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18:10:31

황건적의 난

파일:attachment/Yellow_Turban_Rebellion.png
황건적의 난
시기 184년
장소 유주, 광양, 여강, 완성, 남양
완하, 영천, 여남, 진국, 양적
서화, 소릉, 하곡양, 창정
원인 외척과 환관의 전횡으로 인한 부패한 정치
교전세력 후한 태평도
지휘관 대장군 하진
북중랑장 노식
좌중랑장 황보숭
우중랑장 주준
동중랑장 동탁
형주자사 서구
남양태수 저공†
남양태수 진힐
거록태수 곽전
소릉태수 조겸
여강태수 양속
예주자사 왕윤
진왕 유총
유주자사 곽훈
광양태수 유위
교위 추정
대현양사 겸 천공장군 장각
지공장군 장보
인공장군 장량
장만성
조홍
마원의
당주
파재
팽탈
복사
장백†
양중녕†
참전장수 노식군
호오환중랑장 종원
━━━━━━━━━
황보숭군
호군사마 부섭
기도위 조조
━━━━━━━━━
주준군
군사마 손견
별부사마 장초
━━━━━━━━━
조겸군
문생 원비
공조 봉관
주부 진단†
문하독 범중례†
적조 유위덕†
주기사 정자사†
기실사 장중연†
━━━━━━━━━
왕윤군
종사 순상
종사 공융
━━━━━━━━━
추정군
의용병 유비
의용병 관우
의용병 장비
━━━━━━━━━
기타
환전
장합
조홍군
한충
손하
병력 병력 규모 불명 병력 규모 불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태평도 세력 진압
영향 당인들의 금고 해제
후한 조정의 영향력 약화로 인한 지방 호족들의 성장 발판 마련


1. 개요

중국어: 黄巾之乱, 黄巾起义
영어: Yellow Turban Rebellion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푸른 하늘(후한)은 이미 죽었고 노란 하늘(황건당)이 바로 일어나리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이는 오행설, 그 중에서도 상생설을 차용한 것이다. 오행에 의하면 한(漢)은 화(火)의 덕에 의해서 흥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세력은 하나같이 오행상생 중에서 火生土에 의해 토(土)의 덕을 타고 났음을 자처했다.

그래서 모든 상징에 토의 덕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사용하였다. "창천이 죽고 황천이 일어난다"는 말도 후한에 반기를 든 황건적(노란색 두건을 쓴 무리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오행설에 끼워맞춰서 자신들이 토덕의 대표임을 자처한 데서 만들어낸 유언비어다.

참고로 화덕에 의해 융성했던 한을 상징하는 색은 화덕을 상징하는 붉은 색이었다. 장기에서 한나라의 각인색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자.

이에 따라서 후한을 멸망시킨 위나라의 첫 연호도 황초(黃初)이고, 오나라의 경우도 손권이 오왕을 칭했을 때 사용한 첫 연호가 황무(黃武), 손권황제를 칭한 뒤 사용한 첫 연호가 황룡(黃龍)이다.

이와는 반대로 한을 계승했음을 주장한 촉한의 마지막 연호는 '염흥(炎興)'이었다. 그리고 그 해 촉한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 배경



안 그래도 망해가고 있던 후한 말기의 망조에 쐐기를 박은 일대의 민란 사건.

중국의 후한 말기 영제가 즉위하던 184년에 일어난 종교집단 태평도 교수 장각을 중심으로 일으킨 대규모의 농민봉기 혹은 역성혁명이다.

거록인 출신인 장각이 후한 말기에 성행한 황제노자를 교조로 삼는 종교인 황로도(태평도)를 통해 신도들을 모아서 스스로를 "대현양사"라고 자칭하고 그 무리들을 모아 신봉자들에게 과오를 깨우치게 하고 부적이나 부적을 태운 재를 탄 물 따위를 사용하여 주문을 외우며 병을 고치는 등의 전형적인 종교집단의 활동을 전개하였고 무리들을 이끌어 모았다고 한다.

