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04:28:54

온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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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 비류 온조
* 『수서』 에 언급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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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서간 김수로 이진아시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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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초대 국왕
시조 온조왕 | 始祖 溫祚王
파일:온조왕상.jpg
국학원 역사 문화 공원 내에 있는 온조왕의 동상[1]
<colbgcolor=#008080><colcolor=#fbe673> 출생
(음력)
기원전 38년 전후[2]
졸본부여 졸본성
(現 중국 랴오닝성 번시시 오녀산성)
사망
(음력)
28년 2월 (향년 65세 전후)
백제 위례성
(現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일대)
능묘 미상
재위기간
(음력)
백제 초대 국왕
기원전 18년 ~ 28년 2월 (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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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80><colcolor=#fbe673> 성씨 부여(扶餘)[3] / 해(解)[4]
온조(溫祚)[5] / 은조(恩祖)[6]
부모 부왕 동명성왕 혹은 우태
모후 소서노
왕후 다루의 모후
형제자매 유리,[7] 비류
자녀 태자 다루
왕자 덕좌
존호 시조(始祖)[8]
왕호 온조왕(溫祚王)
별호 음태귀수왕(陰太貴首王)(?)[9] }}}}}}}}}

1. 개요2. 생애3. 가계도4. 《삼국사기》 기록5. 기타6. 대중매체에서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馬韓漸弱 上下離心. 其勢不能久 儻爲他所幷 則脣亡齒寒 悔不可及. 不如先人而取之 以免後艱.
마한이 점점 약해지니 상하의 마음이 떠나간다. 그 세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인데 만일 타인이 취하면 순망치한의 격이라 후회해도 늦는다. 차라리 먼저 취하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낫다.
마한을 합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발췌
680년을 지속한 백제 왕조의 건국자이자 초대 혹은 2대[10] 군주이자 건길지. 고대 삼국의 시조 중 유일하게 탄생 설화나 전설이 내려 오지 않으며 왕자로서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고구려를 떠나[11] 백제를 건국한 인물이다. 부여동명왕, 고구려고주몽, 신라박혁거세석탈해김알지, 금관국수로왕, 반파국이진아시, 고자국말로왕 등의 건국 이야기와는 달리 신비적인 요소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고대 국가 가운데 백제의 건국 설화는 고조선건국 설화와 더불어 난생설화가 아니고 고조선 역시 신화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제 건국 설화가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온조왕에 대해서 "몸이 크고 성품이 효도와 우애가 있었으며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하였다."라고 기록했다.#

아래 서술된 내용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 기록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건국하자마자 중앙 집권을 이루고 삼한 중 가장 강했던 마한까지 정복한 대단한 인물이겠으나, 고고학이나 《삼국지》 등 외국 사료와 교차검증되지 않기 때문에 이 내용을 모두 사실로 보는 학자는 거의 없다. 다른 고대 국가들의 건국이 신화적으로 윤색되었듯[12] 백제의 건국도 비록 신화 형태는 아니지만 다른 고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백제인의 과장이 더해졌다고 보면 된다.[13] 대체로 사실이라고 인정되는 것은 마한과의 외교 관계 기사 등 소수이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온조왕/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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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계도

외할아버지: 졸본부여왕 / 연타발
할아버지: 해모수 / 해부루왕의 서자(庶子)
할머니: 유화부인
아버지: 동명성왕 / 우태
어머니: 소서노
형제: 유리명왕 / 비류
아들: 다루왕

