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3년)
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으로 이릉에서 전사한 부융의 아들이다.2. 정사 삼국지
222년에 이릉대전에서 아버지 부융이 죽자 좌중랑장 관중도독으로 임명되며, 263년에 양안관구에서 종회의 군대를 막게 되어 같이 지키던 장서와 의견이 갈려 부첨은 양안관구를 지키고 장서는 나가서 싸우기로 되었다.그런데 장서는 음평에서 종회군의 호열을 만나자마자 항복하면서 양안관구를 공격해 장서를 믿고 대비를 안 해 놓은 양안관구는 부첨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함락되며, 부첨 또한 전사한다. 이에 자치통감의 주석을 단 호삼성은 장서가 패할 것을 생각해서 대비했어야 했는데 방심한 부첨도 양안관구 함락에 책임이 있다고 평가한다.
그가 죽자 촉 멸망 이후에는 부첨의 아들인 부저(傅著), 부모(傅募) 등은 죄인의 자식으로 종이 되었다 그러나 서진이 건국되고 269년 사마염이 조서를 내려 부융, 부첨 2대에 걸친 충의를 칭찬하면서 그 죄를 면해주고 해방시켜 평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2.1. 부첨이 방심해서 양안관구를 빼앗겼다?
부첨이 방심했다는 호삼성의 주장은 여러모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부첨은 성 밖으로 나가서 싸우자는 장서의 주장에 반대했는데 이는 부첨이 성 밖으로 나가 싸우면 패할 것이라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서가 이길 줄 알고 대비를 안 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그러므로 관련 기록들을 종합하여 최대한 합리적으로 추론하면 부첨은 출전한 장서가 이기진 못 해도 조금이나마 시간을 끌 테니까 그 동안에 성 안의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등 전력을 비축했다가[1] 장서의 전황을 살피면서 본격적인 전투 태세에 임하려고 했는데 장서가 바로 항복해버려서 예상치 못 한 시각에 위군의 공격을 당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2]
더구나 장서와 그 군사들이 종회군에게 패해 성 안으로 쫓겨 들어올 것을 부첨이 염두에 뒀다면 성문도 못 닫아뒀을 것이다. 앞뒤 정황과 부첨의 장렬한 최후를 고려하면 부첨이 방심했었다는 호삼성의 주장보다는 이 추론이 더 신빙성이 있다.
3. 삼국지연의
부융의 아들이라는 언급이 없다. 사각철간의 달인으로 나와[3] 장서와 함께 강유의 마음에 들어 그를 따라 북벌에 참가해 장성에서는 이붕과 왕진을 죽이는 공을 세웠으며, 후에 양평관을 지키면서 역사와는 반대로 장서가 나가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자 장서에게 양안관을 지키게 한다. 자신은 나가서 싸우게 되는데 종회군에 패퇴해 양안관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장서는 항복한 뒤라 부첨은 죽어서도 촉의 귀신이 되겠다면서 자결한다.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9, 10, 11 |
삼국지 12, 13, 14 |
무력이 82였던 삼국지 5 이후로 8까지는 클론 무장이었지만 9탄에서 무력은 84로 대폭 오르고 통솔력, 지력이 70대다. 무력이 80대면서 지력도 70대인 것은 같은 소속인 이엄 빼고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상향. 물론 이엄은 부첨보다 통솔력과 정치력이 높으니 이엄와 부첨이 같은 급이라는 건 아니다. 무력은 삼국지 14 기준으로 무력이 85이며 후반기 시나리오에서 강유, 관색과 같이 촉나라의 무력담당이 된다. 넘사벽인 문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문앙에 비해 이쪽은 지력도 제법 높다.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5에서는 241년에 등장하며 능력치가 무력 82/지력 47/정치 36/매력 46으로 후기장수로서는 준수한 무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력이 너무 낮다. 연의에서는 강유의 북벌에서 조언을 하는 장면도 나올 정도인데 50대도 안되는 지력은 아무래도 장서에게 속은 점을 반영해서 너무 너프가 된 듯. 덕분에 습득 특기가 화계/원시/내분/복병/무쌍/분기인데, 잉여인 화계와 지력이 낮아서 활용이 불가능한 내분, 복병를 빼면 나름 준수한다. 보유 진형은 구행/언월이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75/무력 83/지력 71/정치력 45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강유, 나헌과 함께 최후반기 촉군의 희망. 분투, 돌진, 충차, 매도를 가지고 있으나 노병계나 궁기병계 병법이 없어 공성전에서 활약할 수 없는 게 흠. 영웅집결이 아니라면 출사표 이벤트 발생 후 촉장 전원이 정란과 연노를 습득하기에 공성에 써먹을 수 있다.[4] 체감상 강유와 같은 병법으로 출진하면 관우+장비급으로 연쇄가 잘터지기 때문에 중요한 장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5/무력 82/지력 73/정치력 42/매력 55. 전투 시 후반기 촉의 주력 멤버라 할 수 있다.[5] 특기도 무려 10개.(기술, 훈련, 돌격, 일제, 기습, 저지, 지리, 회복, 삼단, 나선)
삼국지 11에서의 특기는 맹장이다. 기본적인 능력치가 우수하기 때문에 같은 특기인 손례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좋다. 다만 소재지가 신야인데 11편부터 후기 시나리오라고는 제갈량의 북벌 시나리오만 있어서 위나라의 장수가 되는 현상이 많이 나온다. 촉나라로 플레이 할 때에는 반드시 신야를 얻도록 하자. 영웅집결에선 아버지와 같이 재야로 등장하여 공주, 장수, 유표, 동탁, 하진, 유비, 조조 등에게 도움이 된다.
