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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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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논란 및 음모론4. 영향5. 여담
파일:노무현유서.jpg

1. 개요

노무현 전 대통령2009년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남긴 유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하여 검찰 수사를 받아 재임 당시의 측근들이 연이어 구속되었다. 이 유서를 통해 당시 그가 겪고 있었던 힘든 심정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주변인들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자책감이 담겨 있다.

사저에 위치한 컴퓨터로 작성했으며 아래아 한글 파일로 서버에 저장되었다. 경찰의 조사 결과 경호원과 함께 사저를 나서기 30~40분 전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2. 내용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5.23 새벽

3. 논란 및 음모론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대한민국 대통령답게 유서는 아래아 한글 파일로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법조인 출신인 노무현이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방식으로 유서를 남겼다는 점[1]에서 잠시 유서의 진위 논란과 타살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노무현의 유서는 법률 관계에 대한 의사 표시(예컨대 유증이나 사인증여와 같은 재산의 이전)가 아니라 자신의 시신을 처리할 방법을 지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함과 동시에 대국민담화문의 역할을 하는 편지에 가까운 내용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별개로 유서 내용 또한 잠정적으로 노무현이 직접 쓴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유서가 공개되었을 당시 봉하마을 주민으로부터 받은 유서의 앞부분이라고 주장되는 내용이 온라인 상에 퍼지면서 음모론이 횡행했다. 당시 음모론자들이 퍼뜨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국정이 잘못됐다고 비판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마치 나를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처럼 비춰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 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음모론자들이 퍼뜨린 위 내용은 조잡한 문장과 한탄하는 어조로 되어 있어 간결하고 담담한 어조로 쓴 진짜 유서와 조합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달변가로 알려진 노무현의 면모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쓰지 않았다는 걸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결정적으로 노무현재단에서 정확한 유서 내용을 재확인하여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조작으로 확정되었다. 아래의 기사 링크에 노무현재단 측 입장이 포함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 말기 들어 국가 기관에 의한 살인 및 유서 조작 의혹이 다수 불거지면서 노 전 대통령 사망에 관련한 음모론이 다시 한 번 제기되기도 했다.

4. 영향

노무현은 유언대로 화장되어 집 가까운 곳에 묻혔다. 수원시연화장에서 화장했기 때문에 수원시는 3주기인 2012년에 노무현을 추모하는 추모비를 세웠다. 국립현충원에 묻히지 않은 대통령으로는 가족묘지에 묻힌 윤보선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2] 아주 작은 비석만 남겨 달라는 유언에 따라 무덤에는 봉분 없이 남방식 고인돌 형태에서 따 온 평범한 비석 하나만 세워졌지만 지지자 등에 의해 무덤 주변에 추모공원 겸 묘역이 크게 조성되어서 삼각지대 형태의 묘역 전체로 따지면 역대 대통령 묘역 중 가장 큰 묘역이 되었다.[3]

노무현이 생전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사후 평전인 '성공과 좌절', '운명이다'가 출판되었다. 한편 그의 절친이자 제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은 노무현 사후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출판했으며 유서의 "운명이다"와 관련지어 이러한 문장을 썼다.
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책의 흥행으로 문재인은 이해찬의 제안으로 전국으로 북콘서트를 다니기 시작했고 노무현 생전에 정치 참여를 거부하던 문재인이[4] 중앙 정치계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해당 유서를 패러디한 주데텐란트의 체코군이라는 시를 올린 적이 있다. 해당 글은 일베 유저가 기갑 갤러리에 노무현의 유서를 패러디하여 올린 것인데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올려서 논란이 되었다.

5. 여담

유서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실제로 노무현은 사망하기 직전에 극심한 우울증 증세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조사 이후인 5월 초부터는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자신이 집필 중이던 자서전에서도 손을 뗐으며, 서거하기 며칠 전부터는 식사도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무현의 동창이자 봉하마을 조합장인 이재우가 서거 후 인터뷰에서 말하길, 사망하기 며칠 전 노무현을 만났는데 평소에는 본인이 먼저 대화를 주도했었지만[5] 그 날은 친구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기만 할 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심각한 우울감에 빠지고 식사와 사람과의 대화를 힘들어하는 모습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한 정신과 의사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유서를 읽은 뒤 본인이 직접 진료를 안 했음에도 노무현이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앓았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고 말했을 정도다.

[1] 민법에서는 유서를 컴퓨터로 쓰면 안된다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유언장 문서 참조[2] 다만 대통령이 묻힌 묘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국가보존묘지로 지정돼 있어 사실상의 국립묘지나 다름없다. 윤보선의 묘지도 마찬가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퇴임한 대통령이 자신의 묘지가 보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수목장으로 치르거나 해양산분하는 등 자연장으로 치르는 방법밖에 없다.[3] 정식으로 가꿔진 봉분과 묘역 전체로 따지면 국립서울현충원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 규모가 가장 크다.[4] 2003년 민정수석비서관 취임 기자회견 때부터 그는 민정수석으로 끝내고 정치 활동은 안 할 것이라고 못박았고 2004년 총선 때는 출마를 권유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피해 도피성으로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히말라야로 떠나기도 했다. 2008년 2월 퇴임 후에는 양산으로 가서 칩거하며 기성 정치인들의 방문을 거부할 정도로 정치 활동에 부정적이었다.[5] 이 날 노무현을 위로하려고 소주와 통닭을 사갔지만 노무현은 사온 음식에 손도 안 대고 대화하는 내내 줄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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