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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화 《파묘》에 대한 다양한 탐구점이다.장재현의 전작 《사바하》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전 조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라, 다양하고 다층적인 레퍼런스들이 포함되어 있다.
2. 총론
- 제목인 파묘(破墓)는 묘를 이장하거나 화장하기 위해 기존에 만든 무덤을 파(破)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묫바람[1]이 일어났다고 여겨지면 파묘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파묘를 하기 전 "파묘요~!", "파관(破棺)이요~!"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묘에 묻힌 고인이 파묘 과정에서 나는 소리에 놀라지 마시라는 의미에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고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예절이다.
- 등장인물과 설정에 일제강점기 및 독립운동에 관련된 차용이 많다. 주인공 4인방의 이름은 모두 실제 독립운동가였던 김상덕, 고영근, 이화림[2], 윤봉길[3]과 같다. 화림의 동료 무당 두 명 또한 독립운동가 오광심[4], 박자혜와 같다. 보국사를 창건한 주지스님의 이름은 원봉으로 의열단의 단장 김원봉과 같다. 상덕과 영근이 운영하는 사무실 '의열 장의사'는 의열단이 연상된다. 상덕의 차량 번호 '49 파[5] 0815'는 광복절을, 화림의 차량 번호 '19 무 0301'은 기미년(1919) 3.1 운동을, 영근이 운전한 운구차의 번호 '경기 40 바 1945'는 광복 연도인 1945년을 연상케 한다. 반대로 친일파 집안인 박지용 어머니의 이름은 일제강점기 여성 친일파였던 배정자와 같고, 아버지 박종순은 을사오적 박제순과 비슷하다. 박지용 역시 을사오적의 일원인 이지용과 이름이 같다.[6] 이 모든 설정들은 주인공이 맞서 싸우게 되는 적이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자 악령과 일제 군부를 형상화한 오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상통한다. 감독은 자신은 원래 전작들에서도 극 중 인물들 이름을 영화 주제에 맞게 지었으며, ‘파묘’는 앞에는 오컬트, 뒤에는 항일이다고 하는 평이 있는데 두 개가 같은 맥락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일청산과 항일을 나눠서 생각하는 게 아닌 것처럼. 독립기념관에 갔는데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분들이 너무 많아, 그 분들의 이름을 어감을 고려해 되살리려 했다고 한다.
- 주인공 사인방을 사방신에 대입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캐릭터 포스터를 보면 각 인물들이 자신이 상징하는 방향에서 주변을 쳐다보고 있다. 좌청룡 고영근, 우백호 김상덕, 남주작 이화림, 북현무 윤봉길이라고 추정된다. 영화 상에서 의뢰할 묘지를 보러 간 일행들의 옷을 보면 영근은 파란색 점퍼, 화림은 붉은 가죽 코트, 봉길은 검은색 점퍼를 입고 등장하고,[7] 상덕은 머리가 흰색이며 호(號)가 호안(虎眼) 즉, 호랑이 눈이다. 결국 호랑이의 눈으로 무라야마 준지가 숨겨두었던 쇠말뚝을 찾아내고야 만다. 실제로 호랑이는 어둠 속에서의 시력이 인간의 약 6배로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 김회장의 묫자리를 내려오며 송이버섯을 채취해 오는 장면을 통해 지관인 상덕의 가치관과 직업관을 잘 보여준다. 영근이 금붙이들을 몰래 챙겨온 것과는 달리 그곳에서 송이버섯만을 가져 오는데, 송이버섯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바쳐졌으며 중국 사신들 또한 조공품으로 송이를 요구했었을 만큼 땅에서 나는 보물인 송이버섯을 더 귀히 여긴 것. 동시에 김회장 어머니의 묘가 있는 산에서 좋은 소나무가 많이 심겨져 잘 자라고 있고,[8] 사유지로 외부의 잦은 출입이 없도록 잘 관리가 되고 있음을 송이버섯으로 확인해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송이버섯은 소나무의 뿌리로 부터 포도당 등의 탄수화물을 받고, 대신 질소·인·칼륨 기타 무기물이나 물을 뿌리로 보낸다. 이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건강한 공생관계를 보여준다.
- 전작 사바하부터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동차를 자주 사용해 온 장재현 감독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등장인물들이 타는 자동차에 디테일이 숨어 있다. 주인공 상덕의 자가용은 지프 그랜드 체로키 3세대인데, 지관이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한반도 구석구석의 산간 지역과 비포장도로를 돌아다닐 일도 많은 만큼 사륜구동 정통 SUV 차량, 속칭 '짚차'를 자가용으로 택한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국내 자동차 기업의 차량 중에도 렉스턴이나 모하비처럼 '정통 SUV'가 있고 지프 랭글러가 아닌 이상 지프의 모델에 비해 오프로드 성능이 그리 모자라지도 않는데[9] 굳이 기성세대인 상덕의 입장에서 다소 생소하고 유지비에서도 손해인 미국 회사[10]의 차량을 타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이에 대해선 지프가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한 군용차이기에 상덕의 차량은 미국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윌리스 MB는 20세기 중반의 미군을 대표하는 차이며, 지프 또한 그 이미지를 후광삼아 성장해온 브랜드이다. 미국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일제강점기를 종결한 국가이기도 하며, 서울 진공 작전 등으로 독립군을 지원한 적도 있다. 즉, 이 영화는 '독립투사 4명이 일제의 수괴를 제거하러 미제 지프를 타고 말뚝 박힌 한반도의 허리로 향하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도 있다. 반면 박지용 일가가 타는 차량은 독일의 벤츠인데 독일은 일본과 함께 추축국의 일원이었으며 고급차의 대명사인 만큼 좋은 선택이다.[11]
- 김상덕이 호텔에서 풍수지리와 우주공학 사이의 유사성을 설파하는 장면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미신으로 치부되는 풍수지리도 곱씹어 보면 과거부터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실생활에 적용한 것이기에, 조상들은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라 하여 천문학과 풍수지리 두 가지를 같이 배우는 것을 주력으로 삼았고, 유학자들 중에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자들도 꽤 많았다. 여기에 중찰인사(中察人事)[12]라 하여 의술(또는 관상)까지 섭렵한 사람을 최고로 쳤는데 천문, 지리, 의술에 두루 능했던 대표적 인물로 토정 이지함이 있다.[13] 비슷하게 서양에선 현대의 관점에선 미신인 연금술과 점성술도 훗날 화학과 천문학의 초석이 되었다.
- 일본어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영화 첫 장면에서 화림이 기내승무원과 일본어로 대화하지만 본인은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장면, 묘지 근처를 배회하는 여우 무리가 나오는 장면, 절의 보살이 '기순애'라는 스님에게 묫자리를 추천해주었다는 장면들을 종합하면 'キツネ(狐 키츠네, 여우)'를 연상해내고 곧 이 이야기는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후 "キツネが虎の腰を切った。(키츠네가 토라노 코시오 킷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로 한번 더 여우가 언급되고, 결국 기순애의 정체가 '여우같은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였다는 것이 밝혀진다.[14]
- 사실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보통 동아시아의 스님들 법명이 주로 두 글자인 걸 생각하면 세 글자인 기순애라는 법명은 무언가 기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중에서 상덕도 듣자마자 특이한 법명이라고 언급한다. 기순애가 스님의 속명(俗名, 속세 시절 본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스님의 법명은 알아도 속명까지 아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 영화 대화 속에 나오듯이 실제로 여우와 묘지는 상극이라 여기는 문화가 있다. 이는 여우가 굴을 파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묫자리를 파헤쳐서 유골을 꺼내먹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다만 이는 어느 정도는 낭설이 섞여 있다. 여우가 개과 동물답게[15] 굴을 파는 것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여우의 빈약한 체급으로는 묘지를 파내서 유골을 꺼내먹을 정도로 굴을 파기는 힘들다. 실제로도 야생에서는 굴을 파기도 하지만 자연적으로 파진 곳이나 토끼, 오소리 등의 다른 야생 동물이 파놓은 굴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묘지에서 인골을 파먹는다는 얘기도 여우가 직접 팠다기보다는 호우나 산사태 등으로 파헤쳐진 묫자리에 있던 유골들을 먹는 것을 보고 ‘여우가 묫자리를 파내 유골을 꺼내먹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래도 여우 특유의 간사한 이미지 덕에 생겨난 속설로 보인다
- 한국의 야생 여우는 거의 멸종 상태이다.[16]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적으로 살던 여우는 멸종했다고 보는 게 맞고, 2010년대부터 행해져 온 복원사업으로 인해 풀려난 개체들이나 밀수꾼들이 들여온 여우가 무단으로 방생되었다가 야생화된 개체 정도로 매우 소수이다. 즉 야생 여우가 묫자리 주위에 이상하리만치 모여있는 광경은 매우 기이하다 볼 수 있다. 특히나 상덕은 이런 쪽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므로 더더욱 큰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 파묘 장면에서 등장하는 '대살굿'의 원래 명칭은 '타살굿'이다. 황해도 지방에서 행해진 동물을 죽여서 신에게 바치는 굿으로 '타살군웅굿'이라고도 불리운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동물을 대신 바치는 행위를 무속에서 '대살' 이라고도 불러서 '대살굿'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한다.
- 화림이 지신들에게 의식을 치르는 터의 위치를 알리는 장면에서 한국을 '남섬부주'에 있다고 말한다. 서유기 애독자라면 익숙한 명칭일 텐데 불교 신화에서는 인간 세상이 남섬부주에 있다는 설과 동승신주에 있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한국 불교계와 무속계는 동승신주에 있다는 설을 주로 밀고 있지만 불교 의식이나 사십구재에서 바라춤을 출 때 남섬부주라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 파묘했던 자리에서 한 인부가 시커먼 털로 뒤덮여 인간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기괴한 뱀을 삽으로 죽이는데, 이는 일본에서 전승되는 요괴인 누레온나로 사람을 끌여들여 죽이고 잡아먹는 요괴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의 요괴인 누레온나가 한국의 묘지에 있는 이유는 원래 평범했던 뱀이 박근현의 관에 침범했다가, 그 밑에 있던 일본 오니의 요기에 의해 누레온나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한다.
- 의뢰인의 어머니가 TV를 보며 홀로 춤을 추는데, 화면 오른쪽 위에 RTL 네덜란드가 운영하는 다시보기 서비스인 RTL XL의 옛 로고가 찍혀있다. 크레딧을 보면 예능 프로그램인 Everybody Dance Now에서 가져왔다고 뜬다.
- 박지용의 갓난 아들에게 외국인 간병인이 자장가 Rock-a-bye Baby를 불러주는 장면이 있는데, 마더 구스이다 보니 멜로디는 감미롭지만 가사 내용이 섬뜩하다. '바람이 불면 요람이 흔들리고,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요람도 아기도 떨어진다'는 내용은 아기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암시한다. 악귀의 상태로 병실에 찾아온 박근현이 따라 흥얼거리는데 이국의 자장가라서 그런지 음이 조금씩 맞지 않는다.When the wind blows the cradle will rock,When the bough breaks the cradle will fall,And down will come baby, cradle and all.Rock-a-bye Baby 가사 중에서
- 화장하는 장면에서 고영근이 부른 '명사십리 해당화야'로 시작하는 소리는 상엿소리의 한 부분이다. 지역마다 가사는 다르기는 하다.
- 한 자리에 관을 함께 묻는 첩장은 실제로 종종 있다고 한다. 영화 명당에서도 안동 김씨들이 조선왕릉에 자신들의 조상들을 몰래 묻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3자가 명당 자리의 좋은 기운을 함께 받고자 관을 '몰래' 같이 안치하는 것이므로, 이런 악지에 첩장이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관인 상덕이 유독 더 놀랐다. 이는 유족들의 의지가 아닌 제3자의 악의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 본 것이다.
- 정체불명의 대형 관을 보국사 창고에 두면서 찹쌀과 말의 피로 결계를 친다. 찹쌀은 예로부터 독을 배출하는 기능이 있어 주로 액운을 가두거나 막는 데 쓰였으며, 말의 피는 도깨비가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로 관련 설화도 여럿 존재한다. 관련 링크, 관련 링크2
- 관 주변에 찹쌀로 봉인을 했지만 끝내 무언가가 풀려나 화를 입고 파묘를 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부분은 임정영 주연의 홍콩 영화 강시선생을, 잔혹함과 공포 부분에서는 강시: 리거모티스를 연상시킨다.
- 오니에게 살해당한 보살의 원혼이 봉길의 꿈에 나타나 배를 밟은 것은, 보살의 원혼이 주인공들을 도우려고 일부러 가위를 누른 것으로 보인다. 일부러 험한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서 일행을 깨우고 위험을 알리려 했고 처음에는 영근에게 갔다가 일어나지 못하자 봉길에게 옮겨간 걸 보면 잠을 깨우는 게 목적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실제로 봉길이 보살의 원혼을 마주하자 마자 똑바로 쳐다보며 얼른 일어나라는 듯 말이 점점 빨라지고 격해진다. 그 덕분에 상덕 일행은 무방비하게 잠든 채 오니에게 살해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보국사 보살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상덕 일행에게 선행을 베푼 셈.[17]
- 보살이 '내 옷은 어디갔어?' 라 중얼거리며 옷을 찾았던 이유는 불교식 상례 중 착복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시신에 겉옷을 입히는 의식인데, 망자에게 부처의 옷을 입혀 모든 흉하고 추한 모습을 가리고 정화시켜 번뇌를 참고 원한 없이 편히 잠들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스님은 원한을 갖지 않고 떠나고 싶으니 봉길에게 겉옷, 즉 부처의 옷을 찾아 입혀 달라는 말도 같이 한 것이다.
