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22:13:36

망월묘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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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묘지공원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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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의 시립묘지이다.

망월묘지공원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 주소지는 망월동이 아니다. 묘지 소재지가 망월동이 아님에도 '망월'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로는 묘지 주변 지명 중 사람의 거주지가 있어서 지명으로서 인지도가 그나마 있는 지역이 아랫동네인 망월동이어서 망월묘지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 실제로 행정동 석곡동 동사무소 소재지가 망월동이기도 하고.

2. 상세

1970년대까지는 광주 외곽의 평범한 시립공원묘지였다. 그러나 5.18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이 무덤의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당시 무자비한 강제 진압에 나섰던 신군부는 희생자들을 3묘역에 매장했다. 특히 이 묘역으로 시신을 운구할 때 시신을 이 아닌 김장용 비닐봉투에 싼 뒤 영구차도 아닌 청소차에 실어서 이 무덤에 내려놨다고 한다.

이후 이 묘지는 민주·진보계열의 성지로 추앙받았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유족회와 부상자회 등을 중심으로 추모행사가 1996년까지 매년 5월 18일에 열렸다. 1987년 6.29 선언을 계기로 사면·복권된 김대중 당시 통일민주당 고문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이후 16년 만에 부인 이희호 여사와 광주를 찾았을 때 이 묘역을 방문해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이 묘역 참배 후 실질적 고향인 목포시를 방문한 뒤 제13대 대통령 선거 독자 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1997년부터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바로 맞은편 운정동의 국립 5.18 민주묘지(신묘역)이 조성되면서 신묘역에서 정부 주관의 공식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현재 이 묘역에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는 물론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한 뒤 사망한 사람들이 많이 묻혔다. 6월 항쟁에 경찰의 최루탄에 의해 사망한 학생운동가 이한열이나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에 항의해 분신한 이남종, 학생운동가, 농민 백남기 등이 이곳에 묻혔다.

참고로 3묘역 입구에는 검은색 비석 하나가 깨어진 채로 땅에 묻혀져 있는데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82년 3월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의 성산마을에서 전두환이순자가 묵고 간 후 그 흔적을 남긴 기념비석이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 이라고 써 있는 이 비석은 민주화가 확립된 1989년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담양에서 이 묘역으로 가져와 비석을 부순 뒤 모든 참배객들이 이 비석을 즈려밟고 갈 수 있도록 땅에 묻었다. 현재도 이 묘역을 참배하는 이들은 의식적으로라도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