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三國志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 ||
,,,, | ,,,, | |||
<colbgcolor=#980000>삼국 | 조조 | 실존 인물 · 가공 인물 · 조위정통론 | |
유비 | 실존 인물 · 가공 인물 · 촉한정통론 | ||
손권 | 실존 인물 · 가공 인물 | ||
관련 정보 | 인물 · 연표 · 지명 · 관직 · 이름 표기 · 삼국지연의/수혜자 · 삼국지연의/피해자 · 삼국지연의/미등장인물 | ||
관련 작품 | 소설 · 만화 · 책 · 영화 · 애니메이션 · 드라마 · 라디오 드라마 · 게임 | }}}}}}}}} |
1. 개요2. 열람, 수정 참고3. 각국 연호 대차표4. 황건적의 난 이전5. 본편
5.1. 184년 (광화 7년 ~ 중평 원년) - 황건적의 난5.2. 185년 (중평 2년) - 변장 · 한수의 난 발발5.3. 186년 (중평 3년) - 조정의 반란 토벌5.4. 187년 (중평 4년) - 한수가 조정에 투항하다5.5. 188년 (중평 5년) - 유언, 익주에 자리를 잡다5.6. 189년 (중평 6년) - 십상시의 난5.7. 190년 (초평 원년) - 동탁 토벌전 시작5.8. 191년 (초평 2년) - 반동탁 연합 와해5.9. 192년 (초평 3년) - 계교 전투와 동탁의 죽음5.10. 193년 (초평 4년) - 손견, 유우의 죽음과 제1차 서주 대학살5.11. 194년 (흥평 원년) - 제2차 서주대학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하다5.12. 195년 (흥평 2년) - 헌제의 장안 탈출. 손책의 거병.5.13. 196년 (건안 원년) - 여포의 서주 탈취. 조조의 헌제 보위5.14. 197년 (건안 2년) - 완에서 조조 대패하다.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다5.15. 198년 (건안 3년) - 서주 공방전.5.16. 199년 (건안 4년) - 여포의 죽음. 공손찬, 원술이 멸망하고 유비가 허도를 탈출하다5.17. 200년 (건안 5년) - 관도대전. 손책의 죽음5.18. 201년 (건안 6년) - 관도대전 전후 상황5.19. 202년 (건안 7년) - 원소 사망, 원가 형제의 단결과 박망 전투.5.20. 203년 (건안 8년) - 원가의 분열5.21. 204년 (건안 9년) - 원상이 업에서 패배하다. 조조의 기주 평정5.22. 205년 (건안 10년) - 원담이 최후를 맞이하다. 조조의 청주 평정5.23. 206년 (건안 11년) - 조조의 병주 평정5.24. 207년 (건안 12년) - 삼고초려, 원가의 멸망과 조조의 남정5.25. 208년 (건안 13년) - 유표의 죽음. 적벽대전5.26. 209년 (건안 14년) - 유비의 형주 남부 획득과 장료의 합비 공방전5.27. 210년 (건안 15년) - 주유의 죽음과 방통의 출사5.28. 211년 (건안 16년) - 유비 입촉5.29. 212년 (건안 17년) - 조조와 마초의 대립. 유비가 유장(劉璋)에게 이빨을 드러내다5.30. 213년 (건안 18년) - 조조, 위공에 등극하고, 마초는 다시 봉기하다.5.31. 214년 (건안 19년) - 유비가 촉(蜀)을 평정하다.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다5.32. 215년 (건안 20년) - 제2차 합비 공방전 발발. 장로가 조조에게 투항하다5.33. 216년 (건안 21년) - 조조가 위왕(魏王)에 책봉되다5.34. 217년 (건안 22년) - 조비가 세자로 임명되다5.35. 218년 (건안 23년) - 조조의 내환5.36. 219년 (건안 24년) - 한중 공방전과 번성 공방전5.37. 220년 (황초 원년/건안 25년) - 조조의 죽음과 조비의 위나라 건국. 한의 멸망(위나라 건국)5.38. 221년 (황초 2년/장무 원년/건안 26년) - 유비의 촉한 건국. 그리고 오 정벌을 준비하다.(촉한 건국)5.39. 222년 (황초 3년/장무 2년/황무 원년) - 이릉대전5.40. 223년 (황초 4년/건흥 원년/황무 2년) - 유비의 죽음과 세대교체5.41. 224년 (황초 5년/건흥 2년/황무 3년) - 조비의 2차 오 공격.5.42. 225년 (황초 6년/건흥 3년/황무 4년) - 공명의 남만 정벌5.43. 226년 (황초 7년/건흥 4년/황무 5년) - 조비의 죽음5.44. 227년 (태화 원년/건흥 5년/황무 6년) - 출사표와 제1차 북벌5.45. 228년 (태화 2년/건흥 6년/황무 7년) - 석정 전투, 가정의 패배와 제2차 북벌5.46. 229년 (태화 3년/건흥 7년/황룡 원년) - 손권의 오나라 건국. 제3차 북벌, 조운의 병사(오나라 건국)5.47. 230년 (태화 4년/건흥 8년/황룡 2년) - 위의 역습5.48. 231년 (태화 5년/건흥 9년/황룡 3년) - 제4차 북벌과 장합의 죽음5.49. 232년 (태화 6년/건흥 10년/가화 원년) - 손권이 가화 개원5.50. 233년 (청룡 원년/건흥 11년/가화 2년) - 청룡 개원5.51. 234년 (청룡 2년/건흥 12년/가화 3년) - 오장원에 지는 별, 제갈량과 헌제의 죽음5.52. 235년 (청룡 3년/건흥 13년/가화 4년) - 장완이 대장군에 임명되다5.53. 236년 (청룡 4년/건흥 14년/가화 5년) - 사마염 탄생5.54. 237년 (경초 원년/건흥 15년/가화 6년) - 공손연이 연왕(燕王)을 자칭하다5.55. 238년 (경초 2년/연희 원년/적오 원년) - 공손연이 토벌되고 촉, 오가 각각 개원하다5.56. 239년 (경초 3년/연희 2년/적오 2년) - 조예 사망5.57. 240년 (정시 원년/연희 3년/적오 3년) - 조방 즉위5.58. 241년 (정시 2년/연희 4년/적오 4년) - 손등(孫登)의 죽음, 오의 재북벌5.59. 242년 (정시 3년/연희 5년/적오 5년) - 감택이 태사태부를 겸하다. 만총이 사망하다5.60. 243년 (정시 4년/연희 6년/적오 6년) - 문흠의 패퇴, 고옹, 감택, 설종의 죽음5.61. 244년 (정시 5년/연희 7년/적오 7년) - 흥세 전투와 오에서의 후계 분쟁5.62. 245년 (정시 6년/연희 8년/적오 8년) - 육손의 분사5.63. 246년 (정시 7년/연희 9년/적오 9년) - 장완과 동윤의 죽음5.64. 247년 (정시 8년/연희 10년/적오 10년) - 전종, 보즐의 죽음5.65. 248년 (정시 9년/연희 11년/적오 11년) - 왕평 사망5.66. 249년 (가평 원년/연희 12년/적오 12년) - 고평릉 사변과 강유의 첫 북벌5.67. 250년 (가평 2년/연희 13년/적오 13년) - 강유의 2차 북벌과 오나라의 태자교체5.68. 251년 (가평 3년/연희 14년/태원 원년) - 왕릉의 역모와 사마의의 죽음5.69. 252년 (가평 4년/연희 15년/건흥 원년) - 3세들의 전쟁 시작. 손권이 죽자 제갈각이 위를 치고, 비의는 부를 열다5.70. 253년 (가평 5년/연희 16년/건흥 2년) - 비의, 제갈각 암살되다5.71. 254년 (정원 원년/연희 17년/오봉 원년) - 조방은 폐위되고 강유는 3차 북벌을 일으키다5.72. 255년 (정원 2년/연희 18년/오봉 2년) - 관구검의 난과 강유의 4차 북벌5.73. 256년 (감로 원년/연희 19년/태평 원년) - 강유의 5차 북벌과 손준, 여거의 죽음5.74. 257년 (감로 2년/연희 20년/태평 2년) - 제갈탄의 난과 강유의 6차 북벌5.75. 258년 (감로 3년/경요 원년/영안 원년) - 손휴의 즉위와 손침의 죽음5.76. 259년 (감로 4년/경요 2년/영안 2년) - 조모의 잠룡시5.77. 260년 (경원 원년/경요 3년/영안 3년) - 고귀향공 조모 참살, 진태의 죽음.5.78. 261년 (경원 2년/경요 4년/영안 4년) - 설후가 황호의 망국적 전횡을 예견하다5.79. 