삼국지 12에서도 아버지 부융은 짤렸는데 자신은 살아남은 데다가 무력은 여전히 85로 등장하는 시나리오에선 최상위권. 전법은 방어약화. 좋은 전법인 데다가 지력도 76이라서 매우 쓸만하다. 일러스트는 두 손으로 쌍간을 든 채 소리치면서 돌격하려 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3/무력 85/지력 76/정치력 46이다. 병과 적성은 창병 B/기병 A/궁병 C. 특기는 순찰 3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순찰이며 전법은 3 포인트 짜리 공격약화. 능력치는 좋지만 중신특성이 없어서 B급 무장이나, 인재난에 허덕이는 후반부에는 좋은 무장이다. 특히 거의 마지막 시나리오인 강유의 북벌 땐 정말 부첨 정도만 되어도 감지덕지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3, 무력 85, 지력 72, 정치 42, 매력 60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과 정치력이 각각 4 하락했다. 개성은 노발, 불굴, 호걸, 맹자, 주의는 패도, 정책은 봉시강화 Lv 4, 진형은 봉시, 방원, 장사, 전법은 돌격, 경파, 대갈, 업화, 친애무장은 강유, 혐오무장은 없다.
사족으로 삼국지 9부터 일러스트가 휴고처럼 입을 벌리게 되어 삼국지 14까지 이어지고 있다.
4.2. 삼국전투기
용과 같이 시리즈의 키류 카즈마로 패러디되었다. 이릉 전투 편에서 아버지 부동(부융)의 최후가 나올 때 아들인 부첨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간다고 언급되며 선행 등장했다. 본격적인 첫 등장인 검각 전투 (4)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고, 소개컷에서는 거짓말처럼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고 서술됐다.검각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한중에서 성도로 향하는 첫째 관문인 관성을 수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부첨의 입을 통해 강유의 계책을 설명하는데 사실 한중은 이쪽에서 넘겨준 미끼에 가깝고[6] 자신이 지키고 있는 양안관구,[7] 검각이 뚫리지 않으면 위군은 (한중이라는) 우리에 갇힌 돼지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 둘을 전부 뚫을 확률은 수백만 대군을 몰고 와도 0에 가깝다는 것이다.[8] 덧붙여서 양안관구가 험요지인 점도 설명된다.
한편 관성에 얹혀 살던 장서가 나가 싸우자고 주장하자 자기가 받은 명령은 성을 보존하라는 명이었다며 거절하지만 장서가 "내가 나가 싸워 이기면 좋고, 져도 네게는 피해가 없을 거다" 는 논리를 내세우는 바람에 장서가 혼자 나가는 걸 말리지 못하는데, 역사대로 장서가 한 번 싸우지도 않고 배신하여 위군과 함께 돌아오는 바람에 성문도 못 닫고 위군과 싸우게 되었다. 장서는 부첨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나는 한나라의 장군이다! 한나라의 장군이 어찌 적에게 무릎을 꿇을수 있겠느냐! 라고 말하며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1] 월드컵 등 경기가 연달아 있는 대회에서 하루라도 더 휴식을 취한 팀이 경기에 유리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2] 한진춘추에서도 부첨은 장서가 '싸우는 줄 알았다.'고 서술되어 있다.[3] 이 때문에 삼국전투기에서도 사각철간 두 개를 양손에 든 모습으로 타이틀 컷을 장식했다.[4] 다만 부첨은 영웅집결 외 시나리오에선 230년에 한중에서 재야로 등장하고 출사표 이벤트는 226년에 시나리오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작정하고 맹획을 살려 놓지 않는 이상 부첨 등용할 때 쯤이면 발생한 지 한참이다.[9] 결국 연노와 정란을 가진 부첨은 234년, 263년 시나리오에서나 써볼 수 있다.[5] 강유, 나헌, 하후패 다음 급이다 장억, 장익과 견줄 수준이다.[6] 조조가 한중에서 결국 계륵을 외치며 포기하는 장면이 나온다.[7] 작중에서는 관성이라는 명칭으로 서술된다.[8] 실제로 위군은 관성은 어찌저찌 뚫었지만 등애가 면죽을 뚫었다는 소식을 들은 강유가 검각을 버리기 전까지는 결국 자력으로 검각을 뚫는 데는 끝까지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