4.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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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구수 · 부여사반 · 부여고이 · 부여책계 · 부여분서 · 부여비류 · 부여계 · 부여구 · 부여수 · 부여침류
25권 「백제 3권 (百濟 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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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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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40권까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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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시조 온조왕 본기〉
一年 백제가 건국되고 온조왕이 즉위하다
一年夏五月 동명왕의 사당을 세우다
二年春一月 말갈에 대한 방어 대책 마련을 지시하다
二年春三月 을음을 우보에 임명하다
三年秋九月 말갈을 크게 격파하다
三年冬十月 겨울에 우레가 일어나고 복숭아, 오얏꽃이 피다
四年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다
四年秋八月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 관계 맺다
五年冬十月 사냥하여 신록을 잡다
六年秋七月 일식이 나타나다
八年春二月 말갈을 크게 격파하다
八年秋七月 백제와 낙랑의 우호 관계가 단절되다
十年秋九月 신기한 사슴을 잡아 마한에 보내다
十年冬十月 말갈이 북쪽 국경을 침입하다
十一年夏四月 말갈이 낙랑의 부탁을 받고 병산책을 공격하다
十一年秋七月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 가는 통로를 차단하다
十三年春二月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오다
十三年 왕의 모후가 죽다
十三年夏五月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를 계획하다
十三年秋七月 하남 위례성으로 백성을 이주시키다
十三年秋八月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 옮긴 사실을 알리다
十三年秋九月 성과 대궐을 쌓다
十四年春一月 도읍을 옮기다
十四年春二月 백성을 위로하고 농사를 장려하다
十四年秋七月 한강 서북방에 성을 쌓고 주민을 이주시키다
十五年春一月 궁궐을 새로 쌓다
十七年 낙랑이 침입하여 위례성을 불태우다
十七年夏四月 사당을 세우고 국모를 제사지내다
十八年冬十月 말갈을 격파하고 추장을 생포하여 마한에 보내다
十八年冬十一月 낙랑을 공격하기 위해 구곡까지 행차하다
二十年春二月 천지신명에게 제사지내다
二十二年秋八月 석두와 고목 2성을 쌓다
二十二年秋九月 말갈을 격파하다
二十四年秋七月 웅천책을 세우자 마한이 항의하다
二十五年春二月 한성의 민가에서 를 낳다
二十六年秋七月 마한 병합을 계획하다
二十六年冬十月 마한을 기습하여 합병하다
二十七年夏四月 마한을 멸망시키다
二十七年秋七月 대두산성을 쌓다
二十八年春二月 다루를 태자에 임명하고 군사에 관한 일을 맡기다
二十八年夏四月 서리가 내리다
三十一年春一月 민가를 남부와 북부로 편성하다
三十一年夏四月 우박이 내리다
三十一年夏五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十一年夏六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十三年 큰 가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려 도둑이 생기다
三十三年秋八月 동부와 서부를 설치하다
三十四年冬十月 마한 잔당의 반란을 진압하다
三十六年秋七月 탕정성을 축조하고 주민을 이주시키다
三十六年秋八月 원산과 금현의 두 성을 수리하고 고사부리성을 쌓다
三十七年春三月 달걀만한 우박이 내리다
三十七年夏四月 흉년이 들어 고구려로 도망간 사람이 많이 나타나다
三十八年春二月 지방을 순방하다
三十八年春三月 농업잠업을 권장하고 백성의 부역을 줄이다
三十八年冬十月 천지신명에 제사지내다
四十年秋九月 말갈이 술천성을 공격하다
四十年冬十一月 말갈이 부현성을 습격하다
四十一年春一月 북부의 해루를 우보로 임명하다
四十一年春二月 위례성을 수리하다
四十三年秋八月 아산벌에서 사냥하다
四十三年秋九月 기러기가 왕궁에 모여 들다
四十三年冬十月 남옥저 구파해 일행이 귀순하다
四十五年 큰 가뭄이 들어 초목이 마르다
四十五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서 백성의 가옥이 손상되다
四十六年春二月 온조왕이 죽다

무려 65줄. 백제의 모든 왕들 중 기록이 제일 많다. 건국자임에도 불구하고 후대 왕들에 비해 기록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후세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다.

비정상적으로 큰 강역과 이해가 어려운 정복 속도를 이유로, 온조왕의 기록이 고이왕, 책계왕, 근초고왕, 무령왕, 성왕[14] 등의 기록과 섞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근초고왕/생애 문서 참조. 대체로 백제 기록이 고구려, 신라보다 부실한 편인데 유독 온조왕만큼은 비슷한 시대의 고구려, 신라의 초기 군주들과 비교해 봐도 아주 세세하고 사소한 내용이 많다.

덤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왕 중에서 고구려 왕은 보장왕의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며, 신라문무왕이다. 보장왕과 문무왕은 책이 각각 2권씩이나 되는 유이한 왕들이며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보장왕 순으로 기록이 많은 TOP 1, 2위이다.

