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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도 (통영) | |||
1. 개요
미륵도(彌勒島)는 통영시 산양읍, 봉평동, 미수동이 속하는 섬으로, 면적은 약 45.59km²이다. 인구는 25년 3월 기준 23,327명.[1] 대한민국 섬 중 인구가 8번째로 많다.[2]미륵도는 원래 통영반도와 폭 200여 m의 좁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썰물 때에는 걸어서 건널 수 있지만 밀물 때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너비 10여 m의 물길이 있었다. 이 물길을 확장해 1932년에 지금의 통영 운하가 만들어졌다.
2. 역사
삼국시대 때부터 신라의 절인 정수사(淨水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미륵도를 비롯해 주변 도서의 지명 역시 연화장세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임진왜란의 한산도 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모래를 파고 물길을 더 크게 내어 도망치려 했다고 하여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를 '판데목'(착량, 鑿梁)이라고 부르는데, 무수히 많은 일본군이 죽어 시체가 되었다는 뜻으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본래 거제군 지역으로 1603년(선조 35)에 고성현(固城縣)에 편입되었다가 1900년에 진남군(鎭南郡)으로 이속되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통영군에 편입되었고, 1995년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면서 통영시 소속이 되었다. 2010년 12월 31일 행정동 중 미수1·2동을 미수동으로, 봉평·도남동을 봉평동으로 통합되었다.
3. 지리
동경 129°23′, 북위 34°47′에 위치한다. 섬의 중앙에는 미륵산(彌勒山, 459m)이 있으며 미륵산에서 뻗은 낮은 구릉성 산지가 해안에 몰입하여 해안선은 굴곡이 매우 심하고 곳곳에 소만입이 발달되어 있다.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아열대성 식물이 생육하며, 특히 동백과 풍란이 자생하고 있다. 1월 평균기온은 2.1℃, 8월 평균기온은 27.3℃, 연강수량은 1,358㎜이다.4. 통영 운하
統營運河통영시의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를 관통하는 길이 1,420m(해상준설 구간 1,170m 포함), 너비 42~55m, 간조수심 3.1m의 운하로, 판데목을 착통한 것이다. 1928년 5월에 착공해 4년 6개월 후인 1932년 11월 20일에 완공되었다. 이 운하의 완공과 같은 시기에 통영 해저터널도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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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다이코보리의 전설 太閤堀の傳説 전설에 따르면 300여 년 전 분로쿠 전쟁에서 다이코 히데요시 휘하의 가토 요시아키가 이끄는 수군이 한국 수군 장수 이순신에게 유인당해 통영만 안으로 몰려 도주할 길을 잃고 거의 전멸했지만, 그 중 일부 용맹한 수십의 장병은 이 지점을 굴착해서 만조를 틈타 간신히 외해로 도주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다이코보리라는 이름이 어느덧 널리 회자되었다. 이제 와서 그 진위를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傳説に依れば三百餘年前文禄の役太閤秀吉の部加藤嘉明の率ゆる水軍が韓国水軍の将李舜臣の爲に欺かれて統營灣内に追詰られ逃げ場を失ひ殆ど全滅したるが其一部勇猛なる數十名の将士は此地點を掘鑿して滿潮時を利用辛うして外海に遁走したと云ふ傳説から太閤堀の名が何時ともなしに人口に膾炙する様になったのである今更其の眞僞は論議の要もあるまい 운동의 발단 運動の端緒 다이쇼 11년(1922년) 8월 14일, 내 친구인 총독부 토목기사 야마키 하루에 씨(현 황해도 토목과장)가 통영에 왔을 때, 우리 집에서 회포를 풀다가 우연히 다이코보리 개착이 국가에 유익한 사업이 되어 대단한 항로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게 되었다. 