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14년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시상 장면.
사진에 찍힌 수상자는 왼쪽부터 이마미야 켄타(유격수 부문), 나카무라 다케야(지명타자 부문), 아카미나이 긴지(3루수 부문), 나카타 쇼(외야수 부문), 후지타 카즈야(2루수 부문), 야나기타 유키(외야수 부문), 이토 히카루(포수 부문), 이토이 요시오(외야수 부문), 가네코 치히로(투수 부문). 1루수 부문 수상자인 에르네스트 메히아는 빠져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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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ベストナイン일본프로야구에서 시상하는 타이틀 중의 하나. KBO의 골든글러브와 비슷하다. 단일리그 시절인 1940년 최초로 시상한 이후, 태평양 전쟁 등의 여러 사정으로 7년간 수상하지 않다가 전후인 1947년 다시 시상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50년 양대리그 개편 이후엔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 전부 따로 선수들을 뽑아서 수상하고 있다.
시즌 때 공격, 수비, 주루 등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선수를 포지션 별로 기자투표를 하여[2]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선수에게 표창한다.
수상자는 1974년까진 양측 전부 각 포지션당 9명을 수상했지만 지명타자가 생긴 1975년 이래 지명타자가 없는 센트럴리그의 경우 9명[3]을, 지명타자가 있는 퍼시픽리그의 경우 10명[4]을 수상한다.
다만 저건 기본적인 사항이고, 한 포지션에 2명 이상의 선수가 동일하게 많은 표를 얻어 공동수상한다든지, 한 선수가 복수의 포지션에서 투표수 1위를 차지하여 복수 부문의 베스트나인을 수상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초창기엔 복수 포지션 수상이 불가능했는데, 1966년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선정투표에서 난카이 호크스의 쿠니사다 야스히로가 2루수, 3루수 부문에서 투표수 1위를 차지했으나 당시 복수 포지션 수상이 불가능하다는 규정에 따라 투표수가 더 많았던 2루수 부문만 수상하고 3루수 부문은 투표수 2위였던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토니 로이가 수상한 바 있다. 이후 1975년 퍼시픽리그의 지명타자제 도입 이후부터 복수 포지션 수상이 가능해졌다. 거기에 더해 2016년부터 (주로 투타겸업 위주지만) 투수도 야수 포지션에서 표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 해 오타니 쇼헤이가 투수, 지명타자 부문 베스트나인에 뽑히면서 처음으로 복수 포지션 수상을 달성했다.
2012년까지 센트럴리그에서는 최우수투수 타이틀을 베스트나인 투수 부문 수상자에게 표창했지만, 2013년부터 최우수투수 타이틀이 폐지되고 승률 1위 투수상이 신설되어 양 리그 전부 승률 1위 투수에게 이 상을 주고 있다.
골든글러브와 기자투표, 포지션 별로 뽑는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수비만 평가하는 골든글러브와는 달리 베스트나인은 전체적인 시즌 성적으로 평가하고, 무엇보다도 골든글러브엔 없는 지명타자 수상 항목도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기자투표라는 점에서 우승 프리미엄이나 팀 인기 등이 반영된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는 점도 유사.
대만프로야구에도 이 상이 있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실업야구 시절에 베스트나인 상을 시상한 적이 있다.
