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5:30:33

가네코 치히로

카네코 치히로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380><tablebordercolor=#006298><tablebgcolor=#006298>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유색배경).svg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24 시즌 코칭스태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6298><colcolor=#ffffff> 1군 1 신조 츠요시감독 · 77 하야시 타카야수석 · 81 타테야마 요시노리투수
82 카토 타케하루투수 · 73 타케다 히사시투수 · 89 야기 히로시타격 · 72 야마다 카츠히코배터리
85 야치 료타내야수비·주루 · 80 모리모토 히초리외야수비·주루 · 79 다이타 타케노리데이터 분석관·주루
2군 90 이나바 아츠노리2군 감독 · 78 시미즈 마사지종합 · 84 이토 타케시투수 · 91 카네코 치히로투수
83 우라노 히로시투수 · 87 사토 토모야키타격 · 75 오다 토모유키타격 · 75 야마나카 키요시포수 인스트럭터
74 이와다테 마나부내야 수비·주루 · 76 콘타 토시마사외야 수비·주루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선수
틀: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돌아가기
다른 NPB 리그 팀 명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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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코 치히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480><tablebordercolor=#000019><tablebgcolor=#000019>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오릭스 버팔로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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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0 -10px -5px"
{{{#ec1c24 {{{#!folding [ 한큐 브레이브스 ]
{{{#555555,#aaaaaa
<tablewidth=100%>
1965년 ~ 1988년
1965년 1966년 1차 1966년 2차 1967년 1968년
나가이케 아츠시
(長池徳士)
미즈타니 타카시
(水谷孝)
히라바야시 지로
(平林二郎)
와타나베 카즈오
(渡辺一夫)
야마다 히사시
(山田久志)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미와타 카츠토시
(三輪田勝利)
코마츠 켄지
(小松健二)
와타나베 히로키
(渡辺弘基)
이시다 마코토
(石田真)
에가와 스구루(6)[1]
(江川卓)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야마구치 타카시
(山口高志)
스미토모 카즈야(6)
(住友一哉)
사토 요시노리
(佐藤義則)
마츠모토 쇼지
(松本正志)
세키구치 토모유키(1)
(関口朋幸)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키노시타 토모히로(1)
(木下智裕)
카와무라 카즈아키(6)
(川村一明)
야마오키 유키히코(1)
(山沖之彦)
에노키다 켄이치로(1)
(榎田健一郎)
노나카 테츠히로(1)
(野中徹博)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2]
시라이 타카유키
(白井孝幸)
이시이 히로시(1)
(石井宏)
타카기 코지(1)
(高木晃次)
이토 아츠노리(2)
(伊藤敦規)
사카이 츠토무(2)
(酒井勉)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c74b {{{#!folding [ 오릭스 브레이브스 - 블루웨이브 ]
{{{#555555,#aaaaaa
1989년 ~ 2004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사토 카즈히로(1)
(佐藤和弘)
하세가와 시게토시
(長谷川滋利)
타구치 소(2)
(田口壮)
코바야시 히로시(1)
(小林宏)
히라이 마사후미
(平井正史)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카세 토시히로
(嘉㔟敏弘)
이마무라 후미아키(1)
(今村文昭)
스기모토 유우(3)
(杉本友)
카와구치 토모야(2)
(川口知哉)
아라카키 나기사(6)
(新垣渚)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야마구치 카즈오(3)
(山口和男)
우츠미 테츠야(6)
(内海哲也)
오가와 유스케(3)
(小川裕介)
카토 다이스케(3)
(加藤大輔)
카토 타츠오
(歌藤達夫)
히라노 케이이치(3)
(平野恵一)
2004년
카네코 치히로(3)
(金子千尋)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9e751f {{{#!folding [ 오릭스 버팔로즈 ]
{{{#555555,#aaaaaa
2005년 ~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T-오카다(1)(4)
(T-岡田)
노부에 다이스케(1)(4)
(延江大輔)
니와 마사야(1)(4)
(丹羽将弥)
카이 타쿠야[3]
(甲斐拓哉)
후루카와 슈이치
(古川秀一)
히라노 요시히사(3)(5)
(平野佳寿)
코마츠 사토시(3)(5)
(小松聖)
코바야시 켄지(1)(5)
(小林賢司)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고토 슌타(1)[4]
(後藤駿太)
아다치 료이치(1)
(安達了一)
마츠바 타카히로(1)
(松葉貴大)
요시다 카즈마사
(吉田一将)
야마사키 사치야
(山﨑福也)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요시다 마사타카
(吉田正尚)
야마오카 타이스케
(山岡泰輔)
타지마 다이키(2)
(田嶋大樹)
오타 료(1)
(太田椋)
미야기 히로야(1)
(宮城大弥)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야마시타 슌페이타(1)
(山下舜平大)
무쿠노키 렌
(椋木蓮)
소타니 류헤이
(曽谷龍平)
요코야마 세이야
(横山聖哉)
}}}}}}}}}}}} ||
(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중복 지명 당첨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4) 고교생 드래프트
(5)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6) 지명 후 미입단

