짓이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에 그러한 수준의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5.18 학살은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 학계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많아도,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은 별로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람을 죽인 수나 피해를 끼친 정도로만 따지면 민족주의는 반공주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 한다. 심지어 한국사회에서는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가리켜 인간성을 말살하는 이데올로기라면서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거야말로 황당한 소리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제주도민 3만 명과 보도연맹회원 30만 명을 대량학살한 계기와 원동력을 제공한 반공주의야말로 더 욕을 먹어야 한다.[15]

다만, 북한의 민족주의에 의해서 한국이 피해를 입은 것만 따지면 민족주의가 훨씬 쎄긴 하다. 하지만 6.25 전쟁의 배경이나 원인은 북한의 공산주의 책동 때문이 아니라 민족주의라고 보는 의견은 1997년 IMF 구제 금융 사태 이후, 한국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거하여 탈민족주의 바람이 분 이후에야 대두된 소수 의견이며, 정작 북한의 위협에 지금보다 훨씬 시달렸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 때 북한의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의견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아울러 한국의 독재자 3인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중에서 박정희는 우파계에서 상당 부분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이승만은 뉴라이트 주도로 어느 정도 복권이 이루어졌으나, 전두환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일 때문에 보수 세력에서도 비토 여론이 강하며 복권이 안 되고 있는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선동을 받고 일어난 폭동이라고 비하하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전두환의 복권을 이루려는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전두환의 복권을 위해서는 전두환이 저지른 광주 민주화 운동의 탄압이 정당한 일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연히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고 왜곡해야 하기 때문이다.

3.4. 극우들의 입장

여기에서 극우 시민[16]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상기했듯이 첫째는 소위 기성 국민행동본부, 지만원,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대한민국 엄마 부대, 친박, 박사모, 태극기 집회극우세력 혹은 뉴라이트이고, 둘째는 신흥 극우라고 할 수 있는 일베저장소, 디시인사이드계 커뮤니티, 네이버 뉴스/댓글, 부동산스터디 등 정치 인터넷 커뮤니티, 가로세로연구소 등의 틀튜브로 불리는 우파 유튜버와 이를 무지성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기성 극우 세력이 논리와 음모론의 공급자고 신흥 극우 세력이 이를 소비하고 있다.

3.4.1. 기성 강경 우파 ~ 극우의 경우

간단히 말하자면 인정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군부 독재 정권 등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들은 사회 변화, 정권 교체와 과거 청산, 그리고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해서 반공주의, 성장주의, 국가주의, 근본주의라는 정체성이 해체되고 사회적 가치가 부정되는 ‘무시’를 경험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급변하는 시류에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기성 극우의 입장은 이념적이며 복잡하다. 이들은 8.15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의 보수정권 집권 기간에 반공주의, 성장주의, 국가주의, 근본주의라는 보수&수구적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허나 민주정부 수립 이후 보수적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에서 과거 청산을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 자신이 지지하는 지도자, 과거 정부의 ‘정당한’ 행위들이 부도덕하고, 반인권적인 것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처한다. 즉, 기존에 형성된 가치관이 더 이상 사회의 가치 부여 기준이 되지 못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피의자들과 달리 과거 청산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 직업, 재산, 가족, 인간관계 등에 있어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정체성, 사회적 가치가 부정되는 위협을 느끼게 되고, 과거 청산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정체성을 과 함께 이들의 가치공동체인 '성장을 위한 반공 공동체'를 복원하려고 했다. 이에 기성 극우 세력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과거청산을 부정하였고, 이를 통해서 수구적 정체성의 회복과 인정 형태의 복원, 집단적 자부심과 명예감이라는 실천적 자기관계의 형성을 도모하고자 했다.[17]

다만 뉴라이트의 경우엔 사뭇 다른데, 이들은 원래 70~80년대에 좌파 학생 운동권이었고[18]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1990년대에 들어서 극우로 전향을 한 신우파에 속한다. 이들이 극우로 전향해서 5.18 폭동설&북괴설을 받아들인 이유는 뉴라이트 항목에 보면 알겠지만, NL 운동권 시절에 들었던 못된 버릇들[19]이 전향을 해서도 고쳐지지 않는 것에 가깝다. 또한 자신들이 전향자라는 과거를 가진 불리한 입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려는 방법으로도 보인다.

