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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c002d><colcolor=#fff>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Assassination of John F. Kennedy | ||
▲ 케네디 대통령이 피탄되기 직전 촬영된 사진 | ||
▲ 암살 다음날의 뉴욕타임스 1면[1] | ||
▲ 사건 발생 위치 | ||
발생일 | 1963년 11월 22일 오후 12시 30분경[CST] | |
유형 | 살인 | |
발생 위치 |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딜리 플라자 | |
가해자 | 리 하비 오즈월드 | |
범행 동기 | 미상[3] | |
피해자 | <colbgcolor=#bc002d> 사망 | 존 F. 케네디 (제35대 미국 대통령) |
J. D. 티핏 (댈러스시 경찰관) | ||
부상 | 존 코널리 (제39대 텍사스 주지사) | |
제임스 타그 (민간인) |
[clearfix]
1. 개요
1977년에 제작된 ABC TV의 2부작 영화 '리 하비 오스왈드의 재판'의 재연 장면. |
실제 피격 이후의 사진. JFK에서도 그대로 묘사된다.[4] |
1963년 11월 22일 리 하비 오즈월드가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살해한 사건.
미국 역사상 네 번째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일어난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이후 62년만에 일어난 대통령 암살이자 최초로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암살당한 사건이다.
수많은 관중들과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는 도중에 암살당했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 파장과 충격이 큰 사건이었다. 거기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오즈월드도 연행되는 과정에서 암살되어 동기와 배후를 알 수 없게 되어 수많은 음모론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이기도 하다.
2. 전개
1963년 집권 3년차이자 재선 출마를 1년 앞두고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의 정치적 기반인 텍사스 주 댈러스로 유세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고 그 해 11월 22일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함께 에어 포스 원을 타고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준비된 링컨 컨티넨탈 차량을 타고 댈러스 시내인 딜리 플라자 인근으로 향했는데 오후 12시 30분 경 갑자기 딜리 플라자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케네디의 머리에 총탄이 직격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충격적일 수 있으니 재생 주의.[5] |
# |
당시 댈러스에 살던 에이브러햄 저프루더[6]라는 시민이 홈비디오 카메라[7]를 들고 퍼레이드를 촬영하러 나왔다가 암살 장면도 같이 녹화되었고, 이후 저프루더 필름은 케네디 암살을 담은 가장 유명한 영상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
첫 발은 빗나가 길바닥을 맞혔으나 또 다시 총성이 울려퍼졌고 두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목을 관통한 후 앞좌석에 있던 존 코널리 주지사까지 부상을 입혔다. 옆좌석에 앉아 있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남편이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남편에게 손을 뻗는데 이때 세 번째 총탄이 발사되어 목을 부여잡고 있던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관통해 버렸다.[8] 병원 도착 당시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진 케네디 대통령을 태운 차 내부는 피로 흥건했다고 한다. 링컨 컨티넨탈은 특수 제작된 차량으로 방탄 기능이 있었지만 퍼레이드를 위해 지붕을 열어 둔 상태였기 때문에 방탄 기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9]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를 저격당한 직후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차량의 후방 보닛으로 올라타는 장면이 있는데 뇌조각을 줍고[10] 뒤에서 올라타는 경호원을 잡아주기 위함이라는 의견이 정론이다.[11]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급히 인근에 위치한 파크랜드 메모리 병원에 도착했고 뒤이어 린든 B. 존슨 부통령이 병원에 도착했다. 대통령은 30분 가량 호흡이 붙어 있었지만 과다출혈로 숨졌다. 다만 설령 운 좋게 살았다고 해도 이미 뇌의 절반이 날아갔으므로 최소 식물인간이 되었을 것이다.[12] 게다가 이미 혈관이 많이 모여 있는 부분인 목에 총을 맞았기 때문에 만일 머리에 총을 안 맞았었더라도 지혈 기술 미비로 인해 과다출혈로 숨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망 후, 케네디 대통령의 시신은 영부인 및 존슨 부통령과 함께 에어 포스 원으로 이동해 워싱턴 D.C.로 향했다. 존슨 부통령은 법적 절차에 따라 기내에서 선서를 하고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미국 정부는 사건이 벌어진 지 약 1시간 후인 오후 1시 30분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것을 알렸고[13] 경찰과 FBI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엘름가 교과서 건물을 포위해 건물 6층에서 탄피 3개와 암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총기를 발견했다.
2.1. 암살범 체포, 그리고 피살
리 하비 오즈월드와 그가 사용했던 이탈리아제 카르카노 M91/38 라이플 |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6층에서 발견된 탄피 |
[14] |
이런 사건이 일어나자 의회는 당시 연방 대법원장인 공화당원 얼 워런[17]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 통칭 워런위원회(Warren Commission)를 발족해 케네디 암살에 대해 조사하게 했다. 워런 위원회는 총알은 암살 현장 옆에 있는 교과서 배급 건물(Texas School Book Depository) 6층에서 발사되었으며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냈다. 특히 루비와 오즈월드의 연결점을 조사했으나 둘은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라고 발표했으나 독립 연구자들은 다르게 판단한다.
3. 수많은 의혹들과 음모론
암살자도, 그 배후나 목적에도 불분명한 점이 많고 암살자로 여겨지는 자가 적절한 동기도 없이 살해되었고, 암살자를 살해한 범인의 동기마저 매우 의심스러운 가운데 이후 마틴 루터 킹,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사건 등이 이어져 9.11 테러와 함께 음모론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마법 총알 등의 상당수 의혹들은 여전히 의심을 사고 있다. 2017년 이후 의회가 이 사건과 관련된 기밀 서류를 해제할 것을 명령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모두 이를 거부했다. "모든 음모론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사실 총알이 몇 발이 날아왔는지, 어디서 날아왔는지조차 논란이 분분했기 때문에 이러한 음모론이 생긴 것은 불가피했다. 무엇보다도 황당한 것은 중요한 단서가 될 케네디 대통령의 뇌를 현재 잃어버린 상태다. 뇌 조각을 짜맞춰서 총알이 날아온 궤도 및 각도 등을 알 수 있는데 이걸 잃어버린 바람에 암살자의 위치 및 공모자 여부가 전부 미지수로 남아 버렸다. 중요한 건 사건 당일 파크랜드 병원 의사들이 본 케네디의 상처와 워싱턴 베세다 해군병원에서 의사들이 본 케네디의 상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오랜 동안 공식 기록은 파크랜드 병원 의사들이 본 것을 외면해왔다.
