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1:44:14

권양숙

노무현 부인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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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배우자
권양숙
權良淑 | Kwon Yang-sook
파일:external/www.pa.go.kr/L_GYS_02.jpg
출생 1948년 2월 2일[1] ([age(1948-02-02)]세)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2]
사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35 (본산리)
현직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 이사장
활동기간 제16대 대통령 배우자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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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 본관 안동 권씨 (安東 權氏)[3]
부모 아버지 권오석, 어머니 박덕남
배우자 노무현[4]
자녀 아들 노건호, 딸 노정연
학력 진영대창국민학교[5] (37회 / 졸업)
혜화여자중학교 (졸업)
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 (중퇴)
경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
대한암협회 명예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명예회장
방송통신대학교 명예후원회장
국립극장후원회 명예고문
예술의전당후원회 명예후원회장
국립암센터 명예후원회장
종교 불교 (법명: 대덕화)[6] }}}}}}}}}

1. 개요2. 생애
2.1. 퇴임 후
3. 논란4. 여담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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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배우자이다.

2. 생애

1948년 2월 2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동대마을)에서 빨치산이자 비전향 장기수였던 아버지 권오석[7]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덕남(朴德南, 1920. ~ 2017.2.24.)[8] 사이의 1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진영대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혜화여자중학교를 졸업, 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현 계성여자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9]
파일:권양숙 결혼.jpg
권양숙과 노무현의 결혼식 사진
노무현과는 1973년 결혼했으며[10] 노무현의 사법시험 준비를 뒷바라지했다. 노무현은 권양숙의 도움을 받고 197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76년 사법연수원 시절 꽤 준수한 성적[11]을 올린 덕에 1977년, 1978년 두 해에 걸쳐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할 수 있었다.
파일:권양숙 젊은시절.jpg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노무현과의 사이에서 아들 노건호, 딸 노정연까지 1남 1녀를 두었다. 1988년 노무현이 YS의 공천으로 정계에 입문,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남편의 정계활동을 내조했다. 1997년 노무현이 대선에 출마한 DJ를 돕기 위해 서울로 이사하면서 같이 올라왔고, 이 후 2003년 2월까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1가 현대하이츠빌라에서 거주했다. 2002년 대선 기간에는 남편을 대신해 노사모 홈페이지 관리도 하고,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청와대에서 생활하였다. 왕성한 대외활동을 했던 이희호 여사와 달리[12] 권양숙은 조용하게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었는데,[13] 동자승들이 청와대에 견학을 오면 직접 본인이 행사에 참석해 진행을 했다.[14]

2.1. 퇴임 후

파일:마지막 노무현 부부 사진.jpg
마지막으로 함께 찍은
권양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2008년 2월 25일, 노무현의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면서 권양숙도 남편과 함께 봉하마을로 귀향하였다. 봉하마을에 가서도 노무현은 방문객들과 대화를 하거나 주민들과 농사일을 하는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했는데, 권양숙은 가끔 방문객 대화에 게스트처럼 나오거나 마을 행사 등에 참여하는 등 남편보다는 제한적인 범위에서 대외활동을 했다.

하지만 귀향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권양숙 본인도 수사 레이더에 올랐다. 수사가 시작된 지 4개월 뒤인 2009년 4월, 검찰은 권양숙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였으며[15] 박연차가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에게 준 100만 달러 의혹에 대해 집중추긍했다. 언론에서는 권양숙이 마치 피의자 자격으로 불려간 것처럼 기사를 썼지만, 엄연히 권양숙은 참고인 신분이었고 그 어떤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권양숙이 검찰에 불려가고 20여일 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검찰청 중수부에 소환되어 10시간동안 조사를 받았으며 검찰은 5월 중순 쯤 권양숙을 추가 조사할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16]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끝나게 된다. 권양숙은 노무현의 서거 소식을 듣고 양산부산대병원을 방문,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였으며[17] 이 후 남편의 사망선고가 떨어진 뒤 봉하마을의 사저로 이동해 이틀동안 요양을 하였다.
파일:권양숙 김대중.jpg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의
권양숙과 김대중 전 대통령
입관식에는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였으며,[18] 국민장 영결식에도 상한 몸을 이끌고 참석하였다.[19] 영결식 내내 의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헌화를 마치고 오열하자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으며 화장예식이 진행되기 전 마지막 고별기도를 하던 중 다시 오열하며 주저앉기도 하였다. 화장을 마친 뒤 남편의 유해를 봉하산에 있는 정토원에 임시 안치했다가, 49재에 맞춰 마련된 묘역에 안장하였다.