- 도깨비불을 보면서 상덕, 화림, 영근 세 사람이 마치 죽기 전 주마등처럼 과거의 기억들을 영상처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영근은 그저 영화 속에서의 행적이 그대로 나오는 것에 비해 상덕과 화림은 '영화에서 공개되지 않은' 과거의 시점들이 스쳐 지나간다.[18]
- 화림, 광심, 자혜가 병실에서 봉길을 두고 벌이는 도깨비 놀음은 제주도 전통 치병굿인 영감놀이와 비슷하다. 일종의 연극으로 사람의 몸에 숨어들어 빙의한 누군가를 속이고 살살 꼬셔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주 목적이다. 영감놀이의 도깨비 영감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 '돼지 머리'와 '수수떡'이라 이를 병실에 준비했다. 한국의 굿은 다른 나라의 엑소시즘과는 달리 굉장히 이타적인 부분이 많다. 기독교에서는 성불 넣고 성수 뿌리면서 마귀를 고통스럽게 해 쫓아내거나 하는데 비해 좋아하는 음식도 장만해놓고 불러내 어르고 달랜다. 화림, 광심, 자혜가 정감가는 토속 방언들로 대화를 이끌어내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화림이 갑작스럽게 봉길의 귀에다 욕설로 도발하는 것은 실제 오니를 대면해봐서 이제까지 상대한 한국의 귀신과는 다르게 대해야한다는 것을 도깨비 놀음 중 깨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인터뷰 내용.
- '일본 귀신은 한국 귀신과는 다르게 사람을 무조건 죽이려고 해서 상대하기 힘들다'는 묘사가 나온다. 실제로도 한국 민담에서는 원령이라도 생자들이 '당신의 원수를 살아 있는 우리가 대신 갚아주겠다'고 하면 납득하고 생자들을 돕는 전개가 많은 데 반해, 일본의 민담에 나오는 원령은 지독한 원한의 결집체라 인격이 사라지거나 왜곡돼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묘사된다. 한과 원한의 차이로도 볼 수 있다. 주온, 링 등의 일본 호러 영화에서도 이러한 점이 드러난다. 한편,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이화림과 오광심이 상대하고 살아남은 걸 보면 이 둘이 용한 무당이란 걸 알 수 있다.
- 몸에 경문을 적어 귀신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은 일본 설화인 귀 없는 호이치가 원전이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고 일본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화림은 이 설화를 미리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퇴치 대상이 일본 귀신이라 일본 설화에 기반한 방호법으로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는데, '귀 없는 호이치 일화'에서는 호이치의 전신에 경문을 써 원혼으로 하여금 볼 수 없게 하려 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방호 효과를 노린 것이라 본래의 목적과 다르다. 주인공 일행이 몸에 적었던 경문은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한국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신봉되었던 대표적인 불교경전이다.
- 봉길의 병실에 부적으로 결계를 친 후 살아있는 닭을 준비한 것은 만일의 경우 봉길 대신 닭으로 목숨을 대신하려는 대수대명(代壽代命) 의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대수대명 의식은 다른 생명에게 인간의 횡액을 전가하는 것이라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되는 의식으로 꼽힌다. 저주나 마찬가지라서 의식을 한 사람에게 반대로 화가 미칠 수 있다. 그만큼 오니와 맞서는 화림, 자혜, 광심 셋의 상황이 절박했던 것이다. 닭이 안 죽었으면 좋겠다는 자혜에게 광심이 핀잔을 주는 장면도 단순히 웃음이 목적이 아닌, 대수대명 의식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화림 못지않은 잔뼈 굵은 무당인 광심과 아직 어린 아기무당인 자혜의 정신력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 종교 의식에 희생될 동물과 그것을 안타까워하는 이가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에 등장한 돼지와 비슷하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돼지는 악마를 담을 그릇이기에 무조건 죽어야 할 운명이고 닭은 일이 잘못됐을 때, 봉길의 목숨을 대신할 수단이라 일의 성공 여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입장인 것. 즉 자혜는 닭이 안 죽었으면 좋겠다=화림 일행이 무사히 성공하기 바란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 고영근이 김상덕을 위해 읊어준 성경 구절은 전도서 4장 12절이다. 성경 구절로 볼 때 무엇인가 힘을 합쳐서 적에게 맞선다는 복선을 담고 있다. 또한, 전도서 4장의 앞선 구절에서는 자신의 안위와 재물만을 꾀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는 오니를 상대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말고 살던대로 쭉 잘 먹고 잘 살자고 설득하던 고영근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담는 구절이기도 한다.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개역성경판)
- 이 영화가 1장에서부터 친절하게 각 인물의 직업과 속성을 깔아준 이유는 후반부 오니와의 대결에서 적의 속성에 맞춘 대응 방법이 있었음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얼핏보면 무당 화림과 법사 봉길이 악당에 맞서 싸우기 적합하지만 이들은 주로 귀신 등 영혼을 상대해왔지, 정령에 가까운 오니에 맞서는 방법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화림이 오니를 죽일 수 없지만 시간을 끌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백마의 피로 오니를 약화시키는데 그친 건 무속인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한 결과다. 한국 무속에서 귀신은 굿으로 어르고 달래거나 정 안 되면 멀리 쫓아낼 뿐, 반드시 때려잡거나 소멸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전반부에서 화림이 봉길의 몸에 빙의한 박근현의 악령을 "왜 후손들을 죽이느냐"라고 꾸짖지 않고 "원한이 있으면 여기서 다 풀고 가소"라고 달래는 장면도 이런 특성에 기인한다. 기존의 신성한 방법들(소금, 말피, 법경, 할매신 등)이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지만, 이승에 실체가 있는 오니에게는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오니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한국의 정서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해 온 무속과 토속신앙을 토대로 동양을 아우를 수 있는 음양오행으로 상대하는 방법[19] 밖에 없었고, 음양오행에 기반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더 익숙한 지관 상덕만이 오니를 궁극적으로 없앨 수 있었던 적임자가 된 것이다. 여우 음양사는 침략 목적에 맞게 전쟁광인 오니를 한반도의 중추에 심어 소기의 성과를 거뒀음에도 음양오행의 우주적 질서를 적용해 오니에게 맞선 상덕에게 결국 무너진다.
- 장재현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
- 본 작품의 최종 보스인 다이묘 오니는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의 최종 보스와는 달리 '능동적이지 않은 적대자'라는 차이점이 있다. <검은 사제들>의 악마 마르바스는 기독교적 악마이기에 능동적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존재이고, <사바하>의 김제석은 자신의 적대자에 대한 예언에 사로잡힌 나머지 수많은 여자아이를 자의적으로 학살했다. 하지만 다이묘 오니는 “일본의 귀신은 거리낌 없이 가리지 않고 죽인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무라야마 준지가 그를 쇠말뚝으로 삼아 한반도에 가져다 놓은 게 원흉이었을 뿐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근현의 귀신으로, 흉한 땅에 묻힌 원한으로 핏줄을 죽인다고 미국까지 날아가는 복수에의 집착을 보였다.
- 또한 최종 보스 중 격이 가장 낮은 존재이다. <검은 사제들>의 경우 대악마였고 <사바하>에서는 미륵으로 추정되는 그 존재와 운명론적 시련이라는 거창한 설정을 내세운 반면, 파묘에선 그냥 한 나라에서 이름난 장수가 대음양사의 저주를 받아 변한 오니다. 물론, 물리적인 전투력은 오히려 세 작품 중에서 가장 강하게 묘사되지만, 존재만으로 재앙을 가져오는 대악마나 불로불사의 존재인 미륵에 비하면 그저 힘세기만 한 일본 귀신이라 아무래도 중압감이 떨어진다.[20]
- 감독의 전작에서 전투력 측정기 신세에 머물렀던 무당이 주연으로 처음 등장한 영화이다. <검은 사제들>에서 무속인들은 뭐라도 해보려 했지만 힘도 못쓰고 당했고[21] <사바하>에서는 힘은 있어도 주역이 아니라 별 활약을 못 하지만[22] 본작에서는 주연으로서 밀리지 않고 맞서는 모습으로 나온다. 조연 캐릭터들도 악귀를 물리칠 방법을 제시하고 합을 맞추는 등 영화의 한 축을 끝까지 담당한다.
-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서양 악마와 동양 불교 중 밀교를 다뤘고 본작에서는 한국 바로 옆의 일본과 연계되면서 작품들이 다양한 국가의 오컬트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 전작 사바하의 김제석이 조선총독부의 일본인들도 우러러볼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는 언급이 있는데, 본작에서는 반대로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가 철저히 무덤을 이용당해 가문이 멸문될 뻔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박지용의 집안이 친일파의 후손으로 밝혀지기 전에도 이를 암시하는 요소들이 있다. 박지용의 집사가 그들에 대해 '조상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태어날 때부터 밑도 끝도 없이 부자'라고 설명하는데, 실제로 광복 이후 친일계뿐 아니라 수많은 가지각색의 반민족 행위자들이 한국에서 살 수 없어 신분을 숨기고 미국 등지로 이민을 갔다. 박지용의 집을 살펴볼 때도 외국에서 구하기 힘들법한 문화재처럼 보이는 불상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는 한국을 떠나올 때 많이 반출해온 것이라 의심해볼 수 있다. 또한 어머니가 마시는 술이 일본 위스키인 히비키인 것도 복선이라 볼 수 있다.
-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처럼 한국 귀신과 외국 요괴를 모두 아우르는 이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초반에 나오는 파묘와 묫바람은 한 맺힌 한국 귀신을 다루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첩장이 발견되면서부터 등장하는 오니는 일본 요괴다. 검은 사제들에서 악마의 사령으로 토속 귀신을 두고 진 최종 보스가 외국 악마인 구조다. 감독이 일본과 연결시킨 이유는 일본이 호러와 관련해 동양 오컬트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크기 때문이고 한국의 불행한 과거사와도 연결 짓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양오행은 후에 설명되듯이 여우 음양사와 연결된다.
2.1. 박근현
- 파묘 의뢰인 박지용의 조부로 영화의 전반부를 담당하는 악령이지만, 특이하게도 주인공 일행에게 큰 해를 입히지 않는다. 관에서 빠져나올 때 화림을 기절시켰으나 이는 의도적인 공격이라기보다는 빠르게 튀어나오다 그 음기에 부딪힌 것에 가깝다. 상덕과 화림을 주축으로 하는 주인공 4인방이 자신의 시신이 든 관을 통째로 화장하려 들거나 주술을 통해 자신을 다시 불러들이려 하는 등 끊임없이 방해를 하는데도, 악령은 오직 자신의 가족들만 노린다. 심지어 손자 박지용에게 빙의하여 그 몸을 차지했을 때 같은 공간에는 상덕과 호텔 직원뿐이었기에 둘을 죽이려 덤빌 수도 있었지만, 공격하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오히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며 작중 흑막인 무라야마 준지의 계획을 암시해주기까지 한다. 상덕이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자 친절하게 한국어로 다시 말해주기까지 한다. 이는 '원한을 가진 사람만 공격한다'는 한국 원령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보인다. 무라야마 준지의 계획을 알려주는 이유도 자신을 악지에서 꺼내주지 않고 쉬쉬하며 대대로 호의호식한 후손들뿐만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일제에 충성을 바쳤음에도 자신을 악지에다가 첩장을 해버린 무라야마 준지에 대한 원한을 지관인 상덕에게 알려 대신 갚게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 무라야마 준지에게 속아 첩장된 것으로 묘사되었던 박근현이 어떻게 기밀에 부쳐졌던 이 사실을 알고서 말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영화상에서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아 의문점이 남는다. 그에 대해선 첫째, 박근현이 생전에 무라야마 준지와 교류가 있었기에 한반도에서 행한 주술 행사에 대해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철혈단의 방패막이를 자처해 악지에 묻히는 엄청난 매국력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엄청난 매국노라 치고 넘어간다 해도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며 묻혀놓고서 나중에 자식들에게 춥고 배고팠다고 살육을 벌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둘째는 죽고 난 후 혼령 상태에서 오니의 존재를 알게 됐을 가능성으로, 이 경우가 좀 더 타당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 박근현의 악령은 직접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주변 사물에 간접적으로 비춰지는 방식으로 모습을 보인다. 박지용의 목이 꺾이는 장면에서도 뒤의 냉장고 문을 유심히 보면 박지용의 목을 꺾고 있는 박근현의 손이 어렴풋이 보인다. 처음에 아들을 찾아갔을 때는 원한에 가득 찬 상태의 굶주리고 모습이 앙상한 걸귀나 괴물처럼 보이는데, 식구들을 여럿 살해하는 과정에서 목을 축이고 주린 배를 불리다 보니 손자를 찾아갔을 때는 점점 신수가 훤해지고 일제강점기 때의 복색도 했다가, 막판에 증손자를 죽이러 갔을 때는 마치 제삿밥이라도 먹으러 온 것마냥 때깔 고운 한복을 입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
- 아들 박종순과 손자 박지용을 해칠 때 창문을 열어달라고 회유하는데, 감독에 따르면 이는 뱀파이어의 습성에서 따왔다고 한다. 서양요괴인 뱀파이어, 즉 흡혈귀도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집 사람이 안에서 출입을 허락해주어야[23] 들어갈 수 있다는 전승이 있다. 동양 오컬트의 특징은 아니지만 연출적으로 재미를 주려고 섞은 것이라고 한다.
- 다만 앞서 방영되었던 악귀에서 악귀도 문을 열어줘야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묘사가 있고 무속은 아니나 민간 전승 상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잔소리미신의 기원을 고려하면 동양식 사고로도 이상한 부분은 아니다.