262년 (경원 3년/경요 5년/영안 5년) - 강유의 마지막 북벌5.80. 263년 (경원 4년/염흥 원년/영안 6년) - 촉한멸망전 (촉한 멸망)5.81. 264년 (함희 원년/원흥 원년) - 나헌의 분전, 폭군 손호의 즉위, 성도 대학살5.82. 265년 (함희 2년/태시 원년/감로 원년) - 사마소의 죽음과 사마염의 서진 건국. 위나라의 멸망(진나라 건국)5.83. 266년 (태시 2년/보정 원년) - 손호의 숙청과 진오 단교, 곽익의 교지 원정5.84. 267년 (태시 3년/보정 2년) - 손호가 다시 건업으로 환도5.85. 268년 (태시 4년/보정 3년) - 곽익의 교주 원정5.86. 269년 (태시 5년/건형 원년) - 진주 신설, 설후의 교지 원정5.87. 270년 (태시 6년/건형 2년) - 선비족 독발수기능의 등장5.88. 271년 (태시 7년/건형 3년) - 진과 오의 교지 쟁탈전, 독발수기능의 선전5.89. 272년 (태시 8년/봉황 원년) - 양호와 육항의 형주 공방5.90. 273년 (태시 9년/봉황 2년) - 대도독 육항5.91. 274년 (태시 10년/봉황 3년) - 육항의 죽음5.92. 275년 (함녕 원년/천책 원년) - 누현이 숙청되어 자결하다.5.93. 276년 (함녕 2년/천새 원년) - 손호의 봉선국산비5.94. 277년 (함녕 3년/천기 원년) - 무너지는 오나라5.95. 278년 (함녕 4년/천기 2년) - 세상을 떠난 양호, 오의 명장 장정을 격파한 두예5.96. 279년 (함녕 5년/천기 3년) - 서진이 오나라 정벌을 개시하다5.97. 280년 (태강 원년/천기 4년) - 오나라 정벌, 손호의 항복. (오나라 멸망), (서진의 삼국 통일)
6. 삼국통일 이후 - 팔왕의 난과 오호십육국시대의 서막7. 관련 문서1. 개요
삼국지 연표를 요약한 영상. |
원래 삼국시대는 220년 위나라의 건국부터 280년 오나라의 멸망까지 정확히 60년간의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사마씨의 진나라가 삼국을 멸망시키고 통일한 시기까지 살던 인물들을 기전체라 각 인물들의 탄생 시기부터 사망하는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자치통감, 십팔사략, 삼국지평화 및 이를 확장한 삼국지연의와 연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창작물들은 보통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한다.
2. 열람, 수정 참고
- (검은 점)에 기술된 내용은 주된 사건들입니다.
- (하얀 점)에 기술된 내용은 사건의 전개에 대한 설명입니다.
- 사건과 사건 전개는 모두 시간순 정렬입니다.
3. 각국 연호 대차표
각국 연호 대차표 | |||||
<colcolor=#000> 서기 | 후한(漢) | 조위(魏) | 촉한(漢) | 손오(吳) | 서진(晉) |
184년 | 광화(光和) 7년 중평(中平) 원년 | ||||
185년 | 2년 | ||||
186년 | 3년 | ||||
187년 | 4년 | ||||
188년 | 5년 | ||||
189년 | 6년 | ||||
190년 | 초평(初平) 원년 | ||||
191년 | 2년 | ||||
192년 | 3년 | ||||
193년 | 4년 | ||||
194년 | 흥평(興平) 원년 | ||||
195년 | 2년 | ||||
196년 | 건안(建安) 원년 | ||||
197년 | 2년 | ||||
198년 | 3년 | ||||
199년 | 4년 | ||||
200년 | 5년 | ||||
201년 | 6년 | ||||
202년 | 7년 | ||||
203년 | 8년 | ||||
204년 | 9년 | ||||
205년 | 10년 | ||||
206년 | 11년 | ||||
207년 | 12년 | ||||
208년 | 13년 | ||||
209년 | 14년 | ||||
210년 | 15년 | ||||
211년 | 16년 | ||||
212년 | 17년 | ||||
213년 | 18년 | ||||
214년 | 19년 | ||||
215년 | 20년 | ||||
216년 | 21년 | ||||
217년 | 22년 | ||||
218년 | 23년 | ||||
219년 | 24년 | ||||
220년 | 25년 연강(延康) 원년 | 황초(黃初) 원년 | |||
221년 | 2년 | 장무(章武) 원년 | |||
222년 | 3년 | 2년 | 황무(黃武) 원년[1] | ||
223년 | 4년 | 3년 건흥(建興) 원년 | 2년 | ||
224년 | 5년 | 2년 | 3년 | ||
225년 | 6년 | 3년 | 4년 | ||
226년 | 7년 | 4년 | 5년 | ||
227년 | 태화(太和) 원년 | 5년 | 6년 | ||
228년 | 2년 | 6년 | 7년 | ||
229년 | 3년 | 7년 | 8년 황룡(黃龍) 원년 | ||
230년 | 4년 | 8년 | 2년 | ||
231년 | 5년 | 9년 | 3년 | ||
232년 | 6년 | 10년 | 가화(嘉禾) 원년 | ||
233년 | 7년 청룡(靑龍) 원년 | 11년 | 2년 | ||
234년 | 2년 | 12년 | 3년 | ||
235년 | 3년 | 13년 | 4년 | ||
236년 | 4년 | 14년 | 5년 | ||
237년 | 5년 경초(景初) 원년 | 15년 | 6년 | ||
238년 | 2년 | 연희(延熙) 원년 | 7년 적오(赤烏) 원년 | ||
239년 | 3년 | 2년 | 2년 | ||
240년 | 정시(正始) 원년 | 3년 | 3년 | ||
241년 | 2년 | 4년 | 4년 | ||
242년 | 3년 | 5년 | 5년 | ||
243년 | 4년 | 6년 | 6년 | ||
244년 | 5년 | 7년 | 7년 | ||
245년 | 6년 | 8년 | 8년 | ||
246년 | 7년 | 9년 | 9년 | ||
247년 | 8년 | 10년 | 10년 | ||
248년 | 9년 | 11년 | 11년 | ||
249년 | 10년 가평(嘉平) 원년 | 12년 | 12년 | ||
250년 | 2년 | 13년 | 13년 | ||
251년 | 3년 | 14년 | 14년 태원(太元) 원년 | ||
252년 | 4년 | 15년 | 2년 신봉(神鳳) 원년 건흥(建興) 원년 | ||
253년 | 5년 | 16년 | 2년 | ||
254년 | 6년 정원(正元) 원년 | 17년 | 오봉(五鳳) 원년 | ||
255년 | 2년 | 18년 | 2년 | ||
256년 | 3년 감로(甘露) 원년 | 19년 | 3년 태평(太平) 원년 | ||
257년 | 2년 | 20년 | 2년 | ||
258년 | 3년 | 경요(景耀) 원년 | 3년 영안(永安) 원년 | ||
259년 | 4년 | 2년 | 2년 | ||
260년 | 5년 경원(景元) 원년 | 3년 | 3년 | ||
261년 | 2년 | 4년 | 4년 | ||
262년 | 3년 | 5년 | 5년 | ||
263년 | 4년 | 6년 염흥(炎興) 원년 | 6년 | ||
264년 | 5년 함희(咸熙) 원년 | 7년 원흥(元興) 원년 | |||
265년 | 2년 | 2년 감로(甘露) 원년 | 태시(泰始) 원년 | ||
266년 | 2년 보정(寶鼎) 원년 | 2년 | |||
267년 | 2년 | 3년 | |||
268년 | 3년 | 4년 | |||
269년 | 4년 건형(建衡) 원년 | 5년 | |||
270년 | 2년 | 6년 | |||
271년 | 3년 | 7년 | |||
272년 | 봉황(鳳凰) 원년 | 8년 | |||
273년 | 2년 | 9년 | |||
274년 | 3년 | 10년 | |||
275년 | 천책(天冊) 원년 | 함녕(咸寧) 원년 | |||
276년 | 2년 천새(天璽) 원년 | 2년 | |||
277년 | 천기(天紀) 원년 | 3년 | |||
278년 | 2년 | 4년 | |||
279년 | 3년 | 5년 | |||
280년 | 4년 | 태강(太康) 원년 |
4. 황건적의 난 이전
- 127년 영건(永建) 2년
- 128년 영건(永建) 3년
- 순상 탄생.