암살 음모론을 다룬 영화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91년 작 <JFK>인데 이 사건을 10여 년 동안 조사한 짐 개리슨 뉴올리언스 지방검사의 수사 기록을 토대로 제작했다. 실제 개리슨의 수사는 독립 연구자들의 공모 연구를 위주로 하였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기관과 몇몇 인물들의 의심스러운 행적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짐 개리슨에게 CIA와 케네디 암살을 공모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클레이 쇼는 자신이 CIA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부인했으며 이후 무죄를 선고받았고 1974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1979년에 전 CIA 국장 리처드 헬름스가 1975년에 발행된 Coup d'état in America[18]라는 저서의 명예훼손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면서 쇼가 실제 CIA의 정보원이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헬름스는 정보기관에 협력했던 정보원과 실제 CIA 직원과는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CIA에 협력한 미국인은 15만명 이상이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미국인들이 정보원으로 CIA에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쇼는 이들 중 한 명이었으며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의 물건을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가였기 때문에 주로 라틴아메리카 쪽의 정보를 CIA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CIA에게 해외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수많은 끄나풀 중 한 명에 불과했으며 이런 쇼가 CIA와 함께 중요한 작전을 수행할 만큼의 위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19]
조 페시가 연기한 데이비드 페리는 짐 개리슨에 의해 클레이 쇼와 함께 케네디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자신은 리 하비 오즈월드를 모른다며 부인하다가 1967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1993년 PBS 방송에서 데이비드 페리와 리 하비 오즈월드가 함께 찍힌 1955년 민간 항공 순찰대 야외훈련 사진이 공개되었다.# 이 사진뿐 아니라 페리와 오즈월드의 관계를 드러내는 간접 증거는 더 많으나 페리가 오즈월드의 케네디 암살에 연관되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데이비드 페리의 동료로 지목되었던 가이 베니스터는 전직 FBI 요원 출신 사립탐정으로 반 카스트로 쿠바인들과 함께 반공 활동을 했다. 오즈월드는 친 카스트로 성향의 FPCC(Fair Play for Cuba Committee)라는 좌익 단체의 이름을 빌려서[20] 길거리에서 홍보 전단지를 배포했는데 이 전단지에 적혀 있는 주소가 바로 가이 베니스터의 사무실이 있는 뉴먼 빌딩이었다.# 하지만 정작 FPCC는 뉴먼 빌딩에 뉴올리언스 지부 같은 건 없었고 오히려 뉴먼 빌딩에는 반카스트로 성향의 반공 단체인 쿠바혁명위원회, 자유쿠바위원회 같은 단체들이 있었는데 피그스만 침공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단체들로 피그만 침공에 동원되었던 쿠바 망명자들의 상당수가 이 단체들 소속이었다.[21] 이 단체들의 뉴올리언스 지부가 베니스터의 사무실 위층에 있었는데 뉴올리언스 지역지의 보도에 따르면 베니스터는 피그스만 침공에 필요한 군수품을 제공했다고 하며 1961년 루이지애나주 군수품 창고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가이 베니스터는 짐 개리슨의 수사가 시작되기 2년 전인 1964년에 사망했다.
반박이 가능한 대다수의 의혹과는 별개로 오즈월드와 함께 암살에 연관이 있는 것으로 지목되었던 인물들이 공교롭게도 실제로 CIA, FBI, 쿠바 등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CIA와 클레이 쇼가 케네디 암살의 배후라는 짐 개리슨의 수사는 직접적인 증거가 모자랐고 배심원단은 판단에 따라 결국 관련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와 관련된 음모론의 생명력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배후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의심스러운 행적 때문이다. 관련자들의 의심스러운 행적에 대한 논란은 관련자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명확한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사우스월 기자도 저서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독립 연구자들이 제기하는 공모설들에 따르면 원래 퍼레이드 루트는 암살 시도가 실패했을 때 도피를 위해 직선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시장이 독단적으로 바꿨다. 그것도 S자형으로. 이 루트대로 가면 코너를 돌기 위해서 감속해야 하고 그러면 저격이 쉬워진다.
텍사스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기에 텍사스에서 부검을 해야 했다. 비밀경호국이 물리력을 써서 워싱턴 베세다 해군병원으로 이송했다. 부검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 부검을 맡겼고 시신과 뇌는 비밀경호국에 의해 병원에서 강제로 이동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정말 오즈월드 혼자 벌인 일인지, 아니면 배후가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심지어 오즈월드는 실제 총격을 하지도 않았으며[22] 오즈월드가 총을 쏘았다는 지문, 화약 잔사 등도 없고 경찰서에서 심문을 한 기록도 없다. 오즈월드가 너무나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해 아내 마리나는 러시아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제럴드 포즈너는 Case Closed에서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고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대다수는 숨겨진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책들도 여전히 출간 중이다.
케네디라는 전 세계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고작 단독 암살범 한 명이 일으킨 사건에 허무하게 죽을 리 없다는 등의 인식 때문에 그렇게 믿는 듯 하다. 표현을 약간 바꾸자면 음모론이 너무 신빙성 있기도 하고. 수수께끼에 접근할 때 유용한 법칙이자 도구인 이득을 본 사람과 그 이득의 양을 탐색하는 데 다다르면 일종의 이득의 발생량이 정서불안자의 우연한 한 방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크다.[23]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대강의 정황이 아주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이상 군소문이 끊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배후 지목도 결국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이득이 발생했는지가 핵심 용의 중 하나다.