장각은 제자들을 사방에 보내어 황로도를 전파하여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의 8주에 무리들이 퍼졌으며, 황실의 환관들과 내통 약속을 받아내는 등 치밀하게 거사 준비를 하였으나, 이 사실이 제자들의 밀고로 발각되자 동생인 장보, 장량과 함께 184년에 전국적으로 난을 일으켜서 각지의 주군들을 약탈하고 관리들을 죽이는 등 온세상에 세력을 떨쳤다.

그 뒤, 조정에서 황건적 때문에 고전하게 되자 당인(청류파)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져서 그들을 중심으로 관군들이 편성되었고 각지에서 황건적들에 대항하기 위한 의병들이 들고 일어서면서 이들의 활약으로 인하여 점차 진압이 되었고, 그 와중에 난의 주모자인 장각이 도중에 병사하여 중심을 잃었다.

그럼에도 황건적 잔당이 완전히 소탕되지 않아서, 각지에서 독립적인 군소 세력이 할거[1]하였고, 이 때문에 때때로 지방관이 계속 토벌에 나서야 했다.[2] 이들 잔당의 일부는 각 군웅의 세력에 흡수되었으며 대표적인 것이 청주병. 황건적의 난은 후한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 이어져 온 셈이다.

그리고, 삼국지/삼국지연의의 실질적인 시작을 알리는 시대배경이기도 하다.

3. 평가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삼국시대의 영웅호걸 (군웅할거 시대) 대다수보다 이 쪽이 학계에선 훨씬 중요하게 다뤄진다.[3][4]

황건적의 난의 의의는 내부적으로 쇠약해 있던 한의 세력을 대내외적으로도 크게 위축시켰다는 점과 각지의 군웅들이 할거 광렙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계기였다는 점에 있다. 즉 난세의 시작인 것이다. 이 때부터 시작된 혼란은 589년 수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할 때까지 무려 400년 이상 넘게 이어졌다. 보통 역사교과서에서 말하는 위진남북조시대를 일컫는다.

황건적의 난 이후 한의 멸망과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자면... 일단 황건적의 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나라의 중앙정부(조정)가 지방 통제력을 크게 상실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전근대 제국에게 있어 "교통과 통신수단의 제약 속에서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 중 하나였고,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위축될 경우 지방에 대한 통제력 역시 함께 상실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나라 역시 황건적의 난으로 인하여 '중앙정부의 권위와 영향력이 실추'되고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각 지방의 통치기구들이 군사력을 확대하고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 할 수 밖에 없게 되면서 각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크게 상실하게 된 것.

즉, 이전까지 한나라 조정의 영향력 아래 있던 '지방관'들이 황건적의 난 이후에는 '군웅'(=군벌)로 변모한 것이다. 한 이전의 통일제국인 진은 아직 통일제국의 체제가 정착되기 전에 영향력을 상실했기에 진나라의 쇠퇴기에 나타난 현상은 '지방 세력의 독립' 이라기보다는 '진에 병합되었던 국가들의 부활'에 가까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이후 당송교체기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난 통일제국 멸망사의 효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5]

다만, 위에 서술된 바와 같이 '황건적의 난 이후 한나라는 사실상 멸망했다' 는 관점은 틀린 관점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황건적의 난 자체가 한나라가 쇠락해진 상태였다는 강력한 증거이고, 난을 겨우 진압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니 이후 조정이 지방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한나라가 본격적인 멸망 수순에 돌입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후에도 한나라가 회생불가의 수준에 이르러 멸망이 실질적으로 확정되었다고 여겨지기까지는 몇 차례 더 중요한 분기점, 또는 역사적 이정표를 지나치게 된다.