2. 역대 수상자
선수 옆의 이름이 적힌 각주는 당시의 선수 등록명이며 그 외의 각주는 선수, 구단에 관한 특정 사항 등이 적혀 있다.2.1. 단일리그 시대
2.1.1. 1940년
포지션 | 선수 | 소속 구단 |
투수 | 빅토르 스타루힌[5] | 토쿄 쿄진군 |
포수 | 타나카 요시오 | 한신군 |
1루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 토쿄 쿄진군 |
2루수 | 카리타 히사노리 | 츠바사군 |
3루수 | 미즈하라 시게루 | 토쿄 쿄진군 |
유격수 | 우에다 후지오 | 한큐군 |
외야수 | 키토 카즈오 | 라이온군[6] |
야마다 덴 | 한큐군 | |
나카지마 하루야스 | 토쿄 쿄진군 |
2.1.2. 1947년
포지션 | 선수 | 소속 구단 |
투수 | 벳쇼 아키라 | 난카이 호크스 |
포수 | 도이가키 타케시 | 오사카 타이거스 |
1루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루수 | 치바 시게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루수 | 후지무라 후미오 | 오사카 타이거스 |
유격수 | 스기우라 키요시 | 주부닛폰 드래곤즈 |
외야수 | 오오시타 히로시 | 토큐 플라이어즈 |
카네다 마사야스 | 오사카 타이거스 | |
츠보우치 미치노리 | 킨세이 스타즈 |
2.1.3. 1948년
포지션 | 선수 | 소속 구단 |
투수 | 벳쇼 아키라 | 난카이 호크스 |
나카오 히로시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사나다 시게오 | 타이요 로빈스 | |
포수 | 도이가키 타케시 | 오사카 타이거스 |
1루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루수 | 치바 시게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루수 | 후지무라 후미오 | 오사카 타이거스 |
유격수 | 키즈카 타다스케 | 난카이 호크스 |
외야수 | 아오타 노보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벳토 카오루 | 오사카 타이거스 | |
츠보우치 미치노리 | 킨세이 스타즈 |
2.1.4. 1949년
포지션 | 선수 | 소속 구단 |
투수 | 후지모토 히데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포수 | 도이가키 타케시 | 오사카 타이거스 |
1루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루수 | 치바 시게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루수 | 후지무라 후미오 | 오사카 타이거스 |
유격수 | 키즈카 타다스케 | 난카이 호크스 |
외야수 | 코즈루 마코토 | 다이에이 스타즈 |
벳토 카오루 | 오사카 타이거스 | |
오오시타 히로시 | 토큐 플라이어즈 |
2.2. 양대리그 개편 이후(1950~)
2.2.1. 센트럴 리그
2.2.1.1. 투수
2.2.1.2. 포수
2.2.1.3. 1루수
2.2.1.4. 2루수
2.2.1.5. 3루수
2.2.1.6. 유격수
2.2.1.7. 외야수
2.2.2. 퍼시픽 리그
2.2.2.1. 투수
2.2.2.2. 포수
2.2.2.3. 1루수
2.2.2.4. 2루수
연도 | 선수 | 소속 구단 |
1950 | 혼도 야스시 | 마이니치 오리온즈 |
1951 | 야마모토 카즈토 | 난카이 호크스 |
1952~1953 | 오카모토 이사미 | 난카이 호크스 |
1954 | 모리시타 마사오 | 난카이 호크스 |
1955 | 오카모토 이사미 | 난카이 호크스 |
1956 | 사사키 신야 | 타카하시 유니온즈 |
1957 | 오카모토 이사미 | 난카이 호크스 |
1958 | 로베르토 바르본 | 한큐 브레이브스 |
1959 | 오카모토 이사미 | 난카이 호크스 |
1960 | 오기 아키라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61 | 모리시타 노부야스[19] | 난카이 호크스 |
1962~1963 | 잭 블룸필드[20] | 킨테츠 버팔로즈 |
1964~1965 | 다릴 스펜서 | 한큐 브레이브스 |
1966 | 쿠니사다 야스히로[21] | 난카이 호크스 |
1967~1968 | 돈 블레이싱게임[22] | 난카이 호크스 |
1969~1971 | 야마자키 히로유키 | 롯데 오리온즈 |
1972 | 모토이 미츠오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73 | 사쿠라이 테루히데 | 난카이 호크스 |
1974 | 야마자키 히로유키 | 롯데 오리온즈 |
1975 | 바비 마르카노 | 한큐 브레이브스 |
1976 | 요시오카 사토루 |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