3.4.2. 신흥 극우의 경우

간단히 말하자면, 일베의 기준에서 노력을 하지 않고 권리를 누린다고 보이는 집단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왜곡된 정의감에 기반을 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베의 시선에서 5.18은 ‘적’이 아닌 ‘정부’를 향한 ‘폭동’이었고, 민주화라 할지라도 이미 8-90년대를 거치며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공고화되어 도덕적 부채의 시효가 소멸됐다. 이러한 일베의 도덕경제는 일베 이용자로 하여금 5.18과 그에대한 기억, 추모가 도덕적으로 ‘등가교환’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한다. 즉 이 게시물에서 나타나는 ‘공적인 분노’는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추모는 이미 ‘과도’하고, 여전히 실재하는 적에게 투사되어야 할 감정이 더 크다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물며 5.18을 북한에 의해 선동된 전라도인들의 폭동으로 본다면 이러한 분노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일베 사용자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은 ‘북에 쌀을 퍼준’ 덕분에 북을 핵 무장화 하게 만든 무능한 집권자로 이는 ‘종북’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 정부를 지지한 이들은 모두 좌파로 지칭되며 이들은 잘 선동되고, 끊임없이 정부(보수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칭)에게 꼬투리를 잡으며, 자신의 무능함을 제도와 체제의 탓으로 돌리는 특징을 가진다고 일베 사용자들은 진술했다. 특히 전라도에 한 근거 없는 편견을 바탕으로 ‘폭동인 5·18이 민주화 운동이 되었다’는 음모론마저 제기한다.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가르치는 ‘좌파적’ 역사 교사와 ‘좌파적’ 역사 교과서도 함께 비난한다. 일베가 끊임없이 특정 상을 타자화 하는 방식은 사회적 편견을 재생산하는 논리로 작동하며 그 자체로 공격적일 뿐 아니라 반민주적이다. 전라도와 좌파, 민주화에 한 혐오는 결국 민주주의에 한 정서적 거부를 낳기에 이른다. 일베 사용자들 중에 민주주의가 나쁘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었으나, 인터뷰 과정에서 현재 통용되는 민주주의에 한 부정적 정서를 드러내곤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고등학생의 한국 현대사 인식과 민주주의 이해 양상 교실 속 일베 사용자의 인식을 중심으로-
일베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폭동이라 규정하면서 5·18 희생자 역시 비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5·18 희생자 유가족이 ‘국가 보상으로 호의호식한다’고 주장하면서, 대척점에 ‘폐지를 줍는 한국전쟁 희생자 유가족’을 위치시키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유족들이 각종 정책적 혜택을 누리는 무임승차 집단으로 규정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래서 논의할 일베식 사회 정의 구현이며 우리 사회의 소수자나 구조적 약자들을 비슷한 논리로 무임승차자로 낙인 찍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간베스트 저장소 (일베) 이용자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과 태도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
일베이용자들의 주 연령대가 20"'30대 청년층이라고 해서 일베의 문제가 곧 청년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들이 표적으로 삼고 있는 호남 여성 진보좌파는 그들만의 공격대상이 아니고,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배제되고 차별받았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이전에는 지역차별, 여성차별, '빨갱이 사냥'이 서로 독립적인 양상 으로 전개되었다면 일베에게 이 셋은 마치 하나처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일부 ‘불순세력’ 이 개입했다는 그들만의 ‘심증’ 을 근거로 5.18유공자가 6.25유공자에 비해 특혜를 받고 있다는 발언이나, 국민의 정부가 만든 여성가족부가 추진한 군가산점 폐지 등으로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발언 등이 이러한 ‘인식’ 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 밑바탕에는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존재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도착된 정의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일베의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청년실업, 민주주의 후퇴, 왜곡된 시민교육 등의 문제가 응축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베는 괴물인가?-

일베저장소로 대표되는 신흥 극우들은 기성 극우들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이들은 반공을 국시로 내건 기존 정권을 겪어본 적이 없으며 당연히 냉전체제를 겪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낀 세대, 즉 기성 극우들에게는 한참 뒷 세대면서 신흥 극우들에게는 아저씨 취급을 받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태생, 그 중에서도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에 태어난 이들을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이들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때(87년) 6월 항쟁과 그에 이어진 6.29 선언으로 대한민국에 제도적 민주주의가 회복되었고, 2학년때는 1988 서울 올림픽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부분의 국가가 참가하여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며[20], 3학년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었고, 5학년때인 1991년에는 소련이 공식 해체되면서 냉전이 종식되었다. 즉, 이들 낀 세대의 어린 시절인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전 세계적인 패러다임 교체가 있었고,[21] 그 이후 세대인 신흥 극우에겐 옛 세대인 기성 극우와 사상적인 접점 자체가 없으므로 서로 5.18을 부정할 사유를 공유할 이유가 없다. 이들은 5.16 군사정변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미화하는 것도 관심이 없으며, '박정희 XX끼'라고 욕을 해보라고 하면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자들이다.[22]

촛불시위 당시에 유언비어가 돌아다녔고 신흥 극우들의 경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조리돌림하는것을 통해서 결집을 하게 되었다. 촛불시위가 가장 불타올랐던 국면에서 인터넷에 나돌아 다니던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각종 광우병 관련 괴담이나 성급한 유언비어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서는 네티즌들이 나타나면서 이들이 결집하게 되는 경향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확히 이때부터 촛불좀비 좌빨 좌좀이라는 용어가 촛불시위대를 비하하기 위한 목적을 등장했다. 이러한 보수적인 네티즌들의 규모는 촛불시위가 전례없이 확산되는 경향과 맞물리면서 대중적인 규모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촛불시위대의 주장을 반박하는 게시물 댓글을 열심히 퍼나르며 촛불시위를 옹호하는 게시판이나 블로그 주소를 링크하고 공유해서 거기에 집단적으로 몰려가 비난을 퍼부었다. 이때 촛불시위에 참가하고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찾아가서 신상을 털고, 과거의 언행에서 모순점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그들을 저격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촛불시위 이후의 정사갤 유저들은 소위 자신들만의 팩트를 중시하는 태도와 더불어 상대를 조롱하고 비웃는 태도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일베의 시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보수적인 네티즌들이 다시한번 인터넷을 넘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23]

