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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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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즈 S펄스 No. 9
정대세
(鄭大世 / Jong Tae Se[1], Chong Tese[2])
생년월일 1984년 3월 2일 ([age(1984-03-02)]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북한 파일:북한 국기.png[3]
출신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포지션 중앙 공격수
신체 조건 180cm, 81kg
학력 도슌조선초중급학교 (1996~1999)
아이치조선중고급학교 (1999~2002)
조선대학교 (2002~2005)
소속팀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6~2010.7)
VfL 보훔 (2010.7~2012.1)
1. FC 쾰른 (2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5.7)
시미즈 S펄스 (2015.7~ )
국가대표 33경기 15골 (북한 / 2006~2011)


1. 소개

무지막지한 돌파력에서 따온 인민 루니(People's Rooney)라는 별명의 축구선수.[4] 참고로 같은 팀인 지윤남의 별명은 로동메시. 일본에서는 팬티 스타킹을 뒤집어 쓴 강도처럼 생겼다고 해서 말 그대로 팬티 스타킹이라고 불린다. 안습 그런데 본인이 가장 닮고 싶어하고 존경하는 선수는 디디에 드록바. 이젠 북한에도 신도가!

아버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의 한국인이고, 어머니는 조선적[5] 재일교포다. 아버지의 국적을 받아 정식 국적대한민국이다[6]. 그러나 대한민국 국적보다는 조선적에 애착을 갖고 있으며, 총련계 조선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온 관계로[7] 2007년부터 북한 대표팀에서 뛰게 되었다.# 이 당시 국적 문제로 북한 대표팀이 FIFA에 정대세를 북한 대표팀 선수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FIFA가 남북한의 상황을 감안해 바로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이런 사정 탓에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한 모양이다. 일종의 이중국적자로 취급받아 블랙번 로버스에서의 계약이 불발되었을 정도.

북한한국이나 일본승인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것을 그 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8] 그러나 북한 당국은 정대세를 북한 국적자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동무 려권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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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의 북한 여권

남북한의 여권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남북한은 서로 국가로 승인하고 있지 않으므로 상호간의 법리상으로는 이중국적이 아니다. 외국에 나갈 때에는 주로 북한 여권을 사용하지만, 북한 여권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국가가 시궁창급으로 적기에 북한 여권과 대한민국 여권을 편의에 따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고 한다.[9] 북한 여권의 처참한 현실은 비자 문서 참고. 한국에서는 북한 여권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이때는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온다. 일본은 다른 재일동포와 마찬가지로 출국 시 재입국 허가서를 제출하고 나간다.[10]

정대세는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라 조총련 계열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재일교포다. 대한민국에서 성장했는데도 종북의식을 가진 자라면 모를까 조총련 교육에 의해 애국심과 자긍심을 교육 받은, 거의 북한 사람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 북한 체제 옹호 발언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조총련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도 비밀도 아니고 엄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일본에는 민단 계열 학교가 드물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려면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정대세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후술될 "김정일을 존경한다."는 발언 등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상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2. 클럽 경력

2.1. 카와사키 프론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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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사키 프론탈레 시절
조선대학교 재학 시절 J리그 입단을 위해 각 구단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다가 카와사키 프론탈레의 테스트 시합에서 5득점을 올리고 프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 2006년 J리그카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데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총 114경기에서 42골을 터트렸다. 그리고 2010 월드컵에서 북한을 44년만에 본선에 올려놓으며 해외 여러 팀들의 주목을 받았다.