[1]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아니면 입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다른 팀의 지명을 모두 거부했다. 1973년에는 한큐에 지명되었으나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1977년에는 크라운라이터(現 세이부)의 지명을 거부, 1978년에는 한신의 지명을 거부하고 이른바 '공백의 1일'사건을 일으켰으나 일본야구기구의 중재로 결국 코바야시 시게루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하여 쿄진에 입단하게 된다.[2] 다이에와 마찬가지로 시즌은 한큐로 치렀으나, 시즌 직후 매각되어 드래프트는 오릭스로 참가했다.[3] 투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포수와는 음이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그 쪽은 「甲斐拓也」[4] 1라운드 복수 지명 추첨에서 무려 3번이나 떨어지고 나서 지명한 선수(...) 2022년까지 뛰다 2023년 주니치 드래곤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여담으로 이 해 오릭스가 1라운드에서 순차적으로 지명한 복수지명 선수는 오이시 타츠야(세이부)-이시미네 쇼타(롯데)-야마다 테츠토(야쿠르트).
킨테츠의 1라운드 지명선수는 틀: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1라운드 지명선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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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19>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오릭스 버팔로즈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한큐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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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91919,#ffffff
<rowcolor=#9e751f> 1936春夏 1936秋 1937春~1937秋 1938春 1938秋
미야타케 사부로 키타이 마사오 이시다 미츠히코 미야타케 사부로 오다노 카시와
<rowcolor=#9e751f> 1939 1940 1941 1942 1943
아사노 카츠사부로 시게미츠 미치오 아사노 카츠사부로 하시모토 쇼고 텐포 요시오
<rowcolor=#9e751f> 1944 1946~1948 1949 1950~1952 1953
카사마츠 미노루 텐포 요시오 이마니시 렌타로 텐포 요시오 시바타 에이지
<rowcolor=#9e751f> 1954 1955 1956~1958 1959 1960
카지모토 타카오 시바타 에이지 카지모토 타카오 요네다 테츠야 카지모토 타카오
<rowcolor=#9e751f> 1961 1962 1963 1964 1965
요네다 테츠야 이시이 시게오 카지모토 타카오 요네다 테츠야 아다치 미츠히로
<rowcolor=#9e751f> 1966 1967 1968 1969~1971 1972~1973
이시이 시게오 요네다 테츠야 이시이 시게오 요네다 테츠야 아다치 미츠히로
<rowcolor=#9e751f> 1974 1975~1986 1987~1989 1990 1991
타케무라 카즈요시 야마다 히사시 사토 요시노리 호시노 노부유키 사토 요시노리
<rowcolor=#9e751f> 1992~1994 1995 1996~1998 1999~2000 2001
호시노 노부유키 사토 요시노리 호시노 노부유키 코바야시 히로시 카네다 마사히코
<rowcolor=#9e751f> 2002 2003 2004 2005~2007 2008
에드 야날 요시이 마사토 구대성 카와고에 히데타카 카네코 치히로
<rowcolor=#9e751f> 2009 2010 2011 2012 2013~2014
코마츠 사토시 카네코 치히로 키사누키 히로시 알프레도 피가로 카네코 치히로
<rowcolor=#9e751f> 2015 2016~2017 2018 2019~2020 2021~2022
브랜든 딕슨 카네코 치히로 니시 유키 야마오카 타이스케 야마모토 요시노부
<rowcolor=#9e751f> 2023 2024
야마시타 슌페이타 미야기 히로야
}}}}}}}}}}}} ||