이러한 음모론 때문에 영화나 게임을 비롯한 매체에서는 사실 오스왈드는 연막이고 케네디 암살은 "XXX 세력의 배후로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암살 사건 당시 총성을 들었다는 제보가 여럿이다 보니 지금도 존재하는 딜리 광장(Dealey Plaza)의 '푸른 언덕(grassy knoll)'은 총성이 들린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시 놀의 펜스 뒤에서 뱃지를 단 이가 총격을 가했다는 '배지맨' 가설 등을 믿는 이들이 있다. 케네디가 총격을 받은 뒤 케네디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기 때문이다. 뒤에서(교과서 창고 빌딩) 쐈다면 케네디 고개는 앞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참고로 미국인의 80% 이상이 1964년 워런 위원회에서 내린 리 하비 오즈월드의 단독범행이라는 공식 결론보다는 외부세력이 개입했거나 사건이 은폐됐다는 음모론을 더 믿고 있다고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도 공식 결론보다 음모론을 더 많이 믿고 있다. 심지어 마틴 루터 킹,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1976년 미국 의회에서 발족한 하원 암살 위원회(HSCA)에서도 일부 하원의원들이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소수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음모론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도 케네디 암살 사건은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믿지 않는 경우가 많기도 한 음모론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러가지 의혹들이 많았던 사건이었다.
사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린든 B. 존슨의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진 대통령 취임선서였다. 이 취임선서에는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참석했는데 케네디 일가와 케네디의 측근들은 남편의 암살로 큰 충격을 받은 재클린 여사를 굳이 참석시켜야 했냐고 불만을 토해냈다. 이에 존슨은 케네디의 친동생이자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와의 협의 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버트 케네디는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결국 두 사람의 주장 중 어느 쪽이 맞는 지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3.1. 암살 배후 의심 대상
다음은 음모론에서 케네디 암살의 주체로 거론되는 것들이다. 2003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암살 배후"로 꼽은 순서는 FBI/CIA 25%, 마피아 25%, 린든 B. 존슨 18%, 소련 15%, 쿠바 15% 순서였다.
- CIA: 존 F. 케네디는 CIA가 제3세계나 서유럽에서 반공 극우파들을 지원하고 사회민주주의, 비동맹주의 성향 정치인들을 낙선시키려는 정책에 대해 평소 비판적인 입장이었다.[24] 여기 관련된 사업가 클레이 쇼[25]는 짐 개리슨에게 CIA와 함께 배후 인물로 지목되었는데 그는 얼마 뒤에 급사했다. 조금 나간 주장 중에는 조지 H. W. 부시가 CIA 요원으로 연루되어있다는 주장도 있다. 린든 B. 존슨 암살 사주설이 미국 우파에게 지지를 받는다면 이쪽은 미국 좌파 쪽에서 지지받는 가설이다.
- 군산복합체: 냉전 시대에 소련과의 갈등을 이용해서 무기를 팔아 이득을 얻어야 하는데 소련과 평화적 제스처를 내보이고 군비를 감축하려는 케네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케네디를 암살했다는 설. 실제로 아이젠하워 시기에 군비가 급격히 증가했고 후임자인 케네디는 너무 비대하다며 군비감축 움직임을 보여서 군부와 마찰이 상당히 심했다. 음모론에서 주로 미군 강경파와 엮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아이젠하워의 군산복합체에 대한 경고 연설이 필수요소로 들어간다.
- 마피아: 케네디의 부친부터가 금주법 시절 마피아와 교류하고 밀수하면서 돈을 번 경력이 있고 그 친분을 이용해 선거에서 마피아의 입김이 센 노조들의 도움을 받고 그 대가로 쿠바 혁명 때 몰수되었던 카지노와 유흥시설 등을 찾아주기 위해 피그만 침공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후 불만이 가득한 마피아들을 제압하기 위해 법무장관인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통해 압박을 가하자 마피아들에게 암살당했다는 음모론. 여기에 더하여 케네디가 마피아 보스 샘 지안카나의 정부를 건드렸기 때문에 죽였다는 이야기도 더해진다. 지안카나는 케네디의 아버지 때부터 막역했으며 피그만 사건에서도 자기 이권을 찾기 위해 협조했으나 케네디가 은혜를 원수로 갚자 격노하여 보복으로 케네디를 암살했다는 것.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인 아이리시맨에서도 이 설을 차용하는 등 CIA, 존슨 연루설과 더불어 가장 폭 넓게 지지받는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 소련: KGB 연루설은 오즈월드가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에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거기에 서베를린에서 연설은 소련을 빡치게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소련 붕괴 이후 수없이 쏟아져 나온 기밀 문건에서도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신뢰를 잃는 가설이기도 하다. 애초에 크렘린은 케네디의 암살을 바랄 이유가 없었고 케네디의 암살 소식을 듣었을 때는 크게 경악했으며 이를 미국 우파들의 음모로 간주할 정도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대응 방안이 짜여 있고 예측 가능하며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상대를 마주하는 게 낫지, 잘 알지도 못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람을 상대하겠다고 적대 국가를 큰 혼란에 빠뜨리지도 못할 암살을 저지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1964년에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집권했을 때는 마찬가지로 백악관에서도 크게 당황했다.
- 쿠바: 멕시코시티를 거쳐 쿠바로 망명할 계획이 오즈월드에게 있었으며 거기에 명목상 소련의 동맹국에도 해당되는 데다 케네디 재임 시기에 피그만 침공과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던 만큼 케네디에게 카스트로가 거슬린 것처럼 카스트로에게도 케네디가 거슬렸을 수 있다. 1977년 피델 카스트로는 이에 대해 "존 F. 케네디 이후의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은 케네디보다 더한 반공 강경파였기 때문에 암살할 이유가 없으며, 설령 암살할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만약 쿠바 정부가 이에 관련되어 있었다는 추호의 증거라도 나왔다면 미국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동요해 쿠바 공산 정권이 미군의 보복으로 멸망했을 것이기에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 암살을 시도할 리가 없다"는 꽤 타당한 반론을 한 적이 있다.