어쨌든 수십만 엔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할 텐데 대략의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의제로 제안할 수조차 없을 테니 아무쪼록 총독부에서 측량을 해줄 수는 없는지 이야기하였다. 이에 대해 야마키 기사가 말하길, 大正十一年八月十四日私の知友總督府土木技師八卷春衛氏(現黃海道土木課長)が來統せられたとき私の宅で種々なる懐舊談の末偶々太閤堀開鑿が國家的有利なる事業にして多大なる航路節約が出來ることを説明して兎も角何十萬圓位の經費を要するものが大體の見積りが出來なけらば問題として提唱することも出來ぬか何とか本府に於て測量するとは出來ないかと話たのである、之に對して八卷技師は曰く "경우에 따라서 측량을 못할 것도 없지만 개착을 했을 때 어느 정도 이익이 있는지 미리 정확한 경제 조사가 필요하니, 서둘러 조사를 실시해 총독부에 희망사항을 진정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복귀하는 대로 충분히 연구해 보겠습니다. 더욱이 통영은 항만 조사도 지난해에 이미 완료되었으니 대략의 사항은 견적을 낼 수 있을 겁니다." 場合によれば測量は出來ぬともないが開鑿すれば何程の利益があるか豫め正確なる經濟調査が必要であるから早速調査して本府に希望を陳情して貰ひたい自分も歸任の上大いに硏究して見よう殊に統營は港灣調査も昨年完了してめるから大體のことは見積りが立つであらう…… 이렇게 말한 뒤 그는 다음날 아침 출발하여 복귀했다. 이상이 본 운동의 발단이다. と斯くて氏は其翌朝出發歸任せられた、以上が本件運動の端緒である 운하 개착 효과 運河開鑿効果 통영 운하, 즉 다이코보리를 개착하여 미륵도를 돌아가야 하는 20여 해리(약 40 km)의 우회 항로를 불과 2해리(약 4 km) 안팎으로 단축하는 것은 조선 남해안을 항행하는 선박에게 막대한 편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통영에 출입하는 선박·어선을 합쳐 22만여 척 가운데 절반이 이 혜택을 누리게 된다고 가정하더라도 한 해에 능히 100만 해리에 가까운 항로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연안 지역의 약 100만 명에 이르는 주민에게 미칠 각종 편의와 이익은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므로, 마침내 30만 엔의 예산으로 실제 공사 기간 2년에 걸쳐 이 운하 개착 사업을 완성하고자 오늘 이 자리에서 기공식을 거행하게 된 것은 참으로 우리 통영 시민들에게 더없는 기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오로지 지난 7년에 걸친 통영 시민들의 열성적인 운동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결코 지나친 평가가 아닐 것이다. 統營運河即ち太閤堀を開鑿し彌勒島二十餘浬の迂廻航路を僅に二浬内外に短縮することは朝鮮南沿岸航行船舶の多大の便益を與ふるのみでなく統營に出入する船舶漁船を合せ二十二萬餘隻の半數が此の恩惠に浴するものと假定するも一ヶ年能く百萬浬に近き航路の節約が出來る譯である之に伴ひ沿岸百萬内外の人民に及ぼす各種の便宜と利益は殆ど計り知ることは出來ない程であるから愈々三十萬圓の豫算を以て正味二ヶ年にて此の運河開鑿を完成すべく本日玆に起工式を擧行することは誠に吾々統營市民の喜びにたへない處である、之も偏に過去七年間に亘る統營市民の熱誠なる運動の結果であると云ふも決して過當の言ではない 운동 경과의 개요 運動經過の大要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즉 다이쇼 11년 8월에 야마키 기사와 우연히 만나 이 문제를 제창한 해 11월, 사이토 총독과 사와다 지사 등께서 통영을 방문하신 것을 계기로 크게 이를 진정하였고, 출발에 앞서 경비선으로 다이코보리를 시찰하신 이래, 회의에서 채택된 100만 엔의 예산이 그 관동의 대지진 여파로 무산되었으며, 때로는 뜻밖의 반대 진정서가 제출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경성에서 