앞에서 보다시피 박가분은 촛불이후로도 다른 활동들이 중요하다고 설명을 했는데 그 이후의 활동들에 대해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의 조사결과등을 보면 지속적인 여론조작이 2009년 부터인 것으로 확인되므로 일베 등 신흥 극우들의 발호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수 없다.[24] 그러므로 신흥 극우에 대한 5.18 부정은 진보에 대한 부정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베 이용자들의 5.18에 대한 왜곡은 진보에 대한 반감에 의한 죽창질중 하나에 불과하며, 5.18이 지나치게 성역화되었고, 또 그런 성역화가 일종의 '국가폭력'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팩트는 역설적으로 팩트질을 중요시하는 일베 이용자들에게 있어서 수단에 지나지 않다. 즉 일베 이용자들의 방식은 미시마 사건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덴노를 과중하게 찬양함으로써 덴노의 전쟁책임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키듯이, 일베 이용자들은 국가가 면밀한 조사와 판결로 5.18에 부여한 역사적 의식 = 지금은 '상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의를 깨부숨으로써 5.18에 대한 진보, 보수 양자에 의해 봉합된 5.18에 대한 위상을 환기시키는 것이다.[25] 즉, 진보들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진보들의 정신적 지주인 5.18의 명예를 파괴하고자 고도의 컨셉질이자 트롤링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5.18 세력이 특권 의식이라는 논리도 눈여겨볼 수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일베저장소의 극우적인 담론은 '떼쓰는 사람들&문제만 일으키는 사람들'과 '상식적이고 의무를 다하는 시민'의 대립 구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여성/진보/호남 등의 사람들은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일종의 '떼쓰기'를 하고 있으며,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성공해온 역사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일베의 눈에 이들은 2등 시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본 문서에서도 '5.18 유공자 가산점 논란'에 대한 반박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왜곡이 유포된다는 것은 일베가 '5.18 세력'을 일종의 '부당한 특권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재미로 장난으로 하는 경우 역시 있다. 한 예로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유저와 같은 부류가 있다. 그냥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서 장난으로 5.18을 폭동이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5.18을 비하하는 용어인 피떡갈비 드립은 통구이드립에 대항하는 지역드립을 찾는 도중 생성되었다. 실제로, 홍콩 사람이 전라도를 욕하자 대구 폭동이라면서 경상도를 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중국 정부의 패권주의적 행태들이 싫다고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 극우들의 주장에 동조한다든지 이스라엘 정부의 행태에 반발한다면서 나치를 옹호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등과 다를 게 없는 논리적 오류에 불과하다. 이들이 적시하는 진보가 5.18에 대한 공격을 용인하지 않으니, 이 5.18을 트롤링 방식으로 공략해 진보를 자극하는 것은 이들로 하여금 '위악자'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씌우고 자신을 위안하기에 알맞는 재료였다.

4. 결론

이와 같이 5.18 광주폭동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다. 반면 전두환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정확한 증거는 수도 없이 많으며, 5.18 유공자들 또한 보상을 많이 받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신상을 캐낼 필요는 더더욱 없다.

북한이 개입되었다는 주장은 아무런 증거가 없다. 거기다 국가에서 공인된 자료들은 김대중, 노무현 기간에 조작되었다고도 주장하기도 한다. 이를 다시 말하면 음모론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또한 5.18이 시민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곧 그만큼 신군부 세력의 정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아무리 좋게 말해도 전두환 정권에 대해 지나치게 순진한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폭동을 일으킨건 신군부지, 광주 시민들이 아니었다.

나머지는 이곳이곳을 참조해보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96도3376 판결은 다음과 밝히고 있다.
5·18내란 행위자들이 1980. 5. 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난폭하게 진압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보다 강한 위협을 가하여 그들을 외포하게 하였다면, 그 시위진압행위는 내란행위자들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강압하여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하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5. 왜곡이 사회에 미친 영향

5.18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성층(80.7점)이 남성층(82.8점)보다 두드러져, 여성층에서 5.18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더 강했다. 연령대로는 60대 이상(71.9점)과 50대(82.9점)가 5.18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76.3점)에서 5.18에 대한 인식이 가장 부정적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 대전/충청(77.0점)이 이에 해당되었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가장 높은 광주/전라 지역을 제외하고 5.18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긍정적인 지역은 서울(82.9점)과 인천/경기(82.9점) 지역으로 드러났다. 직업별로는 가정 주부(76.2점)와 무직(77.8점)이 5.18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했으며, 화이트칼라 계층(85.7점)과 학생(85.0점)들에게선 5.18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가장 강하게 드러났다.

또한 60대 이상(73.3점)과 20대(80.1점)가 5.18에 대한 왜곡된 인식[26]을 가장 많이 형성하고 있는 계층으로 확인되었다.

5·18 민주화운동의 가치 훼손 및 비방, 왜곡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60대 이상(69.3점)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반면 10대(82.3점)에게서는 가치 훼손과 왜곡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인식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지역(72.8점)의 인식이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광주/전라 지역을 제외하고는 부산/울산/경남 지역(80.6점)에서 5.18 왜곡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인식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직업으로는 가정주부(70.7점)가 왜곡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학생(82.4점)들에게서 왜곡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인지가 가장 높게 드러났다. (5.18 기념재단이 의뢰한 2018년 5.18 인식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기초.열람)

2024년 Roblox의 게임 중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그날의 광주>라는 유저게임의 문제보도되었다.