파일:NPB 로고.svg 2014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 상
다나카 마사히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버팔로즈)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MVP
다나카 마사히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버팔로즈)
야나기타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투수 부문 베스트나인
다나카 마사히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버팔로즈)
오타니 쇼헤이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다나카 마사히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카네코 치히로
(오릭스 버팔로즈)
와쿠이 히데아키
(치바 롯데 마린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4년 일본프로아구 퍼시픽 리그 최우수 방어율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0, 201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다 승리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3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다 탈삼진

{{{#ffffff [[오릭스 버팔로즈|오릭스 버팔로즈]] 등번호 19번}}}
오가와 유스케
(2002~2004)
카네코 치히로
(2005~2018)
야마오카 타이스케
(2020~)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19번
마이클 톤킨
(2018)
카네코 치히로
(2019~2022)
결번
}}} ||
파일:金子千尋2022.jpg
<colbgcolor=#006298><colcolor=#ffffff>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No.91
카네코 치히로
金子千尋[1] / Kaneko Chihiro
출생 1983년 11월 8일 ([age(1983-11-08)]세)
니가타현 산조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나가노현 나가노상업고등학교
사회인야구팀 토요타 자동차 경식 야구부(2002~2004)
신체 180cm, 77kg, O형
투타 우투좌타
포지션 투수
프로입단 2004년 자유 획득 범위 (오릭스)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즈 (2005~2018)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9~2022)
지도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특명코치 (202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군 투수코치 (2024~)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전2.2. 현역 시절
2.2.1.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2.2.1.1. 2005 ~ 2012 시즌2.2.1.2. 2013 시즌2.2.1.3. 2014 시즌2.2.1.4. 2015 시즌2.2.1.5. 2016 시즌2.2.1.6. 2017 시즌2.2.1.7. 2018 시즌
2.2.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2.2.2.1. 2019 시즌2.2.2.2. 2020 시즌2.2.2.3. 2021 시즌2.2.2.4. 2022 시즌
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연도별 성적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투수. 전성기 시절엔 오릭스 버팔로즈에이스 투수로써 암흑기를 달리던 팀을 지탱하던 선수였다.

한국에서는 앞자인 金子를 따서 금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일본에서의 별명은 고양이(네코).

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전

출생지는 니가타현 산조시였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나가노현 나가노시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학교를 진학했다. 나가노 상고 시절 2학년 때인 2000년 봄 코시엔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2차전에서 훗날 오릭스에서 함께 뛰게 될 히라노 요시히사가 뛰던 도바 고등학교에 패배하고 말았다. 2학년 봄 코시엔 외엔 번번히 예선에서 패배하며 한신 코시엔 구장을 밟아 보지 못했고, 이후 사회인야구토요타[2] 입사했다. 입사 3년 차인 2004년에 마무리 투수로써 부상하여 도시대항야구대회 출장을 이뤄내기도 했고, 같은 해 대졸, 사회인야구 선수를 자유롭게 영입 가능한 제도인 자유 획득 범위를 통해 당시 오릭스 버팔로즈,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합병으로 새롭게 탄생한 오릭스 버팔로즈에 입단하면서 신생 오릭스의 초대 신인 선수 중의 한 명으로써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2.2. 현역 시절