- 망자의 혼령이 자기 아들을 찾아 미국까지 순식간에 날아간 것에 대한 논쟁이 있다. 과학적 고찰을 하는 부류가 있고, 혼령은 자기 맘대로 바다를 건널 수가 없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미국까지 갈 수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24] 또는 육체(질량)가 없는 혼령에게 물리적인 속도를 따지는 것부터가 억지라는 의견이 있고, 미국 집에 고인의 위패가 있다면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장자계승제에 따라 막내인 박종순이 위패를 모실 수 있으려면 상위 계승자들이 모두 죽은 후라야 한다. 후에 나오는 고모의 가족사진으로 보건데, 박종순의 위로 형이 몇 더 있다. 아버지를 그 묫자리에 묻고 나서 묫바람이 시작됐다면 장손들이 줄초상을 치르면서[25] 결국 막내였던 박종순이 장손이 되어 위패를 받았다고 하면 말이 된다. 박지용이 '장손이었던 친형이 죽었으니 이제 본인이 장손'이라고 하는 장면도 이런 탐구를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다. 또, 상덕이 초반에 등장하며 말한 내레이션 중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공혈(共血)의 집단"이라는 문단이 이 부분을 암시했다는 추측도 있다.
- 박근현의 묫자리는 원래 명당이었을까, 악지였을까?
- 이 자리가 한반도의 척추 자리라면 산천의 정기가 모이는 혈처(穴處)일 것이고 원래는 명당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이 자리가 악지가 아니었다는 것은 박근현의 묘에 처음 갔을 때 영근이 보인 반응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영근은 주변 산세가 좋고 용이 흐른다고 말한다. 영화 초반에 영근이 오랫동안 상덕과 함께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풍수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상덕이 김 회장네에 잡아준 묫자리가 아주 좋은 명당은 아님을 정확히 지적한 적도 있다. 이를 보면 이곳이 단순히 입지만을 고려하면 원래는 명당 축에 속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26] 악지가 된 이유는 무라야마 준지가 오니를 쇠말뚝으로 만들어 꽂아넣는 주술 의식을 통해 백두대간 정기의 원활한 흐름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오니의 살기와 함께 이곳에 음기가 쌓이고 쌓이게 된 것이다.
- 반대로 처음부터 악지였다는 견해도 있다. 첫째, 조선시대 때부터 명당은 씨가 말랐다고 하는데 이렇게 범의 허리 위치가 최고의 명당 자리라면 누가 벌써 묘로 안 썼을 리가 없다. 둘째, 무엇보다 작중에서 상덕이 "나는 명당만 찾아다니기 때문에 이 곳은 처음 온다"고 분명히 말을 했다. 지도로 배산임수만 봐도 명당의 후보를 추릴 수 있다는 40년 경력의 지관 상덕이 모른다는 건 오니와 관계없이 더욱 명당의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동티에 걸린 인부 역시 "그런 곳에 묘가 있는 것부터 이상했다" 고 말을 했다. 셋째, 후반부에 큰 나무와 각종 엮여있는 것으로 봐서 그곳은 신령들을 모셨던 곳으로 볼 수 있는데 너무 신성하고 영험한 곳은 풍수적으로 묫자리로 쓰기에 좋은 자리는 아니다. 넷째, 척추는 인간의 신체 부위에서 중요한 부위지만 단어 그대로 '뼈'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묘지로 쓰기에 좋은 자리는 될 수 없다.
2.2. 오니
- 최종 보스인 일본 귀신 오니는 생전에 다이묘 중 하나로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으로 참전했다가 패배해 사망했지만 1만 명을 넘게 죽이는 전공을 세워 신이 됐다고 말한다. 단순한 요괴가 아니고 일종의 신통력이 있는지 금강경으로도 제압할 수 없고,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지만 자신에게 박혀 있는 칼이 주물이자 본체가 되어버려 음양오행을 따르지 않으면 물리적 타격이 먹히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귀문이 열리는 축시(AM 1~3시)부터 활동하는 것으로 나온다. 영혼이나 귀신과 달리 영(靈)과 육(肉)이 있는 정령이 되었으나 해가 떠 있는 낮에는 활동하지 못한다.[27]
- 자신을 여기에 묻은 음양사가 본래는 남산의 신궁에 봉안해줄 거라고 속였다는 언급도 나온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오니는 자신이 본래 다이토쿠[28]에 묻혔었다가 조선 남산의 신궁으로 갔어야 할 몸인데 여기에 묻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 된 건 가타히토와 마코토 짓일 거라고 하는데, 가타히토는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천황인 고요제이 천황의 이름이고, 마코토는 일제강점기 총독 사이토 마코토로 보인다. 즉, 신궁은커녕 세키가하라 전투 직후 천황의 명에 의해 다이토쿠에 묻혔다가, 일제 강점기 사이토 마코토 재임 당시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놓기 위해 쇠말뚝으로 이용되었다는 의미인 듯하다. # 여기에 여우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가 오니에게 묘비에 쓰인 위도와 경도를 외우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척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
- 종합해보면 오니가 된 다이묘급의 무사로서 도요토미 가문의 중심인물로 임진왜란에 종군하였고, 세키가하라에 서군으로 참전하여 교토 로쿠조가와라(六条河原)에서 대표격으로 참수당한 세 사람 중의 하나[29]이자, 다이토쿠지에 안장되었다가 메이지 말기에 파묘된 기록이 있는 이시다 미츠나리가 설정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30] 물론 다른 인물의 설화에서 따온 에피소드가 존재하고 영화 속의 인물을 두고 누구라고 특정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가정에 가깝지만 극중에서 나온 묘사를 토대로 보자면, 1만명을 죽였다는 것을 수사적으로 파악한다면 세키가하라 서군을 이끌며 동군의 수많은 병사들을 죽였다는 은유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아 조선을 침략해 영화 중의 대사와 같이 "북으로(北へ)" 병사들을 몰고 갔던 유력 다이묘 중 하나이자,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참수당하여 목 아래쪽으로부터 칼에 꽂혀 봉인당할 만한 정황에 맞는 인물은 다른 누구보다 이시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 신토 쪽으로 보면 나무위키에 단독 문서가 있는 전국시대 일본 장수 대다수가 일본 어딘가의 신사에서 신(카미)로써 모셔지고 있다. 적어도 다이묘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으며 1만 명 이상의 적병이나 민초를 벤 장수는 당연히 일본 전역에서 막대한 인지도가 있었을 테니 신사의 신으로서 추앙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 3국의 민간 신앙에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을 신으로 섬기는 신앙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장수가 신으로 모셔졌단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긴 하다. 관우, 제갈량 신앙 등은 너무 유명한 사례고, 한국에선 충무공 이순신을 모시는 현충사가 있으며 심지어 서양의 인물인 맥아더를 장군신으로 모시는 무당의 사례도 있을 정도다.
- 거기에 더해 일본 신토에서는 단순히 이름난 인물을 신으로 모시는 것을 넘어서, 숭배되는 신의 선악을 따지지 않고 원령이나 악령, 요괴라도 숭배하는 것으로 달래서 저주와 재난을 피하고자 하는 어령 숭배가 존재하기 때문에 설령 오니가 전공으로 유명한게 아니라 민간인 학살 등으로 악명을 떨친 존재라도 신으로 숭배받았다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있다.
- 오니의 모티브는 여러 인물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
- 지네 장식이 달린 투구를 보면 센다이 번의 영주, 다테 삼걸 중 맹장이었던 다테 시게자네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지네 장식은 지네가 후진을 하지 못하고 전진만 할 수 있기에 전장에서 후퇴 없이 전진만 할 것이란 의지를 담은 것이다. 오니가 후반부에서 "용맹한 지네는 후퇴하지 않는다.", "전진! 전진!"을 외치는 모습에서도 역시 확인해볼 수 있다. 다만 다테 시게자네는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 소속도 아니었고 적에게 목이 잘리지도 않았다.
-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전사한 부분은 시마 사콘,[31] 패전의 책임을 지고 최종적으로 참수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 이시다 미츠나리와 고니시 유키나가[32]가 있다.[33]
- 참고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처형되지 않고 전사한 다이묘급 인물은 1만 2천석의 히라츠카 타메히로, 2만석의 토다 시게마사 등이 있다. 시마 사콘은 2만석의 영지를 가졌던 무장이지만 이시다 미츠나리의 가신으로 다이묘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시마 사콘은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교토로 숨어들어 절의 승려로 살다가 죽었다는 설도 있다.
- 작중에서 전진과 북쪽으로를 강조하는데, 임진왜란에 참전했을 수도 있고 여기에 묻히기 전까지 신으로 모셔졌던 것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격하는 것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제국군의 중국/소련 침공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오니가 은어와 참외를 요구하는데, 은어의 경우는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근거지였던 기후성(岐阜城, 기후죠) 아래 나가라강에서 잡힌 은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참외의 경우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들(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부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자료
-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은어와 참외 대사는 즐겨 봤던 만화 '음양사'에 은어와 참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당시 다이묘가 좋아했을만한 음식으로 생각되어 가져온 설정이라고 한다.[34]
- 기존의 해석 중에서 오니가 '상대가 동군(참외)인지 서군(은어)인지 확인하려는 시도였을 수 있다'는 해석이 있었지만,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일본은 참외가 없다며 마쿠와는 참외가 아니며 참외 류의 모과 종이기에 현대 일본인에게 마쿠와라고 물으면 없기 때문에 무슨 단어인지 잘 모르고, 화림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은어만을 준비한 것 아닐까라고 밝혔다.# '참외'로 직역되는 '마쿠와'는 현재의 일본에는 거의 생산되지 않는 농작물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르며, 그래서 화림이 단어를 이해 못하고 은어만 가져간 것. 실제로 오니가 '마쿠와'를 언급할 때는 화림이 패닉이 되지만 '은어'를 이야기하자 표정이 바뀐다. '마쿠와' 또는 '마쿠와우리'는 참외의 종류이지만 일반적인 노란색 참외보다는 개구리 참외처럼 생겼다. 겉모습만 보면 참외보다는 마치 애호박이나 작은 수박과 비슷하게 생긴 외양이다. 마쿠와우리 현재의 일본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참외를 도태시키고 메론만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 승탑을 보자마자 합장하며 기도하는 모습은 가토 기요마사를 연상시킨다. 가토는 열렬한 불교 신자였으며, 임진왜란 선봉장으로서 함경도 방면으로 가장 먼저 북진해 조선의 호랑이를 자주 사냥한 걸로 유명하다. 심지어 두만강을 넘어 만주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영화 후반부에 북진을 외치는 장면과 함께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담이지만 불교는 오랫동안 일본의 국교였기 때문에 가토 외에도 불자를 자처한 장수가 많았으며, 아예 승려를 대동하기도 했다. 이런 일본 불교의 참전의 역사는 임진왜란 뒤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부 불교인들이 자진해서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행보로도 이어진다. 한 예로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이 싸운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의 대문호였던 톨스토이는 이 전쟁을 강력히 비판했으며, 당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들한테 불교를 가르치던 일본인 승려인 샤쿠 소우엔(釋宗演, 1859~1919)에게 같이 손잡고 반전투쟁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샤쿠 소우엔은 "이 전쟁(러일전쟁)은 정의롭다"며 거부했다. 또한 일본 불교계는 러일전쟁을 '사악한 기독교 국가'인 러시아를 상대로 하는 정의로운 전쟁으로 간주하여 일본의 여러 불교 종단에서 종군 승려 파송 제안이 하도 쇄도해 일본 정부 당국이 아예 종군 승려 수를 제한해야 할 지경이었다.백인이여, 불교가 그렇게 평화적인가[35] 이렇게나 열렬한 불교 신자이면서도 보국사의 보살을 잔혹하게 죽이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데, 이는 당대 무사들이 무력을 갖춘 이익 집단인 사찰 승병 소헤이와 자주 충돌했다는 사실과 일본 귀신은 접촉하는 누구든 무조건 죽이려 든다는 광심의 대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승탑을 보고 기도한 것이 단순히 불교 신자여서만이 아니라 승탑에는 입적한 고승의 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격이 높은 영이 머물러 있다고 여겨서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김상덕이 처음 보국사에 갔을 때 이 절의 승려로부터 보국사를 처음 세운 사람이 ‘원봉’ 스님이며, 약 100여 년 전 뛰어난 풍수가였다는 말을 듣는다. 이를 감안하면 보국사 내의 승탑이 모양만 흉내낸 조형물이 아니라 진짜 승탑이라 원봉의 사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36]
- 첨언하자면, 풍수지리는 불교의 근본 교리와는 관계가 없지만 그렇다고 불교와 아예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의 선종 승려 도선이 한국에 처음으로 풍수지리를 전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 작중 오니는 감독의 해설에 의하면 약 8척(240cm) 정도의 거한인데, 일본 전국시대 당대에 대표적인 장신이라고 평가받던 토도 타카토라가 190cm(6척 2촌), 오다 노부나가가 170cm였기에 체형을 모티브로 따온 실제 인물은 없다. 아마도 사후 정령화의 영향으로 신체가 거대해졌거나 또는 시신을 쇠말뚝 역할로 가공하는 주술 의식을 치를 때, 몸통에 칼날을 박아넣고 삐져나온 칼날의 끄트머리에 다이묘의 머리를 꽂고 꿰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보아 다이묘의 혼이 깃들어 있는 칼을 주축으로 하여 다른 무사의 시신을 모아서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같은 존재로도 추측할 수 있다. 약 300년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사망한 시신치곤 너무 멀쩡했기 때문인데, 300여년 전에 매장된 시체라면 백골만 남아있거나 토질에 따라선 뼈마저 삭아 없어진 상태여야한다[37] 아무래도 신통력이 있어서 썩지 않았거나 혹은 유해는 사라졌으나 검에 깃든 영혼은 남았기에, 다른 거구의 사내를 참수하고 그 안에다가 검을 꽂아 넣고 갑옷을 입혀 그의 영혼을 시신에 빙의시켜 오니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 인간만 보면 무작정 죽여버리려 하던 살인귀 오니가 특이하게 상덕에게는 '나의 부하가 될 생각이 있는지' 회유한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있는데, 초반부에 상덕은 지용의 조부의 묫자리를 파묘하고 난 후에 비록 악지지만 땅에게 예를 갖춘다는 의미로 묫자리에 100원 동전을 건네주고 떠났다.[38] 그리고 사실 그 밑에는 오니가 잠들어 있었다는 게 후에 밝혀지는데, 이 오니가 상덕이 던진 동전을 자신에게 바친 공물로 인식했다는 것. 즉, 방금까지 은어를 맛있게 먹고 온 데다 자신에게 아주 오랜만에 공물을 바쳐준 인간까지 마주했으니 기분도 좋은 겸 잠깐이나마 살려줄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39] 100원이란 동전의 가치가 현대인에게는 푼돈이지만 400년 전의 인물이라 반짝거리는 것만 보고 금은품이라 생각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굳이 금은품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과거에 신으로 대접받고 있던 상황에 만족하던 것으로 보이고 신으로 여기고 대접해준 행위 자체를 고맙게 여긴 것이지, 그것이 고도의 가치를 지닌 물건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현대 신사(신토)의 새전도 5엔, 50엔 정도가 보통이다.
