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항전이다보니 일반적인 클럽의 라이벌전에서 관계 맺어지는 지리적 또는 축구 경쟁에서 오는 부분 외에도 각 국가의 역사, 정치, 외교, 사회, 문화, 민족, 종교 등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라이벌 의식을 만들어 낸다. 보통은 단일한 이유로 더비가 형성된다기보다 복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국가대표팀 더비 매치의 대표적인 유형은 아래와 같다.
지역(지리) 더비: 가장 많은 유형의 더비이다. 원교근공의 이치에 따라, 사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는 영토 분쟁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에 더해 역사, 정치, 사회, 민족 등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안고 가기 때문에 대다수의 라이벌 의식은 지역적 이유로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영연방 지역을 비롯해 남미 또는 중동 국가들은 사실상 모두가 라이벌이고 스킨디나비아, 스페인-포르투갈,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등 수많은 사례가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최대 라이벌들인 일본-중국-북한 모두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민족 더비: 위의 지역 더비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보통은 지역적인 공유는 역사의 공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 의한 더비는 대부분 전쟁이나 식민지 그리고 독립 전쟁 관련한 더비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보통 원수가 되며 감정의 골이 매우 깊기 때문에 온 국가적 관심이 쏠리기도 하며 경기장에서는 혈투가 벌어지곤 한다. 전쟁에 의한 라이벌리티는 대표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잉글랜드-독일, 독일-러시아 등이나 이란-이라크 전쟁, 유고슬라비아 전쟁 등이 그렇다. 반면 지역적으로 멀지만 포클랜드 전쟁을 치렀던 잉글랜드-아르헨티나의 사례도 있다.[1]식민지 관계에서 나타나는 라이벌리티는 한일전이 대표적이며 모로코-스페인도 유명한 사례이다. 격렬한 독립 전쟁을 벌였던 알제리-프랑스의 알제리 독립 전쟁, 아일랜드-잉글랜드의 아일랜드 독립 전쟁은 최악의 피지배정서가 들어가 경기뿐 아니라 외적인 팬들의 충돌 등이 일어나는 등 매우 격렬해진다. 반면에 브라질-포르투갈, 잉글랜드-호주 등과 같이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식민지 관계도 있다. 분단국가 더비도 역사에 근거한 더비로 유명하다. 과거 동-서독이 그랬고 남북한 대결 역시 이에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정치-외교 더비: 역사, 민족 더비와 유사하다. 보통 그 사유가 역사적 이유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학살로 사실상 단교와 가까운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란 혁명 이후 단절된 미국-이란 관계로 양팀은 2차례나 월드컵 본선에서 마주한 경험이 있다. 러시아-튀르키예 역시 정치적, 외교적 감정싸움을 했던 지라 여기서 파생되는 더비가 펼쳐지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반일, 반중 정서도 이러한 정치-외교-사회적 맥락과 함께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문화 더비: 흔하지 않은 더비이다. 보통 문화적인 다툼은 가까운 나라까리 발생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국가 사이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다만 이러한 문화적 더비는 이미 더 무거운 주제인 역사적, 정치적 등의 이유들에 가려지기 때문에 흔히 문화적 이유만으로 더비가 형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문화적인 다툼에서 파생된 더비가 없지는 않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피아노에 관한 현대적인 더비로 알려진 남아공-나이지리아의 더비이다.
사회 더비: 각 국의 사회적인 이슈가 양 팀의 라이벌리티를 형성하는 경우이다. 미국과 멕시코는 지리적인 문제와 역사적-정치적 문제도 있지만 백인과 히스패닉에서 오는 인종적 문제에서 오늘날 마약 카르텔 등의 사회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양 팀의 경기를 한 층더 격하게 만든 주된 원인으로 뽑히고 있다. 독일-튀르키예는 이민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 갈등이 파생되면서 오늘날 새로운 라이벌로 떠오른 경우이다.
축구 더비: 가장 축구적인 이유에 의한 더비이다. 주로 월드컵 또는 대륙대회 결승전과 같은 역사적인 경기를 치르거나 혹은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치열한 경기를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네덜란드-아르헨티나(월드컵), 독일-아르헨티나(월드컵), 브라질-이탈리아(월드컵), 스페인-이탈리아(유로), 이집트-카메룬(아프콘) 등이 있다. 이외에도 사실 본선만큼이나 많은 라이벌리티가 형성되는 라운드가 바로 월드컵 예선 직전에 혈투를 벌이는 것으로 특히나 플레이오프는 서로 처절한 승부를 보여주며 의도치 않은 라이벌리티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형태는 특히 32개국 체제에서 최종 단두대 매치와 같은 극악의 시스템으로 혈투를 창조해내던 아프리카 예선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집트-가나(14-18 월드컵 예선) 등이 대표적이며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는 호주-우루과이(02-06 월드컵예선)가 유명하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관계는 축구 전쟁으로 온두라스-엘살바도르의 사례이며 이는 전쟁에서 축구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축구가 전쟁이된 사례였기에 더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다. 이외에 우루과이와 가나는 월드컵에서 그 유명한 신의 손 사건으로 라이벌이 된 경우이며 이외에 월드컵에서 5번이나 격돌한 나이지리아-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3연속으로 격돌한 미국-가나 역시 축구적인 이유에서 라이벌이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축구의 강국들이 몰려 있는 서유럽 지역은 일반적으로 서유럽 더비로 통용될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된 축구 전통으로 각 국 사이의 라이벌리티가 공고히 되면서 실질적으로 서유럽 더비라 통칭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편 영국(Great Britain)의 구성국들 사이의 경기는 영연방 더비로 통칭될 수 있다.
증오의 더비[3]라고도 불리는 유럽의 국가 대항전 최대 라이벌전 더비로 꼽히는 매치. 일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0년 5월에 독일의 네덜란드 무차별 폭격 침공으로 서로 양국의 적대적 의식이 매우 강하다. 이 둘의 라이벌리에 관한 골닷컴 기사의 제목이 '그들은 나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죽였어요. 나는 그들을 증오합니다.'라고 할 정도로 아직 그 역사적 증오가 여전히 남아 있다.
베네룩스 3국 중 두 강팀의 맞대결로 저지대 국가 사이의 경기라는 뜻에서 실제 저지대 더비라는 별칭이 존재하는 라이벌 경기이다. 첫 만남은 1905년 경기로 네덜란드가 4-1로 승리했다.
총 129번의 만남 동안 네덜란드는 57승 벨기에는 41승을 가져갈 정도로 팽팽한 편이다.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팀 중 하나인 네덜란드가 우세한 시절이 많았으나 벨기에의 황금세대가 도래했을 때에는 벨기에가 더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럽 예선과 월드컵 예선을 자주 치렀으며 양 팀의 유로 대회 맞대결은 없다. 월드컵에서는 2번 맞붙었는데 모두 1994-1998년에 연달아 조별리그에서 만났다. 94년도에는 벨기에가 1-0 승리를 거두었고 98년에는 0-0으로 비겨 벨기에게 메이저 맞대결에서는 1승 1무로 우세에 있다.
프랑스
[ 서유럽 더비 ]
공통의 라이벌 벨기에 정도는 아니지만 1908년부터 이어지는 맞대결로 서유럽 강호로서 경쟁 의식을 갖는다. 상대전적은 근소하게 프랑스가 앞선다. 메이저 맞대결은 모두 유로대회에서 있었으며 네덜란드가 2승 2무로 앞선다. 유로 1996년 8강전에서 클라렌스 셰도르프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프랑스가 올라간 바 있다. 유로 2000 조별리그에서는 명승부 끝에 네덜란드가 3-2로 승리했고 유로 2008에서도 4-1 승리를 거두었다. 유로 2024에서 격돌한 양 팀은 0-0으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스페인
[ 2010년의 혈투 ]
무적함대와 플라잉 더치맨의 대결. 역사적으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연관성이 매우 깊은 나라이다.[4]
축구에서 양 팀의 가장 중요한 경기는 2010년 요하네스버그 사커 시티 스타디움에서 있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두 팀이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두고 혈투를 벌인 것. 두 나라 모두 황금세대를 구가하고 있었고 벌써 준우승만 2번이나 했던 네덜란드와 매번 강한 전력이라는 평을 받고도 결승전에 올라와 보지도 못했던 스페인의 간절함이 묻어나오는 경기였다. 파울이 난무하는 경기속에서 연장전에 결국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스페인이 그들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룬다.
포르투갈
[ 항해사 더비 ]
대항해시대를 주도했던 두 나라는 뛰어난 항해사들의 나라이다. 특히 이들의 경쟁은 동남아시아 식민 개척과 카리브 해 등지에서 많이 일어났다.
오늘날 유럽 축구 강호로 손꼽히는 이들의 관계는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에 천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드컵 챔피언들의 천적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에게 오히려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에게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 양 팀의 상대전적은 14전 8승 4무 2패로 포르투갈이 압도적인 우세를 가져가고 있고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도 2승 1무 1패로 앞선다.
천적관계는 메이저 대회서 더욱 크게 나타나는데 메이저 통산 4경기에서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에 4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유로 2004 준결승 승리를 시작으로 2006 월드컵 16강에서는 당대회 가장 더러운 경기로 뽑힐 정도로 혈투를 벌였지만 역시 포르투갈이 승리했고 유로 2012 조별리그에서도 포르투갈이 접전 끝 승리를 거둔다.
2020년대 유럽 네이션스리그 결승전에서도 포르투갈이 네덜란드를 꺾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아르헨티나
[ 1978년의 원수 ]
천재 요한 크루이프와 토탈 풋볼의 네덜란드는 1974년 눈물의 준우승 이후 눈물을 머금고 다음 대회 월드컵 우승을 위해 내달린다. 황금세대는 여전히 건재했고 오스트리아-서독-이탈리아를 밀어내고 2회 연속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둔다. 상대는 개최국 아르헨티나 이미 노골적인 편파 판정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지만 결정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스타 마리오 켐페스의 놀라운 결정력 앞에 연장전에서 3-1 승리를 거둔 아르헨티나는 자국에서 사상 첫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네덜란드는 아르헨티나를 천년의 원수로 여긴다. 상대전적에서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에게 열세를 보이고 있다. 이후에 격돌한 월드컵 대회에서는 혈투가 이어지고 있다. 1998년 데니스 베르캄프의 극적인 골로 네덜란드가 승리한 경기와 2006년 0-0 무승부 이후 2014년 월드컵과 2022년 월드컵 경기는 모두 승부차기까지 갔다. 승부차기 전적은 아르헨티나가 2번 모두 승리했다.
베네룩스 3국 중 두 강팀의 맞대결로 저지대 국가 사이의 경기라는 뜻에서 실제 저지대 더비라는 별칭이 존재하는 라이벌 경기이다. 첫 만남은 1905년 경기로 네덜란드가 4-1로 승리했다.
총 129번의 만남 동안 네덜란드는 57승 벨기에는 41승을 가져갈 정도로 팽팽한 편이다.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팀 중 하나인 네덜란드가 우세한 시절이 많았으나 벨기에의 황금세대가 도래했을 때에는 벨기에가 더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럽 예선과 월드컵 예선을 자주 치렀으며 양 팀의 유로 대회 맞대결은 없다. 월드컵에서는 2번 맞붙었는데 모두 1994-1998년에 연달아 조별리그에서 만났다. 94년도에는 벨기에가 1-0 승리를 거두었고 98년에는 0-0으로 비겨 벨기에게 메이저 맞대결에서는 1승 1무로 우세에 있다.
프랑스
[ 에벤스 코페 ]
프랑스와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대결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전 중 하나로, 유럽 대륙 최초의 A매치였던 1904년 이른바 에벤스 코페(Évence Coppée)가 주최한 경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있는 더비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 역사적으로도 유사성과 경쟁 의식이 강한 관계다.
1904년 5월 열린 첫 A매치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고, 3대 3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지금까지 총 75회의 A매치를 치렀으며, 프랑스가 26승, 벨기에가 30승, 무승부 19회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최근 30년간은 프랑스가 우세한 흐름을 보이며 전통적인 우위를 바꾸고 있다.
이 더비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대표 라이벌전으로 손꼽힌다. 특히 1980년대까지는 벨기에가 강세를 보였으나, 1998년 월드컵 우승 이후 프랑스의 전력이 급상승하며 양상은 역전됐다.
가장 상징적인 맞대결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으로, 벨기에의 황금세대를 프랑스의 황금세대가 1대 0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고, 이 경기 이후 양국 팬들 간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문화적 친근감 속에서도 경쟁심과 자존심이 얽힌 이 더비는 유럽 축구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라이벌전이다.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맞대결은 영국 내 축구 홈 네이션즈끼리 벌어지는 라이벌전 중 하나로, 과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British Home Championship)의 일환으로 자주 펼쳐졌던 전통적인 경기이다. “브리튼 섬 내부 더비”, 혹은 단순히 “홈 네이션 더비”의 한 갈래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 북아일랜드(이전 아일랜드 대표팀)는 1882년에 잉글랜드와 첫 경기를 가지며 국제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라이벌전 중 하나를 형성했으며, 100경기 가까운 대결이 이뤄졌다. A매치 상대 전적에서는 잉글랜드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간혹 잉글랜드를 상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만들어내며 자국 팬들에게 강한 자긍심을 안긴 바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월드컵 예선에서 북아일랜드가 윈저 파크에서 1–0 승리를 거둔 경기로, 북아일랜드 입장에서는 “세기의 이변”으로 회자된다.
두 팀 간의 정치적 긴장감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경기만큼 격렬하진 않지만, 북아일랜드 내부의 정체성 갈등(친영 vs 친아일랜드)과 맞물려 국가 연주, 깃발 사용 등에서 민감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월드컵에서는 영국 더비가 없었는데, 웨일스가 플레이오프 끝에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본선에 진출하고 잉글랜드와 같은 조에 들어오며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영국 더비가 성사됐다. 결과는 잉글랜드의 3:0 승리로 싱겁게 끝났지만, 영국 더비가 처음으로 성사된 것만으로도 월드컵 역사에 남을 기록이다.
월드컵에서는 영국 더비가 없었는데, 웨일스가 플레이오프 끝에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본선에 진출하고 잉글랜드와 같은 조에 들어오며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영국 더비가 성사됐다. 결과는 잉글랜드의 3:0 승리로 싱겁게 끝났지만, 영국 더비가 처음으로 성사된 것만으로도 월드컵 역사에 남을 기록이다.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맞대결은 영국 내 축구 홈 네이션즈끼리 벌어지는 라이벌전 중 하나로, 과거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British Home Championship)의 일환으로 자주 펼쳐졌던 전통적인 경기이다. “브리튼 섬 내부 더비”, 혹은 단순히 “홈 네이션 더비”의 한 갈래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 북아일랜드(이전 아일랜드 대표팀)는 1882년에 잉글랜드와 첫 경기를 가지며 국제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라이벌전 중 하나를 형성했으며, 100경기 가까운 대결이 이뤄졌다. A매치 상대 전적에서는 잉글랜드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간혹 잉글랜드를 상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만들어내며 자국 팬들에게 강한 자긍심을 안긴 바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월드컵 예선에서 북아일랜드가 윈저 파크에서 1–0 승리를 거둔 경기로, 북아일랜드 입장에서는 “세기의 이변”으로 회자된다.
두 팀 간의 정치적 긴장감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경기만큼 격렬하진 않지만, 북아일랜드 내부의 정체성 갈등(친영 vs 친아일랜드)과 맞물려 국가 연주, 깃발 사용 등에서 민감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유럽 전통의 라이벌이자 앙숙이다. 백년전쟁으로 대표되는 두 나라의 숙적 관계는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A매치 통산 전적은 잉글랜드가 약간 앞서고 있으나, 최근 흐름에서는 프랑스가 다소 우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주목받은 경기 중 하나는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으로, 프랑스가 2대 1로 승리하며 잉글랜드를 탈락시켰다. 이 경기에서 프랑스는 두 골을 넣었고, 잉글랜드는 해리 케인이 한 골을 넣고 또 하나의 페널티를 실축하며 아쉬운 패배를 떠안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 케인의 페널티킥을 막은 골키퍼는 토트넘 팀동료 위고 요리스였다.
두 팀 모두 유소년 시스템과 스타 플레이어 배출 면에서 유럽 최고 수준의 리그와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이 맞대결은 늘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하이엔드 대진으로 평가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른 오래된 적국으로 축구에서는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서독과 잉글랜드의 대결에서 제프 허스트의 연장전 득점 논란이 있었고 결국 골로 인정되며 최종 4-2 승리를 거둔 잉글랜드가 자신들의 첫번째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이후 잉글랜드는 오랜 시간 독일에 승리하지 못했다. 월드컵에서는 이후로 3무 1패를 기록 중인데, 그 중 2무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프랭크 램파드의 슛이 골대를 넘겼음에도 오심 끝에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고 이후 1-4 완패를 당했는데, 오히려 1966년의 업보라며 전세계에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8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던 게리 리네커는 "축구는 22명이 뛰지만 최후에는 서독이 승리하는 스포츠"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말한 바 있다.
2000년에 처음 맞붙은 유로 대회에서는 2번 격돌했는데 잉글랜드가 독일에 2번 모두 승리하였다.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축구 국가대표팀 대결은 전통적인 유럽 강호 간의 클래식 맞대결로, 기술 축구와 피지컬 축구의 정면 충돌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양국 모두 월드컵과 유로에서 우승 경험이 있으며, 유럽 축구의 중심을 각각 서유럽과 남유럽에서 대표해온 팀들이다.
1934년 역사적인 하이버리의 전투를 시작으로 오랜 맞대결을 펼쳐왔다. 오늘날 양 팀의 대결에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같은 조에 편성됬는데, 마리오 발로텔리의 영국 여왕의 뽀뽀 망언으로 유명하다. 결과는 두 팀 모두 우루과이-코스타리카에게 밀리며 조별리그에서 짐을 싸야했다…
유로 2020 결승전에서의 맞대결은 이 라이벌 대전의 하이라이트로 기록된다. 당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양 팀은 1대 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했고, 이는 잉글랜드 축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 월드컵 예선, 유로 예선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며 접전을 이어가고 있다.
A매치 기준 전적은 이탈리아가 약간 우세하며, 특히 토너먼트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잉글랜드는 홈 경기에서의 조직력과 체력으로 대응해 접전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경기 양상은 이탈리아의 전술적 안정감과 잉글랜드의 스피드, 세트피스가 맞붙는 구조로 자주 전개된다.
양국 팬들 사이에서도 EPL과 세리에A부터 서로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UEFA 주관 대회에서는 항상 주목받는 대진으로 손꼽힌다. 역사성, 실력, 스타일이 모두 충돌하는 유럽 대표 클래식 매치다.
특별히 더비라고 칭하지는 않고, 두 팀의 관계도 우호적인 편이다. 초기에는 잉글랜드가 앞섰으나 1968년 런던에서 있었던 승리 이후 잉글랜드는 스웨덴에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었다. 이후 전적은 4승 8무로 스웨덴 초강세였었다. 잉글랜드는 이 바이킹 군단을 이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스웨덴 출신의 에릭손 감독이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솔 캠벨의 골로 잉글랜드가 앞서나갔지만 스웨덴의 알렉산데르손이 동점골로 1대1 무승부. 4년뒤인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에서 또 맞붙었는데 이땐 조 콜의 멋진 독수리 슛과 스티븐 제라드의 골로 잉글랜드가 2:1로 앞서며 드디어 징크스를 끊나 싶었는데, 경기 종료 직전 스웨덴의 알벡과 라르손이 동점골을 넣게되면서 결과는 2대2 또 무승부. 결국 잉글랜드는 징크스를 깨기 위해 또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2011년 11월 15일, 가레스 배리의 결승골로 잉글랜드가 스웨덴을 1:0으로 이겨 마침내 이 징크스가 깨졌고 UEFA 유로 2012 조별리그 에서도 잉글랜드가 앤디 캐롤이 선취득점을 했지만 스웨덴이 멜베리의 동점골과 잉글랜드 수비수 글렌 존슨의 자책골로 앞서가면서 잉글랜드의 징크스가 되살아나는듯 했다. 그러나 대니 웰벡, 시오 월콧의 골로 결과는 3대2로 잉글랜드가 승리하였고 6년뒤인 2018년 러시아 월드컵 8강전에서도 해리 맥과이어와 델리 알리의 골로 잉글랜드가 2대0으로 승리하면서 28년만에 4강에 진출하였고 바이킹 징크스 또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역대 전적은 잉글랜드가 우세하다.
대륙 간 라이벌리에서 가장 유명한 맞대결이다. 1962-1966 월드컵에서 이미 두 차례 맞붙어 모두 잉글랜드가 승리한 적이 있지만 양 팀의 진정한 라이벌리는 1982년 있었던 전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명으로는 말비나스)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의 오판으로 마거릿 대처의 강력한 대응에 남미 앞바다에서 결국 영국군에 패전하면서 무너지는데, 이 전쟁은 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갑작스러운 이 전쟁은 당연히 단교를 불러왔고 국민 감정이 지속적으로 최악으로 치달아 가던 시점 하필 4년 후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맞붙었고 감정적인 혈투가 펼쳐졌는데, 이 경기에서 그 유명한 디에고 마라도나의 세기의 골과 신의 손으로 불리는 논란의 득점이 터지며 2-1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하였다. 1998년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만났고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다시 아르헨티나가 승리하였다. 4년후 2002년 월드컵에서는 스웨덴-잉글랜드-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라는 최악의 죽음의 조에 함께하게 된다. 2차전에서 맞붙은 두 팀의 경기는 1-0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났고 최종전 끝에 아르헨티나는 조 3위로 떨어졌고 잉글랜드는 조 2위로 살아올라갔다.
두 나라 사이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남부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는 상당히 많은 교류가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마리아 데 메디치와 나폴레옹 등의 연관성을 가졌고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도 민족적 라이벌리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두 팀 모두 아주리와 뢰블레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듯이 푸른색 유니폼을 착용하며, 오늘날 유럽 축구의 정상급 궤도에 올라 있다. 월드컵과 유로에서 양팀의 명승부가 많이 펼쳐졌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어난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사건일 것이다.
유럽 전통의 라이벌이자 앙숙이다. 백년전쟁으로 대표되는 두 나라의 숙적 관계는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A매치 통산 전적은 잉글랜드가 약간 앞서고 있으나, 최근 흐름에서는 프랑스가 다소 우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주목받은 경기 중 하나는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으로, 프랑스가 2대 1로 승리하며 잉글랜드를 탈락시켰다. 이 경기에서 프랑스는 두 골을 넣었고, 잉글랜드는 해리 케인이 한 골을 넣고 또 하나의 페널티를 실축하며 아쉬운 패배를 떠안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 케인의 페널티킥을 막은 골키퍼는 토트넘 팀동료 위고 요리스였다.
두 팀 모두 유소년 시스템과 스타 플레이어 배출 면에서 유럽 최고 수준의 리그와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이 맞대결은 늘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하이엔드 대진으로 평가된다.
피레네 산맥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하는 두 나라의 맞대결이다. 바스크 지방에 걸쳐 있어 바스크 더비라고도 한다. 1922년 처음 맞대결을 펼쳤고 상대전적에서는 스페인이 우위를 가져갔다.
유럽선수권 대회의 숙적이다.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유로 대회 결승전이다. 당시 미셸 플라티니의 활약으로 프랑스가 스페인을 2-0으로 꺾고 우승했고 1996년 유로 대회에서는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2000년 유로 대회 4강에서도 지네딘 지단의 활약으로 프랑스가 스페인을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한다. 유로 2012 8강전에서는 당시 황금세대였던 스페인이 프랑스에 승리하는데 사비 알론소의 2골이 터져 2-0으로 이겼다.
월드컵에서는 2006년 대회 16강에서 격돌했다. 프랑스가 조 2위로 진출하는 바람에 맞대결이 성사된 것. 젊은 스페인의 황금세대는 지단과 앙리 등 프랑스의 노련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1-3으로 패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대결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전 중 하나로, 유럽 대륙 최초의 A매치였던 1904년 이른바 에벤스 코페(Évence Coppée)가 주최한 경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 있는 더비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 역사적으로도 유사성과 경쟁 의식이 강한 관계다.
1904년 5월 열린 첫 A매치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고, 3대 3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지금까지 총 75회의 A매치를 치렀으며, 프랑스가 26승, 벨기에가 30승, 무승부 19회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최근 30년간은 프랑스가 우세한 흐름을 보이며 전통적인 우위를 바꾸고 있다.
이 더비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대표 라이벌전으로 손꼽힌다. 특히 1980년대까지는 벨기에가 강세를 보였으나, 1998년 월드컵 우승 이후 프랑스의 전력이 급상승하며 양상은 역전됐다.
가장 상징적인 맞대결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으로, 벨기에의 황금세대를 프랑스의 황금세대가 1대 0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고, 이 경기 이후 양국 팬들 간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문화적 친근감 속에서도 경쟁심과 자존심이 얽힌 이 더비는 유럽 축구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라이벌전이다.
공통의 라이벌 벨기에 정도는 아니지만 1908년부터 이어지는 맞대결로 서유럽 강호로서 경쟁 의식을 갖는다. 상대전적은 근소하게 프랑스가 앞선다. 메이저 맞대결은 모두 유로대회에서 있었으며 네덜란드가 2승 2무로 앞선다. 유로 1996년 8강전에서 클라렌스 셰도르프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프랑스가 올라간 바 있다. 유로 2000 조별리그에서는 명승부 끝에 네덜란드가 3-2로 승리했고 유로 2008에서도 4-1 승리를 거두었다. 유로 2024에서 격돌한 양 팀은 0-0으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프랑스와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는 양국의 식민지 역사와 탈식민 이후의 긴장 관계가 얽힌 상징적인 대결로, 유럽과 북아프리카 사이를 잇는 대표적인 정치적 더비로 꼽힌다. 알제리는 1830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알제리 독립전쟁은 유혈과 반목을 동반한 유럽 식민지 해방의 대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양국은 지금도 민감한 감정을 공유한다.