1977~1979 | 바비 마르카노 | 한큐 브레이브스 |
1980 | 야마자키 히로유키 | 세이부 라이온즈 |
1981~1982 | 오치아이 히로미츠 | 롯데 오리온즈 |
1983~1984 | 오오이시 다이지로 | 킨테츠 버팔로즈 |
1985 | 니시무라 노리후미 | 롯데 오리온즈 |
1986 | 츠지 하츠히코 | 세이부 라이온즈 |
1987 | 시라이 카즈유키 | 닛폰햄 파이터즈 |
1988 | 후쿠라 준이치 | 한큐 브레이브스 |
1989 | 츠지 하츠히코 | 세이부 라이온즈 |
1990 | 오오이시 다이지로 | 킨테츠 버팔로즈 |
1991~1993 | 츠지 하츠히코 | 세이부 라이온즈 |
1994 | 후쿠라 준이치 | 오릭스 블루웨이브 |
1995 | 코쿠보 히로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1996 | 오오시마 코이치 | 오릭스 블루웨이브 |
1997 | 코쿠보 히로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1998 | 훌리오 프랑코 | 치바 롯데 마린즈 |
1999 | 카네코 마코토 | 닛폰햄 파이터즈 |
2000 | 오오시마 코이치 | 오릭스 블루웨이브 |
2001 | 이구치 타다히토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2002 | 타카기 히로유키 | 세이부 라이온즈 |
2003~2004 | 이구치 타다히토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2005 | 호리 코이치 | 치바 롯데 마린즈 |
2006~2007 | 타나카 켄스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008 | 카타오카 야스유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2009~2010 | 타나카 켄스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011 | 혼다 유이치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12 | 타나카 켄스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013~2014 | 후지타 카즈야 |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015 | 타나카 켄스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016~2020 | 아사무라 히데토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2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4] |
2021 | 나카무라 쇼고 | 치바 롯데 마린즈 |
2022~2023 | 아사무라 히데토 |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2.2.2.5. 3루수
2.2.2.6. 유격수
2.2.2.7. 외야수
2.2.2.8. 지명타자(1975~)
[1] 메히아가 없는 이유는 이런 수상은 시즌이 끝나고 좀 지나서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는 그 나라에 정착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시즌이 끝나고 며칠 내로 귀국하기 때문에 시상식이나 팬 감사제에 참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가끔 마무리 캠프에 따라가거나 하는 이유로 잔류하는 선수도 있으며 천관위는 귀국하지 않고 남아서 롯데의 팬 감사제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애초에 1주일 정도 더 있으면 “이 선수는 정말 이 나라를 사랑하는구나.” 소리가 나올 정도이니. 심지어 퇴출이 확정적인 데다 1군에서 가비지 타임으로라도 써먹을 생각이 없는 선수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약을 유지함에도 시즌을 1-2주 남겨두고 미리 귀국하기도 한다.[2] 기자투표 조건은 일본의 보도기관에 소속된 5년 이상의 취재경력을 지닌 프로야구 기자들이 투표 가능하다. 골든글러브(NPB)와 동일.[3] 투수,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외야수 3명.[4] 투수,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외야수 3명, 지명타자.[5] 이해부터 태평양 전쟁 종전 때까지 스다 히로시(須田博)란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다. 