- 한편 그 100원 동전에 박혀있는 사람이 이순신 장군이었다는 것을 되짚어보면 둘의 관계가 좀 묘하긴 하다.[40] 이 오니가 임진왜란(1592~1598)에 참전했음이 암시되고, 사망한 시점도 임진왜란 이후인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이니 이순신의 이름 정도는 당연히 알 것이고 단순히 이름을 들어본 것을 넘어 실제로 봤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오니가 생전에 이순신을 실제로 봤다 하더라도 실제의 얼굴이 아닌 상상에 기반한 표준영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100원화를 보고 실제 이순신을 연상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거니와,[41]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하더라도 작중 오니의 발언이나 행보를 보면 육상전에서 날뛰면 날뛰었지 수군으로 해상에서 이순신을 마주했을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42][43] 위의 주석에서도 언급되듯 묫값으로 100원을 쓴 것도 현장에서 결정된 내용이었고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던져진 것은 완전한 우연이라고 감독이 유퀴즈에서 언급했다.
- 작중에 오니가 무당을 보호하는 할머니 신을 보며 분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전에 나무 신령으로 위장한 화림에게 이곳이 나무 노인의 산이냐고 물어본 것을 보면 아마 한국 신앙과 신령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림의 몸주 할머니 신이 물리적 실체를 가진 본인에게 해를 가할 수는 없지만 그 반대로 음기의 존재인 본인 역시 신격이 높은 수호령에게 마땅한 피해를 입힐 방도가 없기에 서로서로 상성에 막혀 대치만 하는 발이 묶인 상황이 되어버려 분노했던 것. 실제로 오니가 할머니 신을 결국 어찌하진 못했는지 쓰러뜨리는 대신 자신이 도깨비불로 변하여 피해 묫자리로 귀환했다.
- 오니가 상덕의 얼굴에 쓴 금강경을 보고 이를 외운지 오백년이 넘었다며 꾸짖는 장면은 마치 사도행전 속에 나오는 악귀가 구마의식을 시도하는 어설픈 비신자를 보고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로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고 놀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세간에 떠도는 괴담 중에 귀신에게 가위 눌린 사람이 가위에서 벗어나려고 주의 기도를 외우니까 그걸 다 들은 귀신이 비웃듯이 주의 기도를 거꾸로 외우더라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의 장면이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악귀는 선의 세력이 어떻게 대항하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44] 검은 사제들에서도 마르베스는 사제들의 기도문을 따라하며 조롱하고 주의 기도를 외는가 하면, 여러 부하 마귀들로 하여금 자기를 보호하며 사제들이 영신의 육체에서 자신을 꺼내지 못하도록 방해했으며 사바하에서 김제석은 불교 교리를 왜곡해 예언을 피하기 위한 살인을 목적으로 사이비 종교를 설계했다.
- 본작의 최종 보스인 오니는 사실 수동적인 측면이 강한 악역이다. 물론 눈에 띄면 닥치는 대로 죽여버리고 다니는 것은 맞지만 자기가 나서서 악행을 저지르려 하기 보다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다가오면 공격하는 측면이 부각되기 때문. 물론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보국사 보살이나 돼지 축사 직원을 머리를 따서 죽여버리는 걸 보면 잔혹하고 흉포한 성정임은 확실해 보이지만, 나서서 악행을 하려고 한다기 보다는 그냥 시키는 대로 얌전히 땅에 박혀있다가 건드리면 그때서야 깨어나서 주변을 공격하니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사악한 악역이라기 보다는 괴수물의 크리쳐에 더 가까운 캐릭터이다.[45]
- 엄밀히 말하면, 최종보스인 다이묘 오니는 일본의 전통적인 오컬트 관점에는 잘 맞지 않는 편이다. 본 영화상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일본의 귀신들은 걸리기만 하면 닥치는대로 살육하는데, 이러한 귀신들은 통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일본의 전통적인 오컬트 관점이다. 본 문서에서도 언급된 원령에 대한 숭배는 그저 원한과 분노가 큰 귀신에게 넙죽 엎드려 “제발 우리를 해치지만 말아주세요” 하고 빌기만 하는 것이지, 파묘라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무당이나 음양사 등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46][47]
- 일본의 전통적인 오컬트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최종보스인 다이묘 오니는 본래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정령보다는 본작에서 언급되지 않은 식신이라는 개념에 더욱 가까운 편이다. 식신은 음양사 등이 귀신이나 요괴 등과 계약을 맺고 자신의 뜻에 따라 이용하는 존재로, 음양사 무라야마에 의해 강제로 이용당하는 오니의 처지와 일맥상통한다. 다만 식신이 된 요괴는 음양사의 통제 하에 있기에 자기 멋대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데, 다이묘 오니는 풀려난 이후 매 축시마다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공격하고 죽여대기에 식신의 개념에도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본작에서 이 오니의 개념을 지칭하며 언급된 정령은 원래 신령스러운 기운 혹은 보통 자연물을 수호하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영을 칭하는 단어이기에 오히려 음기의 결정체인 오니와는 사물에 영혼이 깃든 존재라는 것을 제외하면 거리가 있는 쪽이고,[48] 앞서 서술했듯 식신 혹은 요괴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49]
- 굳이 끼워맞추자면, 무라야마 준지 개인이 워낙 강력한 존재였기에 일방적으로 다이묘 오니를 찍어누르고 자기 마음대로 쇠말뚝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미 여러 번 언급되었듯 본작에서는 무라야마 준지에 대해 “사람이 아니라 여우 새끼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일본에서 구미호 등 요호는 강력한 요괴로 묘사되며, 특히 인간으로 둔갑해 남자와의 사랑을 갈구하는 설화가 많은 비교적 유순한 한국의 구미호와 달리 일본의 백면금모구미호는 악귀 중에서도 가장 막강하고 무시무시한 존재인 일본삼대악귀로 따로 취급될 정도이다. 또한 자기 멋대로 사람을 죽여대는 것은 오니를 통제할 수 있는 무라야마가 이미 사망 혹은 잠적한지 오래됐기 때문에 통제 불능의 존재가 되어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일 가능성도 고려할만 하다.
2.3. 무라야마 준지
- 기순애의 정체로 밝혀지는 '여우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는 조선총독부의 관리로서 ‘조선의 귀신’ 등 한국의 무속이나 토속신앙에 대한 저서를 여럿 남겼던 일제강점기 시절의 민속학자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에게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감독 본인은 노코멘트했다.
- 풍수에 대한 개념이 옅었고 음양사나 풍수학을 미신 취급했던 일본 제국의 행태를 고려해 본다면, 일본군부 고위 장교, 중추원 부의장 같은 실권력자들과도 줄이 있을 정도였던 무라야마는 꽤나 입지전적인 인물로 보인다. 일본인임에도 조선 팔도 강산을 다 꿰뚫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하고, 화림의 스승이 일본에서 만났을 때 주(呪)가 강해 사람이 아닌 여우가 둔갑한 것 같다고까지 불렸던 것을 보면 그의 실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후반부 오니가 보여주는 환상을 보면 무라야마가 주술을 펼칠 때, 무덤 주위에 일본제국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여섯 명 정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즉, 일본군 일부 고위급 관료의 협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니의 대사에서도 남산의 신궁에 모셔져야 할 자신이 이곳에 묻힌 것이 '마코토의 짓인가'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언급한다. 이를 보면, 실제 역사에서 풍수지리를 미신 취급한 조선총독부의 성향과 달리 영화상에서는 권력의 최정점인 조선 총독부터 일본 제국의 고위 관료들에게 무라야마가 개인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일본 제국 관료들이 무라야마가 하는 일에 편의를 봐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 배석한 군장교와 동원된 군인들의 수가 매우 적었던 점을 보면 일본 군부의 공식적인 행사라기 보다는 무라야마의 개인적 행사에 상당한 지위의 군인 몇 명이 참석하면서 자기 권한 내에서 비공식적 협조를 해준 것이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 작중 전반부와 후반부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데 모든 원인을 제공한 최종 흑막이다. 따지고 보면 수백 년 전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본국 일본에 고이 잠들어 있다가 난데없이 바다 건너 이국 조선 땅으로 끌려와 주술이 걸리고 인간 쇠말뚝에 살인귀 정령이 되어버린 오니나, 그 선 채로 잠든 오니를 지킬 도구로 낙점(?)되어 악지 중의 악지에 묻히게 된 박근현 모두 무라야마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도구에 불과했다. 물론 박근현의 경우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고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수많은 동족의 삶을 착취하는 데 일조한 악인이므로 죽은 뒤에라도 인과응보를 받았다고 할 수 있고, 오니 역시 한국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살아생전에 높은 확률로 임진왜란에 참전해 조선 땅에서 살인·방화·약탈을 일삼았다면 죽은 지 5백여 년 뒤에야 값을 치렀다고 볼 수도 있다.
- 무라야마가 여우 음양사로 불릴 정도로 여우의 느낌을 풍긴다는 점을 보면 반인반요 출생 설화를 가진 일본의 대표적인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2.4. 쇠말뚝, 철혈단
- 쇠말뚝과 일제풍수모략설
이 영화는 위 두가지 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사실 이들은 이미 학계에서도 논거가 거의 타파되어서 도시전설로 치부되고 있다. 한국의 산간 지방에서 발견되는 쇠말뚝은 일제가 한반도의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일부러 박은 것이 아니라 측량용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신 영화는 "99%는 가짜"라는 고영근의 대사를 직접 넣어 사실을 왜곡하지 않은 채 "그럼 1%는!"이라는 상덕의 대사와 철혈단의 존재를 추가하면서 영화적 상상력으로써 쇠말뚝의 개연성을 살렸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99%는 측량용 쇠말뚝인 가운데 1%의 어느 미친 음양사(무라야마 준지)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행사로 말미암아 주술을 입힌 무사 출신의 도깨비를 말뚝처럼 박아넣었다는 설정은 현실 기반의 판타지 세계관으로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 된다. 또한 일본의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었으므로 이를 방해하려는 철혈단의 활동 역시 일본이 공식적으로 제재하지 않으면서 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은 채 소문한 무성한 도시전설이 되었다는게 본 영화의 판타지적인 설정이 된 것. 감독도 이를 알고 있으며, 실제 쇠말뚝을 안 넣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너무 ‘국뽕’일 듯 해서 쇠말뚝을 대체할 수 있는 상징성이 있는 걸 넣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걸 오컬트 장르에 붙여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무라이의 시대’를 재밌게 봤는데, 중간에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무라이들이 조선인을 죽이는 게 삽화로 묘사되는데 기분이 너무 안 좋았던 것을 계기로 일본 제국주의, 군국주의 침략의 상징과 사무라이 정령을 결합시키고 그걸 쇠말뚝을 상징화하는 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걸 뽑으면 이 땅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50]
- 철혈단은 독립운동 단체인가?
명확하지 않다. 감독의 언급에 따르면 영화 제작 이후 우연히 이름이 같은 실존 독립단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 했고, 작중 행적을 봐도 독립 활동에 연관한 정보가 일체 나오지 않아 단순한 지관 단체일 가능성이 더 높다. 철혈단의 사진을 봐도 독립이라는 글이 적힌 뭔가가 있다든지, 하다 못해 태극기를 들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철혈단이 독립군 단체라면 무라야마 준지 입장에서는 오니가 묻힌 땅에 박근현의 묘를 첩장하기 보다는 차라리 조선총독부에 신고해서 그들의 활동을 탄압하는 게 더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무라야마가 자신이 몰래 박은 오니의 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철혈단을 잡아 달라고 일본 제국 경찰에 요청을 했다 한들 독립군 잡기 바쁜 제국 경찰이 일본 전통 신앙도 아닌 조선 풍수같은 미신을 믿고 토지측량용 쇠말뚝이나 뽑으러 다니는 철혈단을 잡기 위해 이런 산간벽지에까지 경찰력을 동원할 이유가 없다. 철혈단이 정말 독립단체였다면 무라야마가 나서기 전에 이미 경찰이 체포하려 다녔을 것이다.
따라서 자의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었던 무라야마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을 지낼 정도로 거물인 친일파 박근현의 묘를 오니가 묻힌 자리 위에 첩장하는 방법으로써 이 일대를 쉽게 출입하지 못하게 해 철혈단의 활동을 방해한 것으로 보인다. 보국사 보살이 증언한 대로 어느 높으신 분이 묻혀서 경비가 삼엄해져 접근하기도 어려웠다고 하며, 어느 날 갑자기 도굴꾼들이 다 잡혀가거나 북으로 도망갔다고 하는데 이는 도굴 혐의로 철혈단원들을 체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단원들이 실제 도굴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려난 이후 이들이 후에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독립군에 투신했을 가능성은 있다.