2.2.1.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2.2.1.1. 2005 ~ 2012 시즌
데뷔 시즌인 2005년엔 1군 등판 없이 2군에서만 뛰었고, 2군에선 12시합 등판에 그치긴 했지만 평균자책점 0.69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년차인 2006년에 본격적으로 1군에 데뷔하여 주로 중간계투로 뛰며 데뷔 첫 승리투수를 기록했고, 2007년엔 개막 초반엔 부진했으나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이유로 프로 데뷔 후엔 봉인해 왔던 컷 패스트볼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나아졌고 후반전부턴 선발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는데, 완봉승을 2차례 기록하고 6연승을 달성하는 등 성공적인 선발 전향을 이뤄내며 이 해부터 주축 선발 투수로써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개막전 선발투수에 등극하기도 했으나 시즌 초반부터 교류전까지 부진에 빠진 모습을 보여줘 다시 불펜으로 강등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류전이 끝난후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본인도 시즌 첫 10승을 거두고[3]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즈도 오랜만에 A클래스에 올라갔다. 다만 피안타와 피홈런을 너무 맞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였던 시즌이였다.

2009시즌에서는 前 시즌에 보여줬던 약점을 보완했는지 감독 추천으로 첫 올스타에 나오기도 하고 올스타전에서 좋은 피칭을 보여줘 베스트 피쳐상을 수상하고 팀 12년만에 2년 연속 10승을 달성한 투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성적이 추락했으며 특히 마무리 상태가 나쁘다 보니 9월달엔 본인이 자청해서 마무리로 등판하기도 했다.[4] 그리고 다음시즌인 2010시즌에선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 대량 실점을 여러번 하는등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7월부터 3경기 연속 완봉승을 하는등 13연승을 기록했으며, 최종적으로는 개인 최다승인 17승을 달성하면서 동시에 첫 200이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시즌에 스프링캠프부터 통증을 호소하더니 결국 개막전 선발 등판을 하지 못했고 6월에 시즌을 시작했다.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 규정이닝을 넘겼고 4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챙겼다 다만 본인의 소속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 6이닝 4실점을 해 팀을 패배로 몬 것이 흠이라면 흠 그리고 2012시즌에선 스프링 캠프에서 부터 오른쪽 손목 통증과 허리 통증을 호소하더니 개막전 등판도 하지 못했고 팔꿈지 염증으로 장기간 결장하는등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당연히 팀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2.2.1.2. 2013 시즌
2013시즌에서도 시범경기 등판을 하지 않아 이번에도 부상으로 시즌을 날리는가 했으나, 개막전 선발로 등판했으며 그 후에도 뛰어난 피칭을 보여줬다. 하지만 타선이 부실하다 보니 득점 지원이 심하게 안 좋아서 승수를 많이 쌓지는 못했고, 하필 그 시즌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말 그대로 미친 피칭을 보여주는 바람에 평균자책점도 2위로 밀렸다. 덕택에 사와무라 상의 모든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상은 무패의 에이스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사와무라 상의 모든 조건을 충족함에도 이 상을 못 받은 건 다르빗슈 유이후 2년만이자 3번째 투수다.[5]
2.2.1.3. 2014 시즌
그리고 2014시즌에서 캠프도중에 플루에 걸려 캠프에서 잠시 떨어지는등 불안감이 조성되었으나 개막전 선발에 등판했으며 4월부터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前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여파인지 이때부터 MLB 스카우터들이 가네코의 경기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MLB를 노리는 마에다 켄타와의 맞대결에서도 이기고요미우리 전에선 9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6]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트리플 크라운은 탈삼진 부문에서 노리모토 타카히로(라쿠텐)에 밀려 2위로 밀려나면서 실패했지만 16승과 1.98의 평균자책점 기록했으며 前 시즌에 못받은 사와무라상을 기어코 받아냈다. 이 사와무라상은 오릭스의 첫 사와무라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압도적인 정규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에서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고 오릭스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광탈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즌 후에 미국에서 월드시리즈를 관전하는 모습이 잡혔고링크 본인이 국내 FA행사를 보류하다보니 MLB 진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릭스 입장에선 보내지 않으면 FA로 일본내 타팀 이적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다 보니 웬만하면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미일 올스타전에서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11월 29일 오른쪽 팔꿈치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고, 결국 소속팀인 오릭스와 4년 20억엔+에 재계약을 맺었다. 해외진출 권리까지 보장했던 한신 타이거스를 포함한 타팀 팬들 중 일부는 어차피 잔류할 거면서 왜 FA선언을 하며 쇼를 했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7]
2.2.1.4. 2015 시즌
지난 시즌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어깨 근력 저하에 시달려 16경기 7승 6패 1홀드 ERA 3.19에 그치며 3년만에 두자릿수 승수 달성에 실패했다.
2.2.1.5. 2016 시즌
5월 20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에 선발 등판해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전년도에 자신을 괴롭혔던 오른쪽 어깨 통증 때문에 엔트리에서 잠시 말소되기도 했지만 복귀한 뒤에는 다시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았다. 시즌 최종 성적은 24경기 7승 9패 ERA 3.84로, 2년만에 다시 규정이닝을 채우긴 했지만 이름값과 연봉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운 성적. 더불어 데뷔 이후 가장 많은 볼넷을 기록한 시즌이었다.(59개)
2.2.1.6. 2017 시즌
27경기 등판(모두 선발), 12승 8패, 평균자책점 3.47, 184 1/3이닝, 141탈삼진을 기록했다. 여기까지 보면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지만 리그 최다인 21피홈런과 56개의 볼넷을 기록해 만족스러운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
2.2.1.7. 2018 시즌
6월 29일 기준, 11경기(모두 선발 등판) 3승 5패 방어율 3.50을 기록 중이다. QS를 7회나 기록했으나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부상으로 8월달에 시즌을 조기에 마치며 17경기 4승7패 평균자책점 3.87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는데 그쳤다.