- 연방준비제도 및 유대계 금융자본세력: 중국계 경제학자가 저술하여 이슈화되었던 ≪화폐전쟁≫라는 책에서 언급된 것으로, 비단 케네디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암살당한 대통령 모두 미국의 화폐제도와 금융체제 등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을 토대로 추론하였다. 다만 서문에서 '전부 사실이라는 점은 아니며 일정 부분은 픽션이다'라고 서술했을 정도로 모두 가설이라는 점을 참고할 것.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유대인 배후자본설 항목 참조.
- 린든 B. 존슨 부통령: 무엇보다 표면적으로는 이 사건으로 가장 큰 직접적 이득을 본 인물이라는 점만으로 용의자 후보에 오르내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린든 B. 존슨과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는데 오랜 의회 경험으로 권모술수의 달인이었던 존슨을 매우 안 좋게 보았고 로버트 F. 케네디와 틈만나면 존슨의 뒷담화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결국 존슨은 케네디 행정부 하의 거의 모든 정치적 논의에서 배제되었고, 케네디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게 암살로 이어졌다는 것이 음모론자들의 주장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선 이후 의욕적으로 환경 정책을 추구했는데, 이것이 린든 B. 존슨의 친한 친구들이었던 텍사스 석유 재벌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줬기에 존슨이 암살을 사주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당시 존슨에게 제기되었던 정경유착 스캔들인 빌리 솔 에스테스(Billie Sol Estes)와 보비 베이커(Bobby Baker) 사건을 덮으려고 암살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우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지지받는 설이다.
- 리처드 닉슨: 닉슨은 합격했는데도 금전적 사정으로 입학하지 못한 하버드 대학교를 케네디는 공부를 못 하면서도 총장과 절친했던 아버지의 입김으로 들어간 경험 때문에 케네디를 상당히 경멸했으며 1960년 미국 대선에서 이 둘이 서로 맞붙은 전력이 있다. 자신이 그렇게 경멸했던 라이벌이 자신을 제치고 차기 대통령이 됐으니 닉슨이 케네디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닉슨의 자서전이나 그를 다룬 여러 책을 보면 그나 케네디나 닉슨이 1964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분명했다는 것이 나타나기 때문에[26] 이 가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 군부 강경파: 커티스 르메이 장군 등 군부 강경파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에 선제 핵공격을 가해 소련을 멸망시켰어야 했는데 케네디가 소련과 평화적으로 해결을 보는 바람에 소련이 핵전력을 증강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케네디를 증오했다.[27]
- 시크릿 서비스 요원의 실수: 신참 경호원 조지 히키 주니어가 오즈월드의 총성에 놀라 써본 적 없는 AR-15로 오발 사고를 냈다는 음모론.[28] 히키는 당시 케네디가 탄 차 바로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케네디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총탄 조각이 오즈월드가 쏜 총의 6.5mm탄보다 5.56mm에 가깝다는 것 등을 들어 제기되는 음모론이다. 해당 저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의 재현 CG부분(2분 55초부터) 참고. 당사자인 조지 히키 주니어는 세인트 마틴 출판사에 소송을 걸었고 1998년에 모종의 조건으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 잭 루비: 사실은 잭 루비가 진범이며 오즈월드를 시켜 범행을 실행했는데 암살 후 오즈월드가 범행 동기나 공범 여부 등에 대해 모두 자백할 것이 두려워 오즈월드까지 살해했다는 음모론이다.
- 외계인: 엑스파일 같은 작품에서 종종 나오는 음모론으로, 미국 정부에 지구 정복을 노리는 외계인과 손을 잡은 고위층들이 케네디가 이를 폭로하고 외계인을 축출하려고 하자 암살했다는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에서는 아폴로 계획도 케네디가 달에 있는 외계인 기지를 전 세계에 공개하여 외계인을 축출하는 지구인의 봉기를 일으키려고 한 것을 음모자들이 케네디를 암살한 후 진짜 달에 안 가고 가짜 달착륙 영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터널시티에서도 여태까지 은폐하던 외계인의 존재를 밝혀내려던 케네디가 외계인 게스트들의 사주로 암살당했다는 설정이 있다.
3.2. 존 F. 케네디를 목표로 한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오즈월드의 암살 목표가 케네디 대통령이 아니라 동승하고 있던 존 코널리 주지사였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는데 근거는 아래와 같다.- 암살범 오즈월드의 아내가 남편은 평상시에 케네디 대통령을 존경했으며 암살 목표는 코널리 주지사였다고 증언했다.
- 당시 오즈월드의 아파트 수색을 맡았던 미국 재무부 시크릿 서비스 요원인 마이크 하워드 역시 오즈월드의 녹색 수첩을 FBI에 넘겼는데 나중에 확인해 봤더니 수첩에서 "난 살인을 할 거다"라는 제목이 담긴 17장이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사라진 17장에는 '사살 명단'이라는 4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아내의 이민자 자격을 집요하게 문제삼고 괴롭혔던 FBI 요원 제임스 호스티, 보수 세력 장군인 에드윈 워커, 리처드 닉슨 부통령, 그리고 주지사인 존 코널리였다. 이 중 코널리 주지사의 이름 위에는 핏자국이 뚝뚝 떨어지는 단도 그림이 관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왜 이러한 주장들은 묵살되고 오즈월드는 케네디 암살범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당시 FBI 수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가 FBI 요원이 암살의 발단이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조직에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차단시켰다는 설, 그리고 하나는 새로 대통령으로 임명된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자신의 인생의 모든 문제가 코널리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오즈월드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게 밝혀질 경우 코널리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것을 우려해서 덮었다는 설이다.[29]
참고로 존 코널리 주지사는 이 때 총알이 신체의 여러 군데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케네디의 목을 관통한 총알이 코널리의 폐와 손목을 관통하고 허벅지에 박힌 것. 물론 코널리 본인은 치료를 받고 죽음을 면하는 데 성공했다. 코널리는 이후 공화당으로 당적을 이전해 닉슨 행정부의 재무부 장관 등을 지내고 부통령 후보직도 제의받는 등 닉슨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약했다.[30]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든든한 후원자를 잃으면서 끈이 떨어졌고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 경선에도 나왔으나 낮은 지지율로 인해 대선 후보가 되지 못 하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했다. 정계 은퇴 후 코널리는 1980년대와 90년대 내내 칩거 생활을 하다가 1993년 폐 섬유종으로 인해 사망했다.