6. 관련 법정공방

6.1. 2012년의 지만원의 무죄판결 논란

2012년 12월 27일 5.18 폭동설과 북한 개입설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지만원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자, 일부 우익단체와 네티즌들이 마치 법원이 5.18을 폭동으로 인정한 것인 양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만원이 무죄를 받은 것은 폭동이라고 한 주장이 진실되어서가 아니라,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서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6.1.1. 지만원은 왜 무죄가 되었나?

명예훼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특정되어야지 성립하므로 정치인들, 경기도인들 등 집합명칭을 사용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아 죄를 물을수가 없는 상태다. 물론, 구성원의 수가 적어 특정인이라 추정 가능하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중에서 개인을 특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를 적용시킬 수 없는 것이다.

즉, 지만원의 주장은 5.18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내용이지만 법리적인 명예훼손의 개념에 벗어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 법원의 논리이다.

6.1.2. 법원 판결문 요약

1심 판결문[27]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은 이미 그 발생 배경과 경과, 계엄군과 광주시민 사이의 교전 사태의 발생원인, 경과, 그 밖에 인명피해의 발생원인, 5.18민주유공자들의 지위와 그에 대한 보상, 예우 등에 관하여 법적 및 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이어서 이 사건 게시글을 통하여 5.18민주유공자나 참가자들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하였으며, 이러한 1심의 논지는 고등법원[28]과 대법원[29]에서도 유지되었다.

간간히 말해, 지만원의 주장은 대한민국 법률이나 학계와 사회 양측이 내린 역사적 평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인데 이 주장의 피해자를 특정할 수가 없어 명예훼손에 대한 법률을 적용할 수가 없을 뿐이지 지만원의 주장이 진실해서 무죄가 아니란 것이다.
6.1.2.1. 지만원의 김대중 명예훼손 재판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을 학살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보낸 북한의 특수부대였다는 글을 쓴 지만원에게 항소심에서 사자명예훼손죄를 인정해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부(강을환 부장판사)는 "(광주시민 학살 책임자로서)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던 사법적 판단 등 밝혀진 사실과 다른 바, 지씨는 사법부와 입법부의 판단이나 그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모두 무시한 채 자신의 생각을 무분별하게 게시했다"며 징역6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

지만원이 2009년 11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탈북자들의 수기에 의하면 김대중은 김일성과 짜고 북한특수군을 광주로 보냈다 합니다. 이들에 의해 광주시민들이 학살을 당했지요. 5000년 역사에 이 인간 이상으로 악한 존재는 없습니다"는 글을 실어 사자명예훼손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지씨가 인용한 탈북자들의 수기내용은 출처나 증언자들이 불분명하고 내용이 검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일성의 공모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담고 있지 않으며, 객관적인 근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지만원의 주장에서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명시된 경우에는 충분히 유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 5.18 기념재단과 광주광역시의 법률조치 선언

2012년 겨울을 기준으로 인터넷에서 5.18에 대한 비방내용이 확산되자 5.18 기념재단과 광주광역시에서는 5.18 운동을 비방하는 네티즌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광주 교육청에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인식을 제고하는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5.18에 대한 비방 내용을 정정하고 비방 네티즌을 신고하는 청소년 단체를 조직할 계획에 있다.

다만, 지만원 재판과 같은 이유로, 겁주기 이외의 법적 효과는 갖지 못했었으나 2021년 1월 5일 5.18 역사 왜곡을 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 포함된 5.18 특별법 수정안이 발효하면서 법률조치가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8. 폭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문제점

국가에서 이미 공인하고 판결이 난 증거자료를 부정하는 것, 민주화 운동이라고 판결났음에도 폭동설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것, 그 모든 것들의 근거는 우익 중에서도 극우로 평가받는 지만원의 '주장'이다. 여기에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옹호가 포함된 것은 덤이다. 사실 이 설 자체가 지지자들이 우파와 좌파로 갈리는 것도 특징. 극우화된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보면 폭동설이 당연하다는 듯이 다뤄진다. 이들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면 좌빨이라고 욕하며, 지역비하까지 서슴치 않는다. 애초에 이 문제는 민주주의와 진실의 관점에서 봐야지 좌우정치성향으로 보면 안된다.[30]

당연하겠지만 우익계열 모두가 이 설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극우계열 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현재는 극우 언론인으로 평가받지만 1980년 당시 이 현장에 직접 잠입취재[31]를 했던 조갑제 당시 국제신문 기자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못박아 말했으며 아직도 5.18이 민주화 운동이란 것만은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조갑제가 해임된 이유를 5.18 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것 때문이라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조갑제가 해직된 실질적 이유는 악명높은 1975년 영일만 석유 발견 소동에 대해서 그건 뻥임, 중정이나 높으신 분들이 국민여론 돌리려고 지어낸 것임이라는 정부의 언론조작을 폭로한 르포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위영상에서 시위군중이 했지 북한군 얘기가 아니라고 하자[32] 말이 바뀐다.