2.2. VfL 보훔

결국 2010년 7월 분데스리가 2부리그 소속 VfL 보훔과 2년 계약을 맺었다. 시범 경기에서 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시즌 1라운드 데뷔전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보훔에서 총 10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주전으로서 맹활약했으나 4월초에 부상으로 5경기를 쉬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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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L 보훔 시절

2.3. 1.FC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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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31일 1.FC 쾰른에서 루카스 포돌스키가 큰 부상을 당하면서, 대체자로 쾰른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시 클럽 단장이[11] 감독과 상의 없이 마음대로 지른 것이었다. 당시 쾰른 감독이었던 스톨레 솔바켄은 내가 원한 선수가 아니고 내가 원한 스타일도 아니다고 대놓고 얘기했고, 벤치에는 계속 들고 있지만 분명히 들어갈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12] 데뷔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여 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안습. 결국 쾰른이 2011~12시즌에서 강등당하면서 다시 2부리그 소속이 되었다.포돌스키와 친분을 쌓는 데는 성공했다. 아스날 이적한 포돌스키에게 인터뷰 하니까 대세? 대세? 아, 태세! 태세는 정말 재밌는 친구라고.

2.4. 수원 삼성 블루윙즈

2.4.1. 2013 시즌

2012년 10월 31일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면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덕분에 11월 들어 찌라시들이 정대세 K리그 영입설을 퍼뜨리며 부왘을 울렸다. 하지만 해외축구팬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 소식을 터뜨린게 일간스포츠라서 애초에 찌라시라고 무시하기 힘든 소식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2개 클럽이 관심을 보였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보기 곧이어 2개 클럽은 수원울산이라는 기사도 떴다. 기사보기

이후 수원으로 이적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대전 시티즌이 구단주가 뭔 돈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일까지 직접 가는 등 깜짝 영입을 시도하기도 했다.[13][14] 그러나 결국 2013년 1월 정대세의 수원 입단이 확정됐다.# 2015년까지 3년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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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이천수+강개리 인직...

비록 북한대표팀에서 뛰고 있기는 하나, 대한민국 국적이기 때문에 수원 삼성으로서는 외국인 선수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다.[15][16] 그뿐만 아니라 독일 2부를 씹어먹던 실력인만큼 활약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다만, 위에서 언급된 쾰른에서의 문제로 인하여 1년 내내 경기를 아예 뛰지 못했기에 이에 대한 우려 또한 많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가시와 레이솔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2개를 실축하며 팀 6-2 패배의 원흉으로 등극했다.(...) 자신이 얻어낸 PK 2개를 모두 자신이 날려먹으며 K리그 사상 최초로 한 경기 2실축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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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경기인 K리그 대구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했다.[17] 그리고 맞이한 슈퍼매치에서 전반을 채 못지나서 화려하게 경고누적으로 퇴장(...).

경기 초반 얻은 옐로우카드를 까먹고 있다가 일 저지르고 기억났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정대세에게는 다행이게도 수원은 후반 87분 라돈치치의 동점골로 패배를 면하며 슈퍼매치 수원 무패행진은 끊기지 않았다.

부산과의 경기는 징계로 결장한뒤 대전전에 선발출장,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특히나 첫번째 두번째 골은 각각 홍철조지훈의 중거리슛을 감각적으로 방향만 살짝 틀어서 넣으며 골키퍼를 벙찌게 만들었다.

2013 시즌 23경기 리그 10골 2도움을 기록하며 수원 선수에서 가장 득점을 많이 올렸다. 23경기밖에 안 뛰고도 가장 득점이 많았다는걸 보면 수원이 얼마나 빈공에 시달렸는지를 알 수 있다.

2.4.2. 2014 시즌

인민 먹튀...인줄 알았으나 시즌막판 귀신같이 인민 루니 모드로...

31라운드를 돈 시점에서 22경기 48슈팅 4골 1도움, 그나마도 1골은 페널티킥.

20경기 넘게 뛴 주전 원톱 스트라이커로는 역대 수원 최악에 손꼽힐 법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하태균의 전역 이전까지는 로저와 더불어 팀에 단 2명뿐인 원톱이었는데, 상반기 로저의 부진과 정대세의 부진이 겹치며 수원은 깊은 시름에 빠져야 했다. 그나마 로저는 하반기돼서 살아나기라도 했지, 정대세는 하반기에 또 부상을 당하며 계속 죽어 있는 상태.