예를 들어, 황건적의 난 이후에도 상당히 남아있던 중앙정부의 조직력을 결정적으로 실추시켜 사실상 정부 붕괴의 상태로 몰아넣은 십상시의 난이 있고, 십상시의 난 이후 공백이 된 중앙정계에 서북지방의 군벌인 동탁이 진입하여 헌제를 협박하여 상국이라는 어마무시한 직위를 부여받아 온갖 국정농단과 전횡을 일삼고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면서 황제의 권위까지 크게 실추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한나라의 체제가 복구될 수 있던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는) 왕윤의 동탁 암살이 일어나지만[6] 삼보의 난으로 동탁 세력의 반격에 의해 왕윤이 무너지고 황제가 군벌들에게 무력하게 끌려다니고 도망다니는 처지가 되면서 황제와 조정의 권위가 또 무너졌다가 결국 조조의 옹립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면서[7] 한나라의 쇠망이 도저히 돌이키기 어려운, 명목상으로도 완전한 멸망이 도래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사실상의 멸망' 상황이 되었다는 것. 즉, 황건적의 난이 한나라 멸망 과정의 시작임은 명백하지만 황건적의 난 만으로 한나라의 실질적 멸망을 설명하기에는 그 후에도 의미있는 멸망 과정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역사학자들은 종교집단에 의해 조직/주도된 최초의 농민봉기로서 황건의 난이 가진 가치를 높게 보고 있다. 진승 · 오광의 난 등 민란은 이전부터 많이 있었지만, 민간 종교집단이 주도한 반란은 이 때가 최초였다. 다만, 현대의 중국은 마오쩌둥이 농민들의 힘을 얻어 세운 국가이다보니 대규모 농민봉기에 대해선 우호적인 평가 일색이라는 점도 일정 부분 감안을 해야 한다. '이자성의 난'이나 태평천국이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날 중국에서는 황건의 난을 가리켜 보통 黄巾之乱(황건지란)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지만, 黄巾起义(황건기의)라고 높여서 부르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곧 의로움을 들고 일어났다는 식의 표현이다. 84부작 삼국지이나 장정일 삼국지도 이와 같은 난의 가치를 높이는 표현을 따랐다.

그런데, 사실 황건적의 난이 딱히 농민들이나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별로 없다. 장각 형제는 그 출신 지역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단 평민이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지역 호족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태평도 신도들마저도 보편적으로 '하층민'이나 '농민'이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상당히 부족하다. 세설신어 등에는 유력한 지역 호족이나 관리들 중에서도 태평도의 신도가 있었다는 것이 엄연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봉기 역시 무슨 평등사상보다는, 오행설에 근거한 '왕조교체론'을 근거로 했다는 점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명언이라도 나온 진승 · 오광의 난보다도 평등적인 색체도 희박하다. 그래서, 현대의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재평가를 하는 것도 한계가 뚜렷하다.

다만,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그 중요성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단순히 삼국지 팬덤의 집단적 문화적 상상력에 의존하여 대충 군웅할거의 판을 깔아 주면서 영웅들에게 경험치를 제공하면서 썰리다가 그 중에서 운 좋게 특출난 인재들이 삼국지의 주인공급 세력들에게 편입되고 마는 잡몹스러운(...) 인식을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어찌되었든 부패한 현실에 불만을 갖고 왕조를 거부하면서 하층민부터 지역의 호족 출신들까지 민중들이 한 뜻으로 모여 민란을 일으켰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피해자 문서 참고.

4. 기타 창작물에서

삼국지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무대로 자주 쓰였으나, 길어서 중간에 관두는 사람이 많은 삼국지라는 특성상 황건적의 난+동탁토벌전만 보다 관두는 라이트 유저들에 대한 배려인지, 근 20년 사이에 나오는 삼국지 관련 작품에서는 자주 삭제되거나 간략화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가령 드라마 신삼국은 조조의 동탁 암살 미수 사건으로 시작한다.
참고로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조조전에만 황건난이 나왔다. 단 한 스테이지이다
영걸전 - 그냥 넘김
공명전 - 겪어 보지 못한 일
조조전 온라인에서도 나왔지만 조조전의 확장판이여서 조조전과 비슷하다.[8]