- 129년 영건(永建) 4년
- 132년 양가(陽嘉) 원년
- 133년 양가(陽嘉) 2년
- 채옹 탄생.
- 136년 영화(永和) 원년
- 137년 영화(永和) 2년
- 139년 영화(永和) 4년
- 이 즈음 동탁 탄생.
- 140년 영화(永和) 5년
- 갑훈 탄생.
- 141년 영화(永和) 6년
- 142년 한안(漢安) 원년
- 144년 건강(建康) 원년
- 145년 영희(永憙) 원년
- 146년 본초(本初) 원년
- 147년 건화(建和) 원년
- 가후 탄생.
- 148년 건화(建和) 2년
- 149년 건화(建和) 3년
- 사마방 탄생.
- 150년 화평(和平) 원년
- 151년 원가(元嘉) 원년
- 종요 탄생.
- 152년 원가(元嘉) 2년
- 153년 영흥(永興) 원년
- 154년 영흥(永興) 2년
- 이 즈음 여포 탄생.
- 155년 영수(永壽) 원년
- 156년 영수(永壽) 2년
- 157년 영수(永壽) 3년
- 158년 연희(延熹) 원년
- 159년 연희(延熹) 2년
- 160년 연희(延熹) 3년
- 161년 연희(延熹) 4년
- 162년 연희(延熹) 5년
- 이 즈음 장합 탄생.
- 163년 연희(延熹) 6년
- 164년 연희(延熹) 7년
- 165년 연희(延熹) 8년
- 166년 연희(延熹) 9년
- 167년 영강(永康) 원년
- 후한 환제가 재위 21년 만에 사망.
- 왕랑 탄생.
- 168년 건녕(建寧) 원년
- 169년 건녕(建寧) 2년
- 170년 건녕(建寧) 3년
- 171년 건녕(建寧) 4년
- 172년 희평(熹平) 원년
- 173년 희평(熹平) 2년
- 174년 희평(熹平) 3년
- 175년 희평(熹平) 4년
- 176년 희평(熹平) 5년
- 177년 희평(熹平) 6년
- 178년 광화(光和) 원년
- 179년 광화(光和) 2년
- 180년 광화(光和) 3년
- 181년 광화(光和) 4년
- 182년 광화(光和) 5년
- 183년 광화(光和) 6년
5. 본편
5.1. 184년 (광화 7년 ~ 중평 원년) - 황건적의 난
- 왕상 탄생. 곽여왕 탄생. 손익 탄생.
- 장각(張角)을 우두머리로 한 황건적의 난 발발.
- 손견의 완 토벌. 전국 각지에서 군웅들의 황건적 소탕이 일어나다.
- 황건적 궤멸.
- 장로를 우두머리로 하는 오두미교가 한중에서 봉기.
- 장연(張燕)이 이끄는 흑산적이 봉기하다.
- 12월 중평(中平)으로 개원.
5.2. 185년 (중평 2년) - 변장 · 한수의 난 발발
5.3. 186년 (중평 3년) - 조정의 반란 토벌
5.4. 187년 (중평 4년) - 한수가 조정에 투항하다
- 조비 탄생. 마량 탄생.
- 한수, 조정에 투항하다.
- 도겸의 황건적 격파.
- 장거 · 장순(張純)의 난 - 유비, 공을 세워 안희현위에 제수됨. 독우를 두들겨 패고 관직을 버림, 이후 도위 관구의와 함께 모병하던 중 하비에서 공을 세워 하밀승이 되었다가 관직을 버림.
- 우성(區星)의 난. - 손견에 의해 평정됨.
5.5. 188년 (중평 5년) - 유언, 익주에 자리를 잡다
- 손소 탄생. 육적 탄생. 종예 탄생.
- 장연, 후한에 투항하다.
- 유언, 익주자사로 임명되다.
- 마상 · 조지의 난 발발.
- 유언의 토벌.
- 서원팔교위 설치.
- 유우(劉虞)에 의해 장거의 난이 평정됨.
5.6. 189년 (중평 6년)[6] - 십상시의 난
- 조창 탄생. 능통 탄생. 제갈균 탄생. 장춘화 탄생.
- 순욱, 후한에 임관하다.
- 영제 붕어. 소제(少帝) 즉위.
- 4월 소제, 광희(光熹)로 개원.
- 하진이 건석을 숙청하자 환관에게 피살됨.(십상시의 난)
- 8월 소제, 소녕(昭寧)으로 개원. 동탁이 소제를 폐위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시키고 소제의 이복동생인 진류왕(陳留王) 유협(劉協)을 즉위시킴. 헌제(獻帝) 즉위.
- 9월 헌제, 영한(永漢)으로 개원.
- 12월 헌제, 중평으로 복원.
5.7. 190년 (초평 원년) - 동탁 토벌전 시작
5.8. 191년 (초평 2년) - 반동탁 연합 와해
- 신헌영 탄생.
- 연합군, 원소와 한복을 중심으로 조정을 비정통으로 규정, 대립황제로 유우를 추대하다. → 유우가 제후들의 추대를 한사코 사양하여 유우의 즉위는 무산됨.
- 공손찬, 연합에 속해있지 않았으나 유우 추대에 격렬히 반대해 기주 공격.
- 원술, 원소의 유우 옹립에 격렬히 반대해 낙양 진격 주장.
- 대곡 전투: 손견(勝) vs. 동탁(敗)
- 낙양 전투: 손견(勝) vs. 여포(敗)
- 제후들의 내분 → 반동탁 연합 (反) 해산.
- 원소가 공손찬과 밀약하여 공손찬이 기주를 침공하다.
- 안평 전투: 공손찬(勝) vs. 한복(敗)
- 유우가 헌제의 장안 탈출을 돕지만 원술과 공손찬의 방해로 무산되다.
- 공손찬이 사촌동생 공손월을 보내 원술과 연합.
- 원소가 한복을 협박하여 기주목의 자리를 양도받다. → 원소가 공손찬에게 발해군을 양도하기로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음.
- 양성 전투: 주앙(勝) vs. 손견(원술)· 공손월(공손찬)(敗)
5.9. 192년 (초평 3년) - 계교 전투와 동탁의 죽음
- 조식 탄생.
- 청주병: 조조가 복양의 황건적을 병사로 받아들이다.
5.10. 193년 (초평 4년) - 손견, 유우의 죽음과 제1차 서주 대학살
- 태복 조기의 중재로 공손찬과 원소 화친. → 흑산의 장연, 위군의 병사들과 내응해 태수를 죽이고 업을 점령하다.
- 척구 전투: 원소(勝) vs. 우독(장연 휘하의 흑산적)(敗)
- 업 전투: 원소(勝) vs. 유석(흑산적)(敗)
- 거용 전투: 공손찬(勝) vs. 유우(敗) → 공손찬이 유우를 처형함.
- 진류 전투: 조조 · 원소(勝) vs. 원술(敗)
- 봉구 전투: 조조(勝) vs. 원술 · 우독 (흑산) · 흉노(敗)
- 발간 전투: 조조 · 원소(勝) vs. 도겸(敗)
- 흑산 전투: 원소(勝) vs. 장연(흑산)(敗)
- 팽성 전투 / 제1차 서주대학살(無): 조조 vs. 도겸 · 유비 · 전해 · 공융
- 오군태수 성헌(盛憲)이 병 중인 것을 틈타 허공(許貢)이 오를 점거함. 휘하의 고대(高岱)가 성헌을 허소(許昭)에게 숨겨주고 도겸에게 찾아가 피눈물로 원병을 청함. 성헌과 고대는 강남을 탈출함.
5.11. 194년 (흥평 원년) - 제2차 서주대학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하다
- 주거 탄생.
- 헌제, 흥평(興平)으로 개원.
- 상산 전투: 원소 · 여포(勝) vs. 장연(흑산적)(敗)
- 여강 전투: 손책(원술)(勝) vs. 육강(敗)
5.12. 195년 (흥평 2년) - 헌제의 장안 탈출. 손책의 거병.
5.13. 196년 (건안 원년) - 여포의 서주 탈취. 조조의 헌제 보위
- 허소가 유요와 함께 회계에서 방향을 틀음. 유표가 임명한 태수 제갈현(제갈량의 숙부)과 조정의 태수 주호가 대립하는 예강으로 이주함.