이 와중에도 올스타전이나 친선경기, 연습경기 등 비정규 경기에서는 꾸준히 골을 넣으며 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방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2선 공격의 활로를 뚫어놓는 로저와 달리 정대세는 위치선정 능력을 살려 적진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이렇게 공을 받아놓고 어처구니 없이 날려먹는 경우가 많은지라 이왕 똑같이 결정력이 시망이라면 한창 물오른 산토스의 득점 능력에 추가로 기대해볼 수 있는 로저쪽이 더 꾸준히 기용되고 있는 상황.

인터뷰에서 에이전트에게 돈을 떼먹히고 후술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등 여러 심적인 요소로 인해 위축됐었다고 밝히긴 했지만, 그 문제들이 해결되어도 과연 믿고 기댈 수 있는 스트라이커로 살아날지는 미지수.

결국 28경기 7골 1도움을 기록했다. 마지막 골이 북패 팀의 아챔 진출을 도와주었다. 참고로 막판 3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후반기엔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게 희망. 2015시즌을 기대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2.4.3.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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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대세

시즌 개막 전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팀에 많은 해를 끼쳤다', '난 쓰레기였다' 등의 발언으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고 팀에 더 녹아들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진짜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다!!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이제 스스로 무리한 슈팅이나 돌파 등은 자제하고 팀에게 도움이 되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기 시작해서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수원 블루윙즈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4월 18일 홈경기로 열린 리그 7차전 슈퍼 매치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FC 서울을 5:1로 뭉개버리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후 '제마, 록바, 삐라도나, 레반동무스키, 이보라우동무스키' 등등등 많은 별명이 생겨났다.

10경기에서 2골 4도움을 기록 중.그럼 9경기 2도움?

6월7일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수비수 정준연과의 경합 도중 의식을 잃었으나 금방 깨어났다.(정준연은 경고 처리)[18]

2.5. 시미즈 S펄스

2.5.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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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월 7일, 시미즈 S 펄스로 이적료 약 50만 달러 (5억 6000만원)과 연봉은 수원에서 받는 금액의 2배 이상을 받는다는 조건 하에 이적, 3년 6개월 계약이 확정되었다. 정대세 스스로는 수원에 남아 있길 내심 바랬지만, 계약 연장 오퍼가 들어오지 않아 시미즈의 이적 제의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정대세 나가고 레오 나가면 건... 도 치는거냐 이젠 쳐야겠다 대체 선수로는 일리안 미찬스키가 영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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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이후 K리그에 대한 쓴소리에 가까운 발언을 하였다. 사실인데 뭐...애정이 있으니까 하는 소리지 K리그를 디스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정대세가 K리그에 남긴 뼈있는 조언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듯. 관련기사1, 관련기사2. K리그가 경기력이나 레벨이 뒤쳐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준수한 수준을 갖춘 리그인데 대중들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취지이다. 관련기사들과 K리그/쟁점 문서를 직접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정작 시미즈 S펄스 이적 후에는 소속팀에서 11경기 무득점 1도움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등 부진해 팀 강등의 원흉으로 뽑히고 있다.[19] 그리고 팀도 리그 17위로 강등당해 16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 리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역 라이벌 주빌로 이와타는 다시 승격

2.5.2. 2016 시즌

전년도에는 부진해서 큰 욕을 먹었으나,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당하자 오히려 수준 차이를 보이며 큰 활약을 하고 있다. 결국 팀인 시미즈를 승격시켰고 본인도 26골로 J2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득점왕이 확정된 후에는 울어버렸다고.

2.5.3. 2017 시즌

2017시즌부터 시미즈 에스펄스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여담으로 축구팀에서 주장을 맡는건 초등학교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시즌 최종 성적은 26경기 출전 10득점. 시즌 팀내 최다득점이었고 카와사키 프론탈레 시절 이후 오랜만에 J1리그 두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2.5.4. 2018 시즌

시즌 시작부터 키타가와 코야와 브라질 용병 크리슬란에게 밀려 교체자원으로 활용되었다.

