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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法務法人 釜山대한민국의 법무법인으로 1995년 7월, 문재인 변호사가 설립한 로펌이다. 창립 당시의 명칭은 부산 종합 법률사무소.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부산광역시, 나아가 부울경을 기반으로 한 로펌이다. 전신은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로, 이 시기를 포함하면 1980년대에 세워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법률사무소다.
2. 역사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잠시 판사 생활을 하다 1978년 부산으로 내려온 노무현이 세운 법률사무소에 198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부산으로 내려온 문재인이 합류하면서 동업을 시작하여 합동법률사무소로 출범한 것으로 시작하였다. 당시 위치는 부산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21-10 (부민동3가)에 있었다. 이후 부산지방법원이 부민동에서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하면서 부산광역시 연제구 법원로 28 (거제동)로 옮겼다. 노무현이 세울 초창기에는 등기 및 세법을 주로 담당하였고 부림사건 이후로는 노무현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이후에는 노동법률사무소로 알려지게 되었다.부민동 시절 당시 건물. 훗날 대통령이 2명이나 나온 자리가 된다.[1]
당시 문재인과 정재성 변호사, 건물주 이정이 씨 등이 함께 돈을 모아 건물을 구매했는데 1층에 남경복국, 2, 3층에 합동법률사무소를 내게 되었다. 남경복국은 이정이 씨가 직접 운영했다. 복국 식당을 운영한 이유는 '노동자와 민주화를 위해 일한다면 직접 노동을 해 봐야 한다'라고 문재인이 직접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이 건물이 존재하며 구 법률사무소는 원룸으로 리모델링되었고, 1층 복국집 자리에는 "바보면가"라는 밀면 식당이 영업하는 중이다. 이 식당 사장은 처음엔 법무법인 부산과 건물이 연관된 줄 몰랐다가,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보고 알게 되었고 이후 노무현의 별칭에서 따서 식당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2명이나 만들어낸 건물이다.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를 제외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김외숙 변호사: 문재인 정부에서 법제처장과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을 역임. 공직 생활을 마친 후 다시 복귀.
- 허진호[2] 변호사: 참여정부 시절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역임.[3] 지금은 서울에 본인의 사무실을 차렸다.
- 권혁근 변호사: 부산교육청 고문변호사 역임, 여전히 법무법인 부산에 남아있다. 마호메드 아라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 정재성[4] 변호사: 노무현의 조카사위.[5] 민변 부산지회장 역임.
- 최성주 변호사: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및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역임. 현 대표.
사진의 날짜 때문에 1990년 1월 24일에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데 김외숙 변호사의 합류가 1992년이므로 사진이 찍힌 날짜에 대해선 좀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참고로 해당 사진은 이정이 씨가 직접 찍었었는데, 어쩌다 보니 손녀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서 유명해졌다고.
원래 문재인의 자리에는 노무현의 고향 후배였던 박정규[6] 변호사가 앉을 뻔 했다. 절친했던 고향 후배의 사법고시 합격 소식에 경탄한 노무현이 자신의 사무실 한쪽에 방과 책상까지 마련해주고 수임에 따른 수익도 n분의 1로 나눠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나 정작 박정규는 변호사가 아닌 검사를 하겠다고 밝히면서[7] 계획이 꼬였다. 그러자 노무현이 박정규에게 "그러면 괜찮은 사람이나 하나 소개시켜 주고 가라"고 말했고 박정규가 고민 끝에 소개해준 사람이 바로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판사 임용 탈락 후 실의에 빠져 있던 문재인이었다.
실질적인 창업자인 노무현은 전신인 합동법률사무소 시절인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면서 사무소를 떠났다가[8]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2000년에 다시 사무소로 들어와 2002년 대선에 당선되면서 탈퇴했다. 설립자인 문재인은 법인의 대표 변호사로 있다가 청와대에서 근무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법인을 잠시 탈퇴했고, 2008년에 복귀하여 2012년까지 근무한 뒤 2016년에는 대선 준비를 위해 남아있던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법인을 떠났다. 참고로 이 두 사람은 대통령 당선 직후에 민변을 탈퇴했다.
2023년 기준 대표 변호사는 최성주 변호사이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및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를 역임했다.
3. 역대 대표변호사
- 2대: 정재성(2003~2008)[10]
- 3대: 문재인(2008~2012)[11]
- 4대: 정재성(2012~2022)[12]
- 5대: 최성주(2022~)
4. 여담
1980년대 합동법률사무소 시절 광고. |
대통령을 2명이나 배출한 유일한[13] 법률사무소다. 그 외에도 법제처장 1명, 국회의원 3명[14]을 배출했다. 국내 최대 로펌이라는 김앤장조차도 한 수 접어줘야할 정도.
법인에서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는데, 문재인 변호사 시절 항소기일을 놓쳐버린 사건이 그것이다. 때문에 정치인 문재인을 비판하는 안티들이 종종 들고 오는 소재기도 한데, 당시 법무법인 부산 측에선 소송의뢰인들에게 합의서를 보낸 모양.# 2012년 당시 진선미 민주통합당 캠프 대변인은 노동자들이 정식으로 항소 의뢰를 하지 않았었다고 반박했고, 새누리당은 재반박하는 등# 당시 선거 정국과 엮여 한동안 시끄러웠다.