올 시즌이 FA 마지막 해였는데 부활에 실패, 결국 오릭스 측으로부터 기존 연봉 6억엔에서 5억엔 삭감된 1억엔을 제시받았다.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받으면 전년도분 소득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봉은 -1억엔 이상이 되는 셈이라 이에 가네코는 FA선언을 했다. 2월 2일자로 자유계약선수 공시될 예정.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주니치 드래곤즈 등 여러 구단에서 가네코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중 주니치는 2년 3억엔(추정)의 다년계약을 제시할 의중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12월 3일, 닛폰햄과 처음 교섭을 가졌고 바로 다음 날인 4일에 닛폰햄과 계약을 발표했다. # 닛폰햄으로 이적하면서 등록명을 金子弌大로 변경했다.

당연하겠지만 오릭스 팬들의 분노는 상당한 상태. 오릭스 자체가 역사도 짧고[8] 대부분 외부영입으로 꾸려나가는 팀이라 프랜차이즈 스타로는 투수는 가네코, 야수는 T오카다 정도였는데 가네코를 후려치려다 내쫓아버린 셈이다.

2.2.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2.2.2.1. 2019 시즌
26경기 19선발 109.2이닝 8승 6패 2홀드 ERA 3.04를 기록. 전성기만큼은 못해도 2018년보다 좋아졌다. QS 횟수는 4회뿐이지만 이건 19번의 선발등판 중 오프너로 나온 경기가 꽤 된 게 크다. 노쇠화가 슬슬 가속화될 시기와 제대로 치는 놈 얼마 없을 정도로 식물수준의 타선을 생각해보면 나름 선전한 시즌.