- 철혈단은 광복 이후에도 활동했을까?
가능성이 낮다. 무라야마가 이들을 방해하기 위해 박근현을 첩장했다면 이래저래 논리가 맞지 않는다. 해방 이후 일본인과 친일파들 대다수가 대한민국 땅을 떠나거나 조용히 살았다. 무라야마가 해방 이후에 기순애라는 법명으로 정체를 숨기고 한국 땅에 살았는지에 대해선 정보가 없지만, 근처 절의 기순애라는 유명한 스님에게서 묫자리를 받았다는 말은 후에 거짓으로 드러났고 화림의 스승이 일본에서 무라야마를 만났었다는 얘기를 통해 그가 해방 이후 조선을 떠났을 가능성을 높혀 준다.
이전 글에는 이승만 정부 시절 아부를 하며 살아남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묘는 해방 이후에도 생길 수 있다는 식의 논지글이 있었지만 이것은 좀 억지스러운 주장이고 영화 정황상 박근현의 묘는 사실상 광복 이후에 생길 수가 없다. 우선 일제시대 공훈자로 묻힌 사람인데, 그걸 광복 이후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광복 이후 일본인의 대다수는 일본으로 쫓겨나다시피 돌아갔고 광복 직후면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인데, 버젓이 일본 음양사와 일본인들이 와서 친일파의 묘에 제례를 치른다는 것 자체가 맞아 죽을 일이다.[51][52] 광복 이후에는 박근현 후손들도 친일범죄자인 할아버지 묘에 대한 존재를 쉬쉬하며 숨겨왔다. 그리고 애시당초 영화 대사에 '100년이 다 된 묘'라는 언급이 있다. 영화 개봉 시점상 광복 이후라면 아무리 길어도 80년 이상이 나올 수가 없다. 웬만해서는 60~70여년 된 묘를 100년이 다 된 묘라고 언급하진 않는다. 영화에 언급이 없어 광복 이후에도 활동을 알 수 없는 것은 철혈단 쪽이라고 볼 수 있다.
2.5. 풍수지리
- '일제가 조선의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설을 논파하는 근거 중의 하나를 들자면, 당시 일본에서는 풍수지리 사상이 약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왕릉은 빠짐없이 강산의 명당을 차지하고 있고, 더 나아가 중국은 자금성을 만들 때 풍수지리적 요소를 고려하여 인공산인 경산(景山, 징샨)을 따로 쌓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일본은 천황이 기거하는 황거가 큰 산이 없는 평야지대에 큰 물길도 없는 곳에 위치해 있다. 애초에 에도 막부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일본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도쿄도가 광활한 간토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 한국적 풍수지리로 해석하면 도쿄는 결코 길지(吉地)가 아니다.# 20세기 초반 흑선내항 이후, 일본 제국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국가의 모든 것을 뜯어 고쳤다.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민속 신앙도 천황의 아래로 정비해 국가신토를 지향했으며, 오랫동안 일본에 뿌리내린 신토는 건재했으나 신의 힘으로 믿어졌던 자연 현상들이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해지고 국가적 차원에서 음양도는 미신으로 치부되어 음양사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원래도 위세가 강하지 않았던 일본의 풍수지리가 더욱 위축되었으리라 추측된다.
- 하지만 일본에도 풍수지리가 없지는 않았다. 과거 일본의 풍수지리는 후수이(風水)라 부르고 <北木山風水記> 같은 유명한 풍수지리서가 있다. 작품 내 중요한 키워드인 음양사는 고대 일본 헤이안 시대에 풍수를 살피는 지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국은 묘지 등 죽은 자를 위한 풍수인 '음택 풍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은 주택 등 산 자를 위한 풍수인 '양택 풍수'를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와 맞서야 했던 역사, 환경적 맥락과 연관이 깊다. 앞서 언급한 황거 역시 양택 풍수 측면에서 길지는 아니지만 악지로도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또한 현대 일본에서도 풍수지리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일본 경주마 코파노 리키의 마주로 유명한 Dr. 코파도 유명한 풍수지리사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재일조선인으로부터 한국의 풍수지리를 배웠고, 이를 홍콩의 사물 풍수와 결합시켜 독자적인 풍수지리를 만들어 냈다.
- 다만 지금까지도 일본이 상대적으로 한국과 중국만큼 풍수지리를 중시하진 않는 것은 맞다. 타 동아시아 국가와 비교해서도 눈에 띌 정도로 풍수지리의 영향력이 적다. 현대 일본 대중 다수가 인지하는 풍수지리는 1990년대 소설, 영화, 만화, 방송 등으로 유행했던 음양사, 풍수지리 붐에 기인한다. 그 이전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정도의 민속 문화로 치부되었다.
요약하면, 일본의 풍수지리는 개인이나 한 가족 단위의 운수를 틔워주기 위해 집이나 방의 물건 배치 등을 조절하는 '양택 풍수' 위주로 훨씬 좁은 범위[53]를 다룬다. 어떤 면에선 일본의 풍수가 실생활에 있어선 조금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 다만 위 내용은 한국 풍수에 대한 오해를 다소 담고 있다. 음택풍수와 양택풍수는 그 본질을 놓고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 묘자리로서의 명당은 산 사람이 살기에도 명당이라고 말하는 풍수사들의 주장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음택명당은 양택명당보다 크기가 작기는 하다. 따라서 한국의 풍수가 음택 풍수에만 치우쳐져 있다고만 본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해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효와 제례를 중시하는 사대부사회상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음택풍수가 유달리 발달한것은 맞지만, 음택 못지않게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저택, 서원, 향교 그리고 궁극적으로 궁궐의 입지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땅을 선정하는 원리인 용, 수, 사, 향 등은 음택의 선정 원리와도 같다. 즉, 한국은 양택풍수가 약하다는 것은 오해로 보아야한다. 한국의 풍수는 음택풍수 못지 않게 양택풍수도 활발하였고 나아가서 조상의 묘지선정까지도 고려했으니 음택풍수라는 고도화된 영역까지 나아갔다고 보아야할것이다. 다시말해서 당장의 생존 생활을 위한 연구 즉 양택풍수만 취급한것이 아니라 양반들의 정신적인 만족과 미래의 영향력까지 고려한 음택풍수까지도 활발하였다는 것은 음택풍수가 가져온 여러 부작용은 차치하더라도 조선의 풍수사상이 고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일본제국이 풍수 신도 등의 전통신앙을 미신 취급했다는 위 서술도 사실과 다르다고 보아야한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심혈을 기울여 이식하려한것이 신토이고 신사이며 맥아더의 조치이전까지 천황을 국가신토의 신으로서 신성화했기 때문이다. 신토는 음양술과 밀접하고 자연히 풍수와도 밀접하다.즉 당시 일제 권력 상층부에는 음양풍수에 능통한 집단이 깊게 닿아 있었음을 국가신토의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영화가 묘사하는 방향이 완전 허황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3. 현실 반영 오류
3.1. 관 관련
- 작 중 "왕실이나 고관대작들이나 쓰던 향나무 관" 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전통적인 관의 재료는 소나무·오동나무·가죽나무·버드나무·뽕나무 등이며, 향나무는 관의 재료로 쓰이지 않는다. 왕실과 고관대작뿐만 아니라 서민들조차도 소나무 관을 사용했는데 이게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 "소나무 진내 푹푹한 육송관"[54]이다. 향나무 관은 잘 썩지 않는다 하여 현대에 와서야 쓰이기 시작한 관이다
- 다만 향나무 관을 사용할 시 시신이 잘 썩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향이 너무 강해 벌레나 동물들의 접근을 막는 효과가 있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고관대작은 그냥 "높은 사람"이라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승려로 위장한 일본 음양사가 향나무 관을 쓰라고 해서 썼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일본에서 향나무 관을 쓰던 습관이 있었다면 매국노 친일파였던 사람이 죽기전에 향나무 관을 쓰길 원했을 수도 있고 후손들이 그렇게 해줬을 수도 있다. 그러니 향나무 관을 쓰는 거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작중에서 "왕실이나 고관대작들이나 쓰던 향나무 관"이라는 표현도 꼭 틀렸다고 보긴 어렵다. 앞서 적었던 이유로 인해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친일파 매국노 고관대작들이 실제로 향나무를 관으로 많이 썼었다면 저런 대사를 할 수도 있다. 이를 명백한 설정오류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55]
- 관의 구조도 관 뚜껑을 쇠못을 박아 고정시키는 서양식 구조로 되어있는데, 이 역시 조선이나 일제강점기 당시 고관대작이 쓸 법한 전통적인 관의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관은 나비장(袵, 나비 모양의 나뭇조각)을 끼워서 고정시키는 형식이라 영화처럼 쇠지렛대 등의 도구로 한번에 관을 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당시에 있던 수 많은 친일파 매국노 고관대작들이 굳이 전통적인 방식대로의 관을 사용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일본식의 관을 사용했다고 해도 충분히 말이 된다. 게다가 일본 승려(로 위장한 음양사)가 묘자리를 봐줬다고 나오는 걸로 봐서는 이 음양사가 장례 자체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관여했다면 모든 것이 말이 된다.
- 파묘하는 장면에서 땅을 팠더니 바로 나무 관이 나오는데, 이 역시 실제 왕족이나 고관대작의 묘와 차이가 있다. 왕족이나 고관대작의 묘는 회곽묘(灰槨墓)라고 해서 묘광 안에 관과 곽을 보호하기 위한 석회층을 만들어 관과 곽을 안치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즉, 나무 관 바깥에 석회로 된 또 다른 관이 감싸는 구조. 이 회곽묘 관련 대표적 사건으로는 오페르트 도굴 사건 당시 이 회곽묘 구조로 인해 오페르트 일당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가 실패한 바 있다. 박가의 묘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회곽묘가 아닐 가능성도 있고, 1917년에 죽은 이준용의 묘처럼 회곽묘일 가능성도 있다
- 다만 일본 (승려로 위장한) 음양사가 묘자리를 봐줬는데 단순히 묘자리만 봐 준 건지 아니면 장례 절차에 깊숙이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음양사가 모든 것에 다 관여했다면 회곽묘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음양사가 하라는 대로 했을 것이기 때문에 땅을 파자 바로 나무 관이 나오는 것도 말이 된다.
3.2. 박근현
- 친일파 조부 박근현의 귀신에 빙의가 된 박지용이 갑자기 나치식 경례 동작을 하면서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본군은 나치식 경례를 하지 않았으며, 군인도 아닌 1세대 친일파 관리였던 박근현 역시 나치식 경례를 할 리 만무하다. 다만 아무래도 시각적인 효과가 큰 동작이다 보니 차용한 듯 싶고 경례가 아닌 연설 동작으로 볼 수도 있다.
- 다만 경례했던 손을 내리는 동작은 그 당시에 많이 사용하던 일본식 연설 동작이다. 그리고 연설 내용 자체가 조선 청년들이 태평양전쟁에 자원해야된다는 내용인데 이 당시에는 이미 나치 독일과 일본은 동맹이었다. 따라서 나치식 경례를 한다고 해서 이걸 오류라고 보기는 어렵다.
- 오니의 관을 수직으로 내리는 다음 장면에서 주술을 하는 음양사 세 명 뒤, 군인들 중 한 명이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설정 상 오류일 가능성도 있다.
- 작 중 "100년도 더 된 묘", "100년이 지난 묘" 라는 대사가 자주 등장하는 걸로 봐서 박근현의 사망 시기를 1920년대 즈음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1920년대에 사망한 귀신이 1940년대에나 등장하는 단어인 대동아공영권을 말하는 것은 오류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해당 연설의 내용은 태평양 전쟁 당시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라 선동하는 연설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연설 형식은 작 중 박근현과 같은 이미 민족 반역자인 1세대 친일파들보다는 한때 민족 지도자로 존경받다 변절해 버린 지식인, 문학가, 교육자, 언론인 등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던 계층들이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주로 하던 연설 형식이다.
- 다만, 박근현과 아들 박종순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실제 박근현의 사망시기는 1940년대쯤일 가능성이 더 높다. 위의 "100년도 더 된 묘", "100년이 지난 묘"라는 대사도 그저 박근현의 묘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진짜 100년이 지난 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면 조부의 귀신이 빙의된 박지용이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연설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무라야마 준지가 굳이 한국식 이름인 기순애를 써가며 위장한 것을 보면 박근현의 사망시기가 해방 이후일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있다. 물론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친일파 조부 박근현이 70~80대에 죽은 것이 아니라 90~100대에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100세를 넘겨서 죽었을 수도 있다. 작품에서 박근현이 정확히 몇세에 죽었는지 안 나왔고 "묘가 100년 가까이 되었다"느니 "100년이 넘었다"느니 하는 것은 그저 무덤이 오래되었다는 표현일 뿐 애초에 저 2개의 표현 자체가 통일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박근현이 실제로 몇세에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오래 살았다고 하면 그 뿐인 거다.
