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06 14:09:54

J리그

제이리그에서 넘어옴

파일:일본축구협회 로고.svg
일본의 축구 대회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2px"
프로팀 참가 대회
파일:J리그 로고.svg 파일:천황배 로고.svg 파일:르방컵 로고 세로.svg 파일:후지필름 슈퍼컵 로고 세로.svg
J리그 천황배 YBC 르방컵 후지필름 슈퍼컵
프로팀 미참가 대회
파일:일본 풋볼 리그 로고.svg 파일:jrcl.png 파일:전국 사회인 축구 선수권 대회 2024시즌 사진.png 파일:전국 지역 축구 챔피언스 리그 2024시즌 사진.png
일본 풋볼 리그 일본 지역 축구 리그 전국 사회인 축구 선수권 대회 전국 지역 축구 챔피언스 리그
}}}}}}}}} ||
J리그
파일:J리그 로고.sv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정식 명칭 日本プロサッカーリーグ
일본프로축구리그
영문 명칭 J.League
국가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이사장 노노무라 요시카즈
창설 1993년 (J1리그)
1999년 (J2리그)
2014년 (J3리그)
구성 J1리그 (1부, 20개)
J2리그 (2부, 20개)
J3리그 (3부, 20개)
최근 우승 구단 J1: 비셀 고베
J2: 시미즈 S펄스
J3: 오미야 아르디자
최다 우승 구단 J1: 가시마 앤틀러스(8회)
J2: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3회)
J3: 블라우블리츠 아키타(2회)
타이틀 스폰서 메이지 야스다 생명
AFC 리그 랭킹 2위 #
웹사이트 파일:J리그 로고.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라인 아이콘.svg

1. 개요2. 특징3. 지역별 구단 현황4. 역사5. 로고 & 마스코트6. 리그 체계7. 승강제8. 인기9. 경기장10. 역대 우승 구단11. 시상12. 외국인 선수 제도13. 시민 구단14. 각 구단별 기업과의 관계15. 인기 구단과 서포터즈16. 키트 서플라이어 현황 (2023)17. 클럽 명칭에 대한 고찰18. J리그 백년구상 클럽19. 콜라보레이션20. 한국의 인식
20.1. AFC 챔피언스 리그 역사20.2. 한국 선수의 J리그 진출
2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메이지 야스다 생명 J리그 30주년 공식 영상

1993년에 출범한 일본의 프로 축구 리그로 1965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최상위 리그이자 실업 리그인 일본 사커 리그(JSL)을 대체했다. 정식 명칭은 "일본 프로 축구 리그"이며 J리그는 약칭이다. 주로 J리그라 하면 1부 리그로 받아들이곤 하는데 정식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J리그는 프로 축구 리그 전체를 통칭하는 명칭으로 1부 리그는 J1리그, 2부 리그는 J2리그, 3부 리그는 J3리그로 구분한다. 1993년 단일 리그로 출범, 1999년 2부 리그인 J리그 디비전 2(현재의 J2리그)를 창설해 승강제를 도입했고, 2014년 J3리그를 출범시켜 3개 리그 체제를 확립했다. J리그는 검은색, J1리그는 빨강색, J2리그는 녹색, J3리그는 파란색을 사용한다.

2. 특징

브라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도 브라질 선수가 대부분이었고 감독도 브라질 출신이 많았다.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가시마 고문 및 총감독을 거쳐 후에 일본 대표팀 지휘봉까지 잡은 바 있는 하얀 펠레 지쿠가 이 계열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적인 명장인 아스날 FC아르센 벵거도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감독을 지낸 바 있으며, 초창기에는 게리 리네커같은 왕년의 스타를 영입하는 등 일본의 부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외의 유명 선수들을 출범 초기부터 데려왔다.

2005년에서 2008년까지 4년간 일본에서 FIFA 클럽 월드컵을 개최함으로서 J리그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할 필요도 없이 바로 클럽 월드컵에 직행했다. 이는 개최국 어드벤티지로 2009년과 2010년 대회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렸는데 대륙 클럽 대항전 1위 팀 + UAE 리그 우승팀 알 알리가 출전했다.(포항 스틸러스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자격으로 아시아 대표로 출전) 더욱이 2008년 감바 오사카와 2007년 우라와 레즈의 경우는 ACL 우승 자격으로 출전했는데, 이 덕에 개최국 티켓 1장은 당해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팀들에게 돌아갔다.

자금력도 아시아에서 높은 편이라 다른 아시아 리그에서 뛰는 좋은 선수들을 많이 사들여 보유하는데다 풋볼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에서 집중 조명하는지라 유럽 클럽들의 스카우터들이 항상 주목하는 리그이다. 정작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은 적은 편이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일본 선수들의 유럽(특히 독일) 진출이 상당히 늘었다. 2010년대에는 분데스리가 위주로 일본 스타 플레이어들이 헐값에 무분별하게 유출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일본 선수들이 유럽에서 실적을 쌓는 한편 벨기에 신트트라위던 VV와 같이 유럽 중견 리그에 일본 등 아시아 자본이 투입된 클럽이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2020년대에는 이적료가 상당히 올라간 편이다. 현재도 아시아에서 가장 유럽 진출 비중이 높은 리그로 꼽힌다. 유럽 스카우터에 따르면 J리그 선수들이 J리그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과 테크니컬함을 이미 축구 시스템적으로 익혀 오기에 유럽 리그에 진출해서도 적응하기가 편하고 피지컬적인 의문점도 포스테코글루의 셀틱 감독 시절 일본인 선수들을 주축으로 우승하면서 대부분 해소됐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아시아 리그에 비해 선수들의 이적료가 월등히 싸고 J리그 선수들도 기본적으로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이 크다 보니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져 해외로 진출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1]

J리그 득점왕 출신 외국인 선수들은 중동의 오일 머니를 쫓아 떠나버리는 상황도 꽤 있었다.[2]

시작부터 브라질 축구를 받아들여 오밀조밀한 패스 플레이가 발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들진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K리그보단 피지컬과 압박이 떨어져 J리그에 있다 K리그로 온 선수들은 피지컬적인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3] 특히 어린 나이에 J리그에 진출한 한국 유망주들은 C급 계약으로 박봉[4]에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타향살이에 힘겨워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혀 다른 리그 스타일에 적응 못해 헤매는 일을 겪곤 한다.

선수 자원도 풍부하고, 동아시아권에서 자금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잘나갈 때의 중국 슈퍼 리그사우디아라비아 리그 정도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자본력에 더해 아시아 최고 수준의 관중 동원력으로 보장되는 입장 수익과 높은 중계권료로 탄탄한 편이다.

게임 FMFIFA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았던 리그이기도 한데, 코나미의 독점 계약 때문에 J리그는 위닝일레븐[5] 외 타 게임에는 나오지 않았으나[6] FIFA 17부터 J1리그가 정식 수록되었는데 오래 못가 2022년부터 제외되었다. 반면 eFootball™에는 플랫폼 관계 없이 J1, J2가 수록됐고 FM은 2024부터 정식 라이선스를 받아 J3까지 전부 수록됐다.

2011년에는 도호쿠 대지진으로 리그가 한달 반 동안 중단되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가시마 앤틀러스를 비롯한 팀들이 홈경기를 전면 연기했으며, 가시마는 지진으로 경기장이 심하게 파손되어 복구 공사에만 3달 가까이 걸린다는 결과에 약 3달 동안의 임시 해산을 해버려 소속된 해외 선수 및 코치진들은 죄다 자국으로 출국했다. 그밖에 베갈타 센다이와 여러 팀들도 3, 4월 경기가 불투명해졌다. 또, 이것 때문에 원래 1999년 이후 12년만에 한 번 더 초청국 자격으로 일본 대표팀이 코파 아메리카에 특별 참가하기로 되었으나 무산되어 이 기간 동안 지진으로 연기된 경기를 치렀다.

2020 시즌부터 VAR 시스템을 공식 도입했다.[7] 현재는 정규 시즌은 J1리그만 적용 대상이 되며, 이외에 J2 승격 플레이오프와 J리그컵 상위 토너먼트에 적용된다.

2021 시즌부터는 리그 공식 폰트를 도입해 유니폼 등번호, 선수명 표기에 사용하게 하였으나 2024년에 선택 사항으로 바꾸었다. 2024 시즌에는 가시와 레이솔 등 소수의 클럽만이 리그 폰트를 사용하고, 중계방송 등 리그 차원의 미디어는 계속 사용한다.
파일:17895.jpg

2026년부터 시즌 시기를 기존의 춘추제에서 유럽에 맞춘 추춘제(秋春制)로 변경한다. J리그 창설 당시 이전의 최상위 리그 일본 사커 리그(JSL)의 추춘제를 춘추제로 바꾼 이후 34년만의 개편으로, 이전의 여러 번에 걸친 개편 시도가 난관에 부딪혔으나 일본 선수의 유럽 진출이 늘어나고 AFC 챔피언스 리그 또한 2023년부터 추춘제로 회귀한 영향으로 추진력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받는 도호쿠, 홋카이도 일대 클럽[8]에게는 홈경기 일정 조정 외에 실내 훈련장 시설 등의 지원을 할 계획이다.

다만 겨울이 서유럽에 비해 추운 일본인 만큼 비교적 긴 2개월의 윈터브레이크를 예정하고 있으며, 이와테, 후쿠시마 등에 대해서는 3월 4주차에야 홈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여름 휴식기는 6, 7월 2개월로, 7월의 프리 시즌을 거쳐 여전히 더운 8월 초에 개막하는 것이 추춘제의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비판도 있다. 시즌을 변경하는 2026년 상반기에는 J1, J2, J3 각각에 대해 승강과 무관한 별도 대회를 진행할 계획. 이외에 J3와 승강제가 구축된 일본 풋볼 리그(JFL) 등 아마추어 리그에 대해서는 개편 여부가 구체화되지 않았다.

3. 지역별 구단 현황

소속 리그는 2025년 기준이며 이 중 도도부현 전체를 홈타운으로 지정한 구단은 ○로 표기한다. 지역 구분은 일본축구협회 산하 지역협회의 관할 구역을 따른다.

4. 역사

1921년에 시작한 천황배와 같이 축구 환경이 아예 자리잡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고 베를린 올림픽 8강 신화 등 나름 축구사적으로 업적도 있으나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일본에서 축구는 야구스모 등에 밀리는 마이너 스포츠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4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올림픽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코치로 영입한 데트마어 크라머[22]가 올림픽 8강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이후 '대표팀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리그가 필요하다'고 조언하자 이에 1965년 일본 사커 리그(JSL)가 출범했다.

이후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 축구의 인기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야구, 스모 등의 인기가 압도적이었고 일본 국가대표도 FIFA 월드컵은 커녕, AFC 아시안컵에도 진출하지 못하고 부진하며 일본인들의 축구 관심은 자연스레 식어갔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리그 관계자들이 다시금 축구 열기에 불을 붙여줄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와중에 FIFAFIFA 월드컵 최초의 아시아 개최지로 일본이 어떻겠냐는 의향을 일본 축구협회에 전하자, 일본이 이를 받아들여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본축구협회는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일본 축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JSL을 프로 리그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일본 사커 리그를 1992년 프로 리그로 전환핫 것이 일본 프로 사커 리그이고 약칭으로 계획 설립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가칭으로 사용한 'J리그'를 정식으로 채용했다.

