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09:56:32

제갈정

諸葛靚
생몰년도 미상[1]

1. 개요

삼국시대 조위손오의 인물로 자는 중사(仲思).[2]

서주 낭야국 사람이자 제갈탄의 막내 아들로, 제갈탄이 딸 제갈태비사마의의 아들 사마주와 결혼시켜서 사돈을 맺어 사마씨와 인연이 생겼는데, 제갈정은 후에 진무제로 등극하는 사마염과 어려서부터 소꿉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2. 정사 삼국지

258년에 제갈탄이 수춘에서 사마소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오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려고 장사 오강과 더불어 인질로 손오에 보내졌다. 제갈탄이 전사하고 난이 진압되자 갈곳이 없어져 그대로 오의 장수가 되었는데, 말제 손호가 등극했을 무렵에는 지위가 우장군에 이르렀다. 항장의 입장이었음에도 고위직까지 올라간 것을 보면 꽤나 능력이 있었던 모양.

265년에 손호가 무창으로 천도했을 때 좌어사대부인 정고와 함께 건업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며, 266년에 영안의 산적 시단 등이 난을 일으켜 손호의 배다른 동생 영안후 손겸을 협박해 대동하고 건업 30여리 밖까지 침공해 제갈정을 회유하려 하자 굴하지 않으면서 정고와 함께 군을 이끌어 진압에 성공했다. 그러나 손겸은 반란에 연루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3] 268년에 정봉과 함께 합비를 공격했다가 서진의 여음왕 사마준에게 패퇴했다.

280년에 서진이 두예왕준을 앞세워 대대적으로 공세를 펼치자 승상 장제, 단양 태수 심영 등과 더불어 요격하기 위해 3만 군사를 이끌고 장강을 건넜는데, 이 때 왕혼의 부장 장교가 이끄는 7천 군사를 포위해 사로잡았다. 제갈정은 이들을 도살하려 했지만 장제가 강한 적이 앞에 있는데 작은 일을 먼저 해서는 마땅하지 않고 항복한 자들을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거절했다. 제갈정은 이들이 순순히 붙들린 것은 진군 본대가 오기까지를 기다린 일시적인 계략이라 여겨 이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삼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장제는 이를 듣지 않고 항복한 군세를 받아줬다.

이후 이들의 군사는 서진 양주자사 주준의 군사와 서로 진을 치고 마주보게 되었는데, 심영이 단양 지역의 정예병사 도순(刀楯) 5천 명을 인솔하고 이들을 청건병(青巾兵)이라 불렀다. 앞뒤로 여러번 견진(堅陳)을 함락시키고 이에 회남군(淮南軍)을 쫓아, 세 번 진나라 병사와 부딪쳤으나 서진의 군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영이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니 그 무리들이 혼란에 빠졌고 설승, 장반이 그러한 혼란한 틈을 타 역공을 펼치니 오나라 병사들이 차례로 붕괴되어 장수들이 이를 중지시킬 수 없게 되었고 항복했던 장교가 뒤로부터 이들을 쳐서 오나라 군사를 판교(版橋)에서 대패시켰다. 이로서 장제, 손진, 심영이 붙잡혀 참살되었고 오나라의 중앙군은 붕괴했다.

오가 진에게 완전히 멸망되자 제갈정은 낭야왕 사마주에게 시집간 누나 제갈태비의 보호를 받으면서 숨어 지냈다. 예전의 우정을 잊지 못한 사마염은 기어이 그를 찾아내어 시중에 임명해 곁에 두려고 했지만 끝내 고사한 채 망국의 신하를 자처하며 여생을 마쳤다.

아들로 제갈이와 제갈회를 두었고 이들의 후손이 강남에 퍼져 현존 중국 내 제갈씨의 대다수를 이룬다고 한다.[4]

3. 삼국지연의

제갈탄 궐기 장면과 진나라의 오나라 정벌 때 단역으로 나타나는 수준인데, 장제가 거짓 항복에 속은 것은 나오지 않아 진의 대군세를 맞아 물러날 것만을 권하는 모습이 나와서 정사의 기록보다 미미하게 깎아내려진 인상을 준다.

