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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62633> 교훈 | 자유 · 정의 · 진리 LIBERTAS · JUSTITIA · VERITAS | ||
상징 | <colbgcolor=#872434><colcolor=#d7c9b1> 동물 | 호랑이 | |
교목 | 잣나무 | ||
교색 | Crimson [1]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분류 | 사립대학, 4년제 종합대학 | ||
지역 | 서울특별시, 세종특별자치시 | ||
개교 | 1905년 4월 3일[2]([age(1905-05-05)]주년) 보성전문학교[3] | ||
설립자 | 이용익 | ||
총장 | 제21대 김동원(경영학과) | ||
법인 |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 ||
대학병원 |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 ||
주 소 | 서울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5가 1-2), | |
세종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세종로 2511 ,(서창리 208), | ||
재 학 생 | 학부생 | 서울 20,373명(2023년)[4]세종 6,574명(2023년)[5] | |
대학원생 | 서울 9,947명(2023년)[6]세종 927명(2023년)[7] | ||
교 직 원 | 교원 | 서울 4,408명(2023년)세종 765명(2023년) | |
직원 | 서울 1,152명(2023년)세종 223명(2023년) | ||
서울 946,177m[math(^2)](약 29만평) 세종 425,334m[math(^2)](약 13만평) | |||
서울 세종 대학기관평가인증 인증대학(202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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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4 고려대학교 홍보영상: WE ARE THE NEXT |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산하의 종합대학으로 1905년 대한제국의 내장원경 충숙공 이용익이 고종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32년 인촌 김성수가 학교를 인수했고 해방 후 1946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며 고려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한글 약칭은 고대(高大), 영문 약칭은 KU이며 FM 구호는 민족고대(民族高大)이다.
2. 역사
고려대학교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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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 1938 | 조선여자의학강습소 | |||
1938 - 1944 |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 |||
1944 - 1945 |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 | |||
1945 - 1946 | 보성전문학교 | |||
1946 - 1948 | 고려대학교 | 국학대학 | ||
1948 - 1957 | 서울여자의과대학 | |||
1957 - 1966 병설: 1963~1966 | 수도의과대학 | |||
1966 - 1971 | 우석대학교 | |||
1971 - 1980 병설: 1971~1998 | 고려대학교 | |||
1980 - 2017 병설: 1998~2011 |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 | |||
2017 - 현재 |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3. 교명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고려대학교 |
한자 | 高麗大學校 |
영어 | Korea University[8] |
독일어 | Korea University[9] |
프랑스어 | Université de Corée |
스페인어 | Universidad de Corea |
러시아어 | Университет Корё |
중국어 | [ruby(高丽大学, ruby=gāolìdàxué)], [ruby(高麗大學, ruby=gāolìdàxué)][10] |
일본어 | [ruby(高麗大学, ruby=コリョだいがく)][11] |
기존 보성전문학교를 해방 후인 1946년 4년제 대학교로 개편하며 대학의 이름을 '고려(高麗)'로 정한 것은 인촌 김성수[12]의 발상이었다. 고구려의 기상과 자주 불패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에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 되자는 취지를 더해 영문명으로 KOREA 를 쓸 수 있는 <고려>를 선택한 것이다.[13]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존재한다.
우리가 만드는 대학은 반드시 우리나라나 민족을 대표하는 대학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는 만큼 교명도 반드시 그러한 뜻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야 하겠는데, 「조선」이나 「한국」[14]은 역사상 이민족에게 수모를 당한 일이 있어서 싫고, 「고려」도 실은 여진, 몽고 등의 시달림을 받은 일은 있지만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하여 좋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리나라의 외국어 명칭인 Korea,[15] Corea,[16] Corée[17]도 「고려」의 음을 표기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유진오, 『양호기(養虎記)』(1977), 192쪽
유진오, 『양호기(養虎記)』(1977), 192쪽
보성.조선.고려 등 세 대의 명칭을 가지고 논하되 보성은 전문학교 때의 이름이니 대학이 되면 갈아야 하고, 조선은 개국 당초부터 끝까지 국토 내에서만 우물쭈물 하였고 세력이 밖에까지 미쳐보지 못했으나, 고구려는 한때 요동에까지 세력이 팽창하였던 것이니 그 웅대 활달한 기상과 자주 불패의 정신이 취할 만하나, 다만 삼자명은 불편하니 <句>자를 약하여 <고려>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은상, 「아 인촌(仁村)[18]은 가시다」, 『신생공론(新生公論)』, 1955.6.