가끔 선발로 나오면 골을 넣어서 기대감을 줬지만 7월 천황컵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 6주 진단을 받았다.

10월 7일 29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 때 부상에서 회복하여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출장은 하지 않았다.

10월 20일 30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추가골을 기록, 부상 복귀를 알렸다.

3. 국가대표 경력

3.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 높기 때문에 오만하게 보일 때가 많다. 때문에 북한 대표팀 합류 초기에는 팀원들과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정대세의 한국어 베이스가 남한 말투인데다 교포 특유의 어색함이 섞인 것도 한 몫 한다. 다른 조총련 계열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중요한데 안영학이 잘 다리를 놓아준 듯.[20] 그래도 왕따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골 세레모니 할 때도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하지만 대표팀 밖에서 그를 만난 기자들은 예의 바른 청년이라고 평했다.

공격 루트가 오직 역습밖에 없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역습의 최전방에 위치해 북한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언론에 "이왕이면 강팀들과 대결했으면 좋겠다"라고 수차례 발언했다가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이 속한 죽음의 조에 들어가면서 소원을 이뤘다(…). 꿈★은 이루어진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막 직전, 남북한의 특수성과 국적 문제가 맞물리는 데다가, 북한 선수들 중에선 드물게 영어에도 능통할 뿐더러, 심지어 포르투갈어 구사도 가능[21]한지라 외신 기자들의 인터뷰 세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브라질과의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명인 루시우와 맞대결을 펼치며 절대 밀리지 않는 막강한 피지컬로 인민 루니라는 별명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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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브라질 전에서 국가가 흘러 나올 때 눈물을 흘린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이 사진은 뉴욕타임스의 월드컵 사진 10선에도 뽑혔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기적처럼 국가대표가 되고 또 월드컵에 진출한 그간의 파란만장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감격해 운 것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하게 된 탓인지, 2009년 12월에 북한 정부에서 주는 '인민체육인'[22] 칭호를 받았다.[23]

과거 한겨레 신문 주말 매거진에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네이버 스포츠란에서 연재하고 있다. 특히 한겨레 칼럼에서는 그의 소탈한 글 스타일이 드러나며 인간적인 면모도 접해 볼 수 있다.

3.2. 2011년 AFC 아시안컵

그러나 2010년 12월. 북한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선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찌라시의 낚시였다. 사실은 북한이 미숙한 행정 탓에 공문을 제때 발송하지 못한 바람에 책임자는 당연히... 소속팀이 이를 꼬투리 근거로 아시안컵 차출을 거부하자 실망감을 표시한 것.

결국 팀을 설득해 북한 대표팀에 합류했다. 북한은 이란, 이라크, 아랍에미레이트와 함께 D조에 속했는데, 1무 2패 무득점 2실점으로 탈락했다. 어떻게 한 골을 못 넣냐 정대세는 몸 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 내내 별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2011년 AFC 아시안컵/조별리그 C조&D조 참조.

4. 비판

K리그 올스타전 출전 후보에 등록되었는데, 일부에서는 정대세를 K리그 올스타에 내보내서는 안 된다며 투표에서 다른 선수에게 몰표를 주는 모습이 나타났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전후 쯤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다큐멘터리에서 김정일을 정말로 존경한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를 믿고 따를 것이라고 말하는 영상이 나타난 탓. 이에 "축구판에서 일베충 박멸하자"라는 글을 리트윗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삭제. "인민의 루니"라고 불리는 몸께서, 정작 인민들 처지는 나몰라라하고 독재자는 존경한다니 큰 비판을 받았다. 이 일은 꽤 전부터 돌고 있었지만 남아공 월드컵 당시 브라질전이 주목 받은지라 자연스레 묻혔던 것.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고 실제 변희재 같은 인물은 검찰에 정대세를 고발하기까지 했으나 검찰에서는 무혐의 처리했다.

