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5:29:29

왕경(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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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經
(? ~ 260년)
1. 개요2. 정사 삼국지
2.1. 초기 생애2.2. 강유의 4차 북벌2.3. 사마소의 시군
3. 삼국지연의4. 대중 매체에서의 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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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조위의 인물이며 자는 언위(彦緯)로 기주 청하국 출신.

서진을 세운 사마염의 아버지 사마소에게 대항했다가 처형당했기 때문에 서진 시대에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 〈위서〉에는 그의 열전이 없다. 그래서 그의 일대기는 정사 삼국지 삼소제기, 제하후조전, 진서위노전, 방기전과 배송지 주석으로 인용된 《한진춘추》, 《위진세어》, 《진제공찬》 등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2. 정사 삼국지

2.1. 초기 생애

본래 농민이었음에도 기주에 이름을 떨쳐 동향인 최림에게 발탁되었다가 관직을 버리고 돌아왔을 때 이상한 일이 있어 관로에게 점을 봐달라고 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강하태수로 임명되어 다시 관직으로 돌아가게 된다. 강하태수가 되면서 조상이 비단을 주고 오나라와 장사하도록 명령했는데, 왕경은 태수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에게 매 50대를 맞았고 이 일을 안 조상이 왕경에게 다시는 죄를 주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군수가 되자 왕경의 어머니는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와는 다르게 왕경은 계속 승진해 두 개의 자사로를 지냈다가 사례교위까지 승진한다.

2.2. 강유의 4차 북벌

255년 8월 2일에 옹주 자사를 지낼 때 진태에게 강유하후패가 세 갈래의 군사를 나눠 침공한다고 보고하는데, 진태는 그들의 군사가 합치기를 기다려 적도에서 싸우라고 하니 조서에서 그와 싸웠으나 크게 패해 수만명의 병사를 잃고[1] 적도성에서 포위당한 것을 진태와 등애의 도움으로 겨우 벗어난다.(적도 전투)

그리고 왕경은 "식량은 열흘분도 못 남았습니다. 만일 때에 이르러 구원병이 오지 않았다면 성을 들어 궤멸해 옹주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나타냈으며, 다른 위나라 장수들이 그들을 쫓아낸 뒤에 사람들이 이걸로 강유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하자 등애가 "왕경이 너무 크게 패해서 다시 올 것이다."라고 하니 과연 등애의 말대로 강유는 다시 공격했다.

2.3. 사마소의 시군

감로 연간(256~260년)에 상서로 승진했으며, 260년 5월에 조모가 왕경, 왕업, 왕침을 불러 노란 비단에 쓴 조서를 보여주면서 사마소를 죽일 것을 꾀하니 왕경은 너무 무모하다고 말리나 조모는 오히려 죽어도 한이 없다며 자신의 뜻을 밝힌다. 왕업과 왕침은 그 계획을 듣고 왕경을 설득해 함께 사마소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려고 하나 왕경이 거부하니 그대로 사마소에게 보고해서 조모는 살해당하고 왕경 또한 태후의 조서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정위에 넘겨져 반역죄로 처형된다. 곽태후가 사마소의 강압으로 내린 조서에서 조모가 태후를 치려고 하다 죽은 것으로 조작됐으니 이걸 도운 것으로 같이 조작된 꼴인 왕경이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로잡힐 때 예전에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자중할 줄 알아야한다는 조언을 기억해내 어머니에게 사과했다.

어림에 따르면 나중에 상서가 되어 위나라를 도우면서 진나라에 불충하여 체포당하자,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와 이별하며 말했다.
한스럽게도 지난 날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가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 없이 그에게 말했다.
너는 자식으로서 효도하고 신하로서 충성했으니, 무슨 저버린 일이 있겠느냐!
보면 알겠지만 정사에서 왕경만 죽고 왕경의 어머니는 죽었단 언급이 없다. 하지만 왕경의 일족도 같이 체포되었고, 역모죄는 삼족이 멸해지므로 어머니도 함께 죽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왕경의 모친은 이와 같이 현명하면서도 기개가 있는 여장부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아래와 같이 손자가 살아 있다가 5년 후 서진의 관리가 된 것을 보면 본인만 사형당하고 가족들은 죽음을 면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 후 상웅은 그를 위해 곡을 하고 옹주자사 시절의 관리 황보안은 사재를 털어 제사를 지내줬다.

이 후 265년에 서진 무제 사마염은 조서를 내려 왕경의 손자를 낭중에 임명했다.

3. 삼국지연의

왕경과 모친의 최후 부분이 더욱 비장하고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왕경이 처형장에 묶여 꿇어앉아 있는데 80이 넘는 노모가 묶여 처형장에 들어오자 그만 통곡하며 말하되 "내가 어머니를 죽이는구나."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노모는 오히려 크게 웃으며 말하되 "안 죽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역적을 막으려다 죽으니 죽어도 가치가 있구나." 했다 한다.

4. 대중 매체에서의 왕경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kongming.net/264-Wang-Jing.jp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041.jpg
삼국지 12, 13, 14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61/지력 68/정치력 73. 제사, 조영, 매도, 고무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4/무력 62/지력 67/정치력 75/매력 77로 어째 만능형이면서 문관쪽에 가깝다. 정치력은 무난하지만 내정형 특기는 없고 가장 높은 것은 매력인데 후기 시나리오엔 등용할 만한 장수도 거의 없어서 효용은 생각보다 나쁘다. 그렇다고 60대 통솔력으로 전장에서 활약하는 것을 바라는 것도 무리. 최림에게 발탁된 걸 반영해서 명사 특기가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고무, 반목, 명사. 총 3개다.