이은상, 「아 인촌(仁村)[18]은 가시다」, 『신생공론(新生公論)』, 1955.6.
4. 학풍
[집단연구] 고려대 106년의 자화상: 월간조선 2011년 2월호보성전문학교 시절부터 대한민국 국내에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던 고려대의 모습은 하기와 같다.
① 야성적, 활동적, 정열적
고려대학교의 교풍은 야성, 활기와 정열 등으로 대표된다. 무섭고 사나운 호랑이, 강렬하게 검붉은 크림슨색 등 고대를 대표하거나 '고대' 하면 떠오르는 상징들은 대부분 위의 특징들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이는 고려대학교가 그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시절 사실상 유일한 민족·민립의 지도자 양성기구였기 때문에, 민족정신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교수와 학생들에게 특별히 더 부하됐고, 그것이 학생들의 지사적 또는 투사적 저항 기질을 배태시켰던 데 기인한다는 견해가 있다.[19]
고려대학교의 교풍은 야성, 활기와 정열 등으로 대표된다. 무섭고 사나운 호랑이, 강렬하게 검붉은 크림슨색 등 고대를 대표하거나 '고대' 하면 떠오르는 상징들은 대부분 위의 특징들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이는 고려대학교가 그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시절 사실상 유일한 민족·민립의 지도자 양성기구였기 때문에, 민족정신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교수와 학생들에게 특별히 더 부하됐고, 그것이 학생들의 지사적 또는 투사적 저항 기질을 배태시켰던 데 기인한다는 견해가 있다.[19]
② 협동적, 끈끈함
고려대에서는 졸업생을 '동문', '동창' 등의 단어 대신 '교우(校友)'라고 부른다. 이는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라는 의미이다. 사회에서 고려대 출신 간에는 유대가 매우 강한 편이며 이러한 문화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건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고대에는 자기 이익만 앞세우려 하기보다는,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의 장점을 살려 일을 분담함으로써 시너지를 내는 문화가 발달돼 있다. 또한 일대일 간의 관계보다는 폭넓은 집단 내에서의 관계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20] 구성원들의 애교심이 워낙 커서 그런지, 정치적 이념 및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같은 고대 동문 사이에는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인간적 신뢰에 입각하여 갈등을 풀어가려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고려대에는 동아리 조직이 발달해 그 구성원이 인간관계를 다지고 팀플레이를 하는 풍조가 강하다. 공부도 물론 중요시하지만, 개인의 성적만을 챙기는 능력보다는 인간관계를 충실히 하는 능력, 남을 이끄는 지도력이나 상급자, 동료와 화합하는 친화력 등을 더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대인관계와 신뢰감을 중시하는 습관, 조직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오욕 뒤집어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이 이런 문화 속에서 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21] 21세기 들어서 오프라인 커넥션만이 아니라 온라인 커넥션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는데, 이에 발맞춰 고대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에브리타임도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지만, 특히 고대의 자랑 중 하나인 고파스의 경우 각종 게시판에서 유통되고 누적되는 정보가 매우 방대할 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22]
고려대에서는 졸업생을 '동문', '동창' 등의 단어 대신 '교우(校友)'라고 부른다. 이는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라는 의미이다. 사회에서 고려대 출신 간에는 유대가 매우 강한 편이며 이러한 문화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건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고대에는 자기 이익만 앞세우려 하기보다는,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의 장점을 살려 일을 분담함으로써 시너지를 내는 문화가 발달돼 있다. 또한 일대일 간의 관계보다는 폭넓은 집단 내에서의 관계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20] 구성원들의 애교심이 워낙 커서 그런지, 정치적 이념 및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같은 고대 동문 사이에는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인간적 신뢰에 입각하여 갈등을 풀어가려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고려대에는 동아리 조직이 발달해 그 구성원이 인간관계를 다지고 팀플레이를 하는 풍조가 강하다. 공부도 물론 중요시하지만, 개인의 성적만을 챙기는 능력보다는 인간관계를 충실히 하는 능력, 남을 이끄는 지도력이나 상급자, 동료와 화합하는 친화력 등을 더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대인관계와 신뢰감을 중시하는 습관, 조직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오욕 뒤집어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이 이런 문화 속에서 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21] 21세기 들어서 오프라인 커넥션만이 아니라 온라인 커넥션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는데, 이에 발맞춰 고대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에브리타임도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지만, 특히 고대의 자랑 중 하나인 고파스의 경우 각종 게시판에서 유통되고 누적되는 정보가 매우 방대할 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22]