4.1. 삼국전투기

단적으로 최훈삼국전투기에서도 같은 이유로 생략되었다. 그런데 초반 캐릭터 설정을 보여주는 황건적 편을 빼버리니 캐릭터를 살리기 어려웠다고 술회했다. 괜히 고전이 아니고, 쓸모 없는 부분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2016년 2월, 삼국통일 챕터가 끝나고 황건적의 난을 에필로그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전반부 인물들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독자들이 많고, 원작처럼 진나라가 통일하는 결말은 허무하기에 아예 초반에 생략한 황건적의 난을 에필로그로 돌려버린 것. 각 인물들의 초창기 모습을 재조명함으로써 그들의 인물상의 완성도를 높였다.[9] 댓글창에서는 황건적의 난을 에필로그로 돌려서 오히려 신선하다는 반응과 오랜만에 전반부 인물들이 나와서 반갑다는 반응[10] 등 전체적으로 여론이 호의적이다.# 처음 시작할때는 실수였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10년 간의 연재를 특별하게 마무리하는 신의 한수가 된 셈.

上편에서 토벌 삼중랑장 황보숭, 주준, 노식이 등장하며[11] 선택의 기로에 놓인 장합[12], 어떤 꿍꿍이[13]를 숨기고 있는 관료 시절의 원소와 허유, 영천에서 야망을 꿈꾸는 조조유부녀나 건드리지 말라는 하후돈이 등장한다.

下편에서는 소개컷에 장각, 장보, 장량 개노답 3형제가 라면 삼총사로 등장하고, 나라를 쌈 싸먹으려는 동탁[14]과 서영, 앞으로의 싸움을 예견하는 FM 손견정보, 황개, 한당, 조무가 등장한다.

파일:ml4ynOj.png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하라는 큰 뜻을 품은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다음 컷에 유비는 또 자기 팔에 걸려 넘어진다

4.2. 삼국지 시리즈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하진 세력과 장각(황건) 양강구도에다가 손견, 유언, 동탁 등 군소세력이 등장하나[15], 예외적으로 삼국지8과 9는 세력이 1:1 대전을 치루는 시나리오로 등장한다. 동탁과 마등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쳐들어올 수가 없고 애초에 국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웬만큼 하진에게 말린게 아니라면 먼저 시비걸지 않는다. 근데 이들의 휘하 장수들이 무시무시하기 때문에[16] 만일 쳐들어온다면 가차없이 스노우볼링 당하기 쉽다.