개최된 항만○회의 결의 및 건의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고난과 싸우기를 5년, 얼음물 같던 도 당국도 마침내 공감하여 쇼와 2년도(1927년) 지방비 사업으로 예산이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해 7월, 세키야 토목과장과 와타나베 면장과 함께 총독부에서 신바 토목과장과 교섭하여 한때 삭제되었던 본안을 부활시키고, 15만 엔이던 예산을 30만 엔으로 증액하여 총독부의 채택을 받았을 때는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既往を追懐すれば前述の如く今より七年前即ち大正十一年八月八卷技師と偶然會見して此の問題を提唱した年の十一月齋藤總督、澤田知事等の來統を機として大いに之を陳情し出発に際し警備船にて太閤堀を視察せられて以來會で採擇せられた百萬圓の豫算があの關東の大震災に祟られ又時には思はざる反對陳情書が提出せられたこともあったが京城で開催された港灣○會の決議及建議となった其間幾多の困難と戰ふこと五年漸くにして冷静水の如き道當局も遂に感激共鳴するに至り昭和二年度の地方費事業として豫算に計上する運びとなった、斯くて其年七月關谷土木課長及び渡邊面長と共に本府に於て棒葉土木課長に交涉して一度削除された本案を復活せしめ十五萬圓の豫算を三十萬圓に倍加して本府の採擇を得た時は實に何とも云えぬ愉快を感じた 관계 각위의 성의 있는 양해 關係各位の誠意ある諒解 본 운동이 개시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친 총독, 4대에 걸친 정무총감, 2대에 걸친 내무국장, 2대에 걸친 토목과장, 조선을 떠난 토목부장, 2대에 걸친 항만기사와 관계 교섭을 해왔다. 또한 이 도에서는 지사가 3대째에 이르렀고 내무부장도 3대째, 토목과장도 3대째, 군수도 3대째에 걸쳐있었다. 그동안 통영에서 운동을 위해 상경하거나 상도한 것이 거의 몇십 회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때마다 면담한 총독 이하 관계 국·과장, 신문기자 분들이 매번 서른·마흔 명은 넘었을 것이다. 그간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남에게도 말 못할 일이나 정말 울려야 울 수 없는 고행도 있었지만, 요컨대 결국은 뭐니 뭐니 해도 유아사 정무총감, 이쿠타 내무국장, 신바 토목과장, 마루야마 기사 등 총독부 각위의 통영에 대한 동정과 성의 있는 양해 덕분인 동시에, 전임자였던 와다 지사, 마쓰이 내무부장, 세키야 토목과장 등의 노력과 신문·통신 관계자 분들의 성원, 그리고 시민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던 열성의 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本件運動開始以來今日迄の間二代の總督、四代の政務總監、二代の内務局長、二代の土木課長、土木部長の退鮮、二代の港灣技師に關係交渉してゐる、又本道では知事が三代目、內務部長が三代目、土木課長も三代目、郡守も三代目に亘ってゐる其間統營より運動の為上城し又は上道したことは殆ど幾十回か判らぬ程である其都度面接した總督以下關係局課長、新聞記者諸氏は毎回三、四十人は下らぬであらう其間に於ては餘りに馬鹿らしくて人にも話せぬ様なことや實に泣くにも泣けぬ様な辛苦もあるが要するに最後は何と云ふても湯淺政務總監、生田內務局長、棒葉土木課長、丸山技師等本府各位の統營に對する同情と誠意ある諒解の賜物であると同時に前任者たりし和田知事、松井內務部長、關谷土木課長等の努力と新聞通信者各位の聲援並に市民の終始一貫せる熱誠の力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ぬ 항만의 가치 港灣の價值 통영항에 대해서는 다시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지만 현재 세관 조사에 따르면 내지와의 무역액은 205만 2728엔이며, 연안 무역은 1599만 6500엔으로 합계 1800여만 엔에 달하고, 인구도 2만여 명이며, 상업 거래가 활발해 하루 300통에 가까운 전보가 발착하고 700명의 여객이 왕래하는 등, 경제력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조선 남해안의 부산과 목포 사이에서 이 항을 능가하는 항구는 없다. 