박근혜 역시 5.18은 민주화운동이 맞다고 인정하였다.[3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2015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불렀으며 그 노래는 북한 따위와는 전혀 관련 없고 피해자의 영혼 결혼식을 위한 노래라고 밝혔다. 이정도면 김무성 대표 역시 민주화 운동이 맞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아니, 오히려 2016년 5월 18일에도 광주 기념식 가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참고로 배경지식 하나 넣자면, 김무성 역시 김문수(前 경기도지사)처럼 80년대 전형적인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사람이며 특히 김문수도 2006년 기념식에서 눈물까지 흘렸다.[34] 상도동계를 배신하고 삼성동계로 붙은 극우 정치인인 서청원 역시 그는 5.18당시 기자였고, 조갑제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 광주에서 취재하여 5.18은 민주화운동이 맞으며 북한군의 개입이 불가능하고 말했다. 사실 서청원은 5.18 운동에 대한 견해 말고도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때에도 기무사의 계획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친박근혜의 좌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는 편이다. 또 다른 삼성동계 정치인인 이정현도 호남 출신인 데다 대학생 때 광주 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한 영향으로 5.18 운동은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일베저장소, 지만원, 우파 유튜버 등 극우세력이 그렇게 좋아하는 새누리당 계열에서조차[35] 5.18에 대해 숭고한 민주화 운동이라고 표명하는 사람들이 이명박, 박근혜, 김문수, 김무성 등등 해서 수두룩하며, 역시 극우세력이 좋아하는 대표적 극우 언론인인 조갑제, 서청원[36], 이정현의 주장도 부정하는 것이 저런 인터넷 극우의 상황이다.

최근 5.18 시민군으로 참여해 옥고를 치른 한 남성이 36년만에 무죄가 선고되었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내란실행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았던 남성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신군부가 일으킨 쿠데타가 내란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에 반발한 것은 죄가 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전두환 등 당시 군부가 일으킨 군사행위는 내란행위에 해당한다"'며 "'김씨의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무죄 선고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재판에서 만일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된다면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5.18 폭동설의 주장자들은 대체로 '시민이 무장하고 트럭에 타서 군인에 맞섰으니 폭동'이라는 1차원적인 사고방식에 머물러있다. 그래서 심지어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가 반란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5.18도 폭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둘은 양립할 수 없는 명제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결국 헌법의 '저항권'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이 총이나 폭탄을 썼다고 테러범으로 취급하는 것, 북한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서 북한 주민이 북한군에 맞서 무기를 들어도 '어찌되었든 국가 공권력에 맞섰으니 폭동'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어이 없는 사고방식이다. 현재의 북한 정권이나 80년 당시의 신군부 집단이나 대한민국의 헌법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일체의 법적, 정치적 정당성을 결여한 불법무장집단이고, 여기에 맞선 주민의 항거는 폭력적으로 행해졌다 하더라도, 도대체 군에 맞선 항거가 '안' 폭력적일 수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저항권의 행사로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는 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5.18 망언 논란에 관련하여 규탄성명을 발표하였다가 '고위직 진출을 통한 카르텔 형성', '우리 학교에 이익이 되지 않고, 의견이 크게 나뉘는 사안', '지나친 도덕적 검열' 등의 이유를 들어 철회하였다.

9. 북한 선전기관의 왜곡

파일:1675770929381.jpg VS 파일:북괴는오판말라.jpg
북한이 왜곡 주장하는 '인민봉기' 북한이 외면하는 진실
"북괴는 오판말라!"
광주인민봉기
품사: [명]
파쑈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주체69(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시민들이 벌린 대중적인민봉기.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였는데 광주시와 그 주변의 100여만 군중이 참가하여 도청, 시청을 비롯한 통치기관들을 습격하고 5월 21일에는 광주시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미제의 사촉밑에 군사파쑈도당은 5월 27일부터 수만명의 방대한 정규무력을 동원하여 봉기군중을 야수적으로 학살하고 진압하였다.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편찬 조선말대사전
광주 인민봉기가 일어나 미 국무장관 머스키, 국방장관 브라운, 대통령안보담당보좌관 브레진스키, 미 중앙정보국장 터너 등은 긴급모의를 벌려놓고 광주 인민봉기를 진압할 흉계를 꾸미였다.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브레진스키는 항쟁을 ‘무쇠주먹으로 진압해야 한다’고 폭언하였으며 ‘초전박살’, ‘젊은이 싹쓸이 작전’의 살인수법들도 불사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대 살육작전을 현지에서 조종 지휘할 데 대한 임무를 받은 남조선 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위컴)은 의로운 항쟁자들을 ‘버릇없는 망나니’, 지어는 ‘들쥐’로 모독하면서 ‘공수특전대’ 5개 여단과 보병사단, 기갑부대, 항공대를 비롯한 7만 여명의 방대한 무력과 장갑차, 중포, 군용직승기와 심지어는 항공모함전단까지 광주의 평화적 주민들을 살육하는데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참조
21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평 《광주를 피바다에 잠근 극악한 살인마》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최근 남조선에서 광주대학살만행의 장본인으로서의 미국의 치떨리는 죄악이 또다시 드러나 각계의 증오와 격분을 폭발시키고있다.

(중략)

이것은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해 떨쳐나섰던 광주의 항쟁용사들을 야수적으로 탄압, 학살하고 온 광주시를 피바다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라는것을 부정할수 없는 력사적사실로 다시한번 뚜렷이 확증해주고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광주대학살만행에 《관여하지 않았다.》느니, 《미국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느니 하고 떠벌이면서 저들의 죄악을 뻔뻔스럽게 부정해왔다.그러나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으며 력사의 진실은 밝혀지기마련이다.

미국이 광주대학살만행에 직접 개입하며 전두환일당을 피비린 살륙만행에로 적극 부추기고 지어 방대한 무력까지 투입한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략)

세상사람들을 경악케 한 전두환군부파쑈광의 귀축같은 광주대학살만행은 결국 미제의 야수적기질에 살기가 돋친 식민지주구의 대리살륙전이였다.