하진과 장각(황건) 세력 양측의 능력을 비교하자면,
  • 군주의 능력: 하진 < 장각
    이건 사실 별 의미가 없는데 장각과 하진 둘다 일찍 죽기 때문이다. 보통 후임으로 조조와 장보가 임명되는데 장보도 뛰어난 장수이긴 하지만 조조가 훨씬 좋으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장각측이 불리할 수 있다.
  • 군주와 장수의 직함: 하진 > 장각
    하진은 애초부터 대장군 또는 대사마나 그와 동급의 직함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천자를 알현할 수 있다. 그래서 각 휘하 장수의 직함도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장각은 세력만 클 뿐이지 직함은 그냥 개털이다. 결국 하진의 휘하 장수들은 군주의 직함빨로 각종 장군직을 차지해 병력을 많이 보유할 수 있지만 장각은 군주부터 직함이 허접하니 장군직을 가진 휘하 장수가 아무도 없다. 이런 문제로 인해 마음먹고 징병을 실시하면 장각은 보유병력의 한계 때문에 하진보다 어렵다. 다만 삼국지 11등의 일부 시리즈에서는 애초에 한실에 반발한 황건적의 특징을 살려 지휘와 상관없이 황건장수라면 많은 군사를 이끌 수 있도록 되어있는 시리즈도 가끔있는데 이경우 부등호가 뒤집히기도 한다.[17]
  • 장수들의 능력: 하진 > 장각
    말이 필요 없다. 하진은 나중에 군주가 될, 또 그들이 장차 큰일을 맡길 인재들[18]을 휘하에 두고 있다. 자체적으로도 노식, 황보숭 등 A급 무장들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장각의 무장들은 장각 3형제를 제외하면 도적떼가 나오는 삼국지 시리즈의 도적떼 능력치와 별차이가 없을 정도의 쓰레기급 무장들이 대다수다. 그것도 다 무관쪽이니 한숨만 나온다. 때문에 인재등용을 장각이 손수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마법이 있는 삼국지 시리즈라면, 마법의 성능에 따라 그 격차가 크게 좁혀진다. 환술이 터지면 일발역전이 가능한 삼국지 9와 희대의 사기특기 귀문이 있는 삼국지 11이 그렇다. 장각과 장보가 병사 1 군량 1로 낙뢰를 갈겨대면 하진의 무장들이 아무리 잘싸운들 답이 없다.
    또한 장수제에 중국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삼국지10도 격차를 얼마든지 좁힐 수 있다. 장각이 등장하는 184년 시나리오에선 대부분의 장수와 모사들이 재야에 머무르고 있고[19] 매력이 유비 다음으로 높은 장각은 인재등용에서 매우 유리하다. 몇번만 돌아다니면 특급 인재들을 말 그대로 쓸어모아 질과 양 모두 하진을 압도할 수 있다촉나라 위나라 할것 없이 모두 외쳐 창천이사 황천당립.
  • 초기 자원: 하진 < 장각
    초기 자원은 모두 장각이 월등히 많다. 이 때문에 하진 세력이 정비를 끝내기 전에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장각 세력의 공략법이고, 하진 세력은 장수의 성능과 방어시설을 이용해서 힘을 키운뒤 장각의 오합지졸(…)들을 철거해 나가는 것이 하진 세력의 공략법. 군소 세력이 존재하는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장각이 손견한테 초기 병력을 쏟아부어 잡아먹은 뒤 인재를 흡수하면 장각측의 떨어지는 인재를 만회할 수 있다. 하진한테 빈틈을 찔려 피해를 입는 걸 감수하더라도 이득.
  • 도시 수: 하진 < 장각
    이는 플레이하는 삼국지가 도시의 성능이 장수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냐, 빈 도시를 점거했을 때의 패널티가 있냐 없냐에 따라 하진과 장각의 유불리가 결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도시의 연계성: 하진 > 장각
    위의 도시수가 장각에게는 하나도 안유리하다. 그 이유인 즉 도시의 연계성 때문인데 하진의 도시는 숫자가 적은 대신 죄다 인접해있어서 옆에서 쳐들어오면 바로바로 지원이 가능하지만 장각의 도시는 숫자가 많은 대신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어서 특정도시가 적에게 공격을 당하면 다른 도시가 타국에 막혀 지원을 못한다. 또한 이 때문에 물자수송이나 장수 이동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즉, 장각의 경우는 도시 하나하나가 다 따로 노는 형국이다.
  • 병력: 하진 < 장각
    병력은 분명 장각이 훨씬 많다. 하진 휘하에 있는 장수 중 조조가 끝장나게 좋다지만 조조는 신분이 군사라서 휘하 병력은 없다. 그리고 하진 휘하의 병력은 하진 본인과 원소, 노식, 주준, 황보숭 등 제한된 인원만 보유하고 있는 반면 장각은 장각 본인부터 시작해서 장수 전원이 휘하에 병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위의 도시의 연계성 문제 때문에 이 병력들을 합칠 수 없어서 그 많은 병력의 숫자값을 전혀 못한다는 점이다. 반면 하진은 누구 하나 정해놓고 병력을 몰빵할 수 있어서 둘이 맞붙으면 되려 하진이 장각을 각개격파하는 모양새가 나온다.
  • 동맹: 하진 > 장각
    장각은 제일 큰 대신 사방이 적이다. 반면 하진은 여러 동맹이 있다. 동맹 싸움으로 장각이 하진을 상대하려면 저기 서량에 짱박혀 있는 동탁을 움직여서 하진을 공격하게 해야 할 것이다.