또한 항만에 직면해 고려해보아도 그 유효 면적은 300만 평 이상이고, 수심은 20척에서 50척 이상이며, 사방의 섬들이 천연 방벽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조류는 잔잔하고 간만의 차도 적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풍랑의 피해가 없다. 항로는 사방으로 통하고 불과 30분 내외면 곧장 현해에 임하며, 항로가 좁기로 소문난 견내량조차 능히 1000톤급 구축정을 통과시킬 수 있으므로 다른 항만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 또한 향후 설비에 있어서도 타 항에 비해 경비가 적게 들면서 효과가 지대하다는 점은 이미 조선기선회사 등 항해업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게다가 이번 운하 개착에 따라 항만 가치가 증대되므로, 집산화물, 특히 수산물 같은 경우에는 일거에 배가될 것이다. 조만간 항만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상세히 논할 계획이다. 統營港灣のことは改めて述ぶる積りであるが現在に於て税關の調査によれば對內地貿易は二百五萬二千七百二十八圓並に沿岸貿易一千五百九十九萬六千五百圓にして合計一千八百餘萬圓を算し人口亦二萬餘人、商業取引の活氣のあること一日三百通に近き電報の發着、七百人の往復旅客あること等經濟力の點から見ても南鮮沿岸釜山、木浦間に於ては恐らく本港の右に出づる港はない又港灣に直面して考ふるも其有効面積三百萬坪以上で水深の如きも二十尺乃至五十尺以上を有し四面島嶼を以て自然の屏障を形成して居るので潮流の平静にして干滿の差の少きこと如何なる場合でも風波の害なく航路四通僅々三十分內外にして直路玄海に臨み航路の狹隘を以て知られて居る見之梁ですら能く一千噸級の驅逐艇を通ずるのであるから他の港灣に勝ることも數等又今後の設備に於ても他港に比し經費少くして效果の偉大なることは既に朝鮮汽船會社等航海業者の認むる處である而も今回の運河開鑿に依りて港灣價値を増大するので集散荷物殊に水産物の如きは一躍倍加するであらう近く港灣調査の完了と共に詳論する積りである |
| 후잔닛보 9면 〈축 통영 운하 기공식〉 다이코보리 굴착 공사 기공식을 축하하며: 아울러 장래에 대해 희망을 술하다, 통영지국장 고타니 쓰네히로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분로쿠 전쟁 때 한국의 용장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에게 참패한 다이코 히데요시의 가신 가토 요시아키가 이끄는 수군 일부가 통영항 안으로 몰려 궁지에 빠져, 마치 독 안에 든 쥐처럼 갇혀 버렸을 때, 상당한 고심 끝에 이곳의 지협을 파서 마침내 외해로 빠져나갔다는 전설을 낳은 다이코보리도, 달이 바뀌고 별이 옮겨가기를 3세기. 지금 문명의 빛은 천하 방방곡곡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시대의 흐름에 재촉받아 "이 운하를 열라"는 목소리가 드높아짐에 이르러, 마침내 도 및 총독부 당국의 용인을 얻게 되었으니, 이에 오늘을 길일로 점쳐 성대한 기공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경축해 마지않는 바다. 今より約三百年の昔文祿の役に韓国の勇將李舜臣の統帥する水軍の為に慘敗した太閤秀吉の家來加藤嘉明の率ゐる水軍の一部が統營港內に追ひ詰められ恰も袋の鼠として封ぜられた時只ならぬ苦心の結果此の地峽を掘鑿して漸くにして外海に逃れ出でたりとの傳說を生んだ太閤堀も月變り星移ること三世期今や文明の光りは天が下津々浦々までも恵まれざるはなく時代の進運に促されて此の堀を開けよの聲大いに叫ばるゝに至り遂に道及本府當局の容認さるゝ處となり玆に本日を卜して起工の盛式を擧行さるゝことゝなったのである寔に慶賀に堪へざる次第である 돌이켜보면 7년 전인 다이쇼 11년(1922년) 8월 14일 현 통영실업협회장 야마구치 세이 씨가 총독부 토목과 기사 야마키 씨와 야마구치 씨의 자택에서 회담하던 중 뜻밖에 화제에 올랐던 것이 억제할 수 없는 동기가 되었고, 그 이래 통영 유지들의 열성적인 운동과 이에 호응하는 시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연안 수십만 민중이 모두 나서서 이 운하를 뚫으라며 열망한 것에 대해 총독부 및 도의 열성적인 원조가 더해져 비로소 실현을 보게 된 