5. 야구 관련
부산이 낳은 불세출의 스타이자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였던 최동원 선수가 1988년 선수협을 만들 때 이 곳을 찾아와서 당시 변호사이자 경남고 선배였던 문재인과 상담했다고 한다. 이는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에서 문재인이 직접 밝힌 내용.최동원과 문재인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최동원의 지인이 이 법률사무소를 소개해준 덕분이다. 선수협 창설 추진 당시 최동원은 "내가 법을 잘 모르는데 노동법에 대해 법률 자문을 받을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홀로 부산지역의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그러던 중 최동원의 한 지인이 "노동법에 정통한 법률사무소가 부산 부민동에 있고 상담도 무료로 해준다고 하더라"라며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지인의 소개를 받아 최동원은 법률사무소를 방문했고 당시 사무실에 있던 대표변호사 문재인이 선수협 설립에 대한 법률 자문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문 활동에도 선수협의 설립은 실패로 돌아갔다.[15]
이 때의 만남을 계기로 문재인은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이 됐고[16] 최동원은 은퇴 이후 노무현에 의해 꼬마민주당에 영입돼 정치인이 된다. 최동원은 1991년 지방선거 때 부산직할시 서구 제1선거구에서 부산직할시의원에 출마한 적도 있었으나 낙선하였고 이후 정계와 인연을 끊고 방송계로 향하게 된다.
이후 문재인은 19대 대선 부산 유세 때 악바리로 유명한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정태와 같이 자이언츠 대표 응원가 중 하나인 '부산 갈매기'를 부르기도 했다. 롯데 팬이 아니라면 굳이 알지도 부르지도 않을 노래이기 때문이고, 어지간한 롯데 팬 아니면 완창도 어렵기 때문. 이외에도 문재인은 해태 타이거즈 왕조의 주역인 김응용 전 감독, 김성한 전 감독 등이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공개 지지선언을 하는 등 야구계와 인연이 깊다.
후에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이 2017년 한국시리즈에 시구를 하러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 갔을 때 마운드에서 최동원 선수의 친동생인 최수원 KBO 심판위원을 뒤늦게 알아보고 크게 놀란 뒤 악수를 나눴다. [문재인 시구 뒷이야기] 대통령은 ‘롯데팬’, 참모들은 ‘기아팬’
참고로 부산에서 청소년기를 지낸 노무현 전 대통령도 롯데 자이언츠 팬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스토리가 있는데 롯데가 한참 8888577을 찍고 있던 2006년 당시 롯데가 엘꼴라시코에서 9회말에만 6점을 내주며 9:4 경기를 9:10으로 패하자[17]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강병철이 부산상고(현 개성고) 동문이라는 점 때문에 어떤 초등학생이 강병철 감독 퇴진에 힘써달라는 글을 청와대 열린마당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롯데팬 '어린이'의 속 터진다는 글. 이외에도 경남 거제 출신으로 부산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생전에 롯데 팬이었다.
[1] 사진 왼쪽 아래에 보이는 회색의 큰 건물은 부산대학교병원이다.[2] 영화감독 허진호와는 동명이인[3] 역대 이사장 중 검사 출신이 아닌 최초의 인물[4] 로앤컴퍼니 대표와 동명이인.[5] 노무현의 검시 당시 유족대표로 참관했다.[6] 노무현과 문재인을 평생 동지로 이어준 사람.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했는데 전임자가 문재인이었고 그가 민정수석 자리에서 내려온 뒤 바톤을 이어받은 후임자도 문재인이었다. 노무현과는 김해 장유암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같이 했다.[7]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법조계에 있으려면 무조건 검사를 해야 한다고 목을 매는 바람에 별 수 없이 검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8] 이후 1993년부터 1998년까지 5년간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근무했는데, 이곳은 당시 천정배, 전해철이 근무하고 있었다.[9] 법무법인 부산의 창립자이자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실질적 창립자는 노무현이긴 하다.) 참여정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며 사직했다.[10]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이다.[11] 참여정부 임기만료 6개월 뒤인 2008년 9월 복귀. 자서전 <운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비서실장 퇴임 이후 바로 변호사를 하기 어려워 몇 개월 공백기를 두고 법인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 후 2012년 총선 출마를 위해 대표변호사에서 물러났고, 2016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분 모두를 매각하며 법인을 떠났다.[12] 2020년 발생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당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문서공증 및 재판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래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김영춘 당시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하였으나 오거돈 전 시장 변론 등에 따른 논란으로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래서인진 알 수 없지만 대표변호사직도 얼마 안가 물러났다.[13] 애초에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이렇게 3명뿐이다. 따라서 20대 대선 전까지는 대통령을 배출한 유일한 법률사무소였고, 법무법인(유) 태평양 출신의 윤석열이 당선된 이후에도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법률사무소는 이곳뿐이다.[14] 앞서 언급된 대통령 둘에 김해영 의원까지. 김해영의 경우 사법연수생 때 변호사 시보를 여기서 했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당 주류와 대치되는 발언도 제법 하지만) 김해영 의원을 친노-친문의 적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15] 오늘날의 선수협이 정식 결성된 것은 최동원의 선수협 결성 시도 이후 12년이 지난 2000년 초이고 이듬해인 2001년 KBO로부터 정식 인정을 받았다.[16] 다만 1992년 한겨레신문 주최로 가진 좌담회에서는 "롯데가 우승을 한다고 해서 시민의 기분은 좋겠지만 본인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한 것의 연장선이었으며 해당 발언과는 별도로 평소 문재인은 야구에 대해 관심이 매우 컸다고 술회한 바 있다.[17] 여담이지만 LG 트윈스도 6668587667을 찍던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