5. 기타

  • 백제의 건국자로 구태라는 인물이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데 이 사람과 온조왕의 관계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남아 있다. 일설에는 "비류가 구태나 구태 아들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 ‘온’은 고유어로 숫자 ‘백(100)’을 뜻하므로, 온조라는 이름 자체가 백제를 의미하고 따라서 백제의 시조로 상상된 가공의 인물 아니겠느냐는 말도 있다. 백제를 포함한 삼국의 초기 왕계에 대한 불신론, 비류 혹은 구태 시조설, 백제 왕가 교체설, 왕가 계보 조작설, 마한 복속이 이 때냐 고이왕이냐 근초고왕이냐 등 초기 백제 역사에 관한 설왕설래에서 써먹기 좋은 떡밥.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온조왕 대의 풍부한 기사들은 후대 기사의 삽입이 된다.
  • 도시로서 강남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서울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게 온조왕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강남 신도시 개발 사업이 바로 온조왕의 하남 위례성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온조왕의 백제 건국에 대해 꽤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현재의 서울 강남은 수도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이기 때문에 개로왕 이후 거의 잊혀진 위례성과의 연속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땅이 좋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강북은 명동 일대를 제외하면 강남3구보다 땅값이 낮다. 백제의 강남 개발 역시 과거 역사상 중심지가 현재의 중심지가 된 사례이기도 하고 수도로서 서울의 정통성에 조선 왕조 말고도 또 하나의 큰 가점을 주는 요소이다. 그래서 서울특별시 향토 역사에서 한성백제 시대를 매우 강조하고 서울특별시 홈페이지에서도 백제의 500년, 조선의 500년 도합 1,000년 수도였다는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1994년만 해도 서울의 수도 지정 기념 행사에서 600년 역사만 강조했을 정도로 조선 수도로서의 역사성만을 강조했었는데[15] 이후 풍납토성을 비롯한 한성백제기 유물유적의 활발한 발굴 성과로 위례성이 현재의 강남 지방으로 거의 확정되면서 현재는 백제 수도로서의 역사 또한 향토사에서 강조되고 있다.
  •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2동에는 그의 이름을 딴 '온조대왕 문화체육관'이 있다.
  • 현대 고고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원후 2세기 후반 임진강 일대로 남하한 고구려 적석총 세력이 3세기 중후반 한강 위례성 일대로 남하해 토돈분구묘제 세력과 연합해서 한성백제를 세웠음이 밝혀졌다.[16] 따라서 온조는 실제로는 기원전 1세기가 아니라 기원후 2세기 중반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온조계 건국 사화에서 동명성왕이 강조[17]되는 걸 고려하면 아들(1대)이 아니라 수세대 이상 직계 후손이었는데 구전 과정에서 몇 세대가 누락된 게 아니냐는 가설도 있을 법은 하다.[18] 동명성왕이 고구려 왕이 된 건 소서노와의 결혼 덕이 컸는데, 고구려 왕위는 예씨부인의 아들인 유리명왕과 그 후손들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서노의 후손은 자연히 소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65년 차대왕명림답부에게 살해당하고 신대왕이 즉위하는 혼란이 일어난 시기가 고고학적으로 고구려계 세력이 경기도 일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2세기 후반과 겹치는 걸 고려하면, 백제 건국 세력의 남하는 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6. 대중매체에서

  • 2006년 MBC 드라마 〈주몽〉에서는 아역 배우 김석[19]이 연기했다.
  • 2010년 KBS 드라마 〈근초고왕〉에서는 출연 배우는 홍석조이다.
  • 온조왕의 백제 건국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인 〈미스터 온조〉와 〈온조〉도 있는데 이 두 뮤지컬은 서로 완전히 다른 뮤지컬이다. 하지만 두 작품은 ㈜엠에스뮤지컬컴퍼니(대표 김면수)의 작품이다. #
  • 병자호란 시기를 다룬 대체역사물 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에서 등장했다. 온조왕과 병자호란은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나왔냐면 바로 주인공을 병자호란 시대에 빙의시킨 장본인으로서 나왔다. 인조가 온조왕에게 이 호란에서 조선이 이길 힘을 달라고 제사를 지냈는데 인조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 주인공 이자원을 빙의시킨 것. 본디 첫 등장에서는 이름 언급없이 주인공이 남한산성 인근에서 만난 노인이라고만 나왔는데 본편 마지막화에서 온조왕임이 밝혀졌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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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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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
등장인물 및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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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백결선생 의자왕 계백
김관창 김유신 문무왕 원효
혜초 장보고 고왕 강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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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유관순 안창호 방정환
김두한이상이중섭
간접적으로 언급된 인물/단체
민족대표 33인 김좌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
기울임체 는 부정적으로 언급된 인물이다.
[1] 실제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후대 인물 허균이 창작한 의적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논란이 있지만 간접적인 언급으로 소설 홍길동전에서 대중화된 의적 이미지를 노래 가사로 사용했으므로 저자 허균을 생각하고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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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실의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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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 하백
 
 
해모수
 
유화
 
 
 
부여 왕실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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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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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익 6대
태조대왕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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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왕
고인고
 
 
 
 
 
 
고추안 9대
고국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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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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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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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봉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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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소수림왕
18대
고국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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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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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고익
 
 
 
 
 
고조다 고승우 공주 고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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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안장왕
23대
안원왕
고안학
 
 
24대
양원왕
왕자
 
25대
평원왕
 
 
 
 
26대
영양왕
27대
영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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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복남 고임무 고덕남 고덕무 공주
 