아래는 J리그 이름으로 처음 열린 대회인 1992 나비스코컵 참가 10팀이다. 이 팀들은 다음해에 시작한 J리그 원년에 그대로 참여해 원년 10구단으로 기록되었다.
1992 J리그 나비스코 리그컵 구성 멤버
JSL 1부 우승 JSL 1부 2위 JSL 1부 5위 JSL 1부 6위 JSL 1부 7위
베르디 가와사키 요코하마 마리노스 감바 오사카 산프레체 히로시마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舊 요미우리 SC 舊 닛산 자동차 舊 마쓰시타 전기 舊 마쯔다 舊 JR 후루카와
JSL 1부 8위 JSL 1부 11위 JSL 1부 12위 JSL 2부 2위 신생팀
요코하마 플뤼겔스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가시마 앤틀러스 시미즈 S펄스
舊 ANA 클럽 舊 미쓰비시 자동차 舊 토요타 자동차 舊 스미토모 공업 시민구단

초기에는 단일 디비전으로 운영하면서 리그컵야마자키나비스코컵(현 YBC 르방컵)을 병행하는 형태였으나, 1999년 2부, 2014년에 3부가 신설되어 승강제를 도입했다. 각 디비전의 명칭은 초기에는 J리그 디비전 1, 2였으나 2015년 브랜드 리뉴얼과 함께 J1, J2리그로 변경한 뒤 J3리그를 신설했다.

5. 로고 & 마스코트

파일:J리그 로고.svg 파일:J1리그 엠블럼.svg 파일:J2리그 엠블럼.svg 파일:J3리그 엠블럼.svg
파일:J리그 워드마크.svg 파일:J1리그 로고(가로형).svg 파일:J2리그 로고(가로형).svg 파일:J3리그 로고(가로형).svg
<rowcolor=#fff> J리그 로고 J1리그 로고 J2리그 로고 J3리그 로고
파일:J리그 20주년 기념로고.svg 파일:J리그 30주년 기념로고.svg
파일:J리그 마스코트(미스터피치).svg
파일:J리그 마스코트(J리그킹).svg
<rowcolor=#fff> 20주년(2013년)기념 로고 30주년(2023년)기념 로고 마스코트 미스터피치 마스코트 J리그킹

6. 리그 체계

일본의 축구 리그
구분 명칭
1부 J1리그
2부 J2리그
3부 J3리그
4부 JFL
단계 구분 리그
1 프로 J1리그
20개 구단
2 프로 J2리그
20개 구단
3 프로 J3리그
20개 구단
4 세미프로 JFL
16개 구단
5/6 아마추어 9개의 지역리그
132개 구단
6/7이하 아마추어 도도부현 리그

최상위 리그는 보통 J리그라 불리는 J1리그로, 총 20개 구단이 있으며, 하위 리그로 J2리그(20팀)와 J3리그(20팀)가 있다. 아마추어 리그 중 최상위 리그인 JFL과도 승강제를 실시한다. JFL의 아래에는 일본 전국을 9개 지역으로 나눈 지역 리그로 5~6부 리그를 구성하며[23], 그 아래에 수십 개의 도도부현 리그가 존재한다.

출범 후 2004년까지는(1996년 제외)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로 나누어 각각에 우승 구단이 챔피언 결정전을 치러 우승을 가렸다.(한 구단이 전후기 리그 모두 우승하면 종합 우승으로 챔피언 결정전은 치르지 않음)

J1은 2005년부터 총 34라운드 단일 리그로 경기하며 별도에 플레이오프 없이 리그 1위가 우승을 차지한다. J1 하위 두 팀과 J2 상위 두 팀이 자동으로 자리를 바꾸며, J1 16위는 최초에는 J2 3위팀과, 2012년부터 J2를 22팀 체제로 확대하면서 잉글랜드 EFL 챔피언십과 같이 J2 3~6위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강이 이루어졌다. 이후 2018년에 J1 16위와 J2 승격 플레이오프 승리팀 사이의 승강전을 재도입했다.

J2는 J3 창설 전인 2012년 JFL과 최하위 자동 강등, 21위 승강 플레이오프를 도입했으며 J3 창설 후에는 대상이 J3로 바뀌었다. 다만 과거의 JFL과 현재의 J3는 상위 디비전의 라이선스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강등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J3는 2023년부터 JFL과의 승강제를 시행한다.

리그 이외의 대회로는 J리그 클럽끼리 녹아웃 토너먼트로 치르는 J리그컵[24],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 가능한 일본축구협회 관할의 천황배 JFA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 리그 우승팀과 천황배 우승팀이 겨루는 후지 제록스 슈퍼컵, 남미의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팀을 초청해 르방컵 우승팀과 겨루는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 팬들의 투표로 팀을 편성해 대결하는 올스타전이 있다.

2015년에 전·후기 리그제를 부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계획안에 따르면 2004년 전까지 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누적 승점이 가장 높은 팀과 전·후기 우승팀 및 준우승팀이 챔피언 결정전에 참가하는 방식. J리그의 인기가 날로 시들해지자 흥행을 위해 포스트시즌 부활을 검토했는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럼에도 결국 JFA 이사회에서 확정되었다. 해당 기사(일어)

그러나 영국 회사 DAZN에 거액의 중계권을 판매하면서 이러한 제도가 어렵다는 말이 많아 2017 시즌부터 단일 리그제로 회귀했고 플레이오프 또한 폐지했다. 2016 시즌 우승팀 가시마 앤틀러스는 전기 리그에서 우승했지만 후기 리그에선 11위로 부진했는데 종합 승점이 3위임에도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며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되었다.

2020 시즌은 코로나19 사태로 리그를 잠시 중단하면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 결국 승격제도는 유지하지만, 강등제도를 한시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덕분에 우승 경쟁이 힘든 팀들은 신인 선수를 대거 기용하는 등 실험적인 경기 운영을 해볼 수 있었다. 대신 2021 시즌 후 강등팀이 4개로 늘어나는 힘든 시즌이 되었다.

2024 시즌부터 J1리그, J2리그, J3리그 모두 20개의 구단이 참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이에 따라 승강제 방식 역시 바뀌었다.

7. 승강제

J리그에서는 승강제가 J2리그의 창설, J3리그의 창설 등으로 여러번 바뀌어 왔다.
특히 2022년까지는 J3리그의 팀 수가 정해지지 않았고 코로나19 등의 변수로 팬들도 헷갈릴 정도로 변화가 자주 있었는데 2023년부터 J1리그부터 J3리그까지 20팀으로 고정되면서 다시 한 번 승강제 변화가 이뤄졌다.
가장 큰 변화는 J3리그 팀의 JFL 강등이 시작된 것. 그리고 J1리그부터 J3리그까지는 상위 리그의 하위권 팀과 하위 리그의 상위권 팀의 교체전이 없어졌고 J3리그의 19위 팀과 JFL의 2위 팀만이 승강전을 치른다.

NPB처럼 상위 팀에게 주어지는 어드밴티지가 엄청나다. 플레이오프에서 높은 순위의 팀은 자신들의 홈 경기장에서 단판으로 경기를 치르는데 무승부만 해도 승리로 처리된다. 단 J3리그와 JFL의 승강전은 예외.[25]

승강룰은 다음과 같다.
  • J1↔J2
    J2의 20팀 중 리그 최종 순위 1, 2위는 자동으로 승격하며 J1의 18위, 19위, 20위 세 팀들은 자동으로 강등된다. J2의 3~6위 팀들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우승팀은 승격하게 된다. J1라이선스를 보유하지 못한 팀은 승격할 수 없고 승격 플레이오프에도 참가하지 못한다.[26]
  • J2↔J3
    J3의 20팀 중 리그 최종 순위 1, 2위는 자동으로 승격하며 J2의 18위, 19위, 20위 세 팀들은 자동으로 강등된다. J3의 3~6위 팀들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우승팀은 승격하게 된다. J2 라이선스를 보유하지 못한 팀과 U-23팀은 승격할 수 없다.[27]
  • J3↔JFL
    JFL의 리그 최종 순위 1위는 자동으로 승격하며, 2위는 승강결정전을 거친다. J3 20위는 승격팀이 JFL 1위일 경우 자동 강등, 1위 없이 2위만 있으면 승강결정전을 펼친다. J3 19위는 JFL에서 승격 대상 팀이 2팀일 경우 JFL 2위와 승강결정전을 펼친다. J3 라이선스를 보유하지 못한 팀은 승격할 수 없다.[28]

각 플레이오프 경기는 리그 일정 종료 후에 단판으로 리그 순위가 높은 팀, 상위 리그 팀의 홈 경기장에서 개최하며, 무승부일 경우 연장전이나 승부차기 없이 리그 순위가 높은 팀, 상위 리그 팀의 승리로 취급한다. 단 J3리그의 19위 팀과 JFL 2위 팀과의 교체전은 양 팀의 홈 경기장에서 모두 치러진다.[29] 1승 1패일 경우 득실차가 높은 팀이 잔류/승격하며 2경기 모두 무승부일 경우 연장전과 승부차기가 이어진다.[30]

8. 인기

일본에서 프로야구 다음으로 인기있는 스포츠로, 연간 900만 명이 관람한다.(J1~J3리그 총합) 2015년 기준 아시아 스포츠 리그에서 평균 관중수 6위(경기당 17,803명)를 기록했는데, 인도 프리미어 리그(31,750명 / 크리켓), 일본프로야구(28,248명 / 야구), 인도 슈퍼 리그(27,111명 / 축구), 중국 슈퍼 리그(22,193명 / 축구), 방글라데시 프리미어 리그(21,824명 / 크리켓)에 이은 순위다. 전세계 기준으로 J리그보다 상위 5개로는 리가 MX(24,731명 / 축구), 중국 슈퍼 리그(22,193명 / 축구), 방글라데시 프리미어 리그(21,824명 / 크리켓), MLS(21,574명 / 축구), NBA(17,809명 / 농구)에 이은 17위다.

1993년 출범 직후에는 일본의 국기(國技)로 불리는 프로야구의 인기마저 누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31] 한국 언론에서조차 꽤 비중있게 다뤄질 정도였다.

그러나 1995년부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해 동시에 평균 관중수도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1998년 월드컵 진출로 반짝 특수를 얻었지만 잠시 뿐. 급기야 1998 시즌 후에는 J리그 클럽 원년 멤버에 상위권인 요코하마 플뤼겔스가 경영난으로 인해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흡수 합병되는 사태가 발생한다.[32]

이에 따라 J리그 연맹은 대대적인 리그 개편을 선언해 선수들의 연봉, 리그 환경, 마케팅, 자금 내역 등에 대대적인 개혁을 하기 시작하고 1999년에 J2(2부 리그)를 발족하여 승강제를 만들어 리그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2008년 평균 관중 19,000명 돌파 이후로 조금씩 하락세이다.[33] 일단 일본은 기본적으로 축구보다 야구에 관심이 더 많은 나라이고, 일본 국적의 선수들이 해외 유명 리그에서 큰 활약을 보인 적이 적어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든 편. 거기에 경기 침체와 일본 대표팀의 부진도 한 몫했다. 이에 J리그 사무국측은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는데 일본이 월드컵에서 예상 외에 활약을 하며 J리그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카가와 신지를 포함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유럽 진출, 그리고 도호쿠 대지진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결국 2011 시즌 평균 관중수는 기존에 비해 약 20% 정도가 감소했고, 이는 J2리그 역시 마찬가지였다.[34]

다르게 생각해보면 세계 프로축구 리그 중 19,000명 이상 관중을 동원하는 리그가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걸 볼 때 관중 동원력이 좋은 리그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평균 관중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외부 요인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2012년에는 전년보다 오른 17,000명의 평균 관중을 기록했다.

