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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커 리그

JSL에서 넘어옴
일본 사커 리그
파일:Japan_Soccer_League_logo.png
일본어 명칭 日本サッカーリーグ
창설 연도 1965년
폐지 연도 1992년
국가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참가 구단 수 12개 구단 (디비전 1)
16개 구단 (디비전 2)
하위 리그 지역 리그[1]
컵 대회 천황배
JSL컵
최종 우승 구단 요미우리 SC (1991-92)
최다 우승 구단 요미우리 SC, 마즈다 SC (5회)

1. 개요2. 역사3. 해체4. 참가 구단5. 역대 우승, 승강 구단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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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식 명칭 Japan Soccer League, 약칭 JSL인 과거 일본의 1부 리그, 2부 리그 역할을 했던 실업 리그였다. 1993년 프로 리그인 J리그가 출범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2. 역사

1960년대 경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경제 수준에 비해 야구를 제외한 스포츠 수준이 높지 않았던 일본은 1964년 자국에서 열리는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스포츠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졌고, 자연스레 자연스레 축구에 대한 투자도 많아졌다. 특히 올림픽 메달을 가까운 시일 내에 따겠다는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었던 일본축구협회(JFA)는 서독 출신의 데트마어 크라머를 데려오며 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노렸다. 크라머는 일본 선수들에게 선진 시스템을 적용하며 매우 큰 기량발전을 이끌어냈고, 64년 도쿄 올림픽 8강, 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하며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이로 인해 크라머는 일본 축구의 대부라는 타이틀까지 얻는다.

이런 크라머가 주도해서 발촉한 것이 바로 JSL이다. 크라머는 더 높은 수준의 선수를 배출하기 위해선 기존의 여러 산발적 토너먼트 대회보다 리그전 형식의 정기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일본축구협회도 이에 동감하며 리그 출범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일본에서 치러지는 스포츠 중 연간 단위의 리그를 운영하는 종목은 프로야구를 제외하면 하나도 없었다. 당초 크라머는 1억 가까이 되는 일본의 인구를 고려해 독일의 레기오날리가처럼 지역별로 묶이는 리그전을 제안했지만, 이미 신칸센이 깔리기 시작했고 이동에 별 지장이 없을꺼라 판단한 일본축협은 아예 전국단위의 리그전을 계획, 1968년 첫 JSL 시즌을 출범했다. 프로가 아닌 실업 리그였고[2] 향후 팀 수를 늘리기 위해 대학팀에게도 참가 제한을 두지 않은 불완전한 리그였지만, 어찌됐던 일본 역사에서 첫 전국 단위의 리그전이 실시되었다. 원년 8팀이 참가했으며 이 8팀 중 5팀이 J리그 프로팀으로 거듭난다. 특히 그 전까지도 사회인 축구의 강호였던 후루카와 전기, 미쓰비시 중공업, 히타치마루노우치 3대가로 통칭되며 일본 축구계에 강한 발언권을 가진 팀이 된다.[3] JSL의 출범은 배구, 농구, 럭비도 정규 리그를 발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 첫 시즌은 8개 팀이 참가하고 리그 최하위는 기존 사회인 토너먼트 대회 우승팀과의 승강전을 벌이는 형식으로 제한적이나마 승강제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71년까지 많은 구단의 참가 문의가 이어지자 일본축구협회는 리그 확대를 결정했고, 1972년 JSL 디비전 2라는 자체 2부 리그가 도입되었다. 이 시기 가마모토 쿠니시게얀마 디젤와 스기야마 류이치의 미쓰비시 중공업이 리그를 양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축구 대표팀이 아시아에서 다크호스의 입지를 다지는 중이었으나,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 축구는 아시아에서도 중하위권으로 밀리면서 큰 침체기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JSL의 인기도 내려가 관중동원도 힘들어졌고, 이 시기를 일본 축구계에서 일본 축구의 겨울이라고 표현한다.

1980년대 중반 JSL은 이런 위기를 타파하고자 JSL 팀을 주축으로 해서 프로 리그를 출범하는 계획을 만들었고 1986년, 프로화의 준비 과정으로써 JSL에 사상 첫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한다. 프로화를 목표로 둔 구단은 적극적으로 외국인 선수 쿼터를 채우면서 전력을 강화했고 요미우리 SC닛산 자동차가 제일 강력한 두 팀으로 떠오르며 인기와 실력을 모두 나눠 가졌다. 특히 1991-92 시즌 프로화를 앞둔 마지막 시즌에서 양 팀이 맞붙었을 때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 무려 6만 명의 관중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프로화의 가능성을 충분히 엿본 일본축구협회는 1989년 프로 리그 검토 위원회를 발족하고 1991년 (사) 일본 프로 축구 리그가 정식 출범하면서 1991-92 시즌을 마지막으로 JSL은 J리그와 아마추어 리그 JFL로 발전적 해체되었다.