2009년 9월 1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과 봉하재단이 분리되면서, 봉하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재직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며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의 싱크탱크 역할도 겸하는 노무현재단과 달리 봉하재단은 순수히 봉하마을 시설관리와 농작물 사업 등 민간 차원의 사업에 집중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에도 봉하마을에 계속 거주하였으나 2018년 5월 1일, 사저가 개방되면서 진영읍 내에 새로운 자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단 봉하마을에 정치인이 방문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전의 사저에서 접견을 하고 있다.
파일:김건희와 권양숙 사진.jpg
권양숙과 김건희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배우자가 된 김건희가 대선배 격인 권양숙을 예방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자신을 만나러 온 김건희와 90분 가까이 환담을 나눴고 함께 봉하마을에 자리한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기도 했다.

3. 논란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 씨는 권양숙이 건넨 13억 원을 불법적인 환치기를 통해 송금했으며, 이에 대해 노정연 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권양숙은 입건 유예되었다. 노정연 씨는 13억 원은 어머니가 보내준 돈이라고 밝혔으며, 권양숙이 이 13억 원의 출처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때 청와대를 방문한 지인들과 퇴임 이후 봉하마을 사저로 찾아 온 지인들이 준 돈을 모아서 보관해 오던 것”, "‘지인’에 대해서는 “인간적 정리상 구체적 신원을 밝힐 수 없다” 라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개된 재산 규모를 감안할 때 13억 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개한 전 재산의 1.4배나 되는 규모[20]이기 때문에 재임 중 지인에게 돈을 받았고, 그게 누구인지 공개할 수 없다는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금전을 받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비서실장이자 노무현의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변호사[21]도 인정한 사실이다. #

4. 여담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2월 안검하수 증세로 쌍커풀 수술을 받았을 때 같이 수술을 받았다. #
  • 권양숙의 모친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모인 박덕남이 2017년 2월 24일에 사망했다. 향년 96세.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최상위권이자 민주당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다음가는 작은 어른으로 대우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지만, 남편과는 달리 이미지가 좋지 않은 편이다. 보수 진영에게는 영원한 정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며 부친 권오석빨치산 활동 논란과 부패 논란으로 인해 찍혀 있고, 반대로 민주당계 진영에게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남편인 노무현이 자살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하여 원한을 샀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좌우 양측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어느 쪽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셈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역대 대통령 영향력 순위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가 보수 진영에서 가졌던 이미지, 육영수 사후 대통령 배우자 직무 수행을 한 박근혜가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올라선 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 이희호[23]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에게 마지막까지 진보의 큰어른 대우를 받아왔다는 것과 비교하면, 권양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언론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처신하고 있다. 현재는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 진영읍 내의 다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고, 사저가 개방된 이후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예방할 때 얼굴을 비추는 것 말고는 공개적인 활동은 피하고 있다.
  • 도전 골든벨 300회, 독서 골든벨에 나와서 문제를 직접 낸 적이 있었다.
  • 2003년 느낌표 출연분에 따르면 책 한 질을 독파하며 여름 휴가를 보내는 등 독서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얀거탑 역시 이 당시 읽었다고 밝혔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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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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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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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대통령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튀르키예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2023년 7월 13일 안제이 두다 대통령 폴란드
2023년 11월 21일 찰스 3세 국왕 영국 }}}}}}}}}