것이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顧みれば七星霜前即ち大正十一年八月十四日現統營實業協會長山口精氏が本府土木課技師八卷氏と山口氏の宅に於て會談の際圖らずも話題に上ったのが抑の動機となり爾來統營有志の熱心なる運動と之に和する市民は云ふまでもなく沿岸數十萬民の擧って此の堀を開けよの熱望に對する本府並に道の熱心なる援助によって玆に實現を見るに至ったものであって決して偶然の出來事ではない 예로부터 통영항은 천혜의 항구 조건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이 항구를 중심으로 2,500여 곳의 어장을 품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수산왕국이며, 따라서 매년 뛰어난 발전을 이뤄 이제는 2만의 인구와 연간 1600여만 엔에 달하는 반출입 무역을 보이는 성황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由來統營港は天與の良港に惠まれ而も本港を中心として二千五百餘ヶ所の漁場を抱擁する一大水産王國であり隨って逐年異數の進步發展を遂げ、今や二萬の人口と年額約一千六百餘萬圓の移出入貿易を見るの盛況を呈するに至ったのである 그러나 이와 같이 훌륭한 항만은 항구가 발전하고 선박의 출입이 점점 빈번해짐에 따라, 더욱더 미륵도를 우회해야 하는 불편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이른바 야마구치 씨가 고안한 것이 바로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지협인 다이코보리를 굴착하여, 남해안 항로를 단축하고, 항로의 안전과 비용 절감을 도모하여, 그로써 산업 발전에 공헌하고자 하는 매우 뜻깊은 국가적 대사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然るに斯の如き良港灣は港の發展に伴ひ船舶の出入頻繁を加へるに隨って益々彌勒島を迂回しなければならぬ不便ざを感ずるやうになったそこで所謂山口氏の案出したのが即ち統營半島と彌勒島との地峽太閤堀を開鑿して南沿岸の航路を短縮し航路の安全と經費の節約を圖り以て産業の發展に貢獻せんとする頗る有意義なる國家的大事業は生れることゝなったのである 본 공사는 도에서 운영하는 사업으로 총 공사비는 30만 엔이다. 공사비 자체로는 특별히 놀랄 만큼 거대한 규모라 할 수 없지만 조선에서는 물론 처음 있는 일이며 내지에서도 거의 보기 드문 운하이다. 더욱이 이것의 굴착으로 얻게 될 이익이 막대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통영항 주민들은 받은 혜택을 행복으로 여기고, 만강 감사의 성의를 바칠 것이다. 本工事は道營事業にして總工費實に三十萬圓である工費としては敢て驚くべき巨大なものではないにしても朝鮮では勿論初めてゞあり內地に於ても殆ど珍しいところの運河である而も之が開鑿によって蒙る利益の絶大なることを想ふ時統營港民は惠まれたる幸福を視し而して滿腔の感謝の誠意を捧ぐるであらう 우리는 오늘을 길일로 점쳐 거행된 기공식에 임석하는 영광을 누려 환호작약을 금치 못하나, 이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준공이 하루라도 빨라지기를 바라는 동시에, 더 나아가 개통의 날에 이르러서는 항구 주민들은 이러한 의식을 더욱 깊이 새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큰 책임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통영항의 이용 가치를 더욱 증대시키는 일이다. 吾等は本日を卜して擧げられた起工式に臨むの光榮に浴し歡喜雀躍を禁じ得ないのであるが此の上は何等の故障なく竣工の一日も速かならんことを念ずると共に更に開通の曉に於て港民は此の意識を益々深からしむべく努力をしなければならぬ大きな責任のあることを感ぜずにはゐられない、それは云ふまでもなく統營港灣の利用價値を増大ならしむることである 항만의 이용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오래된 현안인 후방 연락 철도의 부설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본항은 수심이라든지 조류가 완만하다는 점, 또는 간만의 차가 극히 적어 풍파의 걱정이 없고 소선항을 끼고 있는 점 등에 있어, 도저히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할 뛰어난 항만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은 새삼스레 장황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이미 해운업자는 물론이고 철도 관계자도 인정하는 바이다. 