③ 개방적, 포용적
고대생의 끈끈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외부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일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고려대 교수들 가운데 자교 출신 비율이 60% 정도에 불과한 것,[23][24] 꼭 고대 학부 출신이 아니더라도[25] 맡은 바 최선을 다한다면 선뜻 주류 교우로 받아들이는 문화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는 오히려 외부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학교다. 이는 고대생들의 인간관계가 소규모 그룹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대규모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기인하는데, 꼭 고대 학부 출신이 아니더라도 고대 공동체 내에 잘 적응해 맡은 바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고대 석박사 출신이어도 모교 학사 출신 못지 않게 교우로서 인정해 준다. 고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 교수 및 학생의 특기와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 역시, 그들이 개인의 소소한 친밀감이나 친목의식보다 큰 조직 내에서의 역할 분담과 성취 의식을 더 지향한다는 데 기인한다. 교수들도 이런 학교의 문화에 큰 자긍심을 느끼며, 어느 학생이든 '고대'와의 인연이 있다면 언제나 그들을 반갑게 맞이 하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고대생의 끈끈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외부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일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고려대 교수들 가운데 자교 출신 비율이 60% 정도에 불과한 것,[23][24] 꼭 고대 학부 출신이 아니더라도[25] 맡은 바 최선을 다한다면 선뜻 주류 교우로 받아들이는 문화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는 오히려 외부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학교다. 이는 고대생들의 인간관계가 소규모 그룹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대규모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기인하는데, 꼭 고대 학부 출신이 아니더라도 고대 공동체 내에 잘 적응해 맡은 바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고대 석박사 출신이어도 모교 학사 출신 못지 않게 교우로서 인정해 준다. 고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 교수 및 학생의 특기와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 역시, 그들이 개인의 소소한 친밀감이나 친목의식보다 큰 조직 내에서의 역할 분담과 성취 의식을 더 지향한다는 데 기인한다. 교수들도 이런 학교의 문화에 큰 자긍심을 느끼며, 어느 학생이든 '고대'와의 인연이 있다면 언제나 그들을 반갑게 맞이 하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④ 굳건함, 집념
연구에 있어서는 특유의 집념과 저력을 발휘하는데, 그로 인해 지구력, 참을성, 우직함으로 장기간의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법학은 오랜 시간의 공부를 참아내야 하는 분야이고, 한학, 철학이나 역사학도 어마어마한 양의 독서를 요하는 분야이다. 이에 대해서는 캠퍼스 곳곳에 서 있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 고대생의 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연구에 있어서는 특유의 집념과 저력을 발휘하는데, 그로 인해 지구력, 참을성, 우직함으로 장기간의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법학은 오랜 시간의 공부를 참아내야 하는 분야이고, 한학, 철학이나 역사학도 어마어마한 양의 독서를 요하는 분야이다. 이에 대해서는 캠퍼스 곳곳에 서 있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 고대생의 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⑤ 비판적, 저항적
학문적 기조는, 기성 학문에 수긍하기보다 독자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수리논증이 대세가 될 때에 그에 맞서 이론분석의 방법론을 동등하게 강조하기도 했고, 미국/일본 유학파가 주류를 이룰 때에는 그에 맞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사조가 들어와 학계의 주류가 되었을 때도 거기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전통적, 기본적, 원칙적인 입장을 같이 강조해왔다. 일제 시절에는 일본 문화가 워낙 주류를 차지하다 보니 학문에 있어서도 민족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했다.[26] 다만 민족주의의 병폐가 드러나 문제가 된 이후로 현재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차차 희석시키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또한, 해방 이후 한글 쓰기 운동이 대두되고 대한민국 교육이 한문을 점점 소홀히 하기 시작할 때에는 한문 해석 능력의 저하를 우려해 학생들의 한문 실력을 대단히 중시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일부 학과의 교내 졸업 요건에 한자 급수를 포함시킴으로써 이어 오고 있다.