세설신어에서 오나라에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조정에서 큰 모임이 있을 때에 손호가 "경의 자는 중사인데 생각하는 바가 무엇이오?"라고 묻자 제갈정은 "집에 있을 때는 효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길 때는 충을 생각하며, 벗을 사귈 때는 신을 생각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4. 미디어 믹스

4.1.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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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3, 14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잠혼 다음으로 마지막까지 천수를 누리는 장수로 나온다.이 게임 상에서 더 이상 장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통솔 61/무력 71/정치 49/지력 68/매력 67 용맹은 2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0/56/65/63. 제사, 누선, 정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8/65/67/57/68 에 특기는 농업, 혼란 단 2개에 능력치를 보면 알겠지만 능력치를 살릴 수 있는 특기들도 아니다. pk 고전분투 시나리오에서 아버지 제갈탄이 태수로 있는 여남에서 13세의 재야 상태로 등장한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다가 삼국지 13에서 복귀했는데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58/63/66/65, 특기는 훈련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훈련이고 전법은 창방강화. 일러스트는 왼손을 펼치면서 사마염의 권유를 사양하고 있다. 게임 메뉴얼에 등장하여 제갈량에게 백부님이라 부르며 지혜를 빌려달라 하지만, 당신은 제갈탄의 일족으로 위나라 사람이니, 먼 친척이라며 가볍게 백부님이라는 등 부르지 말아달라고 존댓말로 대답받는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8, 무력 66, 지력 66, 정치 65, 매력 67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3 상승했다. 개성은 일심, 문화, 주의는 아버지와 같은 패도, 정책은 수군육성 Lv 2, 진형은 어린, 전법은 제사, 업화, 강습, 친애무장은 사마염, 혐오무장은 없다.

4.2. 삼국전투기

아빠 제갈탄과 마찬가지로 데드풀로 나온다. 단 오나라 소속이라 색은 파란색.

수춘2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257년 기준 성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버지 제갈탄과의 구분을 위해서인지 꼬마 모습으로 등장했다. 제갈탄의 명으로 오강과 함께 손오로 가서 구원 요청을 했다.

전투외편 8편에서는 수춘2 전투 편 시점에서 손오로 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서 오나라 소속이 된 것으로 묘사됐다. 정봉과 함께 손호의 명을 받아 합비 공략에 착수하기도 했다. 정봉이 석포와 진을 이간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고 자기가 현대에 태어났으면 깡패 아니면 기획사 대표가 됐을 거라 자뻑하자 둘 다 됐을지도 모른다며 만담을 나누기도 했다. 석포를 실추시키려는 계략은 실패했지만 어쨌든 명령은 받았으니 합비 공략에 착수했고, 정봉과 함께 작피 루트로 갔다가 사마준에게 패퇴했다.

삼국 통일 편에서 오랫만에 재등장.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오군이 궤멸된 상황까지 몰려 장제에게 국가의 존망은 천명에게 달렸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후퇴할 것을 권하지만 장제는 거부하고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 만신창이가 된 제갈정은 손호 밑에서 승상 노릇을 하며 비웃음을 당했던 장제를 떠올리며 "밖에서 비웃는 것은 쉽지. 하지만 정작 비웃던 자들은 이 망해가는 오를 위해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중얼거리고 자신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말을 덧붙이면서 옛 친구 사마염이 내린 벼슬을 거부하고 은거한다.


[1] 사마염이 236년 출생했으니 그 근처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2] 자에 중(仲)이 들어가는 것을 봐서 형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3] 오력에 따르면 손호가 독살했다고 한다.[4] 다만 한국 제갈씨의 시조는 제갈량의 아버지인 제갈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