4.3. 연희 시리즈

진 연희무쌍 애니메이션에서는 장3자매가 원래는 태평요술서[20]를 이용해서 아이돌이 되었지만 10화에서 악덕관리의 행동에 분노한 나머지 장보가 일을 크게 벌려 결국 태평요술서를 이용해 세뇌를 시켜 저지른 행각으로 나온다.이를 화타 성우가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 출신인 원술, 장훈, 곽가 삼인방이 노래를 부르는 작전을 제안한다. 이에 장 삼자매도 노래로 반격하는 바람에 실패.[21] 하지만 등장인물이 모두 노래를 하는 것으로 인해 세뇌당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정화되고 장 세자매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4.4. 진삼국무쌍 시리즈

대대적으로 오프닝 맵으로써 빠질수 없게 나온다. 보통 개인 무쌍모드에선 초기 인물의 시작 시나리오로 나오고 진영별 무쌍모드에선 각 진영의 첫 시나리오로 편입된다.

주로 등장하는 기믹은 도술 기믹으류 장씨 3형제가 도술을 여러가지 부려서 진행해 방해하는 요소가 있지만, 파해법은 많은 편이라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단지, 동료 ai가 문제이기도 하고...

하진이 장각의 화계에 닥돌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외의 경우 개근하는 시리즈는 스탠드 얼론 확장팩인 엠파이어스(쟁패) 모드. 저 모드가 진삼국무쌍을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 시리즈 처럼 플레이하게 해주는 모드인데 삼국지의 맨 첫 배경이 되는지라 쟁패모드 첫번째 시나리오를 항상 선점중이다. 시나리오 구성은 당연히 기존 삼국지 시리즈와 비슷하게 기본적으론 군웅할거 틀에다가 하진군과 장각군을 양강구도로 놓는 식으로 구성된다.

4.5. 토탈 워: 삼국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는 토탈 워: 삼국의 그랜드 캠페인 스타팅이 반동탁 연합군의 해체 시점이라 황건적의 난이 진압된 상황이지만 황건적 팩션 역시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예약 구매 특전 DLC인 "황건적의 난"이 있으면 황건적 팩션을 플레이할 수 있으며, 역대 시리즈에서 공공질서가 낮아져서 나오는 반란군은 해당 작품에선 황건적으로 다뤄진다.