2013년에 J리그 경기, 사업 총괄 본부장 나카니시 다이스케가 한 인터뷰에 따르면 J리그는 2008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걸어왔고 특히 신규 유입되는 관중이 적어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J리그의 수입이 크게 줄어 구단에 지급하는 배당금도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파산될 구단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원문 번역본 앞서 말한 '전·후기 리그제의 부활'도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였다.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16강 탈락으로 인해 안 좋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17,000명 선을 유지했다.

2015년에는 전년보다 다소 상승한 1만 8천 명 가까이 동원해 흥행몰이를 했다. J1, J2리그는 전년보다 3%씩 관중들이 증가했으며, J3(3부 리그)는 창설 1년 밖에 안됐는데 무려 8%나 증가하는 등 빠르게 자리잡았다. 관련 기사

J리그는 2017 시즌 이후 중계권과 관련해 영국의 디지털 스포츠 콘텐츠 유통 회사 퍼폼그룹(Perform Group)과 10년간 약 2,100억 엔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이 중계권 계약에는 인터넷 유료 스트리밍 독점 중계만 가능하고 지상파 TV로는 중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35]

2017 시즌 평균 관중은 J1리그 18,883명, J2리그 6,970명, J3리그 2,613명을 기록했고, 2018 시즌 평균 관중은 J1리그 19,064명, J2리그 7,049명, J3리그 2,491명을 기록했다.

2019 시즌에는 J1리그가 드디어 평균 관중 20,000명을 돌파했다. J2리그는 7,176명을 기록하며 계속된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J3리그는 계속 하락세인 상황. 그나마 관중수를 올려주던 기라반츠 기타큐슈의 승격으로 하락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 21, 22 3시즌은 코로나19 시국에 접어들어 무관중과 관중 제한 입장 등으로 이 기간의 관중수는 크게 의미가 없다. 2023 시즌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열기를 이어간다고 많이 준비했지만[36] 하필 야구에서 초대박이 터지는 바람에 유입은 사실상 망했다는 분위기. 7~8월에 증가세를 보였으나 이것도 도쿄 국립경기장 중립 경기 제도화, 공짜표 살포로 억지로 올려놓은 거다. 사실 J리그가 이렇게 된 원인은 일본 야구의 선전도 있지만 DAZN의 가격 정책 역시 J리그의 진입 장벽을 만들고 있다. DAZN은 현재 J리그를 보려면 한달 3700엔, 한화로 약 3만 7천 원을 내야 볼 수 있는 상황인데다, 슈퍼스타의 부재, J리그 팬덤의 고령화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이 J리그에 공짜표 남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37]

입장 관중수 집계 방식이 경기장 진입 개찰구 통과수를 세는 걸로 J리그 정관에 등록되어 관중수 통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38] 참고로 탈퇴 수속을 까다롭게 만들어 탈퇴 못하게 만드려는 DAZN과 달리, 탈퇴하려는 일본 스포츠팬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져 사무국과 함께 악순환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추가로 DAZN은 J3리그의 중계를 포기했다.[39]

이런 와중에 월 구독료를 4200엔으로 올렸다. # 참고로 J리그 각 소속팀 연간 패스의 구독료는 27000엔이다. 거기에 같은 계정으로 서로 다른 단말기(컴퓨터, 핸드폰)에서의 동시 시청도 막아버렸다. # 이때문에 일본 축구팬들의 반발은 더 심해졌다.

2024 시즌에도 2023 시즌에 이어 무료표 뿌리기는 계속 이어졌는데 그나마 2023 시즌은 J리그 출범 30주년이라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2024년에는 유입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료표를 계속 뿌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무료표를 응모해 받은 사람들이 티켓 사이트에 올려 되팔이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짜표가 효과는 있는건지 1, 2, 3부 통틀어 역대 최다 관중 신기록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9. 경기장

리그 운영 체제는 미국과 유럽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참조해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경기장 등의 하드웨어 인프라는 의외로 부실한 편이다.

경기장 시설 문제는 리그 창설 당시부터 발목을 잡은 문제이다. J리그 초기인 1999년 FC 도쿄가 리그에 진입할 때까지 도쿄 연고 클럽이 없었던 것은 리그 당국이 참가 클럽 간의 과다경쟁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간토 일대에 그럴싸한 경기장이 모자란 탓이 컸다. 1950년대에 건설한 국립경기장을 제외하면, 당시 J리그가 요구한 관중석 15,000석과 조명탑 설치를 충족하는 경기장은 지금은 프로팀 경기장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낙후된 요코하마 미쓰자와공원 구기장이 전부였던 것이다. J리그의 출범에 맞춰 가시마 스타디움이 신설되고 가와사키 도도로키, 우라와 고마바, 이치하라 린카이, 히라쓰카 4개 경기장이 10,000석을 밑도는 스탠드를 확장하여 간신히 J리그 초기 클럽들을 수용했다.[40]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J리그는 낙후된 데다 접근성도 좋지 않은 경기장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경기장 시설은 한국이 1988 서울 올림픽2002 월드컵에 맞춰 건설한 경기장이 많은 것과 같이 1950년대 전후 재건기(+1964 도쿄 올림픽) 및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건설한 것이 많다. 감바 오사카와 같은 명문 구단도 신구장 건립 이전까지는 1970년대에 지어진 엑스포 종합운동장을 사용했으며 역시 리그 강호로 항상 만원에 가까운 흥행성을 기록하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또한 1962년에 건설한 도도로키 육상경기장을 사용한다.[41] 2010년대 초중반 최강팀인 산프레체 히로시마 역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시야를 자랑하며 접근성도 안 좋은 종합운동장을 쓰다 보니 평균 관중은 리그내 하위권을 차지해 현재는 2024년을 목표로 전용 경기장 건설이 확정된 상태이다. 의외로 하부 리그로 눈을 돌리면 근래에 건설한 전용구장을 쓰는 팀들이 보이는데 기타큐슈와 나가노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5천 석 규모의 작은 경기장들이다. 이들 또한 J3 라이선스 요건인 5천 석을 간신히 맞추는 곳이 많으며, 특히 도호쿠의 이와테, 후쿠시마와 하치노헤는 2022년 6월 조명탑이 의무화되기 직전에야 간신히 조명탑을 갖췄다. 전광판이 없어 수동식 스코어보드로 간신히 때우는 경기장도 있다.

또한 경기장의 위치가 외진 편으로, 대도시권을 벗어나면 대중교통 접근이 거의 안되는 곳까지 있다. 사실 신설 경기장이 외곽으로 나가는 것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고[42] 한국의 월드컵 당시 건설한 경기장들도 수원이나 대전 정도를 제외하면 외진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일본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거대 경기장 다수가 시가 아닌 광역지방정부인 도도부현에서 건설한다는 것이다.[43] 현에서 건설하는 경우 원래 프로스포츠 유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입지를 특정 도시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시내 접근성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옆동네까지 가야 하는 곳이 생기게 된다.[44]

그래도 낡은 종합운동장을 쓰는 팀들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감바 오사카의 시립 스이타 사커 스타디움이 2016년에 개장한 이래 2024년까지 기타큐슈, 교토, 이마바리, 히로시마, 가나자와, 나가사키(2024년 10월 개장) 등 6개 클럽이 신축 전용 경기장으로 이전하였으며, 세레소 오사카 또한 신축에 가까운 개수를 했다.

문제는 도쿄 23구 내에 전용 경기장이 없다는 점인데 현재 FC 도쿄의 홈 경기장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은 구내가 아닌 쵸후시에 위치하며, 축구, 럭비에만 활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육상 경기장이다.[45] 2020 올림픽에 사용한 도쿄 신국립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난 후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개조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FC 도쿄가 생각만큼 인기가 있지 않고 아무래도 이쪽은 야구의 나라다보니 그 비싼 땅에서 수익이 충족이 되겠냐는 의견이 강해지면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많다. 어차피 대표팀 전용 경기장은 사이타마 스타디움이 있고 종합운동장으로 놔두면 축구 이외에도 행사나 다른 경기들을 개최할 수 있으니 그게 낫지 않겠냐는 것. 클럽은 클럽대로 신국립경기장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보고 다른 경기장 신축 계획을 찾는데, 2023년 신국립 강제 중립구장 경기 배정이 시야방해석, 경기 스케줄 문제 등으로 축구팬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46]

또한 J리그 규정이 수지에 맞지 않는 경기장 시설 투자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상당수 지역에서 반발을 사기도 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관중석 1/3 이상을 지붕으로 덮도록 사실상 의무화한 것으로, 경기장 노후화로 이전 움직임이 있는 쇼난 벨마레는 연고지 히라쓰카시의 시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J리그 회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

10. 역대 우승 구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60012><tablebgcolor=#e60012> 파일:J1리그 로고(가로형).svgJ1리그
역대 우승 구단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000,#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000,#e5e5e5
연도 구단 횟수
1993년 파일:베르디 가와사키 로고.svg 베르디 가와사키 ★★
2회
1994년
1995년 파일:요코하마 F. 마리노스 로고(1993~1998).svg 요코하마 마리노스
1회
1996년 파일:가시마 앤틀러스 로고.svg 가시마 앤틀러스
1회
1997년 파일:주빌로 이와타 로고(1992~2014).svg 주빌로 이와타
1회
1998년 파일:가시마 앤틀러스 로고.svg 가시마 앤틀러스 ★★
2회
1999년 파일:주빌로 이와타 로고(1992~2014).svg 주빌로 이와타 ★★
2회
2000년 파일:가시마 앤틀러스 로고.svg 가시마 앤틀러스 ★★★★
4회
2001년
2002년 파일:주빌로 이와타 로고(1992~2014).svg 주빌로 이와타 ★★★
3회
2003년 파일:요코하마 F. 마리노스 로고.svg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3회
2004년
2005년 파일:감바 오사카 로고(1997~2021).svg 감바 오사카
1회
2006년 파일: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로고.svg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1회
2007년 파일:가시마 앤틀러스 로고.svg 가시마 앤틀러스 ★★★★★★★
7회
2008년
2009년
2010년 파일:나고야 그램퍼스 로고(1999~2023).svg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1회
2011년 파일:가시와 레이솔 로고.svg 가시와 레이솔
1회
2012년 파일:산프레체 히로시마 로고.svg 산프레체 히로시마 ★★
2회
2013년
2014년 파일:감바 오사카 로고(1997~2021).svg 감바 오사카 ★★
2회
2015년 파일:산프레체 히로시마 로고.svg 산프레체 히로시마 ★★★
3회
2016년 파일:가시마 앤틀러스 로고.svg 가시마 앤틀러스 ★★★★★★★★
8회
2017년 파일:가와사키 프론탈레 로고.svg 가와사키 프론탈레 ★★
2회
2018년
2019년 파일:요코하마 F. 마리노스 로고.svg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4회
2020년 파일:가와사키 프론탈레 로고.svg 가와사키 프론탈레 ★★★★
4회
2021년
2022년 파일:요코하마 F. 마리노스 로고.svg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5회
2023년 파일:비셀 고베 로고.svg 비셀 고베
1회
}}}}}}}}}}}}}}} ||