특히 JSL 구단 중 대부분은 기업 주도형으로 만들어진 기업 구단이었다. 이는 JSL만의 특징으로, 주로 노동자, 학생들이 친목 도모를 위해 하나의 축구 클럽을 만들어 그 클럽이 커지는 형태의 다른 나라의 리그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는 방식이다. 이는 JSL이 실업 리그였지만 사실상의 프로 리그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일본 내의 다른 스포츠도 이와 같이 기업 구단 형태로 운영되는 구단이 많았다. 하지만 현역 은퇴 선수들의 모기업 재취업을 보장하는 것을 아니었어서, 은퇴 선수들의 진로 문제가 큰 고민거리였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구단도 점차 JSL까지 올라오게 되지만, 대부분 2부에 머무르고 1부에 정착한 곳은 요미우리 클럽이 전부였다.

3. 해체

1991-92 시즌을 끝으로 기존의 일본 사커 리그는 새로 출범하는 J리그와 J리그에 참여하지 못한 나머지 실업 구단이 새로 구성한 세미 프로 리그인 JFL로 나뉘어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1991-92 시즌 1부 디비전에서 8팀, 2부 디비전에서 준우승을 하며 승격 자격으로 J리그에 참가하게 된 1팀에 J리그에서 처음 데뷔하는 신생팀 1팀까지 합쳐 총 10팀이 1993시즌 J리그 원년 시즌을 구성했다. 다음은 1993년 J리그 원년 시즌을 구성한 10팀이다. 이 10팀은 1992년 하반기 리그 개막의 전초전 대회인 야마자키 나비스코컵으로 미리 예열을 했다.
1992 J리그 나비스코 리그컵 구성 멤버
JSL 1부 우승 JSL 1부 2위 JSL 1부 5위 JSL 1부 6위 JSL 1부 7위
베르디 가와사키 요코하마 마리노스 감바 오사카 산프레체 히로시마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舊 요미우리 SC 舊 닛산 자동차 舊 마쓰시타 전기 舊 마쯔다 舊 JR 후루카와
JSL 1부 8위 JSL 1부 11위 JSL 1부 12위 JSL 2부 2위 신생팀
요코하마 플뤼겔스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가시마 앤틀러스 시미즈 S펄스
舊 ANA 클럽 舊 미쓰비시 자동차 舊 토요타 자동차 舊 스미토모 공업 시민구단

또한 남은 구성원은 새로운 실업 축구 리그인 JFL을 구성해 1993년 시즌부터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J리그 정회원이 아닌 준회원 자격을 먼저 취득하고 그 시즌 일정한 수준의 성적을 올려야 차기 시즌 J리그 입성이 가능한 위치가 되었다. J리그 원년 시즌을 구성할 팀을 고를 때 JSL에서의 성적만 본 것이 아니라 팀의 재정도, 흥행 수준 등 종합적인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1-92 시즌 JSL 3위와 4위였던 야마하도시바가 곧장 J리그로 향하지 못한 것이다.

JFL은 1991-92 시즌 JSL 전체 28개 구단 중 J리그로 올라간 9팀, 그리고 요미우리 SC의 2군격으로 참가하다 해체한 요미우리 SC 주니어팀을 제외한 18팀과 일본 사회인 리그에서 전년도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2팀을 합쳐 20팀으로 구성되었다. JFL은 자체적으로 1부와 2부로 10팀씩 나뉘어 승강제를 구성한다. JFL 1부 최하위 2팀이 강등되고 JFL 2부 최상위 2팀이 승격한다.
1992 JFL 1부 리그 원년 시즌 구성 멤버
JSL 1부 3위 JSL 1부 4위 JSL 1부 9위 JSL 1부 10위 JSL 2부 우승
야마하발동기 도시바 히타치 혼다 후지타공업
주빌로 이와타 콘사도레 삿포로 가시와 레이솔 혼다 FC 쇼난 벨마레
JSL 2부 3위 JSL 2부 4위 JSL 2부 5위 JSL 2부 6위 JSL 2부 7위
얀마디젤 NKK[일본강관] 후지쯔 오츠카제약 도쿄가스
세레소 오사카 1986년 해체 가와사키 프론탈레 도쿠시마 보르티스 FC 도쿄
1992 JFL 2부 리그 원년 시즌 구성 멤버
JSL 2부 8위 JSL 2부 9위 JSL 2부 10위 JSL 2부 11위 JSL 2부 12위
가와사키 제철 NTT 동일본 고후 SC 코스모석유 욧카이치 추오보한
빗셀 고베[5] 오미야 아르디자 반포레 고후 1996년 해체 아비스파 후쿠오카
JSL 2부 13위 JSL 2부 14위 JSL 2부 15위 전국사회인리그 우승 전국사회인리그 준우승
도호 티타늄 교토 시코 SC 타나베제약[6] 오사카가스 세이노운수
現 도호 티타늄 SC[7] 교토 상가 FC 2018년 해체 現 오사카 가스 축구단[8] 1997년 해체