4. 케네디 암살 사건 기밀문서 공개
2017년 10월 26일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기록수집법에서 규정한 공개 시한이 만료됨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2,891건의 기밀문서가 공개되었다. 본디 3,140건을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국가 안보 문제로 인해 수백건은 향후 180일 간의 추가 검토 끝에 공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공개한 문서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 존 에드거 후버는 오즈월드 사후 대중들이 오즈월드가 진범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당시에도 FBI와 CIA 간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가령 후버가 CIA에게 국내정보 주기 싫다고 투덜거리는 내용.
- 후버는 잭 루비가 지하 세계와 연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메모를 남겼다.
- "루비가 시카고 마피아와 접점이 있다는 확증은 없지만 그러한 루머가 있는 것은 맞다."
- 오즈월드는 암살 두 달 전에 KGB 요원과 대화를 나눴다. 멕시코시티의 소련 대사관에서 나눈 대화였는데 이는 CIA가 도청했으며 이 KGB 요원의 신분도 확인되었다. 참고로 KGB 요원에 대한 도청이 성공한 것은 당시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2022년 12월 추가로 공개된 기밀문서를 통해 어떻게 이 도청이 성공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나타났는데 당시 멕시코 대통령 아돌포 로페스 마테오스가 수하 각료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소련 대사관에 도청을 심으려고 하던 CIA에게 조력했다고 한다.
- 린든 B. 존슨과 닉슨 행정부에서 봉직한 CIA 국장 리처드 헬름스에 따르면 존슨은 케네디가 암살당한 것은 그의 남베트남 지도자 암살[31]에 따른 보복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 헬름스의 1975년 증언 기록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조사관: 제 마지막 질문은 JFK 암살에 CIA가 어떤 식으로건 음모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는 의문에 관한 것입니다. 워렌 조사위원회의 활동 당시 당신은 CIA 기획국 부국장이었죠, 맞습니까?헬름스: 네.조사관: JFK 암살과 관련한 첩보 중 '리 하비 오스왈드'가 CIA 요원이었거나... (손실) ...음을 어떤 식으로건 나타내는 것이 있습니까?이후 내용 모두 손실. 실제 문건 스캔
- 쿠바 정보기관 요원이 오즈월드를 "good shot"이라고 불렀다.
- 로버트 케네디는 마릴린 먼로와의 가까운 관계에 대한 경고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 재미있는 것은 이 문서에서 마틴 루터 킹이 상당히 자주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공개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여러 추측들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주장은 "오즈월드는 실제로 CIA와 같이 일한 적이 있지만 이후 독단적으로 JFK를 암살했고, 오즈월드와의 연결고리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CIA가 관련 정보들을 단속했다"는 것이다. 상당히 현실성 있는 가설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잭 루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오즈월드의 단독 총격(볼트 액션 소총 3발 사격)으로 JFK의 몸에 무수한 총상을 남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5.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워낙 유명한 사건이다 보니 대중매체에서 자주 등장한다.- JFK Reloaded: 케네디 암살 사건을 그대로 옮겨온 저격 시뮬레이션이다. 저격 후 자신이 쏘았던 총알과 시간, 삽입 각도 등을 실제 역사와 비교해 포인트를 주는데 아무리 해도 실제로 오스왈드가 했던 것처럼 총을 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더 파크랜드: 케네디 암살 이후의 상황을 다룬 영화이다.
-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다루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019년작 영화 아이리시맨에서는 피그만 침공이 쿠바에서의 이권을 되찾으려는 마피아들이 케네디 정권 일가를 사주하여 벌어진 사건으로 표현되며 리처드 닉슨을 지지하던 지미 호파와 케네디 정권과의 갈등이 드러난다. 작중에선 필라델피아 마피아 보스 러셀 버팔리노가 아일랜드계 히트맨 프랭크 시런과 밀담을 나눌 때 "대통령도 죽이는 이들이 노조 위원장 따위 죽이는 게 대수겠나?"라고 말하며 피그만 침공 실패 등으로 케네디와 갈등을 빚던 마피아가 암살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암시한다.
- 이사카 코타로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골든 슬럼버라는 소설을 썼다. 케네디를 모티브로 한 혁신적인 성향의 젊은 미남 신임 총리 카네다가 원격 조종 장난감 헬리콥터에 탑재된 폭탄에 암살당하고 리 하비 오즈월드가 모티브인 아오야기 마사하루가 무언가 거대한 배후에서 꾸민 음모에 휘말리는 바람에 범인으로 몰려서 정부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도 케네디 암살의 범인은 오즈월드가 아니었다는 주장에 착안했다. 단 주제 자체는 음모론이 아니라 일본 사법계의 엔자이를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루팡 3세의 13번째 TV 스페셜인 루팡 3세 알카트라즈 커넥션에는 알카트라즈를 폐쇄한 것에 불만을 품은 죄수들이 케네디 형제의 암살에 관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절망적인 철옹성처럼 보인 알카트라즈 속에서 죄수들이 지상낙원을 세우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것이 케네디 형제에게 걸려 폐쇄되었다는 것.