- 유요가 주호를 돕기 위해 착융(작융)을 파견함. 허소가 이를 우려함.
- 작융이 주호를 돕고 제갈현을 몰아내나 주호를 살해함. 유요와 허소가 예장으로 진군함.
- 허소가 예장(豫章)에서 향년 45세로 사망.[15]
- 유요가 작융과 싸워 한 번 패하고 다음 싸움에서 작융을 죽임.
5.14. 197년 (건안 2년) - 완에서 조조 대패하다.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다
- 유요가 병으로 사망함. 향년 42세.
- 손책이 시신을 거두고 후이 장사지내며 식솔을 거둠. 손책의 강동 평정.
- 완 전투: 장수(친 유표 세력)(勝) vs. 조조(敗)
5.15. 198년 (건안 3년) - 서주 공방전.
5.16. 199년 (건안 4년) - 여포의 죽음. 공손찬, 원술이 멸망하고 유비가 허도를 탈출하다
5.17. 200년 (건안 5년) - 관도대전. 손책의 죽음
- 관도대전 발발
5.18. 201년 (건안 6년) - 관도대전 전후 상황
5.19. 202년 (건안 7년) - 원소 사망, 원가 형제의 단결과 박망 전투.
- 강유 탄생.
- 원소 병사.
- 1차 여양 전투(無): 조조 vs. 원상 · 원담
- 평양 전투: 마초(마등) · 종요(조조)(勝) vs. 곽원(원상)(敗)
- 박망 전투(연의의 박망파 전투)[19]: 유비(유표)(勝) vs. 하후돈(조조)(敗)
5.20. 203년 (건안 8년) - 원가의 분열
5.21. 204년 (건안 9년) - 원상이 업에서 패배하다. 조조의 기주 평정
5.22. 205년 (건안 10년) - 원담이 최후를 맞이하다. 조조의 청주 평정
5.23. 206년 (건안 11년) - 조조의 병주 평정
- 왕준 탄생.
- 호관 전투: 조조(勝) vs. 고간(高幹)(敗)
- 병주의 고간군 전멸.
- 조조가 병주를 평정하다.
- 마둔 전투: 손권(勝) vs. 산월(敗)
- 태사자가 이 해에 남쪽의 반란을 토벌하러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
5.24. 207년 (건안 12년) - 삼고초려, 원가의 멸망과 조조의 남정
- 유선 탄생.
- 강하 전투: 황조(유표) vs. 손권(無)
- 유성 전투: 조조(勝) vs. 답돈(오환족. 원가를 지원)(敗)
5.25. 208년 (건안 13년) - 유표의 죽음. 적벽대전
- 사마사 탄생.
- 조조가 강릉을 점령하고 형주의 내정을 재편하다.
- 제갈량의 유세 - 손권의 탁자(절단) 결의. 손-유연합이 결성되다.
- 가후가 장기전을 제안했으나 조조가 이를 거절하다.
- 조조의 연환계.[23]
5.26. 209년 (건안 14년) - 유비의 형주 남부 획득과 장료의 합비 공방전
- 관로 탄생. 손등 탄생. 하후현 탄생. 부하 탄생.
- 여강 전투: 하후연(조조) (勝) vs. 뇌서(敗)
- 뇌서가 유비에게 투항하다.
- 남군 전투(無): 주유(손권) · 관우(유비) vs. 조인(조조)
- 이릉 전투(無): 주유(손권) vs. 조인(조조).[24]
- 유비의 형남 4군 정벌.
- 전부 항복.
- 유비와 손권의 이복 여동생 손부인(孫婦人)의 정략결혼.
5.27. 210년 (건안 15년) - 주유의 죽음과 방통의 출사
5.28. 211년 (건안 16년) - 유비 입촉
- 여항 전투: 하제(손권)(勝) vs. 낭치(敗)
5.29. 212년 (건안 17년) - 조조와 마초의 대립. 유비가 유장(劉璋)에게 이빨을 드러내다
- 장굉의 사망.
5.30. 213년 (건안 18년) - 조조, 위공에 등극하고, 마초는 다시 봉기하다.
- 손려 탄생.
- 조조가 위공(魏公)에 등극하다.
5.31. 214년 (건안 19년) - 유비가 촉(蜀)을 평정하다.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다
5.32. 215년 (건안 20년) - 제2차 합비 공방전 발발. 장로가 조조에게 투항하다
- 조조가 강족 · 저족 정벌을 시작하다.
- 유비와 손권의 형주 분쟁 일어나다.
- 조조의 한중 침공, 장로의 파서 후퇴를 들은 유비와 손권 화친하다.
- 유비가 강하, 장사, 계양 3군을 영구히 손권에게 이양하고 손권은 영릉을 영구 반환하여 상수를 경계로 형주 분할, 영토 분쟁이 종결나다.
- 한중 전투: 조조(勝) vs. 장로(敗)
5.33. 216년 (건안 21년) - 조조가 위왕(魏王)에 책봉되다
- 단양 전투: 하제 · 육손(손권)(勝) vs. 우돌(敗)
5.34. 217년 (건안 22년) - 조비가 세자로 임명되다
5.35. 218년 (건안 23년) - 조조의 내환
5.36. 219년 (건안 24년) - 한중 공방전과 번성 공방전
5.36.1. 정군산 전투와 한중 공방전
- 완 전투: 조인(조조)(勝) vs. 후음(敗)
- 정군산 전투: 유비(勝) vs. 하후연(조조)(敗)
- 정사에서는, 유비가 하후연을 정군산으로 꾀어낸 다음 장합을 습격해서 하후연이 장합을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약해진 하후연군을 황충에게 기습하게 하여 하후연을 격퇴시킴.
- 하후연이 전사하다.
- 육적 사망. 향년 42세.
- 손정의 증손자이자, 손호의 손자인 손공의 아들
훗날의 막장남.손준이 탄생하다. - 위풍(魏諷)이 위위, 진의와 난을 일으키나 진압되다(위풍의 난). 위풍을 추천한 종요 등이 면직되다.
5.36.2. 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하다
5.36.3. 형주 공방전 - 관우가 최후를 맞이하다
- 1차 번성 전투: 관우(유비)(勝) vs. 조인, 우금(조조)(敗)
- 2차 번성 전투: 조인, 서황(徐晃)(조조)(勝) vs. 관우(敗)
5.37. 220년 (황초 원년/건안 25년) - 조조의 죽음과 조비의 위나라 건국. 한의 멸망(위나라 건국)
- 서천 전투: 소칙(위)(勝) vs. 황화 · 장진(敗)
- 황충 사망.
5.38. 221년 (황초 2년/장무 원년/건안 26년) - 유비의 촉한 건국. 그리고 오 정벌을 준비하다.(촉한 건국)
- 조인의 대장군 취임.
- 조비가 견씨에게 자결을 명해 죽게 함.
5.39. 222년 (황초 3년/장무 2년/황무 원년) - 이릉대전
- 마초가 병사하다.
- 장료, 병사하다.
- 황원이 유비에게 반기를 들다가 패배.
5.40. 223년 (황초 4년/건흥 원년/황무 2년) - 유비의 죽음과 세대교체
- 임공 전투: 진홀(유비)(勝) vs. 황원(敗)
- 3월 19일, 대장군 조인 사망. 향년 56세.
- 진종이 손권에게 반기를 들다.
- 기춘 전투: 하제(오)(勝) vs. 진종(위)(敗)
- 8월, 촉의 사자로 파견된 등지가 촉오 동맹을 성사시키다.
5.41. 224년 (황초 5년/건흥 2년/황무 3년) - 조비의 2차 오 공격.
- 조비의 2차 오 공격 실패.
- 주치 사망. 향년 68세.
5.42. 225년 (황초 6년/건흥 3년/황무 4년) - 공명의 남만 정벌
- 오나라의 첫 승상인 손소(孫邵)의 죽음. 향년 62세. 고옹이 뒤를 이음.
- 청주의 이성군(산동반도 지역)에서 채방의 난이 일어나 태수 서기(徐箕)를 죽이고 당자(唐咨)를 우두머리로 삼음. 위나라에서 교위 임복을 통해 진압하자 당자가 오나라에 투항함.
- 종회 탄생.
할애비가 능력도 좋아.
5.43. 226년 (황초 7년/건흥 4년/황무 5년) - 조비의 죽음
- 5월, 문제(文帝) 조비 사망. 태자인 조예(曹叡)가 계승.
- 사마의를 옹주/양주의 도독으로 삼음.