[1] 황소, 하의, 관해, 유벽, 서화, 사마구 등.[2] 사서의 황건적 토벌기록이 경우에 따라 184년이 아닌 시기에도 있다. 도겸의 파견기록이 그 예시.[3] 말하자면, 학술적 입장에서는 황건적의 난 및 이후의 정치적 사건들에 의한 제국의 붕괴 과정이 흥미로운 연구거리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한나라가 붕괴한 뒤 등장한 여러 군웅들의 이야기는 영웅담으로써는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역사학적인 맥락에서는 후한의 붕괴 이후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군벌의 발호로써 연구의 중요성이 덜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4] 위진남북조 전후의 시대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관심사를 보면... 황건적의 난으로 촉발된 후한 말은 '제국의 붕괴 과정' 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가 되고, 오호십육국시대는 호한체제, 또는 침투왕조의 성립으로 '한족' 과 '중국인'의 개념이 성립되고 확장되어 현재에 이르는 기원이 된 시대이므로 그 역사적 중요성은 나무위키의 여백이 부족하니 가독성을 위해 다 적을 수 없으며, 남북조시대의 경우는 이후 중국 통일왕조의 모태가 되는 당나라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 연구대상이 된다. 특히 오호십육국+남북조시대를 합쳐놓으면 유럽사의 기반인 로마제국의 멸망과정과 비교할 때 '상당히 유사한 조건' 에서 '정 반대의 결과'과 나온 아주 훌륭한 대조군이 되므로 서양 출신의 동양사 연구자들을 하앍하앍 지리게 만들 수 있는 것. 그리고 서진시대조차도 '자고로 창업군주란 나름 잘난 구석이 있는 놈이기 마련인데 어떻게, 사마염은 창업군주주제에 국가 막장 테크를 열어젖힌 암군이 될 수 있었는가로 시작하여 중국사를 통틀어도 유독 막장끼가 넘치는 왕조였던 사마진이 어떤 맥락과 상황에 의해 막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가와 같은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얼마든지 잇는 것. 이에 비해 삼국시대, 특히 군웅할거시대의 경우는 제국의 붕괴 이후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군벌들간의 권력다툼으로써 독특한 인간상과 드라마는 많이 만들었지만, 역사학적으로는 다소 흥미요소가 덜한 시대라는 것이다.[5] 흥미롭게도, 송의 멸망 이후 송-원-명-청 교체기에는 이와 같은 지방세력의 독립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게 되긴 뭐가 아닌가... 남송 자체가 지방세력이고 원은 반세기에 걸쳐 남송을 멸했다. 원명교체기에도 수많은 군웅들이 날뛰었고, 명청교체기에도 남명과 대만을 정리하는 데에 40여년이 걸렸으며, 청 멸망 이후 100년 이상 지났지만 아직 대만이 버티고 있어 완전히 통일된 적이 없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통일제국의 멸망사' 에 있어 '지방세력의 이탈' 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할 법한 주장이다. 남송이나 남명은 분명 지방정권이지만, '중앙정부의 권위와 영향력이 실추되면서 지방세력이 중앙정권의 영향력 밖으로 이탈하여 탄생한' 지방세력이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외부의 적의 공격으로 중앙정부가 붕괴된 상황에서도 중앙정부의 잔존세력이 외부의 적의 공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강남지역으로 도피하여 수십년이나마 명맥을 유지할 정도의 지방 영향력은 간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물론 이 쪽 사례의 효시는 동진 이다.) 즉, 이후 시대에 비해 진-한-당 시대에는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약해지면 바로 지방세력들이 독립 해 나가면서 제국이 분해되어버리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의미인데, 이에 대해 남송이나 남명도 지방세력이라고 반론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남송이든 남명이든 최소한 당대의 '중앙' 세력이던 원이나 청으로부터 독립해 나간 세력이 아니니까. 송 멸망 이후에는 지방세력의 독립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주장에 반론하고 싶다면 차라리 이자성과 청나라에게 치명타를 입은 이후 남명 정권의 분열상(이 경우 분열과 이탈 자체가 제국의 멸망 원인이라기보다는 제국의 멸망 이후 저항세력간에 의견 일치가 안 된 사례라는 점, 그리고 이 당시 등장한 지방세력들의 경우 중앙정부의 잔재인 주씨 황족를 구심점으로 삼지 않고는 성립하기 힘들었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이라거나, 청의 멸망 이후 중화민국 성립기에 다시 대규모의 군벌 난립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사례의 경우 청이 만주족 왕조였다는 점, 그리고 청의 경우 외부의 적의 공격에 의해 최종적으로 멸망한 송이나 명과는 달리 내부의 항쟁에 의해 멸망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을 근거로 드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앞 주장중 그나마 적절한 예시를 찾아본다면 원말명초에 등장한 여러 군벌들의 사례가 있긴 하나, 이 역시 원나라는 '중앙정부의 장악력' 이라는 측면에서는 전대인 송에 비해 오히려 퇴보한 사례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는 것.