(중략)

미제가 저지른 광주대학살범죄는 반드시 결산되여야 하며 범죄자들은 천추에 용납 못할 죄악의 대가를 백배, 천배로 치르어야 한다.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한 인민들은 제2, 제3의 광주참극을 면할수 없으며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광주항쟁용사들의 념원은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다.

남조선에서 인민들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며 온갖 재앙을 낳는 근원인 미제침략군무리를 당장 제 소굴로 쫓아보내야 한다.


(이후 생략)

(평양 12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
KCNA Watch 2017년 12월 21일자 보도
광주인민봉기는 파쑈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주체69(1980)년 5월에 벌린 전라남도, 광주시민들의 대중적인민봉기이다.
(중략)
광주시와 그 주변의 각계각층 주민들 100여만명이 참가한 영웅적광주인민봉기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 억압자들이 강요하는 낡은 《유신》파쑈통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정치를 실시하기 위한 가장 높은 형태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이였으며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동방인민들의 근대투쟁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가장 크고 격렬한 대중적봉기였다.
봉기는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통치와 그 앞잡이 군사파쑈도당의 통치지반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고 놈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다. 광주인민봉기는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사에 빛나는 장을 기록한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2021년 5월 18일 '조선의 오늘' 중

북한은 우리민족끼리 등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반미/종북봉기로 위장하며, 이를 근거로 삼아 북한 인민대중들에게 남한의 혼란상과 남한 정부의 폭압성을 강조하거나, 학살의 주역을 '미국'으로 왜곡하는 선전을 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 News 산하의 웹사이트 KCNA Watch에 의하면 북한 당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반미/자주/민주 운동이었으며 미국이 "광주시를 피바다로 만들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5.18 민주화운동은 반미주의보다는 반정부, 반 신군부 투쟁과 더 관련이 깊으며 항쟁지도부 내의 일부 소장/강경파 대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항쟁지도부와 수습대책위원회, 일반 광주시민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이미지가 그렇게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당시 40대 이상 중년층은 일제강점기를, 30대 이상 청년층은 한국 전쟁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세대였고, 20대 이상 남성들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민주주의 사수를 위헤 공산당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십자군"이라는 당위성으로 교육받으며 참전한 적이 있는 등 적어도 사회인사들과 항쟁에 가담한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미국이라는 국가는 "민주주의를 위해 젊은이 수만명의 피를 흘린 민주주의의 전파자이자 수호자"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최 우방국"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거기에 지미 카터가 인권외교를 이유로 박정희 정권을압박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박정희를 견제했던 터라 대다수의 지식인과 시민들이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투사회보등을 통해 미 해군의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코럴 시(CV-43 USS Coral Sea) 함이 부산항에 입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의 국가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를 도우러 왔다"는 생각에 환호하기도 했다.

한국 민주화세력 내에 반미감정이 팽배해지기 시작한 시기는 미군이 계엄군의 학살 행각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사건 종료 후 당시 평시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던 주한미군 사령부가 계엄군의 광주 투입을 묵인했다는 사실이 전해진 이후로, 윅캄 존 위컴의 "쥐새끼(레밍)" 발언까지 알려진 이후에는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운동권에 반미 감정이 팽배해지게 된다.

이러다보니 당연히 항쟁 지도부와 수습대책위원회, 시민들 사이에 좌경 용공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위대 중에는 훌라송에 맞춰 "김일성이는 오판 말라!"라는 구호를 외치거나 "북괴는 오판말라!"라는 플래카드를 든 이들도 있었으며, 항쟁이 막바지로 치달아가는 5월 25일 항쟁지도부는 선언문 "80만 광주시민의 결의"를 통해 북한 공산 집단의 남침 야욕에 대한 경계와 동시에 그 수괴 김일성에 대해 "현재 휴전선 이남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민중 항쟁은 너희와 신군부가 선동하는 사회주의 인민해방을 위한 인민봉기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항쟁이니, 너희는 혼란을 틈타 남침할 생각 말라"라는 경고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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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80만 광주시민의 결의ㅡ
*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과도정부에 있다.[37] 과도정부는 모든 피해를 보상하고 즉각 물러나라!
* 무력탄압만 계속하는 명분 없는 계엄령은 즉각 해제하라.
* 민족의 이름으로 울부짖노니, 살인마 전두환공개 처단하라.
* 구속 중인 민주인사를 즉각 석방하고, 민주인사들로 구국 과도정부를 수립하라.
* 정부와 언론은 이번 광주의거를 허위조작, 왜곡보도 하지 말자!
*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피해보상과 연행자 석방만이 아니다. 우리는 진정한 민주정부 수립을 요구한다.
* 이상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우리 80만 시민 일동은 투쟁할 것을 온 민족 앞에 선언한다.
1980. 5. 25
ㅡ 광주 시민 일동 ㅡ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김일성은 순수한 광주 의거를 오판 말라!

사실 1960년 4.19혁명 당시 내무부차관 이성우의 "시위의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는 발언이 화젯거리가 된 뒤로, 1970년대까지 "김일성은 오판말라, 반공전선 이상없다"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릴 때마다 용공 혐의를 의식한 시위대가 자주 외치는 구호였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은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38]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5.18은 자유를 위한 반정부 운동이기 때문에, 북한은 북한 주민이 5.18과 같은 반정권 민주화 운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이런 왜곡을 하는 것이다.