부흥
보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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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제국 시대 교과서인 "초등대한역사"에 온조왕의 이 그려져 있는데,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와 지나치게 유사하기 때문에 실제 온조왕의 어진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은 낮다.[2] 여러 전승상 고구려 제2대 유리명왕과 비슷한 연배로 나오므로, 유리명왕의 동생으로 가정하면 기원전 38년 이후가 된다. 그러나 시조 비류왕 전승에 따르면 온조왕은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세우기 전에 태어난 반면 유리명왕은 그때까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온조는 유리의 형이 된다.[3] 동명성왕의 아들로 여겨졌지만 정작 고(高)씨를 사용한 기록은 없다. 《삼국사기》에서는 부여씨를 칭했다고만 나온다.[4] 《삼국유사》에서 온조왕을 소개하며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기사를 그대로 가지고 왔는데 이 중 성씨를 '부여씨'로 삼았다는 것을 '해씨'로 삼았다고 바꿔놓았다. 《삼국사기》와 다른 기록을 참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동사강목》에서는 본래의 성씨는 '해씨'였으나, 백제를 건국한 후 자신이 부여의 핏줄임에 의미를 두어 '부여씨'로 바꾸었다고 기록했다. 또 다른 예상으로는 가 엄밀히 구분되던 고대 중국 선진시대의 성씨 문화를 받아들여서 성이 '해'고, 씨가 '부여'일 경우도 있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온조왕의 후손인 27대 위덕왕백합야 전투에서 고구려 장수와 일기토를 벌였을 때 자기소개를 하며 고구려 왕실과 성이 같다고 언급했는데,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5]삼국사기》, 《제왕운기》.[6]해동고승전》.[7] 이복형.[8] 묘호의 사용이 신라 태종 무열왕 때부터 확인되므로 당대에 사용했을 확률은 낮다.[9] 《신찬성씨록》에 나오는 별호.[10] 부여 시조 동명왕 혹은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을 태조로 보던 당시 기준, 혹은 온조 앞에 형 은조가 먼저 군주에 올랐지만 5개월 후 죽어버려 온조가 이어받았다는 《제왕운기》의 기록을 따를 경우다. 아래 출생 단락 참조.[11] 그러나 친형제도 아닌 유리명왕 치세에서 얼마나 편히 살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괜히 온조와 비류가 내려온게 아니다. 동명성왕이 유리를 태자로 지명했을 때, 온조와 비류는 엄청난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유리왕은 부여계이기 때문에 고구려 소노부계인 온조/비류는 유리왕의 정적이고, 당연히 유리가 군주가 되면 온조와 비류부터 숙청을 감행할 게 뻔했다.[12] 고주몽이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신의 혈통이라거나, 부여를 탈출할 때 거북이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는 기록은 신화지 말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거라고 믿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건국 기록이 좀 과장됐다고 해서 고구려나 신라의 실존 자체가 허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초기 기록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완전히 신뢰하는 극단적인 태도는 양쪽 다 문제가 있다. 마찬가지로 고대 일본의 천황 계보 및 초기사 역시 이주갑인상, 임나일본부 등의 방식으로 왜곡되었으며 심지어 서양사의 뿌리인 고대 로마마저도 로마 왕국 시절의 내용은 윤색되고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추측된다.[13] 원래 《삼국사기》 초기 기사는 연대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아 학자마다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백제뿐만 아니라 신라도 마찬가지로 백제고이왕, 신라내물 마립간 때의 기사부터 다른 기록이나 고고학과 교차검증이 가능해 비로소 100% 인정받는 상황이다. 다만 고이왕 이전의 기록이 전부 거짓이라 쓸모없다고 보는 시각은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거나 연대만 앞당겨졌을 뿐이라는 추측에 의거해 초기 기사도 최대한 활용해내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14] 남부, 북부, 탕정성, 고사부리성 등의 지명이 성왕이 설치한 지방행정 단위와 매우 유사하다.[15]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백제의 도읍이 있었던 송파구 일대가 광주시 땅이었다가 1963년 이후 서울로 편입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16] 비류시조설에 나오는 미추홀한성백제 건국 당시까지 토돈분구묘제 세력만 확인된다는 점과 백제가 경기 동부보다 인천을 비롯한 경기 서부의 복속이 더 빨랐던 걸 보면 한성백제 건국에 합류한 토돈분구묘제 세력에 이들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17] 의외로 소서노의 존재와 역할은 비류계 사화에 비해 다소 깎아내려져 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18] 백제와 달리 고구려는 고고학적 건국 시기가 역사서의 기록과 거의 겹친다. 즉 온조가 정말로 백제의 건국자라면 동명성왕의 후손일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19] 2005년 SBS 드라마 〈서동요〉에서는 무왕의 아역으로 나온 적도 있으니 어린 나이에 2번이나 백제 군주를 해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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