삼국지 12에선 짤렸다가 PK에서 추가되었는데, 지력이 70대 초반인데도 군사 특기가 있어 비책을 쓸 수 있다. 일러스트는 조모를 말리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7/무력 63/지력 71/정치력 75. 특기는 농업 2, 순찰 1. 전수특기는 농업이며 전법은 기병속공진.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5, 무력 63, 지력 68, 정치력 75, 매력 77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지력이 3 하락했다. 개성은 명성, PK에서는 금강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예교, 정책은 안행강화 Lv 3, 진형은 봉시, 안행, 전법은 제사, 철벽, 진정, 친애무장은 조모, 최림, 혐오무장은 없다. 안행진이 있어서 원거리 보조용으로 쓰인다.

4.2. 84부작 삼국지

81화에서 등장. 정사나 연의에 나온 행적과 같으면서도 묘하게 다르게 나온다. 연기하는 배우가 나이가 많다보니 자연히 왕경도 늙게 나왔으며, 그에 따라 그의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저 조모의 장례식에서 크게 절을 하고 사마소를 훑어보고는 크게 웃으면서 나가는 것이 전부. 또한 254년의 강유와의 전투 또한 삭제되었다.

4.3.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BLAST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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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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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도 등장했다.

4.4.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조모그라함 에이커로 나옴에 따라 그를 따르던 대릴 더치로 패러디 되었다. 마찬가지로 왕업과 왕침이 같은 그라함의 부하인 하워드 메이슨조슈아 에드워드로 나왔는데 이들이 조모를 배신하는 와중에 왕경만 끝까지 조모를 따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고관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농민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행보가 좀 투박해 보인다고 서술되어 있다.

낙가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곽회 사후 그의 후임 정서장군이 된 진태를 대신해 옹주자사로 발령되어 왔다고 묘사되었다. 이 때 명문가 엘리트 진태와는 달리 왕경은 농사꾼 출신의 자수성가형 타입이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한편 왕경의 어머니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사는 법이라며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왕경 본인은 세상이 달라져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고관 전투 편에서는 위의 대촉 방어선을 설명할 때 진태가 진창에, 상규에 왕경이 위치해 있었다고 언급되었다. 강유가 군을 기산, 석영, 금성의 세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것처럼 꾸며 북벌을 하려 하자 이 허위첩보를 받은 왕경은 마찬가지로 병력을 셋으로 쪼개서 막을 계획을 세워 진태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진태는 방어선을 늘어뜨려 밀도를 떨어트릴 계략일 거라며 대기하라고 전했고, 왕경이 이를 듣고 주춤하는 사이 강유는 단숨에 포한까지 올라가버렸다. 뒤늦게 왕경은 이 상황을 진태에게 보고했고 이에 진태가 일단 적도까지 진출하라고 하여 적도로 이동했다.

포한-적도 근방은 이전에 곽회가 강족들을 싹 쓸어버린 지역이기도 했고, 동시에 강유가 주민들을 싹 끌고 철수한 적이 있는 장소였다. 따라서 포한-적도 근방은 고관 전투 시점에서는 텅 빈 상태였고, 왕경은 그래서 강유의 목표는 금성일 것이라고 유추하고 적도에 진영을 짜서 진태가 올 시간을 벌고자 했다. 그런데 강유가 그대로 금성을 공격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취하자 그 뒤를 치려고 했지만, 그렇게 왕경을 적도에서 끌어내는 게 강유의 진짜 노림수였고 결국 왕경과 강유는 고관에서 맞붙게 되었으며, 생초보 왕경은 백전노장 강유에게 참패하고 간신히 적도성으로 목숨만 붙여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는 진태가 지원을 올 때까지 나름대로 잘 버텨 적도가 무너지는 것만큼은 간신히 막아냈다.

전투외편 7편에서는 조모의 심복들 중 하나로 등장. 조모가 사마소를 치려 하자 왕경은 힘은 만들고 움직여야 헛된 화를 피할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왕침과 왕업은 상황을 전혀 판단하지 못하는 조모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자기들에게 불똥이 튀면 안 되니 사마소에게 보고하려 하였고 왕경에게도 함께할 것을 제의했으나, 왕경은 조모를 배신할 수 없었기에 그러지 않았다.

조모가 시해된 이후, 왕경 본인은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된 뒤 삼족이 주멸됐다. 처형이 집행되기 전 자신과 마찬가지로 붙들려온 어머니를 보고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의 출세욕이 어머니까지 해하게 되었다며 용서를 구했으며, 이에 왕경의 어머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며, 또한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하니 여한이 없다며 아들을 위로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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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여 년이란 텀이 있기에 어느 정도 교체가 됐겠지만 그래도 이때 왕경이 이끄는 옹주방위군은 과거 흥세 전투에서 조상 본대가 위험에 처하자 독자적으로 철군을 감행한 곽회의 현명한 판단으로 운 좋게 보존된 3만의 옹주군과 대략적으로 일치할 것이다. 즉 전임 옹주자사 곽회가 보존한 옹주군을 후임 왕경이 수만명의 전사자가 났다는 강유와의 조수전투를 통해 다 개발살났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