특이사항으로 친정팀인 오릭스 상대로 7경기에 나와 ERA 0.49에 5승 무패를 기록하면서 복수를 제대로 했다.
2.2.2.2. 2020 시즌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은 아니었고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1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 시작부터 헤매고 있다. 그 이후 적응을 어느정도 했는지 평균자책점이 5점대로 내려가며 반 가까이 줄이고 있다

결국 불펜으로 34시합 1승3패 5.11의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연봉은 무려 80% 삭감으로 1억 4500만이 깎여 3500만엔에 재계약했다.# 올해의 불펜기용은 본인의 희망이 있었다고 하며, 내년에는 선발로 재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2.2.3. 2021 시즌
지난시즌에 예고한대로 선발로 재전향하였으나, 8경기 6선발 33.1이닝 무승 4패 6.21로 부진했고, 연말 연봉협상에서도 1500만엔 삭감된 2000만엔으로 재계약했다. 나이가 37세이다보니 이상할 것은 없다. 한때 은퇴설도 불거졌었으나, 어찌어찌 1년 더 현역을 연장하게 되었다.
2.2.2.4. 2022 시즌
나이도 38세에 이미 작년에도 한번 방출설이 돌았던 선수인데, 1군 최저연봉에 가까운 금액인 2천만엔으로 백의종군하는 형태라서 올해 반등하지 못하면 정말 마지막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범경기에서 3시합 4.50을 기록했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즌 전에 심기일전 했지만 1군 3경기(3선발), 1승 2패, 13이닝, ERA 4.85에 그쳤다. 시즌 후 코치직을 제안 받았지만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해 이를 거절하고 2022년 10월 17일부로 자유계약선수로 풀렸다. 2군 기록이 14경기, 7승 3패, ERA 2.49로 괜찮았기 때문에 아직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어느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이 나오지 않으면서 12월 22일자로 은퇴를 선언했다. # 닛폰햄 구단도 코치 제의를 다시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닛폰햄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코치 연수를 떠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3. 은퇴 이후

2023년 7월 1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2차전 경기를 앞두고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오릭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다 닛폰햄에서 명예롭게 은퇴한 카네코와 마찬가지로 닛폰햄에서 데뷔한 이후 오릭스와 한신을 거치면서 활약한 이토이 요시오까지 초청하였다. 이벤트로 두 선수의 맞대결이 각각 닛폰햄 유니폼과 오릭스 유니폼을 한 번씩 입고 이루어졌는데 두 번 모두 카네코가 투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승부에서 승리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쓰리쿼터의 폼에서 나오는 평균 144km/h, 최고 154km/h의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지만, 2014년부터 장기 계약을 맺은 이후 부상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함과 동시에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 탓에 구속이 급감했다. 2018년 기준으로 평균 141km, 최고 146km 정도.

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커브, 투심, 커터,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 여러 구질을 던지지만 최대의 장점은 역시 빠른 공. 볼배합을 빠른 공 구위를 살리는 쪽으로 하다보니 2014시즌은 패스트볼 피안타율이 2할대를 밑돌 정도고 제구력도 뛰어나 볼넷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폼이 안정적이다 보니 수비력도 뛰어나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그러나 장기계약과 동시에 맞은 팔꿈치 수술 뒤로는 패스트볼 구위가 감소했고, 패스트볼 구사율을 낮추고 변화구 비중을 끌어올렸다. 이 때문에 볼넷 수가 급증했고 제구력 자체도 많이 감소한 상태.

타석에서는 좌타석에 서는 우투좌타다. 파리그는 투수타석이 없지만 교류전에서는 선발투수가 타석에 서기에 1년에 몇번 타석에 서긴 하는데 타격실력은 프로 16시즌 통산 59타석 55타수 3안타 1타점 타율 5푼 5리. 퍼시픽리그 투수는 타석에 설 일이 없어서 타격연습을 안하기에 평균적으로 세리그 투수보다 방망이 실력들이 떨어지는데, 안좋은 쪽으로독보적인 수준의 타격실력을 지녔다.