- 그러나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기순애는 일본어 키츠네를 한글 기순애로 표기한 일제강점기 당시 문헌들에서 가져왔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살았던 분들이라면 기순애라는 이름만 듣고도 키츠네임을 눈치를 챘을수도 있다고 인터뷰 한 것을 보면 무라야마 준지가 기순애라는 한국인으로 위장한 게 아닌 그냥 일제강점기 당시 키츠네라는 단어를 일반적으로 조선인들이 부르던 말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어 き/ki/의 첫 자음은 기식(숨을 내뱉는 정도)이 약하다. 그래서 き는 한국어 모어 화자에게 [키]보단 오히려 [기]에 가깝게 들린다. 또한 つ[t͡su]의 첫 자음인 무성 치경 파찰음 [t͡s]는 일부 방언권을 제외하면 현대 한국어에 없는 자음인데, 같은 파찰음이지만 조음 위치가 다른 ㅊ[t͡ɕʰ]보다는, 마찰음이긴 해도 조음 위치가 비슷한 ㅆ[s͈]나 ㅅ[s]로 듣는 경우가 많았다. 즉 일본어 きつね를 당대 한국어 화자는 '기쓰네' 정도로 들었을 것이고(지금도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이것이다.) 이는 다시 적당히 한국 한자음 같은 '기순애 [기수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박근현이 매국노라서 기순애라는 승려가 애국심으로 악지에 묻은 거 아니냐?" 물어보는 상덕에게 기순애의 정체가 일본인인 것을 알려준 사람은 박지용의 고모였다. 그냥 "기순애라는 승려가 묫자리 정해줬다"라고 말한 손자인 박지용은 어른들에게 이름으로만 들은 승려 기순애가 당연 한국의 승려인 줄 알았겠지만, 최소 고모나 박종순은 처음부터 기순애가 일본인임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박근현에 빙의된 박지용이 한 연설 내용이 해방 후 새로운 권력으로 등극한 미군정이 아닌 일제 찬양 내용이라는 점에서 박근현이 해방 후 사망했다는 추측은 무리가 있어보인다.
- 박근현과 아들 박종순의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서 이질감이 든다. 박근현이 사망한 1920년대에 유복자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박종순과 그의 누이는 80대로[56] 보이며, 손자 박지용도 40대로 추정돼 몰입도가 낮아진다는 평이 있다. 박종순과 그의 누이를 80대로 잡고 박근현의 사망 시기를 1940년대로 잡아도 박근현이 노령으로 사망하기 바로 직전에 자식을 본 셈이니 이 또한 이상한 설정이 된다. 파묘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이완용의 증손자가 이완용 묘를 파묘한 일처럼 파묘를 의뢰한 박지용이 박근현의 증손자, 박종순과 그의 누이는 박근현의 손자, 손녀 설정이었다면 얼추 나이대가 맞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다만, 박근현의 사망 시기를 1920년대가 아닌 1940년대 초중반으로 보면 박종순과 박지용 등의 나이도 맞는 나이가 된다.
- 다르게 보자면 애초에 박근현이 아들을 몇세에 낳았는지 조차도 불명이다. 전근대 시기의 고관대작들이 나이 70~80에도 자식을 낳은 케이스는 더러있었고 고령의 나이에 아이를 보는 경우는 현대에도 드물지 않다. 배우 김용건도 70대에 뒤늦게 아들을 봤고 미국의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80대에 아들을 봤다. 버니 에클레스톤 포뮬라 원 회장은 90아넘어 아들을 보기도 했을정도. 게다가 그 아들을 나이 어린 여성에게서 얻었다(박근현은 나이 어린 후처, 첩, 기생에게서 아들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해 박근현의 아들이 외아들인지 막내 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몇살에 아들을 얻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이걸 가지고 작중 인물들의 나이대가 맞지 않으므로 설정 오류라고 하는 것은 한국의 전근대 생활상을 반영하지 않은 결과이다. 게다가 박근현의 아들 박종순의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 60에 가까운 나이에 젊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을 수도 있다. 작중에서 박종순의 나이가 안 나왔기 때문에 박근현과 박종순의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나이 관련 오류는 없다고 봐야한다.
- 작중 박근현의 악령이 언급하는 대사에서 미루어볼 때 자손들은 묘소에 찾아온 적도 없고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문제의 무덤은 긴 시간 방치된 것 치고는 외외로 멀쩡하다. 무덤은 완전히 정돈되진 않았으나 묘소로 올라가는 길은 마치 누군가 벌초를 한 것처럼 긴 잡초나 나무들도 없이 매우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벌초를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그 정도로 깊은 산 속에 있는 묘소들은 여름철 한두달 사이에도 엄청나게 길고 많은 잡초와 나무들이 자라나서 이를 헤치고 올라가는 것 부터가 엄청난 난관이며 심하면 위치를 알아보기도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무덤의 삿된 기가 매우 강해서 잡초가 자라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러려면 풀 하나 없는 흙무덤 같이 되어야 한다. 무덤의 상태와 계절(초가을)적 배경으로 봤을 때 최소 3주 전이나 4주 전에 벌초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다만, 이 부분은 장손과 지관이 방문할 예정이니 먼저 사람 써서 벌초 대행을 했다고 보면 된다. 화림이 미국에서 의뢰인을 만난 뒤 한국으로 와서 김상덕을 섭외하는 장면이 있고 그 시간에 박지용 일가에게도 벌초가 가능하다. 혹은 박지용의 고모가 나름 아버지를 생각하는 모습이 보이니 매해 해왔을 수도 있다. 또는 민통선에 가까운 전방부대에서는 진지공사때나 추석을 앞두고 종종 무연고묘지를 군 부대에서 관리해주기도 한다. 민통선에 가깝기도 하고, 여러 작계에 있어서 성묘객들이 부담이라 대신 관리해주는 경우도 있고, 또는 지역 특성상 후손이 찾아올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문화에서는 아무리 이름 없는 묘라도 어련히 누군가의 조상님이겠지 하며 그냥 못 지나치는 것도 없잖아 있다. 입구에 자물쇠 달린 철문이 있는 것을 보면 땅 자체는 사유지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 곳으로 보인다.
- 이장이나 화장하게 되어 파묘하면 파헤친 봉분에 묘비를 묻고 다시 구덩이를 메워야 한다. 작중 보면 파묘 작업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무덤은 파헤쳐진 상태 그대로다.
- 이 경우는 인부들이 남아서 마저 작업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내린 폭우로 일단 물러났다가 박지용 집안에 줄초상 터지고 뱀을 죽인 인부에게 동티까지 나자 다른 인부들에게도 소문이 퍼져 다들 일하는 것을 꺼리고, 박지용 집안도 줄초상 수습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3.3. 오니, 무라야마 준지
-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했던 다이묘라는 오니가 입고 있는 갑옷의 양식은 투구 양식이나 떡 벌어진 오오소데에서 볼 수 있듯 전형적인 헤이안 시대의 갑옷인 오오요로이이며, 세키가하라 전투 시대인 전국시대의 양식과는 다르다. 전국시대의 갑옷은 당세구족으로 오오요로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보니 불멸의 이순신 등 한국 창작물에서 자주 벌어지는 소품 오류다.
- 다만, 외형이 화려한 만큼 전국시대에도 오오요로이가 제작되어 봉납품이나 선물용으로 쓰였기에 신사에 모셔지게 된 오니에게 신사측이 봉납품으로 갖고 있던 오오요로이를 입혔다고 하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신으로 모셔졌다는 오니의 발언을 생각해보면 오오요로이를 입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오니에 대한 호칭도 다이묘라고 했다가 쇼군이라고 했다가 뒤죽박죽이다. 원래 쇼군(しょうぐん)은 장군(将軍)의 일본어 발음일 뿐이지만 일본사에서는 명목상으로 천황 다음가는 실질적으로 최고 권력자인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정이대장군은 1185년부터 1867년까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일본의 최고지도자였다. 즉, 전근대 일본 율령제에서의 영외관/국정 최고 권력자이자 무가정권의 최고 통치자다. 본 작에선 장군의 일본어 발음 용도로 쓴 듯 하지만, 그 쇼군이라는 말을 하는 귀신의 본체가 일본인임을 생각해볼 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 자리에 오르게 되므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해 목이 잘린 작 중 오니는 쇼군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
- 금강경을 외운지 500년이 되었다는 언급이 있으나 중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했다고 해도 1600년에 벌어진 사건임을 생각하면 정확히 500년이 되기는 힘들다. 물론 오니가 착각했거나, 1500년대 초중반에 태어났다고 치고 반올림을 하면 충분히 긴 세월이라서 그냥 500년이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다. 또한, 혼의 상태에서는 인간세계와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도 있다. 일본에서 자주 쓰이는 "아직 백 년은 이르다!"와 같은 표현처럼 자신에게는 금강경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도 설명이 되니 결정적인 설정 오류라고까지 할 사안은 아니다.
- 무라야마 준지가 백면금모구미호를 신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실제로 백면금모구미호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살생석이 위치한 나스마치에서도 살생석을 봉인하는 행사만 하지 따로 신사를 짓고 이를 숭배하지는 않는다.
- 물론 작중에서 무라야마가 여우새끼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한 음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언급으로 보건데 아마 백면금모구미호를 모신다는 설정은 오류가 아닌 의도적으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 오니는 축시(丑時)에 밖으로 나와 활동하는데 축시는 새벽 1시부터 3시다. 화림이 30분 정도 시간을 끌 수 있으니 그때 쇠말뚝을 찾아서 뽑은 뒤 말의 피로 씻으라고 말한다. 그때 달의 형태는 상현달의 모습으로 나오는데 상현달은 자정쯤에 진다. 즉, 축시에는 이미 달이 지고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 오행 관련
오행과 관련해 상덕이 금(金)인 오니를 목(木)으로 무찌르는 장면이 오행의 원리상 가능한 것인지를 두고, '상극의 원리에 위배돼 오류이다' vs '상모가 발생하면 가능한 일이다'라며 명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4.1. 오류가 아니라는 입장
오행에는 상극 이외에 상모(相侮), 상승 관계도 존재하는데, 이는 마치 너무도 큰 불에는 물을 끼얹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듯이 '본래 약해야 하는 쪽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본래 강해야 하는 쪽을 오히려 모멸한다'는 뜻이고, 상극 관계의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목모금(木侮金)이 성립한다. 당시 정황을 따져보면 작정하고 목기의 기운이 충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목모금(木侮金)이 발생한 것이다.- 오니는 음기를 가진 요괴이고, 오행으로 보면 불타는 칼. 즉, 화극금(火剋金)된 상태인데, 거기에다가 백마의 피, 양기가 충만한 오화(午火)를 뒤집어 써서, 금의 기운이 몹시 약해진 상태다.
- 오니를 공격한 나무는 물에 젖은, 즉 수생목(水生木)의 상생 관계로 목기가 더욱 강해진, 쉽게 말해 버프 나무 말뚝이다.
- 기본적인 힘을 1이라 할때, 오니를 쇠말뚝으로 본다면 불에 의해 약해진 0.5가 된 금(화극금)이, 물에 젖어 1.5가 된 나무(수생목)에 의해 공격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체상성만으로 이미 한쪽은 약해진 상태이고 한쪽은 강대해진 상태로 부딪힌 것.[57]
- 극중 최민식이 "물에 젖은 나무는 불에 달궈진 쇠보다 질기다"고 친절히 설명한 것으로 미루어 역극을 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기본적으로 지형이 목(木)기가 강하다. 오행을 방위로 따졌을 때 한반도는 동방, 즉 목기가 성립하며 그 중에서도 호랑이 지형이라 지지로 치면 寅木으로 양기가 강한 목방이다. 그 중에서도 허리에 해당하는 강원도 향로봉 부근, 즉 한반도에서도 더더욱 동쪽이다.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무라야마 준지가 허리를 끊을 때 굳이 '금의 기운'으로 내리 누르려 했을 것이다.
- 명리학에서 인간을 갑목(甲木)으로 보는데, 나무를 쥔 상덕이 곧 '목기'이기도 하다.
- 작중 시간대가 땅을 파기 시작한 축(丑)시 뒤에 바로 인(寅)시가 이어지는데, 오니를 제거한 뒤 첫 닭 우는 소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축시와 인시 사이, 즉 목기가 강해지는 시간으로, 천지인이 전부 목기가 충만해진 상태라서 목모금이 성립할 정도로 목기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 음양오행에서는 상모 외에도 '상승'이 존재하는데, 오행 중 어떠한 상극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면 그 상극의 힘을 완전히 쓰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작중 오니의 상황을 보고 추정하면 오니는 불과 금속의 힘을 가졌지만 작중 오니가 보인 도깨비불의 크기를 보아서 상승의 힘을 따르면 화승금(불이 지나치게 강하면 쇠는 녹아서 못 쓰게 된다)의 원리가 적용될 수도 있다.
- 합충이론에 따르면 묘목(얇은나무)과 유금(가공한 쇠)은 묘유충하여 크게 부딪히는 관계로, 본래 금이 목을 극하는 관계이지만, 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극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충돌하게 된다. 특히 묘유충은 생동하는 봄기운의 나무와 서늘한 가을의 금속이 맞붙어 모든 충 중에서도 가장 크게 부딪히며, 한쪽의 세력이 강대할 경우에는 강대한 쪽에 모든 것을 내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4.2. 오류라는 입장
오행의 상극관계에 의하면 금극목(金剋木)이라 목(木)을 제압하는 것은 금(金)이고 결국 목(木)은 금(金)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오류라고 보는 입장이다.- 상모관계로 역극이 발생했다는 의견에서는 목모금이 발생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수생목 강화를 받은 나무와 주변 정황이 목기 충만한 상황임을 근거로 들고 있으나, 이는 결과에 주변 정황을 끼워맞춘 설정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상덕의 나무에 대한 버프를 인정한다면 목모금이 발생하기 힘들만큼 금기운이 버프를 받을 정황 또한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화극금이면 금이 약해진 상태라 보일 수 있으나, 금을 제련하는 것은 화이므로 금은 거친 원석에서 더 날카로운 귀물이 되었다.[58]
- 화극금된 오니는 하필 땅 속에 매장돼 있다. 이에 토의 기운이 화와 금을 통관하여 '화생토'에서 '토생금'이 되었으니 금기운 역시 강화를 받았다.
- 주변에서 강해진 목기는 오니의 화기를 생하므로, 강화된 화기는 위의 토기운의 통관을 받아 다시 금을 생하는 역할을 한다.