공교롭게도 알카트라즈는 1962년에 폐쇄되었고 케네디는 바로 다음 해인 1963년에 암살되었다. 또 당시 알카트라즈 폐쇄 지시를 내린 법무장관이자 JFK의 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는 5년 뒤인 1968년 대통령 경선 도중 암살되었다.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는 법무장관에 있을 때 마피아들에 대한 강경책을 내세웠고 알카트라즈에 들어간 마피아들도 많았다. 잭 루비 때문에 생겨난 '케네디와 연관있는 마피아 배후' 가설에 근거한 시각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다른 셈. 의외로 그럴 듯한 가설이지만 당연히 알카트라즈 안에 낙원 같은 건 없다.
- 영화 더 록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스탠리 굿스피드가 영국 특수부대원 메이슨이 숨겨둔 마이크로필름[32]을 찾아내고 들여다보며 아내에게 "JFK가 누구한테 죽었는지 알아?"라고 말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는 매그니토/에릭 랜셔가 금속을 조종하는 초능력을 이용하여 케네디를 암살한 진범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술된 음모론 중 하나인 "진범이 원래는 주지사를 살해하려 했다"는 썰이나 케네디 암살 사건의 유명한 음모론인 "휘어지는 총알의 궤적" 같은 여러 음모론을 비튼 영화적 썰로, 후속작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진실이 밝혀지는데 매그니토가 금속을 조종하는 자신의 초능력으로 총알을 조종하여 최초의 돌연변이 출신 대통령인 케네디에 대한 암살 시도를 저지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는 바람에 오히려 매그니토가 암살범 혐의를 뒤집어쓰고 펜타곤에 수감되었다고 나온다.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은밀한 회사원에서는 코그니토 주식회사의 암살자인 '노엘'이라는 사람이 케네디를 암살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머릿속에 외계인의 알이 들어있어서 암살했다고 한다.
- 마피아 3의 배경인 1968년도 케네디의 암살 후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은 관계로 언급된다. 게다가 상술했듯 1968년은 JFK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해이기도 하다.
- 2023년 다큐멘터리 '존. F 케네디의 죽음: 의사들은 무엇을 보았나'에서는 파크랜드 병원의 의사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조명한다.
- My Summer Car에서 Jhonny F Kemedy라는 이름으로 자동차를 운전해 안전한 곳까지 운전해야 하는 미니게임도 있다.
- 표백 - 소설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여기서 따 왔다.
- SCP-3780: 여러 사람들이 케네디 암살을 막으려 하고, SCP 재단은 합의된 현실을 보존하기 위해 이를 막고 있다는 내용의 SCP. 참고로 케네디가 살아도 별로 바뀌는 것은 없다고 한다.
- 조 월튼의 대체역사소설 나의 진짜 아이들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는 고령의 주인공이 기억하는 이 사건의 대체역사 버전이 나온다. 유세를 떠난 대통령 부처가 댈러스에 도착하여 연회에 참석하던 도중 연회장 테이블 아래에 설치되어 있던 폭탄이 폭발하여 대통령 부처와 주지사가 즉사한 것이다. 현실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설에서도 이 암살사건의 진범을 추측하며 린든 B. 존슨 부통령[33] 혹은 쿠바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케네디가 폭탄으로 암살당한 이 평행세계에서는 케네디 행정부가 피델 카스트로를 끝내 암살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쿠바 측이 보복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자연스레 나온 것이다.[34]
범인이 리 하비 오즈월드가 아니라는 음모론을 소재로 하여 케네디를 암살한 진범이 오즈월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아래는 각 작품별로 케네디를 암살한 진범들.
- 【 각 작품별로 케네디를 암살한 진범들 】
- * 왓치맨(영화판) - 코미디언[35]
- 엄브렐러 아카데미 - 시즌2에서 케네디 암살 사건이 스토리의 중심 사건 중 하나로 나온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 에이브러햄 저프루더[37]
- 더 록에서는 주인공이 굿스피드가 메이슨이 교회에 숨긴 기밀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케네디를 죽인 게 누구인지 아느냐고 아내에게 물어보며 다른 진범이 있다는 암시를 하고 영화가 끝난다.
6. 여담
일본에서는 미국과 협약을 맺어 최초로 위성중계방송을 실시했는데 하필 첫 생중계에서 대통령이 암살되었던 바람에 TV 앞에 모인 많은 일본인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사건 2일 전 케네디는 축하 메시지를 미리 촬영해 두었는데 결국 제때 전해지지 못한 채 사건 관련 뉴스로 대체되었고 이후 따로 방송되었다.케네디가 유세 도중 사망한 후 뉴욕 국제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서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으로 개칭하였다.
1963년까지는 벤저민 프랭클린을 도안으로 하여 발행되고 있었던 미국의 50센트 주화도 케네디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1964년부터는 케네디로 도안을 변경해 발행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케네디가 총에 맞은 직후 갑작스러운 사태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는데 케네디의 행렬 뒤에 버스를 타고 따라가던 언론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중 톰 위커란 기자는 재빨리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댈러스 국제공항으로 가서 긴급 기사를 작성한 다음 자기가 소속된 뉴욕 타임스 사에 공중전화로 기사를 구술했는데 취재 수첩에 쓸 시간도 없어서 대통령 행사 일정이 인쇄된 종이의 뒷면에 기사를 썼다고 한다. 이 보도로 위커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전해받은 미국 TV 방송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냈으며 당시 미국의 유명 언론인이자 뉴스 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가 비보를 전하며 눈물을 삼키는 장면은 방송 역사에 길이 남았다.