- 손권이 강하, 양양(襄陽)을 공격했으나 실패함.
- 육항(陸抗) 탄생.
- 오, 교주에서 광주(廣州)를 분리함.
5.44. 227년 (태화 원년/건흥 5년/황무 6년) - 출사표와 제1차 북벌
- 위의 명제(明帝) 조예, 태화(太和) 개원.
- 3월 공명이 출사표를 올리고 한중으로 진군. 제1차 북벌이 개막하다.
- 공명이 기산으로 진군. 남안, 안정, 천수 3군을 진동시킴. 하후무 패배.
- 서황이 병사하다.
- 사마의가 복직되다.
- 이 해에 사망한 석성후(石城侯) 한당의 아들인 한종이 12월에 한당의 시신이 든 관을 수레에 싣고 위에 투항. 위에서 장군 및 광양후(廣陽侯)에 봉해짐.
5.45. 228년 (태화 2년/건흥 6년/황무 7년) - 석정 전투, 가정의 패배와 제2차 북벌
- 11월, 위나라의 왕랑이 병사하다.
- 12월 제2차 북벌. 공명이 진창을 공격했으나 학소가 이를 막아내고 공명을 퇴각시키다.
- 오나라의 신양정후 낙통 사망. 향년 38세.
5.46. 229년 (태화 3년/건흥 7년/황룡 원년) - 손권의 오나라 건국. 제3차 북벌, 조운의 병사(오나라 건국)
- 정사에서는 학소 그냥 병사.
- 조운이 병사하다.
5.47. 230년 (태화 4년/건흥 8년/황룡 2년) - 위의 역습
- 여름, 위가 촉을 공격하나 장맛비로 철수하다.
- 7월, 공명, 위연(魏延)으로 하여금 강족을 공격케 하여 후방의 위험을 없애다.
- 때 맞춘 손권의 합비 공격, 또 실패.
- 오의 장온 사망. 향년 37세.
- 위의 상국 종요 사망. 향년 80세.
5.48. 231년 (태화 5년/건흥 9년/황룡 3년) - 제4차 북벌과 장합의 죽음
- 2월, 공명, 두 번째 기산 진군(제4차 북벌).
5.49. 232년 (태화 6년/건흥 10년/가화 원년) - 손권이 가화 개원
- 오대제(吳大帝) 손권이 가화(嘉禾) 개원.
- 손권의 차남 손려(孫慮)가 손권에게서 부절(假節)을 받고 관소를 열었으며 반주(半州)를 다스렸으나 스무살의 나이로 사망함.
- 설종이 손권의 요동 정벌 계획을 만류하여 계획이 중지됨.
- 전예를 해로, 왕웅을 육로를 통해 요동을 공격했으나 성과 없이 철수했다가 전예가 오나라로 귀환하는 사신 일행을 공격해 격파함.
5.50. 233년 (청룡 원년/건흥 11년/가화 2년) - 청룡 개원
- 손권이 직접 합비 공격에 나서고 전종이 육안 공격으로 거들었으나 모두 패퇴함.
- 공손연이 손권에게 투항을 표하자 손권은 이에 낚여 장미, 허안을 보냄.
- 습속이 다른 강족 등 이민족의 특성을 무시한 장익의 정책에 반발한 이민족의 수령 유주(劉冑)의 난이 일어남.
- 장익이 내강도독에서 물러나고 마충이 대신 부임하여 유주를 베고 감군(監軍), 분위장군(奮威將軍), 박양정후(博陽定侯)에 봉해짐. 건녕 등의 오지의 현에 직접 군을 이끌고 가 월수 등을 회복함.
- 사마준 탄생.
5.51. 234년 (청룡 2년/건흥 12년/가화 3년) - 오장원에 지는 별, 제갈량과 헌제의 죽음
- 2월, 공명이 2년 만에 기산으로 나아가 위수, 북원을 거쳐 오장원 진군.
- 후주(後主) 유선이 장완을 상서령에 임명하고 도호를 더함. 비의는 후군사에 임명됨.
5.52. 235년 (청룡 3년/건흥 13년/가화 4년) - 장완이 대장군에 임명되다
- 귀양간 양의가 자살하다.
- 만총이 군사를 보내 강북에서 밭농사를 짓는 수천 명의 오군을 기습해 격파하고 곡물을 불태우면서 돌아옴.
5.53. 236년 (청룡 4년/건흥 14년/가화 5년) - 사마염 탄생
- 장소 자포 사망. 향년 81세. 시호는 문후(文侯).
- 사도 동소 공인 사망. 향년 81세.
5.54. 237년 (경초 원년/건흥 15년/가화 6년) - 공손연이 연왕(燕王)을 자칭하다
5.55. 238년 (경초 2년/연희 원년/적오 원년) - 공손연이 토벌되고 촉, 오가 각각 개원하다
- 8월, 대제 손권이 적오(赤烏) 개원.
5.56. 239년 (경초 3년/연희 2년/적오 2년) - 조예 사망
- 장완이 대사마로 승진하면서 부절 등 군사 업무를 비의에게 물려줌.
5.57. 240년 (정시 원년/연희 3년/적오 3년) - 조방 즉위
- 조방(曹芳)이 뒤늦게 정시(正始) 개원. 조상(曹爽)과 사마의가 후사를 맡음.
- 청주자사 왕릉이 정동장군 가절을 받고 도독양주제군사에 봉해짐.
- 한가군의 만족을 정벌하다가 상총이 전사함.
- 남만(南蠻)의 반역을 장억이 토벌함.
5.58. 241년 (정시 2년/연희 4년/적오 4년) - 손등(孫登)의 죽음, 오의 재북벌
- 4월, 오가 세 방향(번성, 수춘 등)으로 위를 다시 공격.
- 주연군이 번성을 공격하다. 주환의 아들 주이와 여거 등이 번성 공략에 참전하여 외성 공략에 성공하나 위의 형주자사 호질(胡質)과 사마의가 이들을 퇴각시킴.
- 오의 장휴, 고승이 수춘을 공격하나 위군의 진격만 저지하고 물러남.
- 오의 전종이 회남의 제방 작피(芍陂)를 공격하나 왕릉, 손례와 대치하다 서로 물러남.
- 윤6월, 제갈근 사망. 향년 67세. 직위는 셋째 제갈융이 계승.
- 관녕 유안 사망. 향년 84세.
5.59. 242년 (정시 3년/연희 5년/적오 5년) - 감택이 태사태부를 겸하다. 만총이 사망하다
- 중서령 감택이 태사태부를 겸하며 태자 손화, 노왕(魯王) 손패(孫覇)를 가르침.
- 240년 선조상서에 오른 설종이 태자소부로 봉해지면서 왕자들을 가르침.
- 주연이 조중을 공격함. 호질의 장수 포충이 저항했지만 주연의 공세로 결국 패퇴함.
- 만총 백녕 사망. 태위로 추증, 시호는 경후(景侯).
- 고구려 동천왕이 서안평을 공격하여 점령함.
5.60. 243년 (정시 4년/연희 6년/적오 6년) - 문흠의 패퇴, 고옹, 감택, 설종의 죽음
- 봄, 설종 사망.
- 11월, 승상에 오른 지 19년 만에 고옹 사망. 향년 75세.
- 11월, 감택이 중년의 나이로 사망. 이로써 태자의 후견인 격이 두 명 모두 사망.
- 비의가 장완이 역임했던 대장군에 취임하다.[39]
- 강유, 진서대장군이자 옹주자사로 승진.
5.61. 244년 (정시 5년/연희 7년/적오 7년) - 흥세 전투와 오에서의 후계 분쟁
5.62. 245년 (정시 6년/연희 8년/적오 8년) - 육손의 분사
5.63. 246년 (정시 7년/연희 9년/적오 9년) - 장완과 동윤의 죽음
5.64. 247년 (정시 8년/연희 10년/적오 10년) - 전종, 보즐의 죽음
5.65. 248년 (정시 9년/연희 11년/적오 11년) - 왕평 사망
5.66. 249년 (가평 원년/연희 12년/적오 12년) - 고평릉 사변과 강유의 첫 북벌[42]
- 4월에 조방이 가평(嘉平)으로 개원.
- 이 해부터 사공 왕릉과 연주(沇州)자사 영호우(왕릉의 외조카)가 조조의 막내인 초왕 조표(생몰년도 195년 ~ 251년)를 옹립해 수도를 허창으로 옮기려 계획함.