양국 축구 대표팀은 역사상 단 한 차례, 2001년 파리 생드니에서 친선 경기를 가졌으며, 이 경기는 프랑스가 4대 1로 앞서던 후반 74분, 관중 난입으로 조기 종료되었다. 당시 알제리계 프랑스인 청년들이 다수 난입하며 경기가 중단되었고,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 내 이민자 문제, 정체성, 인종 갈등 등을 단적으로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양국은 수차례 재대결을 추진했으나, 정치적 부담과 치안 문제 등으로 무산되어 2024년까지도 공식 A매치는 1경기뿐이다. 다만 두 대표팀의 맞대결은 언제나 주목을 받으며, 프랑스 내 알제리 출신 이민자 선수들이 프랑스 대표로 활약하면서 정체성 논란도 빈번히 발생한다. 대표적인 선수는 지네딘 지단으로 프랑스 축구의 영웅이지만 그래도 지단은 알제리에서도 영웅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21세기 신흥 라이벌이다. 1930년 첫 월드컵에서 만난바 있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맞붙었는데 모두 아르헨티나가 승리했다. 하지만 딱히 그 외에 접점은 없었다.
두 팀의 라이벌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출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명승부 끝에 4-3 승리를 거두었는데, 경기와는 별개로 또 다시 월드컵 무관에 그친 리오넬 메시를 프랑스팬들이 조롱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메시가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하고 프랑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잠잠해졌는데 202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두 팀이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유럽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메시의 동료였던 킬리안 음바페와 메시의 대결은 결승전 최고의 하이라이트였고 3-3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아르헨티나가 메시의 대관식을 치른다. 하지만 더 나아가 이번엔 역으로 음바페를 조롱했고 이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섞이며 결국 두 나라 국민들간의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이러한 감정의 골은 이후 2024 파리 올림픽 대회에 나선 U23 대표팀 간의 충돌로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서로를 매우 경멸하는 사이가 되었다. 양 팀의 라이벌전은 FIFA에서도 조명되었다.
20세기 말 1990년대부터 21세기 초인 2000년대 초까지 세계 최강의 팀이었던 두 팀은 희대의 축구 천재 호나우두와 지네딘 지단의 대결로 볼 수 있다.
1994년 월드컵 우승 이후 사실상 지구 최강의 팀이었던 브라질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은 1998년 월드컵 개최국 프랑스였다. 당시 아무리 홈어드밴티지가 있더라도 브라질이 이길것이라는 의견이 상당했지만 지단의 활약에 프랑스가 브라질을 3-0이라는 스코어로 물리치고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룬다. 하지만 4년 뒤 2002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세네갈 쇼크로 몰락했을 때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을 가져간다. 2006 월드컵에서 다시 격돌한 양팀 지단과 호나우두의 재대결이었고 여기서 프랑스가 승리하며 호나우두의 마지막 월드컵을 끝내버렸다.
상대전적에서는 16경기 기준 브라질이 7승 프랑스가 5승으로 브라질이 근소 우위에 있지만 상술했듯 메이저 대회에서 프랑스는 브라질의 천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유럽 지역의 더비는 남유럽 더비라고 명명할 수 있지만 사실 남유럽에 해당하는 국가는 이탈리아 반도의 이탈리아와 산마리노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포트투갈 지중해의 몰타, 그리고 발칸반도의 그리스[5] 정도 밖에 없어 크게 남유럽 더비라 불리는 경우는 드물다. 남유럽은 지중해를 끼고 있어[6] 이 지역 국가들의 더비를 지중해 더비라고도 부르는데 특히 남유럽의 축구 최강팀 이탈리아-스페인의 맞대결을 부르는 명칭으로 공고해져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맞대결은 ‘이베리아 더비’로 불리며, 이베리아 반도의 양대 축구 강국 간의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이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는 유사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대항해시대 등의 오랜 경쟁 관계에 있었다.
이베리아 더비는 1921년 처음 열렸으며, A매치 기준으로 지금까지 총 40경기가 열렸다. 스페인이 17승, 포르투갈이 6승, 무승부 17회를 기록하고 있어 스페인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1930~60년대에는 스페인이 절대적인 강세를 보였으나, 2000년대 이후 포르투갈의 전력 상승으로 격차는 줄어들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대결은 2010년 월드컵 16강전으로, 스페인이 1대 0으로 승리하며 이후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3대 3으로 극적인 명승부를 펼쳤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 더비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24/25 네이션스 리그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양 팀 모두 치열한 경기 끝에 2:2로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알바로 모라타의 실축으로 포르투갈이 승리하면서 최다 우승(2회)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이베리아 더비는 정치적, 민족적 감정보다는 축구 실력과 자존심을 건 경쟁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UEFA 유로, 월드컵, 네이션스리그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자주 격돌하며 유럽 축구 최고의 테크닉 대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지중해 더비로 불리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유럽 축구사에서 가장 많은 명승부를 낳은 남유럽 클래식 더비로 꼽힌다. 두 나라는 유럽 내에서도 전통과 실력을 동시에 갖춘 강호로, 월드컵과 유로 대회에서 여러 차례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 맞대결은 특히 2008~2021년 유로 대회 연속 대결로 유명세를 탔다. 유로 2008 8강전에서는 스페인이 승부차기로 승리했고, 유로 2012 결승전에서는 스페인이 4대 0으로 이탈리아를 완파하며 전성기를 상징했다. 그러나 유로 2016에서는 이탈리아가 복수에 성공했고, 유로 2020 준결승에서는 다시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하는 등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 양상은 과거에는 이탈리아의 수비 조직력과 스페인의 기술 축구가 극명히 대비됐으나, 최근에는 양국 모두 현대적 전술 변화 속에서 보다 유연한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A매치 전적은 비슷하거나 이탈리아가 약간 앞서는 수준이며, 큰 대회에서의 성적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한다.
두 팀 모두 국민적 자존심이 강하고 축구 문화도 깊어, 이 대진은 항상 정통성과 예술성의 충돌로 묘사된다. 전통, 실력, 서사 구조가 모두 충족되는 유럽 대표 클래식 매치업이다.
피레네 산맥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하는 두 나라의 맞대결이다. 바스크 지방에 걸쳐 있어 바스크 더비라고도 한다. 1922년 처음 맞대결을 펼쳤고 상대전적에서는 스페인이 우위를 가져갔다.
유럽선수권 대회의 숙적이다.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유로 대회 결승전이다. 당시 미셸 플라티니의 활약으로 프랑스가 스페인을 2-0으로 꺾고 우승했고 1996년 유로 대회에서는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2000년 유로 대회 4강에서도 지네딘 지단의 활약으로 프랑스가 스페인을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한다. 유로 2012 8강전에서는 당시 황금세대였던 스페인이 프랑스에 승리하는데 사비 알론소의 2골이 터져 2-0으로 이겼다.
월드컵에서는 2006년 대회 16강에서 격돌했다. 프랑스가 조 2위로 진출하는 바람에 맞대결이 성사된 것. 젊은 스페인의 황금세대는 지단과 앙리 등 프랑스의 노련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1-3으로 패했다.
무적함대와 플라잉 더치맨의 대결. 역사적으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연관성이 매우 깊은 나라이다.[7]
축구에서 양 팀의 가장 중요한 경기는 2010년 요하네스버그 사커 시티 스타디움에서 있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두 팀이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두고 혈투를 벌인 것. 두 나라 모두 황금세대를 구가하고 있었고 벌써 준우승만 2번이나 했던 네덜란드와 매번 강한 전력이라는 평을 받고도 결승전에 올라와 보지도 못했던 스페인의 간절함이 묻어나오는 경기였다. 파울이 난무하는 경기속에서 연장전에 결국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스페인이 그들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룬다.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우마이야 왕조 시절 한 나라를 형성하기도 했던 두 나라는 15세기 레콩키스타 운동으로 이슬람이 축출되고 이후 오늘날 스페인의 기원인 스페인 제국이 탄생한다. 이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북아프리카를 접수하기 위한 스페인의 노력은 오늘날 모로코 지역의 토착 국가들과 필연적인 갈등을 불러왔고 결국 무력으로 이 지역을 차지해 식민지배하였고 이후 리프 전쟁 등의 분쟁이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세우타 등의 스페인령 북아프리카와 서사하라 문제를 두고 양국의 갈등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맞대결은 2022년 월드컵 16강에서 맞붙은 것이다. 지난 대회 조별리그에서 이미 한 차례 맞붙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2-2 무승부로 끝났고 이번에는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만난 것이다. 경기는 0-0으로 끝난 뒤 승부차기에서 모로코가 승리하며 역사적인 복수를 했으며 기어코 그 대회에서 포르투갈마저 꺾으며 아프리카 최초 4강의 대업적을 달성한다.
두 나라 사이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남부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는 상당히 많은 교류가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마리아 데 메디치와 나폴레옹 등의 연관성을 가졌고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도 민족적 라이벌리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두 팀 모두 아주리와 뢰블레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듯이 푸른색 유니폼을 착용하며, 오늘날 유럽 축구의 정상급 궤도에 올라 있다. 월드컵과 유로에서 양팀의 명승부가 많이 펼쳐졌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어난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사건일 것이다.
이른바 독일의 아주리 징크스는. 특별히 더비라고 칭하지는 않지만[8] 독일이 이탈리아에게 월드컵과 유로 즉, 메이저 대회에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징크스이다. 굳이 더비라고 따진다면 ‘유럽 최강자 더비’[9] 정도로 부를 수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각각 4번씩 우승한 세계적으로 성공한 팀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아주리 군단을 이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연장전까지 양 팀 무득점으로 드디어 징크스를 끊나 싶었는데, 경기 종료 직전 이탈리아의 연속 두 골로 또 패배했다. 그리고 유로 2012 때야말로 정말 이 징크스를 끊나 싶었다. 왜냐하면 독일은 유로 2012 때 절정의 기량으로 강력한 우승후보인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연달아 학살한 반면, 이탈리아는 그 둘보다 급이 훨씬 떨어지는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졸전 끝에 비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8강전도 독일은 쉬운 그리스를 상대로 2군으로 이긴 반면, 이탈리아는 잉글랜드 상대로 승부차기로 겨우 올라왔다. 하지만 막상 그 둘이 만난 준결승에서는 또다시 이탈리아가 독일을 학살하고 말았다. 유로 2016 8강전에서 드디어 독일이 이탈리아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하긴 하였으나, 승부차기 승리였기 때문에 무승 기록은 계속 이어졌다.[10] 그러다가 2022-23 시즌 UEFA 네이션스 리그 리그A C조 조별리그 4차전에서 독일이 이탈리아를 5:2로 압살함에 따라 60년간 내려오던 아주리 징크스가 처음으로 끊어졌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도 전통적인 라이벌들에 비하면 덜한 편이지만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탈리아가 2018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을 때 미하엘 발락이 ‘Pray for Italy’라고 이탈리아를 조롱하였고, 이후 독일이 본선에서 험한 꼴을 당하자 이탈리아 팬들이 발락을 역조롱했다. 2010년 월드컵 때에는 양국 팬들이 월드컵 우승 횟수를 놓고 설전을 벌이다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기사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축구 국가대표팀 대결은 전통적인 유럽 강호 간의 클래식 맞대결로, 기술 축구와 피지컬 축구의 정면 충돌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양국 모두 월드컵과 유로에서 우승 경험이 있으며, 유럽 축구의 중심을 각각 서유럽과 남유럽에서 대표해온 팀들이다.
1934년 역사적인 하이버리의 전투를 시작으로 오랜 맞대결을 펼쳐왔다. 오늘날 양 팀의 대결에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같은 조에 편성됬는데, 마리오 발로텔리의 영국 여왕의 뽀뽀 망언으로 유명하다. 결과는 두 팀 모두 우루과이-코스타리카에게 밀리며 조별리그에서 짐을 싸야했다…
유로 2020 결승전에서의 맞대결은 이 라이벌 대전의 하이라이트로 기록된다. 당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양 팀은 1대 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했고, 이는 잉글랜드 축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 월드컵 예선, 유로 예선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며 접전을 이어가고 있다.
A매치 기준 전적은 이탈리아가 약간 우세하며, 특히 토너먼트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잉글랜드는 홈 경기에서의 조직력과 체력으로 대응해 접전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경기 양상은 이탈리아의 전술적 안정감과 잉글랜드의 스피드, 세트피스가 맞붙는 구조로 자주 전개된다.
양국 팬들 사이에서도 EPL과 세리에A부터 서로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UEFA 주관 대회에서는 항상 주목받는 대진으로 손꼽힌다. 역사성, 실력, 스타일이 모두 충돌하는 유럽 대표 클래식 매치다.
지중해 더비로 불리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유럽 축구사에서 가장 많은 명승부를 낳은 남유럽 클래식 더비로 꼽힌다. 두 나라는 유럽 내에서도 전통과 실력을 동시에 갖춘 강호로, 월드컵과 유로 대회에서 여러 차례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 맞대결은 특히 2008~2021년 유로 대회 연속 대결로 유명세를 탔다. 유로 2008 8강전에서는 스페인이 승부차기로 승리했고, 유로 2012 결승전에서는 스페인이 4대 0으로 이탈리아를 완파하며 전성기를 상징했다. 그러나 유로 2016에서는 이탈리아가 복수에 성공했고, 유로 2020 준결승에서는 다시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하는 등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 양상은 과거에는 이탈리아의 수비 조직력과 스페인의 기술 축구가 극명히 대비됐으나, 최근에는 양국 모두 현대적 전술 변화 속에서 보다 유연한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A매치 전적은 비슷하거나 이탈리아가 약간 앞서는 수준이며, 큰 대회에서의 성적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한다.
두 팀 모두 국민적 자존심이 강하고 축구 문화도 깊어, 이 대진은 항상 정통성과 예술성의 충돌로 묘사된다. 전통, 실력, 서사 구조가 모두 충족되는 유럽 대표 클래식 매치업이다.
세계적인 더비라고 불리는 이른바 클라시코 문디알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두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칭하는 것으로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대결이다.
백미라 불릴 수 있는 대결은 2번의 월드컵 결승전이다. 1970년 월드컵에서 당시 월드컵 우승을 각각 2회씩 했던 브라질과 이탈리아는 월드컵 최초 3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일방적인 브라질의 3-1 승리로 끝났다.
1994년 월드컵 결승에서는 또 다시 월드컵 최초 4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결승전에서 맞붙었는데,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결승으로 견인했던 로베르토 바조가 마지막 킥을 하늘로 쏘아 올리면서 또 다시 브라질에 패하고 만다. 실축 당시 바조의 사진은 당시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 나올 정도로 길이 회자되는 장면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맞대결은 ‘이베리아 더비’로 불리며, 이베리아 반도의 양대 축구 강국 간의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이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는 유사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대항해시대 등의 오랜 경쟁 관계에 있었다.
이베리아 더비는 1921년 처음 열렸으며, A매치 기준으로 지금까지 총 40경기가 열렸다. 스페인이 17승, 포르투갈이 6승, 무승부 17회를 기록하고 있어 스페인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1930~60년대에는 스페인이 절대적인 강세를 보였으나, 2000년대 이후 포르투갈의 전력 상승으로 격차는 줄어들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대결은 2010년 월드컵 16강전으로, 스페인이 1대 0으로 승리하며 이후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3대 3으로 극적인 명승부를 펼쳤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이 더비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24/25 네이션스 리그 결승전에서 만났다. 양 팀 모두 치열한 경기 끝에 2:2로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알바로 모라타의 실축으로 포르투갈이 승리하면서 최다 우승(2회)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이베리아 더비는 정치적, 민족적 감정보다는 축구 실력과 자존심을 건 경쟁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UEFA 유로, 월드컵, 네이션스리그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자주 격돌하며 유럽 축구 최고의 테크닉 대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네덜란드
[ 항해사 더비 ]
대항해시대를 주도했던 두 나라는 뛰어난 항해사들의 나라이다. 특히 이들의 경쟁은 동남아시아 식민 개척과 카리브 해 등지에서 많이 일어났다.
오늘날 유럽 축구 강호로 손꼽히는 이들의 관계는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에 천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드컵 챔피언들의 천적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에게 오히려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에게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 양 팀의 상대전적은 14전 8승 4무 2패로 포르투갈이 압도적인 우세를 가져가고 있고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도 2승 1무 1패로 앞선다.
천적관계는 메이저 대회서 더욱 크게 나타나는데 메이저 통산 4경기에서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에 4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유로 2004 준결승 승리를 시작으로 2006 월드컵 16강에서는 당대회 가장 더러운 경기로 뽑힐 정도로 혈투를 벌였지만 역시 포르투갈이 승리했고 유로 2012 조별리그에서도 포르투갈이 접전 끝 승리를 거둔다.
2020년대 유럽 네이션스리그 결승전에서도 포르투갈이 네덜란드를 꺾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아르헨티나
[ 호-메 대전 ]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은 아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라는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의 존재로 인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상징적 대결로 자리잡았다. 이 대진은 흔히 GOAT 더비 또는 메호대전으로 불리며, 양국보다는 두 선수 간 경쟁 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식 A매치 기준으로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는 총 3번 맞붙었으며, 아르헨티나가 2승 1패로 앞서고 있다. 가장 최근 경기는 2014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친선전으로, 메시와 호날두가 모두 출전했으나 아르헨티나가 1대 0으로 승리했다.
양국은 서로 다른 대륙 소속이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이나 공식 대회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적고, 실제로 두 팀은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격돌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팀 모두 FIFA 랭킹 상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히 강팀으로 분류되고 있고, 전술적 완성도와 기술력 면에서도 유사한 성향을 지닌다.
국가 간 라이벌전보다는 슈퍼스타 중심의 시대적 상징성으로 기억되는 대진이며, 현재까지 두 선수의 국가대표팀에서 월드컵 대회 맞대결은 없다. 과연 마지막으로 보이는 2026년에 만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브라질
[ 루소폰 더비 ]
포르투갈 문화권 루소폰의 대표적인 두 나라 사이의 대결이다. 두 나라는 식민지배 사이였다는 역사가 있지만 여타 식민지 관계와는 다르게 왕가가 나누어지면서 독립이 이루어져 유혈사태 없이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 왔기 때문에 여전히 형제 국가로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양 팀은 상대전적에서 20경기에서 맞붙어 브라질이 13승으로 4승을 거둔 포르투갈에 훨씬 우세함을 가져가고 있다. 다만 월드컵에서 2차례 격돌했는데 포르투갈이 1승 1무로 우세하다. 1966년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가 첫만남으로 에우제비오라는 당대 최고의 선수의 활약으로 그가 2골을 넣은 가운데 3-1 승리를 가져간다.
2010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오랜만에 격돌한 양 팀은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두 팀이 함께 16강에 진출했다.
중부 유럽은 그 지역적인 부분이 서유럽과 동유럽의 기준과 겹치는 국가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중부 유럽이라고 볼 수 있는 기준은 없지만 대략적인 범위는 독일을 기준으로 그 근방 국가들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더비를 흔히 중부 유럽 더비라고 통칭할 수 있다. 지역적 기준에 비해 영토가 작은 국가들이 많아 상당수 지리적인 요건을 공유하는 나라들이 많다. 예컨데 알프스 산맥과 다뉴브 강이 대표적으로 알프스 더비와 다뉴브 더비도 몇몇 국가에서는 공유될 수 있는 명칭이다.
증오의 더비[11]라고도 불리는 유럽의 국가 대항전 최대 라이벌전 더비로 꼽히는 매치. 일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0년 5월에 독일의 네덜란드 무차별 폭격 침공으로 서로 양국의 적대적 의식이 매우 강하다. 이 둘의 라이벌리에 관한 골닷컴 기사의 제목이 '그들은 나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죽였어요. 나는 그들을 증오합니다.'라고 할 정도로 아직 그 역사적 증오가 여전히 남아 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른 오래된 적국으로 축구에서는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서독과 잉글랜드의 대결에서 제프 허스트의 연장전 득점 논란이 있었고 결국 골로 인정되며 최종 4-2 승리를 거둔 잉글랜드가 자신들의 첫번째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이후 잉글랜드는 오랜 시간 독일에 승리하지 못했다. 월드컵에서는 이후로 3무 1패를 기록 중인데, 그 중 2무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프랭크 램파드의 슛이 골대를 넘겼음에도 오심 끝에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고 이후 1-4 완패를 당했는데, 오히려 1966년의 업보라며 전세계에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8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던 게리 리네커는 "축구는 22명이 뛰지만 최후에는 서독이 승리하는 스포츠"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말한 바 있다.
2000년에 처음 맞붙은 유로 대회에서는 2번 격돌했는데 잉글랜드가 독일에 2번 모두 승리하였다.
이른바 독일의 아주리 징크스는. 특별히 더비라고 칭하지는 않지만[12] 독일이 이탈리아에게 월드컵과 유로 즉, 메이저 대회에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징크스이다. 굳이 더비라고 따진다면 ‘유럽 최강자 더비’[13] 정도로 부를 수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각각 4번씩 우승한 세계적으로 성공한 팀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아주리 군단을 이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연장전까지 양 팀 무득점으로 드디어 징크스를 끊나 싶었는데, 경기 종료 직전 이탈리아의 연속 두 골로 또 패배했다. 그리고 유로 2012 때야말로 정말 이 징크스를 끊나 싶었다. 왜냐하면 독일은 유로 2012 때 절정의 기량으로 강력한 우승후보인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연달아 학살한 반면, 이탈리아는 그 둘보다 급이 훨씬 떨어지는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졸전 끝에 비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8강전도 독일은 쉬운 그리스를 상대로 2군으로 이긴 반면, 이탈리아는 잉글랜드 상대로 승부차기로 겨우 올라왔다. 하지만 막상 그 둘이 만난 준결승에서는 또다시 이탈리아가 독일을 학살하고 말았다. 유로 2016 8강전에서 드디어 독일이 이탈리아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하긴 하였으나, 승부차기 승리였기 때문에 무승 기록은 계속 이어졌다.[14] 그러다가 2022-23 시즌 UEFA 네이션스 리그 리그A C조 조별리그 4차전에서 독일이 이탈리아를 5:2로 압살함에 따라 60년간 내려오던 아주리 징크스가 처음으로 끊어졌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도 전통적인 라이벌들에 비하면 덜한 편이지만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탈리아가 2018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을 때 미하엘 발락이 ‘Pray for Italy’라고 이탈리아를 조롱하였고, 이후 독일이 본선에서 험한 꼴을 당하자 이탈리아 팬들이 발락을 역조롱했다. 2010년 월드컵 때에는 양국 팬들이 월드컵 우승 횟수를 놓고 설전을 벌이다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기사
축구에서는 독일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양팀의 첫 대결은 1912년인데, 무려 16-0이라는 스코어로 당시 독일 제국이 러시아 제국에 승리했다...이는 양팀 최다 득점이자 실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각각 서독과 소련시절에는 소련이 3승을 거두었으나 가장 중요했던 유로 1972 결승전에서 서독이 무려 3-0으로 대파하며 우승한다. 러시아가 성립된 이후 현재까지 독일에 단 1경기도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증오의 감정과 라이벌 의식은 여전해서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한국에게 패하며 사상 첫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을 당하자, 수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러시아에 온 독일놈들은 필히 망한다’며 기뻐했다.
중부 유럽의 두 나라, 폴란드와 독일 사이의 맞대결은 역사적 긴장과 민족 감정이 얽힌 대표적인 유럽 정치 더비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전의 국경 분쟁, 식민 지배 등 복잡한 과거사로 인해 양국의 대결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식 A매치 기준으로 두 팀은 총 22경기를 치렀으며, 독일이 13승 8무 2패로 압도적인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폴란드는 2014년 유로 2016 예선에서 열린 경기에서 독일을 2대 0으로 꺾으며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두었고, 이 경기는 폴란드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양국은 월드컵 본선에서도 자주 만났다. 특히 1974년 독일 월드컵 2차 조별리그에서는 결승전 진출을 놓고 격돌했으며, 서독이 1대 0으로 승리해 결국 폴란드가 3위 결정전으로 밀리고 서독이 결승에 진출했다. 두 나라 모두 전통적인 유럽의 강호로서 꾸준히 메이저 대회에 진출하고 있으며, 만날 때마다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여담으로 독일 대표팀에는 폴란드계 선수들이 여럿 있으며, 대표적으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루카스 포돌스키는 폴란드 출생이지만 독일로 이주해 독일 국적으로 활약했다. 클로제는 독일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포돌스키도 독일대표로 49골을 넣은 공격수다. 반대로 세바스티안 보에니슈는 독일 출생이지만 성인 대표팀은 폴란드를 선택했다. 두 나라의 역사적, 민족적 연관성 때문에 이런 사례가 은근히 자주 나타난다.
독일과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결은 단순한 유럽 국가 간 경기 그 이상으로, 유럽 내 이민과 정체성 문제까지 반영된 상징적인 대진이다. 독일에는 약 300만 명에 달하는 튀르키예계 이민자 및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양국 간의 경기에서 강한 관심과 감정이 개입되는 배경이 된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이나 팬들은 이 경기를 이민 더비 혹은 디아스포라 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대표팀의 전 주장 메수트 외질은 튀르키예계 독일인으로, 국가대표 은퇴 당시 “나는 독일에선 튀르키예인, 튀르키예에선 독일인으로 여겨진다”는 말을 남기며 정체성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이 경기는 단순한 실력 대결을 넘어 이민자 정체성, 사회 통합, 정치적 민감성을 함께 안고 있다.
A매치 전적은 총 21경기이며, 독일이 15승 3무 3패로 확실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튀르키예는 실질적인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경기 때마다 독일 내 튀르키예계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의미 있는 대진으로 인식된다. 특히 2023년 경기는 튀르키예가 홈팀 독일에 3-2로 승리했는데, 자국 홈팬보다 튀르키예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 패배보다 이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국이 추축국의 공격을 받아 1946년 월드컵이 예정되어 있었던 다섯 경기장들 중 네 군데나 파괴되었던 적이 있다.[15] 이후 1986년과 199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속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디에고 마라도나가 활약했던 1986년 대회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우승했고 1990년에는 서독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두 나라는 2006년과 2010년 월드컵 대회에도 만났고, 두 대회에서 벌어진 맞대결에서 모두 독일이 승리하였다. 이 두 대회에서 2006년에는 패싸움이, 2010년에는 경기 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2014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으로 발생한 더비다. 결과는 1:0으로 독일이 승리해 우승. 참고로 이들은 월드컵 매치업 중 제일 많이 만난 팀들 중 하나이며, 결승전에서 제일 많이 만난 월드컵 결승전의 라이벌이다.