학문적 기조는, 기성 학문에 수긍하기보다 독자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수리논증이 대세가 될 때에 그에 맞서 이론분석의 방법론을 동등하게 강조하기도 했고, 미국/일본 유학파가 주류를 이룰 때에는 그에 맞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사조가 들어와 학계의 주류가 되었을 때도 거기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전통적, 기본적, 원칙적인 입장을 같이 강조해왔다. 일제 시절에는 일본 문화가 워낙 주류를 차지하다 보니 학문에 있어서도 민족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했다.[26] 다만 민족주의의 병폐가 드러나 문제가 된 이후로 현재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차차 희석시키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또한, 해방 이후 한글 쓰기 운동이 대두되고 대한민국 교육이 한문을 점점 소홀히 하기 시작할 때에는 한문 해석 능력의 저하를 우려해 학생들의 한문 실력을 대단히 중시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일부 학과의 교내 졸업 요건에 한자 급수를 포함시킴으로써 이어 오고 있다.
⑥ 교풍의 변화
이렇듯 고려대의 학풍은 특유의 굳건함, 저력과 함께 정(情)이 합쳐진 모습으로 대표되어 왔고 이는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이점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측면이 과다해 학내에 수직적, 강압적 악폐습이 존재했으며, 실제 동문 모임이나 학교 생활에서 일명 '고대인다운 모습'을 지나치게 강요하여 개인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도 일부 존재하였다. 고려대학교가 지켜 왔던 ‘굳건한 기질’ 역시 다르게 말하면 보수적, 즉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인터넷·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법학과 의학 분야에 전문대학원 체제가 도입되며 이공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고려대학교의 구성원은 이러한 변화를 따르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고려대학교의 공동체 문화 역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졌으며,[27] 학사행정에 있어서도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오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몇 가지 존재하는데 첫째는 총학생회의 장기간 계속되는 부재이다. 1990년대경까지 지속되었던 사회운동의 시대에 고려대는 그 중심에 서 있었고 이러한 학생운동의 흐름은 대개 사회주의 또는 PC주의 성향의 학생회 및 회장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가 장기간 공석이 된 것은, 출마한 후보의 자질 문제도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과거와 같이 전체주의, 집단주의적 사상으로 똘똘 뭉쳐 정치 투쟁 방식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 자체를 학생들이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은 과거와 같은 민중혁명 방식보다 학문지식 또는 과학기술에 의한 진보 방식을 더 선호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집단 행사의 약화이다. 본교에는 4.18 구국 대장정, 사발식과 같은 단체 행사가 많이 존재했으며 이는 한때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는 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그로 인해 이러한 행사 속에 묻혀 왔던 다양한 폐해가 드러나게 되자, 이에 맞춰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강제 참여에 대한 비판론이 대두되었고 결국 이러한 행사는 옛날과 같은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선택적 참여로 바뀌는 수순을 밟게 됐다.[28] 이에 더하여 새로운 교육을 중시하는 자율형 고등학교 및 국제고 출신 학생, 해외 유학생이 늘면서 학과 내의 가부장적 색채나 시대착오적 위계 질서 또는 파시즘스러운 문화 행태 또한 학과를 가리지 않고 사라지게 되었다.[29]
이렇듯 고려대의 학풍은 특유의 굳건함, 저력과 함께 정(情)이 합쳐진 모습으로 대표되어 왔고 이는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이점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측면이 과다해 학내에 수직적, 강압적 악폐습이 존재했으며, 실제 동문 모임이나 학교 생활에서 일명 '고대인다운 모습'을 지나치게 강요하여 개인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도 일부 존재하였다. 고려대학교가 지켜 왔던 ‘굳건한 기질’ 역시 다르게 말하면 보수적, 즉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인터넷·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법학과 의학 분야에 전문대학원 체제가 도입되며 이공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고려대학교의 구성원은 이러한 변화를 따르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고려대학교의 공동체 문화 역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졌으며,[27] 학사행정에 있어서도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오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몇 가지 존재하는데 첫째는 총학생회의 장기간 계속되는 부재이다. 1990년대경까지 지속되었던 사회운동의 시대에 고려대는 그 중심에 서 있었고 이러한 학생운동의 흐름은 대개 사회주의 또는 PC주의 성향의 학생회 및 회장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가 장기간 공석이 된 것은, 출마한 후보의 자질 문제도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과거와 같이 전체주의, 집단주의적 사상으로 똘똘 뭉쳐 정치 투쟁 방식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 자체를 학생들이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은 과거와 같은 민중혁명 방식보다 학문지식 또는 과학기술에 의한 진보 방식을 더 선호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집단 행사의 약화이다. 