11. 시상

리그 분류 부문 상금 비고
J1리그
2023
단체상 우승 3억 엔
(약 26억 원)
준우승 1억 2000만 엔
(약 10억 원)
3위 6000만 엔
(약 5억 원)
페어 플레이 500만 엔
(약 4500만 원)
연간 반칙 포인트가 1점 이하인 모든 팀에게 시상한다.[47]
개인상 최우수 선수상 200만 엔
(약 1780만 원)
개인 기록과 활약상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시상한다.
최다 득점상 100만 엔
(약 890만 원)
영플레이어상 50만 엔
(약 445만 원)
해당 시즌 1/2 이상 출장한 만 21세 이하의 선수 중 개인 기록과 활약상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시상한다.
페어플레이 개인상 50만 엔
(약 445만 원)
무경고, 무퇴장인 선수 중 전형위원의 투표로 시상한다.
최우수 골 상 50만 엔
(약 445만 원)
리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을 넣은 선수에게 시상한다.
우승 감독상 100만 엔
(약 890만 원)
리그 우승팀의 감독에게 시상한다.
우수 감독상 50만 엔
(약 445만 원)
지휘하는 팀의 성적과 활약상이 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감독에게 시상한다.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100만 엔
(약 890만 원)
리그에서 포지션별 개인 기록과 활약상이 뛰어난 골키퍼 1명, 수비수 4명, 미드필더 4명, 공격수 2명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J2리그
2023
단체상 우승 2000만 엔
(약 1억 8000만 원)
준우승 1000만 엔
(약 8890만 원)
3위 500만 엔
(약 4500만 원)
페어 플레이 250만 엔
(약 4500만 원)
연간 반칙 포인트가 1점 이하인 모든 팀에게 시상한다.[48]
개인상 최우수 선수상 50만 엔
(약 445만 원)
개인 기록과 활약상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시상한다.
최다 득점상 -
최우수 골 상 - 리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을 넣은 선수에게 시상한다.
우승 감독상 50만 엔
(약 445만 원)
리그 우승팀의 감독에게 시상한다.
우수 감독상 25만 엔
(약 222만 원)
지휘하는 팀의 성적과 활약상이 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감독에게 시상한다.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 리그에서 포지션별 개인 기록과 활약상이 뛰어난 골키퍼 1명, 수비수 4명, 미드필더 4명, 공격수 2명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J3리그
2023
단체상 우승 500만 엔
(약 4500만 원)
준우승 250만 엔
(약 4500만 원)
페어 플레이 100만 엔
(약 890만 원)
연간 반칙 포인트가 1점 이하인 모든 팀에게 시상한다.[49]
개인상 최우수 선수상 20만 엔
(약 178만 원)
개인 기록과 활약상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시상한다.
최다 득점상 -
최우수 골 상 - 리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을 넣은 선수에게 시상한다.
우승 감독상 - 리그 우승팀의 감독에게 시상한다.
우수 감독상 - 지휘하는 팀의 성적과 활약상이 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감독에게 시상한다.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 리그에서 포지션별 개인 기록과 활약상이 뛰어난 골키퍼 1명, 수비수 4명, 미드필더 4명, 공격수 2명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부문별 역대 수상자에 대한 내용은 J리그 어워즈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2. 외국인 선수 제도

2019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에 대한 규제를 풀었다. 그러나 출전 가능한 외국인 선수는 1부 5명, 2부와 3부는 4명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아시아 쿼터 선수는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팀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와 중동의 7개국 선수들은 자국 선수로 분류되어 출전에 제한이 없다.

자국 선수 육성에 방해가 되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새롭게 홈그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

2009년부터 도입한 아시아 쿼터제로 인해 한국인 선수 영입이 보다 활발해졌다. 당초에 동남아나 중동의 유망주를 발굴한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대부분 구단들은 가성비가 좋은 한국 선수들을 선호하고 있다. 2009년 J1과 J2의 아시아 쿼터제 선수는 28명인데 이 중에 2명만 호주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2010년엔 한국인 선수 진출이 더욱 심화되어 한국인 35명이 J1, J2에서 뛰었다. 호주 선수는 고작 4명이다. 이외에도 주로 아세안 쪽에서는 태국 출신 선수가 오는 경우가 많아 차나팁 송크라신 같은 선수를 발굴해내기도 한다. 중앙아시아 쪽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선수들도 J리그에서 많이 뛰나 K리그의 제파로프알리바예프처럼 많은 득을 보진 못했다.

문제는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통한 일본 자국 선수의 실력 향상을 이루기보다, 결과적으로 자국 선수의 입지만 좁아지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과도한 외국인 의존이 중국 슈퍼 리그처럼 리그의 경쟁력까지 갉아먹은 상황이다. 이런 문제점은 국가대표팀 경기에 그대로 드러나 "일본 국대 = 피지컬 부실 + 스트라이커 부재"라는 공식이 근 20년간 지배하다 21세기 들어서야 나아졌다.[50]

K리그와 달리 외국인 골키퍼가 허용된다. 그래서 2015 시즌 종료 후 J리그의 몇몇 팀들이 실력 있는 골키퍼들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외국인 골키퍼 영입에 나섰다. 특히 이웃한 한국의 국가대표 골키퍼들이 영입 대상에 올랐는데, 김승규비셀 고베,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2017 시즌부터는 권순태가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뛰게 되었다. 물론 호주의 미첼 랑거락, 태국의 카윈 탐사차난 등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골키퍼들도 있다.

2017 시즌 이후 여러 이유로 또 한번 한국인 선수들의 J리그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많이 늘어났지만 2017~2018년에 J리그로 이적한 한국인 선수들이 부진한 경우가 많았고 2019 시즌부터는 외국인 보유 제한이 완전히 폐지, 출전 제한도 아시아 쿼터 구분없이 5명으로 제한해 AFC 챔피언스 리그를 뛰는 팀이 아니라면 아시아 쿼터 메리트가 전혀 없어 2019 시즌부터는 J리그로 이적하는 한국 선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0년대 초중반에 리그가 어려웠던 반면 새로운 중계권 계약으로 J리그 팀들에게 여유가 생겼고 비셀 고베처럼 중국, 중동과 금전적으로 경쟁이 되는 팀도 있어 이니에스타처럼 이름값은 높지만 나이가 많아 전성기에서 한단계 물러난 선수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일반적인 외국인 등록 외에 특이한 것으로 일본 태생의 외국인을 팀당 한 명씩 내국인 취급하는 규정이 있다.[51] 비록 규정상 명기된 것은 아니나 역대 대상 선수가 거의 모두 재일 한국-조선인으로 일본에서는 '재일 쿼터'(在日枠)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자격 조건으로 일본의 정규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조건이 있어 조선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많은 재일교포[52]들은 대학만큼은 조선대학교가 아닌 일본 대학을 다니거나, 정대세와 같이 조선 학교와 병행해 정규 학교를 이수하는 식으로 요건을 갖추곤 한다. 2019년 J리그의 외국인 등록 제한이 없어지면서 J리그 대회 규정에서는 삭제되었으며 현재는 JFA 규정에는 남아 있어도 사문화된 것으로 추정된다.[53]

12.1. 역대 한국인 선수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J리그/역대 한국인 선수 목록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3. 시민 구단

이름에 기업명이 들어간 팀들이 어느 정도 있는 K리그[54] 달리 구단명에 모기업명이 없기 때문에 전부 시민 구단이라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J리그도 실업 리그가 기반이라 드러나지 않을 뿐 기업이 최대 주주인 팀들이 많다. 유럽에서도 흔하지는 않으나 독일 분데스리가바이어 레버쿠젠 (바이엘)[55], 네덜란드 에레디비시PSV 에인트호번(필립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아스날 FC[56] 등 기업명을 포함하는 클럽은 여럿 존재한다.

예컨대 J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알려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경우 미쓰비시가 100% 출자하는 기업구단으로 레드 다이아몬즈라는 팀명 자체가 모기업의 로고에서 유래한 것이다. 팀 이름에 기업명이 들어가지 않는 건 실업 축구에서 프로 축구로 전환할 때 실업팀들에게 기업명을 팀명에 넣는 것을 금지하라고 연맹에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단 법인명 등록시에는 기업명을 넣기도 하는데 오미야, 이와타, 고베, 가시와가 이에 해당된다. 때문에 열받은 요미우리는 축구팀 후원을 포기했다.[57]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연고지 이름 도쿄가 안 붙는지 생각하면 쉽다.[58] 요미우리는 스포츠단 운영에도 특유의 보수성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59]

오히려 J리그는 NPB에 밀리는 흥행에도 불구하고 NPB 못지 않은 탄탄한 자금력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이 주축을 이루는 리그다. 이는 초창기부터 일본프로야구의 주류를 이룬 중견기업들이 대기업의 참여를 철저히 막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차선책으로 축구를 택한 결과다. # 일본 50대 기업 중에서 프로야구팀을 운영하는 기업은 소프트뱅크 하나 뿐이지만 J리그에는 토요타, NTT동일본, 닛산, 파나소닉, 미츠비시, 히타치 등의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리그 당국이 소수 대기업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실업팀을 대부분 다수 기업의 컨소시엄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여전히 리그 우승을 다투는 명문 클럽[60]들은 대기업의 직접적인 영향하에 놓여 있다. 극단적으로는 연고지 규모에 비해 인기가 없고 여러번 강등당해도 모기업의 지원금으로 거대 예산을 유지하는 클럽(교토, 나고야, 지바 등)도 존재한다.

14. 각 구단별 기업과의 관계

15. 인기 구단과 서포터즈

J리그 현지에서 인기 구단을 뽑으라면 우라와 레즈감바 오사카가 대표적이다. J리그 5대 인기 구단으로는 우라와 레즈, 감바 오사카, 요코하마 F. 마리노스, FC 도쿄, 알비렉스 니가타를 들 수 있다. 2020년대부터 나고야 그램퍼스의 인기도 만만치 않은데 평균 관중만 놓고 본다면 탑3 안에 든다. 홈 경기장이 아시안 게임 준비로 공사하면서 나고야 외곽 도요타시의 도요타 스타디움을 쓰는데 4만명 수용에 2023년 기준 평관 3만에 육박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경기장 위치가 나고야시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어 불리하다는 우려가 많았으나, 종합경기장인 홈 스타디움 대비 관람 여건 개선 및 나고야 주변 지역으로의 확대로 오히려 팬덤과 평관이 증가하였다. 서포터즈 또한 우라와, 요코하마F와 더불어 삼대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열광적이다. 가시마 앤틀러스는 20개의 트로피를 자랑하는 곳으로 연고지의 한계를 딛고 멀리 도쿄에서도 응원 올 만큼 인기가 많다. 마쓰모토 야마가는 현 전체가 아닌 마쓰모토시를 연고로 하는데 1부 리그 경험이 거의 없지만 JFL 시절부터 인기가 많기로 유명했으며 현재도 꽤 많은 관중 수를 자랑한다.

현지에서 인정하는 대표적인 서포터즈로는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즈, 감바 오사카의 서포터즈, FC 도쿄 서포터즈이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서포터즈 역시 열정적이며 마쓰모토 야마가의 서포터즈는 말로만 듣던 전 관중이 서포팅을 하는 대표적인 구단이다.

2부 리그에 주로 머무르지만 인기가 많은 팀으로는 오미야 아르디자, 제프 유나이티드 치바, 몬테디오 야마가타, 파지아노 오카야마 등이 있다. 그리고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과 경기장 건설 예정 등으로 V-파렌 나가사키의 인기도 꽤 높은 편이다.
아비스파 후쿠오카는 큐슈의 최대 도시를 연고지로 삼아 J리그 초창기부터 참가했지만 변변찮은 역사와 소프트뱅크의 존재로 인해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규슈를 대표하는 팀은 리그컵 1회 우승이 있는 오이타 트리니타가 있다. 한때 사간 도스가 1부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면서 규슈에서 가장 유명한 구단이 되었지만 현재 엄청난 채무로 라이선스를 회수당할 위기에 놓였다. 반면 오이타 역시 한때 재정 위기에 처했으나 3부 리그로 강등되어 굴욕의 시간을 견뎌낸 끝에 현재는 1부 리그의 안정적인 중위권 팀으로 올라왔다.