월드컵 최다 우승국 1-2위 사이의 라이벌리이다. 하지만 의외로 양팀이 20세기에만 각각 4번, 3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음에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및 토너먼트를 포함 모든 경에서 단 1차례도 마주하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드디어 첫 만남을 가졌던 것이 바로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전이다. 당시 이른바 3R로 대표되는 브라질의 황금기였고 독일은 0-2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 팀의 라이벌리가 시작된 것은 2014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로 당시 자국에서 6번째 우승을 고대하던 브라질은 4강전에서 격돌한 독일에게 무려 1-7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패하면서 참극을 맞이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미네이랑의 비극이다. 이후 이 경기는 브라질 조롱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다소 무관해보이지만 사실 두나라 사이 그 이면에는 숨겨진 뒷 이야기가 존재한다. 코소보 전쟁 당시 많은 코소보 난민들이 스위스에 정착했고 이로 인해 스위스와 세르비아의 축구 맞대결은 단순한 유럽 A매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 정치·민족 갈등 기반의 현대적 라이벌전으로 인식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의 충돌이다.
당시 경기에서 스위스는 2–1로 역전승을 거뒀으며, 골을 넣은 그라니트 자카와 세르단 샤키리가 득점 세리머니로 알바니아의 상징인 ‘독수리 세리머니’[16]를 펼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코소보 출신 또는 알바니아계 이민자 배경을 갖고 있으며, 상대는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세르비아였기 때문에, 해당 세리머니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외교적 논쟁으로 번졌다.
이 사건 이후 두 나라의 축구 맞대결은 정치적 상징성과 민족 정체성이 강하게 얽힌 대진으로 굳어졌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다시 조별리그에서 만나 또다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해당 경기 역시 스위스가 3–2로 승리하며 세르비아 입장에선 뼈아픈 패배로 남았다.
경기력 면에서도 두 팀 모두 탄탄한 조직력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유럽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하고 있어, 순수 축구적 측면에서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러나 이 맞대결의 본질은 경기 외적인 민족 감정과 정치적 긴장이 만들어내는 현대형 민족 더비라는 데에 있다.#
과거에 한 나라였던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더비. 이 둘은 1998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되어 1승씩 주고받았지만 스페인과 유고슬라비아에 밀려 둘 다 울었다. 그리고 12년 만인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되었는데 1승 1무로 슬로바키아가 앞섰다. 결과적으로 슬로바키아는 웃고 체코는 울었다. 게다가 그 슬로바키아는 4년 전 형제 국가 체코를 16강 문턱에서 떨어트린 이탈리아를 광탈시키며 복수(?)에 성공했다.
유로로 눈을 돌려 보면, 유로 2008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된 적 있다. 당시 전적은 체코의 2전 전승(홈 3:1, 원정 3:0)에, 체코는 조 1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 슬로바키아는 조 4위로 탈락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라이벌전은 쿠-쿠 더비[17]불리며, 오랜 역사와 깊은 경쟁이 특징이다. 두 나라는 과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절 한 국가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갈라서면서 축구에서도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정식 A매치로는 1902년 10월 12일, 빈에서 열린 첫 대결에서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5대 0으로 이기며 시작되었다.
이후 두 팀은 공식 경기 기준 총 137경기를 치렀으며, 이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대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가 간 맞대결 기록이다. 현재 상대 전적은 헝가리 67승, 오스트리아 40승, 무승부 30회로 헝가리가 근소하게 앞서 있다. 득실 집계는 명확히 정리되어 있진 않지만, 1902년 5대 0 승리, 1949년 헝가리 골든팀의 대승 등 굵직한 결과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경기로는 1934년 월드컵 8강전에서 오스트리아가 2대 1로 이긴 경기, 2016년 유럽선수권 조별리그에서 헝가리가 2대 0으로 승리한 경기가 있다. 두 나라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대결을 넘어, 중부유럽의 정치와 역사, 문화가 얽힌 상징적 라이벌전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한 나라였던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더비. 이 둘은 1998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되어 1승씩 주고받았지만 스페인과 유고슬라비아에 밀려 둘 다 울었다. 그리고 12년 만인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되었는데 1승 1무로 슬로바키아가 앞섰다. 결과적으로 슬로바키아는 웃고 체코는 울었다. 게다가 그 슬로바키아는 4년 전 형제 국가 체코를 16강 문턱에서 떨어트린 이탈리아를 광탈시키며 복수(?)에 성공했다.
유로로 눈을 돌려 보면, 유로 2008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된 적 있다. 당시 전적은 체코의 2전 전승(홈 3:1, 원정 3:0)에, 체코는 조 1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 슬로바키아는 조 4위로 탈락했다.
중부 유럽의 두 나라, 폴란드와 독일 사이의 맞대결은 역사적 긴장과 민족 감정이 얽힌 대표적인 유럽 정치 더비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전의 국경 분쟁, 식민 지배 등 복잡한 과거사로 인해 양국의 대결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식 A매치 기준으로 두 팀은 총 22경기를 치렀으며, 독일이 13승 8무 2패로 압도적인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폴란드는 2014년 유로 2016 예선에서 열린 경기에서 독일을 2대 0으로 꺾으며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두었고, 이 경기는 폴란드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양국은 월드컵 본선에서도 자주 만났다. 특히 1974년 독일 월드컵 2차 조별리그에서는 결승전 진출을 놓고 격돌했으며, 서독이 1대 0으로 승리해 결국 폴란드가 3위 결정전으로 밀리고 서독이 결승에 진출했다. 두 나라 모두 전통적인 유럽의 강호로서 꾸준히 메이저 대회에 진출하고 있으며, 만날 때마다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여담으로 독일 대표팀에는 폴란드계 선수들이 여럿 있으며, 대표적으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루카스 포돌스키는 폴란드 출생이지만 독일로 이주해 독일 국적으로 활약했다. 클로제는 독일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포돌스키도 독일대표로 49골을 넣은 공격수다. 반대로 세바스티안 보에니슈는 독일 출생이지만 성인 대표팀은 폴란드를 선택했다. 두 나라의 역사적, 민족적 연관성 때문에 이런 사례가 은근히 자주 나타난다.
러시아
[ 슬라브 더비 ]
러시아와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대결은 동유럽 역사와 슬라브 민족 갈등이 얽힌 정치적 더비로,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과 소련에 의해 수차례 분할과 점령을 겪었으며, 양국은 지금도 외교적으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식 A매치 기준으로 두 팀은 총 18경기를 치렀으며, 러시아(소련 포함)가 8승, 폴란드가 3승, 무승부 7회로 러시아 측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가장 긴장감이 컸던 맞대결은 유로 2012 조별리그 경기로, 양국 팬들 간의 충돌과 정치적 시위가 경기 외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다. 이 경기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렸으며 1대 1로 끝났지만, 양국 서포터 사이에 벌어진 폭력 사태와 경찰과의 충돌은 유럽 축구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축구 외적인 역사적 감정과 정치 갈등이 더비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다.
우크라이나
[ 루테니아 더비 ]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맞대결은 동유럽의 역사적 분열과 민족 갈등을 배경으로 한 지역적 라이벌전으로 간주된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며, 과거 루테니아를 비롯한 리비우·볼히니아 지역 등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이 현재까지도 정체성과 민족 감정의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세기 초중반,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경 이동과 함께 많은 민간인 희생과 충돌이 있었고, 우크라이나 반란군(UPA)과 폴란드인들 사이의 유혈 사태는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은 축구 경기에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공식 A매치 전적 기준으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총 9경기를 치렀으며, 우크라이나가 4승, 폴란드가 3승, 무승부 2회로 팽팽한 경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6년 유로 본선 조별리그에서 맞대결을 펼쳤으며, 이 경기에서 폴란드가 1대 0으로 승리했다.
양국은 2012년 유로 공동 개최국이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협력을 통해 관계 개선의 신호도 있었지만, 민족주의와 역사 인식의 차이로 인해 긴장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더비는 정치적 민감성과 스포츠적 경쟁심이 결합된 동유럽의 대표적인 지역 라이벌전으로 여겨진다.
다뉴브 강[18]을 따라 이어진 두 나라 헝가리와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라이벌전은 다뉴브 더비로 불리며, 유럽에서 가장 정치적 긴장감이 높은 더비 중 하나로 꼽힌다.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갈등과 민족주의적 감정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대결이다.
이 라이벌전의 배경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둘러싼 분쟁이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해체 후 루마니아가 트란실바니아를 편입하면서 헝가리는 자국 영토와 동포를 잃은 것으로 간주했고, 이로 인해 양국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 지역에는 현재까지도 많은 헝가리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정치적 민감성이 유지되고 있다.
공식 A매치 기준 양국은 총 26경기를 치렀으며, 루마니아가 12승, 헝가리가 9승, 무승부 5회를 기록하고 있다. 전적은 비슷하지만, 경기 내용이나 분위기에서 항상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며, 유럽축구연맹은 이 경기를 고위험 경기로 분류해 특별 관리한다.
특히 2013년과 2014년 월드컵 예선에서 양 팀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고, 헝가리 홈경기에서는 루마니아 국가 연주 도중 야유와 인종차별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더비는 축구보다 더 깊은 역사적 배경과 정치·사회적 긴장이 얽힌 대표적인 민족 대결로, 단순한 승패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오스트리아
[ 쿠쿠 더비 ]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라이벌전은 쿠-쿠 더비[19]불리며, 오랜 역사와 깊은 경쟁이 특징이다. 두 나라는 과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절 한 국가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갈라서면서 축구에서도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정식 A매치로는 1902년 10월 12일, 빈에서 열린 첫 대결에서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5대 0으로 이기며 시작되었다.
이후 두 팀은 공식 경기 기준 총 137경기를 치렀으며, 이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대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가 간 맞대결 기록이다. 현재 상대 전적은 헝가리 67승, 오스트리아 40승, 무승부 30회로 헝가리가 근소하게 앞서 있다. 득실 집계는 명확히 정리되어 있진 않지만, 1902년 5대 0 승리, 1949년 헝가리 골든팀의 대승 등 굵직한 결과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경기로는 1934년 월드컵 8강전에서 오스트리아가 2대 1로 이긴 경기, 2016년 유럽선수권 조별리그에서 헝가리가 2대 0으로 승리한 경기가 있다. 두 나라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대결을 넘어, 중부유럽의 정치와 역사, 문화가 얽힌 상징적 라이벌전으로 여겨진다.
북유럽 지역의 더비는 일반적으로 북유럽 더비라고 묶여서 많이 불린다. 공통의 노르딕 문화권의 영향으로 노르딕 더비로 통용 가능하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나라는 일반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더비로 구체화 시킨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거리적으로 먼 아이슬란드와 동쪽의 핀란드는 이 지리적 명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양 팀 전적은 89경기를 치렀을 정도로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아직까지 메이저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은 없다. 상대 전적은 덴마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노르웨이가 거둔 마지막 승리는 노르웨이가 마지막으로 잘나갔던 1998년으로 이후 21세기에 치른 최근 6번의 경기에서 2무 4패로 열세에 놓여져 있다.
양 팀 전적은 89경기를 치렀을 정도로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아직까지 메이저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은 없다. 상대 전적은 덴마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노르웨이가 거둔 마지막 승리는 노르웨이가 마지막으로 잘나갔던 1998년으로 이후 21세기에 치른 최근 6번의 경기에서 2무 4패로 열세에 놓여져 있다.
스웨덴
[ 북방전쟁 ]
북방전쟁의 역사를 공유하는 양 국가의 라이벌전은 북유럽 더비 중 가장 치열하다. 상대전적은 109번의 경기 동안 스웨덴 46승 덴마크 43승으로 엄청난 호각세를 자랑한다. 특히 월드컵 예선과 유로 예선에서 주로 2-3포트를 가져가면서 플레이오프 1자리를 위한 벅찬 싸움을 자주하기도 했다.
두 팀은 유로 대회에서 총 2번의 만남이 있었다. 유로 1992 조별리그에서는 스웨덴이 1-0 승리를 거두었는데, 놀랍게도 이 대회 최종 우승을 덴마크가 차지하면서 그저 덴마크 우승의 발자취로 남게 되었다. 유로 2004 조별리그에서 다시 만난 양 팀은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월드컵 본선 맞대결은 없으며 스웨덴은 195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덴마크의 최고 성적은 1998년 기록한 8강이다.
북유럽 더비 중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나라의 라이벌 매치이다. 지역 라이벌로 양 팀이 치른 A매치만 해도 100경기를 넘어섰다. 상대전적은 스웨덴이 승률 50% 이상으로 훨씬 우세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의 맞대결은 전무하다.
한편 이 더비는 남자 축구보다 두 팀 모두 세계 정상급인 여자 축구가 더 치열하다.
덴마크
[ 북방전쟁 ]
북방전쟁의 역사를 공유하는 양 국가의 라이벌전은 북유럽 더비 중 가장 치열하다. 상대전적은 109번의 경기 동안 스웨덴 46승 덴마크 43승으로 엄청난 호각세를 자랑한다. 특히 월드컵 예선과 유로 예선에서 주로 2-3포트를 가져가면서 플레이오프 1자리를 위한 벅찬 싸움을 자주하기도 했다.
두 팀은 유로 대회에서 총 2번의 만남이 있었다. 유로 1992 조별리그에서는 스웨덴이 1-0 승리를 거두었는데, 놀랍게도 이 대회 최종 우승을 덴마크가 차지하면서 그저 덴마크 우승의 발자취로 남게 되었다. 유로 2004 조별리그에서 다시 만난 양 팀은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월드컵 본선 맞대결은 없으며 스웨덴은 195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덴마크의 최고 성적은 1998년 기록한 8강이다.
발칸 반도 지역은 유럽 내에서도 가장 지역적 라이벌 의식이 뚜렷한 지역이다. 지리적 구분에 따라 일반적으로 발칸 반도 더비로 통칭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과거 유고슬라비아의 구성국들 사이의 라이벌전은 유고슬라비아 더비로 묶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 국가들은 각기 다른 민족과 종교가 뒤섞인 지역이라 전쟁이나 학살 등의 역사적 문제 개입이 많아 다른 지역 더비보다 특히나 민족적-정치적 의식이 많이 함유되어 더 극렬한 경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에게 해를 둘러싸고 있는 두 나라의 라이벌전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대표적인 앙숙 관계이다. 심지어 키프로스 문제를 두고도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두 팀은 유로 2008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됐고, 조별 예선 첫 경기서 튀르키예가 그리스를 4-1로 원정에서 이기자 다음 날 튀르키예 언론들이 헤드라인에 “그리스 국민 여러분, 독립을 축하드립니다”[20]라는 비아냥을 올려댔다. 그러나 막바지에는 튀르키예가 홈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0-1로 패배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 다음날이 튀르키예 현충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리스 언론이 똑같은 방식으로 조롱해댔고, 튀르키예 언론들은 "당장 순국 선열들의 무덤 앞에 사죄하라"라는 헤드라인을 뽑는 등 대표팀을 무지막지하게 까댔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최종 순위가 그리스-튀르키예-노르웨이-보스니아-몰도바-헝가리-몰타 순으로 되어 둘이 본선에 동반 진출하긴 했다. 참고로 이 대회의 본선에서 그리스는 디펜딩 챔피언이었음에도 3전 전패를 당하며 밑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반면, 튀르키예는 조별 리그에서 체코를 제치고 극적으로 8강에 오르더니, 8강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연장 후반이 끝날 즈음에 골을 먹고 패배할 뻔했다가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린 후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여 4강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
세르비아
[ 발칸반도 더비 ]
발칸 반도의 주요국 두 나라의 더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힘을 모았던 우방관계가 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당시에 현재의 북마케도니아 지역을 두고 영토 갈등을 겼었다.
오늘날 두 나라의 축구에 있어서 양 리그의 명문팀 올림피아코스와 츠르베나 즈베즈다 등의 유럽클럽대항전 경기가 라이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의외로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친선전 2경기가 전부인데 1승 1패를 주고 받았다. 허나 동유럽 경쟁리그 관계를 고려할 때 향후 양팀의 라이벌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알바니아
[ 이피로스 더비 ]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이슬람교와 그리스 정교회의 갈등과 연결이 된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있던 시절 알바니아인들을 통해 그리스를 많이 탄압했던 과거가 있다 현대에는 이피로스 지역을 두고 영토 갈등을 벌인 역사가 있다.
축구에서 그리스가 알바니아에 우세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양 팀의 맞대결은 13경기 그리스 6승 알바니아 4승으로 호각을 두며 특히 근래 월드컵 예선에서는 서로 1승 1패를 두 번이나 주고 받았다. 2020년대부터 알바니아의 축구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어 그리스와 향후 더비는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다뉴브 강[21]을 따라 이어진 두 나라 헝가리와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라이벌전은 다뉴브 더비로 불리며, 유럽에서 가장 정치적 긴장감이 높은 더비 중 하나로 꼽힌다.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갈등과 민족주의적 감정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대결이다.
이 라이벌전의 배경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둘러싼 분쟁이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해체 후 루마니아가 트란실바니아를 편입하면서 헝가리는 자국 영토와 동포를 잃은 것으로 간주했고, 이로 인해 양국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 지역에는 현재까지도 많은 헝가리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정치적 민감성이 유지되고 있다.
공식 A매치 기준 양국은 총 26경기를 치렀으며, 루마니아가 12승, 헝가리가 9승, 무승부 5회를 기록하고 있다. 전적은 비슷하지만, 경기 내용이나 분위기에서 항상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며, 유럽축구연맹은 이 경기를 고위험 경기로 분류해 특별 관리한다.
특히 2013년과 2014년 월드컵 예선에서 양 팀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고, 헝가리 홈경기에서는 루마니아 국가 연주 도중 야유와 인종차별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더비는 축구보다 더 깊은 역사적 배경과 정치·사회적 긴장이 얽힌 대표적인 민족 대결로, 단순한 승패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유고 더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했던 국가들, 특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의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경기를 통칭한다. 과거 한 나라였던 이들이 1990년대 발칸 전쟁과 함께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민족 정체성, 정치적 대립, 전쟁의 상처까지 교차하는 복합 감정 더비로 여겨진다.
특히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전은 유고 더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며, FIFA나 UEFA 주관 대회에서 만날 경우 양국 당국이 치안에 비상사태 수준의 대비를 할 정도다. 실제 경기에서는 거친 신경전, 적대적 응원, 반전 메시지 등이 동반되며, 축구가 단순 경기 이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대표적으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몇 차례 맞붙었고, 그 외 다른 조합도 유로 예선이나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승패보다 감정적, 정치적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이 더비는 발칸 반도 국가 간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며, 유럽 축구 내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유고 더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했던 국가들, 특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의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경기를 통칭한다. 과거 한 나라였던 이들이 1990년대 발칸 전쟁과 함께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민족 정체성, 정치적 대립, 전쟁의 상처까지 교차하는 복합 감정 더비로 여겨진다.
특히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전은 유고 더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며, FIFA나 UEFA 주관 대회에서 만날 경우 양국 당국이 치안에 비상사태 수준의 대비를 할 정도다. 실제 경기에서는 거친 신경전, 적대적 응원, 반전 메시지 등이 동반되며, 축구가 단순 경기 이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대표적으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몇 차례 맞붙었고, 그 외 다른 조합도 유로 예선이나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승패보다 감정적, 정치적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이 더비는 발칸 반도 국가 간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며, 유럽 축구 내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유고 더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했던 국가들, 특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의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경기를 통칭한다. 과거 한 나라였던 이들이 1990년대 발칸 전쟁과 함께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민족 정체성, 정치적 대립, 전쟁의 상처까지 교차하는 복합 감정 더비로 여겨진다.
특히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전은 유고 더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며, FIFA나 UEFA 주관 대회에서 만날 경우 양국 당국이 치안에 비상사태 수준의 대비를 할 정도다. 실제 경기에서는 거친 신경전, 적대적 응원, 반전 메시지 등이 동반되며, 축구가 단순 경기 이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대표적으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몇 차례 맞붙었고, 그 외 다른 조합도 유로 예선이나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승패보다 감정적, 정치적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이 더비는 발칸 반도 국가 간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며, 유럽 축구 내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유고 더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했던 국가들, 특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의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경기를 통칭한다. 과거 한 나라였던 이들이 1990년대 발칸 전쟁과 함께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민족 정체성, 정치적 대립, 전쟁의 상처까지 교차하는 복합 감정 더비로 여겨진다.
특히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전은 유고 더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며, FIFA나 UEFA 주관 대회에서 만날 경우 양국 당국이 치안에 비상사태 수준의 대비를 할 정도다. 실제 경기에서는 거친 신경전, 적대적 응원, 반전 메시지 등이 동반되며, 축구가 단순 경기 이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대표적으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몇 차례 맞붙었고, 그 외 다른 조합도 유로 예선이나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승패보다 감정적, 정치적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이 더비는 발칸 반도 국가 간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며, 유럽 축구 내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알바니아 코소보
[ 코소보 전쟁 ]
알바니아와 세르비아의 더비 매치. 두 나라는 코소보 전쟁에서 싸웠을 만큼 사이가 매우 매우 험악하다. 유로 2016 예선 I조에 나란히 속해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세르비아의 홈에서 알바니아의 민족주의자가 대알바니아의 지도와 이사 볼레티니, 이스마일 체말리라는 알바니아의 위인들 그리고 Autochthonous라는 글귀가 새겨진 깃발을 드론에 매달고 도발을 하여 충돌 사태가 벌어졌었다.
스위스
[ 독수리 더비 ]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다소 무관해보이지만 사실 두나라 사이 그 이면에는 숨겨진 뒷 이야기가 존재한다. 코소보 전쟁 당시 많은 코소보 난민들이 스위스에 정착했고 이로 인해 스위스와 세르비아의 축구 맞대결은 단순한 유럽 A매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 정치·민족 갈등 기반의 현대적 라이벌전으로 인식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의 충돌이다.
당시 경기에서 스위스는 2–1로 역전승을 거뒀으며, 골을 넣은 그라니트 자카와 세르단 샤키리가 득점 세리머니로 알바니아의 상징인 ‘독수리 세리머니’[22]를 펼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코소보 출신 또는 알바니아계 이민자 배경을 갖고 있으며, 상대는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세르비아였기 때문에, 해당 세리머니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외교적 논쟁으로 번졌다.
이 사건 이후 두 나라의 축구 맞대결은 정치적 상징성과 민족 정체성이 강하게 얽힌 대진으로 굳어졌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다시 조별리그에서 만나 또다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해당 경기 역시 스위스가 3–2로 승리하며 세르비아 입장에선 뼈아픈 패배로 남았다.
경기력 면에서도 두 팀 모두 탄탄한 조직력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유럽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하고 있어, 순수 축구적 측면에서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러나 이 맞대결의 본질은 경기 외적인 민족 감정과 정치적 긴장이 만들어내는 현대형 민족 더비라는 데에 있다.#
그리스
[ 발칸반도 더비 ]
발칸 반도의 주요국 두 나라의 더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힘을 모았던 우방관계가 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당시에 현재의 북마케도니아 지역을 두고 영토 갈등을 겼었다.
오늘날 두 나라의 축구에 있어서 양 리그의 명문팀 올림피아코스와 츠르베나 즈베즈다 등의 유럽클럽대항전 경기가 라이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의외로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친선전 2경기가 전부인데 1승 1패를 주고 받았다. 허나 동유럽 경쟁리그 관계를 고려할 때 향후 양팀의 라이벌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유고 더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했던 국가들, 특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의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경기를 통칭한다. 과거 한 나라였던 이들이 1990년대 발칸 전쟁과 함께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민족 정체성, 정치적 대립, 전쟁의 상처까지 교차하는 복합 감정 더비로 여겨진다.
특히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전은 유고 더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며, FIFA나 UEFA 주관 대회에서 만날 경우 양국 당국이 치안에 비상사태 수준의 대비를 할 정도다. 실제 경기에서는 거친 신경전, 적대적 응원, 반전 메시지 등이 동반되며, 축구가 단순 경기 이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대표적으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몇 차례 맞붙었고, 그 외 다른 조합도 유로 예선이나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승패보다 감정적, 정치적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이 더비는 발칸 반도 국가 간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며, 유럽 축구 내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알바니아와 세르비아의 더비 매치. 두 나라는 코소보 전쟁에서 싸웠을 만큼 사이가 매우 매우 험악하다. 유로 2016 예선 I조에 나란히 속해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세르비아의 홈에서 알바니아의 민족주의자가 대알바니아의 지도와 이사 볼레티니, 이스마일 체말리라는 알바니아의 위인들 그리고 Autochthonous라는 글귀가 새겨진 깃발을 드론에 매달고 도발을 하여 충돌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리스
[ 이피로스 더비 ]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이슬람교와 그리스 정교회의 갈등과 연결이 된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있던 시절 알바니아인들을 통해 그리스를 많이 탄압했던 과거가 있다 현대에는 이피로스 지역을 두고 영토 갈등을 벌인 역사가 있다.
축구에서 그리스가 알바니아에 우세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양 팀의 맞대결은 13경기 그리스 6승 알바니아 4승으로 호각을 두며 특히 근래 월드컵 예선에서는 서로 1승 1패를 두 번이나 주고 받았다. 2020년대부터 알바니아의 축구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어 그리스와 향후 더비는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알바니아와 세르비아의 더비 매치. 두 나라는 코소보 전쟁에서 싸웠을 만큼 사이가 매우 매우 험악하다. 유로 2016 예선 I조에 나란히 속해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세르비아의 홈에서 알바니아의 민족주의자가 대알바니아의 지도와 이사 볼레티니, 이스마일 체말리라는 알바니아의 위인들 그리고 Autochthonous라는 글귀가 새겨진 깃발을 드론에 매달고 도발을 하여 충돌 사태가 벌어졌었다.