- 작중 백말피에 오니가 약해진 것은 무속(민간설화)에 기반한 장치로 도깨비가 원래 백말피를 무서워 한다는 믿음에서 가져온 것이다.[59] 그럼에도 굳이 여기에 명리 이론을 가져다 붙이면 백말은 庚午에 해당하므로 화+금 속성이고 이는 오니와 완전히 같은 속성이라 오니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하고 화토 통관에 의해 오히려 오니의 금을 강화하는 속성이 되어버린다.
- 명리에서 인간을 갑목으로 보기 때문에 나무를 쥔 상덕이 목기가 되어 상모가 발생한다면, 상덕이 나무를 손에 쥐기만 해도 오니는 상덕을 공격할 때마다 스스로 파괴돼야 한다.[60]
- 한반도의 방위가 동쪽이니 목기가 강하다고 보는 입장도 단식 판단이다. 오행의 방위란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니가 살다 죽은 곳은 한반도보다 더 동쪽인 일본이며, 일본을 기준으로 본다면 더 서쪽인 한반도로 왔으니 상대적으로 금 기운이 더 강한 땅으로 왔다는 논리 또한 성립한다. 단순히 동쪽이라는 이유로 어느 나라의 목기가 강하다고 전제하면 일본보다 더 동쪽은 태평양 건너 미국이며 미국보다 더 동쪽은 대서양 건너 유럽이라 동쪽으로 갈수록 나라마다 점점 목기가 강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생긴다. [61][62]
- 목모금 관계는 목의 기운이 너무 강해 금이 목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지 금을 극하는 역극관계는 일어날 수 없다고 보는 학자들 의견도 있다.
- "물에 젖은 나무는 불에 달궈진 쇠보다 질기다"라는 대사 이전에 "불과 물은 상극이다. 쇠의 상극은 나무다."라는 대사가 먼저 나온다는 점으로 볼 때 해당 대사는 상모 관계를 암시한다기보다는 앞의 (작가가 잘못 이해한) 상극 관계를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오니에게 몸을 찔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지금이 상모 혹은 역극이 발생할 정도로 특수한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평생 오행과 풍수로 밥 벌어 먹고 산 사람이 상모 관계를 무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발상이다.
- 시나리오 작법의 관점에서 상극의 매우 특수한 관계인 상모를 사건의 해결 방법으로 제시하면서도 관객들을 납득시키려면, 이에 대한 사전설명과 빌드업이 반드시 필요하며, 관객들의 눈높이에서 왜 하필 지금이 그런 상황에 해당하는지 설명해 줬어야 하나 극중 이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 상극 관계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 상모 관계까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면 이미 대중영화에서 사용할만한 장치로는 실패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목으로 금을 격파한다는 설정을 두고 온갖 설정놀음이 있었다고 보는 것보다 그냥 시나리오 작가가 실수했다고 보면 이 오류는 간단하게 설명이 된다.
- 작가의 착오가 아니라면, 극의 진행을 위해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의도적으로 상극 관계를 뒤집어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오니가 쇠말뚝이다'라는 기본 전제가 너무 확고한데다, 도깨비 불로 변해 휙휙 날아다니는 등 이미 불(火)붙은 쇠(金)로 속성을 설정해 버려서 본래 상성인 불에 내성이 생겨버린(…) 상황이라 화를 이용하는 것도 애매하게 돼버렸기 때문에 이런 전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필 클라이막스에서 핍진성을 놓쳤다는 면에서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 이 부분은 그냥 "물과 불의 상성" 부분만 강조해서 일부분이나마 상성이 작용하여 그로 인해 데미지가 들어간다고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이는 동양철학을 어느정도, 최소한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아쉬움일 뿐 대부분의 관객은 ’금은 목에 약하다‘하면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테니 큰 문제까지는 아닐 것이다.
5. 항일 코드 관련 반응
토론 합의사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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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일제강점기 소재를 일부 차용한 것을 놓고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는 반일이라고 비난하거나 이를 반박하는 등의 양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파묘가 소재로 삼은 코드는 항일(반일제)이지 반일이 아니다. 항일과 반일은 그 대상과 개념이 다름에도 인터넷 상에서 상당수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화시키며 말하는 잘못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상업영화 갤러리: 단물 다 빼먹은 일제시대 쇠말뚝 음모론을 재탕해서 진부하다는 주장. #
- 김덕영 감독은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
- 조선일보 사설에서는 도쿄는 '모두를 위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미래로 달려가는데 우리만 과거에 얽매여 신음하는 것은 아닌지. 파내야 할 건 친일파의 무덤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일본 트라우마였다고 주장했다. #
- 루리웹에선 쇠말뚝은 허구이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실제 일본 제국이 민족 말살 정책을 펼쳤는데 반일이라는 주장은 부당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
- 에펨코리아: 파묘가 반일주의를 부추긴다 주장하는 김덕영의 페이스북 글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 #, 반일주의 영화라고 공격당하는 중이라는 반응. # 호사카 유지 교수가 반일영화니 좌파영화니 민족감정을 악용한다는 기이한 비판을 당하고 있다고 언급한 글을 인용. #
- 개드립넷: 파묘의 일본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다는 기사에 그러면 나치 독일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반나치독일 영화냐는 주장을 하였다. #[63][64]
- 장재현 감독은 파묘의 반일·좌파 영화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한국인이라면 갖는 슬픔을 담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 주요 배우 중 한 명인 최민식은 2024년 8월 17일 손석희가 진행하는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하여 "영화 '파묘'가 반일이라는데"라는 질문에 대해 "왜 반일 영화라고 할까? 반일로 따지면 ‘명량’이 더하지 않나. 거긴 대놓고 반일인데..."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6. 로케이션 정보
- 영화의 시작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하지만 장소 협찬 받은 곳 중에 미국이 전혀 없다. 즉, 모든 촬영을 한국에서 한 것.
- 박지용의 갓난 아들이 입원해 있는 LA의 병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성 요셉 병원(St.Joseph Medical Center 구글맵)이지만 실제 촬영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했다. 화림, 봉길이 병실 밖에서 대기하는 장면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문화창조원에서 문화정보원으로 가는 건물에서 찍은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자체적으로 파묘 촬영지를 홍보하며 예매권 이벤트를 했다.#
- 미국 LA의 박지용의 저택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신화빌라스라는 곳에서 촬영하였다. LA의 야자수 해변은 사실 제주도 해변 도로였던 것.
- 김상덕과 박지용이 차 안에서 독대하던 휴게소는 강원도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있는 홍천휴게소이다. 다만 실제로 고성은 양양 방향으로 향해 있는데 해당 장면은 서울 방향 휴게소에서 촬영했다는 것이 옥의 티.
- 조선총독부가 보이는 플라자 호텔은 내부는 세트고, 창에 보이는 광화문 정경은 플라자 호텔에서 소스 촬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스를 LED월을 띄우고 촬영했다. 블루스크린을 놓고 합성을 하는 건 색감이 잘 안맞는 것 같았다고 한다.
- 영화에 나오는 묘비의 좌표 실제 위치는 고성군은 맞지만 향로봉에서 북쪽으로 약 900m 떨어진 민통선 안쪽이라 영화처럼 자유로운 출입은 어렵다. 1년에 한 번 200명의 민간인에게 향로봉까지의 접근이 허용되나 좌표의 위치까지는 허가없이 갈 수 없다. 무덤 위치에서 북녘 땅이 보인다거나 야생곰 수색작전 전에도 전방지역 작전하는 군 차량들이 다수 보인다는 점은 실제와 들어맞는다. 구글맵
- 파묘한 묘와 차량이 이동하는 산길은 실제론 여러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부산, 파주, 고성, 춘천, 무주, 충주 등 전국의 각기 다른 곳에서 촬영한 후 하나의 공간으로 완성했다.#
- 묘는 경상남도 양산시 대운산에 조성한 것이다. 감독은 2022년 11~12월까지 대운산 시유림에 무덤을 세팅했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이북도 보인다고 했던 영근의 말은 사실 양산의 대운산 자락을 보고 한 것이다. 감독은 실제 산꼭대기에 묘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수차례 헌팅을 거친 후 세팅과 촬영 여건을 고려해 평지에 만드는 방향으로 변경했다. 산꼭대기 묘는 2미터 정도로 지대를 높이고 100그루가 넘는 나무들로 조경작업을 거쳐 오픈세트로 만들었다. 오픈세트인 건 예전에 막노동을 해 본 사람들은 파묘 장면에서 눈치챌 수 있는데, 100년이 된 묘 치고는 봉분도 낮고[65] 삽날이 아주 쉽게 들어간다는 데에서 바로 알 수 있다. 예전엔 양지의 명당처럼 보였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악지에 음지인 곳이며, 봉분 자체는 소박하지만 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나무들은 좋은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왕가 무덤의 형태를 참고했다. 동시에 잎의 색이 붉게 변한 죽은 나무의 색, 검은 빛을 띠는 흙의 색감, 오랫동안 방치된 채 쓰러져 있는 나무와 덤불 등의 룩으로 음지를 표현했다. 촬영할 때, 화림의 할머니 역이자 무속 자문을 맡은 고춘자가 주변 산을 돌아다니며 촬영 중에 혹시 있을지 모를 액운을 미리 방비했다고 한다.
- 소나무로 둘러싸인 음산한 묘는,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도예관광 힐링촌 부지에 700여 평의 오픈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CG 작업을 선택하지 않고 흙의 색 하나하나 세팅하는 등 현장감 있는 분위기를 내기 위한 고된 제작 과정이 있었다. 장재현 감독은 삼면이 나무로 둘러싸인 땅을 구현하길 원했기 때문에, 소나무를 옮겨 심어와서 조성했다고 한다. 당시 소나무재선충의 유행으로 소나무를 수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주변 잡목을 수십 그루를 옮기고 트럭으로 흙을 쌓아 올렸다[66]고 한다. 오픈세트장은 촬영이 끝난 후 원상 복구되어 더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 포스터에 등장하는 거대한 나무는 담양군 가사문학면에 있는 당산나무이며 경상리 느티나무라 불린다. 약 500년 정도 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매년 정월에 마을[67]에서 제사를 지낸다.[68] 인근에 큰 나무가 두 그루가 있는데 가장 접근성이 좋은 마을회관 근처의 나무는 영화에 등장한 나무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고 당산나무로 향하는 길 중간에도 한 그루 있다. 두 나무 다 큰 줄기가 두 개로 나뉘어 자라고 있는 것도 특징. 느티나무가 들판이 아니라 산등성이에 있고 주변이 큰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나무의 형태 또한 줄기가 높고 곧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엄청난 굵기의 낮은 줄기에서 웬만한 나무 덩치의 거대한 가지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나무 주변에 해가 잘 들지 않아 으스스한 분위기가 강하다.
최근 방문한 영상에 따르면, 무속인들이 요즘도 신력을 얻기 위해 방문한다고 하며, 제사상을 치우지 않아 냄새에 이끌려 내려온 산짐승들로 인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 고성군립병원 장례식장으로 나온 곳은 경남 양산의 형주 요양 병원이다.
- 지용이 묵고 있던 호텔은 한화 호텔 더 플라자이다. 영화에서 묘사한 대로 세종대로와 광화문과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실제로 풍수지리학적으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는 곳이라 하니[69] 주인공들은 하룻밤 사이에 한국 최고의 명당 터와 악지 터를 모두 가본 셈이다.