16. 키트 서플라이어 현황 (2023)

17. 클럽 명칭에 대한 고찰

J리그 구단들의 이름은 찬찬히 뜯어보면 세계의 수많은 축구단들의 단순한 이름[67]과는 달리 좀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실업팀인 팀들에게 연맹이 기업 색체를 지울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지역 특색을 활용하거나 '가라오케'같은 합성어를 사용하여 멋을 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당장 옆나라 한국만 해도 FC나 유나이티드가 대다수고, 같은 나라의 NPB 리그만 해도 자이언츠(요미우리)나 타이거즈(타이거즈), 라이온즈(세이부) 등 일반적인 영단어를 쓴다. 반면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듯 J리그는 유난히 남유럽인 이탈리아어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을 많이 쓴다.

그러나 클럽수가 많아지면서 여러 언어에서 따온 요소를 억지로 합성하거나 발음이 어려운 팀명을 붙인 구단도 다수 생기게 되었으며, 상표권 문제로 이름이 꼬인 구단도 여럿 나왔다. 예를 들어 해당 상표권을 가진 모기업 내지 지역이 후원을 중지하거나, 팀을 매각하고 이전하거나, 승격되면서 상표권이 문제가 되는 사례가 생기기도 한다.

한편 과거의 TV 중계에서는 주로 팀명으로 호칭하는 반면 현재 중계를 맡은 DAZN은 연고지에 복수 구단이 있는 경우(감바-세레소 오사카, 요코하마 마리노스 등)를 제외하면 연고지명으로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가시마 앤틀러스 - 앤틀러스(antlers)는 '사슴뿔'이란 뜻의 영어로, 사슴섬이라는 뜻을 가진 연고지 가시마에서 따왔다.
  • 가시와 레이솔 -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레이(rey)와 '해'를 뜻하는 솔(sol)을 합성하였다. 모기업 히타치를 상징한다.
  • 가와사키 프론탈레 - 프론탈레(Frotale)는 '앞'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이다.
  • 가이나레 돗토리 - 시마네 현 동부와 돗토리 현 서부에 걸쳐 쓰는 방언에 '크다'는 뜻을 가진 가이나(がいな)와 이탈리아어로 '희망'을 뜻하는 스페라레(sperare)를 합성한 것이다.
  • 감바 오사카 - '힘내라'의 뜻을 가진 일본어 간바루(頑張る)와 이탈리아어로 '다리'를 뜻하는 감바(gamba)에서 따왔다. '축구의 힘은 다리에서 나온다'는 의미가 담겼다.
  • 교토 상가 FC - 상가(サンガ)는 산스크리트어의 "sangha"에서 온 말로 동료라는 뜻이다. 불교 도시 교토를 상징한다.
  • 기라반츠 기타큐슈 - 원래 이름은 뉴웨이브 기타큐슈(New Wave Kitakyushu)였으나 J2리그 승격시 저작권 문제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기라반츠는' 해바라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Girasole'와 전진하다를 뜻하는 'Avanzore'의 합성어로 기타큐슈 시의 시화 해바라기를 상징힌다.
  • 나고야 그램퍼스 - 그램퍼스(grampus)는 영어로 '돌고래, 범고래'를 뜻하며, 에이트는 나고야 시 표장에 있는 숫자 8과 모기업 토요타의 브랜드를 상징한다. 현재는 에이트가 제외됐다.
  • 더스파구사츠 군마 - 클럽의 초창기 연고지 군마 현의 구사츠 온천을 상징한다. '더스파'는 일본어로 발음하면 자스파, 영문으로 표기하면 'The Spa'다.
  • 도쿄 베르디 - Verdy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을 뜻하는 verde를 변형한 것이다. 녹색은 도쿄 베르디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 도쿠시마 보르티스 - Vortis는 이탈리아어로 '소용돌이'란 뜻 Vortice와 도사 국, 이요 국, 사누키 국의 앞글자를 합성한 것으로 나루토 해협의 소용돌이와 시코쿠를 대표하는 팀이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
  • 로아소 구마모토 - 이탈리아어로 '붉다'를 뜻하는 Rosso와 '에이스'를 뜻하는 Asso의 합성어로 아소산을 상징한다. 과거 '로소'를 사용하다 상표권 문제로 변경하였다.
  • 마쓰모토 야마가 FC - 사회인 클럽 창설 시절 멤버들이 자주 모이던 카페 이름. 유일하게 클럽명이 온전히 한자로 표기된다.
  • 몬테디오 야마가타 - 이탈리아어로 '산'을 뜻하는 몬테(monte)와 '신'을 뜻하는 디오(dio)의 합성어로 '산들이 신처럼 수호한다'를 상징한다.
  • 미토 홀리호크 - 홀리호크(HollyHock)는 영어로 접시꽃이란 뜻으로,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의 상징이다.
  • 반포레 고후 - 프랑스어에서 바람을 뜻하는 반(Vent)과 숲을 뜻하는 포레(forêt)의 합성어이다. 이 말은 유명한 사자성어인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風林火山)에서 따왔다.
  • 베갈타 센다이 - 직녀성을 뜻하는 Vega와 견우성을 뜻하는 Altair의 합성어로 센다이 칠석제 중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상징한다.
  • 비셀 고베 - 비셀(Vissel)은 영어 'Victory'(승리)와 'Vessel'(배)의 합성어로 항구 도시 고베를 상징한다.
  • 사간 도스 - 일본어로 사암(砂岩)이란 뜻이며, 사가 현 방언으로 '사가 현의 도스'란 뜻도 갖는다. 일본어 기원 애칭은 도스가 처음이다.
  • 산프레체 히로시마 - 일본어에서 숫자 3을 뜻하는 산(三, サン)과 화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프레체(frecce)의 합성어다. 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 모략가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한 명언인 '셋 중에 조금이라도 불화가 있어 틈이 가게 되면, 곧바로 세 사람 다 멸망한다고 알아라'에서 따왔다.
  • 세레소 오사카 - 오사카의 시화(市花) 벚꽃을 스페인어로 한 세레소(cerezo)를 그대로 사용했다.
  • 쇼난 벨마레 - 라틴어 'bellium'(아름답다)과 'mare'(바다)의 합성어로 쇼난 지역을 상징한다.
  • 시미즈 에스펄스 - S는 시즈오카, 시미즈, 사커를 의미하고, 펄스(pulse)는 팀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의 심장 고동을 뜻한다.
  • 아비스파 후쿠오카 - 스페인어로 꿀벌(avispa)이라는 뜻으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에서 따왔다.
  • 알비렉스 니가타 - 백조자리 베타성의 이름 Albireo와 라틴어로 왕을 뜻하는 rex의 합성어다. 알비레오를 쓰다 상표권 문제로 변경했다.
  • RB 오미야 아르디자 - 아르디자(Ardija)는 '다람쥐'를 뜻하는 스페인어 Ardilla를 일본어 발음하기 쉽게 바꾼 것이다. 다람쥐는 오미야와 오미야 공원의 상징이다. 레드불에 인수된 이후 RB가 붙었는데 독일어 Rasen Ballsport의 줄임말이나 사실상 레드불을 뜻하는 이니셜이다.
  • 오이타 트리니타 - 트리니타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영어 trinity에서 온 것으로, 상표권 분쟁 때문에 다시 오이타를 합성하여 바꾸었다. 팀을 이끄는 시민, 기업, 지방 자치 정부를 의미한다.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F.는 1999년에 흡수 합병한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뜻하고[68] 마리노스(marinos)는 '선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항구 도시 요코하마를 상징한다.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미쓰비시의 로고에서 따왔다.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 제프(JEF)는 JR동일본(JR East), 후루카와 전기(Electric Furukawa)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 주빌로 이와타 - 주빌로(Júbilo)는 포르투갈어로 '환희'라는 뜻이다.
  • 카탈레 도야마 - '이기다'의 도야마 방언 勝たれ 또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라는 뜻의 'Cantare'와 프랑스어로 '가다'를 뜻하는 aller의 합성어로 '서포터와 함께 나가자'는 뜻을 담았다.
  • 파지아노 오카야마 FC - 파지아노(Fagiano)는 이탈리아어로 '꿩'을 뜻하며, 전설의 캐릭터 모모타로에서 따왔다.
  •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 - 홋카이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한자 道産子(도산코)을 거꾸로 한 단어 '콘사도'와 스페인어 'Ole'를 합성한 단어다. 원래 콘사도레 삿포로만 팀명이었으나 홋카이도가 나중에 붙었다.
  • FC 마치다 젤비아 - 시의 상징인 느티나무를 뜻하는 'zelkova'와 살비아를 뜻하는 'salvia'를 합성한 단어다.
  • V-파렌 나가사키 - V는 Victory의 앞글자, Varen은 '항해'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이다. 항구 도시 나가사키의 지역적 특색에 맞춰 '승리를 향해 항해한다'는 뜻으로 만들었다.

18. J리그 백년구상 클럽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J리그 백년구상 클럽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9. 콜라보레이션

애니메이션의 국가답게 여러 구단이 애니메이션과 콜라보레이션을 맺었다.

20. 한국의 인식

20.1. AFC 챔피언스 리그 역사

한국에서는 J리그의 시스템적인 부분이나 인프라는 인정해도, 경기력에 있어서는 한일간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다소의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 A3 챔피언스컵 2006 대회에서 J리그 우승팀 감바 오사카가 K리그 우승팀 울산 현대에게 0:6으로 대패[69] 등의 전적이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승팀간의 대결이라지만 일부 팀간의 경기만 보고 단편적으로 누가 우위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이런식이면 가장 최근인 2024-2025 ACLE에서 K리그1 우승팀 울산 HD가 J1리그 팀을 상대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전패를 기록, 특히 요코하마전에서는 4골차 대패를 기록했는데 이것을 K리그 전체의 수준으로 판단해 J리그보다 아래라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2007년 우라와 레즈[70], 2008년 감바 오사카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꽤나 주가를 올렸지만 2008년 8월 2일에 도쿄에서 열린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에게 1:3으로 패했다. 사실 J리그 올스타가 더 짜임새 있는 축구를 구사했지만, 어찌됐건 골을 못 넣었기 때문에 J리그 팬들에게 욕만 줄창 먹었다. 그러나 1년 뒤인 2009년 인천에서 열린 2회 조모컵에서는 4-1로 스코어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71] K리그를 박살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해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팀이 바로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인데, K리그 올스타가 J리그 올스타를 이긴 2008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J리그에서 나왔고, 그 반대로 J리그 올스타가 K리그 올스타에 완승을 거둔 2009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 K리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2007년을 기점으로 K리그와의 상대 전적을 끌어올려 총전적은 35승 19무 31패(2012 시즌까지의 기록)가 됐다.