- 하지만 12월, 영호우(영호준)의 죽음으로 유야무야되고 그해 12월 9일 사마의는 왕릉을 태위에 임명함.
- 위장군 강유의 첫 북벌이 실패로 돌아감.
5.67. 250년 (가평 2년/연희 13년/적오 13년) - 강유의 2차 북벌과 오나라의 태자교체
- 정동장군(청주/서주 방면) 호질이 사망.
5.68. 251년 (가평 3년/연희 14년/태원 원년) - 왕릉의 역모와 사마의의 죽음
- 왕릉의 역모가 발각됨.
- 오나라가 도수의 물을 막자 왕릉이 군사를 요청하나 사마의가 듣지 않음.
- 왕릉이 재 반란을 계획하고 후임 연주자사 황화에게 연락함.
- 하지만 황화가 양홍과 함께 사마의에게 밀고하고, 사마의는 왕릉을 사면하고 군을 몰고 내려옴.
- 왕릉은 저항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결박하여 인수를 바침. 사마의는 인수를 돌려주고 왕릉을 낙양으로 보냄.
- 왕릉이 낙양에 도착하기 전에 들킬 것이 두려워 음독자살함. 사마의가 수춘에서 전말을 알게 되자 영호우의 부하로 연락망으로서 활동했던 장식이 자수.
- 해당 관련자(왕릉, 영호우)들만 부관참시되고 삼족을 멸함. 조표 역시 사사됨.
- 5월, 대제 손권이 태원(太元) 개원.
- 상서령 여예가 사망함. 진지는 시중에 상서령을 더함(시중 수守 상서령). 진군장군을 더함.
- 왕기, 진태가 오를 공격해 격파시켜 수천 명을 항복시킴.
5.69. 252년 (가평 4년/연희 15년/건흥 원년) - 3세들의 전쟁 시작. 손권이 죽자 제갈각이 위를 치고, 비의는 부를 열다
- 손권이 2월 신봉(神鳳)으로 연호를 바꾸나 4월 사망. 후사를 제갈각, 손준 등이 맡음.
- 태자소부/중소령 손홍은 손권 사망 직후 제갈각 암살 계획을 세우나 손준이 막음.
- 회계왕(會稽王) 손량이 제위를 계승. 건흥(建興) 개원. 제갈각이 보좌.
- 10월, 제갈각이 동흥에 성을 쌓고 북벌을 준비함.
- 11~12월, 사마사가 양주자사/진동장군 제갈탄을 보내 오의 동흥을 공격하나 제갈각의 반격으로 실패함.
- 제갈각이 선봉 정봉(丁奉), 당자와 후발대 여거[44], 전서를[45] 파견해 물리침. 위의 선봉장인 한당의 아들 한종이 붙잡혀 처형됨.
- 환계의 아들인 낙안태수 환가가 진남장군 주이의 부교 공격으로 얼음물이 깨져 익사함.
- 전예 사망. 향년 82세.
5.70. 253년 (가평 5년/연희 16년/건흥 2년) - 비의, 제갈각 암살되다
- 승전에 교만해진 제갈각이 병력 20만을 일으켜 신성으로 북벌을 시도하나 진동장군 관구검과 장특에 막혀 실패함.
5.71. 254년 (정원 원년/연희 17년/오봉 원년) - 조방은 폐위되고 강유는 3차 북벌을 일으키다
- 손량이 오봉(五鳳) 개원.
- 독중외군사의 지위를 얹은 강유가 농서로 진군하여 적도현의 이간의 항복을 받고 양무를 포위해 정촉호군을 괴멸시키고 대장 서질(徐質)을 베다(3차 북벌).
- 이때 강유는 하관, 적도, 임조의 세현을 얻었으며 그 백성들을 빼앗아 촉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정사)
- 여름의 홍수로 오나라의 민심이 흉흉해짐.
- 10월, 애제 조방이 사마사에 의해 폐위되고 제왕(齊王)으로 강등됨.
5.72. 255년 (정원 2년/연희 18년/오봉 2년) - 관구검의 난과 강유의 4차 북벌
- 정월, 사마사의 전횡에 분개한 관구검과 문흠이 수춘에서 난을 일으킴.
- 연주자사 등애를 공격했던 문흠이 패배함.
- 1월 30일, 거기장군 곽회가 사망. 이로써 문흠의 계획이 수포가 됨. 곽회가 대장군에 추증됨.
- 농성하던 관구검의 야반도주에 따라 군이 와해됨. 관구검은 오나라로 도주하다 병졸 장속의 활에 사망.
- 때를 틈탄 손준의 북벌이 실패함.
- 2월, 손준의 오군은 고파에서 장반에게 패함. 유찬, 손릉, 장수 등 전사.
- 3월, 손준이 주이로 하여금 안풍을 치게하나 이기지 못함. 손준이 후퇴함.
- 여거가 추격한 위나라의 장수 조진(曹珍)[48]을 고정(高亭)에서 물리침.
5.73. 256년 (감로 원년/연희 19년/태평 원년) - 강유의 5차 북벌과[51] 손준, 여거의 죽음
- 여름, 다시 대장군 강유가 단곡(段谷)을 공격하나, 적도, 농서, 남안(무성산) 및 기산을 미리 방비해둔 등애의 승리로 끝남(5차 북벌).
- 무성산 전투(無): 등애 vs. 강유
- 상규전투: 등애 vs. 강유 - 강유가 회전 시도에 실패하자 후퇴함.
- 한중도독 호제(湖濟/胡濟)는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고(혹은 못했고), 강유는 여기서 20명의 부장을 잃음.
- 등애가 등후(鄧侯)에 봉해지고 진서장군/도독농우제군사에 임명됨.
- 강유가 스스로의 직위를 대장군에서 후장군으로 깎음.
- 하후패가 이 싸움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256~257년 사이에 사망.)
- 6월, 조모가 감로(甘露) 개원.
- 8월, 손준이 정북대장군 문흠의 계책을 통해 거기장군 유찬(劉纂), 진남장군 주이, 전장군 당자 등으로 청주, 서주로의 북벌을 계획하나 여거가 따르지 않음.
- 손준 병사. 향년 38세. 손준의 뒤를 손침이 이어 승상과 대장군을 계승함.
- 10월, 손량이 태평(太平) 개원.
5.74. 257년 (감로 2년/연희 20년/태평 2년) - 제갈탄의 난과 강유의 6차 북벌
- 낙곡 전투: 등애(勝) vs. 강유(敗)
- 강유, 다시 대장군에 오름.
5.75. 258년 (감로 3년/경요 원년/영안 원년) - 손휴의 즉위와 손침의 죽음
5.76. 259년 (감로 4년/경요 2년/영안 2년) - 조모의 잠룡시
- 육항이 (일시적으로) 보협의 자리를 물려받아 서릉도독이 됨. 진군장군에 봉해짐.
- 조모가 잠룡시(濳龍詩)를 써 사마소를 비판함.
- 울지해, 12월에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양맥에서 대파되어 8천 명을 잃고 철수함.
5.77. 260년 (경원 원년/경요 3년/영안 3년) - 고귀향공 조모 참살, 진태의 죽음.
- 옹주자사 진태가 사망함.
- 오나라의 소신이 거짓 항복을 시도하자 사마소의 명을 받고 석포가 이를 대비함.
5.78. 261년 (경원 2년/경요 4년/영안 4년) - 설후가 황호의 망국적 전횡을 예견하다
- 설종의 아들 오관중랑장 설후가 손침의 주살을 축하하는 촉나라의 답례 사신으로[54] 성도에 감. 황호가 망국을 일으킬 거라 예언함(연작처당).
- 오의 등유, 이광 등이 거짓 투항을 시도하자 왕기 등이 이를 의심해 공격하려 했지만, 등유 등이 거짓 항복을 하지 않음.
5.79. 262년 (경원 3년/경요 5년/영안 5년) - 강유의 마지막 북벌[55]
5.80. 263년 (경원 4년/염흥 원년/영안 6년) - 촉한멸망전 (촉한 멸망)
- 후주 유선, 마지막 연호 염흥(炎興) 개원.
불꽃
5.81. 264년 (함희 원년/원흥 원년) - 나헌의 분전, 폭군 손호의 즉위, 성도 대학살
- 1월 18일, 강유는 종회의 병사를 이끌어서 최후의 분전을 행함. 5~6명을 손수 죽이는 분전을 펼치나 사망함. 종회는 뒤따라서 처형당함.