유고 더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했던 국가들, 특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의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경기를 통칭한다. 과거 한 나라였던 이들이 1990년대 발칸 전쟁과 함께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민족 정체성, 정치적 대립, 전쟁의 상처까지 교차하는 복합 감정 더비로 여겨진다.
특히 세르비아 vs 크로아티아전은 유고 더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며, FIFA나 UEFA 주관 대회에서 만날 경우 양국 당국이 치안에 비상사태 수준의 대비를 할 정도다. 실제 경기에서는 거친 신경전, 적대적 응원, 반전 메시지 등이 동반되며, 축구가 단순 경기 이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대표적으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몇 차례 맞붙었고, 그 외 다른 조합도 유로 예선이나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승패보다 감정적, 정치적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이 더비는 발칸 반도 국가 간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며, 유럽 축구 내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긴장감 넘치는 대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
거대했던 동유럽의 소련 구성국들은 여타 다른 동유럽 및 중부유럽 국가들과 슬라브인이라는 민족적 동일성으로 슬라브 더비로 통칭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소비에트 유니언 더비라고 묶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불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자체로도 워낙 광할한 범위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지역을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발트 3국으로 불리는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는 발틱 더비로 통칭할 수 있고, 캅카스 지역 국가들은 캅카스 더비로 통칭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는 각기 광활한 국토를 가지고 있는데 드니프로 강이 이들 국가를 모두 지나가기 때문에 드니프로 더비로 불리기도 한다.
러시아와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대결은 동유럽 역사와 슬라브 민족 갈등이 얽힌 정치적 더비로,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과 소련에 의해 수차례 분할과 점령을 겪었으며, 양국은 지금도 외교적으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식 A매치 기준으로 두 팀은 총 18경기를 치렀으며, 러시아(소련 포함)가 8승, 폴란드가 3승, 무승부 7회로 러시아 측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가장 긴장감이 컸던 맞대결은 유로 2012 조별리그 경기로, 양국 팬들 간의 충돌과 정치적 시위가 경기 외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다. 이 경기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렸으며 1대 1로 끝났지만, 양국 서포터 사이에 벌어진 폭력 사태와 경찰과의 충돌은 유럽 축구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축구 외적인 역사적 감정과 정치 갈등이 더비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다.
축구에서는 독일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양팀의 첫 대결은 1912년인데, 무려 16-0이라는 스코어로 당시 독일 제국이 러시아 제국에 승리했다...이는 양팀 최다 득점이자 실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각각 서독과 소련시절에는 소련이 3승을 거두었으나 가장 중요했던 유로 1972 결승전에서 서독이 무려 3-0으로 대파하며 우승한다. 러시아가 성립된 이후 현재까지 독일에 단 1경기도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증오의 감정과 라이벌 의식은 여전해서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한국에게 패하며 사상 첫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을 당하자, 수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러시아에 온 독일놈들은 필히 망한다’며 기뻐했다.
핀란드
[ 겨울전쟁 ]
튀르키예
[ 흑해 더비 ]
흑해를 두고 마주한 튀르키예와 러시아의 대결은 전통적인 라이벌전은 아니지만, 양 국 사이의 무수한 역사적 전쟁사와 냉전시기 반소련주의 그리고 현대 외교 갈등이 맞물려 정치적 긴장감이 깃든 대진으로 여겨진다.
두 팀은 UEFA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자주 맞붙었으며, 특히 2018년과 2020년 시즌에 연달아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A매치 전적은 러시아가 4승 3무 1패로 앞서 있으며, 튀르키예는 2020년 3대 2 승리로 첫 승을 거뒀다. 외교적 긴장 탓에 친선전 등은 드물지만, 경기 자체는 늘 거친 혈투외 라이벌 의식을 동반한다.
미국
[ 콜드 워 ]
세계 최강대국 경쟁을 벌였던 미소 냉전의 라이벌 의식도 크지만, 스포츠에서는 올림픽과 아이스하키 라이벌 의식이 매우 세다. 미국의 축구 인기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 비해 다소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양 팀의 대결 구도에서 축구도 빠질 수 없으며 전 분야에 걸친 라이벌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축구에서는 러시아가 훨씬 우세하다. A매치 첫대결은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에 있었는데, 소련시절 미국과 2전 1승 1무를 거두었다. 이후 1992년 독립연합국가 시절에 2차례 대결에서는 1승 1패로 주고 받았다. 이는 미국이 오늘날까지 러시아에 거둔 유일한 승리로 현재 러시아 수립 이후에는 5전 2승 3무로 러시아가 우세를 이어가고 있다.
불구대천의 원수 국가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을 치른바 있고, 정통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 전쟁이자,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인 사이의 민족 전쟁이다. 자세한 것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 참고. 양국 모두 1992년 소련으로부터 협회가 분리 독립한 이후 현재까지 A매치 전적은 단 1경기도 없다. 현재까지도 심각한 분쟁을 겪고 있기 때문에 FIFA 및 산하협회에서도 축구 전쟁 이후 분쟁 위험이 있는 국가끼리는 예선에서는 서로 피해서 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23] 다만 오래전 소련 구성국 시절인 1926년 비공식적으로 서로의 사상 첫 국제경기를 치른적이 있으며 당시 아제르바이잔이 4-0으로 승리하였다.
현재 과거보다 양국의 화해 분위기가 많이 조성되어 조금씩 안정화되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에서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여타 라이벌전보다 더한 혈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조지아
[ 캅카스 더비 ]
튀르키예
[ 아라라트 더비 ]
아라라트 산으로 상징할 수 있는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의 관계는 전통적인 스포츠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정치적·외교적 긴장이 반영된 대표적인 외교 더비로 분류된다. 두 국가는 1915년 오스만 제국 시절의 아르메니아 학살 문제를 두고 100년 넘게 외교 관계를 단절해 왔으며, 영토 문제와 역사 인식 갈등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양국은 2008년 FIFA 월드컵 예선을 통해 처음 맞붙었고, 이 경기는 전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특히 당시 튀르키예 대통령이 예레반을 방문해 관전을 하는 등 외교적 해빙 시도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갈등의 뿌리가 깊은 만큼, 양국 팬들 사이의 감정도 여전히 팽팽하다.
공식 A매치 4경기 기준, 튀르키예가 3승 1무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아직 튀르키예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으며, 경기 내용에서도 열세를 보이고 있다. 양국은 최근 유로 2024 예선에서도 같은 조에 편성되어 다시 맞붙었고, 여전히 보안과 외교 문제가 큰 이슈로 따라붙었다.
불구대천의 원수 국가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을 치른바 있고, 정통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 전쟁이자,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인 사이의 민족 전쟁이다. 자세한 것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 참고. 양국 모두 1992년 소련으로부터 협회가 분리 독립한 이후 현재까지 A매치 전적은 단 1경기도 없다. 현재까지도 심각한 분쟁을 겪고 있기 때문에 FIFA 및 산하협회에서도 축구 전쟁 이후 분쟁 위험이 있는 국가끼리는 예선에서는 서로 피해서 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24] 다만 오래전 소련 구성국 시절인 1926년 비공식적으로 서로의 사상 첫 국제경기를 치른적이 있으며 당시 아제르바이잔이 4-0으로 승리하였다.
현재 과거보다 양국의 화해 분위기가 많이 조성되어 조금씩 안정화되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에서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여타 라이벌전보다 더한 혈투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맞대결은 동유럽의 역사적 분열과 민족 갈등을 배경으로 한 지역적 라이벌전으로 간주된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며, 과거 루테니아를 비롯한 리비우·볼히니아 지역 등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이 현재까지도 정체성과 민족 감정의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세기 초중반,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경 이동과 함께 많은 민간인 희생과 충돌이 있었고, 우크라이나 반란군(UPA)과 폴란드인들 사이의 유혈 사태는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은 축구 경기에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공식 A매치 전적 기준으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총 9경기를 치렀으며, 우크라이나가 4승, 폴란드가 3승, 무승부 2회로 팽팽한 경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6년 유로 본선 조별리그에서 맞대결을 펼쳤으며, 이 경기에서 폴란드가 1대 0으로 승리했다.
양국은 2012년 유로 공동 개최국이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협력을 통해 관계 개선의 신호도 있었지만, 민족주의와 역사 인식의 차이로 인해 긴장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더비는 정치적 민감성과 스포츠적 경쟁심이 결합된 동유럽의 대표적인 지역 라이벌전으로 여겨진다.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의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전통적인 축구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정치 외교 갈등이 축구에 반영된 대표적인 동지중해 지역과 중동의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대진으로 분류된다. 양국은 1990년대까지는 군사적 협력도 있었고, FIFA 및 UEFA 대회에서 몇 차례 경기를 치렀으나, 2010년 가자 유조선 사태(마비 마르마라 사건)를 기점으로 외교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며 스포츠 교류 역시 사실상 단절되었다.
A매치 기준 양국은 총 6경기를 치렀으며, 튀르키예가 3승 3무로 무패를 기록 중이다. 마지막 맞대결은 2001년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으로, 당시 튀르키예가 1승 1무를 기록하며 앞섰다. 이후 UEFA와 FIFA의 대회에서 두 팀은 조 추첨 단계에서 종종 정치적 이유로 서로 만나지 않도록 배정되곤 한다.
경기 자체보다도 양국 관계 악화로 인해 경기가 열릴 수 있느냐가 더 큰 이슈가 되며, 실제로 2010년 이후에는 대표팀 차원의 경기는 열리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튀르키예가 전승을 기록하고 있어 전력 차가 존재하며, 외교 회복 없이는 가까운 시일 내 재대결 가능성도 낮다.
이집트
[ 중동전쟁 ]
이란
[ 이스라엘-이란 전쟁 ]
그야말로 최악의 관계. 과거 팔라비 왕조의 이란 제국 시절에는 우호적이었다. 허나 두 팀의 축구 라이벌전은 당시부터 출발한다. 당시 이란과 이스라엘은 중동의 양대 강호였고 총 5차례 맞붙어 3승 1무 1패로 이란이 우세하다. 하지만 정확히 팔라비 왕조 시절이던 1974년이 마지막 경기로 이후 이란 혁명이 터지며 최악의 관계로 치달은 뒤에는 A매치 맞대결은 없다. 오늘날 쌓여만 가는 서로의 업보를 미뤄보아 미래에 양 팀이 다시 격돌한다면 피튀기는 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
[ 레반트 더비 ]
팔레스타인
[ 이팔전쟁 ]
원수 중의 원수. 과거부터 현재까지 현재진행형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이스라엘이 UEFA에 소속되어 있고 팔레스타인은 AFC에 속해 있기 때문에 두 팀이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는 이상 만나기 굉장히 어렵다. 당연하게도 현재까지 A매치는 없으며 양 팀이 자발적으로 화해의 경기를 갖지 않는 이상 앞으로 단기간 내에 공식전에서 붙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만약 맞붙게 된다면 매우 치열한 혈투가 될 것은 안봐도 뻔한 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중앙아시아권의 대표적인 지역 라이벌전으로, 카자흐족과 우즈베크족의 민족적 라이벌로도 볼 수 있다. 두 나라는 과거 소련의 구성국이었으며, 독립 이후 각각 UEFA(카자흐스탄)[25]와 AFC(우즈베키스탄)에 소속되며 다른 대륙 연맹으로 갈라졌지만, 역사적 유대와 문화적 유사성, 지역 패권 의식이 맞물리며 이들의 경기는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공식 A매치 기준 두 팀은 10회 이상 맞붙었으며, 전적은 대체로 우즈베키스탄이 우세하다. 특히 1990~2000년대 AFC 아시안컵 예선, 월드컵 예선 등에서 자주 격돌했고, 경기력 측면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이 기술력과 조직력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카자흐스탄이 UEFA 소속으로 유럽 팀들과의 경험을 쌓으며 경쟁력을 키워오고 있어, 맞대결의 전력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아시아에서의 정체성과 축구적 자존심을 걸고 맞붙는다는 점에서, 이 더비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지역 자존심 대결로 여겨진다.
양국 팬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며, 경기 외적으로도 언론과 축구 커뮤니티에서 이 대결은 늘 높은 관심을 받는다.
에게 해를 둘러싸고 있는 두 나라의 라이벌전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대표적인 앙숙 관계이다. 심지어 키프로스 문제를 두고도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두 팀은 유로 2008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됐고, 조별 예선 첫 경기서 튀르키예가 그리스를 4-1로 원정에서 이기자 다음 날 튀르키예 언론들이 헤드라인에 “그리스 국민 여러분, 독립을 축하드립니다”[26]라는 비아냥을 올려댔다. 그러나 막바지에는 튀르키예가 홈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0-1로 패배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 다음날이 튀르키예 현충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리스 언론이 똑같은 방식으로 조롱해댔고, 튀르키예 언론들은 "당장 순국 선열들의 무덤 앞에 사죄하라"라는 헤드라인을 뽑는 등 대표팀을 무지막지하게 까댔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최종 순위가 그리스-튀르키예-노르웨이-보스니아-몰도바-헝가리-몰타 순으로 되어 둘이 본선에 동반 진출하긴 했다. 참고로 이 대회의 본선에서 그리스는 디펜딩 챔피언이었음에도 3전 전패를 당하며 밑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반면, 튀르키예는 조별 리그에서 체코를 제치고 극적으로 8강에 오르더니, 8강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연장 후반이 끝날 즈음에 골을 먹고 패배할 뻔했다가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린 후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여 4강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스라엘
[ 동지중해 더비 ]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의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전통적인 축구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정치 외교 갈등이 축구에 반영된 대표적인 동지중해 지역과 중동의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대진으로 분류된다. 양국은 1990년대까지는 군사적 협력도 있었고, FIFA 및 UEFA 대회에서 몇 차례 경기를 치렀으나, 2010년 가자 유조선 사태(마비 마르마라 사건)를 기점으로 외교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며 스포츠 교류 역시 사실상 단절되었다.
A매치 기준 양국은 총 6경기를 치렀으며, 튀르키예가 3승 3무로 무패를 기록 중이다. 마지막 맞대결은 2001년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으로, 당시 튀르키예가 1승 1무를 기록하며 앞섰다. 이후 UEFA와 FIFA의 대회에서 두 팀은 조 추첨 단계에서 종종 정치적 이유로 서로 만나지 않도록 배정되곤 한다.
경기 자체보다도 양국 관계 악화로 인해 경기가 열릴 수 있느냐가 더 큰 이슈가 되며, 실제로 2010년 이후에는 대표팀 차원의 경기는 열리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튀르키예가 전승을 기록하고 있어 전력 차가 존재하며, 외교 회복 없이는 가까운 시일 내 재대결 가능성도 낮다.
러시아
[ 흑해 더비 ]
흑해를 두고 마주한 튀르키예와 러시아의 대결은 전통적인 라이벌전은 아니지만, 양 국 사이의 무수한 역사적 전쟁사와 냉전시기 반소련주의 그리고 현대 외교 갈등이 맞물려 정치적 긴장감이 깃든 대진으로 여겨진다.
두 팀은 UEFA 네이션스리그 등에서 자주 맞붙었으며, 특히 2018년과 2020년 시즌에 연달아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A매치 전적은 러시아가 4승 3무 1패로 앞서 있으며, 튀르키예는 2020년 3대 2 승리로 첫 승을 거뒀다. 외교적 긴장 탓에 친선전 등은 드물지만, 경기 자체는 늘 거친 혈투외 라이벌 의식을 동반한다.
독일
[ 디아스포라 더비 ]
독일과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결은 단순한 유럽 국가 간 경기 그 이상으로, 유럽 내 이민과 정체성 문제까지 반영된 상징적인 대진이다. 독일에는 약 300만 명에 달하는 튀르키예계 이민자 및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양국 간의 경기에서 강한 관심과 감정이 개입되는 배경이 된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이나 팬들은 이 경기를 이민 더비 혹은 디아스포라 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대표팀의 전 주장 메수트 외질은 튀르키예계 독일인으로, 국가대표 은퇴 당시 “나는 독일에선 튀르키예인, 튀르키예에선 독일인으로 여겨진다”는 말을 남기며 정체성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이 경기는 단순한 실력 대결을 넘어 이민자 정체성, 사회 통합, 정치적 민감성을 함께 안고 있다.
A매치 전적은 총 21경기이며, 독일이 15승 3무 3패로 확실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튀르키예는 실질적인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경기 때마다 독일 내 튀르키예계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의미 있는 대진으로 인식된다. 특히 2023년 경기는 튀르키예가 홈팀 독일에 3-2로 승리했는데, 자국 홈팬보다 튀르키예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 패배보다 이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
[ 아라라트 더비 ]
아라라트 산으로 상징할 수 있는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의 관계는 전통적인 스포츠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정치적·외교적 긴장이 반영된 대표적인 외교 더비로 분류된다. 두 국가는 1915년 오스만 제국 시절의 아르메니아 학살 문제를 두고 100년 넘게 외교 관계를 단절해 왔으며, 영토 문제와 역사 인식 갈등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양국은 2008년 FIFA 월드컵 예선을 통해 처음 맞붙었고, 이 경기는 전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특히 당시 튀르키예 대통령이 예레반을 방문해 관전을 하는 등 외교적 해빙 시도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갈등의 뿌리가 깊은 만큼, 양국 팬들 사이의 감정도 여전히 팽팽하다.
공식 A매치 4경기 기준, 튀르키예가 3승 1무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아직 튀르키예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으며, 경기 내용에서도 열세를 보이고 있다. 양국은 최근 유로 2024 예선에서도 같은 조에 편성되어 다시 맞붙었고, 여전히 보안과 외교 문제가 큰 이슈로 따라붙었다.
각 국가별 관계에 따라 라이벌 의식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남미 지역 국가들은 서로가 서로를 라이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불리지는 않지만 모든 경기가 라틴 아메리카 더비인 셈이다. 세부적으로는 과거 그란 콜롬비아로 묶였던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는 그란 콜롬비아 더비라고 통용할 수 있고 안데스산맥을 공유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는 안데스 더비라 부를 수 있다.
월드컵 최다 우승국 1-2위 사이의 라이벌리이다. 하지만 의외로 양팀이 20세기에만 각각 4번, 3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음에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및 토너먼트를 포함 모든 경에서 단 1차례도 마주하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드디어 첫 만남을 가졌던 것이 바로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전이다. 당시 이른바 3R로 대표되는 브라질의 황금기였고 독일은 0-2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 팀의 라이벌리가 시작된 것은 2014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로 당시 자국에서 6번째 우승을 고대하던 브라질은 4강전에서 격돌한 독일에게 무려 1-7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패하면서 참극을 맞이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미네이랑의 비극이다. 이후 이 경기는 브라질 조롱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세계적인 더비라고 불리는 이른바 클라시코 문디알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두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칭하는 것으로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대결이다.
백미라 불릴 수 있는 대결은 2번의 월드컵 결승전이다. 1970년 월드컵에서 당시 월드컵 우승을 각각 2회씩 했던 브라질과 이탈리아는 월드컵 최초 3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일방적인 브라질의 3-1 승리로 끝났다.
1994년 월드컵 결승에서는 또 다시 월드컵 최초 4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결승전에서 맞붙었는데,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결승으로 견인했던 로베르토 바조가 마지막 킥을 하늘로 쏘아 올리면서 또 다시 브라질에 패하고 만다. 실축 당시 바조의 사진은 당시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 나올 정도로 길이 회자되는 장면이다.
20세기 말 1990년대부터 21세기 초인 2000년대 초까지 세계 최강의 팀이었던 두 팀은 희대의 축구 천재 호나우두와 지네딘 지단의 대결로 볼 수 있다.
1994년 월드컵 우승 이후 사실상 지구 최강의 팀이었던 브라질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은 1998년 월드컵 개최국 프랑스였다. 당시 아무리 홈어드밴티지가 있더라도 브라질이 이길것이라는 의견이 상당했지만 지단의 활약에 프랑스가 브라질을 3-0이라는 스코어로 물리치고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룬다. 하지만 4년 뒤 2002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세네갈 쇼크로 몰락했을 때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을 가져간다. 2006 월드컵에서 다시 격돌한 양팀 지단과 호나우두의 재대결이었고 여기서 프랑스가 승리하며 호나우두의 마지막 월드컵을 끝내버렸다.
상대전적에서는 16경기 기준 브라질이 7승 프랑스가 5승으로 브라질이 근소 우위에 있지만 상술했듯 메이저 대회에서 프랑스는 브라질의 천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포르투갈 문화권 루소폰의 대표적인 두 나라 사이의 대결이다. 두 나라는 식민지배 사이였다는 역사가 있지만 여타 식민지 관계와는 다르게 왕가가 나누어지면서 독립이 이루어져 유혈사태 없이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 왔기 때문에 여전히 형제 국가로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양 팀은 상대전적에서 20경기에서 맞붙어 브라질이 13승으로 4승을 거둔 포르투갈에 훨씬 우세함을 가져가고 있다. 다만 월드컵에서 2차례 격돌했는데 포르투갈이 1승 1무로 우세하다. 1966년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가 첫만남으로 에우제비오라는 당대 최고의 선수의 활약으로 그가 2골을 넣은 가운데 3-1 승리를 가져간다.
2010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오랜만에 격돌한 양 팀은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두 팀이 함께 16강에 진출했다.
대륙 간 라이벌리에서 가장 유명한 맞대결이다. 1962-1966 월드컵에서 이미 두 차례 맞붙어 모두 잉글랜드가 승리한 적이 있지만 양 팀의 진정한 라이벌리는 1982년 있었던 전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말비나스 제도(영어로는 포클랜드)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의 오판으로 마거릿 대처의 강력한 대응에 남미 앞바다에서 결국 영국군에 패전하면서 무너지는데, 이 전쟁은 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갑작스러운 이 전쟁은 당연히 단교를 불러왔고 국민 감정이 지속적으로 최악으로 치달아 가던 시점 하필 4년 후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맞붙었고 감정적인 혈투가 펼쳐졌는데, 이 경기에서 그 유명한 디에고 마라도나의 세기의 골과 신의 손으로 불리는 논란의 득점이 터지며 2-1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하였다. 1998년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만났고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다시 아르헨티나가 승리하였다. 4년후 2002년 월드컵에서는 스웨덴-잉글랜드-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라는 최악의 죽음의 조에 함께하게 된다. 2차전에서 맞붙은 두 팀의 경기는 1-0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났고 최종전 끝에 아르헨티나는 조 3위로 떨어졌고 잉글랜드는 조 2위로 살아올라갔다.
아르헨티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국이 추축국의 공격을 받아 1946년 월드컵이 예정되어 있었던 다섯 경기장들 중 네 군데나 파괴되었던 적이 있다.[27] 이후 1986년과 199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속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디에고 마라도나가 활약했던 1986년 대회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우승했고 1990년에는 서독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두 나라는 2006년과 2010년 월드컵 대회에도 만났고, 두 대회에서 벌어진 맞대결에서 모두 독일이 승리하였다. 이 두 대회에서 2006년에는 패싸움이, 2010년에는 경기 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2014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으로 발생한 더비다. 결과는 1:0으로 독일이 승리해 우승. 참고로 이들은 월드컵 매치업 중 제일 많이 만난 팀들 중 하나이며, 결승전에서 제일 많이 만난 월드컵 결승전의 라이벌이다.
21세기 신흥 라이벌이다. 1930년 첫 월드컵에서 만난바 있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맞붙었는데 모두 아르헨티나가 승리했다. 하지만 딱히 그 외에 접점은 없었다.
두 팀의 라이벌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출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명승부 끝에 4-3 승리를 거두었는데, 경기와는 별개로 또 다시 월드컵 무관에 그친 리오넬 메시를 프랑스팬들이 조롱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메시가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하고 프랑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잠잠해졌는데 202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두 팀이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유럽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메시의 동료였던 킬리안 음바페와 메시의 대결은 결승전 최고의 하이라이트였고 3-3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아르헨티나가 메시의 대관식을 치른다. 하지만 더 나아가 이번엔 역으로 음바페를 조롱했고 이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섞이며 결국 두 나라 국민들간의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이러한 감정의 골은 이후 2024 파리 올림픽 대회에 나선 U23 대표팀 간의 충돌로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서로를 매우 경멸하는 사이가 되었다. 양 팀의 라이벌전은 FIFA에서도 조명되었다.
천재 요한 크루이프와 토탈 풋볼의 네덜란드는 1974년 눈물의 준우승 이후 눈물을 머금고 다음 대회 월드컵 우승을 위해 내달린다. 황금세대는 여전히 건재했고 오스트리아-서독-이탈리아를 밀어내고 2회 연속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둔다. 상대는 개최국 아르헨티나 이미 노골적인 편파 판정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지만 결정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스타 마리오 켐페스의 놀라운 결정력 앞에 연장전에서 3-1 승리를 거둔 아르헨티나는 자국에서 사상 첫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네덜란드는 아르헨티나를 천년의 원수로 여긴다. 상대전적에서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에게 열세를 보이고 있다. 이후에 격돌한 월드컵 대회에서는 혈투가 이어지고 있다. 1998년 데니스 베르캄프의 극적인 골로 네덜란드가 승리한 경기와 2006년 0-0 무승부 이후 2014년 월드컵과 2022년 월드컵 경기는 모두 승부차기까지 갔다. 승부차기 전적은 아르헨티나가 2번 모두 승리했다.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은 아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라는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의 존재로 인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상징적 대결로 자리잡았다. 이 대진은 흔히 GOAT 더비 또는 메호대전으로 불리며, 양국보다는 두 선수 간 경쟁 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식 A매치 기준으로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는 총 3번 맞붙었으며, 아르헨티나가 2승 1패로 앞서고 있다. 가장 최근 경기는 2014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친선전으로, 메시와 호날두가 모두 출전했으나 아르헨티나가 1대 0으로 승리했다.
양국은 서로 다른 대륙 소속이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이나 공식 대회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적고, 실제로 두 팀은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격돌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팀 모두 FIFA 랭킹 상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히 강팀으로 분류되고 있고, 전술적 완성도와 기술력 면에서도 유사한 성향을 지닌다.