[6] 동탁을 암살한 후 동탁의 부하였지만 사이가 벌어진 여포를 끌어들여 '왕윤 자신이 조정의 수장이 되고 여포를 중앙군의 수장으로 삼는다'는 왕윤의 정치적 구상은, 이후 등장한 삼국시대의 군웅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진 영역 확보를 위한 전쟁보다는 중앙정계를 장악하기 위한 군사력을 이용한 정쟁의 성향이 훨씬 더 강하게 드러난다. 즉, 해당 시점에서 왕윤은 한나라 황제와 조정의 권위를 복원함으로써 후한의 체제(더 나아가 제국의 영향력)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다는 것.[7] 조조의 헌제 옹립 이후에도 왕윤과 비슷한 방법으로 한나라 조정과 황제의 권위를 복원하려 했돈 동승의 조조 암살 기도가 있기는 하나, 이 시점에서 한나라 조정은 사실상 이미 완전히 붕괴되었고 원론적으로는 한나라의 한 제후일 뿐인 조조의 정부조직이 사실상 한나라의 조정을 대체해버린 상황에서는 왕윤의 계획보다 성공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낮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즉 조조를 암살하더라도 조조 세력이 반격을 막을 방법이 없고 설령 조조의 사망으로 조조 세력이 붕괴하더라도 그를 대체할 한나라의 조정이 없었다는 것. 이 때문에 그나마 수도 내에서 대체세력을 구축하려 시도할 수 있었던 왕윤과는 달리 동승은 마등이나 유비 등 외부세력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정치적 행보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8] 심지어 장각전에는 황건난 전과 후만 등장한다. 장각이 남화노선에게서 태평요술서를 받고, 찾아오는 사람을 도와주고, 백성들을 구출하다 살인을 저지르는 것, 이후 엔딩은 병사(...)라 등재가 안 됐다.[9] 인물의 묘사를 보면 연재 초반과는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관념이 바뀐 부분이라 할 수 있다.[10] 특별출연이 아닌 순수한 사망씬을 기준으로 上편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캐릭터는 장합으로, 사망신 연재분이 2013년 6월 13일로 무려 2년하고도 8개월만에 생전 모습으로 등장했다.[11] 부연 설명을 하자면 황보숭은 화공을 했다는 점 때문에 아카이누 화공을 빙자한 메테오, 노식은 유비의 스승이라는 점 때문에 정상결전까지 "한껏 해이해진 정의"를 모토로 삼은 아오키지로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자놈 하는 짓이... 그리고 남은 주준은 자동으로 키자루 당첨.[12] 실제로 장합은 원래 관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가 징집 명령에 무인 생활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다.[13] 아마도 십상시의 난.[14] 실제로 황건적에게 일부러 패한 근거는 없다. 걍 털리는 것으로도 해석가능하다[15] 장각을 제외한 모든 군주는 동맹 or 하진에게 종속 or 연합세력으로 맺어져 있긴 하다.[16] 장수들이 기마특성을 갖고 있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공손찬, 여포가 있는 정원, 유관장이 있는 유언. 게다가 하진 세력은 군사가 조조이고 대표장수가 황보숭과 주준, 장합에, 전투력이 높은 본인과 정보, 황개, 한당이 있는 손견이다.[17] 격차가 꽤 심한데, 관직과 기교 '군제개혁'이 모두 없을 때 대부분 세력은 병력 5000을 이끌 수 있으나, 황건적은 처음부터 10000명이 넘는 병사를 한 장수가 통솔할 수 있다[18] 쉽게 말해서 후일 위/촉/오의 주력 인재들을 다수 챙긴 드림팀이라는 소리다.[19] 시나리오 시작하는 184년만 쳐도 진류에서 하후돈, 하후연, 평원에서 화흠, 남피에서 안량, 문추, 봉기, 업에서 전풍, 저수, 심배, 북해에서 왕랑, 손건, 허창에서 순욱, 종요, 곽도, 순심, 희지재, 복양에서 진궁, 정욱, 우금, 완에서 황충, 천수에서 화웅, 무위에서 가후가 재야로 있어 등용할 수 있고 유관장 삼형제가 하북에서 방랑군으로 떠돌고 있는데 세력이 약해 손쉽게 멸망시키고 등용할 수 있다. 따로 언급은 안하지만 상기한 이들보단 능력치가 떨어져도 그런데로 쓸만한 B급 이하 인재들은 더 많고 시간이 지날때마다 특급무장들이 추가로 쏟아진다 거기에 허창에는 곽가, 순욱 등의 모사진들이 조금만 캐다보면 나오는 지역.....[20] 게임 등에서는 지력+10정도를 올려주는 아이템으로 등장. 실제로는 만민 평등 등을 주장한 저서로서 한제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당한다.[21] 거기다 장 삼자매는 태평요술서를 가지고 있어서 사실상 요력이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