- 7월, 호열이 나헌을 구원하기 위해서 2만의 보병과 기병으로 서릉을 공격하여 결국 오나라 군사는 철수.[57]
- 손휴가 위나라의 공격을 두려워한 것이 병이 되어 사망.
- 사마염이 위나라의 대장군에 봉해짐.
- 11월, 장포와 복양흥이 실각 후 살해됨.
- 곽익이 여흥을 도와 교지, 일남, 구진의 3군을 평정하고 열후에 봉해짐.
- 여흥이 공조 이통에게 살해됨. 건녕의 찬곡(爨穀)이 뒤를 이음.
- 찬곡이 사망함. 파서의 마융이 뒤를 이음.
- 잇달아 마융이 사망함.
5.82. 265년 (함희 2년/태시 원년/감로 원년) - 사마소의 죽음과 사마염의 서진 건국. 위나라의 멸망(진나라 건국)
- 진왕 사마소 사망. 향년 54세. 세자 사마염이 왕위를 물려받음.
- 함희 2년 12월, 진왕 사마염이 조환을 겁박해 선양을 받음. 위나라가 멸망하고 진이 건국됨.
- 이 시기, 익주의 동부가 양주(梁州)로 분리된 것으로 추정. 이후, 촉(蜀)의 남부가 영주(寧州)로 분리됨.
- 오나라의 말제 손호가 보천의 건의에 따라 건업에서 무창(과거 강하)으로 천도함.
5.83. 266년 (태시 2년/보정 원년) - 손호의 숙청과 진오 단교, 곽익의 교지 원정
- 진-오의 단교.
5.84. 267년 (태시 3년/보정 2년) - 손호가 다시 건업으로 환도
- 손호가 건업으로 환도함.
- 손호가 수장작대장 설후에게 침전의 건설을 명함.
- 우승상 만욱이 파구에 주둔함.
5.85. 268년 (태시 4년/보정 3년) - 곽익의 교주 원정
5.86. 269년 (태시 5년/건형 원년) - 진주 신설, 설후의 교지 원정
- 옹주, 양주(凉州), 양주(梁州)를[59] 잘라내서 진주(秦州)를 설치하고 호열을 자사로 삼았다. 일찍히 등애가 선비족을 옹주와 양주의 주민들과 섞여 살기로 했는데 조정에선 이가 오래되면 문제가 될까봐 걱정하였으나 호열이 서방의 사정이 밝은 것을 알고 이를 가만히 두었다.
- 비슷한 시기 유주의 일부가 평주(平州)로 분리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 후한 13주에 옹주(雍州), 광주(廣州), 양주(梁州), 영주(寧州), 진주(秦州), 평주(平州)가 추가되면서 진은 총 19주가 된다.
- 육개 사망. 향년 72세.
5.87. 270년 (태시 6년/건형 2년) - 선비족 독발수기능의 등장
- 1월, 오의 대장군 정봉이 진나라의 와구(渦口)를 공격하나 공략에 실패함.
- 대도독 시적(주적) 사망. 육항이 승계하고 강릉에 주둔하여 형주를 총괄하다.
- 육항이 시무 17개조를 상소하나 손호는 받아들이지 않음.
- 6월, 만곡퇴전투: 독발수기능(勝) vs. 호열(敗). 호열 전사.
- 양주 전투 (無): 두예 vs. 독발수기능[60]
- 양주 전투[61]: 독발수기능(勝) vs. 석감(敗)
- 능강장군 나헌 사망. 안남장군으로 추증받고 열후(烈侯)라는 시호를 받음. 아들 나습은 능강장군을 이어받고, 아버지의 부곡을 이끌게된다.
5.88. 271년 (태시 7년/건형 3년) - 진과 오의 교지 쟁탈전, 독발수기능의 선전
- 설후의 구진, 교지 쟁탈전.
- 청산전투: 독발수기능(勝) vs. 견홍(敗). 견홍 전사.
- 독발수기능의 난으로 진나라가 근심에 빠지자 임개와 유순이 가충을 독발수기능을 토벌하는 역할로 천거하였기에 가충은 도독진량이주제군사로 임명됨.
- 지방으로 파견되면 권력을 잃을 게 걱정되던 와중 가충이 진주 지역으로 가려고 하니, 순욱(荀勗)한테 기책을 물었는데 풍담과 함께 가남풍과 사마충의 혼인을 꾀하니 가충은 옛날의 직책을 그대로 맡게 되었음.
- 유선, 낙양에서 사망. 향년 64세.
- 오나라의 대장군 정봉(丁奉) 사망.
- 손호가 정봉의 가족들을 임천으로 낙향보냄.
5.89. 272년 (태시 8년/봉황 원년) - 양호와 육항의 형주 공방
- 장홍이 황보안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왕준이 진압함.
- 왕준의 오 정벌 진언이 받아들여짐.
- 보천이 진에 투항함. 육항과 서릉에서 격돌하여 전사.
- 만욱이 자결함.
- 연(沇)이 뒤를 이어 오나라의 승상에 오른 것으로 추정.
5.90. 273년 (태시 9년/봉황 2년) - 대도독 육항
5.91. 274년 (태시 10년/봉황 3년) - 육항의 죽음
- 여름, 육항이 사망. 향년 48세. 그의 병사를 아들 육안, 육경, 육헌, 육기, 육운한테 나누어 거느리게 함.
- 폐제(애제) 조방이 폐위된 지 20년 만에 사망. 향년 43세.
5.92. 275년 (함녕 원년/천책 원년) - 누현이 숙청되어 자결하다.
5.93. 276년 (함녕 2년/천새 원년) - 손호의 봉선국산비
- 손호가 봉선국산비를 세움.
- "승상 연(沇), 태위 구(璆), 대사도 섭(燮)"의 이름이 남겨짐.
- 양호가 오나라 침공을 진언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5.94. 277년 (함녕 3년/천기 원년) - 무너지는 오나라
- 오의 태의, 하상 등이 진에 투항.
- 오의 하구독 손신이 강하, 여남의 백성들을 몰살시키고 약탈함.
- 오의 사직중랑장 장숙이 주살됨.
5.95. 278년 (함녕 4년/천기 2년) - 세상을 떠난 양호, 오의 명장 장정을 격파한 두예
- 손호가 장상(張尙)을 주살함.
- 무위 전투: 약라발능(勝) vs. 양흔(敗). 양흔 전사.
- 왕혼(王渾)이 환성을 격파함.
- 양호가 사망하면서 두예를 천거함.
- 서릉 전투[62] 두예(勝) vs. 장정(敗)
- 오나라의 명장으로 이름난 장정은 이 패배를 수치로 여겨서 보고하지 않음. 이 사실을 두예의 표문으로 알게된 손호는 서릉독 장정을 무창감 유헌으로 교체한다.
계획대로
5.96. 279년 (함녕 5년/천기 3년) - 서진이 오나라 정벌을 개시하다
5.97. 280년 (태강 원년/천기 4년) - 오나라 정벌, 손호의 항복. (오나라 멸망), (서진의 삼국 통일)
- 서진이 오의 형주를 평정함.
- 건업의 오 말제 손호가 왕준에게 항복하여 오나라 멸망, 서진의 삼국 통일.
6. 삼국통일 이후 - 팔왕의 난과 오호십육국시대의 서막
- 286년 (태강 7년)
- 11월 2일, 표기장군 사마준 사망. 향년 54세.
- 290년 영희 원년
- 291년 원강 원년
- 300년 영강 원년
- 301년 영녕 원년
- 조왕 사마륜이 황위를 찬탈하자 제왕 사마경이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潁), 하간왕(河間王) 사마옹과 함께 사마륜과 그 일당을 주살하고 사마충을 복위시킴.
- 302년 태안 원년
- 제왕 사마경의 전횡에 하간왕 사마옹과 장사왕(長沙王) 사마애(司馬乂)가 사마경을 축출하고 그 일당을 주살.
- 진류왕 조환 사망.
- 304년
- 하간왕 사마옹과 성도왕 사마영이 장사왕 사마애를 주살.
- 306년
- 307년
- 혜제 사마충 사망. 태제 예장왕 사마치(司馬熾)가 회제(懐帝)로 즉위.
- 311년
- 313년
- 장안에서 민제(閔帝) 사마업(司馬鄴)이 임시정부를 수립.