2009 AFC 챔피언스 리그[72] 조별리그에서는 가와사키 프론탈레[73]를 제외하곤 J리그 팀들이 모두 조별 1위로 통과했다.

하지만 이후 16강, 8강에서 팀킬로 감바 오사카와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떨어지고, 스리위자야 FC가 고춧가루를 뿌린 덕에 턱걸이로 간신히 16강에 올라 원정길에 나선 FC 서울이 놀랍게도 원정 승부차기의 악조건 끝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승리를 거뒀다. 최종적으로 나고야 그램퍼스가 4강에 올랐으나 아시아의 깡패라 불리는 사우디의 알 이티하드에게 2:6(원정), 1:2(홈) 도합 3:8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탈락했다. 나름대로 J리그 팀 중 하나는 결승에 올라올 것을 자신해 도쿄 국립 경기장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장소로 유치한 J리그 사무국과 일본축구협회는 결국 안방에서 남의 집 잔치를 열어주게 됐다.[74]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탈락하고 16강에서는 감바 오사카가 K리그의 성남 일화 천마에게 0:3 패배, 또한 J리그 3년 연속 우승팀 가시마 앤틀러스는 3일 전에 감독을 해고해 코치가 팀을 맡은 포항 스틸러스에게 0:1로 패배함으로서 전원 16강도 못 뚫고 탈락해버렸다.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도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걸 생각하면 일본 입장에서는 2년 연속 안방에서 남의 집 잔치를 열어주는 상황. 참고로 위의 2팀 외에 K리그 나머지 팀(수원, 전북)도 각각 중국과 호주 클럽을 꺾고 동아시아에 배정된 8강 티켓 4장을 K리그가 싹쓸이 했으며, 우승컵은 K리그의 성남 일화 천마가 차지했다.

2011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모처럼 일본 4팀(가시마 안틀러스, 감바 오사카, 세레소 오사카, 나고야 그람퍼스)이 16강에 올랐지만 내실을 보면 좀 실망이었는데 나고야는 FC 서울 원정을 이기곤 약체급인 알 아인과 항저우 그린타운 원정에서 죄다 지는 통에 조 2위로 밀려났고 나머지 세레소 오사카와 가시마도 각자 전북과 수원에게 밀려 조 2위로 진출했다. 결국 16강전에서 일본 팀(감바 오사카와 격돌)끼리 맞붙어 8강에 오른 세레소 오사카를 제외한 나고야와 가시마는 각각 FC 서울과 수원 삼성 원정에서 완패하여 8강에 한국은 3팀 모두가 올라온 반면, 일본은 겨우 1개팀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세레소 오사카조차 8강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와 1승 1패를 주고받았으나 원정에서 이동국에게 4골을 헌납하며 무려 1:6의 스코어로 탈락했다.[75]

게다가 2012년 구정컵에서는 2011 시즌 J리그 10위 시미즈 펄스와 성남 일화의 경기에서 주장 사샤가 빠진 성남이 시미즈를 5:1로 크게 이겼다.

K리그가 부진한 2012 시즌의 ACL에서마저 8강에 한 팀도 올려보내지 못했다.[76]

2013 시즌은 ACL 우승을 노렸으나 가시와 레이솔 한 팀만이 4강에 올랐다. 그마저도 알 샤바브(사우디아라비아)에게 2무 골득실 우위로 겨우 올라갔고 준결승에서 광저우 헝다에게 2패 그것도 8실점 1득점이라는 참패로 탈락해버리면서 J리그는 2008년 감바 오사카가 호주의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한 이후 5년 연속으로 결승 구경도 못했다.

2014 시즌에도 ACL 8강에 한 팀도 올라가지 못한 데다,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FC 서울에 패배하였다.

ACL에서 K리그가 전적이 비슷한 세 리그 중 하나다. 다른 둘은 우즈벡 리그와 이란 리그이나 이들과 맞대결 경우는 토너먼트 경우 외엔 없어 전적 자체가 많지 않은데 J리그와는 61경기에서 25승 13무 23패를 기록중이다.[77]

2015 시즌은 그나마 2008년 이후 J리그가 가장 선전한 시즌인데 감바 오사카가 4강, 가시와 레이솔이 8강에 진출하였다. 나머지 가시마 앤틀러스와 우라와 레즈는 조별리그 탈락.

2016년엔 우라와 레즈, FC 도쿄, 감바 오사카, 산프레체 히로시마가 참가했고 이중 우라와 레즈와 FC 도쿄가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각각 FC 서울과 상하이 상강에게 발목 잡히며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2017년에는 K리그 4팀 중 3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제주만 16강에 가는 최악의 성적에 이어 우라와 레즈가 제주에 1차전에서 0:2로 지고도 2차전을 3:0으로 이겨 8강 진출, K리그 팀이 16강에 전멸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참고로 우라와는 이후 가와사키, 상하이, 알힐랄을 차례로 꺾으며 10년 만에 ACL에서 우승했다.

2018년에는 작년 K리그처럼 16강에 1팀만 보내고 3팀이 전부 탈락하며 2019 ACL부터는 진출권 감소가 확정적이게 되었으나 가시마 앤틀러스가 상하이, 수원 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에도 우라와 레즈가 결승전에 진출하며 3년 연속 결승에 올랐으나 이번엔 알 힐랄에 막히며 3연속 우승팀 배출에는 실패했다.

2020년에는 울산 현대와 비셀 고베가 준결승에서 만나 울산 현대가 연장 접전 끝에 승리하며 4연속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거기에 울산 현대가 우승을 차지하며 ACL 챔피언 자리를 K리그에 돌려놓았다.

2021년에는 J리그 1위팀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16강에서 울산 현대를 만나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고, 나고야 그램퍼스는 16강에서 대구 FC를 이겼으나[78] 8강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패배해 짐을 쌌다. 포항 스틸러스는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알 힐랄에 막혀 우승에는 실패했다.

2022년에는 8강전 사이타마에서 전북이 비셀 고베를 3:1로 격파하였으나, 4강전에서 우라와 레즈가 전북 현대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이 시즌 K리그 팬들은 땅을 칠 노릇인 것이 J리그 팀들은 결과적으로 K리그 팀에 4무 4패로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며 K리그가 선전했는데 정작 결승은 우라와가 올라가 또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 이 시점에서 개편 이전에는 K리그가 6회, J리그가 3회 우승을 기록했으나 AFC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 K리그는 결승 10회 우승 6회, J리그는 결승 6회 우승 5회로 바짝 따라붙게 되었다. 합산 우승 횟수는 12회 대 8회인 상황.

20.2. 한국 선수의 J리그 진출

결론적으로 말하면 과거에는 K리그 대비 월등한 수입으로 한국 선수들을 유혹했으나, 2020년대 들어서는 차이가 점점 줄어들며 메리트가 사라져 예전만큼 한국 선수들이 진출하진 않는 상황이다. 과거 1990년대만 해도 정상급 한국 선수들이 실질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해외 무대였다. 당시만 해도 1인당 GDP 등 일본과 한국의 경제적 격차가 상당히 컸을 때였고, 이로 인해 주는 돈의 격차가 너무나 컸다.[79] J리그 창설 초에는 많은 돈을 들여 이름값 높은 황혼기 선수를 사왔지만 그게 전력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돈을 들여 30대에 막 들어선 아직은 쓸만한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80]

당시 한국 선수들은 당연히 이런 스타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이름값도, 경력도 후달렸지만 황보관, 노정윤 등 초창기 J리그에서 뛴 한국인 선수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자, 이후 팔팔한 한국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 선수들이 황선홍(1999년 득점왕), 홍명보, 유상철 등 세월이 많이 지난 현재에 와서도 대한민국 역대 베스트 11급에 들만한 선수들이었다. 그 결과 1990년대 각급 한국 국가대표에서 성과를 낸 선수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J리그가 무조건 사갔다. 그리고 그렇게 사재기한 한국 정상급 선수들 상당수가 기대에 걸맞게 맹활약을 해주면서 J리그의 한국 사랑은 200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81]

당시 한국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실력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 등 여러가지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K리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면서 고국과도 가까운 J리그는 매력적인 리그였다. 그래서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하석주, 최용수, 노정윤, 윤정환, 김도훈, 최성용, 고정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1990년대 한국 레전드들은 대부분 J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명성이 올라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등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이 수월해졌고 박지성, 이영표 등의 활약이 더해져 위상이 올라 이청용, 기성용 등 K리그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 넓어지면서 더이상 금전적인 메리트도 없는 J리그에 갈 이유가 없어져 과거보다 진출이 줄어들었다.

상술한 1990~2000년대 초는 K리그가 실력은 차치하더라도 인프라 측면에서나 연봉에서 J리그보다 뒤쳐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술할 황선홍의 기사에도 나타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K리그가 발전을 거듭하여 J리그의 인프라와 차이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있다. 특히 K리그의 상위권 팀, 즉 포항, 서울, 수원, 전북 등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은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높은 수준이다. 이에 런던 올림픽 한국 축구 대표팀 코치를 역임한 이케다 세이고는 아예 유망주들은 J리그를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 홍명보도 주전을 차지할 수준의 실력이 아니면 가지말라는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황선홍 또한 2000년대 초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인프라 차이도 없는데 연봉 1, 2천만원 더 받으려고 J리그 가는게 이해가 안되며 일일이 지도를 받는 게 싫어서 가는거라면 멍청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왕서방이나 기름 장사들의 돈질에 밀려서인지 J리그 붐이 주춤해졌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갓 졸업한 선수들 중 한국에서 뛰기 어려워 가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과거처럼 국가대표급 선수가 가는 경우는 유럽 진출이 어려운 포지션인 골키퍼를 제외하면 상당히 줄었다. 돈 때문에라도 대부분 돈 더 많이 받는 중국이나 중동으로 간다.

또다른 함정을 찾아본다면 환경이 달라지고 명확한 각오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생, 고등학생 선수가 갑자기 외국인 선수로 신분이 바뀌면서 겪는 문제점이다. 이 당시 유망주들은 EPL 등 유럽 리그를 쉽게 접하기 시작하면서 꿈이 높아졌는데 K리그는 당시 존재했던 드래프트 제도 때문에 원하는 팀을 쉽게 선택하지 못했고, 또 제아무리 유망주라고는 해도 당시는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가 창설되기 전이라 팀 수가 비교적 적던 시절이다. 따라서 드래프트에서 확실히 선택받을지 불확실한 면이 있었고, 설사 드래프트에서 선택받는다 하더라도 잘 뛰지 못할 것 같은 팀에 들어갈 가능성도 높았다. 또, 신인의 신분으로는 연봉이 고정적이라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들은 J리그로 진출했다. 김보경, 김영권, 김진수, 장현수, 조영철, 한국영, 백성동 등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유망주들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J리그에서 데뷔했다.

J리그 역시 청소년 대표팀 유망주 박지성 영입의 성공과 더불어 그동안 유상철, 황선홍 등 한국 선수들이 쌓은 좋은 인상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J리그는 용병이 아시아 쿼터까지 해서 4명이 아니라, 4명 출장 5명 보유라 부상을 대비해 보험급으로 박지성 신화를 바라며 싼맛에 하나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탓에 생각외로 엄청난 숫자의 팀에서 K리그 유망주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뛰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출장도 못했다. 즉, 얼마 전까지 또래끼리 운동하던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언어, 문화, 환경, 음식이 다른 타국 프로 리그 소속의 외국인 선수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고 도박성이 강한 일이었다.

게다가 C급이니 B급이니 5명 보유, 4명 출장 등의 희한한 규정들에 막혀 실력이 있어도 뛰기 어려웠고, 구단 클럽 하우스에서 생활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숙소에 밥값에, 개인 훈련 비용도 철저하게 알아서 해결해야하다 보니 실질적인 급료도 K리그와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지 않았으며, 규정 경기 수를 채우면 의무적으로 C급에서 B급으로 승격시켜 급료를 올려줘야 되기에 어린 외국인 선수에게 그렇게 해주기 싫어 경기에 뛰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구단에서 외국인 선수가 주거할 집을 구해주고 클럽 하우스에서도 함께 생활할 수 있으나, 일본은 팀 연습 시간도 대체로 짧은 편이고 끝나면 다 헤어져 개인 숙소에서 생활한다. 이때 얼마 전까지 학생이었고, 코치들이나 친분이 있는 선배들에게 훈련이 끝나고도 나름대로 알뜰살뜰 챙김을 받던 한국 유망주들은 일본 선수들이 집단 훈련 끝나고 개인 훈련, 피지컬 트레이닝을 한다는 사실 자체도 잘 모르고, 나중에라도 안다고 해도 훈련 장소나 방법 물색에 어려움을 겪어, 결국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면서 홀로 밥 지어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생활하기 일쑤다.