[1]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케네디가 댈러스의 카퍼레이드 중 저격수에 의해 암살당하다: 존슨은 비행기에서 대통령 취임을 선언하다." / 작은 글씨는 "존슨은 단합을 요구하다", "좌파 저격수가 기소당하다" / "코널리 주지사 역시 피격; 케네디 여사는 안전" 뉴욕 타임스는 절제된 편집을 추구해 긴급한 뉴스가 아닌 이상 큼직한 헤드라인을 뽑지 않는다. 이처럼 뉴욕 타임스가 이례적인 헤드라인 편집을 선보인 또 다른 역사적 사례로는 진주만 공습,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사건, 리처드 닉슨의 사임, 소련 붕괴, 9.11 테러, 버락 오바마 당선 등이 있다.[CST] 미국 중부 표준시각[3] 가해자인 리 하비 오즈월드가 체포되어 압송되던 도중 잭 루비에게 살해되면서 정확한 범행 동기와 배후의 존재 여부 등 사건의 진상은 미궁 속에 빠졌다.[4] 재클린은 케네디의 비산된 소뇌를 수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뇌 일부를 수습하여 파크랜드 병원 의사들에게 건넸다는 증언이 있으며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수습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5] 29초 즈음에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에 총알을 맞아 쓰러지는데 이전에 이미 관통당한 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4분 35초에 같은 장면이 확대 슬로우 모션으로 나오는데 이때 다시 날아온 총알에 두개골이 으스러져 허옇게 드러나고 뇌 일부가 시트로 쏟아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나마 1963년에 촬영한 저화질 영상이라서 아주 심각한 고어함은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부검 사진도 돌아다니는데 흑백 사진이긴 하지만 화질이 정확해서 고어할 수 있으니 주의하여야 한다. 말 그대로 머리가 폭발해서 뇌의 절반 이상이 없다. 개요 문단에 있는 사진은 흑백인 데다 그의 머리 부분의 화질이 좋지 않아 판독이 쉽지 않지만 이미 케네디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뒤의 사진이다.[6] 러시아 제국 치하 우크라이나 출생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의류제작자다.[7] Bell & Howell사의 Model 414PD[8] 당시 부검 사진을 보면 두개골이 문자 그대로 폭발해 버리면서 대뇌조직 대부분이 튀어나갔다. 케네디는 오래 전부터 심각한 척추 손상으로 인한 통증으로 허리에 늘 고정 복대를 차야 했고 첫 번째로 목이 관통당했을 때 고정 복대만 없었다면 허리를 숙여 피할 수 있었겠지만 불가능했다.[9] 본래 경호실에서 안전 문제를 고려해 방탄 지붕을 둔 채로 운전할 것을 강력히 권했지만 케네디가 군중들과 보다 가까이 하고 싶다면서 한사코 사양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비극이 되었다.[10] 파라마운트의 다큐 '존.F 케네디의 죽음: 의사들은 무엇을 보았나'를 보면 재클린에게서 뇌조각을 받았다는 파크랜드 의사의 증언이 나온다.[11] 정론이 여러 근거로 뒷받침됨에도 "그냥 도망가려는 것 아닌가?"하는 주장이 있어 왔다. 주장의 신빙성 여부와 별개로 옆에서 사람이 총에 맞았으면 도망치는 게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주장을 이용해 재클린을 깐다면 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는데 아닌 게 아니라 케네디 부부가 누렸던 아이돌적 인기와 재클린 케네디가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하며 얻게 된 안티팬들을 묶어보면 '속물 재클린이 JFK를 배신했다' 식의 팬덤서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케네디 부부에 대한 격렬한 빠와 까 모두 수그러들었지만, 그래서 이게 왜 비방인지 이해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계속 재생산되는 면이 있다.[12] 즉, 이 정도면 사실상 즉사한 것과 다름없다. 다른 암살된 미국 대통령들(가필드, 매킨리)은 총에 맞았어도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지만(레이건이 그렇게 해서 살아났고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케네디와 링컨, 특히 케네디의 경우는 그럴 틈마저 없었다.[13] 이때 CBS-TV의 월터 크롱카이트 앵커가 감정을 억누르며 속보로 전한 것이 유명하다.[14] 이 사진을 찍은 <댈러스 타임스헤럴드>의 사진기자 로버트 잭슨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할 때 현장에서 저격범의 총신을 보았으나 사진을 찍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로버트는 이를 자책하며 저격범 오즈월드의 사진을 찍겠다고 신문사에 요청하여 경찰의 촬영 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로버트는 댈러스 경찰서 앞에서 찍은 이 사진으로 1964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15] 위 사진에서 밝은색 정장과 중절모를 쓴 사람이 당시 댈러스 경찰서 형사였던 짐 리벨이다. 1950년 4월부터 1975년 4월에 퇴임할 때까지 형사로 근무하였다. 그가 오즈월드가 살해될 당시에 착용하고 있던 사진 속 정장과 중절모는 이후 6th Floor Museum에 전시 중이다.[16] 위 사진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톰 페팃 기자는 오즈월드가 총에 맞아 쓰러지자 "오즈월드가 총에 맞았습니다. 오즈월드가 총에 맞았습니다. 누군가 총을 지닌 채 들어왔습니다. 여기 댈러스 경찰서 본부 지하는 매우 혼란에 빠졌습니다. 형사들이 총을 들었습니다. 오즈월드가 총에 맞았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He's been shot, He's been shot! Lee Oswald has been shot! There's a man with a gun. And it's absolute panic, absolute panic here in the basement of the Dallas police headquarters! Detectives have their guns drawn. Oswald has been shot. There's no question about it.)"를 외치며 몹시 상기된 표정이 되었다.[17] 골수 공화당원으로, 캘리포니아주 연방 검사를 시작으로 공직 경력을 쌓기 시작해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떨어진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재임하다가 아이젠하워 대통령 말미에 연방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흑백 인종 차별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렸고 미란다 원칙을 확립하기도 해서 미국에서 존 마셜 연방대법원장과 함께 가장 존경받는 연방대법원장이다. 다만 아이젠하워는 워런을 연방대법원장에 임명한 것을 매우 멍청한 선택이었다고 후회했다.