본교에는 4.18 구국 대장정, 사발식과 같은 단체 행사가 많이 존재했으며 이는 한때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는 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그로 인해 이러한 행사 속에 묻혀 왔던 다양한 폐해가 드러나게 되자, 이에 맞춰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강제 참여에 대한 비판론이 대두되었고 결국 이러한 행사는 옛날과 같은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선택적 참여로 바뀌는 수순을 밟게 됐다.[28] 이에 더하여 새로운 교육을 중시하는 자율형 고등학교 및 국제고 출신 학생, 해외 유학생이 늘면서 학과 내의 가부장적 색채나 시대착오적 위계 질서 또는 파시즘스러운 문화 행태 또한 학과를 가리지 않고 사라지게 되었다.[29]
상기를 종합하면, 고려대학교는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유의 끈끈한 공동체 정신 및 정의감 등으로 주목받았으나 이제는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 맞게 과거의 공동체문 화에서 부정적인 부분은 보완하고 그와 동시에 자유주의적 면모를 더하여 새롭게 발전해 나가는, 신구의 조화를 이루어낸 대학교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이는 긍정적인 변화이나, 자칫 너무 극단적인 변화를 추구하여 그간 유지된 고유의 기질까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5. 상징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상징 문서 참고하십시오.6. 학생 운동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학생운동 문서 참고하십시오.7. 교우회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교우회 문서 참고하십시오.8. 언론 및 커뮤니티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언론 및 커뮤니티 문서 참고하십시오.고려대학교의 언론 및 커뮤니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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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학사 제도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학사제도 문서 참고하십시오.10. 강의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강의 문서 참고하십시오.11. 학부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학부 문서 참고하십시오.12. 대학원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대학원 문서 참고하십시오.13. 입학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입학 문서 참고하십시오.14. 총학생회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총학생회 문서 참고하십시오.15. 동아리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동아리 문서 참고하십시오.16. 운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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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캠퍼스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시설 문서 참고하십시오.17.1. 식당 및 매점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식당 및 매점 문서 참고하십시오.18. 법인
자세한 내용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문서 참고하십시오.19. 의료원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의료원 문서 참고하십시오.20. 교통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교통 문서 참고하십시오.21. 각종 행사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행사 문서 참고하십시오.22. 노동조합 현황
23. 출신 인물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출신 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24. 세계대학평가
<colbgcolor=#641B27><colcolor=#fff> 연도 | QS | THE | ARWU | CWUR | USN & WR | CWTS P(10%) | Nature Index |
2019 | 83위 | 198위 | 201-300위 | 178위 | 274위 | 223위 | 248위 |
2020 | 83위 | 179위 | 201-300위 | 174위 | 271위 | 225위 | 210위 |
2021 | 69위 | 166위 | 201-300위 | 163위 | 264위 | 212위 | 194위 |
2022 | 74위 | 201-250위 | 201-300위 | 164위 | 272위 | 213위 | 189위 |
2023 | 74위 | 201-250위 | 201-300위 | 159위 | 290위 | 210위 | 193위 |
2024 | 79위 | 201-250위 | 201-300위 | 153위 | 300위 | 188위 | 204위 |
2025 | 67위 | 189위 | - | - | - | - | - |
25. 사건·사고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26. 여담
-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고려대학교'라고 적힌 현판이 없다. 그 이유가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굳이 대학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누구나 이곳이 고려대학교임을 알기 때문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를 소재로 오탁번 시인이 쓴 시(詩)도 존재한다.