동일 영상에서 나온 다른 발언도 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질문이 '우리가 탈북자들을 만나보았는데, 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대화를 하고 이해해볼 생각이 없는가?'였는데 대답하기를 나는 관심이 없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북한 주민의 문제에 개입할 어떤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라고. 이러한 발언들로 정대세를 비판하는 안티팬들이 생겨났다. 해당 인터뷰 영상은 대략 2009 ~ 2010년의 것이며 K리그에서 활동하게 된 이후의 정대세는 이런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5. 여담

  • 매스컴을 피하는 축구선수가 많지만 정대세는 인터뷰를 너무 하고 싶어한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매스컴에 나서는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친목질에 매우 열심히다. 독일서 뛸 당시 아무래도 일본에서 자랐다보니 일본 선수들과 친한지 같이 독일서 뛰던 일본인 선수들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심지어 네덜란드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랑 노는 모습도 종종 트위터 등에 올라왔다. 한국인 선수로는 박지성을 가끔씩 만나는데, 맨유 경기 끝나고 뜬금없이 버스 옆에 정대세가 박지성에게 인사하러 왔다는 기사가 몇 번씩 뜨고 있다.
  • 2012년 SBS런닝맨힐링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다. 런닝맨에서는 숨겨진 형 개대세와 만나 나름 화제.[25]아시안 드림컵 출전자 두명을 가리기 위한 최종 레이스에 참가했다. 힐링캠프에서는 일본에 MC들을 초대했다. 방영분은 총 1.5주분.
  • 머리도 상당히 좋고 공부도 열심이라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확인된 것만 5개 국어 이상이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등. 정대세의 한국어는 북한보다 남한 쪽에 더 가까우며 재일 한국인이 쓰는 말투이다. 추성훈과 말투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아무래도 거주지나 평소 쓰는 언어 때문에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편하다고 한다.
  • 2013년 6월 20일 변희재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어 수원지검 공안부에서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후 1년만에 무혐의 처리나면서 형식적인 수사로 마무리되었다.그리고 본인이 구속되었다.
  • 특이하게 응원가가 존재한다.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펑크밴드인 블루 하츠의 곡 TRAIN TRAIN의 후렴구를 개사했다. 가사는 '대세~ Get the goal~ 대세~ 오오오오~(반복)' 수원에서는 2014년부터 응원가가 등장했다. 원곡은 빈지노의 Boogie on&on. 가사는 '수원 정대세~ 수원 정대세~ 오오오 대세! 수원 정대세~(반복)'[26]
  • 동무 려권내라우에서 타이완 수배자로 나온다.(...)정대세, 질투심때문에 애미나이를 살해했나 플레이어 : 발치몽이십네까? 정대세 : 여권에 그렇게 적혀있잖나
* 혜리와 함께 상쾌환 광고를 찍었다.
  • 2019년 1월 19일 놀라운 토요일에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작품 속 커플을 맞추는 간식 게임에서 베지터가 나오자 손오공을 외쳤다(...)이 자식 뭔가 아는 분인가