당시 할힌골 전투 등의 일본-러시아 간 무력 충돌로 인해 양국 관계가 험악해졌기에 러시아계인 스타루힌에겐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6]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는 무관한 팀으로 1952년 타이요 훼일즈와의 합병으로 사라진 쇼치쿠 로빈스의 전신이다.[7] 위의 벳쇼 아키라와 동일인물이다. 1949년 개명.[8]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되었다.[9] 1951~1952년엔 히라이 마사아키라는 이름을 썼다가 1953년 개명했다.[10] 위의 나카 토시오와 동일인물이다. 1965~1972년까지 8년간 이 이름을 사용했다. 이후 다시 나카 토시오로 개명.[11] 등록명은 유헤이.[2018년] 히로시마 소속[2019년] 요미우리 소속[14] 이 선수도 검은 안개 사건 당시 연루자 중 한명이었다. 다만 사건이 터진 1969년에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방출당하며(방출 이유 자체가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 원인이었다) 그대로 은퇴해서 일본프로야구 측의 징계는 받지 않았다. 다만 처분만 안 받았지 혐의가 확실한지라 사실상 영구제명.[15] 2004년까진 구단명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였으나 모기업 다이에가 소프트뱅크에 구단을 매각하면서 2005년에 구단명이 지금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바뀌었다.[16] 1963년까진 당시 영화사 다이에이의 프로야구단 다이에이 유니온즈를 1957년 마이니치 오리온즈가 대등합병하게 되면서 마이니치 신문, 다이에이가 공동으로 구단 경영을 하게 되어 양측 모기업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 다이마이 오리온즈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1964년에 연고지 도쿄를 팀명에 붙여 도쿄 오리온즈로 구단명을 바꾸었다.[17] 팀명에 지역명인 사이타마가 붙은건 2008년부터지만, 지역명이 붙은 것 외엔 변경점이 없으므로 여기선 변경된 팀명만 서술한다.[긴지] [19] 위의 모리시타 마사오와 동일인물이다. 1959년 개명.[20] 일본프로야구에선 성씨를 축약한 잭 블룸이란 등록명을 사용했다.[21] 상단 각주에 적혀있듯 이 해 퍼시픽리그의 2루수와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선정 투표에서 두 포지션 모두 투표수 1위를 차지했으나, 당시 복수 포지션 수상은 불가능하다는 규정에 따라 투표수가 더 많은 2루수 부문만 받고 3루수 부문은 투표수가 2위였던 니시테츠 라이온즈 토니 로이가 수상했다.[22] 일본프로야구에선 애칭인 돈 블레이저라는 등록명을 사용했다.[23] 2016~2018년[24] 2019~2020년[25] 상술했듯 이해 퍼시픽리그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투표에서 쿠니사다 야스히로가 1위를 차지하고 토니 로이는 투표수 2위를 기록했으나, 쿠니사다가 공동 포지션 수상 불가 규정에 따라 똑같이 투표수 1위를 차지했고 표수가 더 많았던 2루수 부문 베스트나인만 수상하게 되면서 토니 로이가 3루수 부문 베스트나인을 수상했다.[26] 1988년까진 구단명이 한큐 브레이브스였으나 시즌 말미에 모기업 한큐 전철이 오릭스에 구단을 매각하면서 구단명이 오릭스 브레이브스로 바뀌었다. 이후 1991년 구단이 고베시로 연고이전함과 동시에 또다시 구단명을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바꾸게 된다.[27] 구단명에 홋카이도가 붙은 건 2004년이지만, 창단 때부터 2003년까지 도쿄를 연고지로 삼았다가 2004년 구단이 홋카이도로 연고이전하면서 새롭게 구단명에 새 연고지 이름을 붙인 사례이기에 옛 구단명과 변경 후 구단명을 함께 적는다.[긴지] [29] 이해 한정으로 이름인 츠요시의 영문 표기인 TSUYOSHI를 등록명으로 사용했다.[30] 1972년까진 구단명이 토에이 플라이어즈였으나 모기업 토에이가 닛타쿠홈에 구단을 매각하면서 1973년 구단명이 닛타쿠홈 플라이어즈로 바뀌었다. 그런데 1년 만에 닛타쿠홈이 구단 경영을 포기하고 다시 닛폰햄에 구단을 매각하면서 1974년 지금의 닛폰햄 파이터즈가 탄생한다.[이치로] [이치로] [이치로] [이치로] [이치로] [이치로] [이치로] [SHINJO] [텟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