그러나 드래프트 제도가 폐지된 이후로도 J2리그에 입단하는 신인 선수들은 꾸준히 나오는 상황인지라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많은 편이다.[82] 에이전트는 선수 장사하려고, 선수나 학부모는 이런저런 조바심에 무작정 진출하는 일이 많았는데, 다시 생각해 봐야만 하는 일이다. 일본 리그의 팀 수는 실업까지 치면 엄청난데, 성공하지 못해 어영부영 사라진 선수도 그만큼 엄청나게 많다. 기량을 키울 시간만 낭비하고 K리그로 돌아온 선수들은 그나마 재능이 확실한 선수들이고, 나름대로 살아남은 선수들도 한결같이 생존 비결로 정신력을 강조한다.[83]

2017 시즌 J리그가 중계권료 대박을 치자 잠시 침체된 리그의 인기가 부활하면서 또다시 한국 선수 영입에 불이 붙었다. 2017 시즌에 윤석영, 권순태, 김보경, 정승현, 황의조 등이 건너갔으며 2018 시즌에는 정우영, 윤일록, 양동현, 이정협 등이 대거 이적했다. J2리그 역시 대학에서 주목받는 신예 선수들을 여러 명 영입했다.

황의조정성룡은 J리그로 가서 잘된 케이스인 반면 정우영과 윤석영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자 리그를 떠났는데 2017~2018 시즌 사이에 이적한 선수들 중에서 권순태, 장현수, 황석호, 정승현, 황의조 정도를 제외하면 부진에 시달렸다.

2018 시즌이 끝나고 별 활약을 하지 못한 이정협은 이적하지 못하고 임대 만료로 부산에 돌아왔고, 시즌 후반부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김민혁과 김보경, 윤일록은 각각 전북과 울산, 제주로 이적했다. J2리그에 있던 송주훈, 변준범, 김종필 등의 1990년대 초중반 태생 선수들도 한국으로 왔다.

2019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급 김영권과 나상호가 J1리그로 향했다. 국가대표에서 멀어진 선수들은 주로 J2리그로 이적했는데 일본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조영철이 8년만에 니가타로 복귀했고 울산에서 부상으로 신음한 이종호와 기회를 전혀 받지 못한 수비수 이상민이 나가사키로 임대를 갔다. FC 서울에서 완전히 밀린 골키퍼 유현은 도치기로 완전 이적했다.

그러나 아시아 쿼터가 없어지면서 영입만 하고 방치하는 상황이 늘어났는데 실력과 별개로 벤치로 밀린 김승규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상호도 출전 횟수가 극히 적으며 이외 한국 선수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2019년에는 한동안 한일관계가 심하게 악화된 적이 있어 여름 이적시장 때도 한국에 설 자리가 없는 선수들이 하부 리그로 이적한 경우를 제외하면 스타 플레이어의 이적 사례는 없었다.

2020 시즌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이 J리그로 많은 이적이 있을 것이란 이적설이 나왔지만, 정작 일본으로 돌아간 김승규를 제외하면 일본으로의 이적은 나오지 않았다.

정승현은 친정팀 울산 현대로 복귀했고 토스의 레전드 김민우는 수원 잔류를 택했다. 양동현, 강수일, 유현 등의 2부 리거 베테랑 선수들도 일본을 떠났고 오랜 기간 도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유인수는 성남 이적을 택했다. 나상호 역시 성남 임대로 한국에 복귀했다. 구성윤은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2020년 5월 29일 대구로 이적했다.[84] 김진현, 김영권, 오재석, 박정수, 황석호, 김민태, 권순태, 정성룡처럼 입지가 탄탄한 선수들만 잔류한 상황.

2021 시즌을 앞두고 많은 한국인 선수들이 J리그에서 K리그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 사간 도스의 한국인 트리오가 모두 부진하면서 계약 만료될 가능성이 높고 권순태도 많은 나이에 주전에서 밀려 리턴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감바 최장 외국인 선수로 뛰며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오재석 역시 인천 이적이 확정적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한국인 선수들의 리턴 러시의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인데, 당초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하는 최대 장점이 해외 생활임에도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저렴한 비행기가 많아 가족들과 언제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러한 것들이 매우 힘들어졌고 특히 일본의 입출국은 거의 쇄국 수준으로 힘들어졌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2021 시즌 한국으로 복귀했다. 오이타의 문경건, 사간 도스의 안용우, 베갈타 센다이의 이윤오, 에히메 FC의 박성수가 대구 FC에 입단했고, 가시와와의 계약 관계가 남은 윤석영도 긴 임대 생활을 끝내고 강원 FC로 완전 이적했다. 수원 삼성은 파지아노 오카야마의 수비수 최정원을 영입했고, FC 도쿄에서 고전하다 성남 임대 생활에서 에이스급 활약을 보인 나상호는 FC 서울로 완전 이적하며 짧은 J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사간 도스의 박정수 또한 성남으로 이적했고, 감바와 나고야에서 뛴 오재석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 근 10여 년 만에 K리그로 리턴했다. 승격팀 수원 FC도 프랑스 낭트 FC 유소년 출신의 정충근을 마치다에서 영입했다. 김영권도 감바 오사카와의 계약 종료 후 홍명보의 러브콜로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다. 세레소가 야심차게 키워보려 했던 골키퍼 유망주 안준수는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자신의 첫 K리그 생활을 시작했고, 역시 쇼난 벨마레의 골키퍼 유망주 김민준은 경남에 입단했다.

J리그에 남은 주전급 한국인 선수들은 J1리그 기준으로 김민태, 권순태, 정성룡, 김진현, 오세훈 정도가 다인 수준이다. 박일규, 한호강 같은 재일교포 선수들, 신원호, 엄예훈 같은 유망주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10명도 남지 않은 것이다. 한때 한국인 유망주로 가득 찼던 J2리그에도 JEF 지바의 장민규, 파지아노 오카야마의 이용재를 제외하면 주전급은 없고 민성준, 고동민, 유용현, 정인권까지 합쳐도 총 6명에 불과하다.[85]