4. 참가 구단

1965년 첫 리그를 구성한 원년 8구단
이후 들어온 구단 중 1부 리그 경험이 있는 구단
이후 들어온 구단 중 2부 리그 경험만 있는 구단
  • 고후 SC
  • 교토 시코 SC[13]
  • 일본경금속 축구부 (우이 클럽) - 1974년 해체
  • 다이니치 닛뽄 케이블 → 미쓰비시 닛뽄 케이블 SC - 2009년까지 사회인 리그에서 활동하다 해체.
  • NTT 서일본 SC - 2011년까지 교토 사회인 리그에서 활동하다 해체.
  • 이바라키 히타치 - 한때 히타치 본사 축구팀과 맞먹는 실력으로 JSL 2부까지 진출했던 지역팀. 1996년 해체
  • 얀마 클럽 - 얀마 디젤의 2군격 팀
  • 후루카와 전기 이치하라 지부 - 이바라키 히타치와 비슷한 케이스. 이후 VONDS 이치하라로 활동중이다.
  • 코스모석유 욧카이치 - 1996년 해체
  • 나고야 SC - 현 도카이 지역 2부 리그 소속
  • 사이타마 SC - 현 간토 지역 2부 리그 소속
  • 토호 티타늄 SC - 현 간토 지역 2부 리그 소속
  • 세이노 운수[14] SC - 1997년 해체. 기후현을 연고로 했음
  • 교토부 경찰 SC - 현 교토 지역 1부 리그 소속
  • TDK 축구부
  • 오사카 가스 - 현 오사카부 2부 리그 소속
  • 가와사키 제철 미즈시마
  • NTT 동일본
  • 마쓰다 히로시마 - 본사 격인 마쓰다 SC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팀. 다만 두 팀간의 선수교류는 일정부분 있었으며, 엄연한 이적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1996년 해체
  • 후지에다시청 축구부 - 현 도카이 지역 1부 리그 소속
  • 요미우리 SC 주니어 - 이 팀은 마쓰다와는 달리 진짜 2군, 아마추어 팀이 맞다. 1993년 1군 팀이 J리그 원년멤버가 되며 프로화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 오츠카 제약
  • 도쿄 가스 축구부
  • 중앙방범 축구부[15]

5. 역대 우승, 승강 구단

시즌 우승
1965 마쓰다 SC
1966 마쓰다 SC
1967 마쓰다 SC
1968 마쓰다 SC
1969 미츠비시 자동차
1970 마쓰다 SC
1971 얀마 디젤
1972 히타치 SC
1973 미츠비시 자동차
1974 얀마 디젤
1975 얀마 디젤
1976 후루카와 전기
1977 후지타 SC
1978 미츠비시 자동차
1979 후지타 SC
1980 얀마 디젤
1981 후지타 SC
1982 미츠비시 자동차
1983 요미우리 SC
1984 요미우리 SC
1985-86 후루카와 전기
1986-87 요미우리 SC
1987-88 야마하 자동차
1988-89 닛산 자동차
1989-90 닛산 자동차
1990-91 요미우리 SC
1991-92 요미우리 SC
시즌 1부 → 2부 강등 2부 → 1부 승격

6. 관련 문서



[1] JSL 내에서 디비전 1, 디비전 2로 승강제 실시[2] 실제 JSL 초기에는 이 부분이 큰 문제였다. 선수들이 어쨌든 회사 직원이기 때문에 업무를 하고 경기에 임해야 했는데, 타 지역 원정이라도 가려면 토요일 오전 업무까지 하고 부랴부랴 장거리 열차를 타고 일요일에 원정 경기를 치른 다음, 회복다운 회복도 하지 못하고 야간열차로 월요일 오전에 복귀해 바로 출근을 하는 강행군이었다. 특히 규슈 끄트머리의 야와타제철과 히로시마의 도요공업이 가장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JSL 초기 시즌을 이들 두 팀이 쓸어담았다. 이후 경쟁심이 붙은 기업들이 점차 JSL 선수들을 본업에서 열외하는 방향으로 관행이 정착했다.[3] 1980년대 이후 재임한 JFA 회장 9명 중 4명이 후루카와, 3명이 미쓰비시 출신으로 번갈아 오르게 된다.(한 명은 선수가 아닌 후루카와의 직원 출신) JFA 회장이 현직 다시마 고조(후루카와 출신) 이전까지는 경선이 아닌 추대로 선발되었음을 고려하면 이들 코어 멤버가 얼마나 강력하게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일본강관] [5] 1994년 연고지 이전 후 재창단[6] 현 미쓰비시 케미컬 홀딩스 산하[7] 현 간토 지역리그 소속.[8] 현 오사카부 리그 소속[9] 목재를 주로 다루는 일본산업회사.[10] 통칭 ANA[11] J리그 원년멤버지만 이후 1999년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합병되어 소멸[12] 현재의 파나소닉[13] 한자 그대로 읽으면 경동자광 즉, 교토의 보랏빛이란 뜻이다. 향후 프로화되어 교토 퍼플 상가라는 팀명을 지을 때의 모티브가 된다.[14] 일본의 운수, 택배 회사.[15] 일본의 사설 경비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