특히 물자의 집산 상황 및 내지와의 직통 항로 개시에 대한 다방면의 관찰에 있어서도 ○○히 돋보이기에, 후방 연락 철도는 이제 시간 문제이지 싶다. 港灣の利用價値を益々大ならしむるには兼ての懸案である後方連絡鐵道の布設を急足に進めなければならない本港は水深と云ひ潮流の緩慢なることに於て又は干滿の差極めて少き點に於て風波の憂ひないこと及び小船港を控へてゐる點等到底他で見ることの出来ない優れた港灣的條件を遺憾なく具備してゐることは今更喋々を要せずとも既に業に海運業者は勿論鐵道關係者の認むる處であり殊に物資の集散狀況及內地との直通航路開始に對する凡ゆる方面からの觀察に於て○に一頭地を拔いてゐるのでるから後方連絡鐵道は最早時日の問題であると思ふ 요컨대 통영 시민의 열과 성이 어떠한지에 따라 일의 진척이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땅히 통영 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력을 다해, 곧 다이코보리 운하 개착을 위해 쏟아부은 열성⸺아니 그보다도 더 큰 희생을 각오하고, 소기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용왕매진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통영 운하의 기공식을 축하하며, 감히 장래를 위해 시민 각위께 바라는 바다. 要は統營市民の熱と誠の如何によって緩急の岐るゝことであらう須べからく統營市民は緊褌一番全力の注いで即ち太閤堀運河開鑿のために盡した熱誠⸺否ヨリ以上の大なる犧牲を覺悟して所期の目的の達成に向って勇往邁進せんことを切密して止まない統營運河の起工式を祝し敢て將來に對して市民各位に希望する所以であ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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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통영 착량교 문제 統營鑿梁橋問題 【통영】경남 통영군 산양면 착량교를 중심 삼아 일대의 지면을 경남도 직영으로 지방비 30만 원을 들여서 총공사비로 삼고, 작년 5월부터 굴착에 착수해 지금 작업중인 바, 내년 10월 경에 준공이 될 것이라 함은 이미 보도한 바와 같다. 앞서 말한 착량교는 지역 주민 14만 인구가 통행하는 산양면과 읍내 사이에 오직 하나뿐인 길의 중심지로서, 준공후 도선하게 함은 소위 대통영 건설에 '기생 얼굴에 분칠' 격으로 통행상 적지 않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 하여 일반 사회인사는 이 문제에 대해 불평과 여론이 자자한 중, 통영면 산양면의 양 면장과 기타 유지 몇 사람 사이에 이 문제를 심중 고려한 결과 해저도로의 필요를 절실히 느낀 바 되어, 운하의 준공된 후에는 도저히 착수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준공되기 전의 기회를 이용하여 너비 4간(약 7 m) 길이 250간(약 450 m)에 공사비 7만 원의 계획을 세워서 지금 그 실현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바, 대중은 이에 대하여 주목하는 중이라더라. 【통영】경남통영군산양면착량교(慶南統營郡山陽面鑿梁橋)를중심삼아 일대의지면을 경남도직영(直營)으로 지방비삼십만원(地方費三十萬圓)을떠러서총공사비를삼고 작년오월부터 굴착(掘鑿)에 착수하야 방금작업중인바 래년십월경에 준공이될것이라함은 이미 보도한바어니와 전긔착량교는 주원민(住元民)십사만인구가 통행하는산양면과 읍내사이에 오즉하나뿐인길의중심지로서 준공후도선(渡船)으로써함은 소위대통영건설(大統營建設)에기생얼굴에분칠격으로통행상적지안흔고통을당하게될것이라하야 일반사회인사는 이문제에대하야 불평과여론이자자한중 통영면 산양면의량면장과 기타 유지몇사람사이에 이문제를심중고려한결과 해저도로(海底道路)의필요를절실히늣긴바되어운하(運河)의준공된후는 도저히 착수하랴하야도할수업는 일임으로 준공되기전의긔회를 리용하여 넓히사간길이이백오십간에 공사비칠만원의계획을 세워가지고 방금그실현에 노력중이라는바 일반은이에대하여주목하는중이라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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