- 와세다대학과 교류가 활발하다.[30] 고려대와 와세다는 보성전문 시절인 1930년부터 스포츠 경기를 실시하고, 1973년부터 학술 교류를 할 만큼 연관이 깊다. 고려대 정경대학과 와세다 정치경제학부를 중심으로, CAMPUS Asia ENGAGE를 통해서 고려대-와세다-북경대[31]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을 통해 한중일 3개 학교 간 학부 학사, 석사, 박사 복수학위도 제공 중이다. 고대교우회, 와세다대 동문총회 참석 - 미국 LA[32] 한일 4대학 연맹이라는 2000년대부터 실시중인 공동 동창 행사도 있다.[33]
- 고려대학교 미디어 보존 자료 대한민국 역사상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한국 대학에서 연설을 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역시 하기와 같이 고려대와 와세다의 인연을 언급한 바 있다. 서울신문
오부치 총리는 일본 와세다대학 출신이며, 와세다대학과 고려대가 자매결연을 하고 있어 이번 연설이 이뤄지게 됐다고 당국자는 전했다. - 조선일보 1999년 3월 14일자 기사: [오부치] 20일 고대서 연설…일본 총리론 처음 대학방문
오부치 총리는 강연 도중 “한국의 고려대와 연세대가 매년 ‘고연전’을 펼치고 있는데 본인이 ‘연고전’이라고 하지 않고 ‘고연전’이라고 부르는데 유의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기사
* 오부치 총리의 제안 및 고려대-와세다 교우회 협정으로 2003년부터 와세다대학은 고연전에 고려대학교 응원단 등 교류 인원을 파견하고 있기도 하다. 관련 기사
와세다대 교우회와 자매결연을 한 고려대 교우회는 양교의 친선도모와 학생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응원단을 초빙했다. 동아일보: 日와세다大 응원단 “고연전 열기 놀라워”
한국의 소케이센으로 불리는 「고연전」의 럭비, 축구를 관람하는 등 고려대학교와 한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이 되었다. 환영회나 고연전 뒤풀이 파티에서는 와세다대학 응원부의 리더와 치어(cheer)의 지도로 교가·응원가를 불러 크게 흥을 돋웠다. 와세다대학 교우회 고대신문
와세다대학 응원단이 고연전에서 고려대학교를 응원하는 모습 |
- 이공대학 주변 노래방에 잘 찾아보면 대한민국 노래방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Rosas나 20 de enero 같은 메이저한 노래가 아닌 그보다는 조금 덜 유명한 La playa가 수록되어 있다.
27. 관련 문서
28. 둘러보기
고려대학교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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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대학교 엠블럼에 쓰인 색의 컬러 코드는 각각
#8b0029
, #d6cabc
다.[2] 고려대학교는 매년 5월 5일에 개교기념식을 갖는데, 개교기념일이 실제 개교일인 4월 3일이 아닌 5월 5일이 된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추측이 있으나 아직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3] 1946년 8월 15일 종합대학 고려대학교로 승격[4] 휴학생, 학사학위취득유예학생 미포함[5] 휴학생, 학사학위취득유예학생 미포함[6] 휴학생 미포함[7] 휴학생 미포함[8] 일본 도쿄에 있는 조총련 계통의 조선대학교의 영문 명칭도 Korea University이다.[9] 직역할 시 Universität Korea지만 현지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10] 한궈다쉐(韩国大学)로 표기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고려대학교의 오기거나 한국 전체 대학을 의미하는 것이다.[11] 대학교까지 살린 고료다이각코-(高麗大学校: コリョだいがっこう), 그리고 고려를 일본식 음독으로 읽은 고-라이다이가쿠(こうらいだいがく)로도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코리아다이가쿠(コリア大学)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오기로 칸코쿠(韓国)다이가쿠로 표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12] 인촌 김성수는 1932년 재정난에 처해 있던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1934년 안암동의 신축 교사(校舍)로 이전하고, 선진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보성전문의 교육 여건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광복 후 1946년에는 보성전문학교를 기초로 종합대학 고려대학교를 발족시켰다.[13] 현대에 이루어진 연구를 통해 고구려는 장수왕 시절부터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했고 왕건의 고려는 이 국호를 계승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는 삼국사기 등의 사료로 형성된 역사 지식만이 알려져 있었기에 김성수는 아래 인용된 회고들에서 엿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고려'와 '고구려' 국호를 별개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14] 여기서의 '한국'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을 의미한다.[15] 영어, 독일어 표기.[16] 라틴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표기.[17] 프랑스어 표기.[18] 설립자인 김성수의 호. 