[1] 북한 여권의 표기. 아래 이미지 참고.[2] 일본에서의 영문 표기.[3] 일본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국적을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취득했고, 2007년 조총련을 통해 북한 여권도 발급받아 사실상 이중국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법적으로는 아니다.[4] 실제로 정대세의 별명이다! People's Rooney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모두 정대세 관련 기사가 나온다. 또한 네이버에서도 저렇게 검색하면 정대세가 나온다.[5] 항목 참조. 조선적이란 북한이 아니라 분단 이전의 조선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상 남북한 두나라인 실정으로 조선적을 대표하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처지다.[6] 아버지는 남과 북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립'이며, 일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우리말을 거의 구사하지 못 한다. 반면 그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조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조총련에 호의적이다.[7] 대한민국에 유대감을 갖는 "민단" 계열 학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재일교포교민들이 한국어(또는 조선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총련계 학교를 갈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정대세의 최종학력은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 졸업.[8] 대한민국은 원칙적으로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그 즉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 그러나 북한은 대한민국이 승인한 외국이 아니므로, 정대세는 본인이 원하건 원치 않건 제3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이상 대한민국 국적 이탈이 불가능하다.[9] 이건 정대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중국적자들이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미국 이중국적자의 경우, 미국 여권으로 북한 방문이 안 되기 때문에 뉴질랜드 여권을 들고 갈 수 밖에 없다.[10]일본의 입관법 개정으로 인해 간이재입국 허가를 받으면 특별영주자는 출국후 2년 이내로 일본으로 돌아오면 재류자격 유지가 가능하다. 정식 재입국허가서는 6년안에 돌아오면 재류자격 유지가 가능하다.[11] 거의 20년을 SC프라이부르크의 감독을 맡았던 명장 폴커 핑케였다. 이 이적건으로 마찰이 생겨 이후 단장에서 은퇴.[12] 실제로 루카스 포돌스키를 제외하면 서른이 한참 넘은 노장에 장기부상 여파로 폼이 바닥을 치던 노바코비치 이외엔 네임밸류나 실력면에서 정대세보다 나은 공격수가 아예 없었음에도 벤치신세여서 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13] 아마 케빈 오리스를 이미 팔기로 결정난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져본 것으로 보인다.[14] 정대세 영입 불발 직후 나왔던 대전시티즌 관련 기사에 따르면, 당시 거액의 스폰서와 협상 중이었는데 이때 조건이 정대세의 영입이었다고 한다.[15] 거기에 라돈치치가 한국 귀화에 성공하면 수원은 무려 6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 할 수 있게 된다![16] 참고로 북한주민의 국적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례는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적을 가진 북한주민이라도 대한민국에서는 '조선'국적을 가진 외국인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의 미수복 영토이며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정대세 이전에 활약한 량규사나 안영학처럼 북한 대표팀 출신 선수라도 큰 문제없이 K리그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정대세가 만약 북한대표팀에서 뛰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전 박강조의 사례처럼 K리그의 로컬룰에 의해 재일동포 선수도 국내선수로 인정된다.[17] VfL 보훔시절 마지막으로 넣은 골 이후로 1년 4개월 여 만에 넣은 골이었다.[18] 참고로 정준연은 당시 전반에 옐로카드가 한 장 나온 상황이라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지만, 경기는 광주가 이겨 크게 까이진 않은 걸로 추정된다.[19] 비록 2골을 넣으며 뭐라도 하려 했다만 그것은...[20] 정작 안영학조선적이다.[21] 그런데 브라질과의 시합 이후 카카와 유니폼 교환이 하고 싶어 포르투갈어 공부까지 해갔지만(브라질포르투갈어를 쓴다.) 카카는 정대세가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 들어서 실패했다. 나중에 어떤 일인지 알아낸 카카가 정대세를 브라질 라커룸으로 초대해 호비뉴의 유니폼과 자신의 유니폼을 선물했다고...[22] 북한에서는 공로나 사회 기여가 큰 인사들에게 이런저런 칭호를 부여하는데, 체육인의 경우 공훈체육인과 인민체육인 두 가지가 있다. 격은 인민이 더 높다.[23] 참고로 같은 대표팀 멤버인 안영학과 감독 김광호도 같이 받았다. 하지만 원체 강팀들이 속한 조인 만큼 본선에서 광탈하면 박탈되지 않나 우려했지만 실제로는 본선 진출 만으로도 좋게 대접해줬다고 한다. 몇몇 반공단체가 보도하던 탄광행은 터무니없음이 드러났는데, FIFA까지도 사실 여부를 조사할 정도였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8강을 이끌고도 선수들이 숙청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 몇몇 선수들을 봐주던 정치적 배후 지지자들이 숙청되면서 따라서 축구계에서 숙청된 경우가 있을 뿐.[24] 현재는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로 2013년부터 승격하여 참여하다가 16년에 해체되었다.[25] 여담으로 이때 정대세의 부모님이 런닝맨을 보고는 정대세에게 남조선에 너랑 닮은 친구가 있다라고 했다고 한다.[26] 가사 틀린 게 있으면 수정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