땀을 싫어하는지 왼쪽 소매가 긴 특수한 언더셔츠를 쓰기도 한다. 다만 이 언더셔츠를 쓸 때 투구하기 전에 볼을 만지고 던지면 스핏볼을 쓰는거 아니냐라는 의견도 있어 주의도 받는 편이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셔츠에 전혀 닿지 않는다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만지고 있다고 한다. 한 때는 기복이 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대오각성한 2013시즌부터는 그런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하드웨어(180cm 77kg)가 그리 큰 편이 아니라는 점은 여전히 지적받는 부분이다. 때문에 최고의 성적을 찍은 뒤에도 늦은 데뷔로 인한 나이 문제와 함께 하드웨어 내구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결국 2014년 오프시즌에 팔꿈치 수술을 받고 오릭스와의 연장계약을 수락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은 물건너가게 되었다. 오릭스와의 장기계약 이후에도 구위 저하와 내구성 문제가 두드러진 것을 보면 어느 정도 현실화된 문제다.

5. 여담

  • 2014시즌 등판곡이 G.DRAGON의 노래인 삐딱하게다.링크 카네코는 이후에도 2015년에는 BANG BANG BANG, 2016년에는 iKON의 Dumb&Dumber를 등장곡으로 사용하는 등 K-POP에 관심이 많은 듯.
  • 운동선수치고 잘입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연예인 급으로 옷을 굉장히 잘 입는 편. 유행가나 최신 유행, 패션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단연 일본야구계 넘버원 패셔니스타다. 젊은 시절부터 머리를 염색하고 다녔고 30대 중반에도 탈색해서 그라데이션을 주고 펌을 한 머리를 하고 다니며 투블럭, 펌, 소프트 모히칸 등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한다. 유니폼이 아닌 사진을 보면 거의 매 사진마다 머리스타일과 머리색깔이 다를 정도로 패셔너블하고 수염도 길러서 소화한 적도 있는 등 스타일을 굉장히 자주 바꾸며 또한 사복 센스도 좋은 편이다. 이런 패션 좋아하는 인싸들이 한국 스타일이나 K-POP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니만큼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있다. 머리스타일이나 옷 스타일에서 한류스타일이 약간 느껴지기도 한다.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월드컵 당시 조현우가 나왔을 때 가네코 치히로 닮았다는 반응이 인터넷에서 잠시 돌았던 적이 있다. 실제로 닮았고.
  • 가네코라는 성이 재일한국인에 많은 성씨인 점, KPOP을 꾸준히 등장곡으로 사용하거나 한류아이돌스러운 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점으로 한국계 의혹이 있는 선수 중 하나다. 조선적이라는 소문도 있고, 구글 연관검색어에 가장 먼저 가네코 치히로 한국이 뜰 정도. 물론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애초에 카네코, 아라이, 카네다, 카네모토, 카네무라 등 좀 한국스러운 성씨를 가진 유명인이면 항상 따라붙는 것이 재일 의혹이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가네코라는 성씨는 한국계도 있지만 니가타를 본관으로 하는 가네코도 있다.[9]
  • 스즈키 이치로 의 일본시절 응원가가 오릭스 시절 카네코가 타석에 섰을 때의 응원가로 사용되었다.
  • 다른 선수는 전광판에 풀 네임이 아닌 성만 표시되는데,[10] 가네코는 金子千尋(오릭스 시절)-金子弌大(닛폰햄 시절)로 네 글자 풀네임이 모두 표시된다. 본래는 타 선수와 같이 성만 표시하였으나 2010년 4월 성이 같은 내야수 가네코 케이스케가 트레이드로 오릭스에 입단하며 이름 첫번째 글자까지 표기하게 되어 '金子千'로 표기하였는데, [11]글자 모양이 밸런스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풀네임으로 써줄 것을 요구하여 풀네임 金子千尋로 표기하게 되었다. 가네코 케이스케는 2년동안 활동하고 오릭스를 나가서 다시 팀의 유일한 가네코가 되었지만 金子千尋 풀네임 표기는 고치지 않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실 다시 되돌려도 곤란한 것이 이렇게 되면 공식기록이 찾아보기 굉장히 힘들어지기 때문. 시기별로 金子-金子千(약 1개월)-金子千尋(1년6개월)-다시 金子가 되어버리면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번 표기가 바뀌면 공식기록을 보는 사람이 헷갈리기 쉽기 때문에 배려한 것. 상술했듯 닛폰햄으로 이적한 현재는 등록명을 金子弌大로 바꿨지만 여전히 金子가 아닌 풀네임 金子弌大으로 전광판에 표기된다.[12]
  • 정말 여담으로 오른손잡이인데 벨트 버클을 왼쪽으로 오게 맨다.