국가 간 라이벌전보다는 슈퍼스타 중심의 시대적 상징성으로 기억되는 대진이며, 현재까지 두 선수의 국가대표팀에서 월드컵 대회 맞대결은 없다. 과연 마지막으로 보이는 2026년에 만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은 아니지만, FIFA 월드컵에서 유난히 자주 만난 특이한 인연 때문에 ‘운명의 대진’이라 불리는 대결이다. 양국은 서로 다른 대륙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총 5차례(1994, 2002, 2010, 2014, 2018) 같은 조에 편성되었고, 이례적으로 모든 경기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특히 나이지리아 입장에선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징크스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나이지리아는 매번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했으나, 경기 내용은 대부분 1점 차 접전이었고, 경기마다 세계적인 명장면들이 나와 월드컵 역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리오넬 메시가 환상적인 터치와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고, 후반 막판 마르코스 로호가 극적인 결승골을 넣은 경기는 명승부로 꼽힌다.
두 팀은 올림픽 무대에서도 인연이 깊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는 나이지리아가 아르헨티나를 3–2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이는 나이지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승리 중 하나다. 반면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선 아르헨티나가 1–0으로 복수에 성공했다.
A매치 통산 전적은 아르헨티나가 우세하며, 공식 경기에서는 대부분 아르헨티나가 승리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매번 강한 피지컬과 개인기로 맞서며, 아르헨티나에게 절대 편하게 이길 수 없는 상대로 각인돼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진은 지역 기반의 더비는 아니지만, 월드컵 단골 대진, 접전 양상, 명장면 다수, 그리고 정서적 앙금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라이벌전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 독특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라셀레스테(La Celeste)와 로스 과라니(Los Guaraníes)의 맞대결인 우루과이와 파라과이의 축구 라이벌전은 남미 축구 전통 강호들 간의 맞대결로, 코파 아메리카와 월드컵 남미 예선 무대에서 자주 마주치는 실질적 경쟁 관계다. 두 나라는 모두 축구에 깊은 열정과 역사를 가진 국가이며, 특히 남미 내에서 수비와 투지, 조직력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는 우루과이가 더 많은 국제대회 성과와 전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지만, 파라과이도 1953년과 197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국으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양국은 특히 코파 아메리카에서 자주 만나 왔고, 2011년 결승전에서도 맞붙었는데, 당시에는 우루과이가 3-0으로 승리하며 통산 15회 우승을 달성했다.
스타일 면에서도 유사성이 많아 경기 양상은 항상 신중하고 강력한 수비와 중원 싸움 중심의 팽팽한 접전이 되곤 한다. 양국 모두 육체적이고 전술적인 경기를 선호하며, 높은 투쟁심과 끈질긴 플레이로 대표되는 팀 컬러가 대결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이 라이벌전은 전통의 브라질·아르헨티나 중심의 남미 축구와는 다른 ‘실속형 강호’들 간의 충돌로, 실력과 결과를 모두 중시하는 실용 축구 철학의 대결로도 불린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경기를 통해 남미 내 중견 강호의 위상을 확인하는 중요한 경기로 인식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들 중 하나이다. 양 팀의 맞대결은 월드컵에서 단 2차례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더비가 유명한 것은 월드컵에서의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스토리 때문일 것이다.
때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전 가나는 우루과이를 이길 경우 아프리카 최초 4강이라는 대업적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1-1로 맞선 연장전 종료 직전 가나의 빅찬스 상황에서 골문으로 들어가려던 그 때 골문 앞에 있던 루이스 수아레스가 손을 뻗어 공을 막아낸다. 당연히 주심은 레드 카드와 페널티킥을 선언한다. 그러나 아사모아 기안이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끝내 승부차기로 넘어가고 만다. 만약 여기서 가나가 승리했다면 인과응보로 잠깐의 해프닝으로 남았을 터였지만 우루과이가 승리하면서 수아레스의 핸드볼이 엄청난 스노우볼을 굴리게 되었고 비신사적인 경기에 가나는 울분을 토하며 고국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2022년 운명처럼 마주한 월드컵, 당시 사건의 주인공 수아레스는 유망주였지만 어느덧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내고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월드컵에 출전하게된다. 하필 가나와 같은 조에 편성된다. 그 때를 반성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축구 경기의 일부이다. 사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수아레스의 발언에 라이벌 분위기는 금새 달아올랐고 대망의 조별리그 최종전 경기가 펼쳐진다. 의외로 가나는 우루과이에 크게 밀리는 경기력을 보인다. 하지만 승부의 방향이 생각과는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데 당시 가나는 승리할 경우 16강에 자력으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우루과이에게 후반전까지도 0-2로 끌려다니고 있어 사실상 승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임할 경우 우루과이가 같은 시각 포르투갈과 경기를 치르던 대한민국에 골득실에서 앞서 16강에 오를 수 있는 상황, 갑자기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가나의 플레이는 곧 동귀어진을 시전하는 것이었다. 결국 경기는 0-2로 그대로 종료되었고 포르투갈을 이긴 한국이 우루과이를 밀어내고 16강에 진출했다. 경기 종료 직전 교체 아웃되어 벤치에서 울던 수아레스는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고 12년 묶은 가나의 복수는 일단락되었다.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축구 맞대결은 중남미 접경 지역의 문화·역사적 교류 속에서 형성된 지리적 라이벌전으로, 종종 지협 더비(Isthmus Derby) 또는 클라시코 델 다리엔(Clásico del Darién)으로 불린다. 두 나라는 다리엔 지협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이웃 국가로, 오랜 인접 관계와 상호 이주·문화 교류가 있어 국가대표팀의 경기에서도 자존심 대결이 강하게 작용한다.
과거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일부였으며, 1903년 파나마 운하 건설을 하고자 했던 미국의 지원으로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탓에, 두 나라 사이에는 민족적·정치적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는 축구에서도 잠재적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축구 전력에서는 콜롬비아가 FIFA 월드컵 본선 다수 진출, 코파 아메리카 우승 경험 등 훨씬 앞서 있는 강호이며, A매치 전적에서도 콜롬비아가 확실히 우세하다. 그러나 파나마는 2010년대 이후 급격히 성장하며 2018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북중미 강호로 떠오르면서 이 라이벌전의 무게도 커졌다.
콜롬비아계 이민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파나마 사회 구조, 그리고 파나마계 인물들도 콜롬비아 축구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어 상호 교차된 정체성이 이 경기의 배경에 작용한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경기를 통해 중남미 경계 지역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확인하려는 열망이 강하다.
따라서 이 맞대결은 단순한 전력 차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역사, 정치, 지역성, 이민, 축구 발전 속도가 엇갈리는 두 나라 간의 복합적인 상징 대결로 평가받는다.
라셀레스테(La Celeste)와 로스 과라니(Los Guaraníes)의 맞대결인 우루과이와 파라과이의 축구 라이벌전은 남미 축구 전통 강호들 간의 맞대결로, 코파 아메리카와 월드컵 남미 예선 무대에서 자주 마주치는 실질적 경쟁 관계다. 두 나라는 모두 축구에 깊은 열정과 역사를 가진 국가이며, 특히 남미 내에서 수비와 투지, 조직력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는 우루과이가 더 많은 국제대회 성과와 전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지만, 파라과이도 1953년과 197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국으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양국은 특히 코파 아메리카에서 자주 만나 왔고, 2011년 결승전에서도 맞붙었는데, 당시에는 우루과이가 3-0으로 승리하며 통산 15회 우승을 달성했다.
스타일 면에서도 유사성이 많아 경기 양상은 항상 신중하고 강력한 수비와 중원 싸움 중심의 팽팽한 접전이 되곤 한다. 양국 모두 육체적이고 전술적인 경기를 선호하며, 높은 투쟁심과 끈질긴 플레이로 대표되는 팀 컬러가 대결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이 라이벌전은 전통의 브라질·아르헨티나 중심의 남미 축구와는 다른 ‘실속형 강호’들 간의 충돌로, 실력과 결과를 모두 중시하는 실용 축구 철학의 대결로도 불린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경기를 통해 남미 내 중견 강호의 위상을 확인하는 중요한 경기로 인식된다.
동아시아 지역의 라이벌은 첨예한 역사적-정치적 더비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일본-중국 그리고 북한으로 대두되는 이 지역 국가들 사이의 더비는 여타 지역더비에 지지 않을 정도로 혈투를 보여주며 더티한 경기도 종종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더비로 통용할 수 있지만 이는 서양권에서 통칭하는 더비명이고 실제 동아시아 각국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 특성으로 앞쪽에 국가명을 따서 보통 ◯◯전으로 부른다.
역사적으로도 앙숙으로 유명한 두 나라는 도하의 기적과 2002년 FIFA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축구계에까지 라이벌 의식이 싹트더니, 서로가 서로를 이기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사이가 되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 라운드에서 한국이 일본 도쿄의 요요기 원정경기에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것을 '도쿄 대첩'이라고 부를 정도다. 여담으로, 한일전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국가 간의 10대 더비 매치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에 대 일본전에 관해 2가지 어록이 있다.
한반도 두 국가대표간의 더비이다. 이 더비의 서막은 경평축구대항전.[28] 조선일보 주최로 일제강점기 시대인 1929년 10월 8일에 첫 개최된 서울을 대표하는 경성축구단과 평양을 대표하는 평양축구단이 벌였던 대회이다.
그 외에도 1966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서막을 알릴 뻔 했으나 남한 측에서는 중립 경기를 치를 국가가 일본에서 캄보디아로 변경된 데 따른 항의[29]로 기권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2010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다시 만났는데, 3차 라운드에서 같은 조가 되어 나란히 진출 후 최종 라운드에서도 또 같은 조가 돼서 나란히 진출. 특히 10월드컵 예선 3라운드 두번째 남북전은 서울에서 열렸는데 당시 북한 도발로 인해 한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감정이 많이 나빴고 태극기가 유난히 많이 보였던 경기이다. 경기는 김치우가 극후반에 넣은 프리킥 결승골로 1:0 한국이 승리하였다.
2019년도 에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으로 다시 만났고 예전과 달리 김일성경기장 에서 1차전이 치러졌다.[30] 북한의 필요 이상의 텃세로 북경 을 거쳐서 입북은 물론 공항서 몇시간 동안 붙잡아 뒀다 훈련 시간도 제대로 못맞췄고 심지어 방송 중계도 먹튀하는 바람에 철저한 비공개로 경기가 진행됐다.[31] 경기 결과는 0대0 이었고 추후 북한에서 녹화한 영상이 한국으로 전달 됐지만 당시 정치상황 도 그렇고 영상 질이 조악해 축구협회 공식 유튜브에 하이라이트 부분만 업로드 되었다. 경기 내용은 확실히 북한이 거칠게 나왔고 실제 폭행도 있었을 정도라 한국에서의 반응은 2020년도 6월에 서울에서 2차전을 치르니 제대로 복수하자 였지만 팬데믹이 벌어져 북한이 방역을 이유로 기권했고 FIFA가 출전금지를 내려 당분간 북한 대표팀을 만날 일은 없어졌다.
오래전부터 중국 왕조와 한반도 국가 간의 수 많은 전쟁을 치러왔고 현대에도 6.25 전쟁에서 중공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혈전을 벌인 역사적인 숙적 관계이다. 현재도 불법조업,사드배치 갈등,동북공정 등 갈등의 요소가 남아있다. 애초에 두 국가의 체제가 양립할수 없기도 하고.. 또한 국민 간에도 감정이 좋지 않다.
2010년에 중국이 대한민국을 32년 만에 크게 꺾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이 대한민국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한증이라고 칭한다. 실제로 대한민국과 중국은 둘다 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이면서 거기서도 둘 다 동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이다 보니 서로 맞붙을 일이 많다.
팔라비 왕조 시절 이란은 한국과 깊은 우호국이었다. 테헤란로가 그 우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란 혁명 이후 반미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는 다소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축구에서 이란과 한국은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주적 중의 주적이다. 물론 서로에게 각각 일본과 이라크-사우디라는 거대한 지역 라이벌리가 이미 존재하지만 아시아 전체를 놓고 볼 때 오랜 시간 아시아의 최강자를 유지해 온 양 팀의 라이벌리는 혈투 그 자체를 보여준다. 심지어 아시안컵에서 1996년 한국의 2-6 대참사 이후 2011년까지 무려 5개 대회 연속 8강전이라는 혈투를 보여주었고 연장전과 승부차기 역시 많이 치렀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앙숙관계는 이어졌는데 특히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 박지성과 마수드 쇼자에이의 대결은 엄청난 긴장 속에 명승부를 낳았다. 최종전에서 이란이 한국과 무승부를 거두면서 이미 월드컵을 확정했던 한국과 달리 승리가 필요했던 이란은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는데 이로 인해 이란의 대 한국 감정은 극에 달한다. 2014년 월드컵 예선은 그야 말로 한-일전보다 더 최악이었다. 최강희 감독과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말싸움과 주먹감자 사건은 매우 격렬했던 당시의 라이벌리를 보여준다. 한편 당시 최종전에서 거꾸로 이란이 승리가 필요했던 한국을 꺾으며 복수를 하지만 오히려 우즈베키스탄이 고꾸라지면서 한국이 다행히 월드컵에 나가게 된다.
대한민국과 호주의 라이벌리티는 1970년대부터 만들어 진다. 당시 월드컵 예선에서 아시아 최강이라 불리던 한국은 오세아니아의 최강팀 호주에게 오랜시간 고전했고 호주에게 밀려 1970-74 월드컵까지 2차례나 본선 진출 좌절을 경험한다. 상대전적도 호주의 압도적인 우위로 자리잡았다.
1990년 한국이 호주 상대 12번째 경기만에 첫 승리를 따내고 이후 21세기들어 상대전적이 호각세로 돌아갔다. 가장 중요했던 경기는 2015 AFC 아시안컵 결승전으로 호주가 연장 승부 끝에 한국에 2-1 승리를 거두며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다.
역사적으로도 앙숙으로 유명한 두 나라는 도하의 기적과 2002년 FIFA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축구계에까지 라이벌 의식이 싹트더니, 서로가 서로를 이기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사이가 되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 라운드에서 한국이 일본 도쿄의 요요기 원정경기에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것을 '도쿄 대첩'이라고 부를 정도다. 여담으로, 한일전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국가 간의 10대 더비 매치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에 대 일본전에 관해 2가지 어록이 있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3개국 중 하나로 미제, 남조선 괴뢰와 함께 일제라 부르며 체제 선전에 활용된다. 특히 스포츠에서 일본에게 패하는 것은 곧 주적 남한에게 패하는 것과 같다. 일본을 맞이하는 북한팀은 매우 거칠게 상대한다. 반면 일본은 북한을 대한민국과 같은 라이벌로 생각하는 경향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래도 지역적 라이벌로서 의식은 가지고 있다. 특히 일본의 평양 원정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로 일본은 평양 원정에서 2무 2패로 승리를 해본 적이 없다. 반일감정으로 무장한 북한 관중과 거친 북한 축구에 꽤나 고전하며 일본이 가장 기피하는 경기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기반해 중국과 일본이 붙는 중일전은 유난히 파울과 카드가 많고 관중들 간의 신경전도 상당하다. 2004년 아시안컵은 중국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때 중국이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우승 바로 앞에서 만난 상대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산동성 제남 에서 열린 결승전은 중국 관중들의 압도적인 중국 응원 및 일본에 대한 저주와 야유로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정작 우승은 일본이 차지했다. 그 후에도 간간이 만났고 역대 전적으로도 비슷비슷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대 일본전이 어려운 분위기다. 오늘날 두 팀의 전력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오세아니아에 소속되었던 호주와 아시아의 일본은 통합 예선시기에 월드컵 예선을 몇 차례 치렀고 당시에는 호주가 우세했다. 그러나 호주의 암흑기 시절 일본이 점차 성장하며 상대전적에서 호각세를 보였던 양팀이다.
2006년 양 팀의 본격적인 라이벌리가 시작되는데 당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것. 당시 호주의 감독이 일본의 라이벌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였기에 더욱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는데 결과는 호주가 3-1 역전승을 거두었다. 오늘날 호주가 아시아축구연맹으로 넘어온 이후에도 서로를 그림자(Shadow)로 지칭하는 양 팀 서포터즈 간의 라이벌리는 계속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 왕조와 한반도 국가 간의 수 많은 전쟁을 치러왔고 현대에도 6.25 전쟁에서 중공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혈전을 벌인 역사적인 숙적 관계이다. 현재도 불법조업,사드배치 갈등,동북공정 등 갈등의 요소가 남아있다. 애초에 두 국가의 체제가 양립할수 없기도 하고.. 또한 국민 간에도 감정이 좋지 않다.
2010년에 중국이 대한민국을 32년 만에 크게 꺾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이 대한민국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한증이라고 칭한다. 실제로 대한민국과 중국은 둘다 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이면서 거기서도 둘 다 동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이다 보니 서로 맞붙을 일이 많다.
이러한 사실에 기반해 중국과 일본이 붙는 중일전은 유난히 파울과 카드가 많고 관중들 간의 신경전도 상당하다. 2004년 아시안컵은 중국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때 중국이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우승 바로 앞에서 만난 상대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산동성 제남 에서 열린 결승전은 중국 관중들의 압도적인 중국 응원 및 일본에 대한 저주와 야유로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정작 우승은 일본이 차지했다. 그 후에도 간간이 만났고 역대 전적으로도 비슷비슷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대 일본전이 어려운 분위기다. 오늘날 두 팀의 전력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축구의 변방이라고 불리지만 상호간의 라이벌리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지역 더비는 동남아시아 더비 또는 아세안에서 유래한 아세안 더비로 크게 묶어서 부르기도 한다. 세부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지역은 인도차이나 더비누산타라 지역은 누산타라 더비로 통칭할 수 있다.
오세아니아에 소속되었던 호주와 아시아의 일본은 통합 예선시기에 월드컵 예선을 몇 차례 치렀고 당시에는 호주가 우세했다. 그러나 호주의 암흑기 시절 일본이 점차 성장하며 상대전적에서 호각세를 보였던 양팀이다.
2006년 양 팀의 본격적인 라이벌리가 시작되는데 당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것. 당시 호주의 감독이 일본의 라이벌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였기에 더욱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는데 결과는 호주가 3-1 역전승을 거두었다. 오늘날 호주가 아시아축구연맹으로 넘어온 이후에도 서로를 그림자(Shadow)로 지칭하는 양 팀 서포터즈 간의 라이벌리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 아시아의 난적 ]
대한민국과 호주의 라이벌리티는 1970년대부터 만들어 진다. 당시 월드컵 예선에서 아시아 최강이라 불리던 한국은 오세아니아의 최강팀 호주에게 오랜시간 고전했고 호주에게 밀려 1970-74 월드컵까지 2차례나 본선 진출 좌절을 경험한다. 상대전적도 호주의 압도적인 우위로 자리잡았다.
1990년 한국이 호주 상대 12번째 경기만에 첫 승리를 따내고 이후 21세기들어 상대전적이 호각세로 돌아갔다. 가장 중요했던 경기는 2015 아시안컵 결승전으로 호주가 연장 승부 끝에 한국에 2-1 승리를 거두며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다.
잉글랜드
[ 크리켓 더비 ]
우루과이
[ 대륙간 플레이오프 라이벌 ]
뉴질랜드
[ 오세아니아 더비 ]
과거 호주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 속했던 시절 오세아니아 최강자 자리와 월드컵 출전권 등을 놓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호주가 아시아 연맹으로 넘어간 뒤에도 여전히 이 둘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맞대결은 동남아시아 축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상징적인 라이벌전으로, 흔히 “코즈웨이 더비(Causeway Derby)”라 불린다. 이 명칭은 두 나라를 잇는 조호르 해협의 코즈웨이 다리에서 유래했으며, 단순한 지역 라이벌을 넘어 역사·정치·감정이 얽힌 복합적 더비다.
과거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속해 있었으나, 1965년 독립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변화했고, 이후 축구에서도 국가 간 자존심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1950~90년대 말레이시아컵에서는 싱가포르가 자국 대표팀이나 클럽 형태로 출전하면서 팬덤과 열기가 폭발적이었다.
A매치 기록에서는 말레이시아가 근소한 우세를 점하거나 팽팽한 전적을 보여주고 있으며, AFF 스즈키컵(현 AFF 챔피언십)이나 SEA 게임, 동남아시아대회 등에서 자주 격돌한다. 특히 2022 AFF 챔피언십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 패하며 탈락한 경기는 최근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양국 모두 축구 인기와 전통이 강하고, 경기장 응원 문화도 뜨거워 정치적 구호나 감정 표현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SNS나 팬 커뮤니티에서는 ‘누가 진짜 동남아의 자존심인가’를 두고 설전이 오가곤 한다.
정치적으로는 현재 큰 긴장 관계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분리된 민족적·정체성 감정이 이 더비의 뿌리를 이루고 있어,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로 인해 동남아에서 가장 전통 깊고 의미 있는 국가대표 간 라이벌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인 범위 내의 중앙아시아는 구 소련의 구성국이었던 중앙아시아 5국과 아프간 지역과 카슈미르 및 중국의 위구르 자치구까지 볼 수 있는데 특히 중앙아시아 5국 사이의 지역더비를 이른바 중앙아시아 더비라고 부른다.[32] 특히 이들 민족은 유목-기마 민족의 후손들로 유목 더비라고 불릴 때도 있지만 메이저한 명칭은 아니다.
1980년대에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최악의 관계를 가진다.[33] 물론, 축구판이 대부분 그렇듯이 원교근공인 경우가 많아서 이란와 이라크의 A매치는 서아시아권을 대표하는 더비 매치로도 유명하다. 농담이 아니라, 국가 간의 사이가 한일관계 이상으로 사이가 최악으로 안 좋은데다 바빌론과 페르시아 구도로 5000년도 넘게 해묵었을 정도라 늘상 치열한 난투극 같은 혈투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2015년 아시안컵 8강전 경기에서는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 서아시아 더비 ]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가대표팀 더비는 서아시아 최강의 팀 간의 맞대결로 단순한 축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 라이벌전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중동의 대표 강호로, 정치적 긴장과 종교적 차이(수니파와 시아파)가 축구 경기에도 강하게 반영되며 늘 치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팀의 첫 맞대결은 1975년 올림픽 예선에서 열렸고, 이란이 3–0으로 승리하며 시작되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양국은 A매치 16경기 기준, 이란이 6승 6무 4패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득점은 이란이 24득점, 사우디가 14득점을 기록해 이란이 골득실에서도 앞선다. 가장 큰 점수차 승리는 이란의 3–0 승리이며, 이는 1975년과 1996년 월드컵 예선에서 나왔다. 반대로 사우디도 2–1, 1–0 등으로 몇 차례 이란을 제압한 바 있다.
양국의 경기는 종종 외교 갈등이나 민족 감정이 더해지며 매우 긴장된 상황 속에 치러지곤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축구 외적인 요소로 인해 경기가 더욱 뜨거워졌고, 특히 2009년 사우디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충돌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세 경기에서는 이란과 사우디가 각각 1승씩, 나머지 한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 팽팽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경기는 아시아 축구에서 보기 드문 정치적·종교적 라이벌전이자, 서아시아 축구 패권을 둘러싼 상징적인 더비로 여겨진다. 국가 간 자존심이 걸린 만큼, 향후 맞대결도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 아시아의 숙적 ]
팔라비 왕조 시절 이란은 한국과 깊은 우호국이었다. 테헤란로가 그 우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란 혁명 이후 반미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는 다소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축구에서 이란과 한국은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주적 중의 주적이다. 물론 서로에게 각각 일본과 이라크-사우디라는 거대한 지역 라이벌리가 이미 존재하지만 아시아 전체를 놓고 볼 때 오랜 시간 아시아의 최강자를 유지해 온 양 팀의 라이벌리는 혈투 그 자체를 보여준다. 심지어 아시안컵에서 1996년 한국의 2-6 대참사 이후 2011년까지 무려 5개 대회 연속 8강전이라는 혈투를 보여주었고 연장전과 승부차기 역시 많이 치렀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앙숙관계는 이어졌는데 특히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 박지성과 마수드 쇼자에이의 대결은 엄청난 긴장 속에 명승부를 낳았다. 최종전에서 이란이 한국과 무승부를 거두면서 이미 월드컵을 확정했던 한국과 달리 승리가 필요했던 이란은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는데 이로 인해 이란의 대 한국 감정은 극에 달한다. 2014년 월드컵 예선은 그야 말로 한-일전보다 더 최악이었다. 최강희 감독과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말싸움과 주먹감자 사건은 매우 격렬했던 당시의 라이벌리를 보여준다. 한편 당시 최종전에서 거꾸로 이란이 승리가 필요했던 한국을 꺾으며 복수를 하지만 오히려 우즈베키스탄이 고꾸라지면서 한국이 다행히 월드컵에 나가게 된다.
이스라엘
[ 이슬람의 적 ]
미국
[ 이란 혁명 ]
미국과 이란의 맞대결은 전통적인 축구 라이벌전이라기보다는, 정치·외교적 갈등이 만들어낸 상징적인 국제 경기로,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축구 경기”라 불린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란과의 관계를 대표하는 용어가 바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다. 이 둘의 경기는 실력보다도 이러한 양국 간의 긴장된 역사와 이념 대립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양국은 팔라비 왕조 시절 우호국이었으나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국교를 단절했고, 이후 수십 년간 외교적 적대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처음으로 맞붙은 경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로, 당시 이란이 2–1로 승리하며 정치적으로도, 스포츠적으로도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경기는 FIFA가 “가장 평화적인 정치적 경기”로 꼽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두 번째 만남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로, 이번엔 미국이 1–0으로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했고, 이란은 탈락했다. 이 경기는 경기 전후로 SNS 검열, 선수들의 시위, 기자회견에서의 정치 질문 등으로 다시 한 번 국제 정치 이슈로 확대되었다.