고려대의 전신 보성전문은 이용익이 설립하였는데, 보성전문을 인수하여 기반을 닦고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켜 고려대로 설립한 인물이 김성수이기에 김성수를 고려대 설립자로 보기도 한다.[19] 기사 참고[20] 전통적으로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걸 좋아하고 사발식, 4.18, 응원 오티, 입실렌티, 고연전 등 인원 채우는 게 중요한 행사가 워낙 많다보니 사교성 없는 구성원도 거리낌 없이 다 불러서 끼워주고 함께 어울리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인싸에게는 젊은 날에 엄청난 인원을 리드해볼 수 있게 해주고, 아싸 찐따에게는 아무리 사회성 없어도 1학년 때 재미있게 놀 수 있게 해주는 대학이라고도 한다. 그로 인해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 없이 외톨이, 히키코모리로 지내던 사람도 고대에 입학한 뒤부터 사회성을 기르는 경우가 많고, 직장생활에서 인간관계 등도 어렵지 않게 잘 풀어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21] 아무래도 대학 재학 중에 집단 체험을 많이 하는 만큼,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의 눈치도 생기고 분위기 맞출 줄도 알게 되며 갑분싸 발언도 안 하게 되고 겸손함이나 소탈함이나 배려심이나 기타 기본적인 매너 또는 인간미도 갖추게 된다.[22] 다른 대학교 같으면 처음부터 깜깜이 상태로 각개격파를 해야 했을 신입생들이 고대에서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선배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어 훨씬 더 편안히 새학기를 준비할 수 있다.[23] 고려대를 거쳐간 수많은 교수들 가운데 다수, 예를 들어 김병로, 현상윤, 안호상, 오천석, 유진오, 손진태, 이상은, 김상협, 김준엽, 현승종, 윤천주, 김충렬, 김우창, 문국진, 이필상, 김화영 등이 타교 출신이다.[24] 최근 들어 많이 낮아지고 있지만 서울대의 경우 자교 출신 교수 비율이 77% 이상이다.[25] 참고로 대한민국은 원래 학사 위주 학맥 문화가 강하고 단일민족 전통으로 인해 외국인에 대한 거리감도 강한 편이다.[26] 일례로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일공동역사연구회의 주축은 고려대 출신과 고려대 교수들인 조광, 김현구, 조법종 등이었고, 식민사관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비판하는 이희진 교수, 임나일본부설에 가장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이재석 교수 역시 고대 학부 출신이다.[27] 과거에는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진 리더 또는 선배들이 동료 또는 후배들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일이 간혹 있었으나 오늘날 그런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고대 내에 개인의 인격과 자유, 그리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잡혀가고 있으며, 이를 파괴하는 일부 구성원의 이기적 행동은 공동체내 건전한 협업과 화합의 문화에 큰 장애가 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추세에 있다.[28] 옛날에는 막걸리를 강제로 먹어야만, 4.18에 억지로 마라톤을 달려야만 공동체 정신이 심어진다고 다들 믿었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무식한 방식으로 공동체 정신을 체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각종 온오프 커뮤니티에 활발히 참여하고 조직 내 궂은 일을 묵묵히 처리하며 동아리 내 인간관계의 갈등을 원만히 잘 풀어가는 방식으로 공동체 정신을 증명하려 한다.[29] 오늘날의 고대생들은 자기 권리감과 자존감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기 욕구와 의견을 언제나 명확하게 표현한다. 부당한 취급을 결코 인내하지 않으며 자기 심리적 경계선을 침범하는 나르시시스트형 윗사람에 대해 단호하지만 유머러스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과거의 고대생들은 간혹 선배의 권위에 일단 복종하며 갈등 상황을 인내하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고대생들은 잘못된 것을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불공정이나 비효율, 부조리가 있으면 이를 일단 받아들이고 나중에 (자기가 높은 사람 되어) 고치려 하기보다 이를 그때그때 이의제기하고 교정해서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를 신속하게 줄이고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해나가려 한다. 셋째로 학사 행정의 혁신이다. 그간 보수적이라 평가받았던 학교 운영이 2015년부터는 성적 장학금 폐지, 절대평가제 도입 등으로 변화를 선도하게 되었으며 2020년부터는 15년 가까이 사용되었던 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을 개편했고, '전과' 제도를 신규 도입하거나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학생증을 신설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30] 인촌 김성수는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현 정치경제학부) 출신이고, 초대 총장 현상윤은 와세다대학 사학과(현 문학부 일본사·아시아사·서양사코스)를 졸업하기도 하였다.[31] 북경대학 신문 (중문) 사실 고려대-와세다-북경대 3자간 공동학위는 2001년 부터 추진되었다. #[32] #[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