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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도 (통영) |
미륵도는 원래 통영반도와 폭 200여 m의 좁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썰물 때에는 걸어서 건널 수 있지만 밀물 때에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너비 10여 m의 물길이 있었다. 이 물길을 확장해 1932년에 지금의 통영 운하가 만들어졌다.
1. 역사
임진왜란의 한산도 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모래를 파고 물길을 더 크게 내어 도망치려 했다고 하여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를 '판데목'(착량, 鑿梁)이라고 부르는데, 무수히 많은 일본군이 죽어 시체가 되었다는 뜻으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본래 거제군 지역으로 1603년(선조 35)에 고성현(固城縣)에 편입되었다가 1900년에 진남군(鎭南郡)으로 이속되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통영군에 편입되었고, 1995년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면서 통영시 소속이 되었다. 2010년 12월 31일 행정동 중 미수1·2동을 미수동으로, 봉평·도남동을 봉평동으로 통합되었다.2. 지리
동경 129°23′, 북위 34°47′에 위치한다. 섬의 중앙에는 미륵산(彌勒山, 459m)이 있으며 미륵산에서 뻗은 낮은 구릉성 산지가 해안에 몰입하여 해안선은 굴곡이 매우 심하고 곳곳에 소만입이 발달되어 있다.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아열대성 식물이 생육하며, 특히 동백과 풍란이 자생하고 있다. 1월 평균기온은 2.1℃, 8월 평균기온은 27.3℃, 연강수량은 1,358㎜이다.3. 통영 운하
통영 운하(統營運河)는 통영시의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를 관통하는 길이 1,420m(해상준설 구간 1,170m 포함), 너비 42~55m, 간조수심 3.1m의 운하이다. 1928년 5월에 착공해 4년6개월 후인 1932년 11월 20일에 완공되었다. 이 운하의 완공과 같은 시기에 통영 해저터널도 개통되었다.4. 교통
미륵도와 통영반도는 충무교, 통영대교 및 통영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67번 지방도와 1021번 지방도가 경유한다. 1021번 지방도는 남해 바다가 펼쳐지는 주변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5. 행정
미륵도는 원래 전지역이 산양면(현 산양읍)에 속했지만, 1936년 4월 1일 통영운하와 접하는 산양면의 북부(현 봉평동, 미수동 등)가 통영읍에 편입되었다.6. 관광
섬 중앙에는 미륵산이 있고, 등록문화재로 통영 해저터널이 있다. 섬과 주변 지역의 많은 부분이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산에는 통영 케이블카가 있다. 미륵산에는 용화사(龍華寺)·관음사(觀音寺)·도솔암(兜率庵) 등의 절이 있다.7. 현황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한다. 경지 면적이 좁고 평지가 적기 때문에 벼농사는 발달하지 못하였다.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고구마 등의 밭작물과 양파·마늘 등이 생산된다. 연안에는 멸치어장이 형성되어 5월에서 8월까지 멸치잡이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굴 양식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1] 가장 많았을적은 2000년 35,121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