10. 관련 어록

사회학자들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나타나는 파쇼 현상의 첫 단계로 해석합니다.
SBS 뉴스에서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예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어디로 왔는데?
정호용: 5.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두환: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2016년 5월 발언#[39]
37년 전 광주에서 숨진 사람들은 아이부터 어른, 학생에서 노동자까지 모두가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지난 37년간 그들의 죽음에 사죄하지도 위로를 건내지도 않은 신군부 핵심 세력은 오히려 5.18 이후 3공수여단장에서 합참의장으로, 1군단장에서 감사원장으로, 20사단장에서 보안사령관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육군참모총장에서 국방장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안사령관에서 대통령까지 올랐던 전두환 씨는 사건 후 37년이 지난 지금 돌연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곡과 거짓이 담긴 회고록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 단 한 구절이 있습니다.

진실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능한 조사만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의아하긴 하지만은 환영할 말입니다. 아직은 최초 발포 명령자와 헬기 사격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뉘우치지 않는 역사는 반복이 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074회 마지막에
"해당 성명서는 의도와 다르게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이용될 수 있으며, 우리 학교에 이익이 되지 않고, 의견이 크게 나뉘는[40] 사안에 대하여 학생회 차원의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특정 의견을 권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철회되어야 한다."
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5.18 망언 논란에 관련하여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에서 김순례 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가 4월 4일 약 40일 만에 철회했던 자리에서 경상대학 학생회장이 한 발언(14차 중앙운영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