7. 관련 문서
[1] 1996년에 발굴된 죽간, 이른바 '주마루 오간'에 의해 오가 황무 연호를 독자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222년까지 계속해서 건안 연호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2] 관우와 장비의 생몰년은 제각각이며, 보통 관우가 유비와 1년 전후를 기준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3] 장비가 유비보다 4살 연하(즉 165년)라는 기록이 있다.[4]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후 노국상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장료의 나이는 28세였다고 한다.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시기는 196년이고 궤멸된 시기는 198년이므로, 생년은 169년 ~ 171년 중 하나다.[5] 연의에서 손견이 휘하로 진압함.[6] 1~4월은 중평 6년이었고,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한 4월에 광희(光熹)로 개원했고, 다시 8월에 소녕(昭寧)으로 개원했다. 9월에 헌제가 즉위하면서 또 다시 영한(永漢)으로 개헌했다. 12월에 광희, 소녕, 영한을 모두 폐지하고, 중평으로 복구했다. 그러므로 공식 기록에선 이 해는 그냥 중평 6년이 된다.[7] 원기는 원소의 이복형이자 사촌형이며 원술에게는 친형제가 된다. 그 외에도 원소의 생모와 누이가 살해당했다.[8] 태사자가 연의에서 첫 등장하는 부분이다.[9] 동탁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려(혹은 탄식을 해) 왕윤에게 죽었다는 것은 후한서의 기록이나 배송지에 의해 반박되었다.[10] 정사에 따르면 마등이 이각과의 동맹을 제안했으나 이각이 거절하자 이들이 손을 잡고 침공을 했다고 전한다. 이각 오오 이각 오오 가장 손해를 본 건 유언으로, 암살을 시도한 유범이 죽고 차남 유탄은 처형당했다.[11] 연의에서 손책이 옥새를 담보로 원술에게 병력을 빌려 강동평정에 나선 것으로 되었다.[12] 연의에서 이때 손책이 태사자를 얻는 것으로 나온다.[13] 주치전을 따르면 194년의 일이나, 자치통감에서는 이 해의 일로 기술했다. 다만 이렇게 하면 허소의 생몰년과 맞지 않게 된다.[14] 연의에서 순서가 반대로 엄백호가 왕랑보다 먼저 공격당한다. 덕왕부터 선빵[15] 허소가 사망한 해를 195년으로 본다면 허소가 엄백호를 숨겨 주었다는 기록과 맞지 않다. 만약 허소가 195년에 죽었다면 주치전의 기록대로 강동정벌이 1년 앞당겨져야 한다.[16] 혹은 충(沖)이라고도 한다. 후한서 집해의 내용으로 연의에서 '성(成)'이라고 되어있다. 물론 연의가 틀린 것이다. 같은 이유로 연의에서 198년에 황제 참칭과 서주 전투(원술 vs. 여포), 199년에 수춘 전투를 벌인다고 나오나 역시 역사와는 다르다.[17] 연의에서 형장에서 관우의 중재로 살아남는다.[18] 견성 전투랑은 어느 쪽이 먼저인지 확실치 않음.[19] 보듯이 시점이 공명이 출사하는 시기인 207년으로 5년이나 미뤄지는 등 차이가 크다.[20]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조조가 유리한 상황임에도 곽가의 조언으로 형제의 분열을 노리고 철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황 근거상 2차 여양전투 이후 조조군의 기록적인 패전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후한서에서도 이후 원상의 역공을 받아 크게 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곽가의 말은 예언이 아니라 조조의 심기를 불편치 않게 하며 철군하려는 방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21] 연의에서 위의 사건이 곽가의 진언 때문이라고 나오나 정사에는 없는 기록이다.[22] 유표 사후 형주의 후계자인 유종이 조조에게 형주를 양도한 것. 유종은 이에 청주자사가 되어 조조의 총애를 받아 요절한다.[23] 연의에서 방통의 꾀였으나 정사에서는 조조가 직접 지휘한다.[24] 연의에서 208년.[25] 연의의 기록보다 훨씬 먼저 시도된 것.[26] 자살인지 병사인지는 설이 엇갈리나 음독 자살이 더 유력하다.[27] 연의에서 이 선후가 반대되어 나온다. 마등이 조조에게 참살되자 마초가 한번의 봉기를 일으킨 것. 그러나 마초는 적벽대전에서 4년, 6년 후에 두 번의 봉기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마등 일가가 죽은 것이다.[28] 연의의 낙봉파.[29] 1차 마초의 거병 때 한수가 조조에게 투항했다는 것은 연의의 창작. 게다가 애초에 연의는 1차, 2차 거병조차도 뒤섞었다.[30] 조조가 위왕에 봉해진 시기가 216년인 것은 확실하나, 다른 사건과의 전후가 분명치 않음.[31] 연의에서 계속 살아남아 한중 공방전에서 장합으로부터 맹달(孟達)과 가맹관을 지키며 등장한다.[32] 과거 조조에게 멸망한 세력의 잔당들.[33] 221년인 것은 확실하나 순서가 부정확함.[34] 장료는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후 노국상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장료의 나이는 28세였다고 한다.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시기는 196년이고 궤멸된 시기는 198년이므로, 생년은 169년 ~ 171년 중 하나다. 손권의 자립과 선후가 불분명하다는 말도 있다.[35] 한(漢)을 계승했다는 의미의 건자 돌림이다.[36] 정확한 시기는 안 알려져 있지만 자치통감에 의하면 봄에 일어났다고 하며, 손권의 칭제 이전에 일어난 일로 서술함으로 최소한 4월 전에 일으킨 것으로 해석된다.[37] 마피(摩陂)의 우물 가운데 청룡이 발견된 것이 유래.[38] 승상부나 막부에 준한다고 보면 된다.[39] 실질적 군사업무는 239년부터 맡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40] 245년 혹은 247년이란 이야기도 있다.[41] 전종전 참고. 오주전에선 249년이라고 보기도 함.[42] 강유의 1, 2차 북벌은 비의의 적극적이지 않은 반응 때문에 촉이 1만 명가량을 동원한 단순한 소규모 국지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43] 주연의 성은 원래 시씨였지만 주치의 양자가 되어 주씨가 되었다. 그래서 주적은 시씨로 성을 바꿨다가 다시 주씨로 성을 바꾸었다.[44] 여범의 아들, 당시 우장군.[45] 전종의 맏아들. 당시 진북장군.[46] 유비의 입촉 때 20대로 추정된다.[47] 연의에서 이때 철롱산에 사마소가 있었다고 한다. 연의에서 이 해를 253년으로 기록하나 장억의 죽음 등으로 보아 이는 연희 17년이 맞는다.[48] 조진(曹眞)과는 동명이인.[49] 하후연의 아들로 고평릉 사변 때 촉에 투항했다.[50] 혹은 256년.[51] 사실상 3,4,5차 북벌은 이어지는 연속적인 전쟁이다.[52] 연의에서 강유가 상규와 기산에서 대패했고 각각 하후패와 장억이 구원하였으며, 그 과정에 구원하러온 장억이 죽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정사의 기록보다 늦게 리타이어한 셈이다. 장수 만세[53] 연의에서 같은 해 다시 북벌을 위해 20만 대군을 일으켜 (7차 북벌) 기산에서 등애를 크게 꺾었으나 황호의 모함으로 돌아왔다는 서술을 하고 있다.[54] 혹은 군마(軍馬)를 구입하기 위해서.[55] 연의에서 9번째 북벌, 정사에서는 7번째 북벌이다. 연의에서 거론되지 않는 비의가 죽은 해의 전투 없는 출정까지 고려해도 8번째 출정.[56] 하후패는 연의에서 이때 전사했다. 이는 정사의 기록보다 늦춰진 것.[57] 이때 육항이 6개월이나 버틴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봐서 최소한 1월부터 오나라의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임.[58] 곽익이 “성이 포위된 지 100일 내에 항복하면 너희의 가족이 주살될 것이다. 그러나 100일을 넘겼는데도 구원하지 않으면, 내가 죄를 받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59] 서량의 양주(량주)나 오나라와 접경한 양주(揚州)가 아닌 제3의 양주. 익주를 동서로 갈라 형주로 접한 동부는 양주라고 한 것이다.[60] 두예는 도독옹양주제군사 석감의 명령에 따라서 토벌에 나왔는데, 선비족이 풍족한 것을 보고 때를 노려서 공격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도리어 두예는 처벌받았다.[61] 정확한 지명은 불명. 대충 양주안에서 벌여졌으리라 여겨진다.[62] 정확한 지명은 알려져 있지 않고, 그저 서릉독 장정을 이겼기에 편의상 서릉으로 적어 뒀음. 아마도 양양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