노무현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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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배우자, 형제자매, 처가 및 직계 가족 일람
부친
노판석
장형
노영현
차형
노건평
노무현
(아내 권양숙[1])
아들
노건호
손녀
노서은
[1]: 권오석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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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털 인물정보에는 1947년생으로 나온다.[2]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3] 복야공파 응경(應慶)계 36세손.[4] 2009년 사별[5] 現 진영대창초등학교[6]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와 법명이 같다.[7]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했을 당시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이에 노무현은 그 유명한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내용의 연설로 강경하게 대응했고, 이것이 오히려 득이 되어 순조롭게 정치인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참고로 노무현은 장인어른의 빨치산 경력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8] 규정공파 25세손, 혁거세 69세손. 박희진(朴熙進)의 딸이다.[9]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 학력 문제로 정치적 반대파 및 우익 세력들로부터 온갖 비하와 음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저 당시에는 여성이 고등학교까지(중퇴이긴 하지만) 갔다는 것만 해도 지금의 대졸자 급의 취급을 받던 시대였다. 권양숙이 재학하던 1960년대 초반 훈성여자상업고등학교(계성여자고등학교)는 부산 서구 학교 밀집지역에 소재한 중위권 사립학교에 속했다. 정치적 반대파와 우익 세력들이 계성여자고등학교를 훗날의 실추된 이미지를 가져와서 똥통 학교라고 비하하지만,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가 지금의 수준으로 몰락한 것은 1974년 고교평준화로 인해 부산의 고등학교 서열이 완전히 뒤엎어진 이후였다. 1974년 이전에는 명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학교였다.[10] 느낌표에 출연한 노 대통령의 회고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권 여사에게 유주현대원군을 건네며 가까워졌다고 한다.[11] 여기서 '꽤 준수한'이라는 말은 노무현 자신이 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법연수원 성적 순서대로 판사가 뽑혀나가고 그 다음으로 검사가 뽑혀나간다. 그래도 당시에는 사법시험 선발 인원 자체가 100명 미만으로 극히 적었기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 자체가 먼치킨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특히 노무현이 합격한 17회 사법시험 합격 인원은 60명으로 다른 해보다도 유난히 적었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300명으로 늘어난 23회 사법시험 (연수원 13기) 이전에는, 사법시험 합격자는 과거 민주화운동 전과등 결격사유가 없는 한 거의 100%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었다. 노무현이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보기 위해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을 때도 그 자신을 포함해서 부산직할시 내 전체 변호사가 3명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12] 이희호는 김대중과 결혼하기 전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하면서 여러 사회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특히 여성운동계에서는 1세대 여성운동가로 불리며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DJ과 지금과 같은 정치적 명성을 쌓게 된 데에는 이희호 여사의 영향력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 실제로 여성부 창설과 같은 김대중 정부의 여성, 복지 정책은 이희호 여사의 의중이 많이 반영되었다.[13] 이를 두고 홍준표는 김건희에게 "지금 대통령의 국민 지지가 낮은 이유 중 하나가 퍼스트레이디의 처신이라면 당연히 권양숙 여사처럼 처신하셔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14] 이 때 권양숙은 동자승들에게 손수 끓인 목련차와 한과를 내주었다. 훗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윤옥이 동자승들을 청와대로 불러 고래밥과 헬로팬돌이 음료수를 내주어 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뒤 재조명되기도 했다.[15] 이 때 아들 노건호도 함께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갔다.[16] 이 때도 권양숙은 참고인 신분이었다.[17] 문재인이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밝히길, 권양숙은 비서관들에게 남편이 조금 심하게 다쳤다 정도로만 알고 병원에 왔으며 의료진들에게 권 여사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상처부위를 조금만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에 의료진들은 권양숙이 도착하기 전까지 긴급수술을 해서 상처부위와 찢어진 피부를 모두 봉합했으며, 상처 없는 깨끗한 얼굴로 남편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18]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편히 가세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19] 발인식에서 손녀 노서은과 며느리가 권양숙을 부축하기도 했다.[20] 2008년 2월 말 공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산규모는 노건호(예금 5,400만 원), 손녀 노서은(2,700만 원)의 예금까지 다 더해도 9억 7,200만 원이었다.[21] 이후 제 19대 대한민국 대통령.[22] 작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아닌 송우석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듯이 권양숙은 장수경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23] 이희호는 이미 김대중과의 결혼 이전부터 여성계에서 꽤 지명도가 높았고, 대통령 배우자 치고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인물이었다. 오히려 김대중과의 결혼 및 내조로 인해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았거나, 당시 시대상으로 저런 한계가 있었으니 2020년대처럼 김대중이 역으로 이 여사를 여성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내조했으면 여성계의 더 큰 거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24] 박정희는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으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발길을 끊었고, 불심이 깊은 아내의 영향 때문인지 집권기간 비교적 친불교 성향을 보였다. 노무현은 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불경도 읽었다 하며, 변호사 시절에는 부산 당감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바빠서 신앙 생활은 거의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