[1] 평화나무의 기사를 제외한 링크 중 시스템클럽의 글은 삭제 혹은 이동되었다고 뜨며, 티스토리는 권한이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라고 뜨며 뒤의 네이버 블로그 글은 비공개 처리된 상태이다. 작성자 본인이나 사이트 관리자 측에서 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2] 해당 글은 5.18을 직접적으로 부정하거나 폭동이라고 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유공자 자녀 할당제와 시체팔이 등 왜곡 측의 주장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3] 해당 글은 광주 시민들이 무단으로 경찰서와 군부대를 점거하고 무장한 것을 성역화하는 것이 잘못되었으며, 광주 시민들과 당시 신군부 모두 잘못이 있다는 양비론을 주장하고 있다. 2021년 5월 18일 올라온 당일 추천 수가 100을 넘어서 엠팍 불펜의 최다 추천란 맨 위에 올라있다가 삭제되었다.[4]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에서 시행하는 선동범죄 처벌법을 모델로 한 것이다.[5] 현재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는 제6공화국인데 제6공화국의 뿌리는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등 대독재투쟁이다. 대독재투쟁에 대한 부정은 현재 체제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을 암시하게 되는데 이는 현재 정치 질서 내에서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 취하기 힘든 입장일 수밖에 없다.[6] 검찰, 1999d. 「노태우 피의자 신문조서 제5회」: 63쪽, 검찰, 1999e. 「주영복 진술조서」: 115쪽, 국회, 1988.12.19: 28쪽 이희성 증언[7] 검찰, 1999b. 「허화평 피의자 신문조서 제1회」: 156, 157쪽[8] 《한국사회 과거청산 ‘부인(denial)’ 연구》 2013. 1. 김보경.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113페이지[9] 사실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호남 혐오 감정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곳 나무위키에서조차 지역감정 항목에 전라도 혐오 성향을 지닌 게시물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와서 수개월 동안이나 그대로 남아있었던 일이 존재했다.[10] 이 정도면 약과고 초강경 극우 성향 인사들은 아예 "전라도에는 원래부터 빨갱이들이 많았으니, 이들이 남한에 공산주의 폭동을 일으켰던 것이 5.18이다. 그러니 5.18을 진압한 전두환은 영웅이며 5.18 참가자들은 모조리 대량학살을 했어야 마땅하다."라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식의 인간성을 상실한 폭언을 퍼붓기도 한다.[11] 그와 동시에 한국 보수 진영이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하는 박정희한테 맞서 싸운 김대중을 지지하는 전라도 지역에 대한 혐오 정서도 더욱 강해졌다. 1970년대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야당인 민주당 인사들한테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떼로 몰려가서 "이 전라도놈(김대중) 앞잡이들아, 이 선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인데, 왜 전라도놈 앞잡이 노릇을 하고 다니느냐?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이 마을에서 없어져라!"고 폭언과 구타를 일삼은 일도 벌어졌다. 출처: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권/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143쪽[12] 애초에 좌파/진보 성향이라면 전부 친북, 공산주의, 사회주의 추종자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들의 우편향적 성격과 정치에 대한 무지함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므로 진지하게 반박할 이유도 없다. 애초에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진보들도 매우 많으며, 해외의 진짜 공산주의자들은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라며 사실상 손절했다. 심지어 북한 체제는 냉전기에 같은 공산권이었음에도 소련, 동유럽의 민중들에게도 비웃음당했을 정도로 스탈린주의, 현실사회주의 관점에서도 심히 기형적인 체제이다.[13] 불행히도 이런 가짜 뉴스가 주로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이용하는 카톡방에 계속 나돌아다니면서, 전라도 혐오와 5.18 관련 왜곡을 잊을 만하면 일으키고 있다.[14] 재미있는 사실은 전두환도 본관이 전라도다.[15] 유감스럽게도 반공주의는 21세기에도 계속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구냉전이 끝난지 반세기도 안되어서 사실상 신냉전 구도에 못을 박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진지라 주어를 소련에서 러시아, 중화인민공화국(러시아와 달리 여전히 공식적으로 국호 및 집권정당에서 공산국가임을 표방하지만, 중공은 개혁개방 이후 한참 변질된, 이름만 공산주의를 빌린 유사공산독재체제로 봐야한다.)으로 바꿔 반중,반러에 묻어 갈 것이며, 북한(이쪽도 사실상 이름만 공산주의인 주체사상 신정국가로 전락했다) 역시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반공 프레임은 일부 주어를 변주한 채로 신냉전 상태에서도 이어질것으로 보인다.[16] 일단 해당 항목에 소개된 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좋든 싫든 시민으로는 불러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17] 《한국사회 과거청산 ‘부인(denial)’ 연구》2013. 1. 김보경.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ii페이지, 113페이지, 130페이지[18] 뉴라이트의 정신적 대부인 안병직은 마오쩌둥의 혁명 이론에 심취했고, 안병직의 제자인 이영훈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외치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자살하자 가장 먼저 달려가서 시체를 지켰으며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을 공부하던 사람이었다.[19]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전근대적인 숭배 등[20] 이전 회차인 84년80년에는 각 진영에서 대규모의 올림픽 보이콧이 있었다.[21] 참고로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국민학교(초등학교) 복도에 일제시대 일본군에 의한 학살장면과 함께 6.25 당시 북한군에 의한 학살장면이 사료로서 전시돼있는 경우가 많았고, 학교 혹은 지자체 주관으로 반공 포스터 대회나 반공 웅변 대회 같은 것도 있었으며, 학교에서 반공 영화/만화 등을 보여주는 등 반공 교육이 아직까지 의미를 가지던 시기이다.[22] 《일베의 사상》. 박가분. '일베와 광주'에서[23] 《일베의 사상》. 박가분. '일베와 광주'에서,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일베는 싸가지 없는 진보의 부메랑'에서.[24] tf 조사결과, 합성사진, 그들만의 민주화운동, 2009년 개입[25] 《일베의 사상》. 박가분. '일베와 광주' 에서[26] 질문: 5.18은 불순세력(북한 등)이 주도한 폭력사태가 아니다.[27]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11. 1. 19. 선고 2010고합51 판결[28] 서울고등법원 2012. 8. 23. 선고 2011노308 판결[29] 대법원 2012. 8. 23. 선고 2012도10670판결[30] 이 현상이 매우 심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2020년 들어서 통구이드립으로 받아치는 추세이다.[31] 정확하게 말해서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무단 결근해서 허락없이 광주로 내려갔다[32] 10분 33초에서 언급된다[33] 다만 이 발언을 했던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34] 김무성과 김문수의 경우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 계보로 이어지는 강경보수 계파가 아닌 김영삼 계열의 온건보수 정치인이어서 5.18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왜곡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하지만 김문수는 2022년 기준 친박으로 전향하고 기독자유당에 입당한 극우 정치인이 돼버렸다.[35] 다만 극우세력이 무조건 새누리당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김영삼, 김무성, 이명박 등등 비박 온건 보수 정치인들은 민주당 및 진보정당 못지 않게 싫어한다.[36] 전술했듯 서청원은 극우 정치인치고는 비교적 온건한 편에 속한다. 이는 서청원 본인이 과거에는 온건보수 계파인 상도동계의 일원이었던 영향일 수도 있다. 물론 성향과는 별개로 대다수의 상도동계 출신 정치인들에게는 왕따 취급을 받지만.[37] 이건 당시 하나회를 필두로 한 신군부의 보도통제로 인한 정보의 제약이 빚은 오해였다. 12.12 사태이후 실권을 장악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강력한 보도 통제를 실시해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영남 출신 군인들이 군 내부의 실권을 잡았다는 정도만 확실하게 알려져 있었기에 대통령 최규하, 국무총리 신현확이 군대를 동원해서 민주화를 무력 진압하고, 더 나아가 또다른 유신독재를 수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오해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 5.18 당시에도 시위대는 동사무소(당시 널리 쓰인 표현은 동회洞會), 파출소 등 관공서에 걸려있던 최규하 초상화를 깨부수거나 최규하, 신현확을 규탄하는 표어와 유인물, 현수막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실제 최규하가 대통령의 권력을 가진 시기는 최규하 과도 내각이 수립된 1979년 12월 6일부터 12월 12일 자정까지 6일에 불과했다.[38] 역시 극우 세력에 의한 왜곡에 희생되었다. 이들은 제목의 '임'이 김일성이라 주장하지만, 사실 '임'은 좁게는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윤상원, 넓게는 당시 시위에 참가한 모든 운동가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39] 1년 뒤에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는 갑자기 이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하면서 '난 잘못 없다'는 주장을 적어 놓았다. # 이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전두환이 이를 듣고 변명으로 좋다고 생각하여 해당 왜곡 내용을 넣으라고 지시한 것이거나, 회고록을 쓰는 작가가 저러한 왜곡을 신봉하는 인물이어서 서술한 것이라 보인다. 그리고 결국 전두환은 5·18 민주화운동 명예훼손 혐의로 결국 법정에 다시 서게 됐다.[40] 굉장히 문제의 소지가 큰 발언이다. 북한 개입설, 무장폭동설이 설득력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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