21. 관련 문서


[1] 많은 K리그 팬들이 군문제만 없다면 K리그도 유럽 진출 인원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군문제보다는 전술 적응 이슈와 높은 이적료에 유럽 스카우터들은 J리그를 더 선호하는 이유로 꼽았다. K리그는 팬들 사이에서도 이적료에 거품이 심하게 꼈다고 할 정도로 이적료가 높게 책정된 편이다.[2] 중동으로 떠난 J리그 브라질 용병들의 이적료는 최대 5~10억 엔에 달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3] 양 리그의 피지컬과 압박 차이는 외국인 선수들이 빠지는 국가대표간 A매치에서 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4] 흔히 J리그에서 뛰면 K리그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데,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격이다. C급 계약의 경우 연봉 480만 엔 이하에 일정 이상 J리그 경기를 뛸 경우 B급 이상으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사실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둘째치고 기존 비싼 외국인 선수들의 자리를 빼앗아야 한다. J리그 외국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4000만 엔대로, 몇몇 손에 꼽을 탑급 선수를 제외하면 K리그와 별 차이가 없다. 만약 C급 계약을 한 유망주가 확실히 낫지 않다면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당연히 비싼 외국인 선수를 더 쓰게 된다. 즉, 확실한 메리트가 없으면 가망이 없다는 의미다. 괜히 홍명보가 주전 못할거면 가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5] 그것도 일본 내수판에서만 할 수 있었다. 즉, 한국 정발판이나 PES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단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팀은 사용 가능.[6] 코나미가 독점 계약하기 전에는 J리그 익사이트 스테이지 같은 게임들이 출시했다.[7] 시스템 도입이 늦은 탓에, 2020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 8강 울산 대 고베전에서 고베의 골 취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8] 도호쿠 일대는 추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설지로서 겨울에는 도로 다수가 폐쇄되고 2~3월에 개막하는 지금도 시즌 초반에는 홈 개막이 늦어지는 지역이다. 때문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알비렉스 니가타는 경기장은 어떻게 한다고 쳐도 팬들이 집에서 경기장으로 오기 어렵다는 지적을 했다.[9] 현내 최고 등급 클럽은 JFL(4부)의 이와테 그루야 모리오카.[10] 현청 소재지인 우쓰노미야시만을 연고지로 하며, 도치기시는 포함되지 않는다.[11] 연고지는 도치기시.[12] 2001년까지는 도쿄도의 일부 지역만을 명목상 연고 구역으로 지정했다. FC 도쿄는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이 위치한 조후시 등, 베르디는 클럽 시설이 위치한 이나기시.[13] 현내 최고 등급 클럽은 호쿠신에쓰 풋볼 1부 리그(5부)의 후쿠이 유나이티드 FC.[14] 단독 연고로 연고구역 인구가 가장 많다.[15] 현내 최고 등급 클럽은 JFL(4부)의 뷔어틴 미에스즈카 포인트 게터스.[16] 현내 최고 등급 클럽은 JFL(4부)의 레이락 시가 FC.[17] 명칭은 오사카로 달지만 오사카시가 연고 구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연고지는 스이타시중심의 그 주변 지역.[18] 오사카부의 인구 1, 2위인 오사카시와 사카이시 연고.[19] 히가시오사카시 연고.[20] 현내 최고 등급 클럽은 간사이 사커 1부 리그(5부)의 아르테리보 와카야마.[21] 현내 최고 등급 클럽은 주고쿠 사커 리그(5부)의 벨루가로소 이와미.[22] 일본 축구의 기틀을 다진 '일본 축구의 아버지'라 불린다.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2회 연속 우승 경력을 보유한 인물. 1991년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해 대한민국이 영입한 첫 외국인 감독이기도 하나, 훈련 방식을 놓고 한국 코칭 스탭들과 마찰을 빚은 끝에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23] 9개 지역 중 혼슈 5개 지역은 2부로 구성한다.[24] 창설 이래 식품업체 야마자키 비스킷이 타이틀 스폰서로 맡아 2016년부터 현재의 'J리그 YBC 르뱅컵'(J.LEAGUE YBC Levain Cup, 약칭 르뱅컵) 명칭을 쓰고 있다.[25] J3의 팀이 얻는 어드밴티지는 2차전이 자신들의 홈에서 치러지기에 2무 시에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홈에서 치를 수 있다는 것 정도.[26] 2014 시즌 기라반츠 기타큐슈가 5위를 기록하고도 J1 라이선스를 따지 못해 승강 플레이오프에 참가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현재는 경기장을 신축하며 J1 라이선스를 획득했지만 팀은 J3에서 긴 세월을 보내다 2020년에야 겨우 J2로 복귀했다.[27] J3리그에는 J2 라이선스를 보유하지 못한 팀들이 많다. 2017 시즌에는 J3 우승팀 블라우블리츠 아키타도 라이선스가 없어 승격하지 못했으며 2위를 차지한 도치기 SC만 승격했는데 이때의 최대 수혜자는 J2리그에서 21위를 차지한 로아소 구마모토였다.[28] JFL에는 J3 라이선스를 보유한 팀이 2023년 기준 단 2팀 뿐이다. 혼다 FC처럼 승격 자체에 관심이 없는 팀도 많다.[29] 1차전은 JFL팀, 2차전은 J3리그팀.[30] 예전 J2리그와 J3리그의 승강전이 이런 방식으로 치러졌다.[31] J리그의 응원 문화가 역사가 훨씬 더 깊은 일본프로야구에 유입되었을 정도였다. 이때 J리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구단이 바로 치바 롯데 마린즈이다.[32] 마지막 경기인 천황배 결승에서 시미즈 에스펄스를 꺾고 우승했다.[33] 2010 시즌 말미에 오미야 아르디자 간부들이 관중수를 조작한 사실이 적발되어 구단에 벌금 2,000만 엔이 부과되었으며, 관중수 조작을 주도한 간부 2명이 해임되고, 사장은 사임했다.[34] J리그 2011년 평균 관중은 15,000명 후반.[35] 바꿔 말하자면 굳이 라이트팬에게 구걸하다시피 인기 얻지 않아도 골수팬들 만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얘기이다.[36] 평균 관중 목표치를 최대 25000명으로 잡았다.[37] K리그와 달리 J리그는 무료표도 공식 관중으로 집계한다.[38] K리그는 티켓 바코드 스캔으로 관중수를 등록한다.[39] 참고로 DAZN이 일본에서 철수하게 될 가능성 역시 없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DAZN은 일본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만약 DAZN이 철수할 경우 J리그 대다수 구단의 재정이 엄청난 타격을 입음에 따라 하부 리그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당장 J3 구단들은 중계권료가 없으면 구단 운영이 어렵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니 J리그가 DAZN에 얼마나 심각하게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 J리그 소속팀 서포터즈들조차 J리그 아니었으면 DAZN을 해지했다는 반응이다.[40] 1980년대 최고 호황기를 거친 일본이 한국보다 운동장 시설을 갖추지 못한 데 의아함을 느낄 수 있겠으나, 한국은 국민체육진흥법과 체육시설법에 의하여 각 지방자치단체가 종합체육대회 개최 수준의 시설을 갖출 것이 의무화되었다. 일본에도 스포츠기본법은 있으나, 스포츠 시설에 대해 명문화된 의무가 없는 데다 각지의 학교가 어느 정도의 시설을 갖춰 전문 스포츠 시설은 오히려 부족했던 것.[41] 상기한 바와 같이 J리그 창설에 맞춰 1만 석짜리 경기장을 2만 석 후반대로 확장했다.[42] 건설하는 지방 정부가 도시 재생을 목적으로 슬럼가나 공장지대를 큰맘먹고 재개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경기장이 들어설 큰 땅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예시로 들 수 있다.[43] 2002 월드컵에 사용된 경기장 10개 중 시에서 건설한 것은 닛산 스타디움 등 4개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월드컵 유치에 맞춰 건설한 건 고베 미사키공원 구기장 뿐이다. 그리고 이들 시립 경기장은 접근성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44] 현재 J리그에서 주 경기장이 연고지 중심도시 밖에 위치한 팀은 나고야 그램퍼스를 포함해 8개나 된다. (시내에서 1시간 이상 걸리지만 어쨌든 명목상 '도쿄'에는 걸리는 FC 도쿄도쿄 베르디는 빼고) 극단적으로 시즈오카 스타디움 에코파미야기 스타디움 정도로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아예 입주하는 팀이 나오지 않게 된다.[45] 개장 초기에는 건설비 절약을 위해 트랙을 깔지 않았는데, 이후 2011년에 트랙을 깔고 육상 경기장 인증을 받았으나 만료 후 인증을 갱신하지 않았다.[46] J리그는 2024년 국립경기장의 위탁운영 컨소시엄에 참가했다. 즉 앞으로 국립 개최 경기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47] 상금은 이 팀들 중 전형위원이 선정한 세 팀에만 주어진다.[48] 상금은 이 팀들 중 최소 포인트인 한 팀에만 주어진다.[49] 상금은 이 팀들 중 최소 포인트인 한 팀에만 주어진다.[50] 외국인 선수 영입이 리그에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대표팀도 황선홍과 박주영 사이 10년 가량이 좀 애매한 시기인데, 이는 아테네 올림픽 세대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때문이다. 반면 지동원 등은 유소년 축구교실 세대다. 이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지 외국인 선수 영입 하나만으로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51] 일본축구협회 프로선수 계약, 등록, 이적 규칙 2-1.⑨(1)에서.[52] 친북 성향의 조총련조선적 뿐만 아니라, 한국 국적을 가진 교포들도 중등학교까지는 조선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53] 2022년에 일본 국적을 취득한 박일규는 귀화 이유로 외국인 신분이 출장 제약을 가져올 수 있는 점을 들었다.[54] 사실 K리그에도 서울이나 제주, 전남, 포항처럼 기업 구단임에도 모기업명을 붙이지 않는 팀들이 있다. K리그판에서 연고명이 아닌 기업명으로만 팀을 호칭하는 건 욕설과 비슷하게 통할 정도다.[55] 독일은 분데스리가 규정상 기업이 51% 이상의 지분을 갖지 못하는 등 규제가 심하지만, 레버쿠젠과 칼 차이스 예나 등 직장 축구팀을 원류로 인정받은 곳은 예외를 인정받는다. 이하 네덜란드 등도 마찬가지이다.[56] Woolworth Arsenal. 이쪽은 현재의 기업명이라기보다 전신에 가깝다.[57] 사실 연맹 측에서도 요미우리를 축출하려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 당시 일본프로야구가 요미우리의, 요미우리를 위한, 요미우리에 의한 기형적 리그였으니만큼 축구도 한 클럽에 심하게 표류하는 리그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요미우리 신문을 축구에 발 붙이지 못하게 했는데, 기업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도 요미우리를 내보내려는 것 중 하나였다. 만약 이러지 않았다면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이상으로 요미우리와 아이들 신세가 되었을지 모른다.[58] "도쿄"를 쓰는 야구팀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있다.[59] 요미우리가 스폰서를 해주던 축구팀은 現 도쿄 베르디다. 이 구단의 모체는 요미우리 FC로, 요미우리의 그룹 산하 닛테레(NTV)가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뗀 이후에는 재일동포 최창량이 운영하는 도쿄홀딩스가 최대 주주로 있다.[60] 기존 성적과 재정 규모를 볼 때 우승을 노리는 클럽은 현실적으로 가시마(신일철주금 → 메르카리), FC도쿄(도쿄가스), 우라와(미쓰비시 중공업), 요코하마 F 마리노스(닛산자동차), 가와사키(후지쯔), 감바 오사카(파나소닉), 고베(라쿠텐), 히로시마(마쓰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에 매각된 가시마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기업이 지배주주이다.[61] 과거 스미토모금속공업의 실업팀으로 시작해 스미토모 및 후신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의 자회사였다. 중견 IT 기업 메루카리가 인수한 것은 2019년.[62] 2024년 NTT 동일본으로부터 구단 인수.[63] 합병 전 각각 요코하마 마리노스,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모기업으로, ANA는 합병 후에도 한동안 스폰서를 유지했다.[64] 이후 대표 오쿠데라 야스히코와 팬 회원의 분쟁을 거쳐 현 구단주 오노데라 히로시가 인수하였다.[65] 1998년까지 시민주 10% 수준.[66] 후원 계약을 맺은게 아니라 구단과 미쓰비시 상사 패션 주식회사가 합작으로 만든 브랜드다.[67] 지역명 + FC.(또는 반대로) 주로 유럽이 많이 쓰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이런 팀명을 보기 힘들다.[68] 플뤼겔스(Flügels)는 독일어로 날개라는 뜻이다.[69] 한일전 모든 축구 매치 최다 점수차 패배로, 당시 감바 오사카 감독은 니시노 아키라(2018 월드컵 일본 16강)였다. 다만 A3 챔피언스컵은 공식 경기로 인정받지 못한다.[70] 8강에서 전북, 4강에서 성남을 꺾고 우승했다.[71] 후반 유효 슈팅수가 0이다. 1골도 PK로 넣었는데 그 PK도 애매한 판정이었다. J리그 선수들도 그냥 준거라고 생각했는지 박수까지 치며 웃어버렸다.[72] 32개팀 체제[73] 마지막 홈경기에서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게 0:2로 패하며 조 2위로 내려앉았다.[74] 유치할 때는 안달이었으면서 막상 결승이 남의 집 잔치-포항 스틸러스 vs 알 이티하드-가 되자 일본 언론의 관심은 시큰둥해졌다. 포항 스틸러스가 2:1로 승리해 우승컵을 한국으로 가져갔다.[75] 다만 팀의 핵심 김보경이 초반 전북의 거친 수비로 큰 부상을 당해 교체된 게 컸다. 조별리그 2경기나 홈경기에선 엇비슷했다.[76] K리그에선 울산 현대 1팀만 8강에 올라갔는데, 그 울산 현대가 우승했다.[77] 조별 리그에서는 거의 비슷하거나 J리그가 살짝 앞서는 전적을 보이지만 토너먼트에서 K리그 팀에게 자주 패하며 전적을 깎아먹었다.[78] 훗날 여기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도핑에 걸린 것이 드러났다.[79] J리그행의 1차 러시가 지나간 1999 시즌의 리그 최고 연봉은 2억 2천만원의 김병지였다. 이 해 J리그에 진출한 고정운, 홍명보 등의 한국 대표급 선수들은 7~9천만 엔(IMF 시기 환율로 8~10억 원)을 수령했다.[80] 둥가만 보더라도 1998 월드컵 대표팀 주장을 맡은 J리그 선수였는데, 이렇게 나이는 조금 많아도 여전히 현역으로 손색이 없을 수준의 선수들이 많았다.[81] 사실 박지성의 경우는 당시 그렇게까지 큰 주목을 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허정무의 올림픽 대표 발탁은 내막도 모르고 지레짐작한 이례적인 발탁으로 꼽혔고, 당시 올림픽 대표에서의 평도 국가대표 수준으로서는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 그런 선수에게 연봉 5000만 엔(당시 6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액수를 제안했는데, 그 이상의 선수로 성장했다. 이후 J리그 팀들이 대한민국의 유망주를 마구 빼간 이유 중 하나가 박지성 같은 선수 하나 걸리길 바라며 복권 긁는 심정으로 데려가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82] 이는 K리그에서 데뷔하지 않고 해외 리그에서 데뷔 시 5년간 K리그 입단을 금지하는 룰과도 연관이 있다. J리그에 입단했다 하더라도, 거기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해외에서 헛되이 보내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83] J2 언저리에서 그저 그런 외국인 선수로 살아가는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면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얻은 것이 많다 이런 얘기를 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인데, 본인들 나름대로 얻은 것이 있으니 그나마 살아남아서 인터뷰를 하는 선수가 된 것이지 그나마도 안 되는 선수들은 이름없이 사라졌다. 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대개 나는 어떻게 뭣모르고 시간 낭비를 하다 시간 낭비를 줄여 적응에 성공했다가 대부분이다.[84] 상무에서 뛰려면 최소 반 시즌은 K리그에서 뛰어야 하기 때문.[85] K리그의 드래프트 제도가 사라져 원하는 팀으로 갈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생이 프로 생활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게 한 준프로 계약 제도와 U-22 의무 출전 규정이 생겨 유망주들이 받는 기회도 늘어난 덕에 유망주들이 J리그로 가는건 많이 줄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