6. 연도별 성적

NPB 통산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colbgcolor=#dcdcdc,#222222>2006 오릭스 버팔로즈 21 28.0 1 1 0 1 0.500 3.54 20 4 20 22 13 11 1.36
2007 36 84.0 6 2 1 2 0.750 2.79 75 4 21 68 31 26 1.13
2008 29 165.0 10 9 0 0 0.526 3.98 185 19 42 126 78 73 1.33
2009 32 171.2 11 8 4 0 0.579 2.57 149 15 38 165 54 49 1.07
2010 30 204.1 17 8 0 1 0.680 3.30 184 17 47 190 85 75 1.12
2011 20 155.1 10 4 0 0 0.714 2.43 126 9 40 123 45 42 1.06
2012 9 63.2 4 3 0 0 0.571 2.40 65 2 16 56 19 17 1.26
2013 29 223.1 15 8 0 0 0.652 2.01 166 10 61 200 55 50 1.00
2014 26 191.0 16 5 0 0 0.762 1.98 157 7 45 199 48 42 1.04
2015 16 93.0 7 6 0 1 0.538 3.19 85 8 18 79 34 33 1.11
2016 24 162.0 7 9 0 0 0.438 3.83 143 13 61 125 71 69 1.25
2017 27 184.1 12 8 0 0 0.600 3.47 160 21 58 141 80 71 1.17
2018 17 100.0 4 7 0 0 0.364 3.87 97 11 38 72 47 43 1.32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9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6 109.2 8 7 0 2 0.533 3.04 106 10 40 75 42 37 1.33
NPB 통산 342 1935.1 128 85 5 7 0.601 2.97 1718 150 545 1641 702 638 1.15


[1] 2019~2021년엔 한자 표기가 다른 金子弌大를 등록명으로 사용했다.[2] 아이치현의 강호 사회인야구팀으로 카네코를 비롯해 후루타 아츠야, 쿠리바야시 료지 등 유명 프로야구 선수를 다수 배출했다.[3] 덤으로 이닝은 팀내 2위에 탈삼진은 전체 8위였다.[4] 정확히는 스프링캠프에서 선발들에게 물어봐 불펜으로 뛸 수있는 사람을 물어봤는데 가네코만 가능하다고 했다.[5] 나머지 한 투수는 에가와 스구루[6] 경기가 연장으로 넘어가고 본인이 내려가서 승리는 없었다.[7] 여담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5년 20억엔 오퍼를 했다는 보도화면에 5억년 20엔이란 오타가 난 개그성 짤도 나타나 웃음을 주기도 했다.[8] 오사카 구단으로써의 역사. 오릭스 프랜차이즈 역사는 80년이 넘을 정도로 매우 길다.[9] 애초에 귀화한 경우는 관보에 기록이 남기 때문에 반대로 관보에 기록이 없다는 것은 재일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같은 성을 쓰는 세이부의 카네코 유지(金子侑司)는 생일과 사는 지역이 똑같은 金侑司라는 사람이 귀화한 기록이 관보에 있다는 말이 있으나 해당 관보 기록이 인터넷에서 만들어낸 주작이라는 말이 있는데다 본인도 전혀 말한 적이 없고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도 전혀 없다.)[10] 이름이 清原 和博라면 보통은 성 清原만 표시된다. 성이 같은 선수가 있을 경우에는 이름 첫번째 글자까지 표기하는 것이 관례.[11] 마찬가지로 가네코 케이스케는 '金子圭'.[12] 비슷한 사례로 풀네임 山本 昌広나 성 山本이 아닌 山本昌까지가 정식 등록명이자 전광판 표기명이던 야마모토 마사의 사례가 있었다.