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1:27:41

기령

紀靈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군웅원술의 수하 장수.

2. 정사 삼국지

196년, 원술서주 침공에 나서 유비와 여러차례 싸웠지만 수개월에 걸친 전투에도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에 여포가 유비를 배신하고 서주를 점거하면서 사기가 추락한 유비군은 원술에게 참패했으며, 원술은 달아난 유비의 숨통을 끊기 위해 기령을 보냈지만, 원술이 유비를 제거하면 태산장패 등과 연합해 자신을 견제할 것이라 판단한 여포가 개입에 나서며 중재했는데 이때 유명한 원문사극의 고사를 만들어냈다. 기령은 군사를 물려 돌아갔고, 이 기록 이후로 정사에서 기령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정사에서는 단지 여포의 궁술을 돋보이게 하는 토막 일화로 한차례 언급될 뿐이어서 원술 휘하에서의 비중이 높았을지도 의문인 인물이다. 다만 원술 입장에서도 서주를 지배하고 있던 유비는 여포의 배신이 없었다면 이길 것이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힘든 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유비를 공격하려고 보낸 군대의 지휘관이라면 상식적으로 낮은 위치일 리는 없었을 것이다. 일례로 조조가 유비를 공격할 때는 직접 친정하거나 조인, 하후돈 같은 주요 장수들을 보냈었다.[1]

3. 삼국지연의

정사에서는 딱 1회 등장하는 엑스트라지만 연의에서는 무게 50근인 삼첨도(三尖刀)를 무기로 사용하고 지략도 쓰는 문무겸비원술군 최고의 용장으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유비와 원술이 싸우게 된 것은 조조의 책사 순욱의 구호탄랑계로 인한 것으로 나오며 유비와 원술의 전쟁이 시작되자 원술은 기령을 대장으로 뇌박, 진란을 부장으로 삼아 유비군의 관우와 대결한다.

관우와 30합을 다투어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관우에게 잠시 쉬자고 해 결투를 마친 뒤, 비겁하게도 자기 대신 부장 순정을 내보내 관우와 결투하게 하고, 관우가 '안 된다! 기령에게 나오라 일러라!'하고 호통을 쳤으나 순정이 듣지 않자 노한 관우에게 1합 만에 패배당하고 원술군은 패했다. 이후 원술이 여포를 꼬드겨 유비를 협공해 죽이려고 할 때 원술군의 대장으로 파견되었지만, 도중에 여포가 마음을 바꿔 한밤중에 유비와 기령을 자기 장막에 불러 둘이 화해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때 아무것도 모르고 밤중에 여포에게 불려나간 기령은 여포 장막 안에 유비가 있는 걸 보고 자기가 계략에 빠진 줄 알고 도망치려 했지만 힘 센 여포가 잡아 뒤에서 잡아끌자 힘에 밀려 어린애처럼 끌려갔다고 한다. 이때 여포는 수백 보 밖에[2] 방천화극을 세워놓고 자신이 방천화극의 작은 창살을 맞히지 못하면 죽기살기로 싸워도 좋고 작은 창살을 맞히면 둘이 화해하라고 제의했고, 기령은 설마 저 먼 거리의 방천화극 창살을 맞힐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신궁 여포는 맞히는 데 성공해 기령은 여포가 원술에게 써주는 편지만 가지고 힘없이 회군했다.

원술이 기령에게 왜 회군했냐고 따지자 기령은 여포가 써준 그 편지를 보여주었고 이를 읽고 화가 난 원술이 여포를 치려고 하자 기령은 여포는 무예가 출중한 데다 유비하고 연합하면 이기기 어렵다고 만류하며, 원술의 아들과 여포의 을 결혼시켜 우호를 맺은 뒤 힘을 합쳐 유비를 멸하자는 계책을 올렸다.

의외로 힘만 세고 머리는 나쁜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계략은 여포 측 부하인 진규, 진등 부자의 만류로 실패한다.[3] 이후 원술이 여포를 칠 때 20만 대군을 7로로 나누어 여포를 공격케 했고, 연주자사 김상태위로 삼아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게 했으나 김상이 거절하자 죽이고 기령을 칠로도구응사로 임명해 보급을 담당하게 한다. 그러나 진등과 내통했던 양봉한섬[4] 여포에게 붙어버려 대패했다.

그리고 원술의 세력이 완전히 끝나서 원소에게 투항하러 가는 도중에 원술을 토벌하러 온 유비와 맞설 때 다시 등장하는데, 이때 장비와 맞서 10합 만에 패배하게 되었다.[5]

4. 기타 창작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기령/기타 창작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사실 망한 세력들은 기록이 부실한 경우가 많고 당대 가장 강대했던 원소 세력에서 '명장'이라고 진수가 평한 안량조차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원소보다 영향력이 적었던 원술 세력의 장수인 기령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남아있을 리가 없다.[2] 판본에 따라 다른데 100보라는 버전도 있고 250~350보 정도 라는 버전도 있다.[3] 원술은 온 제후의 적이고 황제가 된다고 설치고 있으니 역적과 사돈이 되면 여포도 죽을 것이고 딸을 원술에게 보내면 원술은 딸을 볼모로 삼아 여러 가지를 요구할 것이고 거절하면 쳐들어 올 것이니 사돈을 맺으면 안 된다고 만류하는데 사실 이쪽은 여포가 좋아서 이러는 건 아니고 이 계략에 넘어갈 경우 유비가 죽게될 게 뻔하니 만류한 것이다.[4] 사실 이들은 조조와의 권력싸움에 밀려서 그렇게 된 거지 속마음은 한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걸 눈치채고 비록 지금은 이래도 한때는 충신이었던 댁들이 원술 밑에서 왜 이렇게 찬밥대우를 받으면서 지내냐고 진등이 회유하자 배신하기로 결정한다.[5] 관우와는 30합을 승부를 못 가리고 싸웠지만 장비한테는 10합 만에 죽었기에 간혹 연의에서의 파워 밸런스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어차피 그들의 일기토 자체가 정사에는 없는 창작인 데다, 삼국지연의 자체가 흔히 표현하는 파워 밸런스를 염두에 둔 작품이 아니라 작중 그리고 실제 상황에서는 장수들의 싸움 실력과 결과가 그때그때 다르게 나오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고 자만심만큼이나 기분이 좋을 때 겸양의 표현을 자주 쓰는 관우의 특성상 조조앞에서 장비가 자신보다 싸움 잘한다고 칭찬해준 것이 겸양의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쳐도, 기령이 관우와 겨뤘을 때와는 달리 장비와 싸웠을 때는 원소에게 투항하러 가던 도중이라 사기가 떨어졌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