- 극 중 보국사 촬영지는 전라북도 무주군 유평마을이다. 법당과 창고, 그 안의 스님이 기거하는 별채까지 세트로 만들었는데 거미줄까지도 다 만들어서 느낌을 낸 것이라고 한다. 토목공사부터 3개월 가까이 소요됐으며, 당초 밭이었던 자리에 세트를 지어서 비가 내리는 날엔 돌담이 무너지기도 했다고 한다. 세트팀과 작화팀이 추운 날씨에 고생을 많이 했으며, 보국사 보살을 연기한 이종구도 매우 놀랄 정도로 실감나게 지어졌다고. #
7. 감독 인터뷰
장재현 감독이 작중 세계 및 연출 의도에 대해 대외적으로 공개한 인터뷰이다.[70]- '파묘' 장재현 감독이 털어놓은 숨은 의도와 장면마다의 의미 (스포있음)
- 왜 오니는 은어를 좋아하는가..장재현 감독이 밝힌 ‘파묘’ A to Z [전형화의 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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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1000만 특집 2부] 장재현 감독 “지금까지 이걸 찾아 낸 사람은 없었다”
[1] 묫자리를 잘못 써서 후손들에게 불운이 닥치는 일. 산소탈이라고도 한다.[2] 李華林. 한인애국단에서 활동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위키피디아[3] 화림과 마찬가지로 한인애국단이다. 봉길은 후반부인 5장에서 '도깨비 놀이'를 할 때 무당들이 '윤 서방'이라고 부르는 장면을 통해 성이 뒤늦게 밝혀진다. 전체 이름이 나오는 장면은 영화 통틀어서 없다. 본작에서 이름을 따온 독립운동가들 중 일반인들한테 가장 인지도 높은 사람이기에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이름을 숨긴 것으로 추측된다.[4] 吳光心. 위키피디아[5] '파'는 실제 대한민국 차량 번호판엔 쓰이지 않는 글자이다.[6] 참고로 박제순의 손자 박승유는 박지용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할아버지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했지만, 작중 박지용은 할아버지의 친일을 긍정하지도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점이 아들(아기)과 생사가 갈린 결정적인 부분으로, 작중 화림의 입을 빌어서도 "애가 아프다잖아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이는 순결한 존재로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영혼이라는 것은 오컬트나 공포물의 클리셰 중 하나다.[7] 최민식-유해진 세대와 김고은-이도현 세대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을 중요시했다고 한다.[8]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에는 송이가 자라지 않고 너무 습한 곳에서도 버섯이 썩어버린다.[9] 애초에 랭글러는 단순 비포장 도로를 넘어 극단적인 험로를 다니기 위한 특별한 모델이며, 실사용에선 국산 SUV가 지프사의 차량들보다 더 편하고 좋은 부분도 많다.[10] 오늘날 쉐보레의 전신인 GM대우는 상덕도 익숙하겠지만 지프는 아닐 것이다.[11] 대놓고 일본의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로 설정하기에는 일본차는 독일차에 비해 상류층들이 선호하지 않기에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12] 또는 중찰인의(中察人義)[13] 공교롭게도 최민식은 천문에도 능했던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 역할로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출연한 바 있다.[14] 기순애가 한국식 가명으로 위장한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었으나, 이는 맞지 않다. 감독의 언급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문헌에 키츠네를 기순애로 표기한 경우가 있어 이를 가져 왔으며, 관객들 중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기순애라는 이름을 듣고 키츠네임을 바로 눈치 챘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즉, 기순애는, 무라야마 준지가 한국인으로 위장한 게 아니라 그냥 일제강점기 당시 여우 음양사, 일본어로 キツネ陰陽師(キツネおんみょうじ 키츠네 온묘지)라는 별칭으로 유명했던 무라야마 준지를 부를 때 '키츠네'라는 단어를 조선인들이 기순애라고 부르던 말임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상덕이 박지용에게서 '근처 절의 기순애라는 스님이 묫자리를 정해줬다.'라는 말을 듣고 당연히 한국인이겠거니 생각했을 뿐, 영화 상에서 무라야마 준지가 한국인으로 위장했다는 내용은 일체 나오지 않는다.[15] 여우는 개과(Canidae) 여우속(Vulpes)이다.[16] 한국여우(Vulpes vulpes peculiosa) 아종은 과거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였으나 밀렵, 산림파괴, 쥐잡기 운동, 쥐약 투약, 쥐약 중독, 광견병, 교통사고 등의 이유로 개체수가 급감하였다. 2021년 기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서 보호받고 있다.[17] 실제로 영화의 삭제장면 중에는 상덕이 보살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18]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하는 프리퀄을 기대하는 관객들이 제법 있다.[19] 이것은 한때 유행한 홍콩의 강시영화들을 연상시킨다.[20] 다만, 일본의 신사에서 모시는 신격의 존재 정도는 된다.[21] 그래도 작중 김범신 신부는 저분들도 실력 있으신 분들인데 너무 상대가 강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존중해준다. 서양의 악령, 그것도 지옥에서 온 대악마이니 한국의 무속으로는 상성상(?) 밀릴 수 밖에 없기도 하고.[22] 사바하의 무당들 또한 울고 있는 자의 신위를 알아보는 꽤나 신통력을 지녔지만, 운명의 존재가 아니라서 쫓겨났다.[23] '창문을 열어줘야 한다', '문을 열어줘야 한다', '들어오라고 말해줘야 한다' 등 세세하게는 다르지만 어쨌든 집안에 있는 사람의 초대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다.[24] 다만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갈 때 바다를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바로 러시아 극동과 미국 알래스카 사이에 위치한 베링 해협의 해수면이 겨울철에 얼어붙을 때 걸어서 건너는 것이다. 다만 파묘의 작중 시간대가 겨울철이 아니라는 문제점이 있다.[25] 혹은 혼령을 매장하여서 봉인되었기 때문에 묫바람과 관련없이 당대에 있었던 태평양 전쟁이나 6.25 전쟁등의 외부요인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26] 사실 박근현의 묫자리는 산꼭대기라서 완전한 명당은 아니다. 흔히 금계포란(金鷄抱卵)형 같은 배산임수가 되어야 한다.[27] 오니가 첫 등장했을 때,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얼마 안가 물러난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이후에 상덕이 쇠말뚝을 찾으러 갔다가 묘 구덩이에서 오니를 발견했을 때, 땅 속에 잠들어 있었다.[28] 역사 깊은 쿄토 대덕사에는 전국시대 유명 무장들의 탑두가 많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명복을 비는 사당인 탑두 중에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것도 있다. 그 중 코토인(高桐院)이라고 하는 탑두에는 오니의 모티브 중 하나로 여겨지는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여러 점 있다고 한다.[29] 다른 인물은 고니시 유키나가와 안코쿠지 에케이[30] 위 출전에 따르면, "이시다 미쓰나리의 무덤은 교토의 다이토쿠지에 있었으나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가문이 미츠나리의 묘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미츠나리의 묘는 봉분 없이 땅에 묻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메이지 말기, 칸사이 지방의 실업가 아사부키 에이지가 볕이 드는 곳에 이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石田三成の墓は京都の大徳寺にあるが、江戸時代は、徳川家が三成の墓を許さなかったようである。このため三成の墓は、土に埋められ、世の中に顔を出さなかった。明治の末、関西の実業家朝吹英二氏が陽の当たる場所に改葬した、という記録がある。)"고 한다. 따라서 그는 역사적으로도 묫자리를 제대로 얻지 못했으며 현재도 어디에 묻혀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불우한 처지이다.[31] 이쪽은 전사가 유력하나 생존설도 있다.[32] 고니시는 자결이 금기시되는 가톨릭 신자라 할복 대신 참수형을 받았다.[33] 한국사 강사이자 유튜버 황현필은 이 오니가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것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죽었다는 것을 토대로 고니시 유키나가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고니시 유키나가는 위에서 언급됐다시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승탑을 보자마자 곧바로 불경을 읊고, 금강경을 외우는 오니와 절대 연관지을 수 없다.[34] 오니의 체형 연기를 담당한 김병오의 인터뷰에 따르면 무덤에서 나와 은어를 산 채로 씹어먹는 장면에서 나온 은어는 미술팀에서 젤리로 만든 소품이라 한다.[35] 물론 정유재란 때 종군승으로 와서 일본의 잔인무도한 행각과 조선 백성들의 고통을 종군 일기인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에 기록하여 참상을 전하기도 한 일본 안죠지 초대 주지 쿄넨(慶念)처럼 등 훌륭한 승려들도 있었다.[36]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승탑, 곧 부도는 스님의 사리가 있는 곳이고 그래서 신성하다는 의미로 설정했다고 한다.[37] 시체의 피부가 탱탱했던 걸로 보아 미라화 된 것도 아니다[38] 원래 파묘를 하고 나서 지관들이 땅을 잘 빌렸다는 의미로 동전을 주는데 좋은 땅이면 500원을 준다고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악지였기 때문에 10원을 주는 것으로 하였으나 땅 색깔과 너무 비슷해서 현장에서 100원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39] 물론 상덕은 도깨비불에 넋이 나가있던 상태였기에 묵묵부답이었고 오니 역시 상덕의 얼굴에 적힌 금강경을 보곤 이놈이 날 퇴치하려고 왔나보다 싶었는지 가차없이 공격해버린다.[40] 최민식이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걸 생각하면 배우개그가 되기도 한다.[41] 오니가 동전의 얼굴을 이순신으로 인식했다면 오히려 대단한 장수의 얼굴이 박혀있는 매우 가치가 높은 귀금속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42] 의외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 본토 내에서 이순신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다. 지상전은 생존자들이 비교적 살아돌아와 이야기를 전하기 쉽지만 해전은 전투의 특성상 생존자가 살아남아 복귀하기 더 어려워 적에 대한 정보는 복귀한 이들의 증언보단 당시의 원시적인 첩보전, 휴민트에 의존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북선 내지 판옥선의 거대한 규모 탓에 거기에 탑승한 이순신을 제대로 목격하고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땅 위에서의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이 더 유명했으며 그를 악역, 요괴로 등장시킨 가부키가 성행할 정도였다. 물론 현대의 일본에선 이순신 장군은 유명한 장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43] 다만 임진왜란 10년 뒤에 순천만에 나타난 수만명의 일본군 귀신을 이순신의 사당을 지어서 퇴치한 실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가 없다.[44] 그런 의미에서 서양에도 "악마가 성경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라는 격언이 전해져 온다.[45] 다만 너무 날뛰게 되면 야생곰의 습격 정도로 치부하기가 어려워지게 되고 국민적인 관심을 끌게 되어 더 상위의 국가기관이 나서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영화가 갑작스레 스케일이 커지거나 산으로 가버릴 수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얌전(?)하게 설정할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46] 이런 일본의 귀신관이 잘 드러난 매체 중 한국에서도 유명한 링 시리즈나 주온을 예로 들자면, 해당 영화에 나오는 악령들에게 일방적으로 인간이 희생당하거나 간신히 탈출하거나 물리칠 뿐 인간이 대등하거나 우월한 입장에서 악령들을 이용하거나 협상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47] 다만 어령숭배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모신지 100년이 지나서는 원한이 다 가셨다고 여기고 그 이후로는 학업의 성공을 비는 학문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48] 오니를 상대로 시간을 끌기 위해 화림이 연기했던 나무 노인 신령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보면 본작에서 가장 정령에 가까운 존재다.[49] 감독도 식신의 개념은 알고 있었겠지만 주 관객이 한국인임을 고려해 생소한 개념인 식신이 아닌 그나마 익숙한 정령의 개념을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50] 영화 평론 유튜버 라이너는 이 부분에 대해 그들의 측량이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면서 하찮은 주술따위보다 훨씬 무서운 의도가 담긴 험하고 흉한 것이라고 해석했다.[51] 이승만은 같은 동포인 친일파들에게 관용을 베풀었을 지언정 일본은 매우 싫어했기에 당시 1965년 한일수교 이전 일본과 외교 관계도 없던 시절 일본인들이 이런 일로 왔다갔다 하기도 쉽지않다. 그랬다간 꼭 정부때문이 아니더라도 일반 시민들에게 맞아죽을 일.[52] 그리고, 묘비에 세겨진 '삼팔삼사이칠', 즉 묘의 위도가 북위 38도 34분 27초이므로 8.15 해방 당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누어 점령했던 경계인 38선 이북에 위치한 곳으로 한국 전쟁이 나기 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였다가 전쟁 중 국군과 UN군에 의해 수복되어 휴전협정 조인 시 대한민국의 영토가 된 수복지이므로 박근현이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 사망하지 않는 한 남한의 이승만 정권이 관련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53] 실제 유튜브 등에서 풍수를 검색하면 한국은 묫자리나 지형 위주의 이야기를 하지만 일본은 '집의 방향이니 방에 놓아두면 좋은 식물이니 가구 위치가 어쩌니' 하는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며, 심지어 점을 봐 주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주류 풍수는 '삼합유파'로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 전통적 풍수와는 결이 다르다는 설명을 한다.[54] 가난한 사람 장례를 치를 때는 아무 마감도 되지 않은 생선상자 같은 관에다 칠성판만 놓고 묻는다.[55] 사실 이런 해석들은 그냥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기 때문에 이런 걸 설정구멍이니 오류니 할 수는 없고 진짜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거 아니면 대충 다 말이 되게끔 영화를 만든다. 영화 제작자들이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바보는 아니라는 얘기다.[56] 연기한 배우들도 1940년대 생이다.[57] 다만 후술하였듯 목기운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금기운을 이길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여부가 남는다.[58] 상극관계는 누르고 파괴하는 관계인 것만은 아니며, 제어하고 정련해서 귀물로 만들어 주는 역할 역시 있다.[59] 화림이 준비하라고 한 점[60] 굳이 나무로 두들겨 팰 필요 없이 나무를 손에 쥔 상덕이 몸통박치기만 해도 오니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61]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62] 명리에서는 한반도를 갑목, 일본을 을목(학자들에 따라서는 화, 혹은 수 기운이 강한 토로 보기도 한다)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이론을 따른다고 가정하더라도 원래 목 기운 강한 땅에서 서쪽으로 건너온 셈이 된다.[63] 단, 주장의 옳고 그름과 별개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반나치 독일 정서에 편승한 것은 사실이다. 동시대에 나온 다이하드의 테러범이 독일인인 것처럼, 당대 미국에는 2차 대전이후의 반독정서가 퍼져 있었다.[64] 헐리우드는 유대계가 꽉 잡고 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는 유대인이고 해리슨 포드도 본인은 유대교가 아니지만 유대인 집안이 맞다. 나치를 악으로 묘사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65] 이 정도 높이의 봉분은 주로 여성의 묘다. 남성의 경우 이보다 2배 정도 더 높게 쌓는다.[66] 미술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약 20톤에 달하는 검은 부엽토를 로케이션지 흙과 섞어 원하는 색감을 만들었다.#[67] 경상리 마을은 원래 이 느티나무와 더 가깝고 나무 위 지역에 있었는데, 6.25 전쟁 시기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없어지고 조금씩 내려온 것이 현재의 마을이다. 이 마을 역시 시간이 지나며 거주민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도시로 가면서 남아있는 집은 얼마 남아 있지 않고 귀농이나 별장 개념으로 지어진 주택들 몇 채가 더 생긴 것 외엔 없는 정말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다.[68] 이런 당산나무 정월 대보름 굿은 남부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민속 신앙으로, 개중에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의 동제가 유명하다. 군북역 문서 참조.[69] 대한제국 황제가 즉위한 환구단 터이기도 했고, 이후 이 자리를 차지한 화교는 가장 알짜배기 땅에 화교 회관을 세우려고 했다가 1970년대에 무산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은 타이베이시까지 직접 찾아가 사과해야 했을 정도. 그리고 이 자리를 대토받아 세운 게 한화의 현재 더 플라자 호텔이다.[70] 다만 사바하 때 일부 논란이 있었고 리뷰에서 악평을 보고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몇몇 부분에서는 의도적으로 노코멘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