[18] 케네디 암살 사건에 관련된 정부 문건을 바탕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CIA의 연관성에 대해 쓴 책으로 1992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19] 기밀 해제된 CIA의 문건에 따르면 클레이 쇼는 1949년부터 정보기관의 정보원으로 활동했으며 CIA의 보안인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20] 1963년 5월에 오스왈드가 스스로 자칭 FPCC 뉴올리언스 지부를 창설했고 오스왈드는 이 지부의 유일한 회원이었다.[21] 1963년 8월에 오즈월드는 FPCC의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카를로스 브링기에르라는 반카스트로 성향의 쿠바 망명자와 싸움이 붙어 함께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이때 찍힌 머그샷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오즈월드는 이전에 브링기에르의 가게에 방문해서 카스트로와의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했으나 거절당하고 며칠 뒤에 나타나더니 반카스트로 단체들이 입주한 뉴먼 빌딩의 주소가 적힌 FPCC의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이에 화가 난 브링기에르와 오즈월드가 싸움이 붙은 것이었다. 브링기에르는 반 카스트로 단체인 DRE(Directorio Revolucionario Estudantil)의 수장이었는데 자신에게 카스트로와 싸우고 싶다고 반 카스트로 성향인 척 접근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꿔 카스트로를 옹호하는 단체의 전단지를 돌리는 오즈월드를 향해 공산주의자, 카스트로의 요원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DRE의 뉴올리언스 지부도 뉴먼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으며 다른 반카스트로 단체와 마찬가지로 CIA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22] 가명으로 총기를 우편 구매하는 건 추적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23] 심지어 오즈월드가 교과서 창고 빌딩에서 목격되었을 때, 살인을 저지른 이 치고는 너무 차분한 표정이었다.[24] 특히 CIA가 추진한 쿠바 침공, 이른바 피그만 침공이 실패하자 케네디는 "CIA를 1천 개의 조각으로 찢어 허공으로 날려버리겠다!"는 발언을 할 만큼 분노했다. 당연히 CIA에서는 그런 케네디를 싫어했던 만큼 케네디 암살의 배후로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다.[25] 1969년에 뉴올리언스 지방검사 짐 개리슨에게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어 기소당했지만 이후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1974년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전이성 폐암으로 알려졌다. 5년 뒤인 1979년에 실제로 CIA의 라틴 아메리카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클레이 쇼에 대한 재판은 현재까지 케네디 암살사건과 관련된 유일한 재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동시에 미국 역사상 최고로 형편없는 형사사건이라는 오명도 함께 가지고 있다.[26] 닉슨은 대통령 출마를 피하려고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고 케네디 자신은 1964년 대선에서 넬슨 록펠러와 맞붙을 것으로 예상했다.[27] 실제로 미국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있는 JFK :배신당한 대통령이라는 다큐에서는 군부가 어떻게 케네디 대통령을 길들이려고 하고 군부가 대통령이 유약하고 군을 싫어한다는 이미지를 띄도록 선전선동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28] 즉, 오즈월드가 실제로 JFK를 저격한 것은 맞는데 이것이 빗맞았지만 총성에 놀란 신참 경호원의 실수로 쏜 총알이 JFK를 죽였고 정부가 이를 오즈월드에게 그냥 뒤집어 씌웠다는 설이다.[29] 코널리와 존슨은 정치 입문 전부터 알고 지낸 절친 사이였다.[30] 케네디의 정적이었던 닉슨, 존슨 두 명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존 코널리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만만치 않다.[31] 케네디가 승인, 방조한 베트남 군부의 쿠데타와 응오딘지엠 살해를 말한다. 망명 중이었던 쩐레수언은 재클린 케네디에게 조전을 보내서 위문하면서 이제 당신도 남편이 살해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이라고 위문을 가장한 딜을 먹였다.[32] FBI 국장이 모은 걸 메이슨이 훔쳤는데, 케네디 암살 사건과 로스웰 UFO 추락 사건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스터리들의 해답이 담긴 기밀자료가 필름에 담겨 있다. 이걸 모처에 숨기고 FBI에 체포된 메이슨은 알카트라즈 감옥에 들어가 30년을 복역한다.[33] 역사에서처럼 대통령 직위를 승계받은 린든 B. 존슨 다음으로는 JFK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어 형의 꿈이었던 미국인의 인류 최초 달 착륙을 성공시킨다.[34] 참고로 치매를 앓는 주인공이 기억하는 케네디의 또 다른 말로(末路)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과 미국이 각각 마이애미와 키예프를 상호 핵폭격하는 단시간의 제한 핵전쟁을 벌인 끝에야 유엔의 중재하에 가까스로 종전 합의에 도달했으며 제한 핵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진 케네디는 다음 대선에서 공화당의 넬슨 록펠러에게 정권을 내주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된다.[35] 영화 인트로에서 암살 장면이 재구성되어 나온다. 그러나 코믹스판 프리퀄에서는 케네디 가문의 친구로 케네디가 죽었을 때 코미디언은 몰록을 족치고 있었다.[36] 확실하게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작중 정황과 묘사 등 여러 떡밥들을 보면 메이슨이 어떤 식으로든 오즈월드와 함께 암살한 것이라고 떡밥을 던진다.[37] 미끼 역인 리 히비 오즈월드, 케네디 암살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받은 린든 B. 존슨, 그리고 세간에 케네디 암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알려진 댈러스 시민이자 진짜 암살범인 에이브러햄 저프루더(Abraham Zapruder, "Z"라고 명명됨) 모두 템플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케네디는 (3번째) 에덴의 조각을 이용하여 국민들에게 민주적인 투표를 할 수 있게 했지만 기사단에 의해 암살당했다. 덧붙여 케네디가 소유하고 있던 에덴의 조각은 암살 직후, (2번째) 에덴의 조각에 현혹된 운전사가 빼돌렸다.[38] 킹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광범위한 자료 조사를 한 결과 자신도 믿기 어려웠지만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 맞고 잭 루비도 누구의 사주 같은 것 없이 충동적으로 오즈월드를 죽인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음모론을 믿는 독자들에게는 킹도 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