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6:02:50

안영학

북한의 축구감독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안영학
安英學|An Yong-Hak[1]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1978년 10월 25일 ([age(1978-10-25)]세)
일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
국적 조선[2]
본적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양시[3]
본관 순흥 안씨 (順興 安氏)[4]
신체 182cm, 75kg
병역 전시근로역[5]
직업 축구 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도쿄조선제3초급학교
도쿄조선중고급학교 (1992~1997)
릿쇼대학 (1998~2001)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알비렉스 니가타 (2002~2004)
나고야 그램퍼스 (2005)
부산 아이파크 (2006~2007)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2009)
오미야 아르디자 (2010)
가시와 레이솔 (2011~2012)
요코하마 FC (2014~2016)
감독 재일 한국-조선인 축구 대표팀 (2018)
국가대표 37경기 3골 (북한 / 2002~2012)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클럽 경력
2.1. K리그 이전2.2. K리그2.3. 다시 J리그로
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스타일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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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재일 조선인 3세인 축구 선수 출신 감독 K리그J리그, 그리고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다. 현재 일본 요코하마에서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고 있고 조선학교 후배들에게도 무료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국내 축구 잡지 포포투에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해당 칼럼 연재분을 묶어 夢に輝く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칼럼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현재 포포투와의 연재 계약은 종료되었으나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꾸준히 자신의 축구 인생 소식을 칼럼으로 전하고 있는 중.

2020년 9월 5일, 유튜브를 개설했다. #

2. 클럽 경력

2.1. K리그 이전

파일:릿쇼대학 시절의 안영학.jpg
릿쇼 대학 시절의 안영학. 맨 앞 왼쪽에 있다.

파일:안영학 니가타 시절.jpg
5살 때 부모를 따라 도쿄로 이사해 도쿄조선제3초급학교, 중고급학교 중, 고급부를 거쳐 릿쇼 대학으로 진학하였는데, 그러던 중 대학 1년차 선배인 아라이 켄지를 확인하고 있었던 알비렉스 니가타 스태프에게 발견되어 졸업 후인 2002년에 입단하였다. 니가타에서는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003년에 J2리그에서 우승함과 동시에 팀의 J1 승격에 공헌하였으며 승격한 뒤인 2004년에는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였다. 그 후, 2005년에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하여 21경기에 출장하였다.

2.2. K리그

파일:부산 아이파크 시절의 안영학.jpg
2006년부터 부산 아이파크에서 뛰면서 K리그에 입성했다. 사실 처음에는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설이 돌았으나 안영학 측에서 많은 계약금을 요구해 난항을 겪게 되자 협상이 결렬됐고, 이에 부산 아이파크가 적극 나서 영입에 성공하면서 2시즌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올스타전에도 선발되는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2007년 9월 22일 성남 일화 전에서 김영철과의 충돌로 인하여 신장에 부상을 입으며 선수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부산에서는 2시즌 동안 39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하였다.

파일:수원삼성 시절의 안영학.jpg
2008년 안정환과의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지만, 2008년에는 9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9년에도 9경기 1골에 그치며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그래도 2008년과 2009년에 팀의 K리그, FA컵, 컵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하였다.

2.3. 다시 J리그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출장기회를 얻기 위하여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해 5년만에 J리그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 성적 부진으로 장외룡 감독이 사퇴하자 새로 감독에 취임한 스즈키 준으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했고,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도 후반에 들어서 거의 나가지 못했다.

2011년에는 가시와 레이솔으로 이적하였으나 8경기 출장에 그쳤고, 2012년 말 팀을 떠났다.

이후 2013년 1년간은 소속팀 없이 무적상태로 보내다가 2014년에는 J2리그 소속의 요코하마 FC로 이적하였지만, 잦은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2016년 말 방출됐다. 이후에도 현역 연장을 노렸지만 결국 팀을 찾지 못하고 2017년 3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

은퇴 후, 현재 주니스타 축구교실에서 지도자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

3. 국가대표 경력

2002년 9월 7일 서울에서 열린 남북 통일축구 경기 대한민국전에서 북한 대표로 데뷔하였다. 2004년 9월 8일 독일 월드컵 예선 태국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했다.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본선 엔트리에 정대세와 함께 포함되었으며, 주전 미드필더로 조별리그 3경기에 풀 타임으로 출전하였다.

파일:SK004_20080623_130201.jpg
2008년 수원 소속 당시, 6월 22일 치러진 월드컵 3차 예선 대한민국전에 출전하며 북한 대표 유니폼 아래 수원 유니폼을 받쳐입은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원 선수로서의 자긍심과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고.

4. 플레이스타일

활동양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중원을 구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하드워커 타입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다만 부산아이파크 말기에 입은 신장 부상으로 인해 스태미나가 떨어져 내리막길을 걸은 안타까운 케이스.

5. 여담

  • 조선학교를 나왔으며, 국가대표도 북한을 선택했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앙심은 없는 듯 하다.[6] 2002년 한일 월드컵때 대한민국 축구팀이 편파판정으로 올라간거 아니냐는 주변 일본인의 비판을 들었다.[7]인스타그램 계정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주장인 손흥민을 팔로우 하고 있으며, 포르투갈을 누르고 16강에 진출한 포스트에 좋아요를 눌렀다.
  • 오미야 아르디자 시절 팀 동료였던 이천수가 푼 썰에 의하면 팀이 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안영학은 이때 전지훈련을 못 가고 일본에 남아 개인 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괌이 미국령이어서(...)[8]
  • 뭉쳐야 찬다 3의 2023년 11월 19일 방영분에 출연하여 레벨 테스트의 J1리그 대표와 FC요코하마코리아 감독으로 출연했다.

6. 관련 문서



[1] 본인 유튜브에서는 'An Yeonghag'으로 표기[2] 북한 국적으로 알려저 있기도 하지만 홈페이지의 질의응답에서는 남북의 축구협회가 재일동포를 내국인으로 취급하므로 북한 국가 대표가 되기 위해 북한 국적으로 "귀화"할 필요는 없었다고 한다. 조선적은 남북한 모두 국적법에 의해 내국인이므로 "귀화"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국내에서 편의상 조선적 재일동포를 북한국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3] #[4] 2023년 11월 19일에 방송된 뭉쳐야 찬다 3 7회에서 밝혔다.[5] 조선학교가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아 학력 미달으로 판정이다. 물론 안영학 본인은 릿쇼대학을 나왔고 실질적으로 특수 영주권자에게 베푸는 병역 특례다.[6] 애초에 앙심이 있었다면 K리그서 뛸일도 없었다.[7] 북한은 한일월드컵을 보이콧 했다. 본인 마음이 북한에만 있었다면 대한민국 국대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본인의 영주지인 일본에서는 월드컵 경기보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기도 하고...[8] 이 당시만 해도 재일 한국인이 외국을 여행하는 방법은 일본 정부에서 "재입국 자격 증명서"(일본 여권과 외관은 동일하지만 제약은 더 많다.)를 받거나 북한 여권을 받는 방법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여권 발급은 고국 방문도 거부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던 환경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