북중미 강호인 미국과 아시아 최상위권 팀 이란은 전력 상 엇비슷해 매 경기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팬들 사이에서도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하자는 주장과, 반대로 국가적 자존심을 앞세우는 반응이 혼재한다.
결과적으로 이 맞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이념·외교·민족주의가 축구라는 무대를 통해 충돌하는 국제경기로 자리 잡았으며, 향후에도 재대결이 이루어질 때마다 전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국가대표팀 맞대결은 중앙아시아권의 대표적인 지역 라이벌전으로, 카자흐족과 우즈베크족의 민족적 라이벌로도 볼 수 있다. 두 나라는 과거 소련의 구성국이었으며, 독립 이후 각각 UEFA(카자흐스탄)[34]와 AFC(우즈베키스탄)에 소속되며 다른 대륙 연맹으로 갈라졌지만, 역사적 유대와 문화적 유사성, 지역 패권 의식이 맞물리며 이들의 경기는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공식 A매치 기준 두 팀은 10회 이상 맞붙었으며, 전적은 대체로 우즈베키스탄이 우세하다. 특히 1990~2000년대 AFC 아시안컵 예선, 월드컵 예선 등에서 자주 격돌했고, 경기력 측면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이 기술력과 조직력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카자흐스탄이 UEFA 소속으로 유럽 팀들과의 경험을 쌓으며 경쟁력을 키워오고 있어, 맞대결의 전력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아시아에서의 정체성과 축구적 자존심을 걸고 맞붙는다는 점에서, 이 더비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지역 자존심 대결로 여겨진다.
양국 팬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며, 경기 외적으로도 언론과 축구 커뮤니티에서 이 대결은 늘 높은 관심을 받는다.
동남아시아보다 심한 축구의 오지라고 불리는 지역. 남아시아는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영국령 인도로 묶여 있었으나 종교적 갈등으로 분리된 케이스이다. 이 지역은 남아시아 더비라고 통칭할 수 있다. 모든 나라가 인도 문화권이지만 인도와 대립각을 세우는 파키스탄 등에서도 딱히 인디안 더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서아시아의 축구 열기는 사막보다 더 뜨겁다. 흔히 서아시아 더비 또는 중동 지역의 중동 더비 또는 오리엔트 더비 그리고 확장적으로 북아프리카 지역과 이어지는 아랍 문화권인 아랍 더비이슬람교에서 딴 이슬람 더비라고 통용해서 많이 불리며, 거의 범아랍권 국가가 서로를 라이벌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마그레브에 대칭되는 마슈리크 역시 통칭할 수 있는 용어로 마슈리크 더비라고도 불린다. 세부적으로 레반트 및 가나안지역 국가들은 레반트 더비 또는 가나안 더비로 불릴 수 있고 아라비아 반도의 위치한 국가들의 더비는 아라비아 더비로 부를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가대표팀 더비는 서아시아 최강의 팀 간의 맞대결로 단순한 축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 라이벌전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중동의 대표 강호로, 정치적 긴장과 종교적 차이(수니파와 시아파)가 축구 경기에도 강하게 반영되며 늘 치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팀의 첫 맞대결은 1975년 올림픽 예선에서 열렸고, 이란이 3–0으로 승리하며 시작되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양국은 A매치 16경기 기준, 이란이 6승 6무 4패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득점은 이란이 24득점, 사우디가 14득점을 기록해 이란이 골득실에서도 앞선다. 가장 큰 점수차 승리는 이란의 3–0 승리이며, 이는 1975년과 1996년 월드컵 예선에서 나왔다. 반대로 사우디도 2–1, 1–0 등으로 몇 차례 이란을 제압한 바 있다.
양국의 경기는 종종 외교 갈등이나 민족 감정이 더해지며 매우 긴장된 상황 속에 치러지곤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축구 외적인 요소로 인해 경기가 더욱 뜨거워졌고, 특히 2009년 사우디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충돌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세 경기에서는 이란과 사우디가 각각 1승씩, 나머지 한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 팽팽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경기는 아시아 축구에서 보기 드문 정치적·종교적 라이벌전이자, 서아시아 축구 패권을 둘러싼 상징적인 더비로 여겨진다. 국가 간 자존심이 걸린 만큼, 향후 맞대결도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최악의 관계를 가진다.[35] 물론, 축구판이 대부분 그렇듯이 원교근공인 경우가 많아서 이란와 이라크의 A매치는 서아시아권을 대표하는 더비 매치로도 유명하다. 농담이 아니라, 국가 간의 사이가 한일관계 이상으로 사이가 최악으로 안 좋은데다 바빌론과 페르시아 구도로 5000년도 넘게 해묵었을 정도라 늘상 치열한 난투극 같은 혈투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2015년 아시안컵 8강전 경기에서는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의 더비는 북아프리카 더비 또는 이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권명인 마그레브에서 유래한 마그레브 더비, 그리고 마그레브 지역의 공통적인 유목 민족 베르베르인에서 유래한 베르베르 더비로 통용될 수 있다. 이는 각 국의 단독적인 역사가 아닌 공통의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36]
모로코와 알제리의 맞대결은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라이벌전으로, 축구를 넘어 정치·역사·민족 감정이 얽힌 지역 더비다. 흔히 “마그레브 더비”라 불리기도 하며, 서사하라 분쟁과 모래 전쟁으로 이어지는 국경 문제 등 외교 갈등이 축구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양국은 프랑스 식민지배라는 공통 배경을 가지지만, 독립 이후 정치 노선과 외교 노선이 갈리며 관계가 악화되었다.
전력상 두 팀 모두 아프리카 최상위권에 속하며, A매치 전적도 팽팽한 편이다. 특히 2021년 FIFA 아랍컵 8강전에서 알제리가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양국 간 국교단절과 국경 폐쇄로 인해 홈 앤 어웨이 경기가 어려워, 중립지 개최가 많고 팬 이동도 제한된다.
문화적으로는 공통점도 많지만, 민족주의적 자존심 경쟁이 강해 응원전과 여론도 과열되기 쉽다. 경기 전후로 인터넷 설전, 국가 모욕 논란, 정치적 해석까지 이어지며,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이 더비는 정치와 축구가 결합된 북아프리카 최대의 국가대표 라이벌전으로 꼽힌다.
튀니지
[ 베르베르 더비 ]
이집트
[ 북아프리카 더비 ]
모로코와 이집트의 맞대결은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전통 강호들 간의 정통 마그레브 vs 동부 나일강 문화권의 축구 대결로, 아프리카 축구 내에서 역사와 전통을 동시에 가진 라이벌전이다. 두 나라는 모두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경험이 있는 최상위권 국가들이며, 아랍권 내에서도 가장 인프라와 팬층이 큰 축에 속한다.
A매치 전적에서는 모로코가 오랫동안 이집트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으며, 특히 1980~90년대에는 거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둬 ‘천적’으로 불렸다. 그러나 2017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전에서 이집트가 1–0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보다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양국 모두 유럽파가 풍부하고, 유럽 구단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 많아 경기 수준이 매우 높다. 모로코는 기술과 조직력을, 이집트는 피지컬과 빠른 템포를 중시하는 전술적 색깔 차이도 흥미로운 요소다.
문화적으로는 공통의 아랍어 사용,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서쪽 마그레브권과 동쪽 나일 문화권의 미묘한 경쟁 의식이 존재하며, 이는 축구에서도 자연스럽게 경쟁심으로 이어진다.
이 더비는 다른 북아프리카 더비들만큼 정치적 긴장은 없지만, 양국의 축구 자존심이 격돌하는 대표적인 아랍권 라이벌전으로, 아프리카 대회나 FIFA 아랍컵 등에서 만나면 항상 큰 관심을 받는다.
스페인
[ 리프 전쟁 ]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우마이야 왕조 시절 한 나라를 형성하기도 했던 두 나라는 15세기 레콩키스타 운동으로 이슬람이 축출되고 이후 오늘날 스페인의 기원인 스페인 제국이 탄생한다. 이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북아프리카를 접수하기 위한 스페인의 노력은 오늘날 모로코 지역의 토착 국가들과 필연적인 갈등을 불러왔고 결국 무력으로 이 지역을 차지해 식민지배하였고 이후 리프 전쟁 등의 분쟁이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세우타 등의 스페인령 북아프리카와 서사하라 문제를 두고 양국의 갈등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맞대결은 2022년 월드컵 16강에서 맞붙은 것이다. 지난 대회 조별리그에서 이미 한 차례 맞붙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2-2 무승부로 끝났고 이번에는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만난 것이다. 경기는 0-0으로 끝난 뒤 승부차기에서 모로코가 승리하며 역사적인 복수를 했으며 기어코 그 대회에서 포르투갈마저 꺾으며 아프리카 최초 4강의 대업적을 달성한다.
마그레브 더비라고 불린다. 북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더비이며 아프리카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라이벌전이다. 양 팀 모두 아프리카에서 성공적인 팀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수준도 매우 높다.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댄 두 나라의 경기는 수많은 역사와 정치적 라이벌 관계로도 이어진다.
상대전적은 48경기 기준 알제리 18승 튀니지 15승 무승무 16번으로 엄청난 호각세를 자랑한다.
모로코
[ 모래 전쟁 ]
모로코와 알제리의 맞대결은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라이벌전으로, 축구를 넘어 정치·역사·민족 감정이 얽힌 지역 더비다. 흔히 “마그레브 더비”라 불리기도 하며, 서사하라 분쟁과 모래 전쟁으로 이어지는 국경 문제 등 외교 갈등이 축구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양국은 프랑스 식민지배라는 공통 배경을 가지지만, 독립 이후 정치 노선과 외교 노선이 갈리며 관계가 악화되었다.
전력상 두 팀 모두 아프리카 최상위권에 속하며, A매치 전적도 팽팽한 편이다. 특히 2021년 FIFA 아랍컵 8강전에서 알제리가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양국 간 국교단절과 국경 폐쇄로 인해 홈 앤 어웨이 경기가 어려워, 중립지 개최가 많고 팬 이동도 제한된다.
문화적으로는 공통점도 많지만, 민족주의적 자존심 경쟁이 강해 응원전과 여론도 과열되기 쉽다. 경기 전후로 인터넷 설전, 국가 모욕 논란, 정치적 해석까지 이어지며,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이 더비는 정치와 축구가 결합된 북아프리카 최대의 국가대표 라이벌전으로 꼽힌다.
이집트
[ 북아프리카 더비 ]
북아프리카의 강호인 두 팀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강력한 라이벌전을 치러왔다. 북아프리카 지역은 모로코와 튀니지 등 워낙 강팀이 많아 서로가 강력한 라이벌인데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맞대결이 알제리와 이집트이다.
가장 큰 더비는 2009년에 있았다. 점차 아프리카 축구의 패권이 서남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두 팀이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고 오랜만에 기회를 잡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격돌하게 된다. 예선전 결과 이집트와 알제리가 6전 4승 1무 1패 9득점 4실점이라는 동일한 성적을 냈고 결국 중립지 앙골라에서 재경기를 가진다. 여기서 알제리가 1-0 승리를 가져가며 1986년 이후 24년만에 본선행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조별예선 서로의 맞대결 경기와 재경기까지 양 측 팬들의 격한 폭동과 소요사태가 줄을 이었고 외교문제까지 비화되었을 정도로 매우 상황이 심각했다. 여전히 두나라는 앙숙으로 혈투가 난무하는 것으로 유명한 더비매치이다.
프랑스
[ 알제리 독립 전쟁 ]
프랑스와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는 양국의 식민지 역사와 탈식민 이후의 긴장 관계가 얽힌 상징적인 대결로, 유럽과 북아프리카 사이를 잇는 대표적인 정치적 더비로 꼽힌다. 알제리는 1830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알제리 독립전쟁은 유혈과 반목을 동반한 유럽 식민지 해방의 대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양국은 지금도 민감한 감정을 공유한다.
양국 축구 대표팀은 역사상 단 한 차례, 2001년 파리 생드니에서 친선 경기를 가졌으며, 이 경기는 프랑스가 4대 1로 앞서던 후반 74분, 관중 난입으로 조기 종료되었다. 당시 알제리계 프랑스인 청년들이 다수 난입하며 경기가 중단되었고,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 내 이민자 문제, 정체성, 인종 갈등 등을 단적으로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양국은 수차례 재대결을 추진했으나, 정치적 부담과 치안 문제 등으로 무산되어 2024년까지도 공식 A매치는 1경기뿐이다. 다만 두 대표팀의 맞대결은 언제나 주목을 받으며, 프랑스 내 알제리 출신 이민자 선수들이 프랑스 대표로 활약하면서 정체성 논란도 빈번히 발생한다. 대표적인 선수는 지네딘 지단으로 프랑스 축구의 영웅이지만 그래도 지단은 알제리에서도 영웅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북아프리카의 강호인 두 팀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강력한 라이벌전을 치러왔다. 북아프리카 지역은 모로코와 튀니지 등 워낙 강팀이 많아 서로가 강력한 라이벌인데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맞대결이 알제리와 이집트이다.
가장 큰 더비는 2009년에 있았다. 점차 아프리카 축구의 패권이 서남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두 팀이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고 오랜만에 기회를 잡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격돌하게 된다. 예선전 결과 이집트와 알제리가 6전 4승 1무 1패 9득점 4실점이라는 동일한 성적을 냈고 결국 중립지 앙골라에서 재경기를 가진다. 여기서 알제리가 1-0 승리를 가져가며 1986년 이후 24년만에 본선행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조별예선 서로의 맞대결 경기와 재경기까지 양 측 팬들의 격한 폭동과 소요사태가 줄을 이었고 외교문제까지 비화되었을 정도로 매우 상황이 심각했다. 여전히 두나라는 앙숙으로 혈투가 난무하는 것으로 유명한 더비매치이다.
리비아
[ 토부룩 공방전 ]
모로코
[ 북아프리카 더비 ]
모로코와 이집트의 맞대결은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전통 강호들 간의 정통 마그레브 vs 동부 나일강 문화권의 축구 대결로, 아프리카 축구 내에서 역사와 전통을 동시에 가진 라이벌전이다. 두 나라는 모두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경험이 있는 최상위권 국가들이며, 아랍권 내에서도 가장 인프라와 팬층이 큰 축에 속한다.
A매치 전적에서는 모로코가 오랫동안 이집트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으며, 특히 1980~90년대에는 거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둬 ‘천적’으로 불렸다. 그러나 2017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전에서 이집트가 1–0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보다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양국 모두 유럽파가 풍부하고, 유럽 구단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 많아 경기 수준이 매우 높다. 모로코는 기술과 조직력을, 이집트는 피지컬과 빠른 템포를 중시하는 전술적 색깔 차이도 흥미로운 요소다.
문화적으로는 공통의 아랍어 사용,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서쪽 마그레브권과 동쪽 나일 문화권의 미묘한 경쟁 의식이 존재하며, 이는 축구에서도 자연스럽게 경쟁심으로 이어진다.
이 더비는 다른 북아프리카 더비들만큼 정치적 긴장은 없지만, 양국의 축구 자존심이 격돌하는 대표적인 아랍권 라이벌전으로, 아프리카 대회나 FIFA 아랍컵 등에서 만나면 항상 큰 관심을 받는다.
서아프리카에서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금의 해안과 상아 해안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독립 이후 인접국으로 최대 교류국이라고 볼 수 있다.
축구에서는 1965년 첫 맞대결을 가졌고 21세기 이후 양팀이 아프리카 축구 최강국들로 성장하면서 지역적 라이벌리가 이어지고 있다. 상대전적은 16경기 기준 가나 6승 코트디부아르 5승 무승무 5번[37]으로 초접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지리아
[ 졸로프 더비 ]
졸로프[38] 더비는 서아프리카 전통의 강호들 사이의 대결이다. 1950년 첫 대결을 가진 전통의 아프리카 대표 더비로 알려져 있고, CNN 선정 세계 10대 국가 대항전 더비에도 이름을 올렸다.
1974년 월드컵 예선에서 격돌한 양 팀 경기는 라고스에서 나이지리아 팬들의 큰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기는 2-2로 끝나지만 가나가 몰수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충돌이 있었고 특히 2022 월드컵 최종예선, 두 번째 경기가 끝난 후 나이지리아의 탈락이 확정되었을 때 나이지리아 팬들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최루가스로 진압했다. 이른바 아부자 폭동 사건.
현재도 두 팀은 앙숙 중의 앙숙으로 만났다하면 현지 치안이 불안해질 정도로 치열하며 경기장에서도 혈투를 보여주는 더비이다. 상대전적은 59경기 기준 가나가 25승 나이지리아 13승으로 가나가 우세를 가져가고 있다.
우루과이
[ 2010 악연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들 중 하나이다. 양 팀의 맞대결은 월드컵에서 단 2차례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더비가 유명한 것은 월드컵에서의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스토리 때문일 것이다.
때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전 가나는 우루과이를 이길 경우 아프리카 최초 4강이라는 대업적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1-1로 맞선 연장전 종료 직전 가나의 빅찬스 상황에서 골문으로 들어가려던 그 때 골문 앞에 있던 루이스 수아레스가 손을 뻗어 공을 막아낸다. 당연히 주심은 레드 카드와 페널티킥을 선언한다. 그러나 아사모아 기안이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끝내 승부차기로 넘어가고 만다. 만약 여기서 가나가 승리했다면 인과응보로 잠깐의 해프닝으로 남았을 터였지만 우루과이가 승리하면서 수아레스의 핸드볼이 엄청난 스노우볼을 굴리게 되었고 비신사적인 경기에 가나는 울분을 토하며 고국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2022년 운명처럼 마주한 월드컵, 당시 사건의 주인공 수아레스는 유망주였지만 어느덧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내고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월드컵에 출전하게된다. 하필 가나와 같은 조에 편성된다. 그 때를 반성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축구 경기의 일부이다. 사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수아레스의 발언에 라이벌 분위기는 금새 달아올랐고 대망의 조별리그 최종전 경기가 펼쳐진다. 의외로 가나는 우루과이에 크게 밀리는 경기력을 보인다. 하지만 승부의 방향이 생각과는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데 당시 가나는 승리할 경우 16강에 자력으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우루과이에게 후반전까지도 0-2로 끌려다니고 있어 사실상 승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임할 경우 우루과이가 같은 시각 포르투갈과 경기를 치르던 대한민국에 골득실에서 앞서 16강에 오를 수 있는 상황, 갑자기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가나의 플레이는 곧 동귀어진을 시전하는 것이었다. 결국 경기는 0-2로 그대로 종료되었고 포르투갈을 이긴 한국이 우루과이를 밀어내고 16강에 진출했다. 경기 종료 직전 교체 아웃되어 벤치에서 울던 수아레스는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고 12년 묶은 가나의 복수는 일단락되었다.
양 팀이 다시 만나는 날은 또 다시 격렬한 복수전이 일어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미국
[ 월드컵 3연전 ]
가나와 미국은 2006-2010-2014 월드컵 3연전을 치르며 악연을 맺는다. 처음 만난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미국은 16강을 위해서 반드시 가나를 이겨야 했으나 1-2로 패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 가나가 이탈리아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오른다.
양팀은 불과 4년만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16강전 녹아웃 스테이지였다. 복수를 꿈꾸던 미국은 혈투끝에 아사모아 기안에게 연장전 결승골을 내주며 1-2로 또 패하며 탈락했다.
두 대회 연속으로 가나에게 떨어졌던 미국은 운명처럼 2014년 조편성에서 다시 만난다. 만남이 확정되자 미국 언론들은 줄기차게 복수의 시간이라 외치며 가나와의 라이벌리티를 부각시켰다. 1차전 경기 미국은 경기시작 30초라는 자국 역사상 최단 시간 골을 갱신한 클린트 뎀프시의 골로 앞서갔고 치열한 승부 끝에 2-1로 승리하며 지난 패배들을 복수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포르투갈마저 밀어내고 독일에 이은 조 2위로 16강에 올랐고 가나는 최하위로 탈락한다.
그러나 두 팀 모두 2018년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면서 잠시 이 악연의 끈이 느슨해진 상태이다. 2022년 월드컵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토고
[ 가니안-토골레 더비 ]
가나와 토고의 맞대결은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이 맞붙는 서아프리카 지역 로컬 더비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두 나라 간의 지역성과 민족적 연관성에서 비롯된 국경 더비 성격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토골레-가니안 더비” 또는 “서아프리카 국경 더비”로 불리며, 경기 내용이나 결과보다 정서적 긴장감과 상징성이 더 부각되는 매치업이다.
가나는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강호로, 월드컵 4회 연속 진출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회 우승 등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며 전통적 강팀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토고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이 유일한 월드컵 경험이며, 아프리카 무대에서도 중상위권 전력에 머물러 있다. 이런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맞대결은 늘 지역 팬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는다.
두 나라는 에웨(Ewe) 등 국경을 넘나드는 공통 민족 집단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경기 외적인 민족 정체성 논란이나 감정 대립이 경기 전후로 표출되기도 한다. 축구가 민족 정체성과 지역 감정을 반영하는 수단이 되면서, 맞대결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매치 전적은 가나가 뚜렷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토고는 경기마다 거친 수비와 높은 투지로 맞서며 쉽게 무너지지 않고, 특히 홈 경기에서는 예상 외의 접전을 자주 연출한다. 이 때문에 가나 입장에서도 방심할 수 없는 대진으로 인식된다.
정치적 긴장감보다는 지역 기반의 라이벌 의식과 문화적 우위 경쟁이 맞대결의 정서를 형성하고 있으며, 가나가 승리를 가져가면 ‘역시 강호’라는 평가를, 토고가 선전하거나 승리하면 ‘작은 나라의 반란’으로 크게 조명된다. 오늘날 이 대진은 아프리카 서부 국경지대 특유의 민족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축구가 지역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맞대결로 자리 잡고 있다.
졸로프[39] 더비는 서아프리카 전통의 강호들 사이의 대결이다. 1950년 첫 대결을 가진 전통의 아프리카 대표 더비로 알려져 있고, CNN 선정 세계 10대 국가 대항전 더비에도 이름을 올렸다.
1974년 월드컵 예선에서 격돌한 양 팀 경기는 라고스에서 나이지리아 팬들의 큰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기는 2-2로 끝나지만 가나가 몰수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충돌이 있었고 특히 2022 월드컵 최종예선, 두 번째 경기가 끝난 후 나이지리아의 탈락이 확정되었을 때 나이지리아 팬들이 난동을 부려 경찰이 최루가스로 진압했다. 이른바 아부자 폭동 사건.
현재도 두 팀은 앙숙 중의 앙숙으로 만났다하면 현지 치안이 불안해질 정도로 치열하며 경기장에서도 혈투를 보여주는 더비이다. 상대전적은 59경기 기준 가나가 25승 나이지리아 13승으로 가나가 우세를 가져가고 있다.
코트디부아르
[ 서아프리카 더비 ]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부아르의 맞대결은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축구 강국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서아프리카 더비 또는 서부 아프리카 클래식이라 불리는 라이벌전이다. 두 나라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월드컵 예선, 친선경기 등에서 여러 차례 맞붙으며 아프리카 내 최고 수준의 경기력과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스타 파워를 보여주었다.
양국 모두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수준급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으며, 대표팀 스타일 또한 나이지리아는 피지컬과 속도를, 코트디부아르는 기술력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서로 다른 축구 철학을 보여주기에 이들의 경기는 늘 전술적 대비와 개인기 대결로 관심을 끈다.
대표적인 명경기는 202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조별리그 경기와 결승전이다. 조별리그에서는 나이지리아가 1–0으로 승리했으나, 결승에서 코트디부아르가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개최국 우승을 차지했다. 두 경기 모두 치열한 승부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A매치 전적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양국 모두 3회 이상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경험이 있으며, 역사적 위상과 현대 전력이 모두 상위권인 만큼 이들의 경기는 항상 아프리카 최강자를 가리는 대결로 여겨진다.
정치적으로는 큰 갈등 요소가 없지만, 서아프리카 축구 맹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심이 극심해 경기장 내외에서 항상 높은 긴장감을 동반한다. 전통, 실력, 지역 대표성까지 겸비한 이 대진은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클래식 매치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카메룬
[ 아프리카의 클래식 더비 ]
비아프라 지역으로 접경지를 이룬 카메룬과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전통 강호의 충돌로, 아프리카 축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치열한 라이벌전 중 하나로 꼽힌다. 흔히 “중서부 아프리카 더비”, 또는 “아프리카 클래식 더비”로 불린다.
양국 모두 월드컵 본선 다수 진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경력, 세계적인 스타 선수 배출 등 축구 역사에서 유사한 궤적을 걸어왔으며, 경기 때마다 지역적 자존심과 대륙 내 위상이 걸린 치열한 승부가 펼쳐진다. 특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에서 세 차례나 맞붙은 전례는 이 더비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4, 1988, 2000년 세 번의 결승전에서 모두 카메룬이 승리하면서 나이지리아 팬들에게는 이 대진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특히 2000년 결승은 나이지리아 홈에서 열린 대회였으며, 승부차기 끝에 패배해 더욱 뼈아팠다. 그러나 이후 2004년, 2019년 대회에서는 나이지리아가 카메룬을 꺾으며 복수에 성공했고, 최근 맞대결에서도 팽팽한 전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모두 피지컬이 강하고 활동량이 많은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며, 경기 양상은 종종 격렬한 몸싸움과 빠른 전개, 순간적인 개인기로 흐름이 결정된다. 양 팀 모두 실력뿐 아니라 자부심과 감정이 격한 팀 컬러를 갖고 있어 경기장 안팎에서 신경전도 자주 벌어진다.
A매치 전적은 나이지리아가 전체적으로 우세하지만, 카메룬이 굵직한 승리를 가져간 사례가 많아 기록보다 심리적 압박이 큰 더비로 평가된다. 이 대결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지역 라이벌 구도, 역사적 감정, 전통적 위상이 모두 결합된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국가대표 더비로 자리 잡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 아마피아노 더비 ]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단순한 축구 시합을 넘어 음악, 문화, 정치, 스포츠가 얽힌 현대 아프리카 라이벌전으로 평가받으며, 최근 들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마피아노 더비”라는 별칭으로 통한다. ‘아마피아노’는 남아공에서 유래한 하우스 음악 장르로, 나이지리아와 남아공이 이를 두고 문화적 주도권 경쟁을 벌이면서 이 용어가 축구에서도 대입된 것이다.
양국 모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경제력과 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이며, 축구에서도 유럽파를 다수 보유한 전통 강호로 꼽힌다. 전력상으로는 오랫동안 나이지리아가 우세했으며, 실제 A매치 전적에서도 나이지리아가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남아공은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 진출, 2023 대회 준결승 진출 등 최근 들어 반등세를 보이며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맞대결 또한 점점 더 박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2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결승에서 양국이 격돌하며 대진의 상징성이 강화되었고, 이때 나이지리아가 승부차기 끝에 결승에 진출했다.
문화적으로는 양국 간 음악, 패션, SNS 밈 전쟁이 격화되고 있어, 축구 맞대결도 자연스럽게 대륙 대표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연결된다. 팬들 사이에선 경기 전후로 SNS에서 아마피아노 음악을 활용한 조롱이나 응원이 넘쳐나며, 이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 팬들에게도 즐길 거리로 작용한다.
정치적 갈등까지는 아니지만, 나이지리아의 아프리카 내 우월주의적 인식과 남아공의 지역 중심적 자존심이 충돌하면서 경기는 자주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결국 이 더비는 단순한 전력 대결을 넘어, 21세기 아프리카 문화의 중심 자리를 놓고 벌이는 종합 경쟁의 상징이 되었으며, ‘아마피아노 더비’라는 별칭은 이 두 나라 간의 라이벌 관계를 가장 현대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아르헨티나
[ 운명의 대진 ]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은 아니지만, FIFA 월드컵에서 유난히 자주 만난 특이한 인연 때문에 ‘운명의 대진’이라 불리는 대결이다. 양국은 서로 다른 대륙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총 5차례(1994, 2002, 2010, 2014, 2018) 같은 조에 편성되었고, 이례적으로 모든 경기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특히 나이지리아 입장에선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징크스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나이지리아는 매번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했으나, 경기 내용은 대부분 1점 차 접전이었고, 경기마다 세계적인 명장면들이 나와 월드컵 역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리오넬 메시가 환상적인 터치와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고, 후반 막판 마르코스 로호가 극적인 결승골을 넣은 경기는 명승부로 꼽힌다.
두 팀은 올림픽 무대에서도 인연이 깊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는 나이지리아가 아르헨티나를 3–2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이는 나이지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승리 중 하나다. 반면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선 아르헨티나가 1–0으로 복수에 성공했다.
A매치 통산 전적은 아르헨티나가 우세하며, 공식 경기에서는 대부분 아르헨티나가 승리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매번 강한 피지컬과 개인기로 맞서며, 아르헨티나에게 절대 편하게 이길 수 없는 상대로 각인돼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진은 지역 기반의 더비는 아니지만, 월드컵 단골 대진, 접전 양상, 명장면 다수, 그리고 정서적 앙금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라이벌전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 독특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앙골라
[ 앙골라 쇼크 ]
앙골라와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은 아니지만, 특정 대회와 역사적 순간에서 격렬한 긴장감을 남기며, 아프리카 축구에서 “월드컵 트라우마 더비”의 상징적 매치업으로 꼽힌다.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이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며 본선 진출이 유력시되었으나, 앙골라가 예상을 뒤엎고 조 1위를 차지하며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나이지리아는 승점과 골득실에서 동률이었음에도, 상대 전적에서 밀려 탈락했고, 이 사건은 나이지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로 회자된다.
이후 양국은 종종 친선경기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등에서 만났고, 2024년 AFCON 8강전에서도 다시 충돌했다. 이 경기에서 앙골라는 선전했으나, 나이지리아가 1–0으로 승리하며 오랜만에 ‘앙골라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씻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력상으론 나이지리아가 전통 강호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앙골라는 조직적인 수비와 역습으로 대형 팀들을 괴롭히는 팀 컬러를 지니고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복병으로 꼽힌다. 맞대결이 이뤄질 때마다 2006년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두 나라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감정의 골이 남아 있다.
정치적 갈등은 크지 않지만, 포르투갈 식민지배를 겪은 프랑코포니-루소폰계 국가와, 영국 식민지 출신인 나이지리아 간의 상징적 대립 구도가 은근히 작용한다. 또한 앙골라가 승리한 적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순간마다 나이지리아를 좌절시킨 전적 때문에 상징적 라이벌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순간마다 얽힌 드라마와 충격으로 인해 아프리카 축구 팬들 사이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 라이벌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카메룬과 세네갈의 맞대결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양국 간의 프랑코포니 아프리카 더비로 분류된다. 두 팀 모두 아프리카 축구 역사에서 월드컵 진출, 네이션스컵 우승, 유럽파 스타 선수 배출 등을 통해 오랜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정통 강호다. 정치적 갈등은 크지 않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의 문화적 경쟁 의식과 대륙 내 리더십 경쟁, 그리고 자존심 싸움이 겹쳐져 자연스레 강한 라이벌 의식이 형성됐다. 두 팀은 아프리카 무대에서 서로를 넘어서야 할 상대로 여겨지며, 이 대진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클래식 매치업으로 평가된다.
두 팀의 대표적인 맞대결은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이다. 이 경기에서 양 팀은 연장까지 0–0으로 비겼고, 승부차기에서 카메룬이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다. 세네갈은 이 패배 이후 같은 해 월드컵에서 8강까지 진출하며 반전을 꾀했지만, 결승전 패배의 아쉬움은 깊게 남았다. 이후 두 팀은 2017년 네이션스컵 8강에서도 만나 또 한 번 승부차기 접전을 펼쳤고, 또다시 카메룬이 승리했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세네갈 입장에선 카메룬이 트라우마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으나, 202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조별리그에서는 세네갈이 3–1로 승리하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전력적으로는 양국 모두 피지컬이 강하고 조직적인 수비와 빠른 역습을 중심으로 하는 팀 컬러를 갖고 있으며, 경기 스타일이 유사한 탓에 맞대결은 치열한 중원 싸움과 몸싸움, 긴장감 높은 접전 양상으로 흐르기 쉽다.
코트디부아르
[ 서아프리카 더비 ]
서아프리카의 양국은 모두 월드컵 본선 진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및 유럽파 스타 배출을 통해 아프리카 축구 내에서 뚜렷한 위상을 가진 팀들이다. 두 팀 모두 강력한 피지컬, 스피드 중심의 공격진,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어, 맞대결 시 늘 수준 높은 경기가 펼쳐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다. 두 경기 합산 4–2로 코트디부아르가 승리하면서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세네갈은 고배를 마셨다. 해당 경기는 양국 축구 역사에 남을 정도로 치열했으며, 경기 후폭풍도 상당했다.
202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6강전에서는 세네갈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나섰으나, 코트디부아르가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극적인 복수와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경기로 인해 두 나라 간의 라이벌 구도는 더욱 선명해졌고, 심리적 우위 싸움도 복잡해진 상황이다.
정치적 갈등은 비교적 적지만, 두 나라 모두 서아프리카 지역 내에서 축구와 문화적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경기 때마다 자존심이 걸린 대결로 인식된다. 경기장 분위기 또한 매우 뜨거우며, 팬들 사이에서도 강한 감정이 오가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이 맞대결은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실력과 전통을 모두 갖춘 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표적인 서아프리카 강호전이자, 프랑스어권 축구의 자존심이 걸린 대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지리적으로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금의 해안과 상아 해안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독립 이후 인접국으로 최대 교류국이라고 볼 수 있다.
축구에서는 1965년 첫 맞대결을 가졌고 21세기 이후 양팀이 아프리카 축구 최강국들로 성장하면서 지역적 라이벌리가 이어지고 있다. 상대전적은 16경기 기준 가나 6승 코트디부아르 5승 무승무 5번[40]으로 초접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지리아
[ 서아프리카 더비 ]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부아르의 맞대결은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축구 강국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서아프리카 더비 또는 서부 아프리카 클래식이라 불리는 라이벌전이다. 두 나라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월드컵 예선, 친선경기 등에서 여러 차례 맞붙으며 아프리카 내 최고 수준의 경기력과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스타 파워를 보여주었다.
양국 모두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수준급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으며, 대표팀 스타일 또한 나이지리아는 피지컬과 속도를, 코트디부아르는 기술력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서로 다른 축구 철학을 보여주기에 이들의 경기는 늘 전술적 대비와 개인기 대결로 관심을 끈다.
대표적인 명경기는 202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조별리그 경기와 결승전이다. 조별리그에서는 나이지리아가 1–0으로 승리했으나, 결승에서 코트디부아르가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개최국 우승을 차지했다. 두 경기 모두 치열한 승부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A매치 전적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양국 모두 3회 이상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경험이 있으며, 역사적 위상과 현대 전력이 모두 상위권인 만큼 이들의 경기는 항상 아프리카 최강자를 가리는 대결로 여겨진다.
정치적으로는 큰 갈등 요소가 없지만, 서아프리카 축구 맹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심이 극심해 경기장 내외에서 항상 높은 긴장감을 동반한다. 전통, 실력, 지역 대표성까지 겸비한 이 대진은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클래식 매치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세네갈
[ 서아프리카 더비 ]
서아프리카의 양국은 모두 월드컵 본선 진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및 유럽파 스타 배출을 통해 아프리카 축구 내에서 뚜렷한 위상을 가진 팀들이다. 두 팀 모두 강력한 피지컬, 스피드 중심의 공격진,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로 구성돼 있어, 맞대결 시 늘 수준 높은 경기가 펼쳐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다. 두 경기 합산 4–2로 코트디부아르가 승리하면서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세네갈은 고배를 마셨다. 해당 경기는 양국 축구 역사에 남을 정도로 치열했으며, 경기 후폭풍도 상당했다.
202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16강전에서는 세네갈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나섰으나, 코트디부아르가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극적인 복수와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경기로 인해 두 나라 간의 라이벌 구도는 더욱 선명해졌고, 심리적 우위 싸움도 복잡해진 상황이다.
정치적 갈등은 비교적 적지만, 두 나라 모두 서아프리카 지역 내에서 축구와 문화적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경기 때마다 자존심이 걸린 대결로 인식된다. 경기장 분위기 또한 매우 뜨거우며, 팬들 사이에서도 강한 감정이 오가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이 맞대결은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실력과 전통을 모두 갖춘 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표적인 서아프리카 강호전이자, 프랑스어권 축구의 자존심이 걸린 대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나와 토고의 맞대결은 영어권과 프랑스어권이 맞붙는 서아프리카 지역 로컬 더비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두 나라 간의 지역성과 민족적 연관성에서 비롯된 국경 더비 성격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토골레-가니안 더비” 또는 “서아프리카 국경 더비”로 불리며, 경기 내용이나 결과보다 정서적 긴장감과 상징성이 더 부각되는 매치업이다.
가나는 아프리카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강호로, 월드컵 4회 연속 진출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회 우승 등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며 전통적 강팀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토고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이 유일한 월드컵 경험이며, 아프리카 무대에서도 중상위권 전력에 머물러 있다. 이런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에 이들의 맞대결은 늘 지역 팬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는다.
두 나라는 에웨(Ewe) 등 국경을 넘나드는 공통 민족 집단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경기 외적인 민족 정체성 논란이나 감정 대립이 경기 전후로 표출되기도 한다. 축구가 민족 정체성과 지역 감정을 반영하는 수단이 되면서, 맞대결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매치 전적은 가나가 뚜렷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토고는 경기마다 거친 수비와 높은 투지로 맞서며 쉽게 무너지지 않고, 특히 홈 경기에서는 예상 외의 접전을 자주 연출한다. 이 때문에 가나 입장에서도 방심할 수 없는 대진으로 인식된다.
정치적 긴장감보다는 지역 기반의 라이벌 의식과 문화적 우위 경쟁이 맞대결의 정서를 형성하고 있으며, 가나가 승리를 가져가면 ‘역시 강호’라는 평가를, 토고가 선전하거나 승리하면 ‘작은 나라의 반란’으로 크게 조명된다. 오늘날 이 대진은 아프리카 서부 국경지대 특유의 민족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축구가 지역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맞대결로 자리 잡고 있다.
비아프라 지역으로 접경지를 이룬 카메룬과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전통 강호의 충돌로, 아프리카 축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치열한 라이벌전 중 하나로 꼽힌다. 흔히 “중서부 아프리카 더비”, 또는 “아프리카 클래식 더비”로 불린다.
양국 모두 월드컵 본선 다수 진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경력, 세계적인 스타 선수 배출 등 축구 역사에서 유사한 궤적을 걸어왔으며, 경기 때마다 지역적 자존심과 대륙 내 위상이 걸린 치열한 승부가 펼쳐진다. 특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에서 세 차례나 맞붙은 전례는 이 더비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4, 1988, 2000년 세 번의 결승전에서 모두 카메룬이 승리하면서 나이지리아 팬들에게는 이 대진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특히 2000년 결승은 나이지리아 홈에서 열린 대회였으며, 승부차기 끝에 패배해 더욱 뼈아팠다. 그러나 이후 2004년, 2019년 대회에서는 나이지리아가 카메룬을 꺾으며 복수에 성공했고, 최근 맞대결에서도 팽팽한 전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모두 피지컬이 강하고 활동량이 많은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며, 경기 양상은 종종 격렬한 몸싸움과 빠른 전개, 순간적인 개인기로 흐름이 결정된다. 양 팀 모두 실력뿐 아니라 자부심과 감정이 격한 팀 컬러를 갖고 있어 경기장 안팎에서 신경전도 자주 벌어진다.
A매치 전적은 나이지리아가 전체적으로 우세하지만, 카메룬이 굵직한 승리를 가져간 사례가 많아 기록보다 심리적 압박이 큰 더비로 평가된다. 이 대결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지역 라이벌 구도, 역사적 감정, 전통적 위상이 모두 결합된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국가대표 더비로 자리 잡고 있다.
세네갈
[ 사자 대전 ]
불굴의 사자와 테랑가의 사자의 승부.
카메룬과 세네갈의 맞대결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양국 간의 프랑코포니 아프리카 더비로 분류된다. 두 팀 모두 아프리카 축구 역사에서 월드컵 진출, 네이션스컵 우승, 유럽파 스타 선수 배출 등을 통해 오랜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정통 강호다. 정치적 갈등은 크지 않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의 문화적 경쟁 의식과 대륙 내 리더십 경쟁, 그리고 자존심 싸움이 겹쳐져 자연스레 강한 라이벌 의식이 형성됐다. 두 팀은 아프리카 무대에서 서로를 넘어서야 할 상대로 여겨지며, 이 대진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클래식 매치업으로 평가된다.
두 팀의 대표적인 맞대결은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이다. 이 경기에서 양 팀은 연장까지 0–0으로 비겼고, 승부차기에서 카메룬이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다. 세네갈은 이 패배 이후 같은 해 월드컵에서 8강까지 진출하며 반전을 꾀했지만, 결승전 패배의 아쉬움은 깊게 남았다. 이후 두 팀은 2017년 네이션스컵 8강에서도 만나 또 한 번 승부차기 접전을 펼쳤고, 또다시 카메룬이 승리했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세네갈 입장에선 카메룬이 트라우마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으나, 202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조별리그에서는 세네갈이 3–1로 승리하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전력적으로는 양국 모두 피지컬이 강하고 조직적인 수비와 빠른 역습을 중심으로 하는 팀 컬러를 갖고 있으며, 경기 스타일이 유사한 탓에 맞대결은 치열한 중원 싸움과 몸싸움, 긴장감 높은 접전 양상으로 흐르기 쉽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잠비아의 맞대결은 남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팀 간의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으로, 흔히 “남부 아프리카 더비” 또는 “코사파 더비”[41]로 불린다. 두 나라 모두 남아프리카축구협회에 속해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정치·문화적으로 교류가 많은 관계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남아공의 국제 복귀와 함께 두 팀 간의 대결이 활발히 이뤄졌으며, A매치 기준 수차례 격돌해왔다. 전력상으로는 남아공이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과 더 많은 유럽파를 보유한 점에서 우세하지만, 잠비아는 투지와 조직력에서 밀리지 않으며, 대등하거나 우세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전초전 성격의 친선경기에서 잠비아가 남아공을 꺾고 대회에 돌입해, 결국 아프리카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또한 COSAFA컵,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친선전 등 다양한 대회에서 두 팀은 자주 만나며 남부 아프리카 축구의 대표성과 지역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큰 충돌은 없지만, 남아공이 경제적·정치적으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인식되는 반면, 잠비아는 실속 있고 꾸준한 축구 전통국가로 자신감을 갖고 있어, 맞대결에서는 자연스러운 자존심 경쟁이 형성된다.
또한, 남아공 리그에는 잠비아 출신 선수들이 다수 진출해 있어 서로의 축구를 잘 알고 있는 관계이며, 이는 맞대결 시 더욱 치열하고 전술적으로도 긴장된 양상을 만들곤 한다.
결과적으로 이 맞대결은 아프리카 축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더비 중 하나는 아니지만, 남부 아프리카 축구의 축약판 같은 승부로 여겨지며, 해당 지역 팬들 사이에선 매우 의미 있는 전통적 지역 라이벌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이지리아
[ 아마피아노 더비 ]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단순한 축구 시합을 넘어 음악, 문화, 정치, 스포츠가 얽힌 현대 아프리카 라이벌전으로 평가받으며, 최근 들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마피아노 더비”라는 별칭으로 통한다. ‘아마피아노’는 남아공에서 유래한 하우스 음악 장르로, 나이지리아와 남아공이 이를 두고 문화적 주도권 경쟁을 벌이면서 이 용어가 축구에서도 대입된 것이다.
양국 모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경제력과 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이며, 축구에서도 유럽파를 다수 보유한 전통 강호로 꼽힌다. 전력상으로는 오랫동안 나이지리아가 우세했으며, 실제 A매치 전적에서도 나이지리아가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남아공은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 진출, 2023 대회 준결승 진출 등 최근 들어 반등세를 보이며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맞대결 또한 점점 더 박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2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결승에서 양국이 격돌하며 대진의 상징성이 강화되었고, 이때 나이지리아가 승부차기 끝에 결승에 진출했다.
문화적으로는 양국 간 음악, 패션, SNS 밈 전쟁이 격화되고 있어, 축구 맞대결도 자연스럽게 대륙 대표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연결된다. 팬들 사이에선 경기 전후로 SNS에서 아마피아노 음악을 활용한 조롱이나 응원이 넘쳐나며, 이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 팬들에게도 즐길 거리로 작용한다.
정치적 갈등까지는 아니지만, 나이지리아의 아프리카 내 우월주의적 인식과 남아공의 지역 중심적 자존심이 충돌하면서 경기는 자주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결국 이 더비는 단순한 전력 대결을 넘어, 21세기 아프리카 문화의 중심 자리를 놓고 벌이는 종합 경쟁의 상징이 되었으며, ‘아마피아노 더비’라는 별칭은 이 두 나라 간의 라이벌 관계를 가장 현대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앙골라와 나이지리아의 맞대결은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은 아니지만, 특정 대회와 역사적 순간에서 격렬한 긴장감을 남기며, 아프리카 축구에서 “월드컵 트라우마 더비”의 상징적 매치업으로 꼽힌다.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이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며 본선 진출이 유력시되었으나, 앙골라가 예상을 뒤엎고 조 1위를 차지하며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나이지리아는 승점과 골득실에서 동률이었음에도, 상대 전적에서 밀려 탈락했고, 이 사건은 나이지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로 회자된다.
이후 양국은 종종 친선경기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등에서 만났고, 2024년 AFCON 8강전에서도 다시 충돌했다. 이 경기에서 앙골라는 선전했으나, 나이지리아가 1–0으로 승리하며 오랜만에 ‘앙골라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씻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력상으론 나이지리아가 전통 강호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앙골라는 조직적인 수비와 역습으로 대형 팀들을 괴롭히는 팀 컬러를 지니고 있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복병으로 꼽힌다. 맞대결이 이뤄질 때마다 2006년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두 나라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감정의 골이 남아 있다.
정치적 갈등은 크지 않지만, 포르투갈 식민지배를 겪은 프랑코포니-루소폰계 국가와, 영국 식민지 출신인 나이지리아 간의 상징적 대립 구도가 은근히 작용한다. 또한 앙골라가 승리한 적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순간마다 나이지리아를 좌절시킨 전적 때문에 상징적 라이벌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순간마다 얽힌 드라마와 충격으로 인해 아프리카 축구 팬들 사이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 라이벌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잠비아의 맞대결은 남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팀 간의 전통적인 지역 라이벌전으로, 흔히 “남부 아프리카 더비” 또는 “코사파 더비”[42]로 불린다. 두 나라 모두 남아프리카축구협회에 속해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정치·문화적으로 교류가 많은 관계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남아공의 국제 복귀와 함께 두 팀 간의 대결이 활발히 이뤄졌으며, A매치 기준 수차례 격돌해왔다. 전력상으로는 남아공이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과 더 많은 유럽파를 보유한 점에서 우세하지만, 잠비아는 투지와 조직력에서 밀리지 않으며, 대등하거나 우세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전초전 성격의 친선경기에서 잠비아가 남아공을 꺾고 대회에 돌입해, 결국 아프리카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또한 COSAFA컵,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친선전 등 다양한 대회에서 두 팀은 자주 만나며 남부 아프리카 축구의 대표성과 지역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큰 충돌은 없지만, 남아공이 경제적·정치적으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인식되는 반면, 잠비아는 실속 있고 꾸준한 축구 전통국가로 자신감을 갖고 있어, 맞대결에서는 자연스러운 자존심 경쟁이 형성된다.
또한, 남아공 리그에는 잠비아 출신 선수들이 다수 진출해 있어 서로의 축구를 잘 알고 있는 관계이며, 이는 맞대결 시 더욱 치열하고 전술적으로도 긴장된 양상을 만들곤 한다.
결과적으로 이 맞대결은 아프리카 축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더비 중 하나는 아니지만, 남부 아프리카 축구의 축약판 같은 승부로 여겨지며, 해당 지역 팬들 사이에선 매우 의미 있는 전통적 지역 라이벌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중미 최대 라이벌로 양국 관계는 미국-멕시코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인 사실부터 오늘날 마약 카르텔, 멕시코 장벽, 불법 이민자 문제, 경제 보복 문제 등등 갖은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북중미 최강자로 불리는 멕시코가 미국에 상대전적에서 37승으로 우위를 갖는다. 반면 미국은 24승을 거두었다. 과거에 비해 미국 축구가 강호로 성장해 최근의 더비는 매우 치열하다.
2023년 북중미 네이션스리그 4강전에는 양측이 난투극을 벌여 양 팀 합쳐 4명이 퇴장당하고 10장의 경고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충돌이 거세지고 있다.
코스타리카
[ 아즈테카조 ]
두 나라는 과거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 한 나라를 구성했던 역사가 있다. 1935년부터 시작된 두 팀의 맞대결은 지리적 라이벌리티를 근간으로 하지만 사실 오랜시간 멕시코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하지만 2000년대 코스타리카 축구가 크게 성장하면서 멕시코 역시 코스타리카를 긴장할 수 없는 상대로 여기기 시작한다.
특히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2 월드컵 예선에서 지구에서 불패의 안방으로 여겨지는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멕시코가 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경기가 발생한 것으로 코스타리카가 2-1 멕시코에 승리를 거둔다. 코스카리카 언론에서는 이를 ‘아즈테카조’라고 이름 붙인다. 코스타리카는 당시 월드컵 북중미예선 1위로 2002 월드컵에 진출한다.[43]
이후에도 여전히 멕시코가 압도적으로 우세를 가져가지만 실제 경기는 상당히 치열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중미 최대 라이벌로 양국 관계는 미국-멕시코 전쟁을 비롯한 역사적인 사실부터 오늘날 마약 카르텔, 멕시코 장벽, 불법 이민자 문제, 경제 보복 문제 등등 갖은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북중미 최강자로 불리는 멕시코가 미국에 상대전적에서 37승으로 우위를 갖는다. 반면 미국은 24승을 거두었다. 과거에 비해 미국 축구가 강호로 성장해 최근의 더비는 매우 치열하다.
2023년 북중미 네이션스리그 4강전에는 양측이 난투극을 벌여 양 팀 합쳐 4명이 퇴장당하고 10장의 경고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충돌이 거세지고 있다.
캐나다
[ 앵글로 아메리카 더비 ]
앵글로 아메리카 더비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주로 아이스하키에서 최대의 라이벌이자 앙숙 관계이며 상대적으로 축구 관심도가 떨어져 국가적 라이벌 의식을 제외하면 주목도가 높지는 않았다. 캐나다와 미국 간의 매치는 국가 대표 더비보단 MLS의 캐스케이디아 컵이 더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 이어 캐나다 축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축구에서도 서서히 라이벌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두 나라의 축구 라이벌전은 여자 축구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코스타리카
[ 복병 코스타리카 ]
외교적으로는 우호적이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숙명의 라이벌 그 자체. 북중미 최강 멕시코를 위협하는 두 나라는 결국 지역예선이나 북중미 대회에서 서로를 넘어야 하는 숙적이다.
양팀의 상대전적은 42경기 기준으로 미국 20승 코스타리카 16승 무승부 6차례로 미국이 근소하게 앞선다.
하지만 월드컵 북중미 지역 예선에 미국은 복병 코스타리카에 수없이 당하며 휘청거린 기억이 많다. 21세기 이후 월드컵 예선에서 코스타리카는 강호 미국을 승점 자판기 삼아 본선에 진출했는데 예선전적만 2022년까지 8승 2무 4패로 우위에 있다. 하지만 골드컵으로 가면 상황이 정반대인데, 2002 골드컵 결승에서 미국이 코스타리카를 누르고 우승한 것을 포함해 2017년 대회까지 맞대결한 모든 경기에서 미국이 코스타리카에게 승리했다.
러시아
[ 콜드 워 ]
세계 최강대국 경쟁을 벌였던 미소 냉전의 라이벌 의식도 크지만, 스포츠에서는 올림픽과 아이스하키 라이벌 의식이 매우 세다. 미국의 축구 인기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 비해 다소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양 팀의 대결 구도에서 축구도 빠질 수 없으며 전 분야에 걸친 라이벌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축구에서는 러시아가 훨씬 우세하다. A매치 첫대결은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에 있었는데, 소련시절 미국과 2전 1승 1무를 거두었다. 이후 1992년 독립연합국가 시절에 2차례 대결에서는 1승 1패로 주고 받았다. 이는 미국이 오늘날까지 러시아에 거둔 유일한 승리로 현재 러시아 수립 이후에는 5전 2승 3무로 러시아가 우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란
[ 악의 축 ]
미국과 이란의 맞대결은 전통적인 축구 라이벌전이라기보다는, 정치·외교적 갈등이 만들어낸 상징적인 국제 경기로,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축구 경기”라 불린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란과의 관계를 대표하는 용어가 바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다. 이 둘의 경기는 실력보다도 이러한 양국 간의 긴장된 역사와 이념 대립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양국은 팔라비 왕조 시절 우호국이었으나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국교를 단절했고, 이후 수십 년간 외교적 적대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처음으로 맞붙은 경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로, 당시 이란이 2–1로 승리하며 정치적으로도, 스포츠적으로도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경기는 FIFA가 “가장 평화적인 정치적 경기”로 꼽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두 번째 만남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로, 이번엔 미국이 1–0으로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했고, 이란은 탈락했다. 이 경기는 경기 전후로 SNS 검열, 선수들의 시위, 기자회견에서의 정치 질문 등으로 다시 한 번 국제 정치 이슈로 확대되었다.
북중미 강호인 미국과 아시아 최상위권 팀 이란은 전력 상 엇비슷해 매 경기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팬들 사이에서도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하자는 주장과, 반대로 국가적 자존심을 앞세우는 반응이 혼재한다.
결과적으로 이 맞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이념·외교·민족주의가 축구라는 무대를 통해 충돌하는 국제경기로 자리 잡았으며, 향후에도 재대결이 이루어질 때마다 전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나
[ 월드컵 3연전 ]
가나와 미국은 2006-2010-2014 월드컵 3연전을 치르며 악연을 맺는다. 처음 만난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미국은 16강을 위해서 반드시 가나를 이겨야 했으나 1-2로 패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 가나가 이탈리아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오른다.
양팀은 불과 4년만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16강전 녹아웃 스테이지였다. 복수를 꿈꾸던 미국은 혈투끝에 아사모아 기안에게 연장전 결승골을 내주며 1-2로 또 패하며 탈락했다.
두 대회 연속으로 가나에게 떨어졌던 미국은 운명처럼 2014년 조편성에서 다시 만난다. 만남이 확정되자 미국 언론들은 줄기차게 복수의 시간이라 외치며 가나와의 라이벌리티를 부각시켰다. 1차전 경기 미국은 경기시작 30초라는 자국 역사상 최단 시간 골을 갱신한 클린트 뎀프시의 골로 앞서갔고 치열한 승부 끝에 2-1로 승리하며 지난 패배들을 복수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포르투갈마저 밀어내고 독일에 이은 조 2위로 16강에 올랐고 가나는 최하위로 탈락한다.
그러나 두 팀 모두 2018년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면서 잠시 이 악연의 끈이 느슨해진 상태이다. 2022년 월드컵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앵글로 아메리카 더비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주로 아이스하키에서 최대의 라이벌이자 앙숙 관계이며 상대적으로 축구 관심도가 떨어져 국가적 라이벌 의식을 제외하면 주목도가 높지는 않았다. 캐나다와 미국 간의 매치는 국가 대표 더비보단 MLS의 캐스케이디아 컵이 더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 이어 캐나다 축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축구에서도 서서히 라이벌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두 나라의 축구 라이벌전은 여자 축구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두 나라는 과거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 한 나라를 구성했던 역사가 있다. 1935년부터 시작된 두 팀의 맞대결은 지리적 라이벌리티를 근간으로 하지만 사실 오랜시간 멕시코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하지만 2000년대 코스타리카 축구가 크게 성장하면서 멕시코 역시 코스타리카를 긴장할 수 없는 상대로 여기기 시작한다.
특히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2 월드컵 예선에서 지구에서 불패의 안방으로 여겨지는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멕시코가 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경기가 발생한 것으로 코스타리카가 2-1 멕시코에 승리를 거둔다. 코스카리카 언론에서는 이를 ‘아즈테카조’라고 이름 붙인다. 코스타리카는 당시 월드컵 북중미예선 1위로 2002 월드컵에 진출한다.[45]
이후에도 여전히 멕시코가 압도적으로 우세를 가져가지만 실제 경기는 상당히 치열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 아메리카의 숙적 ]
외교적으로는 우호적이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숙명의 라이벌 그 자체. 북중미 최강 멕시코를 위협하는 두 나라는 결국 지역예선이나 북중미 대회에서 서로를 넘어야 하는 숙적이다.
양팀의 상대전적은 42경기 기준으로 미국 20승 코스타리카 16승 무승부 6차례로 미국이 근소하게 앞선다.
하지만 월드컵 북중미 지역 예선에 미국은 복병 코스타리카에 수없이 당하며 휘청거린 기억이 많다. 21세기 이후 월드컵 예선에서 코스타리카는 강호 미국을 승점 자판기 삼아 본선에 진출했는데 예선전적만 2022년까지 8승 2무 4패로 우위에 있다. 하지만 골드컵으로 가면 상황이 정반대인데, 2002 골드컵 결승에서 미국이 코스타리카를 누르고 우승한 것을 포함해 2017년 대회까지 맞대결한 모든 경기에서 미국이 코스타리카에게 승리했다.
온두라스
[ 클라시코 센트럴 아메리카노 ]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의 축구 맞대결은 중미 축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치열한 라이벌전 중 하나로, 흔히 “중미 더비(Centroamericano Clásico)” 또는 “중미 슈퍼클래시코(Superclásico de Centroamérica)”로 불린다.
두 팀은 모두 FIFA 월드컵 본선에 여러 차례 진출한 중미의 강호들로, 북중미(CONCACAF) 내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특히 코스타리카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8강 진출, 온두라스는 2010·2014년 연속 본선 진출을 이루며, 국제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두 대표팀은 센트럴아메리카컵(UNCAF), 골드컵, 월드컵 예선 등에서 매우 자주 만나며, 경기가 열릴 때마다 양국 팬들의 자존심 대결로 큰 관심을 끈다. 스타일 면에서는 코스타리카는 안정적인 수비와 조직력, 온두라스는 강한 피지컬과 투지를 앞세우는 플레이가 특징이며, 이로 인해 매 경기 격렬한 흐름이 펼쳐진다.
A매치 통산 전적은 코스타리카가 근소하게 앞서는 편이지만, 온두라스도 홈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항상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다. 이 라이벌전은 중미 축구의 자존심과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정통 더비로, 지역 내에서 가장 큰 규모와 전통을 자랑한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맞대결은 중미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민감한 라이벌전 중 하나로,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얽힌 “축구 전쟁 더비(Football War Derby)”로 불린다.
이 두 나라의 대표팀은 20세기 중반부터 FIFA 월드컵 예선, CONCACAF 골드컵, 중미컵 등에서 수차례 맞붙었으며, 경기마다 중미 패권을 놓고 격렬한 승부를 펼쳐왔다. 특히 1969년에는 월드컵 예선을 계기로 외교적 갈등이 심화되어, 실제 100시간 전쟁(일명 축구 전쟁)이 발발한 바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이 사건은 경기 자체보다 축구가 양국 간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사례로 유명하다.
A매치 전적은 온두라스가 우세하지만, 엘살바도르도 홈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등 양국 모두에게 이 경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양국 팬들 사이의 분위기 역시 매우 뜨겁고, 일부 경기에서는 관중 간 충돌이나 긴장된 응원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어 항상 주목받는다.
이 더비는 단순한 축구 승패를 넘어, 국가 정체성, 역사, 영토 문제, 이민 갈등까지 얽힌 중미 최대의 라이벌전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까지도 지역 내 가장 뜨겁고 상징적인 대결로 회자된다.
코스타리카
[ 클라시코 센트럴 아메리카노 ]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의 축구 맞대결은 중미 축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치열한 라이벌전 중 하나로, 흔히 “중미 더비(Centroamericano Clásico)” 또는 “중미 슈퍼클래시코(Superclásico de Centroamérica)”로 불린다.
두 팀은 모두 FIFA 월드컵 본선에 여러 차례 진출한 중미의 강호들로, 북중미(CONCACAF) 내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특히 코스타리카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8강 진출, 온두라스는 2010·2014년 연속 본선 진출을 이루며, 국제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두 대표팀은 센트럴아메리카컵(UNCAF), 골드컵, 월드컵 예선 등에서 매우 자주 만나며, 경기가 열릴 때마다 양국 팬들의 자존심 대결로 큰 관심을 끈다. 스타일 면에서는 코스타리카는 안정적인 수비와 조직력, 온두라스는 강한 피지컬과 투지를 앞세우는 플레이가 특징이며, 이로 인해 매 경기 격렬한 흐름이 펼쳐진다.
A매치 통산 전적은 코스타리카가 근소하게 앞서는 편이지만, 온두라스도 홈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항상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다. 이 라이벌전은 중미 축구의 자존심과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정통 더비로, 지역 내에서 가장 큰 규모와 전통을 자랑한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맞대결은 중미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민감한 라이벌전 중 하나로,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얽힌 “축구 전쟁 더비(Football War Derby)”로 불린다.
이 두 나라의 대표팀은 20세기 중반부터 FIFA 월드컵 예선, CONCACAF 골드컵, 중미컵 등에서 수차례 맞붙었으며, 경기마다 중미 패권을 놓고 격렬한 승부를 펼쳐왔다. 특히 1969년에는 월드컵 예선을 계기로 외교적 갈등이 심화되어, 실제 100시간 전쟁(일명 축구 전쟁)이 발발한 바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이 사건은 경기 자체보다 축구가 양국 간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사례로 유명하다.
A매치 전적은 온두라스가 우세하지만, 엘살바도르도 홈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등 양국 모두에게 이 경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양국 팬들 사이의 분위기 역시 매우 뜨겁고, 일부 경기에서는 관중 간 충돌이나 긴장된 응원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어 항상 주목받는다.
이 더비는 단순한 축구 승패를 넘어, 국가 정체성, 역사, 영토 문제, 이민 갈등까지 얽힌 중미 최대의 라이벌전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까지도 지역 내 가장 뜨겁고 상징적인 대결로 회자된다.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축구 맞대결은 중남미 접경 지역의 문화·역사적 교류 속에서 형성된 지리적 라이벌전으로, 종종 지협 더비(Isthmus Derby) 또는 클라시코 델 다리엔(Clásico del Darién)으로 불린다. 두 나라는 다리엔 지협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이웃 국가로, 오랜 인접 관계와 상호 이주·문화 교류가 있어 국가대표팀의 경기에서도 자존심 대결이 강하게 작용한다.
과거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일부였으며, 1903년 파나마 운하 건설을 하고자 했던 미국의 지원으로 분리 독립한 역사적 배경 탓에, 두 나라 사이에는 민족적·정치적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는 축구에서도 잠재적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축구 전력에서는 콜롬비아가 FIFA 월드컵 본선 다수 진출, 코파 아메리카 우승 경험 등 훨씬 앞서 있는 강호이며, A매치 전적에서도 콜롬비아가 확실히 우세하다. 그러나 파나마는 2010년대 이후 급격히 성장하며 2018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북중미 강호로 떠오르면서 이 라이벌전의 무게도 커졌다.
콜롬비아계 이민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파나마 사회 구조, 그리고 파나마계 인물들도 콜롬비아 축구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어 상호 교차된 정체성이 이 경기의 배경에 작용한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경기를 통해 중남미 경계 지역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확인하려는 열망이 강하다.
따라서 이 맞대결은 단순한 전력 차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역사, 정치, 지역성, 이민, 축구 발전 속도가 엇갈리는 두 나라 간의 복합적인 상징 대결로 평가받는다.
자메이카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어를 사용하며, 흑인 아프리카계 중심의 문화가 강하다. 반면 아이티는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사용하는 독립 혁명의 상징 국가로, 프랑스 식민 지배 이후 라틴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처럼 두 나라는 역사와 문화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축구에서는 모두 카리브 지역의 강호로 자주 맞붙는다.
A매치 전적에서는 자메이카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으나, 아이티도 2015 골드컵에서 자메이카를 꺾은 바 있어 결코 약세는 아니다. 골드컵, 카리브컵, 북중미 예선 등에서 꾸준히 조우하며, 카리브해 패권을 두고 자존심 경쟁을 벌여왔다.
양국 모두 사회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크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기인 만큼, 팬들의 응원과 분위기도 매우 뜨겁다. 이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카리브 지역 내 대표성과 민족적 자존심이 충돌하는 더비로 자리잡고 있다.
자메이카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어를 사용하며, 흑인 아프리카계 중심의 문화가 강하다. 반면 아이티는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사용하는 독립 혁명의 상징 국가로, 프랑스 식민 지배 이후 라틴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처럼 두 나라는 역사와 문화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축구에서는 모두 카리브 지역의 강호로 자주 맞붙는다.
A매치 전적에서는 자메이카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으나, 아이티도 2015 골드컵에서 자메이카를 꺾은 바 있어 결코 약세는 아니다. 골드컵, 카리브컵, 북중미 예선 등에서 꾸준히 조우하며, 카리브해 패권을 두고 자존심 경쟁을 벌여왔다.
양국 모두 사회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크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기인 만큼, 팬들의 응원과 분위기도 매우 뜨겁다. 이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카리브 지역 내 대표성과 민족적 자존심이 충돌하는 더비로 자리잡고 있다.
쿠바
[ 카리브 제도 더비 ]
자메이카와 쿠바의 맞대결은 카리브해 지역의 대표적인 축구 라이벌전으로, 종종 “카리브 제도 더비”로 불린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영국과 스페인 식민지 배경, 영어권과 스페인어권 문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등에서 큰 차이를 보여 축구에서도 상징적인 대결이 된다.
A매치 전적은 자메이카가 우세하며, 특히 골드컵이나 카리브컵 등에서 자주 격돌한다. 자메이카는 유럽파 위주의 스피디한 공격 축구가 특징인 반면, 쿠바는 국내파 중심의 조직력과 수비 위주의 전술을 주로 구사한다.
정치·외교 노선이 극명히 다른 두 나라의 경기는 이념적 대립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쿠바는 체제상 해외 진출이 제한돼 전력에서 불리하지만, 간혹 이변을 일으키는 끈질긴 경기력으로 주목받는다.
이 맞대결은 단순한 지역 경기 그 이상으로, 카리브 축구의 자존심과 정체성이 맞부딪히는 더비로 평가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 캐리비안 클래식 ]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맞대결은 카리브해 축구를 대표하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 있는 라이벌전으로, 흔히 “카리브 클래식(Caribbean Classic)”, 또는 “카리브 슈퍼 더비”로 불린다. 두 나라는 역사, 문화, 스포츠 전통 모두에서 지역 내 선두를 다퉈 왔으며, 축구에서도 자존심이 강하게 충돌한다.
양국 모두 영국 식민지 출신으로 영어권 문화와 축구 스타일을 공유하지만, 서로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넘어서야 할 이웃으로 인식한다. 특히 1970~90년대에는 카리브컵(이후 디지셀컵) 등에서 거의 매 대회마다 맞붙으며 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전력상으로는 시대에 따라 우열이 갈리며 팽팽한 승부가 이어져 왔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2006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국, 자메이카는 1998년 본선 진출국으로, 모두 북중미에서 월드컵 경험이 있는 강호다.
이 맞대결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카리브해 축구의 정체성, 리더십, 자존심이 걸린 빅매치로 인식된다. 양국 팬들의 응원 열기도 높고, 각국 언론 역시 큰 관심을 보인다. A매치뿐 아니라 청소년·여자대표팀에서도 자주 충돌하는 등 전 범위에서 라이벌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자메이카와 쿠바의 맞대결은 카리브해 지역의 대표적인 축구 라이벌전으로, 종종 “카리브 제도 더비”로 불린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영국과 스페인 식민지 배경, 영어권과 스페인어권 문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등에서 큰 차이를 보여 축구에서도 상징적인 대결이 된다.
A매치 전적은 자메이카가 우세하며, 특히 골드컵이나 카리브컵 등에서 자주 격돌한다. 자메이카는 유럽파 위주의 스피디한 공격 축구가 특징인 반면, 쿠바는 국내파 중심의 조직력과 수비 위주의 전술을 주로 구사한다.
정치·외교 노선이 극명히 다른 두 나라의 경기는 이념적 대립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쿠바는 체제상 해외 진출이 제한돼 전력에서 불리하지만, 간혹 이변을 일으키는 끈질긴 경기력으로 주목받는다.
이 맞대결은 단순한 지역 경기 그 이상으로, 카리브 축구의 자존심과 정체성이 맞부딪히는 더비로 평가된다.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맞대결은 카리브해 축구를 대표하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 있는 라이벌전으로, 흔히 “카리브 클래식(Caribbean Classic)”, 또는 “카리브 슈퍼 더비”로 불린다. 두 나라는 역사, 문화, 스포츠 전통 모두에서 지역 내 선두를 다퉈 왔으며, 축구에서도 자존심이 강하게 충돌한다.
양국 모두 영국 식민지 출신으로 영어권 문화와 축구 스타일을 공유하지만, 서로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넘어서야 할 이웃으로 인식한다. 특히 1970~90년대에는 카리브컵(이후 디지셀컵) 등에서 거의 매 대회마다 맞붙으며 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전력상으로는 시대에 따라 우열이 갈리며 팽팽한 승부가 이어져 왔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2006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국, 자메이카는 1998년 본선 진출국으로, 모두 북중미에서 월드컵 경험이 있는 강호다.
이 맞대결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카리브해 축구의 정체성, 리더십, 자존심이 걸린 빅매치로 인식된다. 양국 팬들의 응원 열기도 높고, 각국 언론 역시 큰 관심을 보인다. A매치뿐 아니라 청소년·여자대표팀에서도 자주 충돌하는 등 전 범위에서 라이벌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버진 아일랜드 더비(Virgin Islands Derby)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U.S. Virgin Islands) 간에 벌어지는 축구 국가대표팀 간 라이벌전이다. 이 두 나라는 카리브해 북동부의 인접한 섬들로, 지리적 근접성과 식민지 역사, 문화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각각 영국과 미국의 해외 영토로 다른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 더비는 규모나 전력 면에서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는 않지만, 두 팀 모두 FIFA 회원국이며 CONCACAF 소속으로, 지역 예선이나 카리브컵 등에서 자주 맞붙는다. 양국 모두 축구 인프라가 열악하고 FIFA 랭킹도 낮지만, 서로를 상대로는 자존심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다.
전력상으로는 시대에 따라 팽팽하며, 양 팀 모두 승리가 흔치 않기에 맞대결은 귀중한 승점 획득 기회로 여겨진다. 특히 이 경기는 버진아일랜드 내 축구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상징적인 이벤트로, 지역 언론과 팬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ABC 제도 더비(ABC Islands Derby)는 네덜란드령 카리브 3개국인 아루바(Aruba), 보네르(Bonaire), 퀴라소(Curaçao) 간에 펼쳐지는 축구 라이벌전을 일컫는 용어로, 카리브 지역에서도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소규모 국가들 간의 대결로 주목받는다.
이들 세 나라는 모두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체로, 과거엔 함께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를 이루었으나 2010년 해체 이후 각각 독립적인 축구대표팀으로 FIFA 또는 CONCACAF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퀴라소는 FIFA 회원국이며, 아루바도 FIFA 회원국이지만 보네르는 아직 정회원국이 아닌 지역 협회 수준의 활동을 하고 있다.
세 나라 모두 면적과 인구는 작지만, 상대전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경기를 보여준다. 역사적 연대감과 함께 지역 내 우열, 독립 정체성, 네덜란드와의 관계 인식 차이 등으로 인해 경기는 항상 자존심이 걸린 승부가 된다.
특히 퀴라소는 최근 몇 년간 CONCACAF 골드컵과 네이션스리그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며 ABC제도 내에서는 가장 전력이 앞서고 있다. 하지만 아루바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퀴라소에 도전하고 있으며, 보네르 역시 리그와 유소년 시스템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 더비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작은 섬나라들이 보여주는 지역 축구의 열정과 정체성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과거 호주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 속했던 시절 오세아니아 최강자 자리와 월드컵 출전권 등을 놓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호주가 아시아 연맹으로 넘어간 뒤에도 여전히 이 둘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피지
[ 뉴질랜드-피지 더비 ]
[1] 다만 전쟁 지점인 포클랜드 제도와 아르헨티나는 매우 가깝다.[2] 다만 펠레-마라도나와 역시 시대가 달라 직접적으로 맞붙은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양 선수의 월드컵 성적 등의 비교가 주로 이루어진다. 오히려 메시-호날두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점에서 훨씬 비교점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3] 독일어로 Derby des Hasses, 네덜란드에서는 De Derby van de Haat라고 부른다.[4] 지리적으로도 매우 떨어진 나라인데 무슨 연관성인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당시 유럽 왕실들이 결혼과 종교 문제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그렇다. 자세한 사항은 네덜란드 독립 전쟁 참고.[5] 여기서는 지역 라이벌리티 연관이 더 큰 동유럽(발칸반도) 지역으로 분류되어져 있다.[6] 포르투갈은 제외[7] 지리적으로도 매우 떨어진 나라인데 무슨 연관성인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당시 유럽 왕실들이 결혼과 종교 문제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그렇다. 자세한 사항은 네덜란드 독립 전쟁 참고.[8]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해설자 한준희는 독일-이탈리아 경기를 ‘클래식 매치’라 불렀다.[9] 한국에서는 추축국 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10] 승부차기는 원래 무승부로 기록된다.[11] 독일어로 Derby des Hasses, 네덜란드에서는 De Derby van de Haat라고 부른다.[12]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해설자 한준희는 독일-이탈리아 경기를 ‘클래식 매치’라 불렀다.[13] 한국에서는 추축국 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14] 승부차기는 원래 무승부로 기록된다.[15] 이 때문에 월드컵 개최권을 앙숙한테 뺏겼다.[16] 하필 세르비아의 상징도 독수리이다. 이쪽은 하얀 독수리인데 알바니아는 검은 독수리이다.[17] K.u.K.는 독일어 표현인 “kaiserlich und königlich”의 약자로 “황제 겸 국왕이 통치하는” 제국이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명칭에서 따왔다.[18] 루마니아어로는 두너레아(Dunărea), 헝가리어로는 두너(Duna)이다.[19] K.u.K.는 독일어 표현인 “kaiserlich und königlich”의 약자로 “황제 겸 국왕이 통치하는” 제국이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명칭에서 따왔다.[20] 이 경기 다음날이 그리스 독립기념일이었다.[21] 루마니아어로는 두너레아(Dunărea), 헝가리어로는 두너(Duna)이다.[22] 하필 세르비아의 상징도 독수리이다. 이쪽은 하얀 독수리인데 알바니아는 검은 독수리이다.[23] 이스라엘-중동, 세르비아-코소보, 스페인-지브롤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만 아시아축구연맹은 그다지 이 권고를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북한, 중국-대만, 인도-파키스탄, 이란-이라크 등은 그대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24] 이스라엘-중동, 세르비아-코소보, 스페인-지브롤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만 아시아축구연맹은 그다지 이 권고를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북한, 중국-대만, 인도-파키스탄, 이란-이라크 등은 그대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25] 카자흐스탄은 2002년 월드컵 예선 이후 아시아축구연맹에서 유럽축구연맹으로 넘어갔다.[26] 이 경기 다음날이 그리스 독립기념일이었다.[27] 이 때문에 월드컵 개최권을 앙숙한테 뺏겼다.[28]위키백과 링크[29] 표면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 북한한테 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30]남아공 월드컵 예선 에서 북한 홈 경기는 중국에서 진행했다.[31] 방송 중계를 핑계로 몇십억을 한국 방송사로 부터 받았지만 추후 불가능 하다고 일방적 으로 통보했다. 경기 내용은 한국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직관하다 무전기를 통해 호텔로 전달, 호텔에서 팩스로 한국에 알리는 괴상한 방식으로 알렸다.[32] 서아시아와 정치적 대립으로 중앙아시아로 넘어온 이란의 경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33] 8년 가까이 총력전을 벌였을 정도로 박터지게 싸웠다.[34] 카자흐스탄은 2002년 월드컵 예선 이후 아시아축구연맹에서 유럽축구연맹으로 넘어갔다.[35] 8년 가까이 총력전을 벌였을 정도로 박터지게 싸웠다.[36] 다만 이집트는 마그레브 문화권에 속하지 않는다. 고대부터 나일강 유역에 독자적인 문화권을 구축해왔다. 같은 북아프리카지만 서쪽 끝 모로코에서 동쪽 끝 이집트만해도 지중해의 끝과 끝이기 때문에 같은 문화권으로 이어지기 상당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종적으로 이어지는 나일강을 따라 고대 누비아의 영향권이었던 수단과 문화적으로 이어져있다. 다만 오늘날 축구계에서 수단은 동아프리카 지역에 소속되어 있다.[37] 승부차기에서 코트디부아르가 2차례 승리했다.[38] 서아프리카 지역의 볶음밥 비슷한 요리의 이름이다.[39] 서아프리카 지역의 볶음밥 비슷한 요리의 이름이다.[40] 승부차기에서 코트디부아르가 2차례 승리했다.[41] 남아프리카 축구협회(COSAFA)에서 유래했다.[42] 남아프리카 축구협회(COSAFA)에서 유래했다.[43] 코스타리카 역사상 첫 월드컵 진출이다.[44] 다만 일반적으로 클라시코 센트럴 아메리카노는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의 맞대결로 본다.[45] 코스타리카 역사상 첫 월